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매뉴얼 월러스틴 강연 참관기
: 미국 이후의 시대에 산다는 것 - 지정학적 긴장과 사회적 투쟁들
[편집자 주] 지난 10월 초 이매뉴얼 월러스틴 교수가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설립 60주년 기념 해외석학 초청 학술강연을 위해 방한했다. 월러스틴 교수는 ‘미국 이후의 시대에 산다는 것 - 지정학적 긴장과 사회적 투쟁들’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사회운동에서는 이미 2003년 5월호를 통해 월러스틴 교수의 「체계에 맞선 새로운 반란」(New Revolts against the System)이라는 짧은 글을 소개한 바 있다. 이에 세계 체계의 위기와 미국 헤게모니의 쇠퇴라는 그가 규정한 조건 속에서 반체계 운동, 사회운동의 전망에 대한 참조점을 찾고자 강연을 취재했다. 통역 없이 영어로 진행된 강연이었기에, 미국 뉴욕에 있는 재미교포 운동단체, <노둣돌> 회원으로 잠시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임월산 씨가 정리해주었다.
월러스틴의 강연은 미국 이후의 세계, 지정학적 긴장, 사회적 투쟁들 세 부분으로 진행되었다. 내 생각에 실제 강연에서는 이 세 부분이 제목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연결되었던 것 같진 않다.
미국 이후의 세계
요약
월러스틴의 요점은 우리가 미국 헤게모니가 쇠퇴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 사실 1970년대 이래 죽 그래왔다는 점이다. 우리가 “미국 이후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점을, 그것도 소련 붕괴 이후에 어떻게 주장할 수 있을까? 사실 미국은 과거 그랬던 것만큼, 또는 지금 우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강력하지 않다.
한-미 관계를 예로 들어보자. 한국전쟁이 개시되자 트루먼 행정부는 즉시 사회주의 진영과 몇몇 중립국을 제외한 전 세계의 개입을 요구했고, 그 나라들은 즉각적으로 한국전쟁에 참가했다. 반면 현재(이는 UN 제재 결의안이 통과되기 전이었다.) 미국이 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고, 미국도 이를 알고 있다(월러스틴은 제재가 제한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 다음 월러스틴은 1954년부터 1970년 동안의 미국 헤게모니의 역사에 대해 아주 기본적인 역사를 들어 설명했는데, 이는 아리기나 하비 등 그의 동료 학자들 사이에서는 매우 표준적인 것이다. 미국은 대량 파괴를 겪지 않은 유일한 강대국으로 2차 세계대전에서 부상했다. 다른 모든 국가들에 비해 월등히 강한 경제적 지위 때문에 미국은 정치적, 군사적 권력 또한 얻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이 시기를 “양극적”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군사력에 비해 경제?정치적 힘이 부족했던 소련보다 미국이 훨씬 강력했다.
이 때문에 알타에서 만난 미소 양국은 세계를 분할하고 그 중 미국이 2/3를 소련이 1/3을 자신의 영향력 하에 두기로 합의했다. 이 협정에는 세 가지 측면이 있었다. 1) 미소 어느 쪽에서도 군사력을 동원해 서로에게 도전하지 않고, 이를 준수한다. 2) 양 측은 각자의 진영에서 경제 재건을 책임지기로 한다(그들은 실제로 이를 수행했다.). 3) 양 진영은 내부의 통일을 기하고 유지하기 위해 상대방에 대한 비난을 이용했다.(이데올로기적 냉전).
이렇게 미국은 소련을 하위파트너로 두고 세계를 다스렸으며, 95%의 시간 동안 95%의 문제들에 대해서 제멋대로 할 수 있었다. 동유럽이 소련에게 그랬던 것처럼 서유럽은 미국의 위성국가일 뿐이었다.
문제는 미국의 동맹이 매우 성공적으로 재구축되면서 발생했다. 1960년대에 이르러 일본과 서유럽은 경제력을 획득했고, 미국 내수 시장에서 미국의 판매를 능가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그들은 한층 독립적일 수 있게 됐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미국과 소련의 거래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특히 베트남은 많은 것을 바꿔 놓았는데, 베트남전이 미국을 약화시키고 패배시켰기 때문이다.
베트남전이 미국에게 끼친 영향은 경제적일뿐더러 심리적이었는데, 미국 국민은 또 다른 베트남이 생겨나지 않길 원했다. 이 때문에 징병제가 폐지되기에 이른다.
이 시점에서부터 미국은 헤게모니 쇠퇴를 겪기 시작했고, 모든 미국 대통령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은 경우에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닉슨 이래 대외 정책은 다음과 같은 조치를 통해 헤게모니 쇠퇴를 지연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첫째, 미국의 목표에서 지나치게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더 이상 위성국가가 아닌) 서유럽과 일본에게 (G-7 등과 같은) 파트너의 지위를 준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성공했다. 물론 일본과 서유럽이 미국의 목표에서 얼마간 벗어났지만 말이다.
둘째, 핵확산금지(NPT)를 통해 군사력의 우위를 유지하려 했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NPT에 서명했다. NPT는 (북한, 일본, 브라질 등) 다른 국가들이 핵 프로그램을 계속하는 것을 막았지만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의 핵 프로그램은 중지시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부분적으로 성공했다.
셋째, 경제적으로는 다른 국가들을 번영하게 한 발전주의 이데올로기/정책을 중지하고 이를 워싱턴 컨센서스 즉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대체했다.
이런 조치들은 1970년에서 2000년까지의 기간 동안 헤게모니 쇠퇴를 지연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첫째,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이유로) 소련이 붕괴한 것은 미국에게 재앙이었는데, 왜냐하면 얄타 협정이 다른 측 진영 인민들이 세계 체계를 동요시키는 것을 억제했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소련이 계속 존재했다면 사담 후세인은 쿠웨이트를 침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둘째, 신자유주의가 대단한 해법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는데, 제3세계의 상황이 한층 악화되어 신보수주의적 반격을 점화했기 때문이다.
네오콘의 등장은 급격한 헤게모니 쇠퇴의 시기를 나타낸다. 1997~8년부터 네오콘들은 헤게모니 쇠퇴에 대한 해법으로 이라크 침략을 주장해왔다. 그들은 911 이후에 기회를 잡았다.
부시는 지지도가 하락하는 가운데 전쟁을 통해 이를 만회하고자 했으며, 네오콘들은 이라크 침략이 일방주의적으로 행동하고 헤게모니 쇠퇴를 중지시킬 수 있는 미국의 힘과 능력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었다. 다른 긍정적 요인들도 있었다. 1) 이라크 침략은 걸프전 이후 사담 후세인이 초래한 치욕을 끝낼 것으로 보였다. 2) 이라크에는 석유가 있었고, 이라크는 중동을 통제하는 데 중요한 지정학적 요충지였다. 따라서 동맹국들은 계속해서 미국 편에 설 것이고, 다른 국가들은 핵무기 제조 의지를 잃게 될 것이며, 온건한 아랍 정권들은 이스라엘을 인정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이는 네오콘의 완전한 실패로 끝났는데, 왜냐하면 저항운동과 서유럽이 겁에 질려 미국을 따르려 하지 않았고, 아랍 국가들이 훨씬 온건함을 잃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1~3년 안에 이라크가 실패작이라는 사실을 치욕스럽게 받아들여야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미국에게 문제는, 쇠퇴를 멈출 수 있느냐가 아니라 2001년 이전 시점으로 돌아갈 수나 있느냐는 것이다.
평가
위 내용 자체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들이었다. 하지만 월러스틴은 네오콘(과 신자유주의)의 힘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지 않은가? 그가 발표한 내용은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만 보내면 미국이 저절로 쇠퇴할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그는 전략적 유연성이나 중동 등지에서 새로운 미군 기지가 출현하는 것 등을 언급하지 않는다. 또 그는 신자유주의가 죽어가고 있으며 신보수주의와 완전히 모순되는 것처럼 인상을 준다. 하지만 중동이나 아시아에서 신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 사이의 이해가 일치하는 것은 어떻게 할 것인가?
지정학적 긴장
1945년에서 1970년까지의 세계가 단극이었던 반면 현재에는 8~10개 극이 있다. 우리는 동맹관계가 계속 변화하고 핵확산이 다시 시작되는 무질서 상태에 처해 있다. 북한의 핵 실험을 맞이하여 월러스틴은 다른 다수의 국가들이 핵무기를 개발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 대략적인 순서는 2015년까지 일본, 한국, 대만, 그 후에는 이란, 이라크, 이집트, 터키, 스웨덴, 독일, 브라질,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런 다음 월러스틴은 다음과 같이 물었다. 이것이 문제인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공황 상태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북한 핵 실험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방어 무기를 갖게 되었고, 조만간 이것이 인정된다면(그럴 가능성이 높다.) 중대한 강국이 될 기회를 가지는 것이므로 만족할 것이다. 미국이 보여준 것은 단지 쇼에 불과하다. 일본은 재무장화의 좋은 구실을 갖게 되어 만족할 것이다. 중국은 아시아에서 유일한 핵보유국이었기 때문에 불만일 것이다. 월러스틴은 자신이 확실하게 알 수 없는 유일한 국가는 남한이라고 말한다.
전문가 토론에서 고려대학교 김철규 교수는 핵 실험이 미국 중간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질문했다. 월러스틴은 유권자들의 초점이 이라크와 국내 사안에 맞춰져 있어 이 문제를 별로 인식하지 못하는 관계로 민주당에게 부정적 영향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다음 25년 안에 세계에는 세 개의 경제 진영(서유럽, 미국, 동아시아)이 존재할 것이고, 그 중 미국이 가장 약할 것이다. WTO를 통한 지배전략은 1997년 시애틀과 2003년 칸쿤에서 중단되었다. WTO는 이제 무의미해졌다. 왜냐하면 남반구의 국가들의 경우 자유 무역이 쌍방향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미국과 일본, 서유럽은 그들의 시장을 개방할 경우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3국 중 2국가가 분단되어 있다. 기본적인 지정학적?역사적 요인들 때문에 통일에 대한 강한 압력이 존재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통일이 될 것인가? (월러스틴은 이 주제에 관해 이 이상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이 문제를 별로 알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아시아에서 일본과 중국은 패권 다툼을 하고 있으며 서로 양보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이 둘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어느 수준까지 동아시아가 통합될 것인가? 통합의 수준이 클수록 동아시아는 자본주의 축적의 중심이 될 것이다.
전문가 토론에서 많은 교수들이 동아시아가 경제적으로 통합될 것이라는 점에 관하여 월러스틴과 논쟁을 벌였다. 그 가망성에 관해 논평할 만한 충분한 지식을 내가 갖고 있는 것 같진 않다.
사회적 투쟁
사회적 투쟁은 매우 현실적이며, 신자유주의에 대한 환멸에서 기인한다.
1980년대 동안 지도급 정치가, 기업가, 학자들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정치와 정책을 (비공식적으로) 조정하려는 목적으로 세계경제포럼에 모였다.
월러스틴이 중요한 사회운동이라고 보는 것은 다음과 같다.
1994년 1월 1일 우리는 반발력을 보았다. NAFTA가 공식적으로 시행된 날 사빠티스타가 치아파스에서 봉기했다. 이는 시애틀로 이어졌는데, 여기서 노조 활동가, 생태주의자, 아나키스트라는 세 집단이 WTO를 중단시키는 데 성공했다. 다음으로 이번에 개최되면 150,000명이 참가할 것이라 예상되는 세계사회포럼이다.
월러스틴은, 세계사회포럼에 모인 사람들이 민주적 정치 형태와 정치적 행동에 대한 요구 사이의 모순을 조정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고 말하긴 하지만, 세계사회포럼의 “열린 포럼” 형식을 높이 평가(아마도 찬양)하는 것 같다. 그는 현 시점의 주목할 만한 사회적 투쟁을 다보스의 정신과 포르투 알레그레의 정신 간의 대결이라고 명명한다.
자본주의 세계체계는 현재 위기에 처해 있다. 이는 미국 헤게모니의 쇠퇴로 표현되지 않는다(헤게모니 쇠퇴는 자본주의 작동의 정상적 일부다.). 위기는 상품 가격에 대한 투입 비용의 상승, 스태그네이션으로 표현된다(내가 보기에 이는 이윤율 저하를 표현하는 다른 방식이다.). 그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지난 500여 년간 고용주들은 한 지역의 임금이 상승할 경우 공장을 쉽게 이전할 수 있었던 반면, 현재는 노동자들이 저임금을 받아들일 농업 지대가 충분치 않고 이는 실질 임금 비용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둘째, 기업들이 유독성 폐기물 처리비용을 내부화하게 강제하도록 환경운동이 국가를 강제하기 때문에 이 에 관한 비용이 상승한다. 셋째, 또한 세계 곳곳의 복지 국가들 때문에 세금이 증가한다. 이 위기 때문에 자본주의 세계체계는 분기할 것이고, 이 쪽 아니면 저 쪽 길로 가게 될 것이다.
이런 위기 상황을 감안할 때 사회적 투쟁(다보스 대 알레그레)은 실질적 차이를 만들 수 있다. 체계가 안정적일 때는 체계가 결정적이다(사회운동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이 궁극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다. 반면 체계가 위기에 처할 때는 자유의지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사회운동이 중요해진다.).
평가
첫 번째 부분에서 월러스틴은 신자유주의가 쇠퇴하고 신보수주의로 대체된다는 듯한 인상을 줬지만, 이 부분에서 그는 그것이 주요한 투쟁 장소라는 것처럼 말한다. 물론 나는 후자가 옳다고 생각하지만, 월러스틴은 여전히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의 관계를 다루지 않는다. 아마도 신보수주의가 미국 헤게모니 쇠퇴 이전 단계를 나타내는 반면 신자유주의가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쇠퇴 이전 단계를 나타낸다고 보기 때문인 것 같지만, 이 둘 사이에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인가?
이윤율 저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월러스틴은 자본주의 위기를 지연하거나 극복하는 방식으로서 금융화(이윤 획득의 금융적 형태로, 이는 그가 언급한 문제들을 비껴간다)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는 자본주의의 이윤이 위협받는다는 느낌을 주지만, 내 생각에는 월러스틴이 금융화(카지노 자본주의 등)가 체계의 근원에 있는 문제들을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전문가 토론에서 월러스틴에게 사회운동의 행위자가 누구이고, 그 계획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는 질문이 있었다. 월러스틴은 역사적으로 선택된 주체는 없다고 답변했고, 다시 세계사회포럼의 열린 포럼 형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마치 어떤 계획도 필요하지 않고 단지 논쟁의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처럼 행동했다. 내가 보기에는 이는 월러스틴이 활동가가 아니라 학자이기 때문에 답할 수 있는 중요한 질문을 회피하는 방식에 불과했다. 이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또 나는 체계가 안정적일 때 자유의지/사회운동이 중요하지 않다는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체계의 결정론과 사회운동 사이에 훨씬 더 변증법적인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