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① 한국여성운동사] 한국여성운동의 과거, 현재, 미래
기획연재를 시작하며
여성운동의 역사를 발굴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운동에 준거가 될 수 있는 역사적 전통들을 되살리고 과거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역사로부터 배운다는 의미를 갖는다. 한국여성운동사 평가 작업은 2005년에 만들어진 '한국여성운동사 연구모임'의 공동세미나와 토론을 거쳐, 연구모임이 제출한 토론문을 가지고 2006년 진행된 사회진보연대 공동토론의 과정 속에서 진전되었고 아직도 이 작업은 현재진행중이다. 우리가 한국여성운동사를 평가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저항하는 새로운 여성운동 형성'을 목표로, 여성운동의 이념적, 실천적 과제를 모색하고자 하는 활동의 일환이다.
한국여성운동사 평가 기획은 올해 1987년 민중항쟁 20년, IMF 위기 10년을 맞이하는 '진보적 여성운동'의 역사와 현재적 대응에 대한 평가를 주요한 내용으로 담고 있다. 자본주의 위기는 여성들에게 그 위기극복비용을 전가시키고 있다. 자본주의의 위기극복을 위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노동의 불안정화(노동의 여성화), 빈곤의 여성화, 여성의 이중부담의 증가라는 '여성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녀평등을 목표로 정부가 여성정책을 수립, 집행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성주류화' 전략에 대한 평가를, '진보적 여성운동'으로서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의 출범과 그 변화, 이를 넘어서고자 한 운동들에 대한 평가를 통해 할 것이다. '한국여성운동의 과거, 현재, 미래' 기획은 이번 글을 포함하여 총 4번에 걸쳐 연재될 것이다. 평가의 현재적 쟁점을 다루게 될 첫 번째 기획을 시작으로 두 번째 기획은 여연 역사 전반을 다루면서 한국에서 성주류화 전략의 수용과 그 효과를 다루게 될 것이다. 세 번째 기획은 1990년대 이후 여성운동의 주요한 이슈와 실천이 되었던 반성폭력 운동을 법 제정 중심의 활동과 대학 내 반성폭력 운동으로 구분해 평가한다. 네 번째 기획은 1980년대 '진보적 여성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던 1970년대 여성노동자운동의 의의와 한계를 중심으로 현재까지 노동조합운동의 내외부의 시도들을 평가한다. 이 평가는 현재 여성노동자 투쟁의 개별분산성을 극복하고, 노동자운동의 혁신하는데 중요한 준거점이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와 여성의 부상: 여성운동의 딜레마
2001년 여성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총괄하게 될 여성부가 신설되면서, (여성의) 직장과 가정의 양립 지원 정책과 성주류화 전략은 국가의 정책전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또한 여성운동은 이러한 전략이 국가정책 방향으로 수립되도록 요구해왔으며, '성주류화'는 스스로의 운동 전략이기도 하다. 최근 경제성장을 위해 여성인력활용을 강조한다. 여성총리와 같은 여성 고위직 진출 확대, 언론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각종 고시 여성 합격자 비율은 이러한 정책과 전략이 일면 여성의 경제활동을 촉진하고, 그동안 국가 정책 전반에서 고려되거나 다루어지지 못했던 여성의 욕구를 반영하고 여성에게 불평등한 조건을 개선하는데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여성의 부상'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초래한 저임금 불안정 노동의 폐해와 생계유지를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출혈 판매하는 대다수 여성의 현실을 은폐하고 있다.
한국에서 여성정책은 자본의 위기에 대응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전면화되고, 이것이 '가족해체' 현상으로 쟁점화되는 시기에 등장했다. 1987년 이후 자본주의 위기관리 정책으로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할 결과는 1997년 경제위기로 나타나고, IMF 구조조정을 계기로, 대량실업과 가족해체 현상은 폭발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한국에 정착된 자본주의적 가족 형태1)는 가족임금이 보장되지 않았고, 가족은 여성의 희생을 전제로 사회적 재생산에 있어서 모든 책임을 지고 있었다. 이렇듯 가족의 물질적 토대가 취약한 상황에서 IMF 구조조정에 따른 아버지들의 대량실업으로 가족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위기, 가족의 위기는 부족한 생계소득을 보충하기 위해 여성들이 저임금, 불안정 노동시장에 진출하면서도, 동시에 가족의 소비를 줄이기 위해 가사노동을 늘려야 하는 여성의 이중부담의 증가, '여성의 위기'로 귀결되었다. 또한 최근 정부의 저출산·고령화 대책은 여성에게 많은 자녀를 낳아 출산율을 유지하고 가족 해체를 막기 위해 애써야 할 이중 삼중의 역할을 요구한다. 즉 '직장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인프라 구축'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여성정책은 가족의 위기를 좀 더 체계적으로 관리하면서 신자유주의 하에서 요구되는 가족형태를 유지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따라서 2005년 '건강가족'을 유지, 지원하기 위한 여성부의 여성가족부로의 재편은 국가의 여성정책의 '후퇴'라기보다는 필연적인 결과이다.
국가를 압박함으로써 여성정책을 제도화하고 여성을 주류화하고자 한 현재의 주류 여성운동은 분명 위기에 처해있다. 성주류화 전략의 성공은 아래로부터 형성된 여성대중운동의 힘보다는 국가의 여성운동에 대한 태도와 정책수립 능력에 좌우되기 때문에 대중운동과 유리된 채 국가권력에 의존하여 여성운동의 자율성을 잠식시키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그 정당성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여성이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상황에서, 여성운동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과 이에 저항하는 여성대중운동을 형성하지 않고서 '성평등'을 위해 더 많은 제도, 더 많은 정책을 요구하고 이를 압박하기 위한 더 많은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이루는 것은 '여성의 위기'에 대응하는 대안이 될 수 없고, 오히려 여성운동이 신자유주의 통치성을 유지하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페미니즘의 상품화 : 여성에 대한 대중적 반격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 여성의 출산과 결혼을 강조하는 흐름이 있는 한편 세계경제는 독신 여성을 새로운 소비주체로 주목하고 있다. 얼마 전 있었던 2007 다보스 포럼의 주요 화두 중의 하나는 '독신경제'였다. 다보스 포럼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20·30대 독신들이 새로운 소비 세력으로 등장했고, 특히 상당수 시장에서 젊은 독신 여성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세계경제가 독신들을 겨냥한 비즈니스 전략과 '사회의 여성화'가 소비패턴의 주는 변화에 대응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이 논의되었다. 1950년대 미국 핵가족의 전성기에 가정주부는 가전제품의 소비자로 조직되었고 여성은 합리적 소비를 계획하는 '가계의 경영자'였다. 즉 자본주의는 '남성-생계부양자, 여성-가사전담자'라는 성별분업을 조직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할 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여성의 욕구와 삶을 상품으로 만들고, 다시 여성을 대중매체를 통해 조직된 독신여성의 삶에 대한 환상을 소비하는 주체로 조직한다.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상품을 소비하는 여성으로 표상된다. 여성의 자본주의적 욕구를 겨냥한 기업의 이러한 마케팅 전략은 여성의 육체와 성욕에 대한 상업적 이미지를 조장할 뿐만 아니라, 여성의 현실을 은폐함으로써 여성을 쉽게 대중적 반감과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기도 하다.
최근 '된장녀' 논쟁 역시 이를 보여주는데, 페미니즘이 '극단적 여성우월주의'로 인식되고, 대중적 혐오의 대상이 된 '된장녀'의 정의는 구체적으로 여성의 삶과 행동을 통제하고 여성 일반에 대한 정념을 키운다.2) 이는 현재의 여성운동이 보편적인 자기해방운동이라기 보다는 특수한 주장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의미다. 이런 대중적 인식은 여성해방을 위한 여성운동의 문제제기를 거부하거나, 대중의 삶의 위기로 인한 불만을 '여성을 향한 반격'으로 표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여성운동의 실천에서도 기인한다는 점이다. 성폭력 대응을 중심으로 1990년대 대학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급진주의 여성운동은 남성 성욕의 공격성을 여성억압의 원인으로 보았으며, 따라서 남성에 대한 불만을 조직하는 원한의 정치를 작동시켜왔다. '성정치'를 중심으로 한 실천은 젊은 페미니스트의 다양한 그룹을 형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급진주의 여성운동은 여성억압의 구조 속에서 다양한 여성에 대한 폭력을 분석하지 못하고, 페미니스트 정치는 개인의 변화로 대체하는 문화주의적 실천으로 경도되게 된다. 이러한 여성운동의 실천은 현재의 가족의 위기를 분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현재 가족을 다시 강화하고자 하는 보수적 흐름이나 이에 따른 여성에 대한 공격적 흐름에 대응하기에도 취약하다.
여성억압의 원인, 여성해방의 조건과 과제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페미니즘이 분기해왔지만, 공통적으로 여성의 자율성을 가로막는 가족제도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따라서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결혼이나 출산 의무를 거부하고 경제적·정신적으로 독립적인 삶을 추구해왔다. 그러나 개인적인 저항과 거부만으로는 여성억압을 재생산하는 구조를 바꾸지 못할뿐더러, 개인의 '라이프 스타일' 조차 유지되기 어렵다. 현재 가족형태를 분석하는 것은 현재의 '가족의 위기'를 재해석하고자 하는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가족의 위기는 가족관계를 넘어서는 사회경제적 구조의 총체적 위기의 일부이다. 따라서 가족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경제 전체를 재조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가족은 이처럼 사회경제적 삶의 다른 측면이 재조직될 때만이 변화할 수 있다.
사실 한국에서 여성운동의 위치와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다. 역사적으로도 여성운동의 성장-침체-위기를 설명할 만큼 여성운동은 큰 흐름을 형성하지 못해왔다. 이에 반해 여성운동은 쉽게 대중적 반격이나 적대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만큼 여성의 권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취약하며 여성의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운동은 진퇴양난의 상황인 것 같다. 여성들에게 성폭력, 성차별, 저임금, 불안정한 노동조건과 빈곤은 오늘날 한국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현실'인데 반해, 여성운동은 이러한 여성의 삶과 맞닿아 있지 못한 채, 페미니즘은 마치 다양한 삶의 양식 중 하나로 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상품'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스스로에게 '어떠한 여성운동이어야 하는가?'란 질문을 던지는 것은 긴급하고 중요하다.
여성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 1970-80년대 여성노동자운동의 의의와 한계
한국에서 민주노조 운동을 다시 출발시켰던 1970년대 여성노동자들의 투쟁과 역사는 전노협-민주노총 역사에 기록되거나 평가받지 못해왔다. 1970년대 여성노동자운동은 그 역사가 기록되거나 의의가 재평가되는 최근에 와서야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는 IMF 구조조정에 따른 노동의 불안정화가 확산되면서 민주노조 운동의 위기가 폭발하고, 이에 대한 대응의 하나로 여성독자노조가 건설되는 등 1990년대 후반 이후 가시화 될 정도로 증가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주목받으면서부터이다. 1970년대 여성노동자운동의 의의와 한계를 평가하는 것은 기존 보수적인 여성운동과 '기층여성중심성'으로 분별정립하였던 '진보적 여성운동'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뿐만 아니라, 현재 노동자운동 위기를 진단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1970년대 여성노동자운동의 의의는 집단적 주체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1970년대 여성노동자들은 민주노조 결성, 사수투쟁을 중심으로 노조라는 조직적 틀과 실천을 통해 집단적으로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해갔고, 그런 투쟁의 과정에서 노동자로서 자신의 실제 삶과 부딪히는 전통적인 여성관의 문제점을 인식했다. 그러나 여성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겪는 갈등의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극복하는 것을 운동의 과제로 제시하지는 못하였다.
또한 여성노동자가 겪는 갈등은 노동조합운동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억압되어 있었다. 당시의 노동자운동과 사회운동은 여성문제는 계급문제에 비해 부차적인 것이라 보고 여성운동과 노동자운동을 분리해서 보는 추상적인 여성해방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의식은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이해하지 못한 채 '무성적'인 노동자를 조직하고자 하는 태도로 귀결되었다3). 이런 과정에서 열악한 노동조건, '공순이'이라는 여성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비하와 비인간적 대우에 항의하며 형성되었던 1970년대 여성노동자운동은 재생산되지 못하고 단절되거나 노동자운동내에서 주변화 되었다. 그러나 여성노동자의 집단적 주체화가 단절된 책임을 노조운동의 몰성성이나 남성중심적 조직화에만 돌릴 순 없다. 1980년대는 산업구조조정에 따른 고용구조가 변화하고 한국적 핵가족이 형성되는 시기였으나, 여성운동 또한 이러한 변화를 인식하고,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여성노동자들이 대거 노동시장에 유입되게 된 것은 국가 또는 가족의 체계적인 폭력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여성은 자본에게는 값싸고 유순한 최상의 노동력이자 가족에게는 생계유지를 위한 희생양이었던 것이다. 가족의 생계와 생존을 위해서 취해지는 가장 일반적이고 우선적인 조치가 딸의 진학 포기와 조기 취업이었다. 이를 통해 아들을 대학에 진학시켜 가족의 경제적 또는 신분적 상승을 희망하는 것이 일반적인 노동자 가족의 생존 전략이었다. 이렇듯 1970년대 여성노동자들은 가족 내에서 교육 등의 기회에서 배제되면서 생기는 박탈감과 생계책임에 대한 부담, 열악한 노동조건의 경험으로 결혼을 통해 기존 가족이나 노동시장에서 탈출하려는 결혼이데올로기에 쉽게 동요하고, 안식처로서 가정성의 신화를 강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성노동자들의 이러한 '결혼 이상'이 실현된 것은 아니었다.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3저 호황을 계기로 재벌 중심의 수출지향적 산업화는 남한 경제에 엄청난 성장을 가져왔고, 이런 성장은 중산층과 수출을 주도하는 부문의 대공장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가족임금을 실현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지만, 극히 일부에게만 실현되었고 대다수 노동자 계급의 가족은 가족 구성원 다수의 노동을 통해 생존하는 전략을 유지해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여성노동자들은 결혼 후에도 공식, 비공식 부문에서 노동하며 가계의 소득 유지에 기여해야 했던 것이다6). 그러나 가사노동의 일차적 책임자라는 여성에게 할당된 지위는 이들의 노동을 비가시적인 것으로 만들고 저임금을 정당화했다.
87년 민중항쟁 20년, IMF 경제위기 10년: 정치의 민주화, 빈곤의 여성화?
1970년대까지 여성운동(대표적으로 여성단체협의회, 이하 여협)은 기층여성노동자운동과 결합하지 못한 채, 가족법개정운동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1980년대에 여성노동자들의 생존권투쟁과 결합하지 못하는 기존의 여성운동을 비판하며 민주화운동으로서 여성운동, 기층여성운동 지원을 자기 운동의 과제로 설정하는 '진보적' 여성운동단체들7)이 설립되었다. 1984년 여대생성추행대책위원회(청량리 경찰서 성폭행 사건) 연대활동을 계기로, 1985년 3월 8일 1회 여성대회에서는 '민족·민주·민중운동과 함께하는 여성운동' 선언이 있었다. 이후 활발한 연대활동이 이루어지게 된다. 1985년 구로동맹파업을 거쳐, 1986년 2회 여성대회에서는 '여성생존권 대책위원회'가 발족하였고, 부천성고문사건대책위원회 활동을 거쳐 1987년 2월 여성단체의 공동투쟁체로서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을 결성하게 된다. '진보적 여성운동'은 보수적 여성운동과의 차별점을 '변혁적 여성운동'이라는 주체성에 두고 있었고 그 변혁성은 기층여성(생산직 여성노동자) 중심성이었다. 1980년대 중후반에 있었던 '성/계급 논쟁'은 기층여성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사회변혁적 여성운동의 과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진행되었다. '성/계급 논쟁'은 그 한계8)에도 불구하고 여성억압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을 통해 한국에서 여성운동의 전망을 모색하고자 한 이론적 시도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현재 여성운동에서 이러한 이론적 모색은 불필요한 것으로 취급되거나 부차화되고 있다. 그러나 페미니즘이 여성해방을 위한 이론과 운동이라고 할 때, '여성운동이 무엇을 변혁하고자 하는가?'라는 질문은 다시 되살려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여성 스스로의 조건과 현실을 분석하는 집단적 자기 교육운동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1987년 6월 항쟁 이후 여연에게 '기층여성중심성'과 '민주화 운동에 복무하는 사회변혁적 여성운동'이라는 지향은 즉시 모호한 것이 되었다. 여연은 소위 '87년 체제'를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시민사회 영역이 구축된 시기로 보았고 따라서 민주주의를 실질화하고 내면화시키기 위한 '법제도 개혁'을 진보적 여성운동의 과제로 설정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기층여성들의 생존권 투쟁과 민주주의 투쟁은 분리된 채로, 여연은 시민운동으로 방향전환을 시작하게 된다. 여연의 이러한 성격변화는 1990-92년 여성운동의 방향 전환을 모색하는 정책수련회를 과정에서 본격화, 공식화9) 되었다. 동시에 여성운동의 독자성을 강조하면서 민중운동과의 분리정립하고10), 법제화,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여협과의 공동활동이 활발해지게 된다. 그러나 1987년 직선제 개헌은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적 열망을 봉합하는 수단이었고, 3당 합당으로부터 문민정권 등장에 이르는 과정은 민중의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것과는 무관했으며 오히려 남한 사회의 신자유주의 통치성을 확립하기 위한 '협상된 이행'의 과정이었다. 또한 여연은 당시의 산업구조조정이 어떻게 여성의 노동권을 제약하고 있는지를 분석하지 못한 채, 오히려 여성 내부의 계급적 차이를 삭제한 여성동일성 구축을 통한 대중화를 시도하게 된다. 그러나 여성운동의 독자성을 구축하고자 한 여연의 방향 전환이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율성을 잃고 여성운동의 제도화, 권력화로 결과한 것은 기층대중운동과의 결합력을 잃은 법제도 개혁의 한계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여연은 그동안의 여연 운동에 대한 비판과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심화된 빈곤의 여성화를 배경으로 2006년부터 '빈곤의 여성화 해소'를 주요 운동 전략을 채택하였지만, 이 역시 목표와 내용에 있어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여연은 정치는 민주화된 반면 경제는 민주화되지 않고, 신자유주의 세계화되었다는 인식하에, 빈곤의 여성화 해소는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한 주요 과제로, 빈곤 여성의 탈빈곤을 지원하고, 다시 법제도 개혁을 통해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있는 여성들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빈곤의 여성화를 여성 빈곤의 문제로 보고, 빈곤 여성에게 일자리와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입장은 결국 현재 빈곤의 책임을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두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이후 심화된 '빈곤의 여성화'는 여성의 위기를 보여주는 객관적 지표이자 전반적인 노동의 불안정성의 증대를 나타낸다. 즉 현재의 빈곤은 일해도 가난할 수밖에 없는 불안정한 노동시장과 경제 구조에 그 원인이 있으며 이를 심화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전면적으로 중단하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게다가 한부모 빈곤 여성에게 육아, 가사, 간병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 이용 쿠폰 지원사업의 경우, 현재 정부의 사회서비스 시장화 정책이나 이런 서비스 일자리들이 대부분 여성의 일이라는 점 때문에 저평가되어 있는 것을 비판하지 않고 빈곤여성을 다시 서비스 이용자로 조직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런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다.
반성폭력 운동 :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운동으로
1990년대 여성운동은 반성폭력운동이었다고 할 만큼 성폭력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성폭력에 대항한 다양한 운동들이 있어왔다. 또한 2000년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의 결성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발전해온 대학가의 반성폭력 운동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사회운동내 성폭력이라는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사회운동의 반성과 각성을 촉구하는 계기를 만들어냈다. 100인위 사건은 운동사회의 '진보성'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였고, 여성활동가들은 성폭력 사건을 토론, 논쟁하는 과정에서 '여성'으로서 자각하게 되면서 운동조직내 여성활동가 모임이나 여성위원회를 결성하는 등 사회운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역시 이런 자장 속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사회운동내 성폭력의 문제를 가해자 대 피해자의 대립구도 속에서 '처벌'의 원칙을 가지고 접근한 것은 사회운동의 지향, 그 구조와 방식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제기를 오히려 희미하게 만들었다. 사회운동의 페미니즘적 혁신 과제는 성폭력 사건의 신속한 처리와 '피해자 중심주의'를 원칙적으로 고수하는 정도에 갇히거나 지체되고 있다. 또한 성폭력 사건을 거치면서 노조 및 단체에 만들어진 반성폭력 규약은 사건 처리의 방식으로만 남거나, 여성활동가나 여성위원회는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 처리의 전담반이 되는 등 100인위의 부정적 영향력11)도 넘어서야 할 과제이다. 그러나 이런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성폭력 사건을 좀 더 논쟁적으로 제기함을 통해서가 아니라, 여성활동가들이 운동을 혁신하는 주체로서 (노조)페미니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을 때라야 가능할 것이다.
여연은 민중운동과의 분리 정립, 시민운동으로서 여성운동의 방향전환 과정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여성억압의 사례'로서 성폭력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여성 전반의 동일성을 구성하고자 했고,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한다. 이러한 여연의 반성폭력 운동은 여성운동의 두 가지 경향을 강화시켰다. 하나는 단일 이슈 중심의 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법제정을 중심으로 한 정책화, 제도화 흐름으로 이는 여성노동자의 주체화가 아닌 정책수립 능력을 중심으로 한 전문가주의를 강화하게 된다. 두 가지 경향은 서로를 강화하는데 특히 성폭력을 중심으로 한 단일 이슈 중심의 활동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발생시키는 구조를 깊이 있게 분석할 수 없게 할 뿐만 아니라, 가시적인 운동의 성과를 법제도 수립으로 수렴되게 한다. 여성단체들은 성폭력특별법 제정운동의 성과를 여성운동이 남성중심적인 국가권력의 성격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하고 있지만, 과연 현재의 법이 여성의 권리와 여성의 고유한 위험을 인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법은 성폭력을 가해자-피해자 개개인의 권리 충돌의 문제로 바라볼 뿐 여성의 독자적 권리를 인식할 수 없다. 그리고 국가의 폭력을 이용하여 가해자를 처벌할 순 있겠지만 법안이 성폭력의 발생을 막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이러한 여성단체의 법제정 중심의 활동, 주류 여성운동의 권위에 도전하며, 1990년대 중반 대학가를 중심으로 영페미니스트들이 등장하였고 이들은 느슨한 네트워크 구조를 통해 활동하였다. 이들은 사적인 일상으로서 섹슈얼리티 문제를 제기12)하고 성폭력 개념을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이자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문화 전반으로 확대 규정했다. 영페미니스트들은 발생한 성폭력 사건이 아니라 여성을 억압하는 권력 문제를 기습시위, 퍼포먼스, 문화제를 통해 제기한다. 또한 대학내에서 발생한 사건을 형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가해자 실명 공개 사과와 가해자 재교육을 통해 공동체의 논의를 촉발하고 가해자 개인의 변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반성폭력 운동이 확대될수록 이런 해결 방식에 대한 저항 또한 만만치 않았고, 성폭력 사건 해결은 가해자 개인의 의지와 태도와 따라 달라졌다. 결국 성폭력의 정의, 해결방식 등을 명문화하려는 노력이 학칙·자치규약 제정 운동으로 이어지고, 제도화된 사건 처리의 방식은 성차별적 문화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조차 '사건화'하여 대응하는 등, 모든 성폭력 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일반화되게 된다. 결국 성폭력을 인정받기 위한 피해자 경험의 강조는 남성의 폭력성을 더욱더 전면에 내세우게 되고,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이들의 실천 전략은 개개인의 해방을 위해서 필요한 공동체의 변화를 모색하지 못한 채 개인적인 저항과 의식화에 머물게 된다. 따라서 반성폭력 운동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성폭력을 여성의 배제를 지속적으로 재생산하는 현실적·상징적 구조 속에서 파악하고, 폭력에 대한 방어와 대항폭력의 실천을 넘어서 여성의 독자적 권리를 재정의하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가족의 변혁과 사회적 관계의 변화를 사고해야 할 것이다.
차별 철폐와 성평등을 넘어: 신자유주의 비판, 성별화된 권리 구축이 필요할 때
비정규직법안이 지난해 11월 국회를 통과하고, 올해 7월 시행이 예고되면서, 비정규직 투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기간 노동운동계가 주장했듯이, 이 법안이 비정규직 ‘보호’가 아니라, 비정규직 확산과 고착화로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비정규법안의 기간제한 조항13)과 차별금지조항에 대응하기 위해 비정규직 고용관리와 인사관리를 재편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은행, 이마트의 비정규직 직군분리제를 통한 정규직화 방안, 철도공사의 비정규직의 전면적 외주화 방침, 한국자산관리공사의 비정규직 계약기간 축소와 계약해지 방안 등은 기간제법의 ‘2년까지 자유로운 고용과 2년 후 무기계약 전환 조항’과 또 ‘차별금지조항’에 대처하기 위해 마련되었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단기간 교체 사용할 수 있다고 사용자들이 판단하는 노동유연화 대상 업무의 경우 조기 계약해지나 재계약 불가 통보가 이루어지고, 계속 고용의 필요성이 높고 비정규직의 업무를 정규직과 외형적으로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기간제한보다는 차별금지 조항을 초점에 두고 별도 직군화 등 인사관리 상의 변화를 꾀하며, 작업장 분리와 업무 분리가 가능한 경우에는 외주화 방안을 통해 차별금지 조항과 기간제한, 두 가지 모두의 적용을 피해가고자 한다.14) 특히 우리은행의 비정규직 3,100명 정규화에 관한 노사합의는 기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요구와 여성계의 ‘성차별 철폐’와 맞물려 그 의미와 한계에 관한 복잡한 논점을 던지고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의 불안정성은 크게 증가하였고 이에 대한 사회적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비정규직 증가에 따른 사회적 불만을 관리하기 위해 비정규직 보호와 권리 보장을 위한 법을 만든다면서 2004년 11월 비정규직 법안을 제출했다. 노동계는 비정규직법안이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비정규직 확산과 고착화에 기여하는 ‘비정규직 악법’이라며 지난 2년 여간 법안 통과 저지 투쟁을 해왔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무기력한 대응 속에서 2006년 11월 30일 법안은 통과되었다. 비정규직 법안은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보호법’, ‘파견근로자보호법’, ‘노동위원회법’을 지칭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법제정을 계획을 발표하면서 비정규직 문제에 관한 새로운 논점을 던진 셈인데, 그것이 바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차별’이라는 쟁점이다. 즉, 비정규직은 계속 필요하고 노동시장도 더욱 유연해져야 한다는 것은 원칙으로 둔 상태에서,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으로 정규직과의 차별 해소를 제기한 것이다. 이러한 논점은 결국 비정규직 문제의 원인을 정규직 노동자의 기득권과 실리에 맞추고, 그동안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에 전면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채 비정규직 문제를 비정규직들의 투쟁으로 고립시켰던 노조운동의 현실과 맞물려 정규직 노동자와 정규직 중심의 노조운동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논점은 불안정노동의 확산에 따른 노동빈곤층의 증가를 ‘사회양극화 해소’로 접근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또한 최근 정부는 ‘저출산·고령화 대책’, ‘여성인력개발종합계획’15) 등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노동유연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가족친화적 근로시간제도’이다. 예전에 여성의 출산의무에 대한 강조가 여성의 경제활동을 제한했던 것과 다르게, 최근에는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은 나라일수록 출산율도 높게 나타난다는 OECD 국가를 예시로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이를 위해서 출산과 양육으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과 하향 진입을 막기 위해 노동시장 구조개선16)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여성계와 여성학계의 입장은 이런 정책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기업의 이윤획득을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의 청구를 요건으로’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노동시장 유연화는 불가피하고 필요하며 성차별 해소를 위한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17)하고 있다. 그러나 출산과 양육이 여성의 의무이고, 생계부양자(남성)-가사전담자(여성)라는 성별분업 구조와 이데올로기가 완고한 현실에서 여성들은 부족한 생계를 보충하기 위해서라도 현재 저임금, 불안정한 노동시장에서 일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직장과 가정의 양립, 특히 육아를 노동과 병행하기 위한 방편으로 제기되는 ‘노동시간의 유연화’가, 그 신청의 권리가 노동자에게 있다는 이유로, 노동자의 권리일 수 있는가18). OECD 국가 중에서도 우리나라의 근로시간이 가장 긴 것은 시간외 근로가 많기 때문인데, 고임금 노동자라 지적되는 대공장 남성노동자들은 낮은 기본급을 보충하기 위해 시간외, 주말 근무를 자청하고, 고용불안정이 심화됨에 따라 ‘벌 수 있을 때 벌어야 한다.’는 인식으로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 이와 다르게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에게는 주5일제 실시로 인한 노동시간 감축이 임금하락의 이유가 되고 있는데, 절대적인 저임금 구조가 생계유지를 위한 장시간 노동을 부추기고, 여성노동자의 빈곤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현재 존재하는 출산, 육아휴직의 이용 비율이 낮은 것은 법률적용의 사각지대가 넓은 이유도 있지만, 임금 보전이 안 되기 때문이기도 한데, 현재 한국에서 이런 제도들을 도입하는 것은 자본의 유연화 요구를 ‘양육’을 위한 것으로 합리화 할 여지가 많다. 또한 선진국에서도 이런 제도의 실행이 남녀의 가사·양육, 노동시간 분배에 있어서 성별분업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닸다. 오히려 이런 제도들은 사회적 책임으로 이루어져야 할 돌봄과 양육이 여전히 ‘가족’의 역할로 전담되게 하는 방식의 일환이다.
언론은 우리은행의 직군제를 ‘정규직의 양보’를 통한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을 이뤄낸 사례로 평가한다. 이런 평가는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을 위해서는 정규직의 양보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정규직-비정규직, 남성-여성의 이해를 대립시키고 바닥을 향한 상호경쟁을 부추긴다. 게다가 이번에 대상이 된 창구담당이나 사무직원, 콜센터 등은 거의 100% 여성노동자로 이루어져 있어서 이번 조치는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합법적인’ 차별을 반영구적으로 고착시킬 것이다. 이러한 성별직무 차별을 개선하는 방안으로 제시되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역시 직업 분류, 선택기준을 합리화하는 데 주된 목표를 두고 직업평가에 대한 시장기준을 문제 삼지 않기 때문에, 그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의사가 간병노동자보다 높은 가치의 노동을 하고 있다는 판단은 성적차이와 지적차이에 대한 사회의 규범과 이데올로기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서구에서도 공공부문에서만, 강력한 힘을 가진 노조를 통한 정치적 압력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따라서 여성운동이나 노동자운동은 공히 ‘차별’을 합리화하기 위해 ‘차별 철폐’를 활용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분명한 비판과 저항을 조직해야 한다. 여성운동은 현재 ‘여성의 위기’의 원인을 분석하고 여성의 자기조직화에 기초하여 여성의 권리를 보편화해야 하고, 노동자운동은 페미니즘적인 자기 혁신을 통해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구조를 바꿔내기 위한 운동에 여성운동과 함께 해야 한다. 여성운동과 노동자운동의 개방적 연대와 교통만이 현재의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맞선 대안세계를 형성하는 정도(正道)일 것이다.
1) 한국에서 노동력 재생산 단위로서 핵가족의 형성은 대량소비가 없는, 미국식 핵가족 모델의 변종이 이식된 것이었다.본문으로
2) 최근 '된장녀'라는 단어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각 언론들이 '된장녀'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된장녀'의 이미지는 낯설지 않다. 비싼 트리트먼트, 화장, 유명 메이커 의상으로 중무장을 하고 외국계 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마시고 헬스를 하면서 자신이 '뉴요커' 스타일로 산다고 착각을 하는 한편 아버지에게 애교를 부려 용돈을 긁어내고 학교에서 복학생들에게 밥을 사달라고 떼를 쓰는 등 남의 돈에 의존하며 '선배 졸려염'과 같은 쓸데없는 문자질에 공부는 하지 않는다. 나아가 '극단적 페미니즘을 신봉하여 남성을 혐오하면서도 남자들에게 붙어 이득을 챙기려는 이중적인 여자들'을 일컫는 말로 그 의미가 확산됐다. '된장녀'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조롱하는 것에는 사실상 여성 전체에 대한 무시와 희화화가 깔려있다. 갑부도 아니고 룸살롱이나 고급호텔에 가는 것도 아닌, 스타벅스나 헬스클럽에 가는 정도의 경제력에 대해 허영과 방종이라고 광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여성에게 덧씌워진 소비와 허영의 이미지- '된장녀' 탄생은 여성전반에 대한 비하"(일다, 김윤은미, 2006.8.8) 중에서본문으로
3) 허성우,「1980년대 후반 여성노동자 조직활동가의 여성해방의식 연구-대전지역을 중심으로」, 1994본문으로
4) 서울여성노조는 실업자를 포함했다는 이유로 노조설립신고가 반려되어, 2004년 2월 실업자의 노조 가입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법외 노조였다.본문으로
5) 골프장 경기보조원 여성노동자들이 서울여성노조에 가입을 신청하였을 때, 현재 서울여성노조의 조합원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캐디 노동자들이 의사결정을 독점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반려되었다. 본문으로
6)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0%를 전후로 꾸준히 유지되었고, 2006년에는 50%를 넘어섰다. 여성이 결혼한다는 것은 해고와 저임금의 이유는 되었지만 고용의 장애는 아니었다. 본문으로
7) 대표적인 단체로 <여성평우회>(1983), <여성의 전화>(1983), <또 하나의 문화>(1984),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여성부>(1984)를 들 수 있다.본문으로
8) 논쟁은 성차별로 인한 착취와 자본주의 계급착취를 기능적으로 결합시키는 것을 넘어서지 못했다. 현대의 가족이 어떻게 여성이 여성으로서, 남성이 남성으로서 조직되고 재생산되는지(여성성, 남성성의 구축과 재생산), 가족 내 남녀관계가 어떻게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재생산 능력을 통제하면서 형성되는지, 왜 여성이 가족 내에서 가사노동의 일차적인 담당자가 되는지에 관한 문제가 공백으로 남았다. '역사적 가족형태'를 분석한다는 것은 초역사적인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 혹은 아버지의 권력으로서) 가부장제 개념을 비판하면서 자본주의의 변화와 함께 가족 내 남녀관계와 여성성, 남성성의 정의가 변화해왔으며, 따라서 남녀관계와 사회적 재생산 관계를 변화시킴으로서 가족의 변혁 혹은 축소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적 가족형태 분석과 관련해서는 권현정,『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현재성』, 이미경, 『신자유주의적 '반격'하에서 핵가족과 '가족의 위기'』를 참조.본문으로
9) 이 일련의 정책수련회를 통해 여연은 여성운동의 변혁적ㆍ총체적 전망을 견지하되 독자성을 강화하여 운동의 영역을 확대하고 다변화 할 것, 기층여성 중심주의가 갖는 국지성을 극복하고 여성운동의 주체를 사무직, 주부 등 제 계층으로 확산할 것, 생산현장에서 가족으로 운동의 중심을 옮겨 재생산 역할 담당자인 여성과 직결된 환경, 교육, 성, 문화, 이데올로기 차원으로 운동의 영역을 확대할 것, 직접적인 정치투쟁보다는 지방자치시대에 맞는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정책대안을 모색할 것을 여성운동의 방향으로 제기했다.본문으로
10) 1989년 전민련 가입 토론에서는 3개 단체만 반대하여 다수결로 가입을 결정하였으나 이후 반대 입장의 교회여성단체연합, 또 하나의 문화, 주부단체들이 탈퇴하면서 상층 인사들 중심의 형식적, 소극적 결합에 그쳤다. 결국, 91년 전국연합 가입 토론에서는 4개 단체만 찬성함으로써 공식적 분리 정립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분리정립 과정은 당시 사회운동에 아무런 시사점을 던지지 못했는데, 왜냐하면 이러한 '분리'가 성맹목적인 사회운동을 비판하며 페미니즘적 혁신을 제기하며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 법제도 개선의 효과적 수행을 위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본문으로
11) 반성폭력 규약은 남성활동가들이 그것을 노조의 '국가보안법'이라 부를 정도로 강력한 처벌 기준으로 인식된다. 노조내에서 여성들이 성폭력 사건을 제기할 때 성폭력을 지속적으로 발생시키는 노조의 가부장적 성격이나 여성 배제적 운동방식은 전혀 논의되지 못한 채로, 성폭력의 가해 여부가 남성활동가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또한 노조내 성폭력 사건의 제기는 정파적 이해나 대립과 결합하여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는데, 여성의 피해 경험이 이런 구도 속에서 활용될 위험 또한 존재한다. 본문으로
12) 1990년대 대중매체와 문화산업을 필두로 서구의 성해방 이데올로기가 성의 상품화와 함께 유입되면서, 지금껏 한국에서 논의되지 않았던 여성의 성적 욕망, 실천 등이 대학사회 내에서 여성 이슈로 제기되기 시작한다.본문으로
13) 2년 사용기한 제한은 기간제근로자(계약직)와 파견근로자에 대한 적용방식이 다르다. 계약직의 경우는 시행되는 내년 7월 이후 계약한 사람부터 적용된다. 반면 파견근로는 법 시행 이전의 근무일수까지 포함돼 소급적용 받는다.본문으로
14) 김성희, ‘우리은행 정규직 전환 합의의 의미 평가’, <우리은행 사례, 정규직화의 새로운 가능성인가, 차별의 고착화인가?>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토론회. 2007.1.23 본문으로
15) <종합계획>은 ‘여성인력 활용을 통한 선진경제로의 도약’을 비전으로 2010년까지 여성경제활동참가율 55% 달성, 여성일자리 60만 개 확대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본문으로
16) 시차출퇴근제 등 탄력근무제와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변형근로제, 여성의 노동시장 재진입을 위한 단시간 근로형태 개발과 보급, 여성의 경력 차에 따른 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 연공급 중심의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로 전환하는 등의 내용이다.본문으로
17) 박홍주는 통과된 비정규직 법안이 “여성과 남성의 노동을 분리하고 성차별적 통념에 의거해 여성의 일을 평가절하하는 우리 사회에서, 동일한 업무에 대한 차별적 대우를 금지하는 것만으로는 실효를 거둘 수 없다.”고 비판하고 “우리도 ‘비정규직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 철폐를 위해서는 비현실적인 ‘비정규직 철폐’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라는 대안적 원칙을 확인하고, 나아가 이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을 준비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박홍주, “‘비정규직 철폐’는 대안이 아니다.”중에서 [창비주간논평], 2006.12.19본문으로
18) 얼마전 서울시에서 진행한 ‘서울시 여성정책 수요조사 및 분석’을 보아도, 71%가 전일제 또는 시간제 직장출근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시간제 직장 출근 역시 8시간 이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이 경제활동에 참가함으로써 버는 소득이 여성이 전적으로 가사, 양육을 부담함으로써 주는 비용과 별 차이가 없다면, 여성경제활동 참가가 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이런 ‘선택’이 가능한 조건에 있는 경우에 한정되고, 생계를 위한 필수적인 소득활동이 필요한 저소득층이 존재한다. 즉 노동시장 자체가 여성의 경제적 독립을 보장하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본문으로
여성운동의 역사를 발굴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운동에 준거가 될 수 있는 역사적 전통들을 되살리고 과거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역사로부터 배운다는 의미를 갖는다. 한국여성운동사 평가 작업은 2005년에 만들어진 '한국여성운동사 연구모임'의 공동세미나와 토론을 거쳐, 연구모임이 제출한 토론문을 가지고 2006년 진행된 사회진보연대 공동토론의 과정 속에서 진전되었고 아직도 이 작업은 현재진행중이다. 우리가 한국여성운동사를 평가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저항하는 새로운 여성운동 형성'을 목표로, 여성운동의 이념적, 실천적 과제를 모색하고자 하는 활동의 일환이다.
한국여성운동사 평가 기획은 올해 1987년 민중항쟁 20년, IMF 위기 10년을 맞이하는 '진보적 여성운동'의 역사와 현재적 대응에 대한 평가를 주요한 내용으로 담고 있다. 자본주의 위기는 여성들에게 그 위기극복비용을 전가시키고 있다. 자본주의의 위기극복을 위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노동의 불안정화(노동의 여성화), 빈곤의 여성화, 여성의 이중부담의 증가라는 '여성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녀평등을 목표로 정부가 여성정책을 수립, 집행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성주류화' 전략에 대한 평가를, '진보적 여성운동'으로서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의 출범과 그 변화, 이를 넘어서고자 한 운동들에 대한 평가를 통해 할 것이다. '한국여성운동의 과거, 현재, 미래' 기획은 이번 글을 포함하여 총 4번에 걸쳐 연재될 것이다. 평가의 현재적 쟁점을 다루게 될 첫 번째 기획을 시작으로 두 번째 기획은 여연 역사 전반을 다루면서 한국에서 성주류화 전략의 수용과 그 효과를 다루게 될 것이다. 세 번째 기획은 1990년대 이후 여성운동의 주요한 이슈와 실천이 되었던 반성폭력 운동을 법 제정 중심의 활동과 대학 내 반성폭력 운동으로 구분해 평가한다. 네 번째 기획은 1980년대 '진보적 여성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던 1970년대 여성노동자운동의 의의와 한계를 중심으로 현재까지 노동조합운동의 내외부의 시도들을 평가한다. 이 평가는 현재 여성노동자 투쟁의 개별분산성을 극복하고, 노동자운동의 혁신하는데 중요한 준거점이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와 여성의 부상: 여성운동의 딜레마
2001년 여성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총괄하게 될 여성부가 신설되면서, (여성의) 직장과 가정의 양립 지원 정책과 성주류화 전략은 국가의 정책전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또한 여성운동은 이러한 전략이 국가정책 방향으로 수립되도록 요구해왔으며, '성주류화'는 스스로의 운동 전략이기도 하다. 최근 경제성장을 위해 여성인력활용을 강조한다. 여성총리와 같은 여성 고위직 진출 확대, 언론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각종 고시 여성 합격자 비율은 이러한 정책과 전략이 일면 여성의 경제활동을 촉진하고, 그동안 국가 정책 전반에서 고려되거나 다루어지지 못했던 여성의 욕구를 반영하고 여성에게 불평등한 조건을 개선하는데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여성의 부상'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초래한 저임금 불안정 노동의 폐해와 생계유지를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출혈 판매하는 대다수 여성의 현실을 은폐하고 있다.
한국에서 여성정책은 자본의 위기에 대응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전면화되고, 이것이 '가족해체' 현상으로 쟁점화되는 시기에 등장했다. 1987년 이후 자본주의 위기관리 정책으로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할 결과는 1997년 경제위기로 나타나고, IMF 구조조정을 계기로, 대량실업과 가족해체 현상은 폭발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한국에 정착된 자본주의적 가족 형태1)는 가족임금이 보장되지 않았고, 가족은 여성의 희생을 전제로 사회적 재생산에 있어서 모든 책임을 지고 있었다. 이렇듯 가족의 물질적 토대가 취약한 상황에서 IMF 구조조정에 따른 아버지들의 대량실업으로 가족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위기, 가족의 위기는 부족한 생계소득을 보충하기 위해 여성들이 저임금, 불안정 노동시장에 진출하면서도, 동시에 가족의 소비를 줄이기 위해 가사노동을 늘려야 하는 여성의 이중부담의 증가, '여성의 위기'로 귀결되었다. 또한 최근 정부의 저출산·고령화 대책은 여성에게 많은 자녀를 낳아 출산율을 유지하고 가족 해체를 막기 위해 애써야 할 이중 삼중의 역할을 요구한다. 즉 '직장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인프라 구축'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여성정책은 가족의 위기를 좀 더 체계적으로 관리하면서 신자유주의 하에서 요구되는 가족형태를 유지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따라서 2005년 '건강가족'을 유지, 지원하기 위한 여성부의 여성가족부로의 재편은 국가의 여성정책의 '후퇴'라기보다는 필연적인 결과이다.
국가를 압박함으로써 여성정책을 제도화하고 여성을 주류화하고자 한 현재의 주류 여성운동은 분명 위기에 처해있다. 성주류화 전략의 성공은 아래로부터 형성된 여성대중운동의 힘보다는 국가의 여성운동에 대한 태도와 정책수립 능력에 좌우되기 때문에 대중운동과 유리된 채 국가권력에 의존하여 여성운동의 자율성을 잠식시키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그 정당성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여성이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상황에서, 여성운동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과 이에 저항하는 여성대중운동을 형성하지 않고서 '성평등'을 위해 더 많은 제도, 더 많은 정책을 요구하고 이를 압박하기 위한 더 많은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이루는 것은 '여성의 위기'에 대응하는 대안이 될 수 없고, 오히려 여성운동이 신자유주의 통치성을 유지하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페미니즘의 상품화 : 여성에 대한 대중적 반격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 여성의 출산과 결혼을 강조하는 흐름이 있는 한편 세계경제는 독신 여성을 새로운 소비주체로 주목하고 있다. 얼마 전 있었던 2007 다보스 포럼의 주요 화두 중의 하나는 '독신경제'였다. 다보스 포럼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20·30대 독신들이 새로운 소비 세력으로 등장했고, 특히 상당수 시장에서 젊은 독신 여성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세계경제가 독신들을 겨냥한 비즈니스 전략과 '사회의 여성화'가 소비패턴의 주는 변화에 대응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이 논의되었다. 1950년대 미국 핵가족의 전성기에 가정주부는 가전제품의 소비자로 조직되었고 여성은 합리적 소비를 계획하는 '가계의 경영자'였다. 즉 자본주의는 '남성-생계부양자, 여성-가사전담자'라는 성별분업을 조직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할 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여성의 욕구와 삶을 상품으로 만들고, 다시 여성을 대중매체를 통해 조직된 독신여성의 삶에 대한 환상을 소비하는 주체로 조직한다.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상품을 소비하는 여성으로 표상된다. 여성의 자본주의적 욕구를 겨냥한 기업의 이러한 마케팅 전략은 여성의 육체와 성욕에 대한 상업적 이미지를 조장할 뿐만 아니라, 여성의 현실을 은폐함으로써 여성을 쉽게 대중적 반감과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기도 하다.
최근 '된장녀' 논쟁 역시 이를 보여주는데, 페미니즘이 '극단적 여성우월주의'로 인식되고, 대중적 혐오의 대상이 된 '된장녀'의 정의는 구체적으로 여성의 삶과 행동을 통제하고 여성 일반에 대한 정념을 키운다.2) 이는 현재의 여성운동이 보편적인 자기해방운동이라기 보다는 특수한 주장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의미다. 이런 대중적 인식은 여성해방을 위한 여성운동의 문제제기를 거부하거나, 대중의 삶의 위기로 인한 불만을 '여성을 향한 반격'으로 표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여성운동의 실천에서도 기인한다는 점이다. 성폭력 대응을 중심으로 1990년대 대학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급진주의 여성운동은 남성 성욕의 공격성을 여성억압의 원인으로 보았으며, 따라서 남성에 대한 불만을 조직하는 원한의 정치를 작동시켜왔다. '성정치'를 중심으로 한 실천은 젊은 페미니스트의 다양한 그룹을 형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급진주의 여성운동은 여성억압의 구조 속에서 다양한 여성에 대한 폭력을 분석하지 못하고, 페미니스트 정치는 개인의 변화로 대체하는 문화주의적 실천으로 경도되게 된다. 이러한 여성운동의 실천은 현재의 가족의 위기를 분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현재 가족을 다시 강화하고자 하는 보수적 흐름이나 이에 따른 여성에 대한 공격적 흐름에 대응하기에도 취약하다.
여성억압의 원인, 여성해방의 조건과 과제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페미니즘이 분기해왔지만, 공통적으로 여성의 자율성을 가로막는 가족제도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따라서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결혼이나 출산 의무를 거부하고 경제적·정신적으로 독립적인 삶을 추구해왔다. 그러나 개인적인 저항과 거부만으로는 여성억압을 재생산하는 구조를 바꾸지 못할뿐더러, 개인의 '라이프 스타일' 조차 유지되기 어렵다. 현재 가족형태를 분석하는 것은 현재의 '가족의 위기'를 재해석하고자 하는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가족의 위기는 가족관계를 넘어서는 사회경제적 구조의 총체적 위기의 일부이다. 따라서 가족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경제 전체를 재조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가족은 이처럼 사회경제적 삶의 다른 측면이 재조직될 때만이 변화할 수 있다.
사실 한국에서 여성운동의 위치와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다. 역사적으로도 여성운동의 성장-침체-위기를 설명할 만큼 여성운동은 큰 흐름을 형성하지 못해왔다. 이에 반해 여성운동은 쉽게 대중적 반격이나 적대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만큼 여성의 권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취약하며 여성의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운동은 진퇴양난의 상황인 것 같다. 여성들에게 성폭력, 성차별, 저임금, 불안정한 노동조건과 빈곤은 오늘날 한국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현실'인데 반해, 여성운동은 이러한 여성의 삶과 맞닿아 있지 못한 채, 페미니즘은 마치 다양한 삶의 양식 중 하나로 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상품'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스스로에게 '어떠한 여성운동이어야 하는가?'란 질문을 던지는 것은 긴급하고 중요하다.
여성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 1970-80년대 여성노동자운동의 의의와 한계
한국에서 민주노조 운동을 다시 출발시켰던 1970년대 여성노동자들의 투쟁과 역사는 전노협-민주노총 역사에 기록되거나 평가받지 못해왔다. 1970년대 여성노동자운동은 그 역사가 기록되거나 의의가 재평가되는 최근에 와서야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는 IMF 구조조정에 따른 노동의 불안정화가 확산되면서 민주노조 운동의 위기가 폭발하고, 이에 대한 대응의 하나로 여성독자노조가 건설되는 등 1990년대 후반 이후 가시화 될 정도로 증가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주목받으면서부터이다. 1970년대 여성노동자운동의 의의와 한계를 평가하는 것은 기존 보수적인 여성운동과 '기층여성중심성'으로 분별정립하였던 '진보적 여성운동'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뿐만 아니라, 현재 노동자운동 위기를 진단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1970년대 여성노동자운동의 의의는 집단적 주체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1970년대 여성노동자들은 민주노조 결성, 사수투쟁을 중심으로 노조라는 조직적 틀과 실천을 통해 집단적으로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해갔고, 그런 투쟁의 과정에서 노동자로서 자신의 실제 삶과 부딪히는 전통적인 여성관의 문제점을 인식했다. 그러나 여성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겪는 갈등의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극복하는 것을 운동의 과제로 제시하지는 못하였다.
또한 여성노동자가 겪는 갈등은 노동조합운동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억압되어 있었다. 당시의 노동자운동과 사회운동은 여성문제는 계급문제에 비해 부차적인 것이라 보고 여성운동과 노동자운동을 분리해서 보는 추상적인 여성해방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의식은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이해하지 못한 채 '무성적'인 노동자를 조직하고자 하는 태도로 귀결되었다3). 이런 과정에서 열악한 노동조건, '공순이'이라는 여성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비하와 비인간적 대우에 항의하며 형성되었던 1970년대 여성노동자운동은 재생산되지 못하고 단절되거나 노동자운동내에서 주변화 되었다. 그러나 여성노동자의 집단적 주체화가 단절된 책임을 노조운동의 몰성성이나 남성중심적 조직화에만 돌릴 순 없다. 1980년대는 산업구조조정에 따른 고용구조가 변화하고 한국적 핵가족이 형성되는 시기였으나, 여성운동 또한 이러한 변화를 인식하고,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신자유주의와 남성중심적 노동조합운동을 비판한 서울여성노동조합 서울여성노조는 1999년 1월 두 가지 필요성에서 건설되었다. 하나는 1997년 IMF 위기 이후 여성노동자가 우선해고 되고, '여성 업종'을 중심으로 선차적으로 비정규직화가 진행되는 등 성별화 된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기존 기업별 노조의 틀로는 주로 중소·영세 사업장이나 서비스업에 고용되어 있는 여성노동자를 조직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이 이러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전면적으로 대응하기커녕 오히려 여성노동자를 정규직 남성노동자들을 위한 구조조정의 안전판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 하에 대안적 형태를 모색하기 위함이었다. 서울여성노조는 기존 노동조합 운동의 틀을 넘어, 실업자를 포함4)하고, 서울지역을 대상으로 기업과 업종을 초월하여 조직되는 다직종 초기업 지역단위노동조합으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저항하는 '여성'-'노동자'운동 형성을 위한 시도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여성독자노조로서 서울여성노조는 1970년대 여성노동자운동과 다르게 스스로를 진보적 여성운동조직이자 노동운동조직으로 분명한 자기규정과 역할을 가지고 출발했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서울여성노조는 비슷한 시기에 출범한 전국여성노조에 비해 여성노동자 조직화에도 성공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2003년 조직의 비민주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내부에서 진행되고 그것이 여하하게 풀리지 못하면서 전체 조합원의 1/3에 달하는 이들이 대거 탈퇴를 하게 되면서 현재는 이렇다 할 활동조차 보이지 못하고 있다. 서울여성노조는 여성들'만'의 수평적 조직운영을 중요하게 사고하고 특정 집단의 이해가 노조의 활동을 결정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개별 가입을 철저하게 원칙으로 적용5)하였는데, 이는 집단적 힘을 키워 집단적 요구를 위해 투쟁해야 할 여성노동자를 오히려 원자화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또한 기존 노동조합의 중앙집중적 조직화 방식을 비판하고 모든 여성들이 참여할 수 있는 조직을 건설하려던 노력은 여성들의 삶 속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조직내 문제제기가 있었을 때 이를 해결할 형식적 민주주의 수단이 부재했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제기는 봉합되거나 혹은 문제제기 할 수 있는 조합원의 자격 기준을 요구하게 되었다. 즉 구조화되지 않은 무정형의 조직 속에서 은폐된 형태의 권력이 출현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서울여성노조 사례는 여성독자노조가 그 자체만으로 남성중심적 노동조합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
1970년대 여성노동자들이 대거 노동시장에 유입되게 된 것은 국가 또는 가족의 체계적인 폭력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여성은 자본에게는 값싸고 유순한 최상의 노동력이자 가족에게는 생계유지를 위한 희생양이었던 것이다. 가족의 생계와 생존을 위해서 취해지는 가장 일반적이고 우선적인 조치가 딸의 진학 포기와 조기 취업이었다. 이를 통해 아들을 대학에 진학시켜 가족의 경제적 또는 신분적 상승을 희망하는 것이 일반적인 노동자 가족의 생존 전략이었다. 이렇듯 1970년대 여성노동자들은 가족 내에서 교육 등의 기회에서 배제되면서 생기는 박탈감과 생계책임에 대한 부담, 열악한 노동조건의 경험으로 결혼을 통해 기존 가족이나 노동시장에서 탈출하려는 결혼이데올로기에 쉽게 동요하고, 안식처로서 가정성의 신화를 강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성노동자들의 이러한 '결혼 이상'이 실현된 것은 아니었다.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3저 호황을 계기로 재벌 중심의 수출지향적 산업화는 남한 경제에 엄청난 성장을 가져왔고, 이런 성장은 중산층과 수출을 주도하는 부문의 대공장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가족임금을 실현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지만, 극히 일부에게만 실현되었고 대다수 노동자 계급의 가족은 가족 구성원 다수의 노동을 통해 생존하는 전략을 유지해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여성노동자들은 결혼 후에도 공식, 비공식 부문에서 노동하며 가계의 소득 유지에 기여해야 했던 것이다6). 그러나 가사노동의 일차적 책임자라는 여성에게 할당된 지위는 이들의 노동을 비가시적인 것으로 만들고 저임금을 정당화했다.
87년 민중항쟁 20년, IMF 경제위기 10년: 정치의 민주화, 빈곤의 여성화?
1970년대까지 여성운동(대표적으로 여성단체협의회, 이하 여협)은 기층여성노동자운동과 결합하지 못한 채, 가족법개정운동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1980년대에 여성노동자들의 생존권투쟁과 결합하지 못하는 기존의 여성운동을 비판하며 민주화운동으로서 여성운동, 기층여성운동 지원을 자기 운동의 과제로 설정하는 '진보적' 여성운동단체들7)이 설립되었다. 1984년 여대생성추행대책위원회(청량리 경찰서 성폭행 사건) 연대활동을 계기로, 1985년 3월 8일 1회 여성대회에서는 '민족·민주·민중운동과 함께하는 여성운동' 선언이 있었다. 이후 활발한 연대활동이 이루어지게 된다. 1985년 구로동맹파업을 거쳐, 1986년 2회 여성대회에서는 '여성생존권 대책위원회'가 발족하였고, 부천성고문사건대책위원회 활동을 거쳐 1987년 2월 여성단체의 공동투쟁체로서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을 결성하게 된다. '진보적 여성운동'은 보수적 여성운동과의 차별점을 '변혁적 여성운동'이라는 주체성에 두고 있었고 그 변혁성은 기층여성(생산직 여성노동자) 중심성이었다. 1980년대 중후반에 있었던 '성/계급 논쟁'은 기층여성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사회변혁적 여성운동의 과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진행되었다. '성/계급 논쟁'은 그 한계8)에도 불구하고 여성억압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을 통해 한국에서 여성운동의 전망을 모색하고자 한 이론적 시도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현재 여성운동에서 이러한 이론적 모색은 불필요한 것으로 취급되거나 부차화되고 있다. 그러나 페미니즘이 여성해방을 위한 이론과 운동이라고 할 때, '여성운동이 무엇을 변혁하고자 하는가?'라는 질문은 다시 되살려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여성 스스로의 조건과 현실을 분석하는 집단적 자기 교육운동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1987년 6월 항쟁 이후 여연에게 '기층여성중심성'과 '민주화 운동에 복무하는 사회변혁적 여성운동'이라는 지향은 즉시 모호한 것이 되었다. 여연은 소위 '87년 체제'를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시민사회 영역이 구축된 시기로 보았고 따라서 민주주의를 실질화하고 내면화시키기 위한 '법제도 개혁'을 진보적 여성운동의 과제로 설정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기층여성들의 생존권 투쟁과 민주주의 투쟁은 분리된 채로, 여연은 시민운동으로 방향전환을 시작하게 된다. 여연의 이러한 성격변화는 1990-92년 여성운동의 방향 전환을 모색하는 정책수련회를 과정에서 본격화, 공식화9) 되었다. 동시에 여성운동의 독자성을 강조하면서 민중운동과의 분리정립하고10), 법제화,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여협과의 공동활동이 활발해지게 된다. 그러나 1987년 직선제 개헌은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적 열망을 봉합하는 수단이었고, 3당 합당으로부터 문민정권 등장에 이르는 과정은 민중의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것과는 무관했으며 오히려 남한 사회의 신자유주의 통치성을 확립하기 위한 '협상된 이행'의 과정이었다. 또한 여연은 당시의 산업구조조정이 어떻게 여성의 노동권을 제약하고 있는지를 분석하지 못한 채, 오히려 여성 내부의 계급적 차이를 삭제한 여성동일성 구축을 통한 대중화를 시도하게 된다. 그러나 여성운동의 독자성을 구축하고자 한 여연의 방향 전환이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율성을 잃고 여성운동의 제도화, 권력화로 결과한 것은 기층대중운동과의 결합력을 잃은 법제도 개혁의 한계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여연은 그동안의 여연 운동에 대한 비판과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심화된 빈곤의 여성화를 배경으로 2006년부터 '빈곤의 여성화 해소'를 주요 운동 전략을 채택하였지만, 이 역시 목표와 내용에 있어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여연은 정치는 민주화된 반면 경제는 민주화되지 않고, 신자유주의 세계화되었다는 인식하에, 빈곤의 여성화 해소는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한 주요 과제로, 빈곤 여성의 탈빈곤을 지원하고, 다시 법제도 개혁을 통해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있는 여성들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빈곤의 여성화를 여성 빈곤의 문제로 보고, 빈곤 여성에게 일자리와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입장은 결국 현재 빈곤의 책임을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두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이후 심화된 '빈곤의 여성화'는 여성의 위기를 보여주는 객관적 지표이자 전반적인 노동의 불안정성의 증대를 나타낸다. 즉 현재의 빈곤은 일해도 가난할 수밖에 없는 불안정한 노동시장과 경제 구조에 그 원인이 있으며 이를 심화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전면적으로 중단하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게다가 한부모 빈곤 여성에게 육아, 가사, 간병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 이용 쿠폰 지원사업의 경우, 현재 정부의 사회서비스 시장화 정책이나 이런 서비스 일자리들이 대부분 여성의 일이라는 점 때문에 저평가되어 있는 것을 비판하지 않고 빈곤여성을 다시 서비스 이용자로 조직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런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다.
반성폭력 운동 :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운동으로
1990년대 여성운동은 반성폭력운동이었다고 할 만큼 성폭력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성폭력에 대항한 다양한 운동들이 있어왔다. 또한 2000년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의 결성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발전해온 대학가의 반성폭력 운동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사회운동내 성폭력이라는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사회운동의 반성과 각성을 촉구하는 계기를 만들어냈다. 100인위 사건은 운동사회의 '진보성'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였고, 여성활동가들은 성폭력 사건을 토론, 논쟁하는 과정에서 '여성'으로서 자각하게 되면서 운동조직내 여성활동가 모임이나 여성위원회를 결성하는 등 사회운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역시 이런 자장 속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사회운동내 성폭력의 문제를 가해자 대 피해자의 대립구도 속에서 '처벌'의 원칙을 가지고 접근한 것은 사회운동의 지향, 그 구조와 방식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제기를 오히려 희미하게 만들었다. 사회운동의 페미니즘적 혁신 과제는 성폭력 사건의 신속한 처리와 '피해자 중심주의'를 원칙적으로 고수하는 정도에 갇히거나 지체되고 있다. 또한 성폭력 사건을 거치면서 노조 및 단체에 만들어진 반성폭력 규약은 사건 처리의 방식으로만 남거나, 여성활동가나 여성위원회는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 처리의 전담반이 되는 등 100인위의 부정적 영향력11)도 넘어서야 할 과제이다. 그러나 이런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성폭력 사건을 좀 더 논쟁적으로 제기함을 통해서가 아니라, 여성활동가들이 운동을 혁신하는 주체로서 (노조)페미니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을 때라야 가능할 것이다.
여연은 민중운동과의 분리 정립, 시민운동으로서 여성운동의 방향전환 과정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여성억압의 사례'로서 성폭력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여성 전반의 동일성을 구성하고자 했고,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한다. 이러한 여연의 반성폭력 운동은 여성운동의 두 가지 경향을 강화시켰다. 하나는 단일 이슈 중심의 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법제정을 중심으로 한 정책화, 제도화 흐름으로 이는 여성노동자의 주체화가 아닌 정책수립 능력을 중심으로 한 전문가주의를 강화하게 된다. 두 가지 경향은 서로를 강화하는데 특히 성폭력을 중심으로 한 단일 이슈 중심의 활동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발생시키는 구조를 깊이 있게 분석할 수 없게 할 뿐만 아니라, 가시적인 운동의 성과를 법제도 수립으로 수렴되게 한다. 여성단체들은 성폭력특별법 제정운동의 성과를 여성운동이 남성중심적인 국가권력의 성격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하고 있지만, 과연 현재의 법이 여성의 권리와 여성의 고유한 위험을 인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법은 성폭력을 가해자-피해자 개개인의 권리 충돌의 문제로 바라볼 뿐 여성의 독자적 권리를 인식할 수 없다. 그리고 국가의 폭력을 이용하여 가해자를 처벌할 순 있겠지만 법안이 성폭력의 발생을 막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이러한 여성단체의 법제정 중심의 활동, 주류 여성운동의 권위에 도전하며, 1990년대 중반 대학가를 중심으로 영페미니스트들이 등장하였고 이들은 느슨한 네트워크 구조를 통해 활동하였다. 이들은 사적인 일상으로서 섹슈얼리티 문제를 제기12)하고 성폭력 개념을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이자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문화 전반으로 확대 규정했다. 영페미니스트들은 발생한 성폭력 사건이 아니라 여성을 억압하는 권력 문제를 기습시위, 퍼포먼스, 문화제를 통해 제기한다. 또한 대학내에서 발생한 사건을 형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가해자 실명 공개 사과와 가해자 재교육을 통해 공동체의 논의를 촉발하고 가해자 개인의 변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반성폭력 운동이 확대될수록 이런 해결 방식에 대한 저항 또한 만만치 않았고, 성폭력 사건 해결은 가해자 개인의 의지와 태도와 따라 달라졌다. 결국 성폭력의 정의, 해결방식 등을 명문화하려는 노력이 학칙·자치규약 제정 운동으로 이어지고, 제도화된 사건 처리의 방식은 성차별적 문화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조차 '사건화'하여 대응하는 등, 모든 성폭력 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일반화되게 된다. 결국 성폭력을 인정받기 위한 피해자 경험의 강조는 남성의 폭력성을 더욱더 전면에 내세우게 되고,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이들의 실천 전략은 개개인의 해방을 위해서 필요한 공동체의 변화를 모색하지 못한 채 개인적인 저항과 의식화에 머물게 된다. 따라서 반성폭력 운동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성폭력을 여성의 배제를 지속적으로 재생산하는 현실적·상징적 구조 속에서 파악하고, 폭력에 대한 방어와 대항폭력의 실천을 넘어서 여성의 독자적 권리를 재정의하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가족의 변혁과 사회적 관계의 변화를 사고해야 할 것이다.
차별 철폐와 성평등을 넘어: 신자유주의 비판, 성별화된 권리 구축이 필요할 때
비정규직법안이 지난해 11월 국회를 통과하고, 올해 7월 시행이 예고되면서, 비정규직 투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기간 노동운동계가 주장했듯이, 이 법안이 비정규직 ‘보호’가 아니라, 비정규직 확산과 고착화로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비정규법안의 기간제한 조항13)과 차별금지조항에 대응하기 위해 비정규직 고용관리와 인사관리를 재편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은행, 이마트의 비정규직 직군분리제를 통한 정규직화 방안, 철도공사의 비정규직의 전면적 외주화 방침, 한국자산관리공사의 비정규직 계약기간 축소와 계약해지 방안 등은 기간제법의 ‘2년까지 자유로운 고용과 2년 후 무기계약 전환 조항’과 또 ‘차별금지조항’에 대처하기 위해 마련되었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단기간 교체 사용할 수 있다고 사용자들이 판단하는 노동유연화 대상 업무의 경우 조기 계약해지나 재계약 불가 통보가 이루어지고, 계속 고용의 필요성이 높고 비정규직의 업무를 정규직과 외형적으로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기간제한보다는 차별금지 조항을 초점에 두고 별도 직군화 등 인사관리 상의 변화를 꾀하며, 작업장 분리와 업무 분리가 가능한 경우에는 외주화 방안을 통해 차별금지 조항과 기간제한, 두 가지 모두의 적용을 피해가고자 한다.14) 특히 우리은행의 비정규직 3,100명 정규화에 관한 노사합의는 기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요구와 여성계의 ‘성차별 철폐’와 맞물려 그 의미와 한계에 관한 복잡한 논점을 던지고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의 불안정성은 크게 증가하였고 이에 대한 사회적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비정규직 증가에 따른 사회적 불만을 관리하기 위해 비정규직 보호와 권리 보장을 위한 법을 만든다면서 2004년 11월 비정규직 법안을 제출했다. 노동계는 비정규직법안이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비정규직 확산과 고착화에 기여하는 ‘비정규직 악법’이라며 지난 2년 여간 법안 통과 저지 투쟁을 해왔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무기력한 대응 속에서 2006년 11월 30일 법안은 통과되었다. 비정규직 법안은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보호법’, ‘파견근로자보호법’, ‘노동위원회법’을 지칭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법제정을 계획을 발표하면서 비정규직 문제에 관한 새로운 논점을 던진 셈인데, 그것이 바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차별’이라는 쟁점이다. 즉, 비정규직은 계속 필요하고 노동시장도 더욱 유연해져야 한다는 것은 원칙으로 둔 상태에서,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으로 정규직과의 차별 해소를 제기한 것이다. 이러한 논점은 결국 비정규직 문제의 원인을 정규직 노동자의 기득권과 실리에 맞추고, 그동안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에 전면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채 비정규직 문제를 비정규직들의 투쟁으로 고립시켰던 노조운동의 현실과 맞물려 정규직 노동자와 정규직 중심의 노조운동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논점은 불안정노동의 확산에 따른 노동빈곤층의 증가를 ‘사회양극화 해소’로 접근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또한 최근 정부는 ‘저출산·고령화 대책’, ‘여성인력개발종합계획’15) 등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노동유연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가족친화적 근로시간제도’이다. 예전에 여성의 출산의무에 대한 강조가 여성의 경제활동을 제한했던 것과 다르게, 최근에는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은 나라일수록 출산율도 높게 나타난다는 OECD 국가를 예시로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이를 위해서 출산과 양육으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과 하향 진입을 막기 위해 노동시장 구조개선16)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여성계와 여성학계의 입장은 이런 정책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기업의 이윤획득을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의 청구를 요건으로’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노동시장 유연화는 불가피하고 필요하며 성차별 해소를 위한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17)하고 있다. 그러나 출산과 양육이 여성의 의무이고, 생계부양자(남성)-가사전담자(여성)라는 성별분업 구조와 이데올로기가 완고한 현실에서 여성들은 부족한 생계를 보충하기 위해서라도 현재 저임금, 불안정한 노동시장에서 일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직장과 가정의 양립, 특히 육아를 노동과 병행하기 위한 방편으로 제기되는 ‘노동시간의 유연화’가, 그 신청의 권리가 노동자에게 있다는 이유로, 노동자의 권리일 수 있는가18). OECD 국가 중에서도 우리나라의 근로시간이 가장 긴 것은 시간외 근로가 많기 때문인데, 고임금 노동자라 지적되는 대공장 남성노동자들은 낮은 기본급을 보충하기 위해 시간외, 주말 근무를 자청하고, 고용불안정이 심화됨에 따라 ‘벌 수 있을 때 벌어야 한다.’는 인식으로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 이와 다르게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에게는 주5일제 실시로 인한 노동시간 감축이 임금하락의 이유가 되고 있는데, 절대적인 저임금 구조가 생계유지를 위한 장시간 노동을 부추기고, 여성노동자의 빈곤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현재 존재하는 출산, 육아휴직의 이용 비율이 낮은 것은 법률적용의 사각지대가 넓은 이유도 있지만, 임금 보전이 안 되기 때문이기도 한데, 현재 한국에서 이런 제도들을 도입하는 것은 자본의 유연화 요구를 ‘양육’을 위한 것으로 합리화 할 여지가 많다. 또한 선진국에서도 이런 제도의 실행이 남녀의 가사·양육, 노동시간 분배에 있어서 성별분업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닸다. 오히려 이런 제도들은 사회적 책임으로 이루어져야 할 돌봄과 양육이 여전히 ‘가족’의 역할로 전담되게 하는 방식의 일환이다.
언론은 우리은행의 직군제를 ‘정규직의 양보’를 통한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을 이뤄낸 사례로 평가한다. 이런 평가는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을 위해서는 정규직의 양보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정규직-비정규직, 남성-여성의 이해를 대립시키고 바닥을 향한 상호경쟁을 부추긴다. 게다가 이번에 대상이 된 창구담당이나 사무직원, 콜센터 등은 거의 100% 여성노동자로 이루어져 있어서 이번 조치는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합법적인’ 차별을 반영구적으로 고착시킬 것이다. 이러한 성별직무 차별을 개선하는 방안으로 제시되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역시 직업 분류, 선택기준을 합리화하는 데 주된 목표를 두고 직업평가에 대한 시장기준을 문제 삼지 않기 때문에, 그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의사가 간병노동자보다 높은 가치의 노동을 하고 있다는 판단은 성적차이와 지적차이에 대한 사회의 규범과 이데올로기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서구에서도 공공부문에서만, 강력한 힘을 가진 노조를 통한 정치적 압력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따라서 여성운동이나 노동자운동은 공히 ‘차별’을 합리화하기 위해 ‘차별 철폐’를 활용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분명한 비판과 저항을 조직해야 한다. 여성운동은 현재 ‘여성의 위기’의 원인을 분석하고 여성의 자기조직화에 기초하여 여성의 권리를 보편화해야 하고, 노동자운동은 페미니즘적인 자기 혁신을 통해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구조를 바꿔내기 위한 운동에 여성운동과 함께 해야 한다. 여성운동과 노동자운동의 개방적 연대와 교통만이 현재의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맞선 대안세계를 형성하는 정도(正道)일 것이다.
1) 한국에서 노동력 재생산 단위로서 핵가족의 형성은 대량소비가 없는, 미국식 핵가족 모델의 변종이 이식된 것이었다.본문으로
2) 최근 '된장녀'라는 단어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각 언론들이 '된장녀'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된장녀'의 이미지는 낯설지 않다. 비싼 트리트먼트, 화장, 유명 메이커 의상으로 중무장을 하고 외국계 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마시고 헬스를 하면서 자신이 '뉴요커' 스타일로 산다고 착각을 하는 한편 아버지에게 애교를 부려 용돈을 긁어내고 학교에서 복학생들에게 밥을 사달라고 떼를 쓰는 등 남의 돈에 의존하며 '선배 졸려염'과 같은 쓸데없는 문자질에 공부는 하지 않는다. 나아가 '극단적 페미니즘을 신봉하여 남성을 혐오하면서도 남자들에게 붙어 이득을 챙기려는 이중적인 여자들'을 일컫는 말로 그 의미가 확산됐다. '된장녀'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조롱하는 것에는 사실상 여성 전체에 대한 무시와 희화화가 깔려있다. 갑부도 아니고 룸살롱이나 고급호텔에 가는 것도 아닌, 스타벅스나 헬스클럽에 가는 정도의 경제력에 대해 허영과 방종이라고 광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여성에게 덧씌워진 소비와 허영의 이미지- '된장녀' 탄생은 여성전반에 대한 비하"(일다, 김윤은미, 2006.8.8) 중에서본문으로
3) 허성우,「1980년대 후반 여성노동자 조직활동가의 여성해방의식 연구-대전지역을 중심으로」, 1994본문으로
4) 서울여성노조는 실업자를 포함했다는 이유로 노조설립신고가 반려되어, 2004년 2월 실업자의 노조 가입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법외 노조였다.본문으로
5) 골프장 경기보조원 여성노동자들이 서울여성노조에 가입을 신청하였을 때, 현재 서울여성노조의 조합원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캐디 노동자들이 의사결정을 독점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반려되었다. 본문으로
6)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0%를 전후로 꾸준히 유지되었고, 2006년에는 50%를 넘어섰다. 여성이 결혼한다는 것은 해고와 저임금의 이유는 되었지만 고용의 장애는 아니었다. 본문으로
7) 대표적인 단체로 <여성평우회>(1983), <여성의 전화>(1983), <또 하나의 문화>(1984),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여성부>(1984)를 들 수 있다.본문으로
8) 논쟁은 성차별로 인한 착취와 자본주의 계급착취를 기능적으로 결합시키는 것을 넘어서지 못했다. 현대의 가족이 어떻게 여성이 여성으로서, 남성이 남성으로서 조직되고 재생산되는지(여성성, 남성성의 구축과 재생산), 가족 내 남녀관계가 어떻게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재생산 능력을 통제하면서 형성되는지, 왜 여성이 가족 내에서 가사노동의 일차적인 담당자가 되는지에 관한 문제가 공백으로 남았다. '역사적 가족형태'를 분석한다는 것은 초역사적인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 혹은 아버지의 권력으로서) 가부장제 개념을 비판하면서 자본주의의 변화와 함께 가족 내 남녀관계와 여성성, 남성성의 정의가 변화해왔으며, 따라서 남녀관계와 사회적 재생산 관계를 변화시킴으로서 가족의 변혁 혹은 축소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적 가족형태 분석과 관련해서는 권현정,『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현재성』, 이미경, 『신자유주의적 '반격'하에서 핵가족과 '가족의 위기'』를 참조.본문으로
9) 이 일련의 정책수련회를 통해 여연은 여성운동의 변혁적ㆍ총체적 전망을 견지하되 독자성을 강화하여 운동의 영역을 확대하고 다변화 할 것, 기층여성 중심주의가 갖는 국지성을 극복하고 여성운동의 주체를 사무직, 주부 등 제 계층으로 확산할 것, 생산현장에서 가족으로 운동의 중심을 옮겨 재생산 역할 담당자인 여성과 직결된 환경, 교육, 성, 문화, 이데올로기 차원으로 운동의 영역을 확대할 것, 직접적인 정치투쟁보다는 지방자치시대에 맞는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정책대안을 모색할 것을 여성운동의 방향으로 제기했다.본문으로
10) 1989년 전민련 가입 토론에서는 3개 단체만 반대하여 다수결로 가입을 결정하였으나 이후 반대 입장의 교회여성단체연합, 또 하나의 문화, 주부단체들이 탈퇴하면서 상층 인사들 중심의 형식적, 소극적 결합에 그쳤다. 결국, 91년 전국연합 가입 토론에서는 4개 단체만 찬성함으로써 공식적 분리 정립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분리정립 과정은 당시 사회운동에 아무런 시사점을 던지지 못했는데, 왜냐하면 이러한 '분리'가 성맹목적인 사회운동을 비판하며 페미니즘적 혁신을 제기하며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 법제도 개선의 효과적 수행을 위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본문으로
11) 반성폭력 규약은 남성활동가들이 그것을 노조의 '국가보안법'이라 부를 정도로 강력한 처벌 기준으로 인식된다. 노조내에서 여성들이 성폭력 사건을 제기할 때 성폭력을 지속적으로 발생시키는 노조의 가부장적 성격이나 여성 배제적 운동방식은 전혀 논의되지 못한 채로, 성폭력의 가해 여부가 남성활동가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또한 노조내 성폭력 사건의 제기는 정파적 이해나 대립과 결합하여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는데, 여성의 피해 경험이 이런 구도 속에서 활용될 위험 또한 존재한다. 본문으로
12) 1990년대 대중매체와 문화산업을 필두로 서구의 성해방 이데올로기가 성의 상품화와 함께 유입되면서, 지금껏 한국에서 논의되지 않았던 여성의 성적 욕망, 실천 등이 대학사회 내에서 여성 이슈로 제기되기 시작한다.본문으로
13) 2년 사용기한 제한은 기간제근로자(계약직)와 파견근로자에 대한 적용방식이 다르다. 계약직의 경우는 시행되는 내년 7월 이후 계약한 사람부터 적용된다. 반면 파견근로는 법 시행 이전의 근무일수까지 포함돼 소급적용 받는다.본문으로
14) 김성희, ‘우리은행 정규직 전환 합의의 의미 평가’, <우리은행 사례, 정규직화의 새로운 가능성인가, 차별의 고착화인가?>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토론회. 2007.1.23 본문으로
15) <종합계획>은 ‘여성인력 활용을 통한 선진경제로의 도약’을 비전으로 2010년까지 여성경제활동참가율 55% 달성, 여성일자리 60만 개 확대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본문으로
16) 시차출퇴근제 등 탄력근무제와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변형근로제, 여성의 노동시장 재진입을 위한 단시간 근로형태 개발과 보급, 여성의 경력 차에 따른 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 연공급 중심의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로 전환하는 등의 내용이다.본문으로
17) 박홍주는 통과된 비정규직 법안이 “여성과 남성의 노동을 분리하고 성차별적 통념에 의거해 여성의 일을 평가절하하는 우리 사회에서, 동일한 업무에 대한 차별적 대우를 금지하는 것만으로는 실효를 거둘 수 없다.”고 비판하고 “우리도 ‘비정규직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 철폐를 위해서는 비현실적인 ‘비정규직 철폐’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라는 대안적 원칙을 확인하고, 나아가 이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을 준비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박홍주, “‘비정규직 철폐’는 대안이 아니다.”중에서 [창비주간논평], 2006.12.19본문으로
18) 얼마전 서울시에서 진행한 ‘서울시 여성정책 수요조사 및 분석’을 보아도, 71%가 전일제 또는 시간제 직장출근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시간제 직장 출근 역시 8시간 이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이 경제활동에 참가함으로써 버는 소득이 여성이 전적으로 가사, 양육을 부담함으로써 주는 비용과 별 차이가 없다면, 여성경제활동 참가가 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이런 ‘선택’이 가능한 조건에 있는 경우에 한정되고, 생계를 위한 필수적인 소득활동이 필요한 저소득층이 존재한다. 즉 노동시장 자체가 여성의 경제적 독립을 보장하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