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먼 당신'이 아닌 '내 옆에 당신'
주로 풍물 소모임 일정 때문에 문자를 주고받곤 하던 승운에게서 전화가 왔다.
평소에 갈월동 기행은 짧은 에세이라고 여겼던 터라 그랬는지 너무 쉽게 “응, 그래. 알았어. A4 한두 장이면 되지?” 해버렸다. 헉, 이런. 무슨 생각으로 글을 쓴다고 했을까? 사실 나는 전화를 받은 그 당시에 갈월동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상태였다. 사회진보연대 회원이 된지 올 4월이면 두 해가 되어 가는데, 아직 한 번도 갈월동 사무실에 안 가본 것이다. 그러다가 지난 주(1월 22일)에 시작한 겨울사회운동세미나 참석을 위해 갈월동에 처음으로 도장을 찍었다. 이런 나에게 갈월동 기행을 청탁한 것은 편집국의 실수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너무 순진한 마음에 그 실수에 응한 나는 지금 무엇을 써야하는지에 대한 난감함에 빠져있다. 나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었을까? (청탁을 부탁할 회원을 찾다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던진 그물에 내가 걸려든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럼, 내가 들려 줄 수 있는 이야기는 뭐지? 등등의 고민 끝에, ‘일반회원’의 사회진보연대 활동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내가 이 공간의 회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대학교 다닐 때 사회진보연대를 알게 된 인연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요인은 학부 졸업 이후 대학원에서 연구조교를 하게 되면서 적은 돈이지만, 안정적인 수입이 생기면서부터였다. 그러나 작년 7월까지는 회비를 내고 기관지를 받는 것 이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혹은 하려고 하는 활동들이 전혀 없이 1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작년 4월 경 풍물소모임 성원을 모집하는 메일을 받고,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어 덥석 답메일을 보냈다. 그렇게 시작된 풍물소모임이 벌써 반 년이 되어간다. 그 사이 매주 토요일 오전이면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장구를 쳤다. 장구를 신나게 치고 난 후,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먹는 점심상에는 항상 소주가 올라온다. 채를 잡았던 팔들은 쑤시고, 배는 고프지만 풍물을 치고 먹는 낮술이 그렇게 달 수가 없다. 학부 때 농활을 가서 새참 때 마셨던 막걸리 맛이랄까? 너무 즐거운 순간이다. 그런데 그 즐거움은 풍물소모임을 통해 사회진보연대의 다른 회원들을 알게 된 것에서도 기인한다. 유미, 승운, 수열, 가필, 옥희, 승환, 영식, 석진, 그리고 지금은 미국에 가있는 율산. 풍물소모임을 통해 이들을 알게 되었고, 이렇게 나는 사회진보연대와 친해지기 시작했다. 솔직히 소모임을 하기 전에 나에게 사회진보연대는 ‘너무나 먼 당신’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 기관지를 통해, 일주일에 네다섯 번씩 메일을 통해 현재의 정세와 쟁점, 연대 활동과 일상 활동들을 알려주는 사회진보연대는 나의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그것은 나에게 토론회, 강좌, 포럼, 세미나, 여성위원회 활동, 수련회, 투쟁집회 등 많은 활동들을 수도 없이 제안했지만,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 이런 나에게 풍물소모임은 비로소 사회진보연대에 적(寂)을 마련해줬다.
그런데 송년의 밤에서 풍물 공연을 본 대학교 후배가 한마디한다. “선배, 풍물만 치나요?” 그 질문의 의도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질문이 아니라 우회적 질책이다. 한 때 학생회 활동을 같이 했던 선배가 대학원에 진학 한 후, 자신의 활동을 구체화시키지 못한 채 사회진보연대의 언저리를 돌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을 게다. 나 역시도 그 후배의 말처럼 ‘풍물만 치면 안 될 텐데...’ 하는 고민이 안 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막 친해지기 시작한 사회진보연대이기에 풍물소모임을 넘어 다른 활동으로 만날 수 있을지는 여전히도 난감하다. 이야기 초기에 잠깐 언급한 겨울사회운동세미나의 경우 풍물소모임이 아닌 다른 활동이긴 하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나의 지적 욕구를 채우기 위한 공부라는 혐의를 지울 수 없으며, 두 달 후면 끝나는 일시적인 세미나일 뿐이다. 앞서 이야기 한 총회, 정세토론과 포럼, 세미나, 여성위원회 활동, 수련회, 투쟁집회 등의 일정을 쫓아다니는 것을 넘어 사회진보연대 회원으로서 지속적인 역할을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더 이야기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사회진보연대 회원이 거의 600명 가까이 된다고 얼핏 들은 적이 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수이지만, 운영위원·집행위원들의 수와 일반회원 수를 비교해 볼 때 사회진보연대는 일반회원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일반회원들의 인적구성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민주적·계급적 사회운동을 목표로 하는 사회진보연대의 특성 상 노동조합과 진보정당, 사회단체의 활동가, 농민들이 주를 이룰 것이고 나와 같이 학생신분인 사람 혹은 직장을 다니는 노동자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일반회원들이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은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사회진보연대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와 군사세계화에 대항하여 현 정세에 맞는 이론과 정책을 구상하고, 그에 맞는 일련의 투쟁들을 기획하면서 새로운 사회운동의 전망을 밝히기 위해 교육·토론사업 등 일상 활동도 펼쳐나가고 있다. 이렇게 자본의 속도만큼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사회진보연대의 활동 속에서 그에 맞는 나의 활동을 계획하기란 쉽지 않다. 앞서 밝혔듯이 그 역할을 찾는 것은 나의 몫이지만, 사회단체의 활동가가 아닌 일반회원들이 만나 대안적 사회운동의 전형을 모색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줄 수 있는 기획을 사회진보연대도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제 친해지기 시작한 사회진보연대가 ‘너무나 먼 당신’이 아닌 ‘내 옆의 당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말을 건네 본다.
승운: “글 하나 써 줄 수 있어?”
나: “어? 나 글 잘 못쓰는데,,”
승운: “알아,(웃음) 긴 글은 아니고, 갈월동 기행이야.”
평소에 갈월동 기행은 짧은 에세이라고 여겼던 터라 그랬는지 너무 쉽게 “응, 그래. 알았어. A4 한두 장이면 되지?” 해버렸다. 헉, 이런. 무슨 생각으로 글을 쓴다고 했을까? 사실 나는 전화를 받은 그 당시에 갈월동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상태였다. 사회진보연대 회원이 된지 올 4월이면 두 해가 되어 가는데, 아직 한 번도 갈월동 사무실에 안 가본 것이다. 그러다가 지난 주(1월 22일)에 시작한 겨울사회운동세미나 참석을 위해 갈월동에 처음으로 도장을 찍었다. 이런 나에게 갈월동 기행을 청탁한 것은 편집국의 실수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너무 순진한 마음에 그 실수에 응한 나는 지금 무엇을 써야하는지에 대한 난감함에 빠져있다. 나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었을까? (청탁을 부탁할 회원을 찾다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던진 그물에 내가 걸려든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럼, 내가 들려 줄 수 있는 이야기는 뭐지? 등등의 고민 끝에, ‘일반회원’의 사회진보연대 활동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내가 이 공간의 회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대학교 다닐 때 사회진보연대를 알게 된 인연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요인은 학부 졸업 이후 대학원에서 연구조교를 하게 되면서 적은 돈이지만, 안정적인 수입이 생기면서부터였다. 그러나 작년 7월까지는 회비를 내고 기관지를 받는 것 이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혹은 하려고 하는 활동들이 전혀 없이 1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작년 4월 경 풍물소모임 성원을 모집하는 메일을 받고,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어 덥석 답메일을 보냈다. 그렇게 시작된 풍물소모임이 벌써 반 년이 되어간다. 그 사이 매주 토요일 오전이면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장구를 쳤다. 장구를 신나게 치고 난 후,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먹는 점심상에는 항상 소주가 올라온다. 채를 잡았던 팔들은 쑤시고, 배는 고프지만 풍물을 치고 먹는 낮술이 그렇게 달 수가 없다. 학부 때 농활을 가서 새참 때 마셨던 막걸리 맛이랄까? 너무 즐거운 순간이다. 그런데 그 즐거움은 풍물소모임을 통해 사회진보연대의 다른 회원들을 알게 된 것에서도 기인한다. 유미, 승운, 수열, 가필, 옥희, 승환, 영식, 석진, 그리고 지금은 미국에 가있는 율산. 풍물소모임을 통해 이들을 알게 되었고, 이렇게 나는 사회진보연대와 친해지기 시작했다. 솔직히 소모임을 하기 전에 나에게 사회진보연대는 ‘너무나 먼 당신’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 기관지를 통해, 일주일에 네다섯 번씩 메일을 통해 현재의 정세와 쟁점, 연대 활동과 일상 활동들을 알려주는 사회진보연대는 나의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그것은 나에게 토론회, 강좌, 포럼, 세미나, 여성위원회 활동, 수련회, 투쟁집회 등 많은 활동들을 수도 없이 제안했지만,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 이런 나에게 풍물소모임은 비로소 사회진보연대에 적(寂)을 마련해줬다.
그런데 송년의 밤에서 풍물 공연을 본 대학교 후배가 한마디한다. “선배, 풍물만 치나요?” 그 질문의 의도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질문이 아니라 우회적 질책이다. 한 때 학생회 활동을 같이 했던 선배가 대학원에 진학 한 후, 자신의 활동을 구체화시키지 못한 채 사회진보연대의 언저리를 돌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을 게다. 나 역시도 그 후배의 말처럼 ‘풍물만 치면 안 될 텐데...’ 하는 고민이 안 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막 친해지기 시작한 사회진보연대이기에 풍물소모임을 넘어 다른 활동으로 만날 수 있을지는 여전히도 난감하다. 이야기 초기에 잠깐 언급한 겨울사회운동세미나의 경우 풍물소모임이 아닌 다른 활동이긴 하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나의 지적 욕구를 채우기 위한 공부라는 혐의를 지울 수 없으며, 두 달 후면 끝나는 일시적인 세미나일 뿐이다. 앞서 이야기 한 총회, 정세토론과 포럼, 세미나, 여성위원회 활동, 수련회, 투쟁집회 등의 일정을 쫓아다니는 것을 넘어 사회진보연대 회원으로서 지속적인 역할을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더 이야기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사회진보연대 회원이 거의 600명 가까이 된다고 얼핏 들은 적이 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수이지만, 운영위원·집행위원들의 수와 일반회원 수를 비교해 볼 때 사회진보연대는 일반회원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일반회원들의 인적구성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민주적·계급적 사회운동을 목표로 하는 사회진보연대의 특성 상 노동조합과 진보정당, 사회단체의 활동가, 농민들이 주를 이룰 것이고 나와 같이 학생신분인 사람 혹은 직장을 다니는 노동자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일반회원들이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은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사회진보연대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와 군사세계화에 대항하여 현 정세에 맞는 이론과 정책을 구상하고, 그에 맞는 일련의 투쟁들을 기획하면서 새로운 사회운동의 전망을 밝히기 위해 교육·토론사업 등 일상 활동도 펼쳐나가고 있다. 이렇게 자본의 속도만큼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사회진보연대의 활동 속에서 그에 맞는 나의 활동을 계획하기란 쉽지 않다. 앞서 밝혔듯이 그 역할을 찾는 것은 나의 몫이지만, 사회단체의 활동가가 아닌 일반회원들이 만나 대안적 사회운동의 전형을 모색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줄 수 있는 기획을 사회진보연대도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제 친해지기 시작한 사회진보연대가 ‘너무나 먼 당신’이 아닌 ‘내 옆의 당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말을 건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