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주년을 맞이하는 우리의 인식과 각오
1998년 12월 4일 출범했던 사회진보연대가 곧 25주년을 맞이한다. 기관지 《계간 사회진보연대》도 25주년 특집을 준비했다. 첫 번째 「25주년 기념 회원좌담」은 사회진보연대 25년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우리는 어떤 변화를 겪었고, 또 어떤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고 있는가를 토론하기 위한 자리로 마련했다. 사회진보연대의 전현직 운영위원들로, 서단비, 서보람, 박준도, 이진호, 이희태, 임필수가 참여했다. 좌담에서 다룰 논점을 정리하기 위해 임필수가 「현 정세와 사회운동의 상황에 대한 인식」을 작성했고 부록으로 함께 실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사회진보연대가 출범할 당시 우리의 정세인식을 요약하는 표현이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였다면, 25년이 지난 지금은 ‘인민주의, 권위주의, 팽창주의의 난입’이다. 이는 인민주의, 권위주의, 팽창주의가 그만큼 긴급하고 위중한 문제로 떠올랐다는 말이다. ‘문명의 위기’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이러한 위험을 정말로 큰 위험이라고 한국의 사회운동이 인식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우리 운동의 길 앞에 있는 가장 어려운 도전이다.
그다음으로, 25년의 역사를 함께하고 있는 여러 회원의 에세이도 실었다. 25주년을 맞이하는 소감, 사회진보연대 회원으로서 활동하며 느꼈던 점, 자신이 지금 활동공간으로 삼고 있는 곳에서 얻었던 경험을 담은 글을 보내주었다. 어쩌면 쓰기 쉽지 않은 주제에 관한 글을 청탁했음에도 흔쾌히 글을 보내준 손승환, 임성우, 박용진, 양문영, 김승곤, 안민지, 이상욱, 이다현, 표영민, 이동규 회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두 번째 특집은 ‘2024년 정세전망’이다. 세계경제와 한국경제를 다루는 첫 번째 글, 임지섭의 「연착륙 전망에 드리우는 장기침체와 부채위기의 그림자」는 세계경제가 인플레이션 위협이 여전한 가운데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통화긴축이 장기화되면서 성장세가 더 둔화하리라 전망한다. 게다가 최근에는 경험하지 못한 빠른 속도로 금리가 오르면서 정부와 민간 부문의 부채부담을 크게 늘리고 있다. 또한, 한국경제는 장기침체와 부채위기라는 전망의 표본이 되고 있다고 전망한다.
국제·한반도 정세를 다루는 김진영의 「탈냉전 시대의 종말 이후, 세계와 한국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30여 년간의 탈냉전 시대가 명백히 막을 내린 뒤, 세계의 불안정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전제를 두고, 2024년 이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인들을 자세히 살펴본다. 먼저 2022년 2월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뿐 아니라, 2023년 10월 발발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라는 두 개의 전쟁이 있고, 세계정세에 큰 영향을 줄 2024년 1월 대만 총통 선거와 총선, 6월 유럽의회 선거, 11월 미국 대선이 있다. 필자는 이와 관련된 폭넓은 이슈를 다루며 우리가 무엇에 주목해야 하는가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핵전략 변화를 분석하는데, 현 단계를 ‘비대칭적 확전형’으로 규정하는 분석을 소개하며, 그 함의를 설명한다.
한국 정치를 다루는 김성균의 「사회의 붕괴를 가속하는 극단화된 한국 정치」는 작년 연말에 발표한 글에 이어, 정치양극화와 제왕적 대통령제를 키워드로 삼아서, 지난 1년간 한국 정치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가를 살펴본다. 민주당은 지난 1년간 이재명 대표를 지키기 위한 극단화된 팬덤정치로 일관했다. 2월과 9월,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국회에서 부결시키려고 했던 집요한 노력이나 김은경 혁신위의 활동을 보면, 이는 민주당을 이재명 대표의 사당(私黨)으로 바꾸려는 시도나 다름없었다. 또한 제왕적 대통령제 문제를 살펴보면, 정치 양극화라는 조건에서 의회정치, 정당정치를 정상화함으로써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완화하는 길에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윤석열 행정부는 대선 후보 당시 공약했던 바를 이행하지 않거나, 최근 역행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진단한다. 한편 정의당은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투표에서 드러나듯 민주당과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큰 틀에서 보면 민주당의 반일선동, 검찰독재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진보당은 민주당과 더욱더 밀착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진보정치세력은 정치 양극화를 심화하는 민주당을 비판하고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혁할 정치 비전을 갖춰야만 위기를 뚫고 나갈 길을 찾을 수 있다.
쟁점분석으로는 교사회원모임의 「서이초 사건을 통해 본 교사의 교육권」을 싣는다. 이 글은 교권과 학생인권조례의 관계를 대립적으로 보는 시각은 보수와 진보의 극단에 서 있는 것이며 지금은 그 관계를 명확히 개념화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하고, 교사의 교육할 권리는 적절한 방식의 훈육도 포함된다고 말한다. 또한 전교조는 현장교사들이 전문성을 쌓아 교육적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독려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사회운동사 연재 ‘1987년 이후 한국 노동자운동의 역사’의 네 번째로 박준형의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의 노동자운동」을 싣는다. 2008년 리먼사태로 폭발한 세계 금융위기 이후 최근까지 노동자자운동의 주요 흐름을 다룬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의 쌍용차 정리해고 투쟁(2009년), 공공부문 선진화 저지 공투본 공동파업(2009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투쟁(2011년), 철도노조 파업(2013), 의료민영화 반대투쟁(2014), 민주노총 총파업-총궐기투쟁(2016년)과 문재인 정부 시기 비정규직 정규직화 전환, 최저임금 인상,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를 둘러싼 투쟁 등, 굵직한 흐름을 짚는다. 또한 산별노조의 산별교섭,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진보정당 등, 노동조합의 중장기적 발전전략과 직결된 문제들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를 살펴본다. 다음 호에 연재의 마무리 글이 실릴 것이다.
이번 호 ‘사회주의 역사 읽기’로는 이아림의 「중국혁명의 마지막 세대가 남긴 반성문」을 담았다. 저자는 여름호와 가을호에 「환상을 버리고 마오와 중국혁명을 이해하기 위하여」라는 글에서 모리스 마이스너의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를 읽으며 중국혁명의 쟁점을 뽑고, 그에 관한 저자의 시각을 제시했다. 이번에는 리쩌허우의 『중국현대사상사론』를 읽으며, 그 문제들을 복기한다. 리쩌허우가 말하는 중국이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던 방식의 특수성이나 중국혁명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우리가 숙고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뽑아낸다.
마지막에 실린 소영호의 「반미라는 구호는 여전히 유효한가?」는 백승욱의 『연결된 위기』를 소개한다. 사회운동이 현재 국제정세를 분석하고 토론하기 위한 틀을 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평화, 인권, 생존과 같이,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기준을 다시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특집 글뿐만 아니라 이번 호에 실린 우리 회원의 모든 글에 25주년을 맞이하는 사회진보연대의 인식과 각오가 담겨있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독자에게 잘 전달되기를 바란다.
2023년 12월 2일
임필수
임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