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개혁 비판과 노동자 민중의 대응방향
: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반대 투쟁의 기초 위에서 노동자 민중의 지혜를 모으자!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연금 개혁 논쟁
이른바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의 연금 개혁안이 작년 말 국회 상임위를 통과하여, 2월 임시국회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있다. 또한 국민연금 개혁과 연동되어 추진 중인 공무원연금 개혁은 발전위원회 시안이 제출되어 있다. 2003년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시작되던 당시, 운동진영은 정부의 개혁 구상이 재정고갈 위험만을 고려하여 사각지대나 낮은 보장성, 기금운용 체계·방식과 같은 긴급한 쟁점들을 오히려 후퇴시키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정치권 내의 논의가 급진전을 이루는 과정에서 이러한 입장은 일정한 분화·굴절을 겪었다. 민주노동당이 기초연금 도입을 전제로 한 국민연금 개혁안을 제안한 것과 정부 주관 하의 <저출산·고령화대책연석회의>1)에 참가한 일부 시민단체들이 정부의 개혁방안을 수용한 것이 주요한 계기였다. 이들은 정부의 개혁방안을 큰 틀에서 수용하는 가운데, 기초연금을 더욱 확대하는 방안이나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 사업 등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현재 국민연금 개혁을 둘러싼 논의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연금제도의 측면에서 보자면, 공적연금(국민연금)-사적연금(퇴직연금)-개인보험으로 구성되는, 세계은행과 같은 신자유주의 집행기관들이 장려하는 다층적 노후소득보장체계의 도입이 기정사실화되어 추진 중이다. 또한 운동진영 내적으로 민주노동당에서 제안하는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 사업을 둘러싸고 계급적 해법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이 불붙고 있다. 더욱이 보험료 지원 사업에 관해서는 소득연대전략, 사회연대전략 등을 표방하며 추가적인 정책대안이 제안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이 문제는 노동자운동의 전략을 둘러싼 논쟁의 한 축으로 확대되고 있다.
사회진보연대는 정부 연금 개혁의 본질이 막대한 적립금을 유지하여 연기금의 금융화를 더욱 확대하는 데 있으며, 이는 노동자 민중의 노후소득을 금융자본의 불안정성과 직접 연계시키는 매우 위험한 발상임을 중심적으로 비판해왔다. 따라서 정부가 추진하는 연금 개혁의 기만성을 폭로하며 현행 연금제도를 방어하는 투쟁을 진행하는 가운데, 실질적인 노후소득 보장이 가능한 민중적 대안을 모색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 글의 기본 목적은 이런 문제의식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데 있다. 2월 임시국회에서 실제 법이 개정되든 안 되든 상관없이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연금 개혁과 연금기금의 금융화를 확대하려는 시도는 지속될 것이므로, 연금 개혁의 본질과 대응 원칙에 대한 대중적 논의는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나아가 그 동안 연금 개혁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형성된 쟁점뿐만 아니라 현재의 논의지형과 향후 전개방향을 차분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로부터 민중적인 대안을 구성함에 있어서 사회운동이 지향해야 할 방향과 원칙에 대한 합의를 모아나갈 필요성을 제기하고자 한다.
국민연금 개혁 논의 과정과 쟁점
국민연금 개혁의 과정과 쟁점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우선 연금제도의 기본 형태를 살펴보도록 하자. 연금제도는 기금의 적립여부, 그리고 보험료와 급여액 중 어떤 것을 사전에 확정하고 가느냐를 주요 축으로 하여 구성된다. 보험 가입자의 보험료와 국고보조금, 이자 등을 꾸준히 축적한 적립금에서 급여를 지급하는 방식을 적립방식, 한해에 필요한 보험 급여액을 산정하여 이를 현세대 보험 가입자들이 납부하는 방식을 부과방식이라 한다. 한편 퇴직 후 받을 급여액을 처음부터 확정하는 방식을 확정급여형(DB, define benefit), 급여는 사전에 정해져 있지 않고 보험료만 정해 놓는 방식을 확정기여형(DC, define contribute)으로 구분한다. 이 두 가지 축을 상호 교차시켜 연금제도의 여러 형태를 도출하는데, 한국의 국민연금은 수정적립식, 확정급여형 체계다. 이 때 수정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순수 적립식은 논리 상 가입자가 납부한 보험료만큼만 되돌려 받는, 사실상 저축과 유사한 형태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납입한 보험료에 비해 약 2배 이상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고, 따라서 일정한 시점이 되면 적립금의 고갈이 불가피하다. 그러므로 연금 수급이 본격화되어 기금이 소진되면 부과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은 애초 국민연금 제도 도입 당시 기본 가정에 포함되어 있었다.
1998년 국민연금이 가입대상을 전 국민으로 확대하면서 기금운용법이 제정되었고, 이에 따라 5년 마다 재정추계를 통해 재정안정성을 점검하기로 하였다. 재정추계는 경제성장률, 임금상승률, 인구성장률 등을 고려하여 이루어지고, 2003년 재정추계 당시 정부는 추계 기간을 2070년까지로 설정하였다. 여기서 정부는 인구노령화2) 문제를 집중 부각시켰다. 공적연금은 적립방식이든 부과방식이든 현세대 노동자와 후세대 노동자 간의 소득이전이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현재의 낮은 출산율과 고령화 문제를 통해 연금 개혁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한 것이다. 재정추계 결과 국민연금 적립기금이 2036년까지는 계속 증가하여 약 1,715조(GDP대비 약 70%)에 달하지만, 이후 급격히 감소하여 2047년이면 적립금이 고갈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국민연금 개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런 정부의 재정추계 방식과 그에 근거한 개혁방안에 대해 운동진영은 정부 추계 기간이 지나치게 길고, 출산율과 노령화를 기계적으로 예측하는 추계방식을 절대화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이와 별도로 현행 국민연금 제도가 안고 있는 사각지대 문제, 낮은 보장성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사각지대 문제는 '전 국민 국민연금 시대'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매우 심각하다. 현재 국민연금의 사업장 가입자는 약 800만 명, 지역 가입자는 약 900만 명으로, 총 1,700만 명 정도가 국민연금에 가입해 있다. 전체 노동자 1,500만 명(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가입자가 약 120만 명) 중 600만 명가량이 일용직이나 특수고용직과 같이 고용형태 상의 제한으로 가입 자체를 못하거나, 영세사업장 노동자의 경우와 같이 보험료 부담으로 가입을 회피하고 있다. 이들이 가입 자체를 배제당하는 제도 상의 사각지대에 있다면, 가입은 가능하지만 소득이 낮아 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하는 실질적인 사각지대에 놓인 납부예외자는 전체 가입자의 42%에 이른다. 특히 지역가입자의 절반가량인 450만 명이 이에 해당한다. 현재 한국의 경제활동인구가 2,400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이중 실제 보험료를 납부하는 국민연금 가입자는 고작 1,000만 명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3). 그러나 사각지대 문제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보장수준 문제와 연결된다. 작년 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현재 노동자들이 한 직장에서 머무는 평균 기간은 6년 정도로 나타났다. 국민연금 현행제도 60% 급여율이나 개정안 50% 급여율은 모두 40년 가입을 조건으로 하는데, 불안정한 고용기간을 감안하면 실제 보장수준은 20% 안팎에 불과할 것이다.
당시 정치권 내에서는 정부 여당의 보험료를 높이고 급여율을 낮추는 개혁방안(모수적 개혁안)과 한나라당, 민주노동당의 기초연금 도입을 전제한 국민연금 조정 방안(구조적 개혁안)이 팽팽히 맞섰다. 정부 여당의 경우 재정안정화를 먼저 해결하고 사각지대, 보장성 등의 쟁점은 추후에 논의하자고 주장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은 기초연금 도입 자체에서는 주장이 일치했지만, 세부적인 내용이나 명분은 달랐다4). 한나라당 안은 이른바 '국민연금 8대 비밀'로 상징되는 국민연금에 대한 대중적 불신에 편승하여, 세간의 평처럼 노인들 표를 의식한 전형적인 인기영합식 정책에 불과했다. 민주노동당은 국민연금의 후퇴를 다소 감수하더라도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초연금 도입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논의지형이 유지되던 가운데 작년 여름 경 정부 여당이 기초노령연금 도입을 수용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는데, 합의된 개정법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민연금은 평균소득액의 60%인 연금 급여 수준을 2008년부터 50%로 낮추고, 보험료율은 현행 소득의 9%에서 2009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0.39% 포인트씩 높여 12.9%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한다. 그리고 기초연금은 2008년 1월부터 70세, 7월부터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60%를 대상으로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 소득의 5%의 급여(2008년 기준 8만9000원)를 지급한다. 이밖에 출산 시 최장 50개월, 군복무 기간 중 6개월은 보험료를 납입한 것으로 인정하는 크레딧 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변화가 있다5)6)
신자유주의적 연금 개혁의 기본가정과 본질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 국민연금의 수정적립방식은, 논리상으로 보자면, 미래의 일정 시점에 적립금이 고갈되어 급여가 중단되는 것이 아니라 고갈된 그 시점부터 부과방식으로 전환되어 그 해에 필요한 급여총액을 산정하고 가입자들이 나누어 납부하는 것이다. 만일 적립방식을 유지하면서 재정고갈을 피하고자 한다면, 주기적으로 재정을 추계하여 수익비를 저축과 가깝게 최대한 낮추고 급여율도 꾸준히 높여가는 방식을 택하는 수밖에 없다. 현재 정부가 제안하여 법 개정이 예정되어 있는 방안이 바로 이런 방식이다. 이에 대해 사회진보연대를 비롯한 운동진영 일각에서는 애초의 제도 설계의 전제도 그러한 바, 장기적으로는 국민연금을 부과방식으로 전환할 것을 주장했는데, 여기서 이 주장의 핵심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 핵심은 국민연금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급여율과 보험료율을 조정하는 데 있어 부과방식이 적립방식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정부 추계에 근거해 2045년 즈음을 바라보며 부과방식으로 전환을 추진했을 때, 보험료율의 인상이나 급여율 하락이 불필요한가? 현재 연금 개혁을 강제하는 객관적 조건과 연금제도의 기본 틀이 유지된다면 부과방식 하에서도 이는 불가피하다.
적립방식이든 부과방식이든 연금은 급여를 지급하는 시점의 노동인구의 수와 그들의 부담능력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구노령화가 객관적 조건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단지 부양의무를 가진 집단과 부양을 받아야 할 집단의 구성비 문제로 단순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거기에는 노동기간, 퇴직기간, 생산성, 임금률 등의 다양한 변수가 연계되어 있다. 여기서 노무현 정부를 비롯한 신자유주의 지배계급의 연금 개혁의 본질이 확인된다. 인구노령화를 부르짖으며 연금 개혁을 추진하지만, 문제의 해법에서는 전혀 다른 행보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노동기간과 퇴직기간의 불균형 요인을 해결하고 실업률을 낮추는 것은 인구노령화로 인한 문제를 해소하는 가장 현실 가능한 대안 중의 하나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정책개혁 하에서 고용추세는 이와 정반대의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또한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적 방식의 변종들도 여러 형태로 나타났다. 노르웨이를 비롯한 일부 북유럽 국가들은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조기퇴직을 장려하는 정책을 폈는데, 그로써 연금과 실업보험의 재정은 악화되었고, 노동시장에 새롭게 진입한 청년세대의 일자리는 대부분 비정규직이었다. 결국 불안정노동이 확대되고 신자유주의적 연금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토양이 강화되는 결과를 만든 것이다. 따라서 공적연금 축소와 민간보험 확대로 나타나는 신자유주의적 연금 개혁은 인구고령화 시대에 어쩔 수 없는 선택지가 아니다. 오히려 공적연금이 담당해온 노후소득보장체계와 거기서 국가가 담당해 온 보충적 역할을 포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연금제도를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자원으로 적극 활용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1990년대 이후 시행된 많은 국가들의 연금 개혁은 세계은행이 제시하는 방안을 하나의 규범처럼 수용했다. 세계은행은 1980년대 제3세계 국가들의 연금운용에 관여한 경험을 토대로, 1994년 「고령기 위기의 회피」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여기서 담고 있는 내용이 익히 알려진 공적연금-사적연금-개인보험의 3층 체계 방안이다. 재정안정을 위해 정부부담을 축소하고 위험부담을 분산시킨다는 명문으로, 공적연금의 급여수준을 최소화하고 사적연금의 가입을 국가가 강제함으로써 사적연금 가입의 유인을 높이는 구상이었다. 1990년대 많은 국가들의 연금 개혁이 이와 같은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2005년 세계은행은 두 번째 보고서 「21세기 노인 소득지원」을 발간했는데, 그 주요 내용은 3층 체계에 더해 빈곤층, 비정규직 등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위한 0층(사회부조 차원의 기초연금)을 신설할 것과 1층 공적연금의 소득비례 부분을 강화할 것, 그리고 4층을 신설해 빈곤층 노인에 대한 주택, 의료서비스를 강화하고 가족 내 부양프로그램을 강화하는 것이다. 1994년 개혁에 대한 평가를 통해 추가적인 개혁방안을 내놓은 것인데, 공적·사적 연금 모두에서 배제되는 극빈계층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할 것과, 사적부문 활용방안을 더욱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세계은행의 새로운 권고안은 극도의 빈곤이 사회적 위험요인이 되지 않도록 적정수준에서 생활보장을 제공하는 소득지원 정책의 확대라는 신자유주의 복지개혁의 전반적인 방향7)과 부합한다.
이렇게 볼 때 현재 한국의 국민연금 개혁은 세계은행의 1994년, 2005년 보고서에서 제안하는 개혁방안이 동시에 추진되는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추가적인 개혁이 진행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혁안에 포함된 기초연금은 사실 그 대상이나 급여수준 면에서 사회부조 수준을 넘지 못한다. 세계은행이 제안한 0층의 기초연금도 스웨덴과 같은 국가에서 개혁 이전에 시행하던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고, 공적부조와 노령수당 등을 모두 포함한다.8) 또한 국민연금의 급여 삭감분이 기초연금 도입으로 상쇄될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국민연금 수급 대상자들 대부분은 기초연금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급여하락은 불가피하다. 이번 연금 개혁이 기초연금의 도입과 국민연금의 후퇴를 교환하는 방식이었듯이, 현재와 같은 다층적 연금구조 하에서 기초연금을 확대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오히려 2008년, 2013년 재정추계를 통해 공적연금을 더욱 축소하거나, 세계은행의 새로운 권고안처럼 공적연금에서 균등부분을 제거하고 소득비례 부분만을 남기는 방향9)의 개혁이 추진될 것이 분명하다.
연금기금 금융화 확대의 논리: 안정적이고 공익적인 금융투자?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적 연금 개혁이 추진되는 근본적인 배경에는 금융자본의 확장이 놓여 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각종 연기금은 금융투자의 원천인데, 공적연금 적립기금과 적립식 민간보험의 기금을 확대하여 금융투자를 활성화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연기금은 뮤추얼펀드, 보험회사와 함께 3대 기관투자자를 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연금을 부과방식으로 전환하자는 주장의 핵심은 연금기금의 금융화를 저지하는 투쟁이 연금 개혁에 맞선 투쟁의 주요한 한 축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정부 연금 개혁 방안은 무리한 재정추계를 동원해가면서까지 적립방식의 유지를 고집했는데, 국민연금 적립금 규모는 2006년 10월 기준 185조원, 개정법안의 추계에 근거하면 2054년에 5,820조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액수가 된다. 이 엄청난 규모의 기금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당연히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는데, 해외 투자자들과 외신은 한국 연금 개혁의 향방을 중국의 저축율과 함께 아시아의 주식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핵심적인 문제로 보고 엄청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 공공부문 : 공공자금, 국채 등
* 복지부분 : 국민주택기금채, 복지타운, 보육시설 대여, 노인복지 대여 등
* 금융부분 : 채권, 주식, 대체투자, 단기 자금 등
정부 연금기금의 운용은 크게 공공부문, 복지부문, 금융부문으로 나뉘는데, <표1>은 2001년 이후 투자내역이다. 2001년 당시에도 금융투자의 비중은 상당히 컸지만, 2006년이 되면 압도적으로 커진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금융투자의 세부 내용은, 2006년을 기준으로, 주식투자 11%, 채권투자 약 87%이다. 정부나 적립방식을 통한 기금 수익률 제고를 주장하는 논자들은 주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 평가되는 채권에 대한 투자 비중이 높다는 점을 근거로 연금기금의 금융화를 비판하는 논리를 반박한다. 그러나 주식투자가 전체 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2001년 3%에서 2006년 현재 11%로 급성장했다. 더욱이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기금관리기본법이 2004년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현재 전체 연기금 약 250조 가운데 국민연금 기금이 180조원으로 가장 비중이 크기 때문에, 이 법은 사실상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확대를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또한 2004년 정부의 「중장기 국민연금기금 운용 마스터플랜」에는 해외투자의 비중을 2009년 11.7%, 2014년 25%로 늘리겠다는 구상이 담겨있다. 물론 여기까지는 공적연금인 국민연금기금에만 한정된 얘기다. 2006년부터 시행된 퇴직연금은, 아직 시행초기지만, 각종 개인 보험 상품의 활성화와 함께 주식투자의 원천이 될 것이다. 벌써부터 퇴직연금 주식투자에 대한 비과세를 비롯하여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을 확대하기 위한 제도적 유인을 요구하는 민간 보험업계의 요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연기금 금융화의 확대만큼 그를 옹호하는 논리의 스팩트럼 역시 다양해지고 있다. 신자유주의 지배세력들은 금융시장 활성화가 경제성장의 동력이 될 것이라는 신자유주의 교리를 반복하는 가운데, 투기성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한국 주식시장을 방어하기 위해 연금기금이 활용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사실상 연기금이 금융시장의 투기성과 휘발성으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역으로 고백하는 것일 뿐이다.
이 외에도 최근 신자유주의 개혁성향의 일부 NGO10)들은 연금기금의 사회책임투자(SRI, social reponsibility investment)11)를 제안한다. 또한 일부 사회운동 세력들도 공공부문, 사회복지 부문에 대한 투자 확대를 통해 연금기금의 공공적 활용을 주장하던 연장에서 이런 고민을 진행 중이다. 사회책임투자는 세 가지 영역이 함께 한다고 얘기되는데, 투자상품과 기업을 선별하는 펀드 주주권리를 행사하는 주주운동 저소득 공동체나 지역 개발을 위해 투자하는 공동체 투자 또는 지역사회개발금융이 그 3대 축이다. 노동기준과 환경에 대한 고려, 지역사회에 대한 수익환원 등의 '공익적' 기준에 따라 투자대상을 선별한다는 사회책임투자는 1990년대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활발해졌고, 2000년대 들어서는 연금기금 투자 방안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 퇴직연금 펀드들은 유럽 사회책임투자 주식시장의 확대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세계적으로 가장 큰 적립금을 보유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기금(캘퍼스, CalPERS)은 공적연금 분야에서 사회책임투자의 대명사로 인식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사회책임투자를 표방하는 연기금들 사이에서 국경을 초월한 연대의 흐름도 나타나는데, 주주행동주의를 표방하는 영국의 연기금 펀드 헤르메스(Hermes)와 캘퍼스는 자국 내에서 진행되는 초민족기업들의 기업지배구조 개선 활동에서 서로의 의사를 대리할 것이라 선언했다. 또한 연금기금의 사회책임투자 확대는 몇몇 국가들에서 연금관련 법안을 개정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영국(2000년), 호주(2002년), 스웨덴(2002년), 독일(2002년), 프랑스(2001년), 미국 캘리포니아(2002년) 등에서 연금법을 개정하여 연금기금 투자에 사회책임투자 기준을 적용하도록 규정했다.
일부 공적연금들이 적립기금을 활용하여 지역사회에서 유의미한 활동을 하는 것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이 평가가 사회책임투자 일반에 적용되는 것은 곤란하다. 대표적으로 캘퍼스는 한편으로 지역사회의 고용창출, 공적서비스 확대에 기여하는 것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2002년 연금법 개정에 사회책임투자를 반영한 후 캘퍼스가 개시한 활동은 아시아 신흥시장에 대한 투자였다. 더욱이 연기금 펀드의 사회책임투자는 장기적인 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에 수익성이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는데, 연기금의 금융화가 심화되면서 사회책임투자가 확대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물론 금융투자 일반이 가지는 고유한 위험성은 사회책임투자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또한 사회책임투자 일반이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통치성을 확대하는 방안 중 하나라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사실 한국에서도 사회책임투자가 그리 낯선 개념은 아닌데, 최근 재벌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사회공헌활동, 시민단체들이 주도했던 소액주주운동, 그리고 금융기관의 지원을 매개한 저소득층에 대한 소액대출사업이 넓은 의미에서 그와 연계된 흐름들이다. 이런 활동들이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초민족자본의 금융적 지배가 용이한 조건을 만들었다는 평가는 사회운동 내에서는 이미 일반적인 인식이다. 세계적으로 시야를 확장하면,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기구들이 사회책임투자를 매개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이들은 자조와 자활을 명분으로 제3세계의 발전을 지원하지만, 실제로는 제3세계를 금융화된 세계경제 더욱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연기금의 주인인 노동자들을 투자자, 이해당사자로 변모시킴으로써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대한 노동자운동의 비판적 인식을 침식한다.
대중투자문화의 확산과 소득불평등의 확대
연금기금의 금융화는 대중투자문화를 확산하여 신자유주의 금융화의 피해를 일선에서 감내하고 있는 노동자 민중을 투자자로 변모시킨다. 뿐만 아니라 사적 연금, 개인 보험상품의 확대와 투자문화의 확산은 광범위한 빈곤층을 형성하고 극단적인 소득격차를 만드는 주범이기도 하다. 이런 격차는 금융세계화 아래에서 소득 흐름의 중심이 임금소득에서 금융소득으로 변모하는 것에서 직접적으로 기인하는데, 주주자본주의의 첨병인 미국의 사례를 통해 이를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인구의 98%가 연간 총소득이 20만 달러 이하고, 연금을 포함한 임금이 이들의 소득 중 90.7%를 차지한다. 소득 구성에서 자본이익(capital gain)과 자본소득(capital income)이 차지하는 비중은 총소득 20만 달러의 문턱을 통과하면서 극적으로 상승한다. 상위 계층들이 차지하는 소득 비중은 1970년대에는 줄어들었지만 1980년대에 들어서 회복되었는데, 특히 부의 재집중이 일어나고 있는 미국의 최상위 404개 가계(인구비율로는 0.0002%)가 미국의 총 부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83년 1%에서 2003년 3%로 상승한다. 또한 20세기 말부터 금융 자산이 보급되면서 미국 가계가 직간접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주식 자산의 비중은 1989년 32%에서 2001년 52%로 증가한다. 이런 현상은 미국 가계의 가장 가난한 층으로까지 확장된다. 2003년에는 연기금과 개인연금 형태로 미국 가계가 보유하고 있는 금융자산이 총 금융자산 중 36%를 차지한다. 1980년 미국 가계 중 뮤추얼 펀드를 보유한 가계는 5.7%지만, 2003년 이 비율은 47.9%로 나타난다. 또한 연기금과 퇴직연금으로 얻는 소득은 오직 은퇴한 가계에 한해서, 약간의 기능만 발휘한다. 2000년에 연기금이 65세 이상 인구의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8%에 그쳤다. 게다가 소득이 많은 층은 적은 층보다 연기금에서 얻는 이익이 더 크다.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금융투자를 통해 얻는 소득의 비중이 모든 계층에서 확대되지만, 그 크기는 소수의 상위계층에게 집중되며, 연금은 소득확대에 그다지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분석을 수행한 뒤메닐과 레비는 '일하는 빈민', '일하는 자본가', '자본가 노동자', '두 개 층의 자본주의'와 같은 표현들을 통해 이러한 상황을 묘사했다.
한국에서도 소득분배구조는 지속적으로 악화되어 왔다. 2006년 3/4분기를 기준으로 최하위 소득계층인 1분위의 월평균 소득은 123만원, 2분위 223만원, 최상위 계층인 5분위는 656만원을 나타냈다. 전체 소득에서의 점유율은 하위 1, 2, 3분위를 합친 것이 상위 5분위와 같은 38%를 나타냈다. 한국에서 주식, 보험상품, 연금펀드 등을 활용한 금융투자는 아직 미국만큼 활성화되지 않았지만, 금융소득의 비중이 고소득 계층으로 갈수록 높아진다는 보고는 많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조사대상 가구의 81%가 연소득의 10~20% 정도를 재테크에 투자하고 있으며, 그 비중은 저축 및 적금 40%, 보험 상품 38%, 부동산 12%, 채권 0.4%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고소득층 일수록 주식투자 비중은 높았고, 전체 가구의 40% 정도가 주식투자로 이득을 얻었다. 한편, 최근 생명보험 가입자들의 상품 구매 형태에서도 이러한 양상이 분명히 나타나는데, 현재 전체 생명보험 가입자 중 연금저축성 상품이 71%, 사망 보험은 11%의 비중을 차지한다. 더욱이 연금저축 상품의 대부분은 변액연금 등의 투자형 상품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러한 보험 상품들은 주식시장 경기와 연동되어 해약과 가입의 유동성이 매우 크다.
이렇게 보았을 때, 연금기금의 금융화 확대를 저지하는 것은 연금 개혁에 대한 대응에 있어 이중, 삼중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첫째, 사적연금의 확대, 공적연금의 축소에 대한 대응의 의미가 있다. 둘째, 연금기금이 주식투자의 수익률과 직접 연계됨으로써 나타나는 노후소득의 불안정성을 방어하는 것이다. 셋째, 악화일로에 있는 현재의 소득 격차 확대에 대한 대응이기도 하다.
민주노동당 연금 개혁 대응에 대한 비판
민주노동당을 비롯하여 일부 운동세력이 주장하는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 사업에 대한 논쟁이 분분하다. 이 사업은 소득연대전략의 출발점이며 부유세 도입 방안, 조세개혁 등의 추가적인 정책이 제안된다. 또한 소득연대전략은 임금연대전략이나 성장전략과 함께 제시되는데, 일종의 자본주의 조직모델에 대한 하나의 구상인 듯하다. 여기서는 민주노동당의 국민연금 개혁방안, 보험료 지원 사업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보험료 지원사업의 내용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자. 중위임금 70%(91만원) 이하 저소득 노동자와 영세 지역가입자에 대해 향후 5년간 보험료 절반(노동자 본인부담금 전액, 지역가입자 절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 7%)을 지원한다. 8천 5억 원의 재원은 사업장 가입 노동자(미래급여 일부를 인하하여 3조원을 마련), 고소득자(현행 연금보험료 상한소득인 360만 원 이상 소득자에게 누진적 부가보험료 적용), 정부(국민연금 이자 미보전액 상환)가 공동으로 부담한다. 지원대상자인 저소득층은 5년 가입기간을 확보하고 노동시장 개선을 통해 연금수급권 최소 발생기간인 10년을 채우려는 자발적인 유인을 만드는 효과가 예상된다.
사실 노동자운동의 전략 차원의 논쟁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방안의 문제점은 민주노동당이 정부의 연금 개혁방안을 수용한 것 자체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앞서 지적했듯이, 세계적인 연금 개혁 추세나 한나라당의 기본 입장 등을 고려했을 때 기초연금의 추가적인 확대는 국민연금을 희생시키지 않고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12).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의 제안은 기초연금을 통해 최소 수준의 수당을 제공하고, 가입배제와 보험료 미납 등의 사각지대는 가입자 개인의 보험료 납부를 촉구하는 방향이다. 결국 국민연금 제도가 안고 있는 한계와 맹점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이중의 양보(국민연금 보장수준 후퇴, 보험료 지원 사업 참여)를 통해 오히려 제도의 맹점을 보완하는 방안인 것이다. 정부가 연금 개혁을 제안한 2003년 이후, 급여수준 제한을 전제로 보험료 소득상한선을 높이는 방안, 고용형태에 따른 가입제한을 대폭 완화하는 방안 등의 '현실적' 대안이 논의되어 왔는데, 이에도 훨씬 미달하는 방안인 것이다. 또한 여러 운동진영 매체들에서 지적되었듯이, 미래급여 일부를 인하하여 보험료를 지원하자는 발상은 국민연금의 개념이나 기본 원리에도 맞지 않다. 실현되지도 않은 소득을 현재의 보험료로 사용하겠다는 것은 개인 저축에서나 가능한 논리이다.
한편 민주노동당의 제안이 과연 계급적 해법, 노동자 민중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를 둘러싼 논쟁은 이번 합의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민주노동당이 논의를 조직하는 방식을 통해 이미 예고되었던 바라 하겠다. 민주노동당은 2003년의 대응에서는 운동진영과 공동의 목소리를 냈지만, 이후 구체적인 개혁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는 당내 논의로 일관했다. 운동진영 내에 다양한 견해들이 존재하고 민주노동당의 연금 개혁 방안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지만, 이런 논의에 책임 있게 임하지 않았다. 또한 보험료 지원 사업의 추진 방안이 노동조합 상층의 결의를 이끌어 내는 방식을 중심으로 제안되었는데, 이것이 다양하게 진단되는 민주노총의 위기를 극복하는 노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 기대하긴 힘들다. 오히려 민주노동당의 입장에 대한 찬반을 중심으로 노동자운동 내에서 분할구도가 형성되는 결과를 만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덧붙여 민주노동당이 의회전술을 중심적인 대응방식으로 삼은 것에서 기인하는 다른 차원의 비판지점이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저출산·고령화대책연석회의>에 참여한 일부 시민단체들과 함께 사회통합이라는 명목으로 정부의 연금 개혁 논의에 정당성을 제공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사실 복지개혁에서 이런 방식을 활용하는 것은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에서 시작해 <사회양극화해소국민연대>, <저출산·고령화대책연석회의>로 이어지는 노무현 정부의 주요 전략이었고, 때마다 운동진영 내의 논쟁을 가열시킨 요소였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의 연금 개혁에 대안 대응방식은 이후 운동진영이 지속되는 연금 개혁에 맞서 투쟁을 조직하는 데에 장애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재 연금 개혁을 둘러싸고 형성되어 있는 이데올로기 지형에 대해 지적하고자 한다. 이는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공무원연금 개혁에서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로, 마치 정규직의 지위, 일정한 임금수준, 노동조합의 존재 자체가 소득불평등을 만드는 주범처럼 오도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연금기금의 금융화는 노동자 민중 개개인을 금리소득과 직접 연계시켜 금융투자자로 변모시키는 방식을 띤다. 따라서 사각지대와 소득불평등의 근본적 원인, 사회보장에 대한 국가의 책임, 정부 연금 개혁의 근본적 문제 등 본질적인 쟁점에 대한 대중적 논의의 확대는, 현재에는 매우 어렵지만, 우회할 수 없다. 이를 우회한다면 노동자 민중을 처한 조건에 따라 이해와 갈등의 당사자로 만들어 분할을 유도하게 되고, 따라서 이후 계속될 노동자 민중에 대한 공격과 법제도의 후퇴는 피할 수 없다. 민주노동당의 소득연대전략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대중적 논의를 오히려 회피하고 있으며, 노동자운동에 대한 공격, 그를 통한 노동자 민중에 대한 분할 전략에 수렴되는 방향이다.
금융화 비판 기조를 중심으로 민중적 대안을 모색하자!
국민연금을 둘러싸고 이렇듯 논쟁이 과열되는 것은 국민연금 개혁을 기화로 제기되는 쟁점들이 그만큼 현대 자본주의가 처한 조건과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이해에 직접 연계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 문제는 공적연금뿐만 아니라, 사회보험제도 일반이 역사적으로 구축되어온 과정과 그것이 지탱될 수 있는 정치적·물적 토대와도 연관된다. 19세기까지 구빈법과 같은 극빈층(실업-半실업자 혹은 산업예비군)에 대한 구제제도를 가지고 있던 서구 국가들이 20세기에 사회보험을 발달시켰다. 이런 제도들은 노동력 재생산에 대한 국가 개입의 한 형태로, '케인즈주의'로 알려진 국가의 경제정책에 동반하는 것이었으며, 전후 자본주의 성장기가 그 물적 토대를 제공하였다. 그러한 물적토대와 국가의 개입력이 심각하게 침식된 현재, 공적연금 뿐 아니라,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사회보험 전반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진행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신자유주의 지배계급의 접근은 문제의 본질을 은폐할 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자본주의적' 해법도 될 수 없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연금기금의 금융화에 맞선 투쟁이 대응의 중심이 되어야 하고, 장기적으로 연금제도를 방어하는 투쟁을 넘어서는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제도 밖에 놓여 있는 현재 상황이 방어투쟁만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물론 사각지대 해소의 기본적 방향은 불안정 노동을 철폐하는 것이지만, 그렇게 사각지대를 해소한다 해도, 현재의 공적연금 제도 내로 공식적 고용관계 안에 있지 않은 사람들(주부, 비공식 부문 등)을 포괄하는 것은 어찌해도 불가능하다. 또한 부과방식으로 전환을 주장하는 것 역시 200조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적립금을 당장 해소하는 것이 간단치가 않다는 현실적 문제와 함께, 인구노령화 조건에서는 후세대의 부담 가중 등의 불안정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당연히 이런 고민은 현재의 제도를 변형하거나 보완하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어야 한다. 현 제도를 개조하는 접근 하에서는 현재 자본이 처한 위기를 보완하는 방식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고, 이는 노동자 민중에 대한 다른 방식의 부담을 전제할 것이다. 따라서 특정 형태의 제도를 고안하는 것이 당장의 직접적인 목적이 되지 않아도 무방하다. 오히려 국가에 대한 의존을 감축하고 노동자 민중의 통제가 가능한, 연대성에 입각한 대안적인 사회보장방안의 기본적 규범과 원리를 사고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에 대한 운동진영 내의 토론과 합의는 현 시점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또한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 확대 방안, 금융소득을 포함한 자산소득을 보험료 산정기준으로 삼는 방안, 공식적 고용관계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의 포괄방안 등 금융화 비판과 반(反)빈곤운동 과정에서 형성된 고민들이 대안적 방안을 모색하는 데 있어 단초를 제공할 것이다. 길게 본다면, 현행 제도 하에서 적립기금이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까지 3~40여 년의 시간이 남아 있는 셈이다. 짧게 본다면, 이번 임시국회에서 법을 개정하더라도 2008년 재정 추계를 계기로 신자유주의적 연금 개혁은 또 다시 추진될 것이다. 이러한 접근이 불가능하다거나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한다면,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반대하는 투쟁을 회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노동자 민중이 함께 지혜를 모으자.
1) 이에 대한 비판으로는 「저출산·고령화 위기 담론은 민중의 의제가 아니가」, 『사회화와 노동』, 316호를 참조하시오. 본문으로
2)현재의 추계에 따르면 2050년이 되면 한국의 노인부양비는 55.13%가 되어, 약 1.8명의 노동인구가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인구구성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노령화 문제는 한국뿐만 아니라 서구 대다수의 국가들에서 연금 개혁을 강제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현재는 15~64세 노동인구 9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고 있는데, 2050년이 되면 노동인구 4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체계가 된다고 한다. 특히 일본, 스페인, 이탈리아 등 인구노령화가 급속히 진전된 국가들의 경우 2040년이면 전체인구 중 노인비율이 45%를 넘어설 것으로 추계되고 있다. 본문으로
3) 물론 사각지대에 대한 이러한 접근은 경제활동 인구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 예를 들어 가정주부나 비공식 부문 노동자 등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사실 이들은 사회보험 제도의 맹목을 가장 분명히 드러내는데, 현재 사회보험 제도의 기본 틀을 넘어서는 대안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다. 현재의 공적연금은 노동시장에 진출해 있지 않은 여성에 대해 배우자 지위에 근거한 배우자급여, 유족연금 등을 두고 있으나 그것의 정치적 의미, 현실적 한계는 너무나 자명하다. 본문으로
4)각 정당의 국민연금 개혁방안과 합의내용
본문으로
5)이와는 별도로 공무원연금 개혁 시안의 경우 재정안정성 제고와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달성이 주요 목적인데, 연금 수급 퇴직자, 현공무원, 신규 공무원 각각에 대한 적용 내용을 달리했다. 퇴직자의 연금은 현행 유지, 현공무원과 신규공무원은 퇴직수당을 높이고 급여 산정 기준을 퇴직 전 3년 월평균에서 재직 전 기간 평균 월소득으로 변경하여 급여감소 효과가 있도록 했다. 특히 신규 공무원들에 대한 적용 안은 공무원연금-퇴직금-저축계정 신설의 3층 구조인데, 저축계정은 확정기여형, 매칭펀드(노동자, 정부 각 1%) 형태로 제안되었다. 이것은 국민연금을 비롯한 일반연금이 지향하는 다층체계 구상과 유사한 것으로 이후 추가적인 개혁이 진행될 것임을 암시는 것과 같다. 본문으로
6) 한편 국민연금 개혁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는 추진되는 정부 정책에 대해서도 몇 가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선 4대 사회보험 징수 통합방안이 작년에 확정되어 2009년 시행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징수업무로 통합의 대상이 한정된 만큼, 주요 명분은 징수율 제고, 행정적 효율성의 제고에 있다. 이로 인해 기존 3개 사회보험 공단(건강보험공단, 국민연금관리공단, 근로복지공단) 노동자들의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며, 장기적으로 사회보험에 대한 강제징수를 강화하는 방향이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2008년부터 근로소득보전세제(EITC)가 시행될 예정인데, 저소득층(특히 일용직 노동자)의 사회보험료 지원이 주요 목표 중 하나로 설정되어 있다. 또한 2006년 1월부터 퇴직연금법이 시행되고 있으며, 종합금융투자기관의 출현을 예고하며 연금기금의 금융화를 가속화 할 자본시장통합법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본문으로
7) 신자유주의 복지개혁 양상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이진숙, 「노무현 정부 복지개혁의 본질과 전망」, 『월간 사회운동』, 통권 66허, 2005년 7·8월을 참조하시오. 본문으로
8) 실제 OECD 등에서 발간하는 연금관련 보고서에서는 극빈층 노인들에게 월 3~4만원 지급되는 한국의 노령수당이 기초연금으로 분류되어 분석되기도 한다. 본문으로
9) 현재 국민연금의 급여산식에는 전체 가입자들의 평균소득을 반영하여 소득재분배가 가능하도록 한 균등부분과 가입자 개인의 소득에 연계되는 소득비례 부분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본문으로
10) 국민연금 개혁을 주제로 한 TV 토론회에 자주 등장하여 공적연금 축소, 민간보험 확대를 통한 다층체계를 제안하는 교수, 전문가 중 일부는 연금기금의 사회책임투자 확대를 주장하는 개혁 NGO의 일원이다. 본문으로
11) 이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김덕민, 「'장하성 펀드', 신자유주의, 그리고 신자유주의 거버넌스」, 『월간 사회운동』, 통권 69호, 2006년 11월을 참조하시오. 본문으로
12) 위 각주 4번에서 확인되듯이, 사실 민주노동당의 기본 입장 자체가 이미 그러하다. 본문으로
이른바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의 연금 개혁안이 작년 말 국회 상임위를 통과하여, 2월 임시국회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있다. 또한 국민연금 개혁과 연동되어 추진 중인 공무원연금 개혁은 발전위원회 시안이 제출되어 있다. 2003년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시작되던 당시, 운동진영은 정부의 개혁 구상이 재정고갈 위험만을 고려하여 사각지대나 낮은 보장성, 기금운용 체계·방식과 같은 긴급한 쟁점들을 오히려 후퇴시키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정치권 내의 논의가 급진전을 이루는 과정에서 이러한 입장은 일정한 분화·굴절을 겪었다. 민주노동당이 기초연금 도입을 전제로 한 국민연금 개혁안을 제안한 것과 정부 주관 하의 <저출산·고령화대책연석회의>1)에 참가한 일부 시민단체들이 정부의 개혁방안을 수용한 것이 주요한 계기였다. 이들은 정부의 개혁방안을 큰 틀에서 수용하는 가운데, 기초연금을 더욱 확대하는 방안이나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 사업 등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현재 국민연금 개혁을 둘러싼 논의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연금제도의 측면에서 보자면, 공적연금(국민연금)-사적연금(퇴직연금)-개인보험으로 구성되는, 세계은행과 같은 신자유주의 집행기관들이 장려하는 다층적 노후소득보장체계의 도입이 기정사실화되어 추진 중이다. 또한 운동진영 내적으로 민주노동당에서 제안하는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 사업을 둘러싸고 계급적 해법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이 불붙고 있다. 더욱이 보험료 지원 사업에 관해서는 소득연대전략, 사회연대전략 등을 표방하며 추가적인 정책대안이 제안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이 문제는 노동자운동의 전략을 둘러싼 논쟁의 한 축으로 확대되고 있다.
사회진보연대는 정부 연금 개혁의 본질이 막대한 적립금을 유지하여 연기금의 금융화를 더욱 확대하는 데 있으며, 이는 노동자 민중의 노후소득을 금융자본의 불안정성과 직접 연계시키는 매우 위험한 발상임을 중심적으로 비판해왔다. 따라서 정부가 추진하는 연금 개혁의 기만성을 폭로하며 현행 연금제도를 방어하는 투쟁을 진행하는 가운데, 실질적인 노후소득 보장이 가능한 민중적 대안을 모색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 글의 기본 목적은 이런 문제의식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데 있다. 2월 임시국회에서 실제 법이 개정되든 안 되든 상관없이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연금 개혁과 연금기금의 금융화를 확대하려는 시도는 지속될 것이므로, 연금 개혁의 본질과 대응 원칙에 대한 대중적 논의는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나아가 그 동안 연금 개혁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형성된 쟁점뿐만 아니라 현재의 논의지형과 향후 전개방향을 차분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로부터 민중적인 대안을 구성함에 있어서 사회운동이 지향해야 할 방향과 원칙에 대한 합의를 모아나갈 필요성을 제기하고자 한다.
국민연금 개혁 논의 과정과 쟁점
국민연금 개혁의 과정과 쟁점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우선 연금제도의 기본 형태를 살펴보도록 하자. 연금제도는 기금의 적립여부, 그리고 보험료와 급여액 중 어떤 것을 사전에 확정하고 가느냐를 주요 축으로 하여 구성된다. 보험 가입자의 보험료와 국고보조금, 이자 등을 꾸준히 축적한 적립금에서 급여를 지급하는 방식을 적립방식, 한해에 필요한 보험 급여액을 산정하여 이를 현세대 보험 가입자들이 납부하는 방식을 부과방식이라 한다. 한편 퇴직 후 받을 급여액을 처음부터 확정하는 방식을 확정급여형(DB, define benefit), 급여는 사전에 정해져 있지 않고 보험료만 정해 놓는 방식을 확정기여형(DC, define contribute)으로 구분한다. 이 두 가지 축을 상호 교차시켜 연금제도의 여러 형태를 도출하는데, 한국의 국민연금은 수정적립식, 확정급여형 체계다. 이 때 수정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순수 적립식은 논리 상 가입자가 납부한 보험료만큼만 되돌려 받는, 사실상 저축과 유사한 형태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납입한 보험료에 비해 약 2배 이상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고, 따라서 일정한 시점이 되면 적립금의 고갈이 불가피하다. 그러므로 연금 수급이 본격화되어 기금이 소진되면 부과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은 애초 국민연금 제도 도입 당시 기본 가정에 포함되어 있었다.
1998년 국민연금이 가입대상을 전 국민으로 확대하면서 기금운용법이 제정되었고, 이에 따라 5년 마다 재정추계를 통해 재정안정성을 점검하기로 하였다. 재정추계는 경제성장률, 임금상승률, 인구성장률 등을 고려하여 이루어지고, 2003년 재정추계 당시 정부는 추계 기간을 2070년까지로 설정하였다. 여기서 정부는 인구노령화2) 문제를 집중 부각시켰다. 공적연금은 적립방식이든 부과방식이든 현세대 노동자와 후세대 노동자 간의 소득이전이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현재의 낮은 출산율과 고령화 문제를 통해 연금 개혁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한 것이다. 재정추계 결과 국민연금 적립기금이 2036년까지는 계속 증가하여 약 1,715조(GDP대비 약 70%)에 달하지만, 이후 급격히 감소하여 2047년이면 적립금이 고갈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국민연금 개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런 정부의 재정추계 방식과 그에 근거한 개혁방안에 대해 운동진영은 정부 추계 기간이 지나치게 길고, 출산율과 노령화를 기계적으로 예측하는 추계방식을 절대화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이와 별도로 현행 국민연금 제도가 안고 있는 사각지대 문제, 낮은 보장성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사각지대 문제는 '전 국민 국민연금 시대'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매우 심각하다. 현재 국민연금의 사업장 가입자는 약 800만 명, 지역 가입자는 약 900만 명으로, 총 1,700만 명 정도가 국민연금에 가입해 있다. 전체 노동자 1,500만 명(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가입자가 약 120만 명) 중 600만 명가량이 일용직이나 특수고용직과 같이 고용형태 상의 제한으로 가입 자체를 못하거나, 영세사업장 노동자의 경우와 같이 보험료 부담으로 가입을 회피하고 있다. 이들이 가입 자체를 배제당하는 제도 상의 사각지대에 있다면, 가입은 가능하지만 소득이 낮아 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하는 실질적인 사각지대에 놓인 납부예외자는 전체 가입자의 42%에 이른다. 특히 지역가입자의 절반가량인 450만 명이 이에 해당한다. 현재 한국의 경제활동인구가 2,400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이중 실제 보험료를 납부하는 국민연금 가입자는 고작 1,000만 명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3). 그러나 사각지대 문제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보장수준 문제와 연결된다. 작년 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현재 노동자들이 한 직장에서 머무는 평균 기간은 6년 정도로 나타났다. 국민연금 현행제도 60% 급여율이나 개정안 50% 급여율은 모두 40년 가입을 조건으로 하는데, 불안정한 고용기간을 감안하면 실제 보장수준은 20% 안팎에 불과할 것이다.
당시 정치권 내에서는 정부 여당의 보험료를 높이고 급여율을 낮추는 개혁방안(모수적 개혁안)과 한나라당, 민주노동당의 기초연금 도입을 전제한 국민연금 조정 방안(구조적 개혁안)이 팽팽히 맞섰다. 정부 여당의 경우 재정안정화를 먼저 해결하고 사각지대, 보장성 등의 쟁점은 추후에 논의하자고 주장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은 기초연금 도입 자체에서는 주장이 일치했지만, 세부적인 내용이나 명분은 달랐다4). 한나라당 안은 이른바 '국민연금 8대 비밀'로 상징되는 국민연금에 대한 대중적 불신에 편승하여, 세간의 평처럼 노인들 표를 의식한 전형적인 인기영합식 정책에 불과했다. 민주노동당은 국민연금의 후퇴를 다소 감수하더라도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초연금 도입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논의지형이 유지되던 가운데 작년 여름 경 정부 여당이 기초노령연금 도입을 수용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는데, 합의된 개정법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민연금은 평균소득액의 60%인 연금 급여 수준을 2008년부터 50%로 낮추고, 보험료율은 현행 소득의 9%에서 2009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0.39% 포인트씩 높여 12.9%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한다. 그리고 기초연금은 2008년 1월부터 70세, 7월부터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60%를 대상으로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 소득의 5%의 급여(2008년 기준 8만9000원)를 지급한다. 이밖에 출산 시 최장 50개월, 군복무 기간 중 6개월은 보험료를 납입한 것으로 인정하는 크레딧 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변화가 있다5)6)
신자유주의적 연금 개혁의 기본가정과 본질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 국민연금의 수정적립방식은, 논리상으로 보자면, 미래의 일정 시점에 적립금이 고갈되어 급여가 중단되는 것이 아니라 고갈된 그 시점부터 부과방식으로 전환되어 그 해에 필요한 급여총액을 산정하고 가입자들이 나누어 납부하는 것이다. 만일 적립방식을 유지하면서 재정고갈을 피하고자 한다면, 주기적으로 재정을 추계하여 수익비를 저축과 가깝게 최대한 낮추고 급여율도 꾸준히 높여가는 방식을 택하는 수밖에 없다. 현재 정부가 제안하여 법 개정이 예정되어 있는 방안이 바로 이런 방식이다. 이에 대해 사회진보연대를 비롯한 운동진영 일각에서는 애초의 제도 설계의 전제도 그러한 바, 장기적으로는 국민연금을 부과방식으로 전환할 것을 주장했는데, 여기서 이 주장의 핵심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 핵심은 국민연금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급여율과 보험료율을 조정하는 데 있어 부과방식이 적립방식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정부 추계에 근거해 2045년 즈음을 바라보며 부과방식으로 전환을 추진했을 때, 보험료율의 인상이나 급여율 하락이 불필요한가? 현재 연금 개혁을 강제하는 객관적 조건과 연금제도의 기본 틀이 유지된다면 부과방식 하에서도 이는 불가피하다.
적립방식이든 부과방식이든 연금은 급여를 지급하는 시점의 노동인구의 수와 그들의 부담능력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구노령화가 객관적 조건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단지 부양의무를 가진 집단과 부양을 받아야 할 집단의 구성비 문제로 단순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거기에는 노동기간, 퇴직기간, 생산성, 임금률 등의 다양한 변수가 연계되어 있다. 여기서 노무현 정부를 비롯한 신자유주의 지배계급의 연금 개혁의 본질이 확인된다. 인구노령화를 부르짖으며 연금 개혁을 추진하지만, 문제의 해법에서는 전혀 다른 행보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노동기간과 퇴직기간의 불균형 요인을 해결하고 실업률을 낮추는 것은 인구노령화로 인한 문제를 해소하는 가장 현실 가능한 대안 중의 하나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정책개혁 하에서 고용추세는 이와 정반대의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또한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적 방식의 변종들도 여러 형태로 나타났다. 노르웨이를 비롯한 일부 북유럽 국가들은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조기퇴직을 장려하는 정책을 폈는데, 그로써 연금과 실업보험의 재정은 악화되었고, 노동시장에 새롭게 진입한 청년세대의 일자리는 대부분 비정규직이었다. 결국 불안정노동이 확대되고 신자유주의적 연금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토양이 강화되는 결과를 만든 것이다. 따라서 공적연금 축소와 민간보험 확대로 나타나는 신자유주의적 연금 개혁은 인구고령화 시대에 어쩔 수 없는 선택지가 아니다. 오히려 공적연금이 담당해온 노후소득보장체계와 거기서 국가가 담당해 온 보충적 역할을 포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연금제도를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자원으로 적극 활용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1990년대 이후 시행된 많은 국가들의 연금 개혁은 세계은행이 제시하는 방안을 하나의 규범처럼 수용했다. 세계은행은 1980년대 제3세계 국가들의 연금운용에 관여한 경험을 토대로, 1994년 「고령기 위기의 회피」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여기서 담고 있는 내용이 익히 알려진 공적연금-사적연금-개인보험의 3층 체계 방안이다. 재정안정을 위해 정부부담을 축소하고 위험부담을 분산시킨다는 명문으로, 공적연금의 급여수준을 최소화하고 사적연금의 가입을 국가가 강제함으로써 사적연금 가입의 유인을 높이는 구상이었다. 1990년대 많은 국가들의 연금 개혁이 이와 같은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2005년 세계은행은 두 번째 보고서 「21세기 노인 소득지원」을 발간했는데, 그 주요 내용은 3층 체계에 더해 빈곤층, 비정규직 등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위한 0층(사회부조 차원의 기초연금)을 신설할 것과 1층 공적연금의 소득비례 부분을 강화할 것, 그리고 4층을 신설해 빈곤층 노인에 대한 주택, 의료서비스를 강화하고 가족 내 부양프로그램을 강화하는 것이다. 1994년 개혁에 대한 평가를 통해 추가적인 개혁방안을 내놓은 것인데, 공적·사적 연금 모두에서 배제되는 극빈계층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할 것과, 사적부문 활용방안을 더욱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세계은행의 새로운 권고안은 극도의 빈곤이 사회적 위험요인이 되지 않도록 적정수준에서 생활보장을 제공하는 소득지원 정책의 확대라는 신자유주의 복지개혁의 전반적인 방향7)과 부합한다.
이렇게 볼 때 현재 한국의 국민연금 개혁은 세계은행의 1994년, 2005년 보고서에서 제안하는 개혁방안이 동시에 추진되는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추가적인 개혁이 진행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혁안에 포함된 기초연금은 사실 그 대상이나 급여수준 면에서 사회부조 수준을 넘지 못한다. 세계은행이 제안한 0층의 기초연금도 스웨덴과 같은 국가에서 개혁 이전에 시행하던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고, 공적부조와 노령수당 등을 모두 포함한다.8) 또한 국민연금의 급여 삭감분이 기초연금 도입으로 상쇄될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국민연금 수급 대상자들 대부분은 기초연금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급여하락은 불가피하다. 이번 연금 개혁이 기초연금의 도입과 국민연금의 후퇴를 교환하는 방식이었듯이, 현재와 같은 다층적 연금구조 하에서 기초연금을 확대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오히려 2008년, 2013년 재정추계를 통해 공적연금을 더욱 축소하거나, 세계은행의 새로운 권고안처럼 공적연금에서 균등부분을 제거하고 소득비례 부분만을 남기는 방향9)의 개혁이 추진될 것이 분명하다.
연금기금 금융화 확대의 논리: 안정적이고 공익적인 금융투자?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적 연금 개혁이 추진되는 근본적인 배경에는 금융자본의 확장이 놓여 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각종 연기금은 금융투자의 원천인데, 공적연금 적립기금과 적립식 민간보험의 기금을 확대하여 금융투자를 활성화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연기금은 뮤추얼펀드, 보험회사와 함께 3대 기관투자자를 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연금을 부과방식으로 전환하자는 주장의 핵심은 연금기금의 금융화를 저지하는 투쟁이 연금 개혁에 맞선 투쟁의 주요한 한 축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정부 연금 개혁 방안은 무리한 재정추계를 동원해가면서까지 적립방식의 유지를 고집했는데, 국민연금 적립금 규모는 2006년 10월 기준 185조원, 개정법안의 추계에 근거하면 2054년에 5,820조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액수가 된다. 이 엄청난 규모의 기금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당연히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는데, 해외 투자자들과 외신은 한국 연금 개혁의 향방을 중국의 저축율과 함께 아시아의 주식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핵심적인 문제로 보고 엄청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표1> 국민연금 투자 내역 (단위: 억)
구분 | 2001 | 2002 | 2003 | 2004 | 2005 | 2006(6월 기준) |
---|---|---|---|---|---|---|
공공부문 | 307,846 | 301,989 | 152,512 | 63,770 | 0 | 0 |
복지부문 | 6,325 | 5,259 | 4,397 | 3,752 | 3,145 | 2,753(0.2%) |
금융부문 | 442,232 | 620,489 | 965,770 | 1,261,851 | 1,556,150 | 1,739,562(99%) |
기타부문 | 2,687 | 2,816 | 2,998 | 3,396 | 3,532 | 14,949(0.8%) |
계 | 759,091 | 930,552 | 1,125,677 | 1,332,769 | 1,562,828 | 1,757,263(100%) |
* 공공부문 : 공공자금, 국채 등
* 복지부분 : 국민주택기금채, 복지타운, 보육시설 대여, 노인복지 대여 등
* 금융부분 : 채권, 주식, 대체투자, 단기 자금 등
정부 연금기금의 운용은 크게 공공부문, 복지부문, 금융부문으로 나뉘는데, <표1>은 2001년 이후 투자내역이다. 2001년 당시에도 금융투자의 비중은 상당히 컸지만, 2006년이 되면 압도적으로 커진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금융투자의 세부 내용은, 2006년을 기준으로, 주식투자 11%, 채권투자 약 87%이다. 정부나 적립방식을 통한 기금 수익률 제고를 주장하는 논자들은 주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 평가되는 채권에 대한 투자 비중이 높다는 점을 근거로 연금기금의 금융화를 비판하는 논리를 반박한다. 그러나 주식투자가 전체 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2001년 3%에서 2006년 현재 11%로 급성장했다. 더욱이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기금관리기본법이 2004년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현재 전체 연기금 약 250조 가운데 국민연금 기금이 180조원으로 가장 비중이 크기 때문에, 이 법은 사실상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확대를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또한 2004년 정부의 「중장기 국민연금기금 운용 마스터플랜」에는 해외투자의 비중을 2009년 11.7%, 2014년 25%로 늘리겠다는 구상이 담겨있다. 물론 여기까지는 공적연금인 국민연금기금에만 한정된 얘기다. 2006년부터 시행된 퇴직연금은, 아직 시행초기지만, 각종 개인 보험 상품의 활성화와 함께 주식투자의 원천이 될 것이다. 벌써부터 퇴직연금 주식투자에 대한 비과세를 비롯하여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을 확대하기 위한 제도적 유인을 요구하는 민간 보험업계의 요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연기금 금융화의 확대만큼 그를 옹호하는 논리의 스팩트럼 역시 다양해지고 있다. 신자유주의 지배세력들은 금융시장 활성화가 경제성장의 동력이 될 것이라는 신자유주의 교리를 반복하는 가운데, 투기성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한국 주식시장을 방어하기 위해 연금기금이 활용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사실상 연기금이 금융시장의 투기성과 휘발성으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역으로 고백하는 것일 뿐이다.
이 외에도 최근 신자유주의 개혁성향의 일부 NGO10)들은 연금기금의 사회책임투자(SRI, social reponsibility investment)11)를 제안한다. 또한 일부 사회운동 세력들도 공공부문, 사회복지 부문에 대한 투자 확대를 통해 연금기금의 공공적 활용을 주장하던 연장에서 이런 고민을 진행 중이다. 사회책임투자는 세 가지 영역이 함께 한다고 얘기되는데, 투자상품과 기업을 선별하는 펀드 주주권리를 행사하는 주주운동 저소득 공동체나 지역 개발을 위해 투자하는 공동체 투자 또는 지역사회개발금융이 그 3대 축이다. 노동기준과 환경에 대한 고려, 지역사회에 대한 수익환원 등의 '공익적' 기준에 따라 투자대상을 선별한다는 사회책임투자는 1990년대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활발해졌고, 2000년대 들어서는 연금기금 투자 방안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 퇴직연금 펀드들은 유럽 사회책임투자 주식시장의 확대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세계적으로 가장 큰 적립금을 보유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기금(캘퍼스, CalPERS)은 공적연금 분야에서 사회책임투자의 대명사로 인식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사회책임투자를 표방하는 연기금들 사이에서 국경을 초월한 연대의 흐름도 나타나는데, 주주행동주의를 표방하는 영국의 연기금 펀드 헤르메스(Hermes)와 캘퍼스는 자국 내에서 진행되는 초민족기업들의 기업지배구조 개선 활동에서 서로의 의사를 대리할 것이라 선언했다. 또한 연금기금의 사회책임투자 확대는 몇몇 국가들에서 연금관련 법안을 개정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영국(2000년), 호주(2002년), 스웨덴(2002년), 독일(2002년), 프랑스(2001년), 미국 캘리포니아(2002년) 등에서 연금법을 개정하여 연금기금 투자에 사회책임투자 기준을 적용하도록 규정했다.
일부 공적연금들이 적립기금을 활용하여 지역사회에서 유의미한 활동을 하는 것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이 평가가 사회책임투자 일반에 적용되는 것은 곤란하다. 대표적으로 캘퍼스는 한편으로 지역사회의 고용창출, 공적서비스 확대에 기여하는 것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2002년 연금법 개정에 사회책임투자를 반영한 후 캘퍼스가 개시한 활동은 아시아 신흥시장에 대한 투자였다. 더욱이 연기금 펀드의 사회책임투자는 장기적인 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에 수익성이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는데, 연기금의 금융화가 심화되면서 사회책임투자가 확대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물론 금융투자 일반이 가지는 고유한 위험성은 사회책임투자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또한 사회책임투자 일반이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통치성을 확대하는 방안 중 하나라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사실 한국에서도 사회책임투자가 그리 낯선 개념은 아닌데, 최근 재벌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사회공헌활동, 시민단체들이 주도했던 소액주주운동, 그리고 금융기관의 지원을 매개한 저소득층에 대한 소액대출사업이 넓은 의미에서 그와 연계된 흐름들이다. 이런 활동들이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초민족자본의 금융적 지배가 용이한 조건을 만들었다는 평가는 사회운동 내에서는 이미 일반적인 인식이다. 세계적으로 시야를 확장하면,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기구들이 사회책임투자를 매개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이들은 자조와 자활을 명분으로 제3세계의 발전을 지원하지만, 실제로는 제3세계를 금융화된 세계경제 더욱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연기금의 주인인 노동자들을 투자자, 이해당사자로 변모시킴으로써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대한 노동자운동의 비판적 인식을 침식한다.
대중투자문화의 확산과 소득불평등의 확대
연금기금의 금융화는 대중투자문화를 확산하여 신자유주의 금융화의 피해를 일선에서 감내하고 있는 노동자 민중을 투자자로 변모시킨다. 뿐만 아니라 사적 연금, 개인 보험상품의 확대와 투자문화의 확산은 광범위한 빈곤층을 형성하고 극단적인 소득격차를 만드는 주범이기도 하다. 이런 격차는 금융세계화 아래에서 소득 흐름의 중심이 임금소득에서 금융소득으로 변모하는 것에서 직접적으로 기인하는데, 주주자본주의의 첨병인 미국의 사례를 통해 이를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인구의 98%가 연간 총소득이 20만 달러 이하고, 연금을 포함한 임금이 이들의 소득 중 90.7%를 차지한다. 소득 구성에서 자본이익(capital gain)과 자본소득(capital income)이 차지하는 비중은 총소득 20만 달러의 문턱을 통과하면서 극적으로 상승한다. 상위 계층들이 차지하는 소득 비중은 1970년대에는 줄어들었지만 1980년대에 들어서 회복되었는데, 특히 부의 재집중이 일어나고 있는 미국의 최상위 404개 가계(인구비율로는 0.0002%)가 미국의 총 부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83년 1%에서 2003년 3%로 상승한다. 또한 20세기 말부터 금융 자산이 보급되면서 미국 가계가 직간접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주식 자산의 비중은 1989년 32%에서 2001년 52%로 증가한다. 이런 현상은 미국 가계의 가장 가난한 층으로까지 확장된다. 2003년에는 연기금과 개인연금 형태로 미국 가계가 보유하고 있는 금융자산이 총 금융자산 중 36%를 차지한다. 1980년 미국 가계 중 뮤추얼 펀드를 보유한 가계는 5.7%지만, 2003년 이 비율은 47.9%로 나타난다. 또한 연기금과 퇴직연금으로 얻는 소득은 오직 은퇴한 가계에 한해서, 약간의 기능만 발휘한다. 2000년에 연기금이 65세 이상 인구의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8%에 그쳤다. 게다가 소득이 많은 층은 적은 층보다 연기금에서 얻는 이익이 더 크다.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금융투자를 통해 얻는 소득의 비중이 모든 계층에서 확대되지만, 그 크기는 소수의 상위계층에게 집중되며, 연금은 소득확대에 그다지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분석을 수행한 뒤메닐과 레비는 '일하는 빈민', '일하는 자본가', '자본가 노동자', '두 개 층의 자본주의'와 같은 표현들을 통해 이러한 상황을 묘사했다.
한국에서도 소득분배구조는 지속적으로 악화되어 왔다. 2006년 3/4분기를 기준으로 최하위 소득계층인 1분위의 월평균 소득은 123만원, 2분위 223만원, 최상위 계층인 5분위는 656만원을 나타냈다. 전체 소득에서의 점유율은 하위 1, 2, 3분위를 합친 것이 상위 5분위와 같은 38%를 나타냈다. 한국에서 주식, 보험상품, 연금펀드 등을 활용한 금융투자는 아직 미국만큼 활성화되지 않았지만, 금융소득의 비중이 고소득 계층으로 갈수록 높아진다는 보고는 많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조사대상 가구의 81%가 연소득의 10~20% 정도를 재테크에 투자하고 있으며, 그 비중은 저축 및 적금 40%, 보험 상품 38%, 부동산 12%, 채권 0.4%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고소득층 일수록 주식투자 비중은 높았고, 전체 가구의 40% 정도가 주식투자로 이득을 얻었다. 한편, 최근 생명보험 가입자들의 상품 구매 형태에서도 이러한 양상이 분명히 나타나는데, 현재 전체 생명보험 가입자 중 연금저축성 상품이 71%, 사망 보험은 11%의 비중을 차지한다. 더욱이 연금저축 상품의 대부분은 변액연금 등의 투자형 상품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러한 보험 상품들은 주식시장 경기와 연동되어 해약과 가입의 유동성이 매우 크다.
이렇게 보았을 때, 연금기금의 금융화 확대를 저지하는 것은 연금 개혁에 대한 대응에 있어 이중, 삼중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첫째, 사적연금의 확대, 공적연금의 축소에 대한 대응의 의미가 있다. 둘째, 연금기금이 주식투자의 수익률과 직접 연계됨으로써 나타나는 노후소득의 불안정성을 방어하는 것이다. 셋째, 악화일로에 있는 현재의 소득 격차 확대에 대한 대응이기도 하다.
민주노동당 연금 개혁 대응에 대한 비판
민주노동당을 비롯하여 일부 운동세력이 주장하는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 사업에 대한 논쟁이 분분하다. 이 사업은 소득연대전략의 출발점이며 부유세 도입 방안, 조세개혁 등의 추가적인 정책이 제안된다. 또한 소득연대전략은 임금연대전략이나 성장전략과 함께 제시되는데, 일종의 자본주의 조직모델에 대한 하나의 구상인 듯하다. 여기서는 민주노동당의 국민연금 개혁방안, 보험료 지원 사업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보험료 지원사업의 내용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자. 중위임금 70%(91만원) 이하 저소득 노동자와 영세 지역가입자에 대해 향후 5년간 보험료 절반(노동자 본인부담금 전액, 지역가입자 절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 7%)을 지원한다. 8천 5억 원의 재원은 사업장 가입 노동자(미래급여 일부를 인하하여 3조원을 마련), 고소득자(현행 연금보험료 상한소득인 360만 원 이상 소득자에게 누진적 부가보험료 적용), 정부(국민연금 이자 미보전액 상환)가 공동으로 부담한다. 지원대상자인 저소득층은 5년 가입기간을 확보하고 노동시장 개선을 통해 연금수급권 최소 발생기간인 10년을 채우려는 자발적인 유인을 만드는 효과가 예상된다.
사실 노동자운동의 전략 차원의 논쟁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방안의 문제점은 민주노동당이 정부의 연금 개혁방안을 수용한 것 자체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앞서 지적했듯이, 세계적인 연금 개혁 추세나 한나라당의 기본 입장 등을 고려했을 때 기초연금의 추가적인 확대는 국민연금을 희생시키지 않고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12).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의 제안은 기초연금을 통해 최소 수준의 수당을 제공하고, 가입배제와 보험료 미납 등의 사각지대는 가입자 개인의 보험료 납부를 촉구하는 방향이다. 결국 국민연금 제도가 안고 있는 한계와 맹점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이중의 양보(국민연금 보장수준 후퇴, 보험료 지원 사업 참여)를 통해 오히려 제도의 맹점을 보완하는 방안인 것이다. 정부가 연금 개혁을 제안한 2003년 이후, 급여수준 제한을 전제로 보험료 소득상한선을 높이는 방안, 고용형태에 따른 가입제한을 대폭 완화하는 방안 등의 '현실적' 대안이 논의되어 왔는데, 이에도 훨씬 미달하는 방안인 것이다. 또한 여러 운동진영 매체들에서 지적되었듯이, 미래급여 일부를 인하하여 보험료를 지원하자는 발상은 국민연금의 개념이나 기본 원리에도 맞지 않다. 실현되지도 않은 소득을 현재의 보험료로 사용하겠다는 것은 개인 저축에서나 가능한 논리이다.
한편 민주노동당의 제안이 과연 계급적 해법, 노동자 민중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를 둘러싼 논쟁은 이번 합의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민주노동당이 논의를 조직하는 방식을 통해 이미 예고되었던 바라 하겠다. 민주노동당은 2003년의 대응에서는 운동진영과 공동의 목소리를 냈지만, 이후 구체적인 개혁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는 당내 논의로 일관했다. 운동진영 내에 다양한 견해들이 존재하고 민주노동당의 연금 개혁 방안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지만, 이런 논의에 책임 있게 임하지 않았다. 또한 보험료 지원 사업의 추진 방안이 노동조합 상층의 결의를 이끌어 내는 방식을 중심으로 제안되었는데, 이것이 다양하게 진단되는 민주노총의 위기를 극복하는 노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 기대하긴 힘들다. 오히려 민주노동당의 입장에 대한 찬반을 중심으로 노동자운동 내에서 분할구도가 형성되는 결과를 만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덧붙여 민주노동당이 의회전술을 중심적인 대응방식으로 삼은 것에서 기인하는 다른 차원의 비판지점이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저출산·고령화대책연석회의>에 참여한 일부 시민단체들과 함께 사회통합이라는 명목으로 정부의 연금 개혁 논의에 정당성을 제공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사실 복지개혁에서 이런 방식을 활용하는 것은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에서 시작해 <사회양극화해소국민연대>, <저출산·고령화대책연석회의>로 이어지는 노무현 정부의 주요 전략이었고, 때마다 운동진영 내의 논쟁을 가열시킨 요소였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의 연금 개혁에 대안 대응방식은 이후 운동진영이 지속되는 연금 개혁에 맞서 투쟁을 조직하는 데에 장애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재 연금 개혁을 둘러싸고 형성되어 있는 이데올로기 지형에 대해 지적하고자 한다. 이는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공무원연금 개혁에서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로, 마치 정규직의 지위, 일정한 임금수준, 노동조합의 존재 자체가 소득불평등을 만드는 주범처럼 오도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연금기금의 금융화는 노동자 민중 개개인을 금리소득과 직접 연계시켜 금융투자자로 변모시키는 방식을 띤다. 따라서 사각지대와 소득불평등의 근본적 원인, 사회보장에 대한 국가의 책임, 정부 연금 개혁의 근본적 문제 등 본질적인 쟁점에 대한 대중적 논의의 확대는, 현재에는 매우 어렵지만, 우회할 수 없다. 이를 우회한다면 노동자 민중을 처한 조건에 따라 이해와 갈등의 당사자로 만들어 분할을 유도하게 되고, 따라서 이후 계속될 노동자 민중에 대한 공격과 법제도의 후퇴는 피할 수 없다. 민주노동당의 소득연대전략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대중적 논의를 오히려 회피하고 있으며, 노동자운동에 대한 공격, 그를 통한 노동자 민중에 대한 분할 전략에 수렴되는 방향이다.
금융화 비판 기조를 중심으로 민중적 대안을 모색하자!
국민연금을 둘러싸고 이렇듯 논쟁이 과열되는 것은 국민연금 개혁을 기화로 제기되는 쟁점들이 그만큼 현대 자본주의가 처한 조건과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이해에 직접 연계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 문제는 공적연금뿐만 아니라, 사회보험제도 일반이 역사적으로 구축되어온 과정과 그것이 지탱될 수 있는 정치적·물적 토대와도 연관된다. 19세기까지 구빈법과 같은 극빈층(실업-半실업자 혹은 산업예비군)에 대한 구제제도를 가지고 있던 서구 국가들이 20세기에 사회보험을 발달시켰다. 이런 제도들은 노동력 재생산에 대한 국가 개입의 한 형태로, '케인즈주의'로 알려진 국가의 경제정책에 동반하는 것이었으며, 전후 자본주의 성장기가 그 물적 토대를 제공하였다. 그러한 물적토대와 국가의 개입력이 심각하게 침식된 현재, 공적연금 뿐 아니라,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사회보험 전반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진행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신자유주의 지배계급의 접근은 문제의 본질을 은폐할 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자본주의적' 해법도 될 수 없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연금기금의 금융화에 맞선 투쟁이 대응의 중심이 되어야 하고, 장기적으로 연금제도를 방어하는 투쟁을 넘어서는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제도 밖에 놓여 있는 현재 상황이 방어투쟁만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물론 사각지대 해소의 기본적 방향은 불안정 노동을 철폐하는 것이지만, 그렇게 사각지대를 해소한다 해도, 현재의 공적연금 제도 내로 공식적 고용관계 안에 있지 않은 사람들(주부, 비공식 부문 등)을 포괄하는 것은 어찌해도 불가능하다. 또한 부과방식으로 전환을 주장하는 것 역시 200조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적립금을 당장 해소하는 것이 간단치가 않다는 현실적 문제와 함께, 인구노령화 조건에서는 후세대의 부담 가중 등의 불안정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당연히 이런 고민은 현재의 제도를 변형하거나 보완하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어야 한다. 현 제도를 개조하는 접근 하에서는 현재 자본이 처한 위기를 보완하는 방식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고, 이는 노동자 민중에 대한 다른 방식의 부담을 전제할 것이다. 따라서 특정 형태의 제도를 고안하는 것이 당장의 직접적인 목적이 되지 않아도 무방하다. 오히려 국가에 대한 의존을 감축하고 노동자 민중의 통제가 가능한, 연대성에 입각한 대안적인 사회보장방안의 기본적 규범과 원리를 사고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에 대한 운동진영 내의 토론과 합의는 현 시점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또한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 확대 방안, 금융소득을 포함한 자산소득을 보험료 산정기준으로 삼는 방안, 공식적 고용관계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의 포괄방안 등 금융화 비판과 반(反)빈곤운동 과정에서 형성된 고민들이 대안적 방안을 모색하는 데 있어 단초를 제공할 것이다. 길게 본다면, 현행 제도 하에서 적립기금이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까지 3~40여 년의 시간이 남아 있는 셈이다. 짧게 본다면, 이번 임시국회에서 법을 개정하더라도 2008년 재정 추계를 계기로 신자유주의적 연금 개혁은 또 다시 추진될 것이다. 이러한 접근이 불가능하다거나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한다면,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반대하는 투쟁을 회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노동자 민중이 함께 지혜를 모으자.
1) 이에 대한 비판으로는 「저출산·고령화 위기 담론은 민중의 의제가 아니가」, 『사회화와 노동』, 316호를 참조하시오. 본문으로
2)현재의 추계에 따르면 2050년이 되면 한국의 노인부양비는 55.13%가 되어, 약 1.8명의 노동인구가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인구구성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노령화 문제는 한국뿐만 아니라 서구 대다수의 국가들에서 연금 개혁을 강제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현재는 15~64세 노동인구 9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고 있는데, 2050년이 되면 노동인구 4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체계가 된다고 한다. 특히 일본, 스페인, 이탈리아 등 인구노령화가 급속히 진전된 국가들의 경우 2040년이면 전체인구 중 노인비율이 45%를 넘어설 것으로 추계되고 있다. 본문으로
3) 물론 사각지대에 대한 이러한 접근은 경제활동 인구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 예를 들어 가정주부나 비공식 부문 노동자 등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사실 이들은 사회보험 제도의 맹목을 가장 분명히 드러내는데, 현재 사회보험 제도의 기본 틀을 넘어서는 대안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다. 현재의 공적연금은 노동시장에 진출해 있지 않은 여성에 대해 배우자 지위에 근거한 배우자급여, 유족연금 등을 두고 있으나 그것의 정치적 의미, 현실적 한계는 너무나 자명하다. 본문으로
4)각 정당의 국민연금 개혁방안과 합의내용
현행 | 열린우리당 | 민주노동당 | 한나라당 | 3당합의 | |
급여율 | 60% | 50% | 40% | 20% | 50% |
보험료율 | 9% | 9% | 9% | 7% | 9-12.9%까지 점진적 인상 |
기초(노령)연금 65세 이상 | 없음 | 노인 60% 7-10만원 | 노인 80% 8만 3천원 | 노인 100% 월14만원 | 대상 노인 60% 월 8만 3천원 |
5)이와는 별도로 공무원연금 개혁 시안의 경우 재정안정성 제고와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달성이 주요 목적인데, 연금 수급 퇴직자, 현공무원, 신규 공무원 각각에 대한 적용 내용을 달리했다. 퇴직자의 연금은 현행 유지, 현공무원과 신규공무원은 퇴직수당을 높이고 급여 산정 기준을 퇴직 전 3년 월평균에서 재직 전 기간 평균 월소득으로 변경하여 급여감소 효과가 있도록 했다. 특히 신규 공무원들에 대한 적용 안은 공무원연금-퇴직금-저축계정 신설의 3층 구조인데, 저축계정은 확정기여형, 매칭펀드(노동자, 정부 각 1%) 형태로 제안되었다. 이것은 국민연금을 비롯한 일반연금이 지향하는 다층체계 구상과 유사한 것으로 이후 추가적인 개혁이 진행될 것임을 암시는 것과 같다. 본문으로
6) 한편 국민연금 개혁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는 추진되는 정부 정책에 대해서도 몇 가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선 4대 사회보험 징수 통합방안이 작년에 확정되어 2009년 시행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징수업무로 통합의 대상이 한정된 만큼, 주요 명분은 징수율 제고, 행정적 효율성의 제고에 있다. 이로 인해 기존 3개 사회보험 공단(건강보험공단, 국민연금관리공단, 근로복지공단) 노동자들의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며, 장기적으로 사회보험에 대한 강제징수를 강화하는 방향이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2008년부터 근로소득보전세제(EITC)가 시행될 예정인데, 저소득층(특히 일용직 노동자)의 사회보험료 지원이 주요 목표 중 하나로 설정되어 있다. 또한 2006년 1월부터 퇴직연금법이 시행되고 있으며, 종합금융투자기관의 출현을 예고하며 연금기금의 금융화를 가속화 할 자본시장통합법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본문으로
7) 신자유주의 복지개혁 양상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이진숙, 「노무현 정부 복지개혁의 본질과 전망」, 『월간 사회운동』, 통권 66허, 2005년 7·8월을 참조하시오. 본문으로
8) 실제 OECD 등에서 발간하는 연금관련 보고서에서는 극빈층 노인들에게 월 3~4만원 지급되는 한국의 노령수당이 기초연금으로 분류되어 분석되기도 한다. 본문으로
9) 현재 국민연금의 급여산식에는 전체 가입자들의 평균소득을 반영하여 소득재분배가 가능하도록 한 균등부분과 가입자 개인의 소득에 연계되는 소득비례 부분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본문으로
10) 국민연금 개혁을 주제로 한 TV 토론회에 자주 등장하여 공적연금 축소, 민간보험 확대를 통한 다층체계를 제안하는 교수, 전문가 중 일부는 연금기금의 사회책임투자 확대를 주장하는 개혁 NGO의 일원이다. 본문으로
11) 이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김덕민, 「'장하성 펀드', 신자유주의, 그리고 신자유주의 거버넌스」, 『월간 사회운동』, 통권 69호, 2006년 11월을 참조하시오. 본문으로
12) 위 각주 4번에서 확인되듯이, 사실 민주노동당의 기본 입장 자체가 이미 그러하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