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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8.1-2.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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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의 교육정책과 교육운동의 과제

배태섭 | 범국민교육연대 사무처장
신분제 사회, 다시 부활하나

근대 시민혁명 이후 인류사회는 기존의 세습적인 신분에 기초한 구래의 특권과 위계질서를 타파하고 보편적인 인권을 법적 권리로 확립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사회경제적 성취는 개인의 귀속적 배경(성, 인종, 혈통, 계급 등)에 상관없이 개인의 능력과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는 능력주의 이념이 보편화된다. 국가는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모든 국민은 누구나 의무적으로 일정 기간 동안 교육을 받도록 하는 공교육제도를 확립한다. 그러나 100년 이라는 짧지 않은 공교육제도의 역사 속에서 애초 근대 사회가 약속했던 능력주의는 실현되지 않았다. 교육기회, 과정, 결과에 있어서 계층, 인종, 성(性) 별에 따른 차별과 불평등은 근절되지 않았고, 교육적 성취를 결정짓는 것은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개인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되어버렸다.
현재 한국의 지배 권력은 이제 형식적인 기회의 평등조차 무너뜨림으로써 자신들의 이념적 토대였던 자유주의(능력주의) 이데올로기를 스스로 허물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그나마 형식적인 평등정책을 유지해오던 국가의 기능마저 포기하고 시장원리로 재편하여 오로지 개인의 (경제적)능력에 따라 교육기회를 부여할 요량이다. 가진 자들은 그들의 능력을 발휘하여 교육기회를 독점하고, 하위 계층은 한 가닥 희망이라도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할 판이다. 전근대적인 신분제 사회가 다시 도래할지도 모를 형국이다.

교육권의 재개념화, 소비자 주권

시장논리에 따르면 이제 교육권은 국민의 보편적 권리가 아니라 소비자(학생, 학부모)의 권리로 재개념화 된다. 공급자는 물론 학교와 교원이며, 이들이 교육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도록 함으로써 소비자는 질 좋은 교육상품을 획득할 수 있다는 논리다. 즉 소비자들의 합리적인 선택 행위가 공급자들 간의 경쟁을 낳고, 이 경쟁이 상품(교육)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단순한 논리다. 그런데 교육 분야에서 이러한 시장논리가 그럴 듯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바로 '관료주의의 폐해'를 개혁의 이유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즉 국가의 불필요한 간섭과 통제(삼불 정책, 고교평준화 등)가 비효율, 경직, 무경쟁을 낳고 이것이 교육의 총체적 실패로 귀결되었다는 오도된 이미지 전략이 먹혀들어간 결과다. 이명박이 교육개혁의 우선 과제로 '교육부 해체'를 내세우지 않았던가!
고교다양화 정책(기숙형 공립고, 자율형 사립고 신설)은 이러한 시장원리의 결정체다. 현행 고교평준화제도는 학력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선택권을 앗아가기 때문에 다양한 고등학교들을 만들어 소비자의 선택을 받게 하면 학교와 교원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즉 성적 높이기 경쟁을 하게 되고 이는 자연스레 학력상승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비자의 선택을 위해선 '명문대 진학률'로 대표되는 학교에 대한 세부정보가 필수적이며 이 정보는 '벼룩시장'의 광고처럼 소비자들에게 공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전국의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전국단위의 학업성취도 평가가 시행되고 그 결과가 소비자들에게 공개되며, 소비자들은 이를 근거로 학교를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공급자의 질 관리를 위해 행정기관은 소비자의 선택을 기준으로 학교의 재정을 결정한다. 즉 학생 수에 따라 학교재정을 지원하는데 학생들이 많이 몰리는 학교는 그만큼 재정을 많이 지원받는 반면, 학생들이 기피하는 '똥통 학교'는 재정지원마저 끊겨 종국엔 시장에서 퇴출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숱한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우선 공급자들 간의 과열경쟁의 결과 소비자의 선별과 배제과정은 불가피하다. 이제 학교가 치열한 시장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능력 있는 학생들을 많이 끌어들여 이름을 드높이는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학교는 학업성적을 높여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게 된다. 일찍이 영국과 미국에서도 비슷한 부작용이 나타났던 바, 학교운영에 있어서 '비용이 많이 드는 학생'(장애학생, 이주민 자녀, 저소득층 자녀)이나 '성적이 낮은 학생'(출신성분이 낮은 계층)들은 쫓겨나거나 입학조차 거부되기도 했다. 이렇게 쫓겨난 학생들은 학생 수가 모자라 폐교위기에 처한 학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이게 되어 또다시 악순환이 발생한다.
그리고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선택권이 부여된다 해도 모든 소비자가 동등하게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계층에 따라 거주지가 구분되어 있고 마찬가지로 학교의 평판도 통상 거주지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에 평판 좋은 '명문 학교'에 자녀를 보내려면 먼 거리를 통학시키거나 아예 집값이 비싼 학교 주변으로 이사를 해야만 한다. 오죽하면 강남 부동산 값을 잡기 위해 고교평준화를 허물어야 한다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이 나오겠는가. 능력 있는 소비자들은 가용한 자원을 모두 활용하여 통학비용이나 이주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계층은 그저 집 부근에 있는 비슷한 계층의 아이들이 다니는 '똥통 학교'에 자녀를 보낼 수밖에 없다.
한편 직접적으로 성적에 대한 책임은 교사에게 있기 때문에 끊임없는 압력과 닦달에 시달리며, 학생들의 성적에 따라 자신의 신분이 좌우되는 일상적인 평가체제에 편입된다. 학생은 또 어떠한가. 성적 향상에 대한 압력은 지금보다 훨씬 강력할 것이며, 학교나 행정당국이 정한 학력기준에 미달되는 학생들은 낙오자로 낙인찍히는 수모를 겪어야 한다. 학업성취도 평가가 교육목표와 과정을 점검하고 판단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교육의 목표가 되어버리는 전도현상이 발생한다. 그리고 실패한 학교로 낙인찍히게 되면 그나마 경제력이 있거나 학습동기가 있는 학생들이 다른 학교로 빠져나가면서 사태는 더욱 악화된다. 정부의 지원마저 끊긴 채 사람들의 멸시 속에서 떠나지도 못한 채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아이들은 교육의 기회를 완전히 박탈당하게 된다.
이렇게 선택권이 확장되면 구성원 모두에게 보편적인 교육을 제공한다는 공교육의 이상(理想)은 퇴색되고, 능력 있는 소비자에게만 혜택이 주어질 뿐이다. 기본권으로서의 교육권은 소비자 선택권으로 재개념화 되는 동시에 교육체제는 강력한 평가시스템이 지배하게 되고 계급 간 차별적인 교육이 제공된다. 입시경쟁 심화, 학교서열화, 사교육비 증가는 이에 따른 자연스런 결과다.

권한 이양과 강력한 평가국가의 등장

한편 정부의 권한 축소와 강력한 시장주의는 서로 모순될 수밖에 없는데, 방임적 시장주의는 필연적으로 부작용과 갈등을 낳을 수밖에 없고, 이는 거꾸로 국가의 개입과 조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교육부를 '해체'하고 초중등교육 업무를 지방교육청과 단위학교에 이관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중앙정부의 기능을 없앤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가기능, 평가에 근거한 재정분배기능 등 강력한 제어권한을 갖고 시장화 정책을 진두지휘하겠다는 뜻이다. 즉 국가는 직접적으로 개별 학교정책에 간여하지 않고서도 막후조종을 하는, 차도살인(借刀殺人)의 계책을 휘두른다. 예컨대 기피학교에 대한 재정지원을 끊음으로써 시장에서 퇴출시키고 특정 계층의 교육기회를 완전히 박탈하는 강력한 권한을 휘두를 수 있다.
권한 이양은 또 다른 거대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교원노조의 무력화이다. 영국은 일찍이 중앙정부의 말을 안 듣는 지역교육청와 교원노조를 짓밟기 위해 시장주의자들로 구성된 학교운영위원회로 하여금 교사 임면, 예산관리 등 막강한 권한을 주어 노조를 분열시키고 단체협약을 무력화시켰다. 이명박 정부도 이와 비슷하게 이제는 교사들이 국가가 아니라 지역교육청이나 단위학교 경영자와 개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만들어 현재와 같은 전국단위의 교원노조의 틀을 무력화시키려 한다. 즉 교원의 자격, 양성, 임용 등 인사와 임금이나 노동조건과 같은 민감한 사안들에 대한 결정권한을 시도교육청에 넘김으로써 노조의 단결력을 약화시켜 이득을 얻으려는 속셈이다.
학교다양화 정책과 결합된 권한 이양은 개별 지역 차원의 심각한 문제를 낳을 것이다. 학교신설 지정권한을 지역교육청에 이관함으로써 특목고다 기숙형 학교다 지자체 간에 서로 경쟁하듯 남설 하게 되어 기존의 공립학교는 지원이 감소되거나 소외되기 마련이다. 경제력이 있는 계층은 '특별한' 학교로 빠져나가고 기존의 공립학교는 그렇지 못한 계층의 아이들이 남게 된다. 경제력의 차이는 곧 학력의 차이로 이어져 기존 공립학교는 '실패한' 학교가 되어 폐교 위협에 직면한다. 여기에 더해 새 정부의 감세정책은 필연적으로 공공지출을 감소시켜 일차적으로 교육이나 복지예산이 감축대상이 된다. 교육예산의 삭감, 선택권의 확대는 경제력에 따라 계층별로 학교를 차별화 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교육운동의 과제

사실 이명박 정부는 속도와 추진력에서 차이를 보일 뿐, 교육재편의 성격과 방향은 과거 정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10여 년간 꾸준하게 추진해온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의 결과 시장화·사유화 정책은 이미 깊숙이 자리를 잡았으며, 이제 남은 것은 그 속도와 변화의 폭을 조정하는 것뿐이다. 노무현 정부의 이른바 '평준화 보완책' 덕분에 이명박 정부의 자립형사립고, 특성화고의 증설계획은 훨씬 수월하게 추진될 수 있을 것이며, 대학입시 자율화 정책은 몇 가지 형식적인 제도를 보완하는 수준에서도 당장 실현 가능한 상태임은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기존의 교육정책 실패에 따른 대중들의 원한을 더욱 강력한 시장주의 정책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새 정부의 교육개혁의 모순은 여기서 발생한다. 이미 대중들은 '능력에 따른 기회의 평등'이란 교과서적인 문구를 더 이상 믿고 따르지 않는다.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잘난 부모덕에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야만 성공한 인생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새로 등장한 정부가 시장논리에 따라 교육개혁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할수록 이러한 문제점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기 때문에 지배 이데올로기의 균열을 초래할 수 있다. 지배 이데올로기의 위기 속에서 대중들은 더욱 격한 경쟁에 뛰어드는 개인적 해법을 찾게 될지 아니면 분노의 화살을 정부와 시장에 돌려 집단적 저항에 나서게 될지, 교육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진영은 이 속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우리는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
교육운동진영은 학교시장화에 대항하는 전면적인 저항전선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새 정부의 교육정책은 소비자주권, 자율성과 다양성을 내세워 이전까지 야금야금 추진되어온 학교다양화, 입시자율화, 평가전면화를 종합하여 총체적인 교육시장화 체제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학교가 다양화된다고 해서 자유로운 선택권이 실현될 수 없고, 교육부 업무와 권한이 줄어든다고 자율성이 확대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제는 사안별 분리대응이나 애매모호한 입장으로는 수세에 몰리거나 고립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입시경쟁 심화는 반대한다면서 소비자의 선택권 확대나 교원평가는 지지한다거나, 교육부 해체에 반대하면서 주요 권한을 다시금 중앙정부에 쥐어주자는 따위의 주장이 그것이다. 새 정부의 교육정책은 학교, 교원, 학생 간에 극심한 혼란과 경쟁을 유발할 것이 분명하고, 소수의 가진 자들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그 피해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총체적이고 전면적인 저항이 필수적이다.
또한 지역과 현장에서부터의 저항이 무엇보다 중요해질 전망인데, 학교설립 지정 취소, 교원인사, 학력평가 등 상당한 권한이 지역의 시도교육청으로 직접 이관됨에 따라 직접적인 대립과 갈등은 지역 현장에서부터 벌어지게 된다. 특히 총선과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지역마다 명문고 부활을 비롯한 선심성 공약이 남발되며 지역여론을 호도할 것이다. 따라서 일차적이고 직접적인 대응은 지역 현장이 담당해야 하며, 이를 기점으로 전국적으로 전선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중앙정부와의 단체협상은 이제 사실상 의미가 없어졌으며, 현장에서부터 싸우지 않는 한 대세를 거스르기 힘들 것이다.
학교시장화 저지를 총 기치로 하는 전면적 투쟁은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강화하고 새 정부의 고공행진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유력한 고리이기도 하다. 이미 전사회적으로 상당부분 신자유주의 재편이 진행되어 왔으나 이명박 정부는 그나마 남아 있는 공공부문마저 완전한 시장화·민영화를 계획 중이다. 교육운동을 포함한 공공부문이 반시장화·민영화 연대전선을 형성할 때, 광범한 반신자유주의 대중투쟁의 전망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 대운하와 더불어 교육 분야는 새 정부 출범 전부터 첨예한 논란이 진행 중이다. 당선자의 공약이 현실화되기도 전에 심각한 논란과 갈등의 소지가 된다는 사실, 부작용과 폐해가 뻔히 예측된다는 점은 정부의 국정운용에서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교육운동진영이 힘 있게 대응한다면 상당히 유리한 국면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주제어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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