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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7.4.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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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드잘레이, 브라이언트 가스 『궁정전투의 국제화』

오창룡 | 서울대 정치학과 대학원
1. 국가에 대한 미시사회학적 접근

『궁정 전투의 국제화』는 미국, 멕시코, 브라질, 칠레, 아르헨티나의 5개국을 대상으로, 전후 각 국가의 여러 엘리트들이 어떻게 주도권 다툼을 해왔는가를 미시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이 책에는 낯설면서 동시에 낯익은 내용들이 담겨 있다. 남미 각 국가의 주요 행위자들에 대한 묘사는 모두 소화하기에 부담스러운 내용이 아닐 수 없었다. 들어본 이름보다 처음 들어본 사람들의 이름이 훨씬 더 많이 등장하는데, 더군다나 이들의 개인사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은 대단한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매우 신기하게도,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럴 수 있겠군’하며 무심결에 동조를 보내게 된다. 특이하게도 이 책은 한국 사람들에게 매우 낯이 익을 만한 ‘인맥’을 현 국제질서 분석의 핵심 축으로 제시한다.
드잘레이(Yves Dezalzay)와 가스(Bryant Garth)는 이 책을 통해 ‘국가권력의 장’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 동안 재생산되고 변화한 방식을 설명하고자 한다. 저자들은 “국내 권력의 장의 창세기” 돌아가 엘리트 간의 ‘궁정전투’를 분석한다. 여기서 ‘궁정전투’란 국가의 전문성을 상징하는 두 세력, 즉 국가의 법률 저명인사들(gentleman lawyers)과 신자유주의를 주도하는 일군의 경제학자들(technopols) 간의 전투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들 주위에 정계, 언론, 재계, 은행들, 대외 정책가 등의 행위자들이 가세한다. 저자들은 지속적으로 전술적인 동맹 게임을 하는 엘리트들 전체의 관계에 관심을 갖고, 국제적인 학문적 분업과 국제적인 지식의 순환에 개입하는 헤게모니 전략을 분석하고자 한다. 그런데 저자들은 왜 엘리트 간의 관계와 지식의 순환에 주목하는 것일까? 그것은 국가 지식의 국제적인 수출입 시장이 다양한 지배계급 분파의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국가’ 관련 담론들의 영향력이 거의 희미해지는 현재의 시점에서, ‘국가’ 자체와 ‘국내 권력의 장’에 분석 시도는 그 자체로 반갑게 느껴진다. 궁정정치의 행위자들은 풀란차스가 ‘파워블록’으로 지칭한 지배계급의 분파들을 연상시킨다. 풀란차스에 따르면, 자본주의 하에서 지배계급은 단일한 지배집단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모순적 요소들이 하나의 통일적 총체로 존재하고 있는 파워 블록으로 존재하며, 다른 이익을 갖는 경쟁적인 분파들로 구성된다. 따라서 이들은 모든 분파의 개별이익을 증진시킬 수 있는 특수한 자본 분파의 헤게모니를 통해 통일되지 않으면 안 되는 집단이다. 드잘레이와 가스 역시 여러 엘리트들 내부의 권력 다툼과 헤게모니 변화를 추적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풀란차스의 논의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저자들은 풀란차스와 달리 ‘국가 내 정치의 장’을 매우 미시적인 방법으로 분석하고 있다. 저자들은 1960년대 남미의 ‘발전국가’가 신자유주의로 이행해 나간 과정에서, 엘리트들이 선택하는 전략을 이해하기 위해 ‘전기(傳記)적 설명’이란 방식을 사용한다. 역사의 각 국면들을 특정한 주요 개념으로 일반화하기보다는, 다양한 인물들의 프로필을 책 전체에 걸쳐 펼쳐놓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들은 엘리트들의 직업적이고 정치적인 성장 과정의 상이한 단계들에서 발견되는 지위와 대립의 지형도를 작성하기 위해 ‘장’이란 개념을 활용한다. 여기서 상이한 개인들은 다른 종류의 자본을 가지고 출발하며, 그럼으로써 매우 다른 축적의 기회들을 가지게 된다.(p. 332)
저자들이 이렇게 미시사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들은 거시사회학적 설명으로는 “특수한 공공정책을 가져오는 구체적인 관계들(이익의 동맹과 계급 간의 갈등)”을 자세히 분석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본다. 국가에 대한 기존 연구들은 대부분 거시적 설명에 머무르고 있으며, 엘리트들의 전략과 네트워크는 단지 암시적인 것에 머무르고 있다. 저자들은 기존 이론들이 엘리트들에 대한 미시적 분석을 ‘저널리스틱한 잡설’로 간주하여, 정치에서 개인적 관계의 작용을 적절하게 개념화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pp. 319~320) 누가 미국에서 고급 학위증을 얻고 누가 중요한 국제학술대회에 초청되는지, 누가 북반구에서 남반구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누가 남반구에서 북반구에 대해 이야기하는지를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p. 32) 그리고 저자들은 ‘국제전략’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제시한다. 국제전략이란 국내 행위자들이 국내에서 자신들의 권력을 추구하기 위해 외국에서 획득한 전문성, 자원, 학위, 인맥, 정당성 등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피노체트 정부는 전복한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 시카고 경제학을 활용했고, 칠레의 저항운동가들은 피노체트 정권을 비판하기 위해 국제 인권법을 활용하였다.(p. 29) 저자들은 ‘지배자 가운데 피지배자’와 ‘피지배 가운데 지배자’들이 상호작용하는 변화무쌍한 공간을 추적한다.(p. 330)

2. 궁정전투의 두 행위자

『궁정전투의 국제화』는 먼저 남미의 전통적인 법조계 엘리트들에서 신자유주의를 주창하는 경제 엘리트로 헤게모니가 넘어가는 과정을 분석한다. 저자들은 왜 궁정전투의 한 행위자로 법조계 엘리트들을 주목하고 있는가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 않지만, 남미 역시 한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법률기관을 통제하는 자들이 최고의 엘리트로 간주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남미에서 법과 법학 교육은 다양한 지배 엘리트 분파를 하나로 묶어주는 데 기여했고, 지배 가문들의 사회적 자본을 교환하고 재생산하는 수단을 제공했다. 이러한 정통성은 유럽에서 획득된 국제적 학문 자본을 통해 생산되었는데, 그 결과 법은 국가 간의 국제적 위계질서, 북반구와 남반구 간의 수입-수출 과정을 재생산하는 데 기여했다.(p. 46) 그리고 법조계 엘리트들은 부유하거나 큰 인맥을 가진 가문과 결혼함으로써 ‘가족자본’을 획득하기도 한다.(p. 48) 하지만 남미의 전통적인 법조계 엘리트들은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미덕으로 개종한 신세대 경제전문가들의 도전을 받게 된다. 이 경제 엘리트들은 기술적 전문성과 정치적 개입의 결합을 강조하는 용어인 ‘테크노폴’(technopols)로 불렸다. 이들은 국가의 유력 법률가 집단보다 많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국제적인 영문 학술지에 기고하며, 미국 대학에서 강의한 경험이 있다. 이들은 상호간에 매우 잘 연결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엘리트적인 가문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기존의 법조계 엘리트와 유사하지만, 가족자본에 상대적으로 덜 의존하고 있으며, 국제네트워크와 자신들의 전문성에 보다 의지한다는 측면에서 구별된다.(pp. 64~69) 저자는 이들을 ‘시카고 보이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시카고 대학에서 교육받고, 여기서 배운 신자유주의의 교의를 적용하기 위해 정부에 들어간 남미의 경제학자들을 지칭한다.
남미에서 펼쳐진 궁정전투의 원조는 사실상 미국의 궁정전투였다. 저자들은 국제인권운동과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계보를 추적함으로써 북미에서 남미로 궁정전투가 어떻게 수출되는가를 탐구한다. 먼저, 저자들이 주목하는 ‘인권운동’이란 상식적으로 이해하는 차원의 인권운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전후 미국의 법률 엘리트들이 국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수립한 권력 네트워크를 지칭한다. 전후 미국의 인권운동 그룹들은 공산주의에 대한 투쟁으로 자신들의 리더십을 정당화했다. 미국 인권운동의 제1 세대를 이루었던 미국자유변호재단(American Fund for Free Jurist)은 강력한 반공주의적 신념을 가지고,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논리에 따라 국내의 공적인 업무에 투자하며, 자유세계를 방어하기 위해 저명인사들을 동원했다. 높은 신분에 속했던 1세대 인권운동가들은 국제기구뿐만 아니라 국내 관료들에 도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이들의 활동은 “기본적인 법률 원칙을 방어하기 위해 자유세계의 세력들(법률가들)을 동원함으로써 공산주의 국가의 온갖 체계적 부정에 대항해 투쟁을 조직”해야 하는 미국의 목표와 일치했다.(p. 114) 저명인사들을 중심으로 하고 시민적 미덕을 강조하던 제1 세대의 인권운동은 국제사면위원회(Amnesty)를 중심으로 한 대중적인 인권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후 다시 엘리트적인 프로필을 채택하고 정치적인 야심을 추구하는 휴먼라이트워치(Human Right Watch)와 같은 인권단체가 등장했다. 제2 세대와 제3 세대를 거치며 미국의 인권운동은 점차 매스미디어의 관심을 얻는 데 우선순위를 부여하게 되었다. 대중적인 폭로운동은 국제사면위원회의 성장과 번영을 촉진했다. 아울러 1980년대 미국의 인권운동은 주요 미디어의 주목을 끌 만한 제품을 생산하는 데 주력하였다.(pp. 246~251)
미국의 궁정전투가 대외적으로 수출되는 또 다른 경로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이다. 저자들은 신자유주의의 등장과 확산을 자본의 축적 방식이나 제도의 변화로 설명하지 않고, 시카고대학 출신 경제학자들의 성공과 출세에 더 주목한다. 1970년대 중반 컴퓨터의 발달과 금융 위기는 계량 분석의 필요를 제기하였고, 이는 학문적․정치적으로 소외되었던 시카고대학 경제학자들에게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들은 복지국가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국가권력의 장을 지배했던 동부 대학 출신 엘리트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재계 인사들과 동맹하여 대약진을 시작하였다. 공공선택이론의 창시자인 제임스 뷰캐넌(James Buchanan)은 시카고학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저자들은 뷰캐넌이 신고전학파 경제이론을 부활시킨 원인 역시 그가 기존 엘리트들에 반대하는 아웃사이더였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시장에 대한 정부의 규제는 필연적으로 지대추구 행위를 낳게 된다는 뷰캐넌의 이론은 신자유주의적 반혁명의 이론적 도구가 되었다. 뷰캐넌의 제자들은 레이건 행정부에 포진하게 되었고, 아웃사이더들은 능숙한 마케팅과 미디어 선전을 통해 지지를 확보하였다. 미디어를 활용한 전략은 학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제 시카고대학 출신의 경제학자들은 과거의 경쟁자들에게 학문의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위협을 가할 수 있었다. “뛰어난 장사꾼들은 이렇게 해서 그들의 독트린을 경제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기적의 만병통치약으로 판매하면서 자신들의 정치적이고 직업적인 야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와 같은 허위의 환상을 확신시켰다.” 1969년 『타임매거진』, 그리고 1970년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실린 프리드먼의 초상화는 학문의 세속화 전략이 성공했음을 입증했다. 아울러, 미국 안에서 뛰어난 학생들을 확보하지 못했던 시카고 대학은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하는 국제전략을 세웠다. 시카고 대학은 특히 칠레 학생들에게 투자했고, 시카고학파는 피노체트 정부에서 상당한 보상을 받았다. 시카고의 처방에 따라 움직인 칠레의 경제변동은 이후 포르투갈과 스페인, 그리고 사실상 미국과 영국에서도 유사한 운동을 촉진하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칠레의 사례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지지한 학자들과 미디어에 의해 ‘20세기 후반의 첫 번째 시장혁명’으로 간주되었다.(pp 147~155)

3. 한국에도 궁정전투가 존재하는가?

드잘레이와 가스는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각 국을 방문하여 무려 300번이 넘는 인터뷰를 시도하였다고 하니, 이들의 끈기와 집념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아울러 ‘국가’와 ‘정치’에 관한 담론들이 실종된 상황에서, ‘국가 내부의 권력의 장’에서 엘리트들 간의 권력 다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이들의 연구는 매우 의미 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저자들은 국가가 총자본의 입장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재생산을 공적으로 총괄된다거나, 지배계급의 경쟁적인 분파들이 결국 자본 분파의 헤게모니를 통해 통일된다는 식의 설명에 만족하지 않는다. 국가라는 공간은 단순히 지배계급이나 제도 혹은 기관들로 간주될 수 없으며, 지배와 정당화를 위한 원칙들을 둘러싸고 투쟁이 벌어지는 일종의 경기장이다.(p. 509) 저자들은 국가 전반을 몇 개의 개념으로 일반화하려고 하기보다는, 국가 내부에 존재하는 권력 네트워크와 헤게모니 다툼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인내력과 배경지식의 부족으로 저자들의 다양한 통찰력들을 모두 이해하지 못하고, 저자들이 기존의 이론들과 어떠한 측면에서 차별성을 추구하고 있는가를 체계적으로 분석할 수 없었던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궁정전투의 국제화』는 이러한 공로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먼저, 저자들은 ‘궁정전투’가 왜 법조계 엘리트와 경제 엘리트의 두 행위자 간에서만 이루어지는지를 더 상세하게 설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저자들의 분석을 따를 때, 중심부와 주변부를 한 축으로, 법 엘리트와 경제 엘리트를 다른 한축으로 하여 구성되는 4개의 공간만이 남는다. 자본의 축적 과정과 위기, 국가와 시장의 메커니즘, 기업과 금융기관의 구조, 정부 내 의사결정과정, 엘리트와는 무관한 일반 민중의 삶 등은 모두 변두리로 밀려나게 된다. 그리고 저자들은 이러한 궁정전투의 ‘구조’로 너무나 많은 것을 설명하려 하고 있다. 저자들은 지배엘리트 간의 갈등·대립으로 모든 것을 환원시켜 설명하려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자유주의의 등장과 확산과정을 궁정전투의 도식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아울러 이러한 미시적인 분석이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지침을 제공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정책결정 과정에 어떠한 권력 네트워크가 작동하고 있는가를 분석하는 것이 필요한 경우도 있겠으나, 결국 투쟁의 대상을 무수한 개별 행위자들로 돌려놓을 수밖에 없게 된다. 저자들은 이러한 궁정전투의 아시아적 판본에도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축적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사회에는 어떠한 궁정전투가 벌어지고 있을까? 머리에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현재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주도적으로 추구하는 사람들이 어떤 학연과 지연을 형성하고 있는가를 분석하는 것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책을 읽으며 전체적인 맥락과는 무관하게 미국 유학에 목숨을 건 많은 동료들의 얼굴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미국으로의 대규모 유학. 이는 한국의 학부모들과 학생들의 자발적인 선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분단체제 하에 있는 남한에 지식자본을 전파하려는 미국 엘리트들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물론 논리적인 비약이 매우 심한 생각이다. 『궁정전투의 국제화』는 방대한 자료에 근거해 체계화된 거대한 음모론이며, 세상을 더욱 삐딱하게 보게 만든다. 하지만 이들의 작업이 이론적 차원에서 어떻게 평가될 수 있을지는 더 논의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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