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77인 선언」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투쟁 전선을 교란하는 기회주의다.
1. 지난 8월 31일 이른바 시민사회단체 지도급 인사 77명이 기자회견을 개최하여 “평택 대추리 도두리 빈집 철거계획 중단과 정부-주민 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각계인사 77인 선언”(이하 77인 선언)을 발표하였다. 그들은 이 선언에서 “정부와 평택범대위/주민은 각각 한발씩 양보해야 한다”는 요지의 입장을 발표하였다. 정부는 강제철거 계획을 중단하고 김지태 위원장을 석방해야 한다는 입장과 함께 285만평의 미군기지 확장 예정부지 규모를 축소하여 현지에서 기본적인 농지와 택지 등 주민들의 생활터전을 보장하는 문제를 별도의 의제로 정부와 협의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 「77인 선언」은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운동의 역사적 의미는 물론, 운동의 본래 취지마저 근저에서부터 흔들고 있다. 「77인 선언」은 강제철거에 즈음한 긴장고조를 정부와 주민․범국민 대책위 사이의 상호 강경한 입장에서 비롯하는 것인 양 사태의 본말을 호도한다. 상호 강경한 입장으로 대화와 타협이 불가능해지고 급기야 극단적인 폭력충돌로 이어지기 때문에 한발씩 양보하라는 논지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고는 결론으로 양측이 대화의 자리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2. 오늘 평택 대추리, 도두리에서의 긴장은 전략적 유연성 강화로 인한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 이런 미제국주의의 새로운 군사세계화 전략에 적극 조응하려는 노무현 정권의 반민중성에서 비롯한 것이다. 지난 5월 4일 평택에서의 일련의 사태는 협의매수에 응하지 않은 주민들과 동아시아에서의 군사적 긴장을 낮추려는 사람들을 노무현 정권이 강제로 쫓아내려고 공권력을 투입한 결과다. 공권력의 무자비한 성격이 드러나면서 거기에 노출된 사람이 무수히 다치고 연행되고 구속되었던 것이다. 현재 평택 대추리, 도두리에 또다시 공권력의 투입이 임박했다는 징조(무법천지를 방불케 하는 불심검문, 강제철거 일정 고지 등등)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고, 또 누구나 이를 예상하고 있다.
3. 「77인 선언」은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운동이 한반도 평화를 향한 소중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정부와 주민대책위, 평택범대위 양측의 완고한 입장만을 문제 삼더니 급기야는 범대위가 목표를 현실적으로 조정할 것까지 요구한다. 주민공동체 유지를 현실적 목표로 두라는 것이다.
주민공동체를 파괴하는 실질적이고 현재적인 위협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더구나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주민들의 평화적 생존권과 분리하여 그저 주민공동체 유지만을 현실적인 목표로 하라는 것은 평택미군기지확장을 기정사실화하고는 평택미군기지 확장반대운동을 그만두라고 종용하는 것이다. 평택미군기지의 확장이 아니라 그것의 규모만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운동도 한반도 나아가 동아시아 전체 민중의 평화적 생존권을 둘러싼 보편적인 투쟁이 아니라 평택주민들만의 문제에 불과했던 것으로 치부되어 버리고 만다. 이는 정부와 국방부가 그토록 염원해왔던 상황에 힘을 실어주는 꼴이다. 평택미군기지 확장의 근본적인 문제들은 다 덮어둔 채 ‘주민공동체’ 유지만을 협상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4. 그동안 평택범대위가 ‘땅 한 평 내 줄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은 주민공동체의 파괴가 바로 평택미군기지 확장자체에 있음을 드러내고, 동시에 한반도 주민의 평화적 생존권이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주한미군의 성격변화에 따라 위협받고 있음을 폭로하기 위해 내걸은 것이지, 땅의 규모와 보상을 둘러싼 협상을 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77인’의 이른바 시민사회단체 명망가들은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운동을 전체 민중의 평화적 생존권이 아니라 평택 대추리, 도두리 마을 주민의 투쟁으로만 보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이것이 자신의 투쟁 혹은 마땅히 지지받아야 할 투쟁이 아니라 중재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77인’은 지난 5월 4일 공권력의 잔혹한 폭력을 자신에게 행사된 폭력이 아니라 대추리, 도두리 마을 주민들과 평화행진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행사된 폭력으로만 보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군․경찰폭력의 즉각 중단’이 아니라 ‘사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주장을 펴면서 중재자임을 자임한다.
이에 따른 결과는 자명하다. 평택미군기지반대운동이 전략적 유연성 반대 운동과 주민 생존권 투쟁으로 분리된 채로 전개되는 것, 바로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와 ‘노무현 정권의 반민중성’으로부터 비롯한 민중의 저항이 적절한 범위에서 ‘관리’되는 것이다.
5. 현재 고조되고 있는 긴장을 낮출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경찰․군병력 완전 철수’, ‘강제철거계획 즉각 철회’, ‘평화농사 즉각 보장’, ‘평택미군기지 확장이전협상 전면 무효화’ 뿐이다. 그것은 바로 사태가 평택미군기지확장에 따른 주민 생존권 위협, 군․경의 무자비한 폭력성에 비롯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금융-군사세계화에 따른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 수립(전략적 유연성)과 여기에 조응하려는 지배세력들의 반민중성이 바로 사태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77인 선언」은 일말의 재고 가치도 없는 기회주의자들의 성명이다. 평화를 애호하는 각급의 민중들은 추호의 흔들림도 없이 평화를 향한 첫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오늘 우리의 평화를 위협하는 흐름이 무엇인지, 평화로운 사회가 무엇인지, 어떤 조건위에서 무엇이 바뀌어야 평화가 가능한지를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운동은 매우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이것의 성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시험대 중 하나가 바로 9․24 평화대행진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집중해야 할 것은 9․24 평화대행진의 대중적 성사와 함께 무엇이 우리의 평화를 가로막는지를 정확히 지목하는 것이다.
2006년 9월 4일
사회진보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