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2024 가을. 1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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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움직이는 활동을 하기 위하여

윤이나 | 서울지부 회원


1. 노동조합 그만두던 날: 노동조합 상근 활동에 대한 소회

나는 민주노총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전국교육공무직본부에서 상근 활동가로 5년 넘게 일했다. 정확히 하자면 “5년 7개월”인데, 최근 들어서야 구직활동 때문에 이력서를 쓰면서 노동조합에서 상근 활동을 한 기간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 이 말인즉슨, 노동조합 상근 활동을 그만두고 난 후 최근까지도 그간 내가 했던 노동조합 활동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적이 없었다는 말이다. 사회진보연대 계간지의 회원 칼럼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자, 그제야 그런 의문이 들었다. 왜 그랬을까. 노동조합은 과거에도, 지금도 나에게 참으로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학생운동을 마무리하자마자 가장 가고 싶었던 공간, 20대를 마무리하고 30대를 맞았던 공간, 어떤 경로로라도 소식을 전해 들으면 내적 환호성을 지르며 응원하게 되는 공간. 노동조합은 나에게 이렇듯 ‘애’의 공간이다. 하지만, 노동조합은 동시에 나에게 ‘증’의 공간이기도 하다. 조합원과 조합원 사이, 전임자와 상근 활동가 사이, 전임자와 현장 간부 사이, 복수 노동조합 사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 남북 갈등 빼놓고 다 있는 공간. 숨 가쁘게 돌아가는 투쟁 일정은 또 어떤가. 민주노총은 늘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이라고 하는데, 정작 나는 우리 노조의 임금 투쟁 일정만으로 숨이 차서 “우리 조합원만의 민주노총”에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이렇듯 노동조합은 꽤 긴 시간 나에게 ‘애증’의 존재였다. 그렇게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존재가 동시에 미워서 꼴도 보기 싫은 존재라는 사실이 문제였다. 불같고 뻣뻣하기 그지없는 내 성향이 ‘애’와 ‘증’을 오가는 일을 버거워했다. 그래서 나는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는 5년 7개월 내내 마음이 힘들지 않았던 날이 거의 없었다. 결국 나는 노동조합을 과하게 사랑하고, 과하게 미워하다가, 완전히 방전되어 어느날 갑자기 노동조합을 그만두었다. 아마 내가 노동조합 활동을 돌아보지 않았던 이유는 그럴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가장 꿈꿔왔고, 또 좋아했던 공간에서 실패했다고 생각하니, 다시 돌아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2. 다시 용기를 내야해 : ‘23기 노동자의 벗’ 활동 소감

노동조합 상근 활동가를 그만두고 나서, 나는 노무사 시험을 준비했다. 당분간 사람과 관계 맺고 싶지 않았고, ‘나’에게만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런 시간을 갖는 데에는 시험 준비가 딱 맞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노동조합에서 마주쳤던 전문자격사는 노무사뿐이었다. 그래서 노무사 시험을 선택해서 준비했다. 시험에 합격하고 나니, 그간 나의 경력 때문에 내가 “대단한 노동 인권 노무사”가 될 재목이라고 치켜세워주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도리어 나는 그런 식의 대단한 열정이 없는 것이 나의 말 못 할 고민이었다. “노측이든 사측이든 누군가를 대리하는 일이 노무사의 일이라면, 이야... 내가 그런 일을 다시 할 수 있나?” 이것이 노무사 시험에 합격하고 난 후의 솔직한 내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경력이 경력이다 보니, 여기저기서 나에게 “수습 노무사가 매번 하는 ‘노동자의 벗’이라는 단체가 있는데, 꼭 했으면 좋겠다”라고 추천하는 것이 아닌가(그래, 민주노총 상근 활동가 5년하고 7개월 정도면 나 같아도 나한테 ‘노동자의 벗’을 하라고 권할 것 같다. 그건 인정). 문제는 내 ‘마음’이었다. ‘노동자의 벗’에 아직 가입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이 단체가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할지, 어떤 단체와 연대할지, 어떤 행사를 나갈지 예상이 되는 바였다. 이 활동을 꼭 해야 한다면 누구보다 효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효율적으로 하는 활동”이라니. “먹으면서 하는 다이어트”처럼 모순 아닌가? 만약, 그렇게 노동조합에서 ‘일’할 때처럼 하는 활동이라면 정말로 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활동마저 열정적으로 하지 못하면 나는 앞으로는 사회운동과 연이 없겠구나”라고 활동에 대한 사형 선고를 받을까 봐 겁이 났다. ‘노동자의 벗’ 활동과 비슷한 노동조합 활동은 훨씬 더 큰 열정과 포부를 갖고 시작했는데도 실패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는 결국 ‘23기 노동자의 벗’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다만, 노동조합에서 활동할 때처럼 이 공간을 과하게 사랑해서 과하게 미워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시 또 활동을 그만둘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는 용기를 내어 몇 가지 파격적인 선택을 했는데, 첫째는 “절대 요직을 맡지 않는다”, 둘째는 “아무 준비 없이 모임을 나간다”는 것이었다. 모임에서 요직을 맡지 않고 겉절이로 지내면서 아무 준비 없이 느끼고 발언해야 진정으로 ‘노동자의 벗’도, 노동조합도, 사회진보연대도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내가 이 활동을 좋아하는 만큼 꼭 이 활동을 성공리에 마무리 해야 한다”라는 강박에서 벗어나자, 마음에서 우러나는 연대활동을 할 수 있었다. 제삼자의 시선으로 노동조합을 바라보는 일도 제법 즐거워졌다. 무엇보다, 나 자신의 템포에 맞추어 활동을 이어가고 싶다는 용기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정말 다행이다. 
 

3. 다시 활동하기로 결정하며

사실 사회진보연대 정회원으로 다시 활동하기로 결정하고 글을 마무리하는 이 순간까지도 나는 스스로를 사회진보연대에서 활동하기에 한참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지금까지 나는 실무 수습 기간이니, 노동자의 벗 활동이니 하는 좋은 구실로 서울지부 회원모임 참석 외에는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회비 내고 회원모임 참석 외에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열심히 자신의 공간을 갖고 전업으로 활동하시는 다른 회원 동지들을 보면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내가 시험 준비하겠다고 내팽개쳤던 활동을 묵묵히 이어가고 있는 분들을 보면, 민망함에 눈 둘 곳을 못 찾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사회진보연대에 갖고 있는 애정과 특별한 감정은 다른 어떤 회원보다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민망하지 않은 척 하면서 다시 사회진보연대 정회원으로 활동하기로 결정했다. 주장 자체의 타당성보다 ‘누구의 편’에 서서 주장을 하는지가 더 중요해져 버린 한국 사회에서, 사회진보연대는 정말로 귀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주어진 ‘루틴 활동’인 회원모임부터 잘 참석하되, 앞으로 나와 같은 ‘생활인 회원’도 제 몫을 할 수 있는 활동을 만드는 일에도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조심스레 다짐해본다.  
 

4. 내 마음이 움직이는 활동을 하기 위하여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회원 동지들과 나눠보고자 한다. 노동조합 일을 하다 보면, 사회단체에서 일을 하다 보면, 또는 아무튼 “활동” 그 자체를 업으로 삼으면, 좋아서 시작한 활동에 내 마음이 전혀 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 깨닫는 것 같다. “뭐든 좋았던 일이라도 생계 수단이 되면 다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사실은 활동이 주는 중압감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투쟁을 하면 조직해야 하고, 조직해야 하니 설득해야 하고, 설득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강변하는 일이 활동의 전부가 되지 않는가. 결국 활동도 이를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의미가 있을 텐데, 나조차도 그것이 참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이 움직이는 활동”을 나도, 주변의 동지들도 포기하게 하고 싶지 않다. 잠깐 쉬어가도 괜찮으니, 우리의 활동이 서로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 움직임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기를 바라며 부족한 글을 마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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