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들이 고마워요
밤 늦은 귀가 길. 요즘엔 잘 안나오시더니 오랜만에 엄마가 마중을 나오셨다.
"일찍 좀 다녀라. 다 큰 애가 걱정하는 사람 생각 좀 안하니?"
얼굴 확인하자마자 인사 대신 하시는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말을 돌리지 않으면 '좋은 직장과 배우자를 구하라'는 시리즈가 이어진다. 재빨리 다른 화제를 찾았다.
"엄마, 근데 ○○는 괜찮나 몰라?"
○○는 내 동생이다.
"○○가 왜?"
"홈에버에서 일하는 사람들 짤려 가지고 맨날 난리잖아. 그게 홈에버만 문제가 아니라 그런 유통업체들 다 문제일텐데 ○○는 괜찮나 몰라."
내 동생은 집 근처 홈플러스에서 비정규직으로 일을 한다.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이라 믿고 있고, 가족들에게도 그렇게 포부를 밝혀놓은 터다. 나는 내가 이랜드 투쟁에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하면서(다시 과녁이 내가 되지 않게) 대화를 이어갔다.
"홈에버에서 짤린 사람들이 대부분이 같이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사람들이라던데? 그게 얼마 전에 비정규직법안이 바뀌면서 그렇게 된 거래. 홈에버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데도 다 문제가 있을 텐데…. 그리고 홈에버나 홈플러스나 유통업체면 다 비슷할 텐데 ○○는 뭐 별 말없이 잘 다니는 것 같아?"
"그래? 에휴… 그 녀석 별말 없이 그냥 잘 나가는 것 같던데…."
나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홈에버 투쟁이 욕할 일도 아니고, 남의 문제도 아니더라, ○○도 지금 비정규직인데 홈에버에서 지금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도 비정규직이 대다수고, 심지어 정규직도 많다더라, 홈에버에서 그렇게 투쟁하다가 지면 홈플러스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쉽다고 홈에버에서 그렇게 시작되면 다른 유통업체들이라고 손해 보면서 노동자들 돈 많이 주고 쓰겠냐, 그러니까 홈에버에서 노동자들이 싸우는 게 그 사람들 문제만이 아니더라, 그 사람들 투쟁이 잘 되어야 우리 집도 잘 살 수 있다…, 이어가는 내 이야기에 귀를 솔깃 기울이면서도 엄마는 또 동생 걱정에 한숨이 더 늘었다. 엄마가 한숨을 쉬면 마음이야 안타깝지만 어쩌랴, 이건 정말 맞는 이야기인걸. 이런 이야기라도 들으면서 우리 엄마가 노동자의 편(?)이 되거나, 혹은 노동자로서의 각성이 이루어지길 기대하면서, 동시에 내가 밤늦게까지 싸돌아다니면서 하는 일이 남만 좋자고 하는 일이 아니라는 변호까지 되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혼나지 않고(?) 엄마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에 내심 뿌듯해했다.
그런데 사실 말 그대로, 나는 정말 투쟁하고 있는 홈에버 노동자들의 얼굴에서, 뉴코아 노동자들의 얼굴에서 내 동생의 얼굴, 우리 엄마의 얼굴을 보곤 한다. '까대기'(매장에 물건을 진열하는 것)노래를 들으면 장대같이 큰 키에 여드름 자국이 있는 앳된 얼굴의 내 동생이 진열대 앞에서 이러저러한 물건들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저녁 늦게까지 쑤시는 다리를 주무르며 집회 대오를 지키고 있는 노동자들에게서는 유난히 한쪽만 퉁퉁 부운 다리 때문에 약을 드시던 엄마가 보인다. 이렇게 비정규직/여성 노동자들의 싸움은 이랜드 노동자들을 통해 그동안과는 무엇인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대학 새내기 시절, '연대'에 대해서 '나를 도와주러 왔다면 돌아가시오, 그러나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이고, 나의 해방이 당신의 해방이라고 생각한다면 함께합시다.'였던가? 하는 문장을 어디선가 본 이후로 이 멋진 말처럼 투쟁하며, 연대하며 살아야겠다고 계속 되뇌고는 했었는데,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음속에 내 나름대로 그어놓은 '운동 공간'과 '개인 공간'이라는 구획 속에서 전자에 속하는 양식이었다. 그러던 것이 '가족'이라는 밀접한 관계의 사람들을 통해 내 일상으로 '투쟁', '비정규직'과 같은 말들이 침투해들어온 것이다. 이런 침투는 예전에도 간혹 있어왔지만 이번에는 왠지 본격적이라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런 침투가 낯설긴 하지만 무척 반갑다. 가족이나 친지들 그리고 (운동과 상관없는)친구와 같은 관계들로 구성되어있는, 예전에는 쉼터 같았던 '개인 공간'이라는 영역은 운동하는 시간이 흘러갈수록 난감함을 주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나는 운동을 통해 일종의 삶의 양식을 갖게 되었고 대부분 운동하는 사람들이 그러할 텐데, 예를 들어 페미니즘은 이념과 운동으로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성과 나를 사회적 맥락 속에서 파악하고 이해하게 하는 감수성이나 시야를 갖게 했다. 그래서 명절 때면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는 집안 남자들 때문에 속이 부글부글 끓거나, 여자 친구들을 만나서 수다를 떨다가도 다른 여성에 대한 묘한 적개심과 질투(?)를 내비치는 대화 주제가 나올 때면 불편하기 그지없는, 섞여있지만 잘 섞여지지 않는 일종의 '고립감'을 많이 느껴왔다. 그러던 것이 '비정규직'이라는 주제로 그/녀들과 대화의 물꼬를 틀고, 동감을 얻어낼 때는 마치 내 운동이 뜬 구름 잡는 허상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이라도 되는 듯 내 마음에 단비가 내리는 것이다.
단비와 같은 투쟁, 특히 지난 매장 점거 투쟁 때의 이랜드 노동자들의 모습은 나에겐 익숙하면서도 새롭고, 일상적이면서도 낯설기도 한 즉, 내가 그어놓았던 경계를 여지없이 허물어뜨린 새로운 세상(?)같은 것이었다. 점거하고 있는 매장에 들어갔을 때 내가 처음 한 것은 저녁을 먹고 있는 조합원들과 인사하고 밥 한술 함께 먹는 것이었는데, 옹기종기 모여 앉은 원안에는 어느 집 식탁에서나 익히 봤을만한 반찬통에 손수 싸들고 온 반찬들이 내어져 있었다. 이전에 다른 사업장 노동자들과 숟가락을 섞어본 일이 없지 않았지만, 하나하나 집어먹을 때마다 '이 달달한 오징어채는 이 집의 딸내미가 좋아했을까, 이 콩자반은 이 집 아저씨가 좋아했을까, 이 계란은 어디 세일할 때 한판 사다놓았던 것이겠지' 하며 그네들의 삶의 모습이 베어 나와 조금은 다른 내음이 났다. 우리가 모여 앉은 곳 두세 걸음 뒤편에는 매장 안의 온갖 물건들이 놓여있는데, 나 같으면 좋아하는 햄이라도 하나 들고 나와 먹겠건만 여기가 우리의 돌아올 일터라고 손 하나 대이지 않은 저편의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살림'이 익숙한 손으로, '죽임'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노동'을 해왔던 '살림'꾼들의 거칠고 고운 손이 점거한 매장은 부서지고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윤송단 여성국장의 말처럼 '쓸고 닦는 투쟁'의 공간이었고 그 차가운 바닥에서 그녀들은 또 서로를, 이 시대를, 우리를 살려내고자 새우잠을 청하는 꽃보다 아름다운 이들이었다. 이런 그네들이 하늘색 조합원티를 입고 마스크를 쓰고 대오를 지키고 앉아있는 집회의 모습은 '안젤리나 졸리'는 비교도 안되게 정말 멋졌다!
그리고 이렇게 생생하고 역동적인 모습에 '신자유주의 시대 여성 노동자들이 활용되고 이중 노동에 시달리는….'라는 그 동안의 수사와 입장이 무색하지 않게 나 역시 생동하는 투쟁, 살아있는 발언이 간절하다. 힘들어 쉬고 싶기도 하고, 가족 걱정이 밤잠을 설치기도 하지만 오늘 하루도 다시 결의를 내며 '쓸고 닦는 투쟁'을 하는 그/녀들에게는 '투사'라는 이름보다도 오히려 여성 노동자라는 아름다운 그 이름 그 자체가 더 어울리는 것 같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참 고마운 '언니'들을 많이 만났다. 그런데 또 이렇게 쓸고 닦으며 길을 터고 있는 여성 노동자라는 이름의 그 언니들을 만나게 되어 정말 감사한다. 빚지지만은 말아야지. 다시 나도 멋진 언니들을 마주치는 즐거운 만남을 시작해야겠다.
"일찍 좀 다녀라. 다 큰 애가 걱정하는 사람 생각 좀 안하니?"
얼굴 확인하자마자 인사 대신 하시는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말을 돌리지 않으면 '좋은 직장과 배우자를 구하라'는 시리즈가 이어진다. 재빨리 다른 화제를 찾았다.
"엄마, 근데 ○○는 괜찮나 몰라?"
○○는 내 동생이다.
"○○가 왜?"
"홈에버에서 일하는 사람들 짤려 가지고 맨날 난리잖아. 그게 홈에버만 문제가 아니라 그런 유통업체들 다 문제일텐데 ○○는 괜찮나 몰라."
내 동생은 집 근처 홈플러스에서 비정규직으로 일을 한다.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이라 믿고 있고, 가족들에게도 그렇게 포부를 밝혀놓은 터다. 나는 내가 이랜드 투쟁에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하면서(다시 과녁이 내가 되지 않게) 대화를 이어갔다.
"홈에버에서 짤린 사람들이 대부분이 같이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사람들이라던데? 그게 얼마 전에 비정규직법안이 바뀌면서 그렇게 된 거래. 홈에버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데도 다 문제가 있을 텐데…. 그리고 홈에버나 홈플러스나 유통업체면 다 비슷할 텐데 ○○는 뭐 별 말없이 잘 다니는 것 같아?"
"그래? 에휴… 그 녀석 별말 없이 그냥 잘 나가는 것 같던데…."
나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홈에버 투쟁이 욕할 일도 아니고, 남의 문제도 아니더라, ○○도 지금 비정규직인데 홈에버에서 지금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도 비정규직이 대다수고, 심지어 정규직도 많다더라, 홈에버에서 그렇게 투쟁하다가 지면 홈플러스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쉽다고 홈에버에서 그렇게 시작되면 다른 유통업체들이라고 손해 보면서 노동자들 돈 많이 주고 쓰겠냐, 그러니까 홈에버에서 노동자들이 싸우는 게 그 사람들 문제만이 아니더라, 그 사람들 투쟁이 잘 되어야 우리 집도 잘 살 수 있다…, 이어가는 내 이야기에 귀를 솔깃 기울이면서도 엄마는 또 동생 걱정에 한숨이 더 늘었다. 엄마가 한숨을 쉬면 마음이야 안타깝지만 어쩌랴, 이건 정말 맞는 이야기인걸. 이런 이야기라도 들으면서 우리 엄마가 노동자의 편(?)이 되거나, 혹은 노동자로서의 각성이 이루어지길 기대하면서, 동시에 내가 밤늦게까지 싸돌아다니면서 하는 일이 남만 좋자고 하는 일이 아니라는 변호까지 되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혼나지 않고(?) 엄마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에 내심 뿌듯해했다.
그런데 사실 말 그대로, 나는 정말 투쟁하고 있는 홈에버 노동자들의 얼굴에서, 뉴코아 노동자들의 얼굴에서 내 동생의 얼굴, 우리 엄마의 얼굴을 보곤 한다. '까대기'(매장에 물건을 진열하는 것)노래를 들으면 장대같이 큰 키에 여드름 자국이 있는 앳된 얼굴의 내 동생이 진열대 앞에서 이러저러한 물건들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저녁 늦게까지 쑤시는 다리를 주무르며 집회 대오를 지키고 있는 노동자들에게서는 유난히 한쪽만 퉁퉁 부운 다리 때문에 약을 드시던 엄마가 보인다. 이렇게 비정규직/여성 노동자들의 싸움은 이랜드 노동자들을 통해 그동안과는 무엇인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대학 새내기 시절, '연대'에 대해서 '나를 도와주러 왔다면 돌아가시오, 그러나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이고, 나의 해방이 당신의 해방이라고 생각한다면 함께합시다.'였던가? 하는 문장을 어디선가 본 이후로 이 멋진 말처럼 투쟁하며, 연대하며 살아야겠다고 계속 되뇌고는 했었는데,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음속에 내 나름대로 그어놓은 '운동 공간'과 '개인 공간'이라는 구획 속에서 전자에 속하는 양식이었다. 그러던 것이 '가족'이라는 밀접한 관계의 사람들을 통해 내 일상으로 '투쟁', '비정규직'과 같은 말들이 침투해들어온 것이다. 이런 침투는 예전에도 간혹 있어왔지만 이번에는 왠지 본격적이라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런 침투가 낯설긴 하지만 무척 반갑다. 가족이나 친지들 그리고 (운동과 상관없는)친구와 같은 관계들로 구성되어있는, 예전에는 쉼터 같았던 '개인 공간'이라는 영역은 운동하는 시간이 흘러갈수록 난감함을 주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나는 운동을 통해 일종의 삶의 양식을 갖게 되었고 대부분 운동하는 사람들이 그러할 텐데, 예를 들어 페미니즘은 이념과 운동으로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성과 나를 사회적 맥락 속에서 파악하고 이해하게 하는 감수성이나 시야를 갖게 했다. 그래서 명절 때면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는 집안 남자들 때문에 속이 부글부글 끓거나, 여자 친구들을 만나서 수다를 떨다가도 다른 여성에 대한 묘한 적개심과 질투(?)를 내비치는 대화 주제가 나올 때면 불편하기 그지없는, 섞여있지만 잘 섞여지지 않는 일종의 '고립감'을 많이 느껴왔다. 그러던 것이 '비정규직'이라는 주제로 그/녀들과 대화의 물꼬를 틀고, 동감을 얻어낼 때는 마치 내 운동이 뜬 구름 잡는 허상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이라도 되는 듯 내 마음에 단비가 내리는 것이다.
단비와 같은 투쟁, 특히 지난 매장 점거 투쟁 때의 이랜드 노동자들의 모습은 나에겐 익숙하면서도 새롭고, 일상적이면서도 낯설기도 한 즉, 내가 그어놓았던 경계를 여지없이 허물어뜨린 새로운 세상(?)같은 것이었다. 점거하고 있는 매장에 들어갔을 때 내가 처음 한 것은 저녁을 먹고 있는 조합원들과 인사하고 밥 한술 함께 먹는 것이었는데, 옹기종기 모여 앉은 원안에는 어느 집 식탁에서나 익히 봤을만한 반찬통에 손수 싸들고 온 반찬들이 내어져 있었다. 이전에 다른 사업장 노동자들과 숟가락을 섞어본 일이 없지 않았지만, 하나하나 집어먹을 때마다 '이 달달한 오징어채는 이 집의 딸내미가 좋아했을까, 이 콩자반은 이 집 아저씨가 좋아했을까, 이 계란은 어디 세일할 때 한판 사다놓았던 것이겠지' 하며 그네들의 삶의 모습이 베어 나와 조금은 다른 내음이 났다. 우리가 모여 앉은 곳 두세 걸음 뒤편에는 매장 안의 온갖 물건들이 놓여있는데, 나 같으면 좋아하는 햄이라도 하나 들고 나와 먹겠건만 여기가 우리의 돌아올 일터라고 손 하나 대이지 않은 저편의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살림'이 익숙한 손으로, '죽임'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노동'을 해왔던 '살림'꾼들의 거칠고 고운 손이 점거한 매장은 부서지고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윤송단 여성국장의 말처럼 '쓸고 닦는 투쟁'의 공간이었고 그 차가운 바닥에서 그녀들은 또 서로를, 이 시대를, 우리를 살려내고자 새우잠을 청하는 꽃보다 아름다운 이들이었다. 이런 그네들이 하늘색 조합원티를 입고 마스크를 쓰고 대오를 지키고 앉아있는 집회의 모습은 '안젤리나 졸리'는 비교도 안되게 정말 멋졌다!
그리고 이렇게 생생하고 역동적인 모습에 '신자유주의 시대 여성 노동자들이 활용되고 이중 노동에 시달리는….'라는 그 동안의 수사와 입장이 무색하지 않게 나 역시 생동하는 투쟁, 살아있는 발언이 간절하다. 힘들어 쉬고 싶기도 하고, 가족 걱정이 밤잠을 설치기도 하지만 오늘 하루도 다시 결의를 내며 '쓸고 닦는 투쟁'을 하는 그/녀들에게는 '투사'라는 이름보다도 오히려 여성 노동자라는 아름다운 그 이름 그 자체가 더 어울리는 것 같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참 고마운 '언니'들을 많이 만났다. 그런데 또 이렇게 쓸고 닦으며 길을 터고 있는 여성 노동자라는 이름의 그 언니들을 만나게 되어 정말 감사한다. 빚지지만은 말아야지. 다시 나도 멋진 언니들을 마주치는 즐거운 만남을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