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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가을. 1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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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터가 꽃이 되기까지

2026 합천 비핵·평화대회 참가기

서세영 | 회원, 공공운수노조 충북지역평등지부 조직부장

8월, 두 개의 빛

 

8월은 빛의 계절이다. 우리는 이달에 광복(光復), 빛을 되찾은 날을 기념한다. 그런데 꼭 같은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뒤덮은 것도 빛이었다. 그 빛은 되찾은 빛이 아니라 삼켜버린 빛, 살상의 빛이었다. 광복 81년과 피폭 81년이 같은 달 안에 겹쳐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번에야 새삼스럽게 실감했다.

 

8월 4~6일 열린 2026 합천비핵·평화대회에 다녀왔다. 올해로 열다섯 번째 대회로, 주제는 ‘대물린 피폭! 법적 인정과 치유의 어울림’이었다. 합천은 ‘한국의 히로시마’라 불린다. 한국인 원폭피해자가 가장 많이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히로시마에서 미국의 원자폭탄에 피폭된 조선인들이 해방과 함께 돌아온 자리가 바로 이 내륙의 작은 군이다.

 

아버지를 대신해 선 사람

 

대회에서 증언한 세계 피폭 생존자 가운데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이는 이치요 씨였다. 재일교포 3세이자 원폭 2세인 그는 히로시마시의 위촉을 받아 아버지의 피폭 체험을 전하는 ‘가족 전승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사진] 이치요 씨

2026 합천비핵·평화대회에서 히로시마 피폭자인 아버지 이종근 씨의 피폭 체험을 전하는 재일교포 3세 이치요 씨. (출처: ‘합천평화의집’ 다음 카페)

 

이치요 씨의 아버지는 열여섯 살에 히로시마에서 피폭됐다. 폭심지에서 1.8km 떨어진 곳이었다. 열선에 목 뒤 머리카락이 타들어 가는 소리를 들었고 다리마다 주저앉은 사람들이 “물을 달라”고 애원하던 목소리를 평생 잊지 못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날을 이렇게 회고했다. “지옥이 있다면, 바로 그곳이었어.” 그리고 가족에게조차 그 기억을 좀처럼 입에 올리지 않았다.

 

내가 오래 곱씹은 것은 ‘아버지를 대신해 선다’는 그 자리의 의미였다. 원폭을 직접 겪은 사람이 침묵을 거두기까지 평생이 걸렸고,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딸이 그 말을 대신 짊어졌다. 피해는 한 사람의 몸에서 끝나지 않고 다음 세대의 입으로 옮겨 갔다.

 

인상 깊었던 것은 히로시마시가 이 전승을 공식 제도로 두고 있다는 점이었다. 피폭 경험을 대신 전하는 사람을 시가 위촉하고 그러기 위한 심사까지 거친다고 했다. 기억을 개인의 몫으로만 두지 않고 사회가 붙드는 장치를 만들어 둔 것이다. 피폭 1세대가 빠르게 세상을 떠나는 가운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를 전승자로 길러내고 일본 정부는 이들을 국내를 넘어 해외로까지 파견하도록 지원한다. 그런데 이치요 씨가 그 전승자 심사를 준비할 때, 한 일본인 친구가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네가 왜?” 원폭 피해를 일본인이 겪은 일로만 여긴 것이다. 조선인 역시 그 폭탄 아래 있었다는 사실은 정작 히로시마에서도 그렇게 쉽게 지워진다.

 

이날 학술토론회에서 김경인 박사(전남대)는 “법적 권리 회복의 출발점은 사회적 인식의 변화”라고 짚었다. 피폭 2·3세를 원폭 피해 당사자로 인정하는 일부터가 아직 남은 숙제다. 현행 지원법은 2세와 그 후손을 피해자 범주에서 빼놓고 있다. 3대에 걸쳐 대물림되는 고통이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제도는 그들을 당사자로 부르지 않는다.

 

여든이 넘어 위령각에 선다는 것

 

대회 이튿날인 8월 6일,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위령각에서 한국인 원폭 희생자 추모제가 열렸다. 추도사를 읽은 분은 일본에서 온 피폭 1세였다. 나가사키에서 다섯 살에 피폭됐고, 이제는 여든이 넘은 노인이 되어 노구를 이끌고 바다 건너 이 위령각 앞에 섰다.

 

그는 추도사에서 담담하게 숫자를 읽었다. 핵무기가 지금도 지구상에 1만 2천 발 넘게 존재하고, 핵과학자들이 만든 종말시계는 인류 멸망까지 85초 전을 가리키고 있다고. 여든이 넘은 사람이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남의 나라 희생자를 위해 고개를 숙이는가. 그 모습에서 나는 두 가지를 동시에 느꼈다. 하나는 존경이었고 다른 하나는 두려움이었다. 저 목소리가 머지않아 사라지리라는 두려움.

 

원폭은 과거형이 아니다

 

대회 전에 합천 원폭자료관에도 잠깐 들렀다. 그곳에서 두 가지가 마음에 박혔다.

 

하나, 핵에 의한 피해는 폭탄이 떨어지는 순간에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핵무기를 만들고 실험하는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피폭자가 만들어진다. 마셜제도 주민들은 미국의 수소폭탄 실험으로 인해 살던 땅에서 쫓겨났고 지금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다. 태평양에서 조업하던 제5후쿠류마루호의 어부들은 ‘죽음의 재’를 뒤집어썼다. 피해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끝난 이야기가 아니었다.

 

하나, 원폭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자료관 벽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핵 위협을 다룬 기사가 걸려 있었다. 오펜하이머는 최초의 핵실험을 지켜보며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고 했다. 인류가 스스로를 절멸시킬 힘을 손에 쥔 그 순간은 1945년에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머리 위에서 이어진다.

 

왜 유독 원폭피해자에게는 무관심할까

 

자료관을 나오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피해자를 향한 우리 사회의 관심은 크다. 마땅히 그래야 하고 그 관심이 지금보다 더 커져도 모자란다. 그런데 원폭피해자에 관해서는 어떤가. 상대적으로 너무 조용하다.

 

누가 더 아픈지를 겨루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만 3대에 걸쳐 온몸으로 피해를 겪어내며 가장 오랜 세월을 견뎌 온 사람들에게 사회적 관심이 이토록 옅다는 사실이 나는 내내 마음에 걸렸다. 원폭 피해가 곧 해방으로 이어졌다는 인식 속에서 정작 그 폭탄에 스러진 조선인들의 존재는 지워졌다. 히로시마에서만 그해 말까지 14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 가운데 약 5분의 1이 조선인이었다는 사실은 지금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광복은 빛을 되찾은 날이다. 그러나 우리가 되찾은 그 빛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태운 살상의 빛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진짜로 광복을 기억한다는 것은 되찾은 빛만이 아니라 그 살상의 빛까지 함께 기억하고 다시는 그런 빛이 세상에 없도록 단호히 반대하는 일이 아닐까.

 

기억을 누가 이어받을 것인가

 

원폭 1세는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평균 연령은 이미 80대 중반을 넘었다. 그렇다면 원폭을 직접 겪은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은 뒤에도, 우리는 이 기억을 이어받아 비핵평화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이것이 지금 세대에게 넘어온 숙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대회장에는 그 물음에 대한 작은 답들이 있었다. 기억에 남는 것은 학술 발제에서 소개된 김옥숙의 장편소설 『흉터의 꽃』이다. 소설은 원폭 2세인 한 여성이 자신과 어머니, 그리고 아들에게 대물림된 몸을 응시하는 대목에서, 그 상처를 평화의 꽃을 피울 자리로 바꾸어 낸다.

 

내 몸은 단순히 내 자신만의 몸이 아니다. 내 아들 진수의 몸도 그렇다. 원폭의 끔찍한 화상 흉터가 그대로 남아 있는 엄마의 몸. 대퇴부무혈성괴사증을 앓는 자신의 몸, 그리고 뇌성마비 환자인 진수의 몸은 원폭 피해로 인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말해주는 몸이었다. 원폭의 상처 위에서 평화의 꽃 한 송이를 피워낼 몸이었다.

— 김옥숙, 『흉터의 꽃』

 

이 대목 앞에서 나는 기억이란 사람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글로, 흉터로 남아 다음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생각했다. 증언하던 이가 세상을 떠나도 그가 남긴 흉터의 기록은 남는다.

 

전시장 한편에는 제천 간디학교 학생들이 원폭피해자들에게 보낸 쪽지가 빼곡히 붙어 있었다. “꼭 기억할게요”라는 서툰 손글씨들이 사라져 가는 증언을 대신 붙들고 있었다.

 

이어받는 일은 국경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번 대회에는 일본 와세다대 학생 27명과 영남대 학생 20여 명, 인제대 학생 10여 명이 함께했다. 청년들이 국경을 넘어 같은 자리에 앉았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이었다. 그런데 학생들은 한일 연대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이야기도 솔직하게 꺼냈다. 한국에서는 일본을 먼저 가해국으로 떠올리고 정작 일본에서는 자국이 일으킨 전쟁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전범국가가 무슨 낯으로 반전을 말하느냐며 일본이 반전 메시지를 담은 영화나 만화를 만드는 것 자체를 비웃기도 한다고 했다.

 

나는 그런 냉소가 그 안에서 누구보다 전쟁을 반성하고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몰라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본의 젊은 세대는 자국이 저지른 침략과 식민지배의 가해를 분명히 배우고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전쟁을 결정한 자리에 함께 있지도 않았던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전범국 국민이라는 이유만으로 과한 짐을 지우는 것은 다른 문제다. 한국과 일본이 연대로 나아가려면 이 지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과거는 지울 수 없고 지워서도 안 된다. 그러나 그 과거 위에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은 같다.

 

증언대에는 카자흐스탄과 아메리카 원주민 피폭자도 올랐다. 카자흐스탄은 옛 소련의 핵실험으로, 아메리카 원주민은 미국의 핵실험으로, 일본은 원폭 투하로 피폭되었다. 저마다 다른 경험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피해들은 결국 하나로 이어져 있다. 핵무기를 만들고, 실험하고, 떨어뜨리고, 그에 따른 피해가 몇 세대에 걸쳐 대물림되는 하나의 사슬. 서로 다른 얼굴을 한 피해들이 실은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을 그 증언들을 나란히 듣고서야 알았다.

 

이남재 합천 평화의집 원장이 만든 세계 원폭피해 지도가 바로 그 사슬을 한 장으로 보여주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뿐 아니라 마셜제도, 카자흐스탄, 미국 원주민 공동체까지, 핵의 피해가 전 지구에 흩어져 있었다. 비핵평화가 어느 한 나라의 과거사가 아니라 지금 인류 전체의 과제라는 사실을 그 지도 한 장이 말해주었다.

 

[사진] 합천 비핵·평화대회 참가단

필자와 2026 합천비핵·평화대회 참가단이 “핵 없는 세상을 일구기 위해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피폭 2세의 권리를 보장하라!” 현수막을 들고 단상에 섰다. (출처: ‘합천평화의집’ 다음 카페)

 

다시 8월이다. 우리가 되찾았다는 그 빛을 진심으로 기억하려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빛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살상의 빛을 잊지 않는 것, 그래서 다시는 그런 빛이 없도록 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합천에서 돌아오며 챙겨 온 다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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