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2023 가을. 1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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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하는 전략적 경쟁, 어떻게 볼 것인가?

임지섭 | 정책교육국장
2020년대 세계정세를 규정하는 핵심 중 하나는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진보연대는 지난 2020~21년 미국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전후로 미국의 새로운 대중국 접근법인 ‘전략적 경쟁’에 주목하고 자세히 분석한 바 있다. (김진영, 「미국과 중국, ‘전략적 경쟁’의 시대로」, 《계간 사회진보연대》 2020년 겨울호, 임필수, 「미국의 전략적 경쟁과 한국의 전략적 선택」, 《계간 사회진보연대》 2021년 겨울호) 이에 따르면, ‘전략적 경쟁’은 중국이 변화했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정책 역시 변화해야 한다는 인식에 기초해 있다. 그렇다면 중국의 무엇이 변화했는가? 미국이 보기에 중국은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규칙에 기초한 질서를 악용하기로 선택했고,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내세우며 자신의 이익과 이데올로기에 부합하도록 국제질서의 수정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세계정세를 국제적 표준을 둘러싼 국가자본주의와 민간자본주의 그리고 자유민주정과 권위독재정의 경쟁으로 특징지으면서, 전략적 경쟁을 경제·안보·가치를 포함하는 장기간의 체제 경쟁으로 한층 심화했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 시기 훼손되었던 규칙 기반의 다자적 질서와 동맹 질서를 복원하면서 양국의 경쟁은 양자적 차원을 넘어 세계적 차원으로 확대되었다. 중국은 지난해 10월 시진핑 집권 3기를 공식화한 20차 당대회에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현대화 노선을 변함없이 이어갈 것임을 재차 강조했다.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행보를 볼 때, ‘전략적 경쟁’은 적어도 2020년대에 지속해서 세계정세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사회운동은 이렇게 변화하고 있는 정세를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할 것인가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먼저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국가자본주의 강화와 그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라는 관점에서 전략적 경쟁의 형성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재정립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전략적 경쟁의 특징을 짚고, 그에 대응하는 중국의 쌍순환 전략의 내용을 정리해본다. 마지막으로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이른바 ‘반도체 전쟁’의 경과를 살펴보고 전략적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갖는 의미를 짚어본다.
 
 

1. 미중관계의 결정적 변곡점, 2008년 세계금융위기

 

1) ‘국진민퇴’와 ‘군민융합’: 중국 국가자본주의의 강화

중국은 세계금융위기로 급속한 성장 둔화와 사회적 불안을 경험했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국가자본주의 또는 당-국가 자본주의를 강화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중국 경제의 국가자본주의 강화란, 개혁개방 이후 시장개방이 이뤄지고 민간부문이 발전해 온 경향이 역전되어, 다시 민간기업과 금융부문, 특히 핵심 경제부문에 대한 국가와 당의 장악력이 증대하는 최근의 현상을 말한다. 이는 시진핑 주석 집권기에 중국공산당 내부로 점차 권력이 집중되고 당-국가의 권위주의가 강화되는 경향과 쌍을 이루는 것이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는 오늘날 중국의 경제체제를 가장 잘 설명하는 용어가 국가자본주의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중국을 국가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는 특징으로 ▲ 경제에서 민간과 공공 부문이 6:4의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 ▲ 금융자산의 85~90%가 국유기구에 의해 통제된다는 점, ▲ 국가와 당이 국유기업을 직접 통제하고 있을 뿐 아니라 민간부문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 ▲ 경제에 있어 정부의 큰 역할이 필요하다는 정치적 합의가 있다는 점을 제시한다. 

나아가 중국공산당이 중국 경제의 기본 방향을 설정하는 기존의 역할을 넘어 구체적인 정책까지 집행하고 감독하는 경향에 주목해, 중국의 경제체제를 ‘당-국가 자본주의’로 규정하는 관점도 있다. 이러한 관점은 특히 중국 국가자본과 당 조직이 민간기업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막대한 권한을 행사하는 이른바 ‘대조타’(大操舵, Grand Steerage)에 주목한다. 이에 따르면, 최근 중국에서는 국가자본이 국유자산관리공사와 산업인도기금을 통해 민간기업 지분에 대규모로 참여하고 있고, 민간기업과 외국인 투자기업 내에 당 조직 설립을 강제하고 있다. 베리 노튼에 따르면, 산업인도기금의 규모는 2018년 1.34조 달러로 중국 GDP의 10%에 이른다. 또한 2018년 현재 민간기업의 48%가 공산당 조직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진민퇴’(國進民退)로도 일컫는 이러한 중국 당-국가 자본주의의 출현 또는 국가 자본주의의 강화는 세계금융위기를 전후로 후진타오 주석 집권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본래 후진타오 정부는 경제성장 일변도에서 벗어나 균형발전과 질적성장을 이루겠다는 경제정책 기조를 내세웠으나, 2008년 금융위기에 대응하고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 4조 위안에 이르는 재정지출과 함께 무제한적인 유동성 공급을 시행했다. 또한 국유기업과 국유은행을 동원한 대규모 투자를 감행했다. 중국은 2009년 GDP의 33.4%에 달하는 국유기업 주도의 고정자본투자를 통해 2010년 10.8%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함으로써 금융위기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과잉투자가 극대화되었고, 국유기업의 수익성 하락과 부채율 상승이라는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또한 이 시기 대부분의 투자가 거대한 인프라 건설 사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이때부터 대규모 건설 부문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 경제의 투자 의존성이 구조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에 따라 부동산 가격 급등과 불평등 증대라는 사회문제 역시 심화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산업생산량이나 생산요소 투입을 늘려 급속한 성장을 끌어내는 방식이, 이제는 중국 경제가 성장 속도가 둔화하는 ‘신창타이’(新常態, New Normal)에 진입하는 것을 가속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기술혁신과 제도개혁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지 못하면 중국 경제가 중진국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2013년 집권한 시진핑 주석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국유자본(주로 에너지, 건설 부문)의 해외진출 전략으로서 ‘일대일로’와, 첨단산업 중심의 기술적 도약을 위한 전략으로서 ‘중국제조2025’ 계획을 추진했다. 먼저 ‘일대일로’ 전략은 중국의 막대한 외환준비금과 대규모 과잉자본을 활용해 중국 경제를 지지할 세계적 공급망을 확립하는 한편, 중국식 국가자본주의를 하나의 모형으로 확립하고 세계화하려는 시도를 상징한다. 일대일로 전략에 따라, 중국의 국유기업은 국가와 당의 지침을 받아서 주로 부채가 누적된 주변부 국가를 목표로 기반시설을 건설하고 해외 영업을 수행하고 있다. 2022년 12월 현재 80개의 중앙정부 국유기업이 138개 국가 및 지역에서 4700개 이상의 일대일로 건설 프로젝트에 투자하거나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제조2025’ 계획은 중국의 제조업을 노동·자원집약형 산업에서 기술집약형 산업으로 도약시키려는 산업고도화 전략이다. 이를 위해 ▲ 정부 주도의 R&D 프로그램과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 활성화, ▲ 반도체, AI, 신에너지 자동차 분야 등 보조금 확대, ▲ 해외투자 진출과 적극적인 인수·합병을 통한 기술 노하우와 브랜드 획득을 장려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또한 이후 2018년에 갱신된 ‘중국제조2025’ 계획은 13차 5개년 규획(2016~2020)과 14차 5개년 규획(2021~2025)의 일부로서 2049년까지 3단계에 걸쳐서 핵심기술에서 세계적인 지배력을 획득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과거의 산업정책과 달리, ‘중국제조2025’ 계획은 산업·기술·생산물의 우선순위에 대한 포괄적이고 세부적인 설명이 제시되었고, ‘자급목표’라는 형태로 국내에서 개발된 기술의 점유율 목표가 제시되었다. 또한 ‘군민융합’(军民融合)이라는 표어에서 드러나듯 군사 부문과 민간 부문의 혁신 역량을 통합함으로써 군사용 기술이 상업용 기술 개발로 파생될 수 있도록 하고, 역으로 상업 기술을 활용하여 첨단기술 기반의 군사 능력을 향상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이에 따라 산업과 안보가 결합되고, 국가자본과 당이 주도하여 민간자본도 참여시킨 대규모 국가기금이 투자에 활용되면서 당-국가-민간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이러한 맥락에서 ‘중국제조2025’ 계획은 ‘강군몽’(强軍夢)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시진핑 주석은 2013년 집권과 함께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중국몽’(中國夢)을 제시했고, 2015년부터는 그 핵심으로 ‘강군몽’을 강조하며 군사 현대화를 추진했다. 이는 ‘적극적 방어전략’으로서 반(反)접근·지역거부(A2·AD) 전략의 고도화와 첨단무기를 바탕으로 한 국지전쟁 전략을 골자로 하는데, 여기에는 첨단반도체 기술이 필수적이다. 이에 따라 2019년 말까지 약 1.5조 달러 규모의 정부 주도 산업발전기금이 파운드리 기업인 SMIC와 같은 전략부문에 투입되었다. 
 

2) 중국에 대한 미국과 유럽연합의 인식 변화

시진핑 집권기에 본격화된 중국 국가자본주의의 강화와 군민융합 발전전략은 미중갈등의 뇌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럽연합과 일본을 비롯한 자유주의 진영이 중국에 대한 우려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중국이 첨단기술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지식재산권 편취 문제와 안보 위협 문제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세계경제에 통합되는 과정에서 점차 자유주의적 규칙 기반 질서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힘을 잃고, 중국식 권위주의와 국가자본주의 체제를 강화하며 국제질서를 교란하고 재편하려 한다는 비관적 전망이 힘을 얻게 되었다는 점이다.

중국의 첨단기술 확보를 위한 전략은 미국과의 극심한 무역갈등을 초래했는데, 핵심 쟁점 중 하나는 중국의 불공정한 기술이전 문제였다. 예를 들어 중국의 산업 스파이가 직접 기술을 탈취하거나 외국 기업 직원에게 뇌물을 제공해 영업 비밀을 도용하고, 외국 기업을 인수합병 해 기술을 이전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중국에 외국기업이 투자할 때 중국 기업과의 합작회사 설립을 강제하고 기술이전을 조건으로 내세우는 관행도 문제가 되었다. 이에 따라 지식재산권 문제로 중국 법인을 상대로 한 미국 기업의 소송이 급증하였고, 미국 기업들은 미국 정부의 대책을 촉구했다.

특히 ‘중국제조2025’ 계획이 발표된 이후, 미국은 이 계획이 단순한 산업정책을 넘어선 중국 국가안보 전략의 핵심이라고 인식하고 중국의 첨단기술 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먼저 미국 반도체 기업을 인수하려는 중국 반도체 기업의 시도에 여러 번 제동이 걸렸다. 2015년 중국 칭화유니그룹이 마이크론을 인수하려다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의 반대로 실패한 일이 대표적 사례다. 2016년에는 오바마 행정부가 처음으로 중국의 통신 장비회사 ZTE에 대한 수출 규제조치를 발동하였다. 이러한 규제조치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본격화되었고,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후 장에서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한편 미국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더해, 매년 증가하는 대중 무역적자가 미국 제조업의 쇠퇴와 일자리 축소 그리고 그에 따른 여러 사회적 문제의 주요 원인이라는 인식이 확산하였다.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중국이 2001년 WTO에 가입한 이후 빠르게 증가했고, 이러한 추세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2000년과 2017년을 비교하면, 대중 무역수지 적자는 820억 달러에서 3357억 달러로 네 배 증가했고, 전체적자 대비 중국의 비중이 22%에서 60.8%로 세 배 가까이 상승했다.

미국은 이렇게 대중 무역불균형이 심화한 원인으로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즉 중국이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의 유지와 발전에 필요한 비용과 역할을 분담하지 않고 그 혜택만을 일방적으로 편취한 결과 무역불균형이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2018년 3월 발표한 국별 무역장벽보고서는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으로 ▲ 중국의 기술이전 요구, ▲ 지적재산권 보호 미비, ▲ 중국 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투자 제한 등 차별적 대우, ▲ 중국 정부의 부가세 환급정책과 보조금 지원 등 비관세장벽을 명시했다. 미국 정부는 이후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지적할 때마다 이러한 항목을 반복해서 제시하고 있다. 보고서는 또한 중국의 기술이전과 ‘중국제조2025’ 계획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도 명시했다.

유럽연합 역시 중국이 국가자본주의 체제를 강화할 목적으로 하는 기술이전을 더 이상 순수한 경제적 상호 이득의 차원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보고 적극적인 대응을 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2016년 이중용도(dual use) 품목에 대한 수출통제를 규정한 입법을 채택했고, 2019년 3월 역내 외국인직접투자 심사를 강화했다. 또한 유럽연합은 2019년 전략전망(Strategic Outlook)에서 중국에 대한 외교노선의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유럽은 여전히 중국을 협상 파트너로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경제적·체제적 경쟁자로 규정했다. 또한 중국이 글로벌 행위자이자 선도적인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 규칙 기반의 국제질서에 더 큰 책임감과 호혜성을 보이고 개방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유럽연합은 중국의 국가자본주의에 따른 비시장적 관행을 시정하는 문제에 대해 미국과 행보를 같이 하고 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2016년 유럽연합이 WTO에서 중국에 시장경제지위(MES) 부여를 거절한 것이다. 2001년 중국이 WTO에 가입할 당시, 가입 의정서 15조는 “중국기업이 시장경제 조건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면 반덤핑 절차에서 중국을 비시장경제로 취급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 규정은 15년이 지나면 만료되는 것이었지만, 2016년 12월 유럽연합과 미국은 중국에 대한 시장경제지위 부여를 거부하면서 그 근거로 각각 ‘시장왜곡’과 ‘시장지향조건’을 들었다. 

이후 2018년 5월 미국, 유럽연합, 일본은 중국의 시장경제 지위 부여와 관련해 산업보조금 규칙의 개정, 기술이전 정책과 관행에 대한 공동성명, 그리고 시장경제국가로 인정받기 위한 7개 조건을 담은 ‘시장지향조건에 관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공동성명은 중국을 시장경제로 인정할 수 없는 중대한 이유 중 하나로 국유기업의 시장 장악을 명시했고, 중국 공공기구와 국유기업 그리고 정부의 시장 왜곡 행위 개선을 위해 공동 대응할 것을 밝혔다. 시장경제국가로 인정받기 위한 7개 조건에는 기업의 자유로운 가격결정권, 투자결정권, 요소(자본, 노동, 기술 및 기타 요소) 가격의 시장 결정, 기업의 자율적 자본 배분 결정, 독립적 회계 등 국제기준에 부합한 회계, 기업법·파산법·사유재산법 준수, 기업의 의사결정에 있어 정부의 간섭이 없을 것이 포함되었다.

나아가 미국과 유럽연합은 2021년 9월 무역과 기술 분야에서 협력하고 중국의 비시장적·비민주적 행위에 공동으로 대응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무역기술위원회’(TTC)를 출범했다. TTC 공동성명은 민주주의 가치를 증진하는 방향에서 글로벌 차원의 기술과 무역 영역에서 협력하고 ‘비시장경제’의 불공정한 무역관행과 정책으로부터 기업과 국민을 보호하겠다는 방향을 밝혔다. 

그러면서 6대 협력 분야로 ▲ 국가 안보 관련 분야에 대한 투자 심사, ▲ 이중 용도 분야 수출 규제, ▲ 인공지능 기술 남용 대응, ▲ 반도체 공급사슬 재조정, ▲ 비시장적인 무역 왜곡 정책 대응, ▲ 민간기업을 포함하는 모든 이해당사자 참여를 제시했다. 부속서와 10대 실무그룹의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민군융합 정책을 통한 기술 획득 전략을 경계하며, 인공지능이 사회 감시 체제 작동에 남용되는 것에 반대하고, 비시장경제가 기술이전 강요와 지식재산 절도·국유기업 우대·강제노동 정책 등을 추구하는 것에 대응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 TTC가 직간접적으로 중국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소결

2008년 세계금융위기는 미국과 중국의 양국 관계에 결정적 변곡점으로 작용했다. 세계금융위기는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의 구제금융과 비전통적 수량완화(QE)와 같은 비상 위급대책으로 ‘대불황’으로 심화하지는 않았다. 또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 보호주의에 반대하고 세계금융위기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데 합의함으로써 국제경제질서가 붕괴하는 것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세계금융위기 이후 미국식 경제모델에 대한 회의가 확산하는 동시에 시진핑 주석 취임 이후 중국이 국가자본주의 성장 전략을 ‘중국몽’으로 일반화하고 중국식 경제모델로 부각하면서 미국과 중국의 정치적·경제적 긴장이 고조되었다. 중국의 변화는 국유자본의 팽창적 해외진출 전략으로서 일대일로와 상위 가치사슬로 도약하고 강군몽을 이루기 위한 군민융합을 내세운 중국제조2025 계획이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났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을 비롯한 자유주의 국가에 중국이 자유무역 질서에 깊이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이를 악용해 배타적인 민족적 이익을 강화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확산시켰다. 또한 중국이 점차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기보다는 중국식 국가자본주의와 권위주의 체제를 강화하는 한편 국제질서를 교란하고 있다는 비관적 전망이 우세해졌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식은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에 대응하는 국내적 조치와 국제적 공조로 이어졌다. 

미국에서는 특히 미중 무역불균형을 포함한 세계적 무역불균형이 부각되면서, 미국에 대한 중국의 대규모 무역흑자가 미국 제조업의 위기와 그에 따른 사회적 문제의 원인이라는 인식이 확산했다. 이러한 인식은 경제민족주의를 앞세운 인민주의와 탈세계화 요구를 등에 업은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중국과 무역분쟁을 벌이는 하나의 주요한 배경이 되었다.
 
 

2. ‘무역분쟁’에서 ‘전략적 경쟁’으로

 

1)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분쟁

국가자본주의와 권위주의를 강화하는 중국에 대한 우려가 증대하면서, 미국 의회와 행정부는 중국에 대한 정책 방향을 재수립하기 시작했다. 이는 ‘관여 정책’(engagement policy)에서 ‘전략적 경쟁’으로의 전환으로 요약할 수 있다. 즉 중국을 국제질서에 참여시키면 점차 중국이 개혁에 나서고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가 될 것으로 기대했던 지난 20년간의 ‘관여 정책’이 한계에 부딪혔음을 인식하고, 중국과 체제 간 ‘장기 전략적 경쟁’에 돌입한 상황에서 포괄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원칙적 현실주의로 복귀하여 미국의 이익과 영향력을 증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중국 전략의 전환은 트럼프 행정부 시기부터 본격화되었다. 2017년 트럼프 행정부가 발표한 「국가안보전략 2017」은 지역 차원의 전략 중 첫째로 ‘인도-태평양 지역’을 다루면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가 미국의 국익을 침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2019년 미국 의회가 국방수권법에서 중국에 관한 포괄적인 전략을 수립할 것을 요구한 데 부응하여,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이 2020년 5월 발표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접근」은 미국과 중국이 경제·가치·안보 측면에서 ‘전략적 경쟁 상태’에 있다는 점을 명시했다. 2020년 국방수권법 역시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하고 ‘인도-태평양 전략’을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들에 예산을 배정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국내의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하는 상황에서도, 대외정책에 대해서는 의회가 초당적 합의를 도출한 것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효과적인 경쟁전략을 채택하지 못하고 중국과의 무역분쟁에 몰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불공정 무역행위’를 근거로 무역법 301조에 따라 2018년 7월 이후 네 차례에 걸쳐 전체 대중 수입 중 약 3분의 2 이상에 해당하는 품목, 36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최대 25%의 추가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중국 역시 추가관세 조치로 맞대응함으로써 본격적인 미중 ‘무역분쟁’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미국의 무역적자는 금융세계화와 달러 환류메커니즘이라는 구조적 요인으로 인한 것이기에, 무역적자 감축 자체만을 목표로 하는 것은 단기적이고 협소한 시도였다. 게다가 그 수단으로 활용한 관세전쟁은 미국의 소비자와 생산자에게 오히려 해를 가할 뿐 실제 무역수지를 개선하는 효과도 분명하지 않았다. 2018년 무역분쟁 이후 양국의 무역에서 상대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하락했고, 특히 미국의 대중국 수입 비중은 2017년 21.9%에서 2022년 상반기 17.3%로 하락했다. 그렇지만 미국의 대중국 전체 무역 규모와 무역적자 규모는 2019년과 2020년 감소했다가 2021년부터 다시 증가하기 시작하여 2022년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게다가 트럼프의 무역분쟁은 미국 우선주의를 추구하면서, 그간 미국이 강조해 온 ‘규칙에 기반한 세계질서’라는 원칙을 스스로 파괴했다. 나아가 2017년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에 부과한 관세와 무역법 201조에 따라 산업보호를 이유로 태양광과 세탁기에 발동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연합과 같은 전통적 동맹국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다. 또한 WTO 상소기구를 사실상 기능정지 상태로 만들고 본래 미국이 주도했던 TPP에서 탈퇴하는 등 다자적 국제협력의 기반을 무너뜨렸다.
 

2) 바이든 행정부의 전략적 경쟁

바이든 대통령은 당선 이후 “미국이 돌아왔다”고 선언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와 일방주의를 폐기하고 자유주의와 국제주의 노선으로 복귀하는 한편 동맹국과의 관계를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의 불공정·반시장적 무역관행을 시정하는 문제는 중국에 대한 무역적자 규모를 줄이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으며, 다자적 동맹질서를 활용해 함께 대응해야 한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면서 바이든 행정부는 큰 틀에서 트럼프 행정부 시기 수립된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과 이를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은 폐기하지 않고 계승했다. 바이든 행정부 역시 ‘중국제조2025’ 같은 국가자본주의적 산업정책이 자유주의적 국제경제 질서를 위협하는 불법적 무역관행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전략적 경쟁 구상에는 2020년 발생한 코로나19 대유행이 큰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 대유행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전략적 경쟁을 한층 심화했다. 먼저 미중갈등의 성격을 무역분쟁에서 체제경쟁으로 확고히 바꿔놓았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 미국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국내적으로도 큰 피해를 보았을 뿐만 아니라, 미국 우선주의를 고수하고 세계보건기구(WHO)를 탈퇴하며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라는 원칙을 스스로 저버리고 지구적 문제에 대응하는 데 명백한 리더십의 한계를 드러냈다. 중국은 국가 주도의 강력한 봉쇄정책인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빠르게 코로나 종식에 성공했다고 선언하는 한편, 이를 자국 체제의 우월성으로 내세웠다. 

코로나19 대유행은 또한 글로벌 공급망 문제를 국가안보상의 과제로 부각했다. 대유행 초기에는 일부 국가가 다자적 협력보다는 마스크를 포함한 의료용품에 대한 수출금지 조치를 시행하는 보호주의적 움직임을 강화하면서 글로벌 의료공급망이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이러한 우려는 이후 백신 개발과 보급을 둘러싸고 반복되었다. 2020년 하반기에는 세계적으로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났는데, 특히 미국은 차량용 반도체의 병목 현상이 심화하여 완성차 생산에 큰 지장이 생기면서 글로벌 공급망 교란의 피해를 절감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민간자본주의의 중추가 되는 중산층을 복원하고, 코로나19에 대한 국제적 공동대응을 수행하며, 중국에 대한 세계적·지역적 대응을 강화하는 다양한 대내외적 정책을 종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바이든 행정부의 인식은 백악관이 2021년 3월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잠정지침 「미국의 우위/장점을 쇄신하자」에 집약되어 있다. 잠정지침은 세계의 안보 상황이 자유주의·민주정과 권위주의·독재정이라는 정치이념과 체제 경쟁이라는 특징을 보이며, 따라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중심으로 동지적인 동맹국·협력국과의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또한 잠정지침은 코로나19 대유행과 같은 세계적 의제의 등장으로 인해 국가안보전략에서 대내정책과 대외정책의 구별과 국가안보·경제안보·보건안보·환경안보와 같은 전통적 구별이 무의미해지고 있으므로 이를 통합적으로 조정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국 전략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전략과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을 양자간 무역분쟁을 넘어서 체제와 가치 그리고 종합적인 안보를 둘러싼 경쟁으로 좀 더 명확하게 규정하려 한다. 즉 바이든 행정부에서 다시 정립된 전략적 경쟁은 국제적 표준을 둘러싼 국가자본주의와 민간자본주의 그리고 자유민주정과 권위독재정의 경쟁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코로나19와 기후변화에 대한 공동대응, 일대일로로 대표되는 ‘중국특색의 개발협력’에 대응할 수 있는 대안적인 기반시설 구축계획, 5G와 인공지능 등 첨단기술과 관련된 국제적 표준을 설정하는 문제가 포함된다.

또한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국내외 공급망의 구조적 취약성이 미국의 경제 및 국가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는 인식에 따라, 글로벌 스탠더드 재건의 핵심으로 (중국이 아닌)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공급망의 구축’(Supply America)를 강조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미국 공급망’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4대 핵심품목(반도체, 배터리, 희토류 등 핵심광물, 의약품)과 6대 주요 산업(국방, 보건, ICT, 에너지, 운송, 농업)의 공급망을 점검하고 위험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범정부적으로 도출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대한 후속조치로 4대 핵심 품목에 대한 공급망 취약점과 대응방안이 포함된 100일 공급망 검토보고서가 작성되었다. 

공급망 강화를 위한 대응방안의 핵심은 대내정책과 대외정책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대내적으로는 국내로 생산시설을 돌아오게 하는 ‘리쇼어링’(reshoring) 정책과 투자 지원을 통해 전략 부문의 미국 내 제조 역량을 중장기적으로 재건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이에 따라 2022년 반도체 및 첨단기술 생태계 육성에 총 2800억 달러를 투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반도체 칩과 과학법’과 전기자동차 배터리 부문의 보조금 정책이 포함된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입법했다. 한편 두 법안에는 공통으로 보조금 지급 조건에 중국을 비롯한 ‘우려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하는 규정이 포함되었다. 예를 들어 미국에 반도체 시설을 건립하여 보조금을 받으면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에 따라 10년간 중국 같은 우려 국가에 반도체 시설을 투자하는 데 제한을 받게 되며, 전기차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해외의 우려 국가에서 추출, 제조, 재활용된 광물이 배터리에 일정 비율 이하로만 들어가야 한다. 

대외적으로는 동맹국과의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정책으로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방안을 제시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미국과 체제와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협력국과의 다자간 협력이 대외정책의 핵심 과제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에 따라 바이든 행정부에서 구체적으로 가시화된 계획 중 하나가 바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라고 할 수 있다.

IPEF는 2021년 10월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처음 제안한 이후, 2022년 5월 23일 공식 출범하여 현재 미국을 비롯해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인도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7개국(브루나이·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싱가포르·태국·베트남)과 피지가 참여하고 있다. IPEF는 시장개방을 핵심으로 하는 기존의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나 자유무역협정(FTA) 방식의 경제통합은 아니면서도, 행정협정이라는 형태로 무역, 공급망, 인프라 및 청정에너지와 탈탄소화, 조세와 반부패를 망라하는 다양한 영역에서 일정하게 구속력 있는 합의와 약속을 맺는 경제협력체를 표방한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역시 신뢰할 수 있는 공급망 구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난해 IPEF가 공식 출범한 이후 올해 5월 27일 공급망 협정이 네 개 부문 중 가장 먼저 타결되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공급망 협정의 핵심 내용으로는 ▲ 공급망 위기 극복을 위한 정부 간 공조기구인 ‘위기대응네트워크’ 구축, ▲ 평상시 공급망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불필요한 조치를 자제하는 한편 공급선 다변화를 위한 투자 확대와 공동 연구개발 노력을 위한 ‘공급망 위원회’ 설치, ▲ 공급망 안정화에 필수적인 숙련 노동자 육성과 노동권 개선 노력을 위한 ‘노사정 자문기구’ 구성이 담겼다. 

바이든 행정부는 나머지 무역, 청정경제, 공정경제 부문의 협정도 마무리하여, 올해 11월로 예정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IPEF 최종 타결을 발표할 수 있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바이든 행정부는 2021년 12월 반권위주의, 부패 척결, 인권 증진을 의제로 하는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한편, 미국·인도·일본·호주 4개국의 안보협의체인 쿼드와 같은 다자협력의 틀을 활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중 경쟁은 양국의 무역분쟁을 넘어, 첨단기술, 공급망, 기반시설 투자와 같은 주제를 포함하는 지역 차원의 체제 경쟁적 성격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3) 쌍순환: 전략적 경쟁에 대한 중국의 대응

2018년부터 격화된 미국과의 무역갈등이 다양한 영역에서 체제 경쟁적 성격으로 심화하면서, 중국은 미국의 전략적 경쟁에 대응하는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그중에서 2020년 5월 시진핑 주석이 처음 제기한 이후 중국공산당 19기 5차 전체회의에서 14차 5개년 규획의 기본 개념으로 채택된 ‘쌍순환’(雙循環) 전략은 2013년 ‘일대일로’와 2015년 ‘중국제조2025’에 이은 시진핑 집권 2~3기 중국의 주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쌍순환 전략은 대내적으로 내수를 키우고 활성화해 국내경제(국내대순환)를 최대한 발전시키고, 대외적으로 수출과 개혁개방을 지속하며 세계경제와의 선순환(국내·국제 순환)을 상호 촉진한다는 새로운 발전전략이다. 즉, 미중 갈등의 심화와 장기화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이 거대한 내수시장을 활용하여 자체적으로 선순환할 수 있는 경제체제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국내대순환의 측면에서는 핵심 원천기술을 자주화하고, 산업구조 고도화를 통해 공급망을 강화하며, 소비와 투자를 촉진해 내수를 활성화할 것을 강조했다. 국내·국제 순환과 관련해서는 핵심 부품과 원자재의 안정적 공급을 추구하는 한편 대내외 무역 규범을 일체화할 것을 강조했다.

그런데 소비 촉진을 통한 내수 활성화를 위해서는 가계의 소비역량 확대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다른 국가에 비해 상당히 강한 중국 가계의 저축성향을 약화할 필요가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6년 중국의 총저축률은 세계 평균보다 약 20%p 높은 46%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중에서도 가계저축률이 절반 정도를 차지하며 세계 평균에 비해 높은 편이다. 이렇게 중국 가계의 저축성향이 강한 이유로는 사회안전망 부족과 큰 소득 격차가 지적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을 지속하는 가운데 사회보장제도를 정비하고 소득 불평등을 개선해야 하지만,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정치적 안정을 우선순위에 두고 관련한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고 있다. 2021년 제시된 ‘공동부유’ 전략 역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소득재분배를 강화하는 정책이라기보다는, 알리바바와 같은 민간 빅테크 플랫폼 기업을 불평등의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이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국유기업이 주도하는 첨단산업 육성에 보조를 맞추도록 하려는 구상에 가깝다.

결국 쌍순환의 내수 확대 노력은 가계 저축률 감소로 이어지지 못하고 다시 투자 확대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부동산 부채와 과잉투자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세계금융위기 이후처럼 대규모 기반시설과 부동산 건설투자가 중심이 되기보다는, 기술적 자립자강을 위한 첨단산업의 기술혁신과 기반시설 확충을 위한 투자가 중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첨단산업의 기술혁신과 관련해서 중국 정부는 2021년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기초연구비를 전년대비 10.6% 늘리고, 반도체 분야를 전략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대규모 기금인 ‘국가반도체산업투자기금’(国家集成电路产业投资基金, 빅펀드)을 조성했다. 14차 5개년 규획은 특히 반도체를 국가안보의 핵심 영역으로 규정하고, 그중에서도 반도체 설계(EDA), 소재, 첨단메모리와 차세대 전력 반도체(SiC, GaN)의 발전을 강조했다. 기반시설 확충과 관련해서는 2020년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7대 신형 기반시설에 대해 2025년까지 총 10조 위안 규모의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신형 기반시설은 디지털 전환과 신산업에 중심인데, 세부적으로 4개의 정보통신망(5G 기지국, 산업 인터넷, 데이터센터, 인공지능)과 2개의 에너지망(특고압 송전설비, 전기차 충전시설) 그리고 고속철도 교통망으로 구성된다. 

시진핑의 세 번째 집권을 확정한 자리이기도 했던 2022년 10월 중국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에서도, 중국공산당은 쌍순환 전략을 재차 강조한 가운데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현대화를 위한 전략 중 하나로 과학기술과 교육을 강조하는 ‘과교흥국’ 전략을 별도의 장으로 내세웠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당 중앙이 과학기술 작업에 대해 통일적으로 영도할 수 있도록 신형거국체제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힌 점이다. 거국체제란 정부가 국가의 자원을 모아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체제를 의미하는데, 현재 중국이 직면한 새로운 도전, 즉 ‘조임목’(choke point)에 해당하는 관건 핵심기술을 확보하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는 것이다. 이어 2023년 3월 양회(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와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도 중국 정부는 ‘발전과 안보의 균형’을 강조하며 미국의 견제에 대응하기 위한 과학기술 자립, 공급망 안정, 신형거국체제 구축 등 경제안보 전략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내세웠다.
 

4) 소결

종합해보면,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국 전략은 가치와 체제를 둘러싼 경쟁이라는 측면을 강조한다는 점과 동맹국과의 공조를 바탕으로 중국에 대응할 것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전략과 차이를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는 국내적으로 산업역량 강화를 도모하는 한편 국제적으로 미국의 체제와 가치에 동의하는 동맹국과 협력국을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고 무역·노동·환경·디지털 분야에서 다자적인 규칙 기반의 질서를 재구축하려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양국 간의 무역분쟁을 넘어 국제적 표준을 둘러싼 경쟁이라는 성격이 강화되고 있다. 다만 이것이 중국에 대한 관여 정책의 완전한 폐기나 중국 경제와의 탈동조화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관건은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이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될 것이다.

중국의 쌍순환 전략은 미국의 전략적 경쟁에 맞서 대내적으로 첨단산업과 전략산업 분야의 자립자강을 추구하고 이에 적합한 기반시설을 확충하면서 자체적인 공급안전망을 확보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긴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중국의 전략은 대외적으로 국내대순환과 국제순환의 상호 촉진이라는 측면에서 주변국과의 협력을 확대하며 중국의 제도와 규정을 국제규범에 맞추어가는 방향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시진핑과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계속해서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의 현대화와 다른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현대화를 강조하고 국가자본주의에 기초한 내적 체제 공고화에 힘쓰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중국의 전략이 규칙에 기반을 둔 ‘제2의 개혁개방’으로 이어지기보다는 국내공급망의 자급화에 집중하며 이른바 ‘홍색공급망’의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반도체로 대표되는 첨단기술 영역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3. 전략적 경쟁의 최근 쟁점: ‘반도체 전쟁’

 

1) 미국의 대중 반도체 산업 제재

첨단반도체 기술을 둘러싼 이른바 ‘반도체 전쟁’은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에서 경제와 안보를 연계하는 핵심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반도체 산업이 가치사슬별로 고도로 분업화되어 글로벌 공급사슬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산업은 ‘개발 초기단계인 칩리스(Chipless)-설계전문(Fabless)-수탁전문(Foundry)-패키징·검사(ATP)-납품(Delivery)’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주로 부가가치가 높은 설계와 장비산업에 강한 미국과 일본·유럽, 제조공정기술이 강한 한국과 대만, 부가가치가 낮고 노동집약적인 공정의 비교우위가 높은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국제분업화가 이루어져 있어, 오늘날 하나의 반도체 칩을 만드는 데는 약 4개 국가의 4만km에 걸친 생산공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반도체 공급망 병목 현상이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각국은 공급망 회복력을 제고하기 위한 정책 대응에 주목하게 되었다. 

또 하나 좀 더 중요한 이유는 반도체가 거의 모든 현대 산업과 군사 체계에 필요한 대표적인 이중용도 품목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이 미국과 상이한 가치와 체제를 추구한다는 사실은 해당 기술을 어떤 목적을 위해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체제경쟁이라는 성격을 더한다. 이에 따라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기술은 경제·안보 복합체(nexus)로 묘사되기도 한다. 앞서 살펴본 대로 중국이 반도체 국산화율을 제고하고 글로벌 공급사슬에서 상위로 진입하며 강군몽을 실현하기 위한 계획으로 ‘중국제조2025’을 제시한 이후, 이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우려가 커지면서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 위험을 줄이기 위한 일련의 경제안보 정책이 다각도로 제출되었다.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말기 중국 ZTE의 통신장비 수입을 규제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트럼프 행정부와 바이든 행정부를 거치며 중국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수출통제와 투자제한 조치를 강화해왔다. 미국에서 중국산 통신장비에 대한 우려는 미중 관계가 악화되기 이전부터 비교적 일찍 제기되었다. 미 의회는 2012년 중국산 통신장비의 안보 위협을 지적하면서 정부 조달에서 중국산 장비를 배제할 것을 권고하는 보고서를 발표했고, 2018년 8월에는 초당적인 지지 하에 정부 기관의 중국산 통신장비 조달을 금지하는 국방수권법을 제정했다. 나아가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군민융합을 명시적으로 비판하며 2019년 화웨이를 수출통제리스트에 올렸고, 이어 2020년에는 두 차례에 걸친 제재를 통해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수출을 사실상 전면 금지했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산업 제재는 점차 첨단반도체 기술을 표적으로 하여 ‘마당은 좁게, 담장은 높게’ 하는 방식으로 강화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SMIC와 D램 제조 기업인 푸젠진화를 수출통제리스트에 올리고 첨단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장비의 수출을 규제했다. 또한 2018년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기업 ASML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하고 있는 최첨단 극자외선 노광장비(EUV)를 중국 기업에 판매할 수 있도록 네덜란드 정부가 허가하자, 트럼프 행정부는 네덜란드 정부와 협상을 벌였고 이후 네덜란드 정부가 ASML의 대중 수출 면허를 갱신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바이든 행정부 역시 2021년 4월 출범 이후 발표한 첫 수출통제리스트에 중국의 슈퍼컴퓨터 회사 7개를 포함한 데 이어, 2022년 10월에는 중국의 반도체 기업에 첨단반도체 장비 판매를 금지하고 AI와 슈퍼컴퓨터에 사용되는 반도체에 대한 수출을 제한하는 새로운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이 조치는 먼저 미국 기업이 특정 수준 이상 반도체를 생산하는 중국 기업에 첨단반도체 제조 장비를 판매할 경우 별도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특히 중국 내 생산시설을 중국 기업이 소유한 경우 ‘거부 추정 원칙’을 적용해 수출이 사실상 금지되었다. 

올해 초에는 일본과 네덜란드가 이 수출통제 조치에 동참하기로 합의했다. 세부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본은 니콘과 도쿄 일렉트론이 7월부터 23종의 반도체 제조 장비를 중국으로 수출하는 것을 제한하기로 했고, 네덜란드는 ASML이 생산하는 심자외선(DUV) 노광장비의 중국 수출 승인 요구조건에 대한 새로운 규정을 발표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6월 말에 밝혔다. 중국의 반도체 장비 수입에서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37.2%에 달하는 한편 노광장비가 중국 반도체 산업에서 가장 취약한 분야라는 점에서, 일본과 네덜란드의 수출통제 조치는 중국의 첨단반도체 자립화 시도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고성능 AI와 슈퍼컴퓨터용 반도체 칩에 대한 수출 제한 조치에는 화웨이에 부과되었던 제재와 마찬가지로 ‘해외직접생산규칙’이 적용되어, 미국의 기술을 사용했을 경우 제3국 기업이 만든 칩 역시 수출을 금지하도록 했다. 미 상무부는 중국이 첨단반도체, AI, 슈퍼컴퓨터 기술을 대량살상무기와 첨단무기 시스템을 생산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데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수출통제 조치를 시행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미국이 반도체와 관련해 개별 기업이 아닌 특정 기술을 기준으로 중국을 겨냥해 고강도의 수출통제 조치를 부과한 것은 이 10월 수출통제 조치가 처음이다. CSIS는 이 조치가 두 가지 측면에서 이전의 대중국 무역·기술 정책과 완전히 다르다고 분석했다. 첫째, 새로운 정책은 최종 사용자와 관련이 있는지와 관계없이 중국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둘째, 이전의 정책이 중국의 기술 진보를 허용하되 속도를 제한하는 것이었다면, 새로운 정책은 중국이 특정 수준 이상의 최첨단 기술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제한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또한 중국의 첨단반도체 산업에 대한 투자 제한 조치도 강화했다. 2021년 6월에는 중국의 군 관련 반도체 기업에 대해 직·간접 주식투자 금지를 발표했고, 올해 8월에는 ‘우려 국가의 특정 국가안보 기술·제품에 대한 미국 투자 대응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내년부터 시행될 것으로 보이는 이 조치에 따르면, 사모펀드와 벤처캐피털 등 미국 자본이 우려 대상 국가로 지정된 중국·홍콩·마카오의 첨단반도체, 양자 정보 기술, AI 시스템 3개 분야에 투자할 때 재무부의 허가를 받도록 해 사실상 투자가 금지된다. 
 
 
 

2) 중국의 반도체 자립화 전략

중국의 반도체 시장 규모는 2010년 570억 달러에서 2020년 1,434억 달러로 빠르게 성장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시장으로 성장한 중국은 대략 글로벌 반도체 소비의 60%, 최종 수요의 33%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글로벌 반도체 매출 점유율의 5%만을 차지하고 있으며, 글로벌 공급망 측면에서 조립·테스트·패키징(ATP) 부문을 중심으로 제한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020년 중국 내 반도체 생산은 227억 달러(15.9%)에 그치며, 그중에서 중국 기업의 생산은 83억 달러(5.8%)에 불과하다. 또한 반도체 설계와 제조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소재, 장비 등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은 2013년부터 반도체 수입액이 원유 수입액을 넘어서며 수입액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반도체 수지 적자도 2020년 2337억 달러에 달한다. 중국 정부는 반도체 산업의 취약점인 높은 수입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국내 반도체 역량 강화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14년 ‘국가 집적회로 산업 발전 추진 강요’에서 처음으로 반도체를 전략산업으로 규정하고, 2015년 ‘중국제조2025’ 계획에서 2030년까지 반도체 국산화율을 75%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2014년 200억 달러 규모의 1기 국가반도체산업투자기금(빅펀드)을 설립했다. 빅펀드는 지방정부, 금융기관, 민간기업과 국유기업이 참여하는 한편, 기존의 보조금과 결합해 대규모 자금이 투입될 방향을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 1기 빅펀드는 반도체 제조 능력 확대에 중점을 두고 23개 기업의 70개 프로젝트에 투자되었다. 분야별로 보면 제조 67%, 설계 17%, 후공정 10%, 장비 및 소재가 6%를 차지했다. 

이후 군민융합을 내세운 ‘중국제조2025’에 대한 각국의 우려가 커지는 한편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이 촉발되어 중국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제재가 본격화되면서, 중국의 반도체 국산화 전략은 한층 더 국가안보적 성격을 강화했다. 2019년 설립된 2기 빅펀드는 자금 규모가 훨씬 더 커졌을 뿐만 아니라, 1기에서는 없었던 통신, AI 반도체, 차세대 전력 반도체 분야에 대한 투자를 강조했다. 나아가 중국은 해당 분야 혁신기업에 대한 자금 조달을 지원하고 미국 자본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2019년 상하이증권거래소에 중국식 나스닥이라고 할 수 있는 ‘커촹반’(科創板)을 개설했다. 커창봔은 중국의 주요 기술기업이 홍콩이나 미국 증시에 상장하는 관행을 끊고자 시진핑 주석의 지시로 추진된 정보기술 주식 전문 거래소다. 커촹반은 상장 절차와 규정을 간소화한 주식발행 등록제로 운영되어 반도체 기업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중요 통로로 성장했다.

이러한 흐름은 앞서 살펴본 대로 2021년 14차 5개년 규획에서 종합되었다. 14차 5개년 규획은 반도체 분야를 국가안보의 핵심 분야이자 전략육성 분야 중 하나로 선정하고, 중국의 약점이 되는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 고순도 소재, 주요 제조장비와 기술, 첨단메모리 기술, 차세대 반도체를 개발할 것을 명시했다. 또한 쌍순환 전략의 일환으로 자국의 거대한 반도체 소비시장을 활용해 독자적인 반도체 산업생태계와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방향 역시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점은 지난 7월 중국 정부가 갈륨과 게르마늄 관련 품목에 대해 상무부 허가 없이 수출을 금지하는 방안을 담은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한 것이다. 이 조치는 일차적으로는 최근 확대된 미국의 반도체 수출통제에 대한 보복 조치로 볼 수 있지만, 동시에 중국의 첨단산업 공급망 내재화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갈륨은 최근 중국이 육성하는 차세대 반도체 중 하나인 질화갈륨(GaN) 반도체의 핵심 재료로, 전 세계 매장량 가운데 중국이 80~85%를 점하고 있다. 차세대 반도체 분야는 기존의 실리콘 기반 반도체에 비해 고급 노광장비가 필요하지 않으며, 5G와 전기차에 주로 사용되기 때문에 중국 내수시장에서 향후 많은 수요가 존재할 것이므로 중국 정부는 관련 공급망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종합해 보면, 중국은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미국의 제재가 집중되고 있는 첨단반도체 영역에서 장기적인 국가 전략으로 반도체 설계, 제조 장비, 소재에 대한 자체적인 기술 역량을 개발하려 하고 있다. 또한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중국이 경쟁력을 갖춘 중저위 분야를 발판 삼아 독자적인 반도체 공급망과 산업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방향을 명확히 하고 있다. 
 

3) 소결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이른바 ‘반도체 전쟁’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상호의존성을 무기로 기술·규범·제도를 둘러싼 경쟁이 벌어지는 극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일차적으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드러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핵심기술을 독점적으로 보유한 기업이 소재해 있는 미국과 그 우방국의 정책이다. 미국은 중국의 첨단반도체 산업을 대상으로 ‘좁고 높은’ 담장을 세우면서 단기적으로 일본과 네덜란드와 공조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명확한 규범에 기반하는 다자간 협력을 강화하고자 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재편에는 다양한 비용이 따르지만, 경제적 중요성뿐만 아니라 국가 안보적 중요성이 반도체 기술과 공급망에서 강조되고 있어서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중국의 반도체 굴기 전략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전략에 비대칭적인 조건에서 수립되었고 점차 제재가 강화됨에 따라 수세적인 대응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대규모 투자와 지원을 통해 일부 소재와 장비 그리고 범용 반도체를 중심으로 자급률을 높이고는 있지만, 첨단반도체를 포함하는 자체적인 산업생태계와 공급망을 온전히 구축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21년 칭화유니그룹의 파산에서 볼 수 있듯, 국가 주도 투자에 의존하며 수익성 하락과 부채위기가 나타나는 중국 경제의 한계가 반도체 굴기에서도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장기적으로 자본시장과 기술 규범의 분리가 강화될수록 중국의 반도체 생태계는 혁신의 한계가 두드러질 것이며, 결과적으로 ‘적당히 작동하는 반도체와 인공지능에 기반하여 글로벌 서비스 플랫폼과 분리된 채 작동하는 권위주의적 체계’에 머무를 수 있다는 부정적 전망 역시 제기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반도체 전쟁’이 기술과 군사안보 경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가치와 체제를 지향하는 기술규범과 제도를 형성할 것인가를 둘러싼 체제경쟁의 성격을 포함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를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기술이 경제, 군사, 사회 전반이 작동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되면서, 이를 조직하는 원리와 제도 역시 중요해진 것이다. 중국의 인터넷 관리·통제 제도인 ‘만리방화벽’과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감시 시스템이 권위주의적 디지털 기술 모델로 확산하면서 우려와 비판이 증대하는 가운데, 그러한 모델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첨단반도체 기술에 중국이 접근하는 것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제사회에서 커지고 있다.
 
 

4. 결론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모델에 대한 회의가 커지는 가운데, 중국은 국가자본주의를 강화하는 한편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이를 중국몽과 결합해 독자적인 중국식 모델로 부각했다. 이러한 중국의 변화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자유주의 국가들은 지식재산권 절취를 포함하는 불공정 무역관행과 비시장적 행위를 우려하면서 군민융합 발전에 따른 안보상의 위협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특히 미중 무역불균형을 강조하며, 2018년부터 무역분쟁이라는 형태로 양국 간의 대결을 폭발시켰다. 이후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며 양국의 대결은 무역분쟁을 넘어 정치·경제·보건의료를 아우르는 전략적 경쟁의 성격으로 심화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를 자유주의·민주정과 권위주의·독재정의 대결로 특징짓고,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내세우며 동맹국·협력국과의 다자적인 규칙 기반 질서 재정립과 공급망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은 시진핑 주석과 중국공산당을 중심으로 권력을 더욱 집중하는 한편 경제에서도 국가와 당의 역할을 심화하고 쌍순환 전략으로 대표되는 중국 특색의 현대화와 자립자강의 길을 내세우고 있다.

이렇게 본격화된 미중 전략적 경쟁의 성격이 무엇인가에 대해 그간 많은 분석이 제기되어왔다. 과거 미국과 소련의 냉전처럼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과 중국을 비롯한 반서방 진영이 뚜렷하게 분리되는 ‘신냉전’으로 보는 견해나, 도전자 국가로 부상한 중국과 기존 패권 국가인 미국 간의 헤게모니 경쟁으로 보는 견해가 대표적이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은 국제적 표준을 둘러싸고 어떤 자본주의이며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가를 둘러싼 경쟁이라는 점에서 과거 냉전 시기와 마찬가지로 체제 경쟁이라는 성격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전략적 경쟁은 세계 경제가 긴밀히 상호 연결된 가운데, 특히 중국이 세계 경제에 깊이 통합된 가운데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적·인적 교류가 막힌 봉쇄정책을 기본으로 했던 과거의 냉전과는 다르다. 최근 경제와 안보 결합의 최전선에 놓인 이른바 ‘반도체 전쟁’에서 첨단반도체 산업의 일부 영역을 중심으로 중국에 대한 미국과 동맹국의 수출통제와 공급망 분리 조치가 비교적 두드러지고 있지만, 이 역시 중국 반도체 산업 전반에 대한 탈동조화(decoupling)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주요 7개국(G7)은 지난 5월 정상회담에서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의 성격을 탈동조화가 아닌 ‘위험억제’(de-risking)로 명확히 규정했다. 즉 “탈동조화가 아닌 위험억제와 다변화에 기초하여 경제 복원력과 경제안보를 위한 구체적 조치를 조율”하기로 합의하고 공급망 분야에서 과도한 중국 의존을 줄여나가는 동시에, “중국과 솔직하게 관여하고 우려를 직접 표명하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가운데 중국과 건설적이고 지속가능한 관계를 구축할 준비가 되어 있다”라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중국의 국가자본주의와 권위주의가 강화되면서 중국이 미국의 경제·가치·안보에 위협요인이 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이에 대비하는 한편, 트럼프 행정부 시기 침식되었던 자유주의적인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복원하고 재편하려 하고 있다. 이 점에서 전략적 경쟁은 분명히 관여정책의 완전한 폐기나 봉쇄정책으로의 복귀를 지향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관여정책이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을 새롭게 창출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한편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은 진정한 의미에서 헤게모니 경쟁이라고 보기 어렵다. 헤게모니는 단순히 힘에 의한 패권이 아니라 제도적, 문화적 지도력을 바탕으로 동의를 끌어냄으로써 유지되는 지배 질서를 의미한다. 세계금융위기와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며 미국 헤게모니가 쇠퇴하는 가운데, 중국 특색의 현대화와 신형대국관계를 내세우는 중국은 그러한 의미의 헤게모니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중국은 중국몽의 실현을 추구하면서 ‘중국제조2025’ 계획에서 드러나듯 다양한 비시장적 수단을 활용해 첨단기술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부국과 강병을 연계하고 있고, 일대일로 계획에서 드러나듯 대외지원을 필요로 하는 주변국을 목표로 해외에서 기반시설과 공급망을 확충하려 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중국은 국제질서에서 규칙 기반의 다자주의적 질서를 존중하기보다는,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양자적 관계를 확대하며 자국의 패권적 지도력을 강화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한편, 어떤 국가가 새롭게 헤게모니 국가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대안적이고 안정적인 축적체계를 갖춰야 한다. 그러나 중국의 국가자본주의 모델이 대안적 체제가 될 수 있는지 역시 의심스럽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부상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동시에 중국 경제가 중진국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도 제시되었다. 이는 중국 경제가 급속히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인 대규모 저임금 노동력 투입과 자본 투입에 의한 성장이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었다. 이에 중국은 민간부문에 대한 당의 통제력을 강화하고 국유부문이 장악하고 있는 핵심 경제부문에 자원을 집중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 결과 대규모 투자를 앞세운 일부 국유기업이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었지만, GDP의 약 25%를 차지하는 부동산 부문의 거대한 부채 문제와 국유기업의 낮은 생산성 문제가 잠재적 위험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잠재적 위험은 최근 부동산 부문의 부채위기와 민간 투자의 감소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말 중국 정부가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포기하면서 중국 경제가 반등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지만, 현재 시점에서 볼 때 전반적인 성장세가 둔화하는 가운데 부동산 부문의 부채위기가 가시화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대유행 시기를 거치며 중국의 저축률이 다시 증가하는 가운데 민간 소비와 투자가 상당히 저조하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중국은 민간 부문의 활력이 떨어질수록 정부의 재정 투입과 국유부문의 투자에 의존할 가능성이 큰데, 이는 수익성 악화와 부채위기 심화로 대표되는 중국 경제의 모순을 더욱 응축하는 방향이 될 것이다.

201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국가자본주의와 권위주의를 강화해 온 중국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정치적·군사적 위협을 증대할 뿐만 아니라, 장기 저성장에 빠진 세계경제의 불안정성을 심화하고 위기관리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무역분쟁과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안정적이고 개방된 시장과 같은 세계적 공공재(public goods)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다자적 국제질서를 훼손하고 민족주의에 기반한 보호주의를 강화하는 공공악(public bads)을 제공하면서 ‘G 마이너스 2’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남겼다. 이후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 다자적 동맹질서를 복원해 중국에 공동으로 대응하려는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이 한층 심화하는 가운데, 중국은 계속해서 ‘제2의 개혁개방’보다는 당 지도부로 권력을 집중하며 중국 특색의 현대화와 자립자강 노선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세계적 위기에 대한 공조와 협력이 들어설 수 있는 자리를 좁히면서, 2020년대의 세계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하나의 ‘초거대 위협’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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