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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7.6.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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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_반전_김영식.hwp

이라크 전비법안 통과와 사회운동의 대응

평화를 향하여 세계반전운동의 연대를 형성하자

김영식 | 회원, 반전팀
더욱 멀어지는 ‘이라크의 자유’

지난 5월 25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전날 상·하원에서 통과된 1000억 달러의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비용지출 법안에 서명했다. 이 법안은 이라크 주둔 미군의 철군시한을 명기하지 않았으며, 이것은 사실상 지난 5개월간 벌어졌던 부시행정부와 민주당 간의 공방전에서 부시가 승리했음을 의미한다. 지난해 말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이후, 의회는 부시 행정부가 요구했던 전비법안을 이라크 주둔 병력들을 이르면 내년 3월까지 철수시킬 것을 전제로 하여 통과시켰던 바 있었다. 부시는 조건부 철군시한을 못박은 위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여 법안을 의회로 돌려보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무효화하기 위해서는 재의결에서 참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했지만, 과반수를 간신히 넘은 민주당 의석만으로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재의결에 실패했다. 의회가 재의결에 실패하자 부시 행정부는 철군 조건을 삭제한 대체법안을 마련해 의회와 절충에 나섰고, 결국 민주당 지도부는 지난 23일 18개 부문에서의 이라크 상황 개선을 약속하고 7월 말부터 현지의 진전 상황에 대해 의회가 보고를 받는 것을 조건으로 대체법안을 받아들였다. 해외에 나가 있는 자국군대에 대한 지원책을 거부하고 있다는 비난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도 민주당 진영이 절충을 받아들인 하나의 요인이었다.
법안에는 이라크 정부가 정치․치안분야에서 진전을 이루지 못할 경우 미국 정부의 이라크 지원을 철회할 수 있음을 규정했으며, 또한 이라크 정부가 요구할 경우 미군이 이라크를 떠날 것이라는 내용을 처음으로 명시했지만, 이라크 정부가 미국의 절대적 영향권 내에 있는 상황에서 이는 말장난에 불과할 뿐이란 건 누가 봐도 명백하다. 게다가 정치권에서의 철군 논란에도 불구하고 미 국방성은 올해 초 이라크 치안강화를 명목으로 21,500여 명의 병력을 증파하는 계획을 발표한 것에 이어 내년 초에 주방위군 4개 여단 12,000규모의 병력을 파병하여 현 주둔군과 교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결국 추가전쟁비용 지원까지 얻어냄으로써 사실상 부시행정부는 이라크 점령에 백지수표를 얻은 꼴이 된 셈이며, 차기 정권이 출범할 때까지 미군의 이라크 철군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제도권 반전운동의 예견된 한계

여기서 만약 민주당이 부시와의 대결에서 이겨서 조건부 전비법안이 통과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랬더라면 과연 이라크의 점령군이 순순히 물러나고, 미국이 이라크에 뻗쳤던 영향력을 거두었을까? 그랬을 리 없다는 것은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은 압승을 거두었던 지난 중간선거에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철수할 것을 공약으로 내건 바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미국의 영향력을 이라크에서 일거에 거두고 부시행정부와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세계전략을 발표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외교 전략을 고수한다는 점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은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면서 이라크 철군을 주요 쟁점으로 이슈화했던 것은 치솟는 반전여론과 이에 따른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맞춰, 의회를 수성하고 2008년 대선에서 정치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술적 차원에 따른 것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한편으로는 전비지출 법안 자체가 부도덕하고 소모적인 전쟁을 위하여 국비지원을 용납한 꼴이었다. 철군을 조건부로 하여 법안을 통과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당장 전쟁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라크 주둔 군대에 일 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벌어주는 결과를 낳았을 것이며, 전투 병력이 철수하더라도 이라크 국내에 산재한 미국의 주요 시설들에 대한 경비와 신생 이라크 정부군에 대한 훈련 목적의 병력들은 여전히 주둔했을 것이기에, 철군이란 명목은 사실상 허구적인 수사일 뿐이었다. 전투 병력이 철수한다고 해서 미국이 이라크에 대한 영향력까지 포기하려 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번의 전비법안 통과는 의회에 대한 로비 중심으로 움직여 왔던 미국의 주류 반전 운동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미국 내 반전운동의 주요 흐름은 민주당의 득세에 상당부분 기대한 측면이 강했고 작년 중간선거 당시에도 이러한 움직임은 민주당을 지원하는 양상으로 나타났었다. 하지만 압도적인 철군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침략전쟁의 ‘철군시간표’조차 얻지 못함으로써, 부르주아 의회정치에 의존해 왔던 시민운동적 반전운동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 주었다. 이후 미국의 반전운동 진영은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상당부분 철회할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전비법안 통과는 전쟁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진 민주당의 정치적 입지를 축소시킴과 동시에 전체 반전운동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다시금 불어닥칠 피바람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2003년 3월말 침공이 일어난 이래로 올해 5월 27일까지 미군은 사망자 3,452명, 부상자 2만 5,242명의 희생을 내었으며, 특히 4,5월에는 개전 후 처음으로 월별 사망자가 두 달 연속 세 자릿수를 기록했다. 4월 104명, 5월에는 26일까지만 101명으로 매일 3.5명 정도 숨진 꼴이다. 현 추세대로라면 5월 사망자는 120명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이라크 국내 민간인은 매달 1,000명이 넘게 희생되고 있다. 이라크 보안군과 민간인 사망자는 4월 1,821명, 5월 1,499명으로 집계됐고 전체 민간인 희생자는 최소 6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기하급수적인 미군과 민간인의 피해가 끊임없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미국 국내의 반전여론은 최고조로 올라 있다. 미 성인 1,125명을 대상으로 지난 18-23일 실시한 CBS방송과 뉴욕타임스의 여론 조사 결과, 응답자들의 76%가 미국의 이라크 안정화 노력이 잘못돼가고 있다고 답했으며 이중 47%는 사태가 아주 나빠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한 달 전 조사 때 이라크전이 잘못돼가고 있다는 응답 66%보다 10%포인트나 높아진 것이다. 부시의 이라크 미군 증파전략이 이라크 사태 개선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거나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킬 것이란 응답 역시 76%나 된 반면 사태가 호전될 것이란 답변은 20%에 그쳤다. 미국민 응답자들의 63%는 2008년 중으로 미군을 철수시키도록 시한을 설정해야 한다는데 찬성했다. 한편 부시 대통령의 대통령 직무 수행에 대한 지지율은 30%에 불과한 반면 불신하는 여론은 63%에 달했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전비법안 통과로 힘을 얻은 부시 행정부는 저항세력들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벌일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오는 9월에는 이라크 주둔 다국적군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사령관의 이라크 상황 보고를 앞두고 있으며, 이에 맞춰 2008년 회계연도 전비법안을 새로 내놓아야 한다. 사실상 이라크 전쟁의 성패에 대한 최종 판단인 셈이며, 때문에 그때까지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안정화 계획이 진전을 보였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미 악화될 대로 악화된 여론으로 인해 철군이 불가피해질 것이고 민주당의 강한 반발로 인해 부시정권은 심각한 임기 말 레임덕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부시 대통령은 24일 하원에서의 법안 통과 뒤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몇 주, 몇 달 안에 매우 강력한 전투를 벌이게 될 것이며, 미군이나 이라크군의 희생을 예상한다”며 ‘피의 여름’이 될 것을 예고했다. 그는 “올 여름은 새로운 이라크 전략에서 핵심적인 시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름에 저항세력에 대한 총공세를 벌이겠다는 ‘선전포고’다. 3만 명의 추가 병력 증파가 6월 중순에 끝나면 이라크 주둔 미군은 14만여 명에서 17만 명 수준으로 늘어난다. 퍼트레이어스 사령관은 부시 대통령의 증파 전략이 성공하려면 올 여름엔 가시적인 성과가 나와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또다시 이라크 전역에 피바람이 불 것이다. 얼마나 많은 무고한 희생자들이 전쟁의 야욕 앞에 희생될 것인가.

이라크 영구 주둔을 노리는 미군

미군의 이라크 주둔은 기약 없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2008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양당은 서로에게 전쟁 장기화의 책임을 떠넘기려 할 것이며, 점령정책의 기본 골간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미군의 소탕작전은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이라크 내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는 결과만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이라크 내 혼란의 근본적인 원인은 종족과 종교의 갈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미국의 제국주의적 점령정책에 있기 때문이다. 점령 이후 미군은 이라크 내 각 종파들을 중심으로 정치적 지분을 할당해 왔다. 이는 종파들을 대립시켜 이라크 민중들의 단결을 저하시키고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한 분할통치 전략에 기반한 것이었으며, 그 결과는 사회와 경제 전 분야에 걸친 미국 자본의 침투와 점령의 고착화로 나타났다. 때문에 점령군이 주장하는 ‘재건사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이라크 국내 자원개발권을 둘러싼 이권다툼으로 극심한 종파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미군은 이라크를 분열시켜놓고 그 분열과 갈등을 안정시키기 위해 미군 주둔이 필요하다는 기만적인 술책을 벌여온 것이다. 최근 이라크 의회가 미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현재 알 말리키 총리가 이끌고 있는 내각은 전적으로 미국의 지지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라 이러한 움직임은 저지될 공산이 크다. 실제로 지난 4월 알 말리키 총리는 미군 주도 다국적군의 철수 일정을 제시하라는 요구를 거부했으며, 잘랄 탈라바니 이라크 대통령은 미군을 비롯한 외국 군대가 이라크에 1~2년 더 주둔할 필요가 있다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의 특강에서 주장했었다. 즉, 미국의 지원이 없이는 현 이라크 내 정치세력의 통합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며, 이를 뒤집어 말하자면 미국의 지원을 얻어 집권한 현 이라크 지배세력은 안정적 지배를 위해 미군의 지속적인 주둔을 원한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미 이라크 전역에는 50여개의 크고 작은 미군 기지들이 설치되어 있으며, 한국군 주둔지인 아르빌을 비롯한 도처에 신규 공군기지들을 건설하고 있는 중이다. 이후 중동지역에서의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은 이라크에 영구주둔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군 파병병력, 철군은 없다?

이처럼 미군주둔이 장기화됨에 따라 한국군의 파병 역시 연장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 19일에는 자이툰 부대 주둔지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총기사고가 발생하여 장교 1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정부는 지난번 아프가니스탄에서 있었던 폭탄사고와 마찬가지로 매우 신속하게 사건을 조사했고 원인에 대해서는 어떠한 입장도 표명하지 않았다. 원인이야 어쨌든 간에 사망사고가 발생한 것은 철군여론을 불러올 수 있는 가장 큰 압박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는 분명 정부 측이 철군을 미묘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지난 해 말에 또 한 차례 파병 연장안을 통과시켰던 정부는 6월까지 자이툰 사단 임무종결 계획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지만 국방부 장관이 지난 4월 파병 재연장이 올해도 필요함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국방부는 자이툰 부대의 임무종결계획서 국회 제출이 자이툰 부대의 임무를 올 연말로 한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아르빌에 수천억 원을 들였기 때문에 오히려 파병기간을 연장해서 한국 자본들이 침투할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7월 초로 예정된 6진 3차 300명을 계획대로 파병하고, 9월부터 파병될 자이툰 부대 7진 모집도 계획대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더욱이 정부는 6월에 국회에 제출할 자이툰 부대의 임무종결계획에 ‘파병기간 연장계획’을 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철군운동과 함께 평화를 위한 사회운동으로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지 4년째이지만 이라크에서의 미군 주둔은 훨씬 더 장기화될 태세를 보이고 있으며, 아울러 한국군의 해외파병 역시 미군과 궤를 같이 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국내 반전운동 진영의 대응 역시 좀 더 긴 호흡으로 장기적인 계획과 안목을 가지고, 세계의 민중들과 함께 연대함으로써 힘을 비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국내의 반전운동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한국군 해외파병지역으로부터의 철군운동만이 아니라 국내에 산재한 미군기지를 철폐하기 위한 노력에도 큰 힘을 기울여 왔다. 특히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 투쟁과 같은 경우 비록 정부의 공권력에 의해 물러나야 했지만 많은 성과를 남길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이러한 경험들을 축적하고 발전시켜 세계 각 지역의 반전․반기지 운동들과 연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사회운동은 다음과 같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로, 파병연장을 저지하기 위해서 다시금 한국의 반전평화운동진영이 결집해야 한다. 미군의 즉각적인 철군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명분 없는 전쟁에 참전하고 있는 한국의 파병 병력들부터 철군시켜야 할 것이다. 비록 자이툰 부대에서 발생했던 총기사고의 경우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언제 교전의 희생자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민중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더러운 전쟁을 즉각 중단하도록 반전평화 운동을 다시금 결집하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파병을 연장하려는 정부의 음모에 맞서, 평택투쟁 이후 소강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국내 반전평화운동진영이 다시금 힘을 모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또한 7월로 확정되어 있는 특전사 병력 350명의 레바논 파병 역시 반드시 저지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로,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미군의 확장을 저지하여야 한다. 이라크 문제와 동아시아 지역 미군의 문제는 별개의 사안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군사세계화라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전략에 맞서는 반전평화운동 진영의 공통과제로써 다루어져야만 한다. 남한에, 그리고 일본과 동북아시아에 미군이 주둔하는 한 전쟁의 위협은 끊임없이 잠재되어 있다. 한반도와 동아시아 국가들 간의 군비경쟁을 부추기고 지역 내 불안정 요소로 작용하는 미군과 미군 기지들을 철거시키기 위한 투쟁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아울러 전략적 유연성 확보란 명목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주한미군 재배치를 중단시키고 철수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한․미․일 군사동맹 체제를 해체하고 동북아시아 국가들 간의 평화적 군축을 달성하기 위한 동아시아 민중운동들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
셋째로, 이러한 동아시아를 비롯한 남미와 유럽 등의 세계 반기지 운동들과의 연대를 바탕으로 이라크 내부에 산재한 미군 기지들의 철거를 위해 노력하는 이라크 내 현지 사회운동과 상호 협력과 교류를 이루어 공동투쟁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미국의 주류 반전운동이 난관에 봉착한 것처럼, 민중운동이 주도하지 못하는 반전운동은 체제순응적인 한계를 노정할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 군사세계화가 불러일으키는 전쟁과 폭력의 악순환에 맞서, 미국의 제국주의적 세계전략에 맞서 민중들의 단결과 연대를, 그리고 전세계 반전평화운동의 확산을 이루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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