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대책위에서 나온 간략한 자료입니다. 참조하세요 <목차> 1. 직도폭격장 현황 2. 매향리 미군 국제폭격장 직도이전의 배경과 그 문제점 3. 매향리 미군 국제폭격장 직도 이전에 대한 각계의 입장 4. 향후 대응방안 기조
9.23 반전행동으로! 자이툰 5진 파병 계획을 철회하라! 2001년 9.11 사태가 발발한 직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전 세계를 공포분위기로 몰아넣어 국제적 공안정국을 형성하며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그 연장선에서 2003년 3월 20일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를 침공했고 그 날 노무현 정권은 이를 지지하는 담화문을 발표했으며 그 다음 날 국무회의에서 파병을 결정했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국회는 열흘 만에 파병동의안을 통과시켜 주었고 서희·제마부대는 4월 말에 이라크로 떠났다. 그때부터 치면 이제 이라크 파병은 3년 하고도 5개월째에 이른다. 2003년 하반기에 추가파병이 결정되고 2004년 8월 자이툰부대가 떠났다. 해마다 정부는 파병연장을 했고 국회는 거수기계가 되어 야만과 학살에 동조하는 파병에 도장을 찍어 주었다. 그러나 평화나 재건은 국방부 자료에나 존재했고 자유와 민주주의는 부시의 단골 연설메뉴일 뿐, 이라크는 점점 점령과 전쟁에 신음하는 고통의 땅이 되었다. 그런데도 노무현 정권은 다시 파병연장을 검토한다고 들고 나왔다. 최근 국방부는 12월에 파병하는 자이툰부대 5진에 대한 선발공고를 냈고 내년 예산에도 주둔비용을 포함시켜 놓았다. 그러나 영국, 호주, 일본, 이탈리아 등 대규모 파병군을 보낸 나라들이 대부분 철군을 하려는 마당에 왜 유독 한국만 ‘미국을 위해’ 파병을 지속하려는가? [%=사진1%] [%=사진2%] 전쟁동맹의 덫 파병연장의 최대 논리는 ‘한미동맹’이다. 미국이 동의하지 않는 철군은 동맹관계에 균열을 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동맹은 미국과 한국의 지배세력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 다수 민중의 이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노무현 정권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한미동맹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지만 오히려 한반도 정세는 악화되어 왔고, 주한미군의 ‘신속기동군’으로의 재편에 동의하는 전략적 유연성 합의는 민중의 평화적 생존권마저 짓밟으면서 한반도 전쟁기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또한 노무현 정권이 ‘자주’를 내세워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추진하지만 실상은 한미 전쟁동맹을 현대화하고 한국의 군비를 증강하는 반평화적인 조치이다. 막대한 재정과 인력을 들여 이라크 북부 아르빌의 사막에서 주둔하는 자이툰부대 역시 동맹의 상징일 뿐, 이라크 점령의 보조자로서 주둔하다가 피해 없이 살아 돌아오는 것이 최대의 목적이 된 100만평의 수용소와 다를 바 없다. 갈등과 폭력만 증폭시킨 이라크 점령 현재 이라크가 사실상 ‘저강도 내전’ 상태에 있다는 보도가 끊이지 않는다. 미군의 이라크 침공 직후부터 이라크 저항세력에 의한 무장저항은 계속 되고 있는데, 최근에는 이러한 저항공격 뿐만 아니라 이라크 내부의 충돌이 급격히 커졌다. 지난 7월에만 3천명이 넘는 희생자가 생겼다. 그러나 흔히 종파 간 폭력사태라고 언급되는 이러한 상황은 다름 아닌 미군의 전쟁과 점령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군은 점령 초기부터 종파적 분할에 기반하여 정책과 제도를 구사하였으며 이는 이라크 사회에 깊은 갈등을 초래하였다. 세력 간 대립과 반목을 조장한 미군의 점령정책이 급기야 미군 스스로 통제할 수도 없는 상황으로 번진 것이다. 새로운 중동 구상 - 미국의 망상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은 미국이 그리는 ‘새로운 중동’의 일단을 보여주었다. 미국의 이 새로운 중동 정책은 중동에서 미국의 세계 전략에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정권이나 정치세력을 붕괴시켜 결국에 친미정권을 수립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테러 조직들을 중동지역에서 완전히 박멸할 것과 정권이 교체된 이라크와 여러 친미국가들, 그리고 앞으로 정권을 교체시켜야 할 여러 국가들에서 신자유주의 개혁 프로그램을 진행할 것 등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리고 미국에 대항하는 ‘악의 축’ 국가들에 대하여 친미국가들을 동원하여 압박전술을 구사하고, 특히 이스라엘을 최신 무기로 무장시켜 예상 가능한 저항들을 사전에 봉쇄 혹은 무력사용을 통해 격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 이스라엘이 미국과 한 몸이 되어 헤즈볼라를 제거하기 위해 레바논 공격에 나섰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그 과정에 수반된 수많은 민중학살과 사회기반 파괴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야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고 아랍민중들을 분노케 했다. 이는 이라크에서 계속되는 미국의 실패와 함께, 새로운 중동 정책의 불가능성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미국은 중동 장악의 최대 걸림돌로 이란을 지목하고 지속적인 압박과 전쟁 위협을 공언해 왔으나 이라크에 단단히 발목이 잡혀 있는 상황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테러와 전쟁 5년, 안전도 평화도 없다 9.11 이후 미국이 개시한 테러와의 전쟁이 5년째지만 세계 어느 곳도 안전해지지 않았고 오히려 전쟁과 폭력이 세계화되었다. 부시 행정부는 최근 ‘테러와의 전쟁을 위한 국가전략’을 수정 발표했는데, 그 내용은 미국 대테러 전략의 궁극적 목적을 "효과적인 민주주의를 통해 자유와 인권을 촉진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위해 테러분자의 네트워크에 의한 공격 저지, 불량국가와 테러지원 조직의 대량파괴무기 획득 저지, 불량국가에 의한 테러분자 지원 저지, 테러거점인 국가를 용납하지 않는 것 등이다. 그러나 미국의 이러한 전략 자체가 미국의 군사주의와 초국적 금융자본 중심의 세계화에 대한 저항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모든 집단을 테러집단으로 규정하는 한 미국은 전쟁의 악순환으로 세계의 민중을 밀어 넣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수호하기 위한 미국의 군사세계화는 민중의 안전과 평화를 파괴할 뿐이다. 자이툰 철수와 한미 전쟁동맹 해체를 ! 정의와 평화를 위해 행동하자 자이툰부대는 이라크 점령군으로서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미국을 보조하고 미국의 새로운 중동 정책에 봉사할 뿐이다. 부시 행정부나 노무현 정권이나 마찬가지로 상황을 호전시킬 의지도 능력도 없다. 그 힘은 정의와 평화를 위해 행동하는 민중의 반전평화 운동에서 나온다. 올해에도 또 다시 파병 자동연장을 허가해 줄 수는 없다. 자이툰부대 철수는 미국의 대테러 군사정책과 이라크 점령에 균열을 내고 한미 전쟁동맹에 타격을 주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과도 연결되어 있다. 노무현 정권은 자이툰 파병 연장 획책과 더불어 레바논 파병도 고려하고 있다. 미국과의 일체화로 나아가는 노무현 정권에 쐐기를 박는 투쟁을 전개하자. 9.23 반전행동으로 결집하자!
달래가 강아지 네 마리를 낳았습니다. 불룩했던 배가 쏙 들어간 달래를 보고 이곳 저곳을 찾아보았는데 어디선가 낑낑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허리를 굽혀 아궁이를 들여다보니 저 안 쪽에 주먹만한 강아지 네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달래는 제가 살고 있는 집의 옛 주인이 키우던 개인데 아파트로 이사 가게 되면서 놓고 간 것이지요. 대추리 도두리에는 달래처럼 버려진 개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사 간 빈집을 고쳐 사는 지킴이들은 남겨진 개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저는 개든 고양이든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달래와 함께 살다보니 애정을 쏟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밥도 주고, 사람 대하듯 이야기도 하면서 조금씩 친해졌습니다. 새끼를 낳은 뒤 예민해진 달래가 사람들을 보고 짖어대다가도 제가 다가가면 젖은 눈망울로 빤히 쳐다보며 꼬리를 치거나 조용해집니다. "고것이 주인이라고 알아보네." 강아지들을 챙겨 주러 오신 옆집 할머니가 한 말씀하시며 웃으십니다. 강아지 네 마리가 태어난 걸 확인하고 난 후, 저는 온 동네방네를 돌아다니며 보는 사람마다 "우리 집 개가 새끼 네 마리를 낳았다."라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날 저녁 촛불행사에서 1반 뜸 할머니들도 어떻게 아셨는지 "새끼 낳았다메?" 라며 웃으셨고, "강제철거 들어오면 온 동네 강아지들 다 풀어 버리자."는 농담도 하셨습니다. [%=사진1%] 언젠가 이사 간 옛 주인이 찾아 온 적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데 아저씨 한 분과 그의 딸이 서 있었습니다. 한 눈에 누구인지 알아 볼 수 있었는데 그 딸은 제 눈에 익은, 저는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집에 놓고 간 그들의 물건 중에 몇 장의 사진이 있었는데 그 낡은 사진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옥탑방은 목수였던 그 아저씨가 딸을 위해 손수 만든 것이라는 이야기를 주민들을 통해 들었고, 그 방에 남겨진 물건들은 한 번도 만난 적 없었던 누군가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처럼 느껴지게 했습니다. 바로 그 사람들이 내 앞에 나타났을 때, 친근하고 반갑게 느껴져야 할 사람들인데 저는 순간 긴장하고 당황했습니다. 대추리 도두리에 살고 있는 지킴이들이라면 누구나 겪어 보았을 일이지요. 살고 있는 집의 전 주인과 마주치는 일. 사실 저도 이 옥탑방에 살기 전 다른 집을 고치고 청소하는 중에 집주인이 찾아와 내 눈앞에서 도끼로 창문과 가구를 부수어 버리는 일을 당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런 일을 겪고 난 후라 그 분들을 본 순간 몸이 굳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자신이 살던 방에서 잠이 덜 깬 채 나오는 나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당장 나가라고 하면 어떡하지, 또 도끼를 들고 달려들면 이번엔 제대로 싸워야지….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간 몇 초가 흐른 후 정신을 차린 내 입에서 나온 말을 이랬습니다. "안녕하세요…." 그렇게 침묵의 시간이 흐른 후 나는 그들이 이 집을 부수러 온 것도, 나에게 해코지를 하러 온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냥 한번 보고 싶어서, 몸은 떠났지만 마음만은 남겨두고 온 곳이어서 그렇게 한번 와 본 것이었습니다. 주민들을 통해 집주인이었던 아저씨가 말을 못하는 분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딸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사 간 후에도 부모님들이 이곳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 자꾸 가보고 싶어 하셔서 모시고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 분들은 나에게 잘 살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돌아서는 등뒤에 대고 제가 물었습니다. "개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달래에 대해 물은 것이었습니다. 내 옥탑방 사진 속의 주인공은 매우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물론 달래의 이름은 달래가 아닐 것입니다. 그 분들이 오랫동안 불렀던 이름이 있었겠지요. 생각해보면 그때 이름을 물어볼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사실 그 때 저에게는 개의 이름보다 그저 낯선 개 한 마리가 우두커니 내게 남겨졌다는 사실만이 마음에 남을 뿐이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그 이름 모를 개를 한참동안 바라보며 그 분들을 보냈습니다. 어디 가든 행복하게 잘 사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런 달래가 새끼를 네 마리나 낳았고, 달래와 보낸 그 시간동안 처음에는 조금 을씨년스러웠던 내 옥탑방이 이제는 그 어떤 공간보다 아늑하고 편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주민들과도 가까워지고 함께 농사일하며, 힘들고 즐거웠던 순간들을 보냈습니다. 국방부가 빈집철거를 하겠다고 한 게 벌써 2개월이 지났고, 언제 어느 때 또 포크레인을 끌고 들어올 지 몰라 불안한 일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햇빛이 많이 들어오는 내 방, 올 여름 찜통 같았던 2층 옥탑방을 철거하러 들어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진2%] 대추리에 살겠다고 무작정 짐을 싸서 내려온 것이 7개월이 되었습니다. 이 곳에 도착한 첫날 아침, 눈이 참 많이 내렸습니다. 트랙터가 눈을 치우며 다니던 그 겨울, 대추리에는 쇠망치소리가 울리고 있었습니다. 이사가는 사람들이 자신이 살던 집을 죄다 부수고 떠났고, 떠나간 빈집에 고물상이 들어와 헐어버리는 일들이 날마다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떠난 집이니 허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쇠망치로 부숴 놓은 창문과 문짝들을 보고 있으면 가슴에 찬바람이 불었습니다. 쇠망치가 창문을 내리칠 때 마을 주민들의 가슴에도 쇳덩이 하나가 내려앉았겠지요. 유난히도 추운 겨울을 보낸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 또 그것보다 더 힘든 것은 국방부의 회유와 협박 속에서 등 돌리고 떠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수 십 년을 함께 살아왔던 사람들이, 얼굴만 봐도 이웃의 기분이 어떤지 알 수 있을 만큼 가까웠던 사람들이 떠나가면서 혹은, 남겨지면서 감당해야 할 아픔들은 누가, 어떻게 보상해 줄 수 있을까요. 국방부와 정부는 주민들의 싸움을 보상금 문제로 호도하고 있지만 도대체 돈으로 해결할 수 없이 망가진 730년 된 대추리의 역사는, 그렇게 우애 좋게 살았던 대추리 사람들의 공동체는 어떻게 복원할 수 있을까요. 이 땅에서 죽을 거라고, 끝까지 지킬 거라고 말씀하시는 대추리 방효태(70) 할아버지 말씀처럼 그 사람들은 나가고 싶어서 나간 게 아니라 '견디지 못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지금도 국방부는 주민들에게 전화를 해 '융자를 주지 않냐', '땅 값이 오르지 않았냐' 등의 말로 주민들을 기만하고 있습니다. 불안하고 힘든 주민들의 마음을 이용해 회유하고 이간질하려는 야비하고 비열한 정부 관료들의 수작에 치가 떨릴 뿐입니다. 대추리가, 도두리가 떠나가는 마을이 아니라 새롭게 자꾸자꾸 채워지는 마을이기를 바랬습니다. 파괴되고 무너지는 마을이 아니라 주민들의 역사가, 땀과 눈물이, 한숨과 웃음이 그대로 지켜지는 곳이기를 바랍니다. 가끔 큰 집회가 있을 때 와 보는 곳이었던 이 마을에 짐을 싸 들고 올 때 정말 그렇게 온몸으로 그것들을 지켜내고 싶었습니다. 인간방패라도 되어 철거를 막아내고 미군기지 확장을 막아내는 싸움에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무능하고 야만적이기까지 한 노무현정권은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며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을 짓밟고 마을을 고립시키고 있습니다. 외부인을 차단하는 검문검색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지만, 주민들은 지난 4년 간 그래왔던 것처럼 힘든 하루 하루를 견디고 또 견디며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 겨울 볏단을 깔고 대추초등학교 앞을 지키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노인정에서 그 수많은 사람들의 밥을 하며 싸움을 이어온 여성농민들, 때려부수러 온다는데 자꾸자꾸 마을에 원두막을 짓는 대추리 아저씨들…. 그런 주민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하루하루 일상을 함께 나누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다행입니다.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흘러도 이 시간들을 너무나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간직할 것입니다. 달래가 낳은 강아지 네 마리는 아직 눈도 제대로 못 뜨고 걸음을 떼기도 힘들어 보입니다. 하루 종일 잠만 자는 강아지들이 9월이 되고 찬바람이 많이 불면 깡충거리며 뛰어다니겠지요.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이 그런 강아지들을 보면서 올 가을, 겨울을 잘 이겨내고 올해에도, 내년에도 이 곳에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야만적인 국가폭력의 벼랑 끝에서도 질긴 싸움의 끈을 놓지 않는 주민들은 제가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끝을 알 수 없지만 주민들과 함께 끝까지 함께 저항하고 이 땅을 지켜낼 것입니다.
[%=사진1%] 장마와 폭염을 뚫고 하중근 열사투쟁이 힘겹게 불씨를 잇고 있다. 그러나 열사투쟁은 우리의 바람만큼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그 와중에 포스코와 정권은 열사가 넘어져서 죽었다는 기만적인 부검결과를 발표하며 언론을 통제하려 들고, 강경진압 일변도의 파렴치한 작태로 일관하고 있다. 8월 12일 타결되었다고 보도된 건설노조의 단체협상 역시 사측의 이중적인 태도 때문에 아무런 진전이 없다고 한다. 이제 열사투쟁의 칼끝을 벼려, 9월 투쟁의 기본방향을 곧추 세울 때다. 도덕적 울분과 단순폭로를 넘어 사회정의와 노동기본권 쟁취투쟁으로 도덕적 울분에 기초한 일점돌파식 단순폭로형 전술은 오늘날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부도덕한 권력의 비밀과 그것을 숨기고 지탱하는 권위적인 폭력의 시대, 그 시절 우리의 투쟁방식은 은폐된 사건을 폭로하고 여기에 기반을 두어 지배체제의 균열을 가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노무현 정권 역시 군사정권에 뒤지지 않는 폭력성과 부도덕성을 자랑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여전히 많은 민중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개혁의 비밀스러운 반민중성이 폭로된다고 하여 바로 전민중적이 투쟁에 나서지는 않는다. 광주의 비밀은 알리는 것만도 힘겨운 일이었고 동시에 그 자체로 충분했지만, 신자유주의개혁의 비밀은 더 많이 더 넓게 폭로됨과 동시에 원인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구하지 않는다면 아무 실효성이 없다. 정권에 대한 일점돌파식 폭로와 타격이 지배체제의 균열을 불러일으켜 (지배체제의) 위기를 가속하는데 맞추어졌던 투쟁전략은 노동자민중의 대안적인 연대연합을 형성하는 것으로 이동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으로부터의 정치적 독립과 단일정치전선 수립을 위한 대정권 투쟁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러나 모두가(좌우가 동시에) 반대하는 정권에 대한, 그것도 모두가 경멸해마지 않는 인격화된 권력으로서 노무현 개인에 대한 도덕적 단순 폭로만 있다면, 이는 자칫 타인에 대한 불신과 증오의 감정만을 증폭시킬 뿐이다. 이런 투쟁은 노동자민중의 대안적 연대연합 창출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는데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모두가 구조조정의 대상이라는 것 역시 너무나 상식적이고 공공연한 비밀이다. 나도 해고될지 모른다는 사실을 몰라서 연대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구조조정 이외의 대안에 관한 합의가 부재한 상황에서 우선 당장 해고되기 전까지라도 바짝 벌어서 대비하자는 개인적 전망이 연대의 전망을 압도하는 것이다. 또한 단지 대중의 심성이 죽음에 대해 무뎌지고 이기적으로 변질된 것도 아니다. 공동의 미래전망이 무너짐으로써 일상화한 폭력이 출현하게 된 현실에서, 언제 나도 저런 꼴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빠진 개인들이 서로에 대한 불신과 자조적인 비웃음을 이겨내고 연대를 통한 집단적 대응방식으로 나가는 길은 그리 간단치 않은 여정이다. 그러므로 도덕적 울분에만 의존하는 선전, 운동 방식은 투쟁의 대중적 확산과 참여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개혁은 금융세계화와 군사세계화, 노동 불안정화라는 세 가지 형태로 진행된다. 그리고 이 세 형태의 공격은 각기 다른 양상의 폭력과 불평등을 양산해낸다. 물론 다종 다기한 신자유주의공세의 파괴적 효과들은 하나의 연관 속에서 전개되는 필연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그 같은 사실은 정책개혁을 추진하는 지배집단의 머릿속에서나 명확하다. 현실에서 구체적인 공격을 직접 경험하게 되는 노동자 민중들에게 이처럼 비극적이고 천인공로할 사건들은 말 그대로 개개의 우발적인 사건 사고일 뿐이다. 지난해 전용철 열사를 가격한 날선 방패는 부산 아펙(APEC) 정상회의 사수를 위해 동원된 병력의 무기였고, 하중근 열사의 머리를 내리친 방패와 소화기는 한미FTA를 방어하기 위해 동원된 무기였다. 이번 사건은 보수언론이 이름 지은 이른바 ‘포항건설노조사태’가 아니라 노동의 불안정화에 따른 사회적 배제와 노동기본권박탈에 따른 필연적 결과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폭로하고 해설해야한다. 더 나아가 또 너무나 당연하게도 사건의 마무리는 사태해결의 맥락과 유족보상의 수준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기본권확보와 사회정의회복을 위한 노동자 민중간의 대안적 연대 연합의 확대만이 진정한 해결방책임을 실천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포항에서 전국으로, 건설노조투쟁에서 비정규직 노동기본권투쟁으로 더욱이 이번 하중근 열사투쟁은 지난해 전용철 열사투쟁에 비해서도 좁은 울타리에 갇혀 있는 형국이다. 전용철 열사투쟁이 투쟁초기부터 쌀개방철회/정권규탄이라는 전국적이고 정치적인 중심점을 분명히 했던 것과 달리, 하중근 열사투쟁은 비정규직 노동기본권쟁취투쟁이기 이전에 건설노동자 그것도 포항지역 포스코건설노동자들의 투쟁으로만 비춰지고 있다. 보수언론들의 외면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두 세 차례 열린 포항집중집회와 포항건설노조 상경투쟁단의 헌신적 투쟁을 서울을 비롯한 여타 지역의 투쟁계획이 뒷받침 못해주고 있다는 현실은 이런 상황을 고착화하는 더 큰 장애요소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각 지역별 현장선전과 소실천에서 하중근 열사투쟁이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쟁취투쟁이라는 주장을 확산해야 한다. 하중근 열사의 죽음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이 완전히 무시된 상황의 필연적 귀결이며, 따라서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쟁취투쟁의 차원에서 하중근 열사 투쟁이 전국화하고 확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 절실한 과제다. 9월 FTA 3차 협상, 비정규노동악법, 노사로드맵 저지투쟁, 평택과 포항을 결합해야만 한다 열사를 살해한 1077, 1078 부대가 5월 4일 평택 대추 초등학교 철거 작전 부대였다는 사실은 전용철 열사를 때려죽인 이종우기동단장이 평택 과잉진압의 현장책임자였다는 사실만큼이나 충격적이다. 평택에서는 이제 곧 강제철거가 자행될 예정이며, 9월에는 기만적인 FTA 3차 협상이 미국에서 진행될 것이고, 정기국회에서는 그동안 미뤄져 왔던 비정규노동악법과 노사관계법 개악이 처리될 예정이다. 이 모든 사안들이 하나의 신자유주의 공세에서 비롯하는 다른 형태의 결과라는 점은 분명하다. 물론 이러한 사실 확인과 당위적인 주장만으로는 현실적으로 나눠져 전개되고 있는 평택과 포항투쟁, 노동악법투쟁과 포항투쟁이 결합되기는 어렵다는 점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 이들 투쟁들 간의 실천적인 결합을 모색하지 않는 한 다른 활로는 없다. 이제까지 이를 결합하려는 시도들은 각각의 투쟁의 요구를 공동으로 내거는 수준과 일정을 조정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내딛고자 한다면, 이 때 중요한 것은 정치적 공동과제를 합의하고 형성해내는 일일 것이다. 이 모든 사안들의 기획 집행자인 노무현정권의 책임을 묻는 정치적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노무현 정권 퇴진투쟁이 전선의 중심에 서야 한다. 물론, 노무현 정권퇴진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퇴진슬로건을 내건다고 우리투쟁의 난관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각각의 투쟁과 사회운동들의 독자성을 훼손하는 방식의 연대 또한 투쟁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잘못된 방향이다. 그러나 그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상기한 정치적 공동과제를 중심에 놓고, 각각의 투쟁 사안들이 이에 대한 공동투쟁의 합력을 드높일 수 있게끔 자신의 투쟁 국면을 바꿔내고, 또 이 같은 흐름이 신자유주의라는 반동적 공세를 강화하는 노무현 정권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정치적 부담으로 돌아가게끔 투쟁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 이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당면과제다. 하중근 열사투쟁이 평택강제철거 저지투쟁의 정치적 기운을 북돋을 수 있도록 지지·연대하며, FTA 투쟁과 노동악법투쟁이 하중근 열사투쟁의 전망을 확보하는 것. 다시 말해, 실제적인 정치적 과제를 중심에 놓는 공동투쟁 태세를 확보하는 일, 그럼으로써 고립과 정체상황에 직면한 개개 투쟁전선의 기운을 북돋우어 반신자유주의 전선의 공세적 전환을 이루어 내는 것.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강제주택철거를 막아내기 위한 우리의 자세 [%=사진1%] 국방부가 통보한 대추리, 도두리 강제철거예정일이 8월을 넘기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대추 초등학교를 부수고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는 농민의 들판에 군부대를 주둔시키고 난 뒤, 이제는 주택철거를 자행할 것이라며 주민들에게 6월 30일까지 이주하라고 통보를 해놓았다. 그러나 7월과 8월 무수히 많은 철거예정 소문이 횡행하였지만 철거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날마다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과 평택지킴이들을 옥죄고 있는 폭력적인 위협은 이 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국방부가 통보한 빈집철거의 목적은 현재 빈집에 거주하고 있는 스물 다섯 명의 지킴이들을 주민들로부터 분리시키고 주민들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극단으로 몰고 가려는 것이다.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를 외부세력으로 규정하고 주민들의 요구를 보상 문제로 왜곡시켜 이 싸움을 단순히 하나의 이익집단의 문제로 치부하려했던 탄압이 이제는 강제철거위협과 함께 보다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심리적, 정신적으로 지칠 대로 지친 주민들을 회유하고 대외적으로는 매일 강제철거가 '이제 곧!' 시작될 것이라는 엄포를 놓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지난 7월 25일 주한미군과 함께 '미군기지이전사업단'을 창설하고 평택기지이전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공표했다. 또 윤광운 국방장관은 8월 24일 '용산기지 공원화 선포식'을 기념하는 기고에서 '평택 미군기지에 제공되는 땅이 349만평인 반면, 전국적으로 돌려 받는 면적은 그의 15배인 5,100만평'이라며 '국가발전측면에서 평택시민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다. 노무현 정권은 학교와 땅을 빼앗기고, 이제 집까지 빼앗기게 될 처지에 있는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지난 4년 간의 눈물겨운 투쟁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수만 명의 시민들이 약 열 차례에 걸쳐 평택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는 대중적 투쟁을 벌여냈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에게 이는 마치 없었던 일이나 하찮은 동요로 치부되었다. 하중근 동지를 죽인 날카로운 그 방패날은 이제 다시 대추리, 도두리 주민을 향하고 있다. 폭력정권, 살인정권은 생존을 이어가려는 국민들에게 날마다 심리적 압박의 강도를 높이며 기지이전과 강제퇴거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재협상의 여지를 부정하는 정권 노무현 정권의 반민중성과 폭력성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는 지금, 한미동맹 틀 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평택미군기지이전사업에 대한 논의는 다시 한 번 노무현 정권의 본질을 보여준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의 시기를 둘러싸고 한국과 미국은 서로 다른 입장을 제시하고 있으나(한국은 2012년, 미국은 2009년) 양국 모두 환수의 시기를 주한미군의 평택기지 이전 완료시점으로 사고하고 있다. 이는 현재의 전시작통권 환수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측면이며, 평택기지확장이전 공사의 조속한 완료를 주문하는 미국의 압력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도널드 럼스펠드 미국방장관은 윤광웅 국방장관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2009년에 한미연합사 이전과 전시작통권 환수가 한 번에 실행되기를 원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는 해외주둔 미군재배치(GPR) 계획에 따라 주한미군의 평택기지이전이 2008년까지 완료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이와 함께 미국은 현재 40%를 밑도는 한국의 방위비 분담 비율을 50%로 상향조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전시작통권 환수가 결코 한미동맹에서의 한국정부의 자주성을 의미하지 않음을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다. 미국은 한미연합사의 평택이전을 전시작통권 환수의 조건으로 내걸면서 한-미 전쟁동맹의 의미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다. 한편 지난 8월 15일자 조선일보에는 한 군사전문 기자가 '향후 전시 작전통제권 단독행사 추진과 주한미군 재편 과정에서 주한미군 추가 감축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금석이 평택기지'라는 군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또한 전시작통권에 대한 한국군의 단독행사가 이뤄지면 주한미군 재편 수요가 발생하기 때문에 기지규모를 적절히 축소하는 것이 한국 내 반미감정완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미군 측 평가를 보도하였다. 즉 평택기지확장부지의 총 285만평 중 용산기지 이전부지는 38만평에 불과하고 2사단과 다른 미군 기지들이 옮겨 올 지역은 247만평에 이르는데 결국 미2사단은 주한미군 감축예정부대인 보병부대라는 것이다. 평택미군기지 확장이전사업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최소한의 국민적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로 추진되면서 부지규모와 비용문제부터 주민강제퇴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원의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미국에서 요구하고 있는 미군기지 확장이전계획은 전략적 유연성을 전제하며 한국군의 자기위상의 변화도 동시에 추동하고 있는 한미동맹 성격 변화의 한 단면이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평택기지이전에서 자국의 안보와 군사전략에 대한 중차대한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이다.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동북아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직격탄이 될 것임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노무현 정권은 여전히 재협상의 여지를 전면 부정하고 있다. 이는 분명히 미 군사패권에 종속되어 있는 한국정부의 무능함 때문이 아니다. 살인정권은 여든 살의 농민들이 2년 동안 매일 내뱉는 눈물어린 절규를 '국책사업'이라는 단호한 표현으로 묵살하며 또다시 국민을 서서히 죽여가고 있는 것이다. 평택기지이전협상에서 감축될 가능성이 있는 보병부대의 부지 이외에 38만평의 주한미군의 골프장 부지는 이전과정의 옵션처럼 결정되어 있다. 60년 동안 농민의 피와 땀으로 갯벌을 옥토로 만들어낸 땅이다. 그 목숨과도 같은 땅이 전쟁연습을 하는 군대의 골프장으로 전락하게 되는 비극을 만들고 있는 노무현 정권은 전쟁을 위한 군대만큼 그 스스로도 충분히 가공할 만한 폭력정권이다. 평택투쟁이 전국적인 투쟁이 되어야 하는 이유 추수를 해야 할 9월, 들판은 군부대와 경찰들, 철조망으로 시커멓게 둘러싸여 있다. 시민들이 대추리, 도두리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경찰의 불심검문 앞에 연극을 꾸며대는 굴욕을 참아야만 한다. 주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경찰과 국방부 직원들에 의해 감시되고 있으며 이 기가 막힌 인권유린상황들을 제한적으로라도 알려냈던 언론보도조차 이제 곧 차단될 예정이다. 주민들과 함께 목숨을 걸고 이 땅을 지키겠다고 결의한 스물 다섯 명의 평택지킴이들과 끊임없이 대추리, 도두리를 찾아 모여드는 시민들의 평화의 발걸음만이 무지막지하게 자행될 강제철거를 막아낼 수 있는 힘이다. 노무현 정권은 한치 앞의 미래도 예측할 수 없도록 상황을 오리무중으로 빠뜨리고 투쟁의 주체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며 상식과 윤리를 굴복시키고 있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대추리의 내일을 예측할 수 없다 해도 저 폭력살인 정권이 이 땅의 평화와 생명을 어떻게 짓밟을 것인가는 똑똑히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9월로 넘어간 강제철거는 주민퇴거조치와 함께 보다 광폭하고 무지막지한 폭력을 앞세워 자행될 것이다. 이미 국민을 상대로 군사작전을 펼친 노무현 정권은 한미동맹의 현대화와 기만적인 '자주국방'에서 정치적인 우위를 점하기 위해 주저 없이 '국책사업'을 추진해갈 것이다. 2006년 하반기 대추리, 도두리에서 진행될 그 처절한 강제철거저지 투쟁은 모든 것을 빼앗긴 이 땅 민중의 분노와 울분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하나의 보편적인 상징이다. 그러나 단지 현지에서의 투쟁만으로 그 온전한 의미가 대중적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는 없을 것이다. '올해에도 농사짓자!'라는 대중적인 투쟁의 방향은 현재 들판을 대부분 빼앗겨 현실적으로 대규모 농사를 짓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더 이상 평택투쟁의 현 정세를 반영하지 못한다. 과연 지금 어떤 투쟁의 방향이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투쟁의 보편성과 대중적 정당성을 되찾아낼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한미FTA저지투쟁과 노사관계로드맵저지투쟁 등 2006년 하반기에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노무현 정권에 저항하는 민중의 큰 대중투쟁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형국이다. 어느 것 하나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절박한 싸움이고, 하나 하나가 모든 운동주체들의 연대와 단결을 필요로 하는 싸움이다.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투쟁이 돌파해야 하는 과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대추리, 도두리에서의 처참한 투쟁에 내재한 극명한 상징, 즉 삶의 권리를 빼앗긴 민중들의 분노를 바로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투쟁'이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평택투쟁이 확산시키는 그 대중적 공분은 한미FTA를 저지하고 노사관계로드맵을 막아내는 민중의 분노가 될 수 있어야한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저지하는 우리의 싸움이 대추리, 도두리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정치적 의미를 확산시켜 전국적인 투쟁전선을 형성해낼 수 있을 때, 폭력 살인정권에게 사망선고를 내리는 민중의 총궐기는 진실로 가능해진다. 그것이 바로 하반기 극악무도한 강제철거의 폭력을 막아내는 실질적인 우리의 동력이 될 것이다. 9.24 평화대행진을 시작으로 노무현 정권 퇴진 민중총궐기를 조직하자 평택 범대위는 9월 1일 대표자회의를 통해 10만 준비위원을 모집하는 9.24평화대행진을 조직적으로 결의할 예정이다. 범대위 각 조직과 중앙 실천단은 수도권과 서울지역에서 지하철, 거리 선전전을 활발하게 벌여내며 시민들에게 9.24대회를 알려내고 있다. 포항 건설노동자의 처참한 죽음과 연이은 건설노조투쟁에 대한 탄압, 9월 5일부터 시작되는 한미FTA 3차 협상에 대한 반대, 9월 언제가 될지 모르는 강제철거의 문제들 모두가 9.24 평화대행진에 모이는 국민들의 분노가 되어야 한다. 한미FTA 3차 협상 저지투쟁을 시작으로 9월 24일까지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 한미FTA협상반대 전국행진이 준비되고 있다. 17일에 걸쳐 진행되는 이 대장정에서 전국 행진단은 상반기 전국 곳곳에서 평택과 FTA 저지투쟁을 일구어왔던 지역의 운동단위들과 함께 9.24평화대행진의 정치적 의미를 함께 결의할 것이다. 9.24대회의 10만 준비위원 모집사업을 전국화하고 9.24대회에서 강위력한 민중의 분노를 보여줄 수 있도록 실질적인 투쟁동력을 조직해야 한다. 그리고 한미FTA협상을 저지하기 위한 지역에서의 다양한 실천들을 함께 고민하고 무장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킬 것이다. 마지막으로 10월, 11월로 이어지는 민중총궐기투쟁에서 노무현 정권의 반민중성과 폭력성에 철퇴를 가하는 투쟁을 함께 결의해나갈 것이다. 2006년 하반기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투쟁은 더 이상 하나의 투쟁 사안이 아니다. 평택에서 벌어지는 강제철거의 극단적 폭력을 저지하는 것을 하반기 민중투쟁의 보편적인 상징으로 선전 선동해내자. 노무현 정권의 반민중성을 타격하는 정치적 방향성과 공명할 때 평택과 한미FTA, 노사관계로드맵 투쟁 모두는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1%] #1 언제부터였을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이 대개 그러하듯, 이번에도 역시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자기 전 침대에 누워 맥주를 홀짝이며 하루를 마감하는 걸 즐기고 있었고, 그건 나에겐 하나의 습관 이상이었다. 나를 비난하고 싶은 어떤 날 그건 자기연민의 시간이었고, 반대로 세상을 비난하고 싶은 날엔 오만한 자기도취의 시간이 되어주었다. 또 누구도 비난하지 않아도 좋은 어떤 날엔 머쓱한 보상 그 자체가 되기도 했다. 내가 이 허영인지 낭만인지를 즐기는 와중에 맥주와 삼각김밥의 어울림이 절묘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들의 어울림은 절묘하다기보다는 적절한 것일 테다. 그 이상의 다른 어떤 조합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조화롭다기보다는 서로가 적절한 어우러짐의 균형을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그리고 상대를 고양시키기에 충분한 정도로만 자극적이다. 자기절제와 균형감각. 더 없이 올바른 술과 안주의 역분이다. 게다가 이 조합은 아버지의 무심한 가르침을 실행하는 데도 그만이다. 밥은 술과 함께(술은 밥과 함께를 잘못 쓴 것이 아니다)의 지론을 항상 몸으로 실천하시는 아버지는, 당신을 닮아 언제나 술 언저리를 서성거리는 아들에게 종종 술을 씹어먹을 줄 알아야 진짜 애주가라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 국이나 탕, 찌개 없는 마른 밥을 먹을 때 이 술 씹어 먹는 법의 진가가 드러날 것은 자명한 일. 더운 여름 우걱우걱 삼각김밥을 씹으면서 꿀꺽꿀꺽 넘기는 맥주 한잔. 쾌락의 말초. 무덥던 8월 초, 그 날도 맥주와 삼각김밥을 사들고 땀을 줄줄 흘리며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집에 들어왔다. 최고의 불쾌지수, 흐르는 땀, 차가운 맥주와 삼각김밥. 나르시시즘의 시간에 빠질 모든 준비가 끝났다. 뭐 빠진 건 없나? 그래, 만화책. 아마 만화책이 이 자위적 유희의 부족함을 완성시켜 줄 것이다. 두리번거리며 방을 둘러보다가 적당한 책을 발견했다. 조 사코(Joe Sacco)의 『팔레스타인』. 얼마 전 유학간 친구녀석에게서 싼 맛에 충동구매한 50권의 책들 중 하나였다. 음. 이 여름밤의 낭만에 비판적 지성까지 동참하는군. 이제 맥주와 삼각김밥은 더 이상 B급 조합이 아니다. A급 조합을 구성했다는 사실에 만족해하며 만화책의 첫 장을 넘겼다. 그리고. #2 『팔레스타인』은 코믹 저널리스트 조 사코가 15년 전의 겨울, 팔레스타인 점령지에서 보낸 두 달간의 기록이다. 사코는 무슨 대단한 인도주의 이념을 실천하는 용기있는 인권운동가라거나 국제평화주의로 단호히 무장한 종군기자가 아니다. 사코 자신의 말처럼 그는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시덥잖은 만화가일 따름이다. 자신의 만화가 뜨려면 갈등이 필요하고 평화는 돈이 되지 않는다고 몰래 뇌까리는 그런 속물 만화가일 따름. 조 사코 스스로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팔레스타인 문제』가 그를 팔레스타인으로 이끌었다고 술회하고 있지만 초반 얼마간 국제분쟁에 관해 뚜렷한 입장을 가진 것도 아닌 이 사람이 도대체 왜 여기 팔레스타인까지 날아와 투덜거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만화에서 읽혀지는 조 사코라는 캐릭터는 분명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은 서방의 저널리스트일 뿐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만화에 진정성을 부여하는 건 사코의 가벼움이다. 스스로 자기연민에 빠져있는 동안에는 코메디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자기의 아픔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을 정도로 객관화하고 희화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코는 자신의 만화에서 자기를 비웃음거리로 만드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는 소리 높여 이스라엘의 점령정책이 불합리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짜증내고 투덜거리고 또 두려워할 뿐이다. 그렇지만 그런 사코의 모습은 고민조차 치열하지 못한 나의 안이함을,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해 쉬운 결론을 내리려는 내 게으름을, 합리화해선 안될 것들을 합리화하고 있는 우리의 비겁함을 서서히 깨닫게 한다. 그제서야 내가 이 만화를 보면서 느꼈던 기묘한 경험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 얼마간은 작가인 조 사코를 비웃다가 또 다음 얼마간 그를 백안시하게 되지만 결국 어느 순간 그의 감정에 공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긴 한숨을 내쉬고 나면 사코가 겪은 답답함이 내게 전이되고 그가 느낀 공포를 내 감정에 이입하게 된다. 그렇다. 바로 이것이 저널리스트 사코의 전략이었던 것이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관한 기념비적 저작인 아트 슈피겔만의 『쥐』에서도 무거운 역사에 현실감각을 불어넣었던 것은 바로 진실임을 믿을 수밖에 없게 하는 캐릭터의 설정이 아니었던가? 사코는 자신의 위험하고 곤혹스러웠던 팔레스타인 여행이 여느 코믹에서처럼 영웅적인 무엇으로 포장되는 걸 겸연쩍어 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철저한 계산에 따라 독자들을 설득하기에 가장 적합한 캐릭터를 설정하고 그 캐릭터를 작가와 동일시할 수 있도록 명석한 장치를 삽입했던 것이다. 여기에 절묘한 앵글과 예리한 세부묘사가 더해져 어둡고 지루할 수 있는 이 팔레스타인 난민촌의 현실이 시각적 충격과 결합한다. 진정성은 그렇게 획득된다. #3 『팔레스타인』은 각각 대여섯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9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이스라엘 정부와 군대의 야만적 탄압에서부터 시오니스트 정착민들의 일상적인 테러, 팔레스타인의 여성문제, 제1차 인티파다와 그 와중에 전개되는 정치조직들 사이의 알력 등의 주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팔레스타인의 현재를 투사한다. 비록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이지만 그것이 현재성을 잃지 않는 이유는 내가 아는 한 적어도 팔레스타인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폭력, 아니 폭력들. 팔레스타인에서는 법에 기반한 제도적 폭력과 물리력에 기반한 비제도적 폭력이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하게 엮여 일상을 이루고 있다. 정부와 군대, 언론과 기업은 일사분란한 조직적 분업을 통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존엄을 파괴하는 체계적인 메카니즘을 구축한다. 팔레스타인 사람과 접촉해 본 적이 없는 지역에서 이주한 유대인들은 난민촌과 점령지 근무병으로 차출되면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혐오감을 학습하고 집단수용소의 감시병들은 짐승처럼 살고있는 팔레스타인 죄수들을 보며 그들을 인간이 아닌 무엇이라고 인식하도록 훈육된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억압적 국가기구로서 기능하고 있는 장치들이 반대로 이스라엘인들에게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로 기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넘쳐나는 다채로운 폭력들의 박람회 같은 팔레스타인에서도 가장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건 팔레스타인인들의 절대빈곤이다. 갑작스레 몰아닥친 유대인들은 땅 없는 백성에게 백성없는 땅을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팔레스타인을 침략했고 1년 만에 수십만이 살고 있던 400개의 마을을 파괴했다. 이스라엘은 인티파다 이후 4년 동안 12만 그루의 올리브나무를 잘랐고 매년 수백 채의 가옥을 파괴하고 있다. 어떤 통계자료에 따르면 가자지구에 있는 자발리아 난민촌은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조밀한 지역이라고 한다. 면적은 신림동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지만 인구는 목포시 인구의 3배에 육박한다. 물론 이는 15년 전의 자료다. 그러면 지금은? 점령정책은 계속되고 있고 가자지구는 세계에서 가장 출산율이 높은 지역 중 하나다. 상황이 좋아졌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진정 팔레스타인은 거의 모든 근대적인 문제가 밀집한 곳이다. 극단적인 종교관을 바탕으로 한 인종주의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고, 서로의 존재 자체가 무한폭력과 인권유린의 핑계가 된다. 100년 전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는 신이 내린 선물인 석유를 위해 민중들의 인권을 대가로 패권을 강화하려 기를 쓴다. 군산자본과 결탁한 서방의 언론들은 오리엔탈리즘을 선동하고 서방의 일부 학자들은 문명의 충돌 운운하며 전쟁의 나팔을 불기에 여념이 없다. 팔레스타인을 제외하고 어떻게 감히 지옥을 운위하겠는가? #4 『팔레스타인』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서 무언가 계속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혼자 덩그러니 방안에 남겨져 있음을 깨닫는 것을 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생각이라는 것을 하는 것이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오리엔탈리즘』의 저자인 에드워드 사이드의 추천사부터 박홍규 교수의 권말언까지 다시 읽었다. 더 읽을 게 없게 되었을 때 나는 분명 당황하고 있었는데, 그건 평소라면 대여섯 권의 만화책을 읽었을 정도의 시간동안 방치된 맥주와 김밥이 증명하고 있었다. 맥주는 김이 빠졌고 김밥은 딱딱하다. 맥주와 김밥의 조합이 절묘한 것인지 적절한 것인지를 따져 묻는 것은 이제는 사치다. 평온해야 할 여름밤은 파괴되었다. 이스라엘과 미국 때문에? 팔레스타인 사람들 때문에? 아니면 조 사코 때문에? 그렇지 않다. 아마도 그건 맥주와 김밥 때문이었을 거다. 김이 다 빠져나간 반쯤 남은 맥주를 들이킨다. 그리고 반쯤 남은 삼각김밥을 다시 입 속에 들이밀었다. 내가 씹고 있는 게 술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걱우걱 꿀꺽꿀꺽. 맥주는 무겁고 삼각김밥은 목이 메이는데 다시 우걱우걱 꿀꺽꿀꺽. 같은 시간 베이루트를 집어삼키고 있을 포연처럼 그렇게. 우걱우걱 꿀꺽꿀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