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잔치는 끝났을까?
지난 여름, 한미FTA 2차 협상 저지 투쟁이 한창이었다. <한미FTA 저지 2차 범국민대회>가 있던 7월의 어느 날, 그 날은 비가 참 많이도 내렸다. 쏟아 붓는 장맛비와 경찰의 물대포에 젖을 대로 젖어버린 사람들의 몸에선, 하나같이 이제 막 끓인 커피 마냥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너무 오래 뜨건 탕 속에 있다가 살이 불어버린 아이같이 쪼글쪼글한 손으로 소주잔을 털어 넣으며 몸을 덥히던 사람들의 말소리가 웅얼웅얼 광화문 귀퉁이의 식당을 가득 채웠다.
비오는 날의 지하철은 어수선했다. 수많은 사람들만큼이나 많은 우산들은, 사람들의 손에 들려 앞뒤로 흔들릴 때마다 채 버리지 못한 물방울들을 튕겨냈고, 승객들이 기대 놓은 우산 밑에는 조그만 웅덩이들이 솟아났다. 빈자리에 그이를 앉히고 앞에 선 나는 손잡이를 잡고 몸을 기울여 발장난을 쳤다. 톡! 톡! 발 코를 가볍게 찼다. 고개를 숙여 책을 읽고 있던 예쁜 얼굴이 살짝 웃었다. 나는 어느새 발장난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내 몸을 밀치고 지나갔다. 비틀 비틀, 술에 취한 남자는 민주노총 조끼를 입고 있었다. 만취한 건 아니었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참 무거워보였다. 반가움 때문이었는지 걱정 때문이었는지, 남자의 뒷모습을 나는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나를 지나쳐 다음 칸으로 건너가려던 남자는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곤 곁에 선 남자 둘을 올려다보았다. 칸 사이 문을 좌우로 가로막고 서있던 두 남자는, 마치 길거리에 ‘신사복 왕창 세일’ 같은 문구가 붙어 있는 알록달록한 포스터에서 막 걸어 나온 듯이 반팔 와이셔츠에 넥타이, 서류 가방을 한쪽으로 매고 있었다. 술 취한 남자는 넥타이들과 무언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거리 때문에 들리지 않던 술 취한 남자의 말소리는 조금씩 커졌고, 이내 그 칸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의 고함 소리로 변했다.
“지나갈라다 보니까...이렇게 툭, 할 수도 있는 거지, 내가 언제 쳤다고 그래!”
술에 취한 남자는 ‘툭’하며, 왼쪽에 선 넥타이에게 몸을 부딪치는 시늉을 해 보였다. 노약자 보호석에 앉아있던 젊은 여자가 슬며시 일어나 자리를 피했다. 술 취한 남자를 에워싸듯 둘러 선 넥타이들은 계속해서 무슨 말들을 쏟아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왼쪽에 선 넥타이가 술에 취한 남자의 위아래를 훑으며 무슨 말인가를 했을 때, 술에 취한 남자가 소리쳤다.
“민주노총? 그래, 나 민주노총이다. 그게 어쨌는데...”
무언가 민주노총을 걸고 욕을 했던 모양이다. 결국 멱살잡이가 시작되었다. 어째야 되나 상황을 살피던 나는 그이에게 우산을 건네주고 달려갔다. 멱살을 잡힌 넥타이도 지지 않고 늙은 노동자의 조끼 자락을 움켜쥐었다. 술 취한 남자의 검게 그을린 팔은 그러나 이제 갓 서른을 넘긴 듯 보이는 젊은 넥타이의 힘을 당해내지 못했고, 그의 머리는 지하철 칸 사이의 문에 쿵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나는 얽힌 팔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어 두 사람을 떼어 놓았다.
“민주노총...민주노총이...그게...너한테 뭐, 뭐...그래, 어쨌는데?”
분에 겨워서인지 술 취한 남자의 말은 두서가 없었다.
“내가 임마, 나이가 60이야. 너 만한 애가 있어!”
“아저씨 참으세요, 아저씨 참으세요.”
나는 술에 취한 남자를 붙들고 애원했다. 사실 그가 참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그는 술에 취해 있었고, 핸드폰도 에티켓 모드로 바꾸고 걸려온 전화는 짧게 끊어야 한다는 KTF적 생각으로 이동하지 못한 채 지하철 안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가뭄 때에도 태풍이 들 때에도 IMF 때보다 경제가 어려운 때에도 파업이나 일삼는 민주노총 조합원이라는 사실을 그 칸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다.
“그래, 나 민주노총, 비정규직이야. 한 달에 74만 5천원 받는다. 니가 보태준 거 있어?”
말리는 사람이 있어서인지 그는 계속 소리를 질렀다. 악을 쓰는 사람을 막기는 힘들었다. 허리를 붙잡아 안고, 제발 좀 참으시라는 말을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힘이 부쳐갈 쯤, 한 남자가 내 뒤쪽에서 달려들어 술 취한 남자에게서 나를 떼어 냈다. 아까 그 넥타이들이 아니었다.
짧은 머리에 덩치가 제법 좋은 남자는 다짜고짜 술 취한 남자의 목을 졸랐다. 오른손 엄지와 네 손가락 사이에 술 취한 남자의 목을 끼우고, 뒤로 물러나 목을 뺄 수 없도록 왼손으로는 술 취한 남자의 뒷머리를 잡았다. 악!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짧은 비명을 질렀다. 짧은 머리는 그 상태로 술 취한 남자를 문까지 밀어붙였다.
“지금 뭐하는 거에요!”
나는 짧은 머리에게 달려들어 그의 팔을 떼어놓으려 했으나, 그의 팔은 완강했다. 아까의 넥타이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완력이었다. 짧은 머리는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는 손을 풀어보려 버둥대는 술 취한 남자에게, 한 자 한 자 힘을 주어 말했다.
“시.끄.럽.다.고.”
짧은 머리는 한 손으로는 여전히 술 취한 남자의 목을 조른 채로 지하철 칸 사이의 문 두 개를 열어 다음 칸으로 던지듯 밀어 버렸다.
“저런 건 그냥, 저리로 밀어버리면 된다고...”
혼잣말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뱉으며 문을 닫고 돌아선 짧은 머리는, 의외로 젊은 얼굴이었다. 이제 스물다섯은 되었을까? 나는 그를 훑어보았다. 검정색 웰트화, 아이보리색 면바지에 하늘색 폴로셔츠를 깔끔하게 받쳐 입곤 숄더백을 매고 있었다. 삭발에 가까운 머리를 제외하곤 아직 학생인 듯한 복장이었다.
“당신 뭐하는 거야!”
짧은 머리에게 말했다. 짧은 머리는 자신을 도와주었는데 왜 그러는지 알 수 없다는 눈치로 날 바라보았다. 다시 말했다.
“당신 뭐하는 거야?”
“......”
“지금 뭐하는 짓이에요!”
그이가 옆에서 말했다. 여전히 알 수 없다는 눈치로 짧은 머리가 답했다.
“자꾸 시끄럽게 굴길래...”
“시끄럽다고 사람 목을 졸라?”
부러 ‘목을 졸라’라는 부분에 힘을 주었다. 짧은 머리는 슬금슬금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는지 짧은 머리는 내게 슬며시 고개를 숙여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사람 뒷머리를 움켜쥐고 목을 조르던 놈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번 정차 역은 공덕, 공덕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지하철 6호선 봉화산 방면이나...’
내리기 전에 술 취한 남자를 봐야할 것 같았다. 그이와 함께 옆 칸으로 갔다. 술 취한 남자는 손잡이를 잡고서 이쪽 칸을 줄곧 쳐다보고 있던 것 같았다.
“괜찮으세요?”
그는 대답대신 고개를 세차게 아래위로 흔들며 왼손을 들어 마른세수를 했다. 더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며 고개를 돌렸을 때 열차가 역 내로 접어드는 게 보였다. 우리는 말없이 함께 내렸다. 술 취한 남자는 고개를 들어 짧은 머리와 넥타이들이 있던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나와 그이에게 악수를 청했다.
“저희...내일부터, 파업 들어갑니다.”
남자는 내 손을 흔들며 천천히 말했다. ‘파업’이라는 말을 뱉으며, 가볍게 쥐었던 남자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꼭 승리 하세요’라고 말했지만, 아무 소용도 없고 감정도 담겨있지 않은 인사치레처럼 느껴져 금새 후회했다. 남자는 그이와 손을 흔들며 똑같은 말을 하곤 아까처럼 손을 들어 얼굴을 훔쳤다. 늙은 노동자의 회한이 한 방울, 짧고 두툼한 손에 쓸려갔다. 자식보다 어려보이는 우리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한 그는 몸을 돌려 천천히 환승 통로를 향해 걸어갔다.
한바탕 드잡이 질로 지칠 대로 지친 그이와 나는 승강장 벤치에 주저앉았다. 그래도 주먹이 오가지 않은 게 다행이라 생각하며 마른 숨을 내쉬고 있을 때, 그이가 조금 전부터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 방울, 두 방울......결국 그이는 통곡에 가까운 울음을 터뜨렸다. 난 무슨 말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꼭 승리하세요’ 따위의 말이 나올까 두려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앉아 우산 끝을 톡! 톡! 소리 나게 찼다. 그이에게서 다시 받아든 우산은 내 발에 채일 때마다 여기저기 물방울을 튕겨 댔다. ‘휘날려라 거침없이, 창공의 저 깃발. 노동자의 자랑 민주노총~’ 나는 조그맣게, 그이가 들을 수 없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흥얼거렸다.
그리움에 목마름에 부르던 그 이름, 너와 나의 약속, 약속이었지.
휘날려라 거침없이, 창공의 저 깃발. 노동자의 자랑 민주노총.
아아~ 외롭던 이 가슴에 꽃처럼 연인처럼
너를 안고 가리라. 내 너를 사랑하리라.
아아아~ 내 너를 지켜 주리라.
내 사랑 민주노총. 민주노총 내 사랑.
- 「민주노총 내사랑」
비오는 날의 지하철은 어수선했다. 수많은 사람들만큼이나 많은 우산들은, 사람들의 손에 들려 앞뒤로 흔들릴 때마다 채 버리지 못한 물방울들을 튕겨냈고, 승객들이 기대 놓은 우산 밑에는 조그만 웅덩이들이 솟아났다. 빈자리에 그이를 앉히고 앞에 선 나는 손잡이를 잡고 몸을 기울여 발장난을 쳤다. 톡! 톡! 발 코를 가볍게 찼다. 고개를 숙여 책을 읽고 있던 예쁜 얼굴이 살짝 웃었다. 나는 어느새 발장난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내 몸을 밀치고 지나갔다. 비틀 비틀, 술에 취한 남자는 민주노총 조끼를 입고 있었다. 만취한 건 아니었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참 무거워보였다. 반가움 때문이었는지 걱정 때문이었는지, 남자의 뒷모습을 나는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나를 지나쳐 다음 칸으로 건너가려던 남자는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곤 곁에 선 남자 둘을 올려다보았다. 칸 사이 문을 좌우로 가로막고 서있던 두 남자는, 마치 길거리에 ‘신사복 왕창 세일’ 같은 문구가 붙어 있는 알록달록한 포스터에서 막 걸어 나온 듯이 반팔 와이셔츠에 넥타이, 서류 가방을 한쪽으로 매고 있었다. 술 취한 남자는 넥타이들과 무언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거리 때문에 들리지 않던 술 취한 남자의 말소리는 조금씩 커졌고, 이내 그 칸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의 고함 소리로 변했다.
“지나갈라다 보니까...이렇게 툭, 할 수도 있는 거지, 내가 언제 쳤다고 그래!”
술에 취한 남자는 ‘툭’하며, 왼쪽에 선 넥타이에게 몸을 부딪치는 시늉을 해 보였다. 노약자 보호석에 앉아있던 젊은 여자가 슬며시 일어나 자리를 피했다. 술 취한 남자를 에워싸듯 둘러 선 넥타이들은 계속해서 무슨 말들을 쏟아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왼쪽에 선 넥타이가 술에 취한 남자의 위아래를 훑으며 무슨 말인가를 했을 때, 술에 취한 남자가 소리쳤다.
“민주노총? 그래, 나 민주노총이다. 그게 어쨌는데...”
무언가 민주노총을 걸고 욕을 했던 모양이다. 결국 멱살잡이가 시작되었다. 어째야 되나 상황을 살피던 나는 그이에게 우산을 건네주고 달려갔다. 멱살을 잡힌 넥타이도 지지 않고 늙은 노동자의 조끼 자락을 움켜쥐었다. 술 취한 남자의 검게 그을린 팔은 그러나 이제 갓 서른을 넘긴 듯 보이는 젊은 넥타이의 힘을 당해내지 못했고, 그의 머리는 지하철 칸 사이의 문에 쿵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나는 얽힌 팔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어 두 사람을 떼어 놓았다.
“민주노총...민주노총이...그게...너한테 뭐, 뭐...그래, 어쨌는데?”
분에 겨워서인지 술 취한 남자의 말은 두서가 없었다.
“내가 임마, 나이가 60이야. 너 만한 애가 있어!”
“아저씨 참으세요, 아저씨 참으세요.”
나는 술에 취한 남자를 붙들고 애원했다. 사실 그가 참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그는 술에 취해 있었고, 핸드폰도 에티켓 모드로 바꾸고 걸려온 전화는 짧게 끊어야 한다는 KTF적 생각으로 이동하지 못한 채 지하철 안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가뭄 때에도 태풍이 들 때에도 IMF 때보다 경제가 어려운 때에도 파업이나 일삼는 민주노총 조합원이라는 사실을 그 칸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다.
“그래, 나 민주노총, 비정규직이야. 한 달에 74만 5천원 받는다. 니가 보태준 거 있어?”
말리는 사람이 있어서인지 그는 계속 소리를 질렀다. 악을 쓰는 사람을 막기는 힘들었다. 허리를 붙잡아 안고, 제발 좀 참으시라는 말을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힘이 부쳐갈 쯤, 한 남자가 내 뒤쪽에서 달려들어 술 취한 남자에게서 나를 떼어 냈다. 아까 그 넥타이들이 아니었다.
짧은 머리에 덩치가 제법 좋은 남자는 다짜고짜 술 취한 남자의 목을 졸랐다. 오른손 엄지와 네 손가락 사이에 술 취한 남자의 목을 끼우고, 뒤로 물러나 목을 뺄 수 없도록 왼손으로는 술 취한 남자의 뒷머리를 잡았다. 악!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짧은 비명을 질렀다. 짧은 머리는 그 상태로 술 취한 남자를 문까지 밀어붙였다.
“지금 뭐하는 거에요!”
나는 짧은 머리에게 달려들어 그의 팔을 떼어놓으려 했으나, 그의 팔은 완강했다. 아까의 넥타이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완력이었다. 짧은 머리는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는 손을 풀어보려 버둥대는 술 취한 남자에게, 한 자 한 자 힘을 주어 말했다.
“시.끄.럽.다.고.”
짧은 머리는 한 손으로는 여전히 술 취한 남자의 목을 조른 채로 지하철 칸 사이의 문 두 개를 열어 다음 칸으로 던지듯 밀어 버렸다.
“저런 건 그냥, 저리로 밀어버리면 된다고...”
혼잣말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뱉으며 문을 닫고 돌아선 짧은 머리는, 의외로 젊은 얼굴이었다. 이제 스물다섯은 되었을까? 나는 그를 훑어보았다. 검정색 웰트화, 아이보리색 면바지에 하늘색 폴로셔츠를 깔끔하게 받쳐 입곤 숄더백을 매고 있었다. 삭발에 가까운 머리를 제외하곤 아직 학생인 듯한 복장이었다.
“당신 뭐하는 거야!”
짧은 머리에게 말했다. 짧은 머리는 자신을 도와주었는데 왜 그러는지 알 수 없다는 눈치로 날 바라보았다. 다시 말했다.
“당신 뭐하는 거야?”
“......”
“지금 뭐하는 짓이에요!”
그이가 옆에서 말했다. 여전히 알 수 없다는 눈치로 짧은 머리가 답했다.
“자꾸 시끄럽게 굴길래...”
“시끄럽다고 사람 목을 졸라?”
부러 ‘목을 졸라’라는 부분에 힘을 주었다. 짧은 머리는 슬금슬금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는지 짧은 머리는 내게 슬며시 고개를 숙여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사람 뒷머리를 움켜쥐고 목을 조르던 놈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번 정차 역은 공덕, 공덕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지하철 6호선 봉화산 방면이나...’
내리기 전에 술 취한 남자를 봐야할 것 같았다. 그이와 함께 옆 칸으로 갔다. 술 취한 남자는 손잡이를 잡고서 이쪽 칸을 줄곧 쳐다보고 있던 것 같았다.
“괜찮으세요?”
그는 대답대신 고개를 세차게 아래위로 흔들며 왼손을 들어 마른세수를 했다. 더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며 고개를 돌렸을 때 열차가 역 내로 접어드는 게 보였다. 우리는 말없이 함께 내렸다. 술 취한 남자는 고개를 들어 짧은 머리와 넥타이들이 있던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나와 그이에게 악수를 청했다.
“저희...내일부터, 파업 들어갑니다.”
남자는 내 손을 흔들며 천천히 말했다. ‘파업’이라는 말을 뱉으며, 가볍게 쥐었던 남자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꼭 승리 하세요’라고 말했지만, 아무 소용도 없고 감정도 담겨있지 않은 인사치레처럼 느껴져 금새 후회했다. 남자는 그이와 손을 흔들며 똑같은 말을 하곤 아까처럼 손을 들어 얼굴을 훔쳤다. 늙은 노동자의 회한이 한 방울, 짧고 두툼한 손에 쓸려갔다. 자식보다 어려보이는 우리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한 그는 몸을 돌려 천천히 환승 통로를 향해 걸어갔다.
한바탕 드잡이 질로 지칠 대로 지친 그이와 나는 승강장 벤치에 주저앉았다. 그래도 주먹이 오가지 않은 게 다행이라 생각하며 마른 숨을 내쉬고 있을 때, 그이가 조금 전부터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 방울, 두 방울......결국 그이는 통곡에 가까운 울음을 터뜨렸다. 난 무슨 말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꼭 승리하세요’ 따위의 말이 나올까 두려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앉아 우산 끝을 톡! 톡! 소리 나게 찼다. 그이에게서 다시 받아든 우산은 내 발에 채일 때마다 여기저기 물방울을 튕겨 댔다. ‘휘날려라 거침없이, 창공의 저 깃발. 노동자의 자랑 민주노총~’ 나는 조그맣게, 그이가 들을 수 없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흥얼거렸다.
그리움에 목마름에 부르던 그 이름, 너와 나의 약속, 약속이었지.
휘날려라 거침없이, 창공의 저 깃발. 노동자의 자랑 민주노총.
아아~ 외롭던 이 가슴에 꽃처럼 연인처럼
너를 안고 가리라. 내 너를 사랑하리라.
아아아~ 내 너를 지켜 주리라.
내 사랑 민주노총. 민주노총 내 사랑.
- 「민주노총 내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