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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6.9.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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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들에 대한 이야기

안성민 | 노동부장
이번 갈월동 기행에서는 같이 사는 식구들에 대해 몇 자 적어볼 생각이다. 물론 가족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가족이 아닌 또 다른 인생의 동반자에 관한 이야기다.

난 후배 두 녀석과 같이 살고 있다. 두 녀석 모두 대학시절을 함께 보낸 인연으로 같이 살고 있다. 나까지 포함해서 이렇게 세 명이 함께 살고 있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아직 각자 '독립'할 준비가 안 되어서인데,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다. 그렇다고 해서 이 동거관계가 단기적이거나 임시적이지는 않다. 한국사회의 열악한 주거현실에서는 방을 유지하는 데만도 막대한 비용이 들어서 이처럼 얄팍한 이유로 시작한 동거를 오래 지속시켜 준다. 난 둘째 녀석과는 벌써 4년째 동거중이고, 막내 녀석과는 이제 4개월 정도 되었으나 이 녀석 역시 결혼과 같은 사적 소득이전의 호기가 오지 않는 한 탈출구가 없다는 점에서, 우리 셋의 동거관계는 비교적 튼튼한 토대(?) 위에 있는 셈이다. 아무튼 대부분의 '얄팍한' 동거는 이 같은 경제적 이유에서 시작되고, 그래서 대개 급조된다. 4개월 전 막내가 동거 공동체에 합류했다. 당시 상황은 대략 이랬다. 내가 집에서 혼자 TV를 보고 있는데, 문을 열고 큰 가방을 든 막내가 들어섰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형 저 여기 살려고 왔어요!" 난 적잖이 당황했으나 내색하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래. 야 근데 이거 재밌다. 짐 작은 방에 놓고 와서 봐라!" 지금 생각해도 이보다 더 쿨 할 수는 없다.(흐뭇)

막내는 전업 시인이 꿈이다. 학교 다닐 때도 시를 제법 써 선생님들께 칭찬을 많이 받았다. 많은 사람이 이 녀석에게 시를 생일선물로 받았으며, 숱한 장소에서 이 녀석의 시 낭송을 들어야 했다. 이 녀석이 춤과 노래 일색이었던 대동제 장기자랑 대회에서 시 낭송으로 상을 탔던 일은 유명한 일화다. 막내는 감정이 풍부해 자주 눈물을 보이는 편이다. 특히 어머니에 대해서는 매우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데, 녀석의 시에 어머니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어머니는 현재 인천 부둣가에서 생선가게를 하신다. (막내가 들어온 이후 우리 집 냉동실에는 각종 생선이 떨어질 날이 없다) 이 같은 막내가 얼마 전 취직을 했다. 메이저 출판사에 아동서적을 기획․제작․납품하는 작은 하청 출판회사의 6개월 계약직으로 말이다. 막내 말에 따르면 이미 출판업계도 장기 불황 속에서 중간규모 이상의 출판사들이 상당부분 아웃소싱을 추진해 하청구조가 복잡하고 광범위하다고 한다. 아무튼 막내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준비과정을 잠시 접고 취직을 결심했고 비정규직으로 사회에 첫 걸음을 내딛었다. 하지만 이 녀석이 6개월 후에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당장 매달 방 유지를 위해 수입의 상당부분을 지출해야 하고, 무엇보다 8번 받은 학자금 대출의 원금과 이자를 갚아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역시 비정규직 노동자다. NGO 관련 신문을 펴내는 곳에서 웹디자인을 하고 있다. 이 신문사는 신문을 웹 형식으로도 내보내기 때문에, 그의 일은 상시업무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는 3년이 다 되도록 매년 계약을 갱신하면서 1년짜리 비정규직으로 일을 하고 있다. 둘째는 내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겪어왔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착한 사람이다. 고집은 센 편이지만, 그 고집으로 인해 다른 사람과 얼굴을 붉히는 일은 만들지 않는다. 그러니 누가 먼저 시비를 걸지 않는 한 결코 다른 사람과 다툴 일이 없는 녀석이다. 나는 이 녀석을 통해 우유부단함이 타인을 배려하는 미덕일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고, 침묵이 논리보다 현명할 수 있음을 깨닫기도 했다. 방을 유지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가장 큰 공헌을 하면서도 방의 가장 작은 자리를 차지할 줄 아는 이 녀석은 분명 나보다 여러모로 '큰' 사람이다. 녀석은 다음 주부터 디자인 학원에 다닐 예정이다. 그동안 마음은 있었으나 돈과 시간 때문에 주저해왔던 일인데, 모처럼 큰 결심을 한 모양이다. 최근에 안 사실이지만, 녀석은 조건이 만들어지면 디자인 공부를 위해 유학도 가고 싶단다. 좀처럼 욕심을 부리지 않는 녀석인데... 아무튼 나에겐 4년만의 새로운 발견이다. 참, 이 녀석은 설거지를 죽기보다 싫어한다. 설거지하기 가 싫어 차려놓은 밥조차 외면할 정도다. 난 이 녀석의 이런 태도를 아직까지 이해할 수 없지만, 이제 외울 수는 있다.

이 녀석들과 나는 한 '식구'다. 급하게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니 '식구'는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란다. 네이버에서 이 뜻을 찾고 나서 한참을 피식거렸다. 좀 무미건조하다는 느낌이 있지만, 우리의 관계를 과장이나 폄하 없이 비교적 투명하게 설명해주는 표현이다. 나는 10년 넘게 외지생활을 해오면서 수없이 '같이 사는 것'에 실패해왔다. 그동안의 실패를 통해 체득한 것은 같이 사는 상대와 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살다보면 수시로 그가 '37도의 열 덩어리'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같이 사는 순간 이미 상대는 시공간적 여유를 가지고 차분히 살펴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수시로 말초감각으로 느껴지는 대상으로 전락하기 쉽다는 얘기다. 나도 막내가 들어온 뒤 갑자기 높아진 인구밀도에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식구'들에 대해 재인식하는 과정이 없으면, 어느 순간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 때 자기혐오가 찾아오곤 한다. 이처럼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하는 것'은 굉장히 무미건조한 일상에 불과하지만, 그 이면에는 끊임없는 증오와 재인식이라는 치열한 과정이 내재되어 있다. 어떤가.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둘째 녀석도 그렇고 막내 녀석도 그렇고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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