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이글 뜨거웠던 하루, 인천공항지역지부 파업을 돌아보며
뜨거웠던 파업대회 날
오전 6시. 집을 나섰다. 오늘은 인천공항지역지부가 2차 파업에 들어가는 날이다. 파업대회가 열리는 1터미널에 여유 있게 도착하려면 일찌감치 출발하는 편이 좋다. 실은 아이가 간밤부터 열이 나서 밤새 찬 물수건을 뜨끈한 아이 이마에 올려놓느라 새벽에 이미 깨어있었다. 기침을 며칠 달고 있더니 결국 열감기가 온 모양이다. 원래는 아이 아빠가 도시락 챙겨 방학 돌봄교실에 보내고 출근하기로 했는데, 안 되겠다며 연차를 쓰고 병원에 데려가겠다고 한다. 부탁을 해두고, 쌕쌕대며 자는 아이 이마 한 번 더 짚어보고, 집을 나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천공항 방향이 아닌 서울역 방향의 열차를 타고 연남동으로 출근했는데, 이제는 어느덧 영종도를 향하는 출퇴근길이 익숙하다. 사회진보연대 사무처 상근을 해지하고 인천공항지역지부에서 활동한 지도 어느새 6개월, 반년이 되었다. 추상의 세계에서 구체의 세계로 전환된 장르에 어느 정도 적응한 기간이다. 인천공항에서 고군분투한 여러 회원의 노력을 이어간다는 생각으로 다시금 지역과 현장의 활동에 매진하는 중이다.
인천공항은 연말 4단계 공사가 마무리된다. 2터미널을 곱절로 확장하고 활주로를 하나 더 까는 공사다. 2터미널 면적이 38만 7천㎡에서 73만 4천㎡로 확장되고, 연간 여객이 7천7백만 명에서 1억 600만 명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공항은 커지는데 인력은 그대로다. 인천공항공사는 4단계 완공을 앞두고도 인력충원 계획을 밝히지 않으면서 디지털 전환이니 AI 혁신이니 하는 선전만 앞세웠다. 그러나 기술혁신이라는 것이 바람대로 단기간에 될 리 만무하다. 신기술을 도입하더라도 안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는 숙련된 현장 노동자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오전 9시. 오늘 하루 파업에 나선 주간조와 야간조 조합원으로 1터미널 앞이 가득 찬다. 전일 야간근무를 마친 조합원도 속속 모여들어 대오는 계속 늘어난다. 파업대회가 열리는 터미널 바깥쪽 도로를 커브 사이드(Curve Side)라고 부르는데, 굴곡진 대열의 끝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조합원들이 운집한 모습이 실로 장관이다. 폭염주의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멀고 먼 영종도까지 건너온 연대 동지들의 연두빛, 붉은빛 투쟁 조끼도 길게 늘어선 대오 중간중간에서 반갑게 빛난다. 사회진보연대 인천지부의 깃발도 변함없이 나부낀다.
“전에는 지부 행사에 조합원들이 더 많이 참여했어요. 그런데 조금씩 달라지는 게 느껴져요. 뭐랄까, 절박함 같은 게 없어진다랄까.”
“바닥을 많이 올린 셈이에요. 부서 안에서 급여가 가장 높은 직원이랑 하위 직원 간에 차이가 별로 없어요. 그러다 보니까 일할 때도 좀 그런 게 생기는 거죠. 고용안정도 되었겠다, 전처럼 막 열심히 하고 노조 활동도 적극적이고 그런 게 좀 없어졌어요.”
“신규입사자들에게 노동조합 가입을 권하기도 까다로워졌어요. 전처럼 ‘형님들 하니까 같이 한다’, 그런 분위기가 절대 아니고요. 그 MZ세대 특성이랄까, 나한테 도움이 되는 게 뭔지에 대해 하나하나 따지는 거 같아요.”
문득 지난 5월 지부 체육대회 행사에 참여한 현장 간부들과 소주 한잔하면서 나눴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현장 분위기가 전과 같지 않다고, 활력이 떨어진 분위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하셨는데. 오늘 8월의 파업대회를 현장 간부들은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해진다. 결의대회에 참여하도록 하고, 선전하고 조직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갖가지 에피소드도 있었을 터이다. 2차 파업을 마친 후에 조만간 또 소주 한잔을 권하며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오전 10시. 고작 10시밖에 안 되었는데 작열하는 태양에 벌써 어질어질하다. 대회사와 격려사, 그리고 연대사 등 발언이 이어지는데 여느 때보다 발언자들의 말씀이 짧다. 더 뜨거워지기 전에 행진을 시작해야겠다는 모두의 마음이 느껴진다. 짧고 굵게 터미널에서의 프로그램을 정리하고 행진을 시작한다. 인천공항공사가 위치한 1정부청사 방향으로 행진이다. 1킬로미터도 안 되는 거리이지만 폭이 좁은 길로 행진할 수밖에 없어 대오의 선두와 후미가 모두 1정부청사 앞에 모이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린다. 함성을 와 내지르고, “4단계 인원충원 조속히 시행하라!” “인원충원 시행하고 4조2교대 완료하자!” “노동자·시민 안전지키는 파업투쟁 승리하자!” 구호도 크게 외치는 사이 대표단의 항의서한이 공항공사 측에 전달되었다.
오전 11시. 오늘의 파업대회는 마무리다. 보름 전 1차 파업 때는 저녁이 다 되어 헤어졌는데, 오늘은 짧고 굵게 마친다. 너무나 뜨거운 날씨에 고생이 많았다고, 어서 휴식을 취하자고, 서로가 서로에게 격려와 위로의 인사를 건넨다. 조합원들은 내일 다시 현장으로 출근이다. 평소와 다름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주어진 일을 하겠지만, 그러나 상황을 예의주시하다가 3차 파업 명령이 내려지면 다시 한날한시에 모일 것이다.
오후가 되니 파업 관련 언론 보도가 시작된다. 언론 보도를 꼼꼼하게 모니터링하면서 미묘한 변화를 감지하는 것이 나의 역할 중 하나다.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으로 시작되는 기사의 문장을 찬찬히 읽어 내려간다.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2024년도 용역 계약 체결 시, 그러니까 작년에 이미 2터미널 확장에 따른 증·감원 수요를 조사해 자회사와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2여객터미널 확장에 따른 인력 충원 계획을 알려달라고 노동조합이 여러 차례 요청할 때는 묵묵부답이더니, 파업에 돌입하자 그제야 이미 인력 충원이 된 것이라고 얼버무리는 거다. 그리고 모회사는 자회사의 인력 운영에 개입할 수 없다는 말을 꼭 덧붙인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요구는 모회사가 ‘개입’을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다하라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도 지난달 발표한 <2023년도 공공기관 자회사 운영평가> 보고서에서 “인천공항공사는 과업범위 및 적정인력 규모가 노동자의 노동강도 및 고용안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검토 과정에 있어서 자회사 노사, 외부 전문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통해 객관성과 투명성이 확보되도록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라면서, 이른 시일 내에 모·자회사 노사 공동협의회를 설치하고 운영하라고 인천공항공사에 권고한 바 있다.
결국 원청의 사용자 책임성이 쟁점이다. 인천공항공사는 원청 사용자성 시비에 행여나 휘말릴까 노심초사하며, 교섭은커녕 협의조차 못 하겠다고 버티는 것이다. 모회사는 책임이 없다고 하고 자회사는 권한이 없다고 하며 서로 핑퐁 게임을 하는 흔한 모습이 인천공항에서도 전개되고 있다. 인천공항지역지부의 올해 총파업은 이렇듯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고 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어려운 싸움이다. 하지만 어려운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자부심이 넘친다.
스스로 바꿔나가고 있다는 자부심
“우리는 민주노조 깃발 아래 연대와 투쟁으로 우리의 정규직화를 이루어냈고 4조 2교대 개편, 4단계 인력충원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오늘 파업이 끝나고 현장에 돌아가셔서 타 노조 조합원과 비조합원에게 자랑스럽게 말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당신들은 누가 바꿔주길 기다리고 있지만,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바꾸고 있다고 말입니다. 오늘 동지들과 함께해서 영광이었습니다!”
지난 1차 파업 날, 지회장 한 분이 조합원들 앞에서 한 이야기다. 인천공항을, 내 삶을, 우리가, 나 스스로가, 바꿔나가고 있다는 자부심이야말로 투쟁의 원동력이다. 현장 간부들이 고민하는 조직의 활력이나 생기 있는 기운이라는 것도, 안주하지 않고 혁신을 모색하는 노동조합 활동 속에서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혁신할 것인지, 어떻게 혁신할 것인지 방향을 제시하며 때론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 노동조합과 함께하는 사회운동 활동가들의 주된 역할이겠다.
내일부터는 3차 파업 준비가 시작된다. 2024년 총파업 승리를 향해 달려가면서도 긴 호흡으로 찬찬히 풀어가야 할 문제를 톺아본다. 위험의 외주화, ‘아웃소싱’의 모델이었던 인천국제공항의 비정규직 문제를 총파업으로 세상에 알렸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의 다음 몫은 무엇인가.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자부심으로 활력 넘치는 현장과 탄탄한 간부층을 유지하고 발전해 나가기 위한 구체적인 혁신 과제는 무엇인가. 그리고 노동조합 운동에 기여하는 사회운동과 사회운동에 기여하는 노조운동의 상호관계는 어떻게 맺어져야 할 것인가. 이글이글 뜨거웠던 하루를 돌아보며, 다시금 찬찬히 생각해 본다.
무더웠던 계절의 끝자락에서
위와 같이 원고를 마무리하여 넘기고 얼마 후, 인천공항 현장에 문제가 생겼다. 민주노총의 파업 투쟁을 지켜보기만 하던 한국노총과 기업별 노조들의 야합이 가시화된 것이다. 지난한 투쟁의 성과에 숟가락을 얹는 것을 넘어서, 밥상을 통째로 빼앗겠다는 심보다. 그리고 그 배후로는 인천공항공사 정규직 노조가 지목된다. 공항공사와 입장을 같이 하는 정규직 노조의 속셈은 밥상을 뒤엎겠다는 것일 테다.
이를 두고 블라인드 게시판에 글을 올린 한 현장노동자는 “회사도 하청, 노조도 하청이 되는 꼴”을 지적한다. 개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 ‘인국공 사태’를 거치며 구성된 ‘인국공연맹’이 느슨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가, 자회사 전환 시 합의 사항이었던 ‘4조 2교대’ 등이 비로소 실행되려는 찰나 다시금 결속력을 다지고 있다. 선의로 포장되어 무책임하게 현장에 던져졌던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 빛 좋은 개살구가 야기했던 배앓이가 만성적인 복통이 된 경우다. 현장의 혼란을 지켜보며 고민은 깊어진다.
인천공항지역지부 간부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의연한 모습이다. 이런 혼란을 한두 번 겪어 본 것이 아니어서 그런가, 현장을 수습하고 곤경을 타개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그리고 나는, 진흙 속에서도 연꽃은 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중이다. 어렵사리 피워 올린 꽃이 열매를 맺어,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한 씨앗이 될 수 있도록 일조하는 나의, 우리의 역할을 고심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