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홍콩 각료회의 원정투쟁이 대량 연행 사태로 이어진 후 14인의 구속자가 발생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자, 홍콩의 대책위와 한국의 상황실에서 수립한 계획 중 민주노동당이 주도해 벌인 활동은 구속자들의 조속한 석방을 호소하는 국제의원(정치인) 서명운동이었다. 과잉 진압과 연행 과정에서의 인권 탄압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구속자들의 조속한 석방과 안전한 귀국을 촉구하는 이 호소문에는 휴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으로 50명이 넘는 정치인들이 서명을 했다. 지역별로는 유럽, 그 중에서도 유럽연합의회1) 의원들이 유별나게 많이 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2)
유럽연합의회에서는 총 17명의 의원들이 서명을 했는데, 8명은 유럽통합좌파-북유럽녹색좌파 그룹(GUE-NGL: 이하 유럽통합좌파 그룹) 소속, 7명은 녹색당 그룹(Greens-EFA) 소속, 2명은 사회당 그룹(PSE) 소속이었다.
유럽통합좌파 그룹과는 달리, 민주노동당과 구체적 연계가 없는 녹색당 그룹에서 열성적으로 서명에 참여한 것은 의외였다. 영국과 이탈리아 녹색당, 국내에도 책이 번역되어 있는 프랑스 녹색당의 알랭 리피에츠, 그리고 벨기에와 스웨덴 녹색당 소속 의원들이 서명을 했다. 이 중에는 유럽연합의회 부의장도 있었다. 유럽의회에서 두 번째로 많은 의원들을 보유하고 있는 사회당 그룹에서는 영국 노동당과 프랑스 사회당의 의원들이 서명에 동참했다. 유럽통합 좌파에서는 프랑스 공산당, 독일 민주사회당, 이탈리아 공산주의재건당과 공산당, 그리고 스웨덴 좌파당 소속 의원들이 서명을 했다. 이탈리아 공산주의재건당 소속 의원은 의회의 개발협력위원회 위원장이고, 이탈리아 공산당 의원은 과거 우주 비행사로서 미국인들과 함께 실제로 우주 비행을 한 사람이라고 한다. 서명 의원들의 분포를 보며, 적어도 현재 민주노동당은 활동이나 성향, 그리고 입장에서 유럽의 사민당보다는 녹색당이나 통합좌파 소속 공산당들과 더 가깝다는 필자의 평소 생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이 두 그룹은 의회 내에서도 공조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글에서는 바로 이 마지막 그룹, 즉 이 서명을 조직한 결과 가장 많은 의원들이 서명한 유럽통합좌파 그룹에서부터 출발하여 유럽의 좌파 지형을 개괄하고, 몇 가지 함의들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사회당 그룹에 소속되어 있는 그룹들에 대해서는 추후로 기회를 미루고, 녹색당 그룹에 대해서는 개괄조차 할 능력이 아직 안 된다는 점을 솔직히 고백한다.
유럽통합좌파 그룹은 각국에서 각기 다른 선거 제도를 통해 뽑힌 유럽연합 의회 진출 정당들 사이의 블록으로서, 북유럽 지역의 녹색 좌파 정당들(NGL)과 동서 유럽의 공산당 계열의 정당들(GUE, 영어로는 European United Left) 사이의 합의를 통해 형성된 것이다. 유럽연합 소속 14개국, 16개 정당과 준회원 정당 조직 4개가 활동하고 있다. 한마디로 유럽에서 사회당/사민당 왼쪽에 있는 정당들의 가장 광범위한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의석은 현재 41개로 진보 정당 중에서는 영국 노동당, 프랑스 사회당, 독일 사민당 등이 참여하고 있는 사민주의 계열의 블록에 이어 녹색당 블록과 함께 비슷한 수3)를 확보하고 있다.
작년에 단병호, 최순영 의원과 같이 이 그룹의 초청 교류 프로그램으로 유럽연합의회가 있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를 방문4)했을 때 들은 흥미로운 얘기가 있다. 그룹 의장인 프랑시스 베르츠 의원을 만나러 가는 길에 수행을 담당했던 스텔란 그룹 부총장(스웨덴 좌파당 소속)이 귀띔해준 얘기다. “베르츠 의장은 영어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프랑스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랑스 공산당 소속인 그는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지만,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불어로 말하고 영어로 통역을 하는 방향을 택했다. 유럽연합의회에서는 모든 회의 진행을 소속 국가들의 언어로 들을 권리가 있는데, 이 그룹의 모든 전체 회의도 보통 7-8개의 언어로 통역된다. 유럽통합좌파의 공식 명칭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