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저지 투쟁 국제 전략회의에 다녀와서
FTA 반대 투쟁을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으로!
지난 7월 26일부터 29일까지 태국 방콕에서는 최근 세계적으로 활발히 추진되고 있는 양자간, 다자간 FTA에 맞선 투쟁을 전략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국제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는 FTA나 양자간 무역협정에 맞서 싸우는 19개국의 사회운동 단체들이 참가하여 신자유주의 세계화 하에서 FTA가 가지는 정치적, 경제적 함의를 분석하고 이에 맞서 싸우는 사회운동의 경험을 공유했다. 칠레,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멕시코, 에콰도르, 니카라과 등 라틴 아메리카에서부터 모로코, 모잠비크, 세네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아프리카와 파키스탄, 필리핀, 인도네시아, 호주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이르는 전 세계의 활동가들이 모였다. 더불어 각 국의 경험을 교류함으로써 서로의 투쟁을 더욱 강화할 수 있는 전략을 토론했다. 한국에서는 전농, 민주노총, 미디어문화행동, 사회진보연대의 활동가들이 이 회의에 참가하여 한국에서 FTA 투쟁의 경험을 발표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도구, FTA
WTO DDA 협상의 미래가 불투명해진 현재, 양자간 다자간 FTA는 더욱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략회의에 참가한 활동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FTA의 정치적, 경제적 의미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 공감했다. FTA는 초민족자본들이 WTO 협상보다 빠르게, 그리고 심도 깊게 무역자유화를 추진하는 데 주요한 경로가 되었다. FTA는 세계은행, IMF, 여타 개발은행과 같은 국제금융기구들과 함께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확산하고 제3세계 국가의 경제를 통제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물론 미국 국제개발청(USAID)을 위시로 한 원조기구들의 각종 원조 프로그램도 이에 일조하고 있다. 제3세계에 원조를 제공하는 대가로 민영화나 FTA와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 붙이는 것이다. 더불어 FTA는 단지 경제적 범위에 그치는 것이 아닌데, 미국은 자신의 외교 전략에 동의하는 국가들만 추려서 FTA를 추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중동의 국가들과 FTA를 체결하면서 이스라엘 수출품에 대한 보이콧을 해제하라고 요구한다. 이런 식으로 미국은 ‘대테러 전쟁’을 지지하는 세력을 확산하는 데 FTA를 활용한다. FTA는 군사주의의 팽창과 궤를 같이하고 있으며, 미국과 초민족자본에게는 경제적 이해를 넘어서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가지는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다.
FTA의 정치적·경제적 의미에 대한 공통의 인식을 확보하는 것은 전 세계에서 모인 활동가들이 이에 맞서는 전략을 논의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왜냐하면 FTA에 반대하는 논리를 구성하고 투쟁을 조직하는 과정에서 ‘국익’이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산업을 방어하자는 논리가 들어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익이라는 논리를 넘어 현재 FTA가 심화하는 신자유주의 질서가 민중의 보편적 권리를 파괴하는 것이며, 이를 넘어선 대안적인 세계를 구상하자는 합의를 모으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이미 많은 활동가들이 국익과 산업별 이해라는 논리가 가지는 맹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각 국 정부가 FTA를 추진하면서 보조금이나 GDP 성장률과 같은 수치를 들어 민중을 부문별 이해당사자로 분할하는 교묘한 논리에 대한 규탄이 회의 내내 계속되었다. 또한 FTA를 반대하는 사회운동이 지향해야 할 바는 민중 스스로가 조직하고 제기하는 보편적 권리에 입각한 것이어야 함도 강조되었다. 최근 라틴 아메리카에서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ALBA)에 대한 라틴 아메리카 활동가들의 평가를 예로 들 수 있다. ALBA가 라틴 아메리카의 많은 사회운동들이 그 동안 벌여온 투쟁과 토론의 영향을 받아서 탄생한 것이며, 신자유주의의 논리를 지양하고 연대와 민중의 생존이라는 원리에 입각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이 실현됨에 있어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ALBA의 일환으로 건설되고 있는 송유관 부지를 위해 그 곳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이 쫓겨날지도 모르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라틴 아메리카의 활동가들은 민중의, 민중에 의한 대안이 천연자원에 대한 민중의 권리, 거주의 권리, 생존의 권리, 식량주권과 같은 민중의 권리들이 보편화되고 실현되는 것임을 명확히 하면서 지속적으로 운동들 간의 토론과 연대를 확장해야 함을 역설했다.
서로의 경험을 교류하고 배우다
1) 태국
태국은 아시아 국가 중에서 싱가포르에 이어 두 번째로 미국과 FTA 협상을 시작했다. 태국의 탁신 총리가 이끄는 정권은 태국 현대사에서 가장 강력한 정권으로 평가받는다.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해왔고, 기업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형성했다(태국의 활동가는 ‘공동지배’라고 표현했다). 이런 강력한 정권 하에서 태·미 FTA 반대 운동을 펼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2) 에콰도르
에콰도르에서 농민운동을 하고 있는 루시오는 에콰도르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성격에 대한 설명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국은 전미자유무역지대(FTAA)를 실현하려는 계획이 난항을 겪자 개별 국가와 FTA를 체결하는 것으로 전략을 바꿨고 에콰도르 정부는 이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지난 4월 에콰도르에서 미국과의 FTA에 반대하는 거대한 시위가 있었고, 이 과정에서 대학생인 호니 몬테스데오카가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루시오는 이런 투쟁이 조직된 과정을 설명했다. FTAA에 반대하는 투쟁을 진행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과의 FTA 협상이 진행되자 해안 지역의 어민 단체, 농민 단체, 원주민 단체, 노동조합, 환경운동 단체, 사회운동 단체들이 활발하게 FTA 반대 운동에 결합했다. 이들은 방방곡곡을 다니며 FTA에 대해 교육하고 사람들을 조직하는 운동을 펼쳤다. 더불어 에콰도르 운동들은 대륙적 차원과 국제적인 차원에서 사회운동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와 전략을 공유하는 데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정부는 이에 대해 강력한 탄압으로 맞섰지만, 탄압이 강해질수록 FTA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미국은 FTA를 체결하기 위해 USAID를 활용했다. USAID가 에콰도르의 무역대표단을 훈련하도록 재정을 지원했고, FTA 체결 후 이익이 있을만한 부문에 대한 연구를 지원했다. 뿐만 아니라 피해가 예상되는 부문의 단체와 민중에게는 재편될 경제체제 하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교육하고 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과의 FTA 협상을 반대하며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민중의 봉기가 거세지자 정부는 미국의 석유회사 옥시덴탈의 부정부패에 대해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내몰렸고, 에콰도르 정부가 옥시텐탈과의 계약을 취소하자 미국은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 하지만 에콰도르의 사회운동들은 이것이 끝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미국과의 FTA 협상을 끝까지 저지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하고, 대안을 구체화하기 위한 모색을 중단할 수 없다고 밝혔다. 생태와 농업의 문제를 연구하고, 식량주권의 의미를 농민과 그 밖의 민중들과 공유하기 위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고 한다.
3) 칠레
칠레는 이미 36개 이상의 FTA를 체결한 국가다. 칠레에서 FTA의 효과는 민영화를 위한 법, 제도 정비에서 가장 먼저 표면화되었다고 한다. 공공 부문의 모든 것이 민영화되고 있는데, 가장 놀라운 것은 해역조차 민영화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해역을 민간 기업들에게 팔아넘기고 있는 것이다. 민영화된 해역에서 그 기업이 아닌 다른 이들은 조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칠레의 어민들은 생존의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 최근 칠레에서는 이런 민영화에 반대하는 운동이 새롭게 조직되고 있다. 피노체트 독재 하에서 사회운동이 거의 궤멸되었는데, 최근 민영화를 반대하는 운동으로 새롭게 조직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원주민, 농민, 학생들이 주축을 이루고, 민영화된 연금제도(이는 피노체트 정권 하에서 실행되었다) 하에서 노후의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가세하고 있다. 게다가 수도뿐만 아니라 강물까지도 사유화되면서 민영화 반대 운동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 운동들은 서로 통합되고 있는데, 가장 큰 원칙은 국가와 정부에 대한 자율성을 지키는 것이라고 한다. 최근 칠레에는 재야의 인물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여성이자 독재 정권 하에서 고문을 당했고, 민주화 운동을 벌였던 인물이라고 한다), 그녀는 지금까지의 FTA를 모두 인정하고, 신자유주의적인 정책 기조도 바꾸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운동의 전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칠레에서 온 카밀라는 최근 세계은행까지도 시민의 참여를 말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이들이 민중을 신자유주의 통치성에 포섭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거부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전략을 모색하자, 연대를 강화하자
소개한 국가의 경험 외에도 참가한 활동가들이 소개한 다른 모든 사례들이 FTA에 맞서 투쟁하는 모든 운동들에게 귀중한 자산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했다. 배제된 땅 아프리카에서조차 이윤을 찾으려는 초민족자본들과 이를 지원하는 국가, 국제기구들은 경제파트너쉽협정(EPA)이라는 그럴 듯한 이름으로 아프리카에 들어오고 있다. 내전과 기아, 처참한 빈곤 속에서 시달리는 아프리카 민중들은 이런 협정이 기회인지 위험인지를 두고 갈등하고 있다. 너무나 빈곤한 상황에서 최소한의 발전이라도 이뤄야하지 않겠냐는 절박한 심정이 기대로 표출되는 것이다. 아프리카 사회운동들은 이런 현실 속에서 민중을 조직하고 운동을 형성하기 곤란한 조건에 처해있음을 토로했고, 그 하에서도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인식을 명확히 하고 이에 맞선 저항을 형성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음을 밝혔다. 그 구체적인 상황이야 각자 다르겠지만, FTA를 기회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그 본질을 알리고, 운동의 주체로 조직하기 위한 사회운동들의 노력이 모든 곳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이런 사회운동들에게 서로의 투쟁의 교훈을 공유하고 공동의 전략을 모색하고 연대를 강화하는 일은 너무나 절박했다. 아래로부터의 조직화가 강조되었고, 국제적인 연대의 중요성도 제기되었다. 대중교육의 중요성, 신자유주의와 FTA를 연계시키는 문제, 정부와 국제기구들의 포섭과 배제에 맞서 연대를 강화하는 문제, 서로의 투쟁과 인식을 일상적으로 교류하는 문제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교훈과 제안이 도출되었다. 오전 9시부터 저녁 8시까지 밥 먹는 시간과 두 번의 쉬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에 회의가 진행되었지만, 그도 모자랄 정도였다. 이 전략회의가 어떤 구속력이 있는 결의를 모으자는 취지는 아니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의 제안을 모아서 정리하는 것으로 회의는 끝을 맺었다.
구체적인 제안들
·운동이 활성화되고 있는 지역을 알 수 있도록 FTA 반대 투쟁의 지도를 그리자.
·정보와 분석을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 지금까지 나온 연구자료, 교육 자료를 공유하고, 앞으로 나올 자료들을 축적하자.
·FTA는 무엇인지, 그것의 영향은 무엇인지를 종합하는 간결한 자료를 만들자.
행동제안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사회운동들의 연대와 전략을 모색하기 위한 워크샵을 한·미 FTA 4차 협상 기간에 한국에서 개최하자.
·이경해 열사가 자결한 9월 10일에 FTA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전 세계 공동행동을 벌이자.
한·미 FTA 반대 투쟁을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투쟁으로!
전략회의에 참가한 많은 활동가들의 경험은 FTA가 노동자민중의 삶과 권리를 담보로 초민족적 자본의 이윤을 추구하는 기제일 뿐임을 말해준다. FTA는 전 세계를 신자유주의적인 질서로 재편하는 과정이며, 이런 신자유주의적인 질서는 필연적으로 노동자민중의 삶과 날카롭게 대치될 수밖 에 없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좀 나은 FTA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FTA의 문구를 바꾸거나 협상 과정 자체를 민주화하는 것은 일시적인 성과일 수는 있지만, 역설적으로 FTA의 영향을 보완하는 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이는 한·미 FTA 반대 투쟁에서도 마찬가지다. 한·미 FTA 반대 투쟁이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투쟁과 연결되지 못하고,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 재편을 심화하면서 온 민중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반대 투쟁과 연결되지 못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싸우는 세계의 민중들과 연결되지 못하면서 협상을 저지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진정한 성과도 아닌 것이다. 한·미 FTA 반대 투쟁을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민중의 투쟁으로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