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로드맵 야합과 민주노조운동의 대응
노동자의 권리와 자존심을 팔아넘긴 노사정 야합
지난 9월 11일 한국노총은 경총, 대한상의, 노동부, 노사정위가 참여한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노동자의 권리와 자존심을 팔아 기득권을 유지하는 야합을 단행하였다. 대표적인 내용은 ▲기업단위 복수노조 도입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3년 유예 맞교환 ▲필수공익사업장 직권중재 폐지, 필수공익사업 범위에 혈액공급, 항공, 증기·온수공급, 폐·하수 처리업 추가, 필수공익사업에 쟁의행위 중 필수업무 유지의무 부과 ▲필수공익사업장 파업에 대해 대체근로 허용 ▲부당해고 판정 시 근로자의 요청으로 복직 대신 금전보상 가능 ▲정리해고 사전 통보기간 차등 설정(현행 60일에서 60일~30일로) ▲부당해고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 삭제 등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복수노조 도입을 유예한 것이다. 복수노조 문제는 노동자의 자주적 단결권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특히 이미 노조가 존재하는 사업장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거나 유령노조, 어용노조 민주화 혹은 무노조 사업장에서의 노조 조직화를 위해 기본적인 필요조건이다. 이는 단순히 노조와 조합원을 늘리는 조직률 제고 차원 뿐 아니라 노동운동의 새로운 주체 형성과도 연관되어 있다. 즉 노동운동 혁신은 기존 노동운동의 변화와 더불어 새로운 운동주체의 형성이 관건적인데,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는 노동자들의 자주적이고 자유로운 단결권을 보장하는 것으로서 근본적인 권리인 것이다. 복수노조 도입을 유예한다는 합의가 알려지자마자 그간 한국노총 산하 어용노조들의 횡포로 수십 년간 시달려 온 버스, 택시, 화물 등 운수부문 노동자들이 즉각 반발하고 나선 것은 이러한 사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또한 삼성, 포스코 등 무노조 경영에 기반하여 노동자를 탄압하고 노조결성을 막아 온 거대 사업장에서 외로이 투쟁해 온 관련 노동자들도 노사정 합의를 격렬히 비판했다.
복수노조 허용은 지난 97년부터 지금까지 두 번에 걸쳐 10년간 적용이 유예되어 온 바, 이번에야말로 도입하나 했더니 또 다시 정치적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되었다. 한국노총에서 전임자 임금문제가 노조 보존을 위해 절박하다면 이를 금지하려는 정부와 자본을 비판하고 광범위한 반대운동을 조직할 일이지 노동자의 기본권을 희생시켜 맞바꾸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 보존된 노조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필수공익사업 범위를 늘리고 필수업무 유지의무를 부과하며 파업 대체근로를 허용하는 것에 합의한 것은 파업권을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다. 그렇지 않아도 철도, 전기, 가스, 병원, 통신 등 필수공익사업장에서의 파업은 지배세력의 이데올로기 공격과 교묘한 대체인력 투입으로 파업권을 제대로 행사하기 어려웠는데, 이렇게 되면 파업의 최소한의 효과마저 봉쇄당할 것이 뻔하다. 심지어 민주노총 공공연맹은 이번 야합으로 인해 12만 명의 조합원 가운데 80% 가량이 필수공익사업장에 해당되어 단체행동권을 박탈당하게 된다. 정부나 한국노총은 직권중재제도를 없앴기 때문에 진전된 측면이 있다고 딴청을 피우고 있지만 이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다. 파업을 해도 필수적으로 유지해야 할 업무가 있고, 대체인력까지 투입이 가능하면 파업의 효과는 하나도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생산에 최소한이라도 타격을 주어서 사용자나 정부로 하여금 노동자에게 양보하도록 하는 것이 파업의 일차적인 효과일텐데, 파업을 해도 사업장이 파업을 안한 것처럼 잘 돌아간다면 어느 사용자와 정부가 파업에 부담을 가지고 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할 것인가?
부당해고 판정 시 금전으로 보상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해고자의 처지를 이용하여 원직복직 대신 돈으로 해결하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물론 본인이 신청할 경우에만 허용한다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 원직복직 투쟁이나 소송의 과정이 지난하고 오래 걸리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해고자는 금전적인 필요를 강하게 느껴 원직복직보다는 보상을 원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복직 부담보다는 보상을 해서 문제를 털어버리고 싶을 것이다. 즉 부당한 해고를 하더라도 사용자는 법적으로 부당해고 판정을 받기까지 의 기간을 버틸 수 있고 부당해고 판결이 나더라도 당사자를 원직복직 시키지 않고 돈으로 대신 처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부당해고를 한 사용자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을 삭제한 것도 해고에 대한 부담감을 줄여 준 조치다.
더욱이 정리해고 시 사전통보 기간을 60일에서 규모에 따라 60일~30일로 줄인 것은 사실상 정리해고 절차를 쉽게 한 것이다. 노조가 정리해고에 대비하는 시간을 단축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노총은 조직보존을 하고, 자본은 복수노조 도입에 따른 노조결성 가능성을 봉쇄하며, 정권은 노사정 합의라는 명분과 파업권 제한을 챙기는 ‘야합’을 했다. 단결권과 파업권을 제한하고 정리해고를 유연하게 하는 노사관계로드맵의 본래(?) 정신이 실현된 것이다.
신자유주의와 함께 가는 노동운동의 추악한 말로
노무현 정권과 자본 세력은 '신자유주의와 함께 가는 노동운동', '위기관리 파트너로서 노동운동'을 원한다. 이미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한국노총 위원장은 상반기에 KOTRA와 외국자본 유치를 위한 협력약정서를 체결하고 6월말 미국에서 열린 국가 투자유치설명회에 노동계 대표랍시고 참여해서 투자유치 활동을 펼쳤다. 그것은 '건전하고 책임 있는 노동운동'을 할 터이니 초국적자본은 불안해하지 말고 한국에서 이윤추구 활동을 벌이라는 것이다. 이번 노사정 야합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노조 스스로가 신자유주의 위기관리 체제의 일부가 되어 노동자의 권리를 해체하고 저항을 억압하는 행위를 지속하고 이를 사회적 대화 혹은 사회적 타협으로 포장한 것이다. 따라서 한국노총 스스로가 전체 노동자 앞에 무릎 꿇고 야합을 백배사죄해야 마땅한데도 '민주노총 타도' 운운하며 민주노총 규탄집회까지 연 것은 노조'운동'이기를 포기한 집단의 추악한 말로를 그대로 드러낸다.
더욱이 한국노총은 이러한 배신과 야합을 놓고 합의 당사자들과 함께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노사정 대타협 선언문'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문건을 내놓았다. 그들은 "법 시행에 따른 심각한 사회적 혼란을 막고 어려운 경제적 여건 속에서 노사관계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는 고심 끝에 내린 결단", "노동조합은 협력적 노사문화를 확산", "노사정 대타협의 정신이 산업현장 전반으로 확산" 운운하면서 동반타락을 정당화하고 있다.
노조운동 무력화를 노리는 노무현 정권
노사정야합에 이어 정부는 그 내용을 그대로 반영하여 9월 14일 곧바로 입법예고를 했다. 지금까지 무수히 지적된 것처럼 노무현 정권의 노사관계로드맵은 노동운동을 무력화하려는 시도의 결정판이다. 즉 비정규법안이 비정규직을 양산하여 노동의 불안정화를 제도화시키는 것이라면, 노사관계로드맵은 이에 대한 노동운동의 운동과 저항을 봉쇄하는 것으로서 양자가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노사관계로드맵은 한·미 FTA와도 연결된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윤추구 활동을 촉진하고 투자 환경을 개선하려는 자유무역협정은 한국 노조운동의 무력화 조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미국 자본측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형법규제에서 민법규제로 전환, 쟁의행위 중 대체인력 투입 허용, 파업 찬반투표 절차 강화, 정리해고 요건 완화 등을 요구해 왔는데 이는 노사관계로드맵의 내용과 일치한다. 노무현 정권은 노조의 권리를 제한하여 초국적자본의 투자환경을 개선시키고 개방에 대비해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출범 이후 노동자들의 권리를 존중하고 노동운동의 요구를 수용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오로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하위 축으로서만 노동운동을 포섭하려 했으며, 그것도 초기에 잠깐 포섭하는 제스처를 취했을 뿐 그 이후에는 노골적인 배제와 공격으로 일관하였다. 각종 노동쟁의에 대한 무력진압, 비정규직 확대, 역대 어느 정권보다 많은 구속 수배 노동자 양산, 포항건설 하중근 조합원에 대한 폭력살인 등 노동자 탄압과 노동운동 말살에 물불 가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 사태가 민주노조운동에 말하는 것
민주노총 역시 이번 야합사태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국노총의 맞바꾸기 방안을 충분히 예상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사태를 거의 방관했고 제대로 된 항의투쟁을 조직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민주노조운동이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노동운동의 관점을 제대로 정립하지 않은 탓이다. 신자유주의에 끌려가는 노동운동이 되지 말아야 하는데도 명확한 방향성 없이, 최소한이라도 따내야 한다는 이유로 노조운동을 무력화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에 함께 한 것이다.
노사정대표자회의 자체가 협상, 즉 주고받기 공간이며 압도적인 대중투쟁이 담보되지 않으면 협상에서 양보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은 수세적인 상황에서 협상에 참여했고, '민주적 노사관계를 위한 8대 요구안'을 내세웠지만 선언적 의미 이상을 띠기 힘들었다. 또한 협상을 중심에 놓다 보니 조합원 대중을 교육하고 투쟁으로 조직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들만의 사회적 합의'에 들러리가 된 것이다. 이번 사태의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협상을 잘 못해서가 아니라, 협상장의 파트너가 된 것이 문제였고 대중 교육과 운동을 중심에 두지 않은 것이 뼈아픈 오류인 것이다. 신자유주의 위기관리 체제 하에서 상층으로부터의 교섭과 협상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새로운 운동과 주체 형성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각인하자.
우선 노동자 대중 스스로가 과거와 같이 집단적인 대응을 통한 문제해결과 권리 향상에 나서려고 하지 않는 위기 상황을 철저히 인식해야 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상층에서의 교섭과 협상에 주력하는 것은 근본적인 위기극복을 회피하고 사태를 봉합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대중이 개인적으로 살길을 찾는 것보다는 연대를 통해 공동의 전망을 개척하도록 사태를 역전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대의 확장 전략이 쉬운 경로는 아니지만 타협의 제도화 전략보다 나은 길임은 분명하다.
노동기본권 쟁취! 노무현 정권 퇴진 투쟁으로!
뒤늦게 민주노총이 '노동자 살인정권, 노동기본권 개악 야합정권'을 규탄하면서 반발했고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총파업 투쟁과 '노무현 정권 퇴진투쟁'까지 결의했지만 상황은 만만치 않다. 이미 공은 국회로 넘어 갔고, 과거의 경험을 돌이켜볼 때 입법을 저지하는 투쟁이란 국회를 상대로 해서 국회 앞에서 국회 일정에 따라 동원과 해산을 반복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부터라도 투쟁전선 구축에 매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체 노동운동의 미래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번 야합사태에 대한 분노를 결집시키고, 비정규 법안과 노사정로드맵의 본질을 교육하고 선전하여 투쟁동력을 모아 나가야 한다. 지역과 현장의 다양한 투쟁의 타격대상을 신자유주의 노무현 정권으로 정확히 맞추고 하중근 열사투쟁, 한·미FTA, 평택미군기지확정저지투쟁, 비정규법개악, 노사관계로드맵 저지투쟁이 하나의 커다란 흐름이 될 수 있도록 하자.
첫째, 국회 일정에 얽매이지 않는 투쟁을 조직화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지난 임시대의원대회에서 11월 15일을 총파업 일자로 잡고, 10월 16일~11월 3일까지 총투표를 실시하기로 하였다. 노사관계 민주화 입법 쟁취, 한·미 FTA협상 저지, 비정규 권리보장 입법 쟁취, 산재법 전면 개정이 4대 핵심요구다. 4가지 요구 가운데 세 가지가 법안 관련 요구인 것에서 보듯이 어느 해보다도 국회 일정에 종속되기 쉬운 조건이다. 그러나 법안의 환노위 통과니 법사위 상정이니 하는 것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파업 대기와 해제를 반복하지 말고 신자유주의와 노무현 정권에 대한 반대투쟁에 중점을 두어 파업투쟁을 뚝심있게 조직해야 할 것이다. 둘째, 조합원 교육과 선전에 집중적인 역량을 투여해서 공통의 인식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산별노조로의 전환 시기와 하반기 투쟁이 겹쳐 있어서 각 조직에서는 현실적인 고충이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계획을 치밀하게 수립하지 않으면 투쟁 조직화가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일반 조합원의 입장에서는 복수노조 문제나 전임자 임금지급 문제가 잘 와 닿지 않거나 필수공익사업장 파업권 제한의 문제가 특정 연맹의 문제로만 인식될 수 있다. 따라서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과 노동운동 무력화 시도를 통일적으로 인식하여 노동자 대중이 연대와 단결로 공동의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을 설득해 내야 한다. 셋째, 지역연대 운동을 활성화하고 '공식'체계에 제한되지 않는 연대를 확장해야 한다. 이미 각 지역별로 연대질서가 존재하기도 하고, '비정규 악법철폐-로드맵분쇄 현장공동투쟁단', '비정규직법 개악/노사관계로드맵 저지! 노동기본권쟁취! 폭력살인 노무현 정권 퇴진! 서울지역공동투쟁본부'와 같은 공동투쟁체도 만들어져 있다. 넷째, 사회운동과의 결합을 강화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금융-군사세계화를 위해서 노무현 정권이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한·미 FTA 저지 투쟁과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투쟁은 전 민중적인 투쟁이다. 민중운동 진영에서도 '민중총궐기'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한 투쟁의 중심에서 노동운동이 견인차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난 9월 11일 한국노총은 경총, 대한상의, 노동부, 노사정위가 참여한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노동자의 권리와 자존심을 팔아 기득권을 유지하는 야합을 단행하였다. 대표적인 내용은 ▲기업단위 복수노조 도입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3년 유예 맞교환 ▲필수공익사업장 직권중재 폐지, 필수공익사업 범위에 혈액공급, 항공, 증기·온수공급, 폐·하수 처리업 추가, 필수공익사업에 쟁의행위 중 필수업무 유지의무 부과 ▲필수공익사업장 파업에 대해 대체근로 허용 ▲부당해고 판정 시 근로자의 요청으로 복직 대신 금전보상 가능 ▲정리해고 사전 통보기간 차등 설정(현행 60일에서 60일~30일로) ▲부당해고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 삭제 등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복수노조 도입을 유예한 것이다. 복수노조 문제는 노동자의 자주적 단결권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특히 이미 노조가 존재하는 사업장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거나 유령노조, 어용노조 민주화 혹은 무노조 사업장에서의 노조 조직화를 위해 기본적인 필요조건이다. 이는 단순히 노조와 조합원을 늘리는 조직률 제고 차원 뿐 아니라 노동운동의 새로운 주체 형성과도 연관되어 있다. 즉 노동운동 혁신은 기존 노동운동의 변화와 더불어 새로운 운동주체의 형성이 관건적인데,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는 노동자들의 자주적이고 자유로운 단결권을 보장하는 것으로서 근본적인 권리인 것이다. 복수노조 도입을 유예한다는 합의가 알려지자마자 그간 한국노총 산하 어용노조들의 횡포로 수십 년간 시달려 온 버스, 택시, 화물 등 운수부문 노동자들이 즉각 반발하고 나선 것은 이러한 사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또한 삼성, 포스코 등 무노조 경영에 기반하여 노동자를 탄압하고 노조결성을 막아 온 거대 사업장에서 외로이 투쟁해 온 관련 노동자들도 노사정 합의를 격렬히 비판했다.
복수노조 허용은 지난 97년부터 지금까지 두 번에 걸쳐 10년간 적용이 유예되어 온 바, 이번에야말로 도입하나 했더니 또 다시 정치적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되었다. 한국노총에서 전임자 임금문제가 노조 보존을 위해 절박하다면 이를 금지하려는 정부와 자본을 비판하고 광범위한 반대운동을 조직할 일이지 노동자의 기본권을 희생시켜 맞바꾸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 보존된 노조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필수공익사업 범위를 늘리고 필수업무 유지의무를 부과하며 파업 대체근로를 허용하는 것에 합의한 것은 파업권을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다. 그렇지 않아도 철도, 전기, 가스, 병원, 통신 등 필수공익사업장에서의 파업은 지배세력의 이데올로기 공격과 교묘한 대체인력 투입으로 파업권을 제대로 행사하기 어려웠는데, 이렇게 되면 파업의 최소한의 효과마저 봉쇄당할 것이 뻔하다. 심지어 민주노총 공공연맹은 이번 야합으로 인해 12만 명의 조합원 가운데 80% 가량이 필수공익사업장에 해당되어 단체행동권을 박탈당하게 된다. 정부나 한국노총은 직권중재제도를 없앴기 때문에 진전된 측면이 있다고 딴청을 피우고 있지만 이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다. 파업을 해도 필수적으로 유지해야 할 업무가 있고, 대체인력까지 투입이 가능하면 파업의 효과는 하나도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생산에 최소한이라도 타격을 주어서 사용자나 정부로 하여금 노동자에게 양보하도록 하는 것이 파업의 일차적인 효과일텐데, 파업을 해도 사업장이 파업을 안한 것처럼 잘 돌아간다면 어느 사용자와 정부가 파업에 부담을 가지고 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할 것인가?
부당해고 판정 시 금전으로 보상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해고자의 처지를 이용하여 원직복직 대신 돈으로 해결하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물론 본인이 신청할 경우에만 허용한다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 원직복직 투쟁이나 소송의 과정이 지난하고 오래 걸리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해고자는 금전적인 필요를 강하게 느껴 원직복직보다는 보상을 원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복직 부담보다는 보상을 해서 문제를 털어버리고 싶을 것이다. 즉 부당한 해고를 하더라도 사용자는 법적으로 부당해고 판정을 받기까지 의 기간을 버틸 수 있고 부당해고 판결이 나더라도 당사자를 원직복직 시키지 않고 돈으로 대신 처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부당해고를 한 사용자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을 삭제한 것도 해고에 대한 부담감을 줄여 준 조치다.
더욱이 정리해고 시 사전통보 기간을 60일에서 규모에 따라 60일~30일로 줄인 것은 사실상 정리해고 절차를 쉽게 한 것이다. 노조가 정리해고에 대비하는 시간을 단축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노총은 조직보존을 하고, 자본은 복수노조 도입에 따른 노조결성 가능성을 봉쇄하며, 정권은 노사정 합의라는 명분과 파업권 제한을 챙기는 ‘야합’을 했다. 단결권과 파업권을 제한하고 정리해고를 유연하게 하는 노사관계로드맵의 본래(?) 정신이 실현된 것이다.
신자유주의와 함께 가는 노동운동의 추악한 말로
노무현 정권과 자본 세력은 '신자유주의와 함께 가는 노동운동', '위기관리 파트너로서 노동운동'을 원한다. 이미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한국노총 위원장은 상반기에 KOTRA와 외국자본 유치를 위한 협력약정서를 체결하고 6월말 미국에서 열린 국가 투자유치설명회에 노동계 대표랍시고 참여해서 투자유치 활동을 펼쳤다. 그것은 '건전하고 책임 있는 노동운동'을 할 터이니 초국적자본은 불안해하지 말고 한국에서 이윤추구 활동을 벌이라는 것이다. 이번 노사정 야합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노조 스스로가 신자유주의 위기관리 체제의 일부가 되어 노동자의 권리를 해체하고 저항을 억압하는 행위를 지속하고 이를 사회적 대화 혹은 사회적 타협으로 포장한 것이다. 따라서 한국노총 스스로가 전체 노동자 앞에 무릎 꿇고 야합을 백배사죄해야 마땅한데도 '민주노총 타도' 운운하며 민주노총 규탄집회까지 연 것은 노조'운동'이기를 포기한 집단의 추악한 말로를 그대로 드러낸다.
더욱이 한국노총은 이러한 배신과 야합을 놓고 합의 당사자들과 함께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노사정 대타협 선언문'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문건을 내놓았다. 그들은 "법 시행에 따른 심각한 사회적 혼란을 막고 어려운 경제적 여건 속에서 노사관계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는 고심 끝에 내린 결단", "노동조합은 협력적 노사문화를 확산", "노사정 대타협의 정신이 산업현장 전반으로 확산" 운운하면서 동반타락을 정당화하고 있다.
노조운동 무력화를 노리는 노무현 정권
노사정야합에 이어 정부는 그 내용을 그대로 반영하여 9월 14일 곧바로 입법예고를 했다. 지금까지 무수히 지적된 것처럼 노무현 정권의 노사관계로드맵은 노동운동을 무력화하려는 시도의 결정판이다. 즉 비정규법안이 비정규직을 양산하여 노동의 불안정화를 제도화시키는 것이라면, 노사관계로드맵은 이에 대한 노동운동의 운동과 저항을 봉쇄하는 것으로서 양자가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노사관계로드맵은 한·미 FTA와도 연결된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윤추구 활동을 촉진하고 투자 환경을 개선하려는 자유무역협정은 한국 노조운동의 무력화 조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미국 자본측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형법규제에서 민법규제로 전환, 쟁의행위 중 대체인력 투입 허용, 파업 찬반투표 절차 강화, 정리해고 요건 완화 등을 요구해 왔는데 이는 노사관계로드맵의 내용과 일치한다. 노무현 정권은 노조의 권리를 제한하여 초국적자본의 투자환경을 개선시키고 개방에 대비해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출범 이후 노동자들의 권리를 존중하고 노동운동의 요구를 수용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오로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하위 축으로서만 노동운동을 포섭하려 했으며, 그것도 초기에 잠깐 포섭하는 제스처를 취했을 뿐 그 이후에는 노골적인 배제와 공격으로 일관하였다. 각종 노동쟁의에 대한 무력진압, 비정규직 확대, 역대 어느 정권보다 많은 구속 수배 노동자 양산, 포항건설 하중근 조합원에 대한 폭력살인 등 노동자 탄압과 노동운동 말살에 물불 가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 사태가 민주노조운동에 말하는 것
민주노총 역시 이번 야합사태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국노총의 맞바꾸기 방안을 충분히 예상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사태를 거의 방관했고 제대로 된 항의투쟁을 조직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민주노조운동이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노동운동의 관점을 제대로 정립하지 않은 탓이다. 신자유주의에 끌려가는 노동운동이 되지 말아야 하는데도 명확한 방향성 없이, 최소한이라도 따내야 한다는 이유로 노조운동을 무력화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에 함께 한 것이다.
노사정대표자회의 자체가 협상, 즉 주고받기 공간이며 압도적인 대중투쟁이 담보되지 않으면 협상에서 양보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은 수세적인 상황에서 협상에 참여했고, '민주적 노사관계를 위한 8대 요구안'을 내세웠지만 선언적 의미 이상을 띠기 힘들었다. 또한 협상을 중심에 놓다 보니 조합원 대중을 교육하고 투쟁으로 조직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들만의 사회적 합의'에 들러리가 된 것이다. 이번 사태의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협상을 잘 못해서가 아니라, 협상장의 파트너가 된 것이 문제였고 대중 교육과 운동을 중심에 두지 않은 것이 뼈아픈 오류인 것이다. 신자유주의 위기관리 체제 하에서 상층으로부터의 교섭과 협상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새로운 운동과 주체 형성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각인하자.
우선 노동자 대중 스스로가 과거와 같이 집단적인 대응을 통한 문제해결과 권리 향상에 나서려고 하지 않는 위기 상황을 철저히 인식해야 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상층에서의 교섭과 협상에 주력하는 것은 근본적인 위기극복을 회피하고 사태를 봉합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대중이 개인적으로 살길을 찾는 것보다는 연대를 통해 공동의 전망을 개척하도록 사태를 역전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대의 확장 전략이 쉬운 경로는 아니지만 타협의 제도화 전략보다 나은 길임은 분명하다.
노동기본권 쟁취! 노무현 정권 퇴진 투쟁으로!
뒤늦게 민주노총이 '노동자 살인정권, 노동기본권 개악 야합정권'을 규탄하면서 반발했고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총파업 투쟁과 '노무현 정권 퇴진투쟁'까지 결의했지만 상황은 만만치 않다. 이미 공은 국회로 넘어 갔고, 과거의 경험을 돌이켜볼 때 입법을 저지하는 투쟁이란 국회를 상대로 해서 국회 앞에서 국회 일정에 따라 동원과 해산을 반복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부터라도 투쟁전선 구축에 매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체 노동운동의 미래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번 야합사태에 대한 분노를 결집시키고, 비정규 법안과 노사정로드맵의 본질을 교육하고 선전하여 투쟁동력을 모아 나가야 한다. 지역과 현장의 다양한 투쟁의 타격대상을 신자유주의 노무현 정권으로 정확히 맞추고 하중근 열사투쟁, 한·미FTA, 평택미군기지확정저지투쟁, 비정규법개악, 노사관계로드맵 저지투쟁이 하나의 커다란 흐름이 될 수 있도록 하자.
첫째, 국회 일정에 얽매이지 않는 투쟁을 조직화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지난 임시대의원대회에서 11월 15일을 총파업 일자로 잡고, 10월 16일~11월 3일까지 총투표를 실시하기로 하였다. 노사관계 민주화 입법 쟁취, 한·미 FTA협상 저지, 비정규 권리보장 입법 쟁취, 산재법 전면 개정이 4대 핵심요구다. 4가지 요구 가운데 세 가지가 법안 관련 요구인 것에서 보듯이 어느 해보다도 국회 일정에 종속되기 쉬운 조건이다. 그러나 법안의 환노위 통과니 법사위 상정이니 하는 것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파업 대기와 해제를 반복하지 말고 신자유주의와 노무현 정권에 대한 반대투쟁에 중점을 두어 파업투쟁을 뚝심있게 조직해야 할 것이다. 둘째, 조합원 교육과 선전에 집중적인 역량을 투여해서 공통의 인식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산별노조로의 전환 시기와 하반기 투쟁이 겹쳐 있어서 각 조직에서는 현실적인 고충이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계획을 치밀하게 수립하지 않으면 투쟁 조직화가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일반 조합원의 입장에서는 복수노조 문제나 전임자 임금지급 문제가 잘 와 닿지 않거나 필수공익사업장 파업권 제한의 문제가 특정 연맹의 문제로만 인식될 수 있다. 따라서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과 노동운동 무력화 시도를 통일적으로 인식하여 노동자 대중이 연대와 단결로 공동의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을 설득해 내야 한다. 셋째, 지역연대 운동을 활성화하고 '공식'체계에 제한되지 않는 연대를 확장해야 한다. 이미 각 지역별로 연대질서가 존재하기도 하고, '비정규 악법철폐-로드맵분쇄 현장공동투쟁단', '비정규직법 개악/노사관계로드맵 저지! 노동기본권쟁취! 폭력살인 노무현 정권 퇴진! 서울지역공동투쟁본부'와 같은 공동투쟁체도 만들어져 있다. 넷째, 사회운동과의 결합을 강화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금융-군사세계화를 위해서 노무현 정권이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한·미 FTA 저지 투쟁과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투쟁은 전 민중적인 투쟁이다. 민중운동 진영에서도 '민중총궐기'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한 투쟁의 중심에서 노동운동이 견인차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