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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7.3.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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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 세계화와 더 많은 민주주의를 향하여: 사회운동의 새로운 프로세스로서 시민교육운동

장진범 | 정책편집부장
시민교육에 대한 최초의 장애물: 1990년대 한국 시민 개념의 반(反)민중성

우리는 이 글에서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진행 중인 민주주의의 위기 및 신자유주의 금융ㆍ군사세계화에 맞서기 위한 사회운동의 새로운 운동 프로세스로서 ‘시민교육’을 제기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일차적 반응은 거부감이 아닐까 싶다. 모두들 한국의 ‘시민’ 개념에 고유한 반(反)민중적 용법을 몸으로 생생히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노동자들의 파업이 벌어질 때마다 ‘시민을 볼모로 하는’ ‘집단이기주의’ 따위의 말을 조건반사처럼 읊어대며 가혹한 탄압을 가했던 지배계급들. 이는 1987년 이후 특히 1990년대 들어 이른바 ‘시민운동’을 자처하는 NGO(Non Governmental Organization, 비정부기구)들이 노동자운동을 비롯한 ‘민중운동’과 갈라서면서 스스로를 정립한 이래 사회운동 내외부를 막론하고 확대재생산되었다. 이른바 <창조한국미래구상(준)>을 주도하는 정대화 교수가 사회운동은 대안이 될 수 없고 ‘성숙’하고 ‘합리적’인 시민들이 새로운 정치운동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고 말할 때, 그 역시 이 지겨운 용법을 동일하게 되풀이하는 것이다.
이렇듯 한국에서 시민은 노동자 민중과 분리된 별개의 존재라는 용법으로 굳어져 있다. 이는 마르크스 이래 마르크스주의의 전(全)전통이 비판해 온 정치와 경제․사회의 고질적인 이분법에 조응한다. 즉 시민은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사회를 초월하는 정치적 존재이고, 노동자 민중은 정치와 보편성에 미달하는 자들, 한 마디로 ‘집단이기주의’ 세력이 된다. 하지만 이 같이 극히 부당한 분할은 1990년대 이래 한국에 고유한 역사적 산물이며, 더 중요하게는 노동자 민중 운동의 보편성을 앗아가려는 의식적인 정치적 기획이다. 이는 노동자 민중을 억압하는 결과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시민 자체를 공허하고 형식적인 존재로 전락시켜 버렸다.
우리가 사회운동으로서 시민교육을 말할 때, 그 목표 중 하나는 이 같은 분할과 그 반민중적 효과를 극복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당연한 얘기지만, 시민교육은 기존의 분할선을 따라 정립되고 구성된 정치․시민적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 예컨대 노동자 민중들이 ‘시민적 덕목’을 배우는 따위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이는 특히 현재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기존의 정치와 시민이 위기에 빠져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문제는 사회운동과 노동자 민중을 억압․배제한 채 성립한 정치와 시민의 모순을 분석하고 변혁함으로써 정치와 사회운동, 시민과 노동자 민중의 호혜적 변증법을 재개하고, 이에 따라 대안적인 정치와 시민을 형성해 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단 시민교육은 대안적 정치 및 주체에 적합하게 기존의 지식과 교육 과정을 변혁함으로써 사회운동의 새로운 지적(知的) 수단을 구성해 가는 장기적인 운동 과정으로 규정해 볼 수 있다.

근대 민주주의와 시민(권)의 근본 원리들, 그리고 그 위기

1) 근대 민주주의의 세 가지 근본 원리
위에서 잠정적으로 규정한 것처럼 시민교육이 대안적 정치 및 주체에 적합한 새로운 지적 수단을 구성하는 운동이라면, 우선 대안적 정치와 주체를 논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프랑스 혁명을 전후한 여러 근대적 혁명을 통해 출현한 민주주의와 시민의 역사는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다.
시민은 고대 이래 능동적인 정치적 주체를 의미했다. 하지만 근대 이전까지 시민 지위가 노예나 여성, 외국인 등 넓은 의미에서의 ‘신민’(臣民)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특권이었다면, 근대에 들어 여러 정치 혁명이 일어나고 민주주의가 건설되면서 시민 지위는 민주주의적 정치 공동체를 구성하는 모든 인간 나아가 잠재적으로는 모든 인간의 보편적 권리로 선언된다. 그런 점에서 근대적 시민은 민주주의의 정치적 주체라고 규정할 수 있으며, 또는 역으로 민주주의는 시민권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보장되는 정치 공동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민주주의와 시민권은 불가분의 관계일뿐더러, 서로를 측정하는 기준이 된다.
근대 민주주의를 기초 짓는 가장 근본적인 이념은 인민주권이다. 즉 왕이나 귀족 등 특권 계급이 아니라 시민들 전체로 이루어진 인민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정치 공동체를 구성․통치한다는 것이다. 정치 공동체의 모든 ‘공적 업무’는 내용적․형식적으로 인민주권으로부터 정당성을 얻어야 하며, 그 필연적 귀결은 정치 공동체의 모든 의사결정과 집행이 인민의 통제 아래 놓인다는 것이다. 자연적인, 궁극적으로는 신적․초월적인 권위에 의해 지지되던 정치 공동체의 위계적 조직 방식 및 그에 대응하는 신분들은 평등한 자유에 의해 해체된다. 요컨대 민주주의는 인민 이외의 어떤 절대적 기초나 질서도 없는 정치 공동체로 규정된다.
그런데 바로 이 때문에 즉각 ‘인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그리고 모든 인민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누려야 할 시민권이 무엇인가 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전까지는 모종의 초월적이거나 자연적 권위가 답을 내렸다면, 이제 오직 정치적 토론과 대표 행위를 통해서만 이 문제가 결정될 수 있다.1)
그리고 여기서는 인민을 이루는 모든 시민들이 평등한 발언권을 갖는다. 어떤 권위도 시민들의 토론과 대표 행위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의 중심에는 갈등이 있다. 그런데 이 갈등은 서로 다른 선재하는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 간의 갈등이 아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갈등은 ‘인민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따라서 인민을 이루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며 그 논의 결과에 따라 정치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변화해야 하는 근본 원리에 관한 갈등이다. 토론을 통한 대표 행위를 통해 이 갈등은 일시적으로 결론지어질 수 있다. 하지만 자연적․초월적 권위에 기초를 두지 않기 때문에 이는 항상 다시 이의를 제기받을 수 있고 새롭게 결론지어질 수 있다.
근대 민주주의가 인민주권과 동시에 ‘권력 분립’(separation of powers), 즉 절대적 권위 내부의 갈등이라는 얼핏 보면 서로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듯한 원리에 기초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원리의 진리성은 절대 권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역사적 경험을 통해 부정적으로 입증된다. 자유주의자들은 이를 ‘삼권 분립’이라는 형태로 제도화하지만, 이는 권력 분립의 진정한 문제의식에 미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문제는 이미 구성된 권력들 간의 갈등이 아니라, 한 편으로 이미 구성된 권력 전체와 다른 한 편으로 이것 전체의 정당성을 문제삼으면서 새로운 권력을 구성하려는 운동 사이의 비대칭적인 갈등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통찰을 일찍이 가장 명시적으로 제시한 이 중 한 명이 바로 마키아벨리다. 그는 ‘지배하려는 욕망’과 ‘지배받지 않으려는 욕망’ 사이의 갈등이야말로 부패를 막고 자유를 확대하는 근본 원리라고 주장하고, 로마 시대의 호민관이 바로 그런 기능을 수행했다고 주장한다. 역사적으로 모든 피지배자․피억압자들은 기존의 권력에 도전․저항하면서 여러 가지 형태의 ‘대항 권력’을 제도 안에 기입한다. 이 대항 권력은 자신들의 실존을 규정짓는 사회적 권력을 집단적으로 통제함으로써, 인민주권의 이념이 권력의 사유화에 의해 타락하지 않도록 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인민과 시민권에서 배제된 자들이 정치의 장으로 들어와 기존의 정치 공동체가 민주주의 원리에 위배된다는 점을 폭로하고 인민과 시민권 자체를 다시 구성할 수 있게 하는 통로를 열어 놓음으로써 ‘민주주의를 민주화’하는 장치로 기능한다.2)
갈등의 성격을 둘러싼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갈등은, 자본주의에 이르러 경제 및 사회의 정치적 성격을 둘러싼 갈등으로 이어진다. 자본가를 비롯한 지배계급은 경제 및 사회의 정치적 성격을 부인하고, 따라서 계급 적대에서 비롯하는 착취와 불평등이라는 객관적 현실을 정치의 장에서 배제한다. 그들은 이로써 평등을 형식적 평등 내지 기회의 평등으로 축소하고 자유를 착취와 불평등의 정당화로 왜곡한다. 반면 노동자를 비롯한 피지배계급은 계급 적대에서 비롯하는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이 정치적 문제 즉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효과를 갖는 문제임을 분명히 한다. 계급 적대로 인해서 (루소의 유명한 언급처럼) 어떤 시민이 “또 다른 시민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하거나 “스스로를 팔도록 강제될 정도로 가난”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민주주의와 시민(권)은 파괴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평등을 ‘실질적 평등’으로 진전시키고 자유와 평등의 상호성을 회복하는 것만이 민주주의와 시민(권)을 구하는 길이다. 이 과정에서 제기된 것이 바로 ‘사회적 시민권’(social citizenship, 이하 사회권)이다. 사회권은 기존의 정치/경제 분할을 넘어서 경제․사회를 정치적인 문제 즉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효과를 갖는 문제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동시에, 정치에 현실성과 물질성을 부여한다. 또한 이는 부조(assistance)나 시혜, 곧 특정한 사회적 ‘약자’에게만 제한적으로 제공되고, 그 대상이 되는 시민을 타율적이고 의존적인 존재로 전락시키는 조치와는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즉 사회권은 모든 시민에게 보편적으로 제공될뿐더러, 시민의 자율성과 존엄성에 직결되는 새로운 ‘기본권’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런 의미에서의 사회권이 고대적 시민권과 근대적 시민권 사이의 단절을 아주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는 점이다. 즉 전자의 관점에서 볼 때 시민의 자격과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시민권을 얻는 것이라면, 후자의 관점에서는 사람들이 시민권을 통해서 시민으로서의 지위나 자격을 획득하는 것이 된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시민권을 둘러싼 논의와 관련하여, 누가 시민권을 얻을 자격이 있는가에 관한 기준을 한없이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시민을 형성하고 시민적 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해 필요한 시민권이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평등하게 분배할 수 있는가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이상의 측면들은 서로 구별되지만 동시에 분리할 수 없이 얽혀 있다. 또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들 안에 불균등하게나마 제도화된다. 이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은 가정을 세울 수 있다. 만일 이 중 어느 한 측면이라도 파괴되면 민주주의와 시민권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또 이를 지탱해 준 역사적 제도가 위기에 빠져도 마찬가지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아래에서 우리는 이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와 민주주의의 무력화
오늘날 자본주의의 전략을 집약하는 신자유주의 금융․군사세계화는 앞서 살펴 본 민주주의와 시민권의 근본 원리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것은 우선 인민주권의 원리를 파괴한다. 인민주권의 핵심은 인민들이 정치 공동체의 모든 문제에 대한 발언권과 결정권과 통제권을 갖는다는 점이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기본 목표는 노동자를 비롯한 인민의 통제로부터 금융자본을 필두로 한 모든 자본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신자유주의자들은 대표제의 부르주아적 형태인 의회를 축소하고 대중들에게 훨씬 덜 구속 받는 사법부․행정부와 같은 기술관료제 및 이를 보완하는 NGO를 국가 권력의 중심에 내세운다. ‘시장’이라는 인민의 손에 닿지 않는 초월적 규범 및 WTO와 IMF, FTA 등 새롭게 건설한 초민족 행정네트워크 에 종속된 이들 기술관료제는 ‘신자유주의 경쟁국가’의 중심적 장치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그 결과 국가는 금융자본에 의해 ‘사유화’된다.
또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사회권을 파괴하고 배제를 심화시킨다. 사회권을 박탈당한 인민들은 시민으로서의 지위 자체를 위협받는다. 또 ‘사회적 양극화’라 불리는 인민들 내부의 불평등이 확대되는데, 이는 인민이라는 통일된 정치적 주체 자체의 해체로 귀결되고 만다. 인민의 해체가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자신이 여전히 명목적으로는 ‘주권자’인 정치 공동체에 대해 아무런 의사결정이나 통제를 행사할 수 없고 통일된 정치의 주체가 해체되는 상황에서 집단적 무력감과 냉소주의가 만연한다. 또 불평등이 심화된 인민 내부의 분열과 질시가 확대되면서 이른바 ‘원한의 정치’가 발호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인민의 통일성을 민주적인 방식이 아니라 초월적이거나 권위적인 원리 및 지도자를 중심으로 폭력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인민주의적 시도가 재발한다.
이 같은 상황은 특히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를 전후하여 나타난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는 담론에서 절정에 이르는 정치적․이념적 갈등에 대한 체계적 평가절하 및 심지어 악마화와 밀접히 연관된다. 이 같은 갈등에 대한 대안으로 한 편에서는 ‘정치의 종언’이, 다른 한 편에서는 ‘정치의 복귀’가 제시된다. 전자는 정치적․이념적 갈등이 사회에 대한 중립적이고 전문가적인 기술관료적 개입을 방해하는 것이 위기의 원인이라면서, 사회에서 (정치적) 갈등을 배제하고 관리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사회통합’이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후자는 노동자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 등 ‘공익’을 생각하지 않는 ‘집단이기주의’가 공동체적 조화를 깨뜨리는 것이 문제라면서, 정치로부터 (사회적) 갈등을 배제하고 ‘성숙’하고 ‘합리적’인 ‘시민적 덕’을 회복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양자 모두 민주주의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성취된 정치와 경제․사회의 단락을 역전시켜 정치와 사회를 분리시키려 한다는 점에서는 한 치도 다르지 않다. 양자 모두 이념적 갈등을 체계적으로 평가절하하는 한편 ‘합의’를 소리 높여 외친다. 그러나 논쟁과 투쟁 이전에 합의를 앞세우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본 정신에 반하는 것일뿐더러, 신자유주의에 의한 민주압살․민생파탄 상황에서 합의가 이루어질리 만무하다. 이런 상황에서 합의주의는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이념적 갈등을 앞세우거나 또는 정반대로 공익을 생각하지 않는 ‘집단이기주의’ 세력에 대한 경찰적 억압과 폭력으로 손쉽게 돌변한다. 이념적 갈등의 선차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외쳐지거나 또는 그것을 억압하기 위해 외쳐지는 합의와 평화, 법과 질서 따위의 담론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위기와 극단적 폭력을 확대하는 원흉인 것이다.

3) 87 항쟁 20년, IMF 10년,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이상의 상황은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며, 우리 역시 이를 고통스럽게 겪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우리의 특수한 상황을 추가해야 한다. 한국전쟁과 박정희의 등장으로 한국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된 반공주의는 민주주의 자체를 억압했고, 이 때문에 민주주의의 정치적 주체로서의 시민 역시 마찬가지로 억압받았다. 한국에서 시민에 관한 토론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대중운동을 통해 민주주의에 대한 억압이 돌파된 1987년 민중항쟁을 전후해서다. 그리고 바로 이 시점부터 민주주의와 시민이 무엇인가를 둘러싸고 격렬한 토론과 투쟁이 대중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한다.
이 시기 특히 주목할 점은 반공주의로 인해 일종의 범죄 취급을 당했던 이념적 갈등 및 노동자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이 1987년 민중항쟁 이후, 특히 7․8․9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면서 민주주의와 시민(권)을 둘러싼 논쟁의 한 복판을 가로질렀다는 점이다. 민주주의에 관한 자유주의적 해석인 자유민주주의에 맞서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 등의 변혁적 판본이 정립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80년대 말부터 세계적으로 진행된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및 91년 5월 항쟁의 패배는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는 담론을 확산시키면서 반공주의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이념적 갈등과 변혁적 사회운동을 지체 없이 억압한다.
이처럼 이념적 갈등과 사회운동이 억압된 상황에서 민주주의, 또는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민주화’와 ‘개혁’은 인민주권의 이념을 구현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소위 민주화 세력들은 1987년 6월 항쟁을 전후하여 사회 각 분야에서 제기된 민중의 삶의 요구를 축소하고 배제하기 위해 신군부가 발의한 ‘6․29 협약’을 충실히 이행하면서 민주화의 문제를 절차적인 문제로 축소시킨다.3) 1987년 6월 항쟁 이후 상정된 민주적인 개혁 법안들은 차례차례 폐기되거나 개악되었다. 동시에 민주주의는 국가 담론으로 전유된다. 6월 항쟁이 신화화되는 대신 변혁적 사회운동들은 이른바 ‘민주화운동’으로 선별적으로 포섭되면서 변혁적 성격을 배제당한다.4) 동시에 스스로를 ‘시민운동’이라 참칭했던 NGO들은 노동자 민중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과 스스로를 구별짓는 가운데, 후자를 시대착오적이고 조급한 이념적 운동 내지 ‘집단이기주의’ 세력으로 폄하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기여한다.
더욱이 문제는 민주화와 개혁이 인민주권을 무력화하는 자본의 세계적 전략으로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정당화하는 데 활용되었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세력들은 ‘개발독재’로 불리는 정부 주도의 발전 방식을 민간 곧 시장 주도의 발전 방식으로 대체하는 것이 곧 민주화요 개혁이라고 규정한다. 예컨대 김영삼 정부는 출범 당시 ‘신경제’나 ‘세계화’ 또는 ‘신경영전략’ 등을 내세우면서 신자유주의를 통해 대중들의 동의를 조직하고자 했다. 마찬가지로 참여연대 등 NGO는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소액주주운동’ 등 민주화와 개혁의 언사를 빌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선도한다. 이는 97년 IMF 위기를 거치면서 사회 전체를 지도하는 절대적 원리가 된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갈등과 저항은 사회의 조직 원리가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에 관한 이념적 갈등이 아니라,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선진화하는 데 ‘적응’하지 못한 낙오자들의 병리적 현상으로 치부된다. 97년 IMF 당시 김대중과 NGO 등 신자유주의자들은 이 위기가 ‘관치금융’이나 ‘정경유착’ 등 개발독재 시대의 유산(그리고 개발독재 세력과 ‘야합한’ 민주화 ‘배신’ 세력) 때문이라고 말하며, ‘관’이나 ‘정’으로부터 독립한 ‘민’의 대표인 기업 및 기업의 규범으로서의 ‘경영 원리’에 따라 사회를 재조직할 때에만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경영 이데올로기는 97년 이후 사회 모든 영역의 담론을 식민화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것의 결과는 동일한 이름 아래 발생하는 엄청난 불평등과 배제다. 소위 ‘유연화’ 이름 아래에는 금융화된 네트워크 경제를 미끄러져 다니는 ‘노마드’적인 금융자본가들과 실업 및 노동의 불안정화를 인내하면서 끊임없이 일자리를 옮겨 다녀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함께 있다. ‘자기경영’ 아래에는 수억의 연봉을 받는 CEO(Chief Executive Officer, 최고경영자)와 자기경영의 수단이라는 MBO(Management By Objectives, 목표관리계획)에 따라 ‘자기착취’의 계획을 세우는 지식근로자가 있다. ‘자율적 시민’ 아래에는 재산은 물론 외모와 문화적 소양까지 갖춘 팔방미인들과 이제 자기 자신의 재생산에 대한 모든 책임을 떠안고 무너져 가는 빈민대중들이 있다. 민주화와 개혁, 자유는 곧 불평등과 배제의 동의어로 여겨진다.5)
이렇게 IMF 10년의 고통을 겪으면서 대중들은 현재의 위기의 원인이 수구보수기득권 세력에게 있는 게 아니라 이를 개혁한다고 주장한 신자유주의 민주화세력에 있음을 여실히 깨닫는다. IMF 이후 5년이 되는 노무현 당선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수구보수’ 세력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구도가 불완전하나마 작동했지만, 이제 그것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모든 면에서 분명해지고 있다. 인민주권과 민주주의의 파괴, 불평등과 배제의 확대가 민주화와 개혁의 이름으로 자행된 탓에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환멸이 높아진다. 그에 비례해 강력한 권위주의를 희구하는 대중들의 정서가 점점 강화된다. 87 항쟁 20년, IMF 10년, 객관적․주체적 양 측면 모두에서 민주주의의 근본적 위기를 맞게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와 노동자운동의 패배, 그리고 민주주의의 위기

위에서 살펴보았듯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하 민주주의와 시민의 위기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구조적인 현상이다. 그리고 거기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중 하나가, 민주주의를 가장 비타협적으로 옹호했던 마르크스주의와 노동자운동의 역사적 패배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이 패배를 역전시키는 것이 관건인데, 이를 위해서는 물론 패배를 초래한 주체적 원인에 대한 반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는 물론 매우 긴 논의를 필요로 할 것이다. 다만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이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하 민주주의의 위기이므로, 여기서는 마르크스주의․노동자운동이 민족형태를 수용한 결과 생겨난 문제점을 중심적으로 다룰 것이다.6)
민족형태는 두 가지 핵심 제도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세계를 분할하는 ‘국경’이라는 외적 경계선이며, 다른 하나는 지적인 차이, 성적인 차이, 인종적인 차이 등 인간들 안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차이를 차별로 변환하고 지배를 조직하는 내적 경계선이다. 역사적인 마르크스주의․노동자운동은 이를 경향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이 같은 분할을 넘어서 보다 보편적인 운동을 조직하는 데 실패하게 된다. 우선 전자를 살펴보자. 2차 세계대전 이후로 국한해 보자면 한 편으로 소련을 중심으로 한 국제 공산주의 진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이 시작되면서 설치된 ‘동-서 분할’이라는 초(super)국경을 받아들이고, 소련이라는 민족 국가의 이해를 위해 국경 체계의 균형을 최우선 과제로 놓으면서 이 균형을 깨뜨릴 수 있는 초국경 내외부의 운동을 억압한다. 세계적 반핵평화운동이 겪은 비극은 그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이렇듯 ‘대항-제국주의’로 변질한 결과 이들은 국제주의 운동에 대한 영향력을 급격히 상실한다. 다른 한 편으로 서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사민주의 진영은 민족적인 사회적 타협을 받아들이고 이 틀에 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이면은 서구 제국주의, 또는 위계적인 국가 간 체계의 상위에 자리잡음으로써 얻게 되는 편익을 취하고 과잉착취와 삶의 불안정성 등의 문제를 자국 국경 밖으로 추방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 이르러 세계 자본주의가 구조적 위기에 진입하는 시점에 부르주아들이 기존의 민족적 사회 협약을 거부하고 신자유주의 금융․군사세계화라는 새로운 초민족적 계급투쟁 전략을 본격화할 때, 이들은 기존의 민족 국가를 방어하는 데 그치고 만다. 양자 모두 1945년 이후 설립된 제도적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형태로 맞서 노동자 민중운동을 세계적 수준에서 새롭게 재편하려는 시도를 충분히 주도하지 못했고 이는 마르크스주의․노동자운동의 역사적 패배로, 그리고 결국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진 것이다.
다음으로 내적 경계선의 문제를 살펴보자. 민족형태는 앞서 지적한 여러 인간학적 차이들을 활용하여 노동자 민중 내부를 분할․차별․배제하고 지배를 조직하는데,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노동자운동은 이에 맞서기 위한 적극적인 운동을 조직하지 못한다. 이처럼 차이를 차별로 변환하는 전략과 제도를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던 것은 성차별이나 지식인과 노동자의 분할, 문화적 동일화․구별 등이 궁극적으로 계급 적대로 환원될 수 있으며, 따라서 계급 적대가 해결되면 나머지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는 식의 환원론적 시각 때문이었다. 여기서 핵심은 계급 적대의 보편성을 부정하고 모든 것은 특수하다는 상대주의적 시각으로 뒷걸음치는 것이 아니라, 계급 적대 이외에도 보편적 관계들이 복수로 존재하며 이는 서로 뒤얽혀서 작동한다는 것을 분석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 같은 환원론적 시각은 변혁의 전망을 축소시켰을 뿐더러, 계급 적대 이외의 보편적 관계에 기초한 다른 보편적 이념들, 예컨대 페미니즘이나 문화혁명, 평화주의, 생태주의, 다문화주의 등 국제주의적 연대를 매개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들을 전유하는 데 커다란 장애물로 작용했다.
신자유주의 금융․군사세계화가 본격화됐을 당시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기존의 운동은 위기에 빠진다. 금융세계화를 통해 부르주아들이 민족적인 사회 협약의 제약에서 벗어났을 때, 이에 기초한 중심부의 노동자들은 큰 위기에 빠졌다. 또한 금융세계화의 축적 방식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부를 중심부의 금융자본에 집중시키고 (반)주변부 경제를 파괴하는 ‘강탈’이라는 점에서 주변부의 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 상황에 놓인다. 하지만 금융세계화에 맞선 중심-(반)주변 노동자들의 연대 투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이는 앞서 지적했던 것처럼 기존의 운동들이 민족형태에 안주함으로써 국제주의적 연대에 관한 시각이나 수단을 제대로 발전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주변부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중심부로 이주를 감행하는데, 이들은 민족형태의 핵심 제도인 내적 경계선에 의한 차별 때문에 심각한 노동의 불안정화에 노출되고, 이렇게 재구성된 ‘산업예비군’은 기존의 중심부 노동자들에 대한 규율을 강화시키는 수단이 된다. 이 때문에 중심부 노동자들은 주변부의 이주노동자들 때문에 자신들의 상황이 더 나빠진다고 표상하면서, 이들을 추방하거나 ‘민족 우선’이라는 원리에 따라 노동자들을 차별해야 한다는 인종주의․인민주의 이데올로기에 취약하게 된다. 물론 이 같은 차별을 겪는 (반)주변부 노동자들은 자본 뿐만 아니라 노동자를 비롯한 중심부 인민 일반에 대한 증오를 키워가게 되고 이는 국제주의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이렇듯 민족형태의 내적․외적 경계선은 금융세계화에 대한 연대 투쟁을 가로막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을 분할․경쟁시켜 오히려 자본의 이익에 기여하는 효과를 거둔다. 결국 노동자들은 계속적인 패배를 겪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과거 노동자운동이 쟁취한 여러 가지 권리와 보루들을 상실하게 된다.
그 결과 노동대중들은 자신들이 한때 잠시나마 빠져나왔던 자본주의의 야만적이고 극단적인 폭력에 다시 노출되었다. 이 폭력의 과정을 잠시 살펴보자. 근대 민족 국가는 크게 네 가지 상대적으로 구별되는 소속들의 절합으로 이루어져 왔다. 가족으로 대표되는 일차적 소속, 노동으로 대표되는 매개적 소속, 민족으로 대표되는 이차적 소속, 그리고 민족이상적 소속. 여기서 ‘매개적 소속’으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노동이다. 왜냐하면 모든 노동은 재화나 용역뿐만 아니라 ‘사회성’이나 ‘사회적 연관’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마치 농민들이 식량뿐만 아니라 환경을 (재)생산하는 것처럼. 또한 노동을 관통하는 계급투쟁을 겪으면서 노동자들은 자본과 갈등하는 동일성 및 존엄성을 획득하게 됐는데, 이를 통해 노동자들은 가족이라는 일차적 소속에서 자유로워지는 한편, 민족이라는 이차적 소속에 (자본가와 전혀 다른 이해와 전망을 갖는) 갈등적 집단으로서 개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금융세계화는 실업을 비롯하여 노동의 불안정화를 초래함으로써 이 매개적 소속을 파괴한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노동을 통해 형성된 사회적 관계를 상실하게 되는 한편, 노동자로서의 동일성 및 존엄성을 상실하게 된다. 노동이라는 가장 중대하고 시민적인 소속을 상실하는 것은 물질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측면에서 극단적 폭력으로 경험된다. 이 같은 극단적 폭력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대중들은 매개적 소속 이외의 다른 소속들에 필사적으로 집착하게 된다. 한 편으로는 가족이라는 일차적 소속에 집착하면서 배타적 성향이 강해지고 다른 편으로는 민족에 국가주의적․권위주의적으로 집착하게 된다. 또한 매개적 소속이 약화되면서 가족과 국가가 혼동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 결과 국가는 거대한 가족이 됨으로써 배타적 성향이 강화되고, 가족은 권위주의적 국가의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나마 남아 있는 매개적 소속도 동일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처럼 사회 전반적으로 소속의 배타적 성향이 강화되면서, 이 소속에 속한 개인들은 기존 소속 내에서의, 또는 소속들을 넘나들 수 있는 자유를 상실하고 주어진 역할을 도구적이고 억압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것은 또 다른 극단적 폭력이다. 그리고 이 극단적 폭력의 양 극단은 끊임없이 동요한다. 즉 배제의 극단적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인들은 배타적 소속 쪽으로 뛰어 들지만, 이 역시 극단적 폭력인 한에서 참을 수 없는 개인들은 배제 쪽으로 뛰쳐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이 같은 악순환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이 과정에서 어떤 소속에 속하면서도 다른 소속들을 넘나들 수 있는 시민적인 공적 공간은 파괴되고, 이는 배타주의와 권위주의, 인민주의 등이 창궐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다.
한국 역시 위에서 살펴 본 마르크스주의․노동자운동의 한계와 위기, 그리고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때문에 발생하는 실업과 빈곤, 노동의 불안정화의 극단적 폭력 및 이데올로기적 동요에서 예외일 수 없다. 앞서 지적했듯 1953년 이후 반공주의에 억눌려 있던 한국의 노동자운동은 1987년 이후 대중운동적으로 진출하게 됐을 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억눌려 있던 변혁적 이념과 결합할 수 있는 조건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1991년을 전후한 패배로 변혁적 이념이 다시 억압되는 가운데, 1987년의 대중적 성과인 전노협은 일찍이 1992년 당시 이미 ‘전노협의 위기’ 논쟁을 겪으면서 이념적 변혁성 및 전투성을 폐기하라는 우익적 비판에 시달린다. 당시의 이데올로기적 정세가 반영되어 논쟁은 우익적인 방향으로 일단락된다. 게다가 3저호황에서 시작된 거품경제와 맞물려 진행된 내수소비 확대 조치를 계기로 노동자운동은 ‘소비주의’와 ‘핵가족’을 매개로 한 이른바 ‘중산층’ 이데올로기에 점차 포섭되게 된다. 여기에 ‘시민운동’으로 자처하는 NGO가 출현하여 노동자운동을 좁은 의미의 사회경제적 운동으로 제한하면서 노동자운동에게는 크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물론 노동자운동은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출현한 ‘신경제정책’이라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저항해 왔고 그 절정은 노동법 날치기 통과에 맞선 1996~97년 총파업이었다. 그러나 1997년 IMF 이후 경제 위기를 등에 업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로의 종속적 편입 및 그에 맞는 사회 재편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당시 계급 대립의 핵심 지점이 한국 경제가 겪는 위기의 원인 및 이후 발전 방향을 둘러싼 매우 근본적인 것이었다는 점에서, 1990년대 변혁적 이념과 이론의 억압이라는 조건은 노동자운동이 방어적 투쟁을 넘어서 변혁적이고 사회운동적으로 발전하는 데 매우 큰 제약으로 작용했다. 더구나 위에서 살펴보았듯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불러오는 노동의 불안정화가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노동자 내부의 분할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기존의 임금 투쟁이 1987년 당시와는 달리 노동자 전체의 임금 인상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할을 강화시키는 상황에서, 노동자운동은 매우 불리한 이데올로기적 조건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앞서 누차 살펴보았듯 노동자운동의 위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시민(권) 전체의 위기로 이어진다.

1987년의 대중적 성과인 전노협은 일찍이 1992년 당시 이미 '전노협의 위기' 논쟁을 겪으면서 이념적 변혁성 및 전투성을 폐기하라는 우익적 비판에 시달렸고, 당시의 이데올로기적 정세가 반영되어 논쟁은 우익적인 방향으로 일단락된다. 이후 노동자 운동은 1996~97년 총파업 투쟁 등을 통해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 재편에 맞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변혁적 이념과 이론이 억압된 조건에서 노동자 운동이 코퍼러티즘을 넘어서 사회운동과 결합을 강화하는 변혁적 길을 모색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대안세계화 운동의 지적 수단으로서 시민교육

위에서 살펴보았듯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라는 부르주아들의 새로운 계급투쟁 전략, 그리고 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노동자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의 패배야말로 오늘날 민주주의와 시민의 위기를 규정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매우 여러 측면에서 장기적인 노력이 투여되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사회운동의 지적 수단을 (재)구성해 가는 과정으로서 ‘시민교육’의 관점에서 몇 가지 과제를 도출해 보고자 한다.

1) ‘더 많은 민주주의’ 이념의 전면화로서 시민교육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와 시민권의 이념․실천에 관한 갈등적 토론을 개시하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에는 특히 1987년 이후 자유주의적인 민주화․개혁 담론과 근본적으로 단절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정치/경제․사회의 문제로 분할하여 정치적 민주주의를 절차의 문제로 국한시키는 한편 ‘부적응자’에 대한 시혜적이고 관리적인 사회경제적 정책을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 정의한다거나, 이른바 ‘반공훈육사회’에 대한 비판을 매개로 신자유주의 사회 재편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주권, 이념적 갈등, 사회권 등의 개념을 통해 ‘더 많은 민주주의’에 관한 토론을 본격화하고 정치/경제의 구조적 분할을 극복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관련하여 특히 중요한 것은 인민으로 대표되지 못하고 배제되는 대중들이 정치의 장으로 진입하여 정치 공동체 자체를 새롭게 (재)구성할 수 있는 권리 및 제도에 관한 토론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불평등과 배제로 인해 정치적 발언권 자체를 박탈당한 대중들이 이를 되찾고 행사하며 이로써 정치적 집단을 형성하는 주체화의 훈련 과정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시민교육은 시민 주체를 형성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주체적 조건을 창출할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이에 관해서는 뒤에서 좀 더 자세히 서술하도록 하겠다.

2) 대안세계화운동과 시민교육의 의제
시민교육은 오늘날 민주주의와 시민권의 위기를 가장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및 마르크스주의․노동자운동의 무능을 변혁하여 현실사회주의 붕괴 이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대중운동으로서 ‘대안세계화’ 운동과 발맞추고 또 그것을 일진전시킬 수 있는 지적 조건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관련해서 많은 노력이 필요한데, 일단 몇 가지만을 밝혀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및 그 이데올로기에 대한 전방위적 비판을 강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정치경제학 비판’으로서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개념을 재전유하는 한편, 현 정세에 맞게 새로운 개념들을 발명하고 정교화해야 한다. 이는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경제학이나 경영학 등이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나서고 있고 이에 맞서지 않으면 운동을 진전시킬 수 없는 상황과 관련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별 사안에 개입하는 것을 넘어서, 민주주의와 시민권의 생명력을 이루는 정치적 갈등이라는 이념을 뒷받침할 수 있는 대안적인 이데올로기적 좌표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경제적 문맹퇴치’라는 슬로건 아래 시민교육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아탁(ATTAC)의 사례는 시사적이다.7)
둘째, 대안세계화 운동을 위해서는 대중운동들 간의 국제주의적 연대를 매개할 수 있는 보편주의적 이념들이 필수적이다. 마르크스주의는 그 중 하나일 테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또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의 많은 조류가 민족형태에 포섭되면서 여러 사회운동들을 매개할 수 있는 역량을 상실해 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마르크스주의가 보편주의적 이념으로서의 역량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페미니즘이나 평화주의, 생태주의, 다문화주의 등 다른 보편주의적 이념들과의 대화와 상호개조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매우 어려운 문제가 제기된다. 보편주의 간의 갈등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이 특수주의 간의 갈등이라면 특수주의의 상위에 있는 보편주의가 갈등을 매개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가문과 가문의 갈등을 상위에서 매개하는 민족처럼. 그러나 쟁점이 되는 것이 보편주의 간의 갈등이고, 따라서 그 상위에 보편주의를 설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문제는 훨씬 복잡해진다. 그 상징적 사례 중 하나로 프랑스에서 벌어진 히잡(hijab) 논쟁을 들 수 있다. 당시 쟁점은 ‘정교분리’라는 관점에서 종교적 표식이 금지된 프랑스의 학교 안에서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계 프랑스 여성들이 히잡이라는 이슬람 전통 스카프를 쓰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 종족적 차별, 문화적 인종주의 등을 문제삼는 다문화주의자들은 이를 허용할 것을 주장했고, 여성의 종속과 불평등, 그리고 그녀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맞서 싸우는 페미니스트들은 이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두 가지 보편주의적 이념 간의 갈등은 전면적이며, 아마도 이것이 실천적으로 해결되는 데는 매우 상당한 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이 같은 모순을 부정하는 가운데 양자가 (사실상 어느 하나의 절대적 우위 하에) 자연스럽게 수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든지 자신의 이념의 정당성을 근거로 다른 이념의 정당성을 부정하려고 하는 이념은 신뢰하기 어렵다. 우리는 각각의 이념의 정당성을 낳는 복합적이고 불균등한 물질적 조건이 존재하는 한 이 모순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며, 따라서 이 갈등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기예를 익혀야 한다. 또한 보편주의에 고유한 위험으로서 자신의 이념에 내재하는 공백과 모순을 부정하려는 경향을 제어하면서, 이를 끊임없이 지적하고 개방함으로써 보편주의 간의 (갈등적) 교통을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민교육은 ‘보편주의 간의 갈등’을 다루는 ‘갈등적 다원주의’를 조직하고 유지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셋째, 대안세계화를 위한 ‘이행적 요구’를 만들어 가야 한다. 여기서 ‘이행적 요구’라고 할 때 이는 우선 단순히 여러 부문들의 요구를 단순합한다든지, 현재 요구와의 고리를 잡지 못하는 ‘최대강령’을 늘어놓는 것 따위를 경계하는 것이다. 또한 대중운동에 기반한 요구와 대안에 대한 정치적 전망 구축 과정의 결합을 주장하는 것이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진행된 세계적․국내적으로 진행된 여러 대중운동의 성과를 갈무리하고 이를 대중들과의 광범위한 토론을 통해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시민교육은 그동안 계속 어긋났던 대중들과 지식인들이 대안세계화라는 정치적 전망을 중심으로 재결합할 수 있는 과정과 공간이 되어야 한다.
넷째, 대안세계화의 의제는 기존 민족국가라는 제도 및 ‘국민’이라는 주체를 통해서는 제대로 해결될 수 없다. 결국 초민족적인 의제를 다루는 민중적인 공간과 토론, 실천을 열어냄으로써 새로운 제도와 주체를 만들어내야만 한다. 즉 기존 지배계급 및 기술관료들을 매개하지 않고 노동자 민중을 비롯한 시민들이 직접 초민족적인 의제를 토론하고 결정할 수 있는 공적 공간과 실천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는 문화와 상징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에서의 ‘언어’ 장벽을 넘어설 수 있는 직접적․간접적 조건과 역량이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대안세계화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그 의제를 실현하기 위해서 반드시 함께 해야 하는 세계의 여러 인민들과의 공적 토론을 매개하고 공통의 정치적 동일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여러 지적 수단들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여러 언어들과 이념들, 상징들을 매개하고 ‘번역’하는 집단적인 지적 과정을 구축하는 것이 시민교육의 중요한 의제로 나서야 한다.

3) 복수의 교육제도들을 개조하고 창설하는 운동 ‘프로세스’로서의 시민교육
우리는 오늘날 민주주의와 시민(권)의 위기를 가장 크게 규정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이며, 이 때문에 대안세계화가 민주주의와 시민(권)을 새롭게 건설하는 데 관건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대안세계화는 하나의 정치적 전망일 뿐, 그 구체적 전략이나 강령은 이미 만들어진 전제가 아니라 그 자체로 토론과 결정의 대상이며 이를 둘러싸고 많은 견해들이 갈등적으로 대립하고 있다.
다만 우리는 대안세계화가 초민족적인 수준에서 민주주의와 시민(권)을 재건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점을 분명하게 견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자본의 세계화를 ‘전도’하고 ‘모방’하는 것과 대안세계화를 혼동하곤 하는 일부 자율주의의 주장을 비판하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국경을 비롯한 모든 경계선과 소속을 폐지함으로써 자본의 이동의 자유를 무한히 확장하는 것처럼, 대안세계화는 노동이나 민중의 이동의 자유를 현재 자본 이동의 자유‘처럼’ 확대하는 것이라는 식의 관념과 거리를 두는 것이다. 이는 사실 신자유주의가 앞장세우는 ‘유연화’ 등의 이데올로기에 공명할 위험이 있을뿐더러, 실업을 비롯한 노동의 불안정화로 인해 노동과 같은 매개적 소속을 박탈당하고 배제됨으로써 극단적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대중들이 볼 때는 또 다른 극단적 폭력으로 느껴질 위험마저 있다. 또한 금융세계화로 인한 금융과 노동, 자원의 중심부로의 집중 및 그에 상관적인 (반)주변부 경제의 파괴와 빈곤 심화라는 상황은 자본을 통제하고 (반)주변부 경제를 재건하려는 초민족적 기획 없이 노동의 이동을 자유롭게 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현재와 같은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킬 위험마저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안세계화는 결코 대중운동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새로운 시민적 공간과 소속, 그리고 권리와 ‘안전’을 건설하는 것이지, 금융세계화에 고유한 (자본) ‘이동성’을 이상화하여 이를 노동자의 전략으로 모방하는 ‘경제주의’적 접근이 아니다. 물론 기존의 민족형태 및 소속을 강화하는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민주주의와 시민(권)의 관점에서 볼 때 문제는 모든 경계선이나 소속의 무차별적 폐지나 그 강화와 같은 일방적 접근이 아니라, 대중들이 차이나 소속을 유지하면서도 그것을 상대화할 수 있고 넘나들 수 있게 해 주는 구체적인 수단을 대중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를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는 여러 수준의 근대적 학교와 교육이었다. 학교는 한 편으로 가족과 같은 일차적 소속에 속한 대중들을 해방시키고 보다 보편적인 관점을 획득할 수 있게 해 주는 지적 수단이 되었다. 다른 편으로 학교는 일차적 소속에 속한 대중들에게서 동일성이나 소속을 단순히 박탈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자신들의 동일성을 보다 보편적인 방식으로 가공함으로써 시민적 공간에서 하나의 ‘보편적 당파’로 설 수 있게 돕는 지적 수단으로 기능하기도 하였다.8) 여기서 핵심은 민주주의와 시민(권)의 관점에 입각한 교육은 동일성과 소속을 파괴하지도, 강화하지도 않는 상대화와 매개의 공간이라는 점이다.
이는 역사적 사례를 통해 분명히 입증되는 바다. 예컨대 19세기 영국에서 대표적인 시민교육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자기교육운동’을 보자. 원래 이 운동은 어떤 의미에서도 ‘동일성’의 기획이 아니었다. 이들은 의식적으로 ‘직업교육’과 같은 특정한 계급의 이익에 봉사하는 교육을 거부하고, 수학․자연과학․경제학․정치철학․역사학 등, 그 이전까지 노동자계급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었던 지식을 ‘전유’하면서 스스로를 보편적인 세력으로 형성해 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부르주아적 시민으로서의 ‘교양’ 교육이라고 폄하할 수도 없는데, 왜냐하면 이는 노동자를 보편 ‘계급’으로 형성하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다.9)
프랑스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많은 역사가들은 19세기 프랑스에서 부르주아의 전유 공간으로 간주되던 정치와 문화의 영역에 접근하는 노동자들의 출현에 주목한다. 이는 ‘노동자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자야’ 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에게 사고를 위한 시간 따위는 남아 있지 않다고 못박았던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시간의 분할을 돌파하는 것이었다. 이는 또한 기존의 상징적 질서가 자신에게 부여한 마찬가지로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이른바 ‘대중 문화’가 아니라, 자신과 같은 노동자에게 허용하지 않았고 ‘그들의 것’이 아니었던 사고와 기록, 지식을 전유하고 개조함으로써 지식의 분할을 돌파하는 과정이기도 하다.10)
물론 20세기에 들어서면 조건이 바뀌게 된다. 그 이전까지의 학교와 지식이 노동자를 비롯한 많은 시민들을 사실상 배제했고, 이 때문에 대중들이 학교와 지식에 접근하고 전유하는 것 자체가 해방적일 수 있었다면 이제는 학교가 이 같은 요구를 부분적으로 포섭하면서도, 그 내부에서 지적인 위계와 분할을 (재)조직하는 상황이 생겨났기 때문이다.11) 여기서 핵심이 되는 것은 능력주의(meritocracy)다. 능력에 따라 계층상승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의 이면은, 능력에 따른 차별은 정당하며 따라서 도전할 수 없다는 공포다. 능력주의는 계층상승을 위한 노동자대중 내부의 경쟁을 통해 계급적․집단적 주체 형성과 투쟁을 제약하며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데 매우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능력주의를 통해 계층상승을 이룬 노동자들은 아예 지배엘리트로 편입되는 다소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주로 ‘기술자’나 ‘관리자’가 되는데, 전자가 자신의 지적 노동을 통해 생산한 생산수단을 통해 기계를 이용하는(사실은 기계들에 이용되는) ‘육체’노동자의 노동과정을 조직하는 데 간접적으로 개입한다면, 후자는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관리하는 직접적 역할을 수행한다. 이렇듯 자본주의 생산관계와 능력에 따른 노동의 분할은 이른바 ‘지식노동’을 ‘육체노동’의 통제․관리 수단으로 만들어낸다. 물론 이 지식노동자들 역시 지배계급에게 이데올로기적인 통제를 겪게 되는 것은 매한가지다. 또한 능력주의와 관리주의는 지식노동 내부로 도입되어 이들 노동자들을 분할하고 불평등을 강화하는 이른바 ‘지식노동의 프롤레타리아화’를 초래한다.
이 같은 상황 때문에 시민교육을 표방하는 운동은 공장과 학교의 분할, 그리고 이에 규정받는 공장과 학교 내부의 분할 자체를 문제삼고 지식/노동, 노동/노동 간의 계급형성적인 교통을 매개할 수 있어야 한다. 관련하여 역사적으로 가장 의미심장한 시도 중 하나는 중국의 문화혁명 당시 역사적 실험이다. 이들은 교육과정과 노동과정의 새로운 연계를 추구했다. 한편으로는 보다 일반화된 학교교육을 확대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 민중이 학교와 교육을 통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개인적인 지적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동료노동자들과의 집단적 평가와 결정을 통해서 대학입학 자격이 결정되는 사례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지만 매우 의미심장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생산수단의 자본주의적 사용을 문제삼으면서, 이윤 논리에 따라 자본주의가 배제하는 일들에 생산수단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는 능력을 노동자들이 갖출 수 있게 만들고, 공장을 과학적 실험과 기술개량, 그리고 지식노동/육체노동 분할을 넘어선 새로운 노동자를 형성하는 장소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나타난다.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과정이지만, 문화혁명에서도 핵심은 지적인 차이를 차별과 분할로 전환시켜 지식의 성격을 관리주의적으로 만들고 노동자들이 노동과정과 사회를 통제할 수 없게 만드는 부르주아적 구조에 맞서는 것, 이 같은 분할을 넘어서 지식과 노동을 결합시키려는 시도를 노동과 지식의 장소에서 동시에 진행함으로써, 양자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노동자들의 시민으로서의 통제력을 회복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시민교육이 선재하는 동일성이나 소속을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넘어설 수 있는 구체적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시민으로서의 주체화를 돕는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시민교육은 특정한 교육제도―여기에는 ‘공교육’과 같은 공식적 교육제도 및 노조와 야학 등을 포함한 비공식적 교육제도 모두가 포함된다―로 한정되지 않는 전망 또는 관점이자, 시민교육의 관점에서 복수의 교육제도들을 개조하고 창설하는 종별적이고 장구적인 운동 과정 곧 ‘프로세스’로 보아야 할 것이다.12)이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하에서 공교육을 비롯한 모든 교육제도들이 불평등과 배제, 그리고 배타적 소속과 동일성을 강화시키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생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대중적 반(反)지성주의, 그리고 이로부터 초래되는 인민주의와 권위주의로 인한 민주주의와 시민권의 가일층 파괴라는 악순환을 깨뜨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와 시민(권)의 관점에서 볼 때 문제는 모든 경계선이나 소속의 무차별적 폐지나 그 강화와 같은 일방적 접근이 아니라, 대중들이 차이나 소속을 유지하면서도 그것을 상대화할 수 있고 넘나들 수 있게 해 주는 구체적인 수단을 대중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시민교육을 사고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와 시민(권)의 관점에 입각한 교육은 동일성과 소속을 파괴하지도, 강화하지도 않는 상대화와 매개의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다.


시민교육을 통해 대안세계화 운동의 활로를 열자

시민교육이 시민이라는 주체를 형성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는 오늘날 민주주의와 시민(권)이 맞이한 위기를 극복하는 운동의 일부가 될 때에만 가능하다. 이를 위해 시민교육은 신자유주의자들이 벌이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왜곡과 축소에 맞서, 인민주권을 비롯한 민주주의의 근본 원리에 입각하여 이념적 논쟁을 본격화해야 한다. 또 오늘날 민주주의의 위기를 낳는 가장 큰 원인으로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맞서기 위해, 대안세계화 운동의 활성화에 지적으로 기여해야 한다. 또한 신자유주의가 불러오는 실업 및 노동의 불안정화가 대중들의 권리와 소속, 안전을 파괴하고 이것이 배제와 배타적 소속이라는 극단적 폭력으로 이어져 시민적 공간을 파괴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대중들이 소속을 둘러싼 폭력에 대처할 수 있게 돕는 시민적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민교육은 일회적 시도나 특정한 제도를 건설하는 것으로 국한되지 않고, 학교와 노조를 비롯한 복수의 교육제도들을 이런 관점에 맞게 개조하는 보다 넓은 운동 프로세스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제안일 뿐이며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측면이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던지고 싶은 핵심적 문제의식은 민주주의와 시민(권)의 위기에 대처하는 지적․교육적 기획이 요청된다는 점, 그것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맞서려는 모든 대중운동들에 공통적인 운동 의제와 프로세스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시민교육은 대안세계화 운동의 충분조건은 아니더라도 필요조건임은 분명하고, 따라서 이것만으로 대안세계화 운동의 활로를 열 수는 없다 하더라도, 위에서 논증하려 했던 것처럼 이것 없이 대안세계화 운동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1) 여기서 우리는 민주주의적 대표 개념과 그 이외의 대표 개념을 엄격하게 구별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이는 근대 이전의 대표 개념과 다르다. 가장 잘 알려진 사례는 프랑스 ‘앙시엥 레짐’ 시기의 ‘삼부회’(三部會)다. 이는 한 편으로 사회 안의 위계적이고 불평등한 각각의 신분을 대표하며(그런 의미에서 이는 ‘코퍼러티즘’적이다), 다른 한 편으로 군주, 보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시민보다 상위에 있는 통치 권력 앞에서 고충이나 탄원, 간언을 늘어놓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민주주의적 대표는 인민이 무엇인가를 토론하고 결정짓는 행위이고, 인민은 평등하고 자유로운 시민들의 공동체이자 모든 통치 권력을 (재)구성하고 거기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주권자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또 이는 자유주의에 고유한 엘리트주의적 대표 개념과도 다른데, 이는 소유에 의한 것이든 능력에 의한 것이든 인민들 내부의 불평등이 대표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선출된 정치 엘리트들이 ‘특수의지’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는 명목으로 민주주의적 대표 개념의 필연적 귀결인 인민에 의한 통제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주의적 대표란 인민 내부에 존재하는 불평등과 배제를 공적으로 제기․토론하고 모든 시민에게 평등하고 자유로운 권리가 보장될 수 있는 방향으로 공동체 전체를 변혁하는 과정이라고 보아야 한다. 마르크스가 프롤레타리아트를 자신을 해방시킴으로써 만인을 해방시키는, 또는 ‘보편 계급’이라고 정의하면서 당파성과 보편성을 연결시키는 놀라운 정식화를 제시할 때, 그가 얘기하는 것이 바로 이 같은 대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본문으로
2) 더 자세한 내용은 미구엘 바터, 「마키아벨리와 공화주의적 법치」, 『사회운동』, 통권71호, 2007, 1/2를 보라.본문으로
3) 이광일, 「한미FTA 계기로 다시본 노무현 정권의 성격 - 6월항쟁 아닌 6․29협약이 노 정권의 뿌리」, 『프레시안』, 2006, 7, 21.본문으로
4) 김정한, 「민주화 세대의 역사적 좌표」, 『황해문화』 53호, 2006년 겨울.본문으로
5) 이에 관한 자세한 분석은 서동진, 『자기계발의 의지, 자유의 의지 - 자기계발 담론을 통해 본 한국 자본주의 전환과 주체형성』,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박사논문(2005. 6.)을 참조하라.본문으로
6) 민족형태에 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에티엔 발리바르, 「민족형태: 그 역사와 이데올로기」, 『이론』 6호(1993)를 보라. 한 편 이 같은 관점을 연장하고 있는 최근 작업으로는 『문학과 사회』 75호(2006년 가을) 특집을 보라.본문으로
7) 아탁의 시민교육에 관해서는 다음 호에 실릴 송종운의 글을 참고하라.본문으로
8) 물론 이 같은 매개의 과정에서 학교가 대중들에게서 소속을 박탈한다든지, 민족을 비롯한 특정한 동일성과 소속을 강제한다든지 하는 가능성 및 현실적 사례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러나 이 같은 모순에도 불구하고 학교 및 교육이 민주주의와 시민(권)에 기여할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제는 그것의 폭력을 축소시키고 해방적 가능성을 확대시켜 ‘시민교육’으로 개조해 가는 장구적 과정일 것이다.본문으로
9) 윤종희 외, 『대중교육: 역사, 이론, 쟁점』, 공감, 2004를 보라.본문으로
10) Jacques Rancière, The nights of labor : the workers' dream in nineteenth-century France, Temple University Press, 1989.본문으로
11) 윤종희 외, 앞의 책.본문으로
12) 여기서 시민교육이 대안세계화 운동을 지적으로 지지하는 운동이고, 이를 위해서는 국경을 넘어선 대중들의 국제주의적 연대를 조직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두자. 이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서로 다른 민족, 따라서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에 속한 대중들 사이의 교통을 매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는 공교육을 비롯한 각급 교육제도가 이주노동자들에게 자신의 의사를 발언할 수 있고 집단을 매개할 수 있는 지적 권리와 수단을 보장하는 공간으로 변혁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한국의 시민들에게도 마찬가지의 지적 권리와 수단이 제공되는 것이다. 즉 이주노동자들을 비롯하여 동아시아의 여러 동료시민들과 함께 대안세계화의 의제를 토론하고 실천하려면, 언어 교육에서 영어의 독점을 깨고 다양한 언어, 특히 동아시아의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교육받을 수 있는 지적 공간에 대한 권리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이는 물론 한 세대 정도에 완료될 수 없는 장구한 운동일 테지만, 대안세계화 운동을 현실화하려면 지금 당장 개시되어야 하는 운동이기도 하다.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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