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2024 가을. 1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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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가

원한의 정치와 우파식 행동주의, 헌정 파괴

정성진 | 정책교육국장

미국 대선이 두 달 남았다. 글을 쓰는 시점에서 해리스 후보가 트럼프를 근소하게 앞선다는 관측이 많다. (8월 30일 기준 뉴욕타임스의 여론조사에서 해리스와 트럼프의 지지율은 49% 대 45%인데 다른 기관의 수치도 대부분 이와 유사하다.) 물론 아직 시간이 꽤 남았기에 누가 당선될지 예측할 수는 없으나,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트럼프가 당선되든 안 되든 골칫거리가 되리라는 점이다.

트럼프가 당선될 시 발생할 문제는 이후 임지섭의 「더욱 강해져서 돌아온 트럼프 경제정책의 위험성」과 김진영의 「미국 공화당의 변화와 트럼프의 귀환이 열 ‘미국 없는 세계’」에서 다룰 것이다. 그가 낙선한다면, 2021년에 국회의사당 점거 사태를 일으켰던 것처럼 또다시 대선 결과에 불복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올해 이미 여러 번 대선에 관한 음모론을 제기했다. 가령 자신에 우호적인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Truth Social)에서, 그는 민주당이 불법 이민자를 이용해 선거를 왜곡하고 있다거나, 정부가 선거에 간섭하고 있다는 주장을 지지자에게 설파해왔다. “[민주당이] 수백만 명의 불법 이민자를 범람시키고 … 우편 투표를 합법화하며, 서명 검증과 시민권 증명 요구사항을 없애도록 주(州) 투표법을 변경하려 한다”, “법무부와 FBI가 민주당의 2024년 대선 캠페인을 운영하고 있다”, “[자신이 기소된 사건의] 파니 윌리스 검사는 … 2024년 대통령 선거에 간섭하는 음모를 꾸몄다”와 같이 말이다.

트럼프가 이외에도 결함이 많은 인물이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그는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해서, 이를 기록하는 작업이 존재할 정도이다.) 처음 후보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 대통령을 이미 한 번 했으며, 그 와중에 의회에서 탄핵 소추를 두 번이나 당했고, 재선에 실패했으며, 지금도 여러 재판에 걸려 있는 이런 인물이 세 번 연속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다는 현실은 의아하다. 이런 결함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에 대한 지지가 여전히 강하게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2016년에 일본 아사히신문의 미국 특파원 가나리 류이치는 트럼프 돌풍을 취재하며 ‘어째서 트럼프인가?’라는 문제에 답하고자 했다. 8년이 지난 지금, 어째서 트럼프주의가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지금까지 꾸준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글은 두 가지 요인에 주목한다. 먼저는 아래로부터의 트럼프주의 운동이다. 글은 2016년 대선을 계기로 출현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이하 MAGA로 줄임) 운동의 참여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특히 러스트벨트의 노동자를 중심으로 이들이 어떤 불만을 품고 있는지, 왜 트럼프를 지지하는지 살핀다. 나아가 트럼프주의 운동이 그러한 불만을 조직하는 방식을 검토하며 트럼프 지지자들의 정신세계를 설명하고, 그런 토대 위에서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가 극심해졌음을 확인할 것이다. 두 번째 요인은 트럼프주의가 일으킨 미국 정치제도 차원의 변화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시기가 중요하다. 이때 공화당이 트럼프주의 정당으로 변모했고, 대통령 트럼프는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를 장악하려 했다. 한편 트럼프 개인을 넘어 트럼프주의자 지식인 집단의 세력화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트럼프주의의 영향력이 확산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글은 마지막으로, 이런 현실의 심각성을 인식하며 생각해볼 지점들을 제시할 것이다.
 
 

1. 이른바 ‘개탄스러운 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트럼프가 처음 정치무대에 등장했던 2015~16년부터 되짚어보자. 이때 최초의 트럼프 지지자들이 ‘난 개탄스러워’(I’m deplorable)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일어섰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이 폭발했다. 이 구호는 2016년 대선 당시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의 발언으로부터 나왔다. 그녀는 9월 9일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자금 모금 파티에서 트럼프 지지자 중 절반은 “개탄스러운 자들의 집단”(basket of deplorables)이고 “인종차별주의자, 성차별주의자, 동성애혐오자, 외국인혐오자, 이슬람혐오자”라고 발언했다. ‘deplorable’은 ‘개탄스럽다, 한심하다, 비참하다’라는 뜻이다. 클린턴의 발언에 트럼프 지지자들은 분노하며 결속했고, ‘[그래] 난 개탄스러워’라는 구호가 크게 유행했다.
 
가령 전직 병원노동자 여성 샌디 앨버레즈는 이렇게 말했다. “일해도 일해도 월급이 오르지 않는 삶이 ‘개탄스럽다’는 것쯤은 우리 자신이 제일 잘 알아요! 20년 넘게 워싱턴 정계에 있는 힐러리한테만큼은 듣고 싶지 않아. 왜냐하면 힐러리한테는 노동자의 삶에 일부 책임이 있잖아요?” 사실 클린턴의 발언은 정체성을 기준으로 한 차별을 비판했다는 점에서 문화전쟁(cultural war)의 측면이 있었지만, 많은 트럼프 지지자는 이를 특권층이 서민을 깔보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1) 트럼프 돌풍의 주역은 백인 노동자계급?

트럼프를 당선시킨 MAGA 운동의 주역이 누구인가에 관하여, 주요 언론은 2016년 대선 출구조사 자료를 분석하며 ‘백인 노동자계급’(working-class whites)의 역할에 주목했다. ‘러스트벨트’(Rust Belt, 쇠락한 공업지역)라 불리는 북동부·중서부의 경합주(swing state, 선거 때마다 지지하는 정당 후보가 바뀌는 주)에서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해왔던 그 집단이 트럼프 쪽으로 전향함으로써 ‘이변’을 만들어 냈다는 분석이다. 

다만 당시 출구조사 결과를 두고 ‘백인 노동자계급’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응답자의 연령, 성별, 인종, 소득, 학력은 조사됐지만, 직업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저소득이 곧 노동자임을 뜻하진 않는다.) 어쨌든 이 변수들 중 소득, 인종, 학력을 기준으로 2004년부터 2016년까지 대선 출구조사 자료를 대조하면 아래와 같다.
 

소득별로 보면, 2016년에도 과거 대선들과 마찬가지로 하층에서는 민주당 지지율, 상층에서는 공화당 지지율이 더 높았다. 다만 12년 대비 16년에서 하층에서 공화당 지지율 상승, 반대로 상층에서 민주당 지지율 상승이 돋보인다. 인종별로 보면, 전통적으로 백인과 이외 인종 간 지지정당 차이가 유지됐으나, 12년 대비 16년에 모든 인종에서 비슷하게 공화당 지지율이 증가했다는 점에서, 인종이 지지율 변동의 중요한 요인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2012년에서 2016년 사이의 지지율 변화의 정도를 기준으로 했을 때, 가장 중요한 변수는 백인 내에서 교육수준 차이였다. 2012년과 비교했을 때, 대학 학위가 없는 백인의 공화당 지지율이 치솟았던 반면, 대학 학위가 있는 백인의 민주당 지지율이 상승해 공화당 지지율에 근접했다. 

정리하면, 2012년과 비교했을 때 2016년에 민주당에서 공화당 지지로 이동한 주요 집단은 소득수준이 낮은 집단과 대학 학위가 없는 백인 집단이었다. 반대로 소득수준이 높은 집단과 대학 학위가 있는 백인 집단에서는 2012년과 비교해 2016년에 민주당 지지율이 상승했다. 양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이 2016년 대선을 계기로 변화한 것이다.
 

2) 러스트벨트 노동자들의 목소리

출구조사 자료로는 이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인지 깊이 추적할 수는 없다. 서두에서 소개한 가나리 류이치는 러스트벨트에서 민주당으로부터 트럼프 지지로 전향한 이들을 취재했다.

이들은 주로 대도시가 아닌 지방의, 은퇴한 고령 노동자층과 실직하거나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일자리로 몰린 청년·중년 노동차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가나리는 이들을 ‘몰락하는 중류계급’이라 표현했는데, 몇 명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먼저 오랫동안 노동조합원으로 활동하며 줄곧 민주당을 지지했고 당 지구위원도 역임한, 전직 제철소 노동자 조셉 슈로딘(2016년 당시 62세)의 이야기다. 그는 러스트벨트와 같은 지역이 겪은 일자리 변화를 설명한다. 

“이 주변의 블루칼라는 다들 민주당을 지지했었는데, 미국은 자유무역에서 연패하고 있고 제조업도 멕시코로 나가버렸어. 여기에 남아 있는 건 월마트와 K마트로, 딴 나라의 제품을 파는 일뿐이지. 나는 현역 시절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일급으로 200달러(약 22만 4천원)는 받았어. 근데 지금 서비스업 종사자는 기껏해야 시급으로 12달러(약 1만 3천 원)를 받지. 그 돈으로 젊은이가 생활할 수 있을 리 없잖아? … 대학을 졸업할 때 이미 10만 달러(약 1억 1천만 원)의 빚을 지고 있는데, 만족스러운 일자리조차 찾을 수 없다니, 어떻게 된 건지! 난 고등학교 졸업 전부터 돈을 벌었는데. … 이제 정당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어. 미국을 강력하게 재건하기 위해서는 트럼프 같은 사업가가 필요해.”

다음은 청년 여성 데이나 카즈맥(당시 38세)의 이야기다. 그녀는 어머니가 점장으로 일하던 식당에 취직해 함께 일했다. 

“2012년 10월에 제가 일하던 가게가 폐점 위기에 빠졌어요. 트럭 교통량이 격감한 게 이유였어요. 제가 일하기 시작했던 1990년대부터 이미 제철소가 차례로 폐쇄되면서 손님도 조금씩 줄기 시작했어요. 16년간이나 근무했던 식당이 문을 닫으면서 엄마랑 같이 동시에 실업자가 됐어요. … 근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고등학교 때 친구의 40%가 이미 마을을 떠났더라고요. 이 직업 저 직업을 전전하는 애도 많았어요. … 여기서 젊은이가 밝은 미래를 그리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겨우 남아 있는 제철소에서 일자리를 구한다면 좋겠지만 그것 외에 일자리라고는 음식점하고, 소매점하고, 병원뿐이니깐요. … 그래서 지금도 카페하고 바에서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일하고 있는 거에요. 임금이 싸니까 아무래도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죠. 흔히 말하는 워킹푸어(working poor)에요.” 

가나리는 지방의 청년·중년층 사이에 확산하는 마약 문제의 심각성도 지적한다. 미국 내 다른 인종 및 연령층은 의료 발전의 영향으로 사망률이 낮아지고 있는 데 반해, 예외적으로 미국 백인 남성(45~54세)의 사망률만 높아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언급하면서 말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고졸 이하 중년 백인의 사망률이 눈에 띄게 상승했는데, 원인은 질병이 아닌 자살과 약물 남용이었다. 앞서 데이나 씨의 남동생도 그 사례다. 그는 2008년에 제철소가 폐쇄되면서 실직한 후 4년 뒤 33살 나이에 헤로인 중독으로 사망했다. 실의에 빠져있었던 데이나를 다시 일으킨 것은 트럼프의 연설이었다. 

“솔직히 말해 동생이 죽기 전까지는 정치에 관심이 전혀 없었어요. … 투표조차 해본 적이 없어요. 그랬던 제가 트럼프를 응원하는 데 나선 거예요.”

펜스 공장의 노동자 로니 리카도나(당시 38세)는 이주민 가정 3세대로 트럼프의 인종차별적 발언에 거부감을 느낀다. 게다가 항공관제사로 근무하던 아버지가 레이건 정권 때 해고당한 후 앞으로 공화당을 찍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 그도 트럼프를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근무하는 펜스 공장은 전 세계에서 쇠파이프랑 철관을 수입해. 놀랍지 않아? 예전에 이 일대는 세계 유수의 철 생산지였었는데 지금은 인도, 중국, 이탈리아에서 수입을 한다니까. 이 도시는 지역 경제가 붕괴한 ‘쇠락한 도시’야. … 여기에서 꼼짝도 할 수가 없어. 꼼짝도 못 한 채 성장 가능성이 없는 일을 하고 있어. … [공화당을 찍지 않겠다고 맹세했었지만] 지금의 생활, 그리고 도시를 생각하면 이번에는 트럼프를 찍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는 오바마하고는 정반대로 품위가 없어. 하지만 생각하는 바를 솔직하게 말하지. … 그 녀석은 상대가 권위 있는 사람이라도 기죽지 않고 맞받아치는 카우보이야. 엘리트가 지배하는 워싱턴을 부수기 위해서는 그 정도는 되는 꼴통이 필요해.”

고등학교 졸업 후 자동자 관련 공장 12곳을 옮기며 일했고, 최근 근무했던 자동차 부품 공장이 폐쇄되며 해고된 레트 로(당시 51세)는 이렇게 말했다. 

“난 별다른 큰 걸 바라는 게 아냐. 성실하게 일하면 평범하게 살 수 있던 예전의 미국으로 회복시켜주길 바랄 뿐이지. … [기업들은] 미국 노동자를 생각하지 않게 됐어. 주주 이익의 최대화를 위해 노동자를 버리고 아무렇지 않게 해외로 이전해. 그리고 그런 기업이 대통령 선거 후보에게 거액의 헌금을 갖다 바치지. 그 돈을 받는 정치인에게 당당히 맞설 수 있는 건 트럼프뿐이야.”

본래 미국은 성실하게 일하면 평범하게 살 수 있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은 반대로 누군가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 ‘공평하지 않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가령 전직 보안관대리 데이비드 에이(당시 52세)는 이렇게 말했다. 

“대략 10~15년 전부터 민주당은 노동자한테서 긁어모은 돈을, 사실은 일할 수 있는데 일하려고 하지 않는 놈들에게 나눠주는 정당으로 바뀌었어. 돈을 노동자 계급에게 지불케 하는 정당이 된 거야. … 불법 이민자와 일하지 않는 놈들의 생활비를 우리가 지불하고 있다는 건 사실 다들 진작부터 눈치채고 있었어. 문제라는 것은 알았지만 우리에게 여유가 있어서 생활에 별다른 영향이 없었을 때는 그냥 방치했었지. 그런데 수입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고, 더는 예전 같은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을 때 많은 중류계급이 ‘더는 남의 생활비까진 지불하지 못하겠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어. … ‘일을 공평하게 처리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한계에 달하려는 시점에 트럼프가 등장한 거야. 우리가 생각하던 것을 한 번에 대통령 선거의 중심 테마로 부상시켜주었어. 그것만으로도 트럼프에게 감사해.”

뒤의 3절에서 공화당 유권자의 이념적 구성을 보겠지만, 러스트벨트의 트럼프 지지자들의 목소리가 공화당 지지자 전부의 견해는 아니다. 허나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라는 순리가 이제는 지나간 유물이 되어버렸다는 허무감과 세계화, 국제무역과 금융, 엘리트, 불법 이민자, 마약 등에 대한 반감이 트럼프 열풍과 MAGA 운동의 근원에 있던 것은 사실이다. 이런 불만과 분노 위에서, 노동자들은 기존 엘리트 정치인과는 다른 트럼프를 지지하게 됐다.
 

3) 소결

이 절은 8년 전 상황을 묘사하나, 2016년 이래 지금까지 트럼프 지지층의 인적 구성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분석이 많다. 2020년 대선을 계기로 이탈자가 조금 있었으나 8년 전의 지지층이 거의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트럼프 행정부 이후에도 여전히 그를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평가는 처참하며, 이 탓에 공화당은 2018년 하원의원 선거와 2020년 대선에서 패배했다. 지금까지 본 불만의 목소리를 트럼프가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했음에도 그 지지가 지속한 이유를 알려면, 지난 8년 간 트럼프 지지층의 질적 변화, 즉 트럼프주의가 점점 더 강력해진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
 
 

2. 트럼프 행정부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주의는 어떻게 강해졌는가?

 
이에 답하려면, 트럼프 지지자들이 여러 실천을 통해 재생산하는 트럼프주의의 논리 내지는 “감정적-도덕적 틀”(emotional-moral framework)을 살펴봐야 한다. 트럼프는 이 틀을 16년 대선 캠페인에서, 나아가 재임 중에 수많은 집회를 통해 발전시켰다. 그 감정적-도덕적 틀로써 트럼프는 자신의 지지층을 단지 현실의 특정 문제에 각기 불만을 가진 이들로부터, ‘복수심에 불타는 피해자’로 변모시키고 동질화하는 데 성공했다. 당선 이후 트럼프 역시 지지자들의 복지에 책임을 지는 지위에 있다는 점에서 대선 캠페인 당시의 동원력이 지속하지 않을 가능성이 지적됐으나, 트럼프는 매우 이례적인 방식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실패의 책임을 되려 자신에 대한 강력한 지지로 전환했다. 

재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수행하기보다는 ‘운동을 주재하는’ 활동가처럼 행동했다. “다른 대통령들은 선거 캠페인 차량에서 백악관으로 넘어오면, 국가를 통합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워싱턴에 처음 도착한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정치적 싸움을 즐기는 듯 했다. 그는 뉴스 미디어부터 자신의 행정부 내부의 구성원들, 양당의 선출된 공직자들, 외국 국가 원수에 이르기까지 식별된 적들의 긴 목록을 비판하는 데 대통령의 메가폰을 사용했다. 대통령으로서 보낸 2만6천 개가 넘는 트윗은 그의 생각을 광범위한 이슈에 대해 솔직하고 실시간으로 제공했다.” 

트럼프는 재임 기간 4년 동안 집회에 158회 참석했는데, 이는 역대 대통령 중 이례적으로 높은 수치다. 158회는 취임 후 집회 10회, 2018년 중간선거 집회 46회, 2020년 이전의 선거운동 집회 5회, 공화당 예비선거운동 관련 28회, 2020년 선거운동 집회 66회, 선거 후 집회 3회로 구성됐다. 주로 트럼프 자신이나 공화당과 관련된 각종 단체가 연 집회에 연사로 참여하는 식이었다.

트럼프가 참석한 수많은 집회, 나아가 MAGA 운동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혹자는 “대통령으로서 트럼프의 과제가 ‘지지자들을 끊임없이 분노 상태에 두는 것’”이라 설명했다. 어떻게 이를 실현할 수 있었는가? 먼저 그런 집회와 운동 속에서 발전한 ‘감정적-도덕적 틀’을 설명한 후, 지지자들이 이를 확대재생산하는 방식을 살펴보겠다. 핵심적으로, 그 운동은 1960~70년대 흑인운동이나 여성운동으로부터 “역사적으로 소외된 집단에 대한 인권 수사학”, 일회적인 분노를 영구화하여 대중을 주체화하는 방법론을 차용했다.  
 

1) 트럼프주의의 ‘감정적-도덕적 틀’

트럼프가 활용하는 수사법(rhetoric)의 ‘감정적-도덕적 틀’은 다음의 네 단계로 정리할 수 있다.

① 청중이 각자 느끼는 특정한 고통, 부정적 감정을 사회화하며 공적인 것으로 전환한다. “우리의 도심지에서 빈곤에 갇힌 어머니와 아이들, 나라 곳곳에 무덤처럼 흩어져 있는 녹슨 공장들, 젊고 아름다운 학생들을 지식 없이 내버려 두는 교육 시스템, 너무나 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우리의 실현되지 않은 잠재력을 훔쳐 간 범죄, 갱단, 마약. 이 미국의 참상은 지금 여기서 끝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국민(nation)이고, 그들의 고통은 우리의 고통입니다. 그들의 꿈은 우리의 꿈이며, 그들의 성공은 우리의 성공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마음, 하나의 집, 하나의 영광스러운 운명을 공유합니다.” 트럼프는 자신의 지지자 중 가장 취약한 누군가의 사례를 언급하면서도, 그 구체적 고통과 분노를 보다 일반적인 개념으로 전환시켜, 가령 자신이 실직한 광부가 아닐지라도 그 감정에 강렬히 이입할 수 있게 한다. 이는 지지자들 사이의 여러 차이(계층 등)를 삭제하여 ‘우리’를 형성하는 효과가 있다.

타인의 상처에 수반되는 분노를 공유하는 것이 ‘국민’이라 지칭되는 정치적 공동체의 토대가 된다. 즉 여기서 ‘국민’이란 “공유된 트라우마에 의해 통합된 집단”을 뜻한다. 트럼프는 미국을 “버려진 공장과 부식된 기반시설의 잔해로 뒤덮인 묵시론적 황무지 … 범죄조직, 불법 이민자, 외국 경쟁자들로 이루어진 외부세력에 사로잡혀 모욕당하는 곳”으로 묘사하며, 국민을 “불만을 품고, 원한을 가지며, 불공정하게 대우받고, 무력하며, 경제적 불운과 통제할 수 없는 세계적 요인 탓에 모욕당했다고 생각하는 특정한 문화적 인물”로 좁혀서 규정한다.
 

② 공유된 고통과 분노를 도덕적이며 정당한 것으로 추켜올린다. 거꾸로 말해, 이를 느끼지 못하고 ‘상처받은 이’를 비판하는 인물은 부도덕적이고 악한 자다. 이렇게 감정의 공유를 통해 일회적 고통과 분노를 도덕적 선악 관념으로 잇는 것을 “피해자 의식”이라 부를 수 있다. ‘국민’은 훌륭하며 덕성이 있기에, 악한 자들로부터 공격받는다. 가령 2018년에 트럼프가 연방대법관으로 지명한 브렛 캐버노가 성폭력 혐의로 고발당하자, 집회에서 트럼프는 그를 고발한 여성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이 여자는 완벽한 인간, 훌륭한 아버지, 훌륭한 남편에게 가장 끔찍한 혐의를 제기했습니다. … 한 남자의 삶이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그의 아내도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그의 딸들, 아름답고 놀라운 젊은 아이들이... 그들은 사람들을 파괴하고 싶어 합니다. 그들은 정말로 악한 사람들입니다.” 상술했듯 자기 지지자의 특정한 고통을 공유하면서도 구체적 상황으로부터 분리하여 도덕적인 것(‘훌륭함’)으로 전환시킨 후, 이를 공격하는 행위를 악(惡)으로 판단하며 “집단적 선(善)을 전도”시킨다.

③ 악한 자들에 대한 복수의 권리와 투쟁을 주장한다. 즉 도덕성에 기초하여 폭력을 정당화한다. 가령 트럼프는 이민 문제를 논하며, 자신의 행정부가 범죄조직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는 하나하나씩 불법 갱단원, 마약 딜러, 도둑, 강도, 범죄자, 살인자들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 마약으로 우리 공동체를 오염시키고 무고한 젊은이들, 이 아름다운 젊은이들을 노리는 포식자들과 범죄자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안전한 피난처를 찾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피에 굶주린 범죄조직을 해체하고 파괴하고 있습니다. … 우리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방식으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거칠게 하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자신과 지지자에게 가해진 상처에 대한 보복을 요구하며, 나아가 피해를 입은 사람의 복수를 올바른 행위로 승격시킨다. 사소한 모욕과 상처라도 응징적 폭력으로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다.

④ 그러나 ‘적’은 너무나 거대하고 추상적이다. 트럼프가 열거하는 외부의 적은 다양하며 정체를 알 수 없다. “오랫동안 세계를 지배해 온 부패한 세계화주의자 통치계급”, “엘리트”, “좌익적 혐오자”(‘정치적 올바름’을 말하는 자), “딥스테이트 급진주의자”(딥스테이트란 미국 정부 깊숙히 사익을 추구하는 지배계급이 숨어 있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기득권층의 동료”, “가짜뉴스의 동맹”, “MS-13”(갱단 이름), “이민자”, “중국”, “이슬람 테러리스트”, “이들에게 인질로 잡혀 있는 민주당” 등 말이다. 결국은 민주당이 그들의 대표자이나, 그 배후에 일관되지 않은 온갖 집단이 암약하고 있다. 이런 생각은 두 가지 결론으로 이어진다.

첫째, 적들의 행위는 음모적이며 비민주적이다. “유권자들에 반(反)하여 자기들만의 비밀 의제를 추진하는, 선출되지 않은 딥스테이트 요원들이야말로 민주주의에 대한 진정한 위협이다.” “그들은 모든 공정성, 품위, 그리고 정당한 절차의 개념을 위반한다.” 그렇기에 상술했듯, 이들에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맞설 수 없으며 폭력적 투쟁이 필요하다.

둘째, 그럼에도 적이 은밀하고 강력하기에, ‘국민’의 투쟁은 영원히 승리할 수 없다. “복수, 증오, 악의, 질투는 종종 명확한 대상에 대해 형성되며, 특정 이념적으로 유도된 행동에 의해 충족될 수 있다.” 따라서 “해결불가능한 적”을 상상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장벽을 제시함으로써, 감정적 긴장상태를 유지한다. “악을 치유하길 원하지 않는다. 악은 단지 비판의 구실일 뿐이다.” 힐러리 클린턴을 정말로 감옥에 넣는다면 ‘그녀를 감옥에 보내라!’라고 더는 외칠 수 없게 될 것이다. 트럼프는 집회에서 청중의 분노를 일정 정도 해소하지만, 다시금 더욱 거대한 적에게 겪은 패배와 굴욕의 경험을 공유하며 만족감을 사라지게 하고, 새로운 분노의 저수지를 구축한다. ①로 돌아가는 것이다. 
 

트럼프는 이렇게 “정권을 잡았음에도 지지자들의 ‘정치적 유배’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대통령직 첫 2년 동안 입법, 행정, 사법부 모두에서 보수파가 다수였음에도, 트럼프는 일관되게 자신과 지지자들을 연약하고 불안정한 소수자로 묘사했다.”

이러한 감정적-도덕적 틀 위에서 트럼프는 자신이야말로 ‘국민’의 고통과 분노를 가장 잘 공감하며 대변하여 투쟁할 수 있는 인물이라 주장했다. “매일 아침 저는 이 나라 전역에서 제가 만난 무시당하고, 소외되고, 버려진 사람들을 위해 일하기로 결심합니다. 나는 해고된 공장 노동자들과 끔찍하고 불공정한 무역 협정에 짓밟힌 공동체들을 방문했습니다. 이들은 우리나라의 잊혀진 남성과 여성들입니다. 열심히 일하지만 더 이상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당신들의 목소리입니다!” 

트럼프는 자신이 음모적 지배계급에 포섭되지 않은, 자수성가한 부자이며 독립된 권력을 갖고 있기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바로 이 탓에 자신은 적들의 최우선 표적이 되었다. “이민 문제에 관해서 … 여러분이 ‘그거 정말 끔찍하다’라고 생각하더라도, 누가 여러분의 말을 들어주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적]이 저를 대하는 방식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공격받습니다. 저보다 더 많이 공격받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저는 우리나라를 위해 가장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지만, 언론은 저를 나쁘게 보도할 것입니다.” 자신이 ‘우리’를 대표하기에 공격받으며, 자신에 대한 공격은 곧 ‘우리’에 대한 공격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④에서 봤듯, 트럼프는 적의 공격이 너무 거대하며 자신의 힘이 모자라기에 자신에게 더 큰 지지와 권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대선 승리 후 “저는 비열한 힐러리 클린턴을 상대할 특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비열한 클린턴을 이겼습니다”라며 만족감을 드러냈지만, 그녀의 범죄를 조사하라는 요구가 무시당하는 상황을 언급하며 “그녀가 어떻게 무사히 빠져나가고 있는지를 보십시오”라고 허탈감을 표현했다. 대통령의 권한에 대한 견제가 복수에 해가 된다고 지적하면서 말이다. “가장 슬픈 것은, 내가 미국의 대통령이기 때문에 법무부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나는 FBI에 관여해서는 안 됩니다. …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는 점이 정말 답답합니다.” 요컨대 법치와 권력분립의 원리 대신, 적들에게 복수할 수단으로서 대통령 권력의 무제한적 강화를 요구한다.
 

2) MAGA 운동에서 ‘피해자 의식’의 훈련

대중적인 MAGA 운동 역시 이런 ‘감정적-도덕적 틀’을 따른다. 나아가 운동의 참여자들은 의도적으로 ‘적’의 부정적 반응, 비난을 유도함으로써 “피해자 의식”을 “훈련”하기까지 한다. 가령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문화박물관과 같은 곳에서 MAGA 상징물을 착용하고 과시함으로써 ‘적’에게 공격당하려 하는 것이다. 이런 연습은 ‘정치적 올바름’의 방식을 모방하는 양상을 띤다.

MAGA 운동의 참여자는 전통적인 인권운동의 행동방식(가령 불복종운동)을 차용하여 자신에 대한 비난을 ‘피해자 의식’으로 전환한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 클로비스노스 고등학교는 학생이 MAGA 상징물을 착용하지 못하게 했는데, MAGA 운동가들은 학교의 이런 조치가 학생의 기본권 침해라고 주장한다. “아이들은 빨간 MAGA 모자를 쓸 용기를 가졌기 때문에 표적이 되었다.” “좌파는 당신이 원하는 무엇이든 입을 권리를 빼앗으려 한다.” 심지어 여성운동이 해왔던 말을 빌리기도 한다. “[‘정치적 올바름’을 말하는] 당신이 강간을 당한 여성에게 ‘저런 치마를 입고 있으면 당연히 그럴 만하지’라는 말을 한다면 어떨까 상상해보라. 이는 말도 안 되는 것이다.” MAGA 상징물을 착용한 사람들이 상점과 식당에서 서비스를 거부당한 사례에 대해, 과거 흑인운동이 흑인이 겪는 일상적 차별을 증언했던 방식을 모방하기도 한다.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무례하게 굴지 않았다. 그저 친구들과 커피를 즐기며 앉아 있었다. … 그런데 직원들이 테이블을 둘러싸고 손가락질하며, [MAGA] 모자가 벗겨질 정도로 머리를 세게 때리겠다고 위협했다.” “만약 오바마의 ‘HOPE’ 티셔츠를 입은 사람을 향한 반발이 있었다면, 진보주의자들이 뭐라고 말했을지 상상해보라.”
 

트럼프 지지자는 반복적으로 스스로를 위험에 노출시키며, 그 과정에서 자신이 진보주의자로부터 굴욕당한 경험을 기록하고 공유하며 주체화한다. 특히 2020년 대선 이후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졌고, 국회의사당 점거 사태에서 기이하게 드러났다. 가령 공화당의 폴 고사르 하원의원은 의사당 하원 회의실로 침입하려다가 경찰에 의해 치명상을 입은 애쉴리 배빗을 “처형당했다”라고 표현했다. 다른 한 시위자는 소셜미디어에 널리 유포된 비디오에서 자신이 최루탄을 맞았다고 호소하며 어떻게 이런 ‘탄압’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분노했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행정부에 이르는 시기에 미투 운동과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이 잇따라 일어났음을 상기하자. 이들과 대립하고 그 행동방식을 모방하며 MAGA 운동이 발전했다. 이렇게 2010년대 후반 ‘문화전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미국 유권자의 정치적 양극화가 매우 심해졌다.
 

3) 정치적 양극화와 엇갈린 트럼프 행정부 평가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6년 대선 캠페인과 대통령 재임 기간을 거치며 트럼프는 지난 30년 동안의 어느 대통령보다 공화당과 민주당을 갈라놓았다. 그의 재임 기간에 걸쳐 평균적으로 공화당원의 86%가 트럼프의 직무 수행을 긍정했으나, 민주당원에서 그 수치는 6%에 불과했다. 이는 여론조사가 생긴 이후 어느 대통령보다도 가장 넓은 정당 간 격차였다. 참고로 트럼프 1기 행정부에 대한 전체 평가 여론은 다음과 같은데, 전반적으로 역대 정부보다 좋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 이전까지는 경제지표가 나쁘지 않았으나, 이후 실업률이 치솟았으며, 전체적인 평가 여론도 더욱 안 좋아졌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 수행뿐만 아니라 그 개인에 대해서도 극심히 분열됐다. 2019년 설문 조사에서, 공화당원 중 적어도 4분의 3이 대통령의 발언이 때때로 또는 자주 희망적이거나, 즐겁거나, 정보를 제공하거나, 행복하거나, 자랑스럽게 느끼게 했다고 답했다. 반면, 민주당원은 더 큰 비율로 대통령의 발언이 때때로 또는 자주 그들을 우려하게 하거나, 지치게 하거나, 화나게 하거나, 모욕감을 주거나, 혼란스럽게 했다고 답했다.

정치적 가치와 이슈에 대해서도 공화당원과 민주당원 간의 견해 차이가 크게 벌어졌다. 열 가지 주제에 관한 설문에서 공화당원과 민주당원 간 응답의 격차는 1994년에 15%였던 반면 2017년에는 36%로 벌어졌다. 특히 인종, 성별, 고등교육에 관한 견해가 그러했다. 가령 2015년에서 2017년 사이에 대학교가 미국의 상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응답한 공화당원의 비율이 37%에서 58%로 상승한 반면, 민주당원의 약 70%는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 재임 기간에 공화당원과 민주당원이 동의한 몇 안 되는 사항 중 하나는 그들이 동일한 사실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2019년 조사에서 미국인의 73%가 공화당과 민주당 유권자가 정강·정책뿐 아니라 ‘기본적인 사실’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고 답했다. 그 원인은 가짜뉴스와 잘못된 정보인데, 2019년에 미국인의 절반은 이것이 미국의 심각한 문제라 답했다.
 

특히 정권에 위기를 가하고 지지율을 낮춘 코로나-19 사태에 관해 트럼프가 확산시킨 음모론이 2020년 대선에 큰 역할을 했다. 트럼프는 이른바 ‘큐어넌(QAnon) 음모론’을 지지하고 퍼뜨렸다. 이는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인 엘리트가 대중을 통제하고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고의로 만들어진 생물학적 무기라는 주장이다. 이 음모론의 지지자들은 특히 민주당과 같은 특정 정치세력이 바이러스를 통해 정부의 통제를 강화하고 경제를 재편하려는 음모를 꾸몄다고 믿었다. 그들은 코로나 백신에 대해서도 부정적 시각을 견지했다. 백신이 인간의 건강을 해치거나, 인구를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고 여기면서 말이다. 

2020년 4월, 미국 성인의 64%가 팬데믹에 대한 날조된 뉴스와 정보를 최소한 어느 정도 보았다고 답했으며, 49%는 이러한 오보가 발병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에 관해 큰 혼란을 야기했다고 답했다. 2020년 9월에 미국인의 거의 절반(47%)이 이른바 ‘큐어넌 음모론’에 대해 들어봤다고 답했으며, 이 47% 중 대다수는 트럼프가 그 음모론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답했다. 대선 직후 2020년 11월 중순에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성인 10명 중 6명이 날조된 뉴스와 정보가 선거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답했다.

물론 음모론의 최고봉은 대선조작설이었다. 트럼프는 투표일 약 3개월 전인 2020년 8월에 “이 선거에서 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선거가 조작되는 경우뿐이다”라고 경고했다. 투표일 직후 그는 백악관에서 (밤늦게까지 투표 집계가 일반적임에도) 밤늦게 집계된 투표용지가 의심스럽다고 연설했다. “이것은 미국 대중에 대한 사기이다. … 우리는 이 선거에서 승리할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 우리는 선거에서 이겼다. … 모든 투표가 중단되어야 한다.” 선거인단이 바이든을 차기 대통령으로 공식 선출한 후에도 트럼프는 결과가 뒤집혀야 한다고 계속 주장했다. “이 가짜 선거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공화당원들이여, 움직여라!” 결국 이에 호응한 트럼프 지지자들이 ‘선거 도둑질을 멈춰라!’(Stop the Steal)라는 구호를 외치며 국회의사당을 무단으로 점거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이 초유의 사태에 관해서도 여론이 심히 갈렸다는 점이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2021년 1월 즉 의사당 점거 사태 직후에 공화당 지지자의 46%는 트럼프가 그 사태에 책임이 ‘전혀 없다’고 답했으며, 34%는 ‘일부 있다’고 답했다. 반면 민주당 지지자의 81%는 트럼프가 그 사태에 책임이 ‘매우 많다’고 답했다. 특히 2020년 대선에서 실은 트럼프가 이겼다고 답한 사람일수록 점거 사태에 트럼프의 책임이 없다고 답하는 비중이 높았다. 대선에서 트럼프가 ‘확실히 승리했다’라고 답한 공화당원의 82%와 ‘아마도 승리했다’라고 답한 공화당원의 63%는 점거 사태에 관해 트럼프의 책임이 ‘전혀 없다’라고 답했다. 심지어 사태 후 거의 1년이 지난 2021년 말의 조사에서도 공화당원의 3분의 2는 바이든이 합법적으로 선출되었다고 믿지 않았다. 게다가 63%의 공화당원은 사태 당시 트럼프를 비판했던 공화당 정치인을 용납할 수 없다고 답했다. 증거가 부족함에도 트럼프 지지자들은 ‘선거가 도둑질당했고 트럼프가 승리했다’는 생각을 견지한 것이다. 
 

4) 소결

트럼프는 당선된 이후에도 대통령이라기보다는 ‘활동가’로 행동하며 대중운동을 조직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2016년 이후 미투 운동이나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운동과 MAGA 운동 간의 거대한 ‘문화전쟁’ 속에서 유권자의 정치적 양극화가 극심해졌다. 그 가운데서 MAGA 운동 초기의 지지자들을 변모시켜 트럼프주의적 주체를 형성해내려는 시도가 성공했다. 이러한 극단적 운동 위에서 현실이 어떻든 트럼프를 무조건 지지하는, 동질적인 강경 지지층이 나타났다. 하지만 아래로부터의 흐름만으로 ‘어째서 다시 트럼프인가?’라는 질문에 충분히 답할 수는 없다. 다른 한편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의 정치제도에 준 충격도 살펴봐야 한다.
 
 

3. 트럼프는 공화당을 비롯한 정치제도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대통령 트럼프가 변화시킨 정치제도는 다시금 트럼프주의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요인이 됐다. 그중 먼저 레이건 이래의 공화당이 트럼프주의 정당으로 변모한 과정이 중요하다. 이는 상술한 아래로부터의 트럼프주의 대중운동과 이후 설명할 2016년부터의 정치제도 변화를 매개한다. 그다음 트럼프 행정부와 의회의 갈등,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부·사법부 장악 시도를 살펴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특히 2020년 대선 패배를 기점으로 트럼프주의를 표방하고 발전시키려는 정책집단이 어떻게 형성되고 세력화했는지 확인하겠다.
 

1) 공화당의 트럼프주의 정당화

정당과 그 지지자·당원 내지는 사회운동 간의 관계에서, 전자에 대한 후자의 영향력이 강화해온 데는 좀 더 긴 역사가 있다. (가령 정당을 보다 민주화하려는 취지에서 공개예비선거[open primary, 당원 자격 유무에 상관없이 투표할 수 있는 직접예비선거]가 도입된 것이 있겠다.) 지면상 그 역사를 모두 다룰 수는 없고, 2000년대 말에 출현한 티파티 운동이 공화당에 준 충격부터 살펴보겠다.

오바마가 승리했던 2008년 대선을 계기로, 미국 유권자의 인종 구성 변화 추세상 백인의 지지에 의존하는 공화당이 서서히 소멸할 것이라는 관측이 확산했다. 공화당 지도부는 이에 대응하여 지지층을 다변화하려는 전략을 추구하려 했으나, 이 시도는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선 직후 티파티 운동이 출현해 공화당원 사이에서 확산되며 무산됐다. 티파티 운동의 지향은 앞서 본 MAGA 운동과 약간 달랐다. 그 운동은 오바마 정부의 건강보험 개혁(오바마케어)에 맞서 작은 정부, 재정 건전성, 시장자유주의를 주창했다. 허나 엘리트 정치인보다는 당원 중심의 운동이면서 백인우월주의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티파티 운동은 MAGA 운동의 선례였다. “21세기 초 공화당 정치인들은 선거 패배를 두려워했다. 그러나 많은 공화당 지지자는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을 잃을까봐 두려워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나라였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 나라 안에서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였다.”

티파티 운동은 당에 대한 당원과 사회운동의 영향력을 강화했고, 공화당의 지지기반을 좀 더 반동적이고 인민주의적 방향으로 이동시켰으며, 테드 크루즈 등 전통적인 정치인 육성의 길을 밟지 않은 새로운 당 지도자들이 출현시켰다. 이는 MAGA 운동과 트럼프가 공화당에 침투하기 위한 길을 닦았다.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지명된 후 티파티 운동과 지도자는 상당 부분 트럼프주의 쪽으로 흡수되었다.
 

물론 티파티 운동세력의 공화당 진입이 2016년에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기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었다. 당시 민주당과 공화당을 대조해보면, 당 지도부의 분열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강하더라도, 당의 고참 지도자들이 특정 후보를 일관되게 지지하면서 당원들을 이끌 수도 있었다. 가령 2016년에 민주당에서도 버니 샌더스 돌풍이 있었지만, 저명한 민주당 정치인들이 전부 힐러리를 지지함으로써 그 영향력을 약화시켰다. 반면 공화당 지도부의 경우, 처음에는 젭 부시를 밀려 했으나, 승리할 확신이 없는 가운데 일부가 마르코 루비오나 테드 크루즈를 지지하는 등 당원에게 주는 신호가 분산됐다. 이렇게 지도부가 분열한 가운데 공화당 역사상 가장 많은 17명이 경선 출마를 선언했고, 당 활동가들은 혼란에 빠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선호대로 행동할 자율성이 높아졌다. 아래로부터의 MAGA 운동과 트럼프가 공화당으로 치고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상황 덕이었다.

당선 이후 트럼프가 공화당과 상호작용한 방식은, 앞서 대통령직 수행에 대한 평가와 마찬가지로 매우 이례적이었다. 이전의 공화당 대통령들은 자기 정부에 대한 더 넓은 층의 지지를 창출하고자 당을 지배하려 하고 당에 자원을 투자하려 했다면, 트럼프는 자신의 지지기반을 더욱 강경한 방향으로 이끌고, 자신의 개인적 권력을 증대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당을 변모시켰다.

먼저 트럼프는 ‘공포’를 통해 공화당원 및 의원들의 충성을 확보하고 반대파를 제거했다. 이전 당 지도자들은 설득이나 막후에서의 압박을 통해 자신을 따르게 했다면, 트럼프는 트위터라는 메가폰으로 MAGA 운동세력을 동원해 반대자들을 괴롭히는 데 집중했다. 민주당 상원의원 셰러드 브라운은 공화당 상원의원 동료들의 트럼프를 향한 충성심이 “두려움”에서 비롯했으며, 이 두려움은 충성스런 트럼프주의 활동가들로 이루어진 당 내외 네트워크의 (특히 온라인을 통한) ‘24시간 지원’에서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트럼프가 ‘무기력한 젭’이나 ‘거짓말쟁이 테드’와 같은 별명을 붙일까, 또는 자신의 불충성에 대해 트위터에 올릴까 두려워한다. 혹은 최악의 경우 트럼프가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자신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이기 위해 자신의 주에 올까 걱정한다. 그들은 이렇게 고민한다. ‘폭스뉴스 진행자들이 나를 공격할까?’,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들이 나를 공격할까?’, ‘트위터 트롤(troll)들이 나를 반대하는 여론을 조성할까?’ 내 동료들은 이 모든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물론 ‘채찍’만 사용한 게 아니라 자신에 충성하는 자들에게 ‘당근’도 주었다. 이를 위해 트럼프와 그의 팀은 수십 개 주의 당조직을 체계적으로 재편했다. 트럼프 백악관 정치국장 빌 스테피언과 백악관 공보국장 저스틴 클락이 이끈 그 팀은 전국을 돌며 트럼프가 선호하는 후보가 주 당위원장 선거에서 승리하도록 개입했다. 그 결과 2019년 말까지 트럼프 충성파가 42개 주에서 위원장에 임명됐다. 트럼프와 그 팀이 주 당위원장을 목표로 삼은 이유는 이들이 대통령 후보 재지명에서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팀은 주 당조직에 전국대회에 보낼 대의원 배정 계획을 변경하도록 지시했으며, 37개 주와 지역의 당조직이 이를 따랐다. 또한, 주 당위원장은 주 당조직의 모금 활동을 조율하고 지출 우선순위를 결정하며 특정 캠페인에 유급 직원을 지원하는 데 결정권이 있다. 트럼프는 이들을 통해 자기 뜻대로 당내 진급 경로를 형성하고, 선출직 공직에 대한 접근을 조정하며, 후보자들 간 경쟁을 관리하고, 자신에게 헌신적인 지지자들만 출마하도록 보장하며, 이들만이 당의 서비스와 지원을 받도록 하였다.

트럼프는 또한 상당한 자원을 당 활동가 육성에 투자했다. 2018년 선거에서 공화당이 하원을 잃은 후, 트럼프와 공화당 전국위원회는 공동 모금 활동으로 확보한 자금을 주 당위원회에 투입해 각종 선거를 지원하고 인력을 육성했다. 2019년 말까지 당은 2백만 명의 ‘자원봉사자 군대’와 이를 이끌 6만 명의 상급자를 훈련시키는 과정을 진행했다. 이 자원봉사자 군대는 풀뿌리 유권자 등록, 활동가 모집, 투표 독려 활동을 수행하며 트럼프의 지지층을 동원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에 대한 전례 없는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트럼프가 자부하듯 1기 행정부 시기에 트럼프와 공화당은 “완벽한 연결”을 유지했는데, 트럼프에 대한 공화당 유권자의 지지율은 2017년, 2018년, 2019년에 각각 83%, 87%, 89%를 기록했다. 그는 당을 철저히 사조직화하고, 자신을 정치적으로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트럼프는 2020년 재선 캠페인에 밀접하게 결합하는 “단일하고 효율적인 당조직”을 창출했다. 이는 오바마 대통령이 2012년 재선 캠페인에서 민주당과 다소 독립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것과 달랐다.

물론 트럼프 이전의 공화당 대통령들도 자신의 충성파를 당의 요직에 배치하고, 당의 운영을 장악하며, 당이 자신의 의제를 옹호하도록 요구했던 것은 마찬가지다. 공화당은 20세기 후반 대부분 의회와 주 정부 및 유권자 사이에서 소수당이었으며, 아이젠하워, 닉슨, 포드, 레이건, 부시 부자(父子)까지 공화당 대통령은 모두 공화당보다 인기가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공화당을 대통령의 정치적 브랜드를 더 잘 반영할 수 있도록 재편하는 것은 당의 세력을 확대하는 전략이기도 했다. 

트럼프와 이전 공화당 대통령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구축하는 전략 자체였다. 이전 공화당 대통령들이 당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했던 목적은, 자신의 정부에 대한 보다 넓은 층의 지지를 확보하고, 자신이 퇴임한 후에도 자신의 정치적 비전을 반영하고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공화당 다수파를 구축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공화당을 수평적으로 다양화하여 더 넓은 범위의 유권자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 공화당을 활용하고 당에 투자했다. 이런 전략은 대통령이 자신의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은 강화하나, 당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할 위험성이 있다. 범위를 넓히는 전략은 필연적으로 당내에서 새로운 후보들을 출현시키며, 그 새로운 후보들이 다시 더 넓은 범위의 새로운 유권자 집단을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당 지배력이 차츰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트럼프는 수직적으로 자신의 지지기반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지지기반을 확대하고자 할 때 동질적인 지지자들의 수를 늘리는 전략을 택했다는 것이다. 이런 목적에서 당내 반대파를 제거하고, 당 지도부를 자신의 충성파로 채우며, 당의 자원을 자신의 강경 지지층에 투자하고, 그들의 열정을 동원하는 순환을 만들어냈다는 점이 이전 공화당 대통령들과 트럼프가 다른 점이었다. 그는 선임자들의 외연 확장 전략을 기반 동원 전략으로 대체함으로써, 대통령과 정당 간의 전례 없는 일치성을 달성했다.

트럼프의 이런 전략은 2020년 대선에서 확인할 수 있듯 재선을 달성하지 못했다. 트럼프는 민주당 지지자나 부동층을 끌어오는 것보다 자신의 지지층이 한 명도 빠짐없이 투표할 수 있도록 강력히 동원하는 방식을 고수했다. 유권자 간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지는 가운데 이는 영리한 전략일 수 있으나,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 1기 행정부에 실망한 공화당 지지자, 특히 대도시 지역의 고학력자 집단이 일부 민주당 쪽으로 이탈하면서 결국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다만 이를 단지 실패로만 볼 수는 없다. “전통적 기준 즉 대통령이 자신의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의 측면에서 보자면 트럼프는 상당히 약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트럼프가 자신의 권위에 대한 더 근본적인 도전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트럼프의 당 건설 노력은 … 그의 권력 남용과 의심스러운 판단에 대한 방어막을 제공했다.” “강화된 지지기반과 당 조직, 그리고 잠재적 반대자들이 당 지도부로부터 추방된 상황에서, 당의 집단성은 대통령의 거의 모든 행동을 지지하는 응원단, 변호자, 비판 없는 지지자들의 통일된 전선을 형성한다. 이는 트럼프의 더 무모하고 위험한 충동(가령 폭력 선동, 선거 결과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 제기,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조사와 처벌 위협 등)에 대한 당의 집단적 찬성을 제공한다. 달리 말해, … 그의 행동에 ‘민주적 정당성’의 외양을 부여한다. … [이는] 당파적 양극화를 악화시키고, 사람들이 트럼프의 행동을 오직 그런 [당파적] 관점에서만 보도록 부추겼으며, 그리하여 헌정 체계(constitutional system)의 약화를 초래했다.” 

이는 2020년 대선 불복 사태에서 많은 공화당 하원의원이 트럼프의 선거 사기설을 지지했다는 점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살펴봤던 이 사태에 관한 공화당원의 태도에 더해, 공화당 의원의 다수도 적극적 지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침묵함으로써 트럼프의 행동을 묵인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나 밋 롬니 상원의원은 민주적 과정과 선거 승자에 대한 존중을 촉구했음에도, 2020년 12월 11일까지 196명의 공화당 하원의원 중 126명이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는 소송을 지지했다.
 

2) 공화당원의 이념적 구성

이러한 변모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른 공화당원의 이념적 구성을 살펴보자. 뉴욕타임스의 한 칼럼은 이를 다음의 6개 집단으로 분류했다.

① 온건파 기성세대(Moderate Establishment)
당원의 14%. 학력이 높고 부유함. 낙태나 동성 결혼과 같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는 온건하거나 심지어 진보적. 이민, 무역, 외교정책에 대해서는 레이건-부시의 견해 지지. 반(反)트럼프.

② 전통적 보수주의자(Traditional Conservatives)
당원의 26%. 트럼프 이전 레이건-부시 시절 공화당의 핵심 지지층. 낙태나 동성 결혼에 반대하고, 친기업 및 세금 감면을 선호하는 구식의 경제적·사회적 보수주의자. 아래의 우파나 블루칼라 인민주의자와 달리, 레이건의 밝은 낙관주의를 어느 정도 유지함. 이 그룹의 32%만이 미국의 문제가 너무 심각하여 국가가 실패할 위험에 처해 있다고 답함. 친트럼프도 반트럼프도 아님.

③ 우파(Right Wing)
당원의 26%.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으며 노동자 계층임. 폭스뉴스와 뉴스맥스를 시청하고, 스스로를 ‘매우 보수적’이라 답하며, 복음주의자가 많은 비율을 차지. 미국이 재앙 직전에 있다고 믿음. 8년 전에 이 그룹은 티파티 지도자 크루즈와 트럼프 사이에서 나뉘어져 있었으나, 오늘날 대부분 트럼프를 중심으로 결집함.

④ 블루칼라 인민주의자(Blue Collar Populists)
당원의 12%. 주로 러스트벨트 출신으로, 대학 학위가 없는 백인이 대부분. 우파와 비교하여 사회적 이슈에 관해서는 온건함. 다수가 낙태와 동성 결혼을 지지하며, 단지 18%만이 자신을 ‘매우 보수적’이라 답함. 그러나 무역 등 경제 문제에 관하여서는 인민주의 성향. 인종과 이민 문제에 대해서도 보수적 견해를 가짐. 우파와 마찬가지로 트럼프를 강력히 지지함.

⑤ 자유지상주의 보수주의자(Libertarian Conservatives)
당원의 14%. 주로 서부와 중서부 출신의 보수주의자로 작은 정부와 고립주의 중시. 경제적 인민주의에 반대함. 사회적 이슈에 관해서는 온건함. 자유를 극단적으로 추구한다는 점에서 온건파 기성세대와 구분됨. 온건파 기성세대 다음으로 트럼프를 덜 지지함.

⑥ 신입 청년(Newcomers)
당원의 8%. 젊고, 다양한 배경을 가짐. 이 그룹의 59%만이 백인. 경제적 비관주의가 강함. 거의 90%가 경제가 나쁘다고 답하며, 나라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답함. 전통적인 의미의 보수주의자는 아니지만, 민주당과 ‘깨어있는’(woke) 좌파에 대한 반감이 큼.

이 6개 집단을 트럼프 지지율에 따라 나열하면, ③ 우파 > ④ 블루칼라 인민주의자 > ⑥ 신입 청년 = ② 전통적 보수주의자 > ⑤ 자유지상주의 보수주의자 > ① 온건파 기성세대 순이다. 좁게는 우파와 블루칼라 인민주의자의 연합(당원의 약 40%), 넓게는 신입 청년과 전통적 보수주의자까지 포함하는 연합(당원의 약 75%)이 트럼프의 지지층이라 할 수 있다. 레이건 이래 공화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에 트럼프를 매개로 진입한 새로운 집단은 ④ 블루칼라 인민주의자와 ⑥ 신입 청년이다. 이들의 유입되고 반대로 ① 온건파 기성세대가 공화당 지지를 점차 철회하면서, 1980년대부터 지속되어 온 공화당과 민주당의 구도가 변화했다고 평할 수 있다.

두 집단 중 블루칼라 인민주의자에 관해서는 앞에서 살펴봤으므로, ‘신입 청년’에 관해 설명을 보충하겠다. 청년층 사이에서 공화당 지지가 확산한 데는 특히 트럼프의 등장과 당선을 계기로 대학가에서 ‘정치적 올바름’ 운동과 이에 반대하는 경향 간의 ‘문화전쟁’이 극단으로 치달은 상황이 있었다. 관련하여 최근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청년단체 ‘터닝포인트 USA’(Turning Point USA, 이하 TPUSA)의 사례를 살펴보자.

이 단체는 2012년에 청년 활동가 찰리 커크(당시 19세)가 설립한 이래, 현재 미국 전역에 약 3,500개의 지부와 75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최대의 보수 성향 청년단체로 성장했다. TPUSA는 주로 대학생 및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보수적 가치에 대한 지지를 확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각 고등학교와 대학교 내 모임을 운영하고, 학생 행동 서밋(Student Action Summit)과 같은 대규모 컨퍼런스를 개최하며, 소셜미디어 캠페인을 전개한다. 
 

활동의 초점은 ‘정치적 올바름’ 비판과 MAGA 이념의 확산이다. 앞서 MAGA 운동에서 살펴봤듯, TPUSA도 캠퍼스에서 좌파적 이념을 가진 교수와 학생들에 의해 보수적 견해가 배척당하거나 억압당하는 사례를 강조하며, 이를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검열’이라 주장한다.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들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관용을 베풀지 않는 이중 잣대를 가지고 있다고 비판하며, 특히 그들이 보수적 목소리를 억압하면서도 자신들은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태도를 문제 삼는다. 소셜미디어에서 ‘예민한 자들에게 안전한 공간을!’(Safe Spaces Are For Snowflakes)과 같은 구호로 풍자하면서 말이다. (‘snowflake’는 ‘눈송이’라는 뜻인데, 사소한 행위나 말에 상처받고 불편해하는 ‘정치적 올바름’ 지지자를 유약하다고 비꼬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TPUSA가 직접 만든 것은 아니더라도, 유튜브(Youtube)와 같은 동영상 플랫폼에서 육식을 비롯해 온갖 것들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회주의자’를 풍자하는 영상이 인기를 끄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TPUSA는 트럼프의 MAGA 이념, 특히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홍보해왔다. 찰리 커크 본인이 트럼프와 직접적인 교류가 있으며, 트럼프의 측근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트럼프도 TPUSA의 행사인 학생 행동 서밋에 연사로 여러 차례 참여하여 연설했다. 2020년 대선 때 TPUSA는 트럼프의 재선 캠페인에 적극 참여하며, 청년층의 트럼프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활동을 전개했다. 특히, TPUSA는 트럼프의 대선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고, 선거 부정 의혹을 제기하는 데도 목소리를 높였다.
 

3) 2024년 공화당 정강

마지막으로 2016년 대선과 2024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정강을 비교하며, 지난 8년에 걸쳐 공화당이 완전히 트럼프주의 정당으로 변모했음을 다시금 확인해보자. 2016년 공화당 정강은 여러 주제에 걸쳐 보수적 입장을 명확히 하며, 전통적인 가치와 경제적 자유, 국가 안보 강화를 강조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경제 및 규제
세금 인하와 정부 규제 축소를 통한 경제 성장 촉진. 또한, 자유시장 경제와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중요시, 중소기업의 성장 지원 정책 제안.
- 국가 안보
강력한 군사력 유지와 테러리즘에 대한 단호한 대응. 국경 보안 강화와 이민 제도 개혁을 통한 불법 이민을 감축.
- 건강보험    
‘오바마케어’(Affordable Care Act) 폐지, 대신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자유로운 시장 기반의 대안 제시.
- 사회적 이슈
낙태 반대, 전통적인 결혼 제도(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 지지, 종교의 자유 보호와 같은 보수적 사회 가치 옹호.
- 헌법적 가치
수정헌법 제2조(총기 소지의 권리) 보호, 연방정부의 권한 제한, 주권(州權) 강조 등 헌법적 원칙을 존중.
- 외교 정책
미국의 주권(主權)과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외교 정책 추구, 나토(NATO)와 같은 동맹 강화. 한편, 중국, 이란, 러시아와의 전략적 경쟁에서 미국의 우위 주장.

반면 2024년 미국 공화당의 정강은 MAGA 이념에 따라 미국의 핵심 가치와 강점을 복원하는 것을 강조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경제
미국을 세계적인 에너지 생산국으로 만들고, 아웃소싱을 중단하며 미국 산업을 부흥시켜 제조업 강국으로 전환. 인플레이션 종식. 노동자를 위한 대규모 감세, 사회 보장 및 의료 보험을 삭감 반대. 모든 수입품에 관세 부과. 
- 이민 및 국경 보안
국경 장벽 완성, 불법 이민자에 대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추방 작전 시행, 이민자의 범죄 확산 방지, 외국의 마약 카르텔 해체, 갱단 폭력 분쇄, 폭력 범죄자 수감.
- 국가 안보
미국에서 생산한 군수품으로 미국 전역에 광범위한 미사일 방어 시스템 구축. 군의 강화와 현대화. 3차 세계대전 방지. 유럽과 중동의 평화 회복.
- 사회 정책
부적절한 인종적, 성적 혹은 정치적 내용을 강요하는 교육기관에 대한 연방 지원금 삭감. 대학에서 친(親)하마스 급진주의자 추방. 남성의 여성 스포츠 참여 금지.
- 정부 개혁 및 투표법
(트럼프에 대한 기소와 같이) 연방정부를 국민을 향한 무기로 삼는 일의 종식. 당일 투표, 유권자 신분증, 종이 투표, 시민권 증명으로 선거를 안전하게 보호.

경제 측면을 보면, 2016년 정강에서 작은 정부를 강조했던 것에 비해, 2024년 정강에는 감세와 규제 완화가 있지만 ‘노동자를 위한’이라는 표현을 달거나, 사회보장지출 유지를 비슷하게 강조한다. (그런데 뒤의 임지섭의 글에서 설명하겠지만, ‘노동자를 위한’이라는 표현은 근거가 없다.)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 증가, 에너지 자체 생산, 관세 부과는 2024년 정강에 새로 등장한 부분이다. 

한편 2016년에 비해 2024년 정강은 (불법이민의 감축을 넘어) 이민자를 향한 공격을 주창하며(특히 투표법 부분), 사회문화적 이슈에서도 (보수적 가치의 옹호를 넘어) ‘정치적 올바름’을 몰아내자며 ‘문화전쟁’의 측면을 부각한다.

국방·외교 문제에서 2016년 정강이 미국의 이익을 우선하더라도 ‘외교’를 통해서 이를 추구했다면, 2024년에는 ‘3차 세계대전을 방지하고 유럽과 중동의 평화를 회복하겠다’는 추상적 문구 외에 현안에 관한 구체적 서술이 없고, 대신에 군수품의 국내 생산과 자국 방어를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2024년 정강은 트럼프의 선거 사기설이나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를 공격한다는 주장을 반영했다. 종합해보면, 공화당 정강에서 트럼프주의의 색채가 훨씬 강해졌다고 할 수 있다.
 

4) 의회와의 투쟁

트럼프 행정부는 집권 기간 내내 의회와 충돌했다. 출범 당시에는 상하원 모두에서 공화당이 우세했으나, 트럼프 행정부는 법안 처리 과정에서 무능함을 보였고,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일각과도 다투었으며, 결국 협의보다는 협박과 충성 요구로 입법 과정을 변질시켰다.

정권 초기 대표적 사례는 ‘오바마케어’의 폐지 시도였다. 그러나 2017년에 공화당의 주도로 하원이 발의한 미국건강보험법(AHCA)은 문제가 많았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의회예산국(CBO)은 이 법안이 법률로 제정될 경우 발생할 예상 피해액을 제시했고, 이를 두고 공화당 내 의견 불일치가 발생했다. 결국 하원은 법안을 최종 표결에 부치지 않기로 결정했다. 트럼프는 협상을 중단한 후 표결을 강행하려 했으나, 강압적 전술은 법안 통과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후 공화당 의원 20명이 이탈했음에도, ‘오바마케어의 부분적 폐지’라 불린, 이전 법안의 수정된 형태가 하원을 통과했다. 그러나 공화당 상원의원 존 매케인이 반대 여론을 이끌며 이를 좌초시켰다. 

정치경제학자 라인하르트는 공화당의 건강보험 개혁 시도를 “집단적 무지”라고 표현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무도 건강보험이 이렇게 복잡할 줄 몰랐다’라는 트럼프의 발언은 1990년대 클린턴 건강보험 개혁 계획의 실패와 2010년 오바마케어의 어려운 탄생 이후에도 그가 이러한 사실을 몰랐던 유일한 사람임을 보여준다.” 물론 트럼프는 정치 신인으로서 미숙할 수 있으며, “미숙함은 정보에 입각한 일관된 정책을 추구하는 적극적인 노력으로 극복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에게서 “의회 의원들과의 협력, 세부 정책에 대한 관심 등 이러한 리더십 요소들은 결정적으로 결여되어 있었다.” 그는 입법 실패를 한편으로는 민주당의 방해 탓으로 돌리며 “그들 모두가 문명화된다면” 민주당과 협상하겠다고 발언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실패로부터 “우리는 충성에 관해 많은 것을 배웠다”라는 교훈을 도출하며, 공화당 내 배신자를 공격했다.

2018년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민주당에 뺏기기 전까지 트럼프는 정책을 주도할 기회가 충분히 있었으나, 그러한 무능함으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거의 유일하게 통과시킨 ‘세금 감면 및 일자리 법안’(TCJA)의 경우 트럼프의 성과라기보다, 레이건 이래 공화당의 숙원이었기에 공화당 의원들이 단결하여 통과시킨 것에 가까웠다. 물론 여기서도 트럼프는 법안에 반대 투표를 한 유일한 공화당 상원의원 밥 코커를 공격하는 데 집중했다. “트럼프는 특유의 방식으로 정책 논쟁에 참여하지 않고 코커의 인격과 직업적 평판을 깎아내리는 데 집중하며, 그를 반복적으로 ‘작은 밥 코커’라고 부르고, ‘위대한 테네시 주에서 재선되지 못한 하찮은 상원의원 밥 코커가 이제는 감세와 싸울 것이라니 슬프다!’라고 트위터에 올렸다.” 이러한 압박에 밥 코커는 최종적으로는 찬성표를 던졌다.

유례없이 길었던, 2019년의 행정부 셧다운 사태도 트럼프와 의회의 갈등에서 비롯했다. 트럼프는 국경 장벽 건설에 대한 의회의 자금 지원을 요청했으나, 민주당이 다수가 된 하원에서 거절당했다. 그러자 그는 2018년 12월 11일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와 곧 하원의장이 될 펠로시 의원에게 공개적으로 정부를 셧다운하겠다고 협박했다. 트럼프는 자기는 셧다운의 결과에 개의치 않으며, 의회가 말을 들을 때까지 셧다운을 수년간 지속할 무한한 인내심이 있다며 오기를 부렸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우리나라의 안보 때문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다”며 의회를 우회할 권한을 사용하겠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런 태도는 의회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간의 협상을 극도로 어렵게 만들었다. 사태가 장기간 지속하며 결국 공화당 의원들 가운데서도 우려가 커졌고, 공화당 지도부가 개입하여 셧다운을 끝냈다. 슈머는 이 사태에 대해 “우리는 짜증 부리는 식으로 통치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겼다.

가장 중요한 사건은 역시나 유례가 없는 두 번의 탄핵 소추였다. 2019년의 첫 번째 탄핵은 같은 해에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정부에 정치적 조사를 요청한 사건과 관련 있다. 당시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에게 전화하여, 자신의 정치적 경쟁자인 조 바이든과 그의 아들 헌터 바이든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원조를 이 조사에 대한 대가로 사용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결국 그는 2019년 12월 18일 하원에서 두 가지 혐의로 탄핵 소추를 당했다. 첫째, 권력 남용. 트럼프는 외국 정부(우크라이나)로부터 정치적 이익을 얻고자 자신의 권한을 남용했다. 둘째, 의회 방해. 하원의 탄핵 조사 과정에서 증거 제출을 거부하고 증인 출석을 방해한 혐의가 있다.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한 상원은 2020년 2월 5일에 이 탄핵을 심리하고, 첫 번째 혐의(권력 남용)에 대해 유죄 52대 무죄 48, 두 번째 혐의(의회 방해)에 대해 유죄 53대 무죄 47로 탄핵 무효 판결을 받았다. (상원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려면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두 번째 탄핵은 2021년 1월 6일 국회의사당 점거 사태와 관련 있다. 이로 인해 다수의 사상자와 물적 피해가 발생했다. 2021년 1월 13일, 트럼프는 하원에서 내란 선동 혐의로 탄핵되었다. 하원은 그가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폭력을 조장함으로써 내란을 선동했다고 주장했다. 상원은 2021년 2월 13일에 탄핵 심판을 열었지만, 트럼프를 유죄로 판결하기 위한 3분의 2(67명)의 찬성을 얻지 못해 무죄로 판결했다. 57명의 상원의원이 유죄에 찬성했지만, 43명의 의원이 무죄에 투표하여 최종적으로 탄핵 무효가 선고되었다.

두 번의 탄핵 시도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상원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아 임기 중 파면되지 않았다. 허나 이 두 번의 탄핵은 미국 정치사에 중요한 사건으로 남았다.
 

5) 행정부와 사법부 장악 시도

의회를 지배하지 못한 트럼프는 행정부와 사법부를 장악하려고 시도했다. 행정부에 대해서는 2020년 대선 직전에 ‘스케줄F’ 행정명령(13957호)을 발동했다. 이는 최대 5만 명의 직업공무원을 정치적 임명직으로 교체하는 명령이다. 해당 공무원의 상시 해고를 가능하게 만들어, 트럼프의 국정기조에 반대하는 진보적 성향의 공무원들을 분류하여 충성파 인사들로 대체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명령은 임기 내 실행되지 못했고, 바이든 행정부는 이를 취소했다. (트럼프는 2024년 재집권 시 이 명령을 재발동하겠다고 공언했다. 최근 트럼프 캠프가 낸 ‘어젠다 47’에서 트럼프는 “국방부, 국무부, 국가안보산업체에 존재하는 전쟁광과 국제주의자들을 물리치고, 국가안보의 전 분야에 유능한 새로운 관료들을 임명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행정부를 장악하려는 시도도 실패했으나, 트럼프는 재임 기간에 사법부를 재편하는 데 성공했다. 단 한 번의 임기 동안 그는 연방대법원에 3명의 대법관을, 연방항소법원에 54명의 판사를, 연방지방법원에 174명의 판사를 임명했다. 트럼프의 사법부 장악에서 보수적 법률가단체 연방주의자협회(Federalist Society)와 당시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미치 맥코넬(Mitch McConnell)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트럼프는 2016년 5월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후 대법관 후보자 명단을 발표했는데, 이는 대통령 선거에서 유례없는 일이었다. 대통령 후보들은 종종 연방 사법부 특히 연방대법원에 지명할 인물의 유형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긴 하나, 일반적으로 특정 인물을 지목하진 않는다. (가령 2016년에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헌법상의 자유와 평등의 원칙을 보호하고, 정의의 저울이 개인이 아닌 기업과 특별 이익단체를 향하지 않도록 하며, 시민의 투표권을 보호할 판사를 선택하겠다”고 발언했다.) 2004년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조지 부시는 닉슨 이후 대부분의 공화당 후보와 유사하게 “엄격한 해석주의자를 선택하겠다”라고 발언했다.

트럼프의 대법관 후보자 명단을 작성한 것은 법률가단체 연방주의자협회였다. 이 단체는 스스로를 “법률 질서의 현재 상태에 관심 있는 보수주의자와 자유지상주의자들의 집단”이라 소개한다. 1980년대 초에 설립된 연방주의자협회는 법조계에 광범위하게 자리잡은 진보주의자들에 맞서 보수적 법률가들을 위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자 했다. 레이건 행정부 때 협회원들은 백악관 법률고문실과 법무부에서 일하며 연방 사법부 판사 선정에 관여했다. 부시 행정부는 연방법원 판사직을 선정하는 데서 전통적으로 관여해 왔던 미국변호사협회(ABA)를 배제하고 연방주의자협회와 협력했다. (아이젠하워에서 클린턴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미국변호사협회가 사전에 후보자 명단을 제공받아 그들에 대한 평가를 상원 사법위원회에 제출하는 절차를 거쳐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전통적 절차로 돌아갔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또다시 되돌린 것이다. 다만 이전 공화당 대통령과 달리, 트럼프는 후보자 명단을 선거 캠페인에서 대중에게 공개했다는 차이점이 있다. 트럼프의 이런 행동은 대선 캠페인에서 낙태, 동성결혼, 인종차별과 같은 문제에 관하여 공화당의 전통적 보수층의 지지를 얻기 위함이었다.

한편 트럼프가 취임하자마자 연방대법원 판사를 임명하는 기회를 얻었던 것은 미치 맥코넬 덕분이었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 말기에 보수 성향의 스칼리아 대법관이 사망하자, 그 공석은 오바마 대통령의 몫이 아니며, 2016년 대선에서 미국 국민이 그 임명을 결정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명한 후보인 메릭 갈랜드 판사는 보수와 진보 양측에서 존경받는 인물로, 상원의 공화당 의원들로부터도 상당한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컸다. 그럼에도 맥코넬은 상원 공화당 간부회의를 열어 갈랜드와의 만남조차 거부하며 대법원의 공석을 유지했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 말기에 진보 성향의 긴즈버그 대법관이 사망하자, 2020년 대선이 두 달도 안 남은 시점에서 맥코넬은 그 임명은 2020년 대선의 승자가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몫이라 주장했다. 이는 2016년 때 그의 논리와 모순됐으나, 맥코넬은 2016년과 달리 상원과 백악관이 모두 공화당의 통제 하에 있으므로, 사실상 미국 국민이 공화당 대통령에게 긴즈버그의 후임자를 임명하라는 명확한 의사를 밝힌 셈이라고 강변했다.

맥코넬의 활약 덕에 트럼프 행정부는 연방대법관에 닐 고서치(2017년 임명), 브렛 캐버노(2018년 임명), 에이미 배럿(2020년 임명) 세 명을 임명할 수 있었다. 트럼프는 보통 자신의 성과에 대해 다른 사람과 공로를 나누는 성격이 아니지만, 맥코넬에 대해서만큼은 “[대법관] 자리가 비어있었던 것은 그 덕분이었다”라고 감사함을 표했다.

그러나 이 대법관 임명 과정에는 문제가 많았다. 2017년 고서치 판사 인준 투표 이후 공화당은 상원 규칙을 변경하여, 2020년에 단 한 명의 민주당 표도 없이 배럿 판사를 임명했다. 민주당이 토론 종결을 막기 위해 44표를 모으자, 맥코넬은 상원의원들에게 대법관 지명자에 대한 투표에서 필리버스터를 제거하는 결의안을 표결에 부칠 것을 요청했고, 52명의 모든 공화당 상원의원은 맥코넬의 결의안을 지지하며 대법관 인준 투표에서 필리버스터를 제거했다. 이로써 상원을 장악한 당의 대통령은 소수당 의원들의 동의 없이 대법관을 임명할 권한을 갖게 되었다.

맥코넬은 트럼프 백악관 법률 고문실과 협력하여 연방항소법원 공석을 우선적으로 처리했다. 연방대법원이 연간 약 70건 정도의 사건만 처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연방항소법원은 사실상 연방법원 체계에서 대부분의 사건에 대한 최종결정권을 가진다. (연방항소법원 13곳은 연방지방법원에서 판결된 사건 중 항소된 사건을 처리하며, 1년에 약 5만 건의 사건을 처리한다. 반면 최종 항소법원인 연방대법원은 1년에 약 7천 건의 청원을 받지만, 그중 중요한 70건만을 심리한다.) 이 중요성을 알고 트럼프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목적으로, 맥코넬은 특히 연방항소법원 후보자들을 신속하게 임명했다. 트럼프는 단 4년 만에 연방항소법원 판사 54명을 임명했는데, 오바마 정부가 8년 동안 임명한 연방항소법원 판사 수가 55명이었다.

또한, 맥코넬은 연방지방법원 판사 지명을 검토하는 시간을 단축하고자 상원 규칙을 변경했다. 2019년 4월, 민주당의 단 한 명의 지지도 받지 않은 채, 연방지방법원 후보에 대한 토론 시간을 최대 30시간에서 2시간으로 줄였다. 그리하여 상원이 연방항소법원 판사의 인준 절차를 좀 더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였다. 반면 맥코넬은 오바마 행정부 하에서는 임명 절차를 크게 지연시켰는데, 그리하여 트럼프가 취임했을 때 103개의 연방지방법원 공석을 받을 수 있었다. 이는 2008년 오바마 행정부가 물려받은 54개의 공석의 거의 두 배였다. 이를 토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단 4년 만에 연방지방법원의 구성을 크게 재편했다. 그는 임기 동안 174명의 연방지방법원 판사를 임명했다. 이는 그의 임기 말까지 활동 중인 판사 전체의 28%에 해당한다.

트럼프의 사법부 장악은 장기적 효과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 임기가 제한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평생 임기로 연방법원에 종사하는 판사를 임명하는 것은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오랫동안 공공정책과 연방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상대적으로 젊은 인사들을 연방법원에 임명하는 데 주력했기에, 이들의 영향력은 특히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가 임명한 연방항소법원 판사 54명의 평균 연령은 47세로, 오바마 대통령이 임명한 판사들보다 5년 이상 젊다. 만약 이들이 모두 68세까지 재직한다고 가정하면, 오바마가 임명한 판사들보다 총 270년을 더 근무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주의가 법관들을 통하여 영향력을 행사할 토대가 갖춰진 셈이다. 

사법부 재편의 효과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 때인 2022년 6월 24일에 연방대법원은 낙태권을 보장했던 과거 대법원 판결(로 대 웨이드 사건)을 뒤집었다. 여기서 트럼프 재임 기간에 임명된 고서치, 캐버노, 배럿 모두 로 대 웨이드 사건 판결을 뒤집는 데 찬성했다. ‘문화전쟁’에서 공화당의 입장을 사법적으로 관철한 것이다.

또한, 최근 연방대법원은 행정법을 둘러싼 주요 판결에서, 행정부가 시행한 조치가 심각하게 불합리하지 않다면 사법부가 이를 존중하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1980년대 이래의 ‘쉐브론 원칙’(Chevron deference)을 뒤집고, 모호한 법령에 대해서는 판사가 최선의 해석을 결정할 책임을 진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는 법과 그에 따른 행정조치에 대해 사법부의 심사와 개입을 강화하는 경향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의회를 통해 바이든 행정부 시절 입법된 법들을 변경하거나 폐지하긴 쉽지 않더라도, 다양한 행정조치를 통해 의회를 우회하기 쉬울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6) 트럼프주의 정책집단 형성

마지막으로 트럼프주의 정책집단을 형성하려는 노력을 살펴보자. 트럼프 1기 행정부 시기 상술한 수많은 시도가 이루어졌으나, 트럼프주의를 밀어붙이기에 인물과 역량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워싱턴에 도착했을 때, 트럼프는 백악관과 행정부 기관의 수천 개의 직위를 채울 대기 인물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정책을 조용히 반대하는 레이건과 부시의 베테랑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2020년 대선에서 준비가 불철저했다는 반성도 있었다. 이에 보수세력의 세대교체를 주도할 트럼프주의자들을 훈련시키며, 트럼프주의 정강을 개발하고, 2기 행정부를 준비하려는 플랫폼들이 등장했다. 아메리칸어페어스(American Affairs)와 같은 저널이나, 아메리칸컴패스(American Compass), 미국우선주의정책연구소(America First Policy Institute), 이번 대선에서 공화당 부통령 후보인 밴스가 이사로 있는 아메리칸모먼트(American Moment) 등의 단체들이 사례이다. 지면상 기존 보수 성향의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Heritage Foundation)의 변화만을 살펴보겠다.

2021년에 헤리티지재단의 회장이 케빈 로버츠로 교체됐다. 로버츠 지도부는 재단이 보수주의 운동의 지적 엔진으로서 본래 임무를 되찾고, 보수주의의 목소리를 결집시켜 나라를 이끌 통합된 계획을 수립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트럼프 시대 보수주의 운동의 성격 진화, 공화당의 지지기반과 우선순위 변화, 풀뿌리 운동의 부상과 새로운 소통수단(소셜미디어)의 확산에 발맞추어, 더욱 직접적인 정치적 행동주의를 추구할 것을 요청했다. 새 지도부는 의원들에게 더 큰 압력을 가하기 위한 로비 조직인 ‘헤리티지 액션’을 창설하고, 풀뿌리 운동과의 연계를 강화하며, 보다 공격적인 옹호 활동을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정책의 방향성도 트럼프주의 쪽으로 조정했다. (전통적 보수주의가 중요시했던) 재정과 외교정책 문제보다 이민이나 교육, 문화 문제에 더욱 집중하고, 무역과 중국에 관하여 대중적인 보수적 견해를 대폭 수용하며, 자유시장과 세계화를 더 회의적인 시각에서 보고, 관세와 경제적 민족주의를 지지하겠다 밝혔다. 이러한 방향 전환 속에서, 특히 국방과 외교정책 분야에서 다수의 직원이 이탈했으며, 재단은 로버츠 지도부의 새로운 비전에 맞는 신입 직원으로 그들을 대체했다.

이러한 트럼프주의 플랫폼의 출현, 트럼프 개인을 넘어선 트럼프주의자 집단의 조직화 시도는, 트럼프 1기 때와 달리 2기 행정부에서는 트럼프주의를 관철하고자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7) 소결

아래로부터의 운동뿐만 아니라, 특히 트럼프 행정부 시기 정치제도가 받은 충격 역시 트럼프주의를 지속하는 요인이 됐다. 먼저 공화당이 트럼프주의 정당으로 변모했다. 트럼프 이후 공화당은 더 넓은 유권자 연합을 구축하기보다는, 트럼프주의적 메시지를 설파하며 강경 지지층을 동원하고 당내 반대파를 제거하는 데 더 집중했다. 이로써 트럼프는 자신의 논란이 되는 행동과 판단을 집단적으로 승인해주고, ‘민주적 정당성’이라는 외피를 씌워주며, 자신의 권력 남용을 더는 제어하지 않고, 당파적 양극화를 강화하며, 민주당을 공격하는 데 쓸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을 얻었다. 이는 트럼프가 각종 사법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2024년 공화당 후보로 무난하게 지명되는 결과를 낳았다.

트럼프는 재임 시절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를 공격하고 장악하려 시도했다. 다만 2018년 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을 탈환했고, 기존 공화당 의원 중 일부가 트럼프에 반대하며 제동을 걸었다. 트럼프는 지지자를 동원한 협박으로 대응했으나, 의회를 완전히 굴복시키진 못했다. 행정명령으로 트럼프의 기조에 반대하는 직업공무원들을 대체하려 했던 시도도 실패했다. 그러나 상원 원내대표 맥코넬의 도움으로 트럼프는 연방 사법부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트럼프주의자들이 의회를 우회하여 사법심사를 통해 정책에 간섭할 가능성이 커졌다.

1기 행정부에서의 미숙함과 2020년 대선 패배를 계기로 트럼프주의 지식인을 육성하고 결집시켜 2기 행정부를 준비하려는 흐름이 있었다. 만약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한다면, 이미 공화당과 사법부가 정파적으로 구성된 상태에서, 이미 공언한 대로 행정부를 장악하는 명령을 다시 시도하고, 1기 때와 달리 준비된 트럼프주의자들을 정계에 진입시키며, 트럼프주의적인 2024년 공화당 정강을 관철할 힘을 갖출 수 있다. 
 
 

4. 나가며

 
2016년 미국 대선을 계기로 전면화하여 지금까지도 점점 더 강력해진 트럼프주의는 미국 정치의 전망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물론 민주당 후보 교체 이후 해리스가 근소하게 트럼프에 앞서고 있지만, 실제 결과가 어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특히 경제 문제를 중심으로 바이든 정부에 대한 유권자의 부정적 여론이 강하기 때문이다. 

한편, 대선 결과를 떠나, 트럼프주의 이념과 운동이 계속 발전될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불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이를 자극하며 특정한 방향으로 수렴시키는 트럼프주의 운동은 계속 일어날 것이다. 미국 유권자의 정치적 양극화는 매우 심각하며, 트럼프의 강경 지지층을 토대로 트럼프주의 정당이 되어버린 공화당이 존재한다. 이 기반 위에서 트럼프의 권력이 지속될뿐더러 (부통령 후보 밴스와 같은) 트럼프주의 정치인들이 부상하고 세력화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이 그간 쌓아 올렸던 정치제도를 계속 변질시키려 시도할 것이다. 

임지섭과 김진영의 글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2024년 공화당 정강에 나타난 트럼프주의 정책은 자본주의 경제의 작동 원리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조차 결여하고 있으며, 자유무역·자유기업에 기초하여 구축된 세계 질서를 1930년대의 무질서한 상태로 퇴보시킬 수 있다. 이외에도 수많은 결함을 가진 그 정책들이 트럼프 지지자들의 삶을 진정으로 개선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트럼프주의자들은 기성 엘리트의 저항을 탓하나, 경제나 국가 간 관계 문제에 대한 분석 부재와 정치적 접근,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는 각종 장치를 깨고 입법·행정·사법의 삼권을 장악하려는 시도가 이를 곳은 대안적 세계가 아닌, 권위주의와 무질서의 세계다. 이는 미국 인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인민의 안녕을 위협한다.

트럼프주의 정강의 모순과 결함을 비판해야 하나, 토론이 불가능한 그 지지자들의 심리상태도 분석해야 한다. 특히 트럼프주의 운동이 ‘정치적 올바름’ 운동과 같은 미국 좌파의 방식을 모방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각자의 구체적 불만과 분노를 동원하면서도, 이를 ‘피해자 의식’을 통해 현실과 유리된 도덕적인 선악의 문제로 치환하고, 거대한 힘을 가진 해결 불가능한 ‘적’을 상정하여 분노와 투쟁을 영속화하는 그 방식이, 트럼프 지지자들이 현실의 고난을 딛고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트럼프주의 정책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비판을 수용하지 않는 상태의 사람들에게 어떠한 메시지가 필요할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트럼프주의 대중운동에서부터 정치제도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미국, 나아가 세계는 매우 위험한 상태에 처해 있다. 이 글에서 서술한 각 층위의 문제들, 트럼프 지지자들의 구체적 불만들, 이를 모아내는 트럼프주의 운동의 방식, 극단적인 정치적 양극화, 현실 인식의 결여, 지도자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 경제나 외교 사안의 정치화, 의회의 무력화, 사법의 정치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여기에 우리의 미래가 걸려 있기에, 사회운동은 반드시 이 문제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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