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연구그룹 보고서 - 제국은 정말 실패하였는가? 존 벨라미 포스터 2006년 12월 26일 ∴ ∴ ∴ 이 글은 2006년 12월 26일 발표된 존 벨라미 포스터의 글이다. 존 벨라미 포스터는미제국주의의 움직임에 대해서 지속적인 관찰을 하고 있으며, 먼슬리리뷰지(Monthly Review)의 편집자로 이에 관한 글을 계속 기고해왔다. 이 글은 미국 내 초당적 정책제안집단인 이라크연구그룹(Iraq Study Group))이 12월 6일 부시대통령과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대해 평하고 있다. 국내에서 많은 이들이 이라크연구그룹의 보고서가 심각한 상태로 변한 이라크전에 대해 미국이 정책실패를 자인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상황에서, 포스터는 이 글에서 이와는 전혀 상반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즉 포스터는 이 보고서가 사실 상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통제력을 재구축하려는 시도로 파악하고 있으며, 이를 신석유법, 생산-참여 협정(Production-Sharing Agreement) 등 이라크 석유의 전략적 가치와 관련된 예시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이 보고서가 표면적으로 “철군(Withdrawal)"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상의 군사력증강을 꾀하고 있다고 폭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미 제국주의의 이해를 위해서라면 이라크의 해체, 분열도 획책할 수 있다고 예측한다. ∴ ∴ ∴ “제국의 실패”는 내가 나의 책인 “적나라한 제국주의Naked Imperialism(Monthly Review Press, 2006)”의 마지막 장에 매긴 제목이다. 이 장은 거의 이년 전 먼슬리 리뷰의 2005년 1월에 실린 사설로 처음 세상에 나왔다. 이글은 다음과 같이 시작했다: “미국은 미제국을 팽창시키기 위해 진행 중인 군사행동에서 심각한 좌절을 만들어 내기에 적당한, 이라크에서의 중요한 패배라는 전망에 직면하고 있다.” 이글은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과 점령은, 전체 중동지역 맡에다 화약통에 불을 붙이는 내전을 위한 조건을 창출하게 될지 모른다. 이러한 관측들은 이후의 사건들에 의해 증명되었다. 그러나 신임 국방장관 로버트 케이츠 조차 미국은 이라크에서 전쟁에 “승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을 때에, 또한 제국은 전적으로 실패한 것은 아닐 수 있다는-적어도 아직은 아니라는- 의미도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거의 보편적으로 이 전쟁이 미제국에게 정치적 군사적 재난으로 비춰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은 여전히 이라크에서 자신의 장기적인 경제적 전략적 목표들 몇 개를 부여잡기 위해 참화 속에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것들의 실현이, 인명과 재산의 손실과는 무관하게, 전쟁을 미국 지배계급의 입장에서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 갈 것이다. 이 전리품들이 무엇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1) (세계 제2의 규모인)이라크 석유 매장량에 대한 통제력, (2) “지정학적 이득”(즉 사활이 걸린 중동 석유 지역에 대한 보다 큰 지배), 그리고 (3) 이 새로운 석유 통치권의 결과로서 미국의 세계 헤게모니의 강화. 이 전리품들의 실현에 결정적인 것으로, 미국은 강제적으로 이라크를 점령했을 뿐 아니라, 미국이 표면적으로 자국 군대를 “철수”시킨 후라도 실질적인 군사적 힘과 역량을 계속 두려고 작정하고 있는 이라크에 장기적인(보통 “영구적인” 것으로 언급되는) 군사기지들을 건설하는 것으로 미래의 목표를 세우고 있었다. 그러한 기지들은 오직 한 가지 공공연한 목적을 가진다: 미국이 가진 힘의 보다 큰 전지구적 투사의 일부분으로서 이라크, 페르시아만, 그리고 주변지역들에 대한 미국의 제국적 힘의 투사 최근에 공개된 이라크연구그룹 보고서에 대한 언론의 논의에서 거의 소개되거나 언급되지 않은 것은 보고서가 제안한 “2006년말-2007년초”를 위한 “이정표들”중 하나가 이라크 정부의 “신석유법” 가결이라는 것이다. 워싱턴은(거대석유회사들의 대표자들과 협력하여) 이 법의 초안을 잡는 것을 도왔을 뿐만 아니라 이것이 확실히 가결되게 하는데 역할을 하고 있다. 새 법률의 완전한 세세항목들은 입수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생산-참여 협정들(production-sharing agreements)”을 수립하려고 의도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생산-참여 협정들은 옛날 제국적 특권체제의 현대적 버전으로, 이라크 석유매장량의 생산과 마케팅에 대한 통제권과 이윤의 대부분을 외국회사들에게 주게 될 것이다. 이와 일치하는 것으로, 이라크연구그룹 보고서의 권고항 63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 “미국은 국제사회와 국제적 에너지 기업들을 통해 이라크의 석유부분에 투자를 장려해야 한다.” 그리고 (2) “미국은 효율성, 투명성, 그리고 책임성을 향상하기 위해, 이라크의 지도자들이 국가석유산업을 상업적 사업으로 재조직할 수 있도록 조력해야 한다.” 다른 말로, 목적은 현재 어떤 메이저 석유수출국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정도로 이라크 석유산업을 사유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의 석유매장지대를 (미국과 영국의 다국적 석유회사들이 지배할 것으로 예상되는) 외국회사들에 의한 완전한 착취에 열어두게 될 것이다. 새로운 생산 참여 협정들은 이 계약에 참여한 지구적 에너지 회사들의 가치를 매우 높여주는 것으로, 이들 회사들은 자기 회사의 회계에 자산으로서 이들이 통제하는 이라크 석유의 생산량과 보유량의 가치를 등재할 수 있을 것이다.(먼슬리리뷰, 2006년 12월호, Notes from the Editors”를 보라) 반전운동 초기의 “No Blood for Oil” 슬로건이 제출되자, 미국 정치, 경제 주류세력과 미국의 언론법인은 물론 이라크 방정식에서 석유의 중요성을 숨기고 경시하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왔다. 이것은 새로운 이라크의 석유법을 다루는, “이라크인들은 석유 세입의 분배에 관한 정책에 접근하고 있다”는 제목의 12월 9일자 뉴욕 타임즈의 첫째면 기사에서 알 수 있다. 이 기사는 전적으로 새로운 이라크 국가의 형성에서 중대한 이슈인, 시아파, 쿠르드족, 수니파 사이에서 석유 세입의 분배라는 이슈에 집중하였다. 그러나 뭔가를 놓치고 있다. 이 글의 광범위하고 상세한 분석 어디에도, 뉴욕 타임즈는 이 새로운 법에서 이라크 석유산업이, 어떤 메이저 석유 수출국도 자발적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을 생산-참여 협정들을 통해, 외국회사에게 대부분 넘어가는 석유 매장량에 대한 실질적 통제력과 더불어, 효과적으로 사유화된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았다. 확실히, 이라크연구그룹 보고서의 권고항 23은, “대통령은 미국이 이라크의 석유를 통제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고 재천명해야 한다”고 밝힘으로써 이 모든 관심들을 누그러뜨리도록 조력해 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부시대통령이 이를 “재천명”하도록 요구받았다는 사실은 그의 원래 성명이 이라크 사람들에게 이런 취지로 그리고 좋은 뜻으로 믿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비록 미국이 이라크의 자국 석유에 대한 법률상 통제권의 “보장”을 제공하였지만, 석유법 초안의 생산-참여 협정들은 이라크로부터 사실상의 통제권을 빼앗기 위해 기안되었다. 뉴욕 타임즈가 이 이슈를 다루지 않은 것은 겨우 이틀 전 런던의 파이낸셜 타임즈의(2006년 12월 7일자) “석유 기업집단들은 그들이 이라크에 들어갈 수 있는 날을 꿈꾼다”는 제목의 기사에서의 분석과 뚜렷이 대조된다. 여기서 우리가 듣기에: “정치적 말다툼은 입법의 역사적 견지가 무엇이겠는가를 가렸다: … 법은 결국 1972년의 산업 국유화를 역전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 돌고 있는 초안들에 따르면, 어떻게든지 생산-참여 협정들을 포함하는, 외국 협력의 다양한 형태들을 허용할 것이다. 이러한 계약들은 석유 회사들에 의해 선호되며 … 만약 석유가격이 상승한다면 그들에게 더 큰 범위의 이익을 가져다준다.” 더 나아가 파이낸셜 타임즈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자회사의 생산을 증가시키고, 매장량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거대 석유 다국적기업들은 이라크의 석유매장지대를 개발하는 기회를 얻기 위해 필사적이게 되었다.” 한 브리티쉬페트롤륨(BP)의 임원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으로 인용되었는데, “전체 산업은, 우리를 포함해서, 이라크에 관심이 있다.” “전지구적 전망에서”라며, 파이낸셜 타임즈가 자신의 대부분의 법인 독자들에게 말하기를, “특히 중국에서 수요가 급증하고 미국, 유럽, 그리고 아시아 일부에 있는 매장지대에서의 산출이 이 지역의 발전과 함께 감소함에 따라 이라크의 석유는 전체 공급에서 점점 중요하게 되었다.” 이라크의 생산은, 파이낸셜 타임즈가 주장하기로, 세계 수요와 일치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매년 4.9%까지 증가시킬 필요가 있다. 이 “석유 기업집단의 꿈”의 주된 장애물은 물론 안보공백으로, 이것은 위험을 대단히 증대시킨다. 이라크는 확고하고 전략적인 군사적 통제 하에 있을 필요가 있다. 이것은 이 나라가 강력하지만 극히 고분고분한 국가에 의해서나, 제국의 힘에 의해서 지배되어야만 한다는 것을(혹은 더 있음직한 것으로 이 둘의 모종의 결합) 의미한다. 오직 이러한 방식으로 수십년에 걸친 생산-참여 협약들과 이것들에서 끌어낸 방대한 잠재적 이윤을 보장받을 수 있다. 앞서의 BP 임원이 말한 것처럼, “우리와 같은 석유회사들이 장기적 탐사와 개발에 스스로 전념하고자 한다면, 안보 상황이 극적으로 개선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것은 이라크의 석유 매장지대가 미 제국의 영향력 안에 남아 있는 것을 확실히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 나라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을 보장받으면서 이라크에서의 전쟁을 종결하는 가장 포괄적이지만 유용한 계획으로서 이라크연구그룹 보고서의 주된 특징들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이라크 석유가 이전보다 더 크게 대두되어 버린, 이러한 유리한 조건에서이다. 초기 언론의 평가들과는 반대로, 초당적 대외 정책의 “현실주의자들”의(제임스 베이커 Ⅲ, 리 해밀턴, 그리고 공동 저자들) 이 보고서는 단순히 미국이 어떻게 이라크에서 빠져나올 것인가에 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전쟁에서 붙잡은 전리품들을 보유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을 추구한다. 이라크에서 통제력을 유지하는 것은 따라서 여전히 완전한 철군에 우선한다. 보이기에, 아직도 실패를 시인하지 않고 게다가 상처를 입은 제국은 여전히 조건들을 지시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라크연구그룹은 사실 상 강력한 이라크 군대의 형성을 가속화하고, 바그다드를 안정화하기 위해 가까운 미래에 이라크에서 미국군대의 “증강”을 계획하였다. 따라서 이들의 보고서는 “미국은, 전투부대들을 포함하여, 이라크 군부대를 지원하고 이 안에 편입되는(imbedded in) 미국의 군사요원의 수를 의미심장하게 증가시켜야 한다”고 말하였다. 사실상 초당적 “현실주의자들”은 이라크에서의 완전한 철군보다는 미국 군사력의 부분적 철군과 재배치에 가까운 무언가를 계획한다. 여기서 2008년 초까지 “병력보호에 필요한 것이 아닌 모든 전투여단은 이라크에서 나가야 할 것이다”라는 보고서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여전히 미국 군대들의 광범위한 역할이 남아있다는 것으로(“이라크 군대에 편입된 부대로서” “병력보호” 지역들에, “신속반응군과 특수작전팀들로서,” 그리고 정보부분과 다른 지원 작전들뿐 아니라 … “훈련, 장비교육, 군사고문 … 그리고 수색구조를 위해”) 이해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이 모든 것이 이라크연구그룹 보고서의 권고항들에 포함되었다. 게다가 이라크연구그룹이 권하는 계획은 불명확한 기간 동안 이라크 군대 내에 편입되는 미국 군대의 수를 다섯 배까지 증가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더 나아가, 우리는 “미국 군대의 절체절명의 임무는 [무기한으로] 신속반응팀들과 특수작전팀들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 팀들은 이라크에서 미군 지휘관에 의해 지극히 중요하다고 고려된 다른 임무들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기회가 생겼을 때 이라크에서 알카에다에 대한 타격 임무들을 착수하는 데 유용할 것이다.”라는 말을 듣는다. 미국은 또한, 미국이 대반란 작전들에 대해 보다 많은 통제력을 가지고 있는 이라크 군대 안에서 중앙 경찰의 “경찰특공대들”을(최초 미국에 의해 조성된 준군사적 살인부대-2006년 5월, 먼슬리리뷰의 “"Notes from the Editors”를 보라) 운용하면서, 이라크 경찰력을 지속적으로 훈련할 것이다. 이라크에서 지속적인 미국의 군사적 역할에 관해 오해가 있을 것을 대비하여, 보고서는 명백하게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심지어 미국이 모든 전투여단들을 이라크에서 철수시킨 이후에도,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의 증원된 주둔뿐 아니라, 이라크에서 우리의 여전히 의미 있는 군사력과, 쿠웨이트, 바레인, 그리고 카타르에서의 우리의 강력한 공군, 지상군, 해군의 전개를 포함한 지역에서의 중요한 군사력 주둔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이탤릭체로 부연되었음) 이러한 군사력들은 이라크 정부를 지원하고, 국가의 해체를 막고, 테러주의와 싸우고, 장비사용을 훈련하고 이라크 군대를 지원하고 외국의 침략을 억제하는 데 유용할 것이다. 짧게 말해, 이것은 이라크를 통제하고 이 나라의 “주권”을 비굴한 신식민지의 그것으로 제한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상상가능한 군사적 임무들에 유용할 것이다. 이라크연구그룹의 광범위하게 언급된 권고항 22는 “대통령이 미국은 이라크에서 영구적인 군사기지들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천명해야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권고항의 다음 문장은 다음과 같이 선언하면서 처음 내용을 허물어트린다: “만약 이라크 정부가 일시적인 기지 하나나 다수의 기지들을 요청하려 한다면, 그러면 미국정부는 다른 어떤 정부의 경우에서도 그러하듯이 그 요청을 고려할 것이다.” 그러한 “일시적인” 기지들은 명백하게 매우 장기간의 것이 될 수 있다. 이라크연구그룹 보고서에서 가장 불길한 진술은 국가의 해체와 관련된다. 미국은, 보고서에서 말하길, 정치적인 “세 지역으로의 권한이양”과 이런 까닭에, 비판자들이 시사하고 있는, 강력한 아랍 석유국가의 약화를 지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만약 사태들이 이러한 방향으로 뒤집을 수 없게 움직였다면, 미국은 … 지역 불안정을 최소화하기 위해 상황을 관리해야 한다. 미국은 바그다드의 정부 당국들에 의해, 특히 석유 세입의 문제에 대해, 중앙 통제가 가능한 만큼 지원할 것이다.” 이것이 이라크의 안정과 석유의 공정한 분배를 위한 미국의 지원으로 읽힐지도 모르지만, 이것을 다른 어떤 목표들(국민국가가 실행가능한 것으로서 이라크의 존속과 이 나라의 해체 방지를 포함하여) 이상으로 석유제국을 유지하려는 필요에 관한 진술로서 이해하는 것이 더 확실하다. 이 모든 것은 미제국이 이라크에서 적어도 아직은,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가리킨다. 미국이 강력하게 귀속된 이익들이라는 관점에서, 이라크전쟁은 여전히 비용을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석유는 피보다도, 특히 다른 사람들의(무고한 이들을 포함하여) 피보다도 더 가치가 있다. 이라크는 정치적 재앙일지 모르지만, 이것은 계산할 수 없는 차원의 경제적 지정학적 상품(prize)으로 남아있다. 그 결과 제국은 아직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적나라한 제국주의의 시대에 남아있다. -------------------------------------------------------------------- 존 벨라미 포스터는 오리건대학교의 사회학교수이며, 맑스의 생태주의(Marx’s Ecology), 가녀린 행성(The Vulnerable Planet),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생태주의(Ecology Against Capitalism), 그리고 적나라한 제국주의(Naked Imperialism)의 저자이다. 그리고 먼슬리 리뷰의 편집장이다. 출 처 : http://mrzine.monthlyreview.org/foster121206.html (출처 : 해방연대 홈페이지)
이라크 철군논의와 평화적인 길의 의미 엄 한 진(한림대 사회학과) 1. 대안을 요구하는 이라크 문제 지난 12월 6일 공개된 <베이커 보고서>를 계기로 본격화된 철군 논의 등 앞으로 이라크정세에 대한 전망은 전지구적인 대테러전쟁, 동유럽․중앙아시아․중동 등 서유럽 및 러시아의 접경 지역에서 격화되고 있는 미국과 이들 지역간의 헤게모니 투쟁, 그리고 중동문제 일반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대테러 전선의 하나로서 이라크의 상황은 조금도 호전되지 않고 내전 상태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제는 국제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아프가니스탄을 닮아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다시 세력을 결집하고 있는 것처럼 이라크에서도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점령군에 대한 저항이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라크인들의 고통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2006년 10월에는 3,709명으로 한 달 희생자수의 최고기록을 경신하였고 걸프전 이후 서방의 경제봉쇄는 이라크 민중의 생존마저 위협하고 있다. 한편 최근 중동 분쟁의 새로운 양상의 하나는 팔레스타인문제가 주변국으로 확산되고 이렇게 확대된 팔레스타인문제가 이라크문제와 연계됨으로써 분쟁이 중동 전체로 번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9․11테러를 빌미로 한 미국의 이라크 점령이 계기가 되어 이제 팔레스타인문제와 이라크, 이란 등이 연관된 걸프지역 갈등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른바 대테러 전쟁의 틀에서 연계되는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제2차 이라크 전쟁에 뒤이은 지난 7, 8월의 제2차 레바논 전쟁은 레바논 전쟁(1975-1990)과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 제1차 인티파다(1987), 걸프전(1991)으로 치달은 지난 중동전쟁의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유사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과거 걸프전이 평화협상의 시대를 열었듯이 최근 극도로 불안정해진 이라크와 중동의 상황을 타개하는 대안으로 철군과 외교적 해결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2. <베이커 보고서>와 그에 대한 반응 최근의 변화는 미국 자체에서 시작되었다. 이라크전쟁은 점점 더 혼돈에 빠져들고 있고 저항세력과 자살테러의 증대로 미군의 이라크 주둔이 점점 더 위험해졌다. 게다가 대테러전쟁으로서의 이라크 전쟁은 역설적으로 미국 내 새로운 테러의 가능성을 높인다. 그리고 현 상황을 타개하는데 미군의 철수 이외에는 다른 가능한 대안이 없어 보인다. 지난 11월 미 의회선거의 결과는 이라크문제에 대한 불만, 이란과의 대결에 대한 망설임의 표현이었다. <베이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66%가 이라크 전쟁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고 60%가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라크전쟁에 분명히 반대하지 않는 정치인은 정치적 입지가 약해지는 등 변화양상이 뚜렷하다. 정치권에서도 공화, 민주를 막론하고 철군론이 급물살을 타면서 2003년 3월 이라크침공이 개시된 후 처음으로 2006년 11월 의회에서 철군안이 제안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의 대이라크 정책의 변화를 촉구하는 <베이커 보고서>가 제출되었다.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들로 구성된 <이라크연구모임>이 펴낸 이 보고서는 일종의 위기탈출 방안을 담고 있다. 140쪽 분량의 이 보고서에는 모두 79개 항의 권고안이 제시되어 있는데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 2008년 초까지 이라크 주둔 미군의 대부분 철수 △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 △ 이라크문제 해결에 주변국들의 참여 △ 시리아 및 이란과의 대화 △ 이라크에 대한 <국제지원그룹> 구성 △ 구 바트당 지도자들의 이라크 정치에의 복귀 이 중 민감한 사안인 시리아 및 이란과의 대화 촉구는 이라크에서의 군사적 실패로 인해 미국이 중동정책에 대해 주변국들의 협조가 절실해졌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한편 이 보고서에 대한 반응을 보면 프랑스 등 유럽의 정치인들 대부분은 미국의 신보수주의 외교정책의 종식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여겨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반면 이라크 현 수상이 포함된 이라크의 시아파, 특히 현 정부의 대통령이 포함된 쿠르드족, 그리고 이스라엘은 사안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보고서에 나타난 주요 제안들에 반대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라크에서의 미군 철수를 자신이 직접 주변국들과 맞서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철군안에 반대했다. 겉으로는 철군이 이스라엘의 안전에 대한 위협을 가중시키게 될 것이라는 점을 내세우지만 이스라엘이 반대하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지역정세가 안정적인 국면으로 접어들고 그간 이라크에 집중된 국제사회의 중동 관심이 중동문제 전반으로 옮아가게 되면 그 중 제일 비중있는 사안인 팔레스타인문제가 다시 중요하게 부각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그간 이라크에서의 대테러전쟁의 논리에 힘입어, 그리고 이라크전쟁의 그늘에서 마음껏 자행할 수 있었던 팔레스타인인 억압에 대해 국제사회의 견제가 조금은 심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이 꺼리는 정착촌 문제, 난민문제, 예루살렘의 지위문제 등 팔레스타인문제의 핵심 사안들이 다시 부각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지역에 대한 경제적 통합에만 몰두하는 미국과 유럽도 팔레스타인 문제의 근본 해결에는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부시정권의 관심은 갈등의 해결보다는 석유자원의 안정적 확보, 그리고 미-모로코 자유무역협정(2004년)을 시작으로 2013년까지 중동에 자유무역지대를 창설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3. 예상되는 <평화의 길>의 중동적 의미 한편 <베이커 보고서>에 대해 부시는 아직 두드러진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지만 거기 담긴 요구를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을 터이고 그 대안을 찾는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부시가 보고서에서 제시된 권고안 중 어떤 것을 어떤 식으로 수용할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백악관에 따르면 부시는 가능하면 크리스마스 이전에 이라크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 하니 아직은 기다려봐야 할 것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부시는 대부분의 제안에 대해 머뭇거린다. 즉각 철군은 이 지역 전체를 불안정과 전쟁으로 몰아갈 것이라며 반대하고, 이란과의 협력관계는 이 나라가 핵을 포기할 경우에, 시리아와의 협력관계는 오랫동안 후견인 역할을 해 온 이웃나라 레바논에 대한 개입을 중지할 경우에 가능하다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팔레스타인 문제 등 중동문제에 대한 외교적 노력에 대한 제안은 수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것은 이 협상의 길이 한편으로는 현 상황에서 불가피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라크 침공 이후 격화된 중동 전반의 갈등을 은폐하는 효과적인 방편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 중동. 걸프전 이후 아버지 부시는 이스라엘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평화협상의 길을 택했다. 우리는 또다시 10여 년 전처럼 또 다른 마드리드 협상, 오슬로협정 등 수많은 평화회담과 협정을 보게 될지 모른다. 그런데 90년대의 경험을 보면 이런 식의 평화의 길은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길이면서 그러나 더 격렬한 모순의 폭발을 준비하는 일시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당초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게 설정된 이 평화의 길 뒤에는 2차 인티파다 이후의 내전상황과 2차 이라크전쟁, 2차 레바논전쟁 등 더욱 비합리적이고 잔혹해진 폭력적인 양상이 그 뒤를 이었다. 1999년 2차 인티파다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고통만 더 안겨준 지리한 평화협상에 대한 환멸의 표현이었고 2006년 1월 하마스의 총선승리는 이스라엘과의 대화를 통한 평화의 길에 대한 불신의 표현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워싱턴포스트지가 내부 소식통을 통해 얻어낸 부시행정부의 대이라크 정책 변화 시나리오 세 가지 중 하나는 바로 바그다드의 치안확보와 이라크군 창설을 본격화하기 위해 필요한 파병군인의 수 증대이다. 따라서 철군이나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외교적 길에 대한 성급한 논의는 금물이다. 그러나 설사 부시행정부가 외교적 방안을 채택한다 하더라도 이번 2차 이라크전쟁과 2차 레바논 전쟁, 그리고 지난 7년간 쉽없이 팔레스타인인들을 몰아붙인 이스라엘의 공세 이후 휴지기가 지나면 새로운 대안과 새로운 세력의 등장이 없는 한 또 다시 폭력의 회오리가 몰아칠 것이다. 그것은 분열, 불안정과 폭력이 적어도 중동지역에서는 미국과 유럽의 전통적인 지배전략이었고 앞으로도 별 이변이 없는 한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1948년 이스라엘 국가 창설 이후 중동지역이 반 세기 이상 겪어 온 것은 바로 이 진전없는 반복이었다. 4. 대안 없는 중동 문제 따라서 문제는 중동문제에 대한 대안, 그리고 이 대안을 담지할 주체의 부재이다. 그리고 이 대안 부재의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고 전망을 제시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수십만의 무고한 이라크인들을 희생시킨 미국과 동맹국들의 범죄, 국제사회가 ‘나 몰라라’ 하는 가운데 저질러지는 팔레스타인의 참극, 그리고 황당한 레바논 전쟁 등 유례없이 극단적인 최근의 중동 현실은 바로 이 대안과 전망 부재의 적나라한 표현이다. 중동 현대사는 최근 논의되고 있는 철군과 평화적인 길이 중동문제 해결의 첫 걸음에 불과함을 말해준다. (2006. 12. 13) (*출처 : 민주노조운동연구소홈페이지자료실 dli.nodong.net)
지난 30일 비정규직법안 개악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날치기 통과됐다. 신자유주의 정부와 여야 정당은 85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울음을 깡끄리 짓밟았다. 지배계급은 평택 미군기지 확장, 한․미 FTA강행, 극단적인 노동유연화 정책 추진 등 한국사회를 통째로 위기의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에 저항하는 많은 민중들의 목소리를 ‘일부 폭력적인 집단의 교통방해’로 치부하면서 집회․결사의 자유를 원천 봉쇄하고 있다. 하지만 민중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전국 곳곳에서 분노를, 슬픔을, 의지를 표출하고 있다. 민중총궐기를 끝나지 않았다. 1, 2차 총궐기에 이어 12월, 우리의 미래를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 나가는 싸움을 전개해야한다. <특집>에서는 올해 사회운동의 가장 큰 이슈였던 한․미 FTA저지 투쟁과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투쟁에 대한 평가와 전망을 담고 있다. 정지영은 한․미FTA 저지 투쟁을 신자유주의 금융/군사세계화를 주도하며 한반도에서 민중의 생존을 위협하는 미국과 이를 추종하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대안 세계에 대한 대중들의 토론과 합의를 모아가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박준도, 문설희, 이소형은 쟁점토론을 통해 그 동안 진행되었던 평택미군지기 확정저지투쟁의 쟁점과 난점을 정리하고 이후 투쟁의 방향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전쟁을 멈춰라>에서 정영섭은 정부의 자이툰 철군으로 포장된 자이툰 1년 파병연장과 레바논 파병계획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지은은 미국의 아프간 침공 5년째를 맞은 아프간의 상황을 폭로하며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과 나토군은 지금 당장 철수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수열은 이라스엘 정부가 팔레스타인에 설치하고 있는 고립장벽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해방을 향한 여성행동>에서 김원정은 한․미 FTA가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며 이에 맞서는 여성운동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노동자운동으로 세계를 변혁하자>에서 학습지산업노조는 정부에서 발표한 특수고용노동자 대책이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문제를 봉합할 뿐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다음으로 건설산업연맹 국제부장 이진숙과의 인터뷰를 통해 국제노총 출범의 의의를 밝히고 있다. 노동국은 주연테크 노조와 서울대병원 노조와의 인터뷰를 통해 민주노총 총파업을 조직하는 현장의 솔직한 고민과 상황을 담고 있다. 김효는 본격화 될 체신부문 구조조정에 맞서 체신현장운동의 과제를 밝히고 있다. <대안세계화를 향하여>에서는 얼마 전에 열린 국제토론회 “FTA에 반대하는 여성들”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한 태국 빈민연합과 콜롬비아 농민연합의 활동가들을 만났다. 각 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미국과의 FTA에 저항하는 운동의 구체적인 쟁점과 현황에 대해 들어보았다. <사회운동과 연대>에서는 최은숙은 올해로 여섯 번째를 맞는 노숙인추모제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 아닌, 새로운 투쟁을 일궈나가는 12월을 만들자. 사회운동도 그 길에 함께 할 것을 약속한다.
[%=사진1%] "이장님이 나온다, 안 나온다, 나온다, 안 나온다, 나온다!" 2006년 6월 6일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던 날, 평택경찰서 앞. "우리 이거 해보자!" 대추리 사는 10살 도희가 장미꽃 한 송이를 내게 쭉 내밀고는, 이장님이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장미꽃잎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경찰서 담벼락에 핀 장미꽃 송이를 따서 꽃잎을 하나하나 떼어내며 장미꽃 점을 쳐봤다. 그게 끝나면 또 한 송이를 따서"우리가 계속 대추리에 산다, 안산다, 산다, 안산다, 산다…."도 했고, "경찰이 나쁘다, 안 나쁘다, 나쁘다, 안 나쁘다, 나쁘다…."도 했고, "군인들이 마을을 나간다, 안 나간다, 나간다, 안 나간다, 나간다…."도 했다. 빨간 꽃잎들이 바닥에 흩어져 경찰서 담 아래가 꽃길이 되어 버릴 만큼 오랫동안 장미꽃에게 주문을 걸었다. 이장님이 나오기를, 대추리에 계속 살 수 있기를, 군인들이 우리 마을에서 나가기를. 그 때 그 장미꽃 송이들이 우리에게 이장님이 나온다고 했는지 아닌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날부터 5개월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대추리 김지태 이장은 감옥에서 나오지 못했다. 도희는 대추리 김영녀 할머니의 외증손녀다. 웃는 모습이 하회탈처럼 예쁘신 김영녀 할머니는 김지태 이장의 고모이기도 하다. 친인척들이 많이 모여 사는 대추리는 한 집 걸러 한 집이 가까운 친척으로 연결이 된다. 그래서인지 마을 일을 함께 겪는 사람들은 더 끈끈하게 그 일들을 공유하는가 하면, 등 돌리고 떠난 것에 대한 배신감과 아픔은 더 크게 느낀다. 언젠가 김지태 이장을 면회하고 오신 할머니는 가슴을 치며 말씀하셨다. “어제는 이장 보고 왔어. 멀쩡한 놈, 죄 없는 놈 가둬놓고. 아휴, 천불이 나. 열나고. 걔 보고 온 날은 밤새도록 잠이 안 와. 걔만 떠올라서.” 그렇게 속 터지고 화나는 것은 김영녀 할머니 뿐 만이 아니라 대추리 주민 모두가 그렇다. 이장을 잡아두고 한국정부가 벌이는 이 엄청난 범죄의 대가를 대추리 주민들이 몸으로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것이다. 검찰의 의도적 재판연기 4월 29일자로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가족들과도 떨어져 지내야 했던 김지태 이장은 6월 5일 평택경찰서에 자진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당시 대화를 하자고 떠들어대던 한국정부는 자진출두한 김지태 이장을 구속시켰다. 6월 4일 29회 대추리민의 날 행사에 함께 해 오랜만에 주민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그렇게 또 다시 긴 이별을 해야 했다. 그 이후 검찰은 어떻게든 김지태이장을 더 오랫동안 잡아 두려고 안달을 하는 듯 보였다. 김지태 이장의 선고일이었던 9월 22일을 며칠 앞두고 검찰은 새로운 증거 자료가 나왔다며 변론 재개를 신청했다. 추석을 함께 보낼 거라는 기대가 깨진 주민들의 실망이 얼마나 컸는지, 또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말로 다 하지 못한다. 10월 13일 재판에서, 수원지검 최임열 검사가 제출한 ‘새로운’ 자료는 2005년 7월 10일 평화대행진을 전후한 김 이장의 통화 기록과 자신이 다쳤다고 주장하는 전경들의 피해 진술이 전부였다. 그러한 증거가 김 이장 구속수사 4달 만에 ‘새로’ 발견될 수 있는 것인지, 변호인단의 변론을 뒤엎을 만한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로운 기소사유가 되지도 않는 증거를 제출해 김지태 이장의 구속을 연장하려 한 것이라는 비난을 면하지 못했던 그 날, 재판부는 11월 3일로 선고일을 연기했다. [%=사진2%] 징역 2년 실형 선고 11월 3일 열린 김지태 이장의 1심 판결에서 김지태 이장은 징역 2년 실형 선고를 받았다. 수원지법 평택지원 성지용판사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 7가지 혐의를 들어 실형을 선고하고,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죽봉과 쇠파이프가 난무하는 대규모 폭력사태를 초래한 점 등을 볼 때 죄질이 가볍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이날 재판부는 주민들의 법정소란을 이유로 들어 3가지 조치를 취했는데, "안정된 판결과 판사의 의견개진을 위해서" 방청권을 교부했고, 경찰에 시설보호요청을 하고, 법정에 CCTV를 설치하는 일이었다. 경찰의 방패에 가로막힌 주민들은 서둘러 끝낸 재판을 결국 보지 못했고 법원 앞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앉아 징역 2년 선고 소식을 들었다. 팔순을 바라보는 부모님조차 재판을 보지 못했고 법원 앞에서 오열해야만 했다. ‘초범’인 김지태 이장에게 이 같은 판결이 내려진 것은 대한민국 사법부가 여전히도 정부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극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김지태 이장의 실형선고는 미군기지확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정치재판이며, 공정한 법집행을 해야 할 사법부가 법을 이용하여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김지태 이장을 볼모로 삼아 주민들을 더욱 더 지치게 하고 시간을 끌며 포기하게 하려 한다는 것을 주민들은 알고 있다. 한국정부와 국방부는 지금 주민들에게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싸움을 포기하라, 그러면 김지태 이장을 풀어줄 것이다."라고. 실형선고를 받은 김지태 이장은 지난 11월 13일 평택구치소에서 안양교도소로 이감되었다. 싸움이 시작된 처음부터, 차가운 감옥에 있는 그 시간동안에도 김지태 이장은 끝까지 싸우자고 말하고 있다. 주민들의 정당한 저항을 폭력으로 누르며 보상금으로 해결하려는 정부에게 김지태 이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 너른 들판을 사시겠다고? 그 금액은 너무 어마어마해서 나는 상상을 못할 지경이니깐. 힌트를 드리자면 대추리, 도두리 들판에서 지금껏 거두었던 벼의 낱알의 개수만하다고나 할까. 그것을 일구기 위해 굽혔다 폈던 관절의 운동 횟수만하다고 해도 될 것 같다. 한 가지 더. 그들의 시간, 한숨, 울음, 웃음 그것을 내려다보았을 별빛이나 시름을 달래주던 바람의 총량까지 합하면 대충은 나올 것 같다." 양심수가 된 아들, 애타는 부모님 “우리 아들 보고 왔어” 김지태 이장이 안양교도소로 이감 된 후 면회를 갔다 오신 황필순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그 아들에 대해 한참 동안 이야기하고는 결국 눈물을 쏟아내셨다. “뭘 시켜도 착실히 잘 하니께 맨날 걔만 시켰지. 새끼도 잘 꼬고 소 먹이는 것도 잘 하고 그랬어.” 할머니는 요즘 메주를 쑤느라 바쁘시다. 10월에 털어 말린 노란 콩을 가마솥에 가득 넣고 아궁이에 불을 땠다. 연기가 가득 차오르는 아궁이 앞에 앉아 이른 아침부터 할머니는 나무를 잘라 넣는다. “8남매를 낳았는데, 4남매가 죽고 4남매 남은 겨. 못 먹여서 애들이 자꾸 죽고 그러니께 애들 하나하나 얼마나 소중하게 길렀나 몰러. 그렇게 기른 자식이여." 아궁이에 불을 지펴 연기가 가득 차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눈이 아픈데도 할머니는 끄떡 없이 그 앞에 앉아 계신다. “할머니, 눈 아프지 않으세요?” “이걸 몇 십 년을 했는디, 아무렇지도 않어.” 까만 연기를 내 뿜는 아궁이 앞에서도 너무나 잘 견디는 할머니지만 아들 생각만 하면 눈물을 멈추지 못하신다는 걸 안다. 이 땅에서 죽는 것이 소원이라는 동네 어른들 뜻에 따라 싸우다 감옥에 갇힌 아들, 양심에 따라 살고자 하는 시골 마을 이장인 아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소밥 주러 나가던 아들을 생각하면 눈물을 멈추지 못하신다. 새벽 다섯 시에 소밥 주러 나가는 일은 이제 김석경 할아버지의 일이 되었다. 김지태 이장은 감옥에서 “아버지가 힘드니 소를 팔았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소일거리라도 삼아 해야 산다며 할아버지는 반대하셨다. 언젠가 할아버지는 아들의 면회를 가면서 어디 가시냐고 묻는 내게 “소 이야기 하러” 가는 길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정말 “소 이야기”만 하고 오셔서는 오후 다섯 시가 되자 또 다시 소 밥 주러 가셨다. 할아버지가 자꾸 마르시는 것 같아, 부쩍 늙으신 거 같아 마음 다스릴 수 없이 아프다. 예전 비닐하우스에서 촛불행사를 할 때, 언제나 두 분 할머니 할아버지가 맨 앞 자리에 앉아 촛불을 하늘높이 치켜 들며 함성을 지르셨다. 요즘은 가끔씩 촛불행사를 빠지기도 하시고 예전처럼 그렇게 힘있게 촛불을 들지도 못하신다. 두 분의 상처가, 아픔이 걱정될 뿐이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싸우셨던 두 분이 양심에 따라 살고자 하는 아들을 감옥에 보내고 맞는 이 겨울이 부디 매섭지 많은 않기를. 하루 빨리 김지태 이장이 석방되어야 한다. 더 이상은 안 된다. 더 이상 평화와 정의와 인권을 가둬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모든 권력이 뒤엉켜 벌이는 이 사기행각을 당장 멈추고 양심수 김지태 이장은 평화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의 곁으로 돌아와야 한다.
한미 FTA를 넘어, 민중의 대안으로 [쟁점토론]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 새로운 시작을 위한 투쟁
한미 FTA 저지 투쟁의 전진을 위하여 [%=사진1%] 한미 FTA 저지 투쟁을 비롯한 노동자민중의 투쟁에 한 노무현 정부의 탄압이 거세지고 있다. 경찰은 지난 11월 초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도심 집회 금지를 명목으로 집회를 제한하려 했다. 그 이후 경찰은 도심에서 진행하는 집회를 자신들이 정해놓은 틀 안에서만 허용하려 했고, 이를 ‘평화집회’라 명명하며 집회를 관리하려는 자신들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11월 22일 ‘한미FTA저지 1차 범국민총궐기’ 이후 정부와 경찰은 자신들이 정해놓은 틀을 벗어난 모든 행동을 폭력으로 몰아붙이며 한미 FTA 반대 투쟁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돌입했고,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의 모든 집회를 불허하면서 사실상 한미 FTA 반대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경로 자체를 차단했다. 무능한 노무현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으며, 한미 FTA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다. 이에 대한 반대와 저항의 의사 표현을 경찰과 정부가 정해준 틀 안에서만 하라고 강요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만, 이는 스스로 참여정부를 자처한 노무현 정부가 이제 ‘공권력’ 밖에 의존할 것이 없는 배제의 정부임을 자백하는 꼴이기도 하다. 더불어 한미 FTA는 노무현 정부가 공권력을 총동원하여 국민의 의사를 폭력적으로 짓밟으면서까지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중대한 사안임을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한미 FTA 반대는 용납할 수 없다? 지난 22일 1차 범국민총궐기 이후 한미 FTA 반대 운동에 대한 정부의 탄압과 제한이 상상을 초월하는 지경이다. 한명숙 총리와 관계부처 장관들은 담화를 발표해 ‘폭력시위 엄단’을 운운했고, 주류 언론들은 집회의 폭력성을 부각시키며 탄압을 부추겼다. 그리고 이어 집회 참가단체 인사 170여명에게 소환장이나 체포영장을 발부했고, 전국농민회총연맹이나 <범국본> 지역 단위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게다가 경찰은 11월 29일 2차 총궐기를 비롯한 한미 FTA 반대 집회를 원천 금지하겠다고 밝혔으며, 2차 총궐기를 앞두고는 5만여 병력을 투입해 전국에서 총궐기를 무산시키려 시도했다. 사실 29일 2차 총궐기에 대한 경찰의 대응은 계엄을 방불케 하는 수준이었다. 톨게이트를 막아 서울로 올라오는 시위대를 차단하는 방법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각 지역 관광버스 회사에 공문을 보내 총궐기 참가자에게 버스를 대절해주지 말 것을 강요하고, 농민회 간부들 집에까지 찾아가 불참을 종용・협박하는가 하면, 총파업에 돌입하고 총궐기에 참여하려는 노동자들을 막기 위해 공장 앞에 병력을 배치하기도 했다. 서울역에서는 총궐기를 위해 상경한 농민들을 잡는 데 혈안이 된 경찰들이 불심검문을 자행하고, 3명만 모여도 강제 해산시키겠다고 위협하며 사람들이 역사 밖으로 나오는 것을 막았다. 전경버스 30여대로 서울시청 광장을 에워싸 단 한 사람도 들어갈 수 없었던 그 텅 빈 광장은 역사에 길이 남을 한 편의 코미디였다. 그 뿐만 아니라 정부와 경찰은 <범국본> 명의로 된 플래카드가 단 한 장이라도 보여서는 안 된다며 합법적으로 신고된 집회의 물품까지도 검색했고, 서울 시내를 지나가는 방송 차량은 모두 세워서 검문하며 도심 진입을 가로 막았다. 이는 기본적으로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심각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한미 FTA를 반대하는 의사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정부의 노골적인 선전포고라는 점에서 더 엄중한 사안이다. 노무현 정부에게는 그만큼 한미 FTA가 중대한 문제인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사활이 걸린 한미 FTA 한미 FTA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억압하기 위해 기본적인 집회의 자유도 제한하며 어마어마한 폭력과 불법을 자행하고 있는 노무현 정부의 현재 모습은 5월 4일 군부대와 경찰을 투입해 평택의 대추초등학교를 철거했던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자신이 일궈서 농사짓고 살아온 땅에서 ‘올해에도 농사짓겠다’는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의 요구는 군경의 폭력 앞에 무참히 짓밟혔다. 이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 노무현 정부와 지배세력에게는 어떻게 해서라도, 1980년 광주를 재현하는 한이 있더라도, 추진해야할 사활이 걸린 문제라는 점을 확인시켜준 계기였다. 평택에 미군기지를 확장 이전하는 문제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여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군사적 우위와 관리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한 축이며, 이는 한미동맹의 강화와 현대화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평택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는 투쟁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저지하는 투쟁이자 나아가 한미동맹을 전제로 한 미국과 한국의 지배세력들의 전망을 민중 주도의 다른 전망으로 바꾸는 투쟁이고, 정부와 지배세력은 이를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한미 FTA 또한 마찬가지다. 한미 FTA에 대한 반대의 의견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봉쇄하려는 노무현 정부의 탄압을 보면, 한미 FTA가 진정 노무현 정부와 지배세력이 사활을 걸고 밀어붙이고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초민족자본의 이해를 보장하고 금융세계화의 통치성을 유지하려는 미국은 FTA를 대외정책의 중요한 일환으로 사고하고, 경쟁적 자유주의 전략을 통해 세계로 확산하려 한다. 한미 FTA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초민족자본의 활동을 보장하는 주요한 발판이 될 것이다. 농업, 의료, 교육과 같이 모든 것을 상품화하고, 투자자의 지위를 모든 것에 앞서 보장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하의 자유무역은 세계 곳곳에서 인민들의 권리와 날카롭게 배치되면서 삶을 파괴하고 있다. FTA는 이런 자유무역을 더욱 심화․확산하려는 초민족자본의 적극적인 요구다. 재벌을 중심으로 이런 세계화에 적응해왔던 한국 정부와 지배세력은 이제 한미 FTA를 통해 미국과의 경제통합을 심화하여 살 길을 모색하려 한다. 한국 정부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적극적으로 편입하기 위해 노동을 유연화하고 농업을 포기하며 각종 서비스 시장을 개방해왔지만, 한국 경제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장기적인 침체에 빠져있다. 노무현 정부와 재벌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더 많은 개방과 더 많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요구하며 미국과 경제를 통합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들에게 한미 FTA는 자신의 미래를 보장하는 중요한 문제지만, 한미 FTA가 무엇을 대가로 하는지는 ‘민족의 이익’이나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라는 현란한 수사 속에 가려지고 있다. 1997년 이후 한국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추진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로의 재편은 비정규직 양산, 노동기본권 제한, 빈곤 확대, 농촌 파괴와 같이 재앙과 같은 현실을 낳았다. 이런 재편의 방향성은 노동자민중의 수많은 투쟁에도 변하지 않았고, 이제 한미 FTA를 통해 한국 사회 전체의 완전한 재편을 꾀하고 있다. 이로써 민중이 처한 재앙과 같은 현실은 더 심각해질 판이지만, 이 모든 걸 짓밟고서라도 자신들은 살아야겠다는 재벌과 정부의 강력한 의지는 한미 FTA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한 치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탄압으로 드러나고 있다. 한미 FTA 저지 요구는 협상 테이블 안에 갇힐 수 없다 사실 정부와 언론은 지금까지 한미 FTA 반대를 주장하는 민중의 요구와 목소리를 진지하게 고려해 본 적이 없다. 정부와 언론은 이번 총궐기를 놓고 참가자들의 집회 방식이 폭력적이라고 비난하거나, 이러한 시위를 사전에 기획했다는 사실이 무슨 범죄 성립요건이라도 되는 양 매도하면서도, 이러한 시위에 참가하는 이들이 어떤 요구와 주장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다루지 않았다. 지금까지 언론이나 정부는 미국 협상단과 한국 협상단 사이의 쟁점과 논의 내용을 중심으로 한미 FTA를 다뤄왔다. 전문성으로 무장한 한미 FTA 협상단이 각 분과별로 어떤 협상을 했는지, 이것이 각 분야에 몇 퍼센트, 몇 원의 손익을 내는지 만을 집중해서 다뤄온 것이다. 이는 한미 FTA가 파괴하는 민중의 삶과 권리는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됨을 의미한다. 노무현 정부는 집회의 폭력성을 부각하며 한미 FTA에 대해 합법적인 방식으로 의견을 전달하라고 하지만, 이는 이미 주어진 협상의 틀을 인정한 한에서 얼마를 더 주고받을 것인가로 논의를 국한하자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FTA 협상에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분야별 이해당사자로 제한된다. 하지만 한미 FTA 저지 투쟁은 각 산업과 분야별로 얼마를 더 얻어내겠다는 투쟁이 아니다. 농민들이 한미 FTA에 맞서 싸우는 것은 한미 FTA가 농업을 말살하고 농민들의 토지와 종자에 대한 권리를 파괴하고 민중의 식량권을 위협하기 때문이지, 민감 품목 몇 개를 더 얻고, 몇몇 농산품을 개방에서 제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한미 FTA가 여성들에게 적극적 조치 등을 통해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할 것이라는 선전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한미 FTA를 반대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FTA가 여성들을 활용하여 노동을 유연화하고 빈곤을 확산하며, 이것이 전체 민중의 삶을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한미 FTA를 반대하는 민중의 요구는 한미 FTA를 추진하는 세력들이 전제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와 민중의 평화롭고 자율적인 생존이 함께 갈 수 없다는 선언이고, 따라서 근본적인 틀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무현 정부와 언론은 이런 요구를 대세를 모르는 세력들의 하소연으로 매도하고 무시하며, 합법적인 경로를 통해 의사를 표현하라고 종요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노무현 정부의 기만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지금 한미 FTA를 둘러싼 쟁점은 소수의 재벌과 초민족자본을 위한 금융세계화인가 민중의 보편적 권리와 평화적인 생존을 위한 다른 세계화인가다. 전쟁과 FTA를 강요하는 미국의 하위 파트너가 될 것인가 민중이 주도하는 다른 세계의 동맹이 될 것인가를 가르는 쟁점이다. 노무현 정부는 이를 은폐하고 협상단이 국익을 대표하여 막중한 임무를 지고 있는 것처럼, 민중의 투쟁은 이를 방해하는 폭력인 것처럼 호도하면서 재벌과 초민족자본의 충실한 파트너 노릇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한미 FTA 저지 투쟁의 진전을 모색하자 현재 한미 FTA 저지 투쟁은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 한미 FTA를 민족과 국가의 이익으로 포장하면서 장밋빛 미래를 남발한 노무현 정부의 시도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하에서 벼랑 끝으로 내몰려온 민중의 현실 앞에서 무기력했다. 노무현 정부는 마치 한미 FTA를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식으로 엄청난 세금을 들여 홍보물을 제작하고 국민들의 감정에 호소하며 한미 FTA 체결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3, 4차 협상 과정을 통해 이런 정부의 호언장담이 결코 실현될 수 없으며, 미국과 초민족자본의 일방적인 요구를 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분명해진 것이다. 광우병 쇠고기 뼈조각이 발견되어 전량 폐기되는 등 한미 FTA가 민중의 삶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문제가 터지면서 한미 FTA 협상의 정당성은 점차 땅으로 떨어지고 있다. 게다가 ‘사회 양극화 해소’니 ‘비정규직 차별 해소’니 하는 정부의 구호는 허울뿐임이 드러나고 있으며, 무엇 하나 제대로 못하는 무능하고 반민주적인 노무현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분노는 높아지고 있다. 이제 노무현 정부에게 남은 것이라곤 자신의 실패와 무능을 무마할 공권력의 폭력밖에 없다. 한미 FTA 저지 투쟁은 이런 탄압을 뚫고 좀 더 강고하고 광범위한 운동을 만들어가야 할 중요한 처지에 놓여있다. 하지만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분노, 삶의 어려움이 즉각 투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한미 FTA 저지 투쟁 또한 전 민중의 분노를 모아내고 행동을 촉발하는 투쟁으로 나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신자유주의 금융/군사세계화는 초민족자본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민중의 삶과 권리를 박탈하지만, 이를 넘어설 대안적인 전망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대중은 삶의 불안을 자신의 경쟁력 강화와 같은 개인적인 전망으로 돌파하려 한다. 더불어 신자유주의 개혁은 집단적인 문제인식과 연대를 통한 문제 해결을 가로막고, 행정 관료들을 통한 갈등의 관리와 조정을 장려하면서 대중을 수동화한다. 한미 FTA 저지 투쟁이 처한 본질적인 어려움은 바로 이것이다. 한미 FTA가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대중들도 인식하고는 있지만, 이와 다른 어떤 전망에 대한 확신도 가질 수 없는 불안함이 만연하다. 더군다나 한미 FTA를 거부하는 것은 기나긴 한미동맹의 역사를 단절하겠다는 의미를 가지며, 한미동맹과의 단절이란 상상조차 금기시되었던 어려운 문제다. 따라서 한미 FTA 저지 투쟁은 대중들이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 갈 것을 결단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미 FTA 저지 투쟁을 만들어 온 투쟁 주체들 내부에는 스크린쿼터나 광우병 쇠고기 같은 사람들의 분노와 공포를 자극할 수 있는 국소적인 이슈를 부각시켜 반대 여론을 만들면 FTA 협상을 중단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존재했다. 하지만 정당성을 잃고 탄압으로 일관하는 노무현 정부와 지배세력에 맞서 한미 FTA 협상을 진정 중단시키고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반대하는 투쟁을 지속, 확산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금융/군사세계화를 주도하며 한반도에서 민중의 생존을 위협하는 미국과 이를 추종하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분명하고도 단호한 입장을 세우고, 이를 중심으로 민중운동의 정치적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더불어 이를 바탕으로 대중과 토론하고, 대안적 전망을 스스로 만들어 갈 주체로 조직해야 한다. 대중을 조직화하는 것의 어려움은 절실하지만, 이를 타개하는 우회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누차 지적했듯이 노무현 정부는 명운을 걸고 이를 추진하고 있으며, 국민의 여론에 좌우될 생각이 전혀 없다. 게다가 한미 FTA가 민중의 미래와 운명을 걸고 결단해야 하는 중요한 사안인 만큼 민중 스스로가 자신의 삶의 문제임을 인식하고 주체로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 이제는, 우리에게 FTA가 아닌 무엇이 필요한가를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한미 FTA를 넘어 어떤 세계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해 흔들림 없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이를 기초로 새로운 세계에 대한 민중의 토론과 연대를 활성화해야 한다. 초민족자본의 이익이 아닌 민중의 필요와 요구에 기반을 둔 새로운 무역의 원칙을 확인하고, 반전평화, 노동권, 여성권, 식량주권, 건강권, 교육권과 같은 민중의 보편적 권리에 기반을 둔 대안적인 세계화의 방향에 대해 토론하고 합의를 모아가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민중의 주도성을 기본으로 운동들의 연대를 지향하는 투쟁을 만들어가며, 세계 곳곳에서 대안을 세계화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민중의 지식, 문화, 경험을 배우고 교류해야 한다. 한미 FTA를 저지하고 대안을 세계화하자! 결국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미 FTA 저지 투쟁이 한미 FTA와 한미동맹을 넘어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단초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당장의 급한 불을 끄고 위기를 모면하자는 인식으로는 새로운 대안적 전망을 열 수 없다. 지금까지 한미 FTA가 각각의 부문과 영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과 비판이 이루어졌지만, 이것이 FTA와 전쟁을 강요하는 미국과 이를 추종하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반대라는 정치적 방향성으로 통합되지 못하고 있다. 한미 FTA 저지 투쟁 내에는 여전히 자신의 산업이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흐름도 있고, 동북아 중심국의 비전을 가진 흐름도 있다. 이런 인식을 넘어서 한미 FTA 저지 투쟁이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반대하는 투쟁이라는 공통의 인식과 합의를 모아내도록 정치적 방향성을 둘러싼 토론과 논의가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 더불어 한미 FTA는 한미동맹 강화와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을 통해 자신의 살 길을 모색하는 지배세력의 전망에 불과하다. 그리고 노동자 농민, 여성, 빈민의 미래는 이와 단절할때만 모색될 수 있다. 이제 한미 FTA 저지 투쟁을 통해 우리가 어떤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지 그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토론을 개시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민중의 보편적 권리와 결코 양립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이를 넘어선 다른 세계는 우리 스스로의 투쟁으로 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하자. 한미 FTA 저지 투쟁은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삶을 지켜내는 투쟁이다. 한미 FTA를 저지하고 민중의 대안을 세계화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