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7.6.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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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_서평_이승헌.hwp

내가 겪었던 장애인, 장애인 운동과 이 책『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이승헌 | 에바다 장애인 복지회 사무국장

나는 2007년의 오늘을 ‘에바다’라는 곳에서 보내고 있는 사람이다. 이 책에서도 소개되는 에바다는 오랜 비리 척결과 민주화 투쟁 끝에 대중투쟁의 성과로 시설운영을 정상화한 곳 중 하나며, 내가 오늘 하고 있는 일은 이 에바다를 가장 ‘모범적’인 사회복지시설, 사회복지법인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는 과제의 실천이다. 이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벌써 5년째 이 곳 에바다에 머무르고 있다.
이 책은 오늘을 에바다에서 보내고 있는 나로 하여금 내가 겪었고 보았던 장애인, 그리고 나와 그들이 함께 했던 과거의 투쟁들과 운동들을 다시 되돌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점점 소위 ‘현실’이라 불리는 것들에 길들여져 가는 듯 느슨해져 가던 몸뚱이와 점점 텅 비어만 가는 것 같던 머리 속에 무언가 새로운 자극이 각인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먼저 이 책을 읽으며 장애인들과 함께 했던 나의 과거를 돌아볼 수 있었다.
나에게 장애인이란, 그리고 그들의 운동과 치열했던 투쟁들은 무엇을 의미했던가? 처음 장애인들의 운동을 접했을 때 신선한 충격과 자극을 받았고, 느슨하기 짝이 없는 내 자신의 운동에 대해 깊이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곧 ‘몸이 불편한 장애인도 저렇게 자기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는데… 과연 사지 멀쩡한 나란 인간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하는 질문과 반성이었으며, 이는 나의 20대 후반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
이제 30대 중반을 치닫는 지금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몸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치열하게…’가 아니라 ‘장애인으로 규정되어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치열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러한 현실에 맞서 기꺼이 투쟁하는’ 장애인들을 다시 보게 된다. 자본주의적이지 못한 신체적 특징 때문에 차별에 내몰릴 수밖에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 자본주의 사회의 차별에 저항할 수밖에 없는 장애인의 모습을 말이다.
처음 장애인 운동을 접했을 때 보았던 것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기본이 되는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는 모습이었다. ‘이동권을 보장해 달라’, ‘노동자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하라’, ‘교육받을 수 있게 해 달라’, ‘시설에 들어가지 않고도 인간으로서 자기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자립생활을 보장하라’ 등등. 그것들 각각은 장애인이라는 인간이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권리를 요구하는 투쟁들로 여겨졌고 그렇게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지금, 바로 그 권리 투쟁들 자체가 이 자본주의 사회, 자본의 필요에 따라 수많은 차별을 양산해 내는 바로 그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가장 극적이고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다시 깨닫게 된다. 가장 반자본주의적인 신체적 특징을 가지고 있고, 그런 이유로 자본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차별의 최정점에 있을 수밖에 없는 장애인의 신체. 그 신체를 이끌고 거리로 나와 시민사회의 대중들과 맞닥뜨리며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그 투쟁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야만성과 모순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낸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또한 자본주의 사회 내에 존재하는 차별의 스펙트럼을 다시 상기시킨다. 인종, 성적 차이, 학력, 배경 등등에 따라 규정지어진 차별의 스펙트럼과 이 스펙트럼의 양산이 역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 지배를 위해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짚어 볼 수 있게 하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이 책을 세상에 대한 열정을 가진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 에바다에서 함께 뛰는 사회복지사와 특수교사들, 계급운동에 복무하고 있는 수많은 활동가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쉽고, 부드러우면서도 명쾌하고 날카롭게 장애와 장애 문제, 그리고 장애인 운동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이 책은 그동안 장애인과 장애인 운동을 바라보는 학생, 현장 노동자, 그리고 계급운동의 수많은 활동가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부여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시각이야말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사회적 관계라는 큰 틀에서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새로운 운동적 전망을 열어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현장의 소위 주어진 ‘현실’ 속에서 부대끼느라 앞뒤 돌아보지 못하고 이 때문에 점차 그 감각이 무디어져만 가는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회복지 현장 노동자들과 장애인 활동가들에게 이처럼 훌륭한 무기를 쥐어준 저자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표함과 동시에, 이 무기야말로 에바다를 진정 모범적인 ‘현장’으로 거듭나게 하는 또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이 책에 대한 서평을 가름한다.
주제어
노동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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