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노위 공공기관위원회*는 지난 11월18일, <공공기관의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공공기관위원회 합의문>(이하 ‘합의문’)을 체결했다. 한국노총 소속 3개 산별연맹(노조)가 참여한 이 합의에 대해 민주노총 소속 공공부문 산별노조(공공운수노조, 보건의료노조)는 합의문을 인정할 수 없으며 반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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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문’은 (1)참여형 공공기관 운영, (2)지속가능한 공공기관 임금제도 (3)후속논의 등의 3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은 공공기관 노동이사제와 공공기관의 윤리경영 및 경영투명성, 공공기관 임금(보수)체계와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개선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노총 소속의 산별노조들이 주로 문제제기한 것은 공공기관 임금(보수)체계와 후속 논의에 대한 조항이었다. ‘합의문’은 노-정이 ①객관적 직무가치가 임금에 반영되는 임금(보수)체계 개편을 위해 노력하며, ②직무중심 임금(보수)체계 개편은 획일적·일방적 방식이 아닌 기관별 특성을 반영하여 개별 공공기관 노사합의를 통해 자율적·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①항은 현행 임금체계에도 어느 정도 포함된 직무가치 반영이라는 점에서 노조가 수용하고, ②항은 기본급의 구성원칙을 바꾸는 “직무중심” 개편은 기관별 노사합의 없이는 추진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공공운수노조는 이 합의에 대해, 임금체계 개편의 방향으로서 양극화·격차해소 등 가치가 담기지 않고, 결과적으로 기획재정부가 주도하는 임금체계 개편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만 남았다고 비판한다. 임금체계의 개편은 오랜 기간 관련 주체들의 긴밀한 협의가 필요한 사항인데도, 후속협의도 경사노위 공공기관위원회 중심이어서 민주노총 소속 조직들이 참여하기 어려운 점도 지적했다.
관료적 일방주의로 일관한 정부
결과적으로 공공기관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노정협의는 매우 불완전한 합의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의 남은 임기나, 정부와 양대노총 소속 공공기관 노조들의 이해관계가 제각각인 상황에서 임금체계의 실질적인 개편이 진행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지속가능한 공공기관 임금제도’라는 경사노위 합의문의 소제목은 현행 임금제도가 지속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을 담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애초 쟁점이 된 이유라고 할 수 있는, 현행 임금체계의 문제점은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된 과정에는 정부 측과 노동조합 측 각각의 상황을 비판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2017년부터 “직무와 성과를 반영한 보수체계” 도입을 추진해왔다. 이를 위해 연구용역(2018~19년)을 진행하고, 2020년 들어서는 직접 개별 기관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애초 추진 방향에 “성과”를 포함한 것은 물론 연구용역의 결과 발표에서도 “성과”요소의 반영을 많은 부분 포함해서 제시했다. 2016년 당시 성과연봉제에 반대하는 격렬한 파업투쟁을 전개한 공공기관 노조들이 당연히 수용할 수 없는 방향이었다. (이 때문에 나중에 기획재정부는 “성과”라는 표현은 배제했지만, 노조들은 의혹을 거두지 않고 있다.)
더구나 이러한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하기 위해 정부는 개별 사용자를 직접 불러 압력을 행사하거나 경영평가를 통해 압박하는 행태를 계속해왔다. 임금체계 개편 자체는 노사 간 합의가 반드시 필요한 민감한 쟁점이다. 또한 실제 개편을 진행한다고 해도 십수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지속적인 협의와 상호 신뢰가 전제되어야하지만, 정부는 처음부터 이러한 조건을 전혀 무시했던 것이다. 민주노총 소속 조직들은 아예 경사노위 공공기관위 협의에서 배제되어 있던 점도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민주노총 소속 산별까지 참여하는 별도의 협의 테이블이 잠시 개최되기도 했지만, 역시 기재부의 일방적 중단 통보로 실질적인 협의도 거의 진행되지 못했다.
기재부는 시종일관 “경사노위는 법적 기구라 ‘마지못해’ 참여한다”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공공기관을 관리하는 부처로서 자신들은 개별 공공기관 사용자들에게 지침을 시행할 뿐, 노조와 합의 여부는 개별 사용자들의 책임이라는 입장이다. 공공기관 운영에 실질적 권한을 가지면서도 노사관계 책임은 회피하는 입장이다. 또한 지속적으로 노조와 협의하는 구조를 형성하는 것에 큰 거부감을 갖고 있으며, 일회적인 지침으로 정책을 실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합의여부와 내용을 모두 점검하고 압박하는 행동을 하는 처지에 이러한 태도는 책임회피에 불과할 것이다. 노사관계의 쟁점이 그런 식으로 실제 작동할 수 없다는 교훈을 2016년 성과연봉제 도입 파탄 이후에도 배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하여튼 이런 점 때문에 기재부 역시 경사노위 등 주변의 압박을 의식해 ‘마지못해’ 합의한 상황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합의문은, 공공운수노조의 비판처럼 “임금체계 개편의 원칙과 방향을 상실”한 것으로 이어졌다. 직무가치 반영, 혹은 직무중심 임금체계라는 제도는 남았지만, 무엇을 위해 어떤 방향으로 임금체계가 개편되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공공기관 노조의 방어적 입장에 비추어볼 때, 사회적 대의를 확보하지도 못한 임금체계 개편 추진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노조의 불신이 이미 팽배하고, 일부(한국노총)만 참여한 상황에서, 다른 합의 주체인 기재부의 이런 입장은 이번 합의가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며 “사회적 합의”에 미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합의문에도 불구하고 기재부가 개별 공공기관 노사를 압박하기 위해 추진한 경영평가 지표의 개정은 원상 복구되고 있지 않다.
노동조합의 입장도 모호
노동조합 쪽도 애초부터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의 노동조합들이 어느 정도 강조점은 다르겠지만, ‘마지못해’ 임금체계 개편의 협의에 응한다는 측면이 강했다. 실용적으로는, 협의에도 응하지 않을 경우 기재부의 일방주의가 강해지는 것은 물론 내용적 방어가 어려울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민주노총 소속 산별노조들은 다소 다른 접근을 보였다. 현재 임금체계(제도) 개편의 필요성이 없지 않다는 점에서, 협의에 응하면서 정부와 다른 방향을 관철해야한다는 입장이었다. 현재 임금체계(제도)의 핵심적인 문제로 △기관 간, 기관 내(고용형태별) 높은 임금격차, △기재부의 일방적 결정이라고 진단하고, 이를 위해 임금격차 축소와 안정적인 노정협의틀 구성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임금에 직무 가치 반영 등은 이 과정에서 검토가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노정협의 방식으로는 이미 구성되어있는 ‘공무원보수위원회’와 유사한 가칭 ‘공공기관보수위원회’ 구성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러한 산별노조 집행부의 입장은 각급 회의 토론을 통해 결정된 것이기는 하지만, 산하조직까지 진지하게 수용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최종 합의문에 대한 입장을 토론하는 과정에서, 애초부터 임금에 일체의 직무 가치 반영을 거부했어야한다는 입장도 강력히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임금체계도 항상 직무, 연공, 직능, 성과 등이 일부 씩은 반영되기 마련이다. 다만 어떤 요소가 기본급 결정의 핵심적인 기준인가가 임금체계의 성격을 분류하는 기준이 된다. 그러나 논쟁이 과열되면서 직무 요소를 임금에 반영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민주노총 안에서 직무급제 혹은 임금에 직무요소의 반영은 항상 논쟁적인 쟁점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일체의 직무급제를 반대해야한다는 주장이 더 힘을 얻는 분위기다. 2018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시 ‘표준임금체계’에 대해 민주노총과 관련 산별노조들은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2019년 보건의료노조가 정규직 전환 직종에 적용하기로 한 표준임금체계는 공공운수노조와 민주일반연맹 등이 강력히 반발하였다. 핵심적인 반대의 이유로는, 임금수준(가장 낮은 단계의 초봉이 최저임금에 맞추어졌다는 점), 연공요소의 배제(2~3년 씩 승급이 있기는 하나 제한적), 관련 주체들을 포함한 협의가 없었다는 점 등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후에는 민주일반연맹과 같이 일체의 직무급제 자체에 대한 반대입장을 표명하는 경우도 늘어난다.
애초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산별노조 건설 운동이 전개되던 과정에서, 산별노조의 임금교섭 방향으로 직무급제에 대한 논의가 진행된다. 그러나 산별노조 건설 이후에도 산별교섭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다. 더구나 초기업적 임금체계를 다루기는 더욱 어려운 상황이라는 인식이 강화된 2000년대 후반에는 산별 임금체계에 대한 논의가 후퇴한다. 그러다가 최근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인구구조의 변화, 장기 저성장 등 기존의 임금제도가 유지되던 조건의 변화가 가시화되면서 다시 수면 위에 떠오른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성과급이 아니라 직무급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을 제시하면서 공공부문에서부터 쟁점이 된다.
공공부문 노조들이 직무급제에 반대하더라도 그 이유는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다르다. 정규직 노조들은 기존의 안정적인 연공급을 유지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직무급이나 직무가치 반영을 꺼린다. 고용이 안정된 상태에서 어차피 근속에 따라 임금이 상승할 경우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임금인상률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연공급 상승을 더욱 선호하게 된다. 특히 철도·지하철이나 병원 등 (사무직종 중심이 아닌) 여러 현업 직종으로 구성된 기관의 노동조합들은, 직무가치 반영 과정에서 직종별 직무가치 평가 결과, 임금체계가 분할될 것을 우려한다. 이렇게 되면 직종노조가 출현하는 등 기존의 기업단위의 단결조차 해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한편,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른 전환자(무기계약직, 공무직)는 직무급이 자신들에 대한 별도의 임금체계를 설정하자는 것이므로, 기존 정규직과의 차별 해소를 가로막을 것으로 생각한다. 전환자들이 개별 기관의 기존 정규직의 높은 임금 수준 혹은 복리후생을 최대한 따라잡는 것을 목표로 하는 상황에서 ‘표준임금체계’를 개선하는 집단교섭 혹은 노정교섭보다는 기업별 교섭·투쟁을 선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래 살펴보겠지만, 공공기관 정규직의 임금수준과 이를 보장하는 임금체계는 일반화되는 것은 물론 유지되기도 어렵다. 설사 따라잡는다고 하더라도 민간부문의 유사한 일을 하는 노동자와 임금격차를 크게 늘리게 되어 논란이 될 것이다. 이미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쟁점이 형성된 마당에, 갈등이 더욱 격화될 수 있다.
공공부문 임금체계 개편의 필요성
공공부문 임금체계는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 적절할까. 적절성 이전에 가능한지가 우선 문제가 된다. 여기에는 임금체계만이 아니라 임금수준, 임금결정 방식 등 문제까지 결합되어 있다.
기존의 연공급 임금체계는 고성장, 인구증가 시기에 형성된 제도이다. 한국은 이러한 조건을 거치면서 높은 연공성을 갖는 임금체계가 형성되었고, 1980년대 후반 이후 관리직만이 아니라 대기업과 공공부문에서는 반숙련 생산직과, 하위직급 노동자들까지 확대되었다. 성장이 지속되므로 자동적 임금인상이 가능하며, 경제규모와 함께 인구가 증가하기 때문에 조직이 커지고 지속적 승진이 가능해진다. 문제는 이러한 조건이 모두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평균 7.0%대의 성장율은 2010년대 들어 3.0%대로 하락했고, 2020년대에는 1~2%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인구는 2017년부터 이미 감소하기 시작했다.
경제와 인구의 장기 성장기에는 매년 자동적으로 임금이 인상되는 호봉제가 ‘이연임금체계’로서 작동이 가능하다. 그러나 장기 저성장과 인구감소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는 자동인상도 어렵고 임금인상 부담을 미래(혹은 미래 세대)로 이연하기 불가능해진다. 생산가능 인구 감소 시에는 조직구조 역시 피라미드형에서 역피라미드형으로 변화하므로 연공에 따른 임금인상은 기업 내에서만 보아도 세대 간 문제가 된다. 신입직원 혹은 청년 층의 임금에 대한 압박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공공기관의 임금수준도 쟁점이 된다. 한국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월 290만원 수준, 중위임금은 2010만원대에 머물러 있다. 이에 비해 공공기관은 평균적으로 월 570만이 넘고, 공기업은 650만원이 넘는다. 시장형 공기업의 임금수준은 10대그룹 계열사 평균 연봉과 유사한 수준이다. 재벌·공공부문 노동자와 그 외 부문(민간·중소·영세·비정규직 및 영세자영업자)의 임금격차가 IMF 구제금융 이후 20년 간 크게 확대되어 온 결과이다.
문제는 민간기업은 시장의 수익성을 기준으로 고임금을 지급할 여지가 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수익을 지향하지 않는 공공부문은 그러한 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결국 민간부문과 유사한 일(노동강도와 숙련수준을 포함한 직무 성격)의 가치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격차는 꾸준히 커지고 있고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그러한 추세가 가속화된다. 포퓰리즘 정책을 이어가다 경제가 붕괴한 일부 국가들처럼, 선거에서 지지를 매개로 그 보상을 요구하는 일종의 ‘후견주의’로 나아갈지도 우려된다. 공공부문의 인건비 인상율은 통상 전년도 명목경제성장률보다 다소 낮은 수준에서 결정되어 왔다(그렇게 해도 절대 인상액은 높은 수준이다). 그런데 2020년부터는 이러한 추세가 역전되어 내년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코로나19 경제위기 과정에서 이러한 격차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발표된 '가계동향조사 결과'(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3분기에 5분위(상위 20%) 계층의 소득이 3% 가까이 늘어난 데 비해 1분위(하위 20%)는 1%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1분위도 근로소득은 -0.6%로 감소했다. 한편 공공기관은 올해 2.8%에 이어 내년 0.9%의 총인건비 인상이 예정되어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공공요금이나 조세를 기반으로 지출되는 공공부문의 인건비 상승은 사회적 반발을 불러와 유지되기 어려울 수 있다. 정부의 재정여력에 한계가 있고,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실업자 등 취약층에 대한 지원에 재원이 집중되어야할 시기에 기존 노동자에 대한 지속적 임금인상은 공공부문의 신규 일자리 창출 능력을 억제한다는 문제도 있다. 실업 노동자와 구직자(노동시장에 이제 진입하는 청년이 대표적이다)를 위해서는 공공부문에서라도 일자리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공공기관 노조는 정규직과 전환자(무기계약직, 공무직) 모두 이러한 객관적 추세를 부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조직된 노동조합의 힘으로 기득권을 유지하거나 추격할 수 있고, 심지어 정치적 압력을 통해 기득권을 강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이 지속 가능할지, 또 전체 노동자 계급의 단결에 도움이 될지 긍정적으로 답하기는 어렵다.
한국의 심각한 임금격차는 기업별 임금결정 구조에서 더욱 심화되었다. 기업규모, 공공-민간 격차가 기업별 임금결정, 노사관계를 통해 확대된다. 따라서 임금체계 개편은 초기업적 기준을 형성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격차를 줄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초기업적(산별) 임금교섭이 필요하다. 직무급 도입 혹은 직무요소를 임금에 반영한다고 해도 이는 초기업적으로 추진될 때에야 의미가 있다. 공공운수노조의 요구와 같이, 공공기관에서는 이는 노조와 정부가 협의하고, 사용자 단체를 구성하여 유사 업종의 기관이 공동교섭을 진행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합의문에서는 “직무중심 임금(보수)체계 개편은 획일적·일방적 방식이 아닌 기관별 특성을 반영하여 개별 공공기관 노사합의를 통해 자율적·단계적으로 추진”이라고 하여, 임금체계는 기업별 교섭에 의해 기업별 수준에서만 직무를 반영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런 방식을 통해서는 임금격차의 핵심요인인 기업별 격차를 해결할 수 없다. “원칙과 방향을 상실한” 합의의 가장 중요한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임금체계 개편은 가능한가
최근의 경사노위 공공기관위 합의는 한쪽 당사자인 정부 측의 일방주의와 노동조합 측의 방어적 태도로 인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내용적으로도, 과정상으로도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애초 논의를 제기했던 정부 측도 임금체계 개편의 거시적인 방향이 없이 추진 실적을 중시하는 관료기구를 통한 집행에만 몰두하면서 처음부터 논의가 제대로 진행될 수 없는 조건에서 출발했다. 관료기구는 원래의 속성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권 차원의 ‘무능’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들이 주도하는 공공부문에서조차 사회적 대화와 합의를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 측도 임금체계에 대한 적절한 입장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스럽다. 방어적 태도로, 현재 임금체계를 최대한 유지하기 위한 명분 혹은 전술로서 사회적 협의에 나선 측면이 크다. 한국 경제구조, 노동시장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임금격차와 양극화의 심화에 있다는 점은 널리 알려져있다. 노동조합 운동도 이러한 진단을 수용하며, 일반적으로 격차 축소를 지향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쟁점에서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정책적 요구를 제시하고, 또 관철하기 위한 교섭과 투쟁을 노조가 실제로 전개하는가는 별개의 문제로 보인다.
공공기관 노조들은 국민경제 상황과 전체 노동시장의 모순,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과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낮다. 해법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떠나 이러한 한국 사회의 조건에 가장 관심이 있어야 할 공공부문에서 이러한 무관심은 심각한 문제다. 기업별노조가 주도하는 한국의 노조운동 상황상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산별노조들도 제대로 논의를 주도하지 못했다는 점도 문제다.
경사노위 공공기관위 합의 이후 실제 적용 과정에서는 많은 쟁점이 남아 있다. 합의문 자체가 사회적 합의에 미달하기 때문에, 갈등을 관리하기 쉽지 않고, 실질적인 임금체계 변경으로 이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공공기관에서 임금체계의 현상유지(정규직)와 따라잡기(전환자)가 적절한 대안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정부와 자본이 선호하는 방식이 관철되지 않도록 하려면, 한국 경제와 인구, 노동시장 변화에 적합한 임금체계의 대안을 제시할 능력을 노동조합이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