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전랑외교와 한국의 대응
1. 서론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일각에선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데 베팅하고 있는데,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며 위협적인 발언을 했다. 지난 6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중국 대사관저로 초청해 만찬 회동하는 자리에서다.
발언은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다. 한국이 일본·미국과 차례로 정상회담을 가지며 밀착하는 것에 대해 중국이 견제 입장을 피력할 수는 있으나, 대사의 발언은 외교적 관례를 무시한 내정간섭에 가까울 정도로 도발적이라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싱하이밍 대사가 공개석상에서 발언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 이재명 대표도 책임을 면할 수 없었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를 한국과 중국이 공동대응하자는 취지의 만남이었으나 이용당해서다.
싱하이밍 대사의 발언 논란은 한국이 2016년 중국으로부터 사드보복을 당했음에도 국제정세 인식과 외교적 대응에서 진전이 없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이다. 중국대사의 거친 언사는 돌발행동이 아니라 ‘전랑외교’라는 중국식 힘의 외교의 일환이다. 그것이 등장한 배경에는 시진핑 정부가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와 권위주의 강화로 누적된 사회적 불만을 애국주의를 통해 잠재우려는 통치전략이 있다. 중국이 강대국으로서 힘과 위상을 과시해 애국주의에 부응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전랑외교는 상대국의 강한 반발을 유발하면서 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한국은 일찍이 사드보복으로 그 위험성을 몸소 체험한 바 있다. 따라서 한국은 중국의 국제전략에 대한 분석을 통해 대비책을 마련해야 했다. 특히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높으면서도 미국과 동맹인 국가로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 지속 가능한지, 그렇지 않다면 어떤 외교노선이 필요한지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사드보복 이후에도 균형 외교노선을 고수했다. 이는 미·중 갈등이 전략적 경쟁으로 심화하는 국제정세를 무시하고 북한과의 관계회복에만 몰두해서다. 이후 정권이 교체되면서 외교정책의 전환이 있었으나, 여전히 국제사회 변화와 대응에 대한 국내의 사회적 합의가 부재하다. 국제정세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조건일수록 원칙 있고 일관된 대외정책이 중요하다. 따라서 국제정세 인식과 대응 방향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 시급히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 중국의 전랑외교가 등장한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중국의 공격적 대외정책에 대한 다른 국가의 대응에서 시사점을 찾는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대표적 안미경중 국가인 호주의 대중국 대응 사례를 살펴보고 한국의 사드보복 대응과 비교하여 앞으로의 과제를 도출해 보겠다.
2. 전랑외교의 등장과 그 배경
① 중국전통에서 모색하는 서구문명의 대안
중국의 공격적 외교 행보는 강대국 외교를 본격화하면서 촉발되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도광양회’(韜光養晦)로 대변되는 외교를 펼쳐왔다. ‘빛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는 의미처럼 국력을 과시하기보다, 경제성장에 주력하면서 그것에 적합한 국제환경을 조성하려는 신중한 외교 노선을 견지했다. 그러나 시진핑 정부는 ‘분발유위’(奮發有爲, 떨쳐 일어나 해야 할 일을 하겠다)를 선언했다. 중국이 강대국의 반열에 올라섰기 때문에 국제적 영향력과 위상을 확보하는 외교에 나서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쇠퇴가 맞물리면서 나타났다. 개혁개방 이후 고속성장을 달성한 중국은 2000년대 들어 앞으로도 성장추세를 지속한다면 미국을 앞지를 날이 머지않았다는 전망을 제출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미국이 2008년 금융위기로 경제적 타격을 받아 크게 휘청이자, 중국은 이를 미국이 세계 1위 자리를 언제까지나 지키지 못할 수 있다는 징후로 받아들였다. 즉,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가 퇴조하는 반면 중국은 성장하면서 세력 구도가 달라지고 있다는 인식이 중국에서 확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기를 전후로 중국이 강대국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담론이 본격적으로 제기되면서 강대국 외교로 이어졌다.
중국공산당은 이러한 시대 인식을 2017년 19차 전국대표자대회에서 ‘신시대 중국특색사회주의’로 규정했다. 이는 중화민족이 근대에 들어서 ‘일어나기’ ‘부유해지기’를 거쳐서 ‘강해지기’로 도약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강해지기’란 단순히 국력의 신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강대국으로서 국제사회에 새로운 규범과 질서를 제시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도 포함한다. 경제적으로는 중국식 성장모델을 전파하고,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사회주의와 중화문명을 결합하여 서구의 자유민주주의와 구분되는 이념을 선보이며, 서구 중심주의로 인해 개도국에 불공평한 국제질서를 개혁하려는 구상이다. 중국은 이러한 의지를 표현한 외교담론으로 ‘신형국제 관계’ ‘인류운명 공동체’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정책으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일대일로를 추진하고 있다.
강대국으로서 위상과 역할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중국식 세계질서를 구상하기 위한 담론도 활발히 논의되었다. 서구와 다른 대안을 제시하려면 중국의 역사적 경험과 고유한 사유방식에서 중국만의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어서다. 서구 열강의 침략으로 서구식 근대화를 중국의 방식으로 수용했던 과거와 달리, 강대국으로 거듭난 중국이 서구 문명의 대안을 제시하려면 중국의 역사와 전통을 자산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통적 중국의 세계질서와 중국인의 세계의식을 표상하는 ‘천하’(天下)담론을 새로운 보편을 구상하는 사상자원으로 호출한다. ‘천하’질서란 역사적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이 경제력과 패권을 기반으로 형성한 정치질서이자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문명 질서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을 세계질서의 새로운 원리로 계승하고자 한다.
‘천하’담론의 대표적 인물인 자오팅양(赵汀阳)은 주(周)대 봉건체제를 이상적 질서로 해석한다. 주나라의 봉건체제를 어떤 강대국의 우월한 힘을 바탕으로 운영된 것이 아니라, 규모가 작았던 주나라가 여러 국가와 연합해서 상나라 왕조에 대항했고 무력이 아닌 문화를 매개로 인종·문화 영역에서 다른 부족을 성공적으로 이끈 체제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강력한 군사력이 없이도 상호 균형을 이루고, 각국의 충분한 이익을 보장하는 호혜적 관계인 ‘천하’체제를 현재적으로 재구성하면 오늘날 국제사회가 직면한 곤란을 극복할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유교적 이상주의를 토대로 ‘천하’를 재해석하는 관점도 있다. 왕도(王道)사상으로 새로운 세계질서를 구축하려는 간춘쑹(干春松)의 천하담론이 그러한 시도다. 오늘날 이익 중심의 세계질서는 충돌이 불가피해 국제평화를 달성할 수 없다며 왕도정치를 천하질서의 사상적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왕도정치란 각국의 이익을 승화시켜 인류의식 형성을 통해 공동이익을 추구하고, 제도와 형벌이 아닌 인정(仁政)으로 통치하여 정치질서의 토대를 힘이 아닌 도덕에 세우는 것이다.
이처럼 최근 중국 연구자가 재조명하는 ‘천하’질서는 패권과 강압이 아니라 가치와 도덕의 공유를 국제질서의 근간으로 삼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즉, 천하질서를 역사적으로 중국이 공공영역의 안정을 제공하고 주변국의 발전을 보장하는 질서였다고 해석하면서 오늘날 국제질서의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주목한다. 또한, 패권을 가진 부강하기만 한 나라가 아니라 보편성을 겸비한 문화국가를 상상한다. 그러나 이러한 담론에 대해서 중국 중심의 역사를 이상화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중화세계질서란 중국이 세계의 중심임을 자처하면서 중화(中華)와 이적(夷狄)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위계적 체계였으므로,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에 호혜적이었다고 평가하긴 어렵다.
그리고 설사 중국의 역사에서 긍정적 요소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21세기에 적합성을 갖출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중화세계질서는 유교적 가치와 이념에 기초했으며, 문명화된 민족과 낙후된 오랑캐를 구분하는 화이론(華夷論)에 입각해 중국 중심의 위계질서를 정당화했다. 이에 반해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는 모든 국가와 개인이 평등하고 대등한 자격으로 참여한다는 가정하에 민주주의, 인권, 그리고 시장경제를 주요한 가치로 표방하고 있다.
중국은 중화세계질서가 주권국가로 구성된 국제질서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화이론적 조공체계를 부활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그렇다면 어떤 이념을 지향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확실한 것은 자유주의를 넘어설 대안이 전통의 소환이나 서구적 가치의 한계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구축될 수 없다는 점이다.
② 중국식 대안인가, 질서파괴인가
‘천하’(天下)담론에서 확인되는 점은 중국이 소프트파워를 발휘하기 위해 주력한다는 사실이다. 군사력이나 힘으로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매력을 통해 다른 국가의 자발적 동의를 끌어내겠다는 것으로, 중국문화의 보편성을 인정받아 그것을 토대로 국제관계 역시 새롭게 재구성하겠다는 취지다. 미국이 경제적 성장을 바탕으로 자유주의를 세계적 이념으로 만든 것처럼 중국도 새로운 지향을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전통을 계승해 현대화할 가치와 이념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히면서, 그것을 다른 국가로부터 대안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있다.
담론 차원만이 아니라 중국 정부도 국제적으로 새로운 규범과 질서를 창출하고자 적극적으로 나섰다. 중국은 서구가 주도하는 현재 국제질서가 신흥시장 국가와 개도국에 불공정하다고 진단하며, 강대국으로서 글로벌거버넌스 체제개혁과 건설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특히 신흥시장 국가와 개도국의 대표성과 발언권이 취약하다는 문제의식 아래,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경제 금융조직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중국은 일대일로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을 설립했다. 중국이 일대일로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경제협력체를 구성하려는 것은 규칙제정자로서 혹은 국제질서의 개혁자로서 글로벌거버넌스에 참여하려는 대표적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의 바람과 반대로 소프트파워가 형성되기보다 국제여론이 악화하고 있다. 중국이 대안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어서다. 중국은 중국의 전통사상에서 새로운 보편가치를 모색하면서 자유주의를 비판하지만, 권위주의로 퇴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중국은 서구식 자유나 인권의 잣대로 중국을 평가할 수는 없다며, ‘중국 특색의 민주주의’를 강조한다. 하지만 중국식 민주주의는 권위주의로 의심받고 있다. 중국이 집단지도체제 관행을 깨고 시진핑 1인 지배를 강화했으며,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자국민에 대한 감시, 억압, 조작, 검열, 정치적 통제를 확대하고 있어서다. 게다가 중국의 디지털 기반 권위주의적 통제모델은 중동,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권위주의적인 정권에게까지 확산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중국은 비서구 국가가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다양한 중국식 가치와 규범이 새로운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과연 그렇게 볼 수 있는가. 오히려 권위주의의 확산을 주도하는 중국이 세계적 범위에서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고 비판받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이 지향하는 국제관계도 우려를 낳고 있다.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는 식민지배에 기초한 제국형식을 띤 영국 주도의 국제질서와 달리, 약소국에게 발언권이 부여된 다자적 규칙과 제도의 느슨한 체계 속에서 작동한다. 그리고 미국은 자유무역과 해양자유의 공공재를 제공함으로써 패권적인 지위를 확립했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 중심의 질서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규칙과 규범을 파괴하고 있다.
단적으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 중국이 보인 모습은 ‘천하’담론에서 내세우던 각국의 이익을 보장하는 호혜적 국제질서와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규칙을 무시하고 힘으로 자신의 이해를 관철하려는 모습이다.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으로 2016년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제소되었고, 상설중재재판소는 중국의 주장이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중국은 즉각적으로 반발했으며 상설중재재판소는 관할권이 없으므로 판결도 무효이고, 구속력이 없는 판결이므로 무시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은 남중국해 내 군사기지를 더욱 확장해 나가는 한편, 항공모함 ‘산둥’을 남중국해에 배치했다. 이러한 중국의 태도는 주변국으로부터 국제규범과 질서를 훼손하는 행동이라고 비판받았다.
글로벌거버넌스 개혁의 대표사업인 일대일로에서도 식민지 제국주의적 행태가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의 융자가 부채의 악순환을 불러일으켜 ‘약탈적 대출’로 바뀔 가능성이 커서다. 일대일로에 참여한 국가의 국가부채는 상환 불가능한 수준인 경우가 많으며, 부채상환을 위해 영토와 시설물, 그리고 천연자원에 대한 이권을 중국에 넘기고 있는데, 이는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수탈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개발방식이 중국으로부터 원자재와 설비, 심지어 노동력까지 동원하고 있어 참여국의 경제발전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일대일로는 중국과 참여국의 호혜적인 경제성장이 아니라 참여국에 부채의 굴레를 씌우고, 그로 인해 중국에 대한 경제적 정치적 의존을 초래하고 있다고 비판받고 있다. 신흥국을 개발시켜 새로운 발전양식을 마련해 인류운명공동체를 구성하겠다는 일대일로의 포부가 무색해지는 평가다.
② 애국주의와 전랑외교
중국의 부상이 다른 국가에 위협이 아니라 기회라는 점을 설득하려면, 중국이 추구하는 가치가 왜 권위주의로 의심받는지, 왜 패권적 질서를 지향한다고 비판받는지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 강압적 태도를 유지한다면 중국을 위협으로 느끼는 국가가 늘어나 반중연대 확산을 초래하게 된다. 특히 둔화하는 중국경제가 돌파구를 마련하려면 기술혁신이 관건인데, 반중연대의 확산은 선진국의 견제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중국으로의 기술이전을 차단하므로 치명적이다. 따라서 중국으로서도 경제에 유리한 조건을 형성하기 위해 국제적 갈등을 피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중국은 초강대국이자 대안적 국제질서 제안자로서 인정받으려는 의욕이 실력을 앞서면서, 소프트파워를 발휘하기보다 힘으로 밀어붙이려 해 반중국 정서가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스스로 설정한 목표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도 중국이 국제적 위상과 영향력 증대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것이 체제 정당성의 중요한 근거이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은 개혁개방 이후 고속 경제성장을 통치기반으로 삼았다. 그러나 중국경제가 둔화하고 최근에는 부동산 거품과 부채위기로 침체 가능성까지 점쳐지면서 경제성장의 대체물이 필요해졌다. 그것이 바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다. 애국주의적 정서를 이용해 정치적 불만을 관리하려는 의도다. 그리고 동시에 시진핑 정부는 서방의 견제에 맞서 민족적 과업을 달성하려면 중앙집권적 권력이 필요하다며 권위주의를 정당화했다. 애국주의에 부응하는 것을 체제 정당성의 기반으로 삼게 되면서 국제적으로 중국의 위상을 높이고 과시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중국의 애국주의는 개혁개방 이후 사회주의 이념의 영향력이 약화하고,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가 붕괴하는 정치변동 속에서 사회통합 이데올로기로 기능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1990년대부터 중국공산당이 대대적으로 실시한 애국주의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가 여론의 상당 부분을 좌우하게 되었고, 중국 정부도 애국주의를 이념적 공백을 보완하는 수준이 아니라 중국 체제가 월등하므로 강대국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인식을 통해 강화하고 있어서다. 그 결과 애국주의 정서가 더욱 뜨거워지고 광범위해지면서, 대외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되었다. 실제로 2008년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과정에서 티베트 독립을 지지하는 시위가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자 성난 여론이 결집하여 중국 정부가 강경한 노선을 취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중국의 힘을 과시하길 요구하는 애국주의적 정서가 유연한 외교를 제약할 정도가 되었다.
전랑외교는 중국 외교가 강대국으로서 국제적 위상을 확인하는 수단이 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랑외교란 중국의 애국주의 영화 “전랑”(Wolf Warrior)에서 따온 표현으로 중국의 공격적인 외교행태를 칭한다. 중국 외교가 영화 포스터에 적힌 ‘중국을 건드리면 비록 멀리 있어도 반드시 징벌한다’는 문구처럼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국을 응징하는 공격적 행태와 맞닿아 있어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전랑외교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계기는 코로나19 팬데믹이다. 중국은 전염병 초기대응에 실패하여 코로나19를 세계적으로 확산시킨 책임이 있다는 국제적 비판에 직면해있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가들이 중국을 강력히 비난했으며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각국의 원성이 높았다. 그러나 중국은 정치적 음해라고 반발하며 코로나를 확산시킨 주범이 미국이라는 음모설로 맞받아쳤다. 자오리젠(赵立坚)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트위터에 미군 코로나 유포설을 제기한 것이다. 대다수 국가는 미군유포설이 신빙성 없고 중국이 비판을 모면하려고 뻔뻔한 행동을 한다고 여겼으나, 중국의 여론은 진위와 상관없이 대변인의 대응을 환영했다.
중국의 이러한 행보는 우선 코로나 팬데믹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함이고 무엇보다 국내 불만을 관리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도시봉쇄, 이동 제한, 엄격한 격리 등 강력한 방역체제는 국민의 불편과 불만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코로나로 인한 경기침체와 맞물려 초기대응 실패에 대한 정부 책임론이 제기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전염병 발생과 확산 책임을 미국에 전가해 국내 불만을 해소하려고 한 것이다.
자오리젠의 트윗에 이어서 얼마 후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도 “I can’t breathe”라는 문장을 트위터에 올렸다. 당시 미국에서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체포과정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흑인차별에 저항하는 운동이 벌어졌는데, 그 구호를 트위터에 올리면서 간접적으로 미국의 인종차별과 정치체제를 조롱했다. 그리고 중국 국무원은 ‘2020년 미국 인권침해 보고서’를 발간해 미국의 인종차별이나 방역 실패 문제뿐 아니라, 미국식 민주질서가 정치 혼란을 일으키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는 코로나 초기대응 과정에서 중국이 신종바이러스 정보를 국제사회와 공유하지 않고 은폐하려다가 팬데믹을 초래한 것은 중국의 불투명한 권위주의 체제 때문이라는 비판에 대한 중국의 반격이었다. 즉, 중국의 인권을 문제 삼던 미국에 대해 조롱함과 동시에, 코로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서구식 민주체제를 비난함으로써 코로나 방역을 완수한 중국 체제의 우월성을 드러내고자 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서구식 민주질서와 미국에 대한 직접적 공격은 이전에 중국이 보이던 모습과는 다르다. 이전에는 서구와 다른 중국식 민주와 자유를 강조하면서 다양성을 인정하라고 주장하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미국과 경쟁이 심화하면서 노골적으로 서구식 민주체제를 공격하면고 중국의 우월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 시기 중국의 공격적인 외교는 오히려 반중 정서 확산을 초래했다. 그런데도 중국이 전랑외교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 그 목표가 상대국을 설득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내를 향하고 있어서다. 다른 국가에는 거친 늑대 같은 모습으로 보일지라도, 중국 국민에게 당당하게 이익을 수호하는 모습으로 인정받는다면, 다른 나라의 비난은 감수하겠다는 태도다. 따라서 중국경제가 위기에 빠지고 권위주의적 통제에 불만이 쌓일수록 중국은 대외적으로 더욱 공격적인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상당하다. 국내의 정치 사회적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공격적인 대외정책으로 애국주의를 동원하려는 시도가 빈번해지고 강도 역시 강해질 수 있어서다.
중국의 공격적 대외정책의 정점에는 대만 문제가 있다. 중국은 대만과의 통일에 대해서는 무력행사도 불사하겠다며 엄포를 놓고 있어 동아시아 전쟁 가능성도 점쳐진다. 싱하이밍 중국대사의 거친 언사도 중국이 대만 문제에 얼마나 민감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중국이 대만과의 통일에 사활적인 것은 통일을 서구열강의 침탈로 빼앗긴 땅을 수복하는 역사적 과업으로 여기는 측면도 있지만, 중국 역사에서 지배 권력이 정통성을 가지려면 전대 왕조나 국가가 확보했던 영토를 계승해야 한다는 관념 때문이기도 하다. 전통적 ‘천하’관념에 따르면 중국이 문명제국으로서 세계질서를 형성하기 위한 선행과제가 바로 분열된 국내 영토를 통일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만과의 통일은 중국공산당의 통치 정당성을 위한 핵심 근거이자, 초강대국으로 거듭나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이 된다. 동시에 서구열강에 대한 설욕이라는 민족의 자존심이 걸린 과업이다. 시진핑 정부가 대만 시민이 권위주의가 강화되는 중국을 경계하여 거리 두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이유다.
중국은 공격적 대외정책 수단으로 외교적 언사나 군사적 위협만이 아니라 경제보복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일본과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에서 갈등이 생기자 중국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고 중국 정부는 희토류 수출을 금지했다. 캐나다가 화웨이 부회장을 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체포하는 일이 발생하자 중국은 캐나다 농식품에 대한 수입을 제한했다. 한국이 사드배치를 결정하자 중국은 한국제품 수입 제한과 한국관광 제한으로 보복했고, 코로나 바이러스 기원에 대한 국제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호주에 대해서도 경제보복을 강행했다.
그런데 이처럼 상대국에 정치적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또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 중심의 동맹강화를 압박하기 위해 교역을 무기로 삼는 중국의 행동은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경제보복으로 중국경제 역시 손실이 발생했고 대외적인 이미지는 더욱 나빠진 것이다. 게다가 미국 중심의 동맹질서가 약화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견고해지는 결과를 낳고 있다.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려면 미국과의 동맹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공격적 대외정책의 부정적 효과를 확인했다고 해서 중국이 외교노선을 전환하기란 쉽지 않다. 국내적으로 강한 중국의 모습을 과시하지 않으면 통치 정당성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3. 호주의 대응과 시사점
① 호주의 대중국 정책 변화
중국의 전랑외교가 득보다 실이 더 크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 사례가 호주다. 호주는 대중국 경제의존도가 높으면서 미국의 오랜 동맹국인, ‘안미경중’을 추구하던 국가다. 그러나 중국을 안보위협으로 느끼자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 대중국 외교노선을 전환했다. 중국이 거대한 시장을 지렛대로 삼아 위협하는 것에서 자유로운 국가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 호주의 대응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중국이 WTO에 가입한 이후 양국의 교역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2007년에는 호주 최대 교역국이 일본에서 중국으로 교체되었다. 이후에도 경제교류는 더욱 긴밀해져 2015년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결과 2020년 호주의 대중국 수출 비중이 40%에 달하게 되었다. 이 같은 관계를 토대로 중국의 경제성장은 호주에게도 기회로 인식되고 있었다.
하지만 2020년 호주가 코로나 바이러스 기원에 대한 국제조사를 요구하면서 중국과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중국이 경제보복으로 응징하자 호주도 이에 맞대응한 것이다. 사실 호주의 대중국 정책이 코로나를 기점으로 갑자기 바뀐 것은 아니다. 호주가 중국을 안보위협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계기는 앞서 언급한,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팽창주의적 행보를 보였을 때다. 호주는 중국의 이러한 행보를 위협적이라고 느꼈는데, 중국을 규칙기반 질서에 반하는 현상변경세력으로 여겨서다.
호주는 규칙기반 질서를 중시하는 중견국 외교를 견지해왔다. 강대국이 힘에 기반해 이해관계를 관철하는 국제질서보다 ‘규칙기반 질서’가 강대국의 힘의 논리를 제한하고 중소국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고 판단해서다. 그래서 미국에 의한 ‘규칙기반 질서’가 유지되길 바랐으며, 강력한 우방인 미국과의 동맹을 통해 안전을 보장하고자 했다. 그런데 미국 패권이 쇠퇴하는 조짐을 보이고 중국이 공격적 행보를 취하면서 위기감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원자재 수출 비중이 높아 해상교통로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호주에게 ‘항행의 자유’에 도전하는 중국은 안보위험 요소로 여겨졌다.
여기에 더해 불거진 중국의 내정간섭 스캔들은 호주의 대중국 정책이 강경책으로 전환하게 된 결정적 사건이었다. 중국이 호주에서 활동하는 중국 사업가나 유학생 교민 조직을 이용하여 친중적인 여론을 형성하고, 정·재계에 로비활동을 벌여서 호주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언론에 폭로됐다. 노동당 샘 데스티에리 상원의원이 중국 사업가로부터 정치후원금을 받아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서 중국의 입장을 옹호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심지어 그는 호주 정부 기관이 중국 사업가를 도청할 수 있다는 정보를 전달해서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고 결국 의원직을 사임했다.
이처럼 호주 정치인과 중국 사업가의 유착 관계가 형성될 수 있던 것은 호주에서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외국인의 기부가 제도적으로 허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호주는 2018년 외국인의 내정간섭을 금지하는 ‘외국인 영향 투명성 제도’와 외국인의 정치자금(1000호주달러 이상) 기부를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명시적으로 거론하진 않았지만, 이는 중국의 내정간섭을 저지하려는 조치였고 중국의 반발을 샀다.
중국의 내정간섭 스캔들만 아니라 사이버 첩보 활동에 대한 위협도 제기되었다. 호주는 5G를 통한 사이버 공격이 국가 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이버 보안 테스트 결과, 중국기업 화웨이와 ZTE를 호주 5G 통신망 구축 사업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중국 통신업체가 중국 정부의 요구에 따라 기밀정보 수집이나 사이버 공격에 이용될 위험이 크다고 판단해서다.
그리고 호주 내 인프라 투자에 대한 경계심도 높아졌다. 2018년 호주의 빅토리아 주정부가 중국과 일대일로 사업 참여 양해각서를 체결했는데, 2021년 호주 정부가 이를 파기했다. 호주 정부는 남태평양 지역에서 일대일로 사업을 확장하는 중국이 자국의 세력권을 위협한다고 여겨 일대일로 불참을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빅토리아 주정부가 경제적인 이유로 정부 결정과 배치되는 계약을 맺은 것이다. 이에 2020년 호주 의회는 주정부가 외국과 맺은 협약을 최종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켜 빅토리아 주의 일대일로 사업을 취소했다.
이처럼 호주의 대중국 정책이 점차 강경해지는 가운데, 2020년 호주가 코로나 발원지 국제조사를 요구한 것을 계기로 중국은 호주에 경제보복을 감행했다. 호주 수출에 타격을 주기 위해 소고기, 보리, 랍스터, 와인, 목재, 구리에 대한 수입 제재를 시행했던 것이다. 대중국 수출 비중이 높은 품목을 겨냥한 것인데, 품목별로 전체 수출량에서 중국으로 판매되는 비중은 보리의 60%, 목재의 90%, 석탄과 소고기의 20%가 넘었다. 그러나 호주의 대중국 대표 수출품목으로, 대중국 수출 비중이 80%에 달하는 철광석에 대해서는 수입을 제재하지 않았다. 중국의 철광석 총수입에서 호주가 60%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수출국이어서다.
그 결과 중국의 경제보복은 호주의 수출에 결정적 타격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중국의 수입 제재 기간인 2020년 4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호주의 대중국 상품수출은 0.5% 증가했다. 품목별로는 농업(7.6%)과 제조업(31.3%)이 감소했고 광업(10%)은 증가했다. 즉, 농업과 제조업에서의 수출감소를 철광석 수출 증가로 상쇄한 것이다. 호주의 대중국 철광석 수출이 증가한 원인은 중국의 수요 증가와 가격 급등에서 기인한다. 중국 정부가 호주산 물품에 대한 수입 제재를 추진하자 중국 수입업체는 불안감에 철광석을 사재기했고, 비슷한 시기 브라질이나 러시아와 같은 주요 철광석 생산 국가에서는 코로나와 자연재해로 수출량이 감소했다. 그 결과, 철광석 가격이 두 배로 뛰게 된 것이다.
중국의 수입제재로 타격을 받진 않았지만, 호주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중국을 대체할 신규 시장을 확보하고, 고부가가치 제조업을 육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호주산 보리의 신규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와 교역을 확대한 것이다. 동시에 농업과 광업에 집중된 산업 구조를 개조하기 위해 제조업 육성정책도 추진하고 있다.
물론 호주 내에서도 중국의 경제보복으로 인해 타격을 받은 산업계가 대중 정책을 강경하게 전환하는 것에 불만을 표하는 흐름이 있었다. 그러나 호주에서 중국을 경제적 기회보다 안보적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우세해지면서, 경제적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강경한 대중 정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 관철되었다. 특히 코로나와 중국의 경제보복이 반중 정서에 기름을 부었고, 철광석 수출 증가로 다른 품목의 수출감소를 상쇄하면서 경제보복을 견딜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호주는 비타협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호주 정부는 나아가 중국을 국가안보의 최대 위협요인 중 하나로 바라보기 시작했으며, 규칙기반 질서를 흔드는 중국의 행위를 저지하기 위한 국제연대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이를 위해 2007년 중단되었던 쿼드(Quad)활동을 재개하고, 호주, 영국, 미국 간 안보협의체 오커스(AUKUS)를 출범한다.
② 호주대응의 시사점
중국은 코로나 발원지 조사를 요구한 호주에게 경제보복을 하면서 전랑외교의 면모를 드러냈다. 그러나 호주는 중국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대응하면서, 경제적 타격을 최소화했고 호주의 외교적 입지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평가받았다. 이 같은 대응을 할 수 있던 배경에는 호주가 국제정세 변화를 신속히 포착하여 이미 중국에 대한 정책 기조를 수립한 상태였으며, 그것을 정치권이 일관된 입장으로 견지했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하는 국제정세 변화는 호주처럼 미국과 동맹이면서 중국과 경제의존도가 높은 국가에 민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에 호주는 중국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역내질서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하게 판단했다. 중국이 2010년대 들어 공격적 대외정책을 펼치자 호주는 중국의 부상이 기회보다는 위협으로 기울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특히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갈등은 호주의 교역에 필수적인 항행의 자유를 위협하고, 규칙기반 질서를 위반한다는 점에서 가볍지 않은 문제였다. 동시에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동맹관계를 이완하는 움직임이 나타났고, 동시에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에 돌입했다. 호주는 이러한 국제정세 변화를 미국과 동맹으로 안보 이득, 중국과 교역으로 경제적 이득 모두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으로 해석했다.
국제정세 변화에 호주는 중견국 외교원칙으로 대응했다. 호주는 “중국이 안정을 증진시키고, 국제법을 강화하고, 작은 국가들의 이익과 그들의 권리를 평화롭게 추구하는 것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하도록 할 것”임을 강조하면서, 단순한 봉쇄가 아닌 규칙기반 질서를 준수하도록 설득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호주가 대외정책에서 국제규범과 보편적 가치를 중시한다는 점은 인권문제에 대한 대응에서도 확인된다. 호주는 신장위구르 지역에서의 표현의 자유, 정치 활동가 처우, 종교의 자유, 강제노동 문제에 관해 지속적이고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했으며, 국제사회의 조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러한 외교정책의 목표는 중국이 국제규범과 보편적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 호주에게 이득이라는 판단 아래 중견국에게 유리한 국제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호주의 대중국 외교정책은 정권변화 속에서도 일관성을 유지했다. 전통적으로 호주의 주요 정당들은 외교문제에 대한 초당적 합의가 있어, 집권당에 따른 노선변화가 크지 않았다. 2021년 호주가 오커스를 통해 핵잠수함을 도입하기로 하자 당시 야당이었던 노동당도 이를 지지했으며, 대중국 견제와 미국과의 동맹 강화에도 전반적으로 동의했다. 호주 사회에서 대중국 강경노선에 대한 논쟁이 벌어진 때에도 과도한 정쟁을 자제하고자 노력했다.
한편 호주는 대중국 무역의존도가 중국의 무기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하자 경각심을 가지고 시장 다변화와 경쟁력 강화에 주력했다. 한편 2020년 양국의 관계 악화에도 불구하고 교역은 오히려 증가했는데, 이로부터 산업경쟁력을 갖추면 외교적 관계의 부침과 별개로 경제협력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4. 한국 대응평가와 과제
사드 보복이 자행되기 직전인 2015년은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수교 이후 ‘역대 최상의 관계’로 평가되었던 시기다. 양국의 경제협력이 더욱 긴밀해져 한중자유무역협정을 비준했고, 한국의 대중수출 비중은 25%를 상회했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은 중국이 일대일로를 위해 설립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에 가입했으며, 전승절 행사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면서 한중관계의 돈독함을 과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빠르게 반전됐는데, 한중 양국이 관계증진에 대해 동상이몽을 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한국이 미국·일본과 거리를 둘 것으로 기대한 반면, 한국은 중국이 북한 문제에서 전향적 역할을 해줄 것을 바랐던 것이다. 이러한 양국 관계는 2016년 북한이 4차(1월 6일), 5차(9월 6일) 핵실험을 단행하면서 시험대에 올랐다. 한국 정부는 중국이 북한 비핵화에 긴밀히 협조할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중국은 한국과 미국에게 ‘냉정한 대응’을 요구했다. 유엔제재 결의안 채택도 한국이 압박하자 그제서야 채택했다(3월 3일). 중국에 대한 기대가 좌절되어 실망한 한국 정부는 곧바로 중국을 비판했고,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사드배치를 결정하게 됐다(7월 8일).
사드배치 결정에 대한 대응으로 중국이 경제보복을 단행하면서 한중 양국 관계는 급격히 냉각됐다. 중국은 한류 제한령을 내려 한국 방송프로그램 방영을 중단하고, 한국관광을 제한했으며, 한국산 식품과 화장품에 대한 위생검역을 강화했다. 그러나 2016년 말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사드 문제는 차기 정부의 과제로 넘어가게 되었다.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사드배치가 무리하게 진행되었다며, 국회와 주민 동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는 입장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중국은 사드배치 철회도 가능하리라 기대를 품었다.
한편 문재인 정부는 사드를 중국에 대한 전략적 협상카드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면서 시간을 버는 사이에,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이를 지렛대 삼아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전략적 입지를 확보하려는 의도였다. 동시에 중국이 북한 비핵화에 협조하도록 설득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사드배치 철회를 기대했던 문재인 정부가 모호한 태도로 나오자 중국은 한국을 더욱 강도 높게 비판하고 공세적 태도를 보였다. 중국은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이 보수 정부보다 친중적일 것으로 여겨서 한국에 과도한 기대를 했고, 한국이 기대를 벗어난 행동을 하자 강하게 대응한 것이다.
악화한 한중관계는 2017년 10월 양국이 삼불(三不)을 합의하면서 긴장이 다소 완화되었다. 삼불이란 사드 추가배치를 금지하고,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에 참여하지 않으며, 한미일 군사동맹에 불참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결과는 한국이 중국에 양보한 것으로 해석되면서, 중국이 사드 보복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됐다.
그러나 사드갈등은 봉합된 것이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중국은 지속적으로 사드철수를 요구했고 보복조치를 철회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가급적 사드 문제가 의제화되는 것을 피하려 했으며, 중국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북핵문제 해결에 중국이 나서주길 바랐다. 그 결과 문재인 정부는 중국을 과도하게 의식하는 모습을 보이게 됐다. 단적으로 2017년 베이징대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로, 한국을 ‘작은 나라’로 칭했으며 ‘중국몽’에 함께하겠다는 뜻을 밝혀 논란을 일으켰다. 또한, 2019년 정상회담으로 중국에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홍콩과 신장문제는 중국의 내정 문제’라고 발언했다고 중국 관영매체가 일제히 보도한 일도 있었다. 청와대는 시진핑 주석의 발언을 잘 들었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으나, 문재인 대통령의 태도는 홍콩, 신장문제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던 국제사회의 분위기와 거리가 멀었다. 또한 2020년 코로나가 세계적으로 확산하던 시기에 각국이 중국발 입국자를 제한했음에도 한국 정부는 중국 눈치를 보다가 입국 제한 시기가 늦어지는 바람에 국내에서 코로나가 확산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중국은 문재인 정부의 바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미중갈등이 심화할수록 북한의 전략적 지위가 높아져 중국으로선 비핵화를 위해 북한과 갈등을 빚기보다는 관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 문제를 활용하여 한국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면서 한국이 미국에 치우치지 못하도록 관리하고자 했다. 그 결과 한중관계 개선은 진전이 없었고, 문재인 정부가 줄기차게 추진하던 시진핑 주석의 방한도 성사되지 않았다. 오히려 2019년 시진핑 주석은 북한을 방문하여 북중관계를 과시했다.
이러한 한국의 대응을 호주의 대응과 비교하면 몇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첫째로 국제정세 흐름을 읽고 외교전략을 수립하는 문제에서 그러하다. 호주는 중국의 공세적 변화가 자국에 위협이 될 수 있음을 감지하여 촉각을 곤두세웠고, 미·중 경쟁이 격렬해질 것을 전망하여 안미경중이 지속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새로운 외교정책 기조를 발 빠르게 수립했다. 반면 한국은 국제정세 변화에 둔감했다. 중국의 공격적 부상과 미국과의 갈등 심화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을 숙고하기보다, 북한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외교정책의 초점을 맞췄다.
이와 관련해서는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가 국제사회가 북한식 비핵화(핵동결 및 감축)를 수용할 수 없다는 현실을 무시하고 중국과 미국의 도움으로 북한과 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는 주관적 인식에 매몰된 점이 문제였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NPT체제를 위협하는 북한식 비핵화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중국은 미·중 전략적 경쟁의 관점에서 접근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기대는 실현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안미경중이 지속 가능한 노선인지 판단하고, 새로운 외교전략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논의해야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중국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하면서 논의가 지연되었다. 이후 2022년 대선까지 외교노선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을 벌였고, 여전히 민주당은 균형외교라는 이름으로 안미경중을 지속하자고 주장하고 있어 국민적 합의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둘째로 국제적 불확실성이 증대하는 정세에서는 예측 가능한 원칙 있는 외교 행보가 필요하다.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이름으로 실용외교 노선을 택하는 것이 원칙 없는 행보로 해석될 수 있는 상황이어서다. 호주는 중견국 외교를 견지하면서 중국이 규칙기반 질서를 지킬 것을 요구했고, 중국의 인권탄압 문제에 대해서도 비판적 목소리를 냈다. 강대국이 힘의 논리로 국제질서를 지배하는 것을 견제하고 호주를 비롯한 중·소국가도 권익을 주장할 수 있으려면 국제규범과 보편적 가치가 중요하다고 판단해서다. 한국도 중견 국가로서 규칙기반의 질서가 흔들리지 않는 것이 유리하므로 중견국 외교를 표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도리어 중국과의 위계질서를 인정하는 듯,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로 한국을 ‘작은 나라’라고 발언하면서, 모든 국가가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주권국가로 동등하다는 국제규범과 동떨어진 인식을 보여줬다. 또한, 중국의 심기를 거스를까 우려하여 홍콩이나 신장에서 벌어지는 중국의 인권탄압 문제에 대해서도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원칙 없는 외교 행보는 앞서 지적한 국제정세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한계에서 기인한다.
셋째로 정권변화에도 불구하고 원칙 있는 외교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호주는 양당의 초당적 합의가 있어 일관성을 견지했으나, 한국은 양당의 입장이 극과 극이다. 문재인 정부가 미국과 거리를 두고 친중적 행보를 했다고 평가된다면, 윤석열 정부는 이러한 외교노선을 전환하여 가치외교를 표방하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에 동참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여전히 안미경중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비판적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정권이 교체되면 외교정책도 180°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만약 집권세력이 교체될 때마다 외교정책이 바뀐다면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고, 무엇보다 주변 국가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권’이 들어설 때 선택적으로 관여하면서 외교의 지렛대가 상대방에게 넘어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싱하이밍 중국대사의 망언 사건처럼, 대외정책 기조에 대한 양 당의 입장이 차이가 크면 중국에 이용당할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 만약 대중정책에 대한 초당적 합의가 있었다면 중국대사가 야당 대표와의 만찬 자리에서 그러한 발언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곧바로 야당대표에게 반박당하거나 비공개 만찬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큰데 굳이 시도할 이유가 없다. 또한, 초당적 합의가 있었다면 야당대표가 굳이 중국대사와의 만찬자리를 가질 필요도, 혹은 만나더라도 공개회동을 고집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싱 대사의 발언은 생중계될 수 있었는데, 이재명 대표는 자신이 균형외교 입장이므로 중국이 우호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라 기대했고, 윤석열 정부가 미·일과 밀착하면서 중국을 소홀하게 대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자신은 중국과의 관계가 긴밀하다는 점을 과시하려고 기획된 자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개회동은 이 대표의 의도와 달리 중국에게 이용당하면서 국익보다 당리당략이 앞선다는 비판을 초래했다. 이처럼 상대국에게 이용당할 빌미를 제공하거나, 정권교체마다 외교 혼란이 발생하는 일을 피하려면 국제정세 인식과 외교대응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정리하면, 한국은 우선 국제정세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주목할 지점은 중국의 부상과 공격적 대외정책이다. 중국의 공격적 대외정책은 기본적으로 자국민의 애국주의에 부응하려는 면이 크다. 따라서 중국이 국내의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위기가 가중될수록 강대국으로서 위상을 과시하여 위기를 모면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중국의 외교 행보는 대안적 가치와 국제질서를 창출하기보다 규칙기반 질서를 위협하기에 국제적으로 중국에 대한 견제가 확대하고 있다.
또한, 한반도 차원에서는 중국이 북한의 ICBM 발사에 대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거부하면서 북한의 군사행동을 방조하고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문제다. 이러한 국제정세 인식에 따라 한국은 안미경중이 가능하고 바람직한 전략인지에 대해 사회적 논의를 거쳐서 새로운 외교기조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고자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견지해야 할 기본적인 원칙은 동아시아 평화와 핵무기 확산 저지가 되어야 한다. 즉, 대만침공으로 인한 동아시아 전쟁을 저지하고, 북한의 비핵화와 남한의 핵무장 저지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