주어진 시간 안에 노동자운동의 주객관적 상태를 상세히 진단하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에, 현 정세에서 우리 운동의 이념노선과제를 둘러싸고 쟁점을 형성하는 세 가지 주제에 관해 초점을 맞춰보겠다. 첫째, 경제위기에 따른 동아시아한반도 정세의 변화 속에서 노동자운동의 민족주의적 대응을 비판하고 평화주의로서 국제주의를 이념적 대안으로 제시한다. 둘째, 경제위기와 정부의 노동유연화 정책 속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나 ‘장시간 노동체제 근절’을 기조로 하는 노동자운동의 대응을 비판하고 노동자계급 내부의 격차를 축소할 수 있는 ‘연대임금’을 노선적 대안으로 제시한다. 셋째, 신임 민주노총 집행부가 제시한 당면 정치적조직적 과제로서 정치세력화와 전략조직화에 대해 제언한다. 그동안 사회진보연대가 여러 경로를 통해 제출해왔던 입장을 정세적으로 재구성해보겠다. 평화주의로서 국제주의 우리가 살고 있는 2010년대는 훗날 1930년대 대불황에 비견되는 대침체의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 2007-2009년 금융위기에 대응하는 미국의 ‘플랜 A’는 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제로금리정책수량완화정책오퍼레이션트위스트)과 재무부의 재정정책(부실자산구제계획적자재정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책 대응에도 불구하고 주택시장과 노동시장이 회복되지 않자 ‘플랜 B’가 적극 동원되고 있다. 그 핵심은 2011년 선언한 ‘태평양으로의 선회’에 따른 범태평양파트너십(TPP)과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협정(FTAAP) 구상이다. 오바마 정부는 TPP 협상을 2013년까지 완료하고 FTAAP 협상은 2010년대에 완료한다는 목표를 수립하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경제적 부상으로 인한 세력균형의 교란을 재조정하기 위해 동아시아에 대한 재관여재균형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북한이란 등이 ‘세계적 공유지’인 황해남중국해인도양페르시아만에서 미군의 작전을 방해한다는 인식에 따라, 미국 국방부는 육군공군 중심의 ‘지상공중전’에서 해군공군 중심의 ‘합동작전접근개념’, 즉 ‘해상공중전’ 개념을 제시했다. 여기서 북한의 핵무장은 미국에게 좋은 빌미가 되고 있는데, 미국은 역내 안정과 동맹국에 대한 안전 보장을 이유로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의 재편을 적극 추진하면서 한국과 일본을 미사일방어체계(MD)에 편입시키고 있다. 이는 중국과의 잠재적 갈등을 심화하고 북한의 핵무장을 또다시 심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난 상반기 첨예하게 고조된 한반도 위기 국면에서 남한 노동자운동의 주류적 이념은 민족주의였다. 반제국주의민족자결민족공조에 입각한 북한의 선군정치핵자위론 옹호가 주류적 대응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제고가 장기간에 걸친 북미 간 대결 구도에서 협상의 지렛대로 작용하여 결과적으로 평화협정 체결로 이어질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 이것이 남한의 정치 상황에 대해 갖는 함의는 통합진보당의 자주적 민주정부론, 즉 야권연대를 통한 연립정부 구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11-2012년 일련의 통합진보당 사태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진보연대는 당시 한미동맹의 대북 위협과 함께 북한의 핵무장과 이를 옹호하는 입장에 관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첫째, 미국의 대북전략이 교류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입장에서 제재를 통해 봉쇄를 유지한다는 입장으로 수렴한 상황에서, 현재와 같은 북한의 맞대응 전략은 미국의 추가적인 강압적군사적 대응 가능성을 높이는 반면 협상을 통한 조정의 가능성을 높이지는 않을 것이다. 둘째, 북한의 ‘벼랑끝 전술’은 역으로 미국의 핵위협의 정당성을 사후적으로 강화하는 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일본과 남한에게 핵군비 증강의 빌미를 제공하여 향후 계속해서 북한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는 군비경쟁의 딜레마로 몰아넣을 것이다. 셋째, 북한의 핵개발을 사실상 지지하거나 또는 북한의 핵개발이 주요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모순적이고 모호한 입장은 반핵·평화운동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조장한다. 넷째, 남한에서 북핵 억지력의 현실적 대안으로 한미동맹의 강화나 심지어 남한의 독자 핵무장 논리가 득세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한의 사회운동이 ‘핵무기 반대’라는 평화주의의 이념적 기초를 확고히 하지 않을 경우 평화운동의 대중적 토대를 유실할 위험이 크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북한의 핵무장에 대한 방어적수세적 관점을 전도하여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비핵화’를 일관되게 주장함으로써 미국의 핵 위협과 한미동맹의 확장억지 강화, 남한의 독자적 핵무장화 시도를 무력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일방적 군비축소’의 관점에서 장기적으로 핵우산 및 주둔 미군의 철수와 같은 군사동맹 폐기 또한 지향해야 한다. 그럼 이상의 정세적 비판을 이론적으로 보충해 보겠다. 레닌으로 대표되는 마르크스주의 전쟁론의 전통에서 전쟁은 혁명의 조건으로 사고되었다. ‘제국주의적 전쟁을 혁명적 내전으로 전화시키자’는 레닌의 구호는 제국주의적 전쟁을 계기로 출현하는 국가자본주의라는 경제적 토대와 대중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적 반역의 해후를 통해 제국주의적 전쟁을 혁명적 내전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제국주의적 전쟁을 계기로 출현하는 국가자본주의적 경향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경제적 토대가 되고, 제국주의적 전쟁에 연루되는 대중이 민족자결주의로서 국제주의를 포함하는 다양한 민주주의적 요구를 통해 이데올로기적 반역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이는 계급혁명과 민족해방의 결합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레닌의 전쟁론은 냉전 속에서 그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2차 대전의 종전이자 냉전의 시작을 알린 것은 미국의 대일 핵공격이었고, 뒤이은 냉전 하에서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를 둘러싼 미소간의 군비 경쟁은 인류의 절멸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제국주의적 전쟁이라는 ‘불의의 전쟁’과 혁명적 내전이라는 ‘정의의 전쟁’을 구별하는 대신 평화라는 이상이념에 따라 ‘일방적 군비 축소’와 ‘군사동맹 폐기’라는 구호를 채택해야 한다. 이러한 적극적능동적 평화주의는 전쟁이라는 극단적 폭력에 대한 비판을 경제적 착취와 이데올로기적 억압이라는 구조적 폭력에 대한 비판과 결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새로운 국제주의는 민족자결이 아니라 평화주의이며 나아가 평화주의는 대안세계를 향한 가장 중요한 이념적 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제 ‘혁명의 조건으로서 전쟁’이라는 관점을 ‘평화의 조건으로서 혁명’이라는 관점으로 전도해야 한다. 이상 정치군사정세와 관련하여 평화주의의 관점에서 제기된 민족주의 비판을 확대해보겠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현 정세에서 민족주의 비판이 필요한 이유는 세계화와 그것의 위기에 대한 반동으로서 종족적 민족주의 또는 인종주의가 발호하기 때문이다. 가령 유럽에서는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함께 신자유주의적 반격 속에서 복지국가도 쇠퇴했다. 이로 인한 ‘사회적 권리’의 해체가 불평등과 배제의 심화로 이어지면서 대중적 불만이 고조되고 그것이 좌우를 막론한 기존 정치계급에 대한 불신으로 표현되고 있다. 특히 경제위기 하에서 배타적인 동일성의 감정이나 원한을 동원하는 극우 세력의 정치적 약진은 파시즘의 부활에 대한 우려까지 낳고 있는 실정이다. 그것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로는 현재 그리스의 신나치주의 황금새벽당을 들 수 있다. 그럼 종족적 민족주의와 관련된 한국 사회의 두 가지 현실적 쟁점을 살펴보자. 첫 번째는 재외동포를 민족으로 간주하는 데서 드러나는 종족적 민족주의다. ‘동포’라는 표현에서도 드러나듯이 일상에서 통용되는 민족주의 관념은 실은 다분히 종족적인 관념을 내포한다. 본래 ‘동포’(同胞)란 ‘한 어머니의 소생’을 뜻하는 말로, 혈연의식과 민족공동체 의식을 강조한다. 통상적으로, 외국국적자(시민권자)에 다르지 않은 이들을 민족으로 부르는 반면 이주노동자를 민족으로 부르지는 않는다. 두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2012년 총대선부터 재외국민(영주권자)에게 투표권이 부여된 반면 이주노동자들에게 영주권이나 투표권을 부여한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또 2011년 시행된 정부의 ‘재외동포 고충해소 프로그램’을 사례로 들어보면, 현재 국내에 거주하면서 F-4비자(재외동포비자) 자격이 없는 미등록 재외동포(대부분 중국동포)가 신청자격을 획득하게 되고 신청시 D-4비자(일반연수비자)를 받게 된다. 9개월 간 재외동포기술교육지원단에 의한 직업교육을 받고 나면 이들은 H-2비자(방문취업비자)로 비자를 바꿀 수 있게 되고 현재 방문취업제 하에서 재외동포들에게 개방되어 있는 36개 업종에서 4년 10개월 동안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된다. 이는 한편으로 ‘동포’에 대한 ‘편애’를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를 비동포 이주노동자와 정주 시민(및 선진국 재외동포) 사이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이등 시민으로 고착화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러한 인종주의적 위계구조의 제도화는 노동자계급 사이의 분열을 심화한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민족이라는 개념을 사고한다면 과거지향적 측면보다도 미래지향적 측면을 강조해야 한다. 즉 민족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운명을 공유하는 사람들 또는 현재로서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이주노동자가 우리와 운명을 공유하고 현재로서 역사를 공유하는 시민이라면, ‘민족’인 것이다. 두 번째로 저출산고령화 대책으로서 출산장려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해보겠다. 사실 종족적 민족주의의 핵심에는 확대된 가족으로서 종족이라는 관념이 있다. 따라서 페미니즘 관점에서의 가족 비판이 종족적 민족주의 비판에도 적합하다. 출산제한 또는 출산장려 같은 가족정책인구정책은 성욕과 재생산에 대한 여성의 권리를 가부장제적으로 통제한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에 대해 정부는 각종 출산장려 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정부가 은연중에 이주노동자나 혼혈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는 셈이다. 민족주의인종주의의 부활에 대한 대안은 ‘또 다른 세계화’ 즉 대안세계화 또는 대안지역화일 수밖에 없다. 가령 유럽연합은 경제위기와 정치위기의 단계를 지나 제도위기로 진입하고 있다.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연합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적 유럽의 제도적 기초를 변형하기 위한 경제정책과 세력관계의 역전이 필요하다. 비슷한 맥락에서, 남한의 수출-재벌 중심 세계화나 각종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국제주의적 대안으로서 국가간 노동표준을 통일시키거나 상승시키기 위한 노동자 국제연대를 적극 고려해야 한다. 노동자계급 내부의 단결: 임금 격차 축소 박근혜 정부는 고용률 제고를 핵심 국정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생산가능인구 증가율 둔화가 가속화되고 고용률 상승이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장기적인 경제성장률 제고를 위해서는 노동생산성 향상이 매우 긴요한 정책과제이며, 따라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생산성을 높여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장시간 노동체제 개선’을 위한 임금체계 및 교대제 개편과 여성의 일가정 양립을 위한 시간제 일자리 대책이 적극 제시되고 있다. 1998년 이후 정부의 노동유연화 정책이 고용량·고용형태의 유연화를 거쳐 임금 및 노동시간 유연화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조만간 노동시간 및 임금 유연화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실은 소책자를 발간할 예정인데, 그 내용을 바탕으로 설명해보겠다. 신보수주의가 직접적인 방식, 즉 대량실업을 통해 임금 및 고용의 유연성을 확보하자고 주장하는 데 반해 신자유주의는 간접적인 방식, 즉 ‘실업의 조직화’를 통해 임금 및 고용의 유연성을 확보하자고 주장한다. 임금 및 고용의 유연화를 위한 정책개혁의 실행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효율성 임금, 노동연계복지(workfare)가 추진된다. 따라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는 ‘외부적수량적 노동유연화로서 정리해고’에 대한 대안으로서 ‘내부적기능적 유연화로서 비정규직화’를 포함한다. 어쨌든 ‘일자리 나누기’라는 개념 자체가 고용형태의 유연화와 함께 노동시간 및 임금의 유연화를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는 경제위기외환위기의 충격을 배경으로 1998-2003년 정리해고제파견근로제변형근로제, 이름하여 ‘3제’의 도입으로 일단락되었다. 그 과정을 잠시 환기해보자. 1987년 노동자 대투쟁에 후속하는 1989년 노동법 개정 투쟁의 성과로 쟁취된 44시간 노동주에 반하여 자본가계급은 1990년대 정리해고제파견근로제변형근로제의 도입을 줄곧 요구했다. 민주노총은 1996-1997년 노동법 개악 총파업으로 3제의 도입을 얼마간 저지하지만, 1998년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여 민주노총전교조공무원노조의 합법화 및 노조의 정치활동 보장과 3제를 교환했다. 그리고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서 주5일 근무제에 따른 40시간 노동주가 도입되는 대신 변형근로제가 확대되었다. 최근 세계 금융위기경제위기 속에서 대량실업에 직면한 각국 정부는 고용 유지창출을 위한 각종 경기부양책과 노동유연화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시도했다. 특히 유럽에서는 노사정협정 또는 노사협약을 통해 정부의 재정지원을 토대로 사측이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대신 노조가 임금 동결삭감 같은 양보교섭을 수용하는 코포러티즘이 특징적이다. 경제위기에서 민주노총은 총고용 보장을 핵심목표로 설정하면서 노동시간 단축과 공공부문 고용창출에 덧붙여 고용안정특별법과 고용안정협약을 핵심 요구로 제기했다. 이 중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경제위기에서 ‘일자리 나누기’라는 정세적 대안이자 ‘장시간 노동체제의 해체를 통한 국민병 치유’, ‘무제한적 노동을 넘어선 노동해방’, ‘질 좋은 노동시간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전략적 과제로 승격되는 듯 보인다. 먼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비판해보자. 1998-2003년 당시 민주노총의 요구가 법정노동시간 단축이었던 데 반해 현재의 요구가 실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과거와 마찬가지로 노동시간 단축이 ‘일자리 창출’로 연결될 것이라는 부당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노동시간 단축은 대개 노동강도 상승으로 대체되는데, 이때 그에 비례해서 임금이 증가하지 않으면 사실상 임금을 하락시키는 효과를 지닌다. 게다가 노동강도 상승에 비례해서 임금이 상승하더라도 노동시간 단축이 양적질적으로 고용 창출에 긍정적으로 기여한다는 보장도 없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첫째, 역사적으로도 1990년대 유럽(독일·프랑스)의 노동시간 단축 경험은 변형근로제를 동반한 노동주노동년 단축이 오히려 노동시간의 유연성을 확대했음을 보여준다. 둘째, 통계상으로도 노동시간 단축과 고용 창출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는 어렵다. 만일 노동시간 단축과 고용 창출의 상관관계가 있다 하더라도 양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질적인 측면이 주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노동유연화의 결과 우리 사회에는 노동시장노동과정노동력재생산에서 공히 불안전이 확대되어 전반적인 고용의 질이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산업구조로 보면 ‘서비스화’가 진척되지만 1990년대 이후 고용 창출을 주도한 서비스업종은 음식료도소매숙박업과 같은 기술수준이 낮고 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서, 전체 서비스산업의 노동생산성은 여타 OECD 국가들과 비교할 때 최하위 수준이다. 정부 당국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양질의 일자리’ 창출 부진이 지속되면 취업자수 증가가 임금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줄어들고 고용창출이 임금상승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문제다. 고용창출로 인한 실질구매력 증대효과가 크지 않아 고용창출이 내수진작을 통해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현실적으로도 ‘법정근로시간단축으로 실노동시간이 감소하고 시간당 임금이 증가하였다’는 긍정적인 통계 지표의 이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저임금 노동자 비율과 장시간 노동 관행이라는 부정적인 현상이 공존한다. 법정근로시간단축은 초과노동 사용을 억제할 유인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실노동시간 단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자 했다. 그런데 노동력 가치로 지불되는 임금은 주어진 임금제도 내에서 노사간 교섭(력)에 의해 결정되고 임금체계에 따라 변동한다. 현실에서 사용자는 초과노동을 이용하더라도 총액급여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시간당 정액급여를 낮게 조정하여 지불하고, 또한 준고용비용이 높은 노동자의 초과노동을 이용함으로써 추가고용으로 발생할 수 있는 노동비용 증대를 방지하려고 한다. 다시 말해 고용된 노동자들의 초과노동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켜 신규고용과의 대체를 억제하는 것이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 임금총액 대비 현저하게 낮은 기본급 수준이 초과노동의 결정적 유인이 되고 있다. 다음으로 ‘장시간 노동체제 근절’이라는 기조를 비판해보자. 민주노총은 장시간 노동의 원인을 분석함에 있어 ‘노동거부’나 ‘일중독 비판’과 같은 아나키즘 또는 문화주의를 하나의 이론적 원천으로 삼고 있다. 이상은 그 실행 방안이 묘연하다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장시간 노동체제의 책임을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안정이나 임금보전 욕구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노동자계급의 분할을 조장하거나 노동자운동을 공격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금속노조에서는 노동시간계좌제와 같은 수단을 고용조정의 유력한 대안으로 소개한 적도 있는데, 독일의 사례에서 노동시간계좌제는 ‘외부적’ 유연화의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국가와 자본이 선택하는 ‘내부적’ 유연화 기제로서 물량 변동에 따른 노동시간의 유연성을 극대화하여 집단 노동자의 개별화를 야기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러나 ‘장시간 노동체제’의 진정한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악순환을 특징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보편성, 즉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과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결합하는 임금률의 작용에 대한 분석과 함께 ▲세계시장에서의 경쟁 압력 속에서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를 특징으로 하는 남한 자본주의의 특수성, 즉 노동력의 평가절하를 통한 수출경쟁력 확보 전략과 재벌을 정점으로 하는 수직적 하청계열화에 대한 분석이 결합되어야 한다. 아래에서는 마르크스의 임금론노조론과 남한의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에 대해 이론적으로 설명해 보겠다. 먼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보편성으로서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메커니즘에 대해 설명해보자. 임금노동자에 의해 창출된 잉여가치를 자본가가 영유하는 착취의 메커니즘에 기초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생산의 동기는 자본가의 무한한 이윤 증식 욕구에 있다. 따라서 자본가는 이윤의 원천인 잉여가치, 즉 부불노동시간의 생산을 위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토대로 노동년·노동일을 연장하거나 노동자수를 증가시킴으로써 부가가치를 증가시켜 잉여가치를 증가시키는 ‘절대적 잉여가치 생산 방법’과 ▲자본주의적 생산력을 토대로 노동력가치를 감소시킴으로써 잉여가치를 증가시키는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 방법’을 결합한다. 전자가 노동시간의 ‘외연적 연장’이라면 후자는 노동시간의 ‘내포적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노동시간 단축에 관한 논의는 노동생산성과 노동강도에 대한 논의와 결합되지 않으면 공허할 뿐이다. 생산과정의 기계화와 자동화, 그리고 노동력 활용방법의 끊임없는 ‘합리화’는 노동강도 강화, 마르크스식으로 말해서 노동시간의 ‘내포적 연장’에 크게 기여했다. 테일러주의에서 최근의 도요타주의에 이르기까지 노동자의 자연시간에 대한 기계들의 전체주의적 지배는 산 노동의 ‘죽은’ 시간을 지속적으로 제거해온 과정이기도 했다. 특히 2차 대전 이후 고정자본의 엄청난 증가는 노동강도를 비례적으로 상승시켰다. 또한 1980년대 이후 기업들이 생산 증대보다 생산성 및 노동강도 증가를 목표로 두게 되면서 ‘노동절약’ 기술들에 대한 투자가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방금 이야기를 좀 더 일반적으로 말해보겠다. 자본주의적 생산력의 발전은 노동을 절약하고 자본을 소비하는 편향적 기술진보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노동을 절약하는 대신 고정자본을 소비하는 편향적 기술진보에 따라 자본생산성이 하락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축적의 보편적 법칙이므로, 이에 대한 반작용을 조직하는 것이 바로 고정자본의 소비를 효율화하는 현대적인 ‘관리자 혁명’이다. 이는 곧 노동강도를 강화함으로써 고정자본의 소비를 효율화하는 방법으로서, 노동강도의 강화를 통해서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과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이 결합된다.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과 통일시키는 경제적 방법이 바로 기계제대공업이 발명하는 새로운 임금지불 방법으로서 시간급과 (시간급을 변형한) 성과급이다. 시간급 체계에서 자본가는 직접적으로는 표준시간급 하방 압력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는 노동자간 경쟁, 즉 취업자와 실업자간 경쟁을 활용해서 생계유지를 위해 일정한 임금을 수취해야 하는 노동자로 하여금 장시간 노동을 강제한다. 시간급은 잔업과 특근 같은 초과노동이나 교대제를 통한 노동자 수의 증가를 통해서 노동시간을 외연적으로 연장한다. 성과급 체계에서 자본가는 직접적으로는 표준성과급 하방 압력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는 노동자간 경쟁, 즉 취업자간 경쟁을 활용해서 생계유지를 위해 일정한 임금을 수취해야 하는 노동자로 하여금 고강도 노동을 강제한다. 성과급은 노동강도의 상승을 통해서 노동시간을 내포적으로 연장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악순환을 본질로 한다. 이상 마르크스의 임금론은 곧 노조론으로 연결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다. 다음으로 남한 자본주의의 특수성으로서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메커니즘에 대해 설명해보자. 1997-1998년 위기는 1990년대 재벌의 과잉 중복 투자가 야기한 이윤율 급락에 따른 경제위기와 외환위기가 결합된 결과였다. 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자본축적률은 과거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매우 낮은 수준에서 지속되고 있다. 이윤율 하락이라는 요인 외에도 ▲해외 직접투자와 같은 자본 이동 ▲실물자산이 아닌 금융자산 위주의 투자행태 ▲기업결합(M&A) 중심의 투자행태 ▲1997년 이후 급격히 증가한 배당금의 증가와 같은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한 경영행태 ▲경제의 불안정성 증가에 따른 실물투자의 기피 현상 등이 실물투자를 구조적으로 위축시키는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자본축적률의 하락은 구조적 실업을 낳고, 이는 다시 노동의 교섭력을 약화시켜 노동소득분배율을 악화시키고 불안전 노동을 확산한다. 한국 경제는 금융자유화를 통해 국외로부터 막대한 자본을 수입하게 되었지만, 이는 한편으로 초민족자본에 의한 국민경제의 지배 및 국부유출이라는 문제와 다른 한편으로 국내자본의 해외도피라는 문제를 낳았다. 또 구조조정과 평가절하를 통해 한국경제는 수출경쟁력을 회복하여 막대한 무역흑자를 축적할 수 있었지만 이는 수출-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강화했다. 평가절하를 통해 재벌의 수출경쟁력을 확보하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으므로 정부는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했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경제가 성장과 고용창출력이 저하된 가운데 높은 대외의존도로 외부충격에 취약한 구조적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서비스산업 개방 및 선진화를 추진했다. 결국 지배계급의 입장은 ‘소규모 개방경제’로서 한국경제의 유일한 활로가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수출경쟁력은 여전히 기술경쟁력보다 저임금 기반 가격경쟁력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수출경쟁요인 분석 결과, 한국은 아직 세계 시장에서 확실하게 품질경쟁을 하는 품목의 비중이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세계시장에서 아직까지 확실하게 품질의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치열하게 경쟁국 상품과 경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의 제조업은 여전히 범용기술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중국 등 후발개도국의 추격에 취약한 동시에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도 여전히 존재하여 신흥개도국과 선진국 사이에서 점차 수출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샌드위치론’ 또는 ‘넛 크래커(nut-cracker)론’이 틈만 나면 제기되고 있는 형편이다. 대내적 측면에서는, 1997-1998년 위기를 계기로 구조조정을 단행한 수출-재벌이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해 위계적 하청계열화 체제를 구축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자동차 가치사슬에서는 내부생산을 축소외부화하고 연구개발기획과 판매마케팅 부문을 강화하는 완성차기업을 정점으로, 중간관리 모듈기업(생산관리기업, 하위모듈기업)과 하위부품기업(전문부품기업, 하위납품기업)이 중층적이면서도 종속적인 위계관계로 연결되는 가치사슬구조가 구축되었다. 이러한 ‘종속적 모듈 가치사슬’에서 완성차기업은 생산을 축소외부화함에도 불구하고 하위부품기업들에 대한 지배와 통제를 유지한다. 기업 위계의 상위로 잉여가치 이전이 강조되는 이러한 구조 하에서는 기업 간 긴밀한 신뢰구축을 통한 동반발전효과는 줄어들고 일방적인 수익이전과 비용전가 구조만이 강화된다. 산업의 성과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공유되는 것이 아니라, 가치사슬의 상위위계로만 집중되고 위계의 하위로 갈수록 그 조건이 열악해지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구조에서 원청 대자본의 부담 전가, 특히 경제위기 시기의 부담 전가 경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기업 내 부담 전가 경로로서 1차 사내하청 노동(고용)에서부터 시작해서 원청 대자본의 정규직 노동(임금)으로 이어진다. 이 경우에는 1차적으로 대공장내 사내하청 노동에 대해서는 고용을, 정규직 노동에게는 임금을 매개로 부담 전가가 이루어진다. 두 번째 경로는 기업 외부, 즉 외주 하청구조를 통해 부담을 전가하는 구조로서, 이를 구현하는 수단은 물량과 단가다. 물량과 단가 삭감을 통해 외주 하청에게 부담이 전가되고, 이는 또다시 외주하청 업체 내 파견사업체 및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특히 최근 경제위기는 시장의 불확실성을 임시직의 고용과 노동시간의 변동을 통해 흡수하는 양상을 보였는데, 특히 초과노동시간의 증감에 따른 소득 증감이 노동소득분배율의 악화에 기여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상의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이윤율 하락에 따른 위기는 자본의 과잉과 노동의 과잉, 즉 자본의 금융화와 노동의 불안전화로 전개된다. 1997-1998년 위기 이후 한국경제는 이윤율 하락→자본축적률 저하→구조적 실업률의 상승→(교섭력의 약화)→노동소득분배율의 악화가 관찰된다. 1998-2003년 ‘3제’의 도입을 통한 노동유연화는 노동시간 및 임금의 개별화로 귀결되었다. 이러한 노동의 위기 속에서 무엇보다도 노동자계급 내부 격차가 확대되면서 노동조합의 대표성이 취약해지고 있다. 따라서 원하청노동자간 경쟁, 나아가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경쟁을 특징짓는 임금 격차를 축소하는 연대임금이 대안적 사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작년에 ‘경제민주화’에 대한 노동자적 대안을 ‘재벌체제에 대한 노동자 단결’이라는 프레임으로 전환할 것을 주장하였듯이, ‘장시간 노동체제’에 대한 노동자적 대안을 ‘정액임금 인상을 통한 노동자 단결’ 프레임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앞서 잠시 뒤로 미뤄뒀던 노동조합의 의의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들은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이라는 자본의 전제적 침략을 막고 자신의 노동력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임금 인상, 노동일 단축, 노동조건 개선 투쟁과 같은 경제투쟁(방어적 계급투쟁)을 펼치게 된다. 노동자-자본가 간의 임금투쟁이라는 일종의 ‘관습’ 또는 노동조합이라고 하는 계급투쟁의 역사적 제도가 임금을 결정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노동생산성의 상승을 보상할 것을 요구하는 노조의 경제투쟁에 따라 임금률이 비례적으로 상승한다. 이런 의미에서 노동조합은 자본주의적 착취에 저항하는 노동자계급의 가장 기본적인 조직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동시에 이를 역으로 생각해보면 경제투쟁의 최선의 결과는 현상 유지일 따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르크스가 강조하듯이 경제투쟁은 임금제도라는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에 대한 투쟁이기 때문에 노조가 자신의 조직된 힘을 노동자계급의 최종적 해방, 즉 임금제도의 궁극적 폐지를 위한 지렛대로 이용하지 않는다면 총체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의 진정한 결과는 [임금률의 인상이라는] 직접적 성과가 아니라 점차 확대되는 그들의 단결이다’라는 『공산주의자 선언』의 문구를 상기할 수 있다. 즉 노동조합은 노동자계급의 완전한 해방을 위해 자신의 조직된 힘을 바탕으로 노동자계급의 통일을 추구함으로써 임금노동 제도를 철폐하기 위한 사회·정치 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 멀게는 1960년대 말-1970년대 초 이탈리아 평의회노조 운동의 전통에서 나타나고, 가깝게는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한국 전노협 운동의 전통에서 나타났던 연대임금 또는 정액임금 인상 운동은 노동자계급 내부의 격차 축소와 단결을 위한 첫 걸음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현재 논의 지형이 ‘장시간 노동’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당면 과제는 다음과 같다. 원론적으로는 노동시간 및 임금 유연화를 동반하지 않는 법정 노동일 단축이 대안이겠지만, 현재의 계급역관계를 고려할 때 이는 불가능하다. 일단 논리적으로는 ‘노동시간 단축 시 임금 삭감, 노동강도 강화, 노동시간 유연화를 동반하지 않아야 한다’는 기조로 대응해야 한다. 과거의 사례나 지금의 역관계를 감안할 때, 민주노총이 노동시간 단축 그 자체를 궁극적 목표로 상정할 경우 정부와 자본이 의도하는 노동유연화 기제와 맞바꾸는 식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한 논리다. 현실적으로는 정부의 유연근무제 확대 방안, 즉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시간제 일자리’ 확대를 비판하는 투쟁을 펼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근로시간특례제도 폐지, 포괄임금제 금지 등 법제도적 개선을 요구하고, 미시적으로는 교대제 개편 방안에 관해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임금 유연화 대응 기조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앞서 마르크스의 임금론-노조론에 대한 이해를 전제한다면, 임금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노사간의 역관계 또는 노동조합이라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케인즈의 경우 이렇게 임금이 제도적으로 결정되는 것을 ‘경직성’이라고 부르는데, 임금의 경직성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연공서열급이다. 연공서열을 포함해서 임금이 경직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노동생산성이 개별노동자가 아니라 집단노동자의 노동생산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의 경제투쟁의 성과로 노동생산성의 상승에 비례해서 임금이 상승하는 ‘생산성임금’이 실현되고 임금분배율이 일정하게 유지된다. 이러한 생산성임금을 역전시키는 것이 바로 효율성임금으로서, 이는 임금의 개별화를 통해서 노동자간 경쟁을 격화시키고 개별화된 노동생산성을 상승시키려는 의도를 지닌다. 아직 생산직에서는 연봉제가 도입되지 않았지만 언제라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럴 경우 일단 연공서열을 비롯한 경직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데, 비정규직이나 실업자의 문제를 고려하여 정규직과 비정규직 또는 취업자와 실업자의 격차를 축소할 수 있는 연대임금을 고려해야 한다. 민주노총 정치적조직적 과제 우여곡절 끝에 지난 7월 취임한 민주노총 신임 집행부가 노동자운동이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두 가지 방안으로 연합정당론과 전략조직화를 제시하고 있다. 둘 다 민주노총이 풀어야 할 중차대한 과제이므로 아래에서는 몇 가지 쟁점을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정치세력화 민주노총 신임 집행부는 ‘진보정당의 분열로 인한 갈등이 첨예화돼 어느 당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공조직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인식 하에 ‘분열된 진보정당을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연합정당으로 재편한다’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연합정당론은 노동정치연석회의의 진보정당연합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보인다. 연석회의는 ‘자신의 조직적 정치적 독자성을 존중하면서 재편과 재정립의 방향을 모색한다’는 맥락에서 정당연합 또는 정치연합 방안을 제기하고 있다(“기존의 진보정의당, 진보신당[노동당], 녹색당, 노동 추진기구 등의 독자성을 인정하고 그 조직들의 협의로 연합정당을 운영하자”). 이들은 현재 서구에서 나타나는 좌파정당 통합 흐름, 특히 그리스의 급진좌파연합이나 프랑스의 좌파전선의 사례를 모델로 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리스와 프랑스 좌파의 사례에서 정당연합과 선거연합의 성공은 경제위기 하 대중운동의 분출과 기존 정당의 위기라는 정세의 산물로 보아야 한다. 정당연합과 선거연합 문제는 하나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일 수는 없다. 게다가 국외 사례를 국내에서 참고하기 위해서는 제도의 차이와 복잡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데, 진보연합정당 구상에서 한국의 선거법과 정당법 상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현행 선거법과 정당법이 이중당적을 금지한다는 점이다. 그러면 연합정당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정당법상 효력을 가지는 연합정당의 경우(정당연합)와 정당법상의 효력이 없는 경우(정치연합)일 것이다. 이러한 법제도적 고려 외에도 그것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제휴 대상의 범위, 선거구/후보 조정 등을 둘러싼 진통이 예상된다. 어쨌든 정당의 분열이 민주노총의 분열로 연결되어서는 안 되며 현존하는 진보정당이나 당면한 선거에 대한 민주노총의 정치방침도 필요하다는 점에서 연합정당론의 의의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7-2012년 민주노동당의 분열과 해체가 정치세력화 운동의 한 순환이 극적으로 종료되는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보다 긴 호흡과 큰 틀에서 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분단과 냉전으로 인한 반공발전주의 속에서 지속적으로 억압된 남한 노동자운동은 1970년 전태일 열사의 항거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맹아기와 1980년 광주민중항쟁 이후 정파운동의 각성기를 거쳐 1985년 구로동맹파업과 1987-1989년 노동자대투쟁으로 발전, 1990년 전노협의 결성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러나 동시에 1989-1991년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로 인한 이념의 혼란 속에서, 1991-1992년 합법정당 결성을 주장하는 신노선이 제기된다. 이와 동시에 ‘노동운동 위기론’을 기화로 진보적 조합주의가 제기되었고, 1993년 전노대가 결성되면서 전노협이 상대화된다. 결국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모토로 1995년 민주노총이 출범한다. 민주노총은 1996-1997년 총파업을 통해 노동법 개악을 얼마간 저지하는 데 성공하지만, 외환위기경제위기 속에서 1998년 사회적 합의를 통해 3제를 수용한다. 1990년대 노동자운동의 수세적 대응 속에서 출범한 민주노총이 출범하자마자 위기에 빠졌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1990년대 초반 진보정당 건설 운동을 주도하던 정파들의 영향력은 1996년 총선 이후 크게 약화된 상태였다. 그런데 1996-1997년 총파업의 한계를 ‘국회의원의 부재’에서 찾은 민주노총이 1997년 대선 대응 이후 조직적 결의로 정치세력화를 추진하였고, 그 결과 2000년 민주노총이라는 대중적 토대 위에 정파들이 연합하는 형태로 민주노동당이 결성되었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의 이념적 지향과 운동적 활력은 상당 부분 민주노총의 그것과 직결되는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이미 만성적인 무기력 상태에 빠져있던 민주노총과 대조적으로 민주노동당은 2004년 의회에서 약진하였고. 급작스러운 성공의 이면에서 선거정치와 집권을 강조하는 수권정당론과 함께 민주노총으로부터 자립화하려는 ‘탈 민주노총’ 경향이 대두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당직공직 선출을 둘러싼 정파간 갈등이 격화되었고, 결국 2007년 대선 패배를 계기로 분열했다. 대선 직후 ‘평등파’는 ‘자주파’의 ‘종북주의’와 ‘패권주의’를 비판했다. 그러나 종북주의가 대선 패배 요인이라는 평등파의 주장은 오류로 볼 수밖에 없는데, 반공반북주의에 편승한 것일 뿐만 아니라 자주파의 민족주의가 노동자 국제주의나 평화주의에 장애가 된다는 것을 적합하게 비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패권주의라는 비판 역시 일면적인데, 다수파의 당직공직 독점의 근본적 원인은 수권정당이라는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에 있기 때문이다. 평등파 일부의 ‘탈 민주노총’ 주장도 수권정당 지향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분당 과정에서 ‘탈 민주노총’이 아니라 민주노총의 사회운동적 노조로의 혁신이라는 쟁점, 수권정당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의 사회운동적 정당으로의 혁신이라는 쟁점은 토론되지 못했다. 민주노동당을 장악한 민족해방 계열은 ‘자주적 민주정부론’에 입각하여 2011년 당 강령을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에서 ‘진보적 민주주의’로 교체한 뒤 국민참여당진보신당탈당파와 통합진보당을 결성하고 2012년 총선에서 민주당과 전면 제휴했다. 그러나 총선에서 공직 선출을 둘러싼 부정부패와 정파간 갈등으로 심각한 내홍을 경험한 뒤 다시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의당으로 분열했다. 통합진보당 당권파는 노동자운동의 이념을 대폭 우경화하고 도덕적 정당성에 치명타를 가했다는 점에서 엄중한 비판을 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진보당은 2012년의 위기를 정파 생존의 위기로 인식하며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다. 이들은 ‘진보적 민주주의’ 노선을 재확인하고 2017년 집권을 목표로 설정하고 민주당과의 정치적 제휴와 대중조직의 장악을 추진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에서 탈당한 국민참여당·진보신당탈당파·민족해방 계열 일부는 (진보)정의당을 결성하여 중도로 변모하는 중이다. 2007-2012년 민주노동당 분열 이후 통합진보당 사태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지도력이 붕괴하는 상황으로 치닫기까지, 사회진보연대를 포함하여 정당과 노조 내외부의 민중운동 좌파 세력은 정세에 개입할 몇 번의 계기가 있었지만, 원칙적 태도로 정세적 입장을 환원하여 소극적으로 대응하거나 또는 정세적 개입을 시도하더라도 그 실력 부족으로 인해 상황을 반전시키는 데 실패했다. 2012년 대선은 민주노총을 포함한 민중운동 진영이 독자적이면서 통합적인 기획을 통해 대선 이후 질서재편을 위한 합의를 확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지만 민주노총의 부동주의와 좌파 세력의 의지주의로 인해 끝내 공동 대응이 무산되었다. 요컨대, 2007-2012년 민주노동당의 분열과 해체로 1990년대 이후 정치적 노동자운동의 진보정당 결성 시도와 사회경제적 노동자운동의 정치세력화 시도 모두가 하나의 순환을 마감했다고 볼 수 있다. 정치세력화의 실패로 인해 2000년대 들어 만성화된 민주노총의 위기가 한층 심화하고 있다. 정당/정파간 갈등이 대중조직의 통합력을 저해하고 진보정당에 대한 현장의 냉소와 불신이 증폭된 상황에서 단기적 실리주의에 따라 야권연대가 자연스러운 관행으로 정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정파의 통합을 통해 민주노총의 갈등을 감축하자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는데, 이는 결과에 대한 처방일 수는 있어도 원인에 대한 처방은 아니다.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순환을 준비한다는 각오로 노동조합 활동가든 정당 활동가든 ‘의식적으로’ 노동조합의 이념의 복구와 조직의 재건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은 정치세력화 실패의 요인에 대해 보다 근본적이고 내부적인 성찰을 해야 한다. 우리는 현실에서 진보정당/노동자정당의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으며 또 그것을 추진하는 세력에 대해서도 개방적이고 연대하는 자세를 취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이 현재 주력해야 할 것은 단기적인 선거 대응을 위한 정당/정파들 간의 조정이 아니라 민주노조 운동 자체의 재활성화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1980년대 사회운동노조주의의 사례로서 전노협과 함께 주목의 대상이 되었던 브라질과 남아공 노총의 정치세력화가 집권 이후 코포러티즘으로 변질된 것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전략조직화 계급대표성의 위기는 지난 수년간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다. 계급대표성의 위기에 대한 진단은 민주노조 운동의 조직적 기초가 상대적 고임금을 받는 재벌 및 공공부문 대규모 사업장, 정규직, 남성 노동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중소영세사업장이나 서비스부문의 저임금,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를 조직하는 것이 주요 과제로 제기되어 왔다. 현재 신임 집행부는 3기 전략조직화의 방향과 관련하여 주로 기금 마련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전략조직화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민주노총은 계급대표성의 위기를 조직화 사업으로 돌파하고자 시도했고 이는 민주노총의 강화발전에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좀 더 폭넓은 시각에서 이후 방향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한국노총을 포함하더라도 10%에 미달한다. 낮은 노조 조직률에는 여러 제도적 요인이 있겠지만, 노동력의 평가절하에 기초한 수출경쟁력 확보를 성장 전략으로 추구하는 남한 자본주의의 특수성이야말로 노조 조직화와 투쟁을 억압하는 핵심 요인이다. (그동안 독일과 같은 중상주의적 ‘제국주의’에서 제도화된 코포러티즘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많았는데, 그것이 왜 남한에서 불가능했는지를 이런 맥락에서 반추할 필요가 있다.) 단적으로 한국의 주력 수출산업인 자동차전자철강조선 등 업종에서 자동차를 제외하면 사실상 재벌대기업을 정점으로 하는 업종 전체의 무노조 정책이 관철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최근 수년간 전략조직화의 성과는 주로 (공공)서비스 부문에 집중되었다.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면서 국내에서 전략조직화의 사례로 많은 참고점이 된 미국노총의 시도를 살펴보며 몇 가지 시사점을 도출해 보겠다. 1970년대 구조적 위기 이후 금융세계화노동유연화에 따라 생산성임금이 보장되지 않으면서 미국노총은 생산적 산업노동자의 조직화에서 비생산적 서비스노동자의 조직화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그 결과 전통적인 자동차노조철강노조광산노조통신노조 대신 서비스노조교사노조공무원노조가 새로운 핵심 노조로 부상했다. 산업노동자와 서비스노동자의 차이는 생산적 노동자인가 아닌가라는 측면 외에도 금융세계화의 영향을 받는가 아닌가라는 측면에 있다. 제조업은 무노조저임금의 외국으로 이동한 반면 서비스부문은 ‘육봉’(陸封, landlocked)되어 있다. 서비스부문 노조가 단체협상에서 일정한 전투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특징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1995년 서비스노조(SEIU) 위원장 출신인 스위니가 위원장으로 선출되면서 ‘사회운동노조’로의 전환을 시도한다. 이는 직능이나 산업을 불문하고 미조직노동자를 조직하는 동시에 다양한 노조를 흡수통합하여 거대노조를 형성하는 것을 주로 의미했다. 그러나 서비스노동자의 일반노조 조직화가 미국노총의 오랜 ‘전통’인 비즈니스노조의 청산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2005년 미국노총이 서비스노조가 중심이 된 승리를위한변화(CtW)라는 제2노총(위원장 스턴)과 분열했다. 당시 스위니에 대한 스턴의 비판의 핵심은 민주당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대신 일반노조에 대한 지원을 늘리자는 것이었다. 노총이 분할된 결과 제1노총(AFL-CIO)과 제2노총(CtW) 사이에 일정한 산업부문적인 분할이 존재하게 되었다. 생산 및 분배수단에 기초하지 않는 노동자운동이 힘을 가질 수는 없다. 제2노총 소속 SEIU는 ‘관료적 비즈니스노조주의’와 ‘민주적 사회운동노조주의’와 구별되는 ‘관료적 법인기업노조주의’(corporate union)의 특성이 두드러진다. 결론적으로 미국노총의 사회운동노조 개혁 시도는 실패로 귀결되었다. 비즈니스노조의 청산과 사회운동노조로의 쇄신은 사실 조직이 아니라 이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 차기 전략조직화 사업을 구상함에 있어서 두 가지 요소가 고려되어야 한다. 우선 조직화 대상의 변경이 필요하고 다음으로 조직화의 목표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전자와 관련하여 특히 금융세계화와 수출-재벌 체제의 핵심고리를 타격할 수 있는 업종 및 공단 조직화가 적극 고려되어야 한다. 후자와 관련하여 맹목적이고 성과중심적인 조직화를 지양하고 노동자를 운동의 주체로 형성하기 위한 다양한 실천이 병행되어야 한다. 최근 신규 노조 조직화 과정에서, 정파 구도에 따른 조직화 경쟁과 관할권 분쟁 사례가 빈번하고, 또 정부·지자체의 보조금을 활용하여 비정규직을 조직하고 보는 것이 능사라는 실용주의와 우경화가 만연한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맺음말 우리는 개막식의 시작과 끝을 각각 ‘임을 위한 행진곡’과 ‘인터내셔널가’로 장식했다. 이 두 곡으로 행사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경우는 일 년에 한 번, 즉 노동절이다. 잘 알다시피 두 곡의 배경은 1980년 광주항쟁과 1871년 파리 코뮌이다. 광주와 파리의 항쟁은 착취와 억압에 대한 봉기였지만, 그러나 ‘패배할 줄 알면서도 끝까지 투쟁해야 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항쟁에 참가하지 못했던 ‘관객/구경꾼’들도 당시의 비극을 반추하면서 역사의 무대에서 ‘배우/행위자’들로 변화할 수 있었다. 최근 박근혜 정부의 518 추모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여부가 논란이 되고 전두환·노태우의 추징금 문제가 이슈화 되었지만, 이미 1997년 대선 직후 IMF 위기 속에서 김대중 당선자가 국민대통합이라는 미명 하에 전·노를 사면한 것에서 오늘의 희비극이 예고되었던 셈이다. 광주가 화석화되고 박제화된 것이 노동자운동의 침체에 기인한 것이라면 노동자운동의 부활이 광주를 새롭게 재현하는 길일 것이다. 노동자운동의 이념을 재건하고 조직을 강화해야 할 과제가 바로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2013 노동운동포럼 사례발표 지상중계 노동자운동은 ‘교섭권 없는 산별노조, 연대의 힘없는 기업별 노조’라는 험로에 놓여있다. 진보정당 역시 분당 이후 분열을 거듭하면서 좀처럼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산별노조와 진보정당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운동의 전망이 좌초된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경험한 주체들이 현장에서 은퇴를 준비하는 시기가 되었지만, 아직 과거의 경험을 승계하고 새롭게 노동운동을 개척해 나갈 주체의 등장은 불투명하다. 이제 과거의 활동을 돌이켜보고 평가하면서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전망을 모색하는 것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이 된 것이다. 노동운동포럼 사례발표도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마련되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운동의 새로운 전망을 밝힐 단초를 마련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는 동지들의 경험을 공유하고 교훈을 도출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이태의 공공운수 학교비정규직 본부장, 홍종인 유성아산지회 지회장, 정진홍 금속경주지부 정책기획실장, 이길우 대경건설지부장이 자리해 주었다. 사례발표 1: 이태의 공공운수노조 학교비정규직본부장 첫 번째로 학교비정규직 조직화 과정과 시사점에 대한 이태의 공공운수노조 학교비정규직본부 본부장의 발표가 있었다. 개별 학교장이 아니라 교육청교육부를 대상으로 투쟁하게 된 문제의식과, 투쟁이 조직화로 확대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학비본부가 교육청과 교육부를 교섭대상으로 설정한 이유는 그들이 학교비정규직의 진짜 사용자이기 때문이다. 학교장이 표면적으로 학교비정규직의 임금과 고용을 결정하지만 독자적인 예산 확보와 고용유지 능력은 없다. 한편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차별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 있었지만 고용불안에 대한 두려움과 패배의식이 큰 상황이었다. 학교장 계약관계로 매년 눈치를 봐야하고, 전국 1만2천개 학교에 소규모로 산재해있는 실정이라 아예 시작부터 전국적 조직화 계획을 수립하였다. 노동자들이 학교장과 직접 부딪치기를 두려워하기도 하고, 개별 학교에서 투쟁이 치열하기는 하지만 진짜 사용자가 아니기 때문에 성과를 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대규모로 조직하기도 어렵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즉 조직화와 투쟁의 초기부터 초기업적인 교섭과 투쟁을 전개했다. 이를 통해 개별학교와의 투쟁이 초래할 수 있는 역량분산과 개별학교 투쟁의 승패로 인한 활동가의 유실 문제를 어느 정도 피해갈 수 있었다. 이러한 점은 비정규 영세사업장 투쟁에 시사점을 준다. 비정규직이 대거 분포한 영세한 사업장들의 특성상 개별 기업조직이 붕괴할 수도 있지만, 초기업적 조직화와 조직건설을 통해 경험과 활동가 층을 유실하지 않고 지속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진보교육감 당선은 조직이 확대되는 주요한 계기였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합원 스스로가 권리를 위해 나서도록 만드는 것이 동반되었기에 가능했다. 진보교육감 당선 초반에는 학교비정규직 노동 현실이 너무 열악해서 누군가가 대신 목소리를 내주면 조합원들이 벌떼같이 모여들 것이라 기대했다. 그래서 교육감이 당선되자 학교비정규직도 교육의 주체라는 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토론회를 기획했다. 하지만 참여는 저조했다. 아무리 비정규직 노동자가 자신의 처지를 억울하게 여겨도, 자기 목소리를 대신 내준다고 해도 조직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기 스스로 나서고 성과를 쟁취하지 않으면 조직화와 투쟁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계기였다. 그래서 곧바로 맞춤형 복지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복지가 전무한 실정이었다. 사실 진보교육감에게 들어달라고 하고 조직 성과로 선전해서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도 있었지만, 모든 학교에 팩스를 보내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가 스스로 나서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투쟁과 조직화를 지속하는 가운데 2011년에 조직 확대의 중요한 계기점이 생긴다. 학교비정규직의 임금체계가 일방적으로 바뀌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에 교육감을 대상으로 체불임금 소송을 걸었는데, 노동자들의 분노가 큰 상황에서 조합원이 아닌 노동자들에게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면서 단기간에 7천명이 소송에 동참하게 되었다. 비록 결과적으로 소송은 패소했지만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첫 번째로 대규모 저항의지를 보인 사건이었고, 조직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 이 ‘물방울 소송단’ 사례는 비조합원들에게도 적용되는 요구안을 전면에 제기하며 투쟁이 곧 조직화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고, 그 과정에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서 노동조합이 대표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학교비정규직 노조의 과제에 대해 발표했다. 학교비정규직의 직종이 다양하여 발생하는 내부적인 갈등조절 문제와 경합조직 가운데 대표성을 획득해야하는 과제가 있음을 짚었다. 또한 2012년 총파업이 대선 시기라는 정세적 효과를 노린 측면이 크나 준비가 부족했고 실질적인 성과가 없었으므로, 올해 하반기 총파업은 철저한 준비를 통해 요구를 쟁취해야 한다고 말하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사례발표 2: 홍종인 금속노조 유성아산지회장 다음으로는 홍종인 금속노조 유성아산지회 지회장의 발표가 있었다. 2011년 직장폐쇄와 어용노조 설립을 통한 사측의 민주노조 파괴 시도에 맞서 노동조합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발표했다. 우선 최근 잇달아 발생하는 민주노조 파괴공세에 있어 노동조합의 다소 안일한 대응과 조합원들 간의 단결력 저하가 자본에게 호기를 줬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유성 역시 그러한데, 민주노조 건설 이후 노조가 현장 장악력을 확보하고 나서 그대로 안주하기 시작했다. 능동적 투쟁을 하지 못하면서 노동조합에서 모든 현장의 문제들을 해결하다보니 현장투쟁은 사라지고 지회가 자판기라는 말까지 듣게 되었다. 지도부는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보다는 자체적인 판단으로 사업을 집행했고 조합원들의 단결을 강화하지 못했다. 이러한 와중에 자본은 노조의 분열과 갈등을 파악했을 것이고, 결국 2011년에 교섭해태를 벌이던 사측은 공격적 직장폐쇄를 단행하며 노조파괴에 돌입했다. 사측이 창조컨설팅의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복수노조를 설립하며 노조를 밀어붙이는 상황이었지만, 유성지회는 버틸 수 있었다. 다들 어용노조 설립에 속수무책으로 밀려날 때, 유성지회가 조직을 유지할 수 있던 이유는 후배세대들의 성장이 컸다. 사실 후배세대들은 노조민주화 투쟁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어쩌면 선배들의 앞선 투쟁으로 쟁취한 성과를 후배들은 당연시하면서 민주노조의 절실함을 느끼지 못한 채 적극적으로 노조사수 투쟁에 나서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사측이 단체협약을 무시하고, 어용노조와 차별을 하는 등 노조의 현장권력을 무너뜨리는 것을 보면서 민주노조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하지만 분노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았다. 조합원들이 민주노조 사수에 대한 열망은 있었지만 그것이 조직적인 힘으로 모이지는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측이 조합원 강제교육을 보내고 징계와 해고를 남발하는 상황에서 7기 지도부를 구성해야 했다. 어느 때보다도 단결력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에서 부담감은 컸지만 젊은 층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한번 해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지도부를 구성했다. 거세지는 노조탈퇴와 어용노조 가입 압박 속에서 7기 임원들은 탈퇴자를 막기 위해 아침 출근투쟁을 시작했다. 임원들이 시작했지만 조합원으로까지 확대되었고 인사를 꺼리던 용역들과 관리자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고개를 숙였다. 2012년 중반부터 더 이상의 탈퇴자가 발생하지 않게 되었다. 결국 어용노조는 생산직 조합원만으로는 과반을 획득하지 못했다. 그러자 사측과 어용노조는 관리직을 어용노조에 가입시키는 방법으로 과반을 넘겨 대표교섭노조 지위를 획득했다. 이에 더해 용역폭력 청문회와 국정감사에서 창조컨설팅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사실로 폭로되었지만 대선기간이었기 때문에 여론화 되지는 못했다. 이에 홍종인 지회장은 현장투쟁을 유지·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굴다리 농성에 돌입했다. 이를 통해 유성투쟁 여론화와 조합원들의 자발적 투쟁이 전개될 수 있었다. 어용노조와의 차별에 대해 생산1과가 항의하면서 투쟁을 전개했고 전 조합원이 동참하면서 결국 사측의 사과를 받아내고 투쟁에서 승리하는 성과를 만들었다. 현장투쟁으로 조합원들은 관리자들과 맞서면서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어용과 관리자들의 현장탄압이 한풀 꺾이게 된 것이다. 이러한 기세를 이어가며 유성지회는 선배세대의 헌신적 투쟁과 후배세대의 열정으로 지치지 않고 투쟁하고 있다. 이처럼 유성지회가 사측의 노조파괴 시도에 맞서 조직을 유지할 수 있던 것은, 선배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젊은 세대가 새로운 주도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87년 민주노조 건설 투쟁의 경험을 가진 세대들의 은퇴를 앞두고 있는 노동운동에 유성지회의 사례는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사례발표 3: 정진홍 금속노조 경주지부 정책기획실장 세 번째로 정진홍 금속노조 경주지부 정책기획실장이 발표를 이어갔다. 탄압으로 인한 위축감을 극복하는 방법은 다시금 조직화에 나서는 것이며, 신규조직화가 있어야만 자신감을 회복하고 노조가 관성에 빠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경주지부는 2010~2011년 이명박 정권의 탄압으로 6개 사업장 1200명의 조합원이 탈퇴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2006년부터 2009년까지는 조직화가 꾸준히 확대되는 추세였다. 조직화 대상은 주로 자동차 1차 하청업체였고, 현대차의 단기 납기시스템으로 인해 대부분 재고를 많이 보유하지 못한 사업장들이었다. 이럴 경우 파업의 여파는 현대차에 바로 미치기 때문에 적절한 순간에 승부를 걸 경우 조직화에 유리한 국면을 만들 수 있었다. 또한 공단 내에서 한 사업장이 조직화되면 주변 사업장으로 번지는 효과가 있었다. 노동조합이 설립된 주변 사업장이 변화하고 다른 미조직 사업장들도 노조설립에 나서는 것이다. 이 같은 파급효과 때문에 한 곳의 승패여부가 주변 공단지역의 사업장 조직화 분위기를 좌우하게 되어 아무리 작은 사업장의 투쟁이라도 철저한 대응으로 승리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경주지부는 싸움에 대응하는 조직적 태세를 갖추었다. 금속노조 창립 이후 지부파견자들에 대한 원칙을 세워 지회별로 상근자의 1/3을 지부로 파견해 10~12명의 상근자를 확보하고 지부집단교섭으로 두 명을 더 확보했다. 상근자 확보를 통해 지부 사업의 독자성을 유지할 수 있었고, 미조직 비정규 담당자 상집 1인과 부지부장 1인이 독자 사업을 진행하도록 했다. 또한 미조직 담당자는 기본으로 노동관계법 등의 실무적 준비, 초동 주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선동력, 조직화 이후 초기 조합원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교육과 선전의 역량, 교섭과 투쟁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는 현장투쟁 경험 등의 자질을 갖추고자 했다. 이러한 미조직 조직화의 기풍을 지켜왔기 때문에 경주지부는 잇따른 금속노조탈퇴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금 조직화에 주력하여 2011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6개 사업장 800명을 새롭게 조직할 수 있었다. 한편 조직화 과정에서 복수노조 문제는 다수파 전략으로 돌파하고자 했다. 물론 복수노조 이전에도 신규조직화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초기 조합원 조직화 수였다. 그러나 기존에는 소수가 조직되더라도 지부차원의 대응과 현장파업으로 자본이 감수할 타격을 크게 만들면 사측을 교섭으로 끌어내 합의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복수노조가 시행되면서 창구단일화라는 1차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기존의 소수조직력으로 얻을 수 있던 수준의 합의도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노조 설립을 공표하기 전에 조직의 상황과 조건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특히 공장이 여러 개 있는 경우, 지역이 다르고 그 동안 교류가 없더라도 자본이 복수노조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를 점검하고 함께 조직화하고자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창구단일화 기간 동안 자본이 사무직과 현장의 미가입 조합원, 그리고 탈퇴할 조합원들을 이용할 가능성에 대비해 가능한 7일 동안은 조합원의 이탈을 막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렇게 신규로 조직된 조합의 특징은 사측으로부터 받은 인격적 모독과 저임금고강도 노동을 강요받은 것에 대한 분노가 크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노동조합 없는 곳에서 일한다는 것은 어느 사업장이든 인간이길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한 명의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어 노동조합을 세운다. 그래서 순수하고 노동조합에 대한 충성도가 높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적 이익에 대해 민감하고 노동운동의 다른 부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측면도 있다. 투쟁과 연대의 경험을 통해서 신규 조합원들이 점차 의식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기존의 조직들은 신규사업장의 조직화를 통해 관성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노조활동이 오래될수록 관성에 빠져 상태가 나빠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신규조직화를 통해서 꾸준히 활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칫 침체국면에 빠질 수도 있었던 지역지부 운동을 신규조직화라는 방식으로 주체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며 위기를 극복해 나간 경주지부의 사례는 노조탄압으로 위축된 많은 단위에 귀감이 된다. 사례발표 4: 이길우 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지부장 마지막으로 이길우 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지부 지부장이 발표했다. 협약임금을 비조합원들에게까지 적용하면서 조직화를 확대하고, 신규조합원들을 교육하고 훈련시키며 강화된 현장의 힘을 바탕으로 현장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한 최근 파업투쟁의 과정과 고민을 이야기했다. 건설노조 대경지부는 2006년에 2천 명의 노동자를 조직해서 32일간 총파업을 전개하였으나, 큰 성과를 남기지 못하고 다수의 부상자와 구속자가 발생하는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파업을 통해 현장에서 당당해졌다는 자부심으로 남은 500여 명의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투쟁이 이어졌다. 2008년에 시공참여사 제도가 폐지되면서 건설현장에 만연한 도급이 불법화되었다. 이에 대경지부는 도급으로 일하던 노동자들을 건설업체가 직고용하라는 투쟁을 시작했다. 아직 2006년 투쟁의 여파가 남아 불안감이 있었으나 끈질기게 투쟁하면서 직고용팀 200명을 만들어냈다. 직고용팀은 8시간 노동과 휴게시간을 정확히 준수했고, 비조합원에 비해 일당도 만원 정도 더 받았다. 임금을 두 달에 한 번 받는 일이 다반사였던 건설현장에서 조합원들은 매달 임금을 제때 받았다. 조합가입하면 직고용팀처럼 조건이 개선될 것이란 선전을 통해 조직을 확대하려 했으나 생각처럼 늘지 않았다. 오히려 핵심 조합원과 현장 비조합원과의 괴리감이 생겨났다. 조합원들은 철의 대오가 되면서 비조합원들을 자기 권리도 못 찾는 바보 취급하고, 비조합원들은 노조가 조합원들의 이익만 챙겨먹는다고 생각했다. 노조가 조합원들만 먹여살리는 조직이라는 비조합원들의 비판에 반성을 많이 했다. 이에 2010년 말 집행부를 새롭게 꾸리면서 비조합원과 이주노동자 조직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자는 목표를 세우게 된다. 2012년에 총파업을 준비하면서 임금이 인상되면 파업 이후에 조합에 가입하는 사람들에게도 모두 적용하자는 것을 조합원들과 합의했다. 2012년 파업은 조합원들이 열흘 동안 자기 일당을 포기하고 다른 현장을 돌면서 비조합원들을 조직하여 이뤄진 것이었다. 파업 결과 일당을 14만 8천원에 합의했다. 기존 조합원들의 입장에서는 1만 3천원 인상이지만, 비조합원의 경우 조합원들보다 임금이 1만 5천원 정도 낮았기 때문에 2만 8천원 인상 효과가 있었다. 기존 조합원들은 열심히 투쟁하여 오른 자신의 일당보다 투쟁 후 가입한 조합원의 임금 인상 폭이 더 크다는 것에 거부감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비조합원들과의 격차는 노조의 고립을 자초한다는 점을 근거로 설득했으며, 조합원들이 조직 확대에 동의한 결과 1,100명 규모로 조합원이 늘었다. 이후 현장이 급속하게 바뀌어 갔다. 현장의 자발적 투쟁으로 팀장이나 현장 소장들을 몰아붙이면서 노동조건을 개선해 나간 것이다. 이러한 기세를 이어 2013년 총파업은 근로기준법 적용과 신규조합원의 교육 훈련을 목표로 삼았다. 신규로 조직된 조합원들이 교육받고 집회 따라가는 정도로만 활동하면 성장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사업장을 선정해 투쟁을 만들고, 신규조합원들을 하루에 한 팀씩 그 현장에 배치해 스스로 하루 종일 집회나 선동을 진행하도록 하면서 성장시키고자 했다. 총파업 이후에도 조직화 사업을 지속해 조합원이 2천 명을 넘으면서 현장위원회를 설립했다. 현장위원회 활동을 통해 조합원들은 교육도 하고 모의 교섭도 하면서 성장해 갔고, 현장민주주의가 강화되었다. 간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조합원이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의견을 반영하는 과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스스로 고민하고 실천하게 되었다. 자발적으로 현장 문제를 해결하다보니,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여성조합원 복지문제를 먼저 제기하거나, 어렵게 투쟁하는 단위를 지원하는 모금활동을 앞 다투어 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 조직화는 여전히 많은 고민을 하게 한다. 2009년 대구지역의 건설경기가 악화되었을 때 조합원들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불만이 높았다. 교육하고 설득해도 조합원들이 이주노동자들을 받아들이지 못하자, 정 그렇다면 건설현장에서 이주노동자를 모두 나가게 할 수 있는지 한번 해보자고 했다. 그렇게 두세 달을 했더니 조합원들이 이주노동자를 쫓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먼저 그만두자고 했다. 그런 우여곡절을 거쳐 대경지부는 2011년부터 이주노동자 조직화 사업에 힘을 쏟았다. 노조로 가입한 이주노동자들에게도 8시간 노동과 협약임금을 적용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 공급체계가 워낙 복잡하다보니 어려움이 크다. 가장 큰 난관은 이주노동자를 조직해 놓으면 중간 브로커들이 노조에 가입한 이주노동자들을 다른 지역으로 빼돌리는 것이었다. 모든 사례에서 마찬가지듯이, 이주노동자 조직화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이주노동자 주체가 형성되는 것인데, 이 부분은 여전히 대경지부의 고민으로 남아있다. 발표 말미에 이길우 지부장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목수 임금을 받고 노동조건도 좋지만 대경지부만 홀로 잘 나가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길어야 2~3년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자본가들의 집중적 탄압으로 고립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국적 조직화와 건설노조의 강화가 필요하며 이를 지원하고 연대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며 발표를 마쳤다. 조합원들이 쟁취한 성과를 비조합원들에게도 적용하며 조직력을 확대하려던 문제의식이 전국적 차원에서도 추진되어야 고립되지 않고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사례발표자들은 개별단위를 넘어선 집단적인 교섭과 투쟁으로 쟁취한 조직 확대, 새로운 세대의 성장을 통한 조직 강화, 공세적인 조직화를 통한 위기 극복, 비조합원까지 포괄하는 투쟁 속에 강화되는 대표성 등의 경험을 발표하면서 참석자를 포함하여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전망을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참석자들은 각자의 단위에서 고민을 심화시키고 과제를 구체화하겠다는 다짐과 이러한 논의가 보다 본격화되어 확대되길 바라면서 토론을 마무리 지었다.
87년 세대 이후 25년 87년, 노동자들의 눈부신 투쟁으로부터 25년도 더 흘렀다. 그동안 전노협이 건설되고, 민주노총이 만들어졌다. 96~97년 총파업에 이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위기와 노사정합의, 그리고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2000년대 노동자 투쟁이 계속되었다. 이런 일들이 진행되는 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다. 25년은 생물학적으로도 한 세대가 지날 기간이다. 87년 당시 노동조합 결성을 주도했던 노동자들은 어느새 퇴직을 앞두고 있고 정년연장이 화두가 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남한의 87년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출발인 플라자합의의 결과였던 3저 호황의 한가운데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그 노동자운동은 이제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에 마주하고 있다. 우리가 마주하는 앞으로의 시기는, 87년 이후 노동자운동이 경험한 것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정세가 달라졌을 뿐 아니라, 노동자운동의 주체들도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 새로운 시기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남한 노동자운동의 경험 속에서 발견된 어떤 가능성, 변화된 조건에서 우리가 나아갈 수 있는 시사점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 특히 98년 금융위기 이후 급변한 상황을 반영하여 출현한 새로운 노동자운동 흐름은 2000년대 일부 성공사례에서 그 모습이 희미하게 나타나고 있을 뿐, 전면화되지는 못하고 있다. 그 가능성을 발굴하고 뚜렷하게 드러내는 작업을 통해 87년 세대 이후, 노동자운동은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를 검토하는 것이 이 글의 목표다. 이를 위해 우선 87년 노동자 대투쟁에서부터 전노협, 민주노총의 건설과정을 살펴본다. 이어 90년대 후반 IMF 구제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전면화 된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운동을 검토하고, 새로운 노동자운동의 주체 형성의 가능성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이 운동이 더욱 나아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지 제안하고자 한다. 87년에서 전노협, 민주노총까지 87년 노동자 대투쟁은 3저 호황의 전개 과정에서 중공업 남성 노동자가 대거 진출하는 것과 같은 노동자 구성의 변화 속에서 시작되었다. 기업의 임금인상 여력은 충분했지만 국가와 자본은 억압적 노무관리를 통해 임금을 억제했다.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투쟁 속에서 급진화된 학생들은 공장에 투신해 현장학습모임을 결성하는 등 투쟁의 주체를 형성해갔다. 87년 민주화투쟁 속에서 급진적 이념이 확산되는 와중에 7·8·9월 한순간에 투쟁이 폭발했다. 그리고 이렇게 건설된 노동조합들은 곧이어 지역노동조합협의회(지노협)를 건설하고 19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를 건설한다. 전노협의 건설은 87년 이후 기존 한국노총의 외부에서 급격하게 조직된 노동조합의 결집임은 물론, 노동운동단체(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와 정치단체들의 전국적 단결과정이기도 했다. 전노협의 강점은 이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첫째, 투쟁 속에서 조합원이 형성되는 과정이 곧 학습과 조직화를 결합하는 과정이었으며 둘째, 지역 기반 운동의 전통을 형성했고 셋째, 노동조합이 노동운동단체와 결합하였다. 이는 노동조합이 좁은 의미에서 노사관계에 규정되는 틀을 벗어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전노협은 건설 과정에서부터 가혹한 탄압에 노출되고 조직적 확대는 지체되었다. 92년이 되자 ‘노동운동 위기논쟁’이 제기되었다. 논쟁을 제기한 이들은 ‘노동조합의 활동작풍을 개선해야 한다’거나, ‘과도한 임금투쟁을 지양하고 사회적 대안을 제시하는 사회발전적 노동운동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거나, ‘정부와 자본은 노동자의 노동생활조건 개선과 경영참가를 받아들이고, 노동조합은 생산성 향상에 협력하는 진보적 코퍼러티즘을 지향해야 한다’거나, ‘퇴조기에 노동자의 다양한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한계를 넘는 진보정당 운동이 활성화되어야 하며, 노동조합은 한국노총에 대한 반대를 최소공약수로 해서 광범위한 결집을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위기 논쟁은 노동조합운동 이념의 탈각이나 전환을 예고하는 것이었고, 노동조합운동도 이념을 지녀야 한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실용주의적이거나 코포러티즘적 대안을 제시했던 것이었다. ILO공대위, 전노대를 거쳐 이루어진 민주노총 건설은 전노협에 포괄되지 않았던 대기업, 공기업노조와 업종회의가 결합하는 계기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노협의 청산과정이기도 했다. 전노협 청산과 민주노총 건설은 노선적 측면에서는 ‘평등사회’, ‘노동해방’에서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이라는 사회개혁노선으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전노협 청산은 앞서 언급한 조직적 장점의 후퇴과정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노동운동 위기논쟁’ 제기자들의 주장이 민주노총 건설과정에 관철되고 만 것이다. 전노협 건설에서 청산까지, 민주노총 건설과 현재까지 변화된 조건에서 전노협의 장점이라는 요소를 단순히 부활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 그러나 이때부터 민주노총 운동은 지속적으로 ‘이념’을 상대화시켜 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95년에 건설된 민주노총은 기업별 대기업노조가 주도하는 산별연맹의 연합체에서 출발했다.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전노협이 상대화된 결과다. 지금도 유사하게 ‘기업별 대기업노조가 주도하는 형식적 산별노조의 연합체’의 모습을 띤다. 그러나 이 체계에는 지노협을 계승한 민주노총의 지역본부와 각 산별노조라는 기업별노조 외부도 존재하며, 이러한 ‘차상위 조직’이라는 틈새에서 다양한 운동이 시도되었다. 의식적인 활동가집단의 노력을 통해 비정규직 조직화 등 새로운 주체를 형성하는 운동들도 이 공간에서 형성되었다. 97~98년 금융위기 이후 10년 87년 노동자 대투쟁 당시의 조건은 이후 어떻게 변화하였는가? 90년대 남한 재벌의 과잉축적은 90년대 중반의 금융세계화 편입을 거쳐 97~98년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IMF 구제금융협약 체결과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기업 부실화와 국부유출이 일어났고, 다양한 형태의 불안전노동자가 증가하고 정리해고제가 도입되는 등 고용안정이 심각하게 침식되었다. 민주노총 건설 이후 민주노조운동 내에 실리주의의 확산과 이념적 요소의 쇠퇴가 이러한 조건과 결합하면서 98년 정리해고제, 파견근로제 도입 등 노사정합의가 이루어졌다. 98년에 민주노총 집행부가 합의한 노사정합의를 이해하려면 역설적으로 금융위기 직전인 96~97년 총파업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엄청난 대중적 투쟁에도 불구하고 당시 총파업의 결과, 정리해고는 단지 ‘유예’되었다. 총파업은 일종의 노사정 삼자협의기구인 ‘노사관계개혁위원회’ 논의가 결렬된 결과다. 그런데 정작 이 논의에서 틀 잡힌 개별적 노동관계법과 집단적 노사관계법의 교환이라는 패키지 협상구도는 여전히 폐기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불과 1년 후 98년 노사정합의에서 정리해고제와 함께 부활한다. 노사정합의 당시 민주노총 집행부는 IMF의 요구사항(구제금융협약)의 내용을 대부분 수용하였는데, 당시 경제위기의 원인과 신자유주의의 본질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있었다면, 이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념적 후퇴는 정세를 노동자계급의 눈으로 인식할 수 없도록 했다. 결국 98년 민주노총의 노사정합의는 대의원대회에서 거부되고 집행부는 교체되었다. 그러나 비대위를 맡은 단병호 집행부나, 선거에서 당선된 이갑용 집행부 모두 약속했던 총파업을 조직하는 것에는 실패했다. 노사정합의에서 거부에 이르는 과정은 민주노총이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이념정책적 취약성을 드러낸 것은 물론, 노사정합의 거부와 집행부 사퇴, 그 이후 수차례 총파업 시도의 무산은 조직적 취약성 역시 보여주었다. 금융위기 이후 민주노총의 주요한 투쟁은 대부분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에 대한 반대투쟁의 성격을 갖고 진행되었다. 2000~2001년 한통계약직노조 투쟁(비정규직 독자 노조운동),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투쟁, 2002년 철도발전가스 3개 노조 공동파업(공공부문노조, 새로운 주체의 진출), 2003년 비정규직정리해고노조탄압 사업장 열사투쟁 및 화물연대 파업, 2005~2006년 사내하청, 플랜트 노동자 투쟁, 2007년 뉴코아이랜드 투쟁,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투쟁, 공공부문 선진화 분쇄투쟁(철도파업 등)이 이어졌다. IMF 구제금융위기 속에 노동자운동이 조직적 위기에 빠지면서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향은 민주노총 내에서 크게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제시되었다. 논쟁은 있었지만 주류가 이러한 흐름을 수용했는데 첫째, 기업별노조를 산별노조 형태로 전환하고 둘째, 진보정당을 건설한다는 것이다(양날개론). 이에 더해 셋째,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전략조직사업을 추진한다. 물론 산별노조나 진보정당 건설은 90년대 초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오던 것이지만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금융위기 이후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이러한 전략은 지금 잘 작동하고 있는가? 불행히도 2013년 현재 산별노조와 진보정당 모두를 결산해볼 때 이러한 전략은 시효만료 되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개별적으로 산별노조와 진보정당이 각각 어려운 사정에 있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런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둘을 결합함으로서 추구하려고 했던 운동노선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산별노조가 경제투쟁을 담당하며 의회에 진출한 진보정당이 정치를 담당하고, 이에 기반해 노사정 삼자협의 체제를 갖춘다는, 중북부 유럽을 모방하려했던 시도는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각각을 보더라도 산별노조는 조직형식적 전환 이후 정체되어 있고, 진보정당 운동은 조직적 분열만이 아니라도 애초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세력화’라는 의미를 대부분 상실하고 말았다. 비정규직 전략조직사업은 IMF 구제금융 위기 이후 비정규직 확산에 대응하기 위한 의미 있는 시도였다. 그러나 총연맹 차원의 조직활동가 양성과 산별연맹(1기) 혹은 전략 지역업종(2기)에 배치하는 것을 넘어서지는 못한 상태다. 노동조합 전체가 조직화를 핵심사업으로 배치하는 전체 조직의 ‘체질개선’은 아직 먼 과제다. 게다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야할 민주노총(총연맹)도 약화되었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2003년을 기점으로 국민파와 민족해방파 연합으로 교체된다. 이들이 주도하는 민주노총은 노동조합의 영향력을 극대화한다는 전략으로 김대중-노무현 민주당 정권과 타협을 시도하지만 불발된다. 그런데 이 과정은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안하느니만 못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 노사정위원회 참여 문제를 둘러싸고 조직 내 대립이 격화되면서 총연맹의 지도력은 지속적으로 약화되었다. 한편, 진보정당 운동도 민주노동당의 분열 이후 혼란을 거듭한다. 통합진보당과 정의당 등 국회에 진출한 진보정당들은 이미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통합진보당의 분당 이후에는 전국회의가 주도하는 정파노조 흐름과 같이 민주노총에 근거를 둔 정파들이 자신들의 정치노선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대중조직을 분열시키는 행태도 확산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민주노총 내 운동노선에 입각하여 경쟁해왔던 정파들(의 구분선)도 오히려 지속적으로 무너지고 있다. 과거에 “국민파-중앙파-현장파”로 형성되었던 경계가 흐려지는 것이다. 2013년 민주노총 선거에서도 과거의 구분선에 따른 선거구도가 형성되지 못했다. 일부 후보는 과거 구도의 대표성을 주장하고 싶었을지라도 실질적으로 그러한 지지를 획득하지 못했다. 이는 92년 노동운동 위기 논쟁 과정에서 형성된 논점, 즉 이른바 ‘전투적 조합주의’, ‘사회적 조합주의’ 등으로 대별되었던 운동노선 경쟁이 의미 없는 조건이 되었기 때문이다. ‘전투적 조합주의’로 불린 경향은 기업별노조의 전투적 경제주의로 수렴되고 있으며, ‘사회적 조합주의’로 불린 노선은 보수 정권 하에서 사회적 합의주의가 실현불가능하게 되면서 노동운동의 노선적 대안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했다(물론 이를 주장한 일부는 민주당이나 안철수 세력에 흡수되었다). 따라서 이들 노선에 근거한 구래의 정파구도도 유지되기 힘든 조건이다. 기존 노선 논쟁에서 그나마 의미 있었던 노동운동의 가치로서 전투성(투쟁성), 사회적 의제 확장 등의 일부 요소를 재평가하는 것 정도가 남아있는 과제이다. 산별노조 운동의 실험 2000년대 들어 노동조합운동이 중점을 둔 조직발전과제는 ‘산별노조 건설’이었다. 산별노조 건설운동은 애초 의도한 성과를 만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의 운동주체 형성에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는 점에서 깊이 평가할 필요가 있다. 2002~2006년 사이에 기업별노조의 조직형태 전환을 중심으로 산별노조 건설이 본격화된다. 건설 당시에는 복수노조 허용,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등이 주요한 산별전환 논거 중 하나였지만, 실상 이들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는 것이 나중에 드러난다. 2006년을 거치면서 자동차 완성4사의 금속노조 전환, 공공노조운수노조 건설과 함께 주요 산업에서 조직형식적으로 산별노조 건설이 진행되었지만, 산별교섭산별투쟁을 전면적으로 실현하는 것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부분적 성과를 남기는데 그친다. 남한에서 초기업적 노사관계는 느리게 성장하고 있으며 기업별교섭관행이 모든 산별노조에서 강력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조건이 수년간 지속됨에 따라 산별노조운동의 정당성은 약화되어 왔다. 산별노조의 정착이 지연되는 동안 정규직 노조 현장은 지속적으로 변화해 왔다. 비정규직과 격차가 벌어지고 고용안정이 위협받으면서 기업별노조에서 (회사와 노조에 대한) 이중몰입과 실리주의가 강화되었다. 이러한 기업별 노사관계의 유지는 작업장 노동조직과 노조가 단일화되어 있는 한국의 기업별노조 체제의 역사적 결과이며 역설적으로 노동조합 힘의 근거이기 때문에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남한의 산별노조들은 유럽의 경우처럼 작업장 노동조직과 노조가 분리되지 않았다. 이러한 토대에 의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는 기업노조주의를 단지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넘어서는’ 것은 지속적인 과제가 될 것이다. 한편 정규직 신규채용이 상당 기간 중단되면서 노조운동의 경험이 단절될 우려도 있다. 80년대 초중반 베이비붐 세대(57~60년 생)의 노동시장 진출과 80년대 후반 3저 호황으로 인한 노동시장 팽창 과정에서 형성된 87년 대투쟁 세대가 퇴직을 앞둔 시기에 있고, 이들의 경험이 단절된다는 의미다. 금속(제조업), 공공부문, 민간서비스 등 주요 산업부문에서 한국 산업구조와 기업지배구조 특징 상 산별교섭이 짧은 시간 안에 지배적인 교섭형태가 되기는 힘들 것이다. 따라서 우선 가능한 영역에서부터 초기업 교섭구조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미 몇 개의 영역에서는 초기업적 투쟁과 조직화가 연계된 초기업적 교섭구조가 실현되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기업별 교섭 자체가 어려운 조건에 있는 중소영세비정규 부문에서 성공적으로 신규 조직을 확대한 경험이 나타났다. 이들은 조직화와 투쟁의 초기부터 초기업적인 교섭투쟁을 전개해왔다. 산별적(초기업적) 교섭투쟁 구조를 구축한다는 산별노조의 목적이 여기서 진짜 빛을 발했다. 산별노조 건설을 제기하였던 일부 논자들은 기존 기업별노조의 산별노조 전환에서 시작하더라도 여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전략조직사업’ 등과 연계하여 새로운 조합원을 조직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했다. 이는 산별노조에 ‘개별가입’한 조합원을 통한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조합원층이 점차 기존 조직의 규모를 대체해가는 방식을 말한다. 대부분의 산별노조는 기업별노조의 (불완전한) 산별 조직형태 전환에서 한계에 봉착해있지만, 한편으로는 초기업적 조직화교섭투쟁이 새로 조직되는 영역에서 나타났다. 이 점을 좀 더 살펴보자. 조직화 경험: 성과와 한계 지난 10여 년 동안 노동자운동 주체의 혁신에 한계가 있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중소영세비정규직 조직화투쟁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노동자 대중이 진출하는 중요한 조직화의 경험이 축적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경험에서 성과와 한계, 교훈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화물연대, 건설노조플랜트노조, 금속노조 지역지부지회, 공공운수노조 지역지부, 학교비정규직노조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물론 금속노조와 공공운수노조, 건설노조 지역지부는 지역적 차이는 있으나, 성공적인 사례들은 몇 가지 주목할만한 특징을 보여준다. 앞으로의 조직화 전략을 세우는데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 몇 가지 지표들을 아래와 같이 찾아낼 수 있다. 첫째, “기업을 넘어선[초기업적] 조직화”만 성공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기업단위의 비정규직노조운동은 치열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그 운동을 조직적으로 확장하는 데 한계에 봉착했다. 비정규·영세 사업장의 특징 상 개별 기업별조직은 붕괴할 수도 있으나, 초기업조직은 조직을 재생산하기 위한 조직적 경험과 활동가가 지속적으로 축적될 수 있다. 비록 기업단위로 조직된 운동이라 하더라도 조직의 운영과 투쟁에서 초기업적 운동을 전개해나가는 경우에는 운동의 성과가 지속적으로 축적된다. 둘째, 일정한 ‘정체성의 범위’ 내에서 시작한 조직들이 성공하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화물, 건설, 학교비정규직 등의 업종조직이나, 지역노조의 경우에도 정체성을 공유하는 중심 조합원 집단이 형성된 경우에 실질적인 투쟁력과 조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는 새롭게 조직되는 노동자들이 단결하는 데에는 현실적으로 조합원 정서에서 수용가능한 일정한 정체성의 범위가 존재해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조직적 단결의 범위를 의미하는 정체성의 범위를 산업과 지역으로 더 확장하고자 하는 의식적인 노력을 지속해야겠지만, 이는 단계적 과정 혹은 중층적 조직이라는 ‘매개’를 가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러한 정체성의 범위 내에서, 조직화 노선을 채택하고 불굴의 의지로 추진할 수 있는 강력한 지도력 또한 형성될 수 있다. 셋째, 조직 전체가 확고한 ‘조직화 노선’을 채택하고 자신의 운동대상에 미조직 노동자를 포괄한다. 비조합원에게도 적용되는 요구안을 투쟁의 전면에 제기하는 투쟁을 통해 투쟁이 조직화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해당 부문 노동자 대표성을 획득해나가는 조직이 성공해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화물연대, 건설노조, 학교비정규직노조의 요구는 소속조합원의 배타적 요구라기보다는 해당 부문 노동자 전체의 요구를 담았다. 한편, 평가를 위해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해온 다른 운동의 경험, 지역일반노조와 기업별 비정규직노조, 청년노조를 잠시 비교해보자. 지역일반노조는 지역별 차이는 있으나 과연 기업별 체제를 성공적으로 넘어섰는지에 대해서는 더 평가가 필요하다. 지역일반노조는 다양한 업종의 소규모 사업장 조직이라는 특성 상, 초기업 조직 형태에도 불구하고 집단적인 교섭투쟁을 조직하는데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 결과 상당수의 조직이 사실상 기업별로 운영되어 초기 조직화 이후 운동주체를 안정적으로 형성하는데 한계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동질감에 기반한 효과적인 교육훈련, 이를 통한 간부양성이 제대로 이어지지 못한 사례가 나타난다. 다른 측면에서 기업별 비정규직노조는 영웅적인 투쟁에도 불구하고 운동의 지속성과 확장성이라는 측면에서 큰 한계에 봉착했다. 따라서 새로운 운동주체를 ‘조직’으로 남길 수 있는가의 측면에서 기업별 조직화는 지양하고, 기존 조직도 재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한편에서는 청년층 세대노조도 실험중이다. 그런데 여기서 청년층이 조직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질문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조직화에 성공한 초기업노조들의 경험을 살펴보면, 조직화의 성공은 자연스럽게 해당 영역의 청년 조합원 조직화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청년 조직화가 지연되거나 실패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유는, ‘청년’에 대한 별도의 조직화 계획이 없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노동시장에 불안정하게 편입된 청년들이 주로 진출하는 영역(특히 민간서비스업, ‘아르바이트’ 고용 형태)에 대한 전반적인 조직화가 성공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청년층 세대노조들은 조합원을 확대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것보다는 사회적 쟁점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활동하는데, 이는 물론 의미 있는 사회운동이기는 하지만 대중적 단결을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기존의 노조운동을 대체할 수는 없다. 따라서 세대 대립을 특권화하는 청년층 세대노조가 아니라 초기업노조가 더 넓은 영역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다. 한편 이러한 방식의 노조가 주목받는 것은 학생운동의 상대적 약화와 청년 노동권에 대해 문제제기할 수 있는 주체의 공백이 낳은 효과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기존 정규직 노조 안에서도 (별도의 노조가 아니라) 청년층 조합원 조직화와 활동가 양성은 중요한 과제다. 청년 조합원을 조직교육하고 87년 세대의 퇴직 이후에도 민주노조 운동의 노선, 문화, 리더십이 계승되도록 하는 노력이 시급히 필요하다. 2009년 금융위기 이후, 노동자운동이 처한 조건 앞으로의 운동을 전망하기 위해서는 2009년 금융위기 이후, 노동자운동과 노동자계급은 어떤 중장기적 조건에 놓여있는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먼저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의 장기침체와 위기, 노동의 불안정화와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다. 한편, 인구론적 전환도 이루어질텐데 2015~2017년 이후 대량 은퇴(정년퇴직)와 노동력 공급 감소가 진행된다. 박근혜 정부는 이렇게 예측되는 정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 준비가 곧 노동력 부족에 대한 대안으로 노동신축화(고용률 70% 정책), 창조경제(산업구조 재편), 국민행복연금(연금제도 개악) 정책이다. 이주노동자 관리 정책도 더욱 정교해질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공격도 계속 심화되고 있다. 민주노총 주요 조직의 위기 가능성도 예상해볼 수 있다. 어용복수노조를 활용한 공공부문의 노조탄압, 완성차노조의 보수화는 특히 위험한 요소다. 지난 이명박 정부는 민주노총 핵심노조(금속노조 지역지부의 핵심지회, 공공부문의 철도발전노조 등)에 대해 정권 차원의 공격과 복수노조 설립, 노무컨설팅업체와 용역깡패를 통한 노조파괴 공작을 전개했다. 민주노조 운동은 일부에서는 방어하고 일부에서는 패배했다. 박근혜 정부도 유사한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민주노총 리더십의 분할은 정치적(정파적)으로 분할되어 있는데, 진보정당의 분할과정에서 더욱 심화된 상태다. 민주노총이 직선제 선거 과정 등을 통해 내부 갈등이 증폭될 경우 극단적으로 정파노조로 분할 혹은 한국노총으로의 수렴 등 위기가 전개될 우려도 있다. 따라서 아래와 같은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조직적 토대의 강화와 리더십 형성이 중요한 조직과제다. 민주노총의 리더십과 핵심부문노조가 함께 붕괴할 경우 민주노총이 일본 총평의 붕괴와 같은 ‘노동운동의 우익재편’으로 나아갈 우려도 있다. 과거 많은 이들이 민주노총의 위기가 전개되는 양상을 독일과 같이 코포러티즘을 수용하여 체제에 순치되는 양상, 혹은 미국과 같이 비즈니스노조주의로 경도되어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조직적으로 축소되는 양상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을 고려해볼 때 오히려 기업별노조 체제 하에서 핵심조직리더십의 위기를 통해 ‘우익적으로 재편’되는 방식, 즉 일본식 위기의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 총평이 붕괴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철도노조의 분할 민영화가 남한에서도 정부에 의해 추진된다는 점은 이러한 위기 가능성을 높인다. 반면 2000년대 초반 이후 기존 노조의 관행과는 다른 새로운 운동, 운동주체를 형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던 비정규직 노조운동은 어떤가? 비정규직노조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안정적인 조직적 기반을 유지하지 못하고 붕괴하기도 하고, 기존 노조운동의 관행을 답습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투쟁 속에서 살아남은 초기업노조로서 중소영세비정규직 조직들은 이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운동노선적 과제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민주노총 건설과 98년 IMF 금융위기 이후 정세에 대응하면서 민주노총의 전략들은 현실적인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현재의 민주노총 운동은 87년에 형성된 민주노조 운동의 인적조직적 토대에 근거한 전략이었는데, 이 역시 어려움에 놓여 있다. 조직적인 위기만이 아니라, 2009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장기침체’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붕괴 가능성이라는 조건에 처해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객관적 조건에서 노동자운동의 부활을 위한 새로운 방향을 어떻게 형성할 수 있을까? 87년 대투쟁, 민주노총 건설 과정에서 현재 민주노총의 주력군(대기업, 공공부문노조)이 형성되어 왔다. 이 주력군은 여전히 중요한 운동의 근간이지만, 여기에 머물러서는 노동자운동이 포괄하는 범위는 점점 더 줄어들고 만다. 따라서 이를 넘어서는 운동 주체 형성이 중요한 과제다. 2000년대의 경험을 평가해볼 때 ‘비정규직 조직화’의 지체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조운동에는 일정한 성과가 있었으며,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확대하기 위한 실천과 조직적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변화된 조건에서 노동자운동의 노선에 대해 사회진보연대를 비롯하여 많은 정치단체 활동가와 학자들은 (비록 그 강조점과 내용에 차이가 있지만) ‘사회운동노조’를 주장했다. 사회진보연대는 ‘사회운동노조’가 하나의 노조 유형을 지칭하기 보다는 노동조합이 광범위한 정치사회적 투쟁에 나서는 사회운동의 기관이 됨을 의미한다고 강조해왔다. 금속노조, 공공운수노조, 건설노조와 구분되는 별도의 노조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이들 노동조합들이 ‘사회운동노조’로 변모할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사회운동노조’의 현재적 과제로는 △사회운동을 자기과제로 하는 노동조합 △자본주의 경제위기에 대한 과학적 인식과 실천 △미조직비정규노동자 적극적 조직화 △민주노총[총연맹] 강화(전국적전계급적 투쟁을 조직할 수 있는 조직으로)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우리는 이를 좀 더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그러나 좀 더 구체적으로 2009년 금융위기와 87년 세대 이후라는 조건에서 어떤 방향으로 노동자운동의 실천을 조직할 것인가 라는 운동노선적 과제로서 질문을 다시 던지고자 한다. 첫째, 어떻게 새로운 계급주체를 형성하고 조직적 단결을 확대 강화할 것인가? 둘째, 어떻게 노동자운동이 자본주의 위기를 넘어선 대안을 제기할 것인가? 첫째, 주체형성: 조직화 노선 이제까지 새로운 운동 주체를 조직하려는 시도는 충분하지는 않지만 초기업 조직화를 중심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과는 지속되고 확대되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노총(지역본부)과 산별노조 등 노동조합들이 조직화 사업을 혁신하고 또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는 단지 사업을 몇 가지 더 배치하는 것으로 될 수는 없다. 조직 전체의 목표를 새로운 운동주체를 형성하는 것으로 설정하고, 이를 위해 ‘조직화 노선’을 공공연히, 공식적으로 채택할 필요가 있다. 각각 개별 조직화 사업을 확대하여 실행하는 것은 물론, 조직의 전망과 존재 의미를 ‘새로운 운동주체의 확장’으로 분명히 하자는 것이다. ‘조직화 노선’을 채택한다는 것은 미조직 전략조직사업에 재정인력을 투자한다는 것만이 아니라 노조의 투쟁과제, 사업방식도 지속적으로 변화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산별요구와 투쟁 전략에 있어서 저임금미조직 노동자 공동 임투를 우선 배치하는 등의 방식이다. 앞서의 논의를 통해 ‘초기업적 조직화’가 갖는 가능성을 분명히 확인하고 조직화 경로로 집중할 필요성을 확인했다. 중소영세비정규직 노동자를 ‘초기업 조직’으로 조직하는데 더욱 집중하고 새로운 노동자운동 주체들이 진출하는 조직적 장으로 만들자. 물론 시론적으로 검토한 ‘성공사례’는 아직은 경험적이고 잠정적이다. 앞으로도 몇 가지 성공의 요소, 실패의 요소에 대해서는 보다 과학적인 분석이 진행되어야할 필요가 있다. 특히 노동시장과 경제정세의 변화에 대해 분석하고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전제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화물연대는 자본의 운동구조, 물류정책의 변화에 조응하는 대응전략을 수립하는 데 투자해왔고, 최근 금속노조 지역지부 투쟁 전략 수립에는 기업 지배구조와 공급사슬에 대한 분석이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는 점 등에서 시사점을 찾아낼 수 있다. 한편 미조직부문 조직화만이 아니라, 이미 조직된 대기업공공부문 노조에서는 어떤 ‘방어전략’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 현재 (사실상) 기업별 조직에서도 산별 노사관계의 지속적 확대를 통해 단계적으로 초기업적 정체성을 형성해 가야한다. 기업별노조(지부)의 조직형식적 전환을 넘어서는 실질적인 산별조직으로의 전환은 구체적인 상황에 맞게 중기 과제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금속노조의 경우 현대기아차지부와 하청사가 조직된 지역지부의 연대전략, 공공운수노조의 경우 공기업 등 공공기관 노조들의 구심 재구성 등 구체적인 실현경로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산별노조의 지역조직을 강화하고, 민주노총 지역본부가 ‘공동실천연대투쟁의 조직가’로서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운동의 강화를 통해 새롭게 형성되는 운동주체들과 기존의 조직들이 단결하고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미조직노동자 신규조직화만이 아니라 기존에 조직된 기업별 조직의 변모를 위한 재조직화도 앞서 살펴본 조직화 운동의 경험을 접목할 수 있다. 예컨대 임단투에서부터 기업을 넘어선 요구와 투쟁을 확대하고, 끈질기고 의식적인 사업을 통해 점차 실질적인 초기업 조직으로 변모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한 가지 강조할 것은 금속산업(제조업) 부문 조직화의 중요성이다. 사용자자본이 국경을 벗어나기 힘든 공공부문, 사회서비스부문, 건설노조와는 달리 금속노조(제조업부문)의 조직화는 더 어려운 영역임은 분명하다. 앞서 언급한 조직화의 성공사례도 (해외 이전이 힘들고) ‘육지에 갇힌’ 공공사회서비스 산업부문이 다수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제조업(금속)부문은 노동자운동에 원칙적 중요성을 가지는 영역으로서, 조직확대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금속노조가 자신의 전략조직사업을 시행하고 투자를 확대하는 것은 물론, 노동자운동사회운동정치운동이 관심을 더 기울여야한다는 의미다. 공단을 중심으로 한 하청기업 노동자의 광범위한 조직화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둘째, 정치사회운동: 이념의 복원 앞으로 전개될 세계자본주의 위기, 장기침체로 인한 민중생존의 위기 국면에서 노동자계급을 단결시키고 대안사회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이념적 대안이 더욱 중요성을 갖게 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민주노총은 설립과정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이념적 요소가 취약해져왔다. 이후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주장하게 되는 노동운동 위기론자들(1992년)은 민주노조운동 사회변혁이념의 “과잉”을 위기의 원인으로 진단했다. 앞서 강조한 ‘조직화’는 그 자체로서 계급적 단결을 확대한다는 운동적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세계자본주의의 위기라는 정세에서 ‘이념’ 없는 단결은 맹목이며, 우리가 지향할 운동은 아니다. 1998년 금융위기 대응과 신자유주의 반대투쟁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혼란을 반성하고, 자본주의 위기 이후에 노동자 계급의 투쟁전망을 정확히 수립하기 위해서 변혁 이념의 복원은 시급한 과제다. 따라서 우리는 10여년 간 “노동자 운동 내 변혁 이념의 지속적 약화”라는 경향을 대역전시키고, 전노협 시기(80~90년대) “노동해방, 평등세상”을 현재의 2009년 이후 정세에 적합한 이념 형태로 노동자운동 내에서 전면화해야 한다. 사회진보연대는 현 시기 사회운동노조의 과제로 △노동계급의 단결 확대를 위한 총연맹 강화와 조직화 사업 확대 및 △‘대안세계화운동’을 제시해온 바 있다. 특히 대안세계화 운동을 구성하는 이념으로는 ‘전위당·국유화’ 노선을 중심으로 한 역사적 사회주의 운동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가운데, 금융세계화 반대, 평화주의, 국제주의, 생태주의, 페미니즘을 함께 지향해야한다고 주장해왔다. 노동자운동에 이념적 요소가 중요하다는 것은 일부의 오해와는 달리 자본주의 극복과 대안사회 건설의 추상적 지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념에 근거한 구체적인 정세분석(능력), 그리고 이를 실천 사업으로 구체화할 수 있는 기획과 실행력을 동시에 의미한다. 이념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은 이러한 힘의 종합을 의미한다. 예컨대 이념적 기반이 확고하다면 초민족적 기업의 자본철수로 인한 정리해고에 대해서 완강한 투쟁계획을 갖는 것은 물론이고, 이와 연계하여 자본의 전략의 어떤 부분을 공격할 것인지, 이를 위한 전술은 어떻게 구사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 구체적인 전략정책을 수립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또한 일부의 오해와는 달리 이념적 요소의 강화, 사회운동적 성격의 강화가 노조 운동 이외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수용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므로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면밀한 검토와 토론은 필수적이다. 다양한 주장으로 제기되는 운동의 아이디어들에 대해서, “그 운동이념[실천]은 노동자계급 주체를 형성하고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확대할 수 있는 입장인가”라고 질문한다면 답이 나온다. 노동운동 이념이 참신한 아이디어들로 대체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최근 유행하는 ‘사회적 경제론’과 이에 입각한 다양한 운동 아이디어(협동조합으로의 노조운동 대체,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 비정규센터, 변형된 사회봉사활동 등)가 사회운동노조에 적절한 이념이라고는 전혀 볼 수 없다. 노동조합 운동이 사회운동과 결합하는 행위 이전에, ‘사회운동노조’를 통해 사회운동 내에서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복권시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념적 요소가 조직 내에서 실질적인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실천 투쟁과제로 구체화되는 ‘정책 공정’이 필요한 것은 물론, 조합원 이데올로기로 스며들 수 있도록 하는 교육사업이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진다. 따라서 민주노총(지역본부)과 산별노조는 기존 교육사업을 혁신하고 이념정책과 결합한 교육 기능을 강화 필요가 있다. 이념의 재건을 아무리 강조하더라도 활동가, 조합원과 함께 할 수 있는 매개인 교육사업이 없다면 제대로 된 의미를 갖지 못한다. 교육사업은 이념의 재건에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중요한 필요조건이다. 87년 세대 이후 노동운동의 대안 현실화를 위한 조직적 과제 위와 같은 노선적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운동의 여러 실천이 교통하면서 힘을 모아나갈 필요가 있다. 또한 노동조합들이 구체적인 혁신과제를 자신의 사업 속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운동의 주체를 확대강화할 필요를 공감하는 활동가들에게 몇 가지 공동의 과제를 제안하고자한다. 첫째, 대중운동의 경험을 공유하고 공동으로 분석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구성하자.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주체를 형성해가기 위해서는, 실천과제에 대해 노동운동 내 합의를 만들어가기 위한 논의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민주노총(지역본부)과 산별노조의 현장 활동가들이 구체적 과제를 토론하고 조직적 실천에 나설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각급 조직에서 운동경험에 대한 평가와 공유, 과학적 분석을 진행하기 위한 논의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이러한 대중운동의 경험과 논의를 집단적으로 공유하고 분석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할 것을 제안한다. 말하자면 각 노조, 정치사회운동의 활동가들이 “87년 세대 이후, 노동운동은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공동의 해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함께 밟아보자는 것이다. 사회진보연대도 이와 같은 실천과제의 한 부분에서 기여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는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의 역할이기도 하다. 둘째, 민주노총 운동의 혁신 과제 실현을 위해 합의를 확대하자. 위에서 제안한 대중운동 경험의 공유와 공동의 분석이 지역현장 활동가들에 대한 제안이라면, 민주노총(총연맹) 차원에서도 민주노조 운동 전체가 혁신될 수 있도록 하는 출발점의 의미를 갖는 혁신과제가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자 한다. 운동 관행과 운영의 혁신 과제가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 총연맹의 혁신과제 수립을 위해서는 이번 민주노총 새 집행부가 혁신과제에 대한 논의의 장을 형성하고 차기 직선제 선거 전까지 제 운동세력이 합의하는 공동의 혁신과제와 투쟁과제(공유기반)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제는 아래와 같이 예시할 수 있다. 1) (노조답게) 투쟁하자!: 재벌 통제, 반신자유주의 노동자 투쟁 전선 구축 • 노동권 확대와 재벌 통제 전략 (경제민주화 비판) • 노동자의 계급대표성 회복을 위한 투쟁 태세 구축 : 정리해고노동유연화 분쇄! 노동기본권 쟁취! 민주노조 사수! •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에 기반을 둔 정치세력화 운동의 전면적인 재구성 • 노동자국제연대: 재벌의 초민족화에 맞서는 국제 노동표준 향상 전략 2) (노조답게) 단결하자!: 계급 단결 확대강화 • 시기집중 임단투 투쟁전선의 복원 • (조직 노동자, 미조직 노동자 단결) 임단투와 최저임금 투쟁 결합 • (공동요구안에 근거한) 정규직비정규직 공동투쟁 • (고용안정을 위한 연대의 확대) 비정규직 철폐! 3) (노조답게) 확대하자!: 조직화에 전념, 현장사업 강화 • 경제위기시대,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향한 제2의 전략조직화 운동 • 산별지역조직, 지역본부의 미조직 사업 역량 강화, 제 사회단체와의 미조직사업 협력 강화 • 지역과 현장 주체로부터 출발하는 현장사업 강화 4) (노조답게) 운영하자!: 조직운영 혁신 • 총연맹 중집의 실질적인 역할 강화 • (투쟁의 구심, 미조직사업의 구심으로서) 산별지역조직 강화, 지역본부 강화 • 사무처 운영 혁신 : 임원―(정무직) 실장단, 활동가 순환배치 (현장-순환배치) 마치며 : 사회운동노조를 위한 하나의 비교 이 글을 시작하면서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변화된 주객관적 정세와 물리적 세대교체를 맞아 현 정세에 적합한 노동자운동의 방향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함을 제안했다. 이를 위해서 87년 이후 노동자운동의 주요 시기별 운동을 반성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민주노조운동이 2000년대 시도했던 산별노조, 진보정당, 미조직전략조직화의 조합으로 구성된 전략은 유효성을 상당히 잃어버렸다. 따라서 2000년대 운동 경험에 대한 평가를 통해 대안을 재구성하자는 것이 우리의 제안이다. 2000년대를 돌아볼 때 초기업 방식으로 진행했던 중소영세비정규직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 주체형성 시도가 의미 있는 성과를 남겼다. 이는 초기업노조운동(산별노조지역노조)과 전략조직화 사업이 결합될 필요를 보여준다. 이에 따라 2009년 금융위기,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25년동안 노동자운동을 책임져온 세대 이후 시기의 운동과제로 몇 가지를 제안했다. 노선적 측면에서는 첫째, 산별노조·지역본부가 ‘초기업적인 신규 조직화’를 노선으로 채택하고 조직적 투자를 집중하는 방향으로 혁신할 것과 둘째, 건설 과정부터 “노동해방, 평등세상”의 이념적 성격을 지속적으로 약화시켜왔던 민주노총의 추세를 대역전하여 대안세계화 이념을 운동 내에서 전면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노동자운동의 조직적 과제로는 (지역현장) 대중운동의 경험을 공유하고 공동으로 분석하기 위한 활동가 네트워크 운영과, 민주노총(총연맹) 운동의 혁신 과제 실현을 위한 합의 확대를 위한 노력을 제안했다. 우리는 이러한 실천에 나서는 노동조합을 ‘사회운동노조’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사회운동노조’의 구체적인 의미나, 이 운동에서 제안하는 이념의 모호성이 노동운동포럼 토론과정에서도 지적되었다(‘어떤’ 사회운동인가, 어떤 ‘실천 활동’인가?). 정당과 ‘사회운동노조’의 관계도 논의가 제안되었다. 이러한 쟁점에 대한 보다 정리된 토론은 이후 공동의 논의과정에서 보완되어야 하겠지만 여기서는 한 가지 짧은 비유 혹은 비교를 들어보도록 하겠다. 1998년 IMF 구제금융위기에 대한 민주노총의 대응을 돌아보자.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른바 노동유연화 ‘3제’(변형시간제,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에 대한 노사정합의와 번복, 총파업의 실패가 있었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비판하고 경제위기의 부담을 자본가에게 질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이념정책적 능력의 부재가 낳은 안타까운 결과다. 세계경제, 한국경제의 상황을 볼 때 이런 식의 심각한 경제위기는 앞으로 남한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닥쳐올 것으로 예상된다(물론 98년과 같은 외환위기 형태가 아닐 수도 있다). 그 때 민주노총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최근 경제위기를 심각하게 겪고, 또 그 과정에서 노동자사회운동의 저항이 확산되고 있는 그리스의 사례를 보자. 물론 그리스의 양대노총을 사회운동노조의 사례로 평가하기는 쉽지 않지만, 남한 노동조합운동의 대응과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리스 경제위기의 전개 과정에서, 민간부문 노총인 GSEE와 공공부문 노총인 ADEDY은 2010년 최초로 총파업 투쟁을 전개한다. 이들 노총은 원래 (한국과 굳이 비교하자면 민주당과 유사한) 사회당을 지지하는 조직들이어서 애초에는 총파업에 적극적이지는 않았지만, 경제위기의 부담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긴축정책을 인정할 수 없었다. 노동자들의 연이은 총파업과 이어 확산된 ‘분노한 사람들’의 저항에서 좌파 정치운동은 새로운 힘을 얻게 된다. 긴축반대 투쟁, 트로이카(IMF, 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가 강요한 채무조건 재협상 투쟁이 핵심 요구다. 이러한 대중투쟁의 성과로 급진좌파연합 시리자(SYRIZA)는 총선 결과 집권 직전까지 갈 정도로 대중적 지지가 확대되었다. 그리스의 상황이 이렇게 전개될 수 있었던 이유는 노동조합운동이나 정치운동이 노동자계급의 입장과 금융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트로이카의 요구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분명히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리자와 그리스 사회운동, 노동자운동의 요구는 ‘대안유럽’을 요구하는 국제주의적 방향을 취하고 있다. 유럽의 변혁이 그리스의 변혁에도 필수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한편 98년과 그 이후의 민주노총으로 다시 돌아와보자. 민주노총의 요구는 노동자에게 경제위기 부담을 전가하는 긴축정책을 반대한다거나 IMF 구제금융협약을 거부하고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현장에서는 정리해고를 막아내고 비정규직을 철폐하기 위한 투쟁이 계속되었지만 전체 노동자계급의 거시적 투쟁방향을 제시해야할 총연맹 차원의 정책은 결이 달랐다. 집단적 노사관계의 일부 양보를 대가로 노사정위원회에서 노동유연화 ‘3제’를 합의했다. 재벌개혁(해체)을 요구하거나 소액주주운동과 연대하기도 하고,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사회복지 확대 등을 요구했다. 경제위기의 원인을 오해하거나, 그게 아니면 경제위기의 원인에 대한 투쟁은 없이, 온통 ‘결과를 완화’하기 위한 요구에 집중했다. 경제위기의 결과를 완화하는 것도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투쟁에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에 그쳐서는 한계가 분명하다. 민주노총은 노동자계급의 입장을 벼리는 노력보다는 중간계급 ‘개혁적’ 전문가들의 이런저런 정책제안을 수용하는데 오히려 열심이었다. ‘이념을 가진 조직화 노선으로서’ 사회운동노조라면, 경제위기 상황에서 다른 것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직화를 통해 꾸준하게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세계자본주의 위기와 연계된 한국경제 위기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이념을 활동가들과 조합원이 가질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다. 시리자를 대표하는 치프라스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전쟁은 국가와 인민들 사이의 전쟁이 아니다. 이 전쟁은 한편으로 노동자 및 인민 다수와 다른 한편으로 전 세계 자본가, 은행가, 주식으로 부당이득을 취한 자, 거대 펀드들 사이의 투쟁이다. 이것은 인민들과 자본주의 사이의 투쟁이며, 그리스는 이러한 투쟁의 선두에 서 있다.” 경제위기는 계급투쟁의 문제다.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사태의 원인을 인식하는 것, 그리고 그에 입각해서 투쟁하기 위해서는 ‘이념’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투쟁을 가장 광범위한 노동자 대중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위한 조직화, 미조직노동자를 대변할 수 있는 대표성이 투쟁 속에서 확보되어야 한다. 또한 남한 경제의 위기도 세계자본주의 경제위기의 효과로서 나타날 것이라는 점에서 ‘대안세계화’라는 사회운동의 이념(시각)이 필수적이다. 사회운동노조라는 대안을 제시하면서 ‘대안세계화 사회운동’을 노동자운동이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런 의미다(모든 종류의 사회운동들과 별다른 기준도 없이 연대하자거나 의제를 확장하자는 것이 사회운동노조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념’과 노동자운동의 주체 형성을 위한 ‘조직화’도 다른 과제가 아니다. 경제위기에 대해서 “인민들과 자본주의 사이의 투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치세력 역시, 정당들의 이합집산 이전에 노동조합의 총파업 등 대중 투쟁의 과정에서 (그 결과로) 형성되었다는 점을 기억해야한다. 정당들은 대중운동의 분출에 뒤따르면서 이를 지원하는, ‘전위당’이기보다는 (사회운동의 조직가지원자로서) ‘후위당’ 일 수 있다. 남한 노동자운동이 98년의 민주노총과 다를 바 없이 다음 경제위기를 준비 없이 맞는다면, 그 때는 너무 늦을 것이다. 민주노총과 현장의 민주노조들은 현장의 고용안정 투쟁만이 아니라, 혹은 경제위기의 결과를 완화하는 요구만이 아니라, 경제위기의 원인을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인식하고 이에 대한 투쟁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인가? 혹은 이러한 투쟁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인가? 경제위기가 어느 한 순간의 파국이 아니라 매순간 여러 정치사회적 쟁점으로 드러나는 ‘현재진행형’ 정세라고 할 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과 투쟁 준비가 사회운동노조의 주요한 실천이라 할 수 있다. 1998년 이후 현재의 노조운동은 실책을 범하면서, 살아남을 조직적 자산도 취약해졌다. 2009년 경제위기 이후 정세를 분석하면서 새로운 운동주체가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 중에 하나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노동자계급 단결의 확대와 이념의 재건이라는 의미로서 사회운동노조’가 필요한 정세에 있다.
엄길용 전국철도노동조합 서울지방본부장 인터뷰 인터뷰어: 이승하 | 서울지부 사무국장 기획/정리: 이승하 | 서울지부 사무국장, 이민영 | 정책위원 일시: 2013년 8월 23일(금) 새 정부 출범 이후 수서발 KTX 법인설립을 필두로 한 철도민영화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사실 철도를 민영화하려는 정부의 정책은 이번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신자유주의 이후 시민들의 기본권을 박탈하는 공공부문 민영화가 곳곳에서 십수 년 간 진행 중이다. 문제는 정권이 바뀔수록 민영화 정책도 점점 교묘해진다는 것이다. 민중들의 반발을 최소화하고 노조의 반대투쟁을 점화시키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런 조건 속에서도 힘차게 민영화 반대 투쟁을 진행해온 노동조합이 있다. 바로 공공운수노조·연맹 전국철도노동조합이다. 지난 6월에는 철도민영화 저지를 위한 총파업 찬반투표를 89.7%의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시키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2013년 하반기, 민영화 반대 투쟁을 앞둔 상황에서 현재 철도노조의 상황, 이후 투쟁 과제를 듣기 위해 전국철도노동조합 서울지방본부 엄길용 본부장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교묘한 방식의 민영화, 결국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의 대응이다” 사회운동: 상반기 동안 철도노조는 박근혜 정부의 철도민영화 정책에 맞서 힘찬 투쟁을 전개해왔다. 지난 6월에는 철도민영화 저지를 위한 총파업 찬반투표가 89.7%의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되기도 했다. 이번 투쟁 준비과정은 어떠했나. 엄길용 본부장(이하 엄길용): 사실 철도민영화 반대 투쟁은 이번 정권 하에서 새롭게 진행된 투쟁은 아니었다. 정권이 바뀌고 새로운 국면에서 진행되는 투쟁임은 분명했으나, 투쟁 준비 과정 등에 있어서 이전의 투쟁과 특별히 다른 점은 없었다. 내부적으로는 조합원 교육부터 시작해서 조합원들과 충분히 소통하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이고 있다. 민영화 관련해서는 지난 10여 년 동안 교육이나 다양한 투쟁을 진행해왔기 때문에 조합원들의 이해가 높다. 쟁의행위 투표에서 총파업이 높은 찬성률로 가결된 것도 이러한 지난 과정들을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박근혜 정부 들어서, 그리고 정권이 바뀔수록 점점 민영화 추진 방식이 세련되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투쟁을 열심히 조직했고, 그 결과 압도적 찬성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당장 눈앞에 있는 것은 철도민영화 저지이지만 본질은 전체 공공부문 민영화이다. 지금 진행하는 이런 투쟁을 통해서 조합원들이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고 교육도 이런 목표 하에서 진행하고 있다. 물론 많이 더딘 측면도 있다. 대기업 노동자들이 이기적인 면이 존재한다는 평가들도 있는데, 철도노조도 공기업 노조로서 여기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회운동: 얼마 전 진행된 지부별 파업학교에 참가했었는데, 분위기가 굉장히 좋고 모두가 열심히 참여하더라. 엄길용: 한 달에 한 번씩 본부에서도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노동자학교를 열고 순회하면서 지부별로 찾아가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분위기는 좋지만 조합원 전체 수에 비하면 참여수준이 매우 낮은 편이다. 파업학교도 지부별로 진행했는데, 총 400여 명 정도 참여했다. 전체 조합원 수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그래도 성과가 있었기 때문에 이 내용을 가지고 새롭게 전 조합원 교육을 추진하고 있다. 지부에서 주도하면서 필요하면 간부들까지 파견해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다. 사회운동: 철도민영화와 관련해 최근 정부의 입장 변화나 주목해야 할 지점은 무엇인지. 엄길용: 기본적으로 정부의 민영화 추진 시도 자체가 세련되어졌다. 물론 신자유주의 도입 이후에 본질적인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정권은 바뀌어도 정책이 바뀐 적은 없었던 것이다. 저들이 세련되어졌다고 말했는데, 실제로 전통적인 방식의 민영화를 우회한 경로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정부는 수서발 KTX는 민영화가 아니라며 법인설립 추진 과정에서 ‘민간자본의 진출을 허용하지 않겠다,’ ‘연기금을 도입하겠다’며 민영화 의도를 감추려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통신 민영화 사례에서 보듯이 연기금 지분은 매각하면 그만이다. 언론이나 정부 입장에서는 민영화가 아니라고 이야기하지만 관제권 환수, 선로분배권 환수, 출자했던 자산 환수 등을 통해서 민간 사업자가 진출했을 때 이윤을 추구하기 쉽도록 그들의 입맛에 맞게 철도운영구조를 바꾸고 있다. 이런 점에서 민영화 추진 방식이 훨씬 교묘하고 치밀해졌다. 사회운동: 최근 사장 선임과 관련해서 국토교통부의 개입이 있었다. 철도노조와 범국민대책위원회가 이에 문제제기를 하고 여론을 조직해서 정부의 낙하산 사장 선임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철도민영화에 반대하는 여론을 의식한 조치인 것 같은데 향후 어떤 영향을 미칠까. 엄길용: 이 사안을 통해 철도민영화 문제가 언론에 부각된 것은 어느 정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사장 선임은 민영화 계획을 추진해나가는데 큰 변수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민영화는 지금 정부의 수순대로 사장이 없이도 부사장 직무대행 체제로 진행이 가능하다. 파업 시기를 정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일 수는 있겠다. 어쨌든 사장 선임을 막아낸 것 자체는 투쟁의 성과이기 때문에 조합원들이나 전체 투쟁 대오의 자신감 형성에는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사회운동: 민영화 절차가 교묘한 방식으로 진행되다보니 파업 돌입 시점을 어떻게 잡아야할지 내부에서도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안다. 지난 쟁의대책위원회에서도 수서발 KTX 법인 설립 시 파업 돌입이라는 원안이 격론 끝에 통과되었다고 들었다. 주체들의 준비 정도나 민영화 추진 일정을 두고 판단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어떠한가. 엄길용: 아직 쟁점이 있다. 수서발 KTX 법인 설립이 안 되면 철도민영화도 안 되는 것이냐, 그렇지 않다. 법인 설립이 결정적이라면 그에 초점을 맞춰야겠지만 민영화는 이와 상관없이 이미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폭제가 있어야 더 큰 싸움을 만드는 데 유리하기 때문에 우리도 기점을 하나 확보하고 준비하는 것이 필요할 수는 있다. 그러나 현재 추진되는 민영화 계획은 어떤 결정적인 전환점 하나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 한 단계 진행되는 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2016년 1월로 수서발 KTX 운영이 늦춰졌는데 법인 설립과 관련한 행정적 절차나 지분 출자는 영업개시 이전에 언제든 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법인 설립 이후로 투쟁을 보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연기금 투자도 결정된 것이 없다고 보도되었는데 이 역시 당장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이 어떻게 하느냐다. 이에 따라 민영화가 당겨질 수도, 미뤄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희생의 각오로 파업투쟁 승리하자” 사회운동: ‘국민의 발을 볼모로’ 싸운다는 비난부터 정권의 탄압과 징계까지, 최고 수위의 투쟁인 파업을 감행하려면 많은 것들을 감수해야 하는데. 엄길용: 투쟁에는 여러 방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총력투쟁, 파업뿐이다. 정치권에 청원을 하고 여론을 조직해서, 정부가 노사정 테이블로 민영화 문제를 넘기고 논의하게끔 한다는 방식도 있겠지만 지금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방식은 노동조합으로부터 강력한 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른 방식을 통해서는 민영화 정책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 사회운동: 민영화를 앞두고 공사 내부에서는 직종별 구조조정 등이 한창인 것으로 알고 있다. 화물 1인 승무, 전기 장비 외주화, 열차승무 강제순환전보가 추진 중이다. 민영화에 앞서 벌어지는 현장의 변화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엄길용: 사실 철도분야에 구조조정은 일상화 되어있다. 특히 인력감축을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이 가장 큰 문제다. 민영화를 추진하기 위해서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것인데, 결국에는 외주와 하청 등으로 필요한 인력분을 보충할 수밖에 없다. 전체적인 일의 양은 그대로인 것이다. 한편 업무를 외주화하지 않고 1인 승무처럼 인력 자체를 줄이는 방식도 있다. 이런 흐름들의 목적은 철도를 가장 팔기 쉽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비용절감의 목적으로 인원 자체를 줄일 뿐만 아니라 인건비도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는 민간자본이 진출했을 때 가장 이익을 내기 좋은 구조다. 정부가 조금만 보조를 해주면 이익을 가져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사회운동: 현장은 인력부족이라 아우성인데 오히려 관리자들은 많이 늘었다고 들었다. 관리자가 더 많은 역도 있다고 하던데. 엄길용: 철도 관련 전체 인력 규모 내에 관리자 비중이 아주 커졌다. 노동조합을 염두에 두고 배치된 인력들이다. 통상적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했을 때는 우선 중간관리층을 상당히 슬림화 한다. 구조조정의 일반 타겟이 바로 중간관리층인 것이다. 하지만 철도는 역으로 중간관리층을 노무관리나 노동조합의 단체행동, 파업 시 대체인력으로 사용하기 위해 실제 필요보다 더욱 비대화시킨 측면이 있다. 사회운동: 현재 강제순환전보에 반대하여 열차 승무 조합원들이 휴일 지키기 투쟁을 하는데, 그 빈자리를 급조되고 자격 없는 이들이 대체하고 있다고 들었다. 사측에서는 파업에 대비하여 대체기관사로 쓸 인력들을 부랴부랴 추리고 있다는 얘기도 들리는데. 엄길용: 날림 기관사, 자격 없는 역무원을 동원하여 철도를 움직이게 할 수는 있으되 안전을 담보할 수는 없다. 허준영 사장 시절에 3천여 명의 철도 관리자들에게 파업 등에 대비하여 약식으로 교육을 시키고 기관사 면허를 발급해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안전을 전혀 담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기본 운영 자체도 제대로 담보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경부선 운전을 하던 기관사가 중앙선에 가면 선로의 특징, 신호관계 등을 익혀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어렵고 시간이 걸린다. 실제로 이전의 파업 때도 대체 인력이 움직이는 열차가 중간에 운휴되거나 상당히 지연되는 등 크고 작은 사고들이 많이 발생했다. 특전사들을 훈련시켜 열차, 선박 유사시 대비 운행 교육을 시키는 경우도 있는데 모두 위험천만한 일이다. 사회운동: 지금까지 수많은 투쟁을 경험한 만큼 관록도 쌓였지만 반대로 해고나 징계가 빈번히 벌어지는 것을 보아왔기에 파업을 앞둔 조합원들의 마음은 한편으로 두렵기도 할 것 같다. 한길회 사건 등 최근 공안탄압에 시달리기도 했는데 현재 큰 싸움을 앞둔 철도노동자들의 분위기는 어떤지 듣고 싶다. 엄길용: 타임오프가 도입되면서 전임자 수가 반 정도로 줄었다. 이전에는 64명의 상근자가 있었는데 현재는 32명 정도로 반으로 줄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여러모로 파업투쟁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현재 분위기는 외부적으로나 내부적으로나 제일 좋은 상황이다. 결의대회 참여정도, 쟁의행위 찬반투표 결과, 조합 지침에 의해 진행되는 선전 상황, 1인 승무 저지 투쟁 등의 객관적 상황들을 보았을 때 그렇다. 본부 지침이 100% 이행되고 있으며 집회 규모도 전례 없는 규모로 조직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렵다고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이전에는 더 어려운 상황이었고, 그럴 때도 투쟁에 돌입했다. 지역, 직종별 차이는 있겠지만 객관적인 상황을 봤을 때 지금은 파업에 돌입할 조건도 되고 정당성도 충분하다. 사회운동: 지난 대의원대회 때 “또 다른 희생의 각오로 파업투쟁 승리하자”는 철도노동자들의 구호를 들었다. 복직되지 못한 해고자가 상당히 많은데도 또 다시 희생을 함께 감내하자고 결의하는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숙연해졌다. 엄길용: 그게 철도노조의 전통이다. 그리고 좋은 전통을 지금까지 만들어왔던 것이다. 다른 공기업에 비해서 철도노조가 아직까지 민주노조 깃발을 굳건히 들고 있는 것은 싸워야 할 때 열심히, 제대로 싸웠기 때문이다. 피해를 보거나 깨진 적도 많았지만 그것들이 결코 패배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10년 동안 투쟁만으로 민영화를 막아왔다. 이러한 좋은 평가도 더욱 좋은 전통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철도노조가 2001년에 민주노조로 바뀌었는데, 그 이전에 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 시절, 노조민주화를 추진했던 시간까지 합치면 20여 년 정도가 된다. 이 20년 동안 870명 정도가 해고되었다. 그 중 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KTX 여승무원 투쟁이었고 당시 390명이 일거에 해고되었는데 집단적인 비정규직 투쟁의 경험을 한 셈이다. 현재에도 91명의 해고자가 있지만 그동안의 투쟁을 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해고자가 870명이지 좀 더 낮은 수준의 징계는 정말 몇 만 명에 달할 것이다. 그래서 철도에서는 해고자 아니면 징계 받았다고 명함을 내밀 수도 없다. 사실 공기업에서는 정직 당하면 끝났다고 생각하는데 철도는 다르다. 좋은 전통이 만들어져 온 것이다. “철도 운영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갈 수 있는 모델이 필요하다” 사회운동: 2002년 가스발전철도 3사 파업, 격렬했던 2003년 두 번의 투쟁, 2009년 투쟁 등 오랜 기간 투쟁을 진행해왔기 때문에 그러한 경험으로 투쟁 태세를 빠르게 갖추고 있는 것 같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과거 투쟁을 경험한 조합원들이 퇴사도 하고 세대구성이 달라지는 문제가 있을 텐데. 엄길용: 철도노조 평균 연령이 만 45세이다. 직종별로 50세에 육박하는 경우도 있는데 꽤 높은 연령대라고 볼 수 있다. 가스노조의 경우 인력이 충원되면서 젊은 조합원들도 생겨났다고 하는데, 철도는 이런 부분이 부족하다. 2005년 이후에 신규입사자가 별로 없고, 그래서 세대 간의 문제나 경험의 차이 등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신규입사자가 없기 때문에 평균 연령도 높은 편이다. 사회운동: 이번 투쟁을 거치면서 민영화 저지가 가장 큰 투쟁의 목표겠지만 내부적으로 조직 강화를 위한 여러 가지 과제도 있을 것 같다. 내부교육 사업, 투쟁의 경험과 노하우를 나누기 위한 프로그램 등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엄길용: 현재 철도노조 내에서 간부층이 많이 얇아지고 고갈되었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고 순환이 되어야 조직이 활성화되는데 그런 부분이 많이 부족하다. 노동조합 자체도 많이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일본 같은 경우에는 노동조합 활동방식이 우리와 다르기는 하지만 주목할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일본 철도에서는 청년부 등을 따로 만들어 운영하고, 그것이 활성화되어 있다. 투쟁을 앞서서 하는 조직은 아니지만 간부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도 실천단을 조직한 적이 있다. 젊은 조합원 중 관심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간부로 커나가는 중간 과정 정도의 위상으로 진행했다. 지금은 따로 이런 기획을 내지는 못하고 일반적으로 진행되는 교육, 파업학교 등을 통해 보완하고 있다. 사회운동: 민영화가 되고 분사화가 이루어지면 노조가 약화되는 경우가 많다. 단체교섭이 분권화파편화되고, 고용관계가 개별화되면서 노동자들의 단결이 이완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해외 사례를 보면 ‘기관사 노조’처럼 직종별 노조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이 노조들은 철도노동자 전체보다는 직종의 이해를 대변하는 방식으로 움직이기도 한다고 들었다. 엄길용: 일본 민영화 과정에서 직종 노조인 기관사 노조가 생겼다. 처음에는 민영화를 반대하고 싸우는 듯 했으나 나중에는 타협했다. 타협을 하면서 자신들의 세를 불리는 것에 집중했다. 반면 끝까지 반대했던 노조는 와해 직전까지 간 경우도 있다. 직종별로 하는 일이 다르긴 하지만 결국 철도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로서 운명을 같이하는 관계일 수밖에 없다. 업무 특성이 차이가 있지만 직종을 넘어 단결을 하는 것은 노조가 얼마나 건강하게 유지되느냐에 달려있다. 철도는 오히려 모든 직종이 전문화되어야 유기적으로 굴러가는 측면이 있다. 물론 업무의 특수성 때문에 조건 자체가 달라질 수는 있다. 차량, 운전과 같은 집단 사업장은 자주 모일 수 있는 반면에 역, 시설, 전기 등은 사방에 흩어져서 소수로 일하는 곳이기 때문에 제약이 있을 수 있다. 사회운동: 해외사례를 보면 영국처럼 민영화 이후 폐해가 드러나 재공영화하는 곳도 있고, 끊임없는 민영화 압박 속에서도 스페인이나 독일, 프랑스처럼 계속 국영철도를 아직 유지하는 사례도 있다. 참고할 만한 모범사례가 있는지 궁금하다. 엄길용: 스페인, 독일의 경우 사실 많이 구조조정 되었다. 반면 프랑스 철도의 경우 주목할 만한 점이 많은데 특히 서비스를 생산하는 철도노동자, 경영자, 시민, 각각의 주체들이 모여 철도 산업에 대한 계획이나 운영과 관련해 아주 긴 시간 동안 논의를 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방식이 그렇다. 공공의 영역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게 하는 모범적인 국가가 프랑스인 것 같다. 근본적인 대안으로 볼 수는 없지만 현재 상황에서 제일 발전된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얼마 전 한국에서 민영화를 위해 만들었던 민간검토위원회는 구색을 갖추기 위한 형식적 자리다. 위원회 자체적으로 고민된 것은 하나도 없고 정부에서 준 안을 다시 반복하는 것에 불과했다. “1994년 전지협 투쟁, 공동파업의 기억을 잊지말자” 사회운동: 상반기 투쟁을 경과하면서 남은 성과와 이후 과제는 무엇인가. 엄길용: 아직 투쟁이 진행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성과를 이야기하기에는 이르다. 다만 다른 때보다 범국민대책위원회와 같은 연대사업이 활성화되어 있다는 점이 하나의 성과다. 철도노조에서 적극적으로 연대사업을 하려고 노력한 측면도 있고 결과적으로 연대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한 활동을 통해 조합원들도 자신감이 높아지고, 생각하는 바도 많이 넓어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부적으로 조합원들이 결의를 높여가는 과정 중이라 아직 성과를 논하기에는 이르다. 향후 과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당연히 철도민영화를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는 것이고, 하나는 민영화 그 자체 뿐만 아니라 이와 연동되어 있는 인력 구조조정 저지 투쟁이다. 지금까지 철도노조는 인력 문제를 전면으로 쟁점화 하는 데 부족했다. 공사의 인력 감축안에 대해 수세적으로 대응하는 정도였다. 이제는 법이나 단체협약에 근거해서라도 공세적인 투쟁으로 전환해야 한다. 철도노조가 각 부문에 필요한 인원들을 실사하고, 이러한 자료에 근거해 구체적인 인력 충원의 요구안을 만들어야 한다. 이 요구안이 관철되지 않았을 시 쟁위행위를 배치한다거나 하는 등의 투쟁들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은 수세적으로 밀려왔다면 앞으로는 민영화 저지, 인력 감축에 맞선 사업을 주도적으로 해나가는 공세적인 투쟁이 필요하다. 다양한 투쟁들을 통해 이러한 문제의식을 조합원들과도 공유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사회운동: 현재 철도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문에서 민영화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이를 하나로 묶어내면서 더 큰 투쟁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엄길용: 일단 지금은 상층 단위의 연대부터 모색하며 손발을 맞춰가고 있다. 각각의 민영화 사안들이 조금씩 다른 일정으로 목전에 와 있다. 사안별로 다른 정부의 민영화 추진 일정에 맞추다보면 공동투쟁은 불가능하다. 아예 주도적으로 우리가 투쟁일정을 잡고 공통의 요구안과 흐름을 가지고 싸워야 한다. 사실 이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하지만 현실적 어려움이 있기는 하다. 이전 경험을 반추해보면 철도나 궤도 쪽에서는 몇몇 아주 의미 있는 경험들이 있다. 1994년 전지협 투쟁이라고 들어보았는지. 당시 철도는 민주노조가 아니었는데 기관사 중심으로 민주노조 세력이 있었고 서울지하철, 부산지하철 등 지하철노조가 있었다. 당시 이 노조들을 중심으로 협의회가 구성되어 있었다. 이 협의회에서는 정부가 만약 한 군데라도 치고 들어오면 동맹파업을 하겠다는 결정이 있었고 실제로 집행이 됐다. 많이 연행되고 해고되었지만 그런 것들이 민주노조를 만들어나가고 민주노조 운동을 확산시켜 나가는 큰 경험이자 지표가 되고 있다. 2002년 3사 파업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경험들을 목적의식적으로 앞으로 만들어나가야 한다. 사회운동: 현재 전국에서 지역별 대책위가 꾸려졌는데 조합원들과 정기적으로 선전전을 진행하고 여러모로 교류가 많아지면서 다른 연대단체에도 굉장히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 사회진보연대 회원들도 퇴근길에 민영화 저지 선전전에 동참하고 뒤풀이 자리에서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투쟁에 대한 열의가 더 높아지는 모습이다. 계속해서 힘차게 연대해야할 이유가 많아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운동』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엄길용: 민영화 저지 투쟁에서 어느 분들보다 아주 열심히 헌신적으로 같이 해주시고 계셔서 우선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철도민영화 뿐만이 아니라 사회를 바꿔나가는데 함께 힘차게 투쟁했으면 좋겠다. ※ 긴 시간 열정적으로 인터뷰에 응해주신 엄길용 본부장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국제운수노련(International Transport Workers' Federation) 철도분과 의장 외스타인 아슬락센(Øystein Aslaksen) 인터뷰 인터뷰어/정리: 정영섭 | 사무처장 일시: 2013년 8월 26일(월) 철도노조와 공공운수노조/연맹이 주최하고 KTX민영화 저지와 철도공공성 강화 범대위, 공공부문 민영화 반대 공공성 강화 공동행동,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민주노총 등이 후원한 ‘한국 철도의 미래를 위한 국제 심포지엄’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에 온 국제운수노련 철도분과 외스타인 아슬락센 의장을 만나 철도 민영화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노르웨이 기관사노조(Norwegian Locomotive Drivers' Union) 전 위원장 출신이며 노르웨이 국영 철도위원회 위원도 맡고 있다. 사회운동: 국제운수노련 철도분과에 대해서 간략한 소개말씀 부탁드린다. 아슬락센 의장(이하 아슬락센): 국제운수노련은 전 세계 운수노동자들의 가장 광범위하고 큰 노조연합 조직이다. 모든 운수 분야의 노동자를 조직하고 있다. 조직 내에서 가장 큰 부위가 도로운송과 철도 분야 노동자들이다. 그들이 약 50%를 차지한다. 국제운수노련은 편의치적선박(flags of Convenience) 캠페인으로 유명하다. 국제운수노련은 50년 이상 이 캠페인을 지속해 왔으며 그 성과로 올해 8월 20일부터 ‘국제 해사노동 협약’(Maritime Labor Convention)이 발효되었다. 국제운수노련은 전 세계적으로 선원, 항만노동자, 항공사노동자, 철도노동자, 도로운송 및 지하철 노동자 등을 포괄하고 있으며 150여 국가의 약 450만 운수노동자를 대표하는 700여개 노조들이 가입해 있다(www.itfglobal.org 참조). 한국에서는 철도노조가 가입해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유럽 지역, 아메리카 지역, 아랍 지역, 아프리카 지역 등 지역 조직들이 있다. 최근에 준비하는 캠페인으로 도로운송 노동자들에 대한 것이 있다. 도로운송 부문에 점점 더 초국적 자본이 들어오고 있고 특히 버스, 지하철 등 도시 교통부문에서 그러하다. 대개 미국 자본들이다. 그래서 미국에 있는 동지들과 협력하고 있다. 또한 디에이치엘(DHL), 페덱스, 유피에스(UPS) 같은 소화물 배달회사 노동자들 문제에도 개입하고 있다. 이들의 노동조건 역시 매우 열악하다. 최근에는 터키 항공노동자들 해고 문제에도 연대하고 있다. 유럽운수노련은 국제운수노련의 최대 지역조직인데, 서유럽 노조들만 포괄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철도분과로 보더라도 러시아 철도노조가 제일 크다. 우크라이나나 벨로루시의 철도노조도 규모가 큰데 역시 유럽운수노련 소속이다. 사회운동: 최근 세계적으로 철도 민영화나 구조조정 흐름은 어떤가? 아슬락센: 라틴아메리카 사례가 대표적이다. 많은 철도가 민간자본에 팔렸다. 정부나 지자체의 투자가 미흡했고 관리도 부실했으며,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이 민영화 정책을 강요하여 민영화된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철도 네트워크는 민영화의 심각한 폐해를 겪었다. 최근 일부 국가들에서는 철도를 재국유화 하였다. 민간자본이 이윤 획득에만 집착하고 시설 투자나 서비스 개선을 소홀히 하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르헨티나가 그러하다. 최근에 아르헨티나에서 대형 철도사고가 일어났는데 그것은 민간기업이 철도시설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았고 관리도 부실했기 때문이다. 공공 소유 하에서 철도네크워크가 잘 작동할 수 있고 라틴아메리카에서 더 진보적인 정책이 시행될 수 있도록 노동자들이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유럽에서도 민영화 흐름이 강하다. 유럽의 철도산업은 수십 수백억 유로 규모에 달한다.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철도가 국유기업인데 민간자본이 시장에 접근하려 하고 있다. 최근에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4차 철도종합정책(Railway Package)을 발표하였는데, 철도운영에 대한 의무적인 경쟁입찰을 제안하고 있다. 이것은 실제로 대규모 민영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철도노선에 대한 접근 개방을 천명하고 있는데 이는 민간자본이 이윤이 나는 흑자선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해서 이윤만 가져가는 행태(cherry picking)를 조장할 것이다. 납세자들은 높은 요금을 감당해야 할 것이고, 기존에 흑자선에서 나온 이윤을 적자선에 지원하던 교차보조도 불가능해질 것이다. 이런 정책을 유럽연합이 강요하고 있다. 사회운동: 이러한 민영화 정책에 대한 국제운수노련의 입장은 무엇인가? 아슬락센: 국제운수노련은 철도를 공공재로 본다. 철도는 전 세계 민중들에게 매우 중요한 공공재이기에 반드시 공공의 자산에 속해야 한다. 우리는 민영화에 영향을 받는 가맹 노조의 투쟁과 활동을 지원하고 지지한다.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는 민영화 저지 운동에 국제운수노련이 참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고 각국의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 역시 중요하다. 어디서든 민영화가 진행되는 것이 현재적 경향이기 때문이다. 각국의 민중들은 민영화에 반대해 왔고 성공을 거둔 경우도 많았다. 자본은 끊임없이 이윤 확대를 위해 민영화를 추구하지만, 민중들은 공공부문의 서비스가 강화되는 것을 바란다. [참고] 유럽운수노련의 요구(출처: 국제운수노련 홈페이지) 우리의 철도와 일자리를 지키자! 철도산업에 대한 자유화와 경쟁도입은 △감원 △외주화와 하청 증가 △비정규 불안정 고용 증가 △파견노동 증가 △업무량과 노동강도 증가 △노동시간 유연화, 교대제 개악으로 이어진다. 시설과 운영의 분리 반대! 시설과 운영을 각각 담당하는 회사로 나누면 필연적으로 행정비용이 증가한다. 차량과 선로 시스템 사이의 밀접한 조정과 소통, 협력이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 시설과 운영 분리는 안전을 위협한다. 철도 여객서비스 자유화를 중단하라! 각국 정부가 자국민들의 요구를 바탕으로 공공운수 서비스를 제공하는 최선의 방식을 선택하도록 보장하라! 철도노동자 노동권과 노동조건 보장하라! 철도는 공공서비스다! 사회운동: 국제운수노련은 민영화를 저지하고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취하고 있는가? 아슬락센: 각국의 노동조합이 이러한 이슈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국제운수노련은 그러한 활동을 지원하고 조력한다. 국제운수노련은 정책을 논의하고 바람직한 대안을 가맹 노동조합에 제공하며, 각국 노동조합의 활동 경험을 교류하고 나누도록 한다. 또한 국제적인 캠페인을 제안하고 이를 추진한다. 민영화 저지 투쟁의 가장 중심 주체는 그 나라의 노동조합이다. 따라서 민영화에 대응하는 해당 노동조합의 노조 조직률이 매우 중요하다. 노조 조직률이 높고 힘을 유지하면 민영화에 잘 대응할 수 있다. 사회운동: 작년 스페인 철도노동자들이 민영화 반대 파업을 여러 번 벌였다. 이와 같이 주목할 만한 민영화 저지 투쟁 사례가 있다면 말해 달라. 아슬락센: 많은 나라들에서 파업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다가오는 10월 9일이 국제 공동행동의 날이다. 이 날은 민영화, 자유화를 강요하는 4차 철도종합정책에 맞서 유럽 차원의 공동 파업과 다양한 행동이 벌어질 것이다. 어떤 나라에서는 파업을 벌일 것이고 또 어떤 나라에서는 집회와 시위를 벌일 것이다. 각국의 노동조합에서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유럽운수노련이 조직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민영화에 대한 철도노동자의 투쟁은 기본적으로 방어적인 투쟁이다. 몇 년 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철도 민영화가 투쟁으로 저지되었고 최근에 뉴질랜드 정부는 철도를 재국유화 했다. 그런데 문제는 재국유화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철도에 대한 투자와 책임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국유화 하고도 여전히 부실한 상태에 있는 곳도 있다. 민영화의 문제가 가장 심각했던 영국에서는 철도의 공공적 소유를 위한 운동이 현재 벌어지고 있다. ▲ 철도의 공공적 소유를 주장하는 캠페인 포스터 민영화의 폐해를 지난 수십 년 간 겪은 영국에서는 현재 민영화된 철도를 다시 공공의 소유로 돌려놓으려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윤보다 인간이 먼저’라는 구호 아래 ‘철도를 위한 행동’이라는 이름의 캠페인 조직이 만들어져서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 8월 13일에 전국적 캠페인을 진행했다. 여기에는 영국노총(TUC)과 그에 소속된 서비스노조를 비롯한 많은 노동조합, 주민단체, 시민사회단체, 환경단체 등이 참여하고 있다. 2008년 이후로만 요금 인상은 임금 인상보다 세 배 더 빠르게 진행되었고, 매년 12억 파운드가 분할 민영화된 철도회사들의 비효율로 인해 사라진다고 한다. (http://actionforrail.org 참고) 노르웨이에서는 철도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국가는 철도시설에 대한 비용을 대고, 유지보수에 투자를 하며 이런 것들이 철도를 공적으로 강화하고 유지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민간자본은 이윤만 생각하므로 이러한 부분에 투자를 하지 않으려 하고 공공적 책임이 부족하다. 사회운동: 끝으로 향후 철도노동자 투쟁을 전망하면서 한국 철도노동자와 민중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해 달라. 아슬락센: 자본의 민영화 전략은 노동자들의 투쟁과 전체 사회운동 진영의 연대투쟁으로 저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철도는 그 자체로 공공의 자산이며 연관되지 않은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사회운동의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 세금을 내는 납세자의 문제이고, 철도를 이용하는 승객의 문제이다. 그래서 광범위한 연대투쟁 조직을 결성하고 힘을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정치적인 투쟁이다. 한국의 동지들이 잘 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철도노동자들과 한국 민중들이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