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2022 여름. 1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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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과 세계 사회운동의 논쟁

임필수 | 편집장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개시되기 직전과 그 이후로 사회진보연대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침공 직전인 2월 23일, 《사회운동포커스》를 통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향한 모든 군사 행동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를 발표했고, 침공 후 2월 28일 주한러시아대사관 앞에서 열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즉각 중단·평화적 해결 촉구’ 한국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데 함께했다. 그 후 결성된 ‘우크라이나 평화행동’에 참여하며 여러 집회를 여는 데도 힘을 모았다.

이번 침공 사태는 사회운동 내의 시각 차이가 분명히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시각 차이는 비단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좌파운동에서 큰 논쟁점으로 떠올랐다. 전쟁의 원인을 무엇으로 보느냐부터가 쟁점이었고, 원인에 대한 인식 차이는 당연히 해법에 대한 의견 차이로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번 특집,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사회운동의 대응’은 이번 전쟁의 원인과 해법에 대한 우리의 분석과 입장을 가능한 한 명료하게 제시하기 위해 준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다양한 각도에서의 분석은 현재 세계정세 전반에 관한 우리의 인식을 명확히 세우는 데에도 매우 중요할 것이다. 관련하여 3월 31일에 발간한 소책자,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우크라이나 전쟁의 배경·현황·쟁점에 관한 Q&A』도 함께 참조할 수 있다. 

먼저 김진영의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황과 전망」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황을 분석하면서 러시아의 전쟁 의도를 읽어 낸다. 현재 핵심 전선은 동부와 남부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의 항전으로 키이우 점령이 무산되고 군사적 요충지 마리우폴 함락도 빠르게 진행되지 않자, 3월 중순 이후로는 북부 전선 병력을 동부로 돌려 러시아군 점령 지역을 넓히는 전략을 취해왔다. 또한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 남부 점령지역을 러시아 영토로 편입하려고 시도했다. 3월 12일, 헤르손을 독립 공화국으로 만들기 위한 주민투표를 실시했으나, 44표 차이로 부결되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평화협상의 상황을 보더라도 러시아는 영토병합을 추구할 뿐, 종전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3월부터 젤렌스키 정부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사실상 포기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지 않는 대신, 미국·러시아·터키 등이 참여하는 ‘새 안전보장 조약’에 서명하는 안을 제안하였다. 다국적 안전보장에 따른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 우크라이나에 외국 군사기지를 두지 않겠다는 제안은 러시아 입장에서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보다는 확실히 나은 안이다. 영토 문제에 대해서도, 젤렌스키 정부는 ‘2월 24일 침공 이전의 영토로 돌아가는 것이 목표’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즉, 이미 러시아에 합병된 크림반도나 ‘독립 공화국’을 선언한 도네츠크·루한스크 공화국을 이 전쟁을 계기로 수복하겠다는 목표를 적극적으로 세우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이조차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푸틴 대통령 본인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추진을 주된 침공 이유로 꼽았던 것과 배치된다. 한편,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결정에 구소련 영토, 나아가 과거 러시아 제국의 영토에 대한 ‘실지’(失地) 회복의 의도가 있었다고 한다면,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와 국경을 맞댄 몰도바는 가장 유력한 ‘우크라이나 다음 목표’로 꼽힌다. 전장 확대 외에도, 핵무기·생화학무기 등 대량 살상 수단의 사용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사회운동은 러시아의 무조건적인 철군을 요구하는 국제적 목소리에 동참해야 하며, 긴급 구호 모금 확대, 우크라이나인·고려인 난민 입국 및 정착 지원에 힘을 합해야 한다. 또한 우크라이나 사회운동의 요구인 우크라이나의 부채 탕감을 지지해야 한다. 우크라이나가 전쟁으로 이미 1조 달러(1280조 원) 이상의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되는 현재, 재건을 위한 천문학적 비용을 고려해서라도 우크라이나의 부채 탕감이 절실하다. 한편,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각국의 군비증강 움직임을 비판하는 가운데에서도, 세계를 위협하는 ‘절대무기’인 핵의 철폐를 통해 국가 간 전쟁이 인류 전체를 위협하는 핵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감축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마지막으로, 세계 사회운동은 전후 세계 질서의 붕괴 자체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전후 세계질서에 대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번 전쟁 사례처럼, 거부권을 지닌 유엔 상임이사국이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진영논리에 따라 유엔을 무력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류미경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맞선 세계 노동조합의 반전평화운동」은 각국 노동조합의 활동을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러시아, 그리고 세계 시민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며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소개한다. 국제노총, 유럽노총을 비롯하여 국제산별연맹 조직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즉시 이를 규탄하고 러시아의 즉각 철군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국제노총과 유럽노총의 공동성명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은 국제법과 주권국가이자 민주국가로서 우크라이나의 영토보전에 대한 명백한 침해”라고 밝히며, “푸틴의 공세에 단호하게 맞서야 하며 평화와 대화를 촉발하기 위해 푸틴 정권을 더욱 강력하게 압박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총도 3월 30일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중단하고 즉각 철군하라”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6월 8일에도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 참여하는 187개국 노동조합의 모임인 노동자그룹 전체회의가 결의문을 채택했다. “특히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억압에서 벗어난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우크라이나를 만들기 위한 투쟁에 참여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경의를 표하”고, “전 세계 각국 정부는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러시아 군대가 조건 없이 철군하도록, 즉각적인 휴전으로 개시되는 이상적인 공동안보를 촉진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러시아 내에서도 침공 직후부터 전쟁에 반대하는 공개서한, 호소문, 소셜미디어(SNS) 게시물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러시아의 제2노총인 러시아노동총연합(KTR)은 2월 25일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러시아에 자유를!”이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고, 각 도시에서 열리는 반전시위에 참여했다. 러시아 전역에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 조직 및 개인들의 ‘페미니스트 반전 저항’도 전쟁과 정부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데에 힘을 모을 것을 촉구했다. 한편 우크라이나 노동조합들은 세계의 노동조합들에 러시아 화석연료 하역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는데, 이에 화답하는 흐름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스웨덴 항만노조 조합원들도 3월 중순부터 러시아 및 러시아 관련 선박 하역작업을 중지했다. 벨라루스 철도노동자들은 2월 말부터 철도망을 통한 러시아군의 군수물품 수송을 지연시키는 활동을 해왔다. 우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맞서는 세계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활동에 주목하며 협력과 지원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임필수의 「푸틴과 러시아, 1999년 대통령 권한대행에서 2014년 크림합병까지」는 이번 전쟁의 원인을 러시아 내부로부터 찾아보고자 한다. 푸틴 정부가 아니었어도 크림 합병이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졌을지 따져보자는 것이다. 옐친 정부 때는 우크라이나의 영토보전, 즉 크림반도에 대한 주권을 인정하는 양국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하고 양국 의회에서 비준도 했는데, 왜 푸틴 정부는 전쟁을 선택했는가? 푸틴 정부는 집권 초기에는 경제개혁과 경제성장, 정치안정, 개방적 외교정책에 대한 기대를 높였지만, 점차 타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실로비키’(군대, 비밀경찰 출신 인사)라는 푸틴의 측근 그룹이 수직적, 권위주의적 정치권력을 구축하고, 거대 국유기업을 사적 소유물로 전락시켰다. 또한 푸틴과 연고를 지닌 ‘친구’들이 거대 국유기업과의 수상한 거래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푸틴과 ‘경제공동체’를 구성하였다. 이는 러시아의 경제적 성장잠재력을 갉아먹었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러시아 경제는 장기저성장의 길로 들어섰다. 두 번의 대통령과 한 번의 총리를 한 후, 2012년 푸틴이 다시 대통령에 나서는 일은 국내에서 상당한 저항에 직면했다. 2011~2012년에는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푸틴 집권 후 초유의 대규모 시위 사태가 벌어졌다. 푸틴은 한편으로는 저항세력을 체계적으로 제거하는 권위주의 통치를 강화하면서도, 장기집권의 정당성을 호소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과 이데올로기를 개발하고자 했다. 이에 따라 이미 푸틴의 정치 담론을 지배하고 있던 ‘대러시아 애국주의’가 한층 더 강조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푸틴은 본인이 무명의 총리에서 대통령이 되는 길을 열었던 2차 체첸전쟁과 같은 길을 찾기 시작했다. 즉 대러시아 애국주의를 폭발시킬 현실의 이벤트를 찾고자 했다. 위험과 비용이 그다지 크지 않은 ‘소규모의 승리하는 전쟁’이 그것이었다. 게다가 2010년대 초반 조지아, 우크라이나, 키르기스스탄과 같은 러시아 이웃국가에서 벌어진 민주화 ‘색깔혁명’은 러시아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국내 저항을 촉발시킬 수 있는 현실적 위협이기도 했다. 크림 합병은 푸틴이 추구하는 바에서 볼 때, 모든 측면에서 최적의 케이스였다. 러시아는 2000년대 중반 이후로 군비증강과 현대화를 추구했는데, 이에 따라 러시아의 군사력은 우크라이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러시아는 서방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회색지대’ 전략을 구사했다. 즉 서방은 개전 초기, 크림에 러시아군이 직접 투입되었는지 여부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2014년 크림 합병은 러시아 내에서 ‘크림 컨센서스’를 창출했고, 푸틴과 여당 통합러시아당은 그 후 두마 선거나 대통령선거, 개헌선거에서 승승장구했다. 개헌에 따라 푸틴의 초장기 집권의 길이 열렸고, 푸틴은 2024년에 다섯 번째 임기에 도전하게 된다. 그렇지만 크림 합병과 동시에 단행된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서의 작전은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상태에서 장기화되었고, 그에 따라 전쟁의 경제적 부담도 가중되었다. 푸틴의 인기를 최고치로 끌어올렸던 ‘크림 컨센서스’도 시간이 지나며 점차 희미해졌다. 그렇다면 푸틴은 결단해야 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력개입을 중단할 것인가, 아니면 확대할 것인가. 푸틴은 크림 합병 당시 서방의 무력한 대응을 분명히 확인했다. 푸틴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을 선택했다. 

임지섭의 「우크라이나 전쟁과 세계경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세계경제 전반,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 우크라이나의 현 상황과 재건 전망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우선 전쟁은 2021년 하반기부터 둔화되기 시작한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회복세를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전쟁이 회복세 둔화에 일조하는 주요한 경로는 세계상품시장에 공급충격을 가해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세계 공급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에너지와 식량 가격의 폭등이 인플레이션에 직접적이고 일차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올해 식량가격 상승 수준은 지난 20년 사이 두 차례의 식량가격 상승 수준을 뛰어넘어 세계적인 빈곤 위기가 우려된다. 한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EU)을 비롯해 여러 국가들이 경제제재 조치를 부과해왔다. 전쟁 초기에는 주로 러시아 금융기관을 국제금융시스템에서 배제하고 전쟁에 관련된 러시아 개인과 기관의 자산을 동결하는 등 금융 부문에 대한 제재가 이루어졌다. 이는 러시아가 전쟁에 필요한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을 제한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점차 전쟁이 장기화되고 러시아의 민간인 학살 등 전쟁범죄 문제가 제기되면서, 제재는 상품 및 무역 부문으로도 확장되었다. 특히 미국은 3월 8일부터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금지했다. 현재까지 이루어진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는 2차 세계전쟁 이후 강대국에 부과된 가장 포괄적인 제재로 평가받는다. 국제통화기금은 유럽연합의 3차 제재안까지 반영했을 때 러시아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8.5%, 내년 경제성장률은 –2.3%일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지난 1월 전망치보다 올해는 11.3%포인트, 내년은 4.4%포인트나 내린 것이다. 러시아 정부기관도 2022년 러시아 국내총생산이 6~8%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반면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를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에서는 현재까지 수천 명의 민간인 피해자와 약 700만 명의 국내 피난민이 발생하였으며, 인구의 약 3분의 1이 긴급 인도적 지원을 필요로 한다. 또한 수백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2022년 우크라이나의 경제성장률은 –35%로 예상되며, 전쟁이 종식되더라도 향후 수년간 경제활동이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정책연구센터의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청사진』은 이전의 재건 사례와 비교하여 우크라이나 재건 비용을 추산한다. 현재 단계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재건 지원 비용은 약 2000억 유로(267조 원)에서 5000억 유로(668조 원) 수준일 것으로 추정한다. 이러한 재건 비용은 대부분 미국과 유럽연합이 지원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최근 유럽연합은 최대 1조 달러에 이르는 러시아 올리가르히의 동결 자산을 우크라이나 재건에 사용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전쟁의 일차적 책임은 분명히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인도적, 경제적 피해를 발생시킨 러시아를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러시아는 전쟁의 조기 종식과 평화적 해결보다는, 확전과 장기화를 통해 인도주의적 위기와 경제적 손실의 크기를 더욱 키우고 있다. 

쟁점분석의 첫 번째 글로는 이소형의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 진단과 과제」를 싣는다. 새 정부 노동정책의 핵심 중 하나는 ‘노동유연화’, 특히 ‘유연근로제 확산’이다. 이는 역대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연장선상에 있다. 노동유연화를 원활하게 작동시키기 위한 안정성 정책 더하기 사회적 대화라는 정책 패러다임은 이미 노동정책의 공식으로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부와 자본의 유연화 전략은 궁극적으로 노동의 집단성 해체를 노린다. 윤석열 정부 역시 미조직 노동자의 권리를 대변한다는 명분으로 노동자를 개별화하는 유연화 정책에 집중하고 있다. 집단적 노사관계를 확대한다거나 단체교섭권을 확장하는 정책은 회피하는 대신 노동조건, 노사관계에서 노동자 개인의 선택을 부각시킨다. 특히 근로기준법상 과반수 노동조합의 권한을 축소하며 노동시간·임금체계 변화에 대한 ‘노사자율의 선택권 확대’와 ‘절차적 합리화’를 제시하는데, 이는 노조를 우회하는 전략의 관철방식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가 윤정부 노동정책에서 집중해야 할 대목은 ‘노조 대표성의 상대화, 집단적 노동의 개별화’라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전략이다. 그런데 노동의 관점에서 노동시간에 대한 ‘개별적 선택권’은 사용자의 노동 통제 재량권을 합리화하는 논리에 불과하다. 노동계는 오늘날 현장의 노동시간에 대한 통제권이 사용자의 압도적인 힘에 좌우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일부 사무 전문직 노동자 개인의 선택권이 보장된다 해도 유연근로제는 또 다른 집중노동과 장시간 노동을 조장하는 제도로 악용될 소지가 많다. 유연근로시간의 확대는 노동자를 개별화, 파편화하여 노조를 통한 노동조건 규율을 불가능하게 만들 위험이 크다. 또한 새 정부는 ‘세대상생형 임금체계 확산’을 또 다른 핵심 의제로 내세운다. 대기업·공공기관의 연공급 임금체계를 직무·성과급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문재인 정부 시기에서도 연공급 임금체계 개혁을 시도하는 정책은 이미 있었다. 정부 주도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나 직무급제를 도입하는 방식이었다. 그렇지만 한국의 심각한 임금 격차는 한국 자본주의 체계가 오랜 시간 해결하지 못한 경제적 모순과 노사관계의 분권화가 낳은 결과다. 따라서 ‘격차를 확대하고 있는 자본과 노동의 제도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한편 윤석열 정부가 한국노총을 정책 파트너로 삼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 중 첨예한 쟁점이 되고 있는 ‘공공기관 직무·성과급제 도입’이나 ‘과반수 노조 근로자대표 권한’은 이미 문재인 정부시기 한국노총이 경사노위를 통해 정부와 합의한 선례가 있다. 윤석열 정부 역시 한국노총과 경사노위(또는 재편된 노사정 기구)를 통해 주요한 쟁점들에 대한 합의를 시도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이 위협적인 이유는 그동안 민주노총 등 노조운동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취약한 쟁점을 파고들어 사회적 고립을 유도하고 노조의 존립기반을 약화시키려 한다는 데 있다. 노동조합 운동은 새 정부가 제기하는 ‘세대적 불의’나 ‘공정성’이라는 쟁점을 회피하는 게 아니라, 그보다 더 보편적인 관점을 제시하며 사회적 논의를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 쟁점 분석은 문설희의 「여성가족부 폐지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페이스북에 띄운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는 대선을 뜨겁게 달구었다. 선거 시기에 차기 정부의 여성 정책 및 성평등 정책 전담기구의 역할이 어떠해야 할지를 둘러싼 사회적 공론화는 물론 필요하다. 여성가족부가 여성단체 활동 경력을 발판삼아 정부 고위관료나 정치인으로 입문하는 통로가 되었고, 페모크라트 집단이 민주당의 성비위 문제를 감싸고돌 정도로 타락했다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논쟁을 제기한 방식은 합리적이고 대안적인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으로, 성별·세대별 편 가르기를 심화시킬 뿐이었다. 민주당 역시 여성가족부의 대중적 위상이 심각하게 추락한 원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회피한 채, ‘여성가족부 강화’라는 방패 뒤에서 득표를 위한 동원에 몰두했다. 여성의 힘은 바로 여성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여성운동의 발전은 아래로부터의 요구를 모아내고 연대와 단결을 강화하는 데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난 20년간의 활동과 투쟁을 통해 분명히 밝혀왔다. 그런데 대다수 여성단체와 일부 사회운동 진영에서 여성가족부 폐지가 여성의 권리 후퇴와 직결되는 양 주장하고 있어 우려스럽다. 여성부가 출범한 역사적 해로 꼽히는 2001년에 김대중 정부는 모성보호를 앞세워 근로기준법을 개악했고, 여성가족부로 확대·개편되어 부처 권한이 강화된 2005년에 노무현 정부는 저출산·고령화 시대 신성장동력 산업으로 사회서비스에 주목하며 질 낮은 여성 일자리를 양산했다. 이는 가족 내 여성의 돌봄 부담을 일부 완화하는 동시에 시간제·비정규직 여성 일자리 양산, 노동시장 내 성별분업 강화, 여성 내부 격차 확대라는 문제를 초래했다. 자본의 위기에 대응하는 신자유주의 전략은 대다수 평범한 여성들에게 이중, 삼중의 부담을 지우는 것이었고, 신자유주의 통치성 확보를 위해 제한된 기회를 제공할 뿐이었다. 우리가 보기에 중요한 문제는 새 정부가 여성의 권익을 무엇으로 규정하고 어떠한 방향의 정책을 펼쳐나갈 것인가이다. 여성가족부 폐지인가, 존치·강화인가라는 찬반구도에 갇혀서는 새 정부 출범 시기 여성운동이 진정으로 주목해야 할 문제를 보지 못한다. 새 정부의 여성정책 전반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너른 시야 확보가 필요하다. 이 글은 여성부를 포함한 성평등 정책 추진체계의 변화 과정을 개괄하고, 여성부의 기능과 역할, 그와 맞물린 여성운동의 전략을 검토한다. 

세 번째 쟁점분석은 이유미의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 평가와 ‘검수완박’의 문제점」이다. 검수완박은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 시즌2라고 할 수 있는데, 앞서 추진된 검찰개혁 시즌1에 대한 평가를 토대로 문제점을 보완하는 것도 아니었다. 시즌1은 첫째로 검찰 인사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위한 제도적 정비를 약속했으나 추진하지 않았고, 검찰이 정권비리를 수사하자 도리어 인사권을 통한 개입을 강화했다. 둘째로 검찰개혁 방향으로 수사-기소 분리원칙을 제시했지만, 검찰의 직접수사는 존치되고 수사지휘권이 폐지되면서 경찰의 권한은 강화되었으나 통제장치는 약화되었다. 검찰의 특수수사가 문제가 되었는데 왜 6대 중요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남겨두고 일반 형사사건에서 수사지휘권을 폐지하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래서 적폐청산 수사에 검찰을 활용하려는 정권의 의도 때문에 검찰과 경찰이 어정쩡하게 수사권을 나눠가졌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셋째로 그 결과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이 겪고 있다. 수사권이 공수처, 검찰, 경찰로 분산되면서 수사범위가 모호해 피해구제를 위해 어디를 찾아가야 할지 혼란스럽게 되었다. 형사 절차는 복잡해졌지만 피해자의 권리행사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고 사건처리가 지연되면서 피해구제가 어려워졌다. 하지만 민주당이 추진한 검찰개혁 시즌2는 이러한 평가를 토대로 개선했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입법과정에 있어서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 입법하기로 결정한지 한 달이 채 되지 않는 기간 안에 졸속으로 처리하려다 보니, 민주당은 다수당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도입된 국회법을 온갖 편법을 총동원하여 무력화했다. 놀라운 점은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하면서 정작 수사권을 어디로 넘길지 결정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에 수사권 박탈을 하려면 시간이 부족하므로 대안은 나중에 마련하자며 입법을 강행한 것이다. 이런 비상식적인 행동의 속내는 “검찰 수사권을 폐지한다고 해서 검찰의 6대 범죄 수사권이 경찰로 가는 게 아니라 그냥 증발한다”라고 한 황운하 민주당 의원의 말에서 짐작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비리 의혹과 이재명 전 대선 후보의 대장동 의혹 등에 대한 검찰 수사가 증발하길 바란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거기다 독소조항도 많다. 첫째, 검찰의 보완수사를 ‘동일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로 제한하고, 둘째, 고발인의 이의신청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민주주의의 보루가 되어야 할 노동자운동이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의 폭주에 침묵한 것은 심각한 문제다. 검수완박을 지배계급의 권력다툼으로 치부하여 방관하거나, 보수당보다 민주당이 낫다는 진영논리에 갇혀 제대로 된 비판을 하지 못한다면, 노동자운동이 합리적 대안세력으로 인정받는 것은 요원해질 것이다.

제언으로는 교사회원모임의 「진보교육감 12년 평가와 사회운동의 과제」를 싣는다. 2007년부터 교육감 직선제가 도입되었고, 선거가 거듭되면서 ‘진보교육감’이 대거 당선됐다. 총 17개 지역 중 2010년 선거에서 6개, 2014년 선거에서 13개, 2018년 14개 지역에서 진보교육감이 당선되었다. 전교조 출신 교육감도 2014년 8명에서 2018년 10명으로 증가했다. 이는 전교조와 진보교육감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는 지표다. 진보교육감의 대표 공약은 무상급식, 혁신학교, 학생인권조례 제정, 민주시민교육, 학교 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이었다. 이 중에서 무상급식과 고교무상교육 등 교육복지와, 비정규직 노동자 처우개선에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성과를 보여주었다. 반면 혁신학교, 학생인권조례 제정, 민주시민교육 이슈는 논란에 휩싸여있다. 진보교육감의 교육정책에 대한 심도 있는 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먼저 혁신학교의 경우, 공교육의 내실화를 단지 혁신학교를 지정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음이 드러났다. 혁신학교의 질적 성과에 대한 교사와 학부모의 회의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거시적으로 모든 학교의 교육에 영향을 미치는 대입제도의 개혁 방안은 무엇이고, 미래사회에서 살아갈 학생들에게 필수적인 보편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교육과정을 어떻게 편성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발본적으로 파고들어 가야 한다. 다음으로 학생인권조례를 보면, 학생의 인권을 증진한다는 측면이 크지만, 교육적 쟁점을 내포하는 것도 사실이다. 교육적으로 필요한 훈육임에도 불구하고 자칫 학생인권조례에 어긋난다는 해석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더라도, 학교 구성원의 민주적 토론 과정을 거쳐 교육적으로 필요한 조치들은 학칙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자사고, 특목고 폐지 이후의 문제를 따져봐야 한다. 즉 모든 고등학교를 특색 없이 평준화하는 것이 진보적인 교육정책인지, 학생 개개인들의 특성과 발달상황이 다른데도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교육수준을 제공하는 것이 적절한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학교 비정규직 문제를 보면,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다. 필자는 진보적 교육개혁을 재개념화해야 하고,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한 주체들 스스로의 혁신과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글을 맺는다. 보론으로는 진보나 보수 교육감 모두 강조하는 인공지능(AI) 교육의 맹점을 살펴보는 글을 담는다.

이번 호 ‘페미니즘 읽기’로는 허지선의 「성차별이 사라진 자리에서 발견하는 불평등」을 싣는다. 이 글은 경제학자인 클라우디아 골딘의 『커리어 그리고 가정』을 다룬다. 골딘은 미국의 사례를 통해, 제도적 성차별이 해소된 덕분에 숨어있던 차별적 요소가 드러났다고 주장한다. 100여 년 전과 비교해 오늘날 사회제도 상의 성차별은 대부분 사라졌다. 이상한 것은 제도적 평등, 기회와 경쟁의 공평이 이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인생 초기 단계에서 여성들이 보여주는 약진에도 불구하고, 성별소득격차와 커리어의 격차가 명백하게 존재한다는 점이다. 골딘은 커리어와 가정의 시간상충이라는 문제와 ‘탐욕스러운 일’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일이 탐욕스럽다는 말은 “가차 없는 밀도로 불규칙한 일정에 대응해가며 장시간 일할 것을 요구하고, 그 대가로 높은 보수를 지급한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노동시간을 두 배 늘리면, 소득은 두 배 이상으로 증가한다. 곧 부부 사이에 가사와 직장생활을 분업하면 이득을 볼 수 있다. 결국 균형과 평등은 가구소득 확대라는 지극히 합리적 선택으로 인해 무너진다. 게다가 잔존한 성별역할규범 속에서 여성이 가정의 몫을 맡을 확률이 훨씬 높다. 물론 남성이 가정을, 여성이 커리어를 맡더라도 부부간 공평성이 깨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골딘은 이것이 110년간 ‘평등을 향한 여정’을 걸어온 여성들이 최후로 발견한 장애물이라고 주장한다. 골딘은 성별임금격차의 원인을 성차별이 아닌 노동에서 짚어내며, 임신, 출산, 양육이 어떻게 노동과 상호작용하여 격차를 유발하는지 제시한다. 이 같은 분석은 여성의 고유한 권리로서 임신, 출산에 대한 권리의 보장이 성평등에 반드시 필요함을 암시한다. 필자는 이러한 분석의 의미를 소개하는 한편, 골딘의 분석에는 장기저성장에 빠진 현 자본주의의 상태에 관한 구조적 시야가 부족함을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독자에게’는 올해 4월 4일, 《사회운동포커스》로 발표한 국제이주팀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에 대해 제기된 비판에 대한 반비판을 싣는다.
 
2022년 6월 12일
임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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