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7.1-2.71호

대추리 도두리 지킴이들의 싸움

: 마을공동체를 지켜나가기 위한 거주운동

진재연 | 평택지킴이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 투쟁은 다양한 사람들이 여러가지 방식으로 저항하며 싸움을 만들어왔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대추리 도두리라는 공간에서 만났고, 전국 방방곡곡 자신이 속한 자리에서 작은 실천들을 벌여 나가기도 했습니다. 그 중 마을안에서 주민들과 일상을 나누며 싸움을 이어간 ‘지킴이’들은 빈집을 수리하고 청소해 ‘거주’하는 방식을 택한 사람들입니다. 주민들의 삶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일하고, 농사일을 배우며, 국방부의 폭력에 맞서 싸우기 위해 자신의 생활공간을 대추리 도두리로 옮긴 것입니다. 압도적인 물리력을 동원한 공권력의 침탈에 맞선 큰 싸움이나 거리에서의 투쟁 뿐 아니라,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이고 지난한 폭력들과 싸우고 주민들과 함께 생활을 이어왔습니다. 지킴이들의 일상은 부당한 국가폭력으로부터 마을을 지켜내며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었습니다. 지금 대추리 도두리에는 약 15명의 ‘지킴이’들이 살고 있습니다. 2005년 초부터 마을에 들어오기 시작한 지킴이들은 많을 때는 30명 가까이 되기도 하였는데, 대부분이 기존의 운동단체 활동가들이 아닌 평화를 실천하고자 자발적으로 찾아온 개인들이었습니다.


지킴이들은 대추리 도두리를 새롭게 채워지는 마을로 만들기 위해 빈집을 수리하고 청소해 다양한 공공시설, 문화시설을 만들었습니다. 찻집, 사진관, 어린이 놀이방, 마을 도서관, 마을 방송국, 주민역사관 등을 통해 주민들과 소통하고 힘든 싸움의 과정을 지지/지원하고자 했습니다. 2006년 초 이사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고, 자신이 살던 집을 망치로 부수고 마을을 떠났습니다. ‘외부세력’이 들어와 살지 못하도록 하라는 국방부가 지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방부는 지킴이들이 살고 있는 집에 “국가의 소유이니 불법점유하고 사용하는 이에겐 2년 이하징역이나 7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는 계고장을 붙였지만, 죽어있는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으려는 지킴이들의 움직임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마을의 빈집을 고치고 청소해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과정은 대추리 도두리가 떠나가는 마을이 아니라 새롭게 채워지는 공간이며, 전쟁세력에 맞서 평화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싸우며 살아가는 마을임을 대중들에게 알려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그 시간들은 ‘대추리 도두리 평화촌’이라는 새로운 상징을 만들어냈고,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투쟁의 고유하고 새로운 운동방식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지킴이들의 거주운동은 그 자체가 합법/불법의 경계를 허무는 불복종운동입니다. 또한 다양한 문화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공간을 채우고 방치되어있는 빈 건물을 되살리는 공간재생운동입니다. 여전히도 국방부는 지킴이들을 주민들과 분리하고 외부세력으로 매도하고 있습니다. 국방부는 주민들을 집에서 쫓아내기 위해 낸 명도소송에서 주소지를 옮겨 살고 있는 지킴이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 가옥에 추가적인 불법 전입신고가 이루어지고 있는 바, 이는 의도적으로 소유권을 방해하려는 행위”이며, 주민들이 “제 3자의 추가적인 위장전입을 허용함으로써 가옥에 대한 소유권 행사를 중대하게 방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위장전입자’에 대한 추가적인 소송제기까지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킴이들은 절대 ‘위장’전입자가 아니며, 부당한 법과 권력에 불복종하겠다고 당당히 선언한 사람들입니다.

지킴이들이 오랜 시간동안 마을에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주민들이 지킴이라는 낯선 존재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킴이들은 주민들과 생활적, 정서적으로 동화되고 각자 자신의 역할들을 찾아 갔으며 그렇게 ‘주민’이 되었습니다. 주민들이 열린 마음으로 밖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과정은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 투쟁의 의미가 확장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 싸움은 풀뿌리 작은 단체나 다양한 개인들의 자발적 참여가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마을에 거주하는 ‘지킴이’들의 싸움은 이후 반전평화 운동을 만들어나가는 데 고민을 던져 줄 수 있는 지점일 것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광범위한 투쟁을 만들어 왔지만 지금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투쟁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작년 5월 4일 학교가 무너지고 철조망이 논을 둘러싸면서 마을은 점점 고립되어갔고 정세를 역전할 그 어떤 힘도 만들지 못했습니다. 결국 주민들은 이주를 전제로 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대추리 마을총회에서 이장님이 주민들에게 앞으로 계속 싸워 나갈 수 있는지 물었을 때 이정오(71) 할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남은 50가구가 계속 싸운 다는 것은 힘듭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고 같이 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니 더 이상은 어렵다고 봐요.” 처음 이주를 결정했을 때 주민들은 오랜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활기를 되찾은 듯 보이기도 했습니다. 4년 동안 열심히 싸워왔지만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되면서부터 많이 지쳐갔고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 세 번째 쫓겨나게 되고 만다는 생각에, 또한 ‘이주’가 결정되었지만 앞으로 맞이하게 될 복잡한 일들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라 주민들은 걱정이 많으십니다. 특히 재산이 없는, 혼자 사시는 할머니들의 근심은 더욱 늘었습니다. “어디 사람들 가는 데 따라가서 가생이에 컨테이너 박스라도 짓고 살면 좋겠어. 난 집도 없고 땅도 없는 데 갈 데가 없잖아.” 주민들은 공동이주대책이 완료되기 전까지 절대로 마을을 나갈 수 없다고 하지만, 국방부는 하루라도 빨리 마을에서 주민들을 내 쫓으려고 합니다. 가옥에 대한 명도소송의 최종판결이 내려지는 3월 초쯤 생가철거를 할 수 있다고 협박을 하고 있습니다. ‘이주’를 전제로 대화를 하고 있는데도 생가철거를 하겠다고 하고, 성토작업을 시작해 길을 새로 만들었고 좁은 시골길에 15톤짜리 트럭이 줄지어 다니며 흙을 나르고 있습니다.

마을에 사는 지킴이들은 주민들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4년간의 시간이 얼마나 빛나는 것이었는지, 얼마나 자랑스러운 역사였는지 알고 있습니다. 얼마 전 촛불행사에서 송재국 할아버지(71)가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주민들에게 칭찬 좀 해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장하십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900일 가까이 이렇게 노래를 부르는 건 사회를 위한 것입니다. 이곳에 찾아 온 젊은이들이 주민들을 돕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사회를 위해서 싸워 온 것입니다. 우리는 옳은 일을 위해 그 험한 것들 받아 안으며 정부가 잘못한 걸 말하고 싸워왔습니다. 정말 잘 하셨습니다.” 할아버지 말씀처럼 지킴이들은 여전히 주민들을 지지하고 존경하고 있습니다. 마을에서는 지금도 매일 저녁 촛불행사가 진행 중입니다. 지킴이들은 매일 저녁 촛불행사장을 정리하고 난로를 피워 따뜻하게 데워 놓고 주민들을 기다립니다. 2월 17일은 촛불행사 900일이 되는 날이고, 5월 28일이면 1000일이 됩니다. 주민들은 농담처럼 ‘촛불행사 1000일을 채우면 우리가 이긴다.’고 했는데 지금 마을의 상황은 매우 힘들기만 합니다. 이제는 밖에서 찾아오는 사람도 부쩍 줄어들었고, 싸움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주민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지만, 평택미군기지확장을 막아내기 위한 싸움을 계속되어야 합니다. 주민들이 이제까지 해왔던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그 뒤를 이어나가려고 합니다. 여전히 마을에서는 할 일이 많이 있고 기나긴 싸움을 힘겹게 이어왔던 주민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의 조직으로 구성되지도 않았고, 싸움의 의미들도 제각각 다르지만 대추리 도두리 지킴이들은 미군기지확장을 막아내기 위해 함께 싸우며 어울려 살아왔습니다. 때로는 삐걱대기도 하고, 서로 다름을 발견하면서도 대추리 도두리안에서의 자유롭고 평등한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지킴이들은 지금 버섯농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함께 미루나루를 베러 가고 종균을 넣고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차양막을 칠 것입니다. 얼마 전 김양분 할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주민들이 다 나가도 니들이 여기 살면 나도 여기 살 겨. 이사한다고 해도 걱정이잖아. 지킴이들이 여기 살면 나도 니들이랑 여기서 끝까지 살 거여.” 우리가 언제까지 이곳에 살게 될지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사는 동안 주민들에게 많은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난 1년 주민들과 함께 한 하루하루가 너무나 소중했던 것처럼 주민들에게도 지킴이들이 그런 존재였으면 합니다.
주제어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