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면합의에 대한 정부의 입장 2. 정부의 계속되는 거짓해명 1) 쌀협상과 양자현안(쌀이외 다른 품목)과의 관계에 대해 2) 쌀협상 과정에서 양자현안(쌀이외 다른 품목)이 협상내용으로 제기된 시점에 대해 3) 쌀협상 최종발표(2004. 12.30) 당시 이미 공지를 하였기 때문에 이면합의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 4) 양자의 부가적인 사항에 대한 이면합의 여부 및 정부의 은폐기도에 대한 문제 5) 기타 쟁점이 되는 사항 (1) 중국과의 양자차원의 부가합의 사항중 “국내여건을 감안하면서 조정관세 대상품목 축소 및 세율 인하를 위해 공동 노력”의 건 (2) 인도 이집트와의 양자차원의 부가합의 사항중 “MMA수입과 별개로 식량원조용(대북지원) 쌀 구매시 우선권 부여”의 건 (3) 아르헨티나와의 양자차원의 부가합의 사항중 “닭고기, 쇠고기 등의 가금육과 오렌지 등에 대해 수입위험평가가 원활히 진행되도록 합의함”에 대한 건. 3. 정부 쌀협상안 및 거짓해명에 대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요구사항
인터넷 저작권 논란에 숨어있는 정치적 배경 양 희 진| 정보공유연대 IPLeft 운영위원 *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센스: 영리불허, 개작허용(http://freeuse.or.kr/license/by-nc/)'에 따라 자유롭게 복제, 배포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2005년 2월 25일 작성되었습니다. 최근 개정 저작권법이 발효된 것을 계기로 네티즌의 관심이 저작권에 쏠려있다. 실연자와 음반제작자에게 전송권이 부여되자 네티즌들은 음악파일(mp3)을 블로그나 까페의 배경음악으로 깔거나 개인홈페이지에 업로드하는 행위, p2p 서비스를 통해 음악파일을 공유하는 행위가 새롭게 금지된 것으로 인식하였다. 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블로그나 까페에서 배경음악을 삭제하거나 업로드했던 음악파일을 대거 삭제하는 네티즌들이 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불복종운동을 벌이며 오히려 대량으로 음악파일을 업로드를 하는 네티즌들도 생겼다. 뿐만 아니라 'No Music No Blog' '개정 저작권법 반대' '네티즌을 범죄인화하는 저작권법 반대'라는 슬로건의 까페가 만들어져 네티즌 스스로 조직적인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문화관광부는 당초 '이번 법개정으로 새롭게 불법이 된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불법이었는데 다만 네티즌들이 몰랐을 뿐이며 앞으로 대대적인 단속을 벌일 예정'이라고 밝혔다가, 네티즌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한발 후퇴했다. 문광부 홈페이지에 2차 공지를 내어, 일정한 '계도기간을 거친 후에 영리적 사이트를 중심으로 한정하여 단속을 벌이겠다'고 네티즌을 다독이고 있는 상황이다. 인터넷에서 음악파일을 전송하는 행위가 애초부터 불법이었다는 문광부의 말은 맞지만 중요한 것은 언제부터 불법이었는가가 아니라, '현재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네티즌이 '이제서야 불법을 인식했다'라는 것은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준법의식이 없다고 핀잔주고 '계도할'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네티즌이 비로소 지금 그 금지가 정당한가'라고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문광부가 해야 할 일은 그 정당성을 설명하든가 네티즌의 비판과 항의를 받아들여 정당하지 못한 법을 개정하는 것이지, 나중에 단속하겠다는 것은 답이 될 수 없다. 정보공유연대를 비롯한 31개 시민사회단체들은 문광부나 음반업계에 맞서 저작권법재개정 투쟁을 선포하고, 이를 위한 지지서명을 받는 등 여러 캠페인을 벌여나가고 있다 ({{{{http://www.ipleft.or.kr/antilaw }} }}). 지난주부터는 대통령에게 애국가선물하기, 애국가 배경음악채택하기 등의 저작권법 불복종운동을 벌였다. 동시에 국회 앞에서 1주간 1인 시위를 벌였다. 문광부 담당자나 국회문광위 소속 의원들도 네티즌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의 문제제기에 약간은 긴장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네티즌과 시민사회단체들의 핵심적 요구사항인 저작권법 재개정 요구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며, 오히려 저작권법을 개악하려고 준비중이어서 3월, 4월은 저작권법을 둘러싼 첨예한 대립이 계속될 전망이다. 시민사회단체들 주장의 핵심은 지금의 저작권법이 인터넷의 자유로운 정보소통구조를 전혀 배려하지 못하고 있어 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저작권법에 따르면 동호회게시판이나 카페에 시 한 편, 노래가사 하나만 업로드 해도 저작권침해이다. 블로그에 배경음악을 깔면 손해배상청구를 당할 지도 모른다. 신문기사를 퍼 나르는 것도 모두 불법이다. 블로그나 까페 등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지는 다양한 소통과 새로운 창작의 과정이 저작권법에 의해 원천적으로 막혀있는 것이다. 이는 인터넷에서 네티즌들의 행위는 복제와 전송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음에도 저작권법이 복제권과 전송권을 저작권자에게 거의 무제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터넷에서의 저작물 전송과 복제를 일정한 범위에서 허용하는 쪽으로 저작권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저작권법의 재개정이 궁극적인 대안이다. 혹자는 저작물을 복제하고 전송하고 공연하는 등 저작물의 모든 처분 권한은 저작자에게 있으니 그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고, 그러니 그들의 권리주장은 정당하고 법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단지 이용자들의 무임승차 의식이 문제가 아니냐고 묻는다. 심지어 국회의원도, 문광부 공무원도 같은 질문을 한다. "우리 헌법은 사유재산권을 보장한다. 저작권법도 그 재산권의 하나이다. 그러니 저작권법도 보장되어야 할 기본권이다"라고. 사유재산권을 운운하며 헌법을 들먹이지만, 실상 사유재산권은 제한할 수 없다는 논리야말로 위헌적 발상이다. 우리 헌법은 입법자가 법률로써 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를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다. 따라서 본질적인 내용의 침해가 아니라면 재산권도 얼마든지 제한할 수 있다. 토지소유권은 그린벨트로 묶거나 거래허가제를 통해 제한하고 있다. 자기 땅에 건물을 세우더라도 건축법에 따른 허가를 받거나 신고를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일조권을 침해하지 않으려면 일정한 높이 이상으로 지을 수 없다. 저작권법도 마찬가지다. 제한할 수 없는 권리가 아니다. 저작권을 제한할 수 없는 절대적인 권리로 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국어 책을 낭송하게 하면 아이와 선생은 공연권 침해가 될 것이다. 글을 쓰면서 남의 글을 인용하는 것도 복제권 침해가 될 것이며, 저작권이 만료되지 않은 건축물 앞에서나 조각, 그림이 장식된 실내에서는 시사보도를 위한 취재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소풍간 학생들은 같이 노래를 부를 수도 없고 학교 방송에서 음악을 틀지도 못할 것이다.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들이 저작권법 위반으로 처벌될 것이다. 그러나 안심해도 된다. 이런 행위들은 타인의 저작물을 공연하거나 복제하는 행위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저작권법에서 허용하고 있다. 즉 저작권법은 공연권이나 복제권을 저작권으로서 보호하는 한편, 저작권을 제한하고 있다. 왜? 저작물을 일정한 범위에서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보장하지 않으면 일상생활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매우 불편하고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저작권을 통해 달성하려고 하는 문화의 발전이라는 것도 어느 만큼은 저작물을 자유롭게 사용하게 했을 때 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작권법 제1조에서 보듯 저작권법의 역사는 저작권과 이용자의 권리간에 균형을 금과옥조처럼 유지하려는 과정이었다. 그 균형점이라는 것이 사회변화에 따라 좌우로 이동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인터넷 디지털 환경으로 변화되면서 변화된 환경을 법, 제도에 수용하는 방식은 권리자를 강력하게 보호하는 쪽으로만 기울어져 왔다. 우리가 지적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저작(인접)권자에게 전송권이 보장되고, 전송권에 대한 제한은 거의 두지 않으면서 저작권과 이용권 간의 균형이 깨어지고 있다. 또한 개인적인 목적의 비영리적인 사용을 위해서라면 저작물의 복제도 허용되었으나, 인터넷 환경에서는 실질적으로는 개인적, 비영리적 사용임에도 네트워크 환경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한정된 범위에서 사용됨에도 개인적 사용의 범위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비영리적 사용이면서 저작권자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는 한 실질적으로 보아 개인적 사용이라면 인터넷 상에서도 보장되어야 한다. 이 만큼은 저작자의 권리가 제한되어야 한다. 우리가 저작권 문제를 주목하는 이유는 비단 '불편'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작권의 강화는 바로 '차별'의 문제를 발생시킨다. 저작권법에 의하여 정보의 소통이 규제되고 인터넷이 하나의 시장으로만 전락할 때는 정보의 부익부빈익빈이 강화되고 이는 정보사회의 삶의 질의 격차로 이어질 것이다. 저작권의 강화는 실제로 미국 헐리우드 자본에 의한 요구가 미국 정부를 매개로 국제적으로 관철된 것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시장의 논리가 세계화과정에서 정보의 소통과 활용에 적용된 결과이다. 결국 저작권 문제에 대해 공유의 공간을 넓혀 가는 것은 빈곤과 차별의 원천인 자본의 세계화에 맞서는 길이기도 하다.PSSP
대안세계화와 한국 사회운동 임 필 수 | 정책국장 오늘의 세계화는 전쟁을 동반하는 금융세계화며 새로운 제국주의다. 극단적인 착취와 강탈, 전쟁의 폭력, 빈곤의 여성화와 여성에 대한 폭력은 세계 민중에게 유례 없는 도전이다. 이에 저항하는 세계의 사회운동은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라는 지배세력의 온정주의나 보수적·퇴행적 '반세계화'를 넘어서 '대안세계화'의 이름으로 이념과 운동을 발견하고 있다. 이들은 인민의 권리의 자율적 실현, 사회적·경제적 변혁, 사회운동과 공동체 간 교통과 연대를 추구하고 있다. 한국의 사회운동은 지배세력의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라는 미망과 새로운 파퓰리즘적인 정치 행태 속에서 심각한 동요를 경험하고 있으며, 동시에 '대안세계화' 운동의 전진적인 요소들을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에 사회진보연대는 한국 사회운동의 긴급한 과제와 앞으로 사회진보연대가 주목하고자 하는 바를 밝히고자 한다. 새로운 제국주의: 전쟁을 동반하는 금융세계화 미국 경제의 위기와 이와 날카롭게 대비되는 미국 군사력의 압도적인 우위는 세계 인민들에게 진정한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 미국은 해외직접투자와 포트폴리오투자를 통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로 엄청난 양의 소득을 빨아들였다. 미국의 부유계급은 미국 내 신자유주의 개혁의 흥청거림 속에서 풍요한 소비를 향유했다. 하지만 이제 미국은 저축률의 감소, 경상수지 적자로 외채증가, 외국으로의 거대한 소득유출, 국내 자본소득의 감소라는 악순환을 맞이하고 있다. 미국은 달러화 약세라는 궤도로 돌아섰고, '글로벌한 정책협조'라는 미명으로 그 부담을 타국에게 분산시키려 하고 있다. 미국 경제가 짧은 시간 내에 대파국을 맞으리라 예상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경향이 장기적으로 미국의 금융적 지배와 제국주의 권력으로서 행동할 수 있는 능력과 모순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한편, 미국은 이라크를 군사력으로 강점한 후 신속한 신자유주의 개혁을 위한 발걸음을 걷고 있다. 2004년 말 19개 나라로 구성된 '파리클럽' (주요채권국회의)은 이라크의 1200억 달러에 이르는 외채 가운데 파리클럽에 지고 있는 400억 달러 중 80%에 대한 부채탕감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초기 30%를 탕감한 후에는 IMF 프로그램이 승인된 후 30%를 탕감하고 마지막 20%는 IMF 조사위원회가 프로그램의 이행 여부를 판단하여 탕감한다는 게 가장 중요한 점이다. 이라크 인민의 시각에서 볼 때, 전쟁을 감행한 당사자들에게 부채를 갚아야 한다는 전제 자체가 증오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나아가 앞으로 진행될 IMF 프로그램은 이라크 인민의 민주적 결정 과정을 철저히 배제한 중심부 국가의 이익을 위한 개혁이 될 터이므로 심각한 저항을 야기할 것이다. 이미 정통성에 심각한 상처를 입은 이라크 임시정부가 이를 감당한 능력을 과연 조금이라도 보여줄 수 있을까? 미국이 이라크에서 벌인 전쟁과 점령은 미국이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한 사회를 한순간에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은 지녔지만 그것을 재건할 수 있는 정치적·경제적 능력은 결핍되어 있음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부시의 대통령 재선은 도덕심, 애국주의 등 어떤 치장을 하더라도 미국 사회가 종교적 이데올로기나 전쟁의 폭력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야말로 미국 스스로가 주도한 금융세계화의 부메랑 효과에 대한 퇴행적, 반동적 대응의 한 측면이다. 이는 오늘의 자본주의 세계가 착취와 강탈, 이데올로기적 맹신과 전쟁의 폭력이라는 첨예한 국면으로 이미 진입하였음을 보여준다. 전쟁을 동반하는 금융세계화는 세계화의 새로운 국면이자 '새로운 제국주의'라고 부를 만하다. 이는 세계 민중에게 유례 없는 도전이자 투쟁의 대상이다. 세계화에 대한 불만들 오늘의 세계 자본주의의는 18-19세기 자본주의 사회로의 이행의 '원시적 축적' 과정과 비견할 만하다. 마르크스는 '원시적 축적'을 광범위하게 관찰했다. 토지의 상품화와 사유화, 농민 인구의 강제적인 구축, 다양한 형태의 소유권(공공소유, 집단소유, 국가소유)의 배타적인 사적 소유권으로 전환, 공공의 권리의 억압, 노동력의 상품화와 생산과 소비의 대안적·토착적 형태의 억압, 자연자원을 포함하는 자산의 식민지적·신식민지적·제국주의적 영유과정, 교환과 납세의 화폐화(특히 토지), 노예무역, 고리대금·국채·신용체계 등등. 마르크스가 언급한 이러한 특징들은 현재에도 강력하게 남아 있으며, 어떤 것은 과거보다 더 강력한 역할을 한다. 신용체계와 금융자본은 약탈, 사기, 도둑질의 중요한 수단이다. 주식부양, 인플레이션을 통한 구조적인 자산파괴, 인수합병을 통한 자산약탈, 한 나라의 모든 인민을 부채의 노예로 전락시키는 채무부담의 증대, 신용과 주식 조작을 통한 기업의 사기와 자산 강탈(연금 기금의 유용과 주식과 기업의 붕괴를 통한 대규모 피해) 등등. 또한 강탈에 의한 축적은 완전히 새로운 메커니즘을 형성하고 있다. WTO 협상에서 지적소유권에 대한 협상(TRIPS 협정)이 강조되는 것은 중요한 사례다. 지적재산권은 지배세력이 주장하는 자유무역의 유용성, 즉 지식과 기술, 사상의 자유로운 교통이라는 이념이 무색한 대표적인 보호무역의 사례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유전물질의 세계저장량에 대한 약탈이 소수의 거대 초민족기업의 이득을 위해 진행 중이다. 세계 환경 공유물(토지, 대기, 물)의 점증하는 고갈과 생물서식지의 하락은 대대적인 자연의 상품화의 결과며, 이는 자본집약적 농업생산 양식을 제외한 모든 농업을 제약한다. 문화적 형태, 역사, 지적 활동의 상품화는 대대적인 강탈을 동반한다. 이러한 강탈의 과정은 세계화에 대한 불만들을 누적시키고 있으며, 광범위한 저항을 야기하고 있다. 반세계화인가, 대안세계화인가? 그러나 세계화에 대항하는 운동은 다양한 경향들을 포함하고 있다. 1999년 미국 시애틀 WTO 각료회담 반대투쟁은 그러한 요소들을 극적으로 드러냈다. 예컨대 당시 미국노총이 보여준 입장은 중요한 사례다. 그들이 시애틀투쟁에 참가한 중요한 동기의 하나는 중국의 WTO 가입 반대였다. '중국의 가입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낮은 임금제공을 통해 중국의 엘리트들이 대중을 억압하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담론은 사실상 국수주의·보호무역주의, 그리고 인종주의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것이었다. 금융세계화가 동반하는 생산과 고용의 파괴라는 현실의 원인을 외부의 국가 또는 인민에게 돌리는 매우 위험스러운 주장이다. 또한 외부의 국가 또는 인민을 적으로 삼는 이데올로기는 곧바로 내부의 적-이주자, 여성, 실업자 등등-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 국민 중에 기생충이 있다"는 대처의 발언을 생각해 보라).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미국말고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의 범죄화를 주장하는 극우세력에게도 '반세계화'는 중심 구호가 되고 있다. 나아가 시민권의 '민족 우선' 원칙을 세운 유럽연합은 배타적인 권리부여를 체계화한다. 세계화가 낳은 혼돈으로부터 또는 '미국화의 물결로부터 자기 민족에게 고유한 무언가를 지켜야 한다는' '반세계화'의 논리는 이처럼 보수주의적인 이데올로기로도 이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물론 세계화에 대한 불만이 보수주의로만 표출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화 반대'의 코포라티즘 경향도 분명히 존재한다 (민족경제의 재건, 국유화나 '투자의 사회화'를 통한 산업의 균형발전, 노동자 전체의 고용증진과 복지개선 등등).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금융세계화의 현실에서 이미 '미망'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배세력 중 일부는 이러한 경향을 대중조작을 위한 간판으로 간혹 활용하기도 하지만, 이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 이후 먼 훗날의 신기루로 한없이 지연된다. 대안세계화: 세계 민중운동의 저항의 전진적 요소들 이처럼 '반세계화'라는 명칭이 우리의 운동을 지칭하기에 부적합하다는 사실이 점차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세계농민운동조직인 비아캄페시나(소농의 길)는 '투쟁을 세계화하자, 희망을 세계화하자'는 구호를 내걸었다. 민족적·인종적 분할, 성적 억압과 배제라는 현실의 조건을 지양하는 보편적인 이념과 그에 적합한 운동을 건설하는 것만이 능동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적인 사회운동의 흐름에서 어떤 전진적인 요소를 발견하고 계발해야 하는가? 첫째, 인민들의 권리의 자율적인 실현이라는 원칙을 발전시켜야 한다. 세계경제기구나 글로벌 NGO가 내세우는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라는 미망이나 '반세계화' 운동의 보수적, 퇴행적 요소를 극복하기 위해서 대안세계화 운동은 모든 인민들의 권리의 목록을 재작성하려는 노력을 펼치고 있다. 세계화의 고통 속에서 인민 스스로를 분리시키는 요소를 제거하고 상호확장적인 권리를 발견하며, 또한 인민들의 자율적인 운동을 통해 쟁취하고자 하는 원칙이다. 둘째, 금융세계화의 현실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한 사회적·경제적 전화의 전략과 요구를 계발해야 한다. 예컨대 세계 자본주의 주변부와 신흥공업국을 휩쓴 외채위기를 겪으며, '국제금융·무역기구' 반대(또는 전화), 제3세계 외채탕감, 금융거래과세를 통한 자본통제 등의 요구를 제시했다. 현재 세계사회운동의 가장 활동적인 세력의 하나인 농민운동은 식량주권(단순한 민족적 식량자급이 아닌 토지, 생명종과 유전자원, 농업지식에 대한 농민의 권리), 토지개혁과 대안적 농업모델을 두고 활발한 모색과 투쟁을 펼치고 있다. 거대한 사유화·상품화의 물결 속에서 지식에 대한 소유권과 자연 공유물에 대한 소유권에 반대하는 투쟁도 성장하고 있다. 세계화가 낳은 여성의 빈곤, 여성에 대한 폭력에 맞서는 여성운동의 모색과 투쟁도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제기된 것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세계화는 복합적인 현실의 변화를 낳고 있으며, 대안세계화 운동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몇몇 제한적 요구의 제기로 단순화될 수 없다. 예를 들어 금융세계화에 조응하기 위해 화폐통합을 매개로 신자유주의 경제통합을 단행하고 유럽헌법을 제정하고자 하는 유럽연합의 현실은 이 문제의 단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참조점이다. 현재 유럽연합의 건설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긴급한 과제로 떠오르게 한다. 예컨대 유럽의 입법·사법·행정기구의 민주화 (특히 유럽연합의 사법체계는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율화되면서 전횡을 휘두르게 된다), 사회적 노동의 재조직화('모든 사람에게 일자리를' 이라는 목표의 갱신), 국경의 민주화 (인민들의 순환과 거주의 보편적 권리), 교육의 일반화 (특히 획일적인 민족적 교육체계에 의해 억압되는 익명의 이주자들 사이에서) 등등. 이는 세계화가 억압하는 인권·시민권의 재건을 위해 필수적인 과제이자 사회의 변혁을 위한 출발점일 수 있다. 대안세계화 운동은 세계적·지역적 시민권(노동권, 여성권)의 재건을 위한 경로들을 발견해야 한다. 셋째, 사회운동은 (앞서의 목표를 위해서도)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분리된 민족 또는 공동체 간 교통과 연대를 추구해야 한다. 특히 '문명의 충돌'이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갈등과 전쟁을 불변으로 간주하거나 이를 진압·순치하는 게 '성스러운' 임무라고 주장하는 세력과 대결하는 게 긴급한 과제다. 오늘 세계에서 전쟁과 종교적 이데올로기의 발호는 세계화가 낳은 가장 극단적인 결과이자 인민운동의 진정한 무능력을 표현한다. 현재 움터나고 있는 반전운동은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명분으로 감행되는 '인도주의' 전쟁이나 침략전쟁을 거부하며, 전쟁과 폭력의 전장에서 평화와 민주주의를 바라는 사회운동들간의 연대를 추구하고 있다. 전쟁이 벌어지는 곳은 곧 저발전 지역이며 곧 퇴행적인 사회이며, '인도주의' 개입을 통한 민주주의의 이식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서구 제국주의가 제공하는 시각을 거부하고, 인민운동 차원의 교통과 연대의 틀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대안세계화와 한국의 사회운동 한국의 사회운동은 '반세계화'를 넘어서 '대안세계화'라는 이름을 찾고 있는가? 한국의 사회운동은 노무현 정권의 파퓰리즘이라는 조건 위에 있다. 노무현정권은 김대중 정권의 노선을 보완하며 신자유주의 개혁을 신속하게 강도 높게 추진하기 위해 새로운 파퓰리즘적인 정치 행태를 창출하고 있다. 행정부 권력의 비대화, 미디어의 적극적인 활용, 대통령 개인에 대한 대중적 지지나 지역주의(실리주의)적 동원 등의 정치 행태는 민중운동의 저항을 무력화하는 전형적인 방식이 되고 있다. 또한 정권과 NGO의 결탁은 위기의 순간마다 민중의 단결을 교란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게다가 노무현정권의 파퓰리즘은 기본적으로 기존 노동자운동을 배제하는 (과거 남미의 페론주의와는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물론 '참여와 대화'라는 수사는 계속 허구적으로 활용된다). 이 과정에서 사법부와 같은 억압적 국가기구가 자율화되면서 민중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권력을 휘두르며 사회의 위기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사회에서 '국가의 민주화'는 우회할 수 없는 과제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인민이 우선 '국가의 민주적 교육자'가 되어야 한다. 한국의 사회운동은 '세계화의 승리자(수혜자)'라는 미망을 타파하며, 전쟁의 폭력이라는 위급성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우리 운동의 공동의 과제를 인식하고 분석과 입장을 마련해나갈 것이다. 첫째, 대안세계화운동에 적합한 노동자운동의 개조. 현재 국제노동자운동은 형성 중인 대안세계화운동에서 가장 비활동적인 부문으로 남아 있다. 이는 국제자유노련 등으로 대표되는 국제노동자운동조직의 전통적인 '반공주의·코포라티즘' 지향과 그 몰락의 유산이다 (북반구 노조운동의 쇠퇴, 로비중심의 활동 행태로 드러나고 있다). 최근에는 경제협력기구(OECD)나 국제노동기구(ILO)가 제시하는 '괜찮은 노동'(decent work)이라는 슬로건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며, 금융세계화의 현실에 대한 진정한 맹목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한국에서는 노무현정권이 기본적으로 노동자운동을 배제하는 파퓰리즘 형태를 창출함으로써, 현존 노동조합 운동이 큰 동요를 겪고 있다. 즉 노동조합은 최소한의 코포라티즘적 지향조차 포기하며 정권의 '위기관리' 파트너가 될 것인가 동요한다. 한편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면 현재 민주노총 지도부의 지향을 '사회적 합의주의'라고 부르기에는 부적합한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최소한 '사회적' 또는 '코포라티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합의의 결과가 노동자대중의 포괄적인 부문들에게 그 결과가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러나 현재의 지향은 노동자의 상층 일부의 현상유지를 목적으로 할 뿐이다. 한마디로 사회적 합의주의나 코포라티즘에 미달하나, 그것을 허구적으로 주장할 뿐이다. 예컨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라는 구상이 일부 노동자의 '삶의 질 개선'으로 현실적으로 전환된 것은 코포라티즘에 미달하는 현재의 노조운동의 지향을 증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현재 '비정규직 철폐투쟁'도 갈림길에 있다. 비정규직권리보장 입법과 같은 '법제화' 시도는 사회 전체에 걸친 '사회적 노동의 재조직화'-일례로 '모두에게 일자리를'이라는 구호가 현실적으로 실현될 수 있을 정도의 노동시간의 획기적 단축이나 여성의 가사노동과 같은 광범위한 사회적 활동의 사회적 인정. 또는 이와 전혀 다른 방식의 생산관계의 전진적인 변혁-가 동반되지 않으면 비정규직 철폐의 현실적 경로를 발견할 수 없다. 현재의 구조에 단순히 편입되는 게 불가능하다면 현재의 구조를 변혁하는 게 유일한 경로다. 방향의 전환이 시작되지 않는다면 실업·빈곤, 이주노동자의 권리의 문제를 동시에 사고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둘째, 여성운동과 노동자운동의 양립. 지난 세기 노동자운동은 가족을 매개로 재생산의 부담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구조를 온존시켰다. 신자유주의 공세는 여성이 출산, 양육과 전반적인 가사노동을 책임져야 할 뿐만 아니라 생계비용을 보충하기 위해 이중적 노동을 해야만 하는 상태를 촉진했다. 이는 여성의 출혈적인 노동력 판매를 확대하고 그 결과 여성의 빈곤과 고통은 악순환되었다. 여기서 남성 가장의 임금이 가족의 재생산을 담보한다는 '가족임금'은 하나의 맹목점이 되었고, 현실의 고통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여성운동과 노동자운동이 양립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빈곤 문제에 관한 전진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만 한다. 물론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한편, 전쟁을 동반하는 금융세계화는 여성이 경험하는 폭력적 현실을 더욱 증폭한다. 먼저 전쟁은 대부분의 전쟁이 증언하듯이 '성별화된 폭력'을 확대한다. 전쟁은 여성에 대한 잔혹한 물리적 폭력뿐만 아니라 상징적 폭력을 동반한다. 또 한편으로 금융세계화가 강요하는 여성의 빈곤은 성매매의 문제를 더욱 증폭한다. 전쟁과 성매매라는 여성에 대한 폭력의 문제에 직면해 여성의 권리의 견지에서 운동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셋째, 대안세계화 운동과 반전운동의 결합. 현재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의 침략전쟁만이 유일한 전쟁이 아니다. 현재 미국은 동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중동과 같이 미국의 이해관계가 '사활적인 지역'에서는 기존의 군사동맹과 무기체계를 강화하면서 도발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지금도 콜롬비아나 베네수엘라에서 저강도 전쟁(마약과의 전쟁, 정권의 전복)이 꾸준히 시도되고 있으며,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이란,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였다. 그러나 이외 배제된 지역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전쟁에 대해서는 어색하게 침묵하거나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미명으로 중심부로의 분쟁확대를 저지하는 군사작전을 펼치고 있다. 세계화로부터 배제된 지역은 과거 식민주의·제국주의·신식민주의의 역사를 거치며 인간생명과 자연자원의 착취, 외채를 통한 수탈을 겪었고, 구 식민권력이 이식한 부정한 토착정권의 이중수탈을 경험했다. 이 과정에서 사회는 황폐화되었고, 군벌들 간 약탈전쟁마저 만연하다. 이러한 사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세계의 배제된 지역에서 반전운동과 대안세계화운동이 결합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사회운동 차원의 교통과 연대가 확장되어야 한다. 세계자본주의의 주변부에서 전쟁과 빈곤은 극단적 폭력의 지대를 공고히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주목해야 한다. 또한 현재 한반도는 '신자유주의 경제통합'과 '절멸 전쟁'의 위기에서 장기적인 미래를 내다보기 어려운 형편이다. 한국의 반전평화운동은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를 주장하는 세력들이 희망하는 한미동맹의 안정적인 분쟁관리인가 아니면 또 다른 급진화의 길인가를 두고 갈림길에 서 있는 시점이다. 역시 이 뿐만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복합적인 과제들이 존재한다. 대안세계화 운동에서 가장 활력 있는 부문으로 성장하고 있는 농민운동, 식량주권과 농업개혁에 관한 요구와 분리될 수 없는 생태운동, 현재의 실업/반실업·빈곤의 문제와 깊게 연루된 대중교육의 위기 등의 문제는 우리가 공동으로 풀어나가야 할 긴급한 과제다. 사회진보연대는 이와 같은 한국 사회운동의 중장기적 과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공동의 전망을 세워나가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PSSP
이목희 의원이야말로 민주노총이 단호히 ‘결별’해야할 신자유주의 세력이다! - 이목희 의원의 이른바 ‘결별’ 망언에 부쳐 - 1.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사회적 교섭안을 둘러싼 극한 대립 속에 또 다시 무산된 가운데, 그간 국회 환경노동위 여당 간사로서 비정규개악안 처리를 주도해온 열린우리당 이목희 의원이 민주노총에게 이른바 ‘극좌 맹동주의자와의 결별’을 주문하고 나섰다. 이목희는 지난 15일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이 한줌도 안 되는 극좌 맹동주의자에 의해 나락에 떨어지는 모습이 안타깝고 그들에 대해 깊은 분노를 느낀다”는 열린우리당의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그는 “민주노총 지도부에 연민의 정을 느낀다”며 다소 흥분된 어조로 노동운동에 대한 그의 지나친(?) 애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또한 이목희는 “이번 민주노총의 대의원대회와 관계없지만”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여야합의에 따른 정부 비정규법안의 4월 조기 처리'를 분명히 한 뒤, “노사관계 로드맵안은 오랜 기간동안 한국노총과 논의해왔기 때문에 6월내로 처리하겠다”며 갑작스레 그 지나친 애정은 온데 간데 없이 오히려 ’민주노총의 배제‘를 시사하기도 했다. 2. 이목희의 이 같은 망언은 한 마디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무산될 수밖에 없었던 근본 원인을 고의적으로 외면한 채, 전직 노동운동가라는 경력을 앞세워 대의원대회의 물리적 충돌에 대해서만 ‘감 놔라 배 놔라’ 식의 훈수를 두는 것이다. 특히 “민주노총이 사회적 교섭기구 참여를 결정하더라도 비정규 법안의 4월 처리는 불가피하다”거나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더라도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 논의를 끝내겠다”는 대목은 그가 전직 노동운동가라는 명함을 팔아먹으면서까지 비정규개악입법을 반대하는 노동자대중의 피맺힌 절규를 묵살하려는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폭로해주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이목희의 어처구니없는 망언을 규탄해 마지않는다. 사실 이목희를 위시한 신자유주의 개혁 세력은 애초부터 비정규직 노동자의 실질적인 권리입법을 위해 노력할 의지가 눈꼽만치도 없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오로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조응하는 노동유연화 정책의 관철이었을 뿐이며, 이목희 스스로가 폭로하듯 사회적 교섭이라는 것 역시 참여라는 외양을 뒤집어쓰고 비정규직을 전면 확대하기 위한 수순에 불과했다. 노무현 정권은 바로 이 수순에 민주노총이 들러리서주기를 주문했던 것이다. 3. 이목희의 망언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바로 현재 민주노총 지도부가 보이고 있는 행보이다. 이처럼 뻔뻔스럽게 자신들의 의도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는 신자유주의 개혁 세력과 이른바 ‘교섭’이 가능하다는 판단은 도대체 어떻게 나올 수 있는 것인가? 노무현 정권이 사회적 교섭을 추진한 의도는 무엇보다 노동운동을 '교섭'의 이름으로 묶어두기 위함이었다. 오직 지배계급의 의도를 관철시키는 것에만 목적이 있는 사회적 교섭기구를 통해 노동운동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민주노총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사회적 교섭에 지금까지 헛된 노력을 쏟아 붓고 혼란에 혼란만 거듭했던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더 이상의 사회적 교섭을 위한 노력을 중단하고 투쟁의 전면에 민주노총이 나서야 한다.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은 “정부가 비정규법안을 강행 처리하면 사회적 교섭을 폐기하겠다”고 이미 수 차례 선언한 바 있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지금이 바로 정권과 자본의 비정규법안 강행 처리 의사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시기이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민주노총이 사회적 교섭안을 폐기하고 노동법 개악에 맞선 단결된 계급대중의 투쟁을 조직하는 길에 떨쳐나설 것을 진심으로 촉구한다. 4. 정작 민주노총 지도부가 결별해야 할 세력은 이목희가 말하는 ‘극좌 맹동주의자’가 아니라 바로 이목희와 같은 신자유주의 개혁 세력이다. 지금과 같은 노동운동의 혼란과 동요, 분열이야말로 신자유주의 개혁 세력이 진정 원하는 것이며, 이목희의 ‘결별’ 발언은 이러한 동요와 분열을 더욱 촉구하고 나선 것이라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사회적 교섭안의 무리한 강행으로 인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의 파행은 그 찬반을 떠나 전체 민주노조 운동과 전선에 심대한 혼란과 위기를 초래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틈을 타 정권과 자본은 기아자동차 노조 비리 문제와 귀족노조 운운하는 보수언론의 비난공세 속에서 궁지에 몰린 노동운동을 이참에 아예 뿌리 채 뽑으려는 듯 공격을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또 다시 물리적 충돌이 불 보듯 뻔히 예상되는 대의원대회 강행 방침만을 거듭한다면 한국 노동운동은 정말 회복하기 힘든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전체 노동운동의 위기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면밀하게 진단하고 그 위기의 해법을 계급대중의 단결된 투쟁 속에서, 비정규개악입법 저지 투쟁 속에서 하나씩 하나씩 마련해나가야 할 때이다. 2005. 3. 16 사회진보연대
한국형 '뉴딜' 정책과 연기금 활용 구상의 문제점 정지영(정책부장) 한 때 국민연금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을 정도로 격했던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쟁은 어느 순간 슬며시 잦아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논쟁이 불거지고 있다. 지난 11월 초, 정부가 발표한 '경기활성화를 위한 종합투자계획(일명 한국형 뉴딜)'이 그 발단이다. 한국형 뉴딜은 지속되는 경기 침체와 경제 성장률 하락에 직면해 정부가 카드로 꺼내든 정책이다.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것이 정책의 핵심인데, 그 재원은 국민연금의 기금이 언급되었다. 한국형 뉴딜 정책이 발표되자, 여러 측면에서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 정책이 과연 경기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인가, 정부의 재정 부담이 크지 않은가, 연금기금을 동원하는 것이 연금의 재정안정화에 도움이 되는가 등의 문제들이다. 이 글에서는 정부가 한국형 뉴딜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던 맥락을 간략히 살펴보고, 이 정책이 정부가 추진해 온 국민연금 개혁 방향과는 어떤 연관을 가지는가를 주되게 밝히고자 한다. 한국형 뉴딜, 대안 없는 정부의 고육지책 한국형 뉴딜이라는 경기활성화 정책이 발표된 배경은 당연히도 현재 한국경제가 처한 어려움이다. 지표상으로 봤을 때도, 각종 경제연구소들은 2004년 하반기와 2005년 경제전망에서 경제성장률을 5%대 이하로 잡고 있다. 물론 체감되는 경기는 더욱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어떤 조치라도 취해야만 했다. 즉, 정부가 재정 부실화의 가능성과 연금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런 정책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던 조건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카드는 소위 전문가들로부터 실효성을 의심받을 정도로 고육지책에 불과하다. 사실 현재 한국경제가 처한 위기는 몇몇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IMF 구조조정 이래로 일관되게 추진해온 신자유주의 정책의 귀결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인 노동의 유연화는 심각한 빈곤의 문제를 낳으면서 양극화를 심화시켰고, 외국인 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개방정책은 한국 경제의 대외의존성을 더욱 심화시켰다. 지금의 경제위기는 이러한 과정의 결과다. 따라서 정부가 내놓는 몇몇 경기부양책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고, 당연히도 실효성이 의심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정부가 한국형 뉴딜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 이런 정책을 내놓으면서 노리는 효과는 분명하다. 현재의 위기를 정책상의 문제로 환원하면서, 좀 더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 좀 더 유연화 된 노동시장을 형성하고, 좀 더 예산을 풀면 경기가 회복될 수 있다는 식의 해법을 내놓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라는 문제의 핵심은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성역에 두고 말이다. 국민연금 기금을 동원하겠다는 발상의 기막힘 국민연금의 문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먼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실효성도 의심되고 자신들의 위기를 가리기 위한 정책을 위해 국민연금의 기금을 동원하겠다는 뻔뻔스러움을 지적해야겠다. 이 문제는 정부가 추진해온 국민연금 재정안정화 방안과 연계를 시켜보면 좀 더 명확해진다. 정부는 그 동안 국민연금 기금의 고갈과 수익성을 문제 삼으면서, 보험료를 올리고 급여는 삭감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추진해왔다. 정부는 국민들의 노후야 어떻게 되던, 아니 좀 더 직접적으로 현재의 빈곤함에 국민연금 보험료가 더욱 부담스럽던 간에 무조건 기금을 쌓아둬야 한다는 개정안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해결이 불가능한 위기를 떠받치기 위해 연금을 끌어다 쓰겠다는 발상을 내놓고 있다. 이를 통해 명확해지는 것 하나, 정부가 국민연금을 사고하는 시각이라는 것이 국민들이 노후를 인간답게 살 수 있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주식, 부동산 등 어디든 필요한 곳에 끌어 쓸 수 있는 눈 먼 돈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간접자본 투자 = 건전한 투자? 국민연금 기금을 사회간접자본의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주식시장 투자보다는 낫다는 의견들이 있다. 하지만 이번 한국형 뉴딜 정책이 그 동안 진행되어온 연금개혁의 방향과 배치되는 무엇은 아니다. 오히려 연금개혁 방향에 충실한 것이다. 정부는 이번 정책을 발표하면서, 이를 위해 기금관리기본법, 민간투자법, 국민연금법 개정안 등 소위 '뉴딜 3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적립될 기금의 규모를 키우는 것일 뿐만 아니라, 공적연금을 축소하는 과정이다. 기금관리기본법은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주식 및 부동산 투자를 비롯하여 투자처를 확대하기 위한 법이다. 민간투자법은 민간투자 대상을 학교시설, 공공청사, 임대주택 등으로 확대하기 위한 것이다. 이번 정책이 건설경기 부양을 직접적인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간접자본을 중심으로 계획이 수립될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것이 이후에 낳을 효과는 무시할 수 없다. 어쨌든 연금의 기금은 천문학적 액수로 적립되는 것이고,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을 통해 이 돈이 신자유주의 정책이 낳은 위기를 관리하거나 혹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더욱 촉진시키는 버팀목으로 어디에든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뿐만 아니라 민간투자 대상을 확대하는 것은 기간시설 혹은 공공시설을 민영화하는 과정과 긴밀하게 연관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지금 당장 국민연금의 투자처가 사회간접자본이라는 이유만으로 건전한 투자로 볼 수 있는가? 오히려 국민연금의 투자 대상이 주식, 부동산, 각종 펀드, 해외투자, 민영화 사업 등으로 확대되는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연금기금이 금융세계화의 버팀목이 된다는 것은 당연하게도 연금기금이 주식시장에만 투자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부의 이번 발표가 국민연금기금의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비난이 있지만, 기금운용의 독립성이 단순히 결정 주체의 문제로 환원될 수는 없다. 거액을 쌓아두고 다양한 투자의 길을 열어두는 조치들이 취해졌을 때, 아무리 독립적인 기금운용위원회가 결정을 내린다하더라도 투자처는 현재 정부가 제시하는 것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문제의 출발은 국민의 삶과 노후야 어떻게 되든 활용할 수 있는 기금을 쌓아두는 것, 그리고 더 많이 쌓으려는 것이다. 연금은 민중의 삶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 한국형 뉴딜로 인해 다시 불거진 국민연금 문제, 하지만 지금의 논란은 정말 원칙도 기본도 없이 진행되고 있다. 연금이 민중의 삶을 거덜 내는데 일조하는 것이라면, 도대체 연금이 왜 필요한가? 국민연금 문제의 원칙은 이야기했듯이, 민중의 삶이 그 중심이라는 것이다. 민중의 삶이 날이 갈수록 밑바닥을 향해 치닫고 있는 이 순간에도 지배세력은 민중의 노후를 위한 저축까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활용하는 것에 몰두하고 있다. 이 땅 대다수의 사람들이 오늘을 살아내기에도 버겁고, 이 빈곤이 노후까지 연장되는 마당에 국민연금의 급여는 축소하고, 보험료는 올리는 작태를 보인다. 게다가 이 기금을 자신들이 저질러온 신자유주의 정책의 미봉책으로, 그리고 앞으로 더욱 이를 활성화시키는데 활용하고 있다. 언제까지 두고 보아야 할 것인가? 지금 위기의 원인은 신자유주의 정책 그 자체라고, 이를 유지하는데 민중의 노후소득을 활용하지 말라고 주장해야 한다. PSSP
2004년 미국에 던져진 질문 미국 헤게모니의 몰락과 '제국' 기획의 불가능성 최예륜(정책부장) 부시의 재선으로 마무리된 2004년 미 대선 직후, 미군은 이라크 저항세력 소탕을 목적으로 한다는 대대적인 팔루자 공습을 자행했다. 부시는 11월 10일 연설을 통해 "일부 소수 그룹이 이라크의 민주화를 좌절시켜 권력을 잡으려 하고 있다"며 "이같은 민주주의의 적에 대처하기 위해 미군은 향후 수주간에 걸쳐 공세를 계속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9.11테러 이후 감행된 이라크 전쟁과 공세적 세계군사재편 전략이라는 미국의 일방적 대외정책이 대선을 통해 미국 국민들에게 심지어는 전세계 인민들에게 승인되었다는 식의 태도다. 그러나 무차별폭격 수준의 팔루자 학살 이후, 이라크 내 반미여론은 더욱 고조되고 미군이 창설한 이라크군 4개 대대 중 일부가 미군의 공격지원명령을 거부하는 등 미국의 이라크 점령에 대한 저항이 쏟아지는 가운데, 부시는 동맹국의 협박을 호소하는 등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였다. 2004년 미 대선은 베트남전쟁 중이던 1968년 닉슨의 재선 이래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는 점, 그리고 2000년 플로리다 재검표 사태나 총득표수 논란과 같은 사태가 불거지지 않은 깔끔한 승리와 승복의 과정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부시의 완벽한 승리로 평가된다. 나아가 미국사회의 보수화의 지표, 부시체제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강력한 지지도가 드러나는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는 미국 정치체제가 갖는 근원적 한계가 극대화되는 가운데 민주주의 상징으로서의 미국의 헤게모니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징후가 드러난다. 한계에 봉착한 미국 정치 체제의 '민주성' 미국 대선의 선거인단 제도는 미국이 연방국가이며 각 주의 의견을 하나로 모아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연방헌법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이 선거인단 제도로 인해 전체 득표율이 선거결과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선거인단 독식제로 민주당, 공화당 이외의 제3세력의 등장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보수성이 유지가능해진다. 이러한 선거제도는 대중의 정치적 참여를 제어하는 가운데 강력한 양당체제를 뒷받침해왔다. 미국적 정치원리의 내부 긴장은 자유주의와 그것을 방어하는 외피로서의 보수주의적 성향{{) 미국의 정치적 변화란 공화주의적 덕성관념과 지유주의적 사익관념의 대립을 현상으로 하면서 주기적으로 개혁의 이념을 형성하였다. 이는 자유주의자, 흑인, 북부 노동자, 소수 인종집단 등의 민주당의 지지연합이 형성되었던 과정, 기본적 자유주의적 전망 하에서 복음주의적 종교집단 등이 주도적으로 도덕적 이슈를 대중화하여 1980년 레이건의 집권으로 결실을 맺은 보수주의 혁명의 과정 등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정치체제는 미국 건국의 정신을 파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나아가서는 구래의 정신으로의 회귀를 지향하는 한계 내에서 지속되어왔다. }} 간의 대립으로 유지되어왔다. 1933년-1945년 민주당 루즈벨트의 4선 기간동안 확립되고 미국 사회의 '새로운 다수'를 지지기반으로 하는 뉴딜연합은 80년대 '스태그플레이션'과 경제불황이라는 조건 속에서 지속불가능해였다. 이는 이후의 레이건의 보수주의 혁명과 네오콘의 등장을 뒷받침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민주당은 내부의 보수화와 급진화 사이의 경합을 1992년 중도보수를 표방한 클린턴의 등장으로 일단락된다.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클린턴의 등장은 여성, 소수 인종집단, 북부 노동자 등 이질적인 집단들의 연합이라는 위상으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하는 한편, 자유민주주의의 선봉장으로서의 미국의 지위가 더 이상 불가능해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또한 냉전의 해소는 평화,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미국 대외정책의 외피를 벗겨내고 다자주의적 개입의 틀(UN과 국제법)을 초과하는 일방주의적 대외정책을 초래하였다. 2000년 플로리다 재검표 사태는 분명한 선거조작과 플로리다의 수백 표가 미국 대통령이 될 사람을 결정했다는 명백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후보자가 패배를 승복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플로리다의 상당수의 흑인남성을 범죄자로 낙인찍어 공민권의 박탈을 초래한 '범죄와의 전쟁'은 분명 레이건-부시/클린턴-고어의 합작품이었다. 투표자의 다수가 모든 선거인단을 독식하는 선거제도는 미국 자유주의의 몰락을 '도덕적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보수주의자들의 강력한 결집으로 은폐하는 미국식 정치체제의 '민주성'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공민의 지위로부터 추방되거나 이탈하는 다양한 세력에 대해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도 아무런 대책이 없다. 복지의 종식을 뜻하는 '일하는 복지'와 보편성을 상실한 자유주의의 앙상함은 이러한 미국정치의 '민주성'에 대한 환멸을 안고 이탈하는 세력들을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조직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9.11 이후 군사개입의 확대로 재정적자가 심화되는 가운데 미국인 2억 9천만명 중 4천 5백만이 의료보험으로부터 소외되고 8백만 이상이 실업상태라는 조건이 대선에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민주당이 내건 의료보호확대와 재정적자 해소 등이 쟁점으로 부상하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미국사회의 보수화의 지표라거나 전시에는 대통령이 바뀌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설명될 수 없다. 이는 정치적, 법적 평등을 자유의 동반자로 인식하면서도 경제적, 결과적 평등은 자유와 상반되는 것으로 보는 모순된 미국 자유주의에 대한 인민들의 회의와 환멸을 의미한다 또한 이는 (비교적) 높은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이미 미국 시민의 상당수는 이러한 미국 정치체제로부터 등돌린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 기업에 대한 감세정책, 동성애자 결혼반대, 사형제도 찬성, 낙태 불법화 등이 '도덕적 가치'로 인식되는 여론조사기관들의 분류법은 더 이상 미국 정치에 민중적 의제와 쟁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유주의의 몰락이 보수주의자의 결집으로 은폐되는 상황이란 다시 말해 미국 지배계급의 대중의 정치의식에 대한 통제력 상실의 상황이다. 체제의 위기상황은 전쟁과 종교의 상호방어라는 방식을 통해서만 관리될 수 있을 따름이다. 대중의 정치적 참여와 직접적 영향력을 배제하고자 했던 연방헌법의 이념이 자유주의의 위기 상황과 맞물려 대중에 대한 통제력 상실을 초래하는 상황을 자초하였다. 이는 '도덕적 가치'로 표상되는 쟁점들을 동원하는 것 말고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음을 의미하며, 케리의 깨끗한 승복이란 이러한 미국 지배계급이 처한 현실을 반영한다. 9.11 - 보편적 자유민주주의의 전파에서 요새 아메리카 수호로 9.11은 미국적 자유민주주의를 보편으로 인식하는 특수한 소명의식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였다. 냉전시대에도 관리 가능했던 전세계 도처에서의 미 패권에 대한 비판과 반전, 반미의 기운은 이제 예측불허의 테러가능성으로 가시화되었다. 부시와 신보주주의자들에 의해 천명된 팍스 아메리카나는 자본주의의 영원한 승리를 보장하는 행복한 제국의 기획으로서가 아니라 그 누구도 신뢰할 수 없는, 따라서 항존하는 '테러'위협으로부터 강력한 보호망을 형성하는 요새 아메리카를 상징한다.{{) 부시는 미국은 냉전 시대의 '억지와 봉쇄' 정책은 21세기의 새로운 위헙을 대처하는 데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새로운 사고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억지'는 방어할 국가나 국민이 없는 그림자 같은 테러리스트 조직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으며 '봉쇄'는 대량살상무기를 미사일에 탑재해 공격하거나 테러리스트들에게 비밀리에 제공하는 독재자들을 저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일방주의를 전제로 예방전쟁 차원에서 미국의 국익을 위협하는 잠재적 적국을 선제공격한다는 것이다. (사회진보연대 기관지2002년6월호) 2002.9.17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는 '선제공격'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우리의 국경에 닿기 전에 위협을 식별하고 파괴함으로써 미국과 미국 국민, 국내외에서 이익을 지킬 것이며, 이를 위해 국제사회의 지지를 모으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지만 필요한 경우 선제적으로 행동함으로써 우리의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해 일방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된 공격은 최선의 방어이다. }} 자본과 국방의 심장부에 가해진 예측불허의 테러는 '우월성과 모범성'을 가진 구원자로서의 나라, 타락한 구대륙과도 전혀 다르고 미개한 나라에 대해서는 인도자가 되어야 할 대단히 '예외적'인 나라라는 미국적 경험과 체제의 보편성에 대한 믿음에 대한 도전이었다. 미국 예외주의는 미국의 특수성과 도덕적 우월성 뿐 아니라, 선을 보존 혹은 확장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며, 이는 마치 오컴의 면도날{{) 오컴의 면도날(Ockham's Razor) "Entia non sunt multiplicanda sine necessitate"(존재자의 수를 불필요하게 늘려서는 안된다.) "Pluralitas non est ponenda sine necessitate"(불필요하게 다수가 설정되어서는 안된다) "Frustra fit per plura quod potest fieri per pauciora"(소수를 가정하여 설명될 수 있는 것을 다수로 가정하여 설명하는 것은 헛되다.) 이상의 세가지 명제로 요약되는 오컴의 이론은 합리적 이성을 표방하는 서구적 세계관의 근저를 이루며, 적과 나를 이분화하는 미국적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처럼 전세계를 정확히 이분화하거나 지구상에서 미합중국만을 오려낸 자신과 타자에 대한 이분법적 개념을 포함한다. 미국의 대중동정책의 골자는 '대량살상무기'를 보유 혹은 개발하고 있는 잠재적 적국에 대한 선제공격을 통해 적국의 전체주의적 정권을 붕괴시키고 미국적 가치를 존중하는 민주정권을 수립해, 주변국가 혹은 잠재적 적국을 민주화한다는 것이다. 신보주주의자의 관념(idea)의 힘이자 이미 공화/민주당 내 흡수된 이러한 입장은 강력한 대외정책의 근간을 이룬다. 부시의 재선은 이러한 기반 위에서 수행한 이라크 전을 비롯, 결정된 대외정책을 시행함에 있어 그 목적을 철저히 추구하는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도덕적 절대주의의 승리를 의미한다. 미국인이 선택한 '도덕적 가치'란 이러한 소명의식과 미국적 특수성에 도전하는 세력들에 대한 화답이며, 4130억 달러라는 엄청난 재정적자와 취약한 경제구조를 안고 있는 미국의 채권의 7000억 달러 이상을 사들이는 각국 중앙은행에 대한 미국적 보답인 셈이다. 한편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을 지지하고 북한, 이란, 시리아 등 불량국가에 대한 개입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운 케리의 패배는 자유주의의 몰락을 저지하고 미국 헤게모니를 유지, 강화하는 데 다양한 이익집단(과거의 '새로운 다수'로 표현된 소수인종, 환경, 여성, 동성애 등등의 이슈)의 이해는 포괄될 수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는 1980년대 선거 이래 공화당과 보수주의에 본격적으로 합류한 신보수주의자들의 '제국'적 기획의 판정승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세계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민족국가로서의 미국의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제국의 신민들에 의한 보편성의 승인은 이제 미국의 목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라는 한 국가의 자국적 이해를 보호하는 것, 미국이라는 민족국가의 요새를 수호해내는 것이 미국 그리고 동맹국의 목표라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을 수호하기 위한 전 세계 국가들의 과제는 FTA 등의 도입을 통한 관세철폐로 미국 대외무역적자를 감축하고 미국 경제를 회복하는 데 동참하는 것, 미국을 핵심 타겟으로 하는 테러 위협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을 지지엄호하고 미국의 이분법에 따라 '우리편'의 수를 늘려 단결하는 것 등이 된다. 한편 이 보호해야 할 요새에는 미국 부의 40%를 소유한 상위 1% 그룹이 존재하며 더불어 전세계 지배엘리트들이 결집하고 있다. 세계경제를 지탱하는 이 요새에 대한 저항과 공격은 물론 모두 테러로 간주된다. 이 요새 수호전략은 테러가능성을 지닌 불량국가들이라는 위협요인을 제거하고 예방전쟁을 항구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의 보편성을 전파하는 합의적 미국정치체제가 복원되는 길은 요원하며 세계는 동맹국의 암묵적 합의(다자간 틀로 협의한 바 없다 하여도)를 기반으로 한 더욱 야만적인 미국의 폭력에 노출될 것이다. 미국의 위기는 가속화되고 있다. 전면적인 반전반세계화 투쟁을 조직하자. 미국 헤게모니의 쇠퇴와 금융적 팽창이 새로운 헤게모니 출현의 전조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이것이 미국의 헤게모니가 쉽게 지속된다거나 미국의 '제국'으로의 전환이 무난히 이루어질 전망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미국은 절대적 군사력 우위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인 개입을 펼치기에는 군사력과 재정적 여력이 충분치 않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자주의적 틀을 강조하는 케리의 주장은 물론 설득력이 전혀 없다. 미국은 이라크라는 미궁에서 저항군에게 깨져나가며 친미정부 수립과정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미국에 대한 이라크와 전세계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으며 요새 아메리카를 수호하는 전쟁에 대한 부담으로 동맹국들의 불만과 이탈은 가속화되고 있다.{{) 이라크 전을 수행하기 위한 연합군 운영의 과정에서 미국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각 국의 군대를 말그대로 갖다 쓰고 있다. }} 이러한 상황은 다자주의적 틀을 유지하면서도 일방적으로 군사개입을 상시화 해왔던 이전의 미국의 역사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임의적 자위권 발동이라는 선제공격 전략을 포기하지 않는 한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루 15억 달러씩 늘어나는 경상수지 적자로 표현되는 미국 경제의 취약성은 미국이 헤게모니 국가로서 지게 되는 정치적, 사회적 비용부담의 증가를 의미한다. 이는 유동성과 규제철폐 경향 속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미국으로 집중되는 금융분파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난점이다. 국방비는 점점 늘어날 것이며 반대로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사회보장비용의 지속적 삭감이 요구될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기업 감세정책과 의료보호 축소가 '도덕적 가치'를 중심으로 한 대외정책과 맞바뀌어진 점은 그러한 의미에서 의미심장하다. 초국적 기업을 통한 세계시장의 장악과 이를 통한 세계적 부의 집중으로 문제를 헤게모니를 유지해왔던 미국이 이와 관련해 내놓을 수 있는 계획은 많지 않다. 더욱 더 파괴적이고 반민중적인 시장개방 압력과 각종 FTA체결을 가속화하는 한편 각종 사회보장기금의 민영화와 사회보장비용의 감소정책을 지속할 것이다. 이는 물론 미국 내에서의 노동자, 빈민들의 저항과 전 세계 개도국 정부 혹은 민중들의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조건에서 우리에게는 한층 가열차고 더욱 폭넓은 연대를 구축하는 반전반세계화 투쟁이 요구된다. 지금 우리에게는 왜 부시의 재선을 막지 못했을까라는 평가보다는 2004 미 대선을 통해 드러나는 미국의 몰락과 야만의 징후를 직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미국 내에서 공민의 지위(선거권을 비롯하여 제반 사회정치적 권리)를 박탈당한 미국 시민들의 불만과 미국 내 사회운동의 반전을 비롯한 투쟁의 과제는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오늘날의 반미란 전쟁과 세계화에 대한 보다 냉철한 비판과 폭넓은 저항의 조직화라는 과제를 일컫는다. 오늘날의 미 대선을 참담한 심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지금, 반전반세계화를 중심으로 한 모든 사회운동의 쟁점들의 연대를 통해 저항의 세계화를 이루어야 할 의무가 요구되고 있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