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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8.1-2.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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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무속: 어루 중천의 액이로구나

이유미 | 회원, 공공운수연맹 정책실
원고를 부탁 받을 때, 꼭 책에 대한 내용이 아니어도 된다는 말에 부담감이 한결 덜어졌다. 그런데 문화로 확대해보니, 요즘에는 다른 이들이 다 읽은 책도 한 권씩 찾아보며 읽어 그나마 보조를 맞춰 가는 상황이라 ‘할 말이 더 없네...’하며 더 난망해졌다. 이럴 때는 그래도 오래본 책이나 관심분야를 얘기하면 절반이나마 가지 않을까하는 소심함으로 한참을 뒤적이다 머릿속의 먼지들을 훌훌 불어서 찾아낸 내용은 바로 ‘굿’이다.
짧게 ‘굿·무속’에 대해 소개하자면, 굿이란 무당이 연희하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무당은 세습무와 강신무로 나뉘는데 세습무는 가계를 이어 내려오는 무당으로 마을의 당골들이 주로 이들이다. 이들은 마을의 대소사를 함께하며 인간관계의 조정자로서 기능했고, 또 이들이 주재하는 굿판은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며 고민을 나누고 기원을 하는 자리였다. 세습무는 주로 한강 이남에서 성행했으며, 가계를 내려오며 연희하였기 때문에 굿의 예술성이 탁월하고 남도전통예술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강신무는 신 내림을 받은 무당으로써 주로 한강 이북 지방에서 성행하였다. 강신무도 역시 굿을 하는데, 굿은 전승되는 책과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일일이 굿을 쫓아다니며 배워야 해서 강신무당도 최소 3년의 수련을 거쳐야 한다고 한다. 신당을 작게 차려 점만치는 무당은 진짜 무당이라 볼 수 없는데 (굿을 할 수 없으므로) 이들을 선무당이라고 부른다.
당산나무나 주요 굿에서 보면 5가지 주요색이 있는데 이를 오방색이라 부른다, 오방색은 5가지 방향, 오방신을 뜻하고 오방신은 동 ·서 ·남 ·북 ·중앙을 수호하는 신으로 각각 청제(靑帝) ·백제(白帝) ·적제(赤帝) ·흑제(黑帝) ·황제(黃帝)라고 부른다. 청룡 ·주작 ·백호 ·현무 ·황룡의 동물로 나타내기도 한다. 무(巫)신으로 마을을 수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굿을 처음 본 날’

처음 굿을 본 것은 2001년이었다. 동아리 선배 언니가 가자고 하여 인천 만석동 부두(아니면 화수부두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앞으로 황해도 ‘배연신 굿’을 보러갔다. 인천에는 황해도 피난민이 많이 살아, 황해도 실향민들이 배연신 굿 등을 자주 열어왔다고 한다. 배연신 굿은 한 해 동안 바다에서 무사하고 고기를 많이 잡게 해달라 기원하는 굿으로 하루 종일 배 안에서 굿을 한다는 점이 특이점이다. 요즘은 부두 앞에서 보여주기 식으로 짧게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이번은 오랜만에 바다로 나가 배 위에서 하는 굿이라고 했다. 굿을 주제하는 만신은 이미 연세가 70을 넘기신 김금화 만신이었다. 김금화 만신과 그보다 더 연로한 무당이 나오셔서 굿을 하는데 두 무당의 부분에선 오래된 질그릇이 보여주는 듯한 깊은 세월과 편안함이 느껴졌다.

“올 한해도 물고기를 많이 잡게 해주십사, 여기 오신 모든 분들이 액을 맞지 않고 복을 받게 해주십시오”


하며 굿은 계속 되었다. 흰색, 빨강색 종이꽃부터 화려한 장식들이 바닷바람에 흩날리고 무녀들과 함께 오랜 세월을 견디었을 잽이(악사)들의 연주는 배 전체를 강하게, 차분하게 몰아치며 무당들의 재담, 춤, 노래와 어우러지고 있었다. 노래와 춤이 배를 넘어 바다로, 바다로 뻗어나갔고, 드넓은 바다위에서 퍼지는 가락은 마치 스스로 움직이는 바람 같았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다고, 정말 떡 먹고 술 마시고 어우러져 한바탕 춤도 추었다(자료를 찾아보니 ‘대감거리’ 부분이었던 것 같다). 바닷바람을 맞아가며 모르는 사람들과 얘기도 하고 신에게 절도하고 노니는데 마치 딴 세상에 온 기분이었다. 마지막에는 배 난간에 모여 작은 모형배가 바다 위로 떠내려가는 것을 함께 보았다(강변 굿: 작은 모형배에 각종 재물과 허재비를 넣고 바다 위로 떠나보낸 모든 액을 몰아내는 의식). 마음이 차분해지며 마음 한 켠이 고요히 맑아졌다. 사람 눈을 꿰뚫어보는 듯한 김금화 만신의 눈빛에 매우 놀라고, 또 굿 이라는 예술을 생생히 보고 즐겼던 경험이었다.
그 이후로 굿이나, 굿에 관한 영화, 만화를 보며 그 재미를 누려왔다. ‘굿·무속’에 대한 접근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동지들에게도 소개하고자 한다.

‘굿·무속-영화’

굿을 단순히 공연예술의 한 장르를 넘어서 그 시대의 민중의 삶을 투영하고 어루만져주는 의식으로 보게 된 -탈패 활동을 통해, 탈춤과 굿의 공통점을 알게 된 것도 있었지만- 계기는 다큐멘터리 『영매-산자와 죽은 자의 화해』였다.

『영매-산자와 죽은 자의 화해』, 박기복, 2003, 푸른영상
『영매-산자와 죽은 자의 화해』, 박기복, 2003, 푸른영상

2003년, 독립영화 사상 처음으로 한 영화에 2만 명이 넘는 관객이 다녀갔다. 박기복 감독은 이 작품을 찍는데 3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진도 씻김굿의 채정례 할머니 자매의 이야기, 진도 강신무 박영자, 인천 황해도 굿 강신무 박미정 모녀. 특히 진도 씻김굿의 채정례 할머니는 진도의 오랜 당골집안 무당이다. 진도 바람을 맞으며 할머니가 살아온 한스러운 세월 얘기에는 눈물이 쏙 나오고 만다. 촬영 도중 같이 무당을 한 언니 채둔굴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손수 씻김굿을 하는데 이 굿에는 그네들의 삶이 녹아있어 영화 속의 무당과 같이 울면서 망자를 보냈다. 공동체를 유지하고 마을의 굳은 일을 풀어내는 이들이 미신이라 천대받고, 그들의 예술은 산자의 마음, 죽은 자의 넋을 위로하는 굿이 아닌, 오로지 보여주기만을 위한 공연형태로 규격화 되어가고 조각조각 나뉘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강신무 박미정은 사고가 난 아들의 넋을 달래고자 굿을 의뢰한 어머니를 위해 아들 혼을 받아준다. 아들이 들어와 한 소리가 영화 포스터에 있는 “내가 혼이라니 이게 웬 말이요” 이다. 신을 받는 만큼 고통이 더 클 수도 있는 강신무 박미정의 아픔과 더불어 아들의 혼과 어머니가 만나는 장면은 놀라움보다는 슬픔이 너무도 커서 관객들이 모두 울 수밖에 없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작은 극장 ‘하이퍼텍 나다’ 안은 관객들이 울다 못해 나중에는 엉엉 소리가 날 정도였다. 어느 영화 소개란의 글처럼 『영매-산자와 죽은 자의 화해』는 신기한 힘으로 관객을 영화에 몰입하게 한다. 이것은 오랫동안 다큐멘터리를 만든 감독의 솜씨이기도 하지만, 어떤 영적인 힘이 관객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지. 한참을 통곡하고 나온 관객들에게 무당은 지금까지와 다른 존재가 되어있었을 것이다.

‘굿·무속-만화’

『도깨비 신부1~6권』,말리, 길찾기
『도깨비 신부1~6권』,말리, 길찾기

대대로 마을장군을 모시는 집안에서 태어나 자신도 귀신과 소통하는 능력을 가진 소녀 ‘신선비’가 무속적 환경 속에서 고뇌하며 성장하는 내용을 담은 만화이다. 한국의 도깨비에 대한 호기심으로부터 만화구상을 하게 됐다는 작가의 말처럼 만화 전반에 나오는 도깨비들과 각종 소재들은 전통 문화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온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무속이라는 것을 단순히 신기하고 초현실적인 흥미 거리로 다루는 대중매체가 많은데, 이 작품은 무당으로서 인간과 신과의 매개자, 인간들의 상담자인 주인공과 주변인의 고뇌와 아픔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어 더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마나 1~3권』,이빈, 서울문화사
『마나 1~3권』,이빈, 서울문화사

현재 잡지 윙크에 연재 중이다. 『도깨비 신부』만큼의 진지함은 없지만 이 만화 역시 무속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빈 만화의 장점인 강력한 개그와 화려한 그림체, 속도 있는 전개가 있어 읽는 재미가 있다. 『도깨비 신부』의 작가 말리는 신인이지만, 이빈은 경력 20년이 되어가는 순정만화의 중견인 만큼, 그녀가 만화에서 ‘무속’이라는 소재를 재미로만 풀어내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굿·무속-책’

『한국인의 굿과 무당』, 황루시, 1988, 문음사.
이 책의 저자 황루시는 연극 공부를 하러 대학원에 진학했다가 1976년 진오귀 굿을 본 이후 점차 굿에 관심을 갖고 그 이후 10년 동안 전국의 굿판을 다니며 채록하고 연구하였다고 한다. 그 기록을 모은 것이 바로 이 책으로, 굿이란 무엇이고, 무당이란 무엇인지, 이것이 어떻게 나뉘는지 등의 기초적인 것을 알려준다. 전국의 주요 굿(황해도 내림굿, 임실군 필봉 당산제, 위도 띠뱃놀이 등)의 연희자부터 순서, 의미 등이 자세하게 기록되어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굿이라는 의례를 통하여 드러나는 한국인의 마음을 기록하고 싶었다고 한다. 굿을 통해 어떻게 문제를 파악하고 풀어나가는가 하는 무속적 심성 말이다.

< … … 현재 마을 공동체를 중심에 두었던 세습무가 거의 사라진 것에 비하여 신의 말을 전하는 강신무가 성업하는 현상은, 인간과 신 사이에 괴로움을 겪는 무당이 되지 않으면 안될 만큼, 그 한마디에 기대고 의지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을 만큼 우리네 삶이 각박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 … 또 가능한 많은 이들이 어울려 놀았던 “열려진 의례인 굿”이 사라지고 점차 놀이성이 전혀 없고 현실적인 목적을 위해 한 두 시간만 진행하는 푸닥거리가 늘어가고 있다. 오랜 세월 공동체적 삶의 기반이 되어온 무속신앙의 변질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또한 무가, 춤, 묘기, 노래, 예언, 연극 등 다양하게 짜여진 굿의 내용이 갈수로 빈약해져 예술성이 점점 탈락해지는 상황에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 이것을 막고자 무형문화제로 지정하지만, 이야기 틀은 유지하되 내용은 현실의 민중의 삶에 맞게 재구성되야 함에도 불구하고 내용마저 그대로 문화제가 됨으로써, 그 인간문화제의 굿은 그 시대를 반영하지 못하는 죽은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 >, 본문 중에서



앞으로는 굿을 못하는 진짜 무당과 굿을 하는 가짜 무당의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는 저자의 마지막 언지가 마음에 남는다.

<마무리> 같이 굿 보러 가실래요?

무속이 미신으로 취급받고 조직적으로 탄압받은 것은 일제시대부터였다. 무속이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절대적 힘이 있다고 하여 주로 마을굿을 탄압했고, 해방 후에는 6.25 전쟁,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을 거치면서 마을마다 으레 있던 당이 부서지고 당굿이 없어져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근, 현대를 겪으며 내용과 본연의 역할이 쇠퇴해진 굿은 아이러니하게 규모는 커졌지만 그 규모의 대부분은 선무당이 차지하고 있다. 현재 굿의 내용이 시대상을 담지 못하고 있는데 반해 이와 같은 굿의 역사는 현대 민중의 삶을 반영하는 것 같다.
임실 필봉당산제는 농악이 중심을 이루었고(임실 필봉굿), 강릉 단오굿도 ‘강릉관노가면극’이라 하여 탈춤이 행해졌다. 우리가 자주 보는 ‘살풀이 춤’은 연초에 액을 푸는 굿에서 무당이 즉흥적으로 춘 춤이다. 갖가지 연희들이 모여 굿을 이루고 있는데, 정작 굿은 사라지고 있다.
어우러져 살기보다는 경쟁하며 살라하고,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어 쌀 한 톨 내놓기 힘든 민중들에게 문화는 점점 먼 이야기가 되고 있다. 민중들이 주체가 되어 하는 문화·놀이가 점점 사라지고 볼거리로만 남게 되는 현상이 굿의 소멸로 나타나는 것 같다. 내가 처음 풍물을 배울 때, 풍물을 치는 것은 함께 어우러져 노는 것이지 사물놀이처럼 보는 것이 아니라고 들었다. 자본주의에 맞서 크게 한바탕 웃어 제치고 널리 날려버릴 21세기 민중들의 굿은 무엇이 될 수 있을지, 자신들의 공간에서 한바탕 굿을 해보고 싶지는 않은지, 동지들과 같이 굿을 보러가면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주제어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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