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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6.12.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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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의 고립장벽을 해체하라!

수열 | 정책편집부장
라말라 정착촌 주변의 고립장벽의 모습. 육중한 콘크리트 장벽과 전기 철조망, 검문소등이 보인다. 출처 : Anti-Apartheid Wall Campaign


유례없는 거대한 감옥

현재 팔레스타인에는 거대한 장벽이 건설되고 있다. 2002년 4월 이스라엘 정부는, 테러리스트들이 이스라엘인 거주지로 폭발물을 반입시키는 것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이른바 ‘안보 울타리’ 계획을 내놓았다. 이 계획에 따라 인구밀집지역에서부터 시작해 요르단강 서안지역에서 요르단 계곡을 완전히 분리하는 3단계 장벽 건설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2002년 6월부터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주변에 건설되기 시작한 고립장벽은 완성될 경우 총 길이 730km에 달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북한 군사분계선의 길이가 260km 정도이니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이 건설 중인 서안지구의 고립장벽은 두 가지 형태인데 하나는 콘크리트 장벽이고, 다른 하나는 전기 철조망이다. 깔낄리야, 툴카렘, 동예루살렘 등지에는 베를린 장벽의 두 배에 가까운 높이 8m의 콘크리트 장벽이 건설되고 있으며, 그 밖의 지역에는 3m 높이의 전기 철조망을 둘러치고 있다. 이와 함께 30~100m에 이르는 전기 철조망의 ‘완충지대’, 무장한 군인들이 지키는 감시 초소, 겹겹이 쳐진 철조망, 군 순찰대, 발자국용 모랫길, 참호, 감시 카메라, 감지 장치를 설치하여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스라엘 출입을 완전 봉쇄하고 있다. 1단계 장벽 건설로 이미 여러 개의 마을이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었으며, km당 약 4백 7십만 달러, 총 건설비용 약 34억 달러로 추정되는 이 대공사는 서안지구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장벽으로 인해 팔레스타인 지역 자체가 미증유의 거대한 감옥으로 변하고 있는 상황이다.

무기로서의 장벽

이 거대한 장벽이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은 팔레스타인의 땅을 빼앗는 것이다. 만약 이스라엘이 주장하는 것처럼 테러리스트들로부터 이스라엘인들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장벽이 건설되어야 하는 위치는 분명하다. 국제적으로 공인된 국경인 ‘녹색선(Green Line)’ 안쪽이거나 최소한 ‘녹색선’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의 어떠한 합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국경을 침범하여 장벽을 건설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장벽 건설 1차 단계에서만 약 167㎢에 이르는 팔레스타인 영토를 빼앗았으며, 1만 8천여 명의 팔레스타인 민중이 장벽과 이스라엘 영토 사이에 갇힌 채 서안지역으로부터 고립되었다. 북부 지역의 경우는 1단계 동안 장벽의 서쪽 16개 마을이 사실상 이스라엘에 합병되었으며, 50개의 마을이 팔레스타인 땅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예루살렘의 경우에는 장벽이 성지와 이스라엘의 점령촌을 둘러싸, 3단계 공사가 끝날 경우 예루살렘의 90%가 이스라엘에 합병된다. 남부 지역의 베들레헴과 헤브론도 장벽에 완전히 둘러싸일 예정이다. 가자지구는 약 140만의 인구가 365㎢ 안에 살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인데, 수년째 장벽과 철조망으로 싸여 있다.1)
이스라엘은 고립장벽 건설을 통해 요르단강 서안지역 전체 면적의 58%에 달하는 약 3,400㎢에 이르는 방대한 팔레스타인 영토를 빼앗으려 하고 있다. 나머지 42%의 땅덩어리 역시 이스라엘인 정착촌과 그들이 사용하는 관통도로가 사방으로 나 있어 올곧이 사용할 수 없다. 게다가 길을 포장하기 위해 장벽의 ‘완충지대’ 주변을 대규모로 파괴하고 있으며, 장벽 근처에 있는 집과 학교를 부수고 주민들을 추방하고 있다. 이스라엘 언론인 아미라 하스(Amira Hass)는, “안보상의 이유들과 중립적이고 관료적인 군사명령의 언어 뒤에 숨겨진 것은 축출을 위한 통로”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칼킬리야 지역의 장벽 건설 전(왼쪽)과 후(오른쪽)의 위성 사진 모습. 하얀색 테두리처럼 보이는 것이 고립장벽이다. 출처 : 올리브나무


수자원 약탈

이스라엘은 고립장벽 건설을 통해 팔레스타인의 수자원을 약탈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필요한 물을 대부분 요르단강과 요르단강 서안지역의 지하수로 충당하고 있다.2) 요르단강의 단 3%만이 이스라엘 영토 내에 있지만, 요르단강은 이스라엘 물 수요의 60% 가까이를 담당한다. 또한 이스라엘은 서안지역에서 공급할 수 있는 수자원의 82%를 끌어다 쓰고 있으며, 팔레스타인은 그 나머지만을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지역을 점령한 1967년의 전쟁3)은 사실 수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6일간의 전쟁으로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를 비롯하여 요르단강 서안과 골란고원 등을 빼앗은 이스라엘 정부는 다음과 같은 군사명령서를 발표했다.

공식적인 허가를 받지 않고서는 아무도 물 시설을 설치하거나 소유하거나 운영할 수 없다. 물을 사용하고자 신청하는 자에게 허가를 거절하거나, 어떤 설명 없이 면허를 수정하거나 취소할 수 있다. 관계당국은 허가증이 없는 어떤 수자원이라도, 소유주가 기소되지 않았을지라도 탐색하고 압수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이후 1982년까지 이스라엘 군대에 의해 통제되던 요르단강 서안지역의 수자원은, 현재는 이스라엘의 전국 물 관리 시스템에 통합되었다. 가뭄과 이스라엘의 과도한 물 사용으로 고갈되고 있는 수자원을 독점하기 위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물 사용을 극도로 제한해왔다. 1999년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7개의 우물만을 팔 수 있도록 허가받았을 뿐인데, 게다가 그 우물은 깊이 140m를 넘을 수가 없었다. 반면 이스라엘인들에게는 깊이 800m까지 허용되었다.
이러한 수자원의 독점이 고립장벽 건설을 통해 가속되고 있다. 장벽 건설 1단계 동안 이스라엘은 36개의 우물을 몰수했으며, ‘완충지대’안에 있는 14개의 또 다른 우물을 파괴하겠다고 협박했다. 2000년 기준으로 이스라엘이 사용하는 관개용수의 단 2% 밖에 공급받지 못하는 팔레스타인의 수자원을 독점하기 위한 파괴와 약탈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판 아파르트헤이트

이스라엘군은 장벽에 ‘출입구’를 만들어 놓고 있지만, 농민들이 자신의 땅에서 농사지을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있다.4)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침범으로 고립된 녹색선 안쪽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민중들은 고립장벽 너머에 있는 병원이나 학교, 직장에 가기 위해서는 이스라엘군이 지키고 있는 검문소를 통과해야만 하는데, 보안상 이유로 검문소를 봉쇄하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팔레스타인 민중들이 공유하고 있던 생활권이 장벽 건설로 인해 일방적으로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서안지구 북부에 위치한 칼킬리야 지역이다. 이 지역은 현재 단 한 곳의 검문소만이 외부와 연결되었을 뿐 지역 전체가 장벽에 둘러싸여 있다. 게다가 이스라엘이 칼킬리야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외부로 이동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지역 경제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장벽 건설로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이스라엘에 의해 통행의 권리마저 제한당하면서 팔레스타인 민중들은 자신들의 주요 수입원을 박탈당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팔레스타인 민중들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땅을 떠날 것이고, 그들이 떠난 마을은 이스라엘인들로 채워져 자연스럽게 이스라엘 영토로 편입될 것이다. 떠나지 않더라도 생계 수단을 박탈당한 팔레스타인 민중들은 극도의 경제적 곤궁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스라엘은 결국 팔레스타인 민중의 생계에 치명타를 가함으로써 팔레스타인이 독립 국가를 건설할 영토와 경제적 기반을 송두리째 빼앗고 있는 것이다.

죽음의 장벽을 해체하라!

이스라엘이 장벽을 건설하며 비옥한 땅과 수자원을 빼앗아 가는 동안 팔레스타인인들은 생명과 땅도, 이동의 자유도, 가족과 이웃들을 만날 권리마저도 빼앗기고 있다. 미국의 역사가 아메리카 원주민들에 대한 학살과 추방으로 시작되었다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학살과 추방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두 국가는 누구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고 할 것도 없이 총과 탱크로, 돈과 언론으로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있는 집단들이다.5) 이들은 국제연합의 결의안도,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도 비웃으며 제국주의적 패권을 휘두르고 있다.6) 평화와 희망의 역사는 국가 간의 거래나 허울뿐인 국제기구를 통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거대한 고립장벽 건설과 군사 공격으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학살과 야만을 자행하는 이스라엘과 이를 지원하는 미국의 제국주의 군사 패권을 막을 수 있는 건 오로지 전 세계 민중의 연대와 직접 행동뿐이다. 팔레스타인 민중들은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반세기 넘는 기간 동안 저항을 계속해왔다. 제국주의의 야만과 학살에 맞선 반전평화의 직접행동이, 팔레스타인 민중들에 대한 실천적 연대가 절실한 때다.

- 고립장벽 건설을 즉각 중단하고, 이미 건설된 장벽을 모두 철거하라!
- 장벽 건설 과정에서 몰수된 땅을 팔레스타인에 반환하라!
- 이스라엘과 미국은 팔레스타인 전역에 대한 군사 공격을 중단하고, 팔레스타인 민중의 생존을 보장하라!



1) 이스라엘은 지난 수십 년간 서안지구에 불법적으로 정착촌들을 만들고, 이를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녹색선’을 침범해왔다. 유엔은 조사를 통해 장벽이 건설되기 전에도 이스라엘의 차단벽들과 기간시설, 그리고 점령촌들이 서안지구에서 50개의 차단된 팔레스타인 고립지구를 만들어냈다고 추정했다. 본문으로
2) 중동문제 전문가인 이완 앤더슨(Ewan Anderson)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요르단강 서안은 이스라엘에 매우 중요한 수자원의 공급처가 되었다. 수자원은 다른 어떤 정치적인 또는 전략적인 요소보다도 더욱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었다.” 본문으로
3) 1967년 6월 5일 이스라엘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제3차 중동전쟁. 이스라엘은 1956년 제2차 중동전쟁으로 점령했다가 다음해 철군했던 이집트의 시나이반도와 가자지구를 비롯하여 서안지구와 골란(Golan)고원을 점령하고, 동예루살렘을 합병했다. 수십 만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발생했으며, 이스라엘은 점령지에 점령촌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본문으로
4) 별다른 설명 없이 폐쇄된 검문소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다 자신들의 땅으로 가기 위해 ‘허가 없이’ 검문소를 통과한 팔레스타인 농민들이 체포되고 마을에 대한 집단 보복이 자행되기도 했다. 본문으로
5) 제 4회 고립장벽 건설반대 국제공동행동 성명서 中 본문으로
6) 2003년 10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보안장벽이 불법임을 천명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던 미국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내 보안장벽 건설 중단을 촉구’하는 유엔 총회의 결의안에도 반대표를 던졌다. 또한 2004년 7월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이스라엘의 고립장벽이 국제법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이를 계기로 같은 달 20일 유엔 총회에서는 ‘보안장벽 철거’ 결의안을 채택했는데, 반대 6표 중 2표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것이었다.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이 있은 직후 토미 라피드 이스라엘 법무장관은 “우리는 헤이그 법정이 아닌 우리 최고법원이 내린 결정에 따를 것”이라 말했지만, 서안지구 장벽의 일부 구간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부당한 고통을 주고 있다며 일부 구간에 한해 우회 루트를 찾도록 정부 측에 명령한 이스라엘 대법원의 판결 역시 이행되지 않았다. 본문으로
주제어
평화 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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