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점령 4년 규탄 국제 시위 호소문 - 2007. 1. 24 케냐 나이로비 세계사회포럼 반전총회에서 채택 전쟁을 중단하고 모든 군대를 철수시켜라 ! - 이라크 석유 장악 반대! - 이라크내 모든 미군기지 폐쇄! - 이라크인 희생자와 구금자들에게 보상과 정의를! 중동지역 전쟁을 중단하라 ! -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중단하라! - 이스라엘 점령에 맞서 보이콧, 제재, 박탈을 강화하라! - 이란에 대한 위협을 중단하라! -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하라! - 소말리아 폭격을 중단하라! - 아프리카의 군벌과 미국의 대리자들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중단하라! - 다르푸르 위기에 대한 평화적 해결방안을 지지하라! 군사개입을 반대한다! - 반테러를 명분으로 한 시민적 자유와 인권 위반을 중단하라! 행동 계획 2월 24일 : 트라이던트 미사일 반대, 이라크에서 철군 시위 (영국, 런던) (연락 : campaigns@cnduk.org; office@stopwar.org.uk) 3월 5-9일 : 외국군 군사기지 철폐를 위한 국제회의 (에콰도르, 키토/만타) (연락 : nobases@yahoo.com) 3월 17-20 : 이라크 점령 반대 국제 공동 행동 주간 3월 29-4월 1일 : 5차 카이로 회의 (이집트, 카이로) (연락 : office@stopwar.org.uk/02072786694) 5월 15일 : 팔레스타인 ‘나크바’(Nakba) 국제 시위 6월 2일 : G8 정상회담 시위 (독일, 로스톡) - G8 정상회담 반대시위에 반전운동이 중심이 되기를 호소 6월 7-9일 :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 점령 40년 규탄 국제 공동행동 주간 11월 29일 : 팔레스타인 국제 연대행동 호소 2008년 5월 : 전쟁 반대를 위한 평화헌법 9조 수호 국제회의 (일본, 도쿄) (연락 : article-9@peaceboat.gr.jp) GLOBAL CALL TO PROTEST THE 4TH ANNIVERSARY OF THE U.S. INVASION & OCCUPATION OF IRAQ Adopted in the Anti War Assembly, World Social Forum, January 24, Nairobi Kenya STOP THE WAR AND BRING ALL THE TROOPS HOME! No Control of Iraq Oil! Close all the U.S. bases in Iraq! Compensation and Justice for Iraqi victims and detainees! STOP THE REGIONAL WARS! End the Israeli Occupation of Palestine! Strengthen boycotts, sanctions, and divestments against Israeli occupation! Stop the threats to Iran! Troops out of Afghanistan! Stop bombing Somalia! Stop US support for warlords and other US backed surrogates in Africa! Support for peaceful resolution to Darfur crisis! No military intervention! Stop violations of civil liberties and human rights in the name of anti-terrorism! CALENDAR OF ACTIONS: February 24: NO TRIDENT, Troops out of Iraq Demo, London, UK (Contact: campaigns@cnduk.org; office@stopwar.org.uk) 5-9 March 2007 : International Confence for the Abolition of Foreign Military Bases, Quito/Manta, Ecuador, (Contact: nobases@yahoo.com) 17-20: Global Days of Action against Occupation of Iraq 29 March - 1 April 2007: Fifth Cairo Conference,?Cairo, Egypt (Contact: office@stopwar.org.uk/02072786694) 2 June 2007: G8 Protests, Rostock, Germany, call for all anti-war coalitions to put anti-war effort in the centre of the protest against the G8 15 May 2007: Global Protests marking the Palestine Nakba 7-9 June: Global Days of Action to protest 40th anniversary of the Israeli occupation of Palestine Territories 29 November 2007: Call for Solidarity Activities with Palestine (global) May 2008:
지난 1월 18일~20일까지 제 5회 인권활동가 대회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평화권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을 통일해보자는 취지로 기획된 워크샵이었고, 이자리에서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과 관련한 평화의 권리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투쟁과 평화의 권리가 발제되었습니다. 평화와 폭력의 문제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평택투쟁이 시사했던 폭력/비폭력 논쟁의 기만성과 무능함을 제기하며 평화를 '전유하고자' 하는 민중의 권리와 그 수단에 있어서 민중 스스로의 통제방식에 대해 말하고자 했습니다. 기대했던 것과 달리 이러한 논점은 거의 논의되지 못하였으나, 향후, 인권운동 진영과 지속적으로 토론해가야 할 과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투쟁과 평화에 대한 권리 이소형 | 사회진보연대 활동가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 투쟁의 의미 평택미군기지 확장이전 사업은 해외주둔 미군재배치의 일환으로써, 주한미군의 동아시아 신속 기동군 으로의 전환을 추진하는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전략 중 하나이다. 2004년 겨울, 용산 미군기지 이전 협정 개정안(LPP)가 국회를 통과하여, 강제적인 행정집행만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다.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생존권(농사, 거주권의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를 중심으로 미국의 군사패권과 전쟁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반전평화운동이 결합되었다.(평화적 생존권) 주한미군의 신속 기동군 으로의 재배치의 문제, 전략적 유연성의 문제는 구체적으로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생존권에 대한 위협으로 드러났고 이는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에 대한 대중적인 요구로 확장될 수 있었다. 주민들이 농지와 대추 초등학교를 점유한 상태에서 행정대집행에 대한 법적인 근거를 인정하지 않으며 주한미군의 재편에 대한 대중적 거부를 표명하는 것으로 투쟁에 있어 얼마간 유리한 입지에서 전개될 수 있었다. 그러나 3, 4월 이후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강제집행이 강행되었고 5월 4일 이후, 대추 초등학교와 농지를 빼앗기게 되었다. 국민을 상대로 군사작전을 자행하며 전쟁기지 건설을 강행하려는 미국과 한국의 지배세력과 이를 반대하며 농민의 평화적 생존권을 제기하는 반전평화운동 간의 대립은 보다 극명해졌다. 평택미군기지 사업은 단순히 한국정부의 졸속적인 군사안보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전략과 이에 따른 한-미군사동맹의 현대화의 핵심 내용으로서 미국과 지배세력의 사활적인 과제로서 가차없이 추진되었다. 따라서 주민과 국민의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행정대집행은 무리하게 강행될 수 밖에 없었으며, 국가의 물리적 힘으로 이를 반대하는 평화운동을 진압해야 했다. 이러한 가시적인 국가의 폭력은 결국 미국의 새로운 군사재편전략에 대한 한국 민중들의 ‘거부’라는 역사적인 투쟁의 기록을 만들어 냈으며, 이 투쟁을 통해 전쟁을 책동하는 한-미 동맹의 본질이 만천하에 폭로될 수 있었다.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전쟁을 예비하는 미국의 전략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투쟁과 이에 연대하는 운동은 ‘평화’라는 보편적인 상징을 획득할 수 있었고, 평화운동의 지평을 완전히 새롭게 확장 하였다. 국민의 동의없이 추진되는 한-미동맹의 전략들과 주민들의 평화적 권리들을 구체적으로 훼손하는 문제는 평화운동을 통한 민주주의의 확장, 평화를 향한 새로운 사회운동을 열어갈 수 있었다. 평화를 향한 대중들의 운동들 * 팽성 주민들의 투쟁 대추리 150가구, 도두리 40가구가 주축이 되어 2003년 팽성 지역 차원에서 넓은 범위로 주민대책위가 결성되었다. 900일에 가까운 주민 촛불집회가 진행되고 있으며, 전국 트렉터 순례, 농성, 항의방문, 집회 등 평택범대위의 투쟁의 최전선에서 주민들은 언제나 굳건히 자리를 지켜왔다. 한국사회에서 벌어진 미군기지반대운동 중 가장 많은 주민들이 그 어떤 투쟁보다 더욱 강력한 단결로 결속됨. * 평택지킴이 활동 평택투쟁의 새로운 주체로서 주민들과 함께 현지에서 생활하며 주민들의 투쟁의 독려하고 조직하는 역할. 대부분 기존의 운동단체 활동가들이 아닌 평화주의를 실천하고자 하는 개인들로 구성됨. 2005년 2월 평화바람의 거주를 시작으로 30여명의 상주인원이 주거공간을 만들어가고 있음. 새로운 방식의 평화운동의 방식. * 불복종 운동 정부의 ‘불법/합법’의 규정을 인정하지 않는 일상적인 실천으로 농시 짓기. 평화촌 건설 평화캠프, 등 현지에서 ‘불법적 행위’로 규정된 다양한 실천들을 조직함. * 대중 집회 4차례의 평화대행진과 매달 범국민대회를 통해 평택투쟁을 전국적인 집중을 꾀함.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는 대중적인 위력을 드러내고자 함. 노동자, 농민, 학생 등의 기존의 민중운동 주요 대중조직들의 집중적인 참여와 이를 넘어서는 다양한 각계각층 시민들이 조직됨. 평화운동이 넘어서지 못했던 경계선. : 2006년 초, '올해에도 농사짓자‘라는 구호는 이 싸움의 보편적인 의미를 대중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농민들의 땅에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상식적인 요구를 제기함으로써 행정대집행을 저지하고 주민의 생존권과 전쟁기지 건설의 대립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며 이 투쟁의 보편적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3,4월 농토의 용수로 파괴가 강행하고, 마침내 5월 4일 투쟁의 상징적 거점인 대추 초등학교를 붕괴시키며, 농지에 철조망을 세우고 군부대를 주둔시킨다. : 5월 5일 즉각적으로 개최된 범국민대회에서 대중들은 자발적인 결의와 합의를 거쳐 철조망을 넘어서 거리낌 없이 농토로 진입하는 투쟁을 벌여나갔다. 이는 평택 범대위 지도부의 통제와 지침을 넘어서는 것이었으며, 대중들 스스로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국가가 그어놓은 저지선을 돌파한 것이다. : 정부는 이에 즉각적으로 ‘대추리 사태’를 불법, 폭력시위로 매도하며 불법/합법의 경계선으로서 철조망과 군사보호시설을 규정하였다. 5월 4일에만 524명 연행, 37명 구속영장 청구되었고 5월 5일 100명이 연행, 23명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이때부터 정부는 체계적인 탄압을 통해 투쟁을 진압하려 하였다. 첫째, 주민들의 생존권을 경제적 보상에 대한 요구로 축소시켰고, 범대위 등 반전평화운동을 철저한 ‘외부세력’으로 규정하여 불법폭력 집단으로 매도하였다. 두 번째로 농토와 마을 전체를 ‘군사보호구역’으로 규정하여 농사와 관련한 모든 행위, 마을 진입 자체를 불법 행위로 규정하였다. 마지막으로 이 사안과 관련한 모든 대중 집회를 불법집회로 정의내리고 불허를 통보하였으며, 집회 참가 및 일체의 시위를 불법행위로 천명하면서 공안정국을 조성하여 대중들의 결집을 집요하게 가로막았다. : 한편 운동진영은 5월 5일 이후, 정부의 광폭하고 체계적인 탄압에 맞서 투쟁을 완강하게 이어가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대추 초등학교와 농토를 빼앗기면서 그 이전의 다소 유리했던 투쟁의 조건과는 객관적으로 사라졌다. 무엇보다 우리는 5월 4일 군사 작전까지 동원되는 엄청난 규모의 국가폭력을 구체적으로 예상하고 준비하지 못했고, 단 하루 만에 뒤바뀌어 버린 투쟁의 조건에 대한 적합한 대응은 빠르게 계획되지 못하였다. 정부의 체계적인 탄압이 거침없이 진행되는 동안 운동진영은 ‘불법과 폭력 / 합법과 평화적 해결’ 이라는 이분법에 갇히게 되었으며 정부가 그어놓은 합법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것에 대한 공포가 조성되었다. 5월 14일 범국민대회는 전국에서 모인 8천여 명의 광범위한 대중들의 공분이 모아져 조직되었지만, 대추리에 진입하지 못한 채 철조망의 경계선 안에 머물 수 밖에 없었다. 이어 6월 18일 범국민대회는 각고의 노력과 투쟁으로 농토로 진입하고 철조망 앞까지 진입할 수 있었고, 5월 5일에 이어 한걸음을 전진할 수 있는 싸움이었다. 그러나 대중 집회의 위력적인 힘은 그 이후 완강하게 이어지지 못하였고 주민들의 고립감은 더욱 심해졌으며, 운동진영의 패배감과 무기력은 가중되었다. 800여명이 연행되고 구속, 수배되는 사상최대의 공안탄압의 과정에서 대중들의 분노는 질식되었고, 불법/합법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다양한 평화적 실천들이 기획되고 시도되었으나 소수의 선도적인 이슈파이팅의 제한적인 파장 이상으로 확장되지 못하게 되었다. (대중조직들의 위축, 운동진영의 수세적인 전술 판단) : 이러한 투쟁의 구도 속에서 평택 투쟁에 대한 ‘평화적이고 합리적인 해결’을 촉구하는 일련의 흐름들이 존재하였다. 5월 5일의 철조망 진입투쟁이후, 즉각적으로 조성된 공안정국 속에서 5월 8일 범대위와 시민사회단체들은 “평택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비상시국회의”를 진행하였다. 5월 5일 농토에서 진행된 대중들의 저항의 형태와 방식에 대한 인식과 평가는 운동진영 내에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형성하였고, 일부 시민운동 단체들과 각계인사들은 사태의 ‘평화적이고 합리적인 해결’을 촉구하는 흐름을 만들기도 하였다. 이들은 5월 4일, 5일의 상황을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한 양대 진영이 불필요하고 비정상적으로 충돌한 문제”, 따라서 “평화적이고 합리적으로 수습되어야 하는 문제”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정부의 ‘불법 폭력 Vs 평화적 해결’ 이라는 구도를 사후적으로 승인해주는 효과 이상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상황의 본질적 성격은 미국과 지배세력의 사활적인 군사안보전략이 가차 없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짓밟혀버린 주민들의 평화적 생존권이 정면으로 충돌하여 평화운동의 새로운 공간이 창출되어 “민중의 평화 Vs 전쟁기지”의 구도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었다. 그러나 “합법=평화”라는 주장은 이 운동의 정치적 의미를 탈각시키고 정부가 의도적으로 규정한 불법/합법의 경계 속에 평화운동의 보편적 가치를 가두는 ‘反평화적’ 입장에 불과하다. :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투쟁은 정부의 체계적인 ‘불법 폭력 세력’의 규정으로부터 해방되어 평화운동의 보편적 상징을 획득하며 발전해 왔는가? 가장 치열한 운동이 전개되었던 2006년 한 해 동안 평화운동 진영에서는 투쟁 형태와 방식에 있어서 폭력/비폭력, 합법/비합법 논쟁이 진행되었다. 지배세력의 물리적 힘이 구체적으로 투영되어 평화를 향한 대중들의 운동이 폭력과 불법으로 규정되고, 결국 평화운동이 ‘평화’를 훼손하는 갈등으로 취급되어버린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투쟁이 넘어서지 못한 경계선, 즉 이 진정한 폭력은 농토에 처진 철조망에 대한 대중적인 공포와 무기력감이었을 것이다. 물론 어떠한 위력적인 싸움이 전개된다 해도 전쟁기지를 세우려는 지배세력의 물리적 힘을 쉽게 꺽을 수 없을 것이겠지만, 운동진영 스스로 지금의 상황에서 무엇이 ‘폭력’이고, 무엇이 ‘평화’인지에 대한 입장을 견지해야 하며, 이를 통해 우리의 평화운동은 더 많은 대중적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에 대한 권리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투쟁을 통해 배울 수 있었던 평화에 대한 대중의 권리는 주어진 정세 속에서 무엇이 평화를 훼손하는 폭력인가를 정확하게 규명해내고, 이를 위해 대중들이 스스로 폭력에 대한 적합한 저항의 수단과 형태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즉 평화에 대한 대중의 권리란 다음과 같은 과정을 옹호하는 것이다. 첫째, 국가 권력의 체계적인 이데올로기적, 물리적 폭력으로부터 가해지는 대중들의 공포가 현존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 둘째, 무엇이 폭력이며 反평화인가를 규정해내고, 대중들 공동의 집단적인 토론과 성찰, 결의를 통해 합법/불법의 경계선을 넘어서기 위한 실천을 행하는 것. 셋째, 그럼으로써, 대중에게 가해지는 혹은 대중들 스스로 행하는 ‘폭력’을 대중들 스스로가 통제하고 극복하는 행위 그 자체.
세계사회운동총회 호소문 세계사회포럼 2007-나이로비 아프리카의 투쟁, 세계의 투쟁 아프리카와 세계 전역에서 온 우리 사회운동들은 아프리카의 그 사회운동들, 외국 지배와 식민주의, 신식민주의에 굳건히 맞서온 아프리카의 역사, 인류에 대한 아프리카의 기여, 또 다른 세계를 향한 모험에 있어 아프리카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고 축하하기 위해 2007 세계사회포럼에 함께 모였다. 우리는 지불 능력에 관계없이 모든 민중과사회운동들에 열려 있는 투쟁과 연대의 공간으로서 세계사회포럼의 정신을 축하하고 재확인하기 위해 여기에 있다. 우리는 세계사회포럼 공간의 상업화와 사유화, 군사화를 향한 경향을 비난한다. 나이로비에 온 우리를 환영한 수많은 자매와 형재들이 높은 참가비 때문에 배제된 것이다. 우리는 또한 세계사회포럼 헌장과는 모순되게 여성과 주변부 민중에 반대하고 성적 권리와 다양성에 반대하는 조직의 참가에 깊이 우려한다. 사회운동 총회는 투쟁과 대안, 문화, 재능과 기술을 표현하려는 서로다른 배경과 공동체에서 온 케냐와 다른 아프리카 민중들에게 연단을 마련해주었다. 총회는 또한 서로 상호작용하고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슈와 문제들을 공유하고자 하는 시민사회 단체들과 사회운동들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2001년 첫 총회 이래 우리는 시민사회와 사회운동들의 성공적인 국제 네트워크를 만들고 강화하는데 기여해 왔고 모든 형태의 억압과 지배에 맞서는 우리의 연대정신과 투쟁을 강화해왔다. 우리는 운동의 다양성과 신자유주, 자본주의 세계 헤게모니, 제국주의 전쟁에 맞서는 민중의 주도력이 세계 저항의 표현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효과적인 대안으로 나아가야 한다. 많은 지역적 운동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들은 확장되어야 한다. 사회운동들의 공동 행동 덕분에, 라틴 아메리카와 세계 다른 지역의 운동은 세계 자본주의 지배체제에 구체적인 대안들을 만드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대륙의 사회운동들이 나이로비에 모인 이 때에, 우리는 끈질기고 지속적인 투쟁으로 많은 나라에서 좌파의 선거 승리에 이르게 한 라틴 아메리카의 사회운동들에 연대를 표한다. 행동들 우리는 2007년 6월 2~8일 독일의 로스톡과 하일리겐담에서 열리는 G8 정상회담에 대항하는 광범위한 국제적 시위를 호소한다. 우리는 2008년의 국제 공동행동의 날을 위해 우리의 공동체와 운동을 조직할 것이다. 2007. 1. 24, 나이로비 <원문> World Social Forum 2007 - Nairobi AFRICAN STRUGGLES, GLOBAL STRUGGLES We, social movements from across Africa and across the world, have come together here in Nairobi at the 2007 World Social Forum to highlight and celebrate Africa and her social movements; Africa and her unbroken history of struggle against foreign domination, colonialism and neo-colonialism; Africa and her contributions to humanity; Africa and her role in the quest for another world. We are here to celebrate and reaffirm the spirit of the World Social Forum as a space of struggle and solidarity which is open to all people and social movements regardless of their ability to pay. We denounce tendencies towards commercialisation, privatisation and militarisation of the WSF space. Hundreds of our sisters and brothers who welcomed us to Nairobi have been excluded because of high costs of participation. We are also deeply concerned about the presence of organisations working against the rights of women, marginalised people, and against sexual rights and diversity, in contradiction to the WSF Charter of Principles. The social movements assembly has created a platform for Kenyans and other Africans from different backgrounds and communities to present their struggles, alternatives, cultures, talents and skills. It is also a space for civil society organisations and social movements to interact and share the issues and problems affecting them. Since the first assembly in 2001, we have contributed to building and strengthening successful international networks of civil societies and social movements and reinforced our spirit of solidarity and our struggles against all forms of oppression and domination. We recognise that the diversity of movements and popular initiatives against neo-liberalism, world hegemony of capitalism and imperial wars, is an expression of a world resistance. We have now to move towards a phase of effective alternatives. Many local initiatives are already existing and should be expanded: what is happening in Latin America and other parts of the world -- thanks to the joint action of social movements -- shows the way to establish concrete alternatives to world capitalist domination. As social movements from all five continents gathering in Nairobi, we express our solidarity with the social movements in Latin America whose persistent and continuing struggle has led to electoral victories for the Left in several countries. Actions We are calling for a broad international mobilisation against the G8 in Rostock and Heiligendamm (Germany) 2-8 June 2007. We will mobilise in our communities and movements for an International Day of Action in 2008. Nairobi, 24 January 2007
'Focus on the Global South'에서 2006년 10월에 펴낸 보고서입니다. '레바논에 대한 국제 시민사회와 의회의 평화방문단' 사업 이후 펴낸 것입니다. (영문 PDF파일) [목차] - 레바논 : 침략과 저항 - 나스랄라 : 새로운 아랍세계의 영웅 - 깨지지 않은 영혼이 죽음의 도로를 채운다 - 파괴의 자취를 추적하며 - 전쟁의 연기 속에서 정전의 희망이 피어나다 - 끝까지 폭격하라 - 베이루트, 환희와 전율 - 달콤쌉싸름한 나날 - 왜 레바논 저항세력은 유엔결의안 1701을 받아들였나 - 레바논의 활기찬 여성들
이라크연구그룹 보고서 - 제국은 정말 실패하였는가? 존 벨라미 포스터 2006년 12월 26일 ∴ ∴ ∴ 이 글은 2006년 12월 26일 발표된 존 벨라미 포스터의 글이다. 존 벨라미 포스터는미제국주의의 움직임에 대해서 지속적인 관찰을 하고 있으며, 먼슬리리뷰지(Monthly Review)의 편집자로 이에 관한 글을 계속 기고해왔다. 이 글은 미국 내 초당적 정책제안집단인 이라크연구그룹(Iraq Study Group))이 12월 6일 부시대통령과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대해 평하고 있다. 국내에서 많은 이들이 이라크연구그룹의 보고서가 심각한 상태로 변한 이라크전에 대해 미국이 정책실패를 자인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상황에서, 포스터는 이 글에서 이와는 전혀 상반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즉 포스터는 이 보고서가 사실 상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통제력을 재구축하려는 시도로 파악하고 있으며, 이를 신석유법, 생산-참여 협정(Production-Sharing Agreement) 등 이라크 석유의 전략적 가치와 관련된 예시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이 보고서가 표면적으로 “철군(Withdrawal)"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상의 군사력증강을 꾀하고 있다고 폭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미 제국주의의 이해를 위해서라면 이라크의 해체, 분열도 획책할 수 있다고 예측한다. ∴ ∴ ∴ “제국의 실패”는 내가 나의 책인 “적나라한 제국주의Naked Imperialism(Monthly Review Press, 2006)”의 마지막 장에 매긴 제목이다. 이 장은 거의 이년 전 먼슬리 리뷰의 2005년 1월에 실린 사설로 처음 세상에 나왔다. 이글은 다음과 같이 시작했다: “미국은 미제국을 팽창시키기 위해 진행 중인 군사행동에서 심각한 좌절을 만들어 내기에 적당한, 이라크에서의 중요한 패배라는 전망에 직면하고 있다.” 이글은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과 점령은, 전체 중동지역 맡에다 화약통에 불을 붙이는 내전을 위한 조건을 창출하게 될지 모른다. 이러한 관측들은 이후의 사건들에 의해 증명되었다. 그러나 신임 국방장관 로버트 케이츠 조차 미국은 이라크에서 전쟁에 “승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을 때에, 또한 제국은 전적으로 실패한 것은 아닐 수 있다는-적어도 아직은 아니라는- 의미도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거의 보편적으로 이 전쟁이 미제국에게 정치적 군사적 재난으로 비춰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은 여전히 이라크에서 자신의 장기적인 경제적 전략적 목표들 몇 개를 부여잡기 위해 참화 속에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것들의 실현이, 인명과 재산의 손실과는 무관하게, 전쟁을 미국 지배계급의 입장에서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 갈 것이다. 이 전리품들이 무엇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1) (세계 제2의 규모인)이라크 석유 매장량에 대한 통제력, (2) “지정학적 이득”(즉 사활이 걸린 중동 석유 지역에 대한 보다 큰 지배), 그리고 (3) 이 새로운 석유 통치권의 결과로서 미국의 세계 헤게모니의 강화. 이 전리품들의 실현에 결정적인 것으로, 미국은 강제적으로 이라크를 점령했을 뿐 아니라, 미국이 표면적으로 자국 군대를 “철수”시킨 후라도 실질적인 군사적 힘과 역량을 계속 두려고 작정하고 있는 이라크에 장기적인(보통 “영구적인” 것으로 언급되는) 군사기지들을 건설하는 것으로 미래의 목표를 세우고 있었다. 그러한 기지들은 오직 한 가지 공공연한 목적을 가진다: 미국이 가진 힘의 보다 큰 전지구적 투사의 일부분으로서 이라크, 페르시아만, 그리고 주변지역들에 대한 미국의 제국적 힘의 투사 최근에 공개된 이라크연구그룹 보고서에 대한 언론의 논의에서 거의 소개되거나 언급되지 않은 것은 보고서가 제안한 “2006년말-2007년초”를 위한 “이정표들”중 하나가 이라크 정부의 “신석유법” 가결이라는 것이다. 워싱턴은(거대석유회사들의 대표자들과 협력하여) 이 법의 초안을 잡는 것을 도왔을 뿐만 아니라 이것이 확실히 가결되게 하는데 역할을 하고 있다. 새 법률의 완전한 세세항목들은 입수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생산-참여 협정들(production-sharing agreements)”을 수립하려고 의도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생산-참여 협정들은 옛날 제국적 특권체제의 현대적 버전으로, 이라크 석유매장량의 생산과 마케팅에 대한 통제권과 이윤의 대부분을 외국회사들에게 주게 될 것이다. 이와 일치하는 것으로, 이라크연구그룹 보고서의 권고항 63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 “미국은 국제사회와 국제적 에너지 기업들을 통해 이라크의 석유부분에 투자를 장려해야 한다.” 그리고 (2) “미국은 효율성, 투명성, 그리고 책임성을 향상하기 위해, 이라크의 지도자들이 국가석유산업을 상업적 사업으로 재조직할 수 있도록 조력해야 한다.” 다른 말로, 목적은 현재 어떤 메이저 석유수출국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정도로 이라크 석유산업을 사유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의 석유매장지대를 (미국과 영국의 다국적 석유회사들이 지배할 것으로 예상되는) 외국회사들에 의한 완전한 착취에 열어두게 될 것이다. 새로운 생산 참여 협정들은 이 계약에 참여한 지구적 에너지 회사들의 가치를 매우 높여주는 것으로, 이들 회사들은 자기 회사의 회계에 자산으로서 이들이 통제하는 이라크 석유의 생산량과 보유량의 가치를 등재할 수 있을 것이다.(먼슬리리뷰, 2006년 12월호, Notes from the Editors”를 보라) 반전운동 초기의 “No Blood for Oil” 슬로건이 제출되자, 미국 정치, 경제 주류세력과 미국의 언론법인은 물론 이라크 방정식에서 석유의 중요성을 숨기고 경시하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왔다. 이것은 새로운 이라크의 석유법을 다루는, “이라크인들은 석유 세입의 분배에 관한 정책에 접근하고 있다”는 제목의 12월 9일자 뉴욕 타임즈의 첫째면 기사에서 알 수 있다. 이 기사는 전적으로 새로운 이라크 국가의 형성에서 중대한 이슈인, 시아파, 쿠르드족, 수니파 사이에서 석유 세입의 분배라는 이슈에 집중하였다. 그러나 뭔가를 놓치고 있다. 이 글의 광범위하고 상세한 분석 어디에도, 뉴욕 타임즈는 이 새로운 법에서 이라크 석유산업이, 어떤 메이저 석유 수출국도 자발적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을 생산-참여 협정들을 통해, 외국회사에게 대부분 넘어가는 석유 매장량에 대한 실질적 통제력과 더불어, 효과적으로 사유화된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았다. 확실히, 이라크연구그룹 보고서의 권고항 23은, “대통령은 미국이 이라크의 석유를 통제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고 재천명해야 한다”고 밝힘으로써 이 모든 관심들을 누그러뜨리도록 조력해 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부시대통령이 이를 “재천명”하도록 요구받았다는 사실은 그의 원래 성명이 이라크 사람들에게 이런 취지로 그리고 좋은 뜻으로 믿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비록 미국이 이라크의 자국 석유에 대한 법률상 통제권의 “보장”을 제공하였지만, 석유법 초안의 생산-참여 협정들은 이라크로부터 사실상의 통제권을 빼앗기 위해 기안되었다. 뉴욕 타임즈가 이 이슈를 다루지 않은 것은 겨우 이틀 전 런던의 파이낸셜 타임즈의(2006년 12월 7일자) “석유 기업집단들은 그들이 이라크에 들어갈 수 있는 날을 꿈꾼다”는 제목의 기사에서의 분석과 뚜렷이 대조된다. 여기서 우리가 듣기에: “정치적 말다툼은 입법의 역사적 견지가 무엇이겠는가를 가렸다: … 법은 결국 1972년의 산업 국유화를 역전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 돌고 있는 초안들에 따르면, 어떻게든지 생산-참여 협정들을 포함하는, 외국 협력의 다양한 형태들을 허용할 것이다. 이러한 계약들은 석유 회사들에 의해 선호되며 … 만약 석유가격이 상승한다면 그들에게 더 큰 범위의 이익을 가져다준다.” 더 나아가 파이낸셜 타임즈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자회사의 생산을 증가시키고, 매장량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거대 석유 다국적기업들은 이라크의 석유매장지대를 개발하는 기회를 얻기 위해 필사적이게 되었다.” 한 브리티쉬페트롤륨(BP)의 임원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으로 인용되었는데, “전체 산업은, 우리를 포함해서, 이라크에 관심이 있다.” “전지구적 전망에서”라며, 파이낸셜 타임즈가 자신의 대부분의 법인 독자들에게 말하기를, “특히 중국에서 수요가 급증하고 미국, 유럽, 그리고 아시아 일부에 있는 매장지대에서의 산출이 이 지역의 발전과 함께 감소함에 따라 이라크의 석유는 전체 공급에서 점점 중요하게 되었다.” 이라크의 생산은, 파이낸셜 타임즈가 주장하기로, 세계 수요와 일치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매년 4.9%까지 증가시킬 필요가 있다. 이 “석유 기업집단의 꿈”의 주된 장애물은 물론 안보공백으로, 이것은 위험을 대단히 증대시킨다. 이라크는 확고하고 전략적인 군사적 통제 하에 있을 필요가 있다. 이것은 이 나라가 강력하지만 극히 고분고분한 국가에 의해서나, 제국의 힘에 의해서 지배되어야만 한다는 것을(혹은 더 있음직한 것으로 이 둘의 모종의 결합) 의미한다. 오직 이러한 방식으로 수십년에 걸친 생산-참여 협약들과 이것들에서 끌어낸 방대한 잠재적 이윤을 보장받을 수 있다. 앞서의 BP 임원이 말한 것처럼, “우리와 같은 석유회사들이 장기적 탐사와 개발에 스스로 전념하고자 한다면, 안보 상황이 극적으로 개선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것은 이라크의 석유 매장지대가 미 제국의 영향력 안에 남아 있는 것을 확실히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 나라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을 보장받으면서 이라크에서의 전쟁을 종결하는 가장 포괄적이지만 유용한 계획으로서 이라크연구그룹 보고서의 주된 특징들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이라크 석유가 이전보다 더 크게 대두되어 버린, 이러한 유리한 조건에서이다. 초기 언론의 평가들과는 반대로, 초당적 대외 정책의 “현실주의자들”의(제임스 베이커 Ⅲ, 리 해밀턴, 그리고 공동 저자들) 이 보고서는 단순히 미국이 어떻게 이라크에서 빠져나올 것인가에 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전쟁에서 붙잡은 전리품들을 보유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을 추구한다. 이라크에서 통제력을 유지하는 것은 따라서 여전히 완전한 철군에 우선한다. 보이기에, 아직도 실패를 시인하지 않고 게다가 상처를 입은 제국은 여전히 조건들을 지시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라크연구그룹은 사실 상 강력한 이라크 군대의 형성을 가속화하고, 바그다드를 안정화하기 위해 가까운 미래에 이라크에서 미국군대의 “증강”을 계획하였다. 따라서 이들의 보고서는 “미국은, 전투부대들을 포함하여, 이라크 군부대를 지원하고 이 안에 편입되는(imbedded in) 미국의 군사요원의 수를 의미심장하게 증가시켜야 한다”고 말하였다. 사실상 초당적 “현실주의자들”은 이라크에서의 완전한 철군보다는 미국 군사력의 부분적 철군과 재배치에 가까운 무언가를 계획한다. 여기서 2008년 초까지 “병력보호에 필요한 것이 아닌 모든 전투여단은 이라크에서 나가야 할 것이다”라는 보고서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여전히 미국 군대들의 광범위한 역할이 남아있다는 것으로(“이라크 군대에 편입된 부대로서” “병력보호” 지역들에, “신속반응군과 특수작전팀들로서,” 그리고 정보부분과 다른 지원 작전들뿐 아니라 … “훈련, 장비교육, 군사고문 … 그리고 수색구조를 위해”) 이해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이 모든 것이 이라크연구그룹 보고서의 권고항들에 포함되었다. 게다가 이라크연구그룹이 권하는 계획은 불명확한 기간 동안 이라크 군대 내에 편입되는 미국 군대의 수를 다섯 배까지 증가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더 나아가, 우리는 “미국 군대의 절체절명의 임무는 [무기한으로] 신속반응팀들과 특수작전팀들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 팀들은 이라크에서 미군 지휘관에 의해 지극히 중요하다고 고려된 다른 임무들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기회가 생겼을 때 이라크에서 알카에다에 대한 타격 임무들을 착수하는 데 유용할 것이다.”라는 말을 듣는다. 미국은 또한, 미국이 대반란 작전들에 대해 보다 많은 통제력을 가지고 있는 이라크 군대 안에서 중앙 경찰의 “경찰특공대들”을(최초 미국에 의해 조성된 준군사적 살인부대-2006년 5월, 먼슬리리뷰의 “"Notes from the Editors”를 보라) 운용하면서, 이라크 경찰력을 지속적으로 훈련할 것이다. 이라크에서 지속적인 미국의 군사적 역할에 관해 오해가 있을 것을 대비하여, 보고서는 명백하게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심지어 미국이 모든 전투여단들을 이라크에서 철수시킨 이후에도,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의 증원된 주둔뿐 아니라, 이라크에서 우리의 여전히 의미 있는 군사력과, 쿠웨이트, 바레인, 그리고 카타르에서의 우리의 강력한 공군, 지상군, 해군의 전개를 포함한 지역에서의 중요한 군사력 주둔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이탤릭체로 부연되었음) 이러한 군사력들은 이라크 정부를 지원하고, 국가의 해체를 막고, 테러주의와 싸우고, 장비사용을 훈련하고 이라크 군대를 지원하고 외국의 침략을 억제하는 데 유용할 것이다. 짧게 말해, 이것은 이라크를 통제하고 이 나라의 “주권”을 비굴한 신식민지의 그것으로 제한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상상가능한 군사적 임무들에 유용할 것이다. 이라크연구그룹의 광범위하게 언급된 권고항 22는 “대통령이 미국은 이라크에서 영구적인 군사기지들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천명해야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권고항의 다음 문장은 다음과 같이 선언하면서 처음 내용을 허물어트린다: “만약 이라크 정부가 일시적인 기지 하나나 다수의 기지들을 요청하려 한다면, 그러면 미국정부는 다른 어떤 정부의 경우에서도 그러하듯이 그 요청을 고려할 것이다.” 그러한 “일시적인” 기지들은 명백하게 매우 장기간의 것이 될 수 있다. 이라크연구그룹 보고서에서 가장 불길한 진술은 국가의 해체와 관련된다. 미국은, 보고서에서 말하길, 정치적인 “세 지역으로의 권한이양”과 이런 까닭에, 비판자들이 시사하고 있는, 강력한 아랍 석유국가의 약화를 지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만약 사태들이 이러한 방향으로 뒤집을 수 없게 움직였다면, 미국은 … 지역 불안정을 최소화하기 위해 상황을 관리해야 한다. 미국은 바그다드의 정부 당국들에 의해, 특히 석유 세입의 문제에 대해, 중앙 통제가 가능한 만큼 지원할 것이다.” 이것이 이라크의 안정과 석유의 공정한 분배를 위한 미국의 지원으로 읽힐지도 모르지만, 이것을 다른 어떤 목표들(국민국가가 실행가능한 것으로서 이라크의 존속과 이 나라의 해체 방지를 포함하여) 이상으로 석유제국을 유지하려는 필요에 관한 진술로서 이해하는 것이 더 확실하다. 이 모든 것은 미제국이 이라크에서 적어도 아직은,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가리킨다. 미국이 강력하게 귀속된 이익들이라는 관점에서, 이라크전쟁은 여전히 비용을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석유는 피보다도, 특히 다른 사람들의(무고한 이들을 포함하여) 피보다도 더 가치가 있다. 이라크는 정치적 재앙일지 모르지만, 이것은 계산할 수 없는 차원의 경제적 지정학적 상품(prize)으로 남아있다. 그 결과 제국은 아직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적나라한 제국주의의 시대에 남아있다. -------------------------------------------------------------------- 존 벨라미 포스터는 오리건대학교의 사회학교수이며, 맑스의 생태주의(Marx’s Ecology), 가녀린 행성(The Vulnerable Planet),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생태주의(Ecology Against Capitalism), 그리고 적나라한 제국주의(Naked Imperialism)의 저자이다. 그리고 먼슬리 리뷰의 편집장이다. 출 처 : http://mrzine.monthlyreview.org/foster121206.html (출처 : 해방연대 홈페이지)
이라크 철군논의와 평화적인 길의 의미 엄 한 진(한림대 사회학과) 1. 대안을 요구하는 이라크 문제 지난 12월 6일 공개된 <베이커 보고서>를 계기로 본격화된 철군 논의 등 앞으로 이라크정세에 대한 전망은 전지구적인 대테러전쟁, 동유럽․중앙아시아․중동 등 서유럽 및 러시아의 접경 지역에서 격화되고 있는 미국과 이들 지역간의 헤게모니 투쟁, 그리고 중동문제 일반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대테러 전선의 하나로서 이라크의 상황은 조금도 호전되지 않고 내전 상태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제는 국제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아프가니스탄을 닮아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다시 세력을 결집하고 있는 것처럼 이라크에서도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점령군에 대한 저항이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라크인들의 고통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2006년 10월에는 3,709명으로 한 달 희생자수의 최고기록을 경신하였고 걸프전 이후 서방의 경제봉쇄는 이라크 민중의 생존마저 위협하고 있다. 한편 최근 중동 분쟁의 새로운 양상의 하나는 팔레스타인문제가 주변국으로 확산되고 이렇게 확대된 팔레스타인문제가 이라크문제와 연계됨으로써 분쟁이 중동 전체로 번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9․11테러를 빌미로 한 미국의 이라크 점령이 계기가 되어 이제 팔레스타인문제와 이라크, 이란 등이 연관된 걸프지역 갈등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른바 대테러 전쟁의 틀에서 연계되는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제2차 이라크 전쟁에 뒤이은 지난 7, 8월의 제2차 레바논 전쟁은 레바논 전쟁(1975-1990)과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 제1차 인티파다(1987), 걸프전(1991)으로 치달은 지난 중동전쟁의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유사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과거 걸프전이 평화협상의 시대를 열었듯이 최근 극도로 불안정해진 이라크와 중동의 상황을 타개하는 대안으로 철군과 외교적 해결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2. <베이커 보고서>와 그에 대한 반응 최근의 변화는 미국 자체에서 시작되었다. 이라크전쟁은 점점 더 혼돈에 빠져들고 있고 저항세력과 자살테러의 증대로 미군의 이라크 주둔이 점점 더 위험해졌다. 게다가 대테러전쟁으로서의 이라크 전쟁은 역설적으로 미국 내 새로운 테러의 가능성을 높인다. 그리고 현 상황을 타개하는데 미군의 철수 이외에는 다른 가능한 대안이 없어 보인다. 지난 11월 미 의회선거의 결과는 이라크문제에 대한 불만, 이란과의 대결에 대한 망설임의 표현이었다. <베이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66%가 이라크 전쟁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고 60%가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라크전쟁에 분명히 반대하지 않는 정치인은 정치적 입지가 약해지는 등 변화양상이 뚜렷하다. 정치권에서도 공화, 민주를 막론하고 철군론이 급물살을 타면서 2003년 3월 이라크침공이 개시된 후 처음으로 2006년 11월 의회에서 철군안이 제안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의 대이라크 정책의 변화를 촉구하는 <베이커 보고서>가 제출되었다.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들로 구성된 <이라크연구모임>이 펴낸 이 보고서는 일종의 위기탈출 방안을 담고 있다. 140쪽 분량의 이 보고서에는 모두 79개 항의 권고안이 제시되어 있는데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 2008년 초까지 이라크 주둔 미군의 대부분 철수 △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 △ 이라크문제 해결에 주변국들의 참여 △ 시리아 및 이란과의 대화 △ 이라크에 대한 <국제지원그룹> 구성 △ 구 바트당 지도자들의 이라크 정치에의 복귀 이 중 민감한 사안인 시리아 및 이란과의 대화 촉구는 이라크에서의 군사적 실패로 인해 미국이 중동정책에 대해 주변국들의 협조가 절실해졌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한편 이 보고서에 대한 반응을 보면 프랑스 등 유럽의 정치인들 대부분은 미국의 신보수주의 외교정책의 종식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여겨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반면 이라크 현 수상이 포함된 이라크의 시아파, 특히 현 정부의 대통령이 포함된 쿠르드족, 그리고 이스라엘은 사안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보고서에 나타난 주요 제안들에 반대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라크에서의 미군 철수를 자신이 직접 주변국들과 맞서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철군안에 반대했다. 겉으로는 철군이 이스라엘의 안전에 대한 위협을 가중시키게 될 것이라는 점을 내세우지만 이스라엘이 반대하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지역정세가 안정적인 국면으로 접어들고 그간 이라크에 집중된 국제사회의 중동 관심이 중동문제 전반으로 옮아가게 되면 그 중 제일 비중있는 사안인 팔레스타인문제가 다시 중요하게 부각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그간 이라크에서의 대테러전쟁의 논리에 힘입어, 그리고 이라크전쟁의 그늘에서 마음껏 자행할 수 있었던 팔레스타인인 억압에 대해 국제사회의 견제가 조금은 심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이 꺼리는 정착촌 문제, 난민문제, 예루살렘의 지위문제 등 팔레스타인문제의 핵심 사안들이 다시 부각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지역에 대한 경제적 통합에만 몰두하는 미국과 유럽도 팔레스타인 문제의 근본 해결에는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부시정권의 관심은 갈등의 해결보다는 석유자원의 안정적 확보, 그리고 미-모로코 자유무역협정(2004년)을 시작으로 2013년까지 중동에 자유무역지대를 창설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3. 예상되는 <평화의 길>의 중동적 의미 한편 <베이커 보고서>에 대해 부시는 아직 두드러진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지만 거기 담긴 요구를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을 터이고 그 대안을 찾는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부시가 보고서에서 제시된 권고안 중 어떤 것을 어떤 식으로 수용할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백악관에 따르면 부시는 가능하면 크리스마스 이전에 이라크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 하니 아직은 기다려봐야 할 것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부시는 대부분의 제안에 대해 머뭇거린다. 즉각 철군은 이 지역 전체를 불안정과 전쟁으로 몰아갈 것이라며 반대하고, 이란과의 협력관계는 이 나라가 핵을 포기할 경우에, 시리아와의 협력관계는 오랫동안 후견인 역할을 해 온 이웃나라 레바논에 대한 개입을 중지할 경우에 가능하다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팔레스타인 문제 등 중동문제에 대한 외교적 노력에 대한 제안은 수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것은 이 협상의 길이 한편으로는 현 상황에서 불가피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라크 침공 이후 격화된 중동 전반의 갈등을 은폐하는 효과적인 방편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 중동. 걸프전 이후 아버지 부시는 이스라엘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평화협상의 길을 택했다. 우리는 또다시 10여 년 전처럼 또 다른 마드리드 협상, 오슬로협정 등 수많은 평화회담과 협정을 보게 될지 모른다. 그런데 90년대의 경험을 보면 이런 식의 평화의 길은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길이면서 그러나 더 격렬한 모순의 폭발을 준비하는 일시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당초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게 설정된 이 평화의 길 뒤에는 2차 인티파다 이후의 내전상황과 2차 이라크전쟁, 2차 레바논전쟁 등 더욱 비합리적이고 잔혹해진 폭력적인 양상이 그 뒤를 이었다. 1999년 2차 인티파다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고통만 더 안겨준 지리한 평화협상에 대한 환멸의 표현이었고 2006년 1월 하마스의 총선승리는 이스라엘과의 대화를 통한 평화의 길에 대한 불신의 표현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워싱턴포스트지가 내부 소식통을 통해 얻어낸 부시행정부의 대이라크 정책 변화 시나리오 세 가지 중 하나는 바로 바그다드의 치안확보와 이라크군 창설을 본격화하기 위해 필요한 파병군인의 수 증대이다. 따라서 철군이나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외교적 길에 대한 성급한 논의는 금물이다. 그러나 설사 부시행정부가 외교적 방안을 채택한다 하더라도 이번 2차 이라크전쟁과 2차 레바논 전쟁, 그리고 지난 7년간 쉽없이 팔레스타인인들을 몰아붙인 이스라엘의 공세 이후 휴지기가 지나면 새로운 대안과 새로운 세력의 등장이 없는 한 또 다시 폭력의 회오리가 몰아칠 것이다. 그것은 분열, 불안정과 폭력이 적어도 중동지역에서는 미국과 유럽의 전통적인 지배전략이었고 앞으로도 별 이변이 없는 한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1948년 이스라엘 국가 창설 이후 중동지역이 반 세기 이상 겪어 온 것은 바로 이 진전없는 반복이었다. 4. 대안 없는 중동 문제 따라서 문제는 중동문제에 대한 대안, 그리고 이 대안을 담지할 주체의 부재이다. 그리고 이 대안 부재의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고 전망을 제시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수십만의 무고한 이라크인들을 희생시킨 미국과 동맹국들의 범죄, 국제사회가 ‘나 몰라라’ 하는 가운데 저질러지는 팔레스타인의 참극, 그리고 황당한 레바논 전쟁 등 유례없이 극단적인 최근의 중동 현실은 바로 이 대안과 전망 부재의 적나라한 표현이다. 중동 현대사는 최근 논의되고 있는 철군과 평화적인 길이 중동문제 해결의 첫 걸음에 불과함을 말해준다. (2006. 12. 13) (*출처 : 민주노조운동연구소홈페이지자료실 dli.nodong.net)
지난 30일 비정규직법안 개악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날치기 통과됐다. 신자유주의 정부와 여야 정당은 85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울음을 깡끄리 짓밟았다. 지배계급은 평택 미군기지 확장, 한․미 FTA강행, 극단적인 노동유연화 정책 추진 등 한국사회를 통째로 위기의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에 저항하는 많은 민중들의 목소리를 ‘일부 폭력적인 집단의 교통방해’로 치부하면서 집회․결사의 자유를 원천 봉쇄하고 있다. 하지만 민중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전국 곳곳에서 분노를, 슬픔을, 의지를 표출하고 있다. 민중총궐기를 끝나지 않았다. 1, 2차 총궐기에 이어 12월, 우리의 미래를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 나가는 싸움을 전개해야한다. <특집>에서는 올해 사회운동의 가장 큰 이슈였던 한․미 FTA저지 투쟁과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투쟁에 대한 평가와 전망을 담고 있다. 정지영은 한․미FTA 저지 투쟁을 신자유주의 금융/군사세계화를 주도하며 한반도에서 민중의 생존을 위협하는 미국과 이를 추종하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대안 세계에 대한 대중들의 토론과 합의를 모아가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박준도, 문설희, 이소형은 쟁점토론을 통해 그 동안 진행되었던 평택미군지기 확정저지투쟁의 쟁점과 난점을 정리하고 이후 투쟁의 방향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전쟁을 멈춰라>에서 정영섭은 정부의 자이툰 철군으로 포장된 자이툰 1년 파병연장과 레바논 파병계획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지은은 미국의 아프간 침공 5년째를 맞은 아프간의 상황을 폭로하며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과 나토군은 지금 당장 철수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수열은 이라스엘 정부가 팔레스타인에 설치하고 있는 고립장벽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해방을 향한 여성행동>에서 김원정은 한․미 FTA가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며 이에 맞서는 여성운동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노동자운동으로 세계를 변혁하자>에서 학습지산업노조는 정부에서 발표한 특수고용노동자 대책이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문제를 봉합할 뿐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다음으로 건설산업연맹 국제부장 이진숙과의 인터뷰를 통해 국제노총 출범의 의의를 밝히고 있다. 노동국은 주연테크 노조와 서울대병원 노조와의 인터뷰를 통해 민주노총 총파업을 조직하는 현장의 솔직한 고민과 상황을 담고 있다. 김효는 본격화 될 체신부문 구조조정에 맞서 체신현장운동의 과제를 밝히고 있다. <대안세계화를 향하여>에서는 얼마 전에 열린 국제토론회 “FTA에 반대하는 여성들”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한 태국 빈민연합과 콜롬비아 농민연합의 활동가들을 만났다. 각 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미국과의 FTA에 저항하는 운동의 구체적인 쟁점과 현황에 대해 들어보았다. <사회운동과 연대>에서는 최은숙은 올해로 여섯 번째를 맞는 노숙인추모제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 아닌, 새로운 투쟁을 일궈나가는 12월을 만들자. 사회운동도 그 길에 함께 할 것을 약속한다.
[%=사진1%] "이장님이 나온다, 안 나온다, 나온다, 안 나온다, 나온다!" 2006년 6월 6일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던 날, 평택경찰서 앞. "우리 이거 해보자!" 대추리 사는 10살 도희가 장미꽃 한 송이를 내게 쭉 내밀고는, 이장님이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장미꽃잎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경찰서 담벼락에 핀 장미꽃 송이를 따서 꽃잎을 하나하나 떼어내며 장미꽃 점을 쳐봤다. 그게 끝나면 또 한 송이를 따서"우리가 계속 대추리에 산다, 안산다, 산다, 안산다, 산다…."도 했고, "경찰이 나쁘다, 안 나쁘다, 나쁘다, 안 나쁘다, 나쁘다…."도 했고, "군인들이 마을을 나간다, 안 나간다, 나간다, 안 나간다, 나간다…."도 했다. 빨간 꽃잎들이 바닥에 흩어져 경찰서 담 아래가 꽃길이 되어 버릴 만큼 오랫동안 장미꽃에게 주문을 걸었다. 이장님이 나오기를, 대추리에 계속 살 수 있기를, 군인들이 우리 마을에서 나가기를. 그 때 그 장미꽃 송이들이 우리에게 이장님이 나온다고 했는지 아닌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날부터 5개월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대추리 김지태 이장은 감옥에서 나오지 못했다. 도희는 대추리 김영녀 할머니의 외증손녀다. 웃는 모습이 하회탈처럼 예쁘신 김영녀 할머니는 김지태 이장의 고모이기도 하다. 친인척들이 많이 모여 사는 대추리는 한 집 걸러 한 집이 가까운 친척으로 연결이 된다. 그래서인지 마을 일을 함께 겪는 사람들은 더 끈끈하게 그 일들을 공유하는가 하면, 등 돌리고 떠난 것에 대한 배신감과 아픔은 더 크게 느낀다. 언젠가 김지태 이장을 면회하고 오신 할머니는 가슴을 치며 말씀하셨다. “어제는 이장 보고 왔어. 멀쩡한 놈, 죄 없는 놈 가둬놓고. 아휴, 천불이 나. 열나고. 걔 보고 온 날은 밤새도록 잠이 안 와. 걔만 떠올라서.” 그렇게 속 터지고 화나는 것은 김영녀 할머니 뿐 만이 아니라 대추리 주민 모두가 그렇다. 이장을 잡아두고 한국정부가 벌이는 이 엄청난 범죄의 대가를 대추리 주민들이 몸으로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것이다. 검찰의 의도적 재판연기 4월 29일자로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가족들과도 떨어져 지내야 했던 김지태 이장은 6월 5일 평택경찰서에 자진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당시 대화를 하자고 떠들어대던 한국정부는 자진출두한 김지태 이장을 구속시켰다. 6월 4일 29회 대추리민의 날 행사에 함께 해 오랜만에 주민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그렇게 또 다시 긴 이별을 해야 했다. 그 이후 검찰은 어떻게든 김지태이장을 더 오랫동안 잡아 두려고 안달을 하는 듯 보였다. 김지태 이장의 선고일이었던 9월 22일을 며칠 앞두고 검찰은 새로운 증거 자료가 나왔다며 변론 재개를 신청했다. 추석을 함께 보낼 거라는 기대가 깨진 주민들의 실망이 얼마나 컸는지, 또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말로 다 하지 못한다. 10월 13일 재판에서, 수원지검 최임열 검사가 제출한 ‘새로운’ 자료는 2005년 7월 10일 평화대행진을 전후한 김 이장의 통화 기록과 자신이 다쳤다고 주장하는 전경들의 피해 진술이 전부였다. 그러한 증거가 김 이장 구속수사 4달 만에 ‘새로’ 발견될 수 있는 것인지, 변호인단의 변론을 뒤엎을 만한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로운 기소사유가 되지도 않는 증거를 제출해 김지태 이장의 구속을 연장하려 한 것이라는 비난을 면하지 못했던 그 날, 재판부는 11월 3일로 선고일을 연기했다. [%=사진2%] 징역 2년 실형 선고 11월 3일 열린 김지태 이장의 1심 판결에서 김지태 이장은 징역 2년 실형 선고를 받았다. 수원지법 평택지원 성지용판사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 7가지 혐의를 들어 실형을 선고하고,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죽봉과 쇠파이프가 난무하는 대규모 폭력사태를 초래한 점 등을 볼 때 죄질이 가볍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이날 재판부는 주민들의 법정소란을 이유로 들어 3가지 조치를 취했는데, "안정된 판결과 판사의 의견개진을 위해서" 방청권을 교부했고, 경찰에 시설보호요청을 하고, 법정에 CCTV를 설치하는 일이었다. 경찰의 방패에 가로막힌 주민들은 서둘러 끝낸 재판을 결국 보지 못했고 법원 앞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앉아 징역 2년 선고 소식을 들었다. 팔순을 바라보는 부모님조차 재판을 보지 못했고 법원 앞에서 오열해야만 했다. ‘초범’인 김지태 이장에게 이 같은 판결이 내려진 것은 대한민국 사법부가 여전히도 정부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극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김지태 이장의 실형선고는 미군기지확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정치재판이며, 공정한 법집행을 해야 할 사법부가 법을 이용하여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김지태 이장을 볼모로 삼아 주민들을 더욱 더 지치게 하고 시간을 끌며 포기하게 하려 한다는 것을 주민들은 알고 있다. 한국정부와 국방부는 지금 주민들에게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싸움을 포기하라, 그러면 김지태 이장을 풀어줄 것이다."라고. 실형선고를 받은 김지태 이장은 지난 11월 13일 평택구치소에서 안양교도소로 이감되었다. 싸움이 시작된 처음부터, 차가운 감옥에 있는 그 시간동안에도 김지태 이장은 끝까지 싸우자고 말하고 있다. 주민들의 정당한 저항을 폭력으로 누르며 보상금으로 해결하려는 정부에게 김지태 이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 너른 들판을 사시겠다고? 그 금액은 너무 어마어마해서 나는 상상을 못할 지경이니깐. 힌트를 드리자면 대추리, 도두리 들판에서 지금껏 거두었던 벼의 낱알의 개수만하다고나 할까. 그것을 일구기 위해 굽혔다 폈던 관절의 운동 횟수만하다고 해도 될 것 같다. 한 가지 더. 그들의 시간, 한숨, 울음, 웃음 그것을 내려다보았을 별빛이나 시름을 달래주던 바람의 총량까지 합하면 대충은 나올 것 같다." 양심수가 된 아들, 애타는 부모님 “우리 아들 보고 왔어” 김지태 이장이 안양교도소로 이감 된 후 면회를 갔다 오신 황필순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그 아들에 대해 한참 동안 이야기하고는 결국 눈물을 쏟아내셨다. “뭘 시켜도 착실히 잘 하니께 맨날 걔만 시켰지. 새끼도 잘 꼬고 소 먹이는 것도 잘 하고 그랬어.” 할머니는 요즘 메주를 쑤느라 바쁘시다. 10월에 털어 말린 노란 콩을 가마솥에 가득 넣고 아궁이에 불을 땠다. 연기가 가득 차오르는 아궁이 앞에 앉아 이른 아침부터 할머니는 나무를 잘라 넣는다. “8남매를 낳았는데, 4남매가 죽고 4남매 남은 겨. 못 먹여서 애들이 자꾸 죽고 그러니께 애들 하나하나 얼마나 소중하게 길렀나 몰러. 그렇게 기른 자식이여." 아궁이에 불을 지펴 연기가 가득 차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눈이 아픈데도 할머니는 끄떡 없이 그 앞에 앉아 계신다. “할머니, 눈 아프지 않으세요?” “이걸 몇 십 년을 했는디, 아무렇지도 않어.” 까만 연기를 내 뿜는 아궁이 앞에서도 너무나 잘 견디는 할머니지만 아들 생각만 하면 눈물을 멈추지 못하신다는 걸 안다. 이 땅에서 죽는 것이 소원이라는 동네 어른들 뜻에 따라 싸우다 감옥에 갇힌 아들, 양심에 따라 살고자 하는 시골 마을 이장인 아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소밥 주러 나가던 아들을 생각하면 눈물을 멈추지 못하신다. 새벽 다섯 시에 소밥 주러 나가는 일은 이제 김석경 할아버지의 일이 되었다. 김지태 이장은 감옥에서 “아버지가 힘드니 소를 팔았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소일거리라도 삼아 해야 산다며 할아버지는 반대하셨다. 언젠가 할아버지는 아들의 면회를 가면서 어디 가시냐고 묻는 내게 “소 이야기 하러” 가는 길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정말 “소 이야기”만 하고 오셔서는 오후 다섯 시가 되자 또 다시 소 밥 주러 가셨다. 할아버지가 자꾸 마르시는 것 같아, 부쩍 늙으신 거 같아 마음 다스릴 수 없이 아프다. 예전 비닐하우스에서 촛불행사를 할 때, 언제나 두 분 할머니 할아버지가 맨 앞 자리에 앉아 촛불을 하늘높이 치켜 들며 함성을 지르셨다. 요즘은 가끔씩 촛불행사를 빠지기도 하시고 예전처럼 그렇게 힘있게 촛불을 들지도 못하신다. 두 분의 상처가, 아픔이 걱정될 뿐이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싸우셨던 두 분이 양심에 따라 살고자 하는 아들을 감옥에 보내고 맞는 이 겨울이 부디 매섭지 많은 않기를. 하루 빨리 김지태 이장이 석방되어야 한다. 더 이상은 안 된다. 더 이상 평화와 정의와 인권을 가둬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모든 권력이 뒤엉켜 벌이는 이 사기행각을 당장 멈추고 양심수 김지태 이장은 평화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의 곁으로 돌아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