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주둔 60년과 상존하는 전쟁위기 전쟁유발 원인으로서 한미상호방위조약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다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들은 담고 있다. 먼저 조약이 언제 어떻게 갱신될 수 있는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본 조약은 무기한으로 유효하다”). 한국과 미국 정부가 1953년 8월 7일 가조인하고, 10월 1일 정식 체결된 이후로 조약은 거의 영구적인 것으로 남아 있다. 갱신될 수 없으므로 당연히 조약은 한번도 공적인 토론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특히 조약에서 미군 주둔에 무제한의 자유를 부여한 것은 한반도 위기의 중대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미합중국의 육해공군을 대한민국 영토 내와 그 주변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허여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 미군의 주둔 목적을 분명히 밝히지 않고 있으므로 미군은 어떤 군사활동을 펼치더라도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다. 또한 미군 병력과 무기의 증강, 감축, 철수 문제를 미국이 자의로 결정할 수 있고, 한국은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통제도 가할 수 없다. 결국 미군이 남한에 핵무기나 이를 탑재할 수 있는 미사일, 전폭기를 들여오는 일이나, 미국이 한반도를 범아시아 차원의 전방 병참기지로 삼는 것도 미국 맘에 달린 일이다. 게다가 “어느 일국의 안전이 외부의 무력행사에 의하여 위협받고 있다고 어느 당사국이 인정할 때에는 언제든지 협의한다”는 조항도 미국의 군사전략이 ‘예방적인 선제공격’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한 언제든지 악용될 여지가 크다. 그러나 현재 상식에 비추어 볼 때 조약의 특이한 점은 유사시 자동개입을 보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조약은 “무력공격에 의하여 위협을 받고 있다고 어느 당사국이든지 인정할 때 서로 협의한다”, “각자의 헌법상의 절차에 따라 행동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1954년 조약이 비준될 때에는 “대외적인 무력공격이 있을 때에만 상호 원조하는 책무를 갖는다”라는 양해사항을 덧붙여졌다. 이는 NATO 조약에서 “즉각 자동적인 개입을 취한다”고 명시한 것과 대비되며, 전쟁이 재발한다면 미국이 단지 제한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즉 미국이 한반도에 어떤 ‘전략적 가치’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미국의 대응이 가변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했다. 따라서 남한의 지배세력은 대규모 미국의 지상배치 병력의 유지에 모든 관심을 쏟았다. 휴전선 부근에 배치되어 인계철선 역할을 하는 미군이 미국의 즉각 개입을 보장하는 일종의 ‘인질’이라는 인식이었던 것이다. 나아가 그들은 주한미군의 영구주둔을 염원하며 미국의 자동개입을 보장하거나, 무력공격 개념을 침략행위에 대한 유엔총회 결의(1974년)처럼 더욱 폭넓게 적용하여 조약의 발동요건을 더욱 쉽게 하거나, 미국이 일방적으로 철수나 감축하지 않고 반드시 한국과 사전 합의할 수 있도록 조약을 개정하자고 주장했다. 이처럼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국이 한반도에서 군사활동의 무제한의 자유를 누리고 호전적인 전략모형을 계발하도록 보장함으로써 오히려 전쟁을 유발하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하지만 미국의 자유로운 군사활동은 남한 정부의 호전적인 군사주의와 상호 보완적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남한 정부는 조약을 체결할 당시부터 “육군 20개 사단과 해․공군력을 증강시킨다”는 미국의 약속을 받아냈고, 대규모 상비군 체제에 기초한 막대한 군사능력을 키워왔다. 남한은 전쟁수행과 군사화를 위해 미국의 협조를 이끌어내려고 미국을 끈질기게 설득하거나 도발했고, 미국은 한미동맹의 틀을 통해 남한의 노력을 제약하거나 통제하고자 시도했다. 전쟁을 지속하려는 이승만의 노력 1953년 4월 23일 일군의 시위대가 부산의 미국대사관에 난입했다. 그들의 요구는 “정전반대”였다. 정전회담이 전개되기 시작한 4월부터 이승만은 “중공군의 주둔을 인정하는 내용의 정전협정이 체결된다면 우리들은 침략적인 공산주의자들을 쳐부수고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가려는 우리의 노력에 참가할 의사가 없는 외국군대의 철수를 요구하겠다”면서 단독으로라도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승만은 전쟁을 계속할 능력이 없었고, 따라서 미국이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었다. 또는 당장 정전협정을 체결하더라도 전후 남한이 전쟁을 촉발할 수 있도록 미국이 군사지원조약을 체결해달라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당시 미국은 한미안전보장조약을 체결할 생각이 거의 없었다. 특히 미 국방부는 일본-류우큐우-필리핀을 아시아의 방어선으로 하며 한반도는 전략적으로 가치가 없다는 기존의 입장을 굳게 지키고 있었으므로 조약체결에 극히 반대했다 (미 국방부는 6월 30일이 되어서야 기존 태도를 바꿔 “한반도중립화 반대, 한국 강력지원”이라는 입장을 제출했다. 이때 미 국방부는 처음으로 남한을 부흥시켜 경제적, 정치적 모델로 만들고 북한의 불만과 불안을 조성해 통일을 성취한다고 제안했다). 이승만은 시위대 난입사건 이후 “한국군을 유엔 지휘 하에서 분리시킬 것을 준비중이다”라는 각서를 미국에 보냈다. 미국은 이승만의 태도에 커다란 불만을 품었고, 5월 4일 미 8군 사령관은 “에버레디 작전”을 작성하기에 이르렀다. 이 작전은 한국군이 유엔군의 지휘에 따르지 않는 사태가 올 경우, 8군 주도로 쿠데타를 일으킨다는 것이었다. 즉 유엔군이 중요지점을 제압한 후 한국군 참모총장을 내세워 한국군을 유엔군에 종속시킨 후 유엔의 이름으로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사정부를 선언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결국 6월 6일 아이젠하워는 정전 후 한국의 안전보장을 위해 경제원조와 병력증강에 협력하고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서한을 보내어 이승만의 요구를 일부 수용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정전반대를 위한 이승만의 노력은 더 집요하게 이뤄졌다. 이승만은 “미국이 상호방위조약을 약속한 것에는 감사하지만, 그것이 정전과 결부되면 효력이 소멸될 것이다”라며 정전반대 입장을 지속해서 피력했다. 그는 6월 17일 심야부터 북한이 송환 또는 3국으로의 인도를 주장하던 포로 25,000명을 일방적으로 석방하여 미국에게 충격을 주었다. 또한 정전협정의 전제조건으로 정전 후 열릴 정치회담에서 “한반도 통일을 위한 방책이 결정되지 않는다면 한국군은 미 공군의 지원을 얻어 북진한다”는 내용을 제시하기도 했다. 미국은 이승만의 집요한 노력을 보며 “자신의 나라를 국가적 자살행위에 몰아넣을 수 있을 만큼 고도로 감정적이고 비합리적, 비논리적 광신도”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동시에 “나라 전체를 공산주의와 싸울 결의에 눈뜨게 하였고, 아시아 최대의 강력한 반공군대로서 미국이 잃어서는 안 될 상대다”라고 말해 이승만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기도 했다. 결국 이승만은 “정전협정에 서명할 수는 없지만, 정전 하에 취해지는 조치가 불이익이 아닌 한 방해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7월 27일 미국과 북한은 정전협정에 조인했다. 그러나 정전협정이 체결된 후에도 이승만은 “남한군에 의한 단독적 휴전선 돌파, 대북한‧중공군 공격, 북한공산정권 및 국가의 군사적 타도, 두만강-압록강선의 실지회복, 통일달성”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승만은 미국이 더 이상 한반도에서 전쟁을 원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명령으로 남한 군대가 지상에서 휴전선을, 또는 해상에서 황해도 해안을 공격‧상륙‧진격하면, 미국은 결국 새로운 한반도 전쟁에 다시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계산했다. 미국은 상호방위조약을 가조인할 때 “본 조약이 가조인 일부터 발효될 때까지 한국에 있는 양국 부대는 유엔군사령부에 소속되며 동사령부는 휴전조항에 의거하여 행동한다”는 약정을 덧붙일 정도로 남한의 단독 군사행동을 우려했다. 아이젠하워는 11월 4일 이승만에게 “만약에, 상대방 공산군 쪽에서는 정전을 성실히 이행하는데 귀하가 군사적 행동을 계획한다면, 본인으로서는 미군과 유엔참전국들의 군사력으로 가장 적절한 방법과 수단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며 노골적인 협박이 담긴 최후통첩을 보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도 이승만의 집요한 노력을 완전히 무마할 수 없었고 전후 2-3년 간 이승만의 시도는 계속 반복되었다. 군사주의 방식으로 실지회복을 추구하는 발상과 남한 사회의 군사화를 향한 길은 이미 이승만의 노력으로부터 출발했다. 박정희의 자주국방과 군사화 노선 1973년 박정희는 ‘을지연습 1973’을 시찰하는 자리에서 획기적인 지침을 시달했다. 첫째, 자주국방을 위한 군사전력을 수립하고 군사력 건설을 착수할 것. 둘째, 작전지휘권 인수에 대비한 장기 군사전략을 수립할 것. 셋째, 중화학공업 발전에 따라 고성능 전투기와 미사일을 제외한 소요무기 및 장비를 국산화할 것. 넷째, 장차 1980년대에는 한국에 미군이 없다고 가정하여 합참은 독자적인 군사전력 및 전략증강계획을 발전시킬 것 등이었다. 이에 따라 합참은 ‘국방8개년 계획’(1974~1981)안을 수립하였고, ‘율곡사업’이라는 이름의 전력증강계획과 군수산업 건설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박정희 정권이 미국의 군사지원에 완전히 의존하는 방식을 벗어나는 ‘독자’ 군사화 노선을 추진하게 된 배경에는 미국의 세계전략 변화, 즉 ‘닉슨 독트린’이 있었다 (1971년 2월 공식 발표되었다). 닉슨 독트린은 “전쟁발발시 자국방어의 일차적 책임은 당사국이 져야한다”는 기조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전진배치되어 있던 미군을 점진적으로 감축하며, 미국은 필요한 경우 제한된 물질적 지원을 하겠지만 아시아 국가들은 자체의 재원으로 소요 군비를 충당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했다. 미국은 베트남전쟁으로 인해 재정지출의 부담이 커졌고 달러의 해외유출이 늘어나면서 대외군사정책 변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자신의 세력권 내 국가들에 대한 무상군사원조를 대외군사판매 곧 무기수출로 바꾸었고, 한국은 미국의 무기를 살 돈을 미국의 차관으로 조달했다. 또한 차관은 군수산업 육성에 이용되었다. 특히 차관의 일부는 현금이 아니라 ‘시설’로 제공되었다. 이는 미국의 거대 군수산업이 낡은 생산시설을 처분하는 방법으로 널리 이용되었다. 미국의 군수자본은 무기판매시장을 확대와 시설제공을 통해 각국의 군수산업을 미국의 무기체계와 기술체계에 종속시킴으로써 半영구적인 피라미드를 구축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남한의 군사화 노선은 닉슨 독트린을 계기로 본 궤도에 오르게 되었지만, 단지 미국의 지시 때문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남한 지배세력의 숨은 염원이었다. 이를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박정희의 비밀 핵개발 계획이다. 1990년대 말 기밀 해제된 미 국무부의 1974~76년 문서는 이런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첫 번째 증거다. 기밀문서에 따르면 당시 한국은 프랑스로부터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직접 추출할 수 있는 핵연료 재처리 플랜트 도입을 추진하는 한편, 미국의 록히드사와 로켓추진기 계약을 맺으며 핵-미사일 개발을 적극 추진하였다. 박정희는 1975년 5월 스나이더 주한 미대사를 불러 “북한의 공군 우위를 상쇄하고, 북한의 군시설과 인구밀집 지역을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개발하겠다”고 통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의 핵-미사일 개발과 동아시아 핵확산을 크게 우려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지했다). 또한 박정희는 한반도 전쟁시나리오를 더욱 공세적으로 개편하자고 미국에게 집요하게 요청했다. 1970년대 중반까지 미국과 한국의 작전계획은 서울을 포기하고 남쪽으로 후퇴했다가 미국 증원군이 투입되면 반격을 펴 휴전선 이북지역으로 북한군을 격퇴한다는 ‘소극적’ 개념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 남한의 끈질긴 요청으로 북한의 진격을 반드시 서울 이북에서 막는 것으로 수정되었다. 물론 그 후로도 작전계획은 더욱 공세적으로 진화했다. 1993년 처음으로 언론에 알려진 작전계획 5027은 전쟁발발시 평양을 점령하고 점령지역에 대한 군사통치를 실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한․미 양국은 작전계획의 몇 가지 세부사항을 두고 대립했다. 미국은 압록강까지 진격한다면 중국이 개입할 것을 우려해 ‘전쟁연습’을 청천강까지 제한한 반면 한국은 완전한 국토수복작전을 주장했다. 또한 남한 정부는 전쟁발생 후 북한을 ‘수복지역’으로 간주해야한다고 주장한 반면, 미국은 북한이 유엔에 가입한 독립국가임을 근거로 휴전선 이북 지역을 ‘점령지역’으로 간주해 한시적인 군정을 시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승만이 한미동맹을 통해 실지회복을 위한 군사주의를 밀고 나가려 했다면, 박정희는 남한군대의 현대화를 통해 본격적인 전쟁국가 건설에 착수했다. 박정희는 핵을 보유한 군사강국을 꿈꿨고, 1970년대 이후 미국의 동맹국에 대한 군사화 정책을 극단으로 밀어붙였다. 한미동맹과 남한의 군사화는 전쟁 협주곡이다 박정희 정권이 내걸었던 ‘자주국방’이라는 용어는 남한 민족의 자존을 되찾자는 이미지로 널리 유포되었다. 하지만 박정희가 주창한 자주국방 노선은 현재 노무현이 제시한 ‘협력적 자주국방’이라는 개념으로 계속 재생산되고 있다. 노무현은 미국 지상군의 철수를 보충하기 위해 기존에 미군이 보유하고 있던 무기체계를 대량으로 구매하고 나아가 미국이 요구하는 동아시아 전진 병참기지의 역할을 충실히 맡기 위해 새로운 무기체계와 군사전략을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국방의 ‘자주’라는 수사에 현혹되어서 자주국방이라는 말이 탈군사화가 아니라 비약적인 군사화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선 안 된다. 국가가 ‘항구적인 전쟁준비 태세’를 구축하기 위해 대규모 상비군과 무기체계를 보유하고, 전쟁동원을 위해 사회전반을 조직하는 현상은 자연적인 게 아니고 그리 오래 전부터 내려온 현실도 아니다. 이는 양차 세계대전 이후,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미소간의 냉전이 본격화되면서 출현한 특수한 현상에 불과하다. 대규모 상비군을 육성하고, 사용가치가 ‘살육’일 뿐인 상품으로서 군사무기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막대한 국방비를 지출하며, 다른 과학기술 분야의 발전을 선도하는 무기체계를 개발하고, 공세적인 군사전략을 혁신하는 일련의 복합적인 과정은 20세기 중반부에 들어 미국을 최선두로 하여 확립된 체계일 따름이다. 게다가 현대 전쟁국가는 민중의 자기통치라는 민주주의의 이념을 근본적으로 위협한다. 본성 상 엄격한 위계구조를 지닌 대규모 상비군 제도와 소수 전쟁관료의 존재는 전쟁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외교-국방정책을 소수의 지배세력이 독점하도록 조장한다. 그리고 전쟁을 항상 활용 가능한 매력적인 수단으로 보이게 하는 객관적 토대로 작용한다. 또한 대규모 군부의 존재는 제3세계에서 미국과 결탁한 군부 쿠데타가 반복적 출현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고 따라서 민중운동에 대한 항구적인 위협이 된다. 현재 미국은 한미연합전력의 활동범위를 태평양지역 등으로 확장하기 위해 조약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 (2003년 2월 리언 J. 라포트 주한미군사령관은 조약의 개정필요성을 제기했다). 또한 2003년 3월 미국은 "인계철선의 속뜻은 미국인이 먼저 피를 흘리지 않으면 미국이 한국을 방어할 수 없다"이었지만 이제 인계철선 역할을 했던 미국 제2사단을 한강 이남으로 이동한다고 밝히면서 미국이 한반도 전쟁에 좀 더 유연하게 사고하고자 (즉 더 용이해지도록) 시도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남한이 주둔미군을 대체할 군사력을 갖추고 나아가 아시아 지역에서 미군과 함께 광범위한 군사활동에 참여하도록 종용하고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우리는 ‘종속적인 한미동맹’의 반대말이 무엇인가 더욱 분명히 밝혀야 한다. 우리는 그것이 호전적인 최첨단 군사화를 의미하는 ‘자주국방’이 아니라 탈군사화의 방향이라고 주장하자. 존재 자체가 전쟁유발이 되는 대규모 상비군과 소수 군사-안보관료 지배체제를 깨뜨릴 수 있는 힘은 반전, 평화운동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선언하자.
자이툰 부대 1년, 반전운동의 전열을 가다듬자. 자이툰의 성과? 이라크 파병을 격렬하게 반대하는 시위대를 뒤로 하고 자이툰 부대가 서울공항을 떠난 지 벌써 1년. 때마침 1대 자이툰사단장을 지낸 황의돈소장은 귀국하여 [이라크 평화 재건 사단장 임무수행 결과보고]라는 보고서를 여야 정치권에 보고했다. 내용인즉슨 자이툰 부대가 1) 이라크 평화 재건 임무수행 기반 구축 2) 국가위상 제고 및 국익증진 3) 사단급 부대 파병으로 군 전투발전 계기 4) 한미동맹 강화에 기여 등의 성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각각 1) 이라크 민중이 10만 이상 사망하고 전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점령군 철수 없이 평화 재건은 이미 불가능한 현실 2) 이라크를 침략하고 민중을 학살하는 미군을 도와 점령군으로서 3,600명의 전투병을 파병한 전범국가 3) 한국군대의 전투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것도 파병목표의 하나였다는 것을 스스로 폭로한 것 4) 이미 침략과 점령을 정당화하는 전쟁동맹으로 전락한 한미동맹 등의 사실을 애써 외면한 자화자찬이요 제 얼굴에 침뱉기에 불과하다. 이는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하고 노무현정권이 파병을 결정한 그 때부터 예정되어 있던 것이기도 하다. 미국의 압력에 마지못해 파병하는 것처럼 의무·공병부대로 이루어진 서희제마 부대를 2003년도에 파병하고 그 해 말 전투병 추가파병을 결정하여 2004년 8월에 자이툰을 보내고 2004년 말에 다시금 파병을 1년 더 연장한 것은 아무리 봐주어도 계속 더 많은 섶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꼴과 같다. 그 불은 이라크 민중을 태우고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태우고 있다. 미국의 무덤 냉전 이후 세계 유일 초강대국으로 군림해온 미국은 제국의 힘을 행사할수록 쇠퇴하는 역설에 빠져 있다. 좋았던 90년대의 거품경제가 붕괴한 이후, 미국은 금융 세계화된 경제체제 속에서 동아시아 3국을 비롯한 외국자본의 유입과 투기 거품으로 지탱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군산복합체의 무기경제는 미국의 지속적인 힘을 세계에 확인시켜야 유지될 수 있다. 그리하여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군사주의가 결합된 무장한 세계화를 추진하는 가운데 미국의 사활적 이익이 걸려 있는 중동과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이라크와 북한 같은 소위 불량국가들을 어떻게든 미국의 통제 하에 두고자 한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은 매월 5조원을 쏟아 부으면서 재정적자를 2004년 기준 4백12조원으로 사상 최대로 만들었다. 또한 더러운 침략전쟁은 국내에서도 갈수록 동의기반을 잃으면서 모병 목표치도 달성하지 못하게 되었고 다급해진 미군은 이라크에 갔다 오면 시민권을 주겠다고 라틴계를 유인하거나 미국령 서사모아 지역에서 돈을 미끼로 병사를 모으는 실정이다. 돈과 병력을 퍼부을수록 그 파괴적 영향이 경제와 군사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이라크는 미국의 무덤이 될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유례없는 세계적 협박은 오히려 미국의 헤게모니를 약화시키고 이슬람과 세계 민중을 미국의 적으로 만들고 있다. 그 적에 대한 공포를 더욱 조장하여, 세계의 동의가 아닌 공포를 바탕으로 정치와 외교를 구사하는 부시와 미국은 민중의 생존과 평화를 파괴하고 불안과 위협으로 세계를 몰아넣은 진정한 적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내년에 이라크 미군을 대폭 감군하겠다는 이야기가 부쩍 많이 등장하고 있다. 이것이 미국도 슬슬 철수하려는 것 아니냐는 징조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부시행정부가 이라크에 5,000명 규모의 세계 최대 대사관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 이라크에 4개의 항구적인 미군기지를 건설하고 있다는 점, 작년 대선 시기에도 철군설을 흘려 전쟁에 비판적인 여론에 물타기를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완전히 철군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지 않는 이상 믿을 것이 못된다. 미군 14만 명이 주둔하는 것과 더 적게 주둔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오히려 베트남전에서 그러했듯이 인원을 줄이면 더 많은 폭탄을 이라크 민중에게 퍼부을 것이다. 허울뿐인 평화재건과 ‘국익’을 위한 한미동맹의 강화 서희제마부대 파병부터 따지면 이라크 파병은 2년 반이 된다. 노무현 정권은 처음에는 인도적 지원을 내세우면서 반대여론 속에서도 의무·공병대를 파병하더니 6개월도 안되어 2003년 10월, 3,600명의 전투병 파병을 결정했다. 그것도 운동진영의 대표자들을 면담하고는 충분한 의견을 수렴하겠다더니 바로 다음날 일방적으로 결정하고는 태국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로 날아가 부시에게 이를 선물로 갖다 바쳤다. 물론 부시는 그러한 노무현의 대국민 사기극을 칭찬했다. 2004년 6월 김선일 씨가 무장 세력에 납치당해서 제발 군대를 보내지 말라고 호소하였지만 추가파병 방침을 거듭 확인함으로써 결정적으로 죽음의 원인을 제공했다. 민중들은 아픔과 분노를 노무현 정권을 겨냥하여 표출하였지만, 그 죽음 앞에서도 노무현은 거리낌 없이 ‘평화 재건’과 ‘한미동맹’, ‘국익’을 운운했고 파병을 반대하는 민중들의 열망을 철저하게 외면하여 민주주의를 짓밟았다. 그 와중에 노무현은 전략적 유연성 하에 동북아 신속 기동군으로 주한미군을 재편하려는 미국의 요구에 철저하게 복종하여 천문학적인 자금을 대어 용산 미군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하는데 동의해 주었다. 노무현은 삶의 터전을 지키며 살아가려는 평택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하였고 그 투쟁을 강경하게 진압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겉으로는 자주외교니 동북아균형자를 수사적으로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미-일 군사동맹의 하위동맹으로서 한미동맹을 전제하는 한에서 그러할 뿐이고 실제로는, 동북아 어디든지 군사적으로 개입하고자 남한을 그 미군사령부 기지화 하려는 미국의 의도에 쌍수 들어 맞장구치고 있는 것이다. 이미 한미동맹은 이라크 전쟁 참여로 인해 침략전쟁 동맹이 된지 오래다. 밖으로는 침략전쟁을 거들고 안으로는 미국의 군사전략에 순응해 들어간 노무현에게 기대할 것은 없다. 이라크 전범 국제민중재판에서도 각인되었듯이 노무현은 ‘의지의 연합’ 소속 전쟁범죄자이다. 또한 노무현은 노동자, 농민, 여성의 생존과 권리를 억압할 따름이다. 또한 노무현은 테러위협을 빌미로 하여, 광범위한 인권침해를 불러올 테러방지법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근본원인에 대한 해결을 외면하고 민중의 불안만 가중시키며 이주노동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을 것이다. 그러나 민중의 해방, 평화의 전망, 한반도의 운명은 노무현이 아니라 오직 민중의 연대와 단결, 투쟁에 의해 개척된다. 그것이 부시와 노무현과 지배계급에 저항하는 우리의 무기이다. 이라크 점령 중단! 자이툰 부대 철수! 이라크 점령이 장기화되고 한국군의 파병이 잇달아 일어나는 동안 수많은 이들의 분노와 저항이 있었다. 작년 여름 연일 이어지는 촛불시위에 많은 사람들이 초를 들고 하나둘 모였고, 크고 작은 수많은 전쟁반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지키기 위한 자기실천을 해왔다. 그러나 한편, 이러한 전쟁반대의 목소리는 정부에 파병을 철회해줄 것을 요청하는 부탁으로 전락하거나 ‘미국의 고마움을 모르는 철없는 것들’로 매도되기 일쑤였고, 테러위협의 공포가 부시와 노무현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알지 못하도록 철저히 포장된 언론과 정부의 목소리는 더욱 커져갔다. 이러한 과정에서 전쟁과 파병상황은 민중들에게 점점 익숙한 ‘현실’이 되어가고만 있다. 객관적으로 볼 때 현재 미국의 이라크 점령과 자이툰 파병에 저항하는 운동은 폭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지 못하다. 실제로 지난 해 김선일 씨의 죽음으로 촉발된 분노에 기반하여 전국적으로 대규모 시위가 전개된 이래 몇 차례의 계기를 제외하고 민중운동은 이렇다 할 투쟁의 파고를 만들어내지 못하였다. 이는 우리 운동이 더욱 집요하고 끈질기게 저들의 약한 지점을 공격하고 민중의 의지와 역량을 결집시켜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금 이라크 전쟁과 파병의 문제를 민중의 정치적 투쟁의 가운데로 가지고 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이툰 부대 파병 1년이 우리에게 제기하는 것은 이것이다. 민중의 생존과 권리에 대해 노무현과 지배계급이 벌이는 사기극을 적극적으로 폭로하고, 한미동맹과 미군기지 확장 이전에 반대하고, APEC/WTO반대투쟁 등을 통해 반전, 그리고 파병반대 투쟁을 준비하자. 민중의 힘으로 더 이상 부시와 노무현이 민중의 생존과 평화를 농락하지 못하도록 전열을 갖추자. 그리하여 전쟁과 파병을 그들의 정치적 위기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이라크 점령 중단 하라! 자이툰 부대 철수하라! <이라크 전쟁과 점령 주요 일지> * 각종 언론보도를 종합한 것입니다. ■ 2003년 △2월 15일 : 전 세계 수천만명 이라크 전쟁 반대시위 △3월 20일 : 미국의 이라크 침공 시작. 부시, 전쟁 개시 선언 △3월 20일 : 노무현 대통령, 이라크전 미국입장 지지 대국민 담화 발표 △3월 21일 : 노무현 대통령, 이라크전 파병결정. 파병관련 국회의장 및 여야3당대표 만찬 △4월 2일 : 파병반대 시위 속 파병안 국회 통과 △4월 7일 : 미군 바그다드 시내 진입, 대통령궁 3곳 장악 △4월 9일 : 미군 바그다드 완전 장악 △5월 1일 : 부시, 이라크 전쟁 승리 선언 △5월 12일 : 폴 브레머 연합군 점령행정처(CPA) 행정관 부임 △5월 23일 : 미군, 이라크군ㆍ바트당 해산 △7월 13일 : 이라크 과도통치위 출범 △8월 19일 : 바그다드 유엔 사무실 공격 22명 사망. 저항공격 본격화 △10월18일 : 노무현 대통령, 이라크 추가파병 결정 △10월19일∼24일 : 노무현 대통령, 태국 APEC정상회의 참석하여 부시에게 파병결정 선사 △11월 : 종전선언후 6개월간 미군 사망자 수, 전쟁중 사망자 수 초과 △12월 13일 :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 티크리트 농가에서 미군에 체포 ■ 2004년 △2월 1일 : 아르빌 쿠르드 정당 사무실 2곳 자살폭탄공격 109명 사망 △2월 13일 : 국회앞 시위 속 추가파병안 국회통과 △3월 2일 : 시아파 성지 카르발라ㆍ바그다드 동시 자살폭탄공격 180여명 사망 △3월 8일 : 과도통치위 임시헌법 승인 △3월 20일 : 이라크 침략전쟁 1주기 전 세계 반전시위 △3월 31일 : 미국 보안회사(블랙워커)소속 직원 4명 팔루자에서 피살후 시신훼손 △4월 5일 : 미 해병대 팔루자 보복공격 학살 돌입. 이라크인 수백명 사망 △4월 28일 : 미 CBS방송, 미군의 이라크인 포로학대 첫 보도 △6월 1일 : 과도통치위 해산. 이야드 알라위 총리 임시정부 출범 △6월 23일 : 김선일씨 이라크 무장단체에 의한 피랍, 노무현정부 파병방침 고수로 살해 △6월 26일 : 김선일씨 장례식 부산에서 개최 △6월 28일 : 미군, 이라크 임시정부에 주권 이양, CPA 해산 △7월 1일 : 이라크 특별재판소, 후세인과 측근 11명 반인륜 범죄 재판회부 △8월 18일 : 임시의회(100석) 출범 △11월 7일 : 임시정부, 총선 대비 60일간 비상사태 선포 △11월 8일 : 미군 2차 팔루자 학살작전 재개. 1주일후 저항세력 1,600여명 사살발표 △12월 6일 : 노무현 대통령, 이라크 아르빌 자이툰 부대 전격 방문 △12월11일 : 부시, 블레어, 노무현 이라크 전범재판 개최 △12월31일 : 회기를 1시간 남겨두고 국회에서 파병연장안 통과 ■ 2005년 △1월 30일 : 제헌의회 선거 실시. 시아파 및 쿠르드족 정당연합(UIA) 승리 △3월 3일 : 미군 사망자 1,500명 돌파 △3월 16일 : 제헌의회(275석) 개회 △3월 20일 : 이라크 침략전쟁 2주기 전 세계 반전시위 △4월 28일 : 이라크 임시정부 수립 △5월 4일 : 아르빌에서 자살폭탄 공격이 발생 최소 60명이 숨지고 150명 부상 △5월 10일 : 이라크제헌의회, 헌법제정위원회 구성 △5월 30일 : 자이툰 부대 근처에 4발의 포탄공격 △6월 13일 : 윤광웅 국방장관, 자이툰부대 파병연장 발언 △6월 16일 : 미하원 철군결의안 제출 △6월 23일 : 터키 이스탄불에서 이라크 국제전범재판 △6월 26일 : 故김선일 1주기 반전행동 집회
<자이툰 부대 파병 1년에 즈음한 기자회견문> 노무현 정부는 언제까지 국민의 눈과 귀를 속이려는가? 이라크에 피의 악순환 가져오는 점령지원 중단하고 자이툰 부대를 철수하라! 1. 무려 3600여명에 이르는 세계 3위 규모의 무장군대를 ‘자이툰(올리브)부대’라는 이름으로 이라크로 파견한 지 내일로 1년을 맞는다. 정부는 1년전 오늘 철저한 보도통제 속에 도둑 파병을 강행했다. 그 순간 우리 국민들의 자긍심과 양심, 평화를 향한 염원은 반인륜적 파병 앞에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쳐졌다. 한국은 국제사회의 냉소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참여정부를 내세운 노무현 정부는 ‘한미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버렸다. 2.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이라크에서 저지른 일은 어떤 명분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일들이었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추구한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었고 ‘이라크인의 행복’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지난 수십 년간 후세인을 후원했던 미국의 과거, 불법전쟁과 점령정책으로 이어지는 현재의 미국의 대이라크정책에서 ‘패권과 수탈’ 외의 다른 건전한 목적을 읽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부는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원인과 해법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앵무새처럼 ‘치안은 호전될 것’이라고 강변해왔다. 그러나 현실은 번번이 점령 동조자의 무기력한 주관적 희망을 빗겨갔다. 이라크 점령으로 이라크에는 더욱 심각한 피의 악순환이 자리 잡았고, 경제봉쇄 하의 후세인 통치보다 더욱 심각한 기근과 질병, 치안불안이 만성화되었다. 나아가 이라크 점령은 이라크는 물론 전 세계를 폭력의 악순환 속에 빠트리고 있다. 스페인에서 런던에서 이집트에서 무고한 인명이 이라크 침공이 유발한 무장 갈등의 악순환 속에서 희생당하고 있다. 3. 강도와 도적 떼의 편에 서서 평화와 화해를 말하는 것이 가능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미국을 도와 이라크에 평화를 재건할 수 있다고 강변해왔다. 국방부는 자이툰 부대 1년을 평가하면서 자이툰 부대의 활동이 “평화재건 지원모델로 각인되어 국가 이미지가 제고”되고 있다고 국회에 보고하고 있다. 언제까지 이 따위 아전인수격 허위보고로 국민의 눈과 귀를 속이려하는가? 자이툰 부대의 활동이 적극적 평화재건이라기 보다 몇몇 이벤트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은 국방부 스스로 밝힌 부실하고 빈약한 통계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국방부의 대국회 보고를 살펴보면, 군사작전은 ‘호송경계’에, 민사작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Green Angel 작전’과 내역을 알 수 없는 ‘물자공여’에 한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4. ‘참여정부’라는 구호를 무색케 하는 철저한 보도통제는 파병이 얼마나 명분 없는 행위인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국방부는 2004년 10월 아르빌 전개를 마친 이래, 2004년말의 대통령 깜짝 방문과 2005년 4월의 의례적인 기자단 방문허용 조치를 제외하고는 이른바 사실상의 전면보도통제를 지속해왔다. 정부는 독립적인 취재를 전면 불허하고 이라크 정부를 압박하여 비자발급까지 통제한 것은 물론, 미국과 영국이 운용하여 편향보도를 조장한다는 비난을 사고 있는 제한된 종군 취재방식조차도 일절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렇듯 정부가 자이툰 부대에 대한 공격위협 앞에 전전긍긍하고, 군부독재를 방불케 하는 보도통제에 벌거벗고 나서는 것은 이라크에 파견된 한국군이 이미 평화재건과는 관계없는 점령과 분쟁의 한 당사자임을 고백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진정한 정의와 진정한 평의를 추구한다면 불의의 사고를 겁낼 이유가 없으며, 이역만리 타향에서 우리의 젊은이들이 흘리는 피땀의 진실에 대해 국민에게 감출 이유가 없다. 자이툰 부대가 이라크에서 나와야 하는 이유는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5. 그런데 정부는 자이툰 부대의 파병기한을 다시 연장하는 것은 물론, 그 동안 제외되었던 직접적인 치안임무까지 떠맡으려 하고 있다. 파병연장도 임무변경도 가당치 않은 일이다. 미국과 영국이 이미 이라크의 늪에서 빠져나올 궁리를 하느라 전전긍긍하고 있는 마당이다. 이미 서희제마부대 이래 2년 반이나 미군을 도와 군을 파병한 우리가 연장을 거론할 이유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의 유엔기구 청사보호 요청도 명분상 거절하기 힘들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10년간에 걸친 이라크에 대한 제재가 유엔의 이름으로 이루어졌고, 유엔의 대량살상무기 사찰을 받았음에도 유엔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막지 못했다. 심지어 사후에 이를 정당화하기까지 했다. 따라서 미군을 도와 유엔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는 것을 명분 있는 일이라 할 수 없다. 6. 개전 직후 파견한 서희제마부대는 평화재건을 내세웠지만 사실상 영내에만 머물다가 자이툰 부대에 합류했다. 지금, 무려 3천500명에 이르는 자이툰 부대가 서희제마부대의 활동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없는 활동을 하며 아르빌에 웅크리고 있다. 한국의 파병목적이 사실상 미영점령군을 정치군사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이토록 명확히 보여주는 증거는 없다. 지난 2년간 4000억 이상에 가까운 관련 예산으로 폐허가 된 이라크의 한 도시를 지원했다면 우리는 지금 이룬 일의 수십 배의 성과를 거두었을 것이다. 국민들이 런던참사의 악몽에 공포를 느끼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진정으로 ‘평화의 교량자’, ‘동북아 균형자’로 나서고자 한다면 평화를 말하면서 전쟁을 돕는 이율배반부터 중단해야 한다. 우리가 일제의 침략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도왔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 당장 침략전쟁에서 손을 떼야 한다. 끝. 2005년 8월 2일 이라크파병반대비상국민행동
자이툰 부대 파병 1년에 즈음한 기자회견 “더 이상은 안된다 자이툰 부대 철수하라!” ※첨부 : 1. 기자회견문 2. 공개질의서 <자이툰 부대 파병 1년에 즈음한 기자회견문> 노무현 정부는 언제까지 국민의 눈과 귀를 속이려는가? 이라크에 피의 악순환 가져오는 점령지원 중단하고 자이툰 부대를 철수하라! 1. 무려 3600여명에 이르는 세계 3위 규모의 무장군대를 ‘자이툰(올리브)부대’라는 이름으로 이라크로 파견한 지 내일로 1년을 맞는다. 정부는 1년전 오늘 철저한 보도통제 속에 도둑 파병을 강행했다. 그 순간 우리 국민들의 자긍심과 양심, 평화를 향한 염원은 반인륜적 파병 앞에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쳐졌다. 한국은 국제사회의 냉소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참여정부를 내세운 노무현 정부는 ‘한미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버렸다. 2.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이라크에서 저지른 일은 어떤 명분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일들이었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추구한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었고 ‘이라크인의 행복’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지난 수십 년간 후세인을 후원했던 미국의 과거, 불법전쟁과 점령정책으로 이어지는 현재의 미국의 대이라크정책에서 ‘패권과 수탈’ 외의 다른 건전한 목적을 읽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부는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원인과 해법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앵무새처럼 ‘치안은 호전될 것’이라고 강변해왔다. 그러나 현실은 번번이 점령 동조자의 무기력한 주관적 희망을 빗겨갔다. 이라크 점령으로 이라크에는 더욱 심각한 피의 악순환이 자리 잡았고, 경제봉쇄 하의 후세인 통치보다 더욱 심각한 기근과 질병, 치안불안이 만성화되었다. 나아가 이라크 점령은 이라크는 물론 전 세계를 폭력의 악순환 속에 빠트리고 있다. 스페인에서 런던에서 이집트에서 무고한 인명이 이라크 침공이 유발한 무장 갈등의 악순환 속에서 희생당하고 있다. 3. 강도와 도적 떼의 편에 서서 평화와 화해를 말하는 것이 가능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미국을 도와 이라크에 평화를 재건할 수 있다고 강변해왔다. 국방부는 자이툰 부대 1년을 평가하면서 자이툰 부대의 활동이 “평화재건 지원모델로 각인되어 국가 이미지가 제고”되고 있다고 국회에 보고하고 있다. 언제까지 이 따위 아전인수격 허위보고로 국민의 눈과 귀를 속이려하는가? 자이툰 부대의 활동이 적극적 평화재건이라기 보다 몇몇 이벤트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은 국방부 스스로 밝힌 부실하고 빈약한 통계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국방부의 대국회 보고를 살펴보면, 군사작전은 ‘호송경계’에, 민사작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Green Angel 작전’과 내역을 알 수 없는 ‘물자공여’에 한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4. ‘참여정부’라는 구호를 무색케 하는 철저한 보도통제는 파병이 얼마나 명분 없는 행위인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국방부는 2004년 10월 아르빌 전개를 마친 이래, 2004년말의 대통령 깜짝 방문과 2005년 4월의 의례적인 기자단 방문허용 조치를 제외하고는 이른바 사실상의 전면보도통제를 지속해왔다. 정부는 독립적인 취재를 전면 불허하고 이라크 정부를 압박하여 비자발급까지 통제한 것은 물론, 미국과 영국이 운용하여 편향보도를 조장한다는 비난을 사고 있는 제한된 종군 취재방식조차도 일절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렇듯 정부가 자이툰 부대에 대한 공격위협 앞에 전전긍긍하고, 군부독재를 방불케 하는 보도통제에 벌거벗고 나서는 것은 이라크에 파견된 한국군이 이미 평화재건과는 관계없는 점령과 분쟁의 한 당사자임을 고백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진정한 정의와 진정한 평의를 추구한다면 불의의 사고를 겁낼 이유가 없으며, 이역만리 타향에서 우리의 젊은이들이 흘리는 피땀의 진실에 대해 국민에게 감출 이유가 없다. 자이툰 부대가 이라크에서 나와야 하는 이유는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5. 그런데 정부는 자이툰 부대의 파병기한을 다시 연장하는 것은 물론, 그 동안 제외되었던 직접적인 치안임무까지 떠맡으려 하고 있다. 파병연장도 임무변경도 가당치 않은 일이다. 미국과 영국이 이미 이라크의 늪에서 빠져나올 궁리를 하느라 전전긍긍하고 있는 마당이다. 이미 서희제마부대 이래 2년 반이나 미군을 도와 군을 파병한 우리가 연장을 거론할 이유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의 유엔기구 청사보호 요청도 명분상 거절하기 힘들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10년간에 걸친 이라크에 대한 제재가 유엔의 이름으로 이루어졌고, 유엔의 대량살상무기 사찰을 받았음에도 유엔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막지 못했다. 심지어 사후에 이를 정당화하기까지 했다. 따라서 미군을 도와 유엔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는 것을 명분 있는 일이라 할 수 없다. 6. 개전 직후 파견한 서희제마부대는 평화재건을 내세웠지만 사실상 영내에만 머물다가 자이툰 부대에 합류했다. 지금, 무려 3천500명에 이르는 자이툰 부대가 서희제마부대의 활동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없는 활동을 하며 아르빌에 웅크리고 있다. 한국의 파병목적이 사실상 미영점령군을 정치군사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이토록 명확히 보여주는 증거는 없다. 지난 2년간 4000억 이상에 가까운 관련 예산으로 폐허가 된 이라크의 한 도시를 지원했다면 우리는 지금 이룬 일의 수십 배의 성과를 거두었을 것이다. 국민들이 런던참사의 악몽에 공포를 느끼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진정으로 ‘평화의 교량자’, ‘동북아 균형자’로 나서고자 한다면 평화를 말하면서 전쟁을 돕는 이율배반부터 중단해야 한다. 우리가 일제의 침략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도왔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 당장 침략전쟁에서 손을 떼야 한다. 끝. 2005년 8월 2일 이라크파병반대비상국민행동 공 개 질 의 서 수신 : 노무현대통령 참조 : 국방부장관 발신 : 이라크파병반대비상국민행동 자이툰 부대 파병 1년, 과연 무엇을 했나? 오는 8월 3일로 자이툰부대가 이라크에 파병된 지 1년이 됩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파병한 이래 자이툰부대에 대한 소식은 투명하게 알려지지 않았고 정부와 군당국에 의한 일방적인 보도만이 있었을 뿐입니다. 또한 지금까지의 이라크 파병에 대해 공개적인 평가와 토론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윤광웅 국방장관은 일방적으로 지난 6월 13일 올 연말 임무가 종료되는 자이툰부대의 파병연장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할 생각이라고 밝혔고, 유엔기구 청사 경비 임무도 맡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점령군으로서의 지위, 자이툰부대에 대한 공격위협 증가, 공문구가 된 평화재건활동 등 자이툰부대 활동전반에 대해 국민들이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전국 361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이라크파병반대비상국민행동’은 다음과 같이 정부에 공식 질의하는 바입니다. 성실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1. 자이툰 파병 평가 1-1. 소위 평화 재건 역할 ○ 자이툰부대는 지난 1년 동안 안전문제 때문에 영외활동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부대 안으로 이라크 인들을 초청해서 관련 활동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수 천 억원의 예산을 소모하고 있는 3천 600여명의 특전사 병력들이 하는 활동으로 보기에는 너무 초라한 것이 사실입니다. 오히려 자이툰부대는 미 점령군의 보조점령군으로서 미군이 군사작전을 원활히 수행하는 후비대 노릇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는 자이툰부대의 주요 임무인 평화재건역할 수행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자이툰부대가 지난 1년동안 어떤 활동을 했는지 국민들은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에 영외활동 일지, 영내에서만 활동한 일수 등 구체적인 자료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이라크 평화․재건 사단장 임무수행 결과보고](이하 ‘임무수행 결과보고’)에서 국방부는 문화, 관습, 종교 등을 존중하는 가운데 친화를 달성하는 민사작전을 3단계(1단계:안정화, 2단계:정착, 3단계:발전)로 실시했다고 하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보도에 따르면 자이툰부대에 쿠르드어 통역자가 한 명도 없어서 현지에서 영어통역자를 다수 선발했다고 하는데 사실 여부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정부는 ‘임무수행 결과보고’에서 인도적 지원을 위해 장비 및 물자를 5만 5천여점, 치안유지 활동지원을 위해 장비를 23종 17만 8천여점 지원했다고 밝혔는데 이를 구체적으로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정부는 ‘임무수행 결과보고’를 통해 “이라크 내 ‘평화․재건지원 모델군’으로 공감대 형성”이라고 성과를 자화자찬하고 있는데, 이렇게 평가하는 구체적인 근거를 정부는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정부는 ‘임무수행 결과보고’에서 “사단급 부대 파병으로 군 전투발전”, 즉 군대의 전쟁능력 고양을 성과로 들고 있는데, 이것이 정부가 말해 왔던 평화․재건 임무에 포함되는 것인지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1-2. 한미동맹과 국익론 ○ 자이툰부대가 이라크로 파병된 지 1년여가 지났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당초 파병의 근거로 제시했던,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과 국익론 주장은 상당부분 허구적 논리였음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얻은 국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임무수행 결과보고’에서는 “이라크 신뢰 구축, 경제발전 모델 국가로 인식”을 국가 위상 제고 및 국익 증진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그 구체적 근거는 무엇이며 애초 파병시 이러한 것들을 국익으로 목표했던 것인지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임무수행 결과보고’에서는 미 국방장관 등 주요인사가 48회 자이툰부대 방문한 것을 한미동맹 강화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동맹 강화가 있었는지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이라크 침략과 점령으로 인해 침략자와 점령자로서의 미군에 종속됨으로써 한미동맹은 이미 전쟁동맹으로 전락하였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자이툰부대 활동 및 그 평가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적 토론을 진행할 의향은 없는지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1-3. 자이툰부대 임무변경 ○ 미군의 요청에 의해 자이툰부대가 아르빌 지역의 유엔청사(UNAMI) 경비를 맡게 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국방부는 6월 16일자 ‘파병반대 국민행동’의 질의서에 대한 답변에서 이에 대해 미군측으로부터 요청을 받았으나 결정한 바 없다고 해놓고도 7월 30일 ‘임무수행 결과보고’에서는 유엔청사 경계지원을 ‘예정’하고 있다고 밝힘으로써, 대부분의 언론이 이를 기정사실화하는 보도를 하게끔 했습니다. 유엔청사 경비 지원을 결정했는지 정부는 확실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유엔청사 경비에 대해, 애초에는 맡지 않기로 했다가 미국의 압력에 의해 맡기로 했다는 언론보도도 있었습니다. 정부에서는 자이툰부대 임무변경에 대해 어떤 절차와 과정을 통해 판단을 내렸는지, 임무변경을 한다면 언제부터 경비를 맡게 되는 것인지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의 유엔기구 청사보호 요청도 명분상 거절하기 힘들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10년간에 걸친 이라크에 대한 제재가 유엔의 이름으로 이루어졌고, 유엔의 대량살상무기 사찰을 받았음에도 유엔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막지 못했으며, 심지어 사후에 이를 정당화하기까지 했습니다. 따라서 미군을 도와 유엔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는 것을 명분 있는 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유엔청사 경비는 애초의 자이툰부대 임무를 변경하는 것으로서, 만일 저항세력의 공격이나 시위가 발생하면 전투나 시위진압에 필연적으로 휘말리게 되므로 국민들은 이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그 파장이나 희생의 규모는 가늠하기 힘든 현실입니다. 과연 미군의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어떤 상황까지 감수하려고 하는 것인지 정부는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2. 사건 / 사고 2-1. 자이툰 부대내 사건/사고 ○ 자이툰부대에서는 지난 1년간 많은 사건 사고가 발생하였지만 그 실상이 투명하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작년 10월에는 자이툰부대 인근에서 대규모 폭발이 있었고, 11월에는 자이툰부대에서 일하던 노동자 1명이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또한 11월에는 자이툰부대원들이 감전사고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12월에는 총기사고로 인해 자이툰부대원이 쿠르드민병대원 1명을 사망케한 사건도 있었는데 이는 5개월이 지난 올해 4월에서야 발표되었습니다. 정부는 자이툰부대에서 발생한 사건 사고를 빠짐없이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건 사고 과정에서의 사상자 규모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자이툰부대 내에서 발생한 사건/사고로 인해 사망한 노동자나 부상당한 부대원들에 대한 사후조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2-2. 자이툰 부대에 대한 공격위협 ○ 자이툰부대에 대한 공격위협도 많았습니다. 인터넷이나 언론을 통해 공격위협이 발표되기도 했고 올해 5월에는 부대 외곽이 4발의 포탄이 떨어지는 큰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자이툰부대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포탄 공격이라고 밝혀졌습니다. 또한 정부는 현지 미군, 쿠르드정부 등과 정보 협조체제를 통해 자이툰부대에 대한 공격 첩보를 수집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공격위협이 얼마나 있었는지 일자와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자이툰부대는 위험징후 평가단계를 ‘보통(green)→긴장(amber)→위협(red)→위급(black)'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인 경우는 거의 없을 정도로 사고나 공격위협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1년간 ’긴장‘이나 ’위협‘ 혹은 ’위급‘ 단계가 각각 몇일씩 있었는지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3. 보도통제 ○ 자이툰부대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국민들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위 ‘로우키(소극적 보도제한)’ 적용으로 인해 취재가 거의 허용되지 않고 있고 그나마도 정부가 허가를 하지 않으면 접근할 수 없는 언론 보도통제 상황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각종 사건 사고조차 수개월이나 지나서 공개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정부는 이러한 취재 제한을 언제까지 할 것인지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한국정부가 언론취재를 극도로 제한하고 있는 반면에 다른 나라들은 '임베드(종군)’ 언론 형식으로라도 취재를 보장하고 있고 언론인들이 독립적으로 취재하는 것도 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 정부를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자이툰부대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 충족을 위해 어떻게 언론취재를 보장할 것인지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정부는 안전상의 이유로 언론취재를 제한해 왔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다시 말해 파병지역이 그만큼 안전하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국민들이 보기에는 언론취재마저 제한해야 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에서 평화재건임무를 수행하겠다는 것은 모순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4. 자이툰 부대 철수 계획 4-1. 향후 이라크 정세 ○ ‘임무수행 결과보고’에서는 “미국의 이라크 안정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치안 안정이 장기화될 전망”이라고 밝히고 있고 그에 따라 미군의 장기 주둔 가능성을 전망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라크 치안전력 21만 7천명을 양성하고 있지만 충성심과 리더십에 문제가 있어서 치안군이 기능하기까지 향후 5-6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반 여건 고려시 정세 호전 전망”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그 구체적인 근거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향후 헌법제정 과정, 정부수립 등을 둘러싸고 연방제 문제, 키르쿠크 석유자원 분배 문제 등 쿠르드 문제가 이라크의 중심적인 갈등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큽니다. ‘임무수행 결과보고’에서도 밝히고 있는 바, 쿠르드는 “미국과의 공생만이 쿠르드의 생존과 이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는데, 쿠르드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자이툰부대가 이 갈등에 휘말릴 가능성은 없는지, 이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지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미국에서조차 이라크 전쟁과 점령에 대한 비관론이 커지고 있고 모병 목표치도 달성하고 있지 못한 상황입니다. 세계적으로도 미국이 이라크라는 수렁에 빠져 실패하고 있다는 여론이 압도적입니다. 이라크 국민들은 10만 이상이 사망했고, 전쟁으로 황폐화된 사회 속에서 물, 전기, 의료, 교육 등 최소한의 사회 기반시설과 공공서비스도 파괴되어 극도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이라크의 평화 재건을 위한다면 우선 이 전쟁과 점령을 끝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한국군을 포함하여 모든 외국 점령군이 철수하는 것이 일차적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정부는 이에 대해 어떻게 보는지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4-2. 자이툰부대 철수계획 ○ 이라크 전역이 전쟁상태인 상황에서 평화 재건이란 허구이며, 현재까지의 평화재건임무 조차 사실상 실패했고, 향후 활동은 더욱 어렵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그동안 우려로만 제기되었던 공격위협도 이제는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향후 조건이 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윤광웅 국방부장관은 지난 6월 13일 국회 답변에서 올해 말 파병연장을 추진하겠다고 했고, 국방부에서 기획예산처에 올린 2006년도 국방예산안에는 약 1400억원의 파병비용이 책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파병을 연장하겠다는 것을 국민들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이미 작년에 파병연장을 했는데, 올해 또 다시 파병을 연장한다면 명분도 설득력도 없을 것입니다. 파병연장에 대한 정부의 논의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7월 7일 중앙언론사들과의 간담회에서 “철군이나 감군은 한미관계의 현실적 토대에서 파병한 것이므로 이를 고려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이는 파병이 여전히 미국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이라크에 파병한 많은 나라들이 철군을 했고, 철군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미국과 영국 내에서도 철군이나 감군 논의가 공공연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라크 침략전쟁의 기획자들조차 철군을 논의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최근에는 이라크 총리도 럼스펠드 미국방장관에게 연합군의 조기 철수를 요구했습니다. 우리 국민들 다수도 자이툰 부대가 점령군의 일부로서 더 이상 이라크에 주둔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현재 철군 계획을 마련하고 있는지, 있다면 그 내용은 무엇인지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끝.
1. 한국 참가단의 전시와 퍼포먼스 2. 2일간의 재판, 기억하고 기록해야 할 수많은 증언 3. 살람의 이야기: 이라크 내전의 위험 4. 인터뷰: 이스라엘 여성반전운동가 렐라 마잘리 이라크인들이 터키로 오는 길은 쉽지 않았다. 재판장 주위에 그림을 전시했던 이라크 화가 살람 오마르씨는 디아르바카르 공항(터키 남부의 쿠르드지역)에서 2일 동안 억류되어 있었다. 억류된 이유는 첫째, 이라크인이라 테러의 위험이 있다는 것과 둘째, 그의 그림에 배경으로 칠한 흰색 아크릴 물감이 코카인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2일 동안 감금된 후에야 풀려나 재판에 참가한 살람 오마르씨는 이라크에서 이미 많이 겪었던 일이라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리고 재판 둘째 날 이라크 인권운동가인 후다 알 누아이미씨의 증언은 이러한 일이 이라크 민중들에게는 이미 일상이 되었다는 것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그는 “이라크의 일상은 ‘감옥같은 점령’이다. 거리는 온통 검문소이며, 미국은 저항세력의 근거지라고 생각되는 지역에 대해서는 적외선 카메라로 집안을 감시하고 있다. 누구라도, 어떤 혐의도 없이 검문에 의해 혹은 한 밤중의 급습에 의해 체포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잔혹한 일상을 기록하고 역사에 남겨 범죄자들을 심판하기 위해 전 세계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이라크국제전범재판(World Tribunal on Iraq War, WTI)을 열었다. 6월 24일부터 26일까지 터키 이스탄불에서 진행된 WTI는 작년 한국에서 진행된 ‘부시-블레어-노무현 전범민중재판’의 연장선에 있다. 한국에서처럼 각 국(주) 정부의 죄를 심판하고 다양한 관점으로 전쟁을 바라보고 기록했던 런던, 뭄바이, 코펜하겐, 브뤼셀, 뉴욕, 일본, 스톡홀름, 로마, 프랑크푸르트, 스페인, 튀니지, 제네바 등 20여개 법정의 2년에 걸친 과정을 총화했다. 아룬다티 로이를 대표로 한 12명의 배심원단이 꾸려졌으며, 증언과 변론을 위해 54명의 증인과 변호인단이 모였다. 한국의 김재복수사, 세계사회포럼의 공동설립자인 프랑소아 우타르,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작가 이브엔슬러등이 배심원단에 참여했고, 유엔에서 이라크 담당 복지조정관을 하다가 환멸을 느껴 사임한 데니스 할리데이, 전 유엔 이라크 무기사찰단 단장이었던 한스 폰 스포넥, 평화를 위한 이라크 참전용사 모임의 팀 굿리치등과 이라크의 활동가들이 증언대에 올랐다. 재판은 이스탄불의 톱카피 궁(Topkapi palace)에서 진행되었다. 톱카피궁은 오스만 제국의 황제(술탄)들이 거주하던 곳이다. WTI 사무국의 한 활동가는 “제국의 영광을 상징하는 이곳에서 전범을 단죄한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며,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하던 오스만 제국의 전초지였던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똑똑히 보아야 한다”고 했다. 재판이 열린 톱카피 궁안의 임페리얼 민트(Imperial Mint)는 날마다 수백명의 사람들로 꽉 찼고, 증인들의 고통, 분노를 담은 증언들이 이어지는 현장은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한 하나의 몸부림이었다. 1. 한국참가단의 전시와 퍼포먼스 한국참가단은 김재복 수사님을 비롯해 15명이었다. 재판에 참여하는 것 뿐 아니라 전시와 퍼포먼스등을 통해 한국에서 진행한 풀뿌리 기소인 운동과 한국재판의 내용을 알리고자 했다. 참가단의 일원인 최병수 화가의 그림을 중심으로 한 전시와 퍼포먼스는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2. 3일간의 재판, 기억하고 기록해야 할 수많은 증언들 재판의 심리 절차는 △국제법과 국제기구의 역할, △각 국 정부의 책임, △언론의 책임, △이라크 침략과 점령, △문화유산, 환경, 세계의 자원 △세계적 안보환경과 미래의 대안 등 6개의 세션으로 진행되었다. 세션별로 증언자의 목소리를 담아보자. 국제법과 국제기구의 역할 필 샤이너 / 예방공격과 일방적인 무력사용의 불법성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이라 불리는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은 합법성을 둘러싸고 수많은 토론을 낳았다. 이라크국제전범재판은 이에 대한 이데올로기 싸움을 해야 한다. 국제법을 무시한 부시, 블레어에게 이라크 전쟁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미국과 영국은 UN 안보리 결의안 1441조(2002.11.8)가 1990년 678조에 귀속된다며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자기 필요에 따라 근거로 삼는 것은 누구나 가능하고 이런 방식은 국제법의 역할도 아니다. 어떤 것으로도 UN결의 없이 전쟁을 벌인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이라크 점령이 안보리 결의안 1483 결의안 따르는 것이라고 할 때, UN 안보리에 이를 승인할 권한이 있는지 없는 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안보리 결의에 따른 점령권한 행사가 인권을 유린하고, 훼손되는 것을 보고 있음에도, 이같이 묻는 것은 편협한 질문이다. 점령과정에서 수행한 활동과 정책의 불법성을 보아야 한다. 각 국 정부의 책임 월든 벨로 / 의지연합과 지지자들의 책임 이라크에서 의지연합의 범죄기록은 더럽고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라크 침략은 1939년 나치와 같이 모욕적인 행동이다. 이들은 미국의 심각하고 부당한 국제법위반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의지연합 50개국은 루마니아, 헝가리,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이 독일나치를 위해 일했던 역할을 오늘날 수행하고 있다. 의지연합은 이라크주권 침해뿐 아니라 인권, 정치적 권리, 경제적 권리를 구조적으로 침해한 공모자다. 의지연합 중, 영국 정부는 특별히 더 유죄판결을 받아야 한다. 블레어 정부의 역할은 부시 정부의 어쩔 수 없는 파트너로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 단지 공격을 위한 편리한 보호막을 제공한 것으로 축소될 수 없다. 블레어 정부는 전쟁의 준비와 수행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영국군대의 1/3이 침략과 점령에 동원되었고, 블레어수상은 기꺼이, 기쁘게 전쟁에 참여한다고 말하고 있다. 부시와 히틀러처럼, 그는 위험한 인물이다. 언론의 책임 살라 란다우 / 언론의 정치적 경제적 커넥션 CNN, CBS, TIME WARNER, VIACOM 등의 기업형 언론들은 경영관리상 주요 주주들의 이익에 좌우된다. 예를 들어 FOX사는 대표적 우익인 루퍼드 머독(Rupert Murdoch)의 소유다. 특히 미국 언론들은 이라크 침공에 있어서 공공의견 여론을 조장하는데 일등공신이었다. 언론사이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집권정부로부터 독립적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미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를 분석, 평가하는데 실패했다. 예를 들어, 2002년에 모든 주요 언론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똑같이 오보를 내보낸 적이 있다. 사담이 1998년에 이라크 무기사찰단을 쫓아냈다는 보도였다. 마치 대량살상무기(WMD)를 만들기 위해 사찰단을 내보낸 것처럼 보도했는데, 이것은 명백한 오보였다. 언론은 부시의 반(反)사담 감정조장에 일조했다. 매일 엄청난 양의 정보들이 미국의 언론사에서 쏟아지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거의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다국적 기업의 소유주, 자본가의 손아귀에서 언론은 제 기능을 상실했다. 정치적으로 시민의식을 상실한 것이다. 데이빗 밀러 / 전쟁과 점령에 있어 미디어의 잘못 이라크 전쟁과 점령에 있어서 언론은 네 가지의 명백한 잘못을 저질렀다. 알카에다, WMD에 관한 오보, 점령의 상태에 관한 오보, 이의제기에 대한 무시, 공포분위기 조성. 이 네 가지는 가장 명백한 ‘언론실패’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라크 전쟁과 점령에 있어서 언론은 선전, 선동의 기구로 전락하였다. 정보를 통제했으며, 무수한 거짓말을 해댔다. 대표적인 것이 WMD에 관한 지속적인 거짓 보도와 민주주의, 자유에 관한 지속적인 거짓 선전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거짓말을 뒷받침하기 위해 수많은 거짓말들이 동원되었다. 미국의 페어(FAIR)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언론자료의 2/3정도가 미국인은 64%가 전쟁찬성, 미국방문객도 74%가 전쟁을 찬성한다’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런 식의 보도를 반전에 대한 보도보다 6배 이상 더 많이 접하게 된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침략을 합법화시킴과 동시에 반대주장을 묵살하는데 언론이 공모하는 것이다. 이라크 침략과 점령 토마스 파시 / 이라크에서 열화우라늄 무기의 인체에 대한 영향 y 1990년 1차 이라크 전쟁과 2003년 이라크 전쟁 사이 열화우라늄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적이 있다. 1990년 당시 수치는 낮았다. 5세 이하 영유아의 부작용도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2003년은 확연히 달랐다. 수치 자체가 4배 이상 높아진데다, 영유아에 끼친 영향은 훨씬 더 높아졌다. 6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지금 선천성 기형아들은 1990년 당시 열화우라늄에 노출되었던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낳은 아이들이다. 열화우라늄은 입자가 먼지보다 작아 피부로도 흡수될 수 있다. 이것이 기관지로 흡입되면 가장 치명적이다. 이것이 백혈병, 암 등의 치명적인 병을 유발한다. 하나 이브라임 / 젠더에 기반을 둔 폭력 80%의 실업률 속에서 남성들은 경제적 능력은 완전히 상실했고, 이런 상황에서 경제적 수단으로 성매매가 권장되고 있다. 더욱 가혹한 것은 여자가 처녀가 아니면 돈을 덜 받는 식으로 흥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정주부, 학생, 소녀들 할 것 없이 모두 납치, 강간의 대상이 되고 있다. 미군들이 저항세력을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가정집을 급습하여 여성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남성들에게 혐의가 있다면 그들을 가두어 둔 채 집을 폭파시켜 버린다. 그리고 여자들은 어디론가 끌려가고, 이 여성들이 강간을 당하는 것은 너무나 흔한 일이다. 또한 우리는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기억해야 한다. 부시는 여성에게 가한 모든 범죄들에 대해 전혀 사과하지 않았다. 지금 이라크에서 성적 폭력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만 카흐마스 / 일상의 파괴 점령 때문에 공포분위기가 조성되어 있고 일상은 완전히 파괴되어 있다. 전에 없이 검문이 강화되고 있다. ID카드가 새롭게 만들어졌는데, 이 ID카드에는 종교, 인종에 따라서 분류되는 번호가 매겨져 있다. 병원과 박물관 대학, 공공청사들은 주요한 공습 대상이었다. 팔루자의 경우 병원이 주요한 공격대상이었고, 공습을 피한다는 명목으로 의사를 가두어 놓았기 때문에 응급상황이 생겨도 누구 하나 치료받을 수 없었다. 의료시설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물자 수송마저 차단되어있어 의료장비는 더더구나 부족하다. 바늘하나 구할 수 없는데, 의사들은 심지어 암시장에서 진료도구를 사야할 지경에 처해있다. 열화우라늄으로 물과 토지가 오염되어 있는 상황이고 심지어는 물이 6일 동안이나 공급되지 않았던 적도 있다. 대학시설이 파괴된 것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초중등교육 시설이 파괴되었고 교육체계가 바뀌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제 영어는 초중등교육에서 의무교육이 되었다. 영어라는 과목이 의무과목이 되었을 뿐 이라크의 모든 교육은 완전히 붕괴되었다. 후다 알 누아이미 / 감옥같은 점령 감옥이 죄질과 성별에 따라 분리되어 수감되듯 이라크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점령자체가 커다란 감옥이다. 미군 점령이 이라크를 감옥으로 만들었다. 이라크인에 대한 일상적인 감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미군의 경우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적외선 카메라로 집안을 감시하고, 여성의 몸을 수색한다. 젊은 남자는 무조건 검문검색의 대상이다. 한 청년이 어머니가 아파서 병원에 가고 있었다. 그 길은 원래 검문소가 원래 없었는데 어느 날 검문소가 생겼고, 아픈 어머니의 응급 상황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실랑이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이 청년은 결국 총상을 입고 말았다. 이런 일들이 빈번하게 일고 있다. 선거는 지역별로 진행되지 않았고 종파별로 진행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 달성이 불가능하다. 하나된 이라크로서 선거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미군의 분류기준에 따라 서로 분리되어 선거가 진행되었다. 이 같은 선거는 분리를 더욱 심화할 뿐이다. 선거는 분리 정책의 일환으로 치러진 것이다. 바바라 올쉬안스키 / 관타나모의 사례 관타나모 고문의 예를 보면, 미국이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정치적, 법적 수단을 동원해서 테러와 전쟁을 관철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례를 하나 들면, 미국에 살던 이슬람 이주민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었다. 그는 관타나모에 수감되어 2년 이상 갇혀 있었다. 그는 미국정부를 상대로 고소했지만, 대법원에서도 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혐의점이 없었다. 관타나모는 미국 고위관료들의 야욕이 뭉쳐진 작은 블랙홀이다. 관타나모는 고문을 새롭게 정의했다.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방법으로 벌거벗은 남녀를 서로 마주보게 한다든지, 과도한 소음으로 공황상태에 빠지게 한다거나, 한 달 이상 독방에 가둬 놓는 것들이다. 이것은 모두 인간의 기능을 상실하게 한다. 사실, 관타나모가 있었기 때문에 아브그라이브도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행태는 대통령령에 의해 이루어졌다. 미국 대통령이라면 이제 전 세계 어느 나라의 누구든지 지금 당장이라도 납치를 해서 관타나모에 넣을 수가 있다.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가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마크 매닝과 라나 M 무스타파 / 팔루자 증언 팔루자는 역사적으로 영국의 점령에 가장 강력하게 저항한 대표적인 도시다. 저항의 전통이 있고 지금도 저항이 거세다. 그래서 팔루자가 가장 잔혹하게 보복공격을 당하고 있다. 점령 초기에 민간 저항세력들의 조그마한 승리가 있었다. 그 이후 미국은 엄청난 무기로 무장해서 팔루자를 초토화했다. 팔루자 공습이후 40여 일 동안 아무도 팔루자에 들어갈 수 없었다. 시체들은 개한테 뜯기고, 심하게 부패된 채로 버려져 있었다. 팔루자 공격은 미국의 대량살상무기의 위력을 확인시켜주었다. 문화유산, 환경, 세계의 자원 굴 풀한 / 문화유산의 파괴 이라크는 고대 메스포타미아 문명과 수메르인의 유적지들이 많이 있다. 움마(Umma), 라사(Larsa), 니노바(Ninova)의 경우 미군의 무자비한 약탈의 먹이가 되었고, 바빌론이나 키쉬 같은 문화유적지는 점령군의 군사기지로 변해버렸다. 문화유적지는 이렇게 파괴되고 있다. 미군이 문화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유적지를 봉쇄하였다. 그 직후 대규모로 조직된 약탈이 발발하였다. 미군은 약탈 혐의를 벗을 수 없다. 곳곳에 조직적이며 훈련된 사람들의 흔적이 있다. 이베이닷컴(e-bay.com)이라는 미국의 유명한 경매 사이트에서 이라크 문화유산들이 거래되고 있다. 세계적 안보환경과 미래의 대안 존 로즈 / 부차적인 피해 부차적인 피해는 사실 군대용어다. 군사적인 행동에서 의도하지 않은 피해가 났을 때 부차적인 피해라고 한다. 사실 이 말에는 이중성이 있다. 의도해 놓고도 발뺌하면서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은 이라크 민중 이외에 피해를 입은 경우를 일컫기도 한다. 멕시코의 사례처럼 말이다. 멕시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불쌍한 멕시코인이여, 신과는 너무 멀고, 미국과는 너무 가깝다." 멕시코는 처음에 미국의 공습지원을 거부하였다. 미국은 이에 대한 보복조치로 이민자법을 개정해서 멕시코 인의 출입을 통제했다. 특히 남부 캘리포나아의 경우 라틴계 인들에 대한 조직적 징집을 자행하고, 교육, 인권 등에 있어서 여러 가지 혜택을 제한하였다. 미국 정부는 라틴계 미국 병사들을 모으고, 그린카드가 있건 없건 간에(그린카드는 입국허가증을 뜻한다) 불법 체류자들도 가리지 않고 징집한다. 그래서 멕시코 인들이나 라틴계 인들이 이라크 전쟁에서 죽으면 통계로 잡히지 않는다. 리즈 페케트 / 인종주의와 불관용의 생성 미국의 반테러법과 테러와의 전쟁 같은 것들은 인종주의와 불관용의 관행을 낳기 시작했다. 무슬림포비아(Muslimphobia, 이슬람 혐오증)가 광범위하게 확대되었고, 반(反)외국인정서가 형성되고 있다. 유럽 시민들은 자체적으로 난민 수용을 거부하기 시작하였다. 판결과 권고 국제전범재판은 이러한 증거와 증언들을 바탕으로 미국과 영국정부를 전쟁범죄자로 판결했을 뿐 아니라, 이에 동조하고 협력한 모든 정부가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또한 이라크에서 일어나는 모든 범죄에 대한 유엔의 책임을 분명히 하고, 이 전쟁으로부터 이윤을 얻은 다국적 기업 총수들에 대한 책임을 묻는 과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배심원들은 판결문과 함께 권고안을 발표했다. 연합군은 이라크에서 즉각적이고 조건 없는 철수를 할 것, 연합군 정부들은 그들의 불법적 침략과 점령이 야기한 인도적, 경제적, 생태적, 문화적 파괴에 대해 이라크에 전쟁 배상과 보상할 것, 관타나모 수용소와 미군의 다른 모든 해상 수용소는 즉각 폐쇄할 것, 고의적으로 거짓말한 언론인, 인종적 종족적 종교적 증오를 조장한 상업언론사, 이 전쟁으로부터 이윤을 얻은 다국적기업 총수들에게 책임을 묻는 과정을 시작해야 할 것 등이다. 또한 전 세계 민중들이 이라크전쟁으로부터 직접적인 이윤을 획득하는 미국과 영국의 기업들에 대항하는 행동을 개시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한 기업들은 핼리버튼, 벡텔, 칼라일, CACI(네트워크솔루션업체), 타이탄그룹, 켈로그 브라운&루트(핼리버튼의 자회사), 딘코프(사설용병회사), 보잉, 엑슨모빌, 텍사코, 영국석유 등이다. 또한 이라크를 고소해서 ‘보상금’을 받아낸 토이저러스(미국의 장난감회사), 켄터키프라이드치킨, 쉘, 네슬레, 펩시, 필립모리스, 쉐라톤, 모빌 등에 대항한 행동을 제안했다. 저항행동은 사무소 폐쇄, 불매운동, 주주에 대한 압력과 같은 직접행동의 형태를 취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배심원단은 이러한 내용을 담은 판결-권고문을 재판이 끝나고 6월 27일 기자회견에서 낭독했다. 참가자들은 박수와 함성으로 판결에 환호하고 함께 싸워나갈 것을 외쳤다. 살람의 이야기: 이라크 내전의 위험 지난해 한국 전범민중재판의 증인이었던 살람 가드반씨가 이스탄불에 왔다. 그는 재판의 공식 증인은 아니었지만 한국 참가단이 이스탄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힘겨운 걸음을 한 것이다. 재판 내내 함께 했을 뿐 아니라 한국참가단의 전시와 퍼포먼스등에도 참여했다. 한국 재판장에서 "이라크에 총이 아닌 꽃을 들고 오라"며 눈물을 흘렸던 살람은 그동안 이라크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쏟아내며 또다시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는 지금 이라크에서 큰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 재판장에서 살람은 "이라크인들 간의 갈등은 없다. 종파에 관계없이 점령에 맞서 싸우고 있고 미국이 갈등을 부추길 뿐이다"라고 했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한국참가단과의 간담회에서 살람이 했던 이야기다. ------------------------------------------------- 최근 새롭게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지금 이라크 상황은 이상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할 때 굉장히 두려워지곤 합니다. 내가 이라크에 내 가족들을 두고 터키로 홀로 나왔을 때 이라크의 많은 사람들은 이 상황에 대해 매우 두려워하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상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물론 전쟁은 전쟁입니다. 전쟁은 전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미군에 의해 거리에서 죽게 된다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전쟁은 전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상황, 그것 또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이라크 사람이 자기의 형제를 죽이고 싶어 한다면 그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까? 한 이라크 사람이 그의 친구를 죽인다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이젠 누가 누구인지 더 이상 구별할 수 없습니다. 누가 적군인지 누가 피해자인지 모든 것이 한데 뒤섞여 버렸습니다. 자꾸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은 '내전이다!'라고요. 여러분들에게 내전을 어떻게 설명해야 되겠습니까? 알후리아에서 이른 새벽에 총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나는 두려웠고 어디에서 총소리가 났는지 몹시 불안했습니다. 무슨 일인가 살펴보기 위해 거리로 나가보았더니 많은 사람들이 길 끝에 모여 있었습니다. 사람들 틈을 헤치고 살펴보았더니 제 친구가 총알자국이 무수히 난 채 죽어 있었습니다. 잠이 든 것처럼 누워있었고 주위에는 피가 가득 고여 있었습니다. 제 친구는 정부와도 아무 관계없었고 저항세력과도 관계가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단지 수니파일 뿐이었습니다. 그는 저보다 나이도 어렸고 아이들도 셋이나 있었습니다. 저는 바로 그 순간 내전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에게 누가 한 짓이냐고 물었을 때 그냥 어떤 이라크 사람이 그랬다고 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거리를 걸을 때마다 끊임없이 주위를 두리 번 거립니다. 혹시 누가 총을 들고 나를 겨냥하고 있는 건 아닐까 불안합니다. 외출했다 돌아올 때 그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돌아서 집으로 옵니다. 또한 아이들에게 작별인사 하는 방식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왜냐면 저녁에 집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할 수 없기 때문이죠. 어떤 일이 생길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라크에서는 시아파와 수니파가 뒤섞여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라크인들이 시아파-수니파갈등을 겪게 된다면 이라크는 진정으로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쟁 시작할 때부터 미국은 이라크 사람들이 서로 싸우도록 조종을 해왔는데 지금에서야 성공을 거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미군에 의해 죽은 사람보다 시아파-수니파갈등 때문에 이라크 사람 손에 죽은 사람들이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아무 이유 없이 사람들이 시아, 수니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상상이 되시나요? 단지 수니, 시아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가고 있는 상황이 이해가 되시나요? 그리고 지금 이 단계에 도달했다는 것은 저에게는 세상이 끝나는 것만 같은 느낌입니다. 저는 미국이 이라크 사람들이 서로 증오하도록 부추기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란, 미국정부, 다른 여러 나라정부의 입김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 내전은 이라크 사람모두에게 새로운 국면입니다. 저는 전쟁을 경험했습니다. 이라크-이란 전쟁 때는 군대에 몸담고 있기도 했죠. 전쟁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전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 어떤 전쟁보다 위험합니다. 전에는 이라크의 모든 것이 파괴될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물론입니다. 미군은 집, 학교, 모든 것들을 부수었습니다. 하지만 내전은 인간을 파괴합니다. 인간의 삶을 파괴하고, 삶 속에 가지고 있던 그 모든 의미를 파괴해 버립니다. 이라크 사람들이 함께 이 난관을 타개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이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릴 수 있을지. 이 내전으로 버려진 모든 상처와 부작용을 다 잊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뉴스에서는 이라크 사람들이 다른 이라크 사람을 죽이면 그 사람이 사는 지역을 공개하고, 가서 보복을 하라고 부추깁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십니까? 5분 후면 사람들이 그곳으로 총을 들고 가서 가족들을 죽입니다. 매일 밤 9시에 알 아라키아에서 하는 방송이 있는데, 이 프로그램에서는 범죄자를 소개하는데 꼭 이라크인만 소개합니다. 다른 이라크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살인을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피해자의 이름이 무엇인지, 왜 죽였는지 등에 대해 물으면서 범죄자가 피해자에 대해 설명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라크 사람들이 지금 처한 어려운 상황을 도와줄 책임이 모든 인간에게 다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여러분들에게 요청합니다. 사실 어떻게 여러분이 우리를 도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라크에 정말 도움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이라크를 도와줄지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주위사람들에게 이라크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집회를 열 수도 있고 모든 도움이 다 필요할 때입니다. -------------------------------------- 살람은 한국에서 이스탄불까지 이어지는 전범재판을 보며, 이라크에서도 이 같은 전범재판을 꼭 치르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은 너무나 위험하고 힘든 일이지만 이라크인들의 손으로 전쟁범죄자들을 심판해야 한다며 한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과 연대를 당부했다. 이라크인이 겪고 있는 잔혹한 일상에 대한 심판을 이라크에서, 이라크인의 손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 세계 각지에서 열린 재판의 경험과 민중들의 싸움이 이라크에서 전범재판을 만드는 거름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 여성 평화운동가 렐라 마잘리(Rela Mazali) 인터뷰 배심원으로 참여한 이스라엘 작가이자 여성주의 평화운동가 렐라 마잘리를 만났다. 이스라엘 사회를 탈군사화하기 위한 페미니스트그룹인 뉴 프로파일(New Profile)의 창립자인 그녀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중단하기 위해 오랫동안 투쟁해왔다. Q. 전쟁과 여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 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전쟁에서 여성에 대한 피해는 굉장히 심각합니다. 그러나 극심히 간과되고 있기도 한 실정입니다. 왜냐하면 보통 여성들은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또한 생각해야 할 부분은 여성이 전쟁과 군사화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특수한 상황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만. 이스라엘은 여성을 강제징집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제가 이스라엘에서 활동하고 있는 단체인 '뉴 프로파일'은 반군국주의 페미니스트 단체로, 이스라엘 여성이 전쟁과 점령에 어떤 식으로 참여하고 있는지를 살피고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엄청나게 군사화되어 있는 이스라엘 유태인 사회를 변화시켜 전쟁을 일으키지 않게 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특히 거기에서 여성이 어떤 역할을 행할 수 있는지를 보고 있지요. 여성이 어떻게 전쟁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지에 대한 것 뿐 아니라 탈군사화를 위해 여성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도 보고 있습니다. Q. 이스라엘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 이야기해주세요. 이스라엘에서의 여성 평화운동, 반전, 반점령, 반군사화 운동에 대해 이야기하면 될 거 같은데요. 여성 평화운동은 특히 최근 4-5년 동안, 그러니까 제2인디파타 이후에, 이스라엘의 정부의 지속적인 팔레스타인 점령 및 억압에 대항하는 (이스라엘 유태인 사회 내의) 대중저항 운동을 이끌어 왔습니다. 부당한 정책에 대해 누구도 목소리를 내지 않을 때, 인디파타가 시작 된지 불과 몇 달 후 500여명의 여성이 이스라엘 안에 있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늘어서서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스라엘 정부의 부당한 정책과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인들의 죽음, 녹색선 밖에 있는 팔레스타인인 -나라가 없는 상태죠-의 죽음에 대항하는 시위였습니다. 몇 달 후엔 예루살렘 시내 안에 수천 명이 시위를 벌였고, 그게 이어져 수천 명의 여성들이 시위를 꾸준히 이어왔고, 다양한 여성 평화행사들이 인디파타 기간 내내 벌어져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어요. 올 8월에는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Women in Black)' 회의를 예루살렘에서 열기로 했습니다. 이 행동이 꾸준히 지속적으로 이어져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주류 매체는 한번도 보도를 한 적이 없습니다. 이 목소리는 주류 매체에선 전혀 들리지 않지만 대안 매체에서는 보도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Q.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Women in Black)' 에 대해 좀더 설명을 해 주세요.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은 전쟁, 전쟁의 수단으로서 강간, 인종청소, 인권학대에 저항하는 침묵 밤샘농성입니다. 국제적인 평화네트워크를 이루어 각각의 나라와 지역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말도 전쟁과 증오의 비극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침묵시위를 하는 것입니다. 여성들의 침묵은 눈에 보입니다. 검은색은 전쟁의 모든 피해, 삶과 자연의 파괴에 대한 슬픔의 상징이죠. 앞에서 네트워크라고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것은 조직이 아니라 행동을 위한 동원의 과정입니다.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의 밤샘농성은 1988년 이스라엘에서 시작되었는데, 서안과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점령에 항의하는 여성들에 의해 촉발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영국, 아제르바이잔, 콜롬비아,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등에서 발전했죠. 유고슬라비아의 여성들은 국수주의적 공격을 가하는 세르비아정권의 정책과 전쟁에 항의하기 위해 1991년부터 매주 밤샘농성을 해 왔고, 9·11이후에는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고통받는 모든 여성들이 이 행동에 동참하기를 바랍니다. Q . 속하신 단체 '뉴 프로파일'의 활동에 대해 이야기 해주세요. '뉴 프로파일'은 1998년 10월에 설립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우리는 가시적인 사회운동으로 발전했고 페미니스트적인 구조와 방식으로 운동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여성, 남성을 모두 포괄하는 조직으로 무엇보다 이스라엘 유태인 사회의 태도를 바꾸자는 것입니다. 군사화된 이 사회를 평화를 가르치고 평화를 만들 수 있는 사회로 바꾸자는 것이지요. 우린 이스라엘 사회가 어떻게 국민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뿌리까지 군사화 되었는지를 연구합니다. 이스라엘 국민들은 대부분 이스라엘 사회가 평화를 사랑하고 갈구한다고 믿으며 자신들은 단지 외부 침략과 위협에 대응하고 있는 것 뿐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그런 생각을 뒤집으려 합니다. 우리 자신을 비판적으로 보는 법을 알아야 하고, 스스로에게 우리가 침략을 당하고 있다거나 궁지에 몰려있단 거짓 이야기를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위협받고 있지 않습니다. 개인들은 위협받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국가로서는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대부분의 자원을 차지하고 있다는 걸 자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차지하고 있는 자원들, 땅, 물, 정보 등과 같이 한 사회가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그 모든 것들을 재분배하며 평화를 만들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린 사람들이 분쟁을 끝내기 위한 자기 역할을 자각하도록 돕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호주 반전운동가의 전망 *편집자 註 : 지난 수년간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은 전 세계적으로 반전운동을 활성화시켰다. 미국 헤게모니는 군사적 경제적으로 어느 때보다 우월한 지위를 누리고 있지만, '반전·대안세계화운동'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구 곳곳에서 격렬한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한국에서도 국제적 반전운동의 일부로서 이라크 파병반대 운동을 중심으로 반전운동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월간 사회운동>에서는 세계 여러 나라의 반전운동을 살펴봄으로써 시사점을 얻고자 한다. 이번 호에서 호주를 시작으로 하여 앞으로 이탈리아, 미국, 일본 등의 반전운동을 실을 예정이다. [%=사진1%]이 글을 보내온 필자는 호주의 '시드니 반전연합(Stop the War Coalition Sydney)'에서 일하는 활동가다. (홈페이지 http://www.StopWarCoalition.org 참조) 이 글에 표현된 내용은 시드니 반전연합 전체의 관점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필자의 이메일 주소는 다음과 같다: anna@puzzling.org *번역 : 정영섭 | 반전팀 종종 우리가 잊고 있지만 '의지연합'의 동맹국임을 자랑으로 여기는 나라인 호주 정부는 2002년 이라크 침공계획이 공개된 이래 전쟁과 점령의 특징인 더러운 정치와 학살에 몰두해왔다. [역주 - 미국은 이라크 침공 개시 전부터 이미 '의지연합'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통해 국제법이나 유엔, 나토와 같은 국제질서에 결박당하지 않고 자신의 이해와 의지에 따라 쟁점별로 유연하게 동맹체제를 구축할 것을 천명했다.] 호주 군대는 미군의 잘 알려지지 않은 동맹군들과 스스로를 구별하기 위해 뻔뻔스럽게도 그들의 순찰차 옆면에 캥거루 그림을 그려 놓은 채 군사작전을 계속하고 있다. 그들은 집단적으로 작전을 펼칠 뿐 아니라, 미군이 지휘하는 팔루자 학살작전에 참여한 특수작전부대 등에 개인들이 비밀리에 참여하여 작전을 펼치고 있다. 호주 군대는 이라크전쟁 참여를 온건하고 제한된 것으로 묘사하고 싶어한다. 파병군인 수 850여 명이 숫자상으로 적어 보여도 점령에 대한 참여와 그것이 초래한 비참한 상황에 대한 호주 군대의 진정한 책임의 범위를 속일 수 없다. 예컨대, 호주 군대는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 구금자들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취급을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지독한 사진들이 주류언론에 뿌려지기 몇 달 전에 국제적십자가 학대 사실을 밝혔는데도 그것을 옹호했다. 호주군대의 조지 오케인 소령은 미군 심문 기술의 '합법성'에 대해 자문을 해주면서 바그다드에서 6개월 간 법률장교로 근무했다. 그는 수용소 간수들과 조사관들에게 자문을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십자의 우려 표명에 대해서도 제네바협약이 아부 그라이브 수감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답변을 작성하기도 했다. 오케인은 미군에 파견된 6명의 호주장교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들은 학대 사진들이 알려지기 전에 수용소를 방문했다. 오케인은 국제적십자의 우려에 대한 언급을 포함하여 자신의 활동에 대한 주간 보고서를 호주 정부에 제출했다. 호주 국방부 소속의 다른 장교들 또한 오케인의 보고서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으나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만약 이들이 제네바협약과 전쟁범죄조사위원회를 철저하게 우롱했다는 것이 호주 군대의 진정한 책임을 밝히는 데 충분치 않다면, 호주에 기반을 둔 패트릭스(정부 지원을 받는 기업이며 노조파괴 기술로 유명하다)와 ANZ은행과 같은 기업들이 이라크 사회의 기반시설 복구에 쓰여야 할 얼마 되지 않는 돈까지 등쳐먹는 "재건" 하청계약을 확보했다는 것도 지적할 수 있다. 전쟁이 계속해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이라크 파병 군대를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비용이 증가하면서 군대를 철수하는 나라들이 늘어가지만 호주 정부는 오히려 전쟁에 대한 기여를 늘렸다. 2004년 말 존 하워드 수상은 재선하자마자 450명의 군대를 이라크에 추가 파병했다. [역주 - 호주의 집권보수정당인 자유-국민 연립당은 2004년 11월 총선의 승리를 통해 말콤 프레이저 정부 이래로 20년 만에 연방의회의 상하 양원을 장악했다.] 이는 호주 국민 60% 이상의 의견에 명백히 반하는 것이었다. 하워드는 파병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무시하고 반전운동을 '폭도'라고 불렀다. 그는 다른 국가의 철군을 보충하기 위해 호주가 미국의 요구에 따라 (이라크 민중의 요구가 아니라) 파병을 계속 확대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라크 전쟁과 점령에 반대하는 국내 여론은 지난 3년 반 동안 부침을 겪었지만 항상 다수를 차지했다. 2002년 후반과 2003년 초반의 몇몇 여론조사는 거의 90%가 이라크 침략전쟁 동참에 반대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5명당 1명 꼴로 거리로 나온, 호주 역사상 가장 거대한 대중시위가 침략 직전에 개최되었다. 인구가 적고 분산되어 있으며 일반적으로 대중들이 보수적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대단한 성과였다. 광범위한 대규모 시위를 반영하는 지역적 행동들과 함께 수많은 지역 평화단체들이 전국에 생겨났다. 미술 전시회, 도로봉쇄, 콘서트, 공개포럼, 영화상영, 저명인사들의 고발, 호주의 상징인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돛 모양 가운데 하나에 '전쟁반대'라고 쓴 행동 등은 호주의 이라크전쟁 참여에 대한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대응들이었다. 침공 이후 이러한 행동 가운데 일부는 잦아들었지만 호주의 반전운동과 광범위한 정서는 여전히 살아 있다. [%=사진1%]호주 반전운동의 최전선에 '시드니 반전연합'이 있다. 이는 호주에서 매우 큰 규모의 반전단체로는 아마도 유일한 것이다. 반전연합은 호주 정부가 이라크 침략전쟁을 수행하고 있지만 전쟁과 점령, 미래의 군사적 모험주의에 지속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개인들과 단체들이 2003년에 결성한 조직이다. 반전연합의 목표는 더욱 광범위하다. 반전연합은 시민적 권리의 억압, 무슬림과 아랍인에 대한 비난, 군사지출 증가, 군사기지 확대, 관타나모 기지에서 발생하는 것과 같은 조직적인 인권침해를 낳고 있는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에 반격하기 위해 구성되었다. 그러나 호주 반전운동은 많은 과제에 직면해 있다. 그 가운데 일부는 호주의 특유한 상황과 관련된 것이며 다른 과제들은 세계 반전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와 동일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라크 점령을 대중적인 의제로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 전쟁이 공식적으로 시작되기 전에도 놀랄 만큼 흘러 넘쳤던 반전여론은 민중들의 의식 속에서 전쟁이 핵심 이슈로 유지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이는 호주에서 상업적 언론들을 소수가 독점하고 있는 상황을 생각한다면 중요한 성과다. 전쟁에 찬성하는 하워드 정부의 재선, 이러한 강경 정책에 대한 제1야당[역주 - 노동당]의 대안마련 실패, 노동자의 권리, 난민에 대한 대우, 환경파괴와 같은 영역에서 후퇴하는 수많은 정책에 대해 싸워야할 필요성 등은 현재 이라크 점령에 대한 쟁점이 사라지도록 위협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군사주의와 이러한 투쟁들의 연관관계를 부각하는 것은 반전운동에 달려 있다. 또한 임금삭감, 공공서비스 파괴, 열화우라늄 사용, 난민 탄압 등이 지정학적 지배를 위한 더 광범위한 정치적, 경제적 징후이며 이라크 점령이 그 핵심 부분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 역시 반전운동에 달려 있다. 이렇게 연결되어 있는 운동들과 결합하면서 반전운동은 이라크 군사점령이라는 근본 이슈를 넘어 포커스를 넓혀야 한다. 우리는 원조활동과 군사행동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는 현실, 군사작전의 사유화, 경제적 세계화와 군산복합체, 종군 언론, 모병정책 등과 같은 점령의 장기적 결과들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는 다른 지역의 군사점령도 잊어서는 안 된다. 아프가니스탄은 완전한 반인도적 재앙으로 판명되었고, 이는 이라크에서 벌어질 결과나 앞으로도 발생할 수 있는 선제공격의 전망에 대해 중요한 교훈을 준다. 이스라엘의 야만적인 팔레스타인 점령과 그에 대한 확고한 저항은 이라크의 역사적, 정치적 이슈들에 대해 많은 점에서 시사점을 제공한다. 국내 맥락에서 더욱 특별한 문제는 호주 제국주의가 동남아 지역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호주는 군대와 경찰을 파푸아뉴기니와 솔로몬제도에 주둔시키고, 나우루에 호주 난민수용소를 건설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주제 가운데 하나는 이라크 점령에 반대하는 단결된 운동의 필요성이다. 호주는 침략 이전에 반전운동의 전반적인 분열을 경험하였다. 한쪽에는 호주 군대 철수와 이라크에 대한 군사적, 경제적 점령 중단을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 이들이 있었다 (주로 사회주의자, 자율주의자, 환경주의자, 지역 평화단체, 일부 정당). 시드니에서는 이러한 이들이 반전연합을 만들었다. 다른 한쪽에는 호주 군대를 지지해야 하고 이라크 문제에 대한 '유엔결의안'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 (주로 노조 관료, 교회, 호주공산당이 대표하는) 보수적인 반전운동이 있었다. 그러나 외국군 주둔에 대한 이라크 민중의 솔직한 반대가 더욱 명백해지고 점령이 초래한 폭력이 더욱 심각해지며 유엔의 지속적인 경제제재가 침략과 점령에 결부되면서, 이러한 보수적 운동들은 점차로 이라크 점령 중단 요구에 동참하는 입장으로 변화했다. 그러나 점령에 대한 두 진영의 입장이 유사하고 반전연합이 운동의 단결을 추진하고자 반복적이고 구체적으로 시도했지만 이러한 제안은 철저하게 거부되었다. 그러나 전쟁에 반대하여 운동하는 개인과 단체들의 광범위한 정치적 프로젝트 속에서 일부 차이점이 있어도 전쟁에 반대하는 가능한 한 가장 강력한 운동을 창출하기 위해 이데올로기적 입장의 공통성을 세워야 한다는 것은 거의 판에 박힌 말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각자의 정치적 강령, 연대운동 단체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활동이나 주장을 희생하지 않고도 달성할 수 있다. 호주의 반전운동을 재건함에 있어 아마도 우리들의 가장 큰 과제는 전쟁상황을 국내로 가져와서 점령을 끝나게 할 정치적 비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실제 이라크 현장상황에 대한 부족한 언론보도 (미국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살해당했다는 것이나 알-자지라 사례처럼 많은 이들이 이라크 밖으로 쫓겨났다는 단순한 보도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팔루자와 여러 지역에서 벌어진 군사작전에 대한 언론통제, 상업언론의 자기검열과 군대에서 나오는 자료에 대한 의존 등은 이라크 상황이 얼마나 나쁜지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는 정보를 부족하게 하였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엄청난 전쟁의 참상에 대해 호주가 얼마나 잘못하고 있는지 잘 모르므로 전쟁참여에 대해 어느 정도 자족케 했다는 사실이다. 모든 진보적 운동처럼, 반전운동도 이러한 주류언론의 지배와 전통적인 의회정당이 채택한 빈약한 입장에 대항하기 위해 대안언론을 육성하고 장려할 필요가 있다. 전쟁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의 메시지를 호주 정부가 무시한 것에 대해 대다수 국민들은 경악했지만, 각국 정부가 이러한 방식으로 표출된 분노를 기꺼이 무시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한번의 항의시위와 전쟁에 대한 전체적인 반감은 훌륭한 일이지만 충분치는 않다. 이라크 점령은 정치적 비용이 증가하여 이를 입안한 지배자들이 이 정책을 유지할 수 없도록 해야만 끝날 것이다. 호주 반전운동은 반드시 현재 우리의 활동을 완수하고 정치적 위기를 촉진하기 위해 끊임없이 직접행동을 전개해야만 한다. 호주 내적으로 그리고 국제적으로 반전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이러한 과제들은 때때로 우리를 주춤하게 하지만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반전운동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많은 문제들 중에서도 전쟁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 정당하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다우닝 스트리트 메모[역주 - 영국 블레어수상의 법률자문단들이 이라크 전쟁 이전에 전쟁의 불법이라고 조언한 메모로서 최근에 밝혀졌다]는 이라크 점령의 '진실'이 우리의 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일련의 사건들 가운데 가장 최근의 것일 뿐이다. 아무리 많은 전쟁기구들이 정치선전을 해도 전쟁의 영구화를 위해 전쟁의 참상이나 근본이유를 없앨 수는 없다. 또한 반전운동을 조직하는 우리들은 이미 전쟁에 반대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다. 따라서 우리는 이미 풀뿌리운동을 (다시) 세우는 토대를 많이 쌓아 놓았다. 우리는 민중 대다수를 정치화했고 이로써 전쟁에 대한 민중들의 개인적인 경멸을 더욱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으로 바꿀 수 있도록 했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운동의 진정한 국제적 성격일 것이다. 시드니 반전연합은 한국과 세계의 동지들의 활동으로부터 힘을 얻는다. 미국의 군사헤게모니와 그것을 지탱하는 사회경제적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폭력적 활동이 세계적인 것처럼, 이에 대한 우리의 저항 역시 세계적이어야 한다고 우리는 인식한다. 우리는 실로 모든 곳에 존재하며 우리의 힘은 이러한 분권과 연대로부터 나온다. 우리의 실천, 국제주의, 보편성은 마침내 이라크 점령과 군사적 억압을 끝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