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와 공화주의적 법치
[역주] 니콜로 마키아벨리. 시중에 유통되는 『군주론』의 판본이 10권이 넘을 정도로 그는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20년 전 알튀세르가 말한 '마키아벨리의 고독'은 여전한 것 같다. 이 고독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현상 중 하나는 『군주론』과 함께 그의 가장 중요한 저작으로 꼽히는 『로마사 논고』는 거의 읽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물론 이 책이 2003년에 번역되었기 때문에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군주론』이 번역된 지 최소한 10년 후에야 이 책이 번역된 것 자체가 상징적이지 않은가.) 즉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적' 측면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공화주의'라는 용어는 조심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국내에 소개된 공화주의는 대부분 '공공선'(common good)과 '공민적 덕'(civic virtue) 등을 강조하는 우익적 판본이기 때문이다.(그 대표적 논자 중 사회운동에 가장 널리 알려진 이가 바로 최장집이다. 그에 따르면 공화주의는 "공공선에 대한 헌신, 공적 결정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와 모든 시민이 공동체로부터 배제되지 않고 권리와 혜택을 누리는 시민권의 원리, 시민적 덕에 대한 강조를 핵심으로" 하며, "공익을 우선시하면서 사익이 공적 영역을 침해하면 정치가 부패하고 공공선이 훼손된다고 믿"는다고 주장한다.(최장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후마니타스, 2002, p. 227) 반면 이 글의 저자 미구엘 바터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정교한 독해를 통해 '공공선'과 '시민적 덕', 그리고 (혁명을 억압하기 위한) '참여'에 대한 강조야말로 정치와 자유를 부패시키는 원인이라고 갈파하는 공화주의에 대한 아마도 가장 좌익적 해석 중 하나를 제시한다. 이로써 그는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우파(곧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로 갇히지 않는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가 소개한 마키아벨리의 작업에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갈등'과 '불화'(discord)에 대한 새로운 평가다. 마키아벨리는 '합의'나 '조화'가 아닌 '갈등'과 '불화'가 민주주의와 자유를 낳는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귀족과 평민 간의 내분을 비난하는 자들은 로마를 자유롭게 만든 일차적 원인을 비난하고 그러한 내분이 초래한 좋은 결과보다는 그것들로부터 유래하는 분란과 소동만을 고려하는 것처럼 내게 보인다. 그들은 모든 공화국에는 두 개의 대립된 파벌, 곧 평민의 파벌과 부자의 파벌이 있다는 점 그리고 로마가 자유를 향유할 수 있도록 제정된 모든 법률은 그들의 불화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마키아벨리, 『로마사 논고』, 한길사, 2003, p. 86) 16세기에 선포되었지만 오늘날까지 이 선언의 혁명성은 조금도 무뎌지지 않았으며, 마키아벨리가 마르크스의 선조라는 점을 단번에 깨닫게 해 준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이야말로 공화주의 우파와 좌파가 갈라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사실 공화주의 우파 역시 갈등을 긍정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 갈등은 ('공공선' 따위로의) 통합이라는 궁극적 '목적'으로 가기 위한 고통스럽지만 피할 수 없는 '수단' 이상의 가치를 갖지 않는다. 최장집의 말을 빌자면, '갈등의 표출을 확대'하는 것은 '갈등을 완화'하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최장집, 위의 책, p. 209) 반면 공화주의 좌파가 볼 때 마키아벨리의 갈등 곧 '계급 투쟁'은 모종의 상위항으로 포섭하거나 환원할 수 없는 일차적 원리이고, 그런 점에서 더 이상 목적-수단의 도식으로 이해할 수 없으며, 굳이 이 도식을 사용해야 한다면 갈등 자체가 '목적'이 된다.
양자가 갈라지는 것은 전자가 갈등이라는 문제를 '지배하려는 욕망'이라는 근본적으로 동일하고 대칭적인 욕망들 사이의 갈등이라고 보는 반면, 후자는 '지배하려는 욕망'과 '지배받지 않으려는 욕망'이라는 근본적으로 차별적이고 비대칭적인 욕망들 사이의 갈등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자가 "민주주의의 과도함만큼 민주주의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은 없다"는 자유주의적 금언 앞에서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공화주의에서 뒷걸음치는 데 반해(최장집, 위의 책, p. 230), 후자는 갈등의 과도함이 아니라 질서와 조화, 합의와 비폭력에 대한 강박이야말로 민주주의와 자유의 적이라는 점을 확인하면서 공화주의를 더욱 발본화한다.
이 같은 차이는 '호민관'으로 대표되는 민주적 제도에 대한 평가에서도 극명히 드러난다. 공화주의 우파는 갈등이라는 '수단'을 통해 사회의 통합과 제도의 안정이라는 '목적'을 달성한 것이 바로 호민관의 본질이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갈등을 어떤 궁극적인 공통 원리로 '통합'할 수 있는 제도가 민주주의의 요체이며, 갈등은 이 같은 공통 원리 자체를 문제삼거나 비판하지 않는 한에서만 민주적이다. 반면 공화주의 좌파가 볼 때 호민관 제도가 의미를 갖는 것은 그것이 갈등의 비대칭적인 항들을 '조장'하고 '재생산'하는 한에서이며, 또 제도의 토대에 갈등을 새겨 넣음으로써 끊임없는 해체(따라서 재구성)에 열려 있는 한에서다. 또한 호민관 제도가 의의를 갖는 것은 그것이 일종의 '계급적 대표제'인 한에서인데, 이는 계급적/물질적 조건으로부터 추상되어 있을뿐더러 '자기-이익'(self-intetest)라는 동일한 욕망을 가진 원자적 개인들을 기반으로 삼고(혹은 보다 정확히 말하면 대중들을 그런 원자적 개인으로 '해체-재구성'해 내고) 혹 계급적 목소리가 진출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다수결'에 의해 무력화시키는 부르주아 의회주의를 넘어선다.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는 이 같은 '마키아벨리의 정리'(Machiavelli's theorem)를 매개로 마르크스주의적인 계급 투쟁 개념을 재평가하면서,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 및 심지어 '문명'의 근본 원리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에 따르면 "이탈리아에서처럼 프랑스에서도 지난 30년간 일정한 민주주의가 달성되었다면, 이는 스스로를 '체제의 외부(exteriority)'라고 여겼거나 그렇게 여겨졌던 노동자 대중, 혹은 '체제를 넘어서고자' 했던 노동자 대중들을 동원할 수 있는 세력들이 사회적 갈등을 유지(entretien)하는 호민관적 기능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외부성'은 이중적 의미를 지녔으며, 이는 무서운 다의성을 담고 있었다. 즉 자유시장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적 외부성이면서, '서구 블록'에 대한 전략적 외부성이 그것인데, 이것의 반향은 노동계급 운동들의 전 역사에 걸쳐 감지되었고 심지어 그것이 공산주의에 대한 어떠한 충성도 인정하지 않은 경우에서조차 그랬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활력을 위해 우리는 헤겔의 이론보다는 차라리 마키아벨리의 정리(theorem)를 적용시키거나, 혹은 적어도 하나를 다른 하나로 교정해야만 한다."( tienne Balibar, 『Politics and the Other Scene』, Verso, 2002, pp. 122~123)
이상에서 보듯 마키아벨리는 최근 87 항쟁 20년과 IMF 10년을 맞이하여 국내에서 유례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민주주의에 관한 수많은 논의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한편 '더많은 민주주의'(deMOREcracy)를 사고하고 실천하는 데 중요한 지침을 주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여기서 바터의 해석이 많은 몫을 하고 있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바터의 이 글에는 논의가 다소 불충분하거나 모호한 점도 없지 않은데, 이는 이 글이 책으로 발간되지 않은 초고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글을 번역한 것은 이만한 분량에 이렇게 논점을 요령 있게 드러내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점에 관해 바터의 양해를 청하는 바이다. 또 글의 완성도와 별개로 바터의 주장은 많은 쟁점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비판적으로 독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에 관해서 독자들의 많은 문제제기가 있기를 바란다.
공화주의, 비-지배(Non-Domination), 그리고 법치(Rule of Law)
근대 공화주의를 재구성하려는 최근의 시도들 예컨대 페팃(Philip Pettit)의 작업 은 비-지배로서의 자유라는 이상(理想, ideal)과 법치를 강하게 동일시하려고 한다. 내 생각에 근대 공화주의가 비-지배의 이상이라는 특징을 갖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것이 훨씬 더 강조하는 것은 국가의 법질서(law and order)에 대립하는 비-지배의 조건으로서 인민의 권력(power of the people)과 자유다. 인민 권력에서 법치로 옮아가는 것은 근대 공화주의보다는 근대 자유주의 전통에서 훨씬 더 많이 유래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마키아벨리에게서는 자유과 법치의 관계에 관한 원(原, proto-)자유주의적 이해방식과 공화주의적 이해방식 양 쪽 모두가 발견된다. 이 글에서 나는 이 같은 이해방식들을 소묘하면서, 자유와 질서, 인민 권력과 국가 권력, 혁명과 권위의 균형을 달성하기 위해서 확보할 필요가 있는 몇 가지 조건들을 나열해 볼 것이다.
근대 공화주의에 대한 페팃의 재구성에서, 비-지배의 정치적 조건은 거의 전적으로 법치의 유지에 의존하게 되어 있다. 페팃이 볼 때 비-지배로서의 자유가 의미하는 것은 "강자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음(being secured)으로써 … 자의적 권력들에 간섭(interfere)받지 않는 세계"1)에 사는 것이다. [여기서] 지배란 영향을 받는 사람의 의견과 이익을 따를 필요 없이 "자의적 근거로 피지배자들의 선택에 간섭"할 수 있는 개인이나 집단의 "자의적 권력에 종속"된 상태로 정의된다.2) 개인들의 자의적 간섭으로부터 "보장하는"(secure) 것은 법 체계의 "비-자의적" 간섭이다. "비-지배적인(non-mastering) 간섭자"3)로 기능하는 법의 통치 말이다. 법은 그 비인격적(impersonal, [비개인적]) 형태 덕분에 타고난 비-자의적 성격을 보유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바로 법의 통치를 받는 것이 비-자의적 권력의 통치를 받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비-지배로서 자유라는 식의 결론이 뒤따르는 것 같이 보인다. 페팃은 이렇게 말한다. "자유는 적절한 법적 체제(regime) 아래서만 존재할 수 있는 … 지위(status, [신분, 상태])다. 법이 통치자들이 향유하는 권위를 창출하는 것처럼, 법은 시민들이 공유하는 자유를 창출한다."4)
위에서 말한 이상화에 부합하는 몇 가지 측면들이 근대 공화주의에 있는 것은 분명하며, 스키너(Quentin Skinner)와 비롤리(Maurizio Viroli)의 작업 역시 이를 보여준다. 하지만 내 생각에 근대 공화주의, 특히 (이 저자들 모두가 근대 공화주의의 아버지로 인정하는) 마키아벨리 안에는 비-지배에 관한 보다 광범위한 이해방식을 주장하는 그 이상(以上)이 있는데, 여기서 지배의 부정은 자의적 지배뿐 아니라 법적 지배에도 투여된다. 공화국에서 발견되는 정치적 연합의 자유에 관한 가장 간결한 정의 중 하나는 아렌트에서 유래한다. "법치는, 인민 권력에 기초하는 한에서, 인간에 대한 인간의 통치를 종식시킬 것이다."5) 이 정식화에 따르면 공화국은 지배로부터의 자유, "인간에 대한 인간의 통치"의 부재라는 특징을 갖는 정치적 연합이다. 공화국의 구성 요소 중 하나는 인민 권력으로,6) 국가나 정부(government, 통치) 형태는 여기에 기초해야만 지배받는 신분[상태]를 종식시킬 수 있다. 만일 정부 형태가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의 차이를 확립하는 것이라면, 근대 공화주의 전통에서 사용하는 의미에서의 인민 권력은 이 같은 차이 외부에 있으며,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의 분할이 없는, 비-통치의 조건 하에 사는"7) 것을 원리적으로 가능케 한다. 비-지배라는 근대 공화주의의 이상이 인민 권력과 동일시하는 것은, 통치 자체의 정당성을 문제삼을 수 있는 근거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고대적 또는 고전적 공화주의의 이상이 목표로 삼는 정치적 조건은 "평등한 사람들이 통치 받는 만큼 통치하는 것, 그 결과로서 교대로 그렇게 하는 것이 정의롭다(just)."8)는 것이었다. 고전적 이상이 제시하는 것은 최선의 또는 정의로운 종류의 통치로서, 이는 비-지배라는 근대적 이상과 대조된다. 오직 후자만이 근대 공화주의와 혁명이라는 현상이 항상 연관되는 이유를 해명한다.9)
근대 공화주의 전통이 자유에 접근하는 방식은 현실주의적이지, 유토피아적이지 않다. 근대 공화주의는 인간의 연합에서 통치의 차원이 간단히 폐지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근대 공화국의 두 번째 구성 요소는 "법치"다. 법치가 이름 짓는 정부의 원리는, 만인이 그 앞에서 불평등한 인적 명령들보다는 만인이 [그 앞에서] 평등한 법에 의해 인민들이 통치되는 점을 확신케 하려는 의도를 갖는다. 법치는, 그 밖의 점에서는 혁명적인 정치적 자유에 안정적인 정치적 질서를 보장한다. 근대 공화주의 정치 사상의 주요 전통에 따르면, 자유로운 정치적 삶이 필요로 하는 것은 인민 권력에 연결된 자유의 요소와 법치에 연결된 질서의 요소 사이의 균형이며, 이는 피할 수 없는 긴장을 동반한다.10)
마키아벨리는 [법치가] 일종의 통치라는 데서 유래하는 지배의 요소가 법치에 포함된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 통치는 하나의 지배 형태로서, 페팃이 주장하는 것처럼 일종의 비-자의적 간섭에 불과한 것이 아닌데, 이는 그것이 종속(subjection) 관계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법치에서 유래하는 종속은 주인에 의해 노예가 예속되는 자의적 지배와 같진 않다. 그것은 비-자의적이고 비인격적인 종류의 지배로서, 여기에 신민(subject, 주체)들이 예속되는 것은 사적 인격이 아닌 공적 제도에 의해서다. [어쨌거나] 이 때문에 중대한 유보 조항을 달지 않는 한 법치를 비-지배로서의 자유의 이상과 동일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2절)
이런 내적 비판에 맞서기 위해 페팃의 공화주의는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에서 발견되는 요소들을 통합함으로써 수정될 필요가 있는데, 이 요소들은 자유와 질서 간의 특유한 창조적 긴장을 재확립한다. 페팃이 재구성하는 공화주의는 분명 그가 정부의 "민주적 분쟁가능성"(contestability)이라 부른 것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낸다. 이 개념은 마키아벨리의 인민 권력 개념과 재연결될 필요가 있고 그 적용은 확대되어 법치를 비롯한 모든 형태의 지배와 다투는(contest) 가능성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분쟁가능성은 자유로운 정치적 삶의 토대에 놓이고 이로써, 마키아벨리와 그 뒤를 잇는 많은 공화주의 전통에서 발견되는, 정치적 통일(성)의 달성에 대한 사회적 갈등의 우위라는 주제가 복원된다.(3절)
역으로 근대 국가에 관한 마키아벨리의 담론은, 어떻게 근대 국가를 [국가에] 사전에 투여된 비-지배의 요구에 응답할 수 있는 역량의 함수(function)로 이해할 수 있는지 보여 준다. "시민형 군주"(civil prince)로 형상화되는 하나의 응답은, 통치의 기획을 그 자신과 신민 양 쪽의 [안전] 보장으로 만드는 것이다. 근대 국가가 이 통치의 보장을 달성하는 것은 개인적 권리들의 체계라는 형태로서다. 비-지배의 요구에 대한 이 같은 국가 중심적인 응답은 시민적 자유와 시민적 평등을 정초하지만, 인민의 정치적 평등과 정치적 자유의 달성을 타협하는 것인데, 왜냐하면 통치를 보장하는 것은 그것에 대항하는 것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4절) 또 다른 응답은 국가로 하여금 인민들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특수한] 제도들을 채택할 것을 요구하는데, 이 제도들은 인민들이 국가 자체의 내부로부터 통치의 집행(administration, 행정)에 거스르는 것을 허용한다. 이 두 번째 전략을 통해서 국가를 국가 자신에게 대항하게 만드는 하나의 방식으로 입헌주의가 이해될 때에만 공화국을 말할 수 있다.(5절)
국가를 법적 지배의 원천으로 판정한 후 마키아벨리는 인민 권력 및 지배에 대한 [그것의] 분쟁(contestation)이, 정치적 평등의 인정을 위한 혁명적 투쟁에서 발생하는 것처럼, 헌법 외(外)적인 방식으로(extra-constitutionally) 스스로를 표현하는 가능성을 옹호한다.(6절) 마지막으로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는 법치를 법의 권위와 구별할 것을 요구한다. 만일 인민 권력의 혁명적 잠재력이 법치와 모순에 처하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법의 권위와의 관계에서는 사정이 같을 수 없다. 오히려 인민 권력과 법의 권위가 서로를 요구한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다.(7절 - 이 글에는 포함되지 않았음.) 자유와 질서, 권력과 통치 간의 균형은 정치적 혁명과 법적 권위 간의 내적 관계를 확립하는 것에 달려 있다.
법치와 비-자의적 지배
지난 절에서 나는, 행위의 선택에서 법이 표현하는 추상적 고려에 부합하는 실천은 (도미니움(dominium, [배타적] 지배권력)이거나 임페리움(imperium, 통치권력)인) 지배에 준거하지 않고 해석될 필요가 있다는 가능성을 옹호했다. 그러나 이 같은 가능성에 상관없이, 법이 혼자서 통치할 수 없다는 점에는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통치의 기능을 실행하는 어떤 공적 인격(public person, [공인(公人)]), 절차, 제도와 기술이 없다면 법치도 있을 수 없다. 비인격적 지배가 법치에 들어가는 것은 통치를 통해서다. 따라서 "좋은 법은 그 스스로 어떤 새로운 지배적 강제력(force)을 도입하지 않고서, 정부의 통치권력(imperium)에 동반될 수 있는 지배를 도입하지 않고서 … 인민을 지배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는 페팃의 가정은 그릇된 것으로 증명될 수 있다.11) 왜냐하면 "법치"는 (마치 "입헌 국가"나 페어파숭슈타트(Verfassungsstaat, 입헌 국가)처럼) 두 가지 용어[즉 헌법과 국가]를 포함하는 복합적 표현이기 때문인데, 각각은 별개의 문법으로 사용되고 별개의 현실에 관련되는 바, 드워킨(Ronald Dworkin)은 각각을 "법의 근거"(grounds of law)와 "법의 힘"(force of law)이라는 표현 하에 솜씨 좋게 분류한다.12) 전자는 근대 법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답하는데, 이를 위해서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답이 (예컨대 홉스에게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권위 이론을 통해서 나올 수 있는지 아니면 (예컨대 칸트에게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정의 이론을 통해서 나올 수 있는지에 관해 논의한다. "법의 힘" 논의에 관련되는 것은 법이 요구하는 통치의 종류, 그리고 종속의 종류다. 법과 통치의 구별을 고려하지 않거나, 따라서 그것들의 내적 관계라는 문제 전체를 무시하게 되면, 법치에서 실행되는 비인격적이거나 합법적인(legal) 지배의 가능성이 시야에서 사라지게 된다.
법치에 관해 제기될 수 있는 근본적 질문 중 하나는 간단히 말해, 왜 법은 통치를 필요로 하는가이다. 법치에 관해 서로 다른 정식화들을 내놓으면서도 마키아벨리, 홉스, 스피노자, 로크, 그리고 루소 모두가 동의하는 바는, 법의 타당성(validity)(법의 "근거")과 법의 사실성(facticity)이 어느 한 쪽으로 환원될 수는 없지만, 동시에 양자를 별개로 결정짓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13) 이 사상가들 모두에게서 얻을 수 있는 간단한 답변은, 질서가 법에 필수적이라는 것, 그리고 질서를 확립하는 것은 법의 정의나 권위보다는 통치라는 것이다. 법치의 형식적 특징을 아직까지도 가장 명쾌한 것으로 인정받는 방식으로 설명한 오크쇼트(Michael Oakeshott)는 이 쟁점을 아주 분명하게 요약한다. "시민적 조건은, 그것이 법(lex, 법률)에 따른 연합이고 법이 스스로를 해석하고 집행(administer)하거나 시행(enforce, 강제하다)할 수 없는 까닭에, 통치 장치를 요청한다."14) 통상 이 통치 장치는 "조건(즉 법(lex))에 일반적이고 적합하게 동의할 것이라는 보증, 최소한 기대를"15) 달성하는 책임을 맡는다. 통치는 질서를 가져오는 것인데, 질서가 없다면 법으로 명문화된 비인격적 조건에 대한 동의는 안전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일반화된 동의도, 본연의 의미에서의 법의 "통치"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16) 질서가 없다면, 법은 (비록 그 근거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아무런 힘도 가지지 못할 것이다.
설령 주장을 위해 가정하길, 본연의 의미에서의 통치라는 기획은 실질적 목표가 오직 법의 유지에 있을 뿐이며,17) 통치자의 관직을 성립시키는(constitute) 선행 법 없이는 어떤 통치자도 가능하지 않다손 치더라도, 통치가 순전히 규칙(rule)에 동의하는 활동이 아닌 만큼 통치의 실행 자체는 규칙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것이 여전히 사실이다.18) 규칙들을 적용하고 변경하며 시행하거나 하는 것은 단순히 이런저런 규칙에 동의하는 것으로 묘사될 수 없는 행위이고, 규칙을 따르는 것으로 성격규정할 수 없는 행위다. 통치 행위가 법의 형태로 수행될 수 없는 까닭은, 최소치로 잡더라도 통치라는 것이, 상황이나 사건이라는 특수자들이 법의 관할에 속하게 하여 원리상 법으로 규정될 수 있게끔 특수자들에 질서를 세우는(order) 실천이기 때문이다. 법 혼자서는 이렇게 질서를 세울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통치는 법의 아래나 위에서 발생하지만, 결코 "법 이전에"(before the law) 발생하지 않는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통치란 본질적으로 무언가나 누군가를 다른 무언가나 누군가에게 종속시키는 실천이다. 통치가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응답은 통치에 종속되거나 저항하는 것뿐이다. 마키아벨리와 홉스, 스피노자, 로크나 루소가 이미 서로 다른 방식으로 언급했듯이, 국가는 그 임무가 질서의 부과인 한에서, 즉 그 업무가 통치의 부과인 한에서, 정의상 법에 의해 포괄적으로 제한될 수 없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국가는 법치를 실질적으로 인도할 수 있는 위치를 점할 수 없을 것이다.
정치 철학의 주요 전통은 질서와 법의 차이에 관해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한다. 이 차이의 실존과 그 의미는 여기서 다루는 주제가 아니므로, 나는 다만 두 가지 최근 사례만을 언급하고자 한다. 슈미트(Carl Schmitt)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통치가 법치를 위한 법-상위(以上)적(supra-legal) 조건이라는 관념이다. 슈미트가 볼 때, 모든 법은 "상황의 법"(situational law)이다.19) 모든 법은 질서를, 상황을 전제하며, 이 안에서만 법이 적용될 수 있다. 혼돈 상태에서는 법에 대한 예외만이 존재할 뿐으로, 정의상 어떤 법도 적용될 수 없으며 따라서 그 타당성은 중단된다. 법이 자신을 발견하는 곳이 "정상적" 상황인가 아니면 "예외 상태"인가? "주권자는 이 정상적 상황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여부를 단호히 판단하는 자다."20) 국가는 그것이 주권적인 한에서, 질서를 확보하여 타당한 법이 적용가능하게 한다.21) 법은 정의상 이 같은 질서를 확립하는 데 무력하다. 비록 슈미트에게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은 법이 아니라 인격체(person)일 뿐이지만, 마찬가지로 자명한 것은 주권적 인격체가 "결정에 대한 독점권"22)이라는 특징을 가지며, 따라서 그 인격이나 결정 모두 사회에서의 개인을 특징짓는 자의적 결정의 일종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점이다. 자의적 권력에 관한 페팃의 정의는 사적이고 자의적인 결정이 타인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을 가리킬 뿐이다. 그것은 공적 인격체가 내리는 공적 결정이라는 슈미트적 개념은 고려에 넣지 않는다. 설사 슈미트가 국가와 법의 구별을 끌어내는 방식에 결함이 있다손 치더라도, 입헌적 위기의 시기 곧 "국가는 남아 있으되, 법은 물러난"23) 경우, 이런 식의 구별이 필연적으로 나타나고, 자의적 지배와 대비되는 적법한(legitimate) 지배의 가능성을 사고하는 데 상당한 함의를 가지게 될 것이 분명한 것 같다.
푸코는 통치를 법 "아래에서" 작동하는 것으로, 법치의 법-하부적(infra-legal) 조건으로 사고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준다. 푸코에게서는 슈미트에게서와는 달리 통치 장치를 통한 질서의 확립은 국가의 주권적 권력과 연관되지 않는다. 규율에 관한 그의 책이 보여주려는 것처럼, "원리상 평등주의적인 권리 체계를 보증했던 일반적인 사법적 형태를 뒷받침했던 것은, 이 같은 미세하고 일상적이며 물리적인 메커니즘, 우리가 규율이라 부르는 본질적으로 비평등주의적이고 비대칭적인 이 모든 미시 권력의 체계다."24) 다시 한 번 요점은 규율 권력이라는 것이 "형식적, 사법적 자유들"을 작동시키기 위해 "힘들과 신체들의 순종에 대한 보증"을 활용하는 실제적 형태인가 하는 역사적 사실 문제에 관해 푸코가 옳은가 여부가 아니다. 결정적 지점은 철학적이다. 즉 법이 스스로를 통치 형태로 구성하기 위해서는 모종의 "보증"이나 "질서"가 필수적이라는 점, 그리고 질서에 대한 이 같은 필요는 지배의 법-하부적이거나 법-상위적인 지배의 실행을 통해서만 만족될 수 있으며, 이는 법적 주체라는 이유로 법에 종속된 이들의 의존성을 초래하는 권력의 비대칭성과 불평등을 기입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 같은 류의 지배는 따라서 비인격적이고 합법적이어서, 법에 제한받지 않는 인격체가 행사하는 자의적 지배라는 페팃의 제한된 지배 개념과는 전혀 무관하다.
법치에 수반되는 통치가 비-자의적 간섭 형태가 아니라 비-자의적 지배 형태인 까닭은, 법적 주체의 "주체성"(subjectivity)이 그 종속(subjection)의 함수, 즉 비평등주의적이고 비대칭적이며 따라서 페팃 자신의 용어법에 따르자면 일종의 지배를 구성하는 권력 관계 안에 서게 되는 개인의 함수이기 때문이다. 통치 앞에 서는 것은 "자연적 장애물" 앞에 서는 것과 같지 않다. 전자는 나를 종속의 상태에 처하게 하거나 굳게 만들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25) 법치를 비-자의적 간섭의 형태로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이 때문이다.(물론 법과 그것에 동의하는 행위의 관계를 "간섭"의 관계라고 생각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법은 부사적인 것으로(adverbial), 행위에 "간섭하지" 않고서 그것을 변경시킨다.) 물론 나를 법적 주체로 전환시키는 류의 지배가 나를 노예로 전환시키는 지배와 같지는 않을 테지만, 그것은 여전히 명백하게 하나의 지배 형태다 합법적이고, 비인격적인 지배. 스피노자가 분명히 한 것처럼, 법적 지배에 종속되는 것은 자의적 지배에 종속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나의 자기-이익"에 부합할 필요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배의 성격을 상실하는 것은 아니다.26) 그러므로 "적절한 합법적 체제"가 "시민들의 공통적이고, 쉽게 공언될 수 있는 이익을, 오직 그런 이익만을" 쫓을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이 통치의 성격이 지배받는 상태에서 지배받지 않는 상태로 바뀌지는 않는다.27) 자의적 지배 상황에서 내가 종속되는 이유는, 다른 인격체가 내리는 명령의 자의적 지배력(sway, 동요)에 나 자신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합법적, 비-자의적 지배 상황에서 내가 종속되는 이유는, 나를 자의적 지배에서 "면역"(immunize)시키고자 하는 비인격적 절차의 통제에 나 자신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만일 페팃이 말하는 것처럼 법치가 자의적 권력에 대한 나 자신의 "면역력"을 구성하는 규칙의 체계라면, 이 같은 결과는 비-자의적 권력의 지배를 통해서 달성되며, 이 권력 앞에서 비인격적 권력에 대한 나의 객관적 "불안전(성)"(insecurity)은 이 권력이 자의성으로부터 나의 주관적 "안전(성)"(security)을 제공해 주는 것과 동일한 정도로 증가한다. 이런 의미에서 법치는 "자가면역적"(auto-immune) 과정에 무방비상태다(open, [병균 등에 전염될 우려가 있다]).28)
마키아벨리에게서 정치적 통일성과 사회적 불화(discord)의 우위
부패(corruption, [타락])에 관한 그의 복합적 담론에서 보듯, 마키아벨리는 법이 법-하부적이고 법-상위적인 질서 확립에 의존적이라는 점을 비범하게 의식하고 있다.29) "사람들이 선량할 때인 탄생기의 공화국[에서 형성된 법과 질서]은, 사람들이 사악하게 된 후에는 더 이상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법은 도시의 사태에 따라 변화할 수 있지만, 질서는 결코 또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이는 새로운 법을 불충분하게 만드는데, 왜냐하면 고착된 채로 남아 있는 질서가 그 법을 부패시키기 때문이다."30) 이 문구가 유창하게 보여주듯, 정치적 연합의 구성원이 타락하는 것은 그 아래서 그들이 살아가고 그들을 "사악하게" 만드는 법적 질서의 불변성과 안정성 바로 그 자체 때문이다. 부패가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 "우리의 직접적 이익 추구가 공동체의 주장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자마자 후자를 무시하는 우리의 자연적 성향"31)이 아니라, 현존하는 적법한 질서와 법의 보호 및 외피 아래서 구성원들 간의 불평등이 증가하고 [이를] 수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스키너와 페팃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정확하게 지적했듯, 부패라는 현상은 자유주의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며, 이는 비-간섭으로서 자유라는 이들의 개념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데, 왜냐하면 "비장의 수로서 권리를 역설하는 것은 … 우리가 시민으로서 부패했음을 공언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또한 비합리성의 자기파괴적 형태를 껴안는 것"이기 때문이다.32) 그러나 만일 부패에 관한 마키아벨리의 설명이 맞다면, 고전적인 "공민적 공화주의"(civic republicanism)는 이 문제를 극복하는 데 자유주의보다 나을 게 없는데, 왜냐하면 국가의 법질서로 형상화되는 "공공선"(common good)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애국주의")과 "공민적 덕"(civic virtue)에 대한 호소는 애초에 부패를 낳는 형태들을 뒷받침할 뿐이기 때문이다. 법치와 비-자의적 지배의 내적 관계를 인지했기 때문에, 마키아벨리는 법치가 (그에 대한 충성을 유발하는 데 필요한 "공민적 덕"과 "애국주의"를 알맞게 복용하거나 하면) 지배로부터 자유를 성립시키는(constitute) 데 충분하다는 환상의 포로가 되지 않았다.
마키아벨리는 질서에 대한 법의 의존과 여기서 초래되는 자유에 대한 해로운 효과에 관해 전혀 다른 해법을 제시한다. 비-지배로서 자유는, 질서 보장보다 질서 변화의 우선권을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비-지배로서 자유는 질서에 대한 저항을 실행하는 것, 그리고 정치적 무질서와 불화, 분쟁을 긍정적으로 재평가하는 것과 연관된다. 역으로 이는 공민적 덕의 경건함에는 거의 쓸모가 없는 정치적 (변)덕(變德, virt )이라는 관념을 불러들인다.33)
마키아벨리는 법적 지배를 정치 질서의 고착과 연결시키기 때문에, 비-지배를 정치 질서의 비판 심지어 혁명의 함수로 생각할 수 있다. 무질서, 불일치(disagreement), 그리고 갈등은 사회와 정치에게 생산적 원리가 된다. "왜냐하면 모든 도시에는 두 가지 상이한 기질이 발견되는데, 이는 인민이 귀족의 명령을 받거나 지배받지 않기를 바라며, 귀족은 인민을 명령하고 억압하길 바라는 데서 초래된다. 이 두 가지 구별되는 욕구에서 세 가지 중 하나의 결과가 도시에 발생한다: 군주국, 자유[공화국], 방종[무정부상태]이 바로 그것이다."34) 사회적 갈등에 관한 마키아벨리의 재평가가 근대 정치 사상의 발전에 미친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첫 번째 주요 혁신은 사회적 분할이 정치적 통일성보다 일차적이라는 점이다. 마키아벨리에게 있어, 연합(과 따라서 사회)의 실존은 정념적이고 갈등적인 관계에 근거하는 것이지, 협력의 이성적 관계에 근거하지 않는다. 동의가 아니라 적대가 사회적 유대의 본질이다.35)
두 번째 주요 혁신은 마키아벨리가 사회적 적대에 부여한 성격에 있다. 왜냐하면 만일 적대가 단지 서로를 통치하려는 데 관심을 갖는 행위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것이라면, 이 같은 적대는 도저히 사회적 유대를 낳을 수 없고 그 대립물 곧 사회의 퇴락을 낳을 것임을 (최소한 플라톤 이래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보여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반론은 마키아벨리의 사회적 적대 개념에는 영향을 줄 수 없다. 그에게 있어 인민과 귀족은 자연적(natural, [타고난]) 부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누구건 지배하려는 욕망에서 말하고 행동한다면 귀족의 입장을 취하는 것이고, 누구건 지배받지 않으려는 욕망에서 말하고 행동한다면 인민의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 사람의 동일한 개인이 다른 시점에 다른 입장을 점할 수도 있다. 소수자가 인민으로 행동할 수도 있고, 마찬가지로 다수자가 귀족처럼 행세할 수도 있다.(『로마사 논고』에서 마키아벨리는 로마 공화국의 역사 및 로마 제국으로의 이행에서 이 같은 양 쪽의 가능성들을 분석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더욱이 비-지배를 욕망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은 예정되어 있지 않을뿐더러, 일의적일 필요도 없다. 인민과 귀족은 완전히 차별적인 항이다.36) 따라서 일차적인 사회적 갈등은 누가 통치해야 하는지에 관한 다툼으로 환원할 수 없다. 사회를 관통하는 갈등은 헤게모니 투쟁, 즉 장차 누가 통치할 것인가 에 관한 투쟁이 아니다. 그것은 통치를 원하는 이들과 비-통치를 원하는 이들 사이의 갈등이다. "의심의 여지 없이 귀족과 귀족이 아닌 자들의 목적을 검토해 보면, 전자에게는 지배하려는 강한 욕망을, 후자에게는 단지 지배받지 않으려는 욕망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37) 마키아벨리가 정치적 통일성의 가능성, 따라서 정치적 통치의 가능성을 사고하는 것은 통치라는 문제에 관한 필연적인 사회적 분할의 실존, 곧 누가 통치할 것인가 가 아니라 도대체 통치라는 것이 있어야 하는지 여부, 그리고 어떻게 있어야 하는지 라는 질문에 관한 필연적인 갈등의 실존에 의거해서다. 이 질문이 열려 있는 한, 사회적 유대는 실존하고 갈등적 유대로 남는다. 이렇게 되면 모든 이들이 통치하길 원하거나 아무도 [통치하길] 원하지 않는다는 가능성을 사고하는 데서 오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홉스)과 "공평한 협동 체계"(롤스)라는 대립적이지만 마찬가지로 환상적인 억측들 중 하나에 호소할 필요가 없다.
이 질문이 열려 있고 사회가 실존하는 한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오로지 정치에 의해서, 그리고 정치로서만 제시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정치는 "공공선"이라는 상상의 초점(focus imaginarius, [실존하지는 않지만, 현실의 의미와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 허구적으로 만들어낸 지향점. 칸트가 말하는 '규제적 이념'(regulative idea) 예컨대 '신'이나 '영혼', '자유' 등이 대표적 예])을 상실한다. 지배하려는 욕망과 지배받지 않으려는 욕망 사이의 모순이 제3의 매개항으로 해소될 수 없으므로, "일반적" 또는 "공통의" 이익이 사회 안에 실존하여, 그것을 따를 수 있는 "적절한 법적 체제"에 원리적으로 분쟁불가능한 정당성을 부여할 수는 없다는 결론이 따라 나온다.38)
마키아벨리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근대 국가는 지배와 비-지배 사이의 갈등에서 제기되는 요구에 대답하고자 하지만, 이는 오로지 그리고 항상 부분적이고 우연적인 응답에 지나지 않는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자면, 언제, 어디서,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국가의 통치와 정치적으로 다툴지를 국가가 맡아서 결정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39) 차라리 국가가 더 잘 지속할 수 있는 것은, 그 가능성의 조건으로 국가 안에 항상 이미 투여되어 있는 통치에 대한 분쟁가능성에 더 잘 응답할 수 있을 때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정치 질서의 혁명적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정치 질서 설립의 가능성을 조건짓는다.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는 근대 정치의 일반 원리를 제출하는데, 이에 따르면 어떤 정치 질서건, 그것이 구성/입헌되고(constituted) 정당화되려면, 반드시 탈구성/입헌(deconstitution)과 탈적법화(delegitimation)에도 열려 있어야 한다. 유일하게 정당한 정치 질서는 스스로의 근본적 우연성을 견딜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이다. 『군주론』과 그에 동반되는 근대 국가 이론, 그리고 『로마사 논고』와 그에 동반되는 근대 공화국 이론은 이 근대 정치의 일반 원리에 관한 두 가지 상호보완적 예증이다.40)
시민형 군주(Civil Prince): 자유주의 국가의 계보학을 향하여
일단 이 같은 정치적 통치의 근본적 우연성이 정치적 행위의 지평으로 가정되면, 두 종류의 정치가 시야에 들어오는데, 양 쪽 모두 필수적이고 한 쪽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첫 번째 종류의 정치는 시간을 관통하여 지속하는 국가를 정초함으로써 통치의 불안정성을 최소화하고자 한다. 국가를 '시민형 군주국'(civil principality)으로 규정하는 마키아벨리의 이론은 이 같은 정치를 형상화한다.41) 영속적 국가가 가능한 유일한 조건은 군주가 귀족에 맞서 인민의 편을 드는 것, 그리고 역으로 인민이 국가의 근거가 되어 그 통치를 뒷받침하는 것이다.42) 시민형 군주가 인민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오직 자립적인 국가만이 외침(外侵, external war)의 맹격을 버텨낼 수 있기 때문이다.43) 여기에는 군주가, 용병과는 대립되는 스스로의 군대를 반드시 보유해야 한다는 것이 수반된다. 즉 군주는 반드시 자신의 인민을 무장시켜야만 한다. 그러나 앞서 논했듯 인민은 "지배받지 않으려는 욕망"에 고취된다. 그러므로 새로운 군주의 국가 건설 기획은 극도의 위험을 불러 온다. 그것이 필요로 하는 것은, 자유에 대한 욕망에 무장을 갖춘(whose desire for freedom has been armed) 주체(subject, [신민(臣民), 기체(基體)]), 따라서 잠재적으로 혁명적인 주체 위에 국가를 정초하는 것이다. "좋은 군대가 없이 좋은 법률을 가지기란 불가능하고, 좋은 군대가 있는 곳에는 항상 좋은 법률이 있다"44)라는 마키아벨리의 유명한 단언은, "좋은 군대"라는 말로 그가 의미하는 것이 비-지배를 욕망하는 무장한 인민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면 거의 자명해 보인다. 요점은 근대 국가가, 그것을 항상 전복할 수 있는 것 위에 근거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군주론』의 역설은, 국가의 기초 자체가 그 혁명적 성격 때문에 그 자체로 국가의 우연성과 불안전성의 원천이 된다는 점이다. 근대 군주 또는 국가가, 그 시작에서부터 (자신과 그 신민에게) "보장"을 제공하는 데 몰두한다는 사실은, 그 근거의 발본적 우연성에서 직접 따라나오는 것이다.45) 마키아벨리는 이 "안전"이 통치 활동을 중단시키지 않고 보장함으로써만 획득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시민형 군주는 스스로를 정초하기 위해, 통치의 실행을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상호 보장의 문제로 만드는 국가의 이름이다. 통치의 중단과 대립하는 통치의 보장 때문에 마키아벨리의 "시민형 군주국"은 근대 국가의 원(原, proto-)자유주의적 형태가 된다.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위에서 말한 정초의 역설에 대처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전략을 제시한다.
[잔혹이] (나쁜 일에 대해서도 '잘'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다면) 잘 사용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단번에, 스스로를 보장하려는 필연성에서(la necessit dello assicurarsi) 행해질 때다. … 국가를 장악함에 있어 수권자는 그가 행할 필요가 있는 모든 가해행위를 검토해야 하며, 모든 가해행위를 일거에 저지름으로써 이를 매일 되풀이할 필요가 없게 하고, 이를 매일 되풀이하지 않음으로써 인민을 보장하고(assicurare gli uomini) 시혜를 베풀어 인민을 자기 편으로 끌어 들일 수 있다. … 이렇게 하지 않는 자는 누구나 손에 항상 칼을 쥐고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만일 새롭게 지속되는 가해 때문에 신민들이 그에게 안심하지 못한다면(assicurare di lui), 결코 스스로를 신민 위에 정초할 수 없을 것이다(fondarsi sopra li sua sudditi).46)
국가와 신민 양 편 모두에 대한 통치의 보장은 세 단계로 달성된다.47) 첫째, 시민형 군주는 잠재적 적수들(rivals)에 맞서 스스로를 보장해야 한다. 이 단계가 설립하는 것은 막스 베버(Max Weber)가 일정한 영토에 대한 "폭력의 독점"이라 부른 것으로, 근대 국가의 고유한 특성이다. 둘째, 시민형 군주는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 즉 귀족들에게서 나타나는 법-외부적이고 법-하부적인 지배하려는 욕망에서 인민을 보장해야 한다. 페팃의 용어로 말하자면, 이 단계는 사회의 "강자"(powerful)의 지배권력(dominium)으로부터의 보장을 제공한다. 세 번째 단계는 결정적이다. 시민형 군주는 군주 자체에 대해 신민들을 안심시킴으로써, 그들이 국가의 지지대로 행동하게 해야 한다. 페팃의 용어로 말하자면, 이 과업은 국가 자체의 통치권력(imperium)으로부터의 보장을 제공하는 것에 상응한다. 이 마지막 과업을 달성함으로써만 비로소 군주 또는 국가는 본연의 의미에서 "시민적"이 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는 사회의 개인들과 집단들 사이의 관계에 "시민인륜"(civility)을 가져 왔던 게 될 것이기(will have brought) 때문이다.48)
내가 지금까지 "비-지배적 간섭자"로서의 국가라는 페팃의 관념을 비교해 본 것은, 비-지배로서의 자유가 (특정 사회의 "귀족" 또는 "강자"의 지배권력(dominisum) 및 관료(office-holder)의 통치권력(imperium)이라는 양 쪽의 형태를 취하는) 자의적 간섭의 권력에서 보장하는 것에 불과한지 여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는데, 그 결과 이 같은 자유를 달성하고자 하는 국가는 적법한 국가 지배의 논리, 즉 마키아벨리의 시민형 군주의 논리에 정확히 맞아떨어지긴 하지만, 아직 공화국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필요조건에는 미달하는 것 같다.49)
내 생각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거둔 가장 중요한 성취는, 시민형 군주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과업, 즉 시민 사회(civil society, [문명 사회])의 창출은, 국가 편에서의 체계적 기만 없이는 달성될 수 없다는 점을 증명한 데 있다. 폭력의 독점을 행사하는 것은, 설사 지배권력(dominium)에 연루된 자들에게 강압을 가해 인민을 편들고자 할 때조차, 신민들을 전혀 안심시키지 못하는 국가의 "나쁜" 이미지를 주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마키아벨리는 근대 국가 또는 시민형 군주가 신민을 안심시킬 가망이 있는 "선"의 외양을 스스로 구축하기 위해 "가장(假裝)과 은폐(隱蔽)"(simulation and dissimulation)50)의 경로에 진입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근대 국가는 일찍이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적 장치'라고 불렀던 것이 되어야만 한다.51)
근대 국가의 '이데올로기적' 구성요소는, 그것이 행사하는 폭력을 신민들을 위한 권리(right, [정의, 법]), 법적 권력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역량에 준거한다. 권리라는 근대적 언어는 사실 통치의 보장을 달성하기 위해 고안된 국가 중심적 정치와 분리할 수 없다.52) 도발적으로 제기하자면, "권리를 진지하게 여기는" 것에 가장 커다란 이해관계를 갖는 것은 바로 시민형 군주인데, 왜냐하면 오로지 이 같은 형태 안에서만 그것은, 자기 자신과 신민 모두에게 자신의 통치를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처음 두 단계에 행사되는 국가의 권력 독점이 권리의 형태 그것[권리]의 확립이 "시민 사회"를 설립한다 로 스스로를 위장하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관한 잊을 수 없는 예증을 제시한다.
나중에 공작[체자레 보르지아]은 이 같은 과도한 귄위(authority, [당국])[귀족을 폭력적으로 억압한 "메세르 데 오르코(Messer de Orco)의 친위대(kingly arms)]가 반감을 살 염려가 있기 때문에 필수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그는 그 지역의 중심부에 가장 뛰어난 재판장이 관장하는 시민 법정을 설치하고, 각 도시의 대표자를 배치했다. … [그리고] 인민들의 반감을 일소시키고 그들을 완전히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이제껏 어떤 잔혹이 자행됐다면 이는 공작이 시킨 일이 아니라 그의 대행자의 모진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적절한 기회를 포착하여 어느 날 아침 공작은 두 토막이 난 오르코를, 형을 집행한 나무토막 및 피투성이 칼과 함께 체세나 광장에 전시했다. 이 참혹한 광경을 본 인민들은 만족을 느끼는 동시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53)
보르지아의 "광경"(spectacle)은 인민과 국가 사이의 상호 보장의 목표가 권리의 형태를 취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인민들에게 교통하려는 의도를 갖는다.54) 바로 여기에서, 국가를 정초하는 절정의 순간에, 근대적인 정치적 대의제의 온갖 책략을 동반하는 시민적인 최고 법정을 보르지아가 설립하는 것("그리하여 그는 그 지역의 중심부에 가장 뛰어난 재판장이 관장하는 시민 법정을 설치하고, 각 도시의 대표자를 배치했다")의 상징적 중요성이 나온다.
근대 국가에서 상호 보장은 여러 권리 중 하나가 아니라, 모든 권리의 요체다. 그것은 권리 그 자체의 의미다. 근대 국가에서 권리와 보장 사이의 연관에 관해, 밀은 계발적인 정식화를 제시한다.
나는 줄곧, 피해자에게 머물고 피해로 침해당한(violated) 권리라는 관념을 … 다른 두 요소들이 스스로의 외피로 삼는 형태들 중 하나로 간주해 왔다. 이 요소들은 한 편으로 어떤 지정가능한 인격이나 인격들에 대한 손해이며, 다른 한 편으로 처벌에 대한 요구다. … 이 두 가지 것들은, 권리의 침해를 말할 때 우리가 의미하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55)
(단지 홉스와 루소, 칸트를 따를 뿐인) 밀의 관념이란, 누구든 개인들의 인격(즉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그들의 동일성)을 침해함으로써 그들에게 해를 입히는 자들에 대해서 사회가 국가를 통해 모종의 폭력(이나 손해)을 반드시 행사해야 한다는 발상이 권리라는 관념 자체에 속한다는 것이다. 근대적 권리가 근대적 권리인 것은, (사적으로) 강압하는 자를 (공적으로) 강압할 필요, 폭력을 사용하는 자를 침해할 필요 덕분이다. 이 권리의 폭력을 밀은 "법의 힘"이라고 명명했다. 권리와 폭력에 대한 침해(violation of violence, [폭력에 대한 폭력])가 맺는 이 같은 본질적 관계는 데 오르코의 폭력적인 친위대에 대한 보르지아 자신의 침해(violation, 폭력)에 의해 상연되는데(칸은 보다 우아하게 "폭력의 극적 전시"라고 말한다), 전자는 관료의 통치권력(imperim)의 전형을 보여 주는 것으로, 만일 신민이 국가에 대해 안심하려면, 시민형 군주는 신민의 편에 서서 [통치권으로부터 신민의 안전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공적 공간에서 피투성이 칼 옆에 전시된 데 오르코의 절단된 신체는, 폭력이 법치 국가(state of right, [권리/정의를 보장하는 국가/상태])56)에 의해 시민적 정치체(body politic)에서 잘려 나갈 것이라는 의미를 상징한다.
그러나 밀의 정식화에서는 가려지고, 마키아벨리의 텍스트에서는 드러나는 것은, (국가가 행사할 "권리를 갖는" 폭력인) 권리의 폭력이 전(前)-합법적인(pre-rightful, [권리/정의를 아직 공인받기 이전의]) 폭력의 사용을 전제해야만 스스로에게 "권리를 부여할 수 있다"(right itself)는 점, 즉 애초에 "권리"를 낳을 수 있고 이 "권리"의 보호를 위해 국가가 폭력의 이용을 적법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57) 왜냐하면 "권리"의 출현은 전-합법적인 폭력이 스스로에 반해 전도(顚倒)되는 것과 일치하거나 또는 그것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인데, 이는 이중적이다. 첫째, 시민형 군주가 폭력의 독점을 획득하고 정당화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봉건 귀족에 대해 수행하는 전-합법적인 폭력적 파괴를 통해서(즉 이 사례에서는, 데 오르코의 "친위대"가 수행한 파괴). 둘째, 국가가 전-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한에서 국가 자체에 대해 수행되는 전-합법적인 폭력적 파괴를 통해서(즉 데 오르코의 처형). 국가의 전-합법적인 폭력을, 국가의 "합법적인 폭력"으로 뒷받침되는 신민들의 권리 형태로 "가장하고 은폐"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장치"로서 국가에 특징적인 "(잘 사용된) 잔혹극"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시민형 군주가 폭력을 권리로 어떻게든 변형하려 드는데도, 근대 권리의 설립에 선행하는 전-합법적인 폭력의 흔적은 권리 체계 안에서 완전히 삭제되지 않는다. 이 흔적의 끈질김은, 근대 법치 국가(state of right)의 두 가지 연관된 특색에서 엿볼 수 있다. 첫째, 비록 근대 법치 국가가 봉건적 귀족성의 파괴를 요구한다손 치더라도, 국가는 지배에 대한 "귀족적" 욕망의 파괴를 함의할 수는 없는데, 왜냐하면 이것이 없다면 인민들은 더 이상 국가의 보호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권리 체계는 지배하려는 욕망을 "사적 영역"으로 전환하며, 이 한도 안에서는 모든 이들에게 이 욕망의 추구를 허용한다.(이는 인민들의 기묘한 "귀족화"(ennobling)와 그들의 비-지배에 대한 욕망의 부패를 설명해 준다.) 둘째, 국가는 전-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할 역량을 항상 수중에 유지하는데, 홉스는 리바이어던(Leviathan)이 신민과 계약하도록 두는 것을 거부하고, 그것이 전-합법적인 폭력의 사용에 대한 자연권을 유지하는 시민 사회 안의 유일한 동작주(agent)로 남게 함으로써 이 점을 분명히 한 최초의 인물이다.
『군주론』에서 시민형 군주의 분석은, 『로마사 논고』 Ⅰ, 16~18에 나오는 부패와 군주의 도래[확인 요]에 관한 논의와 함께, 근대 국가 또는 시민형 군주가 정의상 "[비-지배로서의] 자유를 되찾으려는 인민적 욕망"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점을 더할 나위 없이 분명하게 만든다. 평등한 개인적 자유들에 대한 권리를 인정함으로써 국가는 "명령받거나 억압받지 않으려는" 요구, 인민으로부터 오는 비-지배의 요구를, 마치 그것이 법 앞의 부정적 자유와 형식적 평등에 대한 요구인 것처럼 다룬다. 부정적 자유는 간섭받지 않는 자유로서, 국가가 비-통치의 부정성(negativity)을 부정하는 형태인데, 그 목적은 그것을 하나의 형태, 곧 권리의 형태 국가가 자신의 법적 지배의 도구를 통해서, 즉 "보편적 보장이 포함되는 질서와 법을 만듦으로써" 그것을 보증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로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민들은 그[시민형 군주]가 우발적으로 이 같은 법을 어기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된다."58) 법 앞의 형식적 평등을 산출하는 것은 중심적 전략인데, 이를 통해 인민에게 비-통치에 대한 욕망의 유사물(simulacrum)을 제공함으로써 국가는 스스로 인민들의 지지를 보장한다. 이 유사물은 시민적 자유와 다르지 않으며, 이를 보장함으로써 국가는 시민 사회의 시민형 군주로 확립된다.59) 근대 공화주의 정치 사상 대부분이, 이 권리들을 보장하는 것이 시민인륜을 달성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수불가결하다는 점을 동시에 주장하면서도, 비-지배로서의 자유에 대한 자신의 담론을 개인적 권리에 대한 담론으로 환원하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개인적인 시민적 권리와 "시민형 군주"로서의 근대 국가 간의 이 같은 내적 관계 때문일 것이다.
근대 공화국, 또는 '국가 내부에서 국가를 넘어서는'
근대 국가와 그 시민 사회를 정초하는 기획과는 대조적으로, 근대 공화주의 정치는,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통치의 보장이 일차적 관심사가 아니라, 차라리 자유를 욕망하는 인민들에게 권력과 목소리를 부여함으로써 비-통치로서의 자유를 정치적 삶에 도입한다는 기획을 갖는다. 정치적 삶에 진입하기 위해서 인민들은 단지 수동적인 법적 기체(subject, [신민]), 국가의 법적 권력의 기초로 기능하는 것을 멈춰야 하며, 통치 업무에 의문을 제기하는 권력을 지닌, 따라서 이 업무를 안전하지 않고(unsafe) 발본적으로 분쟁가능한 사안으로 만들 수 있는, 국가에 저항하는 능동적인 정치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
마키아벨리가 볼 때, "자유에 유리하게 만들어진 법은 귀족과 인민의 불일치(disunion)에서 비롯한다."60) 법치가 공화주의적이 되는 것은 그것이 인민 권력에 의거하는 한에서일 뿐이다. 여기서 권력은 비-지배에 대한 욕망의 담지자로서의 인민들이 그것을 통해 국가적 삶에 참여하면서, 적법한 지배의 실행들 곁에서 그를 거스르는 행동과 실천, 그리고 제도와 관련되는데, 전통적으로 [적법한 지배를 실행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은 (입법 권력으로서의) '원로원'의 심의와 (행정 권력으로서의) '군주'(monarch)의 명령이었다. 그렇다면 공화주의적 법치는, 오직 통치의 심급들과 비-지배에 대한 요구 간의 적대가 법적 지배의 틀 안에 기입되는 조건 하에서만 실존한다.
어떻게 인민의 입장이, 비-지배의 욕망을 타협하여 이를 부정적 자유에 대한 욕망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정치적으로 설립될 수 있는가? 만일 "인민 권력"이 인민주의적이거나 심지어 민주주의적인 통치 형태와 동일화될 수 없다면, 그것의 의미는 무엇인가?61) 단순히 국가의 통치에 그치지 않는 정치의 공간은 무엇인가? 내 생각에는, 이것들이 바로 『로마사 논고』가 제기한 근본적인 질문들이다. 나는 근대 공화주의는 물론 그 혁명적 변종들의 경우 바로 이 질문들에 대해 제시된 일련의 응답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마키아벨리가 제시한 답은 독창적이며, 근대 입헌주의의 발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즉 인민이 정치적 삶에 진입하는 것은 특수한 제도들을 통해서인데, 이 제도들은 국가 본연의 활동, 곧 통치의 집행(administration, [행정])을 비판한다 즉 그것에 내적 견제(check)를 제공한다. 이 같은 비판 제도의 일반적 정식은 권력 분립(separation of powers)이지만, 이는 오직 그것이 진정한 견제와 균형의 체계로 이해되고 실행되는 한에서, 곧 국가 전체를 인민에 대해서 견제 상태에 놓는다는 관점에서 이 체계에 의해 "정부의 한 부문이 다른 부문의 권력에 저항하고 거스르기 위해 그것에 상당히 능동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을 수 있을" 때에 한에서다.62)
이 같은 정치적 분쟁의 제도들, 또는 대항-제도들(counter-institutions)은 국가를 분할하여 비-지배의 요구가 발언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다.63) 마키아벨리는 일련의 충격적인 은유를 제시하여 로마가 공화국이 된 특유한 '형태'를 예시한다. 로마에서 왕을 추방함으로써, 브루투스(Brutus)는 군주제적 정치체의 '머리'를 베어 내고, 이로써 지배(archy)가 더 이상 유일한(mono) 정치적 쟁점이 되지 않을 것임을 신호했다. 인민 및 인민의 통치에 대한 불화를 위한 장소가 정치적 삶 안에 열린 채로 남겨 진다. 공화국이 시작되는 것은 인민들을 정치적 삶으로 진입시키는 대항-제도들, 예컨대 호민관(護民官, tribunate) 등에 의해 일단 이 같은 불화가 대표(represent, [재현/상연])되고, 이로써 로마에게 또 다른 "심장"(라틴어로 cor, cordis, [그런 점에서 보면 'dis-cord'는 서로 다른 심장들이 어긋나는 것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을 주어 원로원의 나머지 심장과 항상 불협화하고(dis-cordantly) 결코 화합하여(in unison) 뛰지 않게 만들 때다.64) 머리가 없는(acephalic, 無頭的) 정치체의 이 두 심장은 공화국에서 노는 두 개의 욕망, 두 개의 목소리를 상징한다. 이 같은 불화(dissensus)는 정치적 삶의 비-일의성(non-univocity), 공화주의적인 정치적 삶이 국가의 선("공공선"(common good))을 그 내적 목적으로 갖는 것이 아니라 실효적인 '공적 자유'의 실행에 있다는 사실을 설명해 준다.65)
로마 공화국 역사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재구성은, 리비우스(Livy), 살루스티우스(Sallust), 그리고 키케로(Cicero)의 영향 하에 [로마 공화국 역사를] 친(親)원로원적으로 읽는 흐름을 체계적으로 거스르는 것으로, 이는 국가 안에서 인민의 비-지배에 대한 욕망을 대표하는 대항-제도의 역할을 강조한다.66) 이 같은 대항-제도의 모범적(paradigmatic) 전형은 호민관이다. 마키아벨리 이전까지 호민관의 창설은 전통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유래하는 혼합 통치(mixed government)의 이상이라는 견지에서 이해되었다. 마키아벨리는 이 같은 이해를 고려하되 이를 넘어서면서, "인민 행정관에게 통치의 몫을 주는 것 외에도 [호민관은] 로마 자유의 수호자로 구성(constitute)되었다"67)고 주장한다. 여기서 정치적 자유는 국가의 통치를 집행하는 활동과 분명하게 구별된다. 국가의 시각에서 보자면, 호민관은 인민의 일부를 통치의 집행에 추가함으로써 단지 국가 형태를 확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인민의 시각에서 보면 호민관은 비-통치로서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국가의 법적 통치 기계를 분해한 것이다. 호민관은 다른 모든 대항-제도들처럼 지배에 대한 저항을 법치를 관리하는 국가 장치 안에 기입한다. 호민관의 "힘"(force)은 본질적으로 법이나 행정관의 통치, 즉 국가의 통치권력(imperium)의 통치에 대한 요구를 거부(veto)할 수 있는 권력에 있다. 폰 프릿츠(Karl von Fritz)가 로마 공화국의 이 제도를 분석하면서 보여 주었듯, "호민관이 가진 거부권의 증가는 … 공동체에 부정적 권력들의 과잉을 허용했는데, 그에 견줄 만 한 것은 역사상 다른 어떤 국가에서도 거의 발견할 수 없을 정도다."68) 만일 국가 제도가 국가 자체를 비-지배를 추구하도록 "강제"(force)하고자 한다면, 이는 오직 "부정적 권력의 과잉"이라는 형태 아래서만 가능하다. 호민관과 다른 대항-제도들을 통해 정치 형태는 그 자신에 대한 부정을 실효적으로 내부화하고 자기-견제적이 된다. 이 같은 대항-제도들은 합헌성(constitutionality)의 한계에 위치하면서, 이 한계들을 탈주선(lines of flight)으로 다시 긋는 데 기여한다.69) 엠마뉴엘 레비나스(Emanuel Levinas)의 힘 있는 표현을 사용하자면, 그것들은 '국가 내부에서 국가를 넘어'(au-del de l' tat dans l' tat)선다.70) 대항-제도들은 정치적 삶의 공화주의적 양식을 구성하는 비-지배로서의 자유의 목소리와 법치의 목소리 사이의 근본적 불화를 표현한다.
정치적 평등, 시민적 평등, 그리고 혁명의 문제
국가의 대항-제도들은 적법한 지배와의 불화를 정치 형태 안으로 내부화한다. 국가에 대한 그것들의 비판은 국가를 자기 자신에 대해 거역하게 하는 데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국가 제도들로 머무는 한에서, 대항-제도들은 국가에 대해 외부적 입장에서 국가 전체와 다툴 수는 없다. 하지만 인민 권력 안에는 국가 전체와 다투고, 대항-제도들이 인민에게 부여한 국가 안에서의 참여에서 스스로를 철수시킴으로써, 근대 국가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안정적 지지대를 제거하는 힘이 남아 있다. 이러한 일이 발생할 때, 근대 공화주의 전통은 혁명이라고 말한다.71)
이 전통에서 비판과 혁명의 구별은 다음과 같은 문제에 대응한다. (법 제정의 공평함, 법 아래서 평등한 보호, 그리고 정당한 법 절차(due process, [미국 헌법 제 5조, 제 14조에 나오는 표현])로 이해되는) 법 앞의 평등을 국가가 아무리 효과적으로 유지한다 하더라도, 이 같은 평등은 질서와 법의 변치 않는 적용이 불평등과 지배의 효과를 낳는 것을 방지할 수 없다. 크리스토퍼 힐(Christopher Hill)의 작업이 보여주듯, 이는 근대 법의 발전에서 상당히 일찍 직관되었는데, 왜냐하면 법 앞의 평등이 개인적 자유에 대한 권리(예컨대 사적 소유에 대한 권리)로 정의되고, 이 같은 권리가 경쟁적인 것에서부터 착취적이고 차별적인 것에 이르는 실천들을 재가(裁可)하기 때문에, 배타적이고 엄격하게 형식적 평등을 고수하는 것은 체계적으로 승자와 패자를 낳는 결과를 갖기 때문이다.72) 승리의 전리품이 삶의 재생산 조건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법 앞의 형식적 평등으로 보호받는 실질적 불평등은 지배와 예속의 새로운 관계를 뒷받침하는데, 이는 계급차별주의나 인종주의, 성차별주의에서 초래되는 이른바 "하위적"(subaltern) 인구들이 시민 사회 내부에 계속 실존한다는 점으로 분명해진다.73)
게다가 법 앞의 평등을 정의하는 형식적 권리들은 법에 종속된 이들과 법치 자체 사이의 불평등을 성립시킨다, 즉 이 권리들은 문제삼고 위반하며 새로운 규칙(rule)들을 창안(author)하는 능력보다는, 규칙에 대한 순응과 복종의 습관이라는 특징을 갖는 주체성의 형태를 불러일으킨다. 법적 소송지상주의(litigiousness)의 증가는 법적 통치 체계에 대한 정치적 순응주의의 증가에 상응한다. 하버마스가 정확하게 지적하듯, "기본권이 우리가 오늘날 법적 주체의 사적 자율성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증하는 것은, 오직 이 주체들이 서로를 법의 수신자(addressee)라는 역할로 상호인정하고, 이와 함께 서로에게 지위 이것에 기초하여 그들은 권리를 주장할 수 있고 서로 대립하게 된다 를 부여한다는 의미에서일 뿐이다."74) 그러므로 법 앞의 평등을 정의하는 권리들은, 법의 "수신자"로서의 그들에게 적용되는 법을 "창안하는 자들"(authors)로서 만인이 [갖는] 평등을 도저히 확립할 수 없다. 그러나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법을 창안함에 있어서의 평등이 없다면 "정치적 타율성(他律性, heteronomy)이라는 특징을 갖는 '법치'의 온정주의를 제거[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법의 수신자들이 법질서가 자신들에 의해 창출됐음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은, 오직 정치적으로 자율적인 입법 행위에 참여하는 한에서다."75) 비-지배로서의 자유의 이상은 만인의 법 앞의 평등을 보장함으로써 개인들 간의 주종 관계를 제거하는 것에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이 이상은, 만인이 저 합법적(legal) 통치 체계, 저 적법한 국가(state, [상태]) 각자가 다른 개인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보장하는 의 평등한 "노예들"이 되게 할 가능성 역시 제거할 필요가 있다.
마키아벨리는 법의 표면 아래에서 발생하는 불평등들을 시정하기 위해 법 앞의 형식적 평등 즉 시민적 평등을, 그 앞에서 시민들이 형식적으로 평등한 법을 창안할 수 있는 만인의 평등 즉 정치적 평등과 구별하되, 그에 응답할 수 있게 만들 것을 제안한다. 비-지배로서의 자유는 시민적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평등을 요구한다. 이 근본적 지점에 관하여 대부분의 후대 공화주의 정치 사상가들은 마키아벨리를 좇는다. 이 때문에 예를 들어 트렌차드(John Trenchard)는 사적 자율성과 공적 자율성의 내적 관계를 확인하면서, "어떤 사람도 스스로 만든 법을 위반하지 않은 이상 투옥될 수 없다."76)라고 말한다. 루소는 간결하게 "인민은, 그가 법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법의 창안자여야 한다."77)고 말한다.
일단 양자의 차이가 확립된 다음에는, 혁명의 문제는, 법을 창안하는 정치적 평등은 법 아래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여부, 그것은 시민적 평등의 일종인가 아닌가 여부의 문제를 중심으로 한다. 구성/입헌된 법은 법적 주체를 단순한 "수신자"와 대립되는 법의 "창안자"로 전환시킬 수 있는가? 누군가를 법의 창안권(authorship)을 행사하는 위치에 놓는 자유와 권력은, 구성/입헌된 법에 의해 정치적 권리의 형태로 주어질 수 있는가? 근대 공화주의의 중요한 조류들의 경우,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는 것 같다. 이 대답 배후의 일반적 가정은, 법의 "창안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입법자"(legislator)가 되어야 하고, 입법행위가 법치의 요구 조건 아래 있는 법적으로 설립된 실천이기 때문에, 법은 오직 법의 매개 안에서,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만 "창안"될 수 있다는 것이다.78) 하버마스는 이 점을 이렇게 말한다. "시민들이 공동입법자의 역할을 점할 때 그들은 매개 오직 그 안에서만 그들의 자율성이 실현될 수 있다 를 더 이상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다. 그들이 입법에 참여하는 것은 법적 주체로서다. 그들이 어떤 언어를 사용하게 될지 결정하는 것은 더 이상 그들의 재량이 아니다. 자기입법이라는 민주적 관념은 반드시 법 자체의 매개를 통해서 그 타당성을 획득해야 한다."79) 이 시각에서 보자면, 인민이 권력을 갖는 것은 입법 과정에의 참여라는 그들의 "정치적인 시민적 권리"를 행사하는 한에서다. 이 정치적 권리가 시민적 권리의 일종이며 따라서 법치에 속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이는 "사적인 시민적 권리"를 요구하는데 이것이 정의하는 것은 "개인적 권리의 담지자로서 자발적인 시민의 연합에 속하고 필요할 경우 실효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법적 인격(legal person)의 지위다. 법적 인격 일반의 사적 자율성 없이는 어떤 법도 존재하지 않는다."80) 만일 인민의 구성/입헌 권력이 오로지 법치가 보장하는 정치적인 시민적 권리의 형태로만 존재할 수 있다면, 이 같은 권력은 단지 구성/입헌된 법의(최종심에서 합법적 구성/입헌의) 가정일 수 있을 뿐이며, 그것에 대해 외부로부터 다툴 수 없다. 결국 법의 "창안권"은 구성/입헌된 법을 변경하거나, 심지어 합법적 헌법(legal constitution)을 수정할 권력은 포함하겠지만, 법적 통치 체계를 혁명화할 권력은 포함하지 않는다.
여러 사람 중에서도, 마키아벨리와 스피노자, 그리고 루소에게서, 정치적 평등이 반드시 법 아래 놓여야 한다는 주장을 문제삼는 다른 논증의 윤곽을 그려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주장은 법의 "권위"와 법의 "창안권"이라는 문제를 혼동하기 때문이다. 인민 권력과 그 정치적 평등이 법을 "창안"하는 것은, 입법자의 관직으로서의 입법 권력이 법을 "만드는"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니다. 후자가 법을 만드는 것은 "법 자체의 매개를 통해서"이며, 법이 "권위를 갖는"(authoritative)다는 것을 전제하는데, 이는 법치나 법 앞의 평등의 원리에 부합하여 입법해야만 한다는 것은 별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입법권은 일차적으로 "시민적 권리"이며, 좀 더 한정하자면 "정치적인" [시민적 권리다.] 그러나 정확하게 이해하면 이 점은 법의 "권위"가 법 자체에 의해서 결정될 뿐이라는 앞서의 직관을 단지 상세하게 설명할 뿐이다. 법적 권위의 본질에 관한 이 같은 직관은 다른 직관과 분리될 필요가 있는데, 그에 따르자면 인민 권력이 표현하는 것은, 입법 활동과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의미에서 법을 "만들"거나 "창안"할 수 있는, 시민적이 아닌, 정치적 평등이다. 혁명적인 인민 권력은 법에 기여할(make for) 수는 있지만(그것은 구성/입헌 권력이다), 그러나 입법할 수는 없다.(그것은 구성/입헌된 권력이 아니다.)
정치적 평등의 법-외부적 차원에 관해 사고하는 한 가지 방법은, 법치의 조건에 대한 분석에서 도출된다. 내가 위에서 주장했듯, 법은 법 자체만을 수단으로 해서는 결코 그 상황을 통치하는 데 이를 수 없으며, 오직 지배 관계를 수반하는 통치의 다양한 실천들을 통해야만 한다. 법이 스스로를 이 같은 위치에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힘의 불평등 그것의 조절이 허용하고 뒷받침하는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법을 창안하는 정치적 평등은 쟁취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인정 투쟁에서 힘 관계의 역전을 필요로 한다. 마키아벨리가 말하듯 "사람들의 기록을 검토함으로써" "어떤 공동체에서든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자주 점검해 보는 것이" 필수적이다.81)
}} 이 같은 정치적 평등을 위한 투쟁의 원리는, 불평등한 것은 평등하게 되게 할 것이며, 평등한 것은 불평등하게 되게 할 것이라는 것이다.82) 법을 창안하는 정치적 평등은 결코 "시민적" 과정의 결과가 아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자유와 독립을 위한 이 같은 투쟁은 항상 폭력적(이며 때로는 비-폭력적)인 박탈(expropriation)의 요소를 동반해 왔다.83)
만일 정치적 정의에 대한 고전적 이해, 곧 누구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평등한 것은 평등하게, 불평등한 것은 불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논리에 따르자면,84) 정치적 평등을 위한 근대 공화주의의 투쟁은 불의하게(unjust)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고전적 이해가 (평등하게, 즉 법에 따라 대우받을 필요가 있는 평등한 이들인) "시민"과 (불평등하게, 즉 법에 준거하지 않고 대우받을 필요가 있는 불평등한 이들인) "노예" 간의 근원적이고 필수적인 분할을 전제하고 오직 그 맥락 안에서만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반면 마키아벨리 및 근대 공화주의 전통에서 정치적 평등을 위한 투쟁은 다름 아닌 "시민"과 "노예"의 분할을 주제화하고 폐지하려는 의도를 가진다. (노예, 식민지인, 배제된 자 등) 이전에 "불평등한 이"들에 의해 (시민, 식민지배자, 특권세력 등) 이전의 "평등한 이들"을 박탈하는 순간/계기(moment), 즉 "불평등한 이"가 "평등한 이"를 대체하는 또 그 역의 현실적 가능성은, 모든 정치적 질서가 필연적으로 부추기는 경제적이고 사회적이며 문화적인 불평등에 선행하는 만인의 보편적 평등에 대한 상호인정만을 겨냥한다. 이 때문에 정치적 평등을 위한 혁명적 투쟁은 스스로를 완전히 전도하지 않고서는 정치 질서나 합법적 지배의 원리(原理, principle)가 될 수 없다. 공화주의적인 혁명은 순간/계기(moment), 유한하고 되풀이 (불)가능한(iterable)85) 순간/계기 이상은 결코 될 수 없다. 만일 그것이 영속성의 유혹에 굴복한다면, 만일 비-통치의 "국가/상태"(state)가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스스로와 모순을 겪게 될 것이며, 인민 권력도 유지하지 못하고 법치도 설립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정치적 평등을 위한 순간적/계기적 투쟁에서 체험되는 만인의 보편적 평등은, 근대 법이 법 앞에서 선 만인을 평등하게 대우할 수 있기 위한 조건으로 전제하는 평등이다. 법이 각자를 "법 앞에 평등한 이들"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법이 출현하기 위해서는, 만인의 평등이 법에 선행하여(prior) 인정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는 사실 법이, 그 힘과 독립적으로 그것이 법이라는 이유만으로, 만인을 장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한 때 박탈했다가 이제는 박탈당하는 이들, 마찬가지로 한 때는 박탈당했다가 이제는 박탈하는 이들 양 쪽 모두를 장악할 수 있는. 법 "앞의"(before) 정치적 평등이 법 아래의 시민적 평등을 만든다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다.
마키아벨리, 그리고 또한 스피노자나 루소처럼, 자신의 공화주의적 통찰을 발전시켰던 이들에게 있어서, 법을 만드는 만인의 정치적 평등은 그 자체로는 법적 또는 헌법적으로 예정될 수 없다. 그것은 합법적 질서와 정치 형태를, 그것 외부에 머무는 기원에 개방하는 평등이다. 마키아벨리가 혁명적 사건을 '시초로의 회귀'(return to beginnings)라고 지칭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주어진 법적이고 정치적인 질서를 그 시초로 회귀시키는 운동은 혁명의 운동이다. 혁명에서 법적 질서는 법-외부적인 시초로 되돌려진다. 아렌트가 지적하듯, "새로운 정부를 구성/입헌하기 위해 모인 이들 자체는 위헌적(unconstitutional)이다, 즉 그들에게는 그들이 나서서 이루고자 하는 것을 할 권위가 없다."86) 아렌트가 의미하는 것은 혁명에서 인민들은 권력은 갖지만 권위는 결여한다는 것이다. 구성/입헌 권력은 법적 권위, 구성/입헌된 권력의 토대가 아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가 말하듯, 이 같은 시초로의 회귀 또는 혁명을 통해 "만약 이들 공화국이 스스로를 갱신하지 않는다면 지속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87)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인민 권력에서 발견되는 외-합법성(extra-legality), 권위의 부재는. 법의 권위와 모순되기는커녕. 그것의 가장 중요한 자원임에 틀림없다. 인민 권력과 법의 권위 사이의 차이를 지키는 것은 공화주의적인 정치적 삶에 특징적인 자유와 질서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중심적 필요조건이다.
[나는 혁명적인 "인민 권력"의 순간적/계기적이지만 되풀이 (불)가능한 회귀를 요청하기 위해서 "법의 권위"가 어떨 필요가 있는지에 관한 논의는 다음 기회로 남겨두고자 한다.]
1) Pettit, Republicanism, 24.본문으로
2) 위의 책, 31.본문으로
3) 위의 책.본문으로
4) 위의 책, 36.본문으로
5) Arendt, "On Violence," 139.[국역: 이후, 1999]본문으로
6) 제퍼슨(Thomas Jefferson)의 Virginia Declaration of Rights의 2조에서처럼, “모든 권력은 인민에게 귀속되며, 따라서 인민에게서 유래한다.” 인민 권력은 개인을 “평등하게 자유롭고 독립적”(1조)이라고 정의한 데서 직접 따라 나온다.본문으로
7) Hannah Arendt, On Revolution (New York: Penguin, 1963), 30.[국역: 한길사, 2004] 아렌트는 이소노미아(isonomia, 시민 동권(同權))라는 그리스적 이상을 번역하기 위해 “비-통치”(no-rule)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낸다. 그녀가 해석하는 것처럼, 이 용어는 본래 “통치하려는 것도 통치받으려는 것도 아닌”(위의 책, 285) 욕망을 의미했다. 다른 곳에서 그녀는 “통치자와 피통치자가 평등한, 즉 사실상 통치권(rulership)의 원리가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정치체”(위의 책, 172)에 관해 말한다.본문으로
8) Arisotle, Politics 1287a15.[국역: 박영사, 2006]본문으로
9) 근대 공화주의가 “혁명적 공화주의”인 이유에 관한 좋은 논의로는, David Wootton, ed. Repulicanism, liberty, and commercial society, 1649~1776 (Standford: Standford University Press, 1994) 기고문들을 보라.본문으로
10) 하버마스는 이 긴장을 다음과 같이 정식화한다. “근대 자연법 이론들은 적법성(legitimation) 문제에 답하기 위해, 한 편으로 인민 주권 원리에, 다른 한 편으로 인권이 보장하는 법치에 준거해 왔다. … 확실히 정치 철학은 인민 주권과 인권 사이의 균형을 실질적으로는 결코 발견하지 못했다. … 양 쪽 관념이 갖는 직관적으로 그럴 듯한 공근원성(共根源性, co-originality)은 중도포기된다. J?rgen Habermas, "On the Internal Relation between Law and Democracy," in The Inclusion of the Other (Cambridge: MIT Press, 2001), 258.본문으로
11) Pettit, 앞의 책, 36.본문으로
12) Ronald Dworkin, Law's Empire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86), 110~111.[국역: 아카넷, 2004] 이 책의 제목이 독자들에게 일으킬 법한 생각에도 불구하고, 드워킨이 이 책 어디에서도 “제국”이라는 개념, 즉 “법의 힘”, “통치”의 문제를 “법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와 연결시켜 논하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해 보면 재미있다. 이 제목 자체는 해링턴(James Harrington)의 “인간이 아닌 법의 제국”에 출전을 둔다.(Harrington, Commonwealth of Oceana, 20)본문으로
13) 내가 사용하는 것은 하버마스의 어휘인데, 그는 법치를 사고함에 있어 사실성(facticity)과 타당성(validity)의 내적 관계의 결정적 중요성을 강조한 가장 최근의 인물이다. 하버마스가 말하는 것은 “사실성과 타당성 사이의 긴장인데 … [이는] 평균적인 법 수용을 보장하는 법의 강압적 힘과, 통치 자체의 적법성 주장을 최초에 옹호하는 … 자기입법이라는 관념 사이의 관계에서 나타난다.”(Habermas, Between Facts and Norms, 39.[국역: 나남, 2000])본문으로
14) Michael Oakshott, On Human Conduct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75), 143.본문으로
15) 위의 책, 141.본문으로
16) 스피노자가 말하듯, “협약(agreement)의 타당성은 그 유용성에 의존하거니와, 그것이 없으면 협약은 자동 무효가 된다. 따라서, 만일 다른 이가 약속을 어겼을 때 그가 이로움보다 더 많은 해로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점을 확실히 하려는 노력을 동시에 기울이지 않으면서, 그가 자신의 약속을 영원히 지켜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이 점이 특히 적절한 것은 국가의 구성/입헌을 고려할 때다. … 따라서, 비록 인간들이 모든 성실함의 표지를 동원해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맹세한다손 치더라도, 그 약속이 다른 무언가로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다른 이의 선의를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Spinoza, Theological-Political Treatise [Cambridge: Hackett, 2001], ch. 16, 176)본문으로
17) 물론 의심스러운 가정이다. 법이 스스로를, 그것을 통해 폭력과 전쟁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해석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사실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법을 해석할 것을 주장하기도 한 최초의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에게서 전쟁과 자유의 관계라는 복잡한 질문을 여기서 논할 수는 없다. 전쟁과 폭력의 추구에 법이 어떻게 기능적인지를 보여주는 다른 논의로는, Walter Benjamin, "Critique of Violence," in Selected Writings. Volume Ⅰ 1913~1926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96), 236~252.[국역: 자크 데리다, 『법의 힘』, 문학과지성사, 2004 中 부록(139~169)]; 그리고 Michel Foucault, "Il faut d?fendre la soci?t?" (Paris: Gallimard, 1998).[국역: 동문선, 1998]본문으로
18) 예를 들어, 심판이 하는 것처럼, 경기 중 축구 규칙의 적용을 확인하는 것은, 축구 경기를 하는 것, 즉 축구 규칙을 따르는 것과 같지 않다. 축구 규칙을 적용할 때 심판들이 따르는 (축구 규칙 이외의) 다른 규칙 체계가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축구 심판들을 위한 이 “게임의 규칙”은 이를 다루는 별도의 심판을 필요로 할 것이고, 이는 또 다른 규칙 체계에 준거할 것이어서, 무한퇴행에 빠지게 된다. 또 다른 가능성은 심판들이 다른 규칙(lex, 렉스, 법률로서의 법) 체계가 아니라, 무엇이 “옳”고 “정의로”우며 “선한”가(jus, 유스, 정의로서의 법)의 개념 체계에 호소함으로써 판정(ruling)을 내리는 것이다. 이에 대해 나올 수 있는 대답은, 이 같은 개념이 통치(ruling)의 특성을 변경하겠지만, 통치라는 활동의 종류를 정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통치가 정의라는 문제와 내적인 관계를 가질 수는 있겠지만, 이는 통치와 규칙을 따르는 것 사이의 원리적 구별에 반하지 않는다. 덧붙여, 통치의 법(jus)이 그것을 뒷받침하는 법률(lex)(게임의 규칙)에 대해 내적인가 아니면 외적인가 여부에 관한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통치와 법률(lex)이 이질적이라는 점을 받아들인 다음에야 비로소 결정지을 수 있다.본문으로
19) Carl Schmitt, Political Theology (Cambridge: MIT Press, 1988), 13.본문으로
20) 위의 책.본문으로
21) “어떤 형태의 질서도, 어떤 합리적인 적법성이나 합법성도 보호와 복종 없이 실존할 수 없다. ‘보호한다 고로 복종한다’(protego, ergo obligo)는 국가의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다. 이 문장을 체계적으로 깨닫지 못하는 정치 이론은 부적합한 단편에 머문다. 홉스는 이를 가리켜 … 그의 Leviathan[국역: 삼성출판사, 1990]의 참된 목적이라고 말했다.”(Carl Schmitt, The Concept of the Political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6], 52.[국역: 법문사, 1992])본문으로
22) Schmitt, Political Theology, 13.본문으로
23) 위의 책.본문으로
24) Michel Foucault, Discipline and Punish (New York: Vintage, 1979), 222.[국역: 나남출판, 2003]본문으로
25) 페팃이 법치와 비교하는 것은, 간섭하지만 지배하지 않는 “자연적 장애물”이다.("The Domination Complaint, NOMOS, 24에 수록 예정) 그는 또한 법치를 “비-의도적인 방해”라고 지칭한다.본문으로
26) “그러나 통치자가 아니라 모든 인민의 복리가 최고법인 주권 국가에서는, 모든 사안에서 주권적 권력에 복종하는 이는 신민(subject)이라고 불려야지, 자신의 고유한 이익에 봉사하지 않는 노예라고 불려서는 안 된다.”(Spinoza, Theological-Political Treatise, ch. 16, 178]본문으로
27) Pettit, "The Domination Complaint," 12.본문으로
28) 정치에서 면역과 자가면역의 논리에 관해서는, 일단 Jacques Derrida, Voyous (Paris: Galil?e, 2003).본문으로
29) 마키아벨리의 “위대한 독창성은 탈적법화된 정치의 연구자라는 데 있다”는 포콕(John Greville Agard Pocock)의 단언은 이런 의미로 이해해야만 한다.(J. G. A. Pocock, The Machiavellian Moment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5], 163)본문으로
30) Machiavelli, Discourse on Livy, Ⅰ, 18.[국역: 한길사, 2003]본문으로
31) Quentin Skinner, "The republican ideal of political liberty" in Machiavelli and Republicanism, eds. Bock, Skineer and Viroli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0), 304.본문으로
32) 위의 책, 308. 또한 Pettit, Republicanism, ch.8, 곳곳을 보라.본문으로
33) 마키아벨리와 “공민적 인본주의”의 거리에 관해서는, Harvey Mansfield, “Bruni, Machiavel et l'humanisme civique," in L'enjeu Machiavel, eds. G?rald Sfez and Michel Sennelart (Paris: PUF, 2001), 103~121.
[역주] 'virt?'를 ‘(변)덕’이라고 번역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주지하듯 virt?에 대당하는 것은 'fortuna'(운, 운명)인데, 『군주론』[국역: 까치글방, 1994] 25장에 나오는 “운명의 신은 여신이고 만약 당신이 그 여자를 손아귀에 넣고자 한다면, 그녀를 거칠게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는 유명한 대목 때문에, 또 virt? 자체의 어원(이 단어는 ‘남성’을 뜻하는 라틴어 vir에서 연원한다) 때문에, virt?를 (여성적인 fortuna에 대비되는) 남성적인 덕목, 특히 마키아벨리가 말한 ‘짐승의 덕목’ 중에서도 ‘사자의 힘’으로 해석되곤 한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국내의 대표적 해석 중 하나로는 『군주론』에 강정인 교수가 붙인 「부록 2」 195~200pp 및 「역자 해제」를 보라.
그러나 이렇게 되면 virt?와 fortuna의 관계가 상호외재적이 될뿐더러, 마키아벨리의 진의가 잘 드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 점을 명시적으로 문제 삼은 사람 중 한 명이 프랑스의 철학자 알튀세르다. 그는 “참된 “운”은 극단 및 한계의 공백이지만, 그 “머리채를 움켜잡아야” 하는 우연히 마주친 지나가는 여자처럼 등장하는 외부가 결코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전적으로 내부이다. 모든 “운”을, 즉 군주라는 개인이 그것으로 그의 감정들을 제어할 수 있는 … 이 내적인 거리, 이 공백, 이 무를(내 자신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이 “취해진 거리의 공백”을) 만들어내는 것은 여우의 능력이다(절대로 사자의 힘force이 아니다).”(알튀세르, 『철학과 맑스주의』, 새길, p. 190)라고 말하면서, 기존의 virt? 해석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이는 말하자면 'virt?-fortuna' 대쌍의 상호외재성을 극복하기 위해 fortuna를 ‘여성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상호외재성을 비판하는 다른 방식도 있는데, 그것은 virt?를 ‘남성적인 것’이 아닌 ‘여성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접근에 관해서는 최원, 「마키아벨리, 알튀세르, 페미니즘」(1997)(http://myhome.shinbiro.com/~spinoc의 철학 게시판 4번째 글)을 보라. 지난 호 「책 속의 책」에 소개된 보니 호니히(Bonnie Honig) 역시 유사한 해석을 제기한다. 조금 길지만 관련 대목을 인용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혹자는 virt?에서 남성적인 윤리를 볼 것이다. “남성”을 뜻하는 라틴어 vir에서 유래한 virt?는, 어쨌거나, 남성적인 장점이며, 마키아벨리와 니체를 비롯하여 이를 칭송하는 이들은, 종종 그것의 강건함을 여성화된 덕목, 여성의 유약함에 나란히 놓는다. 그러나 virt?가 영원히 이 대당에 묶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의 분란적인 힘이 이 번식력 강한 대당을 고스란히 둘 것이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virt?가 오직 한 가지 형상, 하나의 일의적인 성/성별의 견지에서 식별할 수 있는 남성적(male)이고 남자다운(masculine) 형상에 의해서만 예시된다고 간주할 하등의 이유도 없다.
Virt?의 주체가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남자다운 남성 전사가 아니라, 여장부(virago) 곧 “사나운 여성”, “회오리바람”, “남자 같은 힘이나 정신을 가진 여성” 등으로 다양하게 정의되는 인물, 자기 자신 안에서 이 같은 힘과 정신을 남성적인 것이라고 부르는 지속적인 가능성에 제한을 부과하는 인물이라면 어떻겠는가? virt?가, 과잉과 나머지에 대한 민감함과 함께, 남성적/여성적 따위의 이원적 범주들에 분란과 동요를 일으키는, 이로써 이 범주들의 부적합성들, 한계들, 아포리아들을 지적하는 힘으로 판명된다면 어떻겠는가? 인간이면서 자연의 힘인 이 여장부, 남성적인 여성은, 아마도 철저히 식별가능하고 범주적으로 확립된 것, 남성적인 전사를 확립하는 범주보다 virt?에 훨씬 적절한 인물일 것이다.
여장부는, 마키아벨리의 virt?적 인간(man, [남성])처럼, 전사다. 그러나 그녀는 또한, 마키아벨리의 fortuna처럼 사나운 자연의 힘이며, 회오리바람이기도 하다. 여정부는 마키아벨리의 fortuna보다 덜 철저히 여성화되어 있지만, 그렇다면 마키아벨리의 virt?적 인간은 종종 그렇게 여겨지는 것보다 덜 철저히 남성화되어 있다. 사실, 여성적인 fortuna와 남성적인 virt?라는 묘사를 구조화하기 위해 마키아벨리가 성별화된 대당에 의존하기는 하지만, 둘 사이의 관계는 적대적이고 대립적이라기보다는 서로에게 빚을 지고 있고 모방적이다. 마키아벨리의 virt?적 인간은 최상의 전반적 장점은 fortuna처럼 될 수 있는 능력, 그녀처럼 변덕스럽고 예측불가능하며 간교하게 될 수 있는 능력이다. 진정한 남성다움이란 가장 진실된(왜냐하면 가장 거짓되기 때문에?) 여성의 장신구를 교묘하게 쓰고, 장식을 갖추며, 여장을 할 수 있는 역량을 의미한다. Virt?, 즉 fortuna를 일관되고 잘 후려칠 수 있는 역량은, 그녀 식 게임에서 그녀를 후려치기 위한 재능이다. 비결(trick)은 fortuna보다 더 여성스러운 것, 그녀보다 더 나은 여성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오직 virt?적 남성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의 virt?적 인간의 재능은 (남성과 여성, 인간과 자연 사이의) 건널 수 없는 선을 건널 수 있는 역량, 보통 사람들이 그 앞에서 뒤로 물러서는 위험을 무릅쓸 수 있는 의지다.”(Bonnie Honig, Political Theory and the Displacement of Politics (Cornell University Press, 1993), p. 16)
또 이 글의 필자인 미구엘 바터도 자신의 책 Between Form and Event: Machivelli's Theory of Political Freedom (Dordrecht: Kluwer, 2000) 2부 전체(pp. 131~215)를 할애해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그 역시 위의 입장과 유사한 그러나 물론 훨씬 정교한 접근을 제시한다. 특히 그는 p. 184 각주 52에서 한나 피트킨(Hanna F. Pitkin)을 언급하고 본문에서 이 같은 접근을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피트킨은 『군주론』의 역자인 강정인 교수가 virt? 문제를 다룰 때 명시적으로 준거하는 이론가이기도 하다.(『군주론』 p. 216 각주 5 참조)
Virt?의 통상적 번역어 중 하나는 ('virtue'의 통상적 번역어로서) ‘덕’이다. 하지만 이 단어는 앞서 말한 virt?의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 실제로 호니히나 바터도 virtue의 통상적인 의미와의 대조를 극대화하기 위해 아예 virt?를 번역하지 않은 채 사용하는 실정이다. 호니히나 바터의 예를 고려할 때, 가장 좋은 번역어는 virtue를 연상시키는 동시에 그것과 가장 분명하게 대조되는 단어일 텐데, 마침 한국어에는 덕과 대조될 수 있는 ‘변덕’이라는 단어가 있다. 다만 기존 한국어 용법에서 ‘덕’과 ‘변덕’이 대조적 용법으로 사용되지는 않으며, 또 virt?를 아무런 장치 없이 바로 ‘변덕’이라고만 옮기면 기존 한국어 용법에서 이 단어가 갖는 부정적 의미에 눌려 마키아벨리의 진의가 잘 전달되지 않을 위험이 있다는 두 가지 점을 고려하여, 이 글에서는 마키아벨리의 virt?를 ‘(변)덕’이라고 번역할 것이다.본문으로
34) Machiavelli, The Prince, Ⅸ.본문으로
35) 벨(Pierre Bayle)이 마키아벨리와 스피노자를 따라 말하듯, “인간 행동의 참된 원리”가 발견되는 곳은 “기질의 성향, 기존 관습의 힘, 그리고 특정 대상들에 대한 예민함이나 취향에 대해 마음이 [느끼는] 지배적 정념이다.” (Pierre Bayle, Various Thoughts on the Occasion of a Comet [Albany: SUNY Press, 2000], 168~169).본문으로
36) “인민”에 관한 비슷한 개념에 관해서는, Jacques Ranci?re, "Ten Theses on Politics," Theory and Event 5:3(2001), 5번 테제를 보라.본문으로
37) Machiavelli, Discourse on Livy, Ⅰ, 5.본문으로
38) 마키아벨리에 대한 클로드 르포르(Claude Lefort)의 해석은, 근대 공화주의에 대한 그의 해석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자유의 토대에 놓인 인민의 욕망과 귀족의 욕망 사이의 비대칭성을 강조한다는 뛰어난 이점을 갖는다. Claude Lefort, Le Travail de l'œuvre Machivel (Paris: Gallimard, 1972), 472~477를 보라; 또한, 정치적 통일성보다 사회적 분할에 부여된 우선권의 견지에서 근대 공화주의를 재구성한 것을 보려면, Claude Lefort, Writing: the Political Test (Duke University Press, 2000). 욕망들의 이질성이 “공동 이익의 논리” 및 모든 시민들이 기본적인 수준에서 동일한 욕망과 공포를 공유한다는 그 전제와 어떻게 대조되는지에 관해서는, 일단 G?rald Sfez, Machiavel, la politique du moindre mal (Paris: PUF, 1999)을 보라. 사회적 갈등의 일차성의 관점에서 본 공화주의에서의 시민권 문제에 관한 또 다른 중요한 시각에 관해서는, Christian Lazzeri, "La citoyennet? au d?tour de la r?publique Machiav?lienne" in L'enjeu Machiavel, 73~101을 보라.본문으로
39) 갈등과 불일치의 일차성이라는 견지에서 정치를 정의하려는 또 다른 시도로는, Jacques Ranci?re, Dis-agreement: Politics and Philosophy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9)를 보라.본문으로
40) 이런 의미에서 스트라우스(Leo Strauss)는, 마키아벨리의 주저 두 편이 동일한 주제를 두 가지 다른 시각에서 다룬 것이라는 그의 일반적 주장 면에서는 완전히 옳다. 스트라우스(그리고 스트라우스가 세운 일반적 개요를 따르는 예컨대 만스필드 등의 다른 독해들과) 나의 차이점은, 결국 이 두 시각들이 무엇인지에 관한 불일치로 요약된다. 나의 관점에서 보면, 스트라우스가 오해한 것은 “인민”을 정치적 행위자로 정치적으로 정의하는 비-지배에 대한 욕망이다. 스트라우스에게 있어 이 욕망은 (“귀족”을 정치적 행위자로 정의하는 지배하려는 충동(drive)과 유사하면서도 모순적인) 충동을 성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충동의 부재, 무기력, 수동성을 지시하는 것이다. 반면 내가 볼 때, 정치적 질료(matter)에 영향을 주기 위해 마키아벨리가 도입한 이중적 시각은, 이 정치적 질료의 분할된 성격, (지배와 저항의) 기본적 욕망의 이원성에서 나오는 것으로, 이는 다기원적(多起源的, equiprimordial)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스피노자(마찬가지로 니체와 프로이트)에게서, 코나투스(conatus, [자기보존을 위한 노력])의 이 같은 내적으로 분할된, 또는 적대적인 성격은 아직 보존된다. 이는 홉스에 와서 상실된다. 홉스는 “귀족적”인 욕망만을 인류에게 “자연적”인 욕망(즉 “자연 상태”에 존재하는 유일한 욕망)으로 인정한다.본문으로
41) Machiavelli, The Prince, Ⅸ.본문으로
42) “따라서 반드시 명심해 둘 점은, 국가를 장악함에 있어, 수권자는 인민들의 복리를 제공함으로써 그들을 보호하고 인민의 마음을 얻을 능력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nel pigliare uno stato, debbe l'occupatore d'esso assicurare gli uomini e guadagnarseli con beneficarli].”(위의 책, Ⅷ)본문으로
43) “어떤 군주국이든 자신의 군대를 가지지 못하면 안전할 수 없다. 오히려 이러한 군주국은 위기 시에 자신을 방어할 힘(virtue)이 없기 때문에 전적으로 운에 의존해야 할 뿐이다.”(위의 책, ⅩⅢ)본문으로
44) 위의 책, XII.본문으로
45) 따라서 군주의 시각에서 볼 때, 정치적 활동의 방향은, 국가가 그 토대에 필연적으로 머물게끔 보장하는 데 전적으로 맞춰진다. “현명한 군주라면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지 시민들이 국가와 군주를 믿고 따르게 하는 수단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시민들은 신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위의 책, Ⅸ.본문으로
46) 위의 책, Ⅷ본문으로
47) 이 절의 구조와 논리를 경탄스럽게 해석한 것은 르포르의 Le Travail de l'œuvre다. 하지만 나는 이 단계들에 관해 르포르와는 사뭇 다른 독해를 제시할 것인데, 내가 아래에서 보여줄 것과는 달리 르포르는 “잘 사용된 잔혹”의 논리가 어떻게 근대의 개인적 권리 체계의 논리가 되는지를 보지 못한다.본문으로
48) [역주] 여기서 바터는 ‘미래 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법이나 제도, 국가의 정초라는 사건이 갖는 시간적 역설을 부각시키기 위해 데리다가 사용하는 ‘전미래’ 시제(이는 프랑스어에서 영어의 ‘미래 완료’에 해당한다)를 차용하고 있는 것 같다. 이에 관한 상세한 설명은 위의 책, pp. 196~199를 보라.본문으로
49) "The Domination Complaint"에서 페팃은 마키아벨리의 시민형 군주를 면밀하게 따르는 것으로 보이는데, 왜냐하면 그는 사회에서 비-지배를 부과하기 위해 국가가 가지고 있는 세 가지 가용 전략이 “무장”, “무장해제” 그리고 “보호”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The Domination Complaint," 10) 이는 시민 군주국의 구성/입헌의 세 단계에 들어맞는다.본문으로
50) “싸움에는 두 가지 방도가 있는데, 그 하나는 법률에 의거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힘에 의거한 것이다. 첫째 방도는 인간에게 합당한 것이고, 둘째 방도는 짐승에게 합당한 것이다. 그러나 전자로는 종종 불충분하기 때문에, 후자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따라서 군주는 모름지기 짐승과 인간[의 방도] 양 쪽 모두를 능숙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 군주는 짐승을 능숙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여우와 사자의 기질을 모방해야 한다. … [여우의] 기질은 잘 은폐하여 숨겨야 하며, 뛰어난 가장자와 은폐자[simulatore e dissimulatore]가 되어야 한다.”(Machiavelli, The Prince, ⅩⅧ)본문으로
51) 이 용어는 알튀세르에게서 빌려 온 것인데, 사후에 출판된 후기 저작에서 그는 마키아벨리의 새로운 또는 시민형 군주의 이론을 사용하여, 국가의 힘이나 폭력을 법적 권력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근대의 이데올로기적 장치로서의 국가가 어떻게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Louis Althusser, Machiavelli and Us (London: Verso, 1999).[국역: 이후, 2001]본문으로
52) 예를 들어 “공적인 강제력을 갖는(coercive) 법 아래 [살 수 있는] 인간의 권리, 그것을 통해 각자가 자신의 몫을 받을 수 있고 다른 이들의 간섭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인간의 권리를 근거 짓는 것으로 사회 계약을 정의하는 칸트를 보라.(Kant, "On the Proverb: That May Be True in Theory, But Is of No Practical Use," in Kant, Perpetual Peace and Other Essay [Indianapolis: Hackett, 1983], 72). 이런 의미에서, 마르크스가 “[안전]보장(security)은 시민 사회의 최상의 사회적 개념이다. … 사회 전체가 거기 존재하는 것은 오직 각각의 구성원들에게 인격과 권리, 소유의 보호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는 개념”(Karl Marx, "On the Jewish Question" in Early Writings [New York: Vintage Books, 1975], 230)이라고 단언할 때, 그는 홉스에서 칸트와 밀을 거치는 근대 권리 관념 배후에 있는 근본적인 직관을 진술했을 뿐이다. 안전은 평등한 개인적 자유에 대한 자유의 한 가운데 기입되어 있다. “따라서 자유는 타인을 해치지 않는 모든 것을 하고 수행할 수 있는 권리다.”(위의 책, 229)본문으로
53) Machiavelli, The Prince, Ⅵ.나는 보르지아의 “광경”에 대한 빅토리아 칸(Victoria Kahn)의 독해에서 많은 것을 배웠으며, 보르지아와 아가토클레스가 시민형 군주로서의 국가가 행사하는 폭력을 적법화하는 수단에 관한 하나의 동일한 담론의 연속적 발전이라는 그녀의 기본적 테제를 전반적으로 공유한다.(Victoria Kahn, Machiavellian Rhetoric, ch.Ⅰ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4]). 내가 칸과 다른 점은, 나는 여전히 “광경”을 “극”이나 “수사(학)”보다는 “이데올로기”의 한 형태라고 말하는 편을 선호한다는 점인데, 여기서 이데올로기라는 용어는 알튀세르의 사뭇 복합적인 의미에 가까운 것이다.a href="#home53">본문으로
54) 나는 보르지아의 “광경”에 대한 빅토리아 칸(Victoria Kahn)의 독해에서 많은 것을 배웠으며, 보르지아와 아가토클레스가 시민형 군주로서의 국가가 행사하는 폭력을 적법화하는 수단에 관한 하나의 동일한 담론의 연속적 발전이라는 그녀의 기본적 테제를 전반적으로 공유한다.(Victoria Kahn, Machiavellian Rhetoric, ch.Ⅰ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4]). 내가 칸과 다른 점은, 나는 여전히 “광경”을 “극”이나 “수사(학)”보다는 “이데올로기”의 한 형태라고 말하는 편을 선호한다는 점인데, 여기서 이데올로기라는 용어는 알튀세르의 사뭇 복합적인 의미에 가까운 것이다.본문으로
55) Mill, Utilitarianism, 52.[국역: 이문출판사, 2002]본문으로
56) [역주] 영어에서 'state of right'라는 관용구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데, 독일어에서 'right'에 해당하는 'recht'와 'state'에 해당하는 'staat'의 합성어인 'Rechtsstaat'는 아주 널리 사용되는 표현이고, 한국어로는 통상 ‘법치 국가’로 새긴다. 'state of right'라는 표현을 통해 바터는 한 편으로 독일식 표현이 갖는 본래적 의미를 연상시키면서도, 동시에 영어에서 아직 관용구로 굳어지지 않은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state'와 'right'의 다의적 의미를 활용하려는 것 같다. 이 표현 전후에 나오는 'right' 역시 독일어의 'recht'와 영어의 'right'가 갖는 여러 의미들을 염두에 두고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본문으로
57) 보르지아의 광경은 베버의 국가 정의에 어떻게 이르는지를 보여주는데, 그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국가에 선행하는 정치적 연합들과 마찬가지로, 국가는 인간에 대한 인간의 통치[Herrschaft]의 관계이고, 폭력의 적법한 사용(즉 적법하다고 주장되는 폭력)에 근거한다.” Max Weber, Political Writing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0), 311.본문으로
58) Machiavelli, Discourses on Livy, Ⅰ, 16.본문으로
59) 여기서 시민형 군주국으로서의 근대 국가에 대한 마키아벨리에 관한 나의 분석은, 스키너(Liberty before liberalism, ch. 2)와 페팃(Republicanism, ch. 1) 양 저자가 제시한 일반적 주장에 수렴하는데, 내용인즉슨 자유주의적인 부정적 자유 개념은, 군주제 국가와 국가 이성(Raison d'?tat)의 이익에 이로운 방향으로 비-지배로서의 자유라는 초기의 근대 공화주의적 개념을 중화시키기 위한 시도로 출현했다는 것이다. 내 요점은 공화주의적 개념, 그리고 그 자유주의적 중화와 포섭은 근대의 정치적 삶의 필수적 계기라는 것이다.본문으로
60) Discourses on Livy, Ⅰ, 4. 강조는 필자.본문으로
61) “공화국과 민주주의 또는 다수의 지배 사이의 구별에 관한 미국 혁명가들의 역설은 법과 권력의 발본적 분립, 그리고 양자가 서로 다른 기원과 적법화, 그리고 적용 영역을 갖는다는 점에 대한 분명한 인정에 의거한다.”(Arendt, On Revolution, 166)본문으로
62) Bernard Manin, "Checks, balances and boundaries: the separation of powers in the constitutional debate of 1787," in The Invention of the Modern Republic, 31.본문으로
63) 유사하게, 셸든 볼린(Sheldon Wolin)은 아테네 민주주의의 순환제(rotation)와 추첨에 대해 “제도화를 전복하는 제도”라고 말한다.("Norm and Form," 43)본문으로
64) 마키아벨리는 로마 공화주의의 정식에 관한 자신의 해석을 제시한다: auctoritas in senatu, potestas in populo. 군주제적 정치체의 “머리”에 대한 언급은 『로마사 논고』, Ⅰ, 2에 나오고, 인민을 공화국의 “심장”이라고 언급하는 것은 위의 책, Ⅱ, 30에 나온다.본문으로
65) 인민, 그리고 비-지배에 대한 [인민의] 욕망의 통합이 정치적 삶에 도입하는 비통치성(unruliness)과 불화(dissensus)는, “시민적” 군주로서의 국가가 부과하고 유지하는 “시민” 사회의 구속(stricture)을 정치적 삶이 초과하게 만든다. 시민적 자유에 대한 정치적 자유의 이 같은 초과를 묘사하기 위해 클로드 르포르는 “야생적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셸든 볼린은 “탈주적(fugitive) 민주주의”를 사용한다. 자크 랑시에르에게 있어 “인민이 사회의 부분/몫(part)의 셈에 대한 대체보충(supplement)으로서의 주체, ‘몫 없는 자의 몫’라는 특정한 형상으로서의 주체에 준거하는 한에서 정치가 존재한다.(Ranci?re, "Ten Theses on Politics," 테제 6) 이 주제와 교차하는, 마키아벨리에게서 인민에 대한 또 다른 독해는, John McCormick, "Machiavellian Democracy: Controlling Elites with Ferocious Populism,"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95, n. 2 (June 2001): 297~314.본문으로
66) 이는 로마 정치 사상과 로마의 정치적 현실로의 (차이 속의) 마키아벨리의 “회귀”의 의미에 관한 나의 기본적인 해석적 테제다. 나는 이를 나의 책 Between Form and Event: Machivelli's Theory of Political Freedom (Dordrecht: Kluwer, 2000)에서 길게 옹호했다. 마키아벨리와 로마 정치 사상의 차이점과 유사성을 이해하려는 최근의 주목할 만한 두 편의 시도로는, Vickie Sullivan, Machiavelli's Three Romes (De Kalb, IL: Northern Illinois University Press, 1996)과 J. Patrick Coby, Machiavelli's Romans (New York: Lexington Books, 1999)를 보라. 불행히도 뒤의 책들이 나왔을 때 내 책은 이미 인쇄 중이어서, 그 테제들을 논할 수 없었다.본문으로
67) Machiavelli, Discourses on Livy, Ⅰ, 4. 본문으로
68) Karl von Fritz, The Theory of the Mixed Constitution in Antiquity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54), 209. 폰 프릿츠가 내린 결론은 “로마 공화국의 정치 질서의 … 가장 구별되는 특징은 행위를 방지하는 부정적 권력들의 과다함으로, 이는 귀족적 귀족제(patrician aristocracy)에 맞서는 평민들의 투쟁 과정에서 발전했다”는 것이다.(위의 책, 219)본문으로
69) 이 같은 대항-제도들의 또 다른 사례 중 특히 중요하고 복잡한 것은, 농지법(Agrarian Law)인데, 이는 사적 소유의 불평등한 분배를 통해 행사되는 식의 지배에 대항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었다.본문으로
70) 이 표현의 출처는 Emanuel Levinas, Nouvelles lectures talmudiques (Paris: Minuit, 1996)이다. 『연방주의자』(The Federalist)는 “인민들이 자신들의 행복과 헌법이 상반된다는 점을 발견할 때마다 기존 헌법을 변경하거나 폐지할 수 있는 인민들의 권리를 허용하는 공화주의 정부의 근본 원리”에 관해 이야기한다.(Hamilton, Jay, Madison eds., The Federalist Papers [New York: Penguin, 1987], 78)a href="#home70">본문으로
71) 『연방주의자』(The Federalist)는 “인민들이 자신들의 행복과 헌법이 상반된다는 점을 발견할 때마다 기존 헌법을 변경하거나 폐지할 수 있는 인민들의 권리를 허용하는 공화주의 정부의 근본 원리”에 관해 이야기한다.(Hamilton, Jay, Madison eds., The Federalist Papers [New York: Penguin, 1987], 78)본문으로
72) Christopher Hill, Liberty Against the Law: Some Seventeenth-century Controversies (New York: Penguin, 1996)를 보라.본문으로
73) 롤스적인 정의의 “차등 원칙”을 체계적으로 적용한다손 치더라도 이 상황은 교정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이 정의의 원리는 승리자가 될 기회를 패배자에게 재분배하기는 하지만, 승리할 역량도, 그렇다고 승리적인 결과도 재분배하지 않기 때문인데, 이는 누구보다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이 보여준 바대로다.(Amartya Sen, Development as Freedom [New York: Anchor Books, 1999], ch. 3. [국역: 세종연구원, 2001]) 어떤 경우라도, 롤스적인 정의의 차등 원칙은 원죄에 시달린다. 그것이 요청하는 기회의 재분배가 보다 공정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권리와 재화를 행사함에 있어 차별적 조건이 부재하는 한에서다. 즉, 정의의 두 번째 원칙이 작동하는 것은 오직 사회에 인종주의나 계급차별주의, 혹은 성차별주의가 없을 때에 한에서인데, 그러나 후자의 실존이 주어진 상황에서는, 그 원리만으로는 이 같은 결과를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본문으로
74) Habermas, Between Facts and Norms, 123.본문으로
75) 위의 책, 121.본문으로
76) Trenchard, An Argument, Shewing, that a Standing Army is inconsistent with a Free Government, and absolutely destructive to the English Monarchy (1697).본문으로
77) Rousseau, The Social Contract, Ⅱ, 6.[국역: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9] 하버마스는 여전히 이 같은 직관을 반향한다. “법적 매개가 정치적 자율성의 행사를 제도화하기 위해 사용되자마자, 이 [개인적 자유의] 권리는 필연적으로 권능을 부여하는(enabling) 조건이 된다. 그 자체만으로는, 그것들은 입법자의 주권을 제한할 수 없는데, 그들이 그녀의 재량에 놓여 있지 않다 하더라도 그렇다. 권능을 부여하는 조건은 그것들이 구성/입헌하는 것에 대해 어떠한 제한도 부과하지 않는다.”(Habermas, Between Facts and Norms, 128). 또한 Habermas, "On the Internal Relation Between Law and Democracy," in The Inclusion of the Other, 260~1을 보라.본문으로
78) 이 점에 관한 논쟁 양상에 관해서는, J?rgen Habermas, "Constitutional Democracy: A Paradoxical Union of Contradictory Principles?" Political Theory, vol. 29, n. 6 (December 2001), 766~781. 그리고 같은 책에 있는 A. Ferrara와 B. Honig의 답변을 보라. 정치적 평등의 역설에 관해서는 일단 Christopher Menke, Spiegelungen der Gleichheit (Berlin: Akademie, 2000)를 보라.본문으로
79) Habermas, "On the Internal Relation,“ 260.본문으로
80) 위의 책, 260~261.본문으로
81) Machiavelli, Discourses on Livy, Ⅲ, 1.본문으로
82) 위의 책, Ⅰ, 26~27; Ⅲ, 21~22.본문으로
83) 마키아벨리는 치옴피(Ciompi) 반란에 관한 유명한 서술에서, 정치적 인정을 위한 투쟁에서 박탈의 논리에 대한 잊을 수 없는 설명을 준다. 마키아벨리, Florentine Histories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8) Ⅲ, 13: “그들이 피의 유서깊음―그것을 가지고 그들은 우리를 비난할 것이다―을 가지고 당신을 낙담케 하지 말라.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은, 동일한 시초를 가지고 있는 고로, 평등하게 유서깊으며 자연에 의해 하나의 양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를 벌거벗기면, 당신은 우리가 모두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그들의 옷을 입히고, 그들에게 우리의 옷을 입혀 보라, 그러며 의심할 여지 없이 우리는 귀족처럼 보일 것이고 그들은 비천하게 보일 것인데, 왜냐하면 오직 가난과 부유함만이 우리를 불평등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 그러나 만일 인간들이 행동하는 방식을 유의해 본다면, 당신은 거대한 부와 권력을 가지게 된 모든 자들이 그것들을 사기나 힘으로 획득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런 다음 취득의 추함을 가리기 위해, 그들은 그것을 품위 있게 만들기 위해 벌이(earnings)라는 그릇된 제목을 기만이나 폭력으로 강탈한 모든 것들에 적용할 것이다. 그리고 약간의 신중함이나 지나친 어리석음 때문에, 이 양식들을 꺼리는 자들은 항상 예속이나 가난에 짓눌릴 것이다.”본문으로
84) “정의는 평등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만인에 대해서가 아니라 오직 평등한 자들에 대해서만 그렇다. 정의는 또한 불평등인 것처럼 보이는데, 왜냐하면 사실 그것은 만인에 대해서가 아니라 오직 불평등한 자들에 대해서 그렇기 때문이다.”(Aristotle, Politics, 1280a10).본문으로
85) [역주] ‘되풀이 (불)가능한’이라고 새긴 'iterable' 역시 데리다가 정교화한 표현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법의 힘』, pp. 186~188을 보라.본문으로
86) Arendt, On Revolution, 184.본문으로
87) Machiavelli, Discourses on Livy, Ⅲ, 1.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