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뒤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민주노총 선거를 돌아보며
작년 말에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금속노조 등 민주노총과 주요 산별들(및 일부 산별 산하조직)의 선거가 있는 해였다. 선거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나 같은 활동가/간부들에게는 정말 바쁘고 정신없는 시기였지만, 대다수 조합원에게는 그저 문자와 전화가 많이 와서 귀찮은 시기이거나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시기였을 것이다.
민주노총 조합원은 약 120만 명이다. 유권자 수로 보면 대선·총선 등 국가 선거를 제외하고는 최대 규모의 선거다. 이 정도 규모라면 주요 언론에서 선거 관련 기사를 연재하고, 주요 쟁점을 해설해주는 오피니언이 적어도 2~3개는 나와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선거 종료 후 당선 소식을 전하는 단편적인 기사만 몇 개 있었을 뿐, 선거 과정 동안에는 일부 진보·노동 언론에만 기사가 실렸다. (공공운수노조나 금속노조 같은 산별 선거는 말할 것도 없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2파전, 공공운수노조는 3파전으로 치러져, 그 내부에서는 엄청나게 치열했음에도, 외부에서는 침묵에 가깝게 조용히 지나간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노이즈 마케팅이라도 했어야 하나 하는 후회가 들 정도로!) 국민에게는커녕 조합원에게도 그 어떠한 화두도 던지지 못한 채 흘러 흘러 끝나고 말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먼저, 직접적 유권자인 조합원에게조차 와닿지 못하는 정책과 선거운동이 문제였다. 민주노총이든 공공운수노조든 슬로건과 공약을 뜯어보면 산별노조 강화, 산별교섭 제도화(산별교섭 실현), 사회공공성 강화, 노동중심 산업전환 등 비슷한 정책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그 어떠한 후보도 이러한 정책이 조합원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되고, 무엇이 도움이 되는지를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조합원들은 산별교섭을 실현하기 위해 민주노총에 가입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산별교섭 실현이 조합원의 삶에 (하다못해 조합원의 가족과 이웃의 삶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설명해야 했었다. 조합원의 일상 관심사는 ‘사회공공성 강화’라는 일곱 글자 선언이 아니라 다음 주에 어머니 수술비를 어찌 감당할까 하는 현실적인 고민이다. 선거 공보물에 적힌 대로 사회공공성이 강화된다면 어떻게 어머니 수술비를 줄일 수 있는지 현실적이고 눈에 보이는 방향을 제시해야 했었다.
공공운수노조 선거도 마찬가지였다. 조합원에게는 따뜻한 소통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소통하기 위해 노조에 가입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을 위해 따뜻하게 소통하고 힘 있는 행동을 할 것인지 불분명하다면 그저 ‘이번에도 윗사람들이 날 위해 대신 싸워주겠구나’ 하는 정도에 그친다. 내일을 왜 바꿔야 하는지, 그를 위해 오늘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분명히 제시하지 못한다면 ‘선거 때면 으레 나오는 뻔한 말이구나’ 하는 정도에 그친다. 강해야 가능한 건 맞는 말인데, 구체적으로 뭘 강하게 할 건지, 무엇이 가능하다는 건지 조합원과 함께 그리지 않으면 ‘어차피 내 요구는 내 단위노조에서 해결하는 거야’라는 상급조직에 대한 무관심을 바꿔낼 수 없다.
이번 선거에서도 민주노총은 국민에게 비호감으로 낙인찍히거나 무능력하다고 여겨지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사회는 지금 여러 위기에 봉착해있다. 세계 최하위 출산율, 북한·중국·미국에 둘러싸인 전쟁위기, 삼성전자조차 못 살리는 한국경제, 유일한 노후대책이라 믿고 있는 국민연금의 고갈 가능성, 갈수록 심해지는 임금격차, ‘나 아니면 절대 악’이라는 정치양극화 등 그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문제가 얽히고설켜 있다. 국민들은 이러한 위기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살고 있다. 어쩌면, 정치권 또는 민주노총과 같은 사회단체에 이런 복잡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바라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들이 볼 때 정치권은 이미 이런 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고, 민주노총 역시 자기 조합원들 처우 외에 국민 전체의 삶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일 것이다.
선거 기간은 이러한 심각한 문제점에 대해 근본적으로 진단하고, 국민에게 대안을 제시할 중요한 ‘이벤트’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에서 이런 상황을 반등시켜 내는데 그 어떠한 후보도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국민들을 “압도”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하고, 무엇이 “다르고 강렬했는지” 반성해야 한다. 당선된 양경수 집행부의 공약에 민주노총 집회문화 혁신, 민주노총 대국민 홍보기능 강화가 담겨 있었다. 국민들은 민주노총의 집회문화가 싫어서, 민주노총의 메시지를 몰라서 민주노총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촛불집회를 돌아보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큰 틀에서는 민주노총 집회와 비슷했고, 민주노총의 메시지는 (매우 뻔하기 때문에) 지나가며 라디오 뉴스만 들어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런 수박 겉핥기식 요법이 아니라 근본적이고 발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그래야 진정으로 국민에게 박수받는 민주노총, 국민이 관심을 가지는 민주노총 선거가 될 수 있다.
내가 대학생 때 학생운동을 시작했던 이유는, 학생운동을 하던 선배들이 멋있었기 때문이다. 항상 옳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었고, 밤새 술 먹이는 게 싫었지만, 그들이 하는 말이 감동적이었기 때문에 술자리에 끝까지 함께 있었고, 우리 과, 우리 대학, 나아가 세상을 바꾸는 대안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 그랬으면 좋겠다. 민주노총 선거가 그런 대안을 겨루는 장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조합원과 국민이 민주노총을 멋있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정파가 문제라는 말, 오래된 인물이 문제라는 말을 동의하지는 않지만, 작년과 같은 선거가 반복된다면 결국 정파만 남고 인물만 남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조합원의 지지나 비전이 없는 정파와 인물은 기득권에 다름 아닐 것이다. 멋있지도 않은 조직에 기득권이라니! 이보다 끔찍한 결론은 없을 것이다.
위와 같은 신랄한 비판은 나에게도, 내가 회원으로 있는 사회진보연대에게도, 내가 함께했던 공공운수노조 선거운동본부 동지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이다. 3년 뒤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다시 시작해야 한다. 뻔한 말이지만 선거는 그동안의 활동을 대중에게 인정받고 승인받는 계기이기도 하다. 3년 뒤 민주노총 선거는, 공공운수노조 선거는, 조중동한경오 1면에 대서특필되기를 바란다. 3년 뒤에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국민에게 (요즘 유행인) 제3지대로 인정받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