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 대한 미니의 짧은 생각 그동안 저도 『월간 사회운동』의 애독자라면 애독자였는데 이번에는 제가 글을 쓰게 되었네요. 이번 글은 제가 팔레스타인에 있으면서 느낀 팔레스타인의 현실과 연대 운동에 대한 짧은 생각입니다. 제가 겪은 점령 - 살피트에서의 하루 지난 주말에는 살피트라고 하는 곳이 갔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어느 군 단위쯤 되는 곳입니다. 먼저 저희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칼리드의 집으로 갔습니다. 집에 가니 칼리드의 아버지께서 계셨습니다. 칼리드가 아버지는 1967년 이스라엘이 서안지구를 점령하기 이전, 요르단 통치 아래서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9년 동안 감옥에 있었던 적이 있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또 1차 인티파다1)때는 칼리드를 포함해 칼리드의 형제 1명과 아버지가 함께 감옥에 간 적도 있어서 집에 어머니와 자매들만 남은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칼리드는 인티파다 이전에 2번, 인티파다 때 5번 총 7번 이스라엘 감옥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몇 번은 어떤 재판이나 그런 것 없이 임의로 몇 달씩 갇혀 있었던 적도 있습니다. [%=사진1%] 아버지와 인사를 하고 알 자지라를 보고 있는데 다큐멘터리 하나가 방송되었습니다. 위 사진을 그냥 보시면 뭐 특별할 것이 없을 겁니다. 그런데 사진 위쪽을 보시면 그림이 보입니다. 모스크에 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모스크 내부에는 기독교나 불교처럼 누군가를 상징하는 표식이나 이런 저런 장식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 그림의 정체는 점령입니다. 이스라엘 정부가 무슬림들의 모스크를 몰수해서 유대인들의 그림 전시장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위 사진 속의 무슬림은 모스크를 되찾기 위한 운동 차원에서 지금은 그림 전시장이 되어버린 곳에 가서 기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방송 내용에는 모스크가 유대인 카페로 변한 곳도 있었고, 기독교인들의 교회도 빼앗기거나 파괴당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가 무슬림과 기독교인들의 정체성을 파괴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 - 기독 - 이슬람 순으로 한 뿌리에서 태어난 종교이지만 누가 권력을 쥐고 있느냐에 따라 지배 - 피지배가 갈리고 있습니다. [%=사진2%] 방송을 보고 나서 우리는 칼리드의 친구 아베드의 집에 들러 차를 마시고 장벽 공사 현장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살피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 자체를 감옥으로 만들기 위해 이스라엘 장벽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사진을 보면서 설명 드리면 제가 사진을 찍기 위해서 서 있는 곳은 쇠막대기 울타리가 처져 있어서 팔레스타인인들은 더 이상 접근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리고 사진 가운데 세워져 있는 쇠막대기에는 앞으로 철조망이 처질 겁니다. 그리고 그 다음 편에 도로가 만들어지고 있고 있습니다. 주로 이스라엘군이 군사용으로 사용하게 될 도로입니다. 그리고 그 너머에 땅이 보입니다. 아베드도 그렇고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장벽 너머에 땅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곳으로 갈 수 없게 되었고, 고스란히 이스라엘에게 빼앗겼습니다. 사진을 계속해서 보시면 집들이 쭈욱 보입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을 체계적으로 빼앗기 위해 진행 중인 점령촌 확대 정책의 일부입니다. 많은 점령촌들이 이렇게 산꼭대기에 지어집니다. 그리고 산 아래쪽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구요. 점령촌 안에는 군대와 경찰은 물론 학교와 병원 같은 것들이 있어서 하나의 ‘점령도시’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진 속 점령촌의 이름은 ‘아리엘’입니다. 이스라엘 총리 아리엘 샤론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지었다고 합니다. 아베드가 아리엘이 히브리어로 ‘신의 사자(lion)’라는 뜻이라고 해서 제가 ‘미친 사자’라고 해서 같이 웃기도 했습니다. 잠깐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스라엘 군인들이 차를 타고 뾰로록 달려 왔습니다. 이스라엘 군은 장벽 공사 현장은 물론 산 위에서 살피트 전역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군인이 여기서 뭘 하냐고 묻기에 그냥 구경하고 있다고 하니깐, 같이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누구냐고 했고 저는 능숙한 거짓말로 통역을 해 주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깐 무전기로 어디론가 연락을 해 보더니 그냥 돌아갔습니다. 장벽을 둘러보고 나서 우리는 무클레아 사용법을 보고 배우기 위해 다른 장소로 이동을 했습니다. 무클레아는 팔레스타인 관련 사진을 보면 자주 나오는데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 군인에 맞서 싸울 때 긴 끈을 이용해 돌을 던지는 도구입니다. 장벽 건설 반대 투쟁이 벌어지는 곳에 가거나 하면 지금도 무클레아를 사용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무클레아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넓은 공간이 필요했고 우리는 마을을 지나 맞은편 고개를 넘었습니다. 고개를 넘어 서는 순간 저는 제 눈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어느 곳을 가나 올리브 나무를 쉽게 볼 수 있지만 이 곳처럼 산과 산을 넘어 끊임없이 펼쳐진 ‘올리브 나라’는 처음 보았습니다. 칼리드가 올리브 나무가 몇 그루나 되는지 세어볼 수 있겠냐고 하더니 한국 사람들이 모두 여기로 와서 한꺼번에 세어보면 아마 셀 수 있을 거라고 농담을 했습니다. [%=사진3%] 아베드도 자신의 올리브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려면 1시간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진에서 보이는 가운데 지역을 가리키며 거기는 다른 곳과 색깔이 다르니깐 잘 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보니 정말 그곳은 다른 곳과 색깔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왜 그런가 물어보니 인티파다가 진행 중일 때 이스라엘군이 와서 불을 질렀고 그 다음에 다시 심은 거라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살피트는 그야 말로 올리브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올리브를 수확해서 어떻게 팔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한국도 그렇지만 농민들에게는 어떤 작물을 심고, 어떻게 팔 것이냐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올리브의 판로를 막아 버려 농민들이 집에다 올리브를 쌓아 놓고 있는 지경입니다. 살피트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른 도시와 농촌을 가 봐도 농민들이 애써 생산해 놓은 농산물을 팔지 못해 난리입니다. 살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이 생산한 농산물의 이동을 가로 막고는 팔레스타인 도시들에다 이스라엘산 농산물을 팔아먹기 때문입니다. 연대 운동을 위한 짧은 생각 팔레스타인인들이 한국에 대해서 기억하는 것 몇 가지가 있습니다. 남북관계, 월드컵,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가 아주 친하다는 것 그리고 한국의 반미 투쟁, 민주화 운동 등입니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뒷받침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미국과 친하다는 것은 팔레스타인에서 눈초리 받기 십상입니다. 반대로 미국과 맞서 싸운다고 하면 잘하고 있다고 좋아합니다. 1) 진보운동의 진보 진보운동에는 국가와 민족의 차이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일 뿐 넘지 못할 장벽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한국 진보운동이 자신의 사고와 활동 분야에서 국제주의를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화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국경을 넘어 연대한다는 것은 짬이 나면 한번 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든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든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 이스라엘에 대한 정치·외교적 압박 중동/아랍권의 많은 국가들이 팔레스타인을 지원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대부분 그들의 주된 관심은 자신의 권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또 이들 국가의 지배층들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 미국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이들의 정치력이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바꾸는데 실제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를 들어,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아랍권의 강국인 이집트가 서서히 민주화 되고 이집트 민중들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를 더욱 강하게 하고 나선다면 이스라엘에겐 압박이 될 것입니다. 미국은 2005년에만도 25억 달러 가량을 이스라엘에 지원했습니다. 이 액수의 대부분은 군사 지원입니다. 뿐만 아니라 정치·외교적으로도 미국과 EU는 이스라엘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번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 하마스를 테러조직으로 지목해 놓고 있으며, 정치·군사적으로 열세인 하마스에게 오히려 이스라엘의 생존을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일방적인 이스라엘 지원만 줄여도 팔레스타인 해방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중동 지역도 마찬가지고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의 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 진보운동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만약 EU가 하마스를 테러조직으로 지목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군사독재 정권으로 지목한다면 이스라엘은 깜짝 놀라 허둥지둥 대지 않을까요? 3) 경제적 고립 : 투자 중단, 불매운동, 경제제재 지난 05년 12월16일 노르웨이의 한 지역의회가 이스라엘 상품에 대해 광범위한 불매운동을 요구하는 발의 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소르 트론데라그(Sor-Trondelag)는 27만여 명이 거주하는 작은 군(郡)에 불과하지만, 과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맞서 노르웨이에서 최초로 불매운동을 벌인 경험이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다른 예로는 버마 군사 독재를 무너뜨리기 위해 활동가들이 버마에 대한 투자 철수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경제적 수단으로 지배 체제를 흔들기 위해서입니다. 한국은 이스라엘로부터 군사 장비를 수입하고 있는 국가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팔레스타인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집을 부수는데 ‘DAEWOO(대우)' 상표가 커다랗게 붙어 있는 불도저가 이용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명백한 점령 국가이고 독재 국가입니다. 국제 경제 분야에서 이스라엘을 고립시키고 팔레스타인과는 연대하는 운동을 만들어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국제 사회가 연대해서 이스라엘을 경제제재 해야 합니다. 반대로 팔레스타인인들이 생산하는 상품을 교류하는 것도 연대의 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경제적 자립은 정치적 자주성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사진4%] 4) 정보 전쟁과 대안 정보의 소통 우리가 보는 뉴스뿐만 아니라 영화와 종교, 학문 분야에 이르기까지 팔레스타인과 관련해서 나오는 정보들은 대부분 이스라엘에 유리하도록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난 4번의 중동전쟁을 표현하면서 ‘아랍 연합군의 침공에 맞서 전 세계에 있던 유대인들은 이스라엘로 몰려가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용감하게 싸웠고 아랍인들은 모두 도망갔다’ 식입니다. 또 아니면 ‘부지런하고 똑똑한 유대인들은 황무지를 농토로 바꿔왔다, 세계에서 유명한 인사들 가운데 유대인들이 얼마나 많으냐, 우리도 배워야 한다는 식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영국과 미국의 지원 그리고 강력한 무력 때문입니다. 아랍군이 도망갔던 것은 아랍 국가들이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해 싸울 의지가 별로 없거나 무력이 약해서이고, 특히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아랍인들이 떠났던 것은 죽이려고 하니 살려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진짜로 황무지를 농토로 바꿔왔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팔레스타인 농민들의 비옥한 농토를 지금도 빼앗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보는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생각은 행동을 바꿉니다.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해서 정확한 사실과 진보적인 시각의 정보가 보다 생산되고 소통될 필요가 있습니다. 5) 현장성과 연대 운동 길지 않은 시간이라도 현장에서 느껴보면 상황을 판단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어느 조직이라도 준비가 된다면 팔레스타인에서 직접 활동을 벌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만난 한 조직은 3개월씩 활동가들이 돌아가면서 파견되어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공동의 과제를 가지고 연대 운동을 벌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팔레스타인 농민들에겐 토지 몰수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제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지금 한국 정부가 평택에서 시도하고 있는 토지 몰수 사례를 얘기하면 깜짝 놀라면서 한국에서도 그러냐는 반응을 보입니다. 한국의 농민도, 팔레스타인의 농민도 정도는 달라도 제국주의와 군사주의에 희생당하고 있으며 이것이 연대의 주요한 뿌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 여성, 노동, 인권 등 각 분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정리한 짧은 생각입니다. 처음엔 간단한 역사 해설도 붙였지만 내용이 너무 길어져서 지웠습니다. 아무쪼록 이 글을 읽으신 게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연대의 시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보다 자세한 얘기는 팔레스타인평화연대(http://www.pal.or.kr)을 방문해 주십시오. 하루하루 더욱 건강하고 진보하시는 날들 되시길 바라며 미니는 이만 물러갑니다. 1) [편집자 주] 봉기?반란?각성 등을 뜻하는 아랍어로서 그 계기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팔레스타인인들이 국제연합의 일방적인 국경선 획정과 이스라엘 통치에 저항하여 일으킨 봉기를 의미한다. 1차 인티파다는 이스라엘군의 지프차에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폭압적인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한 불만이 봉기로 폭발한 점령지 내부의 최초의 대중운동으로서 1987년부터 1993년까지 지속되었다. 1차 인티파다를 통해 팔레스타인 문제가 국제적인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그 이후 오슬로 협정을 통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수립되었지만 여전히 이스라엘 군대의 무자비한 검문과 점령지 통제는 중단되지 않았고 2000년 9월 이스라엘 야당 당수 아리엘 샤론이 동예루살렘을 방문한 데 대한 팔레스타인인들의 반발을 이스라엘 군대가 진압한 사건을 계기로 2차 인티파다가 시작된다. 팔레스타인 저항세력의 무차별적인 자살폭탄 공격을 ‘테러’로 규정하고 그 몇 배의 화력을 동원하여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공습과 봉쇄를 유지하고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불만은 결국 올해 1월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그동안 이스라엘과 서방에 대해 의존적이었던 집권 파타당의 패배와, 대(對)이스라엘 무장투쟁과 활발한 사회활동을 통해 대중적 기반이 튼튼한 하마스의 승리로 귀결된다본문으로
-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 대한 미니의 짧은 생각 그동안 저도 『월간 사회운동』의 애독자라면 애독자였는데 이번에는 제가 글을 쓰게 되었네요. 이번 글은 제가 팔레스타인에 있으면서 느낀 팔레스타인의 현실과 연대 운동에 대한 짧은 생각입니다. 제가 겪은 점령 - 살피트에서의 하루 지난 주말에는 살피트라고 하는 곳이 갔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어느 군 단위쯤 되는 곳입니다. 먼저 저희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칼리드의 집으로 갔습니다. 집에 가니 칼리드의 아버지께서 계셨습니다. 칼리드가 아버지는 1967년 이스라엘이 서안지구를 점령하기 이전, 요르단 통치 아래서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9년 동안 감옥에 있었던 적이 있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또 1차 인티파다1)때는 칼리드를 포함해 칼리드의 형제 1명과 아버지가 함께 감옥에 간 적도 있어서 집에 어머니와 자매들만 남은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칼리드는 인티파다 이전에 2번, 인티파다 때 5번 총 7번 이스라엘 감옥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몇 번은 어떤 재판이나 그런 것 없이 임의로 몇 달씩 갇혀 있었던 적도 있습니다. [%=사진1%] 아버지와 인사를 하고 알 자지라를 보고 있는데 다큐멘터리 하나가 방송되었습니다. 위 사진을 그냥 보시면 뭐 특별할 것이 없을 겁니다. 그런데 사진 위쪽을 보시면 그림이 보입니다. 모스크에 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모스크 내부에는 기독교나 불교처럼 누군가를 상징하는 표식이나 이런 저런 장식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 그림의 정체는 점령입니다. 이스라엘 정부가 무슬림들의 모스크를 몰수해서 유대인들의 그림 전시장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위 사진 속의 무슬림은 모스크를 되찾기 위한 운동 차원에서 지금은 그림 전시장이 되어버린 곳에 가서 기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방송 내용에는 모스크가 유대인 카페로 변한 곳도 있었고, 기독교인들의 교회도 빼앗기거나 파괴당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가 무슬림과 기독교인들의 정체성을 파괴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 - 기독 - 이슬람 순으로 한 뿌리에서 태어난 종교이지만 누가 권력을 쥐고 있느냐에 따라 지배 - 피지배가 갈리고 있습니다. [%=사진2%] 방송을 보고 나서 우리는 칼리드의 친구 아베드의 집에 들러 차를 마시고 장벽 공사 현장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살피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 자체를 감옥으로 만들기 위해 이스라엘 장벽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사진을 보면서 설명 드리면 제가 사진을 찍기 위해서 서 있는 곳은 쇠막대기 울타리가 처져 있어서 팔레스타인인들은 더 이상 접근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리고 사진 가운데 세워져 있는 쇠막대기에는 앞으로 철조망이 처질 겁니다. 그리고 그 다음 편에 도로가 만들어지고 있고 있습니다. 주로 이스라엘군이 군사용으로 사용하게 될 도로입니다. 그리고 그 너머에 땅이 보입니다. 아베드도 그렇고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장벽 너머에 땅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곳으로 갈 수 없게 되었고, 고스란히 이스라엘에게 빼앗겼습니다. 사진을 계속해서 보시면 집들이 쭈욱 보입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을 체계적으로 빼앗기 위해 진행 중인 점령촌 확대 정책의 일부입니다. 많은 점령촌들이 이렇게 산꼭대기에 지어집니다. 그리고 산 아래쪽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구요. 점령촌 안에는 군대와 경찰은 물론 학교와 병원 같은 것들이 있어서 하나의 ‘점령도시’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진 속 점령촌의 이름은 ‘아리엘’입니다. 이스라엘 총리 아리엘 샤론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지었다고 합니다. 아베드가 아리엘이 히브리어로 ‘신의 사자(lion)’라는 뜻이라고 해서 제가 ‘미친 사자’라고 해서 같이 웃기도 했습니다. 잠깐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스라엘 군인들이 차를 타고 뾰로록 달려 왔습니다. 이스라엘 군은 장벽 공사 현장은 물론 산 위에서 살피트 전역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군인이 여기서 뭘 하냐고 묻기에 그냥 구경하고 있다고 하니깐, 같이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누구냐고 했고 저는 능숙한 거짓말로 통역을 해 주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깐 무전기로 어디론가 연락을 해 보더니 그냥 돌아갔습니다. 장벽을 둘러보고 나서 우리는 무클레아 사용법을 보고 배우기 위해 다른 장소로 이동을 했습니다. 무클레아는 팔레스타인 관련 사진을 보면 자주 나오는데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 군인에 맞서 싸울 때 긴 끈을 이용해 돌을 던지는 도구입니다. 장벽 건설 반대 투쟁이 벌어지는 곳에 가거나 하면 지금도 무클레아를 사용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무클레아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넓은 공간이 필요했고 우리는 마을을 지나 맞은편 고개를 넘었습니다. 고개를 넘어 서는 순간 저는 제 눈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어느 곳을 가나 올리브 나무를 쉽게 볼 수 있지만 이 곳처럼 산과 산을 넘어 끊임없이 펼쳐진 ‘올리브 나라’는 처음 보았습니다. 칼리드가 올리브 나무가 몇 그루나 되는지 세어볼 수 있겠냐고 하더니 한국 사람들이 모두 여기로 와서 한꺼번에 세어보면 아마 셀 수 있을 거라고 농담을 했습니다. [%=사진3%] 아베드도 자신의 올리브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려면 1시간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진에서 보이는 가운데 지역을 가리키며 거기는 다른 곳과 색깔이 다르니깐 잘 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보니 정말 그곳은 다른 곳과 색깔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왜 그런가 물어보니 인티파다가 진행 중일 때 이스라엘군이 와서 불을 질렀고 그 다음에 다시 심은 거라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살피트는 그야 말로 올리브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올리브를 수확해서 어떻게 팔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한국도 그렇지만 농민들에게는 어떤 작물을 심고, 어떻게 팔 것이냐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올리브의 판로를 막아 버려 농민들이 집에다 올리브를 쌓아 놓고 있는 지경입니다. 살피트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른 도시와 농촌을 가 봐도 농민들이 애써 생산해 놓은 농산물을 팔지 못해 난리입니다. 살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이 생산한 농산물의 이동을 가로 막고는 팔레스타인 도시들에다 이스라엘산 농산물을 팔아먹기 때문입니다. 연대 운동을 위한 짧은 생각 팔레스타인인들이 한국에 대해서 기억하는 것 몇 가지가 있습니다. 남북관계, 월드컵,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가 아주 친하다는 것 그리고 한국의 반미 투쟁, 민주화 운동 등입니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뒷받침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미국과 친하다는 것은 팔레스타인에서 눈초리 받기 십상입니다. 반대로 미국과 맞서 싸운다고 하면 잘하고 있다고 좋아합니다. 1) 진보운동의 진보 진보운동에는 국가와 민족의 차이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일 뿐 넘지 못할 장벽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한국 진보운동이 자신의 사고와 활동 분야에서 국제주의를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화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국경을 넘어 연대한다는 것은 짬이 나면 한번 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든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든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 이스라엘에 대한 정치·외교적 압박 중동/아랍권의 많은 국가들이 팔레스타인을 지원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대부분 그들의 주된 관심은 자신의 권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또 이들 국가의 지배층들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 미국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이들의 정치력이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바꾸는데 실제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를 들어,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아랍권의 강국인 이집트가 서서히 민주화 되고 이집트 민중들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를 더욱 강하게 하고 나선다면 이스라엘에겐 압박이 될 것입니다. 미국은 2005년에만도 25억 달러 가량을 이스라엘에 지원했습니다. 이 액수의 대부분은 군사 지원입니다. 뿐만 아니라 정치·외교적으로도 미국과 EU는 이스라엘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번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 하마스를 테러조직으로 지목해 놓고 있으며, 정치·군사적으로 열세인 하마스에게 오히려 이스라엘의 생존을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일방적인 이스라엘 지원만 줄여도 팔레스타인 해방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중동 지역도 마찬가지고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의 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 진보운동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만약 EU가 하마스를 테러조직으로 지목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군사독재 정권으로 지목한다면 이스라엘은 깜짝 놀라 허둥지둥 대지 않을까요? 3) 경제적 고립 : 투자 중단, 불매운동, 경제제재 지난 05년 12월16일 노르웨이의 한 지역의회가 이스라엘 상품에 대해 광범위한 불매운동을 요구하는 발의 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소르 트론데라그(Sor-Trondelag)는 27만여 명이 거주하는 작은 군(郡)에 불과하지만, 과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맞서 노르웨이에서 최초로 불매운동을 벌인 경험이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다른 예로는 버마 군사 독재를 무너뜨리기 위해 활동가들이 버마에 대한 투자 철수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경제적 수단으로 지배 체제를 흔들기 위해서입니다. 한국은 이스라엘로부터 군사 장비를 수입하고 있는 국가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팔레스타인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집을 부수는데 ‘DAEWOO(대우)' 상표가 커다랗게 붙어 있는 불도저가 이용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명백한 점령 국가이고 독재 국가입니다. 국제 경제 분야에서 이스라엘을 고립시키고 팔레스타인과는 연대하는 운동을 만들어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국제 사회가 연대해서 이스라엘을 경제제재 해야 합니다. 반대로 팔레스타인인들이 생산하는 상품을 교류하는 것도 연대의 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경제적 자립은 정치적 자주성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사진4%] 4) 정보 전쟁과 대안 정보의 소통 우리가 보는 뉴스뿐만 아니라 영화와 종교, 학문 분야에 이르기까지 팔레스타인과 관련해서 나오는 정보들은 대부분 이스라엘에 유리하도록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난 4번의 중동전쟁을 표현하면서 ‘아랍 연합군의 침공에 맞서 전 세계에 있던 유대인들은 이스라엘로 몰려가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용감하게 싸웠고 아랍인들은 모두 도망갔다’ 식입니다. 또 아니면 ‘부지런하고 똑똑한 유대인들은 황무지를 농토로 바꿔왔다, 세계에서 유명한 인사들 가운데 유대인들이 얼마나 많으냐, 우리도 배워야 한다는 식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영국과 미국의 지원 그리고 강력한 무력 때문입니다. 아랍군이 도망갔던 것은 아랍 국가들이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해 싸울 의지가 별로 없거나 무력이 약해서이고, 특히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아랍인들이 떠났던 것은 죽이려고 하니 살려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진짜로 황무지를 농토로 바꿔왔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팔레스타인 농민들의 비옥한 농토를 지금도 빼앗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보는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생각은 행동을 바꿉니다.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해서 정확한 사실과 진보적인 시각의 정보가 보다 생산되고 소통될 필요가 있습니다. 5) 현장성과 연대 운동 길지 않은 시간이라도 현장에서 느껴보면 상황을 판단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어느 조직이라도 준비가 된다면 팔레스타인에서 직접 활동을 벌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만난 한 조직은 3개월씩 활동가들이 돌아가면서 파견되어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공동의 과제를 가지고 연대 운동을 벌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팔레스타인 농민들에겐 토지 몰수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제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지금 한국 정부가 평택에서 시도하고 있는 토지 몰수 사례를 얘기하면 깜짝 놀라면서 한국에서도 그러냐는 반응을 보입니다. 한국의 농민도, 팔레스타인의 농민도 정도는 달라도 제국주의와 군사주의에 희생당하고 있으며 이것이 연대의 주요한 뿌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 여성, 노동, 인권 등 각 분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정리한 짧은 생각입니다. 처음엔 간단한 역사 해설도 붙였지만 내용이 너무 길어져서 지웠습니다. 아무쪼록 이 글을 읽으신 게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연대의 시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보다 자세한 얘기는 팔레스타인평화연대(http://www.pal.or.kr)을 방문해 주십시오. 하루하루 더욱 건강하고 진보하시는 날들 되시길 바라며 미니는 이만 물러갑니다. 1) [편집자 주] 봉기?반란?각성 등을 뜻하는 아랍어로서 그 계기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팔레스타인인들이 국제연합의 일방적인 국경선 획정과 이스라엘 통치에 저항하여 일으킨 봉기를 의미한다. 1차 인티파다는 이스라엘군의 지프차에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폭압적인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한 불만이 봉기로 폭발한 점령지 내부의 최초의 대중운동으로서 1987년부터 1993년까지 지속되었다. 1차 인티파다를 통해 팔레스타인 문제가 국제적인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그 이후 오슬로 협정을 통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수립되었지만 여전히 이스라엘 군대의 무자비한 검문과 점령지 통제는 중단되지 않았고 2000년 9월 이스라엘 야당 당수 아리엘 샤론이 동예루살렘을 방문한 데 대한 팔레스타인인들의 반발을 이스라엘 군대가 진압한 사건을 계기로 2차 인티파다가 시작된다. 팔레스타인 저항세력의 무차별적인 자살폭탄 공격을 ‘테러’로 규정하고 그 몇 배의 화력을 동원하여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공습과 봉쇄를 유지하고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불만은 결국 올해 1월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그동안 이스라엘과 서방에 대해 의존적이었던 집권 파타당의 패배와, 대(對)이스라엘 무장투쟁과 활발한 사회활동을 통해 대중적 기반이 튼튼한 하마스의 승리로 귀결된다본문으로
지난 2005년 11월 9~10일 고려대학교 제2학생회관에서 “비정규직 권리보장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의 일환으로 “이주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워크샵이 개최되었다. 1부에서는 이주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법·제도적 측면을 다룬 ILO와 민변 황필규 변호사의 발표가 있었고, 2부에서는 국제건설목공노련의 이주노동자 관련 활동 소개와 한국, 일본, 홍콩, 네팔 등 4개국 이주노동자운동 활동가들의 발표가 있었다. 특히 2부의 발표는 이주노동자 운동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단초를 던져주었다. 다만 각각의 발표들이 주로 자신들의 구체적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아시아 지역의 전반적인 이주노동의 현실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거나 공동의 과제를 확인하기에는 조금 미흡한 면이 있었다. 이 글은 작년 워크샵의 발표를 조금이나마 보충하려는 시도이다. 아시아 지역 이주노동과 이주노동자운동의 현실을 보다 포괄적으로 살펴보면서 각 국 사례들의 교훈을 분명히 하고 공동의 전망을 모색하려 한다. 각 국의 구체적인 운동 사례는 주로 워크샵의 발표를 참고했다. 당시 워크샵 기획단 일원으로서 이 지면을 빌어 발표를 맡아주신 활동가들에게 감사와 연대의 말을 전한다. 아시아 이주노동의 전반적 현황 2차대전 이후 아시아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규모로 노동력을 송출해 왔다. 이는 당시 식민지로부터 해방되어 이전과는 다른 조건 속에서 경제성장을 도모해야 했던 많은 국가들이 자본의 부족과 노동력의 과잉이라는 상황에서 택한(혹은 택할 수밖에 없었던) 전략일 것이다. 즉 이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풍부한 노동력을 수출하여 국내의 노동력 과잉을 해소하고 이를 통한 외화획득으로 부족한 자본을 보충했다. 당시 노동력 이동은 주로 북아메리카, 서유럽, 중동지역 등을 향했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이러한 흐름이 변화한다. 우선 노동력 이동 방향이 변화하는데, 특히 아시아 내부에서의 노동력 이동이 두드러지게 증가한다. 그런데 이는 단순한 방향 변화를 넘어선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노동력 이동의 전반적인 양상이 변화하고 있음이 확인되는데 이는 자본주의 위기와 이에 따른 금융세계화,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밀접히 연관된다. 한편으로 중심부 및 중동 등 전통적인 노동력 수입국의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외국인 저임금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이민이나 이주노동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었다. 반면 상대적으로 호황을 구가하던 아시아의 주요 산업국가인 일본, 한국, 대만 등에서 저임금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증대했다. 다른 한편으로 개방의 가속화로 인한 농촌의 몰락, 산업의 침체 등으로 주변부 국가에서의 노동자들의 이주가 확대되고 자연스럽게 이들 사이의 경쟁이 강화된다. 이로 인하여 저임금 노동력의 이동 방향이 변화했을 뿐 아니라 노동력 수입국에서의 규제강화에 따른 불법체류 혹은 불법취업이 증가하고 이주를 둘러싼 각종 중개업체의 개입과 송출비리가 심화된다. 이것이 주로 저임금·미숙련 노동력의 경우라면, 고부가가치 산업과 연관된 고임금·숙련 노동력의 이동은 다른 양상을 보인다. 후자의 중심부, 특히 미국 유입은 오히려 증가하고 반주변부나 다른 국가에서 이들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진다. 요컨대 노동력 이동에서 이중적 흐름이 형성되고 각 국가는 선별적으로 이들을 관리하는 정책을 채택한다.1) 다음으로 전통적인 건설업이나 제조업에서의 노동력 이동 이외에 시설관리, 서비스 등의 업종에서의 노동력 이동이 두드러지게 증가하고 있다. 금융세계화가 진전되면서 각종 서비스 업종에서의 일자리, 이른바 ‘하인노동’이 팽창하는데 이러한 일자리의 상당수를 이주노동자들이 채우고 있다. 한편 ‘이주의 여성화’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이주노동자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속히 증가한다.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출 확대, 전통적 성별 분업이데올로기의 존속, 성산업의 유례없는 팽창, 국제결혼의 증가 등 신자유주의로 인한 노동의 불안정화, 성산업, 가족제도의 변화가 맞물려 여성의 이주가 확대되고 있다.2) 아시아의 경우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주요 송출국에서의 여성 비중 증가3), 홍콩 등지의 가사노동자에서 이주여성의 비중 증대, 한국에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국제결혼(1990년대 600여명에서 2004년에는 연간 25,500명으로 확대되었다) 등에서 이러한 사실이 확인된다. 주요 국가별 이주노동의 상황 및 관련 제도 : 노동력 유입국을 중심으로 자본주의 하에서 개별 국가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책은 노동력에 대한 관리의 문제와 국가의 구성원을 관리하는 문제에 대한 대응의 결합물이다. 근대국가는 국경의 출입을 관리·통제하고 자국 시민의 자격을 결정·부여한다. 19세기를 거치며 일반화된 민족국가는 민족적·인종적 동일성을 이러한 결정의 일차적 기준으로 삼는다. 근대국가가 기반하고 있는 자유와 평등의 이념은 이러한 동일성이 권리의 차등으로 이어지는 것을 금지하고 시민의 자격 여부를 가르는 기준 면에서 보편성을 원칙으로 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서는 민족적·인종적 동일성이 끊임없이 1차적인 기준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개별 국가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책과 제도는 자본축적의 요구에서 비롯되는 노동력의 공급에 대한 관리와 민족국가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재생산하기 위한 국경·시민권에 대한 관리 간의 모순과 긴장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아시아 지역의 국가들은 혈연공동체에 기반하여 시민권 자격을 부여하는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책도 시장의 필요에 부응하는 노동력을 제한적으로 수입하되 사회적·정치적 영역으로의 진입은 철저하게 가로막는 특성을 보인다. 이와 유사한 제도를 가지는 국가로 독일을 꼽을 수 있다.4) 독일의 이주노동력 관리 제도인 ‘노동허가제도’는 정부가 이주노동의 모집과 직업소개를 독점하여 관리하고 이주노동자가 취업할 수 있는 지역·직종을 제한하는 한편 이주노동자의 장기거주를 차단하는 ‘교체순환정책’을 표방한다. 이는 싱가포르, 대만, 홍콩 등의 이주노동자 수입 정책 모델이 된다. 다만 이들 나라는 독일의 노동허가제도가 본래 의도와는 달리 이주노동자들의 정착을 막지 못했음에 주목하면서, 독일식 제도를 변형하여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봉쇄하는 ‘고용허가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경우 고임금 노동자에 대해서는 사실상 이민자로 대우하지만, 저임금 노동자에 대해서는 외국인노동자취업법에 따라 사업장 이동의 권리 등을 엄격히 제한한다. 대만 역시 비슷하나 허가를 받은 고용주만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 다르다. 홍콩은 외국인력의 도입에 관한 별도의 법률을 갖고 있지 않아 정부의 특별조치나 행정 집행에 의해서 인력의 도입과 관리가 결정된다. 정부의 결정에 따라 취업사증을 받은 노동자는 단기간 체류만이 허용되고, 사업장 이동이 금지되며, 영주권을 신청하거나 가족과 동거할 수 없다. 한편 일본은 단순·미숙련 노동자를 원칙적으로 수입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 정책방향이다. 따라서 ‘기능실습제도’라는 연수생제도가 노동력을 수입하는 유일한 공식 제도다. 여기서는 한국의 ‘산업연수제도’와는 달리 연수 후 기능실습 기간에 노동자 신분이 인정되기 때문에 노동관계법, 각종 사회 보장 관련 법령이 적용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연수생, 실습생이라는 미명 하에 이주노동자에 대한 초과착취가 자주 일어난다. 그러나 전체 이주노동자 중 실습생은 겨우 1.4%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정주자 사증을 받은 일본계외국인, 유학생들의 파트타임 취업, 미등록노동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미등록노동자의 비율이 거의 40%에 달할 정도이다. 한국의 경우 음성적으로 이주노동자의 도입이 이루어지다가 1991년 일본과 유사한 산업연수생제도를 통해 이주노동력의 수입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세계 1위의 미등록노동자의 비율(2003년 기준, 2위인 일본보다 무려 20%가 높은 60%)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이는 다량의 미등록노동자를 양성했을 뿐 아니라 심각한 인권탄압, 초과착취를 조장했다. 이에 대한 이주노동자들의 반발과 투쟁이 거세지자 정부는 2004년 대만과 유사한 ‘고용허가제’를 도입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를 비판하면서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노동허가제’ 도입을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다. 각 국별 투쟁 사례의 시사점 1) 홍콩노총 인도네시아 이주지부(IMWU-HKCTU) 홍콩노총 인도네시아 이주지부는 홍콩 내 인도네시아인 단체(IGHK)를 기반으로 1993년에 만들어져 1996년 정식노동조합으로 등록되었고 현재는 200명이 넘는 조합원이 있다. 홍콩에는 22,800명의 이주 가사노동자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중 12,420명이 필리핀, 9,170명이 인도네시아 출신이다. 워크샵의 발표자인 릭 키즈마와티 수트리스노씨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여성 노동자들은 순종적이고 유순하며 가장 비천한 업무조차 기꺼이 견디는 존재처럼 인식되고 있어 홍콩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에서 가사노동자로 선호된다고 한다. 유순한 노동력으로 여겨지는 그녀들이 견뎌야 할 노동조건은 극히 열악하다. 홍콩 인도네시아 이주지부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가사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47%), 고용계약 외의 의무이행(25%), 폭력(6%), 심지어 성폭력(3%)까지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네시아 전체 이주노동자 차원에서 보면 2002년에만 1,308,765건의 살인, 강간, 육체적 폭력, 사기, 강제추방이 있었으며 또 다른 조사에 따르면 35만 명의 귀국한 이주노동자 중 12%가 질병에 걸린 채 귀국한다고 한다. 이들은 한국의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처럼 정확히 최저임금만큼의 임금을 받고 있는데 그마저도 97년 외환위기 이후 삭감되고 있는 실정이다.5) 또한 최근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새로운 관리지침인 NCS(New Conditions of Stay)는 실직시 2주 이내 추방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 많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의무와 본국에 돌아가도 일자리가 없다는 현실로 인해 이러한 열악한 상황을 감내하면서 꾸준히 이주노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맞서 홍콩노총 인도네시아 이주지부는 NCS 등의 홍콩정부 정책에 대한 개입, 임금인상을 비롯한 노동조건 개선, 인도네시아 정부 및 취업알선업체를 상대로 한 알선료 인하 등의 투쟁을 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다른 사회운동과의 연대와 조합원을 상대로 한 대중교육사업을 강조한다. 그 일환으로 이들은 세계화에 반대하는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고, 다른 시민단체, 노동조합과의 연대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이 사회운동을 더 많이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인권교육, 기술교육, 젠더관련 교육 등을 통해 소속 조합원들의 자활력을 강화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활동은 이주노동조합들이 공동으로 처해 있는 문제들, 예컨대 잦은 성원교체로 인한 조직의 안정적 토대의 취약성, 의사소통의 어려움, 사용주의 장시간 노동요구 등으로 인한 조합원들의 조합활동 시간 부족, 인적·재정적 자원의 부족 등을 극복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는 각 국의 이주노동자운동 역시 이러한 시도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 일본 전통일노조 / 카나가와 시티 유니온 노조 ’04년 기준으로 일본의 이주노동자는 1,973,747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1.55% 규모다. 제국주의 침략시절의 식민지에서 이주한 이들(약 46만 명)을 제외하면 이들 대부분은 라틴계 이민 2세들이다(56%). 공식적인 노동력 수입 제도가 없는 일본제도의 특성상 미등록노동자가 많은데 ’03년에는 그 수가 29만 명까지 이르다, 강력한 단속으로 인해 ’05년에는 20만 명 정도로 약간 줄어든 상태다. 한편 유일한 합법적 이주노동자 수입 제도인 기능실습제도는 사실상 기계, 금속, 섬유 등 제조업 분야의 저임금 노동력(일본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의 1/5, 심지어 1/10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을 충원하는 통로로 활용되고 있는데 그 수가 전체 규모에 비해서는 적으나 최근에는 중국인, 베트남, 필리핀 등 아시아 출신들이 이 제도를 통해 많이 유입되면서 그 수가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일본의 거대 산별노조가 이주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있지 않은 반면, 지역에 기반한 일반노조는 조직화에 적극적이다. 이주노동자가 속한 노동조합은 크게 2개가 있는데 카나가와 시티 유니온은 라틴계 이민 2세와 한국인들이 많고, 전통일노조에는 동남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많다고 한다. 일본에서 이주노동자 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93년 3월 8일이다.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과 심각한 인권침해를 폭로한 이 날의 투쟁은 일본 사회에서 큰 주목을 받았고, 이후 이른바 ‘외국인 춘투’라고 불리는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93년 당시 20명으로 출발한 조합원의 수도 현재 2000명에 이르고 있으며 매년 봄 지방자치단체, 노동부, 기업 등을 상대로 투쟁과 교섭을 하고 있다. 일본 이주노동자운동의 특징은 일반노조라는 조직 특성상 조합의 기반이 비교적 탄탄하고, 지역을 기반으로 이주노동자들과 일본의 노동자들 사이에서 일상적인 연대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카나가와 씨티 유니온은 지역기반 노조의 이점을 활용, 집중행동의 날을 선정하여 지역 조합원들이 함께 여러 사업장과 지역자치단체 등을 다니며 공동의 투쟁을 만드는 등, 소속 조합원들이 자연스럽게 연대감을 체득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한다. 또한 워크샵에 참석한 전통일노조의 토리 잇페이씨는 일차적으로 이주노동자들의 주체적 활동을 강조하면서도 사회운동들의 연대 역시 이에 못지않게 중요함을 강조했다. 이주노동자 관련 연대단위는 산업재해, 부당해고, 임금체불 등 현장에서 발생하는 일상적 문제에 대해서 공동으로 대응하기도 하고, 일본 사회의 변화를 위한 활동도 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이주노동자가 처한 노동조건의 특성상 건강과 관련한 문제가 많이 발생하는데 연대단위에 소속되어 있는 의료 네트워크의 연대와 지원이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한편 최근 일본사회가 우경화되는 과정에서 국가가 외국인혐오증을 활용하여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관리와 통제가 강화되고 있다고 한다. 외국인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몰아가는 캠페인을 한다거나 미등록노동자들을 일반 시민들이 신고하도록 하여 대중들 사이의 갈등을 조장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토리 잇페이씨는 이런 상황에 맞서기 위해서는 이주노동자의 노동자로서의 권리, 지역의 일원으로서의 시민의 권리를 확장하기 위한 투쟁이 절실함을 주장하였다. 3) 국제건설목공노련(IFWBB) 국제건설목공노련(IFWBB)의 아태지역 사무국의 이진숙씨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건설업을 비롯한 기업들이 구조조정, 하청, 비정규직노동자 및 이주노동자 등을 이용, 유연한 노동력을 값싸게 부리는 경향이 증가하면서 대부분의 노동자들과 특히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에 대한 일국적·국제적 대응이 중요함을 주장했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이 유입되면서 한정된 일자리를 둘러싼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업체들이 이러한 갈등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입국가의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이 이주노동자들의 동등한 노동권과 노조가입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대만의 전국중국인건설연맹(NFCCWU)의 사례는 눈여겨 볼만하다. 2000년 이주노동자의 고용시 노조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합의를 채택하는 등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시장 진입을 차단하는데 머물렀던 대만 전국중국인건설연맹은 2005년 이주노동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노조가 인력의 공급을 통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합의안을 체결하고, 이주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 조합원 교육, 조직의 재편 등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대만의 시도가 이주노동자들과 대만노동자들의 연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지 아니면 조직되어 있는 조합원들만의 이해를 대변하는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열린 문제다. 그 열쇠는 기존 노조가 얼마나 실질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가, 일상적 활동을 통해서 노동자들 사이의 연대성을 얼마나 강화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아시아 지역 이주노동자운동의 연대 전망 한편 이번 워크샵에서는 개별 국가 차원을 넘어서는 이주노동자운동에 대한 고민도 발표되었다. 이주노동 자체가 개별 국가를 넘나드는 현상이니만큼 이에 걸맞은 대응이 필수적이거니와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새로운 원리, 제도의 모색이 기존 민족국가의 틀을 넘어설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고민은 매우 중요하다. 워크샵에서는 주로 이주노동자들의 조직화 문제, 이주노동자들이 귀국 후에 겪게 되는 건강상의 문제, 취업알선 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알선업자들의 경제적 착취와 물리적 폭력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송출국과 수입국 노동조합 및 사회운동의 연대가 제기되었다. 매년 10만명의 사람들이 해외 취업을 위해 이주하는 네팔의 노동조합총연맹(GEFONT)은 노동력이 유입되는 국가에서 노총 산하 지원단체를 구성하고 이를 통해 운동을 지원하고자 하는데 현재 홍콩, 남한, 일본, 인도, 몇몇 중동국가들에 지원단체가 결성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지원단체 대표들은 네팔노총 전체총회에 참가할 권한을 가지는 등 네팔노총과의 긴밀한 협조 하에 움직이고 있다. 국제건설목공노련 아시아-태평양 지역사무소는 각 국 산하단체들(홍콩,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한국, 대만 등의 건설노조들)이 참가하는 이주노동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물론 국제적 수준에서 이주노동자운동, 개별 운동들의 연대는 매우 초보적인 단계다. 이번 워크샵과 비슷한 행사가 지난 몇 년간 수차례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구체적인 공동의 행동계획이 나오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이는 일단 개별 국가의 이주노동자운동 자체의 역량이 여전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적 틀 내에서의 운동이 잘 되어야 국제적 연대의 운동이 가능한 것만은 아니고 역으로 후자의 운동이 전자의 역량을 강화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각 운동들의 역량과 상황에 맞는 적절한 공동 행동을 모색하는 것을 하나의 계기로 삼아볼 수 있다. 특히 취업알선과정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 노동조합으로의 조직화를 위한 상호 연계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중점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주노동자운동, 우리 모두의 과제 앞서 살펴보았듯 오늘날 금융세계화의 진전은 이윤율 하락에 직면한 기업들의 저임금 노동력에 대한 수요 증가, 서비스업종을 중심으로 하는 ‘하인노동’ 확대, 주변부 경제의 파탄에 따른 반주변부/중심부로의 노동력 이동 증가 등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요인들 각각은 노동력의 이주를 추동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민족국가의 틀 내에서 이들을 관리하려는 개별 국가들의 정책은 대부분 미등록노동자 양산, 노동력 송출과 수입과정에서의 비리 증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인권탄압 증대로 귀결되었으며, 이에 대한 이주노동자들의 저항이 계속되고 있다. 동시에 불안정한 일자리에 대한 노동자들의 경쟁이 심화되거나 경제위기에 대한 대중적 불만들이 민족적·인종적 갈등으로 표출되기도 하고, 각 국의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을 잠재적인 체제 위협 요소로 간주하며 이러한 갈등을 부추기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각 국의 이주노동자운동은 미등록노동자에 대한 단속과 추방을 막아내고 노동조건을 개선하며 국가의 노동력 관리 정책을 변화시키고 노동자이자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공통적인 과제를 가지고 있다. 또한 각 국의 사회운동 및 세계사회운동은 이주노동자의 운동, 이주노동의 문제에 주목하고 외국인/내국인이라는 분할을 넘어 노동자들의 연대를 강화함으로써 신자유주의에 맞선 공동의 투쟁을 활성화하며 나아가 민족국가의 한계를 넘어서 대안적 공동체를 건설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아직까지는 각 국의 운동들이 이러한 과제를 충분히 달성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나름의 현실 속에서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 한국의 이주노동자운동은 정부의 폭력적인 단속과 추방, 노동현장에서의 기업주에 의한 심각한 차별이라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명동성당에서의 선도적인 농성투쟁을 거치며 2005년 4월 독자적인 노동조합을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주노조는 미등록노동자에 대해 가해지는 일상적 단속추방의 폭력과 이로 인한 조합원의 사기저하, 노동조합운동의 안정적 기반의 부족 등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 특히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많은 미등록노동자, 정부의 폭력적 단속과 추방으로 인한 이주노동자들의 일상적 공포가 운동의 기본적인 조건 자체를 파괴하는 현실에서, 남한의 사회운동이 담당해야 할 역할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자운동은 홍콩이나 일본의 예처럼 이주노동자운동에 적극 나서야 하며 특히 이주노조의 등록이나 민주노총 가입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이주노동자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온 지역의 각종 상담, 지원 단체나 다른 사회운동단체들은 한편으로는 이주노동자들의 자주적 조직으로서 이주노조의 강화를 자신의 활동의 중요한 목표로 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주노조와 함께 사회운동들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특히 후자를 위해서는 기존의 상담, 지원단체 이외에도 보건의료, 교육, 지역운동, 문화운동 등 다양한 사회운동들이 이주노동자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공동의 사업을 기획하고 제안해야 한다. 자본주의와 민족국가의 한계를 몸으로 드러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그 한계 너머로 민주주의와 권리의 경계를 확장시키기 위한 투쟁은 비단 이주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몫일 것이다. 1) 이러한 노동력 이동에서의 이중적 흐름의 형성과 선별적 관리는 싱가포르의 예에서 잘 드러난다. 싱가포르는 이민으로 구성된 신생 도시국가인데 월 기본임금 2,000 싱가포르 달러 이상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에게는 취업사증을 발행하여 사실상 이민자로서 대우를 하는 반면, 기준금액 미만의 임금 노동자에게는 취업허가를 발급하여 사업장 이동 등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본문으로 2) 자세한 내용은 이진숙,「여성 이주의 현황과 쟁점 : 국제결혼을 통한 이주를 중심으로」,『사회운동』2005. 9월호를 참고하시오. 본문으로 3) 인도네시아 이주/인력부 자료에 따르면 2002년 출국한 480,393명의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들 중 76%가 여성이었으며 그 중 94%가 중동,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가사노동자들이었다고 보고했다. 본문으로 4) 이하 내용은 설동훈,「아시아 각국의 외국인 노동자 정책과 노동권」, 2003 참조. 본문으로 5) 1999년 5%가 삭감되었고, 2003년에는 11%(400홍콩 달러)가 삭감되었다. 현재의 최저임금은 월 3,270홍콩달러이다. 본문으로
지난 2005년 11월 9~10일 고려대학교 제2학생회관에서 “비정규직 권리보장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의 일환으로 “이주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워크샵이 개최되었다. 1부에서는 이주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법·제도적 측면을 다룬 ILO와 민변 황필규 변호사의 발표가 있었고, 2부에서는 국제건설목공노련의 이주노동자 관련 활동 소개와 한국, 일본, 홍콩, 네팔 등 4개국 이주노동자운동 활동가들의 발표가 있었다. 특히 2부의 발표는 이주노동자 운동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단초를 던져주었다. 다만 각각의 발표들이 주로 자신들의 구체적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아시아 지역의 전반적인 이주노동의 현실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거나 공동의 과제를 확인하기에는 조금 미흡한 면이 있었다. 이 글은 작년 워크샵의 발표를 조금이나마 보충하려는 시도이다. 아시아 지역 이주노동과 이주노동자운동의 현실을 보다 포괄적으로 살펴보면서 각 국 사례들의 교훈을 분명히 하고 공동의 전망을 모색하려 한다. 각 국의 구체적인 운동 사례는 주로 워크샵의 발표를 참고했다. 당시 워크샵 기획단 일원으로서 이 지면을 빌어 발표를 맡아주신 활동가들에게 감사와 연대의 말을 전한다. 아시아 이주노동의 전반적 현황 2차대전 이후 아시아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규모로 노동력을 송출해 왔다. 이는 당시 식민지로부터 해방되어 이전과는 다른 조건 속에서 경제성장을 도모해야 했던 많은 국가들이 자본의 부족과 노동력의 과잉이라는 상황에서 택한(혹은 택할 수밖에 없었던) 전략일 것이다. 즉 이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풍부한 노동력을 수출하여 국내의 노동력 과잉을 해소하고 이를 통한 외화획득으로 부족한 자본을 보충했다. 당시 노동력 이동은 주로 북아메리카, 서유럽, 중동지역 등을 향했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이러한 흐름이 변화한다. 우선 노동력 이동 방향이 변화하는데, 특히 아시아 내부에서의 노동력 이동이 두드러지게 증가한다. 그런데 이는 단순한 방향 변화를 넘어선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노동력 이동의 전반적인 양상이 변화하고 있음이 확인되는데 이는 자본주의 위기와 이에 따른 금융세계화,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밀접히 연관된다. 한편으로 중심부 및 중동 등 전통적인 노동력 수입국의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외국인 저임금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이민이나 이주노동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었다. 반면 상대적으로 호황을 구가하던 아시아의 주요 산업국가인 일본, 한국, 대만 등에서 저임금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증대했다. 다른 한편으로 개방의 가속화로 인한 농촌의 몰락, 산업의 침체 등으로 주변부 국가에서의 노동자들의 이주가 확대되고 자연스럽게 이들 사이의 경쟁이 강화된다. 이로 인하여 저임금 노동력의 이동 방향이 변화했을 뿐 아니라 노동력 수입국에서의 규제강화에 따른 불법체류 혹은 불법취업이 증가하고 이주를 둘러싼 각종 중개업체의 개입과 송출비리가 심화된다. 이것이 주로 저임금·미숙련 노동력의 경우라면, 고부가가치 산업과 연관된 고임금·숙련 노동력의 이동은 다른 양상을 보인다. 후자의 중심부, 특히 미국 유입은 오히려 증가하고 반주변부나 다른 국가에서 이들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진다. 요컨대 노동력 이동에서 이중적 흐름이 형성되고 각 국가는 선별적으로 이들을 관리하는 정책을 채택한다.1) 다음으로 전통적인 건설업이나 제조업에서의 노동력 이동 이외에 시설관리, 서비스 등의 업종에서의 노동력 이동이 두드러지게 증가하고 있다. 금융세계화가 진전되면서 각종 서비스 업종에서의 일자리, 이른바 ‘하인노동’이 팽창하는데 이러한 일자리의 상당수를 이주노동자들이 채우고 있다. 한편 ‘이주의 여성화’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이주노동자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속히 증가한다.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출 확대, 전통적 성별 분업이데올로기의 존속, 성산업의 유례없는 팽창, 국제결혼의 증가 등 신자유주의로 인한 노동의 불안정화, 성산업, 가족제도의 변화가 맞물려 여성의 이주가 확대되고 있다.2) 아시아의 경우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주요 송출국에서의 여성 비중 증가3), 홍콩 등지의 가사노동자에서 이주여성의 비중 증대, 한국에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국제결혼(1990년대 600여명에서 2004년에는 연간 25,500명으로 확대되었다) 등에서 이러한 사실이 확인된다. 주요 국가별 이주노동의 상황 및 관련 제도 : 노동력 유입국을 중심으로 자본주의 하에서 개별 국가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책은 노동력에 대한 관리의 문제와 국가의 구성원을 관리하는 문제에 대한 대응의 결합물이다. 근대국가는 국경의 출입을 관리·통제하고 자국 시민의 자격을 결정·부여한다. 19세기를 거치며 일반화된 민족국가는 민족적·인종적 동일성을 이러한 결정의 일차적 기준으로 삼는다. 근대국가가 기반하고 있는 자유와 평등의 이념은 이러한 동일성이 권리의 차등으로 이어지는 것을 금지하고 시민의 자격 여부를 가르는 기준 면에서 보편성을 원칙으로 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서는 민족적·인종적 동일성이 끊임없이 1차적인 기준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개별 국가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책과 제도는 자본축적의 요구에서 비롯되는 노동력의 공급에 대한 관리와 민족국가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재생산하기 위한 국경·시민권에 대한 관리 간의 모순과 긴장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아시아 지역의 국가들은 혈연공동체에 기반하여 시민권 자격을 부여하는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책도 시장의 필요에 부응하는 노동력을 제한적으로 수입하되 사회적·정치적 영역으로의 진입은 철저하게 가로막는 특성을 보인다. 이와 유사한 제도를 가지는 국가로 독일을 꼽을 수 있다.4) 독일의 이주노동력 관리 제도인 ‘노동허가제도’는 정부가 이주노동의 모집과 직업소개를 독점하여 관리하고 이주노동자가 취업할 수 있는 지역·직종을 제한하는 한편 이주노동자의 장기거주를 차단하는 ‘교체순환정책’을 표방한다. 이는 싱가포르, 대만, 홍콩 등의 이주노동자 수입 정책 모델이 된다. 다만 이들 나라는 독일의 노동허가제도가 본래 의도와는 달리 이주노동자들의 정착을 막지 못했음에 주목하면서, 독일식 제도를 변형하여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봉쇄하는 ‘고용허가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경우 고임금 노동자에 대해서는 사실상 이민자로 대우하지만, 저임금 노동자에 대해서는 외국인노동자취업법에 따라 사업장 이동의 권리 등을 엄격히 제한한다. 대만 역시 비슷하나 허가를 받은 고용주만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 다르다. 홍콩은 외국인력의 도입에 관한 별도의 법률을 갖고 있지 않아 정부의 특별조치나 행정 집행에 의해서 인력의 도입과 관리가 결정된다. 정부의 결정에 따라 취업사증을 받은 노동자는 단기간 체류만이 허용되고, 사업장 이동이 금지되며, 영주권을 신청하거나 가족과 동거할 수 없다. 한편 일본은 단순·미숙련 노동자를 원칙적으로 수입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 정책방향이다. 따라서 ‘기능실습제도’라는 연수생제도가 노동력을 수입하는 유일한 공식 제도다. 여기서는 한국의 ‘산업연수제도’와는 달리 연수 후 기능실습 기간에 노동자 신분이 인정되기 때문에 노동관계법, 각종 사회 보장 관련 법령이 적용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연수생, 실습생이라는 미명 하에 이주노동자에 대한 초과착취가 자주 일어난다. 그러나 전체 이주노동자 중 실습생은 겨우 1.4%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정주자 사증을 받은 일본계외국인, 유학생들의 파트타임 취업, 미등록노동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미등록노동자의 비율이 거의 40%에 달할 정도이다. 한국의 경우 음성적으로 이주노동자의 도입이 이루어지다가 1991년 일본과 유사한 산업연수생제도를 통해 이주노동력의 수입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세계 1위의 미등록노동자의 비율(2003년 기준, 2위인 일본보다 무려 20%가 높은 60%)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이는 다량의 미등록노동자를 양성했을 뿐 아니라 심각한 인권탄압, 초과착취를 조장했다. 이에 대한 이주노동자들의 반발과 투쟁이 거세지자 정부는 2004년 대만과 유사한 ‘고용허가제’를 도입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를 비판하면서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노동허가제’ 도입을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다. 각 국별 투쟁 사례의 시사점 1) 홍콩노총 인도네시아 이주지부(IMWU-HKCTU) 홍콩노총 인도네시아 이주지부는 홍콩 내 인도네시아인 단체(IGHK)를 기반으로 1993년에 만들어져 1996년 정식노동조합으로 등록되었고 현재는 200명이 넘는 조합원이 있다. 홍콩에는 22,800명의 이주 가사노동자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중 12,420명이 필리핀, 9,170명이 인도네시아 출신이다. 워크샵의 발표자인 릭 키즈마와티 수트리스노씨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여성 노동자들은 순종적이고 유순하며 가장 비천한 업무조차 기꺼이 견디는 존재처럼 인식되고 있어 홍콩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에서 가사노동자로 선호된다고 한다. 유순한 노동력으로 여겨지는 그녀들이 견뎌야 할 노동조건은 극히 열악하다. 홍콩 인도네시아 이주지부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가사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47%), 고용계약 외의 의무이행(25%), 폭력(6%), 심지어 성폭력(3%)까지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네시아 전체 이주노동자 차원에서 보면 2002년에만 1,308,765건의 살인, 강간, 육체적 폭력, 사기, 강제추방이 있었으며 또 다른 조사에 따르면 35만 명의 귀국한 이주노동자 중 12%가 질병에 걸린 채 귀국한다고 한다. 이들은 한국의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처럼 정확히 최저임금만큼의 임금을 받고 있는데 그마저도 97년 외환위기 이후 삭감되고 있는 실정이다.5) 또한 최근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새로운 관리지침인 NCS(New Conditions of Stay)는 실직시 2주 이내 추방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 많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의무와 본국에 돌아가도 일자리가 없다는 현실로 인해 이러한 열악한 상황을 감내하면서 꾸준히 이주노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맞서 홍콩노총 인도네시아 이주지부는 NCS 등의 홍콩정부 정책에 대한 개입, 임금인상을 비롯한 노동조건 개선, 인도네시아 정부 및 취업알선업체를 상대로 한 알선료 인하 등의 투쟁을 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다른 사회운동과의 연대와 조합원을 상대로 한 대중교육사업을 강조한다. 그 일환으로 이들은 세계화에 반대하는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고, 다른 시민단체, 노동조합과의 연대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이 사회운동을 더 많이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인권교육, 기술교육, 젠더관련 교육 등을 통해 소속 조합원들의 자활력을 강화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활동은 이주노동조합들이 공동으로 처해 있는 문제들, 예컨대 잦은 성원교체로 인한 조직의 안정적 토대의 취약성, 의사소통의 어려움, 사용주의 장시간 노동요구 등으로 인한 조합원들의 조합활동 시간 부족, 인적·재정적 자원의 부족 등을 극복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는 각 국의 이주노동자운동 역시 이러한 시도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 일본 전통일노조 / 카나가와 시티 유니온 노조 ’04년 기준으로 일본의 이주노동자는 1,973,747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1.55% 규모다. 제국주의 침략시절의 식민지에서 이주한 이들(약 46만 명)을 제외하면 이들 대부분은 라틴계 이민 2세들이다(56%). 공식적인 노동력 수입 제도가 없는 일본제도의 특성상 미등록노동자가 많은데 ’03년에는 그 수가 29만 명까지 이르다, 강력한 단속으로 인해 ’05년에는 20만 명 정도로 약간 줄어든 상태다. 한편 유일한 합법적 이주노동자 수입 제도인 기능실습제도는 사실상 기계, 금속, 섬유 등 제조업 분야의 저임금 노동력(일본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의 1/5, 심지어 1/10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을 충원하는 통로로 활용되고 있는데 그 수가 전체 규모에 비해서는 적으나 최근에는 중국인, 베트남, 필리핀 등 아시아 출신들이 이 제도를 통해 많이 유입되면서 그 수가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일본의 거대 산별노조가 이주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있지 않은 반면, 지역에 기반한 일반노조는 조직화에 적극적이다. 이주노동자가 속한 노동조합은 크게 2개가 있는데 카나가와 시티 유니온은 라틴계 이민 2세와 한국인들이 많고, 전통일노조에는 동남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많다고 한다. 일본에서 이주노동자 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93년 3월 8일이다.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과 심각한 인권침해를 폭로한 이 날의 투쟁은 일본 사회에서 큰 주목을 받았고, 이후 이른바 ‘외국인 춘투’라고 불리는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93년 당시 20명으로 출발한 조합원의 수도 현재 2000명에 이르고 있으며 매년 봄 지방자치단체, 노동부, 기업 등을 상대로 투쟁과 교섭을 하고 있다. 일본 이주노동자운동의 특징은 일반노조라는 조직 특성상 조합의 기반이 비교적 탄탄하고, 지역을 기반으로 이주노동자들과 일본의 노동자들 사이에서 일상적인 연대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카나가와 씨티 유니온은 지역기반 노조의 이점을 활용, 집중행동의 날을 선정하여 지역 조합원들이 함께 여러 사업장과 지역자치단체 등을 다니며 공동의 투쟁을 만드는 등, 소속 조합원들이 자연스럽게 연대감을 체득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한다. 또한 워크샵에 참석한 전통일노조의 토리 잇페이씨는 일차적으로 이주노동자들의 주체적 활동을 강조하면서도 사회운동들의 연대 역시 이에 못지않게 중요함을 강조했다. 이주노동자 관련 연대단위는 산업재해, 부당해고, 임금체불 등 현장에서 발생하는 일상적 문제에 대해서 공동으로 대응하기도 하고, 일본 사회의 변화를 위한 활동도 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이주노동자가 처한 노동조건의 특성상 건강과 관련한 문제가 많이 발생하는데 연대단위에 소속되어 있는 의료 네트워크의 연대와 지원이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한편 최근 일본사회가 우경화되는 과정에서 국가가 외국인혐오증을 활용하여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관리와 통제가 강화되고 있다고 한다. 외국인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몰아가는 캠페인을 한다거나 미등록노동자들을 일반 시민들이 신고하도록 하여 대중들 사이의 갈등을 조장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토리 잇페이씨는 이런 상황에 맞서기 위해서는 이주노동자의 노동자로서의 권리, 지역의 일원으로서의 시민의 권리를 확장하기 위한 투쟁이 절실함을 주장하였다. 3) 국제건설목공노련(IFWBB) 국제건설목공노련(IFWBB)의 아태지역 사무국의 이진숙씨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건설업을 비롯한 기업들이 구조조정, 하청, 비정규직노동자 및 이주노동자 등을 이용, 유연한 노동력을 값싸게 부리는 경향이 증가하면서 대부분의 노동자들과 특히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에 대한 일국적·국제적 대응이 중요함을 주장했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이 유입되면서 한정된 일자리를 둘러싼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업체들이 이러한 갈등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입국가의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이 이주노동자들의 동등한 노동권과 노조가입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대만의 전국중국인건설연맹(NFCCWU)의 사례는 눈여겨 볼만하다. 2000년 이주노동자의 고용시 노조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합의를 채택하는 등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시장 진입을 차단하는데 머물렀던 대만 전국중국인건설연맹은 2005년 이주노동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노조가 인력의 공급을 통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합의안을 체결하고, 이주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 조합원 교육, 조직의 재편 등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대만의 시도가 이주노동자들과 대만노동자들의 연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지 아니면 조직되어 있는 조합원들만의 이해를 대변하는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열린 문제다. 그 열쇠는 기존 노조가 얼마나 실질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가, 일상적 활동을 통해서 노동자들 사이의 연대성을 얼마나 강화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아시아 지역 이주노동자운동의 연대 전망 한편 이번 워크샵에서는 개별 국가 차원을 넘어서는 이주노동자운동에 대한 고민도 발표되었다. 이주노동 자체가 개별 국가를 넘나드는 현상이니만큼 이에 걸맞은 대응이 필수적이거니와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새로운 원리, 제도의 모색이 기존 민족국가의 틀을 넘어설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고민은 매우 중요하다. 워크샵에서는 주로 이주노동자들의 조직화 문제, 이주노동자들이 귀국 후에 겪게 되는 건강상의 문제, 취업알선 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알선업자들의 경제적 착취와 물리적 폭력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송출국과 수입국 노동조합 및 사회운동의 연대가 제기되었다. 매년 10만명의 사람들이 해외 취업을 위해 이주하는 네팔의 노동조합총연맹(GEFONT)은 노동력이 유입되는 국가에서 노총 산하 지원단체를 구성하고 이를 통해 운동을 지원하고자 하는데 현재 홍콩, 남한, 일본, 인도, 몇몇 중동국가들에 지원단체가 결성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지원단체 대표들은 네팔노총 전체총회에 참가할 권한을 가지는 등 네팔노총과의 긴밀한 협조 하에 움직이고 있다. 국제건설목공노련 아시아-태평양 지역사무소는 각 국 산하단체들(홍콩,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한국, 대만 등의 건설노조들)이 참가하는 이주노동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물론 국제적 수준에서 이주노동자운동, 개별 운동들의 연대는 매우 초보적인 단계다. 이번 워크샵과 비슷한 행사가 지난 몇 년간 수차례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구체적인 공동의 행동계획이 나오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이는 일단 개별 국가의 이주노동자운동 자체의 역량이 여전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적 틀 내에서의 운동이 잘 되어야 국제적 연대의 운동이 가능한 것만은 아니고 역으로 후자의 운동이 전자의 역량을 강화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각 운동들의 역량과 상황에 맞는 적절한 공동 행동을 모색하는 것을 하나의 계기로 삼아볼 수 있다. 특히 취업알선과정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 노동조합으로의 조직화를 위한 상호 연계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중점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주노동자운동, 우리 모두의 과제 앞서 살펴보았듯 오늘날 금융세계화의 진전은 이윤율 하락에 직면한 기업들의 저임금 노동력에 대한 수요 증가, 서비스업종을 중심으로 하는 ‘하인노동’ 확대, 주변부 경제의 파탄에 따른 반주변부/중심부로의 노동력 이동 증가 등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요인들 각각은 노동력의 이주를 추동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민족국가의 틀 내에서 이들을 관리하려는 개별 국가들의 정책은 대부분 미등록노동자 양산, 노동력 송출과 수입과정에서의 비리 증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인권탄압 증대로 귀결되었으며, 이에 대한 이주노동자들의 저항이 계속되고 있다. 동시에 불안정한 일자리에 대한 노동자들의 경쟁이 심화되거나 경제위기에 대한 대중적 불만들이 민족적·인종적 갈등으로 표출되기도 하고, 각 국의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을 잠재적인 체제 위협 요소로 간주하며 이러한 갈등을 부추기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각 국의 이주노동자운동은 미등록노동자에 대한 단속과 추방을 막아내고 노동조건을 개선하며 국가의 노동력 관리 정책을 변화시키고 노동자이자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공통적인 과제를 가지고 있다. 또한 각 국의 사회운동 및 세계사회운동은 이주노동자의 운동, 이주노동의 문제에 주목하고 외국인/내국인이라는 분할을 넘어 노동자들의 연대를 강화함으로써 신자유주의에 맞선 공동의 투쟁을 활성화하며 나아가 민족국가의 한계를 넘어서 대안적 공동체를 건설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아직까지는 각 국의 운동들이 이러한 과제를 충분히 달성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나름의 현실 속에서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 한국의 이주노동자운동은 정부의 폭력적인 단속과 추방, 노동현장에서의 기업주에 의한 심각한 차별이라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명동성당에서의 선도적인 농성투쟁을 거치며 2005년 4월 독자적인 노동조합을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주노조는 미등록노동자에 대해 가해지는 일상적 단속추방의 폭력과 이로 인한 조합원의 사기저하, 노동조합운동의 안정적 기반의 부족 등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 특히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많은 미등록노동자, 정부의 폭력적 단속과 추방으로 인한 이주노동자들의 일상적 공포가 운동의 기본적인 조건 자체를 파괴하는 현실에서, 남한의 사회운동이 담당해야 할 역할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자운동은 홍콩이나 일본의 예처럼 이주노동자운동에 적극 나서야 하며 특히 이주노조의 등록이나 민주노총 가입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이주노동자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온 지역의 각종 상담, 지원 단체나 다른 사회운동단체들은 한편으로는 이주노동자들의 자주적 조직으로서 이주노조의 강화를 자신의 활동의 중요한 목표로 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주노조와 함께 사회운동들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특히 후자를 위해서는 기존의 상담, 지원단체 이외에도 보건의료, 교육, 지역운동, 문화운동 등 다양한 사회운동들이 이주노동자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공동의 사업을 기획하고 제안해야 한다. 자본주의와 민족국가의 한계를 몸으로 드러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그 한계 너머로 민주주의와 권리의 경계를 확장시키기 위한 투쟁은 비단 이주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몫일 것이다. 1) 이러한 노동력 이동에서의 이중적 흐름의 형성과 선별적 관리는 싱가포르의 예에서 잘 드러난다. 싱가포르는 이민으로 구성된 신생 도시국가인데 월 기본임금 2,000 싱가포르 달러 이상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에게는 취업사증을 발행하여 사실상 이민자로서 대우를 하는 반면, 기준금액 미만의 임금 노동자에게는 취업허가를 발급하여 사업장 이동 등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본문으로 2) 자세한 내용은 이진숙,「여성 이주의 현황과 쟁점 : 국제결혼을 통한 이주를 중심으로」,『사회운동』2005. 9월호를 참고하시오. 본문으로 3) 인도네시아 이주/인력부 자료에 따르면 2002년 출국한 480,393명의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들 중 76%가 여성이었으며 그 중 94%가 중동,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가사노동자들이었다고 보고했다. 본문으로 4) 이하 내용은 설동훈,「아시아 각국의 외국인 노동자 정책과 노동권」, 2003 참조. 본문으로 5) 1999년 5%가 삭감되었고, 2003년에는 11%(400홍콩 달러)가 삭감되었다. 현재의 최저임금은 월 3,270홍콩달러이다. 본문으로
WTO 홍콩 각료회의 원정투쟁이 대량 연행 사태로 이어진 후 14인의 구속자가 발생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자, 홍콩의 대책위와 한국의 상황실에서 수립한 계획 중 민주노동당이 주도해 벌인 활동은 구속자들의 조속한 석방을 호소하는 국제의원(정치인) 서명운동이었다. 과잉 진압과 연행 과정에서의 인권 탄압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구속자들의 조속한 석방과 안전한 귀국을 촉구하는 이 호소문에는 휴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으로 50명이 넘는 정치인들이 서명을 했다. 지역별로는 유럽, 그 중에서도 유럽연합의회1) 의원들이 유별나게 많이 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2)
유럽연합의회에서는 총 17명의 의원들이 서명을 했는데, 8명은 유럽통합좌파-북유럽녹색좌파 그룹(GUE-NGL: 이하 유럽통합좌파 그룹) 소속, 7명은 녹색당 그룹(Greens-EFA) 소속, 2명은 사회당 그룹(PSE) 소속이었다.
유럽통합좌파 그룹과는 달리, 민주노동당과 구체적 연계가 없는 녹색당 그룹에서 열성적으로 서명에 참여한 것은 의외였다. 영국과 이탈리아 녹색당, 국내에도 책이 번역되어 있는 프랑스 녹색당의 알랭 리피에츠, 그리고 벨기에와 스웨덴 녹색당 소속 의원들이 서명을 했다. 이 중에는 유럽연합의회 부의장도 있었다. 유럽의회에서 두 번째로 많은 의원들을 보유하고 있는 사회당 그룹에서는 영국 노동당과 프랑스 사회당의 의원들이 서명에 동참했다. 유럽통합 좌파에서는 프랑스 공산당, 독일 민주사회당, 이탈리아 공산주의재건당과 공산당, 그리고 스웨덴 좌파당 소속 의원들이 서명을 했다. 이탈리아 공산주의재건당 소속 의원은 의회의 개발협력위원회 위원장이고, 이탈리아 공산당 의원은 과거 우주 비행사로서 미국인들과 함께 실제로 우주 비행을 한 사람이라고 한다. 서명 의원들의 분포를 보며, 적어도 현재 민주노동당은 활동이나 성향, 그리고 입장에서 유럽의 사민당보다는 녹색당이나 통합좌파 소속 공산당들과 더 가깝다는 필자의 평소 생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이 두 그룹은 의회 내에서도 공조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글에서는 바로 이 마지막 그룹, 즉 이 서명을 조직한 결과 가장 많은 의원들이 서명한 유럽통합좌파 그룹에서부터 출발하여 유럽의 좌파 지형을 개괄하고, 몇 가지 함의들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사회당 그룹에 소속되어 있는 그룹들에 대해서는 추후로 기회를 미루고, 녹색당 그룹에 대해서는 개괄조차 할 능력이 아직 안 된다는 점을 솔직히 고백한다.
유럽통합좌파 그룹은 각국에서 각기 다른 선거 제도를 통해 뽑힌 유럽연합 의회 진출 정당들 사이의 블록으로서, 북유럽 지역의 녹색 좌파 정당들(NGL)과 동서 유럽의 공산당 계열의 정당들(GUE, 영어로는 European United Left) 사이의 합의를 통해 형성된 것이다. 유럽연합 소속 14개국, 16개 정당과 준회원 정당 조직 4개가 활동하고 있다. 한마디로 유럽에서 사회당/사민당 왼쪽에 있는 정당들의 가장 광범위한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의석은 현재 41개로 진보 정당 중에서는 영국 노동당, 프랑스 사회당, 독일 사민당 등이 참여하고 있는 사민주의 계열의 블록에 이어 녹색당 블록과 함께 비슷한 수3)를 확보하고 있다.
작년에 단병호, 최순영 의원과 같이 이 그룹의 초청 교류 프로그램으로 유럽연합의회가 있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를 방문4)했을 때 들은 흥미로운 얘기가 있다. 그룹 의장인 프랑시스 베르츠 의원을 만나러 가는 길에 수행을 담당했던 스텔란 그룹 부총장(스웨덴 좌파당 소속)이 귀띔해준 얘기다. “베르츠 의장은 영어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프랑스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랑스 공산당 소속인 그는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지만,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불어로 말하고 영어로 통역을 하는 방향을 택했다. 유럽연합의회에서는 모든 회의 진행을 소속 국가들의 언어로 들을 권리가 있는데, 이 그룹의 모든 전체 회의도 보통 7-8개의 언어로 통역된다. 유럽통합좌파의 공식 명칭도
WTO 홍콩 각료회의 원정투쟁이 대량 연행 사태로 이어진 후 14인의 구속자가 발생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자, 홍콩의 대책위와 한국의 상황실에서 수립한 계획 중 민주노동당이 주도해 벌인 활동은 구속자들의 조속한 석방을 호소하는 국제의원(정치인) 서명운동이었다. 과잉 진압과 연행 과정에서의 인권 탄압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구속자들의 조속한 석방과 안전한 귀국을 촉구하는 이 호소문에는 휴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으로 50명이 넘는 정치인들이 서명을 했다. 지역별로는 유럽, 그 중에서도 유럽연합의회1) 의원들이 유별나게 많이 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2)
유럽연합의회에서는 총 17명의 의원들이 서명을 했는데, 8명은 유럽통합좌파-북유럽녹색좌파 그룹(GUE-NGL: 이하 유럽통합좌파 그룹) 소속, 7명은 녹색당 그룹(Greens-EFA) 소속, 2명은 사회당 그룹(PSE) 소속이었다.
유럽통합좌파 그룹과는 달리, 민주노동당과 구체적 연계가 없는 녹색당 그룹에서 열성적으로 서명에 참여한 것은 의외였다. 영국과 이탈리아 녹색당, 국내에도 책이 번역되어 있는 프랑스 녹색당의 알랭 리피에츠, 그리고 벨기에와 스웨덴 녹색당 소속 의원들이 서명을 했다. 이 중에는 유럽연합의회 부의장도 있었다. 유럽의회에서 두 번째로 많은 의원들을 보유하고 있는 사회당 그룹에서는 영국 노동당과 프랑스 사회당의 의원들이 서명에 동참했다. 유럽통합 좌파에서는 프랑스 공산당, 독일 민주사회당, 이탈리아 공산주의재건당과 공산당, 그리고 스웨덴 좌파당 소속 의원들이 서명을 했다. 이탈리아 공산주의재건당 소속 의원은 의회의 개발협력위원회 위원장이고, 이탈리아 공산당 의원은 과거 우주 비행사로서 미국인들과 함께 실제로 우주 비행을 한 사람이라고 한다. 서명 의원들의 분포를 보며, 적어도 현재 민주노동당은 활동이나 성향, 그리고 입장에서 유럽의 사민당보다는 녹색당이나 통합좌파 소속 공산당들과 더 가깝다는 필자의 평소 생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이 두 그룹은 의회 내에서도 공조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글에서는 바로 이 마지막 그룹, 즉 이 서명을 조직한 결과 가장 많은 의원들이 서명한 유럽통합좌파 그룹에서부터 출발하여 유럽의 좌파 지형을 개괄하고, 몇 가지 함의들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사회당 그룹에 소속되어 있는 그룹들에 대해서는 추후로 기회를 미루고, 녹색당 그룹에 대해서는 개괄조차 할 능력이 아직 안 된다는 점을 솔직히 고백한다.
유럽통합좌파 그룹은 각국에서 각기 다른 선거 제도를 통해 뽑힌 유럽연합 의회 진출 정당들 사이의 블록으로서, 북유럽 지역의 녹색 좌파 정당들(NGL)과 동서 유럽의 공산당 계열의 정당들(GUE, 영어로는 European United Left) 사이의 합의를 통해 형성된 것이다. 유럽연합 소속 14개국, 16개 정당과 준회원 정당 조직 4개가 활동하고 있다. 한마디로 유럽에서 사회당/사민당 왼쪽에 있는 정당들의 가장 광범위한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의석은 현재 41개로 진보 정당 중에서는 영국 노동당, 프랑스 사회당, 독일 사민당 등이 참여하고 있는 사민주의 계열의 블록에 이어 녹색당 블록과 함께 비슷한 수3)를 확보하고 있다.
작년에 단병호, 최순영 의원과 같이 이 그룹의 초청 교류 프로그램으로 유럽연합의회가 있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를 방문4)했을 때 들은 흥미로운 얘기가 있다. 그룹 의장인 프랑시스 베르츠 의원을 만나러 가는 길에 수행을 담당했던 스텔란 그룹 부총장(스웨덴 좌파당 소속)이 귀띔해준 얘기다. “베르츠 의장은 영어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프랑스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랑스 공산당 소속인 그는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지만,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불어로 말하고 영어로 통역을 하는 방향을 택했다. 유럽연합의회에서는 모든 회의 진행을 소속 국가들의 언어로 들을 권리가 있는데, 이 그룹의 모든 전체 회의도 보통 7-8개의 언어로 통역된다. 유럽통합좌파의 공식 명칭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