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운동, 그리고 페미니즘의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가)여성운동 네트워크
2007 사회운동포럼, 놀라운 변화의 현장
지난 9월 초 사회운동포럼이 끝난 후 주변에서 만난 많은 포럼 참가자들은 여성 관련 세션이 늘어난 점, 각 세션마다 페미니즘 문제의식이 자주 눈에 띤 점에 놀라움을 표했다. 메인 행사 중 하나로 여성대회가 개최되고, 주거 공공성 빈곤 활동양식 등 다양한 영역별 운동의 방향이 페미니즘 관점에서 재검토된 이번 사회운동포럼의 풍경은 그동안의 사회운동진영 분위기에 비춰보면 매우 낯설만한 하다. 처음 사회운동포럼이 열릴지 말지도 불투명했던 시절, 내가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으로 페미니즘 기획을 논의하기 시작했을 때에도 이런 결과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정말이지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가?
사회운동의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하고 있는 많은 페미니스트들, 그녀 혹은 그들이 가진 다양한 고민과 산뜻한 의제들의 향연은 이번 사회운동포럼을 빛나게 한 주요한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이 모두는 또한 사회운동 혁신의 가치로서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점차 많은 활동가들에게 확산되고 있다는 반가운 징조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행사를 마칠 때면 늘 그렇듯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사회운동포럼을 통해 제기된 다양한 페미니즘 문제의식들을 모아 앞으로 사회운동 내에서 어떤 공통의 전망을 만들어 갈 것인지, 우리는 어떤 실천을 각자 또 함께할 것인지에 대한 소통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또 사회운동포럼에 참여한 사람들 전반이 각 세션에서 '자주' 페미니즘을 접한 만큼, 페미니즘과의 결합을 사회운동 쇄신의 핵심 과제로 절박하게 인식하게 되었는지 역시 의문으로 남는다. 그런 결과를 얻기 위해 가장 필요한, 기간 사회운동의 한계에 대한 평가가 얼마나 충분히 공유되었는지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운동포럼 여성운동전략기획단 참여자의 한 사람으로, 그리고 사회운동포럼을 준비하기 위해 구성된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기획팀의 시선으로 사회운동포럼 전후에 걸쳐 주장했던 '사회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이라는 문제의식이 무엇이었는지 한 번 더 짚어보기 위해 이 글을 쓰기로 했다. 두꺼운 사회운동포럼 자료집 중간, 중간에 있는 여러 글들과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게 될까 걱정되지만 페미니스트 그리고 사회운동 내 여러 주체들과의 소통과 대화를 바라는, 일종의 '프러포즈'라는 생각으로 읽고 토론해 주시길 기대한다.
사회운동의 혁신, 그리고 페미니즘의 결합이란
한국사회 사회운동의 페미니즘 인식에 대한 냉혹한 평가는 이번 사회운동포럼 이전, 아주 오래전부터 제기된 그리 새롭지도 흥미롭지도 않은 이야기다. 단적으로 지난 IMF 외환위기 이후 각 기업의 구조조정 당시 사실상 자본과 공모한 남성중심 노조들에 의해 밥줄이 끊기고 생에 처절한 고통을 경험해야 했던 여성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 여성들의 희생을 거쳐 드러난 이른바 '대공장 남성 정규직 중심' 노동운동의 한계는 노동운동 외부는 물론 내부에서도 반성과 혁신의 단골 레퍼토리가 된지 오래다.
또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확산이 가져온 폐해가 여성에게 집중되는 현상이 뚜렷이 가시화되면서 여성노동자, 여성농민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최대 피해자로 주목하는 서사들, 예컨대 "비정규직 문제는 여성문제이다.", "빈곤문제는 곧 여성문제이다."라는 이야기들 또한 이제 사회운동진영 내에서 전혀 낯선 말이 아니다.
그러나 아니 그래서, 도대체 사회운동 자신은 무엇이 바뀌었는가. 무엇을 바꾸고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사회운동은 앞서 말한 흔한 여성에 관한 이야기들만큼 페미니즘에도 '익숙'해졌는가. 페미니스트들의 대답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가. 사회운동포럼에서 우리는 바로 이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
먼저 사회운동포럼 사전 워크숍으로 개최한 '노동자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을 위하여' 1차, 2차 워크숍에서 두 가지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수년에 걸쳐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비정규직 투쟁이 왜 여성 비정규직의 차별을 개선하고 여성 비정규직 스스로를 주체로 세우는 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을까. 또 최근 정부와 기업이 선도(?)하고 있는 일-가정 양립 정책에 대하여 노동운동의 대응은 왜 이렇게 미흡할 수밖에 없는가, 어떤 역사적 배경이 있는 것일까.
우리는 '남성=생계부양자, 여성=가사전담자'라는 공사구분/성별분업 이데올로기에 기초하여 구조화된 사회운동의 이념, 실천, 관행 전반의 문제점이 충분히 성찰되지 못했다는 데서 원인을 찾았다. 여성을 보편적 노동자, 시민으로 인지하고 성적 차이에 기반 한 여성의 권리를 실현하는 전략을 자기 과제로 삼지 못한 노동운동에서, 남성 '가장' 노동자가 아닌 여성노동자, 가족 돌봄에 대한 책임이 있는 노동자의 문제는 가시화되지 못했고 여성문제는 늘 특수한, 주변적인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구축된 노동운동이 단지 투쟁할 때 '여성' 비정규직을 더 많이 언급한다고 해서, 가사 육아 등 재생산영역의 문제를 여전히 여성들'만'의 문제로 치부한 채 운동 과제의 하나로 끼워 넣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던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일반적' 전략과는 다른 (위계적 또는 병렬적으로 배치되는)페미니즘, '보편적' 인권과 노동권을 실현하는 투쟁과 동떨어진 여성인권 여성노동권 투쟁, 철저한 남성의 시각에서 약자 소수자로서 여성을 보살피고 보호해야 한다는 태도, 공과 사/생산과 재생산을 분리한 채 이른바 공적 생산영역만을 '유일한' 정치의 장으로 인식하는 한계. 이렇게 여성 문제, 페미니스트 실천을 단지'첨가'만하는 경향은 노동운동 뿐 아니라 사회운동 일반이 가진 태도이다.
우리의 도전은 그 '일반', '보편', '정치' 자체의 전환이다. 여성이 삭제되고 재생산의 영역을 비가시화 한 채 구성된 사회운동의 보편성과 정치 전략을 뛰어 넘어, 여성억압에 도전하는 페미니즘이 통합된 새로운 보편적 이념, 일반적 전략, 그리고 다른 정치를 구상해 가는 것, 우리는 이것을 '사회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이라 정의하고자 했다.
사회운동 내 페미니즘 실천, 어디까지 와 있나
이처럼 사회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은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페미니즘이 이번 사회운동포럼에서 큰 축을 차지하는 가치이자 다양한 실천으로 확장되기 까지, 이러한 변화는 많은 페미니스트들의 자각과 도전,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몇 년간 사회운동 내에서 벌어진 다양한 페미니즘 실천들은 운동사회 또한 성별분업 이데올로기를 토대로 구축된 고유한 여성억압과 차별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었다. 여성에 대한 폭력, 여성 활동가의 주변화, 여성 활동가들의 일 가정 생계 삼중 사중의 부담이 사회운동을 유지 성장시키는 토대였음을 드러내고 그것을 변화시키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사회운동 곳곳에서 페미니스트들은 성장해 왔다.
우리의 두 번째 질문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회운동은 무엇이 바뀌었는가?", "사회운동은 여성활동가들이 살만한, 활동할만한 곳이 됐는가?", "자기 해방과 사회 변화를 위해 싸우는 더 많은 여성들이 지금 우리 곁에 있는가?"였다. 이런 고민을 나눠보기 위해 기획된 '노동자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을 위하여' 세 번째 워크숍은 노동조합 여성할당제와 반성폭력 운동에 대한 평가에 초점을 뒀다.
운동사회 성폭력 문제가 제기되고 성폭력 사건의 올바른(?) 처리 방안이 제도화되기 까지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노조와 사회단체 여성 활동가들은 어느새 성폭력 사건 전담처리반과 같은 역할에 허덕이고 있었다. 개별 사건의 처리 과정이 전체 조직과 사회운동 내 반향을 일으키고 보다 성평등 한 문화를 정착시키는 성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모두가 안타까워하는 부분이다. 또 여성할당제를 통해 몇몇 여성조합원들이 영향력 있는 지위를 갖게 되었지만 전체 여성조합원의 세력화로 쉽게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할당제로 진출한 여성들이 겪는 이중 삼중의 부담도 여전히 그녀들 개인의 몫이다.
물론 현실이 이렇다고 해서 우리, 그녀들의 실천이 결코 부질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전히 '자리 잡기' 중인 여성의 의사결정권 강화와 성폭력 근절을 위한 제도를 섣부르게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간의 실천들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페미니즘을 인지하는 일정한 경향이 만들어졌고, 그것이 사회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을 진전시키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남성과 여성의 수량적 평등, 형식적인 형평성을 페미니즘의 전부로 보는 인식, 성폭력을 유발하거나 여성을 비하하는 말과 행동을 자제하는 것이 곧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것으로 호도되는 현상을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접하고 있다. 때문에 누군가에게 페미니즘 실천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을 강제하거나 지극히 개별적인 각성과 실천(혹은 침묵)을 촉구하는 것이 유력한 수단이 됐다. 이는 '진보란 이름표를 단 사람이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전파됐지만, 곳곳에서 페미니스트들과 남성 활동가들 혹은 페미니스트들과 여성 활동가들 간의 갈등과 의사소통의 단절로 이어지곤 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의도하지 않은 이러한 결과 위에 서 있으며, 이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전히 여성해방을 위한 정치적 이념으로서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운동의 인식은 지체되고 있으며, 우리에게는 사회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이 필요하다는 점을 설득하고 그것을 통해 다른 운동의 전략과 실천을 만들어내야 하는 과제가 고스란히 놓여 있다.
다른 여성운동, 새로운 여정의 출발
이쯤에서 노조나 사회운동단체에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들의 마음 한 편을 떠나지 않는 공통된 '갈등'을 되새겨 봐야겠다.
"내가 이 고생하면서 여기서 무슨 여성운동을 할 수 있겠어. 때려치우자, 때려 쳐!!!"
처음 페미니스트로서 자기 해방의 꿈을 상상하던 시절, 얼마나 가슴벅차했던가. 여성으로서 우리 사회의 독립적 주체로 인정받는 사회, 노동의 권리가 보장되고 몸과 성욕에 대한 권리가 폭력에 의해 위협받지 않는 사회, 여/남이 자유롭게 소통하며 만들어가는 새로운 공동체. 이런 새로운 세상이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더욱 강화되는 자본주의의 신화에 도전하는 투쟁과 결합되지 않는다면, 단지 여성들만의 투쟁에 그친다면 결코 이룰 수 없을 것이라는 신념에 우리는 늘'갈등'을 품고도 여기에 있다. 다른 사회운동, 다른 여성운동을 만들어가기 위한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고 페미니즘의 간절한 외침은 사회운동 내 메아리치지 못하지만 말이다.
사회운동포럼의 장에 이런 고민을 가진 페미니스트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이제 서로를 어떻게 만날 것인가, 나/너/우리의 해방은 어떻게 가능한가, 지금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공동의 논의와 공동의 실천, 공동의 교육이 필요함을 확인하게 되었다. 여성대회를 치루는 과정에서 부족했던 소통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여성운동을 만들어가는 주체임을 선언하고 긴 호흡을 가다듬기로 했다.
그렇게 구성된 것이 '(가)여성운동네트워크'이다. 여성운동네트워크는 앞으로 사회운동 혁신을 위한 이념으로 페미니즘을 확산하고 사회운동 내에서 보다 광범위한 페미니스트 실천을 조직해내기 위한 주체들의 토론과 소통, 교육과 교류의 장을 표방하고자 한다. 어떤 결사체, 조직체 자체로 존재하기보다 페미니스트들의 하나 혹은 여럿의 목소리가 만드는 '물결'로 존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오는 10월 23일 사회운동포럼 여성대회 선언자모임을 통해 공식적으로 새로운 여정을 출발하려는 여성운동네트워크. 무척 흥분되는 이 순간, 부담 또한 크게 다가온다. '새로운'이란 말이 주는 부담도 무겁지만 '주류'가 아닌 여성운동('비주류' 여성운동?)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또는 우리가 과연 그러한 정체성에서 출발하는가 등 여러 가지 답을 내리기 어려운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그러나 글 앞머리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2007 사회운동포럼에서 목격할 수 있었던, 지금까지 사회운동 내 페미니스트들이 일구어온 놀라운 변화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단절되거나 사회운동의 면면에 뿌리내리지 못한다면 우리, 페미니스트들이 꿈꾸는 미래는 그만큼 늦춰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절박한 심정으로 사회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을 위해 움직이는 페미니스트들의 마당이 되길 바라며, 여성운동네트워크의 빗장을 여러분과 함께 열고 싶다.
지난 9월 초 사회운동포럼이 끝난 후 주변에서 만난 많은 포럼 참가자들은 여성 관련 세션이 늘어난 점, 각 세션마다 페미니즘 문제의식이 자주 눈에 띤 점에 놀라움을 표했다. 메인 행사 중 하나로 여성대회가 개최되고, 주거 공공성 빈곤 활동양식 등 다양한 영역별 운동의 방향이 페미니즘 관점에서 재검토된 이번 사회운동포럼의 풍경은 그동안의 사회운동진영 분위기에 비춰보면 매우 낯설만한 하다. 처음 사회운동포럼이 열릴지 말지도 불투명했던 시절, 내가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으로 페미니즘 기획을 논의하기 시작했을 때에도 이런 결과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정말이지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가?
사회운동의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하고 있는 많은 페미니스트들, 그녀 혹은 그들이 가진 다양한 고민과 산뜻한 의제들의 향연은 이번 사회운동포럼을 빛나게 한 주요한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이 모두는 또한 사회운동 혁신의 가치로서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점차 많은 활동가들에게 확산되고 있다는 반가운 징조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행사를 마칠 때면 늘 그렇듯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사회운동포럼을 통해 제기된 다양한 페미니즘 문제의식들을 모아 앞으로 사회운동 내에서 어떤 공통의 전망을 만들어 갈 것인지, 우리는 어떤 실천을 각자 또 함께할 것인지에 대한 소통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또 사회운동포럼에 참여한 사람들 전반이 각 세션에서 '자주' 페미니즘을 접한 만큼, 페미니즘과의 결합을 사회운동 쇄신의 핵심 과제로 절박하게 인식하게 되었는지 역시 의문으로 남는다. 그런 결과를 얻기 위해 가장 필요한, 기간 사회운동의 한계에 대한 평가가 얼마나 충분히 공유되었는지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운동포럼 여성운동전략기획단 참여자의 한 사람으로, 그리고 사회운동포럼을 준비하기 위해 구성된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기획팀의 시선으로 사회운동포럼 전후에 걸쳐 주장했던 '사회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이라는 문제의식이 무엇이었는지 한 번 더 짚어보기 위해 이 글을 쓰기로 했다. 두꺼운 사회운동포럼 자료집 중간, 중간에 있는 여러 글들과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게 될까 걱정되지만 페미니스트 그리고 사회운동 내 여러 주체들과의 소통과 대화를 바라는, 일종의 '프러포즈'라는 생각으로 읽고 토론해 주시길 기대한다.
사회운동의 혁신, 그리고 페미니즘의 결합이란
한국사회 사회운동의 페미니즘 인식에 대한 냉혹한 평가는 이번 사회운동포럼 이전, 아주 오래전부터 제기된 그리 새롭지도 흥미롭지도 않은 이야기다. 단적으로 지난 IMF 외환위기 이후 각 기업의 구조조정 당시 사실상 자본과 공모한 남성중심 노조들에 의해 밥줄이 끊기고 생에 처절한 고통을 경험해야 했던 여성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 여성들의 희생을 거쳐 드러난 이른바 '대공장 남성 정규직 중심' 노동운동의 한계는 노동운동 외부는 물론 내부에서도 반성과 혁신의 단골 레퍼토리가 된지 오래다.
또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확산이 가져온 폐해가 여성에게 집중되는 현상이 뚜렷이 가시화되면서 여성노동자, 여성농민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최대 피해자로 주목하는 서사들, 예컨대 "비정규직 문제는 여성문제이다.", "빈곤문제는 곧 여성문제이다."라는 이야기들 또한 이제 사회운동진영 내에서 전혀 낯선 말이 아니다.
그러나 아니 그래서, 도대체 사회운동 자신은 무엇이 바뀌었는가. 무엇을 바꾸고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사회운동은 앞서 말한 흔한 여성에 관한 이야기들만큼 페미니즘에도 '익숙'해졌는가. 페미니스트들의 대답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가. 사회운동포럼에서 우리는 바로 이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
먼저 사회운동포럼 사전 워크숍으로 개최한 '노동자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을 위하여' 1차, 2차 워크숍에서 두 가지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수년에 걸쳐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비정규직 투쟁이 왜 여성 비정규직의 차별을 개선하고 여성 비정규직 스스로를 주체로 세우는 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을까. 또 최근 정부와 기업이 선도(?)하고 있는 일-가정 양립 정책에 대하여 노동운동의 대응은 왜 이렇게 미흡할 수밖에 없는가, 어떤 역사적 배경이 있는 것일까.
우리는 '남성=생계부양자, 여성=가사전담자'라는 공사구분/성별분업 이데올로기에 기초하여 구조화된 사회운동의 이념, 실천, 관행 전반의 문제점이 충분히 성찰되지 못했다는 데서 원인을 찾았다. 여성을 보편적 노동자, 시민으로 인지하고 성적 차이에 기반 한 여성의 권리를 실현하는 전략을 자기 과제로 삼지 못한 노동운동에서, 남성 '가장' 노동자가 아닌 여성노동자, 가족 돌봄에 대한 책임이 있는 노동자의 문제는 가시화되지 못했고 여성문제는 늘 특수한, 주변적인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구축된 노동운동이 단지 투쟁할 때 '여성' 비정규직을 더 많이 언급한다고 해서, 가사 육아 등 재생산영역의 문제를 여전히 여성들'만'의 문제로 치부한 채 운동 과제의 하나로 끼워 넣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던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일반적' 전략과는 다른 (위계적 또는 병렬적으로 배치되는)페미니즘, '보편적' 인권과 노동권을 실현하는 투쟁과 동떨어진 여성인권 여성노동권 투쟁, 철저한 남성의 시각에서 약자 소수자로서 여성을 보살피고 보호해야 한다는 태도, 공과 사/생산과 재생산을 분리한 채 이른바 공적 생산영역만을 '유일한' 정치의 장으로 인식하는 한계. 이렇게 여성 문제, 페미니스트 실천을 단지'첨가'만하는 경향은 노동운동 뿐 아니라 사회운동 일반이 가진 태도이다.
우리의 도전은 그 '일반', '보편', '정치' 자체의 전환이다. 여성이 삭제되고 재생산의 영역을 비가시화 한 채 구성된 사회운동의 보편성과 정치 전략을 뛰어 넘어, 여성억압에 도전하는 페미니즘이 통합된 새로운 보편적 이념, 일반적 전략, 그리고 다른 정치를 구상해 가는 것, 우리는 이것을 '사회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이라 정의하고자 했다.
사회운동 내 페미니즘 실천, 어디까지 와 있나
이처럼 사회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은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페미니즘이 이번 사회운동포럼에서 큰 축을 차지하는 가치이자 다양한 실천으로 확장되기 까지, 이러한 변화는 많은 페미니스트들의 자각과 도전,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몇 년간 사회운동 내에서 벌어진 다양한 페미니즘 실천들은 운동사회 또한 성별분업 이데올로기를 토대로 구축된 고유한 여성억압과 차별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었다. 여성에 대한 폭력, 여성 활동가의 주변화, 여성 활동가들의 일 가정 생계 삼중 사중의 부담이 사회운동을 유지 성장시키는 토대였음을 드러내고 그것을 변화시키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사회운동 곳곳에서 페미니스트들은 성장해 왔다.
우리의 두 번째 질문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회운동은 무엇이 바뀌었는가?", "사회운동은 여성활동가들이 살만한, 활동할만한 곳이 됐는가?", "자기 해방과 사회 변화를 위해 싸우는 더 많은 여성들이 지금 우리 곁에 있는가?"였다. 이런 고민을 나눠보기 위해 기획된 '노동자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을 위하여' 세 번째 워크숍은 노동조합 여성할당제와 반성폭력 운동에 대한 평가에 초점을 뒀다.
운동사회 성폭력 문제가 제기되고 성폭력 사건의 올바른(?) 처리 방안이 제도화되기 까지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노조와 사회단체 여성 활동가들은 어느새 성폭력 사건 전담처리반과 같은 역할에 허덕이고 있었다. 개별 사건의 처리 과정이 전체 조직과 사회운동 내 반향을 일으키고 보다 성평등 한 문화를 정착시키는 성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모두가 안타까워하는 부분이다. 또 여성할당제를 통해 몇몇 여성조합원들이 영향력 있는 지위를 갖게 되었지만 전체 여성조합원의 세력화로 쉽게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할당제로 진출한 여성들이 겪는 이중 삼중의 부담도 여전히 그녀들 개인의 몫이다.
물론 현실이 이렇다고 해서 우리, 그녀들의 실천이 결코 부질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전히 '자리 잡기' 중인 여성의 의사결정권 강화와 성폭력 근절을 위한 제도를 섣부르게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간의 실천들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페미니즘을 인지하는 일정한 경향이 만들어졌고, 그것이 사회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을 진전시키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남성과 여성의 수량적 평등, 형식적인 형평성을 페미니즘의 전부로 보는 인식, 성폭력을 유발하거나 여성을 비하하는 말과 행동을 자제하는 것이 곧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것으로 호도되는 현상을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접하고 있다. 때문에 누군가에게 페미니즘 실천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을 강제하거나 지극히 개별적인 각성과 실천(혹은 침묵)을 촉구하는 것이 유력한 수단이 됐다. 이는 '진보란 이름표를 단 사람이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전파됐지만, 곳곳에서 페미니스트들과 남성 활동가들 혹은 페미니스트들과 여성 활동가들 간의 갈등과 의사소통의 단절로 이어지곤 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의도하지 않은 이러한 결과 위에 서 있으며, 이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전히 여성해방을 위한 정치적 이념으로서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운동의 인식은 지체되고 있으며, 우리에게는 사회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이 필요하다는 점을 설득하고 그것을 통해 다른 운동의 전략과 실천을 만들어내야 하는 과제가 고스란히 놓여 있다.
다른 여성운동, 새로운 여정의 출발
이쯤에서 노조나 사회운동단체에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들의 마음 한 편을 떠나지 않는 공통된 '갈등'을 되새겨 봐야겠다.
"내가 이 고생하면서 여기서 무슨 여성운동을 할 수 있겠어. 때려치우자, 때려 쳐!!!"
처음 페미니스트로서 자기 해방의 꿈을 상상하던 시절, 얼마나 가슴벅차했던가. 여성으로서 우리 사회의 독립적 주체로 인정받는 사회, 노동의 권리가 보장되고 몸과 성욕에 대한 권리가 폭력에 의해 위협받지 않는 사회, 여/남이 자유롭게 소통하며 만들어가는 새로운 공동체. 이런 새로운 세상이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더욱 강화되는 자본주의의 신화에 도전하는 투쟁과 결합되지 않는다면, 단지 여성들만의 투쟁에 그친다면 결코 이룰 수 없을 것이라는 신념에 우리는 늘'갈등'을 품고도 여기에 있다. 다른 사회운동, 다른 여성운동을 만들어가기 위한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고 페미니즘의 간절한 외침은 사회운동 내 메아리치지 못하지만 말이다.
사회운동포럼의 장에 이런 고민을 가진 페미니스트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이제 서로를 어떻게 만날 것인가, 나/너/우리의 해방은 어떻게 가능한가, 지금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공동의 논의와 공동의 실천, 공동의 교육이 필요함을 확인하게 되었다. 여성대회를 치루는 과정에서 부족했던 소통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여성운동을 만들어가는 주체임을 선언하고 긴 호흡을 가다듬기로 했다.
그렇게 구성된 것이 '(가)여성운동네트워크'이다. 여성운동네트워크는 앞으로 사회운동 혁신을 위한 이념으로 페미니즘을 확산하고 사회운동 내에서 보다 광범위한 페미니스트 실천을 조직해내기 위한 주체들의 토론과 소통, 교육과 교류의 장을 표방하고자 한다. 어떤 결사체, 조직체 자체로 존재하기보다 페미니스트들의 하나 혹은 여럿의 목소리가 만드는 '물결'로 존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오는 10월 23일 사회운동포럼 여성대회 선언자모임을 통해 공식적으로 새로운 여정을 출발하려는 여성운동네트워크. 무척 흥분되는 이 순간, 부담 또한 크게 다가온다. '새로운'이란 말이 주는 부담도 무겁지만 '주류'가 아닌 여성운동('비주류' 여성운동?)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또는 우리가 과연 그러한 정체성에서 출발하는가 등 여러 가지 답을 내리기 어려운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그러나 글 앞머리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2007 사회운동포럼에서 목격할 수 있었던, 지금까지 사회운동 내 페미니스트들이 일구어온 놀라운 변화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단절되거나 사회운동의 면면에 뿌리내리지 못한다면 우리, 페미니스트들이 꿈꾸는 미래는 그만큼 늦춰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절박한 심정으로 사회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을 위해 움직이는 페미니스트들의 마당이 되길 바라며, 여성운동네트워크의 빗장을 여러분과 함께 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