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운동은 위기를 인식해야
많은 사람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한 순환이 마감되었다”는 말을 종종 하지만, 의미를 부여하는 바나, 지금 느끼는 무게감은 서로 다를 것이다. 필자도 1990년대 초반에 벌어졌던 역사적 사건들의 의미나 무게를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현재 사회운동이 정말로 “바닥을 친”, 즉 심연으로 추락한 상황이라고 인식한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했던 사고방식, 행동방식을 모두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사고와 행동의 변화가 없다면, 사실은 우리가 아직도 위기와 그 원인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계간 사회진보연대》도 우리 스스로 변화하기 위한 토론을 촉진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먼저 정세초점으로 임필수의 「북한의 전술핵 개발과 통일안 폐기, 어떻게 볼 것인가」를 싣는다. 2024년 3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하며, 이를 확장하자는 수정안이 제출되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재석 992명 중 찬성 280명으로 부결되었다. 찬성에 손을 들지 않은 나머지 대의원은 한반도 비핵화를 반대한다, 또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지지한다는 뜻이었을까. 필자는 북한의 핵전략·핵태세가 어떤 수준에 도달한 것인지, 그 군사적·정치적 함의가 무엇인지, 대의원들이 좀 더 분명히 이해해야 앞으로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세 가지 결론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첫째, 북한의 현재 핵무기 전략·태세는 과거와 다르다. 지금은 남한을 목표물로 삼는 전술핵 개발에 치중하고 있다. 이는 협상용도 아니고, 남쪽에 있는 우리 ‘민족’이 공격대상에서 배제되는 것도 아니다. 북한의 핵 태세는 전술핵을 방패로 삼아 선제적으로 남한에 분쟁을 도발할 수 있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둘째, 북한의 핵개발은 외부적 압력, 예컨대 북한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미국의 적대시정책’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가 아니다. 북한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에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에 치중했고, 문재인 정부 시기에 전술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즉, 북한은 평화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와중에 오히려 핵무기 체계 개발에 힘썼다. 셋째,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유지하는 한 평화로운 한반도 평화공존 체제는 성립할 수 없다. 사회운동은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옹호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특히 필자는 북한이 최선의 시나리오라고 생각했던 ‘조선반도 비핵화’, 즉 북한의 일정한 핵동결·핵감축과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해제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하노이 노딜’을 통해 입증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유지하는 한, 남한이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으면서까지 북한과 관계개선을 추진할 가능성도 제로에 가깝다. 역으로,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로 입장을 전환한다면,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프로세스는 재개될 수 있다. 그러한 길이 현재 북한의 핵무력 고도화, 국제사회로부터의 제재와 고립에 비해 나쁜 길이 될 수 없다. 만약 그 길이 나쁜 길이라면 통일운동은 과거 6·15공동선언과 햇볕정책을 지지했던 것이 과오였다고 반성해야 마땅하다.
이번 기획에는 ‘한국정치와 노동자 정치세력화, 평가와 전망’이라는 제목으로 두 글을 담았다. 먼저 박준도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4·10 총선」은 진보당과 한국진보연대가 ‘민주진보연합’이라는 이름으로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 참여하는 과정부터 살펴본다. 필자는 더불어민주연합이 스스로 주장하는 준(準)위성정당이 아니라, 오히려 하이퍼 위성정당이었다고 평가한다. 나아가 진보당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민주노총을 분열시키고 무력화해도 무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왜 그런가. 진보당의 민주당 위성정당 참여는 민주노총 총선방침 4항 ‘보수정당의 위성정당 참여금지’와 충돌할 뿐만 아니라 1항 ‘진보정치세력 연대연합’과도 충돌한다. 그러나 진보당을 지지하는 민주노총 집행부와 중집위원들은 온갖 궤변을 늘어놓으며 진보당 지지 철회를 막았다. 이는 대의원대회 결정을 민주노총 위원장이 임의로 해석해 집행을 유보하는 ‘선례’를 남기는 결과를 낳았다. 한편, 정의당은 독립정당으로서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위성정당 참여는 거부했지만, 스스로 평가한 것처럼, 독자적인 정강을 세울 여력도, 돌아선 시민들의 표심을 되돌릴 방책도 없었다. 사실 민주당과 반윤석열 선거연합을 한 진보당은 물론, 정의당 역시 ‘정권심판 정의롭게’ 슬로건을 내세우며 비슷한 전략을 구사하였으나, 이는 조국혁신당에 비해 특별히 효과적이지 않았다. 반보수전선 구도에 갇힌 채 민주당, 조국혁신당과 경쟁할 것이 아니라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자체에 반대할 수 있어야 했다. 민주노총이 노동자 정치세력화 문제를 진지하게 다시 검토하고자 한다면, 민주노총 자신을 진단해야 한다. 취약한 계급 대표성, 민주당과 변별력 없는 정치활동, 북한의 핵무장과 권위주의에 대한 맹목을 인식해야 한다. 이와 같이 오늘날 진보정치의 요건 중 무엇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라면, 노동 중심의 정치세력화를 추진하겠다는 구상은 애초부터 가능하지 않다. 민주노총이 자신의 사회적 표상을 재구축할 수 있어야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길도 다시 모색하는 게 가능하다.
다음으로, 임필수의 「총선 이후 정국 전망: 누가 극단적 포퓰리즘을 견제할 것인가」를 싣는다. 여당이 총선에서 대패한 후, 윤 대통령의 ‘정치스타일’이 참패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부상했다. 언론은 윤 대통령의 정치스타일을 규정할 때 모두 불통과 독선이라는 용어를 동원한다. 필자는 불통과 독선의 반대말이라고 할 수 있는 소통과 협치란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기 때문에, 이는 윤 정부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표지로 해석해야 한다고 진단한다. 즉, 윤 대통령의 불통이란 언론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설명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의미라고 해석한다. 또한 그로 인해 대통령과 여당이 정치적 신뢰성을 크게 잃고, 정당체계 내에서 극단주의적 포퓰리즘을 견제하기 위한 협치를 가능케 할 흡입력을 상실했다고 평가한다. 총선이 끝난 후 윤 대통령이나 여당, 검찰이 어쨌든 간에 얼마간 변화를 보인 것은 사실이나, 여전히 국민의 의혹과 불신을 해소하기 어려운 행동을 이어가거나(채상병 특검 거부와 무대책, 총선백서특위의 내부 갈등), 변화를 스스로 뒤집는 듯 보이는 조치를 취하거나(민정수석실 신설과 검찰 인사), 의도나 메시지를 알 수 없는 결정을 내리는 일(정호성 발탁, 연금개혁 불발)이 연거푸 벌어지고 있다. 다른 한편, 총선 후 민주당의 국회의장 후보 선거가 매우 큰 파장을 낳았다. 이재명 대표가 지지한 후보가 낙선했기 때문이다. 강성 지지층이 강력히 반발했고, 친명계 의원들은 앞으로 국회의장 후보 투표 때도 당원투표를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친명계 원외조직 더민주혁신회의가 대거 원내로 진입해, 민주당 전체가 극단주의로 치닫도록 유도하고 있다. 강성 친명조직들은 과거 원외조직처럼 제복을 입고 완장을 차고 거리를 누비는 게 아니라, SNS와 여타 미디어를 매개로 자신의 뜻에 거스르는 당내 세력들에게 온갖 모욕과 괴롭힘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일종의 ‘정치폭력’이다. 정치양극화와 정치의 폭력화, 극단주의적 포퓰리즘의 발호를 막기 위해선 여야를 막론하고 자성의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여권에서는 대통령의 ‘불통’과 ‘독선’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져야 하고, 야권에서는 포퓰리즘과 극단주의를 강력히 경계하는 흐름이 가시화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정치양극화를 이끄는 힘을 제어하고, ‘소통’과 ‘협치’를 모색하는 세력들이 서로 힘을 보탤 수 있는 국면도 찾아올 수 있다. 한편 사회운동 일각에서는 가장 적극적으로 정권심판에 나서는 게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과 차별화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극단주의 포퓰리즘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는 고속도로를 내주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오히려 사회운동이 내걸어야 할 구호는 “정당, 정파를 초월하여 민주주의를 수호하자”가 되어야 한다. 극단적 포퓰리즘으로부터 인권과 법치, 헌정을 지키는 것이 사회운동과 진보정치 세력의 선차적 과제다.
다음으로 이소형의 「전태일재단-조선일보 공동기획 논란을 되돌아보며: 노동자운동이 안티조선운동에 동참해야 하는가」를 쟁점분석으로 실었다. 글 제목에서 언급한 기획기사가 보도된 후, 노동운동 쪽에서는 《조선일보》가 ‘전태일’ 정신을 언급하는 건 기만적이며, 전태일재단이 협업에 응한 것 자체가 부적절한 일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필자는 특정 언론에 대한 접근 자체를 일종의 ‘금기’로 규율하고, ‘친노동’으로 분류되는 언론 매체만 선별하여 취재에 협조하는 방식이 과연 적절한가에 의문을 제기하며, 노동운동 내에서 이런 태도가 마치 지당한 원칙인 것처럼 자리 잡게 된 과정을 고찰한다. ‘안티조선운동’의 출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2000년 8월에 나온 ‘조선일보 기고·인터뷰를 거부하는 (154인) 지식인 선언’이 있었다. 당시에는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데에는 동감하지만, 《조선일보》에 기고나 인터뷰를 하냐 마냐를 두고 네 편 내 편을 가르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는 의견도 상당히 존재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안티조선운동은 《조선일보》의 기고나 인터뷰 요청에 응하는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2003년에는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의 기자간담회 기사가 《조선일보》에 실린 것을 두고 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가 민주노총에 항의하는 일이 있었고, 2004년에는 민주노동당 노회찬 사무총장이 《조선일보》 사내 강연에 참여한 일을 두고 당 방침을 위반했다는 강경한 비난이 나오기도 했다. 2008년에 광우병 촛불집회는 안티조선운동이 ‘조중동 아웃’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민주노총도 2009년 대의원대회에서 조중동 절독 및 광고주 불매운동을 결의했다. 본인들의 활동을 비판하는 언론은 모조리 ‘아웃’시키겠다, 즉 본인들에 대한 비판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 사회운동의 올바른 언론관인가, 근원적인 문제부터 되돌아보아야 한다. 필자는 민주노총의 특정 언론 배제 방침이 결과적으로 노동보도를 개선하는 데 기여했는가 하는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안티조선운동이 유효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필자는 ‘언론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언론을 두고 정치 진영 간 갈등이 거칠어지고 있는 상황을 진단한다. 특히 최근에는 공영방송이 언론전쟁의 핵심 전투장소가 됐는데, 여야는 위치가 바뀔 때마다 서로 거울 쌍처럼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바꾸려 시도한다. 필자는 이런 상황이라면 어느 한 편을 우리 편이라고 절대적으로 옹호하거나, 우리 편이 아니라는 이유로 절대적으로 배척하는 행위는 결국 언론의 정파적 극단화로 귀결될 것이므로, 신중하게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박준형의 「87년 이후 노동운동은 변화할 수 있는가」는 사회운동사 기획으로 지금까지 네 차례 걸쳐 실린 ‘1987년 이후 한국 노동자운동의 역사’의 마지막 결론 격 글이다. 이 글은 1987년 이후 노동자운동의 역사를 다시 간략히 정리하고, 그 성과와 한계, 성공과 실패를 결산한다. 한편으로 민주노조 운동은 헌신적 투쟁과 많은 희생을 통해, 정치적 민주화와 노동기본권의 점진적 확대라는 성과를 얻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노동시장과 소득의 양극화, 노동자계급의 분할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이를 해결하려면 산별 노사관계 등 초기업적 교섭·투쟁, 사회적 협의를 통한 제도 개선, 이를 의회에서 실현할 수 있게 하는 정치세력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하지만, 세 가지 측면 모두 큰 한계에 부딪혔다. 더 큰 문제는 이 현실을 해결하기 위한 향후 전략이 무엇이냐에 관한 합의도 없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노동운동의 혁신은 가능할까?’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면서, 경제위기와 노동시장의 변화, 기후위기, 국제관계의 변화와 같은 정세의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야 노동운동의 변화 방향을 짚어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활동가, 조합원 사이에 깊게 자리 잡은 관행과 정서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먼저 기업별 임금극대화를 이상화하는 전투적 경제주의를 지양해야 한다. 그런데 이는 곧 노동조합의 이념지향성을 복원하는 과정을 의미할 것이므로, 활동가들의 의식적이고 지난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이번 호 ‘사회주의 역사 읽기’로는 지난 호에 이어 프랑스혁명사를 다루는 임지섭의 「실패한 부르주아 혁명으로서 프랑스혁명」을 담았다. 지난 글에서 프랑스혁명을 바라보는 두 가지 상반된 해석인 정통주의와 수정주의를 소개하고, 프랑스혁명의 ‘과정’을 둘러싼 주요 쟁점 중 하나인 파리 민중과 자코뱅의 평등주의와 혁명적 폭력에 주목했다면, 이번 글에서는 그러한 평등주의와 혁명적 폭력의 기저에 프랑스혁명이 구체제의 사회경제적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이는 프랑스혁명의 ‘원인’과 ‘결과’를 둘러싼 정통주의와 수정주의 사이의 논쟁과 연결된다. 정통주의 해석은 프랑스혁명이 복합적이기는 하지만 총체적으로는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에 결정적인 계기를 이룬 부르주아 혁명이라고 본다. 동시에 프랑스 민중과 자코뱅의 평등주의에 주목하면서, 부르주아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의 발전이라는 도식을 예시한다. 반면 수정주의는 이러한 정통주의 해석을 비판하며, 프랑스혁명이 반자본주의적이고 복고적이라는 점에서 부르주아 혁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프랑스혁명기의 민중과 자코뱅으로부터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의 맹아를 찾으려는 시도는 무리한 일이라고 본다. 프랑스혁명이 부르주아 혁명이냐 아니냐를 둘러싼 정통주의 해석과 수정주의 해석의 논쟁에서, 우리는 혁명과 이행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쟁점을 잡아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프랑스혁명을 ‘실패한 부르주아 혁명’으로 규정한다. 프랑스혁명은 전제정의 자의적 지배를 법의 지배와 국민주권으로 대체했다는 점에서 분명히 부르주아 혁명의 요소를 갖고 있었지만, 재정위기와 농업위기를 해결하지 못하고 ‘봉기’와 ‘구성’의 결합에 실패하면서 공포정치로 타락했고 그 이후에도 혼란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 글은, 프랑스 민중과 자코뱅의 평등주의로부터 사회혁명과 공산주의의 맹아를 찾으려는 정통주의 해석의 혁명사 인식을 재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프랑스혁명사에 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마빈 콕스의 「퓌레, 코반, 마르크스: ‘정통주의’와 수정주의 재검토」도 싣는다. 정통주의와 수정주의가 공유하는 바는 무엇이고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 글의 요지는 역자 해설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콕스가 제시하는 마르크스주의 역사 인식 틀 설명에 대한 우리의 반론도 담았으니, 꼭 함께 읽어주길 바란다.
이번 책 소개로는 두 편의 글을 싣는다. 박범진의 「행복으로의 불행한 전환」은 프랭크 푸레디의 『교육은 왜 교육하지 않는가』을 소개하며, 교육의 본질적 역할이 무엇인지, 교육현장에서 최근 나타나고 있는 경향들이 어떤 문제를 품고 있는지 살펴본다. 김민정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평화공존’을 위한 연대를 모색하며」는 우스키 아키라의 『세계사 속 팔레스타인 문제』, 도브 왁스만의 『우리가 알아야 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모든 것』을 소개한다. 필자는 두 책을 통해서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시도되었던 평화 프로세스가 실패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평화공존’이 분쟁 해결의 지향점이 되어야 하고, 사회운동의 연대 역시 이러한 지향점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회원칼럼도 두 편을 실었다. 이인화 회원이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를 다시 생각하며」를, 김태형 회원이 「단절로부터 얻은 용기」를 써 주었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독자에게’로는 이아림의 「‘정치적 올바름, 분석과 비판’ 독자에게」를 실었다. 독자들이 지난 특집 글에 관해 제기한 질문이나 의견에 필자가 답한 글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번 호도 논쟁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 독자 여러분의 날카로운 의견을 기대한다.
2024년 6월 7일
임필수
임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