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은 현실에서도 높은 마음으로 살아가기
근래의 마음가짐 : ‘비판’과 ‘혁신’이라는 익숙한 배경음
뉴스와 글 등 바깥에서 접하던 사회운동의 안에 들어온 뒤 대충 만 2년 정도가 되었다. 내가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사회운동에 대해서 가장 많이 들은 단어를 2가지 꼽으라면 “비판”과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운동의 조건과 정세를 고려할 때 30년은 더 들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시간이 흘러서도 비판과 혁신을 말하는 목소리가 사라지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노동조합 상근활동가로 활동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막막함이 들었던 건 이런 기억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비판과 혁신이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한다는 지 감이 오지 않았다. 전노협과 민주노총의 건설, 진보정당 운동의 출발 등 영광의 역사가 있었고 선배활동가들의 부단한 노력과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겠지만 시작하는 처지에서 내가 마주한 사회운동도 정치도 경제도 늘 지금의 상태에서 퇴행하기만 했다.
내가 막 성인이 되었을 즈음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시대가 크게 달라졌다는 것이 체감이 된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 성장을 이끌던 중국은 높은 성장세로 주목받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권위주의적 통치를 강화하고 군사적, 경제적 힘을 활용해 주변국을 압박하면서 주요 위협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거대 양당을 넘어서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려는 움직임은 사라지고 방탄입법과 극단주의적 행보를 보이는 여야만 남았다. 두 번의 대통령 탄핵을 겪으며 구조개혁에 관한 내용은 사라지고 상대를 제거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 청년실업을 말했던 뉴스는 이제 ‘쉬었음 청년’을 다루고, 주식은 일반인들의 주요한 자산마련 수단 중 하나가 되었다. 더 오래 활동하신 분들의 입장에서는 격세지감이 훨씬 더 클 것이다.
시기를 정해 비교해보지 않고 하루하루 살았다면 서서히 악화되는 현실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기 쉬운 것 같다. 그랬기에 한발 더 고민하기보다도 ‘원래 그렇지 뭐’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일이 자연스럽게 많아지기도 한다. 경제도 위기, 정치도 위기, 운동도 위기라지만 위기가 일상이 되니 포기와 체념이 더 쉬워진다. 한 발은 서서히 악화하는 현실에, 다른 한 발은 과거의 관성에 담근 채 고립되어 있지는 않을까하는 걱정도 든다. 그냥 버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닐 것이다.
말이 길어졌지만 세상은 계속 변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변화에 발맞출 수 있도록 갈고 닦으려는 시도를 놓치지 않겠다는 게 내가 활동에 임했던 마음가짐의 1순위다. 과거에 있었던 사회운동의 좋은 관습을 배우면서, 변화하는 세상을 계속 살펴보고 싶다.
혁신의 시작점
정세가 변화하며 과거의 여러 제도, 관행 등이 한계에 봉착했지만, 아직 새로운 대안도 모방할 수 있는 모델도 없는 상황을 인정한다면 현실에서 다양한 참고점을 많이 만들어두려 한다.
그러기 위한 개인적인 시도 중 하나는 일상과 업무에서 다양성을 늘리는 거다. 언론사 관계없이 다양한 주장을 접하기, 분야에 관계없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보기, 업무에 유용한 툴을 다양하게 참고하려고 시도하는 식이다.
세상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넓다는 걸 인정하고 다양한 분야의 흩어진 전문가들의 진단과 분석을 최대한 알고 싶어서다. 또 이것저것 찾아보다보면 몸을 담고 있는 분야나 국적에 무관하게 조직에 속해서 일을 하다보면 고민의 결이 비슷한 점도 있다는 걸 알게 되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마케터나 기획자의 글을 찾아 읽으려고 노력한다. 목표는 다르겠지만 성공적인 사업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것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참고점이 많을 것 같아서다. 개인적으로 작가이자 마케터인 이승희 작가의 ‘기록의 쓸모’라는 책이 기억에 남는다. 일상 속 다양한 경험에서 떠올린 영감을 기록하며 마케팅과 사업기획에 도움을 받는다는 내용인데 일상 속 영감을 일에 활용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작가의 감정이 글에 녹아있었다. 그 책에 영향을 받아 글귀, 간판, 발언 등 일상에서 영감을 준 요소를 모아두는 텔레그램 개인 채널도 만들었다.
요즘은 데이터 분석에 관한 내용들을 찾아볼까 생각 중이다. AI의 등장으로 방대한 데이터 처리·분석 기술이 발달하고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는데 그 가능성을 사회운동이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다. 정책적 역량은 현실에 대한 진단에서 출발하는 것이 당연한데 선명한 주장으로 내용의 빈약함을 가리거나, 현실을 파악하기 위한 자료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문제의식을 느낀다.
또 한 가지는 블로그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것저것 얻은 참고점을 정리하고, 나만의 공간에 모아둘 수 있다는 소소한 장점이 있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은근히 블로그를 이용하는 전문가나 학자들이 꽤 있는데 이런 사람들을 팔로우해 두면 새로운 글을 쓸 때마다 알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텍스트에 친화적이고 자료축적에 용이할 뿐 아니라 댓글문화가 공격적이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 괜찮은 저자라는 생각이 들면 SNS 계정이나 블로그 여부를 가장 먼저 확인하곤 한다.
조직적 준거점으로 사회진보연대가 있기도 하다. 정세분석과 입장을 정리하고 합리적인 주장을 펼치며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다. 이것저것 다 해봤는데도 잘 모르겠을 때 기댈 수 있는 최후의 거점이랄까?
혁신은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발을 딛을 곳, 기댈 곳이 어디인지 확인하고 그 지평을 넓혀가는 과정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시시콜콜 개인적인 이야기를 늘어놓긴 했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더라도 품격과 실력을 갖추는 것에서 변화가 시작된다는 생각을 말하고 싶었다. 지도가 없는 곳에서 무작정 걷는다고 바뀌지는 않는다.
우연한 기회에 추천받은 노래인데 가사가 내 마음과 통하는 부분이 있어 자주 듣는 노래를 여러분에게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높은 마음으로 살아야지
낮은 몸에 갇혀있대도
평범함에 짓눌린 일상이
사실은 나의 일생이라면
밝은 눈으로 바라볼게
어둠이 더 짙어질수록
활짝 두 귀를 열어둘게
침묵이 더 깊어질수록
높은 마음 / 9와 숫자들
후기
계절마다 사회진보연대 계간지가 나오면 뒤쪽에 실린 회원칼럼부터 읽는 습관이 있었다. 뇌에도 준비운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볍게 읽기 시작해서 점점 깊은 내용으로 빠져 들어가는 흐름이랄까. 나에게 회원칼럼은 계절마다 볼 수 있는 계간지의 반가운 첫인상이었는데, 막상 작성을 의뢰받고 나니 작성자들의 깊은 고뇌 속에서 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읽기 습관은 바뀌지 않을 것 같지만 앞으로 마주할 회원칼럼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