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법부의 독립성이 중요한가
재판의 독립성과 ‘법 앞의 평등’에 위배되는 내란전담재판부
자기 근거도 깎아먹는 민주당의 입법 강행
법치와 헌정을 경시하는 민주당 지도부
2026년 국제정치 전망
올해 전 세계는 공동의 규범이 무너지고, 힘과 권위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증가하는 현실을 마주했다. 특히 국제질서의 리더이자 ‘세계의 경찰’을 자임하던 헤게모니 국가인 미국에서 다시 등장한 트럼프 행정부는 적극적으로 국제질서를 훼손하고 있다. 동시에 세계적으로 정치위기, 군사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과 팔레스타인 전쟁은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다. 작금의 현실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서로 협력해 국가 간 관계를 조직했던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2026년 국제질서는 어떤 도전과 변화를 마주할 것인가? 사회진보연대는 현 정세를 ‘인민주의, 권위주의, 팽창주의의 난입’으로 규정한 바 있다. 이 글은 자유주의 국제주의에 기반한 국제질서가 내적으로는 인민주의 세력에 의해, 외적으로는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도전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2026년에도 이어질 핵심 쟁점을 중심으로 그 구체적인 양상을 살펴본다. 1. 민주정에 대한 위협 현존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19세기부터 서구를 중심으로 자유주의적 헌정 민주주의(헌정주의)의 부상과 함께 등장했으며, 이들 국가 주도하에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달성, 구축되었다. 그만큼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헌정 민주주의와 불가분의 관계다. 그러나 2025년은 그러한 질서를 주도했던 나라들, 특히 미국과 유럽에서 헌정 민주주의의 위기가 두드러지게 나타난 해였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 민주정의 제도와 관행을 파괴했으며, 유럽을 비롯한 여러 선진국에서는 트럼프주의를 모방하는 정치세력이 눈에 띄게 부상했다. 내년에는 미국 중간선거와 헝가리 총선을 비롯해 60여 개 국가의 크고 작은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헌정주의를 훼손하는 포퓰리즘 세력이 더 약진하는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이 장에선 미국과 유럽에서 트럼프주의를 비롯한 포퓰리즘 세력의 도전에 대해 다룬다. 1) 누가 트럼프를 견제할 수 있을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월 20일 취임한 이후, 미국 정치는 ‘트럼프주의의 제도화’와 그에 따른 기존 정치제도와 관행의 붕괴로 요약할 수 있다. 집권 후 트럼프 행정부는 헤리티지 재단이 작성한 「프로젝트 2025」에서 제안된 단일행정부론에 입각한 정책을 실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프로젝트 2025」 설계자 중 한 명인 러셀 보트를 백악관 예산관리국장으로 임명했다. 뒤이어 2월 18일과 19일 행정명령을 통해 예산관리국장에게 연방기관 정책을 검토하고 자금지출을 통제할 권한을 부여했다. 아울러 행정절차를 집행할 때 연방기관이 예산관리국, 행정규제검토처와 협의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런 조치를 바탕으로 트럼프 정부는 독립성을 보장받았던 연방기관장을 대거 해고했다. 전미노동관계위원회(NLRB) 윌콕스 위원을 비롯해 여러 연방기관장은 ‘험프리 대 미국정부 사건’(1935)에 근거해 해고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5월 연방대법원은 행정권은 대통령에게 있다며 대법원에서 최종판결을 내리기 전까지 하급법원에서 이들에게 내린 복직 명령을 정지시켰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는 연방준비제도 이사에 스티브 미란을, 행정부 공직자 인사검증을 담당하는 백악관 인사국장에 댄 스커비노를 임명했다. 즉, 친트럼프 인사를 행정부 요직에 임명하며 행정부를 장악하는 중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학과 언론에도 전례 없는 압력을 가했다. 4월 23일 행정명령을 통해 미국 주요 대학이 해외 기부금을 공개하고, 대학이 이를 따르지 않을 때 교육부장관이 조사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정책 변경을 요구하며 저항하는 대학들의 연방정부 보조금을 삭감하겠다고 압박했다. 그 결과 하버드, 시카고, 컬럼비아 대학 등 미국 주요 대학들의 연방정부 보조금이 삭감됐다. 또한, 5월 1일 행정명령으로 공영방송과 공영라디오에 대한 보조금 지원을 중단했다. 그리고 연방통신위원회를 통해 지상파 라이선스 갱신 취소를 위협하며 주요 지상파 방송사인 CBS, NBC, ABC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방송 프로그램을 폐지하라고 압박했다. 이와 함께 AP, CNN을 비롯한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사 기자들의 백악관 출입을 제한했고,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과 같은 대형 언론사에 거액의 소송을 제기했다. 트럼프 정부의 행정기관 장악, 대학과 언론에 대한 압력에 많은 지식인이 반발했다. 예일대학교의 제이슨 스탠리와 티모시 스나이더 교수를 비롯한 여러 연구자가 해외로 이직했다. 3월 《네이처》의 연구에 따르면, 과학계 연구자 가운데 75%가 대학에 대한 압박 심화로 미국을 떠날 것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대중의 반대 시위도 거셌다. 4월 ‘손 떼라’ 시위, 그리고 6월과 10월에 ‘노 킹스’ 시위를 비롯해 트럼프 행정부의 권위주의적 행보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특히 10월 2차 노 킹스 집회에선 2,700개 이상의 도시에서 700만 명이 넘는 시민이 모였다. 이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단일 시위였다. 많은 지식인과 대중의 반발에도 트럼프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유고브, IPSOS를 비롯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은 임기 시작 이래 40%선을 대체로 유지하고 있으며 특히 공화당 지지층에서 80% 가까이 지지율을 지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러한 지지를 바탕으로 권위주의적 행보를 펼치고 있다. 게다가 2026년에는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과 진 도다로 연방회계감사원장의 임기가 종료될 예정이다. 이 자리마저 친트럼프주의 인사가 임명되면, 트럼프 대통령을 견제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따라서 2026년 미국 정치의 주요 화두는 ‘누가 트럼프 행정부를 견제할 것이냐’다. 이제 트럼프주의 세력과 민주당의 동향을 살펴보겠다. (1) 트럼프주의는 강화될 것인가, 분열할 것인가? 2025년은 트럼프주의 세력에 중요한 변화가 나타난 해로 평가할 수 있다. 그 계기는 바로 ‘터닝포인트 USA’(이하 TPUSA)를 이끌며 청년 트럼프주의자들을 조직하던 찰리 커크가 피살된 사건이었다. 1993년생인 찰리 커크는 팟캐스트 ‘찰리 커크 쇼’를 운영하며 소셜미디어에서 영향력을 강화했다. TPUSA는 2월부터 미국 전역의 대학을 돌며 강연을 진행했다. 강연은 문화전쟁 이슈와 반(反) ‘정치적 올바름’을 주제로 한 연설, 그리고 청중과 일대일 토론, ‘내가 틀렸음을 증명해봐’(Prove Me Wrong)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TPUSA는 이러한 토론 장면을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해 확산하고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이들을 조롱하는 방식으로 온라인에서 영향력을 키워나갔다. 커크는 해외에서 트럼프주의 메시지를 확산하는 데에도 적극적이었다. 5월에는 영국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대학에서 강연을 진행했으며, 9월에는 한국에서 ‘빌드업 코리아 2025’, 일본에서 참정당 심포지엄에 참여해 트럼프주의 국제연대를 강조했다.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던 커크는 9월 10일 유타밸리 대학교에서 청중과의 근거리 토론 중 피살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커크를 “진실과 자유를 위한 순교자”라고 칭하며, 극좌 세력과 이를 부추기는 언론·사상을 이번 사건의 배경으로 지목하며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모식에는 트럼프 대통령을 위시해 정부 고위 인사와 공화당 주요 정치인은 물론, 스티브 배넌, 터커 칼슨을 비롯한 트럼프주의 인플루언서들도 대거 참석하여 보수진영이 결집하는 장이 되었다. 총 9만 명이 넘는 인원이 모인 추모식에서 참석자들은 커크의 뜻을 이어갈 것을 다짐했다. 이후 공화당과 트럼프 행정부는 70만 회원과 3천 개 이상의 학교 지부를 보유한 TPUSA의 조직망을 활용하여 청년 보수층 조직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공화당 정치인과 지지자는 TPUSA에 거액의 기부를 잇달아 내놓았고, 공화당 전국위원회 산하 청년위원회는 TPUSA 대학 지부와 협력해 순회강연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밴스 부통령과 일부 백악관, 공화당 인사가 찰리 커크쇼에 출연하며 TPUSA의 플랫폼을 통해 보수층 결집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러나 미국 보수진영에는 균열 요인도 존재한다. 현재 공화당은 매우 이질적인 집단들의 연합체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공화당은 ▲ MAGA 포퓰리스트(스티브 배넌, 밴스 부통령), ▲ 전통적 공화당 정치인(존 튠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 자유시장주의자(테드 크루즈 상원의원) ▲ 종교 우파(마이크 존슨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 ▲ 테크계 우파(데이비드 색스 백악관 암호화폐관리국장) ▲ 민주당 탈당파(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의 6개 파벌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파벌은 트럼프라는 개인의 카리스마적 권위와 민주당에 대한 반감으로 뭉쳐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구체 정책을 둘러싼 견해차가 상당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물러나거나 미국 경제가 급속히 악화하면 이들 사이에서 갈등과 이견이 증폭될 가능성이 있다. MAGA 진영 내에도 분열요인이 존재한다. 막대한 조직력과 자금력, 정계와의 인적 네트워크를 가진 청년 MAGA의 아이콘인 찰리 커크가 사망한 이후 젊은 인플루언서들이 난립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1998년생 닉 푸엔테스다. 그는 2017년부터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며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발언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를 지지하는 청년 남성 네트워크 그룹 그로이퍼스는 찰리 커크를 비롯한 주류 보수주의 집단이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합법 이민자가 미국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을 간과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미국 우선주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푸엔테스가 10월 27일 트럼프주의 방송인 터커 칼슨의 팟캐스트에 출연한 것을 두고 MAGA 진영 내에서 논란이 생겼다. 너무 극단적인 인물을 출연시켰다는 이유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밴스 부통령은 보수가 분열하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며 수습에 나섰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렇게 젊은 트럼프주의자 사이에서 극단적인 인물의 존재감이 커지는 상황은 미국 보수세력이 앞으로 어떤 가치를 중심에 둘지 결정해야 하는 문제를 드러내는 방아쇠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장 푸엔테스 같은 극단적인 백인 우월주의자가 MAGA 내에서 헤게모니를 차지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찰리 커크 이후 확고한 젊은 MAGA의 아이콘이 없는 상황에서 극단적 인사들이 난립하는 상황은 MAGA 진영 내에서 변수가 될 수 있다. 요컨대 공화당과 MAGA 진영은 찰리 커크 사망 이후 결집을 강화하며 안정적인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겨울호 글 「트럼프 인민주의 정권은 미국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서 확인했듯, 광범위한 트럼프주의 연합은 장기 불황이라는 조건과 트럼프주의 정책의 모순 탓에 무너질 수도 있다. 또한, 젊은 트럼프주의자 사이에서 더욱 극단적인 인물들이 난립하는 상황은 향후 트럼프주의의 미래에 여러 변수를 낳고 있다. (2) 민주당은 트럼프주의를 막을 수 있을까? 2024년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의 최대 화두는 트럼프주의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였다.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에 강하게 맞서 싸워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했다. 퓨 리서치센터의 4월 분석에 따르면, 민주당 성향 유권자 가운데 83%가 ‘민주당이 트럼프 정부의 정책에 강하게 반격해야 한다’라는 입장을 드러냈다. 이러한 여론은 민주당 내 전략과 활동에 다양하게 반영되었다. 2월 민주당 전국위원회 의장에 당선된 켄 마틴은 4월 당 전략 ‘어디서나 조직하고 어디서나 승리한다’를 발표하며, 지역(주) 당 위원회에 매달 총합 100만 달러라는 역대 최대규모의 금액을 투입하고 지역 당직자들을 훈련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동시에 트럼프주의자들의 허위정보 유포에 대응하기 위해 전담 인플루언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폭스뉴스와 조 로건 팟캐스트에 민주당 대변인을 투입하는 공세적인 행보를 취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가장 주목받은 정치인은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다. 그는 소셜미디어를 공격적으로 활용해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을 겨냥하는 한편, 공화당 지지층을 포섭하고자 했다. 3월에는 팟캐스트를 개설하고 초대 게스트로 찰리 커크를 초청한 데 이어 스티브 배넌을 비롯한 MAGA 진영 인사들도 초청했다. 6월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연방 이민단속국의 대대적인 단속에 저항하는 시위가 격화되고 트럼프 행정부가 주방위군 배치를 지시하자, 뉴섬 주지사는 주 정부와 협의 없는 방위군 배치는 불법이라고 주장하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는 민주당의 전국적인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또한 뉴섬 주지사는 텍사스주가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공화당에 유리하게 선거구를 조정하자, 캘리포니아주의 선거구를 민주당에 유리하게 조정하는 ‘주민발의안 50’을 발의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에 유리한 선거구가 다섯 곳 늘어난다. 오바마 전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당 주요 인사가 지지하는 가운데, ‘주민발의안 50’은 11월 4일 주민투표에서 64.4%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그러나 선거구 조정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캘리포니아 지역 언론인 조 매튜스는, 일반적으로 10년마다 인구조사 후 독립 위원회를 거쳐 선거구를 확정하는 절차가 아니라 정치인이 주도하여 주민투표를 통해 선거구를 조정하는 방식은 민주주의 규범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프린스턴대학 개리멘더링 프로젝트는 이번 캘리포니아 선거구 개편으로 캘리포니아의 공정성 점수가 기존 ‘B’에서 ‘F’로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결과적으로 올해 민주당은 일부 성과를 거두었다. 펜실베니아주와 아이오와주 보궐선거에서 승리했으며, 11월에는 버지니아와 조지아 주지사 선거, 뉴욕시장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이러한 선거 승리가 내년 중간선거에서의 승리를 보장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연방정부 셧다운을 둘러싸고 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 민주당 지도부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다. 또한, 개빈 뉴섬 주지사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 대응은 지지자에게 일시적으로 통쾌감을 줄 수 있으나,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킬 위험이 있다. 특히 캘리포니아 선거구 조정은 향후 연쇄적인 개리멘더링으로 이어질 수 있고, 나아가 민주주의적 제도와 규범의 안정성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사진1%] [사진]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와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 2025년 미국 의회는 회계기간 종료일인 9월 30일까지 내년도 예산안 합의에 실패했다. 그 결과 43일간 최소한의 업무를 제외하고 연방기관이 폐쇄되는 ‘셧다운’ 상태를 겪었다. 역대 최장기간이었던 올해 셧다운에서 핵심 쟁점은 12월 말에 종료되는 오바마케어(공공 건강보험) 보조금 연장 여부였다. 셧다운 기간이 길어지면서 연방 공무원들이 대거 해고되자,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이탈해 임시예산안에 협력해 셧다운이 종료되었다. 임시예산안은 셧다운 기간 해고된 공무원을 복직시키는 대신 오바마케어 보조금 연장 표결을 12월에 하기로 했다. 성과 없이 셧다운이 마무리되면서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를 향한 불만이 나타났다. (출처: 《뉴욕타임스》) 한편, 트럼프 행정부에 맞선 강경한 대응과는 별개로, 민주당 지식인들은 대안적인 정책 아젠다를 연구하고 있다. 올해 3월에 언론인 데렉 톰슨과 에즈라 클라인이 출간한 책 『풍요』(Abundance)는 민주당 성향 지식인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이 책은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친민주당 성향 싱크탱크 ‘서드웨이’가 책의 주장을 반영한 정책 제안서를 제출하면서 널리 읽혔다. 저자들은 그간 진보 지식인들이 ‘분배’ 문제에 치중한 나머지 ‘성장’과 ‘풍요’ 문제를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미국의 풍요를 위해서는 주거, 교통, 에너지, 의료서비스 분야의 공급을 충분히 확보해 희소성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규제 장벽을 제거해 인프라를 효율적으로 공급하고, 코로나19 백신 개발 프로젝트 사례처럼 기술 규제 제도와 절차를 간소화해 시장에 신기술이 신속히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호와 규제 중심의 정부가 아니라 건설하고 발명하며 구현하는 정부가 되어야 하며, 결과 중심으로 거버넌스와 관료제를 재구성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캘리포니아주는 8월에 이러한 제안을 일부 반영해 개발 관련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향으로 환경영향평가법을 개정하기도 했다. 『풍요』의 제안은 ‘성장’이란 문제에 대한 논의를 촉발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그러나 현재 미국 경제의 문제를 단순히 과도한 규제로 인한 기술혁신 지체와 인프라 공급 제약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제는 장기적인 이윤율 하락 추세로 인해 장기침체가 이어지고 부채가 누적되는 구조적 위기에 처해있다. 이 문제를 완화하려면 세계적 수준의 공조가 필요하다. 또한, 규제 완화와 기술투자로 성장과 풍요를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은 기술낙관론일 뿐이다. 이런 주장은 1970년대 이후 현저히 낮아진 생산성을 고려하지 않으며, 수익성 있는 기술진보의 어려움에서 장기침체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을 무시하는 결함이 있다. 민주당은 트럼프주의에 맞서 다양한 방식의 대응을 모색하고 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과 대규모 감세법안으로 더욱 심화할 미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에 대해 진지하게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구조적 위기에 대응할 정책적 대안보다는 개빈 뉴섬 주지사처럼 강경한 대응으로 정치적 갈등을 키우는 행보에 치우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조지타운대 역사학 교수 마이클 케이진은 과거 민주당이 승리할 때 ‘보통 사람의 정당’을 내세웠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는 민주당이 21세기 들어 노동자 계층을 소외시키고 문화정책과 친기업적 행보를 강화한 점을 비판하며, 다양한 계급과 계층을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트럼프주의에 맞서 민주당이 내부의 문제점을 성찰하고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어떻게 이어지느냐가 2026년 중간선거는 물론 향후 미국 정치지형에서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3) 민주사회주의자는 계속 성장할 것인가? 11월 4일 뉴욕시장 선거에서 조란 맘다니가 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되었다. 그는 후보 시절부터 언론의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 그가 민주사회주의자(DSA) 소속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그의 등장과 당선은 사람들이 민주사회주의자라는 조직에 관심을 가지게끔 했다. 영국 녹색당, 독일 좌파당을 비롯해 유럽의 좌파계열 정치인들이 뉴욕으로 가 선거운동에 동참하며 맘다니와 민주사회주의자를 배우고자 했다. 민주사회주의자는 1982년 마이클 해링턴 주도 하에 민주사회주의 조직위원회와 신미국운동이라는 사회운동단체가 통합하여 탄생한 사회주의 조직이다. 민주사회주의자는 2014년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대통령 출마를 지원하면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조직 규모가 급속히 커졌다. 특히 청년 활동가를 중심으로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회원과 지부 수를 크게 늘렸다. 2018년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AOC)와 라시다 틀레이브, 2020년엔 자말 보우먼을 연방의원으로 당선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민주사회주의자의 여러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전미교사연맹(AFT) 활동가이자 민주사회주의자 전국정치위원회 전(前) 위원인 리오 케이시는 《디센트 매거진》에서 민주사회주의자 내에서 원칙의 절대화 경향을 비판했다. 케이시는 민주사회주의자가 지향하는 도덕적 원칙이 현실에서 실현되기 위해선 전술, 전략, 정치적 목표로 층위를 나누어 사고하며 예외를 인정하고 단계적으로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성취하는 방향으로 활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주사회주의자 활동가 다수는 원칙 그 자체를 영속적이며 예외 없는 절대적 교리로 이해하는 경향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런 경향이 전략과 전술의 효용성, 실현 가능성에 관한 토론을 원칙에 대한 교조적 충성심 경쟁으로 대체해 시대의 변화에 맞게 운동을 발전시키는 것을 저해하며 대중으로부터의 고립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다. 케이시는 대표적인 사례로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이후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M) 집회 당시 민주사회주의자가 마주한 난점을 언급했다. 당시 민주사회주의자는 ‘경찰제도 폐지’, 이후엔 ‘경찰예산 삭감’ 구호를 강조했다. 그러나 케이시는 민주사회주의자 다수가 구호에 집중한 나머지 경찰제도를 개혁하기 위한 법률 검토, 경찰 내에서 리더십과 관행 개선, 경찰교육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에 관한 시민사회 차원에서의 토론으로 나아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일부 도시의 경찰예산을 삭감하는 데 그쳤고 그마저도 팬데믹 이후 원상복구되었다. 케이시는 이를 ‘원칙의 절대화 경향’이 드러낸 난점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민주사회주의자 내에서 국제정세 인식을 둘러싼 갈등이 두드러진다. 댄 라 보츠 활동가는 민주사회주의자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지 않았고 관련한 토론도 조직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일부 지부에서 우크라이나의 사회운동(SR) 연사를 초청하여 세미나를 진행한 것에 대해, 내부에서 SR과 라보츠의 이력을 언급하며 이를 비난하는 일도 있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갈등을 더욱 키웠다. 전쟁 직후 이스라엘 아이언 돔 지원 승인 법안에 자말 보우먼 의원이 찬성하고 이스라엘이 국가로 존재할 권리를 인정하는 결의안에 AOC 의원이 찬성하자, 민주사회주의자 내에서 두 의원에 대한 제명 캠페인이 일어났다. 민주사회주의자 지도부는 두 의원을 제명하지는 않았지만, 2024년 7월 두 의원에 대한 지지 철회를 발표했다. 이 결정에 뉴욕지부가 반대하며 독자적으로 AOC 의원을 지지하겠다고 밝히면서, 국제정세 인식을 둘러싼 내부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맘다니 뉴욕시장 당선은 민주사회주의자에 큰 도전이 될 것이다. 언론은 선거에서 맘다니가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생활비 부담 완화를 위한 정책 제안을 재치있는 짧은 영상으로 잘 풀어서 소셜미디어에 널리 퍼뜨린 홍보전략에 주목한다. 그러나 토지개발업자, 재산 소유자, 세입자 사이의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공공 서비스 확대를 위한 주 정부와의 협의와 재원 조달을 어떻게 할 것인지, 경찰 문제와 국제정세 인식을 비롯한 여러 쟁점적 입장과 논란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맘다니 시장과 민주사회주의자가 정치무대에서 일시적인 유행에 그치지 않으려면, 케이시가 말한 것처럼 구체적인 목표, 전략, 전술을 체계화해야 할 뿐만 아니라 민주사회주의자 내부의 쟁점을 잘 풀 수 있어야 할 것이다. 2) 더욱 매서워질 유럽 포퓰리즘의 도전 2025년은 유럽 포퓰리즘 세력의 기세가 더욱 등등해진 한해였다. 특히 영국과 독일을 비롯한 유럽 주요국에서 포퓰리즘 정당이 기존 주류 정당을 제치고 가장 높은 지지를 받는 정당으로 올라섰다. 지난 여름호에 실린 필자의 글 「주류가 된 유럽 포퓰리즘」은 포퓰리즘 세력이 정당정치와 언론을 비롯한 매개조직을 공격하며, 개별국가의 ‘민족주권’을 우선시하면서 진영과 관계없이 정책과 수사를 차용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들이 집권한 이후 사법부의 독립성을 적극적으로 훼손하는 행보가 헌정주의를 크게 위협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그 양상이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살펴보겠다. (1) 주류 정치권은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2025년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는 포퓰리즘 정당이 기존 주류 정치권을 제치고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이들 국가는 이민자의 증가와 함께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는 가운데 기존 정치권이 유권자들에게 신뢰를 잃고 대안세력으로 포퓰리즘 세력이 부상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 국가에서 부상한 포퓰리즘 세력은 기존 정치권을 공격하면서 현행 정치체제를 변경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세 나라 모두 국가 재정 문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영국의 경우, 2024년 총선에서 승리한 노동당은 공약과 달리 2024년 국민보험료를 인상하며 사실상 증세를 감행했다. 이는 브렉시트,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재정지출이 급격히 늘어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중이 2024년 95%에 육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증세는 노동당 정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키웠다. 또한, 안젤라 레이너 부총리의 부패 스캔들과 레이첼 리브스 재무장관이 11월 소득세 인상안을 발표했다가 금세 철회하는 해프닝이 노동당에 대한 신뢰를 크게 떨어뜨렸다. 보수당 역시 2022년 ‘미니 버짓 사태’ 이후 재정위기를 완화할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국방비 지출을 줄일 수 없다는 모순된 입장은 정책 전문가들은 물론 당원들의 신뢰를 크게 떨어뜨려 당원과 후원자가 대거 이탈했다. 프랑스 바이루 내각은 2025년에 들어 GDP 대비 국가부채 비중이 115%를 돌파하면서 위기감이 커지자 공무원 수 감축, 공휴일 축소, 사회복지지출 감소를 포함한 긴축예산을 9월에 발표했다. 그러나 이 조치는 야당은 물론, 시민들의 분노를 샀다. 그 결과 바이루 내각은 출범 9개월 만에 무너졌다. 가뜩이나 정국이 불안정한데 긴축예산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피치, S&P 등 신용등급평가사는 프랑스 국가신용등급을 추가로 낮췄다. 그로 인해 로레알, 에어버스 등 프랑스 주요 대기업의 회사채금리보다 국채금리가 높아졌다. 마크롱 대통령이 임명한 르코르뉘 총리 내각은 더 이상의 내각 붕괴를 막고 사회당을 포섭하고자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연금개혁을 일시 중단했다. 독일은 마이너스 경제성장의 덫에 갇혔다. 2023년부터 연속으로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이를 해결하고자 독일 연방헌법에 규정된 ‘부채한도 브레이크’ 조항(연방정부의 연간 구조적 재정 적자는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0.35%를 초과할 수 없다)의 개정을 둘러싸고 사민당-자민당-녹색당 연정이 붕괴했다. 이후 들어선 기민당/기사당-사민당 대연정은 예외조항을 두는 방식으로 부채한도를 개정하며 확장 재정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늘어난 재정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두고 연정 내 갈등이 커졌다. 군 모집제도를 자원입대에서 의무요건을 강화해 신속히 병력을 충원하는 것과 시민수당(장기실업자 기초생활지원금) 및 사회복지 지출 축소를 지향하는 기민당/기사당 연합과 여기에 반대하는 사민당 사이에 이견 조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군 모집제도 변경을 둘러싸고 청년층 반발이 극심하다. 그에 따라 10월 INSA 여론조사에서 현 메르츠 정권에 대한 지지율은 25%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으며, 응답자의 49%는 정권이 조기 붕괴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존 주류 정치권이 보이는 혼란과 무능의 수혜자는 그들과 차별화하며 제도 변경을 지향하는 포퓰리즘 정당이다. 영국 개혁당은 올해 당원 수가 20만 명을 넘기며 보수당(13만 명)을 제쳤고, 5월 지방선거 결과 절반이 넘는 지역 의회에서 과반을 장악했다. 보수당 대니 크루거 하원의원을 비롯해 보수당 지방의원 수십 명이 개혁당으로 당적을 바꿨다. 프랑스는 계속된 정치혼란에 마크롱 대통령 지지율이 20% 아래로 추락한 가운데 국민연합의 정당 지지율이 마린 르펜 전 대표의 비리 판결에도 불구하고 선두를 지키고 있다. 독일을 위한 대안(이하 대안당) 역시 여름부터 기민당/기사당을 제치고 여론조사에서 가장 높은 정당 지지율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유럽의 기성 정치권은 장기침체, 재정적자와 부채위기 속에서 헤매고 있다. 이민자 문제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국방비 증액 압박은 주류 정치권과 제도에 대한 대중의 신뢰 상실을 유발했다. 그 결과 포퓰리즘 세력이 기성 정치세력을 능가하는 지지율을 보이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2) 점점 심해지는 매개조직 훼손 트럼프주의자들은 유럽에도 트럼프주의 노선을 적극적으로 전파하고 있다.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은 최근 헝가리 싱크탱크 MCC와 폴란드의 오르도 유리스와 세미나를 진행했다. 두 기관은 이를 토대로 올해 3월 「위대한 재설정: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주권 회복」이라는 유럽연합 개혁 보고서를 공동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선출되지 않은 유럽연합의 관료들이 회원국 정책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해 주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유럽사법재판소의 권한을 축소한 채 현행 유럽연합을 유지하는 방안과, 기존 유럽연합 조약과 제도를 전면 폐기하고 새로운 형태의 유럽 공동체를 구축하는 방안, 두 가지 개혁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프랑스 국민연합과 스페인의 복스(VOX)가 이 개혁안에 관심을 보인 가운데, 니콜라 콘투리스 전 유럽노조연구소(ETUI) 연구소장은 이 보고서가 극우 포퓰리즘 정당의 지향을 반영한 정치적 선언문으로 보인다며 경각심을 촉구했다. 영국 개혁당 역시 트럼프주의에 영향을 받은 싱크탱크 ‘더 나은 영국을 위한 센터’를 출범했으며, 지아 유수프 당 의장을 중심으로 영국 정부효율부팀을 6월에 꾸렸다. 지아 유수프는 9월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영국 헌정 개혁을 위한 자신과 당의 구상을 밝혔다. 그는 내각이 전문성이 떨어지는 의원들로 운영되어 비효율적이라면서, 전문성이 있는 인재들을 총리가 상원 귀족으로 제청하여 그들을 내각에 입각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내각이 되기 위해 먼저 유권자에 의해 하원의원으로 선출되는 과정을 밟을 필요가 없게 말이다.) 그의 인터뷰을 두고 《이코노미스트》는 개혁당이 의원내각제가 아니라, 미국 대통령제와 같은 방식으로 내각을 구성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이렇듯, 유럽에서 트럼프주의를 지향하는 인사들은 의회와 유럽연합을 비롯한 각종 제도와 기관들을 재구성하고자 한다. 이러한 매개조직 공격은 유럽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사법부의 독립성에 대한 공격이 극심하다. 이탈리아 멜로니 정부는 사법부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강화하는 헌법 개정안을 밀어붙였다. 헌법 개정안은 올해 1월 16일 하원에서 첫 번째로 통과된 이래 10월 30일 상원까지 네 차례의 의회투표를 모두 빠르게 통과했다. 다만 2차 의회투표에서 의석의 3분의 2를 넘기지 못해 내년에 국민투표로 넘어가기로 결정되었다. 야당과 판사협회는 이 헌법 개정안이 사법부 통제 법안이라고 비판하지만, 멜로니 정부는 국민투표로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중이다. [%=사진2%] [사진] 이탈리아 사법부 개혁안에 반대하는 이탈리아 의원들 7월 22일 이탈리아 사법부 개혁을 위한 헌법 개정안 통과 표결을 앞두고 상원에서 민주당(PD) 의원들이 이탈리아 헌법전 표지 사진을 거꾸로 들며, 개정안 통과 반대의 뜻을 표현하고 있는 장면. 사법부 개혁안의 구체 내용은 “김영진, 「주류가 된 유럽 포퓰리즘: 포퓰리즘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가?」, 《계간 사회진보연대》 2025년 여름호”를 참고할 수 있다. (출처: 《Il Sole 24 Ore》) 스페인에서도 사법부가 격렬한 정쟁의 장이 되고 있다. 특히 사법부 총평의회(CGJP) 인선을 둘러싼 여야 간 장기 대립이 사법부 전반에 인적 공백을 초래했다. 스페인 사법부 총평의회는 사법부 최고 의결기구이자 행정기관으로 법관 임명, 승진, 징계를 비롯한 사법부 인사, 사법 행정업무 전반을 담당한다. 20명의 위원 전원을 상하 양원이 각각 10명씩 선출하고 의원 5분의 3의 동의를 받아 인준한다. 이러한 임명방식은 1985년 프랑코 독재 시기에 보수적인 법관을 견제할 목적으로 사회노동당이 주도해 입법했다. 이러한 방식이 작동하려면 양당인 국민당과 사회노동당의 합의가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양당 간의 갈등이 커졌다. 결국 2018년 야당인 국민당이 총평의회 위원 임명 방식의 변경을 요구하며 합의를 거부한 이래로 5년간 총평의회 신임 위원 임명이 지체되다가, 2024년에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중재로 신임 위원 구성에 양당이 합의했다. 최근에는 사회노동당 산체스 총리 주변 인사들이 잇따라 부패 의혹에 휘말리면서 사법부 내부 갈등도 격화되었다. 11월에는 오르티스 검찰총장이 야당 정치인의 부패 스캔들을 언론에 유출한 혐의로 검사협회에 의해 고소되어 유죄판결을 받았다. 여권은 판결이 정치적 성향이 강한 법관들에 의해 내려진 것이라며 반발했고, 사법부의 정치화 문제를 다시 제기했다. 유럽평의회를 비롯한 국제기구도 스페인 사법부의 정치화를 우려하며 사법부 총평의회 위원 선출방식의 변경을 요구했다. 이사벨 페렐로 스페인 대법원장은 정치권의 판사 비방이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고 삼권분립과 법치를 위협한다고 지적하는 한편, 정치에 관여하는 일부 법관에게도 자중을 요청하면서 정치권이 사법부 총평의회의 인적 공백 사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해달라고 당부했다. 매개조직과 같은 민주적 제도가 훼손될수록 사회가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은 약화되고, 그 빈자리를 폭력이 채울 위험이 커진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정치인을 겨냥한 폭력이 우려할 수준에 이르렀다. 10월 벨기에에서는 바르트 더 베버르 총리를 드론으로 암살하려는 시도가 적발되었으며, 같은 달 스웨덴 중앙당 대표인 안나 카린 핫은 지속적인 폭력 협박과 온라인 괴롭힘 끝에 사임했다. 이러한 사건들이 이어지자, 유럽의회 조사처는 「유럽연합 내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폭력과 협박」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해, 정치인을 향한 폭력이 개인에 대한 공격을 넘어 민주주의의 질을 직접적으로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유럽연합 차원에서 정치인 보호 조치를 강화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각국의 법 집행기관과 보안기관 간 협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처럼 유럽에서는 기존 정치 엘리트뿐 아니라 다양한 매개조직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이를 재편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 이후 유럽의 포퓰리즘은 더욱 강화되었다. 특히 사법부를 비롯해 법치를 유지하는 핵심 기관에 대한 공격이 두드러지고, 정치인과 엘리트를 향한 폭력으로 이어질 위험도 커지고 있다. 3) 소결: 포퓰리즘의 위협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2025년 민주정 국가들에서 포퓰리스트 세력의 위협은 거셌다. 미국과 유럽만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자유민주당의 영향력이 2024년 중의원 선거와 2025년 참의원 선거를 거치면서 약해졌고, 레이와 신센구미나 참정당처럼 ‘제3지대’나 ‘일본우선주의’를 내세우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존재감이 커졌다. 중심부의 민주정 국가들이 마주한 최근의 도전은 개별 국가의 일시적인 정치위기를 넘어서는 심각한 문제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떠한 대응이 필요한가를 두고 정치권뿐 아니라 학계에서도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정치학계는 포퓰리즘이 기성 정당정치와 언론으로 대표되는 매개조직(민주적 제도)을 위협하며 헌정주의를 위기로 몰고간다는 점에 대체로 합의한다. 그러나 어떤 대응이 필요한 것인지를 놓고는 쟁점이 있다. ‘방어적 민주주의’ 혹은 ‘전투적 민주주의’를 둘러싸고 나디아 우르비나티 칼럼비아대학 교수와 얀 베르너 뮐러 프린스턴대학 교수가 벌인 논쟁이 대표적이다. 얀 베르너 뮐러 교수는 『민주주의 공부』(2022)에서 민주주의를 다양한 매개조직과 제도를 통해 언제든 다수가 교체될 수 있는 불확실성을 전제로 한 체제라고 규정한다. 그는 포퓰리즘이 이러한 민주주의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면서 제도를 훼손하는 반(反)다원주의적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본다. 따라서 뮐러 교수는 포퓰리즘의 제도적 위협을 차단하기 위해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와 정당정치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즉, 민주주의적 정치제도를 침해하는 개인의 권리를 법적으로 제한하거나 정당을 금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우르비나티 교수는 최근 논문에서 뮐러 교수의 방어적 민주주의에 이의를 제기했다. 우르비나티 교수는 특정 정당이나 개인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제한하자는 접근은 정당과 시민사회가 스스로 조정하고 개선하려는 자율적 노력을 약화시킬 수 있으며, 정치에 냉소적인 시민들에게는 정치 엘리트가 법을 통해 기득권을 지키려는 것처럼 보일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우르비나티 교수는 시민사회의 자율성과 역할을 강조한다. 그녀는 정당정치와 ‘의지’의 영역에 해당하는 정치적 매개와 구별되는, 시민사회이자 ‘의견’의 영역인 사회적 매개 내에서의 불균형이 포퓰리즘이 부상한 핵심 원인이라고 본다. 일부 사회적 매개조직은 정치권과 제도에 효과적으로 연결되어 영향력을 행사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영역에서는 배제와 소외가 발생한다. 이러한 소외가 확대될수록 해당 계층은 극단화의 위험에 더욱 노출된다. 따라서 우르비나티 교수는 정당정치나 제도 개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사회적 결사를 활성화하고 시민사회의 의견이 정치적 의지 형성 과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공론장을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민주정에 대한 포퓰리즘의 위협이 거센 상황에서 어떤 대응이 필요한가를 놓고 학자들 사이에서도 고심이 깊다. 앞선 미국과 유럽의 사례에서 보았듯, 기존 정당들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매개조직 침해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제도적 개입을 통한 민주주의 방어만으론 포퓰리즘 세력들에 의해 악용될 소지가 있을뿐더러 관련한 법과 제도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을 키울 수 있다. 『공포로부터의 자유』에서 케이헌이 주장했듯,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가 잘 작동하기 위해선 성숙한 시민성을 갖춘 시민들의 도덕적, 능력적 향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는 시민사회 차원에서 건강한 공론장을 형성하기 위한 교육과 토론이 전제되어야 함을 뜻한다. 그런 점에서 사회운동은 이러한 교육과 토론의 기반을 마련하는 핵심 주체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회운동이 이러한 기능을 실질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때, 민주정은 단순히 유지되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혁신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3. 권위주의 국가의 자유주의 국제질서 위협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외정책은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해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로부터 이탈하면서도 무슬림에 적대적인 잭슨주의 접근법을 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파리기후협정과 세계보건기구에서 탈퇴하고, 개발도상국 지원과 인도주의적 지원을 맡아온 미국 국제개발처를 폐지했다. 동맹국들의 안보 무임승차를 비난하며 국방비 증액을 압박하는 한편 권위주의 국가를 상대로 거래적으로 접근했다. 자유주의 국제질서에서 미국의 후퇴는 기존의 국제질서에 도전하는 권위주의 정권 사이의 연계를 키웠다. 올해 외교관 사이에선 중국-러시아-이란-북한으로 대표되는 ‘CRINK’(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의 영문 머리글자를 딴 용어) 혹은 ‘격변의 축’(Axis of upheaval)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주목받았다. 이들 국가 사이의 협력이 동시다발적으로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10월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네 국가 사이의 연계를 외교, 경제, 안보 측면으로 나누어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먼저 외교적 측면에선 2022년 이후 UN 안보리 결의안 투표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기권 혹은 거부권을 통해 북한과 이란에 대한 제재를 무력화하는 경우가 늘었다. 또한, 브릭스와 상하이협력기구를 매개로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의 거버넌스 구축에 적극적이다. 경제적으론 양자 협정을 통해 기술 교류와 에너지 연계를 강화하는 한편, 서방의 금융 제재 회피를 상호 지원하기 위해 러시아의 미르나 중국의 크로스보더 은행간 결제시스템(CIPS)을 통해 금융 결제 플랫폼을 통합하고 있다. 안보 차원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군사적 협력이 강화되었다. 러시아는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 지원, 북한의 탄약과 병력 지원, 중국의 다양한 물자 지원을 받는 대가로 첨단 군사기술을 제공했다. 그리고 양자 혹은 삼자 합동 군사훈련을 2022년부터 연평균 9.5회 진행했다. [%=사진3%] [그림]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CRINK)의 합동 군사훈련 횟수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중국과 러시아, 이란 그리고 북한 간에 두 국가 이상의 합동 군사훈련이 늘어나는 추세다. 2003년 중국과 러시아가 첫 합동 군사훈련을 진행한 이래 2025년까지 두 국가 이상이 참여한 합동 군사훈련이 총 96회였고, 2022년 이후에만 연평균 9.5회였다. 이란은 2019년 이후 중국, 러시아와 삼자 합동군사훈련을 매년 진행하고 있으며, 북한은 2024년에 중국, 러시아와 해군 훈련에 처음으로 참여했다. (자료출처: CSIS) 보고서는 네 국가 사이의 관계에 불균등함이 존재하며 상호불신이 있다는 점도 언급한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항상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CRINK가 견고한 블록을 형성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국가 간의 협력 강화는 국제규범에 큰 도전인 만큼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아래는 CRINK를 구성하는 핵심 4개 권위주의 국가 중 러시아와 이란 그리고 이들 국가가 연루된 전쟁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중심으로 관련국들의 주요 동향과 전망을 살펴보겠다. (중국의 대만침공설을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 정세전망은 이번호에 실린 글 「중국의 2027년 대만 침공설과 핵무력 증강, 분석과 평가」을 보라.) 1) 유럽 차원의 문제로 불거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2월 28일 미국-우크라이나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 사이에 벌어진 공개적 설전은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후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휴전을 압박하며 무기 지원과 정보 공유를 일시 중단했다. 3월 11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열린 고위급 회담에서 우크라이나가 30일 휴전안을 수용하는 조건으로 지원을 재개했다. 그러나 휴전이 성사되지 않자, 미국은 7월부터 토마호크 미사일과 155mm 포탄을 비롯한 일부 무기 지원을 중단했다. 그리고 군사 지원 방식도 직접 지원이 아닌 유럽이나 나토 동맹국들이 미국에서 무기를 구매해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킬 세계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25년 하반기 월평균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 규모는 상반기와 비교해 43% 감소했다. 11월 19일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압박을 다시금 강화했다. 미국이 제안한 평화안 초안은 ▲ 우크라이나의 동부 돈바스 영토 포기 ▲ 우크라이나군 병력 60만 명 제한 ▲ 우크라이나 헌법에 ‘나토 영구 불가입’ 명시 ▲ 러시아의 G8 복귀 초청 ▲ 러시아·우크라이나·유럽 간 ‘상호 불가침 협정’ 체결 ▲ 우크라이나 100일 내 조기 선거실시 ▲ 우크라이나 공용어에 러시아어 재포함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 안은 우크라이나군 병력을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고 러시아의 돈바스 점령을 사실상 인정하는 내용으로 러시아에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물론 유럽연합과 영국을 비롯한 대다수 나라가 강하게 반발했다. 이후 미국은 민감한 내용을 뺐지만, 협상은 결국 결렬되었다. 이처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이 러시아에 우호적인 종전안을 우크라이나에 강압하는 가운데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다. 하지만 설령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이 미국이 제안한 안을 수용하더라도 이번 전쟁이 낳은 여파가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것이다. 러시아가 UN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를 악용해 국제사회의 개입을 무력화하고 다른 나라의 영토주권을 침해해 소기의 성과를 거둔 이상, 이후에도 주변국을 같은 방식으로 공격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러시아 인접국의 불안감이 커진 만큼 유럽과의 갈등도 더욱 커질 것이다. 이를 중심으로 러시아, 우크라이나와 유럽의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러시아의 전략적 행보가 가진 리스크는 무엇인가? 러시아는 2025년 우크라이나에 대한 외교적 공작을 병행하면서 장기 소모전을 구사했다. 원래 목표였던 우크라이나 완전 점령이 당분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여러 차례 진격을 시도했지만, 2022년 이후 추가로 획득한 영토는 매우 적고 누적 사상자 수는 100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손실이 컸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으로 미국의 태도에 변화가 생겼다. 유럽의 군사력이 미국을 당장 대체할 수준이 아닌 상황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의 약 20%를 차지했고 북한군의 지원으로 병력 부담을 한층 덜었으며 열세인 드론 기술력 격차도 많이 좁혔다. 따라서 러시아는 협상 레버리지를 높이는 한편, 서방의 분열을 유도해 우크라이나를 고립시키고자 했다. 러시아는 미국에 휴전의사를 밝히면서도, 이미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에 대한 권리 인정과 러시아에 대한 제재 해제를 비롯한 강경한 요구안을 고수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빠른 종전을 원했기에 우크라이나가 30일 휴전안을 수용하게끔 강압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배제한 채 알래스카 회담으로 종전을 꾀하고자 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최소한의 타협도 거부하며 군사력 회복을 꾀했다. 러시아는 지지부진한 휴전 협상을 지속하면서 서방의 지원이 줄어든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공세를 강화했다. 드론 공격과 미사일 폭격을 지속해 우크라이나의 방공망을 소모시켰고, 북부 도시이자 물류거점인 포크로브스크를 포위 공격했으며, 남부의 흑해 연안도시 오데사와 미콜라이우 지역에 미사일 공격을 시도했다. 특히 페스코프 러시아 정부 대변인은 흑해 연안 주민들이 러시아 편입을 원한다고 주장하고 그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출처 불명의 주장을 반복하며 ‘회색지대’ 전략을 펼쳤다. 또한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정유시설을 집중적으로 공격하여 우크라이나 전력망에 큰 손실을 입혔다. 그러나 러시아에는 몇 가지 중대한 위험 요인이 있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세계적인 유가 하락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2025년 9월 러시아의 배럴당 평균 원유 수출가는 57.6달러로 전년도 동기(70.5달러)에 비해 크게 하락했다. 서방의 제재로 인해 원유를 주로 인도, 중국 등 비(非)제재국에 할인된 가격으로 수출했던 만큼 타격이 더욱 컸다. 이런 와중에 우크라이나군의 정유시설 습격과 인도의 점진적인 러시아 원유 수입 축소로 재정적자가 급격히 증가했다. 폴란드 싱크탱크 동유럽연구센터에 따르면, 러시아의 재정은 전년도 3분기 0.6조 루블 흑자에서 올해 동 분기 3.8조 루블 적자로 돌아섰다. 러시아 정부는 국채발행을 계획하고 있으나, 이는 이미 낮아진 루블화 가치를 더 떨어뜨릴 수 있다. 재정문제가 악화될수록 전쟁수행 능력에 큰 차질이 생길 것이다.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문제가 크다. 진전없는 전선이라는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징집에서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러시아는 강제징집 대신 입대할 때 막대한 보조금을 주는 계약병 방식으로 병력을 충원하고 있다. 전쟁연구소(ISW)에 따르면, 러시아는 월 3~4만 명의 병력을 보충하고 있다. 병사 1인당 입대 보너스로는 40만 루블(한화 740여만 원)을 지급하는데, 이는 러시아 월평균 임금소득의 약 5배다. 여기에 병사 1명당 모집비용도 전년도 평균 150만 루블에서 올해 200만 루블로 크게 올랐다. 바로스 전쟁연구소 연구원은 병사 급여, 사망, 부상 보너스까지 합한 러시아의 군인 급여 시스템은 유지가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높은 징집 비용과 병력 유지비용은 러시아의 어려운 경제 상황과 맞물려 재정압박을 더욱 키울 수 있다. 물론 강제 징병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지만, 이는 러시아 청년의 반발을 사 푸틴 정권의 안정성에 타격을 줄 수 있다. 향후 러시아가 선택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 고강도 분쟁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자원을 빠르게 소진시켜, 유럽의 지원이 더 커지기 전에 전쟁을 빨리 마무리하는 시나리오 ▲ 저강도 분쟁으로 수위를 낮추되, 우크라이나의 정권교체를 기대하면서 계속해서 유럽과 우크라이나를 압박하는 시나리오 ▲ 휴전을 통해 역량을 회복하고 내부 리스크를 관리하는 시나리오 ▲ 평화협정 체결. 다수의 안보 전문가는 러시아가 공격 강도를 조절하면서 우크라이나와 서방의 연계를 막고, 장기적으로 고립을 유도하리라 예상한다. 향후 러시아의 행보는 러시아의 경제 상황,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우크라이나의 항전의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2) 중대한 기로에 서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 4년차를 맞이한 우크라이나는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맞이했다. 미국의 군사 지원이 트럼프 집권 이후 급격히 감소하면서 전쟁수행 물자수급에 어려움을 겪었다. 탄약은 유럽이 미국을 대신해 지원하고 있으나, 패트리엇 미사일, 유도다연장로켓시스템, 특수 군사물자 수입은 제한되고 있다. 여기에 10월 러시아의 정유시설 집중공습으로 대규모 정전과 급수 중단 사태가 발생했다. 특히 전력 공급망 손상은 드론과 미사일 방어의 핵심인 전파방해에 차질을 주었다. 여기에 더해 겨울 난방공급에 발생하는 어려움은 우크라이나 시민의 피해를 크게 키울 수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는 병력보충에 애를 먹고 있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 연구원 잭 와틀링이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보병 수가 빠르게 줄고 있으며, 무엇보다 징집된 병사들이 충분한 훈련을 받지 못해 병력 손실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병력부족을 만회하기 위해 징집 연령을 27세에서 25세로 낮추었지만, 병사 평균 연령은 43세로 러시아(38세 추정)에 비해 여전히 높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청년들 사이에서 병역 기피가 늘어나고 있다. 젤렌스키 정부는 국내정치에서 큰 위기를 맞이했다. 대규모 실향민으로 인한 주택 위기가 발생했고, 정부 재정 대부분이 국방비로 쓰여 사회지출을 해외원조기관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올해 7월 젤렌스키 대통령은 2015년에 도입된 국가반부패국과 반부패검찰청의 권한을 제한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해당 법안은 강한 반발을 낳았다. 7월 키이우에서는 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시민이 모여 정권을 규탄하는 시위를 열었다. 결국 젤렌스키 정부는 법안통과 9일 만에 앞선 조치를 철회했다. 11월에는 국영 원자력기업에서 1억 달러 규모의 횡령 사건이 폭로되었는데, 여기에 젤렌스키 대통령의 측근인 티무르 민디치를 비롯한 정권 주요 인사들이 연루되면서 논란이 커졌다. 이에 정부는 주요 국영기관을 대상으로 대규모 감사를 진행했으며, 연루된 내각 인사들을 해임했다. 폴란드 투스크 총리를 비롯한 유럽 정상들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부패를 막지 못하면 앞으로 지원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압박했다. [%=사진4%] [사진] 2025년 7월 23일 우크라이나 정부 규탄 시위 2025년 7월 22일 우크라이나 부패 감찰기관의 권한을 축소하는 법령 통과에 반대하는 시위가 수도 키이우에서 일어났다. 다음날인 23일엔 키이우뿐만 아니라 주요 도시에서 광범위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남편이 전장에 있다고 밝힌 한 시민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부패를 위해 군인들이 전장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우크라이나 시민사회가 10년간 쌓아올린 노력이 파괴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대규모 시위는 7월 31일 부패 감찰기관 권한강화법이 통과되면서 일단락되었다. (사진출처: 《AP》) 이처럼 우크라이나는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이에 우크라이나인의 항전의지가 약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제기된다. 갤럽에서 7월에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인 중 전쟁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여론은 69%로 전년도의 52%에 비해 증가했고, 계속 싸워야 한다는 여론은 24%로 작년 38%와 비교해 감소했다. 젤렌스키 정권이 부패스캔들로 흔들리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러시아에 유리한 휴전안을 우크라이나에 강요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그러나 현재 우크라이나가 직면한 위기로 인해 우크라이나인의 항전 의지가 약화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키이우 국제사회학연구소가 8월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인의 76%가 푸틴 대통령의 평화안(나토 가입 포기, 점령지 양도 등)을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고 답했다. 우크라이나 언론인 나탈리아 구메뉴크는 우크라이나 내부의 결속과 민주적 제도에 대한 신뢰의 유지가 전쟁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라고 강조하며, 역으로 우크라이나의 민주주의야말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유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그녀는 7월 반부패 시위에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대규모로 참여한 것은 전쟁의 본질을 시민들이 정확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이 민주적 제도와 내부 결속을 유지하는 게 왜 중요한지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사회운동(SR) 역시 우크라이나인이 계속 러시아에 맞서 싸우려면 보수주의자의 긴축정책이나 트럼프 행정부의 ‘가짜 평화협상’을 거부하며, 우크라이나 시민이 쟁취해 온 민주주의와 사회적 성취를 동시에 방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3) 유럽의 재무장은 어떤 양상을 띨 것인가? 올해 유럽 주요국은 미국의 방위비 증액 압박과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위기감을 느끼고 공동대응을 적극적으로 모색했다. 영국과 프랑스 주도로 유럽은 2월 우크라이나 전후 안전보장을 위한 비공식 협의체인 ‘의지의 연합’을 출범시켰다. 유럽연합은 3월 발간한 ‘유럽방위백서 2030’에서 방위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재정기구를 설치하고 1,500억 유로의 자금을 조달하여 유럽 차원에서 방위투자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6월 나토 정상회의에서 유럽 주요국은 방위비를 GDP의 5%(3.5%는 국방비, 1.5%는 국방 관련 지출)로 올리는 목표를 설정했다. 7월에는 유럽연합과 우크라이나가 각각 1억 유로씩 출연해 첨단 방위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에 돌입했다. 2025년 9월 말부터 시작된 러시아의 드론 위협은 유럽 국가들의 긴장감을 높였다. 최소 10개 국가의 공항과 군사시설 상공에 러시아 드론이 나타나는 사태가 발생했다. 폴란드는 긴급 나토회의를 소집해 공동대응을 주문했다. 유럽 각국 정부와 유럽연합은 러시아의 드론 위협을 유럽의 방위태세를 시험하고 심리적, 물리적 부담을 가하려는 하이브리드 위협으로 규정했다. 10월 16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30 유럽 방위준비 로드맵’을 발표했는데, ‘드론 월’로 불리는 드론 방어 이니셔티브를 포함해 동부전선을 중심으로 한 방위태세 강화가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유럽은 여러 제약에 직면해 있다.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가 9월 발표한 「유럽 방위 역량의 진전과 한계」에 따르면, 유럽 전역에 배치된 미국의 재래식 군사력을 유럽이 대체하려면 최소 1조 달러가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보고서는 유럽 방위력이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정찰·감시 항공기, 장거리 정밀타격 미사일, 미사일 방어체계가 부족하며,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핵심 정보수집 체계를 미국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방위산업 인력 부족으로 인해 미국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유럽 차원의 산업협력 확대와 비(非)미국 동맹국들로의 구매처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러나 가장 큰 장애요인은 재정이다. 방위비 증액과 미국 의존도 완화를 위해서는 막대한 재정투입이 필요한데, 이는 각국의 정치적 합의와 결단을 요구한다. 문제는 국가별로 국방비 증액에 대한 공감대가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유럽외교협의회가 6월에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덴마크와 폴란드처럼 러시아와 인접한 북유럽과 동유럽 국가들은 국방비 증액 지지가 과반을 넘겼다. 반면 이탈리아나 스페인처럼 러시아로부터 거리가 먼 남유럽 국가들에서는 국방비 증액 지지가 낮게 나타났다. 독일, 덴마크, 라트비아, 크로아티아 등 징병제 도입 또는 재도입을 추진하는 국가들에서는 청년층을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높다. 이처럼 유럽의 무장 강화는 다양한 구조적·정치적 쟁점에 가로막혀 있으며, 앞서 언급한 포퓰리즘 세력의 부상까지 고려하면 그 진척은 더욱 더딜 수 있다. 그렇기에 일부 전문가는 유럽연합 차원의 군비 강화에 앞서 방위비 증액에 공감대가 높은 나라부터 빠르게 무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북유럽, 폴란드, 발트 3국(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은 독자적인 국방력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24년 11월 스웨덴 하르프순드에 모인 8개국 정상은 북대서양 지역의 연대를 기반으로 한 방위협력을 우선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이후 양자·다자간 군사 협력을 확대했다. 스웨덴과 폴란드는 9월 군사기술협력약정을 체결한 데 이어 같은 달에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했다. 또한 폴란드와 발트 3국은 유럽연합의 유럽방위로드맵과 별개로 벨라루스, 러시아와의 국경지대에 자체적인 방어선을 구축하는 중이다. 유럽의 무장강화 흐름은 국제법과 국제규범에 대한 논란도 촉발하고 있다. 특히 기존 규범이 러시아의 회색지대 전략에 취약하다는 문제의식이 커지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코펜하겐협약과 대인지뢰금지협약(오타와협약)이다. 코펜하겐협약은 1857년 덴마크해협을 모든 상업선박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국제수역으로 지정하고 통행료를 폐지한 조약이다. 그러나 최근 러시아가 이 협약을 악용해 ‘그림자선단’를 활용한 활동을 벌이는 것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그림자선단이란 제재대상 물자를 운송하기 위해 등록을 피하거나 선적정보를 조작하는 선박을 뜻하는데, 러시아는 미등록 유조선을 민간상선으로 위장해 발트해를 자유롭게 통과하면서 제재를 회피하거나 해저케이블을 훼손했다. 이 때문에 덴마크를 비롯한 주변국과 국제법학계에서는 기존의 국제법 체계만으로는 이러한 러시아의 활동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명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따라 현행 국제법을 보완하는 지역 협약을 채택하거나, 제재 관련 절차을 정비해서 유연하고 효과적인 집행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2025년에는 발트 3국, 폴란드, 핀란드가 의회 결의로 대인지뢰금지협약을 탈퇴했다. (대인지뢰금지협약은 1997년 채택되어 1999년 발효된 다자조약으로 현재 160여개 국이 가입했다. 정식 명칭은 ‘대인지뢰 사용, 비축, 생산, 이전 금지와 대인지뢰 페기에 관한 협약’이다.) 러시아 또는 벨라루스와 인접한 이들 국가는 러시아가 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상황에서 최근의 안보 환경을 고려할 때 유연한 대응과 사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집속탄 사용을 금지하는 더블린협약(2010)도 같은 이유로 탈퇴 혹은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유럽에서 안보 위기감의 증가는 다양한 쟁점을 낳고 있다. 과연 유럽이 러시아에 대항해 단결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국제규범 차원의 여러 쟁점은 어떻게 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2) 중동, 끝이 보이지 않는 극단적 폭력 트럼프 행정부는 취임 초기부터 중동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1월 스티브 위트코프 특사를 보내 이스라엘-하마스 사이에 1월 19일 휴전협정이 이뤄졌다. 지난 6월 발생한 이스라엘-이란의 12일 전쟁엔 미국이 직접 이란의 핵시설을 공습하면서 휴전이 체결되었다. 10월 10일에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에 다시금 휴전협정이 발효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중동의 분쟁에 관여한 덕분에 전면전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자화자찬하며 스스로를 ‘평화의 중재자’로 칭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중동의 정세는 평화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1월 휴전은 인질 교환 이후 단계에서 진전을 거두지 못한 채 종료되었다. 이란은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인 핵시설과 농축우라늄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10월 휴전은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다. 이스라엘이 레바논 헤즈볼라 고위 간부를 암살하면서 긴장이 고조됐다. 중동에 정말 평화의 가능성이 있긴 한 것일까? 올 한해 중동에서 주요 행위자였던 이란과 하마스,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내년 중동 지역 정세에서 주목할 부분이 무엇인지 살펴보겠다. (1) 재기를 노리는 이란과 시리아의 혼란 이란은 올해 중동지역에서의 영향력에 큰 손상을 입었다. 지난해 시리아 아사드 정권이 무너졌고 레바논 헤즈볼라 역시 지도부 대부분이 사망한 가운데 이스라엘과 체결한 휴전협정으로 세가 약해졌다. 하마스 역시 지도부 다수가 사망한 가운데, 저항의 축의 세가 위축되었다. 특히 6월 12일부터의 ‘12일 전쟁’은 이란에 큰 타격을 주었다. 14명의 이란의 주요 핵 과학자들이 사망했으며, 핵시설이 있는 나탄즈, 포르도, 이스파한 지역이 공습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이란의 핵시설은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그로시 총장에 따르면 약 400kg으로 추정되는 60% 이상의 고농축 우라늄(단시간 내로 90% 이상 농축하여 폭탄으로 제조가 가능한 수준) 일부가 공습 전에 옮겨졌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란이 몇 달 내로 원심분리기를 통해 다시금 고농축 우라늄을 제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란은 의회에서 국제원자력기구와의 협력 중단 결의안을 통과시켜 국제원자력기구의 이란 핵시설 접근을 막았다. 이란의 이러한 행보에 대해 이란핵합의(JCPOA) 체결 당사국인 영국·프랑스·독일은 강하게 반발하며 스냅백 제재(2015년 핵합의 이전의 유엔 제재를 자동 복원하는 조치) 발동을 경고했고, 8월 말 관련 절차를 개시했다. 9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러시아·중국·파키스탄·알제리가 제재 종료 결의안에 찬성했지만, 다수 이사국의 반대로 인해 유엔 차원의 제재가 복원되었다. 이후 이란은 러시아와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과의 연계를 강화하면서 핵 개발 의지를 더욱 분명히 했다. 이란은 3월 중국·러시아와의 합동 군사훈련을 진행한 데 이어 7월에는 러시아 해군과의 합동훈련을 진행했다. 또한, 9월 26일에는 러시아와 4기의 원자력발전소 건설 계약을 체결했다. 이란 최고지도자실 고문 카말 하라지는 중국과 러시아가 제안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협력 재개 방안에는 열려있다고 밝혀, IAEA와의 선택적 협력을 제재 완화를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국내 여론에서는 핵 개발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다. 《테헤란 타임즈》는 IAEA와의 협력이 이란 핵시설 관련 정보가 미국과 이스라엘로 넘어가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하며, 이란은 핵 개발 의지를 절대 굽히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목에서 시리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4년 12월 아사드 정권을 전복한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의 시리아 신정부는 3월 언론과 표현의 자유, 여성의 정치·경제 권리 보장을 명시한 신헌법을 제정해 7월 미국 정부의 테러조직 목록에서 빠졌다. 그러나 시리아 신정부를 둘러싸고 튀르키예, 이스라엘, 쿠르드족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시리아 신정부는 같은 수니파 이슬람주의 정권인 튀르키예의 후원을 받고 있다. 튀르키예는 시리아 내전 당시 시리아 북부지역을 거점으로 삼은 알카에다 계열의 수니파 무장조직을 지원했다. (현 집권세력도 여기에 포함된다.) 튀르키예 군은 이미 시리아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네 군데에 군사기지를 설치했으며, 추가로 군사기지를 설치하기로 한 합의를 포함해 현 정권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쿠르드족은 시리아 신정부와 튀르키예의 협력에 불만을 표한다. 이스라엘은 시리아와 튀르키예의 협력을 경계하면서, 국경지대인 골란고원의 비무장지대와 전략적 요충지인 헤브론 산을 점령했다. 튀르키예와 이스라엘은 서로를 지역 패권을 노리는 제국주의 행위자라고 비난하고 있다. 쿠르드족은 더욱 갈등적인 상황이다. 미국은 이슬람국가(ISIS)와의 투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쿠르드족 중심의 시리아민주군과 협력하라고 시리아 신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튀르키예는 시리아민주군을 쿠르드노동자당의 연장선으로 간주하며 적대적인 입장을 보인다. 시리아 정규군 통합을 위한 무장해제를 두고 시리아 신정부와 시리아민주군은 무력충돌을 지속하고 있다. 브루킹스 연구원의 수잔 말로니는 이스라엘, 튀르키예와 시리아 신정부, 쿠르드족 삼각구도 사이에서 갈등이 격화될 경우, 이란이 시리아 북동부와 이란-이라크 접경지대를 근거지로 하는 쿠르드족 세력에게 접근해 그들을 중심으로 대리 네트워크를 재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2) 이완되는 통치력을 전쟁으로 돌파할 하마스 10월 체결된 이스라엘–하마스 휴전의 향방에 대해 대다수 전문가는 비관적이다. 인질 석방 이후 논의되어야 할 ‘평화 단계’인 하마스의 무장해제, 이스라엘군의 단계적 철수, 과도정부 수립, 국제 안정화군 배치를 둘러싼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휴전 이후에도 저강도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양측 모두 통치력과 내부 결속을 유지하기 위해 갈등을 지속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하마스는 가자지구 내에서 통치력과 영향력이 조금씩 약해지는 조짐을 보인다. 팔레스타인 정책조사연구센터가 10월 28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주민 사이에서 전쟁 장기화에 대한 피로감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물론 여전히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지지받는 정치세력이다(2025년 10월 기준 전체 35%). 10월 휴전 이후 지지율도 소폭 상승했다. 그러나 2023년 이후 전체적으로 지지율은 하락했다. 특히 가자지구에서 그 감소폭이 두드러진다. 2023년 10월 공세를 지지한 비율은 개전 초기인 2024년 3월 70%대에서 2015년 10월 40%대로 떨어졌으며, ‘하마스가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응답 역시 27%로 개전 초기 대비 약 30% 포인트 감소했다. 이 수치는 서안지구보다도 낮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가자지구에서는 반(反)하마스 움직임이 등장하고 있다. 2025년 3월 가자지구 북부 셰자이야와 베이트 라히야에서 개전 이후 처음으로 주민 수백 명이 “하마스는 물러나라”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또한, 하마스 통치에 불만을 가진 무장조직도 증가해, 2025년 9월 기준 최대 12개의 조직이 활동 중인 것으로 보고되었다. 하마스는 이들과 충돌하며 수십 명을 처형했다. 하마스 관리 모하메드 나잘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이들이 ‘범죄자’라고 주장하며 처형을 정당화했지만, 적법한 절차 없이 반대자를 사형하고 이를 소셜미디어에 영상으로 게시한 행위는 심각한 문제다. 무엇보다 하마스는 무장해제 의사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는 하마스가 단순한 무장조직이 아니라 종교·사회·정치 네트워크를 결합한 이슬람주의 조직이기 때문이다. 매튜 레빗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에 따르면, 하마스는 ‘다와’로 불리는 광범위한 사회복지·교육 네트워크를 통해 폭력 활동을 생산·재생산한다. 자선단체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모스크와 연계한 이슬람주의 교육을 통해 이념을 확산하며, 청년층을 조직화해 무장단원으로 흡수한다. 이 과정에서 하마스는 취약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기능을 대체함으로써 주민 지지를 확보해 왔다. 레빗은 이러한 다와 네트워크를 대체할 수 있는 정치·사회적 기제를 개발하지 않는 한, 하마스의 무장해제와 폭력 중단은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한다. 실제로 팔레스타인 내부에서 하마스 지지가 여전히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이유도, 하마스를 대체할 정치세력과 제도적·사회적 네트워크가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하마스는 지도부 다수가 사망하고 자금난에 직면한 상황에서 내부 불만을 강경하게 통제하고 외부에서 자금·무기·인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런 조건이 유지되는 한, 하마스는 전력을 회복하는 대로 다시금 이스라엘을 공격함으로써 내부 결속을 강화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3)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권과 이스라엘 시민사회의 평화운동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권도 전쟁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6년 10월 총선을 앞둔 이스라엘에서 네타냐후 정권에 대한 여론은 매우 부정적이다. 최근 조사에서 유권자의 약 70%가 연립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네타냐후 총리 역시 여러 부패와 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어 정치적 타격이 크다. 하지만, 네타냐후를 실질적으로 대체할 정치세력은 뚜렷하게 부상하지 못하고 있다. 야당은 여러 갈래로 분열되어 있으며, 아랍계 정당에 대한 관점이나 안보·경제 정책 노선을 비롯한 핵심 쟁점에서 입장이 크게 갈린다. 이들이 설령 반(反) 네타냐후 전선을 구축하더라도, 명확한 공동의 정책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전쟁 후 많은 나라와 시민사회가 네타냐후 정권의 행보를 비판했다. 일부 유럽 국가는 이스라엘의 군수품 수출입 금지를 선언했고, 유럽연합도 이스라엘과의 자유무역협정을 재검토하며 관세부과를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시민사회 차원에선 광범위한 이스라엘 보이콧 운동이 나타났다. 음악계에선 주요 음반사와 뮤지션이 이스라엘에서 음악 스트리밍을 중단하는 ‘집단학살을 위한 음악은 없다’ 캠페인을 진행했다. 영화계에서는 할리우드를 포함한 1천여 명의 영화인이 이스라엘 영화계와의 교류 보이콧을 선언했으며, 유럽의 수십 개 학술기관이 이스라엘 대학과의 교류를 중단했다. 문제는 시민사회 일각에서 네타냐후 정권 비판과 군수품 금지를 넘어, 이스라엘 시민 전체를 일반화해 비난하는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행태는 이스라엘 사회 내에서 정권에 비판적인 사람들까지도 불안과 고립감을 키우며, 네타냐후의 안보위기 프레임에 더욱 힘을 실어줄 수 있다. 영국 왕립학회장이자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벤키 라마크리슈난은 9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네타냐후 정권에 비판적인 연구자들까지 무차별적으로 보이콧하는 것은 학문의 자유를 침해할 뿐 아니라, 팔레스타인에 공감하는 이스라엘 내 시민들까지 고립시킬 수 있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따라서 이스라엘 내에서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지향하는 시민단체들의 활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에는 유엔의 두 국가 해법에 대한 대안으로 연합국가 방안을 주장하는 단체들이 존재한다. ‘성지연합’과 ‘모두를 위한 땅’과 같은 시민단체들은 연방제 국가 안에서 여러 민족이 공존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그 내용을 알리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외에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 민족의 자결권을 보장하고 평화 구축을 지향하는 60여 개 유대인·팔레스타인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체인 ‘잇츠타임’(It’s Time)이 올해 5월 8~9일 민중평회정상회의(People’s Peace Summit) 포럼을 예루살렘에서 개최했다. 포럼은 토론과 워크숍, 문화행사를 비롯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온라인을 포함해 약 7천 명이 참여했다. 이스라엘 시민사회 단체들의 이러한 목소리가 세계적으로 힘을 얻을수록, 오히려 네타냐후를 비롯한 강경 시온주의 세력이 억제될 수 있다. 또한, 인질협상 이후 답보 상태에서 벗어나, 평화적 해결방안이 진척될 수 있을 것이다. [%=사진5%] [사진] 이스라엘 시민단체들의 평화 포럼 사진은 5월 9일 민중평회정상회의(People’s Peace Summit) 포럼 둘째 날 진행한 “파트너가 있고 길이 있다: 심연에서 벗어날 정치적 해결책” 세션 중 패널토론 장면이다. 해당 세션은 올메르트 이스라엘 전 총리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전 외무장관인 나세르 알키드의 두 국가 해결안에 관한 발제가 있었다. 이후 진행된 패널토론에는 시민단체 활동가인 메이 푼닥, 룰라 하르달(모두를 위한 땅)과 에란 니산, 라완 오데(피닉스 프로그램) 그리고 니달 포카하(제네바 이니셔티브)가 참여해, 연합국가 방안, 안보와 국경, 난민 문제를 비롯한 구체적인 쟁점에 관한 토론을 진행했다. (출처: New Israel Fund) 3) 소결: 핵 군비 경쟁을 자극하는 권위주의 정권을 규탄해야 한다 러시아와 이란을 비롯한 권위주의 국가들은 국제사회의 제재를 회피하며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현재 진행 중인 분쟁과 전쟁을 종식할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전혀 숨기지 않고 있다. 게다가 이들 국가는 핵전력을 증강하거나 핵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제질서를 위협한다. 이들의 핵 의지가 강화될수록, 다른 국가도 자국의 핵무장을 고려하게 되어 세계적인 핵 경쟁을 촉발할 위험이 커진다. 이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과정에서 여러 차례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거론하며 위협을 가한 바 있다. 2023년에는 벨라루스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했으며,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도 미국이 비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탈퇴했다. 이어 2025년에는 핵추진 대륙간 순항미사일 ‘부레베스트니크’와 핵추진 수중 드론 ‘포세이돈’ 실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중국은 핵무기 고도화를 신속히 추진하고 있으며, 북한과 이란도 핵무기와 핵 권리를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세계적인 핵 경쟁의 확대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992년 이후 중단된 미국의 핵실험 재개를 선언했고,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 국가들에 핵 공유를 제안했다. 2010년 체결된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은 내년 2월 기한 만료와 함께 신규 협상 없이 종료될 예정이다. 핵무기가 극도로 비인도적이며 인류절멸 가능성을 내포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오늘날 국제질서는 매우 위험한 상태로 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NPT체제를 비롯한 세계 평화운동이 수십 년간 쌓아 올린 성과를 위협한다. 따라서 권위주의 국가들의 행위가 초래할 위험을 비판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내년에 예정된 NPT 평가회의와 핵무기금지조약(TPNW) 당사국회의는 국제적 규범과 평화 질서를 둘러싼 공론을 재구성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한 사회운동의 적극적 활동이 필요하다. ●
2026년 한국 정치 전망
1. 총평: 비상계엄 1년, 이재명 정부 출범 6개월, 더 후퇴한 한국 정치 2024년 12월 3일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부터 1년이 지났다. 초유의 비상계엄이 준 충격만큼이나, 단 2시간 37분 만에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한 과정과 계엄 선포 당일 국회 앞에서 시작되어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선고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시민들의 평화집회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빛의 혁명’이라는 표현으로 칭송받았다. 올해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국민주권정부’라는 표현으로 한국 사회의 이러한 저력을 새 정부의 정체성으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계엄의 밤’ 뒤 1년이 흐르는 동안, 한국 정치는 여전히 지난해 12월 3일의 파장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당시보다도 퇴행했다. 사회진보연대가 최근 몇 년간 한국 정치를 분석했던 ▲ 정치 양극화, ▲ 제왕적 대통령제, ▲ 헌정위기, ▲ 정치적 내전 상태라는 틀에 비춰보자. 올해 정치 양극화가 더욱 극심해졌다는 것은 광범위한 인식이다. 《중앙일보》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11월 28~29일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는 ‘계엄 이후 정치적으로 더 양극화가 됐다’고 답한 비율은 77%로 ‘그렇지 않다’는 응답(18%)을 압도했다. 이는 지지 정당·정치 성향·연령·지역·직업 등의 변수로 구분해 보아도 큰 차이가 없는 대다수의 의견이었다. 계엄이 우리 사회에 미친 문제점도 ‘정치·사회적 분열 심화’(27%)라는 응답이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정치 양극화의 주된 책임이 어디에 있냐에 관해서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응답은 윤석열 전 대통령 38%, 국민의힘 29%, 국민의힘 지지층의 응답은 민주당 32%, 이재명 대통령 26%로 극명히 갈렸는데, 상대방의 책임만 묻는 이러한 모습 자체가 정치 양극화를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 《국민일보》가 의뢰한 12월 4~5일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86%가 “한국 정치가 양극화되어 있다’고 답했으며, 70%는 ‘매우 양극화되어 있다’고 답했다.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9%에 불과했다. 이 조사에서도 지지 정당·정치 성향·지역·연령·성별 등의 변수와 관계없이 모두 압도적인 비율로 정치 양극화가 심각하다고 인식했다. 역시 ‘비상계엄 이후 국가 정상화 여부’에는 민주당 지지자의 63%는 긍정적 답변을, 국민의힘 지지층은 70%가 부정적 답변을 내놓아 정치 양극화를 방증했다. 이와 같이 정치 양극화가 심각한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보니, 비상계엄 1주년을 맞이한 올해 12월 3일 여러 신문 사설도 비상계엄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고 축하하기보다는, 여야가 여전히 정치적 내전에 가까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중앙일보》는 “통합과 재건이 진정한 내란 극복”이라고 주장했고, 《국민일보》는 “계엄 1년 된 날에도 진영 대결만 보이는 씁쓸한 풍경”이라고 평가했다. 《부산일보》는 국민 통합 대신 내란 심판만을 강조한 이재명 대통령의 1주년 대국민 성명, “2026년을 내란 청산 원년으로 만들겠다”는 민주당, 여전히 계엄에 대한 반성을 보이지 않는 국민의힘 모두 정치적 내전을 심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일보》는 전날 “나치전범처럼 처벌”을 언급한 이 대통령의 발언을 포함하여, 정부·여당의 자의적이고 광범위한 “내란 청산” 조치가 과유불급이 되어 공무원들을 압박하고 반대파 제거에 악용될 것을 우려했다. 한편 비상계엄 사태와 조기대선 정국은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경각심을 키웠고, 이는 정치권과 학계에서 여러 개헌 논의로 이어졌으나, 2017년 대선의 문재인 후보와 마찬가지로 2025년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인 이재명이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관련한 지적을 받자 이 후보도 개헌안을 제시했으나, 총리 국회추천제를 제외하고는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과는 무관한 내용이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 또한 권력구조 개편 문제에서는 미온적인 이 후보를 공세적으로 몰아붙이는 대신 마찬가지 태도를 보였다. 두 후보 모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공약’에 개헌을 통한 정치개혁 약속을 포함하지 않았다. 그 결과 비상계엄 이후 뜨거웠던 개헌 논의가 본격적인 대선 운동 기간이 시작되자 수면 아래로 사라졌고, 지금도 그렇다. 앞서 언급한 《중앙일보》-한국갤럽 조사에서는 대통령 권한 수준에 관한 의견으로 현행 수준 유지(49%), 현행보다 축소(31%), 현행보다 확대(13%) 순서로 답변이 나왔는데, 여기에서는 지지 정당에 따른 차이가 컸다. 민주당 지지층은 현행 수준 유지 응답이 59%로 가장 많았을 뿐 아니라, 권한 확대가 필요하다는 답변이 21%였다. 국민의힘 지지층은 권한 축소 희망이 54%로 가장 많았고, 현행 유지가 그다음(34%)이었다. 즉, 대통령 1인에게 과도한 권력이 주어졌을 때에 생기는 문제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인 2024년 비상계엄 사태를 겪고서도, 현행 대통령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대중적으로 형성되기보다는, 진영 논리에 따른 판단이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윤어게인’ 세력의 행태는 말할 나위도 없고, 국민의힘 정책연구소인 여의도연구원이 2월 19일 개최한 창립 30주년 연속토론회 <제왕적 대통령제? 제왕적 국회가 더 문제!>를 보면, 현 야당 세력이라고 해서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의 문제의식이 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 정치는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더 나아지기보다 오히려 후퇴했다. 이는 무엇보다도 민주당과 국민의힘이라는 거대 양당 주도 세력의 책임이 크다. 주요 선거는 주류 정당에 흔히 중도층의 민심을 붙잡고 지지 외연을 확대하라는 긴장감을 거는 계기로 작동하지만, 심지어 전국 지방선거(2026년 6월 3일)를 딱 반년 남겨둔 12월 초 현재까지, 여전히 계엄의 자장 안에 있는 양당 지도부는 정치 양극화에 힘입어 오로지 핵심 지지층에 호소하는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단일 대오로 이러한 노선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니다. 11월 들어 이른바 ‘명청 갈등’(이재명 대통령계-정청래 민주당 대표계 갈등)과 당대표 선거 ‘1인 1표제’ 논란이 불거지며 민주당 내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12월 3일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비상계엄은 (민주당의)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성명을 낸 것에 반해,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어디까지나 헌법과 법률의 틀 내에서 정치를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였지 군대와 경찰을 동원한 비상계엄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해결해서는 결코 안 될 일”이었다며 선을 긋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당대표도 같은 기조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정청래 지도부나 장동혁 지도부도 단순한 소신이나 전체 당 차원의 선거 전략을 넘어 당내 권력 싸움의 측면에서 극단적 노선을 택한 것이므로, 양당 모두 당내에서 토론과 타협으로 쉽사리 갈등이 정리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민주당은 내년 1월 중순 지방선거 출마로 공석이 된 최고위원 세 자리에 대한 보궐선거와, 8월 당대표 선거에서 친명(친이재명)계와 정청래계가 본격적으로 맞붙는 것이 기정사실이다. 국민의힘은 장동혁 대표 선출에 기여한 ‘윤어게인’ 세력과 의석을 잃을 위기감이 커진 초·재선 및 수도권 지역 의원 간의 갈등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표면에 떠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러한 경쟁의 결과로 각 당내 세력구조가 크게 바뀌거나,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중대한 변수가 한국 사회에 닥치지 않는다면 12월 현재의 형국이 2026년에도 반복될 것이다. 즉 민주당 지도부는 국민의힘 정당 해산까지 염두에 두며 ‘내란 청산’ 국면을 지방선거까지 끌고 가려 하고, 국민의힘 지도부는 계엄 사과와 윤 전 대통령과의 단절을 명확히 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대신 대구·경북 수성만을 노리고 이재명 정부, 민주당과의 ‘체제 전쟁’(장동혁 대표 표현)에만 집중할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민주당에 유리한 구도다. 통상 임기 중간의 선거는 현 정권 평가의 장이 된다.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 문제, 그리고 그와 맞물린 민주당의 급격한 ‘사법개혁’ 추진에 관해 정부와 여당에 대한 비판도 2026년에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사건에 대한 여론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크게 떨어지거나 국민의힘 지지율이 오르거나 하지 않은 것처럼, 민주당의 행태가 아무리 실망스럽더라도 국민의힘의 행태가 그보다 더 실망스럽다면 민주당 우세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올해 어느 정도 확인이 된 셈이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여론은 올해 내내 50~60% 이상으로 집계되었다) 각종 수사를 통해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씨의 행적이 계속 드러나는 상황에서도 이와 절연하거나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국민의힘이 계속 보이는 한, 이러한 구도는 쉽사리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런 측면만 보더라도, 한국의 헌정위기는 긍정적인 변화의 계기를 찾을 수 없었다. 이재명 정부 등장 후 이른바 ‘사법개혁’을 통해 헌정위기의 질적 비약을 가하는 측면은 뒤에서 분석한다. 2024년 비상계엄 선포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극단적 헌정위기 사태였다. 그러나 우리는 헌정위기란 단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말 그대로 헌정의 여러 핵심 원리가 위기에 처한 상황이라고 보았다. 즉, 헌정의 원리인 견제와 균형이 거의 작동하지 않고, 야당과 윤석열 대통령, 여당이 각각 대선과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과 그 결과에 승복하지 않으며 극도의 갈등을 벌여 온 과정 전체가 만성적 위기였다.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듯한 태도는 ‘부정선거’ 음모론과 다른 차원의 문제이지만, 후자를 전자가 극에 달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개인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려면 국가 권력의 자의적 행사는 헌법에 따라서 제한되어야 한다는 ‘정치원리’로서 ‘헌정주의’가 깊게 뿌리내리지 못한 한국의 현실, 그러한 현실을 드러내고 재생산하는 권력구조인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배경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런데 앞서 보았듯, 극한 대립을 부추기는 정치 양극화는 올해 더 심각해졌으며,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권력구조는 논의에서 밀려났다. 이미 조기대선까지 가는 국면에서, 우리는 만성적 헌정위기의 징후로서 정당 민주주의의 붕괴에 주목했다. 민주당에서는 2022년 대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2024년 총선과 당대표 선거를 거치며 ‘팬덤 당원’이 주도하는 당내 민주주의 파괴와 일극화, 일명 ‘이재명의 민주당’화가 이뤄졌으며, 이것이 4월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극명히 드러났음을 짚었다. 한편 2022년 대선에서 정권교체에 성공한 국민의힘은 윤석열 정부 시기에 제왕적 대통령을 중심으로 계파를 형성하고 당권과 공천권 장악에만 몰두했는데,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자행한 초유의 비상계엄 이후로는 전신인 새누리당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대국민 사과를 하고 국회 탄핵 표결에 동참한 것과 달리 갈수록 가관인 모습을 보였다. 친윤계를 비롯한 상당수 의원이 사실상 계엄을 옹호하거나 대통령 탄핵을 반대했고, 계엄 해제와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한동훈 대표를 끌어내리고 ‘윤핵관’인 ‘쌍권’ 권영세, 권성동 의원을 중심으로 당권 장악에만 몰두했다. 당권파는 대선후보 경선에서 ‘반탄’ 김문수 후보가 승리한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김 후보가 한덕수 전 총리와의 단일화에 소극적으로 나서자, 경선을 거쳐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대선후보를 비상대책위원회와 선거관리위원회의 긴급 의결로 강제 교체한 한밤중의 ‘당내 쿠데타’까지 벌였다. 정당정치와 민주주의 파괴의 극치였다. 이와 같이 대선 준비 과정만 보더라도, 양대 정치세력이 서로를 핑계로 제왕적 대통령제와 정치 양극화가 자리 잡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위기 속에서 헌정 위기를 만성화하는 길로 나아가리라는 예측은 대선 이후 실현되었다.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당내 구도가 ‘찬탄’(탄핵 찬성)/‘반탄’(탄핵 반대)이 아니고 ‘친길(친전한길)/반길(반전한길)’이 되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윤어게인’과 ‘부정선거’를 외치는 유튜버 전한길에게 휘둘렸다. 결국 전한길 씨와 당권파를 등에 업은 ‘반탄 친길’ 장동혁 후보가 당대표가 되었다. 장 대표는 자신의 당선이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만들어낸 승리”라며 보수 유튜버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유튜브와 《딴지일보》를 매개로 ‘민주당 상왕’이라 불릴 정도로 민주당 지지층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김어준 씨와 손을 잡고, ‘당원주권정당’ 건설이라는 명목으로 당의 대의원 제도를 무력화하는 ‘1인 1표제’(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가치를 현행 20대 1에서 1대 1로 변경) 당헌 개정을 추진했다. 정 대표는 8월 전당대회에서 당선될 때에도 대의원(46.91%)보다 권리당원(66.48%) 득표가 상당히 높았는데, 권리당원 표의 가치를 대폭 강화하면 김어준 씨 팬층이나 정 대표가 당정 간 엇박자를 감수하면서까지 ‘3대 개혁’(검찰·언론·사법)을 밀어붙이며 확보한 강성 지지층을 통해 당권을 장악하기 더욱 쉽다는 계산으로 보인다. 이는 ‘개딸’로 상징되는 강성 팬덤의 당내 영향력을 키우는 방식으로 ‘이재명의 민주당’이 만들어진 과정과 비슷하다. [%=사진1%] [그림] 12월 13일 대국본 집회와 촛불행동 집회 포스터 연말에도 규모는 줄었지만 올해 초와 같은 ‘극단의 광장’이 열려있다. 2025년 12월 13일 집회를 알리는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대국본)와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 포스터다. 대국본 집회 참가자들은 이날 집회에서 “이재명을 끌어내자”, “(내란 특검을 이끄는)민중기를 끌어내자”, “윤어게인”을 외쳤다. 대국본을 주도하는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는 “이제 국민저항권을 발동할 시간”이라고 발언했다. 김은진 촛불행동 공동대표는 같은 날 집회에서 “내란 수괴(윤 전 대통령)가 아직도 처벌받지 않은 이유는 판사들도 내란범들과 한통속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촛불행동 집회 참가자들은 대법원 앞에서 “조희대(대법원장)를 탄핵하라!”, “(내란)특별재판부 설치하라!”, “국민이 법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마지막으로, 올해는 이재명 대통령 본인의 ‘사법 리스크’와도 결부된 집권당 민주당의 사법부 압박과 각종 ‘사법개혁’ 움직임, 그리고 ‘내란 청산’의 판을 더 키워 지방선거까지 끌고 가겠다는 정부·여당의 거침없는 행보로 인해, 헌정의 구성 요소 중에서도 국가 권력 간의 상호 견제, 그중에서도 사법부의 독립성이 무너진다는 위기감이 증폭되었다. 정치권은 이재명 대통령, 윤석열 전 대통령, 김건희 씨를 비롯한 여러 정치인을 둘러싼 각종 수사와 재판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깊숙이 개입하려 하고, 사법부와 국가기관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다음부터는 이상의 정세인식을 바탕으로, 2026년에도 한국 정치의 주요 쟁점이 될 “내란 청산”과 이와 결부된 민주당의 “사법개혁” 전망을 분석하고, “이재명과 민주당이 집권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를 복원했나”라는 질문을 던진다. 주요 정당들의 2026년 6월 지방선거 준비 태세도 살핀다. 결론으로는 사회운동이 심각한 정치적, 사회적 분열을 넘어서는 정치를 모색할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2. “내란 청산”과 사법부 압박 ○ 3대 특검 상황과 전망 비상계엄 선포의 전모를 비롯하여 전 정부에 제기된 수다한 의혹을 파헤치는 목적으로, 6월 5일, 국회에서 일명 ‘3대 특검(특별검사)’으로 불리는 ‘내란 특검법’, ‘김건희 특검법’, ‘채 상병(순직 해병) 특검법’이 민주당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은 당론으로 이를 반대하고 퇴장했지만, 안철수 의원과 일부 친한계 의원의 이탈표가 있었다. 이 대통령의 재가와 특검 구성이 빠르게 이뤄지면서, 내란 특검은 6월 중에, 김건희 특검과 채 상병 특검은 7월 초에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1) 채 상병 특검: 11월 28일 가장 먼저 종료한 채 상병 특검(이명현 특검팀)은 채 상병 사망 사건과 이에 대한 윤 전 대통령 등의 수사 외압 의혹,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 외압 의혹,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 대사 도피 사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 사건 등을 수사했다. 이른바 ‘VIP 격노설’과 조직적 수사 외압의 진상을 어느 정도 밝혀냈으나, 윤 전 대통령의 격노와 수사 외압의 고의성을 입증할 고리인 임성근 구명 로비 의혹을 밝혀내지 못하고 마무리되었다. 구속영장을 10회 청구했지만 임 전 사단장을 제외한 9건 모두 기각된 점도, 무리한 구속영장 청구로 수사 동력을 상실한 것 아니냐는 비판 지점이 되었다. 2) 김건희 특검: 김건희 특검(민중기 특검팀)은 김건희 씨의 명품 가방과 다이아몬드 목걸이 수수, 도이치모터스·삼부토건 주가조작, 정치 브로커 명태균 씨가 연루된 공천 개입 의혹, 건진법사(전성배)의 선거 개입 의혹, 관저 이전 부당 개입 의혹 등 16개 의혹을 수사했다. 특검은 8월 29일 김 씨를 구속 기소했으며, 12월 3일 김 씨에게 징역 15년에 벌금 20억 원을 1심에서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특검은 김 씨가 2010∼2012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적극 공모하였으며, 명 씨에게 여론조사 결과 58회를 무상으로 제공받았으며, 김 씨의 통일교 커넥션 의혹, 공천 개입 의혹 등에 대해 “종교단체와 결탁해 헌법상 정교분리 원칙을 무너뜨렸으며 민주주의 근간인 선거의 공정성과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국가 통치 시스템을 붕괴시켰다”며 자본시장법·정치자금법 위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를 제기했다. 김 씨의 1심 선고는 내년 1월 28일이다. 그런데 12월 현재, 김건희 특검의 편파성 논란에서 촉발된 이른바 ‘통일교 게이트’가 커지고 있다. 8월 수사 과정에서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전재수 해양수산부장관 등 민주당 인사들에게도 금품을 건넸다고 김건희 특검에 증언했음에도, 이에 대해서는 수사하지 않았음이 《한겨레》의 취재로 12월 초 드러난 탓이다. 《한겨레》는 특검이 ‘별건 수사’라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실제로는 이미 서울-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과 관련해 별건으로 인지한 국토교통부 서기관의 뇌물수수, 김건희의 집사로 불리는 김예성 씨의 ‘집사 게이트’ 의혹과 관련한 아이엠에스모빌리티의 대기업 투자금 유치, 조영탁 아이엠에스모빌리티 대표가 기자에게 수천만 원을 줬다가 구속된 사건 등, 특검법의 수사 범위에 포함된다고 말하기 어려운 사건들을 여럿 처리했다고 지적했다. 특검이 통일교와 국민의힘 인사의 유착을 수사하여 권성동 의원의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과도 대조적이다. 특히 윤 전 본부장이 진술한 민주당 인사 금품 전달 시기는 2018년으로, 정치자금법 위반죄를 적용하면 올해 말로 공소시효 7년이 만료되기 때문에, 특검의 ‘덮어주기’가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왔다. 12월 10일 결심공판에서 윤 전 본부장은 당초 공언과 달리 추가 폭로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언론 취재로 그가 특검에서 전 장관뿐만 아니라 정동영 통일부장관, 임종성 전 민주당 의원,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 김규화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의 이전 이름) 의원 등을 언급했고, 특검이 입수한 통화 녹취록에 2022년 초 당시 통일교가 이종석 국가정보원장(당시 이재명 대선 후보 선대위 평화번영위원장) 등 민주당 인사들을 만난 정황이 담겨 있는 사실이 알려졌다. 같은 날, 경찰청이 편성한 중대범죄수사과 내 특별전담수사팀이 통일교의 민주당 지원 의혹 수사에 착수했다. 전재수 해양수산부장관이 12월 11일 사퇴하자 야권의 공세는 더 강해져,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이 ‘통일교 특검’ 도입을 집중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사진2%] [사진]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 사퇴 2025년 12월 11일, UN해양총회 유치를 위해 출국했다 귀국한 전재수 해양수산부장관이 인천공항에 모인 취재진 앞에서 ‘통일교 금품 수수 의혹’에 “장관직을 내놓고 당당히 응하겠다”며 사퇴를 선언했다. 관련 수사가 아직 진행 중으로 의혹의 진위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재명 정부 내각의 첫 낙마이자 가장 유력한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의 장관 사퇴 자체의 충격이 컸다. (사진출처: 《뉴시스》) 3) 내란 특검: 조은석 특검이 지휘하는 내란 특검은 군사 반란, 내란 선동, 무인기 평양 침투 의혹을 포함한 외환죄 혐의 등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한 범죄 혐의 열 가지에 더해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을 대상으로 했다. 윤 전 대통령을 비롯하여 한덕수 전 국무총리,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장관 등 국무위원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 군 관련 인사들, 그리고 계엄 계획에 ‘비선’으로 개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노상원 전 국군 정보사령관 등을 구속 수사했다. 이를 통해 헌법재판소 판결이 지적한 계엄 선포 절차의 위법성과 관련 국무위원들의 위증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윤석열 정권이 무인기와 대북전단으로 남북 간 무력충돌을 유도하려 했다는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입수했다. 이에 윤석열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헌정사상 처음으로, 외환죄인 일반이적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내란 특검은 지난해 5월 김건희 씨가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에게 자신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수사와 관련해 보낸 메시지나 창원지검이 작성한 ‘명태균 공천개입 의혹’ 수사보고서를 박 전 장관이 김 씨에게 전달한 증거를 확보하자, 이를 토대로 김 씨를 둘러싼 사법 리스크를 타개하기 위해 윤 전 대통령과 김 씨가 계엄을 모의했다는 의혹을 규명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특검 종료 시점까지 이를 결정적으로 증명하거나 김 씨가 사전에 계엄 계획을 알고 개입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를 잡지 못했다. 12월 15일 내란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동기는 무력으로 정치적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기간 독점, 유지하려는 것이었으며, 계엄 준비에 나선 시기는 2023년 10월 이전으로 판단된다고 최종 수사 결과를 정리했다. 김건희 씨가 비상계엄에 관여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내란 특검도 지난 반년간 계엄 가담 관련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6명 가운데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을 제외한 나머지의 구속영장이 잇따라 기각되자, 수사가 조급하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법원은 한덕수 전 국무총리,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추경호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하며 “혐의 및 법리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 “불구속 수사 원칙이 앞선다”며 사유를 밝혔다. 이는 이들에게 혐의점이 없다는 ‘면죄부’라기보다는, 특검의 수사가 구속 필요성을 입증하기에 부실하거나, 불구속 수사 원칙을 고려했을 때 구속영장 청구가 다소 무리하다고 판단했다는 의미다. 연내로 마무리되는 3대 특검의 후속 수사는 본래 경찰청 몫이다. 12월 1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11월 종료한 채 상병 특검 사건을 넘겨받았다고 알리며, 나머지 두 특검도 수사 기간이 끝나면(내란 특검 12월 14일, 김건희 특검 12월 28일) 인계받기 위해 ‘3대 특검 특별수사본부’를 꾸리고 12월 중부터 후속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같은 날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3대 특검이 마무리하지 못한 사건이 경찰 국가수사본부에 이첩되면, 국민의힘이 수사기관에 대한 공정성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며 3대 특검 사건을 통합한 2차 종합 특검이 필요하다고 공언했다. 3일 이재명 대통령이 “현재도 밝혀지지 않은 것이 너무 많아 보인다”고 언급하며 2차 특검에 힘을 싣자, 여당의 2차 특검 추진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이 2차 특검은 통합하겠다고 한 까닭은, 특검 세 개가 대규모로 진행되다 보니 올해 검찰의 일반 수사 역량이 크게 떨어졌다는 비판을 의식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왜 경찰청이 아니라 특별검사를 통해 수사를 이어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민주당의 계획대로 2차 특검이 진행된다면 2026년 6월 지방선거로 가는 길도 내내 ‘내란 국면’이 되기 쉬울 것이다. 더불어 내년 1~2월에는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 김건희 재판, 계엄 관련 군 및 경찰 인사 재판의 1심 선고가 이뤄질 계획이므로, 2026년에도 비상계엄 선포와 김건희 씨의 사법 리스크를 둘러싼 공방은 계속될 것이다. ○ 민주당의 “내란 청산” 입법 그런데 특검과 민주당 측은 특검의 미진한 수사 진행이나 연이은 구속영장 기각을 “내란 청산”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는 사법부의 문제로 돌렸다. (내란 특검팀은 대법원이 계엄에 순응하거나 동조하기 위해 회의를 열었다는 의혹에 따라, 대법원이 비상계엄 직후 심야 긴급 회의를 연 경위를 묻는 질의서를 법원행정처에 보내기도 했다.) 이에 2차 특검을 포함하여 특검 수사를 보완하기 위한 여러 입법과 조치를 추진하고 있는데, 대다수는 사법부를 겨냥한 것이다. 이 중 12월 3일 범여권의 주도로 법사위를 통과한 ▲ 윤석열·김건희 등의 국정농단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전담재판부(일명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에 관한 법률안, ▲ 법 왜곡죄 신설 등 형법 개정안, ▲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 개정안을 살펴보자. ①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민주당이 가장 우선순위를 두고 연내 처리를 시도하는 법안이자 현재 가장 뜨거운 논란의 대상은 내란특별재판부(내란전담재판부)다.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주장은 7월부터 있었으나 논의가 잠정 중단 상태였다. 그러나 지귀연 부장판사가 담당하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 재판이 지연되고 있으며, 지난 3월 윤 전 대통령의 구속 취소를 결정하기도 한 지 판사의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를 받아안은 민주당 강경파 의원들이 11월 중순부터 앞다투어 필요성을 거론했다. 11월 24일 민주당은 당론으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것을 공식화했다. 같은 시기 민주당이 추진하는 각종 ‘사법개혁’안과도 맥락을 같이했다. (뒤에서 자세히 다룬다.) 기존 사법체계와 별개로 특정 사건을 위해 ‘특별’히 구성되는 재판부라는 구상은 처음부터 위헌 논란을 크게 일으켰다. 민주당도 이런 비판을 의식하여 표현을 기존의 전담재판부 제도에서 따온 ‘내란전담재판부’로 바꿨지만, 전담재판부와는 성격이 다르다. 전담재판부는 재판 효율성을 위해 지식재산권 등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의 불특정 사건들을 전담하여 다루는 재판부로, 특정한 사건과 피고인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 아니다. KBS는 내란특별재판부가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27조 제1항과 충돌한다고 보았다. 여기서 ‘법률이 정한 법관’이란,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법률(법원조직법 등)에 따라 자격이 부여되고 물적·인적 독립이 보장된 법관을 뜻한다. 자의적 기준에 따라 외부 세력이나 법원 내부 세력이 법관을 배당하거나 교체하는 것을 방지해 재판의 독립성을 담보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형사사건은 특정 판사에게 임의로 배당되어서는 안 되며, 컴퓨터를 통한 무작위 배당이 원칙이다. 그런데 12월 3일 법사위를 통과한 민주당의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특별법은 비상계엄 관련 내란·외환죄 재판을 위해, 추천위원회를 통해 판사를 추천·임명하고 재판부를 설치하도록 했다. 특정한 사건을 겨냥하여 특정한 기준에 따라 임명한 판사로, 그것도 이미 다른 판사가 재판을 진행 중인 상황에서, 재판부를 따로 구성하자는 것이다.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불신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피고인은 일반적인 원칙에 따라 구성된 재판부가 아니라 자신과 관련된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재판부에서 재판을 받게 되므로, 헌법에 명시된 ‘공정한 재판을 받을 피고인의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12월 5일 전국법원장회의는 “비상계엄 전담재판부 설치 법안과 법왜곡죄 신설 법안은 재판의 중립성을 훼손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해 위헌성이 크다”며 “법안의 위헌성으로 인해 많은 혼란이 초래될 수 있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대한변호사협회도 12월 8일 “특정 사건이나 특정 집단을 염두에 둔 입법은 그 자체로 법치주의의 핵심인 법 앞의 평등 원칙에 위배될 위험성이 크다”면서, “특정 시점과 특정 사안에 따라 입법부가 재판부 구성이나 법관·검사의 직무수행에 영향을 미치는 입법을 반복하면 국민도 그 입법 취지의 순수성에 공감하기 힘들 것”이라는 내란특별재판부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이와 같이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특별히 담당하는 한시적 재판부 설치 자체가 위헌이라는 의견에도,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범여권은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추천위원회의 구성 등 세부적인 부분을 고쳐서 위헌 소지를 최소화하여 계속 추진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여야가 나흘간 대치한 본회의장 필리버스터가 12월 14일 정기국회 1차 본회의에서 끝이 난 뒤, 민주당은 23일 열리는 본회의까지 특별법을 수정해 다시 상정하기로 했다. ② ‘법 왜곡죄’ 신설 ‘법 왜곡죄’ 법안은 판사나 검사가 증거를 조작하거나 사실관계를 왜곡 또는 묵인하여 판결할 경우, 10년 이하 징역 또는 자격정지로 처벌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이다. 정청래 대표는 법 왜곡죄가 필요한 사례로 ‘검찰 간부가 쿠팡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수사팀에 무혐의 처분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들었고,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재판 중인 지귀연 판사가 “만약 1심에서 윤석열을 풀어주거나 무죄를 선고한다면, 처벌이 가능하다”라며 입법 취지를 밝혔다. 그런데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한국 형법에 처음으로 ‘왜곡’이라는 단어가 포함된다. 현행 형법의 조항과 조문에는 왜곡이란 말이 전혀 없다. 왜 그럴까? 무엇이 왜 ‘왜곡’인지 자체가 너무나 모호하며 자의적 판단의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어떤 행위가 죄가 되는지는 누구나 예측할 수 있게, 명확하게 법에 규정되어 있어야 하며, 국가는 자의적으로 법을 해석하거나 형법을 집행하지 않아야 한다는 법의 명확성과 죄형법정주의 원칙은 법치 원리의 핵심 요소다. ‘왜곡’을 처벌하겠다고 하는 순간 이러한 원칙이 흔들릴뿐더러 역으로 왜곡에 취약해진다. 법리적으로 보면 그렇고, 현실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수사나 판결이 ‘법 왜곡죄’에 해당한다는 주장이 난무하고, 권력이 사법부를 장악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따라서 민주당의 ‘법 왜곡죄’ 추진에 법조계와 야당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법무부와 법원행정처는 “‘고의로 왜곡’, ‘범죄사실을 묵인’, ‘공소권을 현저히 남용’ 등 처벌 대상이 추상적”이라고 했다. 법원행정처는 “헌법이 인정하는 법관의 재량과 법 왜곡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도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전국법원장회의도 해당 제안이 위헌성이 크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점은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이석연 위원장이 12월 11일 정청래 대표를 만나, ‘법 왜곡죄’ 추진은 “정말 부끄러운 문명국의 수치”이며 “헌법의 기본 원리나 정신을 이탈한 정치는 폭력”이라고 작심 비판을 한 일이다. 이 위원장은 사회 갈등이 매우 심각한 상황에서, “관용과 진실, ‘자제’에 입각한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려면 정치권이 “헌법이 마련해 준 궤도”를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③ 공수처법 개정 공수처법 개정안은 대법원장·대법관·검찰총장·판사·검사 등 고위 공직자에 대한 ‘모든 범죄’를 공수처의 수사 범위로 확대했다. 현행법이 뇌물 수수, 직권남용 등 직무 관련 8개 범죄로만 수사를 제한한 것과 대비된다. 법안의 내용을 살펴보더라도, 발의 시점이 민주당이 ‘대선 개입 의혹’ 긴급 청문회를 추진하며 조 대법원장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던 9월 22일이라는 점을 보아도, 조 대법원장을 겨냥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9월 22일 법사위 민주당 의원들은 조 대법원장과 관련한 ‘대선 개입 의혹’ 청문회를 기습적으로 상정·의결했다. 대다수 언론이 명확한 근거 없이 대법원장 청문회를 추진하는 것은 터무니없으며 삼권분립 훼손이라고 크게 비판했으나, 정청래 대표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대통령도 갈아치우는 마당에 대법원장이 뭐라고”라고 발언했다. 조 대법원장이 9월 30일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자, 국정감사 첫날인 10월 13일 추미애 법사위원장은 관례대로 인사말 뒤 퇴장하려는 조 대법원장을 가로막고 질의를 강행했다. 조 대법원장은 “삼권분립 법치국가에서 재판사항에 대해 법관을 감사나 청문의 대상으로 삼아 증언대에 세운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발언한 뒤 90분간 침묵했다. 이틀 뒤 법사위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원이 5월 당시 충분한 검토 없이 이른바 ‘정치 판결’을 내린 것은 아닌지 확인하겠다며 현장 검증에까지 나섰다. 조 대법원장을 차치하고서라도, 대법원장, 대법관, 검찰총장과 모든 판사와 검사의 모든 행위가 수사 대상이라는 점에서, 이 법안은 법조인을 정치적으로 압박하여 사법부 독립성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 또한 당초 공수처는 공수처 웹사이트에 소개된 대로, “고위공직자의 권력형 비리와 반부패 범죄에 대한 엄정한 수사를 통하여 공직사회 부패 척결”을 공식 명분으로 하여 설립되었다. 실제 출범에는 기소권을 독점해 온 검사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맡아 검찰을 견제하려는 목적이 컸다. 여기에 비춰보면, 공수처의 수사 대상과 범위를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넓히는 것은 본래 출범 명분에서 벗어난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에 권력이 집중되어 문제가 생긴다며 공수처를 만들고 검찰청을 폐지했으면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진 공수처의 권한을 크게 키우는 것도 모순이다. 세간에서는 공수처의 ‘무능’도 공수처법 개정안을 우려하는 까닭 중 하나다. 출범 뒤 1년간 공수처가 기소·구속한 사건은 한 건도 없었다. 지난 5년 동안 공수처는 예산 776억 원을 썼으나, 구속영장 8건을 청구해 그중 2건만 발부받고, 6건을 기소한 것이 실적의 전부다. 출범까지 엄청났던 정치적 갈등이 무색할 정도로 공수처가 유명무실하다보니, 올해 국정감사에서 여야 모두 공수처의 실적 부진을 질타했다. 비상계엄 이후 내란죄 수사 초기에 일어난 검경과 공수처의 수사경쟁 과열, 그리고 그 뒤에 벌어진 공수처 수사의 절차적 정당성 논란을 겪으며 공수처의 존재 의의에 회의적인 반응은 더 커졌다. 그런데 민주당이 시도하는 사법 체계의 변화는 이 세 법안만이 아니다. ○ 민주당의 ‘검찰개혁’과 검사 압박 먼저, 2019년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자녀 입시 비리, 사모펀드 의혹(‘조국 사태’)에 대한 검찰의 수사 이후로 민주당이 줄기차게 외쳐온 ‘검찰개혁’은 올해 9월 26일 민주당의 주도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10월 2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하며 실현되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줄곧 존재한 검찰청을 폐지하고, 검찰이 담당하던 수사와 기소 기능을 분리하여 각각 신설될 행정안전부 산하 중대범죄수사청과 법무부 산하 공소청에 맡기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 수립 이후 가장 큰 형사사법체계의 변화이자 문재인 정부부터 추진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의 실현이지만, 내년 10월 2일 법 시행을 1년 앞두고 공소청과 중수청의 구체적 권한 배분, 특히 공소청에 보완수사권(또는 보완수사요구권)을 부여할지, 전건송치 제도를 부활시킬지 등 쟁점이 남아 있다. (올해 전부 실현되지 않은 ‘검수완박’론자들의 수사권 관련 구상이나 수사와 기소의 분리가 세계적 표준이라는 주장에 대한 비판은 10월 14일 《사회운동포커스》의 “검찰개혁의 역설: 행정부 권력 집중과 경찰사법으로 나아가는가?”를 참고하라.)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불송치 사건과 이의신청 건수가 대폭 늘어난 현실의 문제가 있다. 모든 사건이 자동으로 검찰에 넘어가는 ‘전건송치’ 제도가 폐지되고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얻어, 피해자가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불복해 검사의 판단을 받으려면 직접 이의신청을 제기해야 한다. 그에 따라 경찰의 결정을 납득할 수 없지만 법리에 익숙하지 않은 시민이 수백만 원에 달하는 변호사 비용을 부담해서라도 이의신청하는 사례와,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은 시민이 이의신청을 포기하는 사례 양자가 늘어났다. 형사사법체계를 통해 시민이 권리와 피해를 구제받는 일이 전보다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사회진보연대는 문재인-이재명 정부가 이와 같이 시민의 부담을 강화하며 추진한 검찰개혁의 방향은 행정부와 집권세력이 수사권력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길을 여는 것이라고 우려해왔다. 올해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결국 1차 수사기관(경찰·국가수사본부·중대범죄수사청)을 행정안전부 산하로 집중시키고, 법무부 소속이나 법관과 유사하게 사법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 때문에 ‘준사법기관’으로 불려온 검사와 달리, 행정력에 속하는 경찰이 수사권을 독점하는 체제를 만들었다. 국가의 수사가 소위 ‘정권 입맛’에 맞게 굴러가기 더 용이해졌다는 뜻이다. 여기에 더해 대장동 사건 재판 항소 포기 이후 검사들에 대한 정권과 여당의 압박도 도를 넘고 있다. 《시사IN》은 항소 포기에 대한 검찰 내부의 반발을 “항명”으로 규정한 민주당이 “검찰 분쇄에 가까운 진압 작업에 돌입”했다고 평가했다. 문재인 정부가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검찰총장에 임명하여 검찰을 통제하려다 정권을 빼앗긴 것을 교훈으로, 이재명 대통령은 7월 1일 심우정 전 검찰총장이 사퇴한 뒤 검찰총장을 아예 지명하지 않고 있다. 이미 역대 최장 기간의 검찰총장 권한대행 체제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검찰청 폐지가 확정된 만큼 내년 10월 검찰청 폐지까지 공석으로 둘 가능성이 크다. 대신 여당과 정부가 직접 검찰을 통제하려 시도하고 있다. 대장동 사건 재판 항소 포기 사태 일주일 뒤인 11월 14일 민주당은 ‘검사징계법 폐지법률안’과 ‘검찰청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일명 ‘검사파면법’). 검사도 일반 공무원처럼 공무원 징계령으로 처벌받도록 하는 내용으로, 검찰총장을 포함한 모든 검사를 정부가 파면·징계할 수 있게 된다. 국회의 탄핵소추를 거쳐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구하는 기존의 검사 파면 절차도 윤석열 정권 들어 민주당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시도하여 큰 논란이 되었으나, 여섯 건 전부 헌재에서 기각되었다. 민주당은 이제는 기각 판결의 부담 없이 검사를 파면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간의 법이 검사의 파면을 일반 공무원과 달리 어렵게 했던 취지는 수사 공정성과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법관과 같은 신분보장을 하는 것이었다. 검사의 독립성이 무너지면 ‘정치검사’가 제도화된다고 우려한 것이다. 《시사IN》이 인용한 인터뷰도 다음과 같이 예상한다. “(검사파면법 통과는) 사실상 검찰총장부터 법무부 장관의 명실상부한 부하가 된다는 뜻이다. 이 법안이 없어도 검찰총장 대행이 ‘정부의 단순 의견 제시’에 대통령이 연계된 사건 재판 항소를 포기하는 일까지 생겼는데, 검사 파면법이 통과되면 목숨줄을 쥔 장관 앞에서 소신을 발휘할 수 있는 검찰총장, 검사가 얼마나 되겠나. 정치검사를 더 양산하게 될 것이다.” 《시사IN》은 “검찰개혁의 초기 아이디어, 검찰의 민주적 통제라는 말은 정권이 검찰을 입맛대로 굴리라는 말이 아니라, 민주정의 작동 원리에 구속시키라는 말이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검사파면법 발의 당시 법안을 연내 처리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12월 현재 민주당의 우선순위가 내란특별재판부에 있고 ‘통일교 게이트’도 불거진 상황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미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들이 좌천·강등되고 있다. 12월 11일 법무부는 대장동 항소 포기의 경위를 설명하라고 요구한 성명서를 주도한 박혁수 대구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사실상 좌천했다. 함께 주도한 정유미 검사장은 평검사로 강등시켰다. 법무부는 이번 인사가 “기강 확립 및 분위기 쇄신을 위한 것”이라며 “항명”에 대한 징계임을 숨기지 않았다. 《한겨레》는 반대로 신임 수원·광주·대구·부산지검장 인사는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에 항의 의견을 주도한 검사들을 밀어내고 문재인 정부 당시 주요 보직에 있었던 검사들로 물갈이한 것”이라는 평가를 보도했다. ○ 민주당의 ‘사법개혁’ 다음으로는 10월 20일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발표한 ‘6대 사법개혁 의제’, 즉 대법관 증원,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 구성 변경, 법관평가제도 변경, 하급심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재판소원 도입을 살펴보자. 이는 더불어민주당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가 최종 확정하여 발표한 5개 사법개혁안에, 정 대표가 당 지도부 안으로 별도 발의하겠다고 한 재판소원을 더한 것이다. 사개특위는 8월 취임한 정청래 대표의 공약인 ‘사법개혁 완수’를 위해 8월 12일 출범했다. ① 대법관 증원 사개특위는 대법관을 1년에 4명씩 3년간 증원하여 현행 14명에서 26명으로 늘리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늘어난 대법관으로 인해 대법원은 6개의 소부와 2개의 연합부, 즉 실질적인 전원합의체(대법정)가 2개 구성되는 구조로 개편된다. 그런데 현재 대법관들의 임기를 고려하면 이 대통령 임기 중에 전체 26명 중 22명이 임명되게 된다. 대법관 수에 비해 업무가 과중하여 재판이 지연되므로 증원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법조계에도 형성돼 있다. 다만, 법원행정처, 대법원, 전국법원장회의 등은 급격한 증원은 ‘코드 인사’로 사법부를 정치권에 예속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장기간에 걸친 순차적 증원이 필요하다는 태도를 밝혔다. 두 전원합의체의 의견이 엇갈려 말 그대로 ‘전원합의’라는 의미가 사라지고 의견 충돌이 벌어지면 해결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있다. ②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 구성 변경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위원 수를 현 10명에서 12명으로 늘리고, 법원행정처장을 위원에서 제외하는 대신 헌법재판소 사무처장과 지방변호사회장 과반수가 추천하는 변호사 1명을 새로 포함하는 안이다. 기존 ‘대법관이 아닌 법관 1명’ 몫은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추천하는 법관’ 2명(여성 1명 포함)으로 변경하고, 대법원장이 임명하던 추천위원장은 위원 간 호선으로 뽑게 한다. ③ 법관평가제도·법관인사위원회 변경 법관 근무 성적 평가 중 ‘자질 평정’ 부분에 대해 대한변호사협회의 법관 평가 결과를 반영하는 안이다. 법관 인사에 관한 중요사항을 심의하고 대법원장에게 자문하는 대법원 소속 위원회인 법관인사위원회 구성도 개편해, 기존에 대법원장이 임명하던 법관 3명을 대법원장 추천 1인, 전국법원장회의 추천 1인, 전국법관회의 추천 1인으로 변경한다. 아울러 변협 추천 몫 2명 중 1명은 지방변호사회 추천으로 하도록 했다. ④ 하급심(1·2심) 형사 판결문 공개 확대 형사사건 1심, 2심 판결문을 확정 전이라도 전면적으로 열람하고 복사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재판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대법원 의견을 반영해 예외 조항을 두고, 2000년 8월 1일 이후 선고된 판결부터 소급 적용하기로 한다. ⑤ 압수수색영장 발부 전 사전심문제 도입 판사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기 전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관련자를 불러 대면 심문할 수 있는 절차를 도입한다. 그럼에도 수사의 신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심문 여부를 결정할 때 수사기관의 의견을 듣도록 하는 단서 조항을 포함한다. ‘5대 사법개혁안’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정청래 대표가 강조한 재판소원처럼 민주당 내에서 논의된 안들도 있다. ⑥ 재판소원 도입 재판소원은 대법원 판결 이후에 헌법·절차문제를 헌법재판소에 묻는 제도다. 헌법재판소가 인용 결정을 내리면 해당 판결은 취소되고 원심 법원이 다시 재판해야 한다. 백혜련 사개특위 위원장은 재판소원은 대법관 증원보다 더 큰 어젠다라 사개특위 사법개혁안에서 빼고 별도 법안을 발의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현재의 3심(1심, 2심, 대법원 상고심) 재판 구조에 더해 4번째 재판 단계를 더하는 사실상 ‘4심제’라는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재판소원은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정한 헌법에 어긋나므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⑦ 법원행정처 폐지·사법행정위원회 신설 11월 3일 민주당은 “재판·인사·예산·행정 등 모든 권한이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의 권한을 분산하는 민주적 통제 절차가 필요하다”며 당내 ‘사법불신 극복 사법행정 정상화 태스크포스(TF)’를 출범했다. 단장을 맡은 전현희 최고위원은 “대법원장을 최정점으로 한 사법 피라미드를 해체하는 것이 사법개혁의 본질”이라며 “사법행정과 예산, 그리고 판사 3,584명 인사권을 쥐고 있는 제왕적 대법원장 제도를 반드시 혁파해야 한다”고 밝혔다. 11월 25일 TF가 발표한 초안은 법원의 예산·인사 등 행정사무를 담당하는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위원장 1명, 상임위원 2명 등 총 13명으로 구성되는 사법행정위원회가 그 기능을 대신하게 했다. 법관의 전보 인사도 사법행정위가 의결한 안건을 대법원장이 결정하는 구조로 바꿨다. 13명 중 법관은 4~6명인 반면, 비법관은 7~9명이며 비법관도 위원장이 될 수 있어, 비법관의 목소리가 더 크게 반영되는 구조로 설계됐다. 《중앙일보》는 이를 사법 시스템의 근간을 바꾸는 대대적 개편으로 평가했다. “판사는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이 임명한다”는 법원조직법에 따라 대법원장이 사법행정의 최종 권한을 갖고 실무를 판사 조직인 법원행정처가 맡는 현 제도를 뿌리째 뒤흔드는 개편이라서다. ⑧ 영장심사 국민참여제 도입 10월 27일 민주당 박균택 의원이 “국민의 뜻을 무시하는 법원과 판검사들이 여전하다면 결국은 법을 통해 개혁할 수밖에 없다”, “법원이 한덕수, 박성재 등 증거인멸 염려가 매우 큰 내란범죄 주요가담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고 있다”며 국민참여 영장심사법을 발의했다. 구속영장심사위원에 위촉된 시민대표들이 법관의 구속 전 심문절차 등에 참여해 구속영장 발부 여부에 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게 하며, 심사위원은 전국 지방법원 및 지원 소재지 인근의 법정단체 및 공공협의체 등에서 추천한다는 내용이다. ⑨ 대통령 재판중지법 추진 대통령 재임 중엔 형사재판을 중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 일명 ‘대통령 재판중지법’은 5월 1일 대법원이 당시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자, 바로 다음 날 발의되었고 같은 달 7일엔 국회 법사위까지 통과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이를 처리할 수 있었지만, 여론 악화를 의식한 이 후보가 만류했고 이 대통령 당선 이후 관련 재판이 모두 연기되면서 논의도 중단되었다. 그런데 10월 20일 국정감사에서 김대웅 서울고등법원장이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재판 재개가)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하지 않다”고 발언하자, 김용민 의원, 김어준 씨 등 민주당 강경파가 대통령 재판중지법을 다시 꺼내들었다. 이에 11월 2일 정청래 대표는 재판중지법을 11월 내로 처리하겠다고 밝혔지만, 다음 날인 3일 대통령실이 반대의견을 내자 하루 만에 철회했다. 정리하면, ▲ 대법관 증원, ▲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 구성 변경, ▲ 법관평가제도·법관인사위원회 변경, ▲ 하급심(1·2심) 형사 판결문 공개 확대, ▲ 압수수색영장 발부 전 사전심문제 도입, ▲ 재판소원 도입, ▲ 법원행정처 폐지·사법행정위원회 신설, ▲ 영장 국민참여제 도입, ▲ 대통령 재판중지법 추진이라는 이 다양한 안들은 무엇을 지향하는가? 한 마디로, 사법부의 기존 권한은 약화하고 사법부에 대한 정권의 영향력은 강화하는 것이다. 민주당 안대로면 대법원장의 인사권은 대폭 줄어든다. 민주당식 사법개혁에 반대해 온 법원행정처는 아예 폐지하려 한다. 반면, 대법관은 전체 26명 중 22명이 이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으로 채워지게 된다. 민주당 사개특위 측은 “대법관추천위원회나 법관인사위원회에 국회에 추천한 사람은 없으니 오해 없길 바란다”고 주장하나, 각종 위원회에 새로이 포함될 외부인사에 정부와 여당이 물밑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방안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민주당은 사개특위 사법개혁안과 법원행정처 폐지를 추진하는 것에 대법원장의 힘을 빼는 목적이 있다고 직접 밝혔다. 5월 1일 대법원이 이재명 당시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뒤로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맹공을 펼쳤으나 조 대법원장이 사퇴하지 않자 나온 방안인 것이다. 확정판결이 아닌 하급심(1·2심) 판결문을 쉽게 열람하게 하는 것은 사생활을 침해하고 무죄추정의 원칙을 위반할 수밖에 없다. 이재명 정부의 법무부조차 이러한 우려 의견을 냈다. 그럼에도 ‘사법 투명성’을 명분으로 이를 강경히 추진하는 것은 민주당에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내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판결문을 활용해 법관의 판결 성향이나 양형 등을 분석해 예측할 수 있게 된다”며 “자신에게 유리한 법관을 찾아 소를 제기하는 ‘포럼쇼핑’이나 전관예우 등이 오히려 횡행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판결문 공개는 필연적으로 판결에 대한 여론과 정치권의 압력을 강화하여, 판사의 재판 독립성을 흔들 것이라는 우려도 곳곳에서 나온다. 압수수색영장 발부 전 사전심문제 역시 정권과 여당에 불리한 수사를 지연시키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된다. 인권보호를 위해 압수수색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는 명분을 곧이곧대로 믿기에는, 민주당은 동시에 법원이 구속영장 발부를 너무 안 하니까 국민이 참여하여 결정해야 한다는, 앞뒤 안 맞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판소원 추진은 대법원 판결을 뒤집기 위한 목적이 명백하며, 이 대통령 본인은 만류했다고 하지만, 대통령 재판방지법은 노골적인 ‘방탄’ 입법이다. 야당뿐만 아니라 민주당 성향의 법관들까지 재판 독립성 침해 우려가 크다는 의견을 표하자, 12월 중순 현재 민주당은 법왜곡죄 신설 등 일부는 연내 처리 방침에서 물러난 상태다. 그러나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와 하급심 판결문 공개 확대, 대법관 증원, 법관평가제 도입 등은 여전히 연내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실제로 법안이 통과되기 전에도, 이러한 법안을 추진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현재 이재명 대통령이나 3대 특검과 관련된 재판을 진행하는 판사들에게 압박이 될 수밖에 없다. 친여 성향의 시민단체들은 비상계엄 이후 사법부가 정치적 중립성 면에서 불신을 자초했다고 주장하며, 민주당의 사법개혁안을 옹호한다. 이들은 이재명 당시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파기환송, 계엄 선포 직후 열린 대법원 간부회의, 윤 전 대통령의 구속 취소 결정 등을 근거로 조희대 대법원장과 지귀연 부장판사,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을 고발하기도 했지만, 12월 14일 내란 특검은 이들에게 계엄에 동조한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현 사법부 구성원 개개인의 실책이 있냐 없냐를 떠나, 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안은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들며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헌정의 핵심 요소를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 이재명 정부의 ‘내란 청산’ 그런데 ‘내란 청산’에는 민주당뿐만 아니라 행정부도 나서고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의 제안으로 행정부 내에서 행정조사를 병행하여 내란을 청산하겠다며 추진한 비상설 기구인 헌법존중 정부혁신 태스크포스(TF)가 대표적이다. 더불어 최근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관련한 발언들을 이어가고 있다. ① 헌법존중 정부혁신 태스크포스(TF) 10월 14일 이재명 대통령은 “내란은 발본색원해야 한다”며 “가담 정도가 극히 경미하더라도 가담·부역을 한 것이 사실이면 (군 인사에서) 승진시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발언했다. 11월 11일 김민석 국무총리가 공무원 중에서도 “내란에 가담한 사람이 승진 명부에 이름을 올리는 등 문제가 제기됐다”며 공무원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하는 TF를 제안하면서, 열흘 뒤 ‘헌법존중 정부혁신 TF’가 출범했다. 내년 2월까지 공무원 75만 명을 조사하기 위해 25개 부처를 포함한 49개 중앙행정기관에 각각 10~50여 명의 내·외부 인사로 구성된 TF로, 전체 인원이 600명이 넘는다. 이로 인해, 단 몇 시간 지속된 비상계엄에 대해 ‘경미한 가담’ 여부까지 밝히기 위해 공무원 75만 명을 조사한다는 것이 지나친 공무원 압박이며 행정력 낭비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재명 대통령 본인이 7월 3일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직업 공무원들은 국민이 선출한 대표, 국민의 주권 의지를 대행하는 지휘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의무다. 그것이 법률상 의무일 뿐 아니라 그렇게 훈련되어 있다”고 말했던 바도 있었다. 국무총리실이 TF 추진계획에서 공직자의 휴대전화도 자발적으로 제출을 유도하고 협조하지 않으면 직위해제 후 수사 의뢰도 고려한다고 발표하자, ‘헌법존중’ TF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TF가 국가 권력을 남용하여 개인의 권리를 심각히 침해하는 위헌 행위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자발적인 제출이라고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인사상 불이익과 수사 위협을 무기로 법원 영장을 받지 않고 헌법상 통신·비밀의 자유를 침해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이를 “당연한 일”이라고 옹호하는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 때는 감사원의 공무원 휴대폰 조사를 “사찰”, “헌법상 영장주의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고 지적했다. TF가 총리실과 각 기관에 설치된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통해 익명 투서를 받기로 한 것도, 공직사회에 지나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음해성 가짜 제보가 난무하는 상황을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이렇게 언뜻 들어도 반헌법적이라는 비판이 거셀 것이 뻔한 조치들을 TF가 무리하게, 비상계엄 이후 1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서 시도하는 것은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11월 7일)와 법무부, 대통령실의 개입이 크게 논란이 된 상황에서, 국면을 전환하고 ‘내란 청산’의 대상을 넓히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의혹도 더해졌다. ② 이재명 대통령의 행보 당선 직후 ‘모두의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주문을 의식하며 검찰개혁 속도를 두고 정청래 대표와 ‘명청 갈등’을 빚기도 하던 것과 달리,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이재명 대통령 본인이 과감한 발언을 연일 내놓으며 논쟁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그렇다보니 연말에는 ‘명청 갈등’이란 표현은 민주당 내 파벌 다툼의 맥락으로만 쓰이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업무보고 ‘책갈피 달러’ 언급 논란, “환단고기는 문헌이 아니냐” 발언 논란, 이 대통령이 직접 백해룡 경정을 파견한 ‘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 수사가 검경 합동수사단에서 사실무근으로 판명된 일과 같이 다른 주제에서 일으킨 논란은 빼고, 직접적으로 ‘내란 청산’과 연관된 발언들만 보더라도 다음과 같다. “(쿠데타 등은) 나치 전범 처리하듯 영원히 살아있는 한 형사처벌해야 한다”(12월 2일), “일본처럼 종교재단(통일교) 해산 명령을 내릴 수 있는지 검토하라”(12월 2일), “친위 쿠데타 가담자들은 반드시 심판받는 것이 정의로운 통합”(12월 3일),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에 관해) 국민 여론에 따라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입법부(민주당)가 잘 행사할 것”(12월 3일) 등이다. 이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들은 이미 있는 갈등을 더 키웠다. 비상계엄 1주년에 맞춰 내놓은 “정의로운 통합”은 ‘통합’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대통령 당선사에서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으며 “공존과 화해, 연대의 다리를 놓고,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했든 크게 통합”하겠다고 약속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기조로, ‘내란 청산’을 다른 말로 바꾼 것뿐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통일교와 정치권의 유착, 비리에도 불구하고 행정부는 종교단체 해산의 주체가 될 수 없는데도 대통령이 나서서 해산을 검토해야 한다고 거듭 말하는 것은 문제적이라고 여러 언론이 지적했다. 더구나 이로 인해 “대통령이 직접 종교 단체 해산을 위협하며 정권과 민주당에 불리한 증언을 틀어막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민주당 의원 관련 추가 폭로를 하겠다던 당초 발언과 달리 12월 10일 결심공판에서 윤 전 본부장이 말을 아끼자, 이러한 의혹과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다. 내란특별재판부 위헌 논란에 대해서는, 이 대통령은 이미 9월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그게 무슨 위헌이냐”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헌법에 ‘판사는 대법관이 임명한다’고 돼 있는 것에 어긋나는 게 아니면 입법부를 통한 국민의 주권 의지를 존중해야 한다. 사법부 독립도 사법부 마음대로 하자는 뜻이 전혀 아니다. 행정, 입법, 사법 가릴 것 없이 국민의 주권 의지에 종속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국 헌법이 규정한 국민주권(인민주권)은 사법부의 판결이 국민 마음에 들지 않을 소지가 있으니 국민 마음에 들 판결을 할 별도의 재판부를 세울 수 있다는 식으로 해석할 개념이 아니다. 자신도 법조인 출신인 이 대통령이 이를 정말 모를 리는 없다. ‘국민의 주권 의지’라고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득표율이 과반에 못 미치는 것처럼(49.42%) 국민의 뜻은 단일하지 않으며 반드시 이 대통령의 뜻과 같지도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왜 점점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가? 본디 제왕적 대통령제는 대통령의 막강한 권력을 견제하는 수단이 없으므로, 대통령이 점점 무소불위의 자세로 나아가기 쉽고, 그러다 보면 오히려 실패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한국헌정사에서 대부분의 대통령이 불행한 결말을 맞이한 것에 이러한 구조적 원인이 있다고 짚었다. 야당 대표 시절 윤 전 대통령 부부의 각종 의혹을 맹렬히 공격하던 이재명 대통령은 정작 취임 6개월이 넘도록 대통령 가족과 측근 비리를 예방하기 위한 특별감찰관을 임명하지 않았다. 이는 대통령의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12월 2일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원내운영수석부대표가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중앙대 동문의 인사 청탁 메시지를 보내고 김 비서관이 “훈식이 형과 현지 누나에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사건이 대통령실의 인사전횡 논란에 큰 파문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김 비서관이 사퇴하는 것을 끝으로 유야무야 넘어갔다. [%=사진3%] [사진] 대통령비서실 인사청탁 논란 2025년 12월 2일, 더불어민주당 문진석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비서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텔레그램으로 인사청탁을 하고, 김 비서관이 “훈식이 형(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랑 현지 누나(김현지 제1부속실장)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이재명 대통령 본인과 문 의원, 김 비서관을 비롯한 ‘중앙대 라인’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 공직도 아닌 민간단체장까지 대상이 될 정도면 이재명 정부 내에서 부정한 인사청탁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오가는 것인지, 공식적으로 인사에 관여할 수 없는 부속실장이 언급되는 것을 보면 ‘김현지 비선실세론’이 사실이 아닌지 논란이 불거졌다. (사진출처: 《뉴스핌》) 제왕적 대통령제를 완화하는 조치나 권력구조 개편 개헌 논의는 이재명 정부에서 찾아볼 수 없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사에서 “권위적인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다”고 약속했고, 윤석열 전 대통령은 대선후보 당시 여러 차례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을 약속했다. 물론 이러한 약속들은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는 인식을 말로라도 명확히 드러낸 적 없다. 반대로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개헌 문제를 그렇게 시급하게 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국민들 먹고사는 문제에 직결된 것도 아니다”라고 말하거나, 취임 한 달 기자회견에서 “제왕적 대통령제에 여대야소로 국회의 행정부 견제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질문에 “대통령이 제왕적이라고 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고 답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강경하고 도발적인 모습은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온, 대통령이 되기 전 정치인 이재명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미 첫 번째 대선 도전 전부터 이재명 대통령은 ‘거침없는 언행’뿐만 아니라, 정치적 상대를 적으로 간주하고 표적 삼아 공격하거나, 언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하며 이들을 통제할 방안을 찾고, 자신의 권한 이상의 문제에 개입하며, 극단적 해결책을 내놓는 자신의 모습을 ‘민의를 받드는 불도저’라는 식으로 미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 대표가 된 뒤 윤석열 정부와의 대결이나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 반대 등 외교 사안을 극단으로 몰고 간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민주당과 이재명 대통령의 거침없는 행보는 자신들에게도 예상치 못한 결과로 돌아올 수도 있다. 2019년 ‘조국 사태’ 당시에도 문재인 정부는 추미애 당시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직무배제와 징계를 강행했다. 이 사건은 정치 경험이 없던 윤석열 총장이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이미지를 얻어 일약에 유력 대선 후보로 부상한 직접적 계기였다. 즉, 당시 검찰에 대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대응에 대중적 반발이 그만큼 컸다. 애초에 1988년 검찰총장 임기제 도입 이후 최초로, 고등검사장도 거치지 않은 윤석열 중앙지검장이 검찰총장이 된 것도 그를 이용해 ‘적폐청산’과 ‘검찰개혁’을 추진하고자 한 문재인 대통령의 ‘파격 인사’ 탓이었다. 3. 주요 정당의 지방선거 대응 태세 마지막으로, 주요 정당의 2026년 6월 3일 전국동시지방선거 대응 태세를 확인한다. 총론에서 보았듯 거대 양당인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아직 당내 리더십 경쟁이 치열하다. 지금까지 행보를 보면 민주당은 ‘내란 청산’과 포퓰리즘적 재정안을 내세워 선거에 대응하고, 국민의힘은 그런 민주당을 막을 수 없는 퇴행적 행태를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리더십이 확고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정의당, 진보당은 실질적인 지방선거 준비를 이미 시작했다. ○ 더불어민주당 12월 현재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을 좌우할 당권을 다투는 친명파와 친청파의 ‘명청 갈등’이 본격화했다. 10월 27일 민주당은 이재명 대통령이 작년 총선 때 영입한 유동철 수영구 지역위원장을 부산시당 위원장 경선 후보에서 컷오프(경선 배제)하여 친명계의 반발을 샀다. 유 위원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정청래 대표가 당대표 선거 과정에서 밝힌 ‘억울한 컷오프 없게 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거짓이었냐”고 따지며, 친청계인 문정복 의원이 맡았던 지도부 조직강화특별위원회의 면접을 문제 삼았다. 정청래 대표의 더 큰 그림은 대의원 표에 일반 당원 표의 20배의 가중치를 주는 현 당헌을 ‘당원 1인 1표제’로 개정하는 것이었다. 명분은 표의 등가성을 강화하여 ‘당원주권정당’을 실현하는 것이었지만, 8월 당대표 경선에서 드러났듯 대의원보다 일반 당원(권리당원)층에서 지지가 더 탄탄한 정 대표가 당권을 굳히기 위한 술책이라는 점이 명백했다. 당내에서 기존 당원이 아닌 강성 팬덤의 영향력을 강화하여 당권을 잡는 것은 당대표를 거쳐 대권까지 잡은 이재명 대통령이 이미 증명한 성공 공식이다. 당대표 선거 당시 이재명 대통령 지지층은 ‘명심’이 찍은 박찬대를 밀었으나, 친여 유튜버 김어준 지지층은 정청래 후보를 밀었는데, 그 덕분에 선거에 승리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정 대표는 61.74%의 득표율로 박찬대 후보의 37.35%를 한참 앞섰으나, 대의원 표만 놓고 보면 46.91% 대 53.09%로 뒤졌다. 취임 뒤 정 대표는 김어준 씨와 더 밀착하여, 김 씨가 유튜브에서 대통령 재판중지법, 조희대 대법원장 청문회 등의 사안을 던져 민주당 강경층 여론을 자극하면, 이를 당 차원에서 받아안는 식으로 움직였다. 이에 대한 반발이 당내에서도 나오자, 김어준 씨가 운영하는 《딴지일보》가 “민주당 지지층 민심의 바로미터”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정 대표가 당헌 개정의 근거로 삼은 당내 여론조사에 참여한 당원은 전체의 16.81%에 그쳤으며, 투표 자격도 갑작스레 기존대로 6개월 이상 당비를 납부한 권리당원이 아닌 ‘10월 한 달’ 권리당원에게까지 주어지며 논란이 되었지만, 정 대표는 “너무 급하다”라는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데 12월 5일 당헌 개정안 표결에서 재적 중앙위원 총 596명 중 271명만 찬성하며 과반을 확보하지 못해 ‘당원 1인 1표제’는 무산되었다. 이로써 정 대표의 리더십이 큰 타격을 입은 상태에서 내년 1월 11일로 예정된 민주당 최고위원 보궐선거가 친명 대 친청 구도를 선명히 드러내며 정 대표 체제에 대한 재신임 성격을 띠게 되었다. 정 대표는 12월 14일 당원의 날 행사에서 “우리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이재명 대통령 보유 국가”라며 ‘이재명’(17회)을 ‘민주당’(8회)보다 더 많이 언급하면서 이러한 구도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부산시당 위원장 선거의 악연이 있는 유동철 수영구 지역위원장과 문정복 조직사무부총장이 각각 최고위원에 출마하면서, 명·청 구도는 명확하게 드러났다. 유 위원장은 출마를 선언하며 다시 한번 정 대표의 리더십을 문제 삼았고, 문 총장은 그런 유 위원장을 겨냥해 취재진 앞에서 “천둥벌거숭이”라거나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 대통령의 대장동 특혜 의혹 사건 변호인 출신인 이건태 의원은 최고위원 출마를 선언하며 “당이 정부와 엇박자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외에도 친청파인 이성윤 의원과 친명파인 강득군 의원이 출마를 선언하며, 양측 주자들이 등판하고 있다. 그렇지만 올해 친청파가 ‘사법개혁’에서 더 강경하게 움직였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양측의 노선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으므로, 당권 경쟁이 민주당의 지방선거 전략에 낳는 차이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지방선거의 주요 승부처로 꼽히는 서울과 부산을 보면, 서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약진하고 있다. 정 청장은 서울 시내 25개 자치구 중 현재 유일한 3선 구청장이다. 이전까지 특별히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지 않던 정 청장은 11월 들어 ‘행정가’ 이미지로 급부상하여 차기 서울시장 민주당 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은 12월 8일 SNS에 정 구청장이 구정 만족도 조사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기사 링크를 공유하며 “정원오 구청장이 일을 잘하기는 잘하나 보다. 저의 성남 시정 만족도가 꽤 높았는데, 저는 명함도 못 내밀 듯”라고 콕 집어 칭찬했다. 여기에 힘입어서인지, 리서치뷰가 《KPI뉴스》의 의뢰로 12월 12~13일 진행한 차기 서울시장 선거 양자대결 여론조사에서, 처음으로 정원오 성동구청장(45.2%)이 오세훈 현 시장(38.1%)을 오차범위 밖 격차로 앞선다는 결과가 나왔다. 민주당 후보군 중에서도 가장 앞선 결과였다. 12월 14일 《부산일보》는 전재수 장관이 ‘통일교 게이트’에 휘말려 사퇴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산지역 민주당은 전 전 장관을 포기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부산시장 선거를 채 반년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전 전 장관을 대체할 만한 승산 있는 후보가 없다는 것이다. 전 전 장관은 ‘통일교 게이트’ 직전까지 부산시장 후보 여론조사에서 현역인 박형준 부산시장과 접전을 벌여왔다. 《부산일보》는 시장 등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승기를 잡아야 구청장이나 시의원 등 기타 선거에서도 승산이 높다는 점에서, 부산지역 민주당이 전 전 장관 지키기로 똘똘 뭉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물론 이는 경찰 수사에서 전 전 장관이 혐의를 벗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 국민의힘 비상계엄 1주년에 사과문을 낸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이나 송언석 원내대표와 달리 제대로 된 반성을 하지 않은 장동혁 대표는 12월 6일 보수성향 유튜브에 출연하여 “저만의 타임 스케줄과 계획”이 있다며 “앞으로 꿋꿋하게 나아가겠다”고 했다.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으나, 당분간은 지금과 같은 기조로 강성 지지층 단속을 우선한 뒤, 내년에 중도층으로 외연 확장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당내에서 의문이 잇따른다. 공개적으로 장 대표에게 ‘노선 수정’을 요구했던 초·재선 의원들과 오세훈 서울시장, 박형준 부산시장 측의 불만뿐만 아니라, 12월 5일 ‘친윤’을 넘어 ‘찐윤(진짜 윤석열 측근)’으로까지 불렸던 윤한홍 의원도 당 회의 자리에서 당이 비상계엄에 대해 잘못했다는 인식을 아직도 갖고 있지 않으니 아무리 이재명 정부를 비판해도 국민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백약이 무효’ 상태라고 공개 비판했다. 보수 언론들도 이러한 목소리가 상식적인 국민의 생각에 가까우니, 비상계엄 사과와 윤 전 대통령과의 단절을 전제로 중도층 잡기에 하루빨리 나서야 한다고 연일 촉구한다. 그러나 국민의힘의 당 구조는 장동혁 대표, 나경원 의원과 같은 강경파에 유리하게 바뀌고 있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국민의힘에 당비를 내는 당원 수는 올해 10~11월 두 달 동안 18만 명 넘게 늘어났다. 12월에 당비를 새로 납부한 당원까지 합치면 총 100만 명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한국 보수 정당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인 ‘100만 책임당원’은 장 대표가 당원권 확대를 공언한 데 따른 결과로 분석된다. 나경원 의원이 위원장을 맡은 국민의힘 지방선거총괄기획단은 경선에서 당원 투표와 국민 여론조사 반영 비율을 ‘50% 대 50%’에서 ‘70% 대 30%’로 바꾸기로 했다. 새롭게 대거 가입한 당원들이 경선에 끼치는 영향력이 더 커지는 것인데, 이는 비상계엄 이후로 ‘민심’과 괴리를 보인 국민의힘 강성 지지층의 ‘당심’을 희석하기보다는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는 오세훈 시장으로 꼽힌다. 4선 서울시장이며 대선후보 물망에도 오른 바 있는 오 시장을 대체할 경쟁력 있는 후보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측은 최근 기세가 좋은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민주당 후보가 되더라도 오 시장과는 여전히 체급이 많이 차이 난다고 본다. 전재수 장관이 사퇴하며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범여권 부산시장 후보로 떠오르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에 대해서도, 국민의힘은 중도층이 승부처인 부산에 ‘조국 사태’의 조국이 나오면 “땡큐”라는 반응이다. 대신, 강력한 경쟁 상대였던 전재수 전 장관이 사라지면, 현역 박형준 시장이 유력후보로 거론되던 부산시장 경선에 도전할 후보가 많아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 조국혁신당 조국혁신당은 2024년 3월 3일 창당 뒤 약 한 달 만인 4월 10일 총선에서 ‘지민비조(지역구 투표는 민주당, 비례 투표는 조국혁신당)’ 전략으로 비례대표에서 24.25% 득표에 12석을 확보했다. 그러나 이후로는 2~4%의 박스권 지지율에 머물렀다. 올해 광복절 특별 사면·복권으로 조국혁신당의 상징과 같은 조국 전 당대표가 출소했고, 11월 23일 전국당원대회에서 98.6%의 찬성률로 다시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5월부터 공론화된 당내 성비위 문제와 그에 대한 당 지도부의 대응 논란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민주당과의 차별점이 명확하지 않다는 근본적 한계로 인해 11월 한국갤럽 정당지지도 조사에서도 지지율 2%에 그쳤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조국혁신당의 지방선거 구상은 조국 대표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정치적 메기” 전략이다. 이른바 ‘민주진보진영’, 즉 범여권의 틀 안에서 국민의힘을 적대시하고 이재명 정부와 협력하되,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1~2석씩 “나눠먹는” 다인(多人) 선거구나, 무투표 당선이 허다할 정도로 사실상 민주당이 맡아놓은 표밭인 호남 지역에서 경쟁을 활성화하여 지방정치가 좀 더 청렴하고 효율적으로 돌아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11월 4일 페이스북에 “조국혁신당은 광주 포함 전국에서 지방정치의 활성화를 위한 ‘정치적 메기’가 되겠다”고 밝히며, 서울시 관악구 기초의원 선거구와 광주시 시의원 선거의 예시를 들었다. 관악구 기초의원 선거구 중 3인을 뽑는 다인 선거구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2인, 국민의힘 1인이 뽑혔는데, 이곳은 범여권 강세 지역이므로 여기에 조국혁신당 후보가 출마하면 민주당이 아니라 국민의힘의 자리를 뺏을 수 있다는 것이다. 광주시 시의원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비례의원을 빼고 20명 중 11명이 민주당밖에 출마하지 않아 무투표로 당선되었는데, 이와 같이 “경쟁 자체가 없으니 공약을 마련하거나 이행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어졌다”며 이는 올바른 지방정치의 모습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전국의 모든 기초의원 다인 선거구에 후보를 내어 당의 뿌리를 전국에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 그는 이후로도 민주당과의 합당설에 선을 그으며 ‘정치적 메기’ 전략을 강조했고,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의 도의원 22명이 무투표로 당선된 전라북도 도의회 등 호남 지역의 여러 사례를 거론했다. 민주당은 공식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정치적 메기” 전략은 현실성이 없지 않아 보인다. 2016년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의 이전 이름)에서 탈당한 안철수 의원와 호남계 의원들이 국민의당을 만들고 호남을 타겟으로 비슷한 전략(“1번과 2번을 일하게 하려면 3번 국민의당을 찍어달라”는 구호)을 취했을 때, 호남 지역은 그해 총선에서 국민의당을 그야말로 압도적으로 밀어준 전력이 있다.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북도 지역구 28석 중 23석을 차지하고, 비례 득표율도 선거구 41개 중 39개에서 1위였다. 강한 범여권 지지 분위기와 별개로, 민주당 소속만 달고 나오면 당선되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광범위한 덕분이었다. 조국혁신당 자체의 사례만 보더라도, 2024년 총선 비례대표 투표에서 호남 지역 평균 약 45%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해 민주당 비례위성정당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바가 있다. 올해 4월 2일 전남 담양군수 재선거에서 정철원 조국혁신당 후보가 51.82%를 얻어 민주당 후보(48.17%)를 꺾고 처음으로 지방자치단체장도 배출했다. 또한, 지난해 총선의 광주광역시 8개 선거구를 분석하면 조국혁신당의 득표율과 더불어민주연합·녹색정의당 득표율이 반비례하며, 이전 총선에서 정의당, 녹색당의 비례대표 득표율이 높은 투표구일수록 조국혁신당의 득표율에 긍정적인 영향이 드러났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와 같이 조국혁신당이 진보정당 지지자들을 흡수하는 현상이 내년 지방선거에도 되풀이된다면, 광주광역시 다인선거구뿐만 아니라 예시로 든 관악구와 같이 여러 진보정당도 전략적으로 출마해온 곳에서 조국혁신당 후보의 승산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양당 중심 지방선거의 빈틈을 파고드는 전략과 별개로, 당의 노선과 정책은 지난해보다 더 애매해졌다. 지난 총선에서 조국혁신당은 “3년은 너무 길다”, “검찰독재 완전 종식” 등 민주당 주류보다 강경한 구호를 채택했고, 이후에도 “윤석열 탄핵의 길을 여는 쇄빙선” 역할을 자임하며 범여권 지지층에 호소했다. 그러나 올해는 대선으로 정권이 교체되었고 국민의힘이 계속 지리멸렬한 모습과 낮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어 그런 역할의 필요성이 크게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청와대나 당내의 우려까지 불사하는 강경한 태도로 직접 검찰·사법개혁이나 여야 대립 구도를 주도했다. 이에 조 대표는 민주당보다 더 급진적인 사회·경제 정책을 제시하여 내년 지방선거 전까지 당 지지율을 1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밝혔고, 11월 23일 당대표 취임 일성에서 내년 지방선거와 지방분권 개헌 투표 동시 진행, 행정수도 이전, 토지공개념 입법화 등 사회권 정책 등을 주장했으나 이에 대한 여론의 관심은 높지 않다. 올해 4월 대선 직전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 등 4개 야당은 국회 교섭단체 기준 완화(현행 20인 이상)와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결선투표제 도입에 합의했지만, 집권당이 된 민주당은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조 대표는 “민주당이 정치개혁을 계속 회피한다면, 야당들과 함께 정치개혁 단일 의제로 ‘원 포인트 국회 공동 교섭단체’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당 차원의 전략과 별개로, 유력 정치인으로서 조국 대표 개인의 전망도 관심을 모은다. 조 대표 본인은 서울시장이나 부산시장 출마 가능성을 닫아놓지 않았으나, 민주당이 조 대표로의 단일화에 합의하지 않는 한 나오더라도 당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내년 지방선거와 동시에 이재명 대통령의 지역구였던 인천 계양을 등에서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진행되는데, 조국혁신당의 원내 존재감을 키우려면 조 대표가 지자체장보다 국회의원이 되는 편이 낫다는 의견이 당내에 있다는 보도도 있다. ○ 개혁신당 마찬가지로 이준석 당대표 개인의 상징성과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큰 개혁신당도 2~4%의 지지율을 유지한다. 그런데 이것도 20대, 30대 남성의 지지가 견인한 결과로, 총선과 대선 득표를 보았을 때 이들을 제외하면 확장력이 모자란다. (출구조사를 기준으로 지난 총선에서는 20대, 30대 남성층에서 각각 16.7%와 9.5%를, 올해 대선에서는 각각 37.2%, 25.8%를 득표했다.) 총선에서는 이준석 당대표가 경기도 화성시 을에서 경합 끝에 당선되는 성과를 거뒀으나, 다른 지역구 출마자는 전부 낙선하여 기존 3석의 지역구 의석이 1석으로 줄어들었다. 비례 득표율도 기대에 못 미치는 3.6%에 그쳐 비례 2석(이주영, 천하람)을 얻었다. 대선 득표는 총선 비례 득표수의 세 배 가까이 늘어나 8.34% 득표를 기록했으나, 원래 목표했던 10%대 득표에 실패했다. 전국 지지율을 끌어올리지 못하는 것은 다른 원내 소수정당인 조국혁신당이나 진보당도 마찬가지이지만, 개혁신당은 스스로 여러 차례 인정했듯 지역 조직이 미약하고 지역에서 후보로 내세울 인지도·경력이 있는 인사가 부족하다. 이러한 조건에서 총선 이후 개혁신당은 주로 각 의원의 개인기, 즉 각종 이슈와 정치 현안에 대한 적극적인 논평 개진과 방송 출연 활동으로 존재감을 유지했다. 특히 윤 전 대통령과 단절하지 못하는 국민의힘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합리적 보수’의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전략이 두드러졌으며, 이는 대선에도 반영되었다. 이준석 대표, 천하람 원내대표가 여러 언론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개혁신당은 지방선거 때도 총선, 대선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과의 연대연합을 거부하는 독자 노선을 고수하려 한다. 세부적으로는 ‘물량 공세’식 후보 출마로 지방선거 당선자 최대화를 노리기보단, 지선에서 청년 밀집지역 12개 정도, 지선과 동시에 진행하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2~3개 정도의 전략 지역을 설정해서 집중하고, 선거운동을 통해 전국 지지율 상승과 (현 12만 명에서 20만 명으로) 당원 증가를 꾀하는 전략을 짜고 있다. 소수정당의 인력난과 자금난을 메꾸는 ‘고효율’ 대안으로는 올해 연말부터 내년 초까지 조기 후보 발굴과 공천 과정을 진행하여 유권자에게 인지도를 키우는 방안과, 후보자 교육과 공천 심사에 활용할 인공지능(AI) 기반 선거 자동화 시스템을 내세운다. 그런데 개혁신당의 독자 노선은 국민의힘 지도부의 실책을 배경으로 한다. 국민의힘 소속이나 극단적 세력과 선을 그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선에서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한다”고 밝히자, 이 대표가 “오 시장과는 거의 한 팀”이라고 화답한 것처럼, 개혁신당이 내세우는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을 국민의힘 후보와는 부분적으로 연대가 가능하지 않겠냐는 분석들이 있다. 또한 12월에 들어 비상계엄 1주년 사과 논란으로 국민의힘 내 대립 구도가 커졌고, 국민의힘 당무감사위가 한동훈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당원게시판 논란’의 중간 조사 결과를 공개하며 한 전 대표를 압박하자 친한계가 거세게 반발했다. 개혁신당과 국민의힘 간 선거연대의 가능성도 이러한 당내 대결의 결과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 이준석 대표의 거취도 관심의 대상인데, 이 대표는 11월 20일 SBS 라디오 ‘정치쇼’에서 “(경기도지사 등)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등판할 생각이 있느냐”는 물음에 “(지역구인) 동탄 주민들이 원하는 상황이 나오거나, 저의 더 다른 역할이 필요하다 하면 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천 원내대표는 11월 25일 불교방송(BBS) 라디오 ‘금태섭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이 대표가 지방선거에 출마하면 유일한 개혁신당 지역구 의석을 잃는 것이라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 정의당 8월 26일 2026년 지방선거 준비단을 발족한 정의당은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창당”으로 내년 지방선거에 대응하며, 지방선거를 계기로 당의 재도약을 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12월 6~7일 ‘2025 정의당 활동가 대회’도 “대중적 진보정당 창당! 2026 지방선거 승리”를 내걸었다. 지방선거 준비단 슬로건은 “주민의 삶에서 시작하는 생활정치, 우리의 삶을 바꾸는 진보정치”로, “진보정당의 시작점은 지방선거였다. 진보정당의 존재 의의를 주민들의 피부에 와닿게 증명하고 인정받는 방법이 바로 지방선거”라고 설명하며 주민 밀착 선거운동, 생활 밀착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권영국 대표는 “대선에서 함께 일구어낸 작지만, 소중한 연대의 성과”와 “신호등의 불빛처럼 독자적 진보 정치의 미래를 개척”을 강조했는데, 노동당·녹색당·정의당 간 연대를 새 진보정당 창당의 조직적 기반으로 상정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총선 이후 활발해진 세 당 간 연대를 각 당의 상징색인 빨강·녹색·노랑에서 착안한 ‘신호등’ 연대라고도 한다. 세 당은 올해 대선에서 진보정당 단일 후보를 냈다.) 지역에서도 정의당 경남도당이 “지난 대선처럼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세력과 선거 기간 연대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처럼 진보정당 간 선거연대 논의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12월 8일 여인두 목포지역위원장이 목포 지역의 오랜 민주당 독식을 비판하며 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에 ‘야4당’ 공동선거연대 실무협의를 제안했다. 이처럼 지역별로 다른 틀의 접근도 있다. 8월 28일 제11회 노회찬비전포럼 세미나에서 권 대표는 <이재명 정부 시대의 진보정치 전략과 당면 과제>를 발표했는데, 정의당은 이를 바탕으로 향후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창당의 구체적 로드맵을 밝히기로 했다. 권 대표는 발표에서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의 지향점으로 “평등·생태·분배의 가치 대변”을 내세우고, 창당 전략으로는 “양당 정치의 한계를 넘어선 ‘사회파’ 정치세력의 조직화”를 제시했다. ‘사회파’는 부동산 자산 중심의 ‘보수파’(국민의힘 등)와 주식시장 소액 투자자 중심의 ‘자유파’(민주당 등) 양 세력에 속하지 않으며 평등·생태·분배의 가치를 중심에 둔 정치세력을 명명하는 별칭으로, 장석준 전 정의당 산하 정의정책연구소장이 제안한 개념이다. 권 대표는 사회파 세력의 주요 투쟁과제로 ▲ 수도권 집중 반도체 클러스터에 대항하는 송전망 건설 반대운동 ▲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따른 정의로운 전환 운동 ▲ 동성결혼·차별금지법·가족구성권 보장 등 사회적 권리 투쟁을 거론했다. 이러한 투쟁을 기반으로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을 창당하여 ▲ 860만 무권리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 ▲ 정의로운 전환과 공공재생에너지 확대(2026 서산-태안 플랜) ▲ 지역균형발전 대안으로서 송전망 투쟁 등의 의제를 주도해 나가겠다는 것이 권 대표의 포부다. 또한 서산·태안(석탄화력발전소)과 용인·정읍·금산(반도체 클러스터·송전망 투쟁)을 연결하는 기후위기 서사를 양당 정치가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 부각시키면서, 새로운 진보정치 세력이 어떤 복안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중심 사례로 삼겠다는 지방선거 전략을 밝혔다. 개헌에 대해서는 추첨으로 개헌 시민회의를 조직하고 이들이 개헌안 초안과 개헌 일정을 제시하게 하는 ‘아일랜드 방식’의 순차적 개헌론을 제안했다. 당내 평등파 의견그룹 ‘전환’도 “‘사회파 정당’으로 과녁을 정조준하자”며 이러한 구상에 찬동했다. 정재환 전환 집행위원장은 “‘사회파’가 없어지는 한국 사회를 그대로 방치해두어선 안 된다”며 민주당의 하위파트너가 아닌 진보정당 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그러나 “분화된 진보정당의 각개약진으로는, 이제 진보정당의 지지층에게조차 관성이 되어 버린 ‘다른 세상’에 대한 냉소와 회의를 넘어설 수 없다”며 “분화와 갈등으로 너덜거리는 진보정치를 기워붙이는 것 대신 ‘사회파’를 담당할 새로운 진보정당”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내 자주파 의견그룹 ‘함께서울’을 재편하여 올해 10월 출범한 ‘또다른플랜’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민권력개헌’을 강조하며 활동하고 있다. 정재민, 황정은 등 또다른플랜 계열 정치인들은 연초부터 《오마이뉴스》에 “‘시민권력개헌’을 말하다” 연속기사를 기고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서울지역 사회운동단체들이 결성한 ‘시민권력! 평등헌법! 서울지역 개헌입법운동 본부’가 주관한 12월 11일 <시민권력! 평등헌법! 사회대전환! 개헌입법 토론회>에서도 김종민 또다른플랜 공동대표가 시민권력개헌의 의미에 관해 발표했다. 김 대표는 시민권력개헌에서는 입법·사법·행정 간 또는 정당 간 권력 배분 같은 권력구조 문제는 화두가 아니며, 오히려 (입법·사법·행정에 이어) 제4권력에 해당하는 시민권력을 제도적으로 보장하여 법률 제·개정의 권한을 시민에게 부여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 진보당 진보당은 이미 2024년부터 지방선거 준비 태세에 들어가, 출마자 자격심사와 후보자를 선출하는 당내 투표를 2024년 말에 거쳤다. 당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제출한 지방선거 3대 목표는 △ 광역비례 지지율 3% 득표 △광역단체장 포함 5곳 단체장 배출 △16개 시도 당선자 배출이다. 신창현 진보당 사무총장은 “지지율 3%는 정치적 생존과 도약을 위한 최소한의 발판이고, 다수의 기초·광역단체장 배출은 지역정치에서 진보의 실력을 증명하는 기회”라고 규정했다. 핵심은 울산광역시장 선거에 역량을 집중하여 광역시 단체장 당선이라는 쾌거를 내고, 이것으로 전국적으로 주목도와 지지율을 올리겠다는 전략이다. 유권자는 자기 지역에 진보당 후보가 있어야 진보당에 관심이 생기므로, 원래 목표의 2배수 이상 인원이 출마하여 진보당 후보가 전국 각지에서 유세하며 존재감을 키워 광역비례 득표를 3%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도 강조했다. 신 총장은 이미 울산과 광주는 거의 모든 선거구에 후보가 준비되었고,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의 후보를 확대하려 한다고 밝혔다. 노동자 후보, 청년후보의 중요성도 강조했는데, 특히 청년후보 발굴을 위해 “빛의 혁명”에 함께 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청년후보 공모사업과 청년기금 조성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지역 밀착 생활정치를 강조해 온 진보당은 기관지에 전국 각지에서 1차로 선출된 21명의 청년 기초위원·구의원·도의원 후보가 각 지역 현안 위주로 어떤 활동을 펼치고 있는지 자세히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2025년 내내 전국적으로 지지율이 1% 안팎에 머무는 현실에서, 실제로 진보당의 지방선거 성과에 가장 중요한 변수는 지난 총선에서 그랬듯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과의 연합일 것이다. 지난해 총선에서 진보당은 민주당과의 단일화 5개 지역을 포함해 전국 21곳에 공천하였으나, 현역 의원이었던 민주당 이상헌 후보와 단일화한 울산 북구에서만 당선되었다. 대신 반윤 범야권연대가 필요하다며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 참여하여, 정혜경·전종덕 비례위원을 당선시켰다. (그다음 비례순번을 받은 손솔 후보는 총선 이후에도 더불어민주당 당적을 유지하여, 올해 6월 위성락 의원이 국가안보실장을 맡자, 의원직을 승계하고 진보당으로 복당했다.) 진보당은 올해 대선에서도 야5당 원탁회의(민주당, 조국혁신당, 사회민주당, 기본소득당, 진보당)를 통해 민주당과 적극적인 연대연합을 추구했다. 민주당과 명시적인 단일화 논의가 없었는데도 김재연 진보당 대선 후보는 당내 경선을 거쳐 선출된 지 20일 만인 5월 9일에 이재명 후보를 ‘광장대선후보’로 지지한다며 사퇴했고, 이후 김 대표는 이재명 후보 중앙선대위 공동선대위원장이 되었으며 진보당 의원을 비롯한 간부들은 각지에서 이 후보 선대위와 선거 유세에 적극 참여했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하기도 전에 일방적으로 사퇴하고 민주당 지지를 선언하는, 일반적인 야권연대에도 미달하는 모습은 진보당 내에서도 큰 반발을 일으켰다. 이와 같은 총선, 대선 대응은 진보당 최초로 당내에 등장한 의견그룹인 ‘사람과세상’의 형성에 직접적 영향을 끼쳤다. 당내 공식 정파 결성은 자주파 운동의 역사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러한 흐름은 2024년 6월 진보당 3기 당직선거에 정태흥 전 공동대표가 총선 비례후보자 선출 과정과 당내 민주주의에 문제를 제기하며 출마하여, 역시 진보당 역사상 최초로 상임대표 경선이 치러진 때부터 가시화되었다. 정태흥 선본 측은 민주당이 ‘반미 활동 전력’을 문제삼아 전지예 비례후보의 사퇴와 재추천을 요청하자 이를 진보당 지도부가 그대로 수용한 것이 진보당의 가치 상실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지도부가 전 후보 사퇴를 급하게 결정하고, 그 대신 본래 당내 비례순번 투표에 참여하지도 않았던 정혜경 후보를 올리는 과정에서 당내 민주주의가 지켜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사진4%] [그림] 진보당 3기 상임대표 선거 당시 정태흥 후보 선본의 영상 2024년 6월 진보당 3기 상임대표 선거에서 김재연 1·2기 상임대표를 상대로 출마한 정태흥 후보 선본 측에서 만든 영상 캡처. 같은 해 3월 총선 과정에서 진보당 지도부가 민주당의 요구로 민주당 비례위성정당(더불어민주연합)에 참여하는 진보당 측 비례대표 후보를 교체한 과정을 ‘당원민주주의의 훼손’으로 비판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진보당 내 갈등은 올해 경선에서 사람과세상 소속의 강성희 전 의원을 꺾고 대선 후보가 된 김재연 상임대표의 사퇴로 더 커졌다. 이대종 농민당 대표 겸 공동대표가 사임하는 등, 사람과세상 측은 거세게 반발했다. 이들은 대선 직후 성명을 내어, 김 후보의 사퇴와 민주당 선거운동 가담만이 문제가 아니라 ‘체제교체론’이 아닌 ‘압도적 정권교체론’으로 대선에 임한 것 자체가 진보당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이었으며, 진보당 지도부가 장기 노선에서도 민주당과의 정치연합을 우선하여 진보당의 자력자강을 도외시한다고 맹렬히 비판했다. 양측의 대립은 2024년 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통일 포기’ 선언 이후 자주파 통일운동의 노선 논쟁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사람과세상은 북한에 통일 의사가 없음을 현실로 받아들이며 이를 남한만의 통일운동으로 극복할 수 없다고 본다. 이러한 인식을 반영하여 자주파의 오랜 구호인 자주·민주·통일 대신 평등·평화·자주로 대체하고, 남북한관계를 ‘평화적 2국가 관계’로 설정할 것을 주장한다. 올해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된 것을 고려하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진보당이 또다시 민주당과의 연대연합을 앞세울 명분은 약해질 수 있다. 그러나 12월 초 김재연 대표는 진보당 기관지와의 인터뷰에서 남아 있는 과제는 “단연 국민의힘에 대한 정치적 심판”이라며 “내년 지방선거는 내란세력의 완전한 심판을 위한 마지막 결전”, “지방권력에서 국민의힘을 최대한 멀어지게 만들고 고립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보면, 비상계엄 이후 “압도적 정권교체”가 필요하다며 ‘광장대선후보’ 이재명을 지지한 것과 같은 논리가 지방선거에서 발동할 여지가 있다. 국민의힘 심판을 빌미로 또다시 면피하는 것이다. “광장의 요구와 약속을 반드시 실현해야 하지만, 지금 우리가 서 있는 현실은 당시와 다릅니다. 연대해야 할 대상도 더 넓어졌습니다.”라는 발언도 진보당 고유의 정책보다 반국힘 연대를 우선할 필요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김 대표는 “집권여당에 대한 불만이 있지만, 진보정당의 존재감이 충분히 보이지 않으니, 국민의힘이 대안처럼 활용되고 있는 상황”, “가장 선명한 목소리를 가진 정당으로서 정책적 차별성, 내란청산의 투쟁성, 풀뿌리 정치력을 명확히 보이겠다”고도 했는데, 이는 조국혁신당의 “정치적 메기”와 동일한 전략이다. 김 대표 등이 명확히 언급하지는 않지만, 진보당판 정치적 메기 전략으로 호남을 공략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진보당의 지방선거 전략에 따른 혼란은 진보당에만 그치지 않을 수 있다. 민주노총 양경수 집행부가 민주당과의 연대연합에 편승하는 진보당의 행태를 옹호함으로써, 민주노총을 정치적으로 분열시키고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을 형해화해 왔기 때문이다. 진보당은 2024년 총선 당시 대의원대회 결정으로 위성정당 참여 금지를 규정한 민주노총 총선방침 4항을 정면으로 위반했다. 그러나 양경수 집행부는 민주노총의 진보당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다. 올해 대선에서도 진보당 지도부 노선을 따라 민주노총이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지지할 수 있도록 하는 대선방침을 제안했다. (‘진보정당 후보’뿐만 아니라 ‘진보정당과 연대연합을 실현한 후보’를 지지한다는 후보방침을 내놓았는데, 이는 이재명 후보 지지를 열어두는 뜻임이 명백했다.) 이러한 시도가 반발에 부딪히고, 유일하게 남은 진보정당 후보인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 지지 방침을 세우자는 의견이 나오자, 양경수 집행부는 대선방침 논의를 방기했다. 4. 결론 이 글은 제목에서 던진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헌정이 복원되었는가?”라는 물음에, 그렇게 평가할 수 없다고 답한다. 만약 국민의힘이 시민 대다수의 의견과 마찬가지로 윤석열 대통령의 무도한 비상계엄에 반대하고 부정선거 음모론을 비롯해 극단 세력의 주장과 명확히 선을 그으며 계엄 관련 의혹 해소에 앞장섰다면, 만약 민주당이 헌법재판소 판결도 지적했고,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의 여론이 거듭 주문했던 것처럼 ‘줄탄핵’ 등 독주를 반성하고 좀 더 포용적인 모습을 보였다면, 비상계엄 시도라는 국가적 불행을 정말로 민주주의와 헌정 복원의 기회로 삼는 일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비상계엄과 각종 비리의 전모를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과정 또한 민주주의 헌정질서를 준수하고 강화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두 가지는 충분히 공존할 수 있는 과제이며, 여론 분열 없이도 이룰 수 있는 과정이지만, 양당 지도부는 더 극단적인 대결로 치달았다. 정권은 교체되었고, 이재명 대통령은 국제무대에 나아가 마치 자신의 당선으로 모든 악몽이 끝난 것처럼 한국의 민주주의 복원을 자랑했다. 그러나 실상이 과연 그러한가. 집권당이 된 민주당은 당내에서는 누가 누가 더 강성인가 대결을, 국회에서는 국민의힘과 극단 대결을 이어갔다. 내년 지방선거의 주된 전략도 ‘내란 청산’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숨길 생각조차 없어 보인다. 이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이 사법국가가 되고 있다. 사법이 모든 걸 결정한다. 정치가 사법에 종속됐다. 위험한 나라가 됐다.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사실 최종적으로 사법 권력에 의해 실현된다”며 사법부를 노골적으로 적대시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은 입법·행정 권력의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리하여 만인에게 평등하게 집행될 것으로 ‘기대받는’ 사법의 기능을 위협하여, 한국 헌정의 근간을 흔드는 거대한 위험 요소다. 이것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으며 역사에서는 이러한 시도가 언제나 민중에 대한 압박과 헌정의 붕괴로 이어졌기 때문에, “헌법의 정신을 이탈한 정치는 폭력”, “문명국의 수치”라는 비판을 받고 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한국 정치 분석의 틀로 삼았던 ▲ 정치 양극화, ▲ 제왕적 대통령제, ▲ 헌정위기, ▲ 정치적 내전이 모두 올해에도 지속되거나 더 심화했다. 이런 조건에서 시민은 ‘개딸’처럼 정치에 과몰입하며 적대감과 폭력성을 강화하거나, 반대로 정치에 관한 환멸과 무관심이 커지는 양 편향에 빠지기 쉽다. 이러한 정치의 난맥상을 해소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각종 분야의 정책은 정쟁의 대상에 머물고 국가 운영은 어려움에 빠질 것이다. 올해 10~11월 국정감사가 자기 이름을 알리는 것에만 급급한 의원들의 낯 뜨거운 가짜뉴스와 인신공격으로 점철되면서, 본연의 정책 감사 기능 자체가 여느 해에 비해 눈에 띄게 저하되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 한 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일관된 외교정책이나 중장기적 국가 전략 수립도 불가능하다.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전쟁이 계속되고 트럼프가 돌아와 전후 세계질서가 흔들리는 국제 정세의 격변기를 헤쳐나가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주요 정치세력의 태세와 예고된 사안들을 보면 2026년에도 내전에 가까운 정치적 대립과 헌정위기가 심화할 전망이다. 사회운동은 극단적 의견 대립 사이에서 좁은 정도(正道)를 걸으며, 분열을 치유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
행정부 권력 집중과 경찰사법으로 나아가는가?
지난 9월 26일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10월 2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었다. 그 핵심은 정부 수립 이후 줄곧 존재해온 검찰청을 폐지하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을 신설하는 내용의 검찰개혁이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추진되어온 이른바 ‘검수완박’이 현실화되었지만, 법 시행을 1년 앞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공소청과 중수청의 구체적 권한 배분, 인력 이관 문제, 특히 공소청에 보완수사권(또는 보완수사요구권)을 부여할지, 전건송치를 부활시킬지 등의 쟁점이 여전히 남아 있다. 나아가 이번 개혁의 정치적 함의에 대한 숙고도 필요하다. 이는 검찰권 남용을 제어하기 위한 개혁인지, 아니면 행정부 권한의 집중을 초래하는 제도적 퇴행인지를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검찰개혁의 여러 방식 가운데 가장 급진적인 형태인 ‘검수완박’을 주장하는 이들(이하 ‘검수완박론자’)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이 반대와 신중론에 밀려 미완에 그쳤다고 판단하며, 이번 정부에서는 수사와 관련된 검찰의 권한을 전면적으로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문재인 정부 개혁 이후 드러난 여러 문제를 개혁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부작용으로 치부하거나, 오히려 그 문제들을 근거로 더 강경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제기한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을 통해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기소권을 검찰로부터 분리하고,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6대 중대범죄에서 이어서 2대 범죄 대상으로 축소했으며, 경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했다. 동시에 경찰에는 중대범죄 외 사건에 대한 수사권과 1차적 수사종결권이 부여되었다. 대신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대한 피해자의 이의신청 제도와, 검찰의 경찰에 대한 보완수사요구권이 통제 장치로 마련되었다. 당시 사회진보연대는 이러한 개혁이 ‘수사·기소 분리’라는 명분으로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면서도, 청와대가 통제 가능한 공수처에는 수사·기소권을 결합시키고, 중대범죄에 대한 검찰의 직접 수사권은 그대로 남겨둔 점에서 모순이라 지적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이라는 정치적 과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검찰 기능을 일정 부분 필요로 했기 때문이라 분석했다. 한편, 경찰의 수사 종결에 대해 검찰이 ‘사후적으로’ 개입하는 방식이 과연 실질적인 통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회의적 시각을 표명했다. (이유미,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 평가와 ‘검수완박’의 문제점」; 임필수, 「검찰개혁인가, 수사기관의 과대팽창인가?」)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이후 경찰 수사에 대한 검찰의 사법적 통제 약화의 효과부터 살펴보자. 검경수사권 조정이 시행된 2021년 이후 경찰의 불송치 사건은 약 39만 건에서 2024년 약 55만 건으로 3년 만에 41%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이의신청 건수도 약 2만5천 건에서 4만7천 건으로 늘었다. 이전에는 모든 사건이 자동으로 검찰에 넘어가던 ‘전건송치’ 제도가 폐지되면서, 피해자가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불복해 검사의 판단을 받으려면 직접 이의신청을 제기해야 한다. 그러나 법리나 수사 절차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 시민이 전문 서류를 스스로 작성하기란 쉽지 않으며, 결국 수백만 원에 달하는 변호사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경제적 여건에 따라 구제받을 수 있는 피해자의 범위가 달라지는 불평등이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경찰에서 검찰로 송치되는 과정이 지연되며 사건이 ‘증발’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2022년 민주당이 주도한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고소인(피해자)이 아닌 고발인(제3자)의 불송치 이의신청권이 폐지된 것도 큰 문제였다. 피해자를 특정하기 어렵지만 사회적으로 중대한 사건이거나, 의사 표현이 어려운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의 경우 잘못을 밝히고 피해를 구제할 통로가 사실상 차단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발달장애인 피해자들이다. 이들은 스스로 고소하기 어려워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대리 고발을 해왔지만, 이제 그마저 불가능해졌다. 민주당은 당시 형소법 개정의 명분으로 ‘고발 남용 방지’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당시 유력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특히 권력형 비리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불특정 다수인 탓에 시민단체의 고발을 통해 사건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이 개정은 사실상 권력자에 대한 시민의 공익적 감시 기능을 약화시켰다. 또한 검찰의 보완수사요구권 역시 실효성 부족으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이 권한은 강제력이 없어 수사 책임의 공백과 ‘사건 핑퐁’을 초래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불송치 이의신청 사건이 검찰에 송치되면 검사가 형식적으로 보완수사를 요구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검찰의 무책임을 지적하는 시각도 있지만, 검사가 죄가 안 된다는 경찰의 불송치 이유서 내용만 보고, 수사 미진을 느껴도 경찰에 보완·재수사를 적극적으로 요구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결과적으로 보완수사요구권의 약한 강제력은 검찰과 경찰 모두가 사건 책임을 회피하게 만들고, ‘핑퐁’이 관행화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런 현실적 배경에서 현 정부의 검찰개혁을 둘러싸고 최소한의 대책으로 공소청에 직접 보완수사권을 부여하거나, 불가능하다면 전건송치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이다. 그러나 검수완박론자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오히려 공소청의 보완수사요구권을 제한 내지는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경찰의 수사 종결에 대한 최후의 통제 수단을 없애자는 것으로, 실현될 경우 형사사건 처리는 사실상 경찰이나 중대범죄수사청에서 거의 종결되고, 공소청은 형식적 기소기관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를 통해 실체가 드러난 사건들이 적지 않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2019년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을 살해한 ‘계곡 살인 사건’, 2023년 빌라 세입자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세모녀 전세사기 사건’은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가 없었다면 전모가 밝혀지지 못했을 것이다. 이재명의 성남FC 사건 역시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가 없었더라면 경찰이 증거 불충분으로 불송치하는 것으로 끝났을 것이다. 검수완박론자들의 주장대로 공소청의 보완수사요구권이 폐지된다면, 앞으로 이러한 중대한 사건들이 묻히고 피해가 은폐될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이번 이재명 정부의 검찰개혁 과정을 살펴보자. 검수완박론자들은 문재인 정부 당시 중대범죄에 대한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남겨둔 것이 결국 검찰조직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반란’을 불러온 화근이었다고 보고, 이번에는 그 잔재를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 당시 검찰의 직접 수사권 존치는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필요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었다. 이 모순을 극복한다는 명분 아래, 검수완박론자들은 중대범죄 수사권을 검찰에서 박탈해 신설되는 행정안전부 산하 중대범죄수사청으로 이관하고, 검찰청은 단순히 기소 여부만 결정하는 공소청으로 격하시키며, 보완수사요구권도 제한 내지는 폐지할 것을 주장했다. 동시에 국무총리실 산하에 국가수사위원회를 설치해 공수처·경찰청 국가수사본부·중수청을 모두 감독하도록 하고, 불송치 이의신청 사건의 처리권을 검찰에서 국가수사위원회로 이관하는 구상을 내놓았다. 믿을 수 없는 검찰을 활용하기보다 그 ‘화근’을 철저히 제거하되, 청와대와 여당이 통제할 수 있는 칼을 더 날카롭게 벼리는 방안인 셈이다. 이번 정부조직 개편 과정에서 민주당은 검찰청법 폐지법률안, 공소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 국가수사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추진했으나, 마지막 국수위 설치는 철회했다. (그림 출처: 김종민, 「검찰청 폐지 및 수사·기소 분리의 문제점」) 입법 과정에서 검찰청 폐지와 중수청 신설은 실제로 관철되었고, 보완수사요구권 문제는 법 시행 전까지의 후속 쟁점으로 남았다. 반면 국가수사위원회 설치는 심지어 여권 내부에서도 ‘신중론’이 일어 무산되었다. 그럼에도 검수완박론자들이 제시했던 국수위 구상은 중요하다. 그들의 개혁이 지향하는 권력 구조가 무엇인지 드러내기 때문이다. 먼저 검찰청 폐지와 공소청·중수청의 신설을 보자. 이미 검찰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이 폐지되고, 검찰의 수사 견제 기능이 약화된 상황에서 행정부 내에 일반범죄를 담당하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와 중대범죄를 전담하는 중수청이 공존하게 되었다. 여기에 검수완박론자들의 구상대로 불송치 이의신청 사건의 처리가 공소청에서 국수위로 이관되었다면, 그리고 공소청의 보완수사요구권이 제한 내지는 폐지된다면, 형사사건 처리는 사실상 경찰이나 중수청에서 종결되고 공소청은 형식적 기소 기관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국가수사위원회 설립안은 개혁 과정에서 가장 논란이 컸다. 국수위는 국무총리실 산하 위원회로 설계되었으며,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중수청은 물론 수사·기소권을 모두 가진 기관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까지 감독하도록 했다. 검수완박론자들은 국수위의 모델로 영국의 독립경찰비위조사위원회(IPOC)를 들었으나, IPOC는 행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기구라는 점에서 국수위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국수위는 대통령이 4명, 국회가 최소 2명의 여당 몫을 포함해 4명, 나머지 3명을 장관이나 국무조정실장이 추천하도록 구성되어, 여당과 행정부가 과반을 장악하는 구조였다. 검수완박론자들은 검찰에 대해서만 ‘견제와 균형’을 강조하면서, 경찰과 행정부 권한의 비대화에는 침묵한다. 그럼에도 국수위 도입을 주장할 때는 이를 수사기관 권력 집중을 견제하고 상호 견제하도록 하기 위한 ‘민주적 통제장치’라고 포장한다. 그러나 한국의 권력 구조상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관계를 고려하면, 이는 사실상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하위 수사기관을 ‘민주적으로’ 통제한다는 궤변에 다름 아니다. 더구나 국수위가 가지게 될 권한은 기존 검찰보다 훨씬 강력했다. 국수위가 설치되었다면 수사기관 간 조정, 특별사법경찰 지휘, 불송치 이의신청 처리, 수사 적법성 심사, 감찰·징계 요구, 수사기록 및 장부 제출 요구, 수사관 출석·진술 요구 등 수사 전 과정에 개입할 수 있었다. 이는 수사에 대한 사법적 통제가 아니라, 정치권력이 수사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를 마련하려는 구상이었다. 요컨대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을 위해 검찰 기능을 일부 활용하면서도 검찰개혁을 외쳤다면, 이번 검수완박론자들은 검찰의 경찰에 대한 사법적 견제 기능을 부정하고, 기소제도를 형식화하여 남겨둔 채 강화된 수사권을 행정부가 직접 통제하는 구조를 지향한다. 사실상 경찰사법으로의 이행하는 방향, 정치권력에 종속된 수사체제를 제도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검수완박론자들은 검찰 권력을 견제하려면 권한 분산이 필요하며, 그 핵심 방식이 ‘수사와 기소의 분리’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구상이 ‘세계적 표준’에 부합한다 말하지만, 실제로 검찰개혁이나 수사·기소 분리에는 여러 수준과 유형이 존재한다. 한국에서 현재 추진되는 개혁 방식과 검수완박론자들이 주장하는 형태는 그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이며, 세계적 표준과는 되려 거리가 멀다. 먼저, 수사·기소 분리의 대표적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영국을 보자. 영국에서 이 제도가 도입된 이유는 검찰 권력에 대한 견제가 아니라 경찰사법의 결함을 교정하기 위해서였다. 영국에는 개인이 직접 범죄를 수사하고 법원에 소를 제기할 수 있는 ‘사인소추’의 전통이 있다. 이는 국가의 형벌권을 견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개인이 형사절차를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수사와 기소 기능이 점차 경찰로 이양되었고, 이후 경찰사법의 문제가 드러났다. 경찰이 피의자를 일방적으로 범인으로 단정하거나 유리한 증거를 누락하는 사례가 잦았고, 한편으로는 법률 전문성 부족으로 인한 무죄 판결이 늘어났다. 1972년 청소년 세 명이 살인 및 방화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가 뒤집힌 ‘콘페이트 사건’을 계기로 왕립위원회는 수사와 법률 판단의 기능을 분리할 것을 권고했고, 그 결과 독립적인 법률 전문가가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왕립기소청(CPS)이 설립되었다. 즉, 영국의 수사·기소 분리는 경찰의 권한 집중으로 인해 피의자와 피해자 모두의 권리가 침해된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었으며, 경찰에 대한 기소기관의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이었다. 영국에서는 오히려 기업·금융범죄 등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에서 수사 기능을 경찰로부터 분리해 공소 기능과 결합시키기도 한다. 경범죄의 경우 경찰이 기소권을 가지거나 증거가 불충분할 때 사건을 종결할 수 있으나, 왕립기소청은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청할 수 있고 경찰은 이를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 다만 실제로 이러한 보완수사 과정은 현장에서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경찰은 공소관의 요구가 불명확하다고 불만을 표하고, 공소관은 경찰이 증거를 누락하거나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긴장은 앞서 보았듯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이후 한국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검수완박론자들은 영국의 사례를 근거로 삼으며, ‘경찰에 대한 사법적 통제 강화’라는 제도 도입의 본래 취지와 국가의 형벌권 견제라는 영국식 법이념을 정반대로 해석한다. 영국에서는 검찰의 경찰 통제가 강화된 반면, 한국의 검수완박론자들은 공소관의 재수사요청권·보완수사요구권·시정조치요구권마저 제한 내지는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제도적 취지를 거꾸로 뒤집은 것이다. 한국은 영미법이 아닌 프랑스·독일 등 대륙법 전통에 속한다. 이 전통은 사적 불법행위와 공적 범죄를 엄격히 구분하고, 공적 범죄의 소추권은 국가가 독점한다는 원리를 따른다. 혁명 이전 프랑스에서는 왕실과 행정경찰이 영장 없이 개인을 체포하거나 투옥할 수 있었고, 법원은 기소와 재판을 동시에 수행했다. 혁명 이후 이러한 폐단을 제거하기 위해 법원으로부터 검찰을 분리하고, 공소와 재판은 반드시 검찰을 거치도록 하며 검찰에 독립성을 부여했다. 그 결과 프랑스 검찰은 행정부에 속하지만 준(準)사법기관으로 인식되었고, 경찰 수사를 지휘·감독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행정경찰과 사법경찰이 분리되고, 사법경찰은 경찰의 위계가 아니라 검찰의 지휘를 받는다. 독일의 경우도 비슷하다. 검찰은 직접 수사인력을 두지 않지만 여전히 ‘손 없는 머리’로서 수사를 지휘하며, 경찰은 ‘머리 없는 손’으로 검찰의 지휘에 따라 움직인다. 따라서 검수완박론자들이 독일을 근거로 검찰의 직접 수사 인력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직접 수사권 폐지와 수사지휘권 폐지를 혼동한 것이다. 이미 한국에서는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폐지된 상태이므로, 수사관을 중대범죄수사청으로 이관하면 사법적 통제를 벗어난 ‘손’만 남게 된다. 이는 프랑스혁명 이후 확립된 대륙법 전통의 행정경찰과 사법경찰의 분리를 약화시키는 방향이다. 검수완박론자들은 또한 1954년 한국 형사소송법 제정 당시 국회 공청회에서 엄상섭 국회의원이 한국이 ‘수사·기소 분리’를 지향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을 근거로, 검찰청 폐지가 ‘사상 초유의 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해석이다. 물론 해방 직후 미군정은 영미식 체계에 따라 수사·기소 분리를 지향했다. 그러나 일제시기 경찰은 광범위한 강제수사권을 행사하며 고문과 폭행을 일삼았고, 해방 이후에도 경찰은 견제를 거의 받지 않는 준군사조직으로 재편되어 정치권력에 의존하며 인권침해를 자행했다. 이런 상황에서 행정경찰과 사법경찰을 분리하고, 사법경찰을 검찰의 통제 아래 두는 대륙법식 개혁을 채택한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자리 잡은 것은 정치경찰을 통제하기 위함이었다. 결국, 검수완박론자들은 각국의 사례를 임의로 짜깁기해 ‘검수완박’이 세계적 표준이라 정당화하지만, 이는 영미법 전통에도, 대륙법 전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의 주장은 세계적 표준이라 할 수 있는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 강화’라는 방향에 역행한다. 검수완박론자들의 주장과 개혁 방식에서 드러나는 경찰사법 지향은 위험하다. 경찰은 행정부 산하 기관으로, 상명하복의 위계를 따르기에 준사법기관인 검찰보다 정치적 중립성이 더 약하다. ‘정치검찰’의 문제를 바로잡으려면 정치로부터 검찰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반대로 행정부의 명령 체계에 속한 수사기관을 강화하고, 이에 대해 사실상 대통령의 감독권을 두는 방식은 법과 국가권력을 이용해 정적을 억압하고, 권력을 가진 세력을 보호하는 구조를 낳을 수 있다. 검찰의 정치화를 비판하며 ‘견제와 균형’을 외치면서도, 경찰에 대해서는 같은 원칙을 적용하지 않으며 ‘정치경찰’의 위험은 외면하는 것은 명백한 이중기준이다. 검수완박론자들이 끊임없이 언급하는 ‘견제와 균형’의 핵심 원리는 사실 사법의 독립이다. 현대 이전 권력자의 자의적 통치, 즉 ‘법에 의한 통치’(rule by law)에 맞서 시민들은 의회를 통해 ‘법의 지배’(rule of law)를 확립했고, 이를 지탱한 제도가 바로 독립된 사법부였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의 위기와 함께 사법의 정치화가 심화되고 있다. 다수결이나 ‘국민 의사’라는 명분 아래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으며, 최근 유럽 극우정당들의 사법부 공격이 그 단적인 예다. (김영진, 「주류가 된 유럽 포퓰리즘」) 이런 흐름은 민주주의를 권위주의로 전락시키고 시민의 권리를 침식할 수 있다. 역사는 사법부의 독립을 파괴하고 그 권한을 행정부로 이전한 극단적 사례들을 보여준다. 나치 독일이 그 대표적 예이며, 과거 소련의 비밀경찰이나 현재 중국의 공안통치, 한국의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유신체제 역시 그와 유사했다. 지금 한국의 제도가 그들과 동일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번 검찰개혁의 방향과 검수완박론자들의 논리를 보면, 최근 유럽 극우정당의 사례처럼 사법의 정치화를 강화하는 길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검수완박론자들이 비판하는 군사독재 시기의 왜곡된 검찰·사법 운영이든, 윤석열 정권의 헌정 파괴이든, 그에 대한 대응은 검찰이 정권을 비호하는 폐단을 교정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사법부를 정치권력에 종속시키고 행정부 권한을 강화하는 방식은 검찰개혁의 방향일 수 없다. 문재인 정부 시기 검찰개혁의 모순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발생한 현실의 문제들
이재명 정부의 이번 검찰개혁과 검수완박론자들의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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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수완박’이 세계적 표준?
경찰사법인가, 사법의 정치적 독립인가
당원주권시대의 개막인가, 팬덤당원이 주도하는 정치의 극단화인가
정청래 의원의 당선과 ‘당원주권시대’?
팬덤 당원의 부상, 오히려 정당 민주주의의 타락 아닌가
강성 팬덤이 이끄는 정치의 극단화
포퓰리즘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가?
미국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유럽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유럽 각국 정부는 트럼프 정부의 관세 위협,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유럽 패싱을 마주하면서 대서양 동맹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 느꼈다. 동시에 범유럽 차원에서 공동으로 대응할 필요성에 공감했다. 3월 2일 영국에서 열린 유럽 주요국 비공식 정상회의에서 유럽 정상들은 ‘유럽이 단합해 최선의 결과를 보장할 긴급행동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으며 유럽연합 역시 경쟁력 나침반 계획, 재무장 계획을 잇달아 발표하며 경제적 자립과 외교, 군사적 자강에 나서고 있다. 한편, 2월 8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선 위의 흐름과 상충하는 행사가 열렸다. 스페인 정당 복스(Vox) 주최로 열린 ‘유럽을 다시 위대하게’(MEGA) 집회에선 유럽의 주요 극우 포퓰리즘 정당들이 모여 유럽연합의 정책과 자국의 정치권을 비판했고, 유럽연합의 우크라이나 지원 정책을 비판하며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반다양성 정책에 동조했다. 이날 참석한 헝가리 오르반 총리는 “어제의 이단아였던 우리는 이제 주류가 되었다”고 선언하며 유럽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 유럽을 다시 위대하게(MEGA) 집회 2월 8일 2024년 유럽의회 선거 이후 재편한 유럽 극우 포퓰리즘 정당연합인 ‘유럽을 위한 애국자들(PfE)’ 소속 정당 지도자(스페인 복스, 프랑스 국민연합, 헝가리 피데츠, 이탈리아 동맹, 네덜란드 자유당 등)들이 모여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구호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를 차용한 ‘유럽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며 세를 과시했다. (사진 출처 : 《로이터》) 이 장면은 현재 주요 유럽국 정상들을 중심으로 하는 범유럽 차원의 연대 강화 흐름에 내부 저항세력이 도전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실제 202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포퓰리즘’으로 분류되는 정치세력은 기존 정치권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현재 우파 포퓰리즘 교섭단체인 ‘유럽을 위한 애국자들(PfE)’와 ‘유럽보수연합(ECR)’, ‘유럽주권자연합(ESN)’ 의석수를 모두 합치면 총 187석(26.5%)으로 2019년 유럽의회 선거 대비 의석이 69석이 늘었으며 현재 유럽의회 2당인 ‘유럽사회민주당(S&D)’(136석)을 밀어낼 정도다. 유럽의회뿐만이 아니다. 유럽 각 나라 선거에서도 포퓰리즘 정치세력들은 각국의 정당정치 지형을 바꾸거나 집권세력이 되기도 한다. 최근 포퓰리즘 정당들의 부상에, 많은 분석가는 이들이 각국의 헌정은 물론, 유럽의 해체를 지향한다고 우려한다. 지난호의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는 어떻게 실패하는가」에선 “헌정주의가 결여된 민주정은 권위독재정으로 역행하거나 인민정으로 변질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글은 위 문제의식을 기초로 유럽적 맥락에서 포퓰리즘을 살펴본다. 구체적으로 포퓰리즘이 헌정 민주주의(헌정주의)를 어떻게 변형, 훼손시키는지 살펴볼 것이다. 먼저 이론적 분석틀을 살펴본 후, 해당 분석틀을 기준으로 최근 유럽 주요 국가(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스웨덴)에서 포퓰리즘 정당들의 행태를 소개할 것이다. 그런 다음 주요 사례의 공통점을 분석하여 포퓰리즘이 각국, 나아가 유럽 차원에서 헌정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며, 이들 세력에 대한 대처가 향후 유럽정치에 핵심 과제임을 설명하고자 한다. 포퓰리즘은 논쟁적인 단어다. 그 이론적 대상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포퓰리즘은 경험적 사례에서 그 특징을 도출하는 최소주의 접근과, 기존 민주주의를 대체할 급진적 민주주의 전략으로 사고하는 최대주의 접근으로 나뉜다. 전자는 특정한 정책적 입장, 정치스타일, 그리고 정치이념으로 포퓰리즘을 설명한다. 정책적 입장에서 포퓰리즘의 기준은 주로 무리한 확장재정정책, 인기영합정책으로 해당 정책을 펼치는 정당, 정치인을 포퓰리즘으로 간주한다. 정치스타일로 포퓰리즘을 설명하는 접근법은, ‘엘리트’와 ‘인민’을 대립시키고 자신이 ‘인민’의 편이라고 호소하는 수사에 주목한다. 마지막으로 정치이념적 접근은 포퓰리즘이 극복하고자 하는 현실의 모순과 지향하는 사회의 상이 불분명하여 여러 정치이념을 차용하는 점에 주목한다. 반면 포퓰리즘에 대한 최대주의 접근은 포퓰리즘을 진정한 민주주의로 사고한다. 라클라우의 포퓰리즘 설명이 대표적이다. 라클라우는 포퓰리즘을 기존 인민을 고립시키는 대의제에 맞서 집합적인 동일성을 형성하고 참여를 통해 ‘집단적 주체’로서 민주주의를 재구성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특정 소수가 통치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행위가 아니라 ‘약자’들이 스스로 사회 및 정치질서를 형성하고자 하는 주권 추구 행위로 이해한다. 그러나 양자의 설명은 모두 결함이 있다. 최소주의 접근은 포퓰리즘과 비(非)포퓰리즘과의 경계가 모호한 문제가 있다. 확장재정정책과 인기영합정책은 포퓰리즘 정당만 행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주류 정당들도 상황에 따라 특정한 수사로서 ‘엘리트’와 ‘인민’ 간 적대와 인기영합정책을 펼친다. 또한 새로운 수사와 정책적 공통점이 발견될 때마다 포퓰리즘에 해당하는 특성과 범주가 늘어나 포퓰리즘의 규정이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다. 한편 최대주의 접근은 포퓰리즘의 구조적 특성을 설명하려고 하지만, 여기서 ‘인민’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그리고 현실에서 어떻게 운동적, 제도적 형태로 나타나는지를 설명할 수 없으며 그렇게 모인 정치적 행위가 반드시 해방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따라서 포퓰리즘을 이해하기 위해선 구체적인 문제설정이 필요하다. 미국 콜롬비아대학 정치학 교수인 나디아 우르비나티는 『나, 인민 : 포퓰리즘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변형하는가?』에서 유럽적 맥락에서 포퓰리즘과 헌정주의의 관계를 중심으로 포퓰리즘(권력 지향 정치세력으로서 포퓰리즘)의 구조적 특성을 설명한다. 사회진보연대는 인민주의가 의회나 사법기관을 불신하면서, 시민의 권리를 제약하고 법치를 위협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고려할 때, 우르비나티 교수의 설명은 포퓰리즘(인민주의)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구체화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우르비나티 교수는 포퓰리즘을 논하기에 앞서 현대 헌정 민주주의를 설명한다. 그녀는 민주정에서 주권자의 권력이 ‘이원지배’(diarchic) 즉, 의견(opinion)과 의지(will)라는 두가지 형태로 나타난다고 본다. 여기서 의견은 제도 바깥에서 여론을 형성하는 영역이고 의지는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다양한 의견, 여론을 조율하는 제도와 절차를 의미한다. 이때 현대 헌정 민주주의는 의견과 의지를 독립된 영역으로 구별한다는 점에서 고대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와 구별된다. 주권자와 통치자가 구별되며 주권자들의 의견이 통일되어 있지도,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대전 이전의 대중독재를 경험한 뒤, 현대 민주정은 다양한 매개조직(intermediation) 즉, 정당, 언론, 중앙은행, 독립된 사법부를 강화하며 의견과 의지 사이에 거리를 두었다. 의견과 의지는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다양한 매개조직을 통해 상호 연결되며 영향을 준다. 다양한 이익집단, 사회운동 단체들을 통해 형성된 여론은 매개(중개)조직, 특히 정당을 통해 보편적인 정치적 판단으로 나타난다. 정치적 판단은 선거를 통해 평가받으며 ‘다수’의 지지를 받는 ‘부분의 지배’(merecracy)를 용인한다. 그러나 선출된 ‘부분’으로서 대표는 고정되거나 영속성을 보장받지 않는다. 대표로서 정부는 다양한 의견과 끊임없이 교통하며 전체를 대표하는 정치적 과정(여론 수렴)의 시간을 확보하고 동시에 여러 매개조직을 거치며 정책을 결정, 집행한다. 이렇듯, 현대 헌정 민주주의는 의견과 의지 사이의 시공간적 거리를 선거와 매개조직을 통해 조절하면서 사회적 힘을 정치적 힘으로 바꾼다. 우르비나티 교수에 따르면, 포퓰리즘은 이원지배 사이의 거리감을 참지 못하면서 등장한다. 의견과 의지 사이의 복잡한 시공간적 거리를 좁히고자 하며 이를 막는 다양한 매개조직들을 약화하고 그 작동방식을 변형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포퓰리즘, 특히 권력을 쥔 포퓰리스트들은 선출된 ‘다수’의 대표를 사전에 정하고 배타적으로 존중한다. 그러나 파시즘과 달리 기존의 대의제와 제도, 기관들을 완전히 부정하거나 파괴하지 않는다. 그들은 매개조직을 장악하여 권력행사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 변형한다. 이 점에서 포퓰리즘은 민주주의 외부의 적이라기보단 내부에서 민주주의를 착취하는 기생충과 같다. 우르비나티는 포퓰리즘은 기존의 민주주의 원칙과 개념을 변형하는 해석으로 민주주의를 내파한다고 주장한다. 먼저 반기득권 개념을 변형한다. 현대 헌정 민주주의에서 반기득권은 권력에 대한 제도적 견제와 균형을 전제한다. 권력의 영속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제도적 견제와 여론 경쟁을 통해 독재를 막고자 한다. 그러나 포퓰리즘은 반기득권 개념을 기득권에 대한 반대, 제거로 이해한다. 여기서 기득권은 엘리트 일반이 아닌 정치엘리트다. 이들 정치엘리트(기성 정당, 사법부, 언론, 관료)가 인민과 ‘지도자’ 사이를 막아서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이다. 포퓰리스트는 기존 정치엘리트를 비난하며 이들을 정치엘리트 외부의 인물인 자신으로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변형된 해석의 대상은 ‘인민주권’(people sovereignty)이다. 본래 ‘인민’은 대의제를 통해 ‘법 앞에 평등한 국민’의 이름으로 간접통치를 확립하는 절차적 개념이다. 즉, 주권자로서 추상적 집합체인 ‘인민’(국민)과 현존하는 ‘인민’을 구분하며, 현실의 대의제적 정치과정 곧 ‘다수’와 ‘소수’의 끝없는 경쟁을 추동하는 과정이 인민주권을 이룬다. 반면 포퓰리즘은 간접통치 개념을 전제하면서도, 주권자로서의 인민과 현존하는 인민 사이의 일치를 추구한다. 여기서 주권자로서 인민은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추구하는 가치관과 일치하는 ‘진정한 인민’(the true people)이라는 인공적 개념이다. 진정한 인민은 언제나 도덕적인데 그들이 정말 도덕적이기보단, 기득권이 아니며 언제나 기득권이라는 ‘부정의’의 피해자이기에 도덕적이다. 그리고 진정한 인민이 아닌 자들은 ‘인민의 적’이다. 그렇기에 포퓰리즘 세력들은 권력을 확보할 시, 자제를 하지 않고 ‘인민의 적’을 향해 맹렬한 비방과 무력화를 시도한다. ‘인민’에 대한 변형된 해석은 ‘다수결’로 이어진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다수결은 다원주의와 다수의 지배를 결합(의사결정방법, 권력의 결합)한 개념이다. 그러나 포퓰리스트는 다수결을 다수의 지배로만 이해한다. 양자의 차이는 ‘소수’를 어떻게 다루냐에 달려있다. 포퓰리스트에게 ‘진정한 인민’은 언제나 다수다. ‘소수’는 언제나 기득권 정치엘리트다. 그들은 지도자/정당과 직접 연결된 인민의 의지를 물화(物化)하여, 진정한 인민과 그 지도자에 권력을 집중시켜 ‘소수’로서 ‘인민의 적’을 배제한다. 그렇기에 포퓰리즘 정당/정치인은 공적 토론을 억압하고 다원주의를 무시하며 인민을 정당/지도자에 통합해, 선거를 통해 그들이 수적으로도 다수라는 사실을 확인하고자 한다. 즉, 포퓰리스트에게 선거는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의례다. 포퓰리즘은 ‘대표성’(representative)에 대한 해석도 변형한다. 민주주의에서 대의제의 핵심 특징은 ‘위임대표’(mandate representation)다. 국민의 대표로 선출된 이들은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뿐만이 아니라 전체 유권자인 국민을 위해 선출된 대표자로서 국익을 위해서도 활동한다. 반면 포퓰리즘에서 대의제는 ‘인민 의지를 육신화한 대표’(representation as embodiment)다. 포퓰리즘 정당/지도자는 ‘진정한 인민’에 의해 선출된, 진정한 인민의지를 보여주는 정당/지도자이므로 제도나 여론에 의해 견제받지 않으며 타협할 수 없다. 그들은 이미 인민 집합을 자신 안에 흡수한 리바이어던으로, 대의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구원자로 스스로를 내세운다. 포퓰리즘 정치인은 지지자들과 연결되어 있기에 권력을 확보한다고 해서 기득권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대중적 노출, 소셜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진정한 인민들에게 자신이 인민의 의지를 육신화한 대표임을 확인시키고 확인받는다. 포퓰리스트들에게 유일한 제약요인이 바로 진정한 인민의 여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퓰리즘 정당/지도자는 전통적인 정당과 전문 저널리즘을 상대화하고 소셜미디어를 매개로 청중을 육성한다. 우르비나티 교수는 버나드 마넹의 ‘청중 민주주의’ 개념에 따라, 청중과 연결된 지도자는 제도적 견제를 거부하며 전통적 정당의 지도자들보다 후견주의나 부패에 더 심하게 노출된다고 지적한다. 결과적으로 포퓰리즘은 지도자와 올바른 인민 사이의 거리를 소멸시키고자 한다는 점에서 ‘직접 대의제’다. 이는 위임 민주주의 매개 모델이라는 현대 헌정 민주주의를 손상시키는 것이다. 포퓰리즘 대의제 아래에선 지도자와 진정한 인민 간의 신앙적 신뢰에 기초해 양자 사이의 장애물들(매개조직)을 약화하고 수단화하면서 지도자를 책임성으로부터 면제한다. 이를 위해 포퓰리즘 정당/지도자는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referendum)와 신임투표(plebisticite)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특정한 다수(진정한 인민)의 힘을 보여주어 견제와 비판을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포퓰리즘은 미디어(주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인민과의 직접 소통을 강조하며 강성 지지층을 기반으로 정당정치와 제도적 기관, 절차 등을 무장해제, 수단화한다. 나라마다 맥락과 과정은 상이하지만, 방향은 대체로 매개조직의 쇠퇴로 나타난다. 우르비나티 교수는 포퓰리즘 세력이 매개조직의 쇠퇴를 지향하는 점에서 권위주의적 경향이 높다고 본다. 그리고 만일 포퓰리즘 세력이 집권 후에 청중을 향한 직접 소통을 중단하고 제도에 대한 물리적 파괴, 폭정으로 나아가면, 포퓰리즘은 파시즘이 된다고 주장한다. [표] 우르비나티 교수의 포퓰리즘과 헌정 민주주의의 주요 개념 해석 요약 우르비나티 교수는 이러한 포퓰리즘이 민주주의의 누적된 결함과 모순의 결과라고 본다. 20세기 민주주의 특징인 법치와 시민권이 기득권화되었으며, 금융세계화로 인한 민족국가 주권 약화, 중산층 감소, 인터넷 발달을 비롯한 정당 자체의 기반 변화를 배경으로 포퓰리즘이 성장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포퓰리즘의 부상은, 정세의 변화 속에서 현재의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제도와 기관들이 정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역사적 모순과 한계에 부딪혔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우르비나티 교수는 포퓰리즘을 파시즘과 동일하게 해석하거나 민주주의 외부의 적으로 보며 악마화할 것이 아니라, 기존 헌정 민주주의의 한계 속에서 포퓰리즘이 성장했음을 인정하며 이를 통해 헌정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제도적, 정당정치의 개혁을 주장한다. 유럽에서 포퓰리즘은 유럽통합이 부딪힌 위기와 깊은 관련이 있다. 유럽통합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각국의 재건이라는 이해관계에서 출발했으며 냉전 종식 후 유럽연합 출범으로 현실화되었다. 그러나 유럽연합은 정치적, 재정 통합과 무관한 독일 중심의 ‘화폐통합’에 가까웠다.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등 ‘중심부’ 국가와 그리스, 스페인 등 ‘주변부’ 국가간의 경제 불균형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남유럽의 재정위기를 필두로 유럽의 은행위기와 부채위기로 나타났다. 유럽중앙은행(ECB) 기술관료 중심의 징벌적 구제금융은 금융위기 회복이 아닌 현재까지도 지속되는 유럽의 장기침체로 이어졌다. 유럽통합에 대한 반감에 더해, ‘난민위기’는 각국에서 급증하는 이민자와 난민 문제 대처에 실패한 정치권에 대한 반감을 키웠다. 유럽연합은 2015년 시리아 내전으로 급증하는 아프리카, 중동의 난민들을 어떻게 수용할지를 두고 국가별로 분열했다. 늘어나는 난민을 각국의 사회정책, 제도가 충분히 수용하지 못하면서 기성 정치세력을 향한 불만이 커졌다. 그 결과 과거 유로화나 유럽헌법조약을 거부한 세력들을 중심으로 유럽통합에 반대하며 개별국가의 민족주권을 강조하는 포퓰리즘 세력이 급부상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인플레이션 심화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는 각국의 주류 정치권에 대한 불만을 더욱 키웠다. 그 결과 포퓰리즘 세력이 동유럽과 남유럽을 넘어, 서유럽을 비롯한 소위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도 집권하거나 연정에 참여하는 사례로 이어졌다. 이탈리아의 형제당과 동맹당, 네덜란드 자유당, 핀란드 인민당이 대표적이다. 집권당은 아니라도 오스트리아 자유당, 영국 개혁당, 프랑스 국민연합, 독일을 위한 대안당 등은 기존 주류 정당을 능가하는 지지율을 보인다. 이들의 성장은 각국의 정당정치 지형뿐만이 아니라 사회 분위기를 바꾸며 민주주의를 손상시키고 있다. 실제 2025년 2월 말 발표된 유럽연합 산하 비정부기구 리버티즈(The Liberties)의 연간보고서 ‘법치 2025 보고서’는 유럽에서 민주주의의 침체가 심화되었다고 판단한다. 보고서는 6개 부문(사법 시스템, 반부패, 견제와 균형, 언론의 자유, 시민사회, 인권보호)을 기준으로 유럽국들을 분류한다. 그 결과 이탈리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등의 국가들은 민주주의의 ‘해체국’(dismantler), 프랑스, 독일, 스웨덴, 벨기에는 민주주의 ‘추락국’(slider), 네덜란드, 스페인, 아일랜드, 그리스는 ‘정체국’(stagnator)으로 분류되었다. [표] 유럽의 주요 포퓰리즘 정당 이 글에서는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스웨덴 4개국을 중심으로 최근 주요 포퓰리즘 정당들의 행보를 살펴볼 예정이다. 앞선 보고서에 따르면, 위 4개국은 전년도 대비 2개 부문 이상에서 민주주의가 퇴보한 국가들이며 포퓰리즘 정당의 영향력이 큰 나라들이다. 각 나라에서 포퓰리스트들의 행보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협, 혹은 변형하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할 것이다. 2022년 이탈리아 총선은 많은 이들에 충격을 주었다. 네오파시스트 정당인 이탈리아의 형제들(Fdi, 이하 형제당)이 대승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형제당은 무솔리니 정권 잔존세력들의 정당으로 사회운동당, 민족연합의 이름으로 명맥을 유지해왔다. 형제당은 판데믹 시기 드라기 거국내각에 참여하지 않고 내각 밖에서 정부를 비판했다. 드라기 내각이 백신접종, 우크라이나 지원을 두고 또다른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운동(M5S)과의 갈등 끝에 붕괴하자, 형제당은 기존 정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지지를 대거 흡수했다. 형제당은 2022년 총선에서 동맹, 전진 이탈리아와 연합하여 상하 양원 모두 과반을 차지했다. 연정파트너인 동맹과 전진 이탈리아의 낮은 지지율에 비해, 형제당은 최근까지도 30% 수준의 지지율을 유지하며 연정을 주도하고 있다. 현재 이탈리아 총리는 조르자 멜로니로 형제당을 2010년대부터 이끌고 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청년시절부터 형제당에서 활동하며 경력을 쌓았고 2012년 당시 동맹, 전진 이탈리아로 통합하자는 당내 분위기에 반대하며 이후 당을 이끌었다. 2022년 총선 후 이탈리아 최초 여성총리가 된 그녀는 세간의 우려와 달리, 우크라이나 지원에 적극적이었고 유럽연합에도 적극 협조했다. 이런 행보는 당시 자유주의 정치인과 학자들의 주목을 받으며 포퓰리즘 세력을 순치할 수 있다는 기대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국내정치에서 형제당과 멜로니 총리는 이탈리아 헌정을 크게 훼손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멜로니 총리와 형제당이 준비 중인 두 가지 개헌안 때문이다. (1) 총리 직선제 개헌안 첫 번째 개헌안은 2023년 11월에 발표된 총리 직선제 개헌안이다. 이탈리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무솔리니의 독재를 막기 위해 1948년 이래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대통령이 존재하지만, 상징적인 국가원수에 가깝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단순비례대표 선거제도를 채택했는데, 그 결과 여러 정당이 난립하면서 내각이 안정적이지 못했다. 1992년 ‘마니 풀리테’ 수사로 주류 정당이던 기민당, 사회당이 몰락하면서 내각의 변동과 혼란은 가속화되었다. 1948년 이래 내각이 총 68번 교체되었으며 내각의 평균 존속기간이 18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내각 구성에 실패해, 대통령이 임명한 기술관료 내각의 빈도가 잦아졌다. (이탈리아 대통령은 의회해산권과 내각임명권을 행사할 수 있다. 관행상 의회 자체적으로 내각을 구성하지 못하는 위기시에는 대통령이 관료 내각을 임명한다. 2021년 마리오 드라기 내각이 대표적이다) 멜로니 정부는 빈번한 내각 교체, 불안정한 정당정치를 이유로 현행 헌법을 바꾸겠다고 주장했다. 당초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주장하던 멜로니 정부는 2023년 10월 29일 연정회의를 통해 개헌안을 마련했고 11월 3일 하원의회에 제출했다. 개헌안 주요 내용은 ▲ 임기 5년 총리 직선제 보장 (최대 2연임 가능) ▲ 상하 양원에 집권당 의석 프리미엄 보장(55%)이다. 동 개헌안은 2024년 6월 하원을 통과했다. 이후 상원에서 현재까지 논의 중이다. 이탈리아 개헌 절차는 상하 양원의 1차 투표(과반 동의)와 2차 투표(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모두 통과하거나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멜로니 총리는 총리 직선제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며 의회에서 개헌안이 좌절될 경우,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밝혔다. 실제 멜로니 총리는 자신의 법률고문이자 직선제 개헌안을 작성한 마리니를 헌법재판관 후보로 추천하며 개헌안 통과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제1야당인 민주당(PD)은 개헌안이 무솔리니 정권 시기 1당에게 하원 전체 의석의 3분의 2를 내줬던 아체르보 법안(Acerbo Law)을 연상시키며, 견제와 균형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야당의 강한 반발 속에 2024년 11월 8차례의 투표 끝에 정부는 마리니 임명에 실패했다. 그러나 정부는 다시금 마리니 임명을 밀어붙였다. 12월 들어 헌법재판관 공석이 4석으로 증가하자, 정부는 정치권에 헌법재판관 임명 공백을 장기화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며 압박을 강화했다. 결국 마리니 후보자는 2025년 2월 13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되었다. 5월 7일 상원 질의에서 멜로니 총리는 ‘총리 직선제 개헌안’ 통과에 의회가 속도를 낼 것을 주문했다. 이탈리아 여론조사기관 스카이TG24의 설문에 따르면 총리 직선제 개헌 찬성 의견이 54%에 이르므로, 여론이 자신에 유리하다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줄리아노 아마토 전 이탈리아 헌법재판소장을 포함한 헌법학자들은 이탈리아 내각의 불안정성은 파편화된 정당시스템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 부분에 대한 해결 없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권위를 총리에 주는 개헌이 오히려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2) 이탈리아 사법부 개혁 개헌안 멜로니 정부가 밀어붙이는 두 번째 개헌안은 사법부 개혁 개헌안이다. 멜로니 정부는 사법부와 갈등을 지속했다. 이탈리아는 난민이 유럽에서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다. 따라서 멜로니 현 정부는 난민 즉, 불법 이민자를 적발하면, 구금하고 강제이송하는 행정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해당 조치는 유럽연합의 이민·난민 관련 지침과 유럽사법재판소 판시와 충돌한다. 이주민을 출신국가로 이송하는 기준이 되는 ‘안전 국가’ 규정에 대한 해석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정부의 법령은 ‘일반 국민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국가’로 넓게 해석하지만, 유럽연합 지침과 판시는 나라 전체가 안전한 국가 출신의 이주민만이 출신 국가로 이송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이탈리아 법관들은 유럽법 우선원칙에 따라 개별 난민에 부과된 구금조치를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정부 인사들은 구금취소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을 공격했다. 예를 들어 방글라데시, 이집트 난민 12명에게 구금취소를 판결한 알바노 판사의 경우, 수십 건의 살해협박 문자를 받았다고 밝혔다. 아포스톨리코 판사 역시 4명의 튀니지 난민 구금취소에게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멜로니 총리는 페이스북에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에 반하는 행위’라 비판했으며,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동맹)는 X(트위터)에 판사의 과거 집회 참여이력을 공개하며 ‘정치화된 판사’의 판결이라고 비난했다. 아포스톨리코 판사는 1년간 계속된 정치권의 사퇴 압박 끝에 2024년 12월 사임했다. 2024년 5월, 이탈리아 정부는 사법부 개혁 개헌안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 판사, 검사 경력 분리 ▲ 두 개의 별도의 최고사법위원회(CSM)를 통해 판사, 검사 임용, 승진 업무 체계 분할 ▲ 최고사법위원회 위원 임명 방식 개정(선출에서 추첨으로 변경) ▲ 법관의 징계를 담당하는 별도의 고등징계법원 설치다. 동 개헌안에 대해 총리실은 판사, 검사 유착문제와 공정하고 효율적인 사법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개혁안이라 발표했다. 멜로니 총리는 비효율적이고 불공정한 사법체계를 개혁하고 비선출 엘리트인 사법관을 민주적으로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탈리아 헌법(104조)에 따르면 최고사법위원회는 사법행정 최고기관으로 판사와 검사의 임용, 승진, 징계 등의 업무를 관장한다. 이탈리아에서 검사와 판사는 ‘사법관’(magistrate)으로 통합되어 있으며 업무상으로만 구별된다. 최고사법위원회는 30인으로 구성되는데 당연직 3인(대통령, 검찰총장, 대법원장)을 제외하면 선출된다. 3분의 2는 사법부에서 선출된 판사들이며, 3분의 1은 의회-사법부 합동회의에서 법학교수와 경력 15년 이상의 변호사 중 선출한다. 개헌안에 따르면 검사 최고사법위원회는 법무부 산하에 둔다. 그리고 두 최고사법위원회는 국회, 검사, 판사가 작성한 명단 중에 무작위 추첨으로 지명한다. 고등징계법원은 15명의 판사로 구성된 최고사법위원회로부터 독립된 기구로 둔다. 개헌안은 2025년 1월 16일 하원에서 1차 투표를 통과했다. 이탈리아 법조인들은 해당 개헌안에 반발했다. 로마대학 법학교수 벤베누티는 이탈리아 정치권과 사법부 간에 지속적인 갈등의 역사라는 맥락을 볼 때, 개헌안은 사법부의 행정부 견제를 무력화하는 안이라 우려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집권기에 부패 문제로 검찰에 여러 차례 기소되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2003년과 2008년에 고위공직자 형사책임 면제법을 통과시켰고, 2005년엔 공소시효 단축법도 통과시켜 자신을 향한 수사를 막고자 했다. 그리고 검찰을 법무부 산하로 두는 등 현 법안과 유사한 사법개혁 개헌안을 통과시키려 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사법부 훼손 시도는 당시 나폴리타노 대통령의 비협조와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로 저지되었다. 현 정부 역시 산탄케 관광부 장관, 살비니 부총리 등이 검찰에 기소되거나 되었던 상태다. 이탈리아 판사협회(ANM)는 개헌안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위협하는 안이라 강하게 비판했다. 파로디 판사협회장은 개헌안이 정치권의 부패혐의를 덮을 수 있고, 사법부의 자치원칙을 위협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판사협회는 2월 27일 이탈리아 판사 하루 파업을 결정했다. 이날 이탈리아 전역에서 80%의 판사들이 파업에 동참했다. 전진 이탈리아, 형제당은 해당 파업을 ‘반란’이라 규정하며 비난했다. 이후 3월부터 진행된 판사협회와 법무부 장관 간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상원은 6월 11일 개헌안을 본회의에 제출할 것을 밝혔다. (18일로 연기되었다) 유럽판사협회(EAJ)는 계속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진행되는 개헌에 우려를 표하며 개헌 절차를 멈출 것을 요구했다. [사진] 이탈리아 판사협회(ANM)의 2025년 2월 27일 파업 2월 27일 판사파업 당일 로마 최고법원에서 이탈리아 판사협회 지도부를 포함한 100여명의 판사들이 법복을 입고, 이탈리아 헌법전을 흔들며 정부의 사법부 개혁 개헌안에 반대하는 플래시 몹을 진행했다. (사진 출처: 《la Repubblica》) 이렇듯, 멜로니 총리와 형제당, 동맹, 전진 이탈리아의 연립정부는 개헌안을 통해 이탈리아의 헌정을 바꾸고자 한다. 비록 양원 모두 연정 의석이 3분의 2를 넘기지는 못하며, 국민투표 요건 역시 유권자 50만 명, 5개 이상 지역 의회의 승인이 필요한 복잡한 절차와 과정이 있는 만큼 단기에 결정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형제당이 안정적인 지지율을 유지하며 내각이 역대 5번째로 장수하고 있고, 오성운동이 민주당과 달리 헌정 문제에 관심이 적은 상황은 개헌을 둘러싼 변수가 될 전망이다. 2024년은 프랑스 정치사에 있어 격변의 해였다. 2024년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RN)의 지지율 급상승과 여당인 르네상스당(RE)의 참패는 마크롱 대통령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는 국면의 전환을 위해 의회(하원)를 해산하고 조기총선을 결정했다. 그러나 6월 30일에서 7월 7일까지 치러진 조기 총선 결과는 마크롱 대통령의 기대를 벗어났다. 1차 투표 결과 국민연합은 유럽의회 선거 때보다 더 높은 33%의 지지율을 얻었으며 297개 선거구에서 1위를 기록하며 과반(289석)을 넘을 것으로 예측되었다. 이어진 2차 투표를 앞두고 마크롱 대통령의 르네상스당을 포함한 앙상블 중도연합은 국민연합을 제외한 정당들에 단일전선 구축을 호소했다. 그 결과 210여곳의 선거구에서 후보자들의 자진사퇴로 양자구도로 2차 선거가 치러졌다. 2차 투표 결과 국민연합은 3당으로 밀려났으며 1당은 좌파 정당연합인 ‘신인민전선(NFP)’이 되었다. 그러나 어느 정당(연합)도 과반이 아닌 상태가 되었다. 이후 프랑스 정치는 갈등의 연속이다. [표] 2024 프랑스 총선 득표율과 하원의석수 프랑스 선거제도는 결선투표제를 채택한다. 총선에서 1차 투표를 진행한 후, 과반 득표자가 나오면 즉시 당선된다. 과반 득표자가 없는 경우, 선거구별로 12.5% 득표율을 넘기는 후보들이 결선에 올라 2차 투표를 진행한다. 결선투표제는 군소정당보다 거대정당에 유리한 제도로 실 득표율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는 데 유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1) 행정부를 겁박하는 멜랑숑과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 1당인 신인민전선을 주도하는 정당과 정치인은 연합 내 최대 정당인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와 그 대표인 장 뤽 멜랑숑이다. 사회당 출신인 멜랑숑 대표는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사회당을 탈당하고, 좌파당을 거쳐 2016년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를 창당했다. 그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적극적인 비판자로 2016년 올랑드 대통령(사회당)의 노동법 개정에 격렬히 반대하며 기존의 프랑스 양당의 한축인 사회당 지지층을 상당 부분 흡수했으며 격정적인 연설로 인기를 올렸다.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선 21.95%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1.2%p 차이로 2위인 르펜에 밀려 결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는 사회당, 공산당, 녹색당과 정당연합을 형성, 현재까지 좌파정당 연합을 주도하고 있다. 이런 그의 행보에 주목해 국내 사회운동 일각에서는 그를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멜랑숑 대표와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는 문제적인 행동으로 프랑스 내에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표 사례를 들어보겠다. 먼저 멜랑숑 대표는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는 2025년 5월 기준 가장 많은 팔로워(유튜브 118만, X 280만)를 보유한 정치인이다. (마크롱 대통령의 팔로워는 유튜브 38만, X 10만이다) 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언론인들과 정치인을 공격하는 게시물을 빈번히 올린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후 프랑스에서 유대인을 겨냥한 범죄가 급증하자, 이에 반발한 반유대주의 반대 집회를 두고 ‘이스라엘의 학살을 지지하는 집회’라 비난했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는 부정선거론을 제기하고 마크롱을 위시한 기득권이 대선을 앞두고 계획적인 살인사건을 저지를 것이라 주장해 언론과 정치인의 뭇매를 맞았다. 멜랑숑 대표의 공격적 언행은 그의 반체제적 세계관에 기초한다. 그의 세계관은 올해 4월 출간된 『이제는 인민입니다!』(Now, The People!)에서 잘 드러난다. 멜랑숑 대표는 책에서 ‘인민’을 1%의 과두정에 배제된 이들로 정의한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성 조직, 기관은 실패했음이 밝혀졌기에 그들의 권위, 무능에 맞서 ‘인민’들이 행동에 나서야 하며, 현 5공화국을 넘어 자코뱅적 공화주의에 기초한 6공화국을 건설하자고 주장한다. 그의 반기득권적 시각은 202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유럽연합과 나토 탈퇴’라는 공약으로 나타났다. 멜랑숑 대표는 대중정당 모델도 거부한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는 당원 투표나 공개적인 지도부 선거를 하지 않으며 거의 모든 의사결정을 중앙조정위원회에서 결정을 내린다. 당은 2022년 12월 중앙조정위원회 인사개편을 발표했는데, 이 과정에서 멜랑숑 대표에 비판적인 라켈 가리도와 다니엘 시모네를 축출했다. 2024년 총선을 앞두고 당은 가정폭력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멜랑숑 충성파 콰테넹을 무리하게 공천했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사퇴시켰다. 가리도는 《더 네이션》 지와의 인터뷰에서 당내에 토론 문화와 중재 노력이 없다고 멜랑숑을 저격했다. 총선 후 신인민전선이 의회 1당이 되자, 멜랑숑 대표는 자신이 총리가 되어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했다. 이원정부제인 프랑스에선 대통령 정당이 의회에서 과반을 형성하지 못할 경우, 다수당에 총리직을 주는 관행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크롱 대통령은 극단주의 정당인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와 국민연합에 총리직을 주지 않겠다고 밝히며, 두 정당 외의 정당들과 연정 혹은 총리직을 협상했다. 신인민전선 내 사회당과의 협상이 결렬되면서 마크롱 대통령은 신인민전선이 추천한 뤼스 카스테 총리 후보자가 아닌 공화당의 바르니에를 총리로 임명했다. 바르니에 총리 임명 후 신인민전선은 즉각 반발했다. 특히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는 프랑스노총(CGT) 및 시민단체와 연계해 마크롱 퇴진시위를 전국적으로 진행했다. 9월 내각이 구성되자마자 신인민전선은 바르니에 내각을 상대로 불신임안을 제출했다. 불안정한 상황은 결국 12월 4일 예산안을 둘러싸고 폭발했다. 신인민전선의 내각불신임 투표에 국민연합이 가세하면서 바르니에 내각은 출범 3개월 만에 붕괴했다. 이는 62년 만에 의회에서 통과된 내각불신임 결의이고 바르니에 내각은 역대 가장 단명한 내각이 되었다. 멜랑숑은 직후 스페인 매체 《엘 파이스》와의 인터뷰에서 민주주의는 합의가 아니며, 자신과 신인민전선은 계속해서 내각불신임안을 제출할 것이고 결국엔 마크롱 대통령을 퇴진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멜랑숑 대표는 자신의 발언을 실천에 옮기고자 했다. 바르니에 내각 붕괴 후 2024년 말 들어선 바이루 내각 역시 2월까지만 6차례의 내각불신임 투표를 받았다. 그러나 국민연합의 비협조와 사회당의 이탈로 내각은 계속해서 생환 중이다. 그 결과 바이루 내각은 예산안도 통과시켰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는 사회당이 불신임 투표에 협력하지 않자 ‘배신자’로 규정했으며 지지자들은 소셜미디어에 사회당을 국민연합과 동급이라고 비난했다. 실제 사회당의 제롬 구에지 의원은 5월 노동절 행사에서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지지자들에게 구타를 당했다. (2) 사법부를 위협하는 국민연합(RN)의 르펜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마린 르펜의 국민연합 역시 프랑스 정치위기의 한축이다. 국민연합은 장 마리 르펜의 주도로 1972년 창당한 정당 국민전선(FN)의 후신이다. 나치 옹호 등 극단적 발언으로 악명이 높은 국민전선은 마리 르펜의 딸 마린 르펜이 2011년 당권을 물려받은 후 상승세를 보였다. 마린 르펜은 당 대표 시기(2011~2022년) 당에 대한 낙인을 지우고자 탈악마화 전략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그녀는 2015년 극단적 발언을 일삼는 아버지 장 마리 르펜을 출당시켰으며 인종주의적 수사보단 공화주의적 수사와 복지정책을 내세우며 기존 프랑스 양당의 한 축이던 공화당의 지지층을 상당부분 흡수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녀는 2017년, 2022년 대선 모두 결선에 진출하며 프랑스 내에서 가장 유력한 정치인이 되었다. 프랑스 여론조사기관 IFPO에 따르면, 그녀는 올 3월까지 차기 대선후보 1위를 유지했다. 르펜은 최근 큰 정치적 위기를 맞이했다. 3월 31일 프랑스 형사법원이, 그녀가 유럽의회 기금 400만 유로를 유럽의회 활동이 아닌 당 자금으로 유용한 혐의에 대한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르펜은 징역 4년형(전자발찌 착용 상태로 2년간 구금, 2년간 집행유예)과 벌금 10만 유로, 공직선거 출마금지 10년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재판부 판단에 따라 공직선거 출마금지를 1심부터 즉각 적용했다. 판결문은 즉각 집행의 근거로 재범 위험성과 공공질서 혼란을 들었다.12 이 판결로 르펜은 2027년 예정된 대통령 선거 출마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프랑스 언론 《리베라시옹》에 따르면, 르펜의 피선거권 박탈과 1심에서의 형 집행 판결은 이례적인 판결이 아니다. 프랑스에서 모든 공적자금유용 유죄판결은 피선거권 박탈로 이어졌다. 특히 프랑스는 이전부터 정치인,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에 대해 엄격한 사법조치를 취해왔다. 2004년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의 오른팔이자 유력 대선주자였던 알랭 쥐페 대중운동연합(UMP) 당(현 공화당) 대표는 재정 비리 건으로 1심에서 10년 간 피선거권 박탈을 처분받았다. 이후 항소심에서 뒤집혔으나 당시 그는 당 대표에서 사퇴하고 대선 출마를 포기했다. 최근엔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도 판사 매수, 불법정치자금 수수로 2024년 12월 파기원(대법원)에서 징역 3년형, 전자발찌 착용, 3년간 피선거권 박탈을 처분받았다. 르펜과 국민연합 지도부는 판결에 강하게 불복했다. 르펜 측은 정치적 판결임을 주장하며 즉각 항소했다.(항소심은 2026년 여름까지로 이어질 예정이다) 에릭 시오티 의원은 근거 법조항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조르당 바르델라 국민연합 대표는 《쎄뉴스》 인터뷰에서 “이번 판결은 법치주의의 완전한 부정”이며 판결에 항의하는 집회를 조직할 것을 밝혔다. 실제 보방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한 르펜은 판결이 ‘마녀사냥’이자 ‘정치적 탄압’이라 주장하며 자신을 흑인 민권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 목사, 푸틴에 저항한 활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에 빗대며 사법부에 계속해서 저항할 것임을 밝혔다. 이날 참석한 1만여 명의 집회 참가자들은 프랑스 국기를 흔들며 “마린 대통령”, “내가 마린이다” 구호를 외쳤다. 르펜 지지자들은 여기서 더 나아갔다. 르펜 지지자들은 소셜미디어에서 판결을 내린 페르튀스 판사의 신상, 집주소를 공유하며 살해협박했다. 극우매체인 《프론티어》는 이민자 문제에서 진보적인 성향의 판사 60여 명의 명단을 공개한 후, 이들을 향해 위협과 모욕을 쏟아냈다. 법관에 대한 위협 수준이 도를 넘어서자 프랑스 최고사법위원회(CSM)는 성명을 발표해 “판사를 향한 개인적인 위협은 민주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다”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 다르마냉 법무부 장관 역시 판사에 대한 위협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바르델라 대표는 텔레비전 채널에 출현해 판사에 대한 개인적 위협에 거리를 두면서도 “더 많은 프랑스인들이 분노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사법부를 비판했다. 특이한 점은 르펜에게 내려진 판결에 대한 멜랑숑 대표의 반응이다. 그는 X에 “선출된 공직자를 해임하는 선택은 오직 인민만이 할 수 있다”며 판결에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멜랑숑 대표의 견해는 사법부에 대한 적대감에서 비롯된다. 2018년 멜랑숑 대표는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멜랑숑 대표가 수사과정에 협조하지 않자 검찰과 경찰은 당사와 자택을 압수수색 했는데, 이 과정에서 멜랑숑 대표는 검경에 폭력을 행사했으며 소셜미디어를 통해 “내가 공화국이다”를 외쳤다. 결국 그는 2019년 공무집행방해 혐의가 더해져 징역 3개월과 8천 유로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당시 멜랑숑 대표는 판결이 ‘정치판결’이라 반발했다. 이처럼 사법부에 대한 그의 불복종 행보는 신인민전선 내 다른 정당들에서도 반감을 키웠다. 르펜 지지자들의 판결 불복집회에 맞불집회를 연 신인민전선은 2027년 예정된 대통령 선거에서 좌파 대통령 후보가 멜랑숑 대표여야 한다는 주장을 놓고 멜랑숑 지지자와 비판자 간에 갈등이 나타나기도 했다. [%=사진6%] [사진] 2022년 프랑스 대선 주요 후보 공보물: (좌)멜랑숑, (중)마크롱, (우)르펜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멜랑숑과 르펜은 정년연장 반대 등의 사회정책과 나토 탈퇴를 비롯한 대외정책 공약에서 일치했다. 결선투표에서 1차 투표 당시 멜랑숑 투표자의 17%가량이 르펜에 투표했다. (사진 출처 : 《로이터》) 이처럼 여당을 능가하는 지지율을 바탕으로 행정부와 사법부에 대한 공세를 펼치는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멜랑숑 대표와 국민연합의 르펜으로 인해 프랑스의 정치 불안정성이 커졌다. 지난해 말 국제신용등급평가사 무디스, S&P는 프랑스의 국가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했다. 재정적자가 심해진 상황에서 정치혼란이 가중된 점을 근거로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자신의 조기총선 결정이 실수였음을 인정하며 현명한 판단과 새로운 결정을 해줄 것을 프랑스 국민들에게 요청했다. 그러나 앞으로의 전망은 불투명하다. 마크롱 대통령이 조기총선 재실시, 조기대선, 두 극단주의 정당을 배제한 정당연합 개편 중 어느 선택지를 택해도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25년 2월 23일 치러진 독일 연방의회(하원) 선거는 이변으로 불렸다. 극우 정당으로 분류되는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 이하 대안당)이 전통적인 독일 양당의 한 축인 사회민주당(SPD)을 제치고 의회 2당으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2024년 하반기 집권 연정(사회민주당, 녹색당, 자유민주당) 내 사회민주당과 자유민주당(FDP)은 코로나19 판데믹 시기 확대된 재정적자를 관리하기 위한 예산안을 두고 갈등했다. 갈등의 결과 자유민주당이 연정을 이탈하면서 올라프 슐츠 총리 내각은 내각불신임 투표로 무너졌다. 그 결과 조기총선이 치러졌는데, 대안당은 선거기간 내내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일론 머스크, 도널드 트럼프의 관심과 지지를 받으면서 주목받았다. 대안당은 어떤 정당인가? (1) 분권적인 운동정당 대안당은 2013년 경제학 교수인 베른트 루케가 창당한 정당이다. 당시 당은 유럽국가들에 대한 구제금융에 불만이 많은 경제계 인사들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2015년부터 대안당은 반난민 주장을 포함해 인종주의적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초기 당내 소수파였던 인종주의자들이 반난민 시위운동단체인 페기다와 연계하며 당내 목소리를 키웠다. 2015년 당대회를 기점으로 이들은 당 지도부에 대거 유입했다. 이후 베른트 루케를 포함한 창당 초기 지도부들의 상당수가 탈당하면서 인종주의적 색채가 강해졌다. 대안당은 앞선 정당들과 달리 1인의 지도자가 주도하는 정당이 아닌 분권적인 정당이다. 당은 초창기부터 당원들이 당의 주요 정책공약, 후보자 선정 등의 의사결정에 참여하게끔 상향식 발의를 광범위하게 허용했다. 여기에 연방제로 인한 잦은 지역선거는 당 지역조직들이 발언권을 키우기 위해 지역에 뿌리내리고자 하는 강한 유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경제적으로 낙후한 구 동독 지역을 중심으로 대안당은 지역에 뿌리내리는 데 성공했다. 독일 언론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자이퉁》에 따르면, 동독지역은 상대적으로 농촌지역이 많고, 지역 교육기반이 부실하며, 여성 다수의 서독 이주현상으로 소외감을 느끼는 주민들이 많았다. 대안당은 지역 청년 남성층을 중심으로 보호주의적 접근을 취했으며 선거기간이 아닐 때에도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했는데 이런 전략이 주효했다고 분석한다. 대안당 지역조직 지도자들은 지역에서의 기반을 바탕으로 공식, 비공식적으로 극단적인 시민단체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극단주의 단체 활동가들과의 연계는 지역조직 지도자들의 당내 발언권을 높였다. 튀링겐 지역의 대안당 지도자 비요른 호케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당내 극단주의 분파인 ‘플뤼겔(날개)’의 리더로 다양한 극단주의, 민족주의 시민단체들과 협력해 공격적인 활동, 동원을 시도한다. 그 결과 그의 분파는 상대적 소수임에도 당 지도부를 압도했다. 호케는 1945년 이전의 독일을 지향하며 ‘하이마트’(마음의 고향) 즉, 독일인의 정체성으로서 게르만족이라는 혈통과 독일 영토를 강조한다. 이를 위해 대안당은 운동정당(movement party)이 되어야 함을 주장하며 역사전쟁을 주도한다. 실제 그와 그 지지자들은 매년 튀링겐 주의 빌헬름 황제 기념비 앞에서 모임을 갖는다. 나치 옹호 등 금기시되던 발언을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이던 대안당은 2021년부터 독일 연방헌법수호청(BfV)으로부터 ‘극우 의심단체’로 지정되어 감시를 받았다. 말자크빈케만 전 의원을 비롯한 일부 당원들이 2022년 과거 독일제국 산하 튀링겐 왕족인 하인리히 13세를 옹립하려는 쿠테타 계획에 연루되면서 독일 주요 정치인들은 대안당에 위협감을 크게 느끼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대안당은 승승장구했다. 2017년 첫 하원의회 선거에서 의원을 배출한 뒤, 2023년 튀링겐주에서 처음으로 지자체장을 배출했으며 지지율도 사회민주당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2024년 유럽의회 선거에선 막시밀리안 크라 등 호케의 측근들이 대거 입후보했고, 이전보다 의석을 6석 늘리며 일부 동유럽 극단주의 정당과 함께 교섭단체 ‘유럽주권국가연합’을 결성했다. (2) 대안당의 독일 헌정 위협과 방화벽 대안당의 상승세는 미디어 전략과 관련있다. 대안당은 미디어를 활용하여 기성 언론, 정당/정치인, 제도에 대한 공격을 적극적으로 감행한다. 무해화 전략을 통해 전통 미디어에선 정제된 언어를 쓰되, 소셜미디어에선 극단적인 용어를 쓴다. 가령 대안당은 젊은 여성 인플루언서들을 고용해 당의 요구, 주장이 무해함을 어필한다. 동시에 개념에 대한 재의미화 전략도 사용한다. 예를 들어 앨리스 바이델 대안당 공동대표는 ‘방어적 민주주의’(defensive democracy) 강화를 주장한다. 본래 방어적 민주주의란 극단주의적인 외부 세력의 공격으로부터 민주정을 수호하려는 정치 질서로, 1930년대 나치 정권에 대한 반성으로 헌법학자 칼 뢰벤슈타인이 주창한 개념이다. 그러나 바이델 대표는 이 개념을 이주민, 난민에 대한 방어로 변형하여 사용한다. 그 결과 독일 언론에서 매년 선정하는 ‘올해 최악의 단어’는 거의 매년 대안당 정치인들이 사용하는 용어로 선정된다. 대안당은 소셜미디어를 특히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대안당은 ZDF, ARD 등 전통 미디어들이 자신들을 왜곡한다고 보며, X, 틱톡 등 소셜미디어를 ‘대안 미디어’로 사고한다. 크라 의원은 전통 미디어가 좌파 프로파간다만 알리는 편향된 언론이라 지적하며 유튜브, 틱톡을 볼 것을 권장했다. 이들은 가계정과 AI 계정을 활용하여 대안당의 주장을 홍보하거나 경쟁자, 기관을 모욕하는 가짜뉴스를 전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령 2024년 X, 인스타그램에서 만들어진 AI 계정 ‘라리사 바그너’는 대안당의 메시지를 홍보하며 대안당에 투표할 것을 요구하는 포스트를 자주 올린다. 또한 재미나고 우스꽝스러운 챌린지를 하는 여타 정당, 정치인들과 달리 대안당은 정장을 입고 진지한 연설을 하는 영상을 올리며 차별화를 시도한다. 그 결과, 주요 소셜미디어에서 독일에서 가장 많은 팔로워를 보유한 정치인들은 대부분 대안당 정치인들이다. 최근 총선 과정에서 대안당은 외부의 지원도 상당히 받았다. 총선 전 미국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대안당을 지지하는 게시물을 올렸으며, 1월 8일 앨리스 바이델 대안당 공동대표와 온라인 회담을 진행했다. 70분간 진행된 회담은 약 460만 명이 시청하며 큰 화제가 되었다. 러시아도 대안당을 지원했다. 독일 언론 《도이체빌레》는 러시아산으로 추정되는 봇, AI 유저들이 선거기간 동안 기민당 당대표인 메르츠 대표와 녹색당 소속의 로버트 하벡 전 부총리에 대한 허위정보를 유포했다고 보도했다. 그 외에도 러시아 봇들은 대안당을 홍보하고, 러시아를 옹호하는 게시글과 영상을 수차례 올린 것으로 확인되었다. 아울러 대안당과 연계된 극단적 대중운동 단체들은 법원에 수차례 소송을 걸거나 온라인발 대중집회를 조직하며 정부와 주류 정치인들에 적극적으로 항의했다. 대안당 의원들은 의회 산하 위원회 위원장 선출 배제 건을 비롯해 헌법재판소에만 수십 차례의 소송을 제기했으며, 현재 22건의 소송이 계류 중이다. 대안당은 지지자와 극단주의 단체들을 중심으로 격렬한 시위를 진행한다. 4월 26~27일 독일 주요 대도시에서 열린 ‘독일을 위한 단결’(GfD) 집회가 대표적이다. SNS에서 시작, 조직된 이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대안당을 배제하는 기존 정당들을 비난하며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다. 참가자 일부는 나치 경례를 하다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일부 지역에선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도 발생했다. [사진] 독일을 위한 단결(GfD) 시위 4월 26일 800여 명의 집회 참가자들이 도르트문트에 모여 행진했다. 참가자들은 독일 국기와 러시아제국 깃발을 흔들며 독일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반대했다. 나치 경례를 하다 경찰에 체포된 참가자들도 있었다. (사진 출처: 《Tagesspiegel》) 온라인/오프라인을 가리지 않는 대안당의 행태는 5월 2일 연방헌법수호청의 ‘극우단체’ 지정으로 이어졌다. 연방헌법수호청은 지난 몇 년간의 감시 결과 대안당 내에서 극단주의자들의 영향력이 더욱 커져 반헌법적 위협이 크다고 판단해 대안당을 극우단체로 지정했으며, 통화내역 감청 등을 포함해 감시를 강화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실제 이틀 뒤, 대안당에 당적을 두거나 연관된 공직자들의 조사가 이뤄졌으며 경찰관 최소 193명이 조사-징계절차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대안당은 ‘반대세력을 배제하기 위한 국가권력의 남용’을 주장하며 행정소송을 걸었다. 헌법수호청은 행정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극우단체 지정을 보류했다. 논란은 정치권으로 확산되었다. 대안당 지지 확산을 우려한 기민당/기사당 연합(CDU/CSU), 사민당은 대안당에 겨냥한 각종 방화벽(Firewall)을 강화했다. 의회 의석 3분의 2의 동의가 필요한 헌법재판관 임명이 교착상태가 되지 않게끔, 2024년 12월 헌법재판관 신규임명 전까지 기존 재판관의 임기를 임시연장하고 상원으로 판단을 넘기는 내용을 헌법에 넣었다. 또한 새 의회 개회 전에 전 정권 붕괴의 원인이 된 정부부채 한도 브레이크를 개정하는 헌법 개정을 단행했다. 신임 메르츠 총리의 기민·기사당/사민당 연립정부는 1야당에 예산위원회 위원장을 주는 관행과 달리, 부처별 위원회 위원장에 대안당 의원을 배치하지 않기로 합의, 발표했다. 한편, 또다른 포퓰리즘 정당인 바겐크네히트동맹(BSW) 역시 제도권을 위협하고 있다. 자라 바겐크네히트는 과거에 좌파당(Die Linke) 당대표였는데, 대러제재 해제와 난민 반대에 동의하지 않는 좌파당 지도부와 갈등을 겪었다. 그녀는 2023년 탈당하고 자신의 정당을 창당했다. 바겐크네히트 대표는 자신의 당을 ‘좌파 보수주의’ 정당이라 주장하며 좌파당의 옛 기반인 동독지역을 공략하여, 대안당이 주도하는 반난민 집회에도 참석했다. 2024년 9월 지방선거에서 당은 작센주, 튀링겐주에서 10% 이상을 득표하며 지역 3당이 되는 성과를 보였으며, 총선 기간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대안당과 기반이 겹친 탓에 의회 진입 기준인 정당지지율 5%를 넘기지 못하고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선거 후 자당에 분류되었어야 할 표 최대 3만 2천 표가 누락되거나 잘못 분류되었다면서 선거심사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고 재개표를 요구하는 등 선거결과에 불복 중이다. 이렇듯, 극단주의 성향을 보이고 기존 제도에 도전하는 포퓰리즘 정당을 두고 독일 정계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독일 기민당/기사당 연합의 옌스 스판 원내대표는 대안당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음을 주장하며 방화벽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의 주장은 비록 집권연정 내에서 강한 반발을 야기했고 수용되지 않았지만, 어디까지, 어떻게 그들을 배제하면서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할지는 여전히 쟁점이다. 전후 독일이 극단주의 세력을 막기 위해 ‘방어적 민주주의’ 개념에 입각하여 도입한 여러 제도적 장치(위헌정당 해산, 헌법수호청)와 정치질서는 시험대에 올랐다. 독일 헌정은 대안당을 비롯한 포퓰리즘 정당의 도전을 방어할 수 있을까? 아니면 더 큰 혼란에 빠질 것인가? 이를 둘러싸고 독일정치의 불안정성, 불확실성이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스웨덴은 사회민주주의에 기반한 복지천국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스웨덴은 최근 범죄율이 올라가고, 그에 비례해 정치권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스웨덴민주당(SD)은 혼란의 결과물이자 동력이다. 2022년 총선에서 스웨덴민주당이 스웨덴의 기존 정당정치 지형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표] 최근 스웨덴 총선(2006~2022년) 정당별 의석 현황 스웨덴민주당(SD)은 2010년 총선에서 처음으로 의회에 진출하여 20석을 획득한 이래로, 뒤이은 총선에서 계속해서 지지율과 의석수 모두를 늘렸다. (자료 출처 : Europeelects) 2022년 총선 결과는 충격의 연속이었다. 극우 정당으로 분류되던 스웨덴민주당이 21%의 지지율로 사회민주당(S, 이하 사민당)에 이어 의회 2당이 되었다(스웨덴은 단원제 의회의 의원내각제 국가다). 기존 정당연합 중 누구도 과반을 넘기지 못했다. 캐스팅보트를 쥔 스웨덴민주당은 온건당(M) 주도의 우파정당연합(온건당, 자유당, 기민당)의 손을 들어주었다. 소수정권인 우파정당연합은 스웨덴민주당과 ‘티도 협정’을 체결했다. 협정에 따르면 스웨덴민주당은 온건당 주도 연립 내각에 입각하지 않는 대신 정부의 주요 부처 내 요직을 배정받고 정책 논의 과정에 참여키로 했다. (1) 스웨덴민주당은 어떻게 스웨덴 2당이 되었는가? 스웨덴민주당이 스웨덴 정치에서 논란인 이유는 정당의 기원과 행보 때문이다. 스웨덴민주당은 1986년 ‘스웨덴을 스웨덴답게’ 운동본부라는 네오나치 운동단체와 진보당이 합친 ‘스웨덴당’을 기원으로 하며, 1988년 당명을 현재의 명칭으로 개정하면서 만들어진 정당이다. 20년 가까이 원외정당이던 스웨덴민주당은 2010년 총선에서 의회에 처음 진입했다. 당시 유튜브를 통해 광고를 내보냈고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뉴스채널을 통해 선거운동을 펼치며 큰 화제를 모았다. 스웨덴민주당은 이후 총선 때마다 지지율과 의석수를 올리면서 2014년 원내 3당으로 올라섰고, 2022년 선거에선 온건당을 제치고 2당으로 올라섰다. 스웨덴민주당의 성장은 2000년대 이후 스웨덴 사회의 혼란 심화와 당을 20년째 이끌고 있는 임미 오케손 대표와 당 지도부의 전략적 행보로 설명할 수 있다. 스웨덴의 사회변화는 스웨덴민주당의 약진을 설명하는 주요 배경이다. 수출주도 경제국가인 스웨덴은 노동인구가 부족했기에 이민자 유치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비유럽계 이민자 비중이 급증했다. 2006년부터 연평균 이민자 수가 5만에서 10만으로 두 배가 됐다. 매년 이민자 수가 인구의 1%(스웨덴 인구는 천만 명 정도다)를 넘겼고 2016년 한 해에만 16만 3천 명을 받아 정점을 찍었다. 난민 역시 2016년에만 전체 이민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많이 유입되었으며 2020년 전까지 매년 2만 명을 넘겼다. 당시 스웨덴 정부는 이들 난민을 수용하는 데 실패했다. 온건당 정부(2006~2014년), 사민당 정부(2014~2022년) 모두 이민자 수용이란 컨센서스 하에 사회문제를 문화적 요인에 주목하며 스웨덴어 학습 지원 등 문화정책 중심의 사회통합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스웨덴은 저숙련 일자리가 5% 미만으로 매우 적어 이민자들의 취업이 매우 어렵다. 따라서 이들의 다수는 실업자로 전락했다. 스웨덴노동조합총연맹(LO)에 따르면 2015년 이주민, 난민의 실업률은 15%로 전체 실업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이주민들의 높은 실업률과 급증한 집값, 물가는 이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이주민, 난민 거주지역은 게토화, 슬럼화되었으며 갱단 범죄에 노출되기 시작했다. 특히 스웨덴에서 가장 큰 갱단이 쿠르드족 갱단(폭스트롯)인 점은 스웨덴 주민의 이민자와 난민에게 느끼는 공포를 키웠다. 그 결과, 스웨덴에서 범죄, 테러가 크게 늘었다. 2017년 이래 스웨덴에서 총격 사건 수는 300건 이내로 떨어진 적이 없다. 올해 1월에만 폭발물 테러가 30건 이상 발생했다. 2024년 스웨덴 경찰은 스웨덴 내 62,000명이 조직범죄에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다고 발표했다. 이는 스웨덴의 군인, 경찰을 합친 숫자인 35,000명을 넘어선 수치다. 여기에 교도소 재소자가 27,000명으로 수용인원(11,000명)을 넘어서면서 스웨덴은 노르웨이, 덴마크 등 인접국으로 재소자를 이송하는 실정이다. 기존 주류정당들의 정책 실패와 불안정한 치안 상황은 이주민, 난민을 향한 반감을 키웠으며 난민 반대를 주장하는 스웨덴민주당 지지율을 올렸다. 오케손 대표와 스웨덴민주당 지도부는 스웨덴의 사회변화에 전략적으로 대처하며 기존 정치지형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온건당 청년조직 출신인 임미 오케손 대표는 남부지역(스카니아)을 기반으로 2005년 당 대표에 선출되며 당을 장악했다. 그는 자신의 대학교 친구들인 ‘4인방’ 그룹 주도하에 당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당원 제재, 제명 권한과 선거 후보자 공천권을 중앙위원회에서 집행위원회로 이관하면서 지도부에 권력을 집중시켰다. 또한 ‘무관용’ 원칙으로 당내 일부 극단주의자들 및 이들과 연계된 인사들을 제명하고 지도부에 친화적인 인물들로 재편했다. 오케손 대표는 뛰어난 연설 실력과 적극적인 미디어 소통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했으며, 상황에 따라 유럽연합 탈퇴였던 당의 입장을 변경하는 등 유연한 모습을 보이며 스스로를 ‘대안 우파’로 호명했다. 이런 행보는 극단주의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약화시키고 이민자 문제에 대한 컨센서스를 공유하던 다른 정당과의 차별화에 성과를 거두었다. 스웨덴 마르크스주의 사회학 교수 예란 테르보른은 스웨덴민주당을 능수능란한 사업가와 같다고 짚었다. 결국 스웨덴 정부의 사회정책이 경제와 사회문제를 충분히 해소, 완화하지 못하는 상황은 사회혼란으로 이어졌다. 스웨덴민주당은 이 문제점을 파고들면서 차별화를 통해 과거의 색을 지웠다. 그 결과 스웨덴민주당은 2022년 총선에서 온건당을 제치고 의회 2당이 될 수 있었다. (2) 스웨덴 공직과 언론을 압박하는 스웨덴민주당 스웨덴민주당은 높아진 영향력을 바탕으로 기성정치, 언론에 대한 현상 변경을 추구하고 있다. 2024년 5월 제기된 ‘댓글부대’(Troll factory) 논란이 대표적이다. 스웨덴 국영방송사 TV4의 프로그램 “냉엄한 사실”은 스웨덴민주당이 2018년 총선부터 청년들을 고용해 AI로 조작된 동영상과 이민자들을 폭력적으로 묘사한 게시물을 제작, 유포해 여론을 조작한다고 폭로했다. 보도에 따르면 스웨덴민주당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 틱톡에 23개의 익명 계정을 통해 자당의 프로파간다를 확산시켰다. 총 2700만의 조회수를 기록한 유포된 게시물들엔 스웨덴민주당을 제외한 기존 정당들에 대한 비방, 허위뉴스도 포함되었다. 오케손 대표는 유튜브에 ‘국민에 드리는 연설’ 영상을 올려 혐의를 부인하며 해당 보도가 ‘좌파-자유주의 엘리트들의 음모’로 6월 예정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스웨덴민주당을 방해하기 위한 공작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스웨덴민주당 소속 시의원 줄리안 크룬이 방송을 통해 10여 명의 댓글부대를 감독한 사실을 시인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크리스테르손 총리를 포함한 집권 연정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스웨덴민주당은 관련 인사들을 해고하고 부적절한 계정을 삭제했다. [사진] 임미 오케손 대표의 ‘국민에 드리는 연설’ 2024년 5월 14일 오케손 대표는 스웨덴민주당 유튜브 채널에 ‘국민에 드리는 연설’ 영상을 올려 댓글부대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그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사회민주당이 스웨덴민주당을 겨냥해 좌파 자유주의 언론사들과 공모한 음모임을 주장하며 자신과 당은 부끄럽지 않다고 주장했다. (사진 출처: 유튜브) 스웨덴민주당과 관련된 논란은 언론에만 있지 않았다. 올 3월 25일 스웨덴 언론사 《다겐스 ETC》는 스웨덴민주당이 공직사회 내 비정무직 공무원의 정치적 성향을 파악해 인사불이익 등 각종 차별을 준다고 보도했다. 10여 명의 공무원이 관련한 인사불이익을 받았음을 익명으로 고백했으며, 스웨덴민주당의 비욘 쇠데르 의원은 비정무직 공무원들이 실제로 편향적이라고 지적하며 261명의 ‘블랙리스트’ 명단을 가지고 있음을 밝혔다. 2023년도에도 관련해서 친정권 성향 공무원들에게 차별적인 임금인상을 제안했다는 내부 폭로가 있었다. 해당 보도 후 사민당, 녹색당 등 야당은 현 정권의 책임을 추궁하고, 스웨덴민주당의 문제적 행보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현 집권연정을 비판하며 울프 크리스테르손 총리를 의회 헌법위원회에 고발했다. 이같은 의혹들에 관해, 스웨덴민주당은 언론과 정부에 더욱 공세적인 행보를 취하고 있다. 5월 당대표 취임 20주년을 맞이해 진행된 인터뷰에서 오케손 대표는 현 스웨덴 정부에 반감을 드러냈다. 그는 입법과정에서 복잡한 절차로 너무 많은 시간이 낭비된다고 불만을 드러내며, 입법과정을 단축하고 미국의 정부효율부(DOGE)를 스웨덴에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오케손 대표는 기성 엘리트를 대체하기 위해 사민당을 제치고 집권정당의 총리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의 다짐은 내년에 예정된 총선을 앞두고 각종 정책공약을 쏟아내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스웨덴민주당은 암호화폐를 외환보유고에 추가해야 한다, 필수재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폐지해야 한다며 각종 선심성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아울러 스웨덴민주당에 부정적인 보도를 한 언론사들을 대상으로 한 비방도 이어갔다. 오케손 대표는 댓글부대 의혹을 보도한 TV4 방송사를 나치 프로파간다에 비유하며 조롱했으며, 요르겐 그룸 의원은 해당 의혹을 보도한 기자들이 스웨덴 탐사 저널리즘 ‘황금삽’ 상 후보에 오르자, X에 그들은 “투옥되어야 하는 사람들”이라 비방했다. 튀르키예의 반정부 시위를 취재하다 투옥된 스웨덴 기자 요아킴 메딘도 그가 《다겐스 ETC》 소속이란 이유로 “공산주의자”라 비난했다. 스웨덴민주당의 행보는 스웨덴 여론지형을 변형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스웨덴노동조합총연맹(LO)이다. 스웨덴노총은 전통적으로 사민당과 밀접한 연계에 있었다. 그러나 최근 조합원 사이에서 스웨덴민주당 지지세가 커지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SIFO에 따르면 지난 총선에서 사민당 지지 조합원 비중은 41%로 이전까지 50% 이상의 지지율에서 크게 떨어졌으며, 전체 산업노동자 계층으로 보면 26.4%로 스웨덴민주당의 27.5%에 뒤지기 시작했다. 조합원, 기층간부 중심으로, 노총 지도부의 무조건적인 사민당 지지에 반감을 느끼고 스웨덴민주당 당적을 갖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노동조합 내 높아진 위상을 바탕으로, 스웨덴민주당은 노동조합의 정치자금 기부에 대한 규제법안을 현 정부와 함께 준비하여 사회민주당의 영향력을 차단하려고 한다. LO 산하의 금속노조인 인더스트리패킷메탈(IF METALL)과 테슬라 간 분쟁에 대해서도 노조를 두둔하며 노동조합에서 영향력을 높이고자 한다. 스웨덴민주당은 스웨덴을 둘러싼 여러 위기와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는 제도와 정치세력의 한계를 발판으로 성장했다. 정당정치와 언론에 대한 공격은 물론 스웨덴민주당 인사들의 극단적 언행, 갱단 연루 의혹 등 여러 가지 논란에도 지지율이 하락하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스웨덴 정치권은 요동치는 중이다. 지지율이 급락한 자유당, 중앙당(두 당은 스웨덴민주당에 가장 적대적인 정당이다)은 합당을 모색하고 있으며, 스트뢰머 법무부 장관(온건당)은 4월 말 사법부 독립성 강화 법안을 제출했다. 2023년 의회 헌법위원회가 최근 일부 동유럽 국가에서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포퓰리즘 정당들의 사례를 참고해 제안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하는 이 법안은 대법원 판사 수를 12~20명으로 헌법에 명시하며, 헌법개정에 필요한 의석수를 의회의 과반에서 3분의 2로 개정하기로 했다. 이처럼 포퓰리즘 정당으로서 스웨덴민주당의 부상은 스웨덴 정치지형을 교란하고 있으며, 기존 정당, 정치인들은 대응방안을 두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앞서 살펴본 우르비나티 교수의 포퓰리즘 해석을 기준으로 유럽 주요 4개국(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스웨덴)의 사례를 참고할 때, 포퓰리즘 정당들은 나라별로 구체적인 맥락의 차이가 있지만, 앞선 구조적 특성(매개조직의 약화, 훼손)을 공유하면서 다음의 구체적 양상을 보인다. 첫째, 기존 정당정치와 언론 등 매개조직에 공격적이며, 그들이 유권자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포퓰리스트들은 스스로를 다른 정당 혹은 정치인들과 차별화한다. 주류 정당들의 정책을 일관되게 거부하고 반대하여 주목을 받는다. 집권 이전에 꾸준히 정치권에 비토를 놓은 이탈리아 형제당이나, 다른 좌파 성향의 정당과 달리 일관되게 비과학적인 자본주의 부정 노선을 취하는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가 대표적이다. 특히, 이들 정당들은 난민 문제 또는 유럽연합 거부/비판을 바탕으로, 기존 정치와 제도, 절차에 지친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는다. 이 과정에서 소셜미디어가 주요 수단으로 부상한다. 소셜미디어는 기존 언론에 대한 ‘대안 미디어’로 간주되기 때문에 포퓰리스트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포퓰리즘 정당들은 기존 정당과 언론에 대한 거부와 반대를 바탕으로 성장한다. 둘째, 늘어난 인기와 영향력을 바탕으로 정당을 특정 정치인 혹은 분파가 장악하며 정당 내 민주주의를 약화한다. 포퓰리즘 정치인에게 정당은 조직으로서의 정당이라기보다 ‘플랫폼’에 가깝다. 그들은 당의 주요 절차와 조직구성을 단순화한다. 단순화된 조직구조를 바탕으로 권력을 장악한 특정 정치인은 당을 사유화한다. 멜랑숑의 당내 반대파 숙청과 오케손의 당 개편작업은 포퓰리즘 정치인들이 당 내부의 견제 장치를 무력화하는 대표적 사례다. 대안당의 경우, 튀링겐주의 호케가 주도하는 분파가 당 지도부를 능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며 정당을 특정한 분파의 정당으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행위가 가능한 것은 해당 정치인/분파가 확고한 인기와 기반이 있기 때문이다. 인기와 지역, 당내 기반은 해당 포퓰리즘 정치인/분파를 ‘인민의 집단의지를 육신화한 대표’로 만든다. 셋째, 포퓰리즘 정치인/정당은 수사, 정책적으로 유연한 입장을 취하며 ‘다수’로서 ‘진정한 인민’을 드러내고자 한다. 앞서 살핀 주요 제도, 정책적 입장에 대한 일관된 반대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지지세를 바탕으로 집권에 가까워질수록 주요 사안에 대해 전통적인 좌/우 이데올로기와 무관한 유연한 수사와 실용적인 정책적 입장을 선보인다. 예를 들어, 국민연합, 대안당, 스웨덴민주당은 보수정당에 가까운 ‘우파 포퓰리즘’ 정당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복지정책을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복지정책을 확대적용을 주장한다. 그들에게 ‘진정한 인민’은 난민 유입으로 국가가 훼손되기 이전의 시민이다. 이들은 ‘이민자’ 유입탓에 기존의 시민이 제대로 복지정책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므로, 이주민, 난민을 몰아내면 ‘진정한 인민’을 위한 복지정책을 확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기존의 유럽연합 탈퇴 입장을 버리고 유럽의회 내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행보도 보인다. 반대로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 바겐크네히트 동맹과 같은 ‘좌파 포퓰리즘’ 정당은 전통적인 ‘우파 정당’의 수사와 정책적 입장을 차용한다. 바겐크네히트의 난민 반대 사례를 비롯해, 이들 정당은 전통적으로 우파 정당이 내세우는 ‘민족주권’ 개념을 강조한다. 좌파 포퓰리스트들은 ‘인민(진정한 인민)’을 기존 제도권의 피해자로 광범위하게 정의한다. 그렇기에 기존 제도와 정책이 이들을 포괄하지 못한다고 비판하며 타협과 존중을 거부한다. 상처받은 ‘민족주권’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유럽연합에 오히려 더 비판적이다. 그 결과 정책적 입장, 수사에서 좌우 포퓰리즘 정당은 수렴한다. 넷째, 집권 후 포퓰리즘 정치인/정당은 사법부를 포함한 매개조직을 적극적으로 훼손하는 권위주의적 경향을 보인다. 이탈리아 형제당의 사례에서 드러나듯, 포퓰리즘 정당은 집권 후 정치 엘리트를 포함한 매개조직들을 적극적으로 변형하고자 한다. 선거를 통해 언제나 ‘다수’인 ‘진정한 인민’이 수적으로도 다수인 것을 확인하였기에 다수의 지배를 영속화하기 위한 작업들을 취한다. 이를 위해 ‘진정한 인민’과 ‘지도자’ 사이의 직접적이고 영속화된 지배를 막는 기관, 엘리트들을 적극적으로 공격한다. 이탈리아 사법부 개혁 개헌안이 대표적 사례다. 포퓰리즘 정권은 사법부의 권력을 약화시키고 자신에 충성하는 법조인을 사법부에 심고자 한다. 해당 조치를 막고자 세계대전 이후 유럽 주요국들에서 도입한 헌법이나 다양한 견제장치 규정들을 변경하고자 한다. 글에서 직접 다루지 않았지만 2015~2023년까지 집권한 폴란드의 법과 정의당(PiS)이 대법관 임명권을 사법부에서 정부로 변경한 사례와, 헝가리 오르반 총리가 법관의 정년을 하향조정해 친정권 법관들로 사법부 인사들을 대거 교체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해당 사례들은 집권세력으로서 포퓰리즘 정당이 권력분립을 훼손하는 권위주의적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위 네 가지 특징들을 고려할 때, 우르비나티 교수가 지적한 ‘포퓰리즘’은 ‘다수의 지배’를 견제하기 위해 도입된 다양한 매개조직들을 공격, 변형하고자 함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세력은 모두 기존 주류 정당들의 통치, 지배에 대한 불만을 배경으로, 자신들이 해석한 ‘진정한 인민’의 이름으로 각국의 헌정 민주주의를 훼손한다. 집권 후엔 훼손을 넘어 헌정 민주주의를 마비시킨다. 이들은 단순히 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만이 문제가 아니다. 포퓰리즘은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구축하는 수많은 제도, 절차, 관행의 손상이라는 점에서, 헌정질서와 민주정을 분명히 위협한다. 유럽통합 실패의 결과로 등장한 포퓰리즘은 각국의 헌정만 아니라 유럽통합의 위기를 가속화한다. 세계대전 이후 유럽국가들은 파시즘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1949년 설립된 유럽평의회는 개별국가의 자기통제능력을 불신하여 공통의 법치, 민주주의 감시체제를 구축하고자 했다. 유럽연합이 창설되면서 1993년 유럽 이사회는 동유럽 국가들의 유럽연합 가입조건으로 회원국의 의무, 시장경제와 함께 민주주의를 제시했다. 유럽 차원의 정치적 통합 강화는 2004년 유럽헌법조약 채택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듬해 유럽헌법조약이 프랑스, 네덜란드를 비롯한 각국에서 거부된 이후 더 진전하지 못했다. 이후 유럽의 경제위기를 둘러싸고 포퓰리즘 세력은 각국의 헌정뿐 아니라 유럽연합의 제도들도 손상시키고 있다. 대표적 사례로 폴란드·헝가리와 유럽연합 간의 갈등이 있다. 2017년 폴란드 정부의 사법부 훼손에 유럽연합은 제재(의결권 박탈)을 시도했다. 유럽연합조약(리스본 조약) 7조에 규정된 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한 회원국의 중대하고 지속적인 침해가 존재한다는 결정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내린 경우, 그 회원국 정부대표의 의결권 정지 등의 제한을 가할 수 있다는 규정에 의거했다. 그러나 동 조항은 회원국의 만장일치를 요했는데, 헝가리가 거부권을 행사하며 저항했다. 헝가리와 폴란드가 공조하면서 유럽연합조약을 무력화하자, 유럽연합은 2020년 예산지원 제한 규정을 만들어 양국에 예산지원 삭감을 결정했다. 여기에 양국은 2021년 유럽연합 중장기 예산안 승인을 거부하며 맞섰다. 독일이 갈등을 중재하며 지원금 삭감 결정은 2년간 유예됐으며, 그 사이 2024년 폴란드에서 정권이 교체되자 유럽연합은 제재를 해제했다. 반면 여전히 유럽연합에 저항하는 헝가리엔 2024년 지원금을 삭감했다. 이렇듯, 포퓰리즘 세력은 유럽연합의 제도, 가치를 무시하고 유럽연합을 자국의 매개조직에 그랬듯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마음대로 활용한다. 그 결과는 유럽통합이라는 더 큰 매개조직의 무력화로, 즉 유럽통합 위기의 가속화다. 그런데 대안적인 국제질서 없는 유럽통합의 파괴는 현재 진행중인 국제질서의 위기를 더욱 부채질할 수 있다. 초국가적 제도와 질서를 무시하는 유럽 포퓰리즘 세력이, 같은 맥락에서 현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미국 트럼프 정부와 러시아 푸틴 정부에 친화성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포퓰리즘 정치세력의 매개조직 훼손은 국가 내에서, 국가 간에서 극단적 폭력을 야기할 수 있다. 견제와 균형을 보증하는 제도와 질서의 무력화는 다수의 지배 혹은 힘에 의한 정치를 가능하게 한다. 이견을 용납하지 않기에 지식인 또는 사회운동은 폭력적인 탄압에 쉽게 노출된다. 나아가 국제질서의 무력화로 인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처럼 강대국의 영토확장을 위한 침략 내지는 협박이 빈번해질 수 있다. 그 결과는 사회의 붕괴와 문명의 파괴다. 극단적 폭력 속에선 어떤 대안의 가능성도 봉쇄된다. 분명 유럽연합을 비롯하여 현재 유럽 각국의 각종 제도적 장치들은 결함과 한계가 있다. 그러나 필요한 것은 성찰과 개혁을 통한 헌정 민주주의의 재건이어야 하지, 결코 헌정 민주주의의 부정일 수 없다. 포퓰리즘이 권위주의와 친화성이 크고, 나아가 파시즘으로 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포퓰리즘 세력에 대한 단호한 비판과 거리두기는 그 어느때보다 중요하다. 과연 유럽 정상 외교, 나아가 유럽의 사회운동은 포퓰리즘 세력의 도전을 극복할 수 있을까? 혹은 그들에 휩쓸려 부화뇌동할 것인가? 유럽정치의 복원 내지는 재건은 유럽인들이 어떻게 포퓰리즘에 대응할 것이냐에 달렸다. ●1.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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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포퓰리즘과 헌정 민주주의와의 관계:
매개조직에 대한 공격과 변형1) 기존 포퓰리즘 설명의 한계
2) 우르비나티 교수의 포퓰리즘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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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유럽 포퓰리즘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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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포퓰리즘 정당들의 행태
: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스웨덴의 사례
1) 개헌을 추구하는 이탈리아형제당과 멜로니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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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행정부와 사법부를 위협하는 프랑스의 멜랑숑과 르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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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방어적 민주주의’를 시험하는 독일 대안당(Af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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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스웨덴 정치를 교란하는 스웨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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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결론
1) 매개조직을 훼손하는 포퓰리즘 세력
2) ‘포퓰리즘’이란 험로를 마주한 유럽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