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6.7-8. 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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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 대한 짧은 생각

신진선 | 정책편집부장
얼마 전 후배를 만나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나눴다. 학생운동 막바지에 느끼는 이런저런 고민들을 나누면서 앞으로 어떤 운동을 할 것인지 어떻게 먹고 살 것인지 등(특히 생계문제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에 대해 이야기했다. 맞다. 나도 작년 이맘때쯤 이런 고민을 참 많이 했었다. 참 불안한 시기이지. 학생운동을 할 때는 하루하루 근근이 연명하며 그렇게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하고, 극한의 상황을 감내하고 살면 되지만(변변한 방도 없이, 1700원짜리 학생식당 밥도 사먹을 돈이 없어 전전긍긍할 때도 있었으니…. 지금 나의 살림살이는 그 때에 비하면 참 많이 나아졌으니 행복할 따름이다) 사회운동을 하게 되면, 아니 정확하게 사회운동을 시작할 나이쯤이 되면 이제 조금 긴 호흡으로 자기 삶의 전망을 그려야 하고, 이 전망을 그리는 데 있어 생계유지의 문제는 빠질 수 없으니까. 이 친구의 고민이 십분 이해되었다. 물론 고민을 해도 사실 답이 잘 안 나오고 막상 닥치면 대강대강 살 수 있고 또 다 방법이 있기 마련이지만. 하여튼 내가 여기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게 아니다.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서.

후배네 가족은 20년이 넘도록 살아왔던 오래된 주택을 허물고 그곳에 건물을 짓는 대공사를 했다고 했다. 일종의 재테크인 것이다. ‘심하게’ 검소하게 살던 후배네 집 사정이 한결 나아지고 이후 부모님의 노후도 어느 정도 보장이 되니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후배는 이사하고 집 정리한다고 오랜만에 집에서 부모님이랑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 속에서 느낀 이런저런 소회들을 이야기했다. 집을 짓는 과정에서 엄마와 아빠의 의견차이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언제나 아빠가 엄마의 의견을 무시하며 아빠의 의견으로 정리되는 일, 살림을 하지 않는 아빠가 집 내부의 세밀한 부분들까지를 고려하지 못하다 보니 결국은 모두가 불편함을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된 상황, 집들이를 하면서 아빠는 손님을 맞아 접대를 하고 엄마는 계속 음식을 챙기고 날라야 하는 상황, 너무 거창한 집들이 덕택에 뒤처리할 것이 산더미 같지만 밤늦게까지 일하는 사람은 엄마와 딸인 자기였다는 것. 물론 이런 상황은 가부장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루 이틀 된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던 부모님들에게서도 이런 모습이 발견되고, 또 이것을 겪고 있는 사람이 바로 곁에 있는 ‘엄마’라는 것이 이 친구를 ‘새삼스럽게’ 흥분하게 했나 보다.

우리 집도 비슷한데 사실 엄마를 ‘무시’하는 것은 아빠만이 아니다. 자식들도 그런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도 그런다. 아빠에게는 감히 하지 못하는 반항들을 엄마에게는 하니까 말이다. 엄마가 아빠보다 더 친밀해서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지만 솔직히 그거라기보다는 엄마는 웬만하면 다 받아주고 참고 또 결정적으로 아빠가 가진 일종의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마는 세상물정도 모르고 (아빠에 비해) 관심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얘기해도 잘 모른다고 지레짐작하고 진지한 대화조차 나누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어떻게 우리 엄마들이 그렇게 살아왔고 살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같으면 그렇게 못 살 거 같다고, 지금 우리 엄마들이 무슨 낙으로 사는지 모르겠다고. 20년이 넘도록 같이 산 남편과 자식들이 자신을 온전한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고, 또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삶의 목표도 불분명한데 말이다. 한창 화제가 되었던 ‘주부 우울증’이라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엄마들의 공통된 문제라는 것을 우리는 비로소 새삼스레 인식하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가족은 여성 억압과 착취, 그리고 이를 재생산하는 매개였으며, 또 신자유주의 하에서 가족은 위기를 맞게 되고 여성에게는 이중삼중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우리는 이를 타개하고 개인들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한 고민과 실천을 계속 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이 글을 통해 내가 가장 핵심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엄마한테 잘하자!’이다. 집안일도 돕고, 엄마랑 놀기도 하고 얘기도 많이 하고 말이다. 난 엄마를 일 년 중 많이 보면 열흘 정도 본다. 엄마는 물론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이제 좀 더 집에 자주가고 가면 TV보고 잠만 자지 말고 집 청소도 좀 하고 엄마랑 목욕탕에도 가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어야겠다. 또 엄마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 뭔지도 묻고 그 일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야겠다고 생각해본다.
주제어
여성
태그
이탈리아 공산주의재건당 노조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