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회운동』 2007년7/8월호(통권76호)를 읽고
독자평을 덥석 쓰겠다고 말하고 나서 여간 후회한 것이 아니었다. 매번 편집위원회 회의를 통해 『월간 사회운동』이 얼마나 힘들게 만들어진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고 편집위원인 내가 제대로 된 독자평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여간 망설여지지 않았다. 한참 고민 끝에 쓴소리를 포함한 제대로 된 독자평은 포기하고 내가 관심을 갖고 읽었던 글을 중심으로 내용을 정리하기로 타협을 보았다. 이게 무슨 독자평이냐고 불평과 불만을 터뜨릴 분이 계시겠지만 양해해달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이번 『월간 사회운동』에서 내가 흥미롭게 읽었던 글은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이랜드-뉴코아 투쟁에 대한 칼럼 및 인터뷰, 종족적 민족주의에 대한 것이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에서 이랜드-뉴코아 투쟁까지
우선 이번 호에는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이랜드-뉴코아 투쟁에 대한 소중한 칼럼과 인터뷰가 실렸다. 이 글들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은 노동자 스스로가 역사의 주인이고 세상을 이끌어가는 것은 노동자라는 점이었다.
정경원의 칼럼과 노옥희의 인터뷰는 87년 노동자들이 왜, 어떻게 싸웠고, 무엇을 성과로 남겼는지,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현재적 의미와 현 노동자 운동의 과제를 일깨워 주고 있다. 87년 노동자들은 임금인상이나 근로조건 개선투쟁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들의 조직인 민주노조를 결성하거나, 어용노조를 민주화시키는 등 온전한 노동 3권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였다. 87년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은 단결의 무기로 민주적 노동조합을 만들어냈고, 노동자 스스로 '불순세력'이 되어 '외부세력'과의 연대의 정신을 실천해 나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노동자들은 바로 노동자가 생산의 주체이며 이 사회의 주인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두 글 모두 87년에 대한 이러한 기록과 기억들이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기념'에 머무르기보다는 87년의 단결과 연대의 정신의 복원을 통해 현재 노동자운동을 혁신하는데 자양분으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우리 모두 경청하고, 고민하며, 실천해야 하는 문제인 것 같다.
이남신의 인터뷰는 이랜드-뉴코아 투쟁을 통해 비정규직과 여성노동의 문제를 되돌아보게 한다. 한국에서 비정규직은 곧바로 극히 취약한 고용 관계에 노출된다. 노동자는 고용 안정성의 상실에 더해 사회적 안정성까지 상실당한 상태에 처한다. 조직화를 통해 자신의 노동 기본권을 집단적으로 대변하고 방어할 수 있는 권리까지 박탈당한 상태다. 한국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런 상태가 세계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만일 그 실상이 그대로 소개된다면, 아마도 모든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은 하나같이 한국을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는 저렇게 되지는 말자"고 혀를 찰 것이다. 이번 이랜드 사태를 지켜보면서 국제 노동단체의 주요 관계자가 하나같이 "이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라.
이번 이랜드 사태는 단순히 악덕한 개별 자본과 힘없는 개별 노동 간의 대립이라는 협소한 시각으로 바라볼 문제는 아니다. 이 사태는 현 정부 내내 지난한 진통을 겪으며 겨우 입법화를 이룬 이른바 '노사관계 로드맵'의 내용이, 실상 '보호'를 명분으로 한 번지르르한 입법 취지와 달리 현실적으로 상당한 허점을 지니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사건이다. 비정규직도 2년 후에 반드시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규정은 2년이 되기 전에 마음껏 해고의 자유를 누리는 사용자들의 해고 남용을 제어할 수단이 없고서는, 비정규직에게 희망을 주기는커녕 고용 시작 단계에서 '시한부 선고'를 내리는 것에 불과하다. 입법 과정에서 이런 경고가 계속 나왔으나 모르쇠로 일관한 정부는 뒤늦게 허둥대는 꼴이다.
또한 이번 이랜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대량해고 사태는 핵심 노동이 아니라 주변화된 노동, 안정적인 고임금 일자리가 아닌 불안정한 저임금 일자리에 내몰리고 있는 여성노동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비정규직에, 저임금으로 몰려 있던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을 이랜드 사측은 핵심적인 업무로 생각하지 않고, 외주화로 더 낮은 임금의 여성노동자를 고용하면 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1) 여성노동에 대한 사회전반의 지배적인 관념과 인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아니 변화시켜내지 못하면 이랜드 사태는 반복될 것이다.
한편 인터뷰에 대해 아쉬운 점도 있다. 이랜드 뉴코아 투쟁의 쟁점과 기본적 내용을 좀 더 설명해주는 글과 인터뷰가 같이 실렸으면 인터뷰에서 부족한 부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랜드-뉴코아 투쟁을 바라보는 사회진보연대의 색다른 시각을 기대했던 나에게는 갈증이 남는 인터뷰였다. 사회진보연대의 활동가와 인터뷰이께서 소중한 시간을 내고 발로 뛰어 만든 현장감 있는 인터뷰인데 노동자운동의 역사를 복원하고 비정규 투쟁의 전망에 대한 보다 많은 질문과 대답이 오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민족주의를 다시 생각하다
민족주의는 인민주의와 마찬가지로 현대적 정치이념의 주류에 속하지는 않지만, 인민주의와는 달리 한편으로는 자유주의와 결합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주의와 공산주의가 취약한 상황에서 자신의 독자성을 주장하기도 한다.2 민족주의의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글이 임필수 집행위원장의 「이 나라 한아버님은 단군이시다? - 남북한의 종족적 민족주의와 '단일민족'의 환상」이다.
이 글은 범민련 기관지 <민족의진로> 3월호에 실린 글로 인해 촉발된 논쟁을 계기로 남북한을 비롯한 동북아의 종족적 민족주의의 반동성과 허구성을 비판하고 있다. 이 글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를 민족 고유성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는 것은 혼혈과 이주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는 유럽의 극우세력의 주장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며 "민족의 기원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허구적이며, 민족의 순수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철저히 '야만적 이상'에 불과"하다.
종족적 민족주의는 현대 이전의 민족, 즉 민족주의가 출현하기 이전의 민족에 주목하면서 특히 종족적 신화와 상징이 민족을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즉, 민족의 종족적 기원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주의 이전의 민족은 시민이 아니라 신민으로 구성될 따름이다. 국경(border)이 아니라 변경(frontier)만 존재할 따름인 세계제국에서는 다종족주의가 일반적인데 '민족의 순수화(정화)', '종족적 순수성'이라는 반동적 해결책은 '야만적 이상'인 것이다.3
실제로 21세기에 들어서며 민족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강화되는 추세를 보인다. 각국이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고 우경화도 눈에 띄는 현상이다. 미국의 패권주의나 동아시아 지역에서 의 민족주의 경쟁도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객관적 조건에서 종족적 민족주의의 반동성이 강화되고 있음을 주목하고 있는 이 글은 민족주의 이론에 천착할 필요성을 제기해주고 민족주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월간 사회운동의 힘찬 도움닫기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게 해 주고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준다는 생각에 개인적으로 읽는 재미가 쏠쏠했던 서평이 7/8월호에서 사라진 것은 아쉬운 일이었지만 9월호부터는 페미니즘과 관련된 기획 서평이 실린다고 하니 큰 기대를 걸어본다. 또한 2007 소통/연대/변혁 사회운동포럼을 통해 얻게 될 사회진보연대의 운동적 고민과 문제의식을 널리 알리고 회원들과 함께 사회운동의 전망을 모색하는 『월간 사회운동』 9월호를 기대해 본다.
1)얼마 전에 한국에 방문한 크리스 틸리(Chris Tilly) 교수는 8월 21일「Wal-Mart and Its Workers」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면서 이랜드그룹의 비정규직 캐셔(계산원) 외주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캐셔를 외주화한다고요? 월마트 주요 관리자들이 이 말을 듣는다면, 아마 놀라 자빠질 겁니다. 돈을 다루는 업무를 외주화 하겠다니…. 한국 유통업체들이 캐셔 외주화에 성공한다면, 월마트 관계자들이 한 수 배우러 찾아오겠는데요. '비용절감을 위한 일자리 악화'로 대표되는 월마트식 모델이 판을 치는 미국에서조차 유통업종 내 외주화는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특히 유통업종의 핵심 업무인 계산업무의 외주화는 전혀 시도된 바 없습니다." 본문으로
2)윤소영, 2007, 「민족주의 비판」,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의 쟁점들』, 공감.본문으로
3)위의 글.본문으로
이번 『월간 사회운동』에서 내가 흥미롭게 읽었던 글은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이랜드-뉴코아 투쟁에 대한 칼럼 및 인터뷰, 종족적 민족주의에 대한 것이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에서 이랜드-뉴코아 투쟁까지
우선 이번 호에는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이랜드-뉴코아 투쟁에 대한 소중한 칼럼과 인터뷰가 실렸다. 이 글들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은 노동자 스스로가 역사의 주인이고 세상을 이끌어가는 것은 노동자라는 점이었다.
정경원의 칼럼과 노옥희의 인터뷰는 87년 노동자들이 왜, 어떻게 싸웠고, 무엇을 성과로 남겼는지,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현재적 의미와 현 노동자 운동의 과제를 일깨워 주고 있다. 87년 노동자들은 임금인상이나 근로조건 개선투쟁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들의 조직인 민주노조를 결성하거나, 어용노조를 민주화시키는 등 온전한 노동 3권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였다. 87년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은 단결의 무기로 민주적 노동조합을 만들어냈고, 노동자 스스로 '불순세력'이 되어 '외부세력'과의 연대의 정신을 실천해 나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노동자들은 바로 노동자가 생산의 주체이며 이 사회의 주인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두 글 모두 87년에 대한 이러한 기록과 기억들이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기념'에 머무르기보다는 87년의 단결과 연대의 정신의 복원을 통해 현재 노동자운동을 혁신하는데 자양분으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우리 모두 경청하고, 고민하며, 실천해야 하는 문제인 것 같다.
이남신의 인터뷰는 이랜드-뉴코아 투쟁을 통해 비정규직과 여성노동의 문제를 되돌아보게 한다. 한국에서 비정규직은 곧바로 극히 취약한 고용 관계에 노출된다. 노동자는 고용 안정성의 상실에 더해 사회적 안정성까지 상실당한 상태에 처한다. 조직화를 통해 자신의 노동 기본권을 집단적으로 대변하고 방어할 수 있는 권리까지 박탈당한 상태다. 한국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런 상태가 세계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만일 그 실상이 그대로 소개된다면, 아마도 모든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은 하나같이 한국을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는 저렇게 되지는 말자"고 혀를 찰 것이다. 이번 이랜드 사태를 지켜보면서 국제 노동단체의 주요 관계자가 하나같이 "이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라.
이번 이랜드 사태는 단순히 악덕한 개별 자본과 힘없는 개별 노동 간의 대립이라는 협소한 시각으로 바라볼 문제는 아니다. 이 사태는 현 정부 내내 지난한 진통을 겪으며 겨우 입법화를 이룬 이른바 '노사관계 로드맵'의 내용이, 실상 '보호'를 명분으로 한 번지르르한 입법 취지와 달리 현실적으로 상당한 허점을 지니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사건이다. 비정규직도 2년 후에 반드시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규정은 2년이 되기 전에 마음껏 해고의 자유를 누리는 사용자들의 해고 남용을 제어할 수단이 없고서는, 비정규직에게 희망을 주기는커녕 고용 시작 단계에서 '시한부 선고'를 내리는 것에 불과하다. 입법 과정에서 이런 경고가 계속 나왔으나 모르쇠로 일관한 정부는 뒤늦게 허둥대는 꼴이다.
또한 이번 이랜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대량해고 사태는 핵심 노동이 아니라 주변화된 노동, 안정적인 고임금 일자리가 아닌 불안정한 저임금 일자리에 내몰리고 있는 여성노동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비정규직에, 저임금으로 몰려 있던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을 이랜드 사측은 핵심적인 업무로 생각하지 않고, 외주화로 더 낮은 임금의 여성노동자를 고용하면 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1) 여성노동에 대한 사회전반의 지배적인 관념과 인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아니 변화시켜내지 못하면 이랜드 사태는 반복될 것이다.
한편 인터뷰에 대해 아쉬운 점도 있다. 이랜드 뉴코아 투쟁의 쟁점과 기본적 내용을 좀 더 설명해주는 글과 인터뷰가 같이 실렸으면 인터뷰에서 부족한 부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랜드-뉴코아 투쟁을 바라보는 사회진보연대의 색다른 시각을 기대했던 나에게는 갈증이 남는 인터뷰였다. 사회진보연대의 활동가와 인터뷰이께서 소중한 시간을 내고 발로 뛰어 만든 현장감 있는 인터뷰인데 노동자운동의 역사를 복원하고 비정규 투쟁의 전망에 대한 보다 많은 질문과 대답이 오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민족주의를 다시 생각하다
민족주의는 인민주의와 마찬가지로 현대적 정치이념의 주류에 속하지는 않지만, 인민주의와는 달리 한편으로는 자유주의와 결합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주의와 공산주의가 취약한 상황에서 자신의 독자성을 주장하기도 한다.2 민족주의의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글이 임필수 집행위원장의 「이 나라 한아버님은 단군이시다? - 남북한의 종족적 민족주의와 '단일민족'의 환상」이다.
이 글은 범민련 기관지 <민족의진로> 3월호에 실린 글로 인해 촉발된 논쟁을 계기로 남북한을 비롯한 동북아의 종족적 민족주의의 반동성과 허구성을 비판하고 있다. 이 글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를 민족 고유성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는 것은 혼혈과 이주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는 유럽의 극우세력의 주장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며 "민족의 기원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허구적이며, 민족의 순수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철저히 '야만적 이상'에 불과"하다.
종족적 민족주의는 현대 이전의 민족, 즉 민족주의가 출현하기 이전의 민족에 주목하면서 특히 종족적 신화와 상징이 민족을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즉, 민족의 종족적 기원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주의 이전의 민족은 시민이 아니라 신민으로 구성될 따름이다. 국경(border)이 아니라 변경(frontier)만 존재할 따름인 세계제국에서는 다종족주의가 일반적인데 '민족의 순수화(정화)', '종족적 순수성'이라는 반동적 해결책은 '야만적 이상'인 것이다.3
실제로 21세기에 들어서며 민족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강화되는 추세를 보인다. 각국이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고 우경화도 눈에 띄는 현상이다. 미국의 패권주의나 동아시아 지역에서 의 민족주의 경쟁도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객관적 조건에서 종족적 민족주의의 반동성이 강화되고 있음을 주목하고 있는 이 글은 민족주의 이론에 천착할 필요성을 제기해주고 민족주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월간 사회운동의 힘찬 도움닫기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게 해 주고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준다는 생각에 개인적으로 읽는 재미가 쏠쏠했던 서평이 7/8월호에서 사라진 것은 아쉬운 일이었지만 9월호부터는 페미니즘과 관련된 기획 서평이 실린다고 하니 큰 기대를 걸어본다. 또한 2007 소통/연대/변혁 사회운동포럼을 통해 얻게 될 사회진보연대의 운동적 고민과 문제의식을 널리 알리고 회원들과 함께 사회운동의 전망을 모색하는 『월간 사회운동』 9월호를 기대해 본다.
1)얼마 전에 한국에 방문한 크리스 틸리(Chris Tilly) 교수는 8월 21일「Wal-Mart and Its Workers」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면서 이랜드그룹의 비정규직 캐셔(계산원) 외주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캐셔를 외주화한다고요? 월마트 주요 관리자들이 이 말을 듣는다면, 아마 놀라 자빠질 겁니다. 돈을 다루는 업무를 외주화 하겠다니…. 한국 유통업체들이 캐셔 외주화에 성공한다면, 월마트 관계자들이 한 수 배우러 찾아오겠는데요. '비용절감을 위한 일자리 악화'로 대표되는 월마트식 모델이 판을 치는 미국에서조차 유통업종 내 외주화는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특히 유통업종의 핵심 업무인 계산업무의 외주화는 전혀 시도된 바 없습니다." 본문으로
2)윤소영, 2007, 「민족주의 비판」,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의 쟁점들』, 공감.본문으로
3)위의 글.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