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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7.1-2.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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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개혁 세력의 몰락과 사회운동의 대안

류미경 | 정책편집국장
노무현정권의 대실패와 이를 둘러싼 권력재편

IMF 외환위기 10년을 맞이하는 오늘, 민생파탄 민주압살로 표현되는 현실은 대중을 정권에 대한 분노를 넘어 정치에 대한 증오와 환멸의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경제위기에 대한 집권 여당의 책임을 물으며 당선된 김대중 정권이 그 해법으로 추진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한국사회를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불안정한 세계경제에 본격적으로 편입시켜, 위기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상시적인 불안정성에 시달리도록 만들었다. “참여와 인권, 민주주의” 등 화려한 수사를 등에 업고 등장한 노무현 정부는 “서민과 중산층 모두의 요구를 실현하겠다.”고 나섰으나, ‘재벌중심의 세계화’를 꾸준히 추진하며 민중의 생존을 더욱 파탄에 이르게 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의 발판”이 될 것이라며 노무현 정부가 정권의 사활을 걸고 추진한 한?미 FTA는 초민족 자본의 이윤 확대를 위해 노동자 민중의 삶과 권리를 통째로 내던지는 것이었다. 오직 미 행정부가 의회로부터 부여받은 ‘신속무역협상권한(TPA)'에 따른 미국 국내절차의 일정을 기준삼아 ’타결‘에만 급급하여 다수 민중의 비판과 반대의사를 깡그리 무시하며 협상을 강행해온 과정이나,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한?미 FTA 체결 저지 운동‘에 대한 폭력적인 탄압은 정권에 대한 불신과 분노를 확대하기에 충분했다. “자주적인 한미동맹” 운운하며 금융세계화에 걸맞은 전 세계 주둔미군 재편계획인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하고, 그 구체 계획인 ’평택미군기지확장‘을 강행하여 한반도의 전쟁기지로 만들었다. 평화를 향한 민중들의 열망은 노무현 정권이 동원한 군대에 무참히 짓밟혀버렸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로 노동의 불안정화가 확산되는 가운데 비정규직을 더욱 양산할 ’비정규직 보호법안‘과 자본친화적인 노사관계를 공고화하는 ’노사관계로드맵‘을 통과시킴으로써 IMF 외환위기 본격화된 노동유연화의 법?제도적 틀을 일단락 지었고, 고용불안을 더욱 심화하고 노동자 민중의 삶을 더욱 위협하고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계속 되는 장기 불황 속에서 민중들의 삶의 파탄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사실 노무현 정권은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민심의 혹독한 심판을 받았고, 곧장 레임덕에 빠져들었다. 아니 레임덕이라기보다는 정치적 가사상태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참여 정부에 민생문제를 만든 책임은 없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신년 특별 연설에서의 언급이 보여주듯, 집권여당은 민중의 ‘심판’에 대한 아무런 반성도, 이를 극복할 의지도 없다.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오는 12월로 예정되어 있는 대선을 겨냥한 ‘정개계편’에 일찌감치 돌입했다. 그리고 이 정계개편의 주도권을 둘러싼 열린우리당의 내분사태는 점입가경이다. 지난 해 말, 비대위가 주도하는 정계개편 방향논의에 친노그룹으로 이루어진 ‘당 사수파’가 ‘지도부 퇴진?원칙없는 신당논의 중단’을 요구하며 제동을 걸고 나서며 대립했다. 이후 의원 워크샵에서 ’2월에 열릴 전당대회를 통한 민주평화 미래 세력 대통합‘을 추진한다고 결의한 후 김근태 의장과 정동영 전 의장이 ’통합 신당 창당‘에 합의하면서 ‘통합신당론’이 대세를 이루는 듯 했으나. 비대위의 ‘기간당원제 폐지 및 기초?공로당원제 도입’을 골자로 한 당헌개정에 대해 ‘기간당원’ 11명이 낸 비대위의 당헌 개정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다시 혼란에 빠졌다. ‘통합신당 창당’을 놓고도 ‘반한나라당 개혁세력 결집’, ‘고건 전 총리의 영입을 염두에 둔 제 3지대 창당론’, ‘열린우리당의 정통성을 계승하는 재창당’ 등 그 방식과 연대세력을 둘러싼 입장 대립이 계속되는 가운데, 급기야 임종인 의원을 필두로 한 ‘선도탈당’이 개시된 후 이계안?최재천?천정배?염동연 의원이 잇따라 탈당하고, 김한길 전 원내대표 그룹과 강봉균 전 정책위의장 그룹 등은 아예 집단탈당을 위한 세 규합에 나섰다. 1월 29일 중앙위원회에서 ‘당 사수파’ 일부가 ‘기초?공로당원제 도입’을 수용하면서 2월 14일 전당대회가 개최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으나, 별도의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여 이후의 신당 창당 과정을 주도하려는 ‘탈당파’의 집단탈당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지지율 5%로 추락한 노무현 대통령과 결별함으로써, 정권재창출의 가능성을 만들려는 시도에서 시작된 열린우리당의 내분은 정계개편 이후의 주도권을 둘러싼 쟁투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2월 14일 전당대회 이후 통합 신당 창당이 본격화 될 터인데, 그 명분과는 다르게 (호남세를 중심으로 하여 충청권을 아우르는) 지역주의 연합, 또는 한나라당 이탈 세력을 아우르는 보수연합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 모든 소동은 노무현 정권의 정치적 파산의 원인에 대한 성찰이라고는 전혀 없는 권력재창출을 위한 도박에 불과한 것이다.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권 몰락의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압승을 거두었으며,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은 50%에 가까운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대선후보 지지율에서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43%에 가까운 지지율로 독주하고 있다.1)
한나라당 역시 ‘대선승리 4대 프로젝트’2)를 마련하고 일찌감치 대선을 위한 채비에 돌입했다. 한나라당은 뉴라이트 세력을 포함한 수구세력의 결집을 목표로 ‘국민참여형 경선’을 통해 6월 혹은 9월경에 후보를 결정할 방침이다. 경선 시기와 방법을 둘러싼 논란, 이명박?박근혜 양측 간의 ‘후보 검증’ 신경전, 노무현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 논의’에 동조하고 나선 원희룡?고진화 의원의 경선 참여 표명 후 확산되고 있는 ‘당 정체성 논란’3) 등의 문제는 향후 판세를 가름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이러한 내부 갈등이 일부 그룹의 ‘이탈’로 이어져 여당 발 정계개편 흐름에 탄력을 제공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한나라당, 특히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 대한 지지는 이들에 대한 기대감이라기보다는 민생파탄?정치의 실종 상황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표출되는 형태라고 봐야 옳다. 실업?비정규직의 급증, 중소 자영업자의 확대와 몰락, 소득격차 확대 등으로 드러나는 한국경제의 만성적 불황은 노무현 정권에 대한 대중적 불만과 분노의 구조적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거듭되는 거짓과 무능은 정치 자체에 대한 대중의 불신과 혐오를 자아내고 있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 우파는 “좌파정권이 나라를 말아먹었다.”고 공격하며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진보와 개혁’의 실패로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 이러한 대중의 분노가 이러한 사태를 만들어 낸 원인에 대한 비판과 미래를 예비하는 행동으로 모아지지 않고 ‘좌파가 문제’라는 인민주의적 선동에 퇴행적으로 동원되는 현실은, 노동자 민중의 미래에 대한 대안을 형성하고 이를 대중적?집단적으로 실현하려는 시도인 사회운동이 부재한 현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은 이른바 ‘원포인트 개헌안’을 레임덕을 딛고 향후 정국을 주도하기 위한 승부수로 내던졌다. 물론 그는 대통령 후보시절인 2002년 1월, 2004년 경 중?대 선거구제를 도입하고, 다수당에 총리 지명권을 이양한 후 책임총리제를 실시하고 2007년에 이르러 개헌을 공론화한다는 ‘정치개혁 시간표’를 공개한 바 있다. 한나라당 역시 2005년 초 정기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김덕룡 원내대표가 개헌문제를 처음 공식화한 후, 안팎의 논의를 거쳐 개헌론에 대한 폭 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러나 지난 1월 11일 대국민담화문을 통해 발표된 개헌안은 ‘대통령 4년 연임제’에 제한이 되어있을 뿐, 이와 필수적으로 연관될 수밖에 없는 여타 권력구조 개편에 관한 안은 물론, 2005년 당시 개헌 논의가 촉발되었을 때 제기되었던 영토조항(제3조), 국회의원 면책특권(44조)과 불체포특권(45조), 경제 민주화를 위한 국가의 규제 및 조정권(제11구조) 등의 논점을 전혀 다루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번 개헌안을 놓고 개헌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열린우리당의 분당 사태에 제동을 거는 한 편, 대선 판도와 이 안의 함수관계를 둘러싼 복잡한 정치적 계산을 놓고 한나라당을 흔들려는 ‘정략적 목적’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한나라당은 ‘함구’,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개헌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도외시하는 세력에게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며 2월 임시국회가 종료되는 시점에 개헌안을 발의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일단 개헌안이 발의되고 나면, 더 이상의 무대응은 불가능할 것이다. 국민투표에 부칠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에 관한 결단의 책임은 국회로 넘어가게 되고, 결과가 어떻게 되든 개헌 문제는 모든 쟁점을 압도할 가능성이 크다.

87년 20년, IMF 10년. 진정한 쟁점은 반 신자유주의

이렇듯 차기 대권을 향한 경쟁이 벌써부터 개시된 이 때, 현재의 지배정치가 위기에 봉착한 원인이 무엇인지에 관한 문제가 화두다. 우리는 각 정치세력이 쏟아내는 진단과 처방이 어떠한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낳고 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정권이 주도하는 정치개혁 논의에는 ‘87년 체제’의 고유한 한계가 지배정치 위기의 근간을 이룬다는 인식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군사독재 정권의 장기집권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된 87년 헌법의 ‘대통령 5년 단임제’가 고질적인 레임덕을 불러일으키며 안정적인 정책 실행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으며, 여소야대 구도에서 빈번한 ‘발목잡기로 인한 정국 마비’가 효율성을 해친다는 것이다. “특권과 반칙?권위주의의 문화를 청산하고 부정과 부패 유착구조를 해체해야 한다는” 87년 체제의 역사적 과제를 마무리한 87년 항쟁의 적자임을 자처한 이들은 “대화와 타협의 민주주의, 연정 또는 연합 정부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수준의 민주주의”를 시대가 요청하는 새로운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4)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 우파는 [DJ-노무현에 이르는] 민주화 세력의 무능‘을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건국-산업화-민주화-자유화-선진화‘라는 보수주의적 국가 발전 도식을 바탕으로 ’현 정권이 좌편향 개혁이 이념적 갈등과 혼란을 일으키며 자유화와 선진화를 지체시켰다는 것이 현재의 위기를 설명하는 이들의 방식이다. 한나라당은 대선을 앞두고 ‘87년 민주화 항쟁 20년 및 IMF 10년’이 화두가 될 것으로 보고, 여권의 공세를 ‘선진화’ 담론으로 맞선다는 전략을 마련했다.

사태를 올바르게 파악하기 위해 다음의 두 가지 질문을 던지자. 우선, 이른바 ‘87년 체제’의 실체는 과연 있는가. 한국사회의 정치의 위기를 둘러싼 논의의 전제를 이루고 있는 ‘87년 체제’는 일반적으로 ’운동에 의한 민주화와 기존 체제라는 두 가지 요소의 결합‘으로 설명된다.5) “한국 사회의 정치적 보수화 및 사회적 양극화의 원인은 실질적 민주주의의 미성숙에 있고, 민주주의의 역전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제도정당을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최장집과 “한국사회에서 사회개혁의 역동성은 항상 시민사회내의 사회운동에서 시작되었고, 그런 의미에서 사회운동의 혁신을 통한 시민사회의 저항적 활성화가 현재의 위기를 탈출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조희연의 논쟁은 87년을 통해 달성한 ’제한적인 민주주의‘를 어떠한 방향에서 완성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이다.6) 그러나 이들이 전제하는 ’형식적 민주화‘로서의 ’87년 체제‘는 그 전부터 추진되어 온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의 실행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한 정치적 조건을 창출하는 계기였을 따름이다. 87년 체제의 근간은 6월 항쟁을 계기로 분출한 ’민주화와 사회변혁‘을 향한 대중적 열망이 아닌 이를 제도적으로 봉합하기 위한 노태우 주도의 ’6.29 선언‘에 있다. 6월 항쟁의 변혁적 열망의 맥을 잇는 7?8?9 노동자 대투쟁, 13대 대선에서 군부정권의 재등장과 3당 합당에 맞선 1990년 보수대연합분쇄투쟁, 1991년 5월 투쟁을 거치면서 전국적으로 불타오른 대중운동은 지배계급의 ’반격‘으로 붕괴했다. 결국 ’사회변혁을 향한 열망‘으로서의 민주주의는 ’군부와의 합의된 이행‘을 근간으로 하는 ’문민정권‘에 의해 봉쇄되었고, 이렇게 등장한 김영삼 정권은 ’세계화‘ 담론을 내세워 WTO, OECD 가입을 비롯하여 금융화된 세계경제로의 편입을 본격화한다. 그 효과로서 폭발한 1997년 IMF 경제위기에 대한 책임을 따져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어낸 김대중 정권 역시, 보수세력과의 연합(DJP 연합)을 근간으로 탄생했으며, ’경제위기 극복 담론‘을 동력삼아 전 사회에 걸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IMF 조기졸업’이라는 ‘성과’는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투기자본의 활성화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이와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비리?부정 부패는 결국 정권의 몰락을 불러일으켰다. ‘참여’를 장려하는 외양을 띠며 386세력을 대거 흡수하며 인민주의적 정치스타일을 전면화한 노무현 정부는 김영삼 정권에서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완성하는 역할을 자임했다. 한?미 FTA, 경제특구, 금융규제완화, 주식시장 중심의 투기 조장, 노동유연화의 법?제도적 틀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노무현 정부는 정치적 가사상태에 일찌감치 빠져든 상태에서도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마무리를 위한 정책을 일관되고 꾸준하게 추진해왔다. 이런 의미에서, 개헌 논의를 통해 노무현 정권이 내세우고 있는 ‘87년 체제의 극복’이라는 과제는 ‘신자유주의 개혁 세력’의 안정적 집권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시도일 따름이다. 결국 87년에 분출한 ‘민주주의와 사회변혁’을 향한 대중적 열망을 봉쇄하고 등장한 문민정부-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는 ‘민중항쟁을 통한 민주주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그 정치적 성과를 독식한 채 ‘재벌중심의 세계화’를 완성해 온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인 것이다. ‘재벌중심의 세계화’의 필연적인 결과로서 경제위기, 금융화와 투기자본의 활성화를 통한 경제위기 극복전략이 낳은 노동자 민중의 권리 축소와 부정부패, 대중의 정치적 불신과 환멸은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이 처한 ‘위기’의 본질이 다름 아닌 ‘신자유주의 개혁’자체에 내재한 것임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민주화 이후의 선진화’를 이끌 세력임을 자처하는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세력’이 택할 수 있는 차별적인 선택지는 존재하는가. 이들이 내세우는 ‘국가선진화 방안’의 뚜렷한 상은 없다. ‘법치주의와 자유시장주의’를 중시하여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고, 서민위주의 중장기 경제성장정책을 펼친다는 것이다. 더불어 IT, BT, NT, 환경, 조선, 항공, 서비스산업 등 미래형 산업을 집중 육성하여 성장 동력을 창출한다는 것이다.7)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김영삼 정권에서 노무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추진되어 온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에 따른 ‘장기불황’이라는 조건에서 출현한 위기 극복 전략이라는 점이다. ‘민생파탄’의 근간을 이루는 고용 없는 성장, 사회양극화로 표현되는 빈곤의 확산은 한나라당이 주장하는바 ‘무능한 좌파정부’ 실정 탓이 아니다. 초민족 금융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축적구조의 형성, 노동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 금융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저해하는 정부 정책의 억제와 사회적 보호 장치의 해체가 낳은 필연적인 결과인 것이다. 이미 금융화 된 세계 경제에 깊숙이 편입한 한국사회의 조건에서 이들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다. 그러므로 재벌중심의 세계화가 낳은 삶의 위기의 상황에서 발생하는 안정에 대한 대중적 열망을 자극하며, ‘무능한 좌파정부’와 ‘성장을 저해하는 집단이기주의 세력(사회운동)’을 적으로 규정하며 인민을 동원하는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세력의 행태는 그들 스스로 비판하는 ‘파퓰리즘 정치’이며, 그들이 내세우는 ‘국가선진화전략’은 공허한 레토릭에 불과하다.

허구적인 ‘보수-진보 대립’이 아닌 대안세계화의 전면화로!

따라서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몰락’과 ‘지배정치의 위기’를 목도하는 상황에서, 노동자 민중이 제기해야 할 진정한 쟁점은 “수구보수냐, 진보개혁이냐”가 아니라 “초국적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냐 노동자민중이 주도하는 대안세계화냐”다. 따라서 ‘새로운 정치운동’으로 2007년 대선에 적극 개입하겠다며 출범한 ‘창조한국미래구상(준)’이 표방하는 ‘수구보수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해 정책을 중심으로 한 진보개혁세력의 단일후보를 추대’한다는 구상은 시대착오적이다. 민주노동당은 2007년 대선의 목표로 “진정한 진보정치 세력으로서의 수구 보수와 진보의 대립점을 주 전선으로 하여 선거투쟁을 전개하고 이를 통해 당의 위상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진보민중진영의 지지를 모아가는 것”을 설정하고 한?미 FTA, 부동산, 한반도 평화, 사회연대정책, 대안경제 정책을 주요 쟁점으로 부각시키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정개개편이나 개헌논쟁, 남북정상회담과 같은 변수 속에서 잠복되어 있는 ‘진보-개혁세력의 대통합론’이 부활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8)
우리는 87년 항쟁의 정치적 성과가 비단 정권과 386의 배신으로 인해서만 유실되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1987~91년 계급투쟁의 국내외적 패배로 인한 변혁 이념과 운동/조직의 해체, 그리고 남은 민중운동 역량이 1990년대 중후반 이후 코포라티즘적 노동조합과 당으로 수렴이라는 노동자 민중운동의 내적인 원인을 구성한다. 87년 전국적으로 분출한 ‘혁명적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결합한 사회운동은 1991년 문민정부의 등장과 함께 변혁성을 탈각하고 급속히 해체한다. 문민정부 하에서 지배계급은 금융화 된 세계경제로의 편입을 꾀하며 계급투쟁의 변모를 시도했으나, 노동자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은 이러한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전노협의 전투적이고 변혁적인 노동운동 노선을 비판하며 국가-자본-노동 관계의 제도화를 모색한다. 뒤이어 산별노조 건설과 정치세력화를 목표로 1995년 출범한 민주노총이 1996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에 참가하며 코퍼러티즘적 노선을 수용하게 된다. 그리고 그 후과로 노동자운동은 IMF 외환위기를 등에 업고 본격적으로 추진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고,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된 전 사회적 구조조정?노동유연화에 맞서는 투쟁에서 패배와 후퇴를 거듭했다. 신자유주의가 획책하는 분할통치에 맞서 연대와 단결을 실현하고 노동자 대중의 보편적인 이해를 대변하는 데 실패하고, ‘노조비리 폭로, 노동귀족 공세’를 비롯한 노동자운동에 대한 정권의 대중적 혐오감 조성 전략에 노출되어 고립되고 만다. ‘형식적 민주주의의 달성’이라는 미망 하에 노동자운동과 분리된 채 자리 잡은 ‘시민운동?NGO' 세력은 ’진보/개혁‘ 담론을 바탕으로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통치성을 뒷받침하는 하위파트너로 전락한다.
’민생파탄‘의 원인일 뿐 그 해결책이 결코 될 수 없음이 확인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맞서는 노동자 민중의 대안적 전망을 구성하고 이를 실현해나갈 사회운동의 독자적인 역량을 구축하는 것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과제다. 코퍼러티즘을 거부하고 인민의 자기통치 사상을 바탕으로 고용형태와 임금조건, 성별, 국경과 인종에 따른 분할을 뛰어넘는 연대를 실현하는 것,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많은 민중의 권리로 새로운 세계를 재건하는 것, 이를 위한 변혁적인 사회운동을 형성하는 것이 노동자 민중의 대안이다.


1) CBS의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정당 지지도는 한나라당 48.1%, 열린우리당 17.4%, 민주노동당 6.9%, 민주당 6.4%로 나타났으며, 후보별 선호도 조사 결과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43%,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23.5%로 2위, 손학규 전 경기지사 6.4%,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6.2%, 권영길 의원 2.8%,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 2.6%를 각각 기록했다. 본문으로
2) ‘여권의 평화?통일 공격에 대비한 한반도 평화 프로젝트’, ‘과거사 공세에 대비한 현대사 대응 프로젝트’, ‘여권의 호남정서?양극화 공세에 대비한 취약 계층?지역 공략 프로젝트’, ‘국가 선진화 프로젝트’를 포함한다.본문으로
3)1월 31일 한나라당 참정치운동본부 주최 ‘한나라당의 정체성과 대선전략’ 세미나에서 유석춘 공동본부장이 고진화 의원을 ‘한나라 당 내 열우당 2중대’로 지목하며 탈당을 촉구한데 이어, 김용갑 의원은 CBS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원희룡 의원의 경선 참여를 종용했다. 두 의원은 법적대응도 불사하겠다고 나서고 있다.본문으로
4) 1.31 ‘참여정부 4주년 기념 국정과제위원회 합동심포지엄’에서 ‘참여정부 4년 회고 및 향후 국정운영방향’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노무현 대통령의 특강 중. 본문으로
5) “87년 체제는 두 가지 요소의 결합을 그 특징으로 한다. 하나는 운동에 의해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민주화는 혁명적 단절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기존 체제의 연속선상에서 제도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두 요소가 일정하게 결합되어 운동과 제도의 힘의 균형이 이루어졌다. 다시 말해 운동이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동시에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을 국민들이 위임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기존 정치세력과 공존하는 민주주의 체제가 곧 87년 체제의 기본 성격이라 할 수 있다.” 『한겨레』, 「[1987년 그 뒤, 20년] 민주개혁세력 어디로 ① 최장집 교수」2006.1.21. 본문으로
6)김정훈,「민주화세대는 어디에 있는가?」『황해문화』2006년 겨울호 참조 이후의 .논쟁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레디앙』에 두 번에 걸쳐 실린 조희연 교수의 ‘최장집교수 비판’을 참조하시오. 「지적의 올바름과 진단의 오류」,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4915 및 「제도정치 중심주의 vs 사회 중심주의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4921. 아울러 이 논쟁에 대한 손호철 교수의 평가로, 「두려움의 동원정치’를 넘어서자」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5028도 함께 참조할 수 있다. 본문으로
7) 자료집, 여의도연구소 주최 ‘희망대한민국 만들기 국민대토론회’. 2007.1.15http://www.ydi.or.kr/ht_discuss/viewbody.html?ht_div=ydi_debate&page=1&article_no=43&uid=57&keyfield본문으로
8)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는 ① 민주노동당과 한국진보연대의 강화와 자주적 민주정부의 기반 구축 ② 진보개혁세력의 대연합과 미국과 한나라당의 재집권기도 분쇄 ③ 미국의 식민지배와 친미보수세력을 청산할 수 있는 사회정치적 환경 마련을 2007년 대선의 3대 목표로 제시하며, “6.15의 방패로 미국의 개입을 차단하고 반보수대연합의 창으로 친미보수세력을 고립시키며 범국민적 반미, 반보수투쟁으로 정국을 압도하면 현재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아무리 높아도 대선은 진보개혁세력의 승리로 막을 내리게 될 것이며”, “상반기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고 반보수대연합이 실현되어 진보개혁세력의 후보단일화가 가능해지고 제2의 반미촛불대투쟁이 전 사회를 뒤흔들면 대선은 무조건 승리할 수 있다.”고 예측하고 있다. 「2007년 겨울 반미반전전국일꾼전진대회」자료집.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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