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노동자운동 전망과 과제
지난 1월 24일 열린 민주노총 43차 정기 대의원대회가 또 다시 유회되었다. 첫 번째 안건인 재정혁신안만을 처리한 채 평가와 계획은 논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유회되었다. 같은 시각 한강대교에서는 GM대우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의 고공시위가 있었고, 이랜드, 뉴코아,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여의도에서, 홈에버 매장 앞에서 농성 투쟁을 하고 있었다. 매년 유회되는 대의원대회이니만큼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노동자운동의 현 상황을 보여주는 24일의 모습을 보며 노동자운동 활동가들의 마음이 답답해져 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2007년 한계와 성과
최근 몇 년간 민주노총의 사업 계획은 비정규직 조직화, 산별건설·강화,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화, 대국회 법제도 개선이라는 전략적 틀을 따라 이루어졌다. 2007년의 경우도 이러한 틀에 따라 비정규악법 개정 투쟁, 5~7월 산별노조 중심의 임단투, 대선 투쟁, 연금개악저지 투쟁 등을 계획하였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전략적 과제들의 달성에 대부분 실패하였다.
이랜드·뉴코아 투쟁이 해를 넘기며 점차 고립되어 가고 있는 상황은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투쟁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대의원대회에서 결의한 투쟁기금 명분의 이랜드·뉴코아 조합원 생활비는 모금액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고 양 노동조합의 결연한 투쟁 의지에도 불구하고 8월 이후 민주노총 차원의 연대투쟁도 사실상 해체되었다. 민주노총이 집중 투쟁을 통한 승리를 장담한 만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민주노총에 대한 불신과 좌절은 더욱이나 클 듯하다.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조직화 전략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큰 의식 변화 없이는 앞으로도 계속 많은 한계를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GM대우 비정규직지회의 투쟁에 대한 정규직 노동조합의 무관심, 하이닉스 사내하청노동자 투쟁을 합의금으로 해결한 금속노조의 실리적 태도 등 정규직 노동조합의 비정규직에 대한 태도는 여전히 미온적이거나 실리적이다. 그리고 지난 8월 기아자동차 화성 공장과 같은 정규직 조합원에 의한 비정규직에 대한 테러에서 볼 수 있듯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정규직 노동자들의 태도는 심지어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더욱 큰 문제는 산별노조를 통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초기업적 대응 전략 역시 많은 문제에 부딪치고 있다는 점이다. 2007년 15만 금속산별로 첫 발을 내민 금속노조는 비정규직 문제 등을 의제로 한 산별교섭 투쟁에 실패하였다. 대공장 노동조합들이 기업지부를 인정받는 가운데 조합원의 정서와 상태를 명분으로 산별투쟁 전선에서 이탈한 결과이다.
특히 대공장 노동조합의 결합이 강화되는 가운데 산별노조가 급격하게 우경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산별 전선에서 이탈하여 무쟁의 교섭 타결을 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소위 좌파 지도부가 올해도 재선에 성공한 상황을 곱씹어 봐야 한다. 이미 대공장 노동조합에서 기존의 좌파/우파의 구별이 무의미해져 가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의식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금속노조의 미래는 정규직 중심의 비즈니스 노동조합을 벗어날 수 없다.
2007년 대선 결과는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운동의 한계를 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80만 조합원이 10표를 조직해 800만 표를 만든다는 8010 슬로건을 내걸고 진행된 민주노총의 대선 투쟁은 평가 자체가 민망한 상황이다. 민주노총 내부 표본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지역에서 권영길에 투표하겠다는 조합원이 10~20% 정도였다고 한다. 이처럼 민주노동당 후보에 대한 조합원들의 투표조차도 이끌어 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 민주노총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대공장의 제조업 노동자들, 공기업의 노동자들, 교직원 노동자들, 공무원 노동자들, 사무직 노동자들의 상당수가 연봉 오천만원 이상에, 집과 차를 소유하고, 큰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상대적으로 상층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고 있는 것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문제는 그 동안의 정치세력화 운동이 노동자들의 정치적 의식을 고양시키고 그들을 계급정치의 주체로 세워 내는 것이 아니라 제도정치 내에서 조합적 요구를 반영하는데 중점을 두어 왔다는 점이다. 이석행 위원장은 1월 한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통합신당, 창조한국당 등이 연대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이는 민주노동당이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의 실리를 채워 줄 수 없다면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이 대국회압력 운동으로 더욱 우향우할 수도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 속에서도 몇 가지 성과는 있었다. 먼저 이랜드·뉴코아 투쟁의 역동성을 만들어 내었던 지역연대운동이 그것이다.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 민주노총 지역본부, 지역 사회단체 등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지역대책위들은 향후 노동자운동의 연대 투쟁이 나아가야 할 바를 보여준다. 상급단체의 지침에 의해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선전 계획, 매장 봉쇄 계획을 스스로 준비하고 집행해나가는 역동성은 노동자 운동이 앞으로 발전시켜 나가야할 중요한 성과물이라 할 것이다. 또한 투쟁의 결과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사회적 문제의식이 높아진 점 역시 성과이다. 이랜드·뉴코아 투쟁에 대한 지지 여론은 70%에 육박했다는 것은 이를 여실히 드러내는 일면이다.
2008년은 노동자 운동의 갈림길
법치주의를 명분으로 노동자운동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취하겠다는 이명박이 앞에 있고, 투쟁의 패배 속에서 오른쪽으로 더욱 빠르게 달려가는 민주노총이 뒤에 있다. 이명박 당선과 함께 노조 간부 33명을 해고한 이랜드 박성수 회장처럼 자본가들은 의기양양해져 있다. 총선에서도 한나라당의 승리가 예상되고 있어 이들의 기세는 당분간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명박의 경제 살리기 공언은 조만간 그만큼의 분노와 좌절로 되돌아 올 것이 확실하다. 금융세계화의 특징 중 하나는 모든 산업 정책이 결국 금융적 버블로 마무리된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부가 내수 증진을 위해 개인금융에 대해 완화조치를 취한 결과는 개인부채 증가와 이에 따른 개인파산 증가였고, IT벤처 육성 계획의 결과는 2000년, 2001년의 주가 붕괴와 벤처기업의 줄도산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안정화 정책을 위한 신도시 육성 계획 등은 집값 폭등으로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가 건설 경기 부양책으로 대규모 토건사업, 신도시 사업을 펼친다면 그 결과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특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전 세계적 금융 교란과 중국 경제의 성장률 하락은 이명박 정부의 '경제 살리기' 공언의 파국을 좀 더 앞당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점에서 올해와 내년 투쟁을 통해 노동자운동이 이명박에 대한 대안으로 설 수 있는가가 향후 노동자운동의 향배를 판가름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노동자운동의 현실은 매우 비관적인 것이 사실이다. 경제성장의 미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많은 노동자들이 이명박 정부 정책과 함께 울고 웃을 것이고, 민주노총이 현재의 대공장 정규직 조합원 중심이라는 자신의 조건을 뛰어넘어 전망을 밝힐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올해 하반기부터는 300인 미만, 100인 이상 중소사업장에서 비정규직보호법이 적용된다. 작년의 경우 대기업 사업장이 대상이었다는 점, 보호법 실행 첫 해라는 점에서 그나마 사회적 관심을 받았지만 올해의 경우 사회적 이슈조차 되지 않을 가능성도 다분하다. 하지만 중소 제조업의 경우 2001년 이후 고용이 감소하고 있는 추세인 점, 2007년 법 시행 이후 이미 비정규직 규모가 늘고 있다는 점, 비정규직 규모가 대기업에 비해 매우 크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비정규직보호법으로 인한 파괴적 효과는 더욱 클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민주노총이 아직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 엄호하고 조직화할 태세가 안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랜드·뉴코아 투쟁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난 문제이다. 게다가 중소사업장 조직화의 핵심을 담당해야 할 금속노조가 올해 비정규직, 임금격차 등의 문제를 가지고 산별교섭/협약 그리고 투쟁을 만들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2007년의 경험을 통해 볼 때 상당히 무리가 있다. 그렇다고 총연맹 차원의 집중이 가능하지도 않다. 총연맹은 올 해 역시 비정규직 기금 모금, 신고센터 운영 등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실에서 투쟁의 돌파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랜드·뉴코아 투쟁은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작년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이 된 이 투쟁이 패배한다면, 비정규직 운동은 또 다시 몇 년은 후퇴하고 말 것이다. 싸우면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공감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랜드·뉴코아 투쟁의 경우 자본 역시 벼랑 끝에 몰려 중국법인을 통한 수혈만 기대하고 있는 만큼 조금만 더 집중 투쟁을 벌이면 승리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총연맹 금속노조 차원의 해법만 기대할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을 넘나드는 조직화에 나서야 한다.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 민주노총 지역본부 혹은 지구협의회, 사회단체 간의 연대를 통해 비정규직보호법 철폐투쟁과 노동조합조직에 대한 지역적 흐름을 만들어내야 한다. 작년 민주노동당 서울 서부 지역위원회들이 힘을 합쳐 반년이 넘는 기간 동안 꾸준히 선전 선동하여 홈에버 월드컵점에 노동조합을 만들어내고, 이후 투쟁에서도 모범적 지역연대운동을 만들어 내었던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향후 주체가 될 사업장들이 중소사업장이라는 특성 또한 지역적 운동을 요구한다. 역동적인 활동과 그 결과물은 지역과 노조가 호홉할 때에서야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공공부문 공동투쟁
이명박 정부는 공공부문 민영화, 교육 구조조정, 행정부 통폐합과 구조조정을 정권 초기의 개혁 상징으로 만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미 지난 10년 간의 정책 개혁과 구조조정으로 인해 정부 부문을 제외하고는 가시적 성과를 보일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공기업 민영화는 발전 부문 매각, 전력, 가스 등 회사 분할과 경쟁 도입, 철도 도로 사업 분할 및 운영권 매각 등으로 인수위와 기획예산처에서 이야기되고 있다. 교육 구조조정은 좀 더 명확한데, '사교육절반5대프로젝트'라는 이름하에 자립형사립고 300개, 영어교육, 대입자율화, 교원평가제, 초중고학생평가제 등이 논의되고 있다. 행정부 통폐합은 중앙부처 통폐합과 농촌진흥청, 국립수산과학원 등의 국가연구기관에 대한 출연연구기관 전환이 쟁점이다.
반면 이에 맞서 싸워야 할 민주노총의 상황은 녹록치 않아 보인다. 공공운수연맹의 경우 공공노조와 운수노조, 미전환노조를 통합하는 산별건설이 지체되고 있는 가운데, 민영화 대상 기업의 노조인, 철도, 발전노조 등이 지난 투쟁 패배로 위축되어 있다. 필수공익사업장의 파업을 무력화하도록 개정된 노동관계법도 큰 장애물이다. 전교조의 경우 현재 2006년 연가투쟁 참여자에 대한 강제전보 조치, 노조탄압으로 인해 매우 어려운 조건에 처해있다. 또한 뉴라이트 계열의 노동조합이 건설되어 우익 교육운동 단체들과 함께 전교조에 대한 여론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 공무원노동조합의 경우 역시 민공노와의 재통합 문제, 연이은 투쟁과 패배로 인한 조직 내 피로감 등으로 투쟁조직화가 쉽지 않은 조건이다.
핵심 관건은 투쟁 주체들이 공기업 민영화, 정부기관 민영화, 교육시장화 등에 대해 공동 투쟁 전선을 구축할 수 있는가 여부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명박 정부의 초반 구조조정 작업에 대해 사회적 전선을 구축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현재 각 노조, 연맹의 상황에선 각개 격파로 가게 될 경우 제대로 파업 한 번 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매번 공공부문의 공동투쟁을 외쳐왔지만 현실화된 적은 거의 없다는 점 또한 잊지 말아야 할 사항이다. 공공연맹 내 사업장 공동투쟁을 넘어서는 공공· 공무원· 전교조 공동 투쟁은 더군다나 없었다. 게다가 각 노조들이 높은 연대의식을 가진 조합원들로만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따라서 우선 공공운수연맹, 공무원노조, 전교조 등의 변혁적 노동자운동을 지향하는 활동가들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범사회적 운동을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 부문의 투쟁 모두 사회공공성을 주장하지만 현재 정작 투쟁하는 내용은 모두 자기 이해부문에만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운동 활동가들은 물사유화, 가스철도 등의 사유화, 농업자본만을 위한 연구, 공교육 붕괴와 시장화 등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하며, 이해 당사자를 넘어선 범시민적 운동 조직을 위한 방도를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당연히 이를 위해서 대안적 사회서비스와 이에 대한 국가, 사회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심화시켜야 한다. 민영화 저지, 교육시장화 저지 등을 내걸고 관성적인 투쟁을 해보았자 부패비리, 효율성, 집단이기주의 등의 이데올로기를 동원한 언론과 정부의 악선동에 무너질 뿐이다.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이루어질 내년까지 지속적인 교류와 범사회적 운동의 조직이 필요하다.
노동조합과 지역연대운동
노동자 운동 활동가들은 노동조합 내부의 우경화 경향을 방어하는 한편 노동조합 내외를 가로지르는 역동적인 운동의 구심을 형성해 나가야 한다. 여기서 2007년 이랜드·뉴코아 투쟁이 지역연대 속에서 역동적으로 투쟁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노동조합의 상황이 단시간 내에 변화되기 어렵다면 지역을 중심으로 한 역동적인 운동의 흐름을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다시 노동조합 내부를 변화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2008년 예상되는 주요한 투쟁 과제들, 공공부문 사유화 저지 투쟁, 교육시장화 저지 투쟁, 비정규직 투쟁을 위한 지역 연대운동 네트워크, 변혁적 노동자 운동 활동가들의 지역 네트워크를 노동조합, 정파를 초월하여 꾸려야 한다.(서울의 소통/연대/변혁 노동운동포럼은 이러한 좋은 예 중 하나일 것이다). 전략적 논의들이 정체되어 있는 만큼 구체적 투쟁 계기 속에서 여러 혁신의 방향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혁신 논의가 관념적인 혁명적 수사가 아니기 위해서도 대중 투쟁 속에서 검증되고 인정받는 것이 필요하다.
이 과정은 지난 10년 간의 연대운동에 대한 비판적 평가 과정과 동반되어야 한다. 통칭 범개혁진영이라 불리는 NGO들과 소수 명망가들에 의한 연대운동에 대한 실천적 단절이 필요하다. 이러한 운동 경향과 명확하게 단절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이번 대선에서 민중운동 진영이 개혁세력과 동반 몰락하게 되었음을 분명히 직시해야 한다. 한국진보연대, NGO 등 상층 중심의 범대위가 운동 진영의 주도권을 잡기 전에 변혁적 노동자 운동 활동가들이 먼저 인권활동가, 환경활동가, 정치단체 활동가들과 공공부문 사유화, 교육시장화, 대운하, 비정규직에 대한 논의틀을 꾸리고 지역적 네트워크를 만들어내야 한다.
2007년 한계와 성과
최근 몇 년간 민주노총의 사업 계획은 비정규직 조직화, 산별건설·강화,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화, 대국회 법제도 개선이라는 전략적 틀을 따라 이루어졌다. 2007년의 경우도 이러한 틀에 따라 비정규악법 개정 투쟁, 5~7월 산별노조 중심의 임단투, 대선 투쟁, 연금개악저지 투쟁 등을 계획하였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전략적 과제들의 달성에 대부분 실패하였다.
이랜드·뉴코아 투쟁이 해를 넘기며 점차 고립되어 가고 있는 상황은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투쟁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대의원대회에서 결의한 투쟁기금 명분의 이랜드·뉴코아 조합원 생활비는 모금액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고 양 노동조합의 결연한 투쟁 의지에도 불구하고 8월 이후 민주노총 차원의 연대투쟁도 사실상 해체되었다. 민주노총이 집중 투쟁을 통한 승리를 장담한 만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민주노총에 대한 불신과 좌절은 더욱이나 클 듯하다.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조직화 전략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큰 의식 변화 없이는 앞으로도 계속 많은 한계를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GM대우 비정규직지회의 투쟁에 대한 정규직 노동조합의 무관심, 하이닉스 사내하청노동자 투쟁을 합의금으로 해결한 금속노조의 실리적 태도 등 정규직 노동조합의 비정규직에 대한 태도는 여전히 미온적이거나 실리적이다. 그리고 지난 8월 기아자동차 화성 공장과 같은 정규직 조합원에 의한 비정규직에 대한 테러에서 볼 수 있듯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정규직 노동자들의 태도는 심지어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더욱 큰 문제는 산별노조를 통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초기업적 대응 전략 역시 많은 문제에 부딪치고 있다는 점이다. 2007년 15만 금속산별로 첫 발을 내민 금속노조는 비정규직 문제 등을 의제로 한 산별교섭 투쟁에 실패하였다. 대공장 노동조합들이 기업지부를 인정받는 가운데 조합원의 정서와 상태를 명분으로 산별투쟁 전선에서 이탈한 결과이다.
특히 대공장 노동조합의 결합이 강화되는 가운데 산별노조가 급격하게 우경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산별 전선에서 이탈하여 무쟁의 교섭 타결을 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소위 좌파 지도부가 올해도 재선에 성공한 상황을 곱씹어 봐야 한다. 이미 대공장 노동조합에서 기존의 좌파/우파의 구별이 무의미해져 가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의식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금속노조의 미래는 정규직 중심의 비즈니스 노동조합을 벗어날 수 없다.
2007년 대선 결과는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운동의 한계를 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80만 조합원이 10표를 조직해 800만 표를 만든다는 8010 슬로건을 내걸고 진행된 민주노총의 대선 투쟁은 평가 자체가 민망한 상황이다. 민주노총 내부 표본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지역에서 권영길에 투표하겠다는 조합원이 10~20% 정도였다고 한다. 이처럼 민주노동당 후보에 대한 조합원들의 투표조차도 이끌어 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 민주노총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대공장의 제조업 노동자들, 공기업의 노동자들, 교직원 노동자들, 공무원 노동자들, 사무직 노동자들의 상당수가 연봉 오천만원 이상에, 집과 차를 소유하고, 큰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상대적으로 상층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고 있는 것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문제는 그 동안의 정치세력화 운동이 노동자들의 정치적 의식을 고양시키고 그들을 계급정치의 주체로 세워 내는 것이 아니라 제도정치 내에서 조합적 요구를 반영하는데 중점을 두어 왔다는 점이다. 이석행 위원장은 1월 한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통합신당, 창조한국당 등이 연대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이는 민주노동당이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의 실리를 채워 줄 수 없다면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이 대국회압력 운동으로 더욱 우향우할 수도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 속에서도 몇 가지 성과는 있었다. 먼저 이랜드·뉴코아 투쟁의 역동성을 만들어 내었던 지역연대운동이 그것이다.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 민주노총 지역본부, 지역 사회단체 등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지역대책위들은 향후 노동자운동의 연대 투쟁이 나아가야 할 바를 보여준다. 상급단체의 지침에 의해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선전 계획, 매장 봉쇄 계획을 스스로 준비하고 집행해나가는 역동성은 노동자 운동이 앞으로 발전시켜 나가야할 중요한 성과물이라 할 것이다. 또한 투쟁의 결과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사회적 문제의식이 높아진 점 역시 성과이다. 이랜드·뉴코아 투쟁에 대한 지지 여론은 70%에 육박했다는 것은 이를 여실히 드러내는 일면이다.
2008년은 노동자 운동의 갈림길
법치주의를 명분으로 노동자운동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취하겠다는 이명박이 앞에 있고, 투쟁의 패배 속에서 오른쪽으로 더욱 빠르게 달려가는 민주노총이 뒤에 있다. 이명박 당선과 함께 노조 간부 33명을 해고한 이랜드 박성수 회장처럼 자본가들은 의기양양해져 있다. 총선에서도 한나라당의 승리가 예상되고 있어 이들의 기세는 당분간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명박의 경제 살리기 공언은 조만간 그만큼의 분노와 좌절로 되돌아 올 것이 확실하다. 금융세계화의 특징 중 하나는 모든 산업 정책이 결국 금융적 버블로 마무리된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부가 내수 증진을 위해 개인금융에 대해 완화조치를 취한 결과는 개인부채 증가와 이에 따른 개인파산 증가였고, IT벤처 육성 계획의 결과는 2000년, 2001년의 주가 붕괴와 벤처기업의 줄도산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안정화 정책을 위한 신도시 육성 계획 등은 집값 폭등으로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가 건설 경기 부양책으로 대규모 토건사업, 신도시 사업을 펼친다면 그 결과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특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전 세계적 금융 교란과 중국 경제의 성장률 하락은 이명박 정부의 '경제 살리기' 공언의 파국을 좀 더 앞당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점에서 올해와 내년 투쟁을 통해 노동자운동이 이명박에 대한 대안으로 설 수 있는가가 향후 노동자운동의 향배를 판가름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노동자운동의 현실은 매우 비관적인 것이 사실이다. 경제성장의 미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많은 노동자들이 이명박 정부 정책과 함께 울고 웃을 것이고, 민주노총이 현재의 대공장 정규직 조합원 중심이라는 자신의 조건을 뛰어넘어 전망을 밝힐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올해 하반기부터는 300인 미만, 100인 이상 중소사업장에서 비정규직보호법이 적용된다. 작년의 경우 대기업 사업장이 대상이었다는 점, 보호법 실행 첫 해라는 점에서 그나마 사회적 관심을 받았지만 올해의 경우 사회적 이슈조차 되지 않을 가능성도 다분하다. 하지만 중소 제조업의 경우 2001년 이후 고용이 감소하고 있는 추세인 점, 2007년 법 시행 이후 이미 비정규직 규모가 늘고 있다는 점, 비정규직 규모가 대기업에 비해 매우 크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비정규직보호법으로 인한 파괴적 효과는 더욱 클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민주노총이 아직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 엄호하고 조직화할 태세가 안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랜드·뉴코아 투쟁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난 문제이다. 게다가 중소사업장 조직화의 핵심을 담당해야 할 금속노조가 올해 비정규직, 임금격차 등의 문제를 가지고 산별교섭/협약 그리고 투쟁을 만들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2007년의 경험을 통해 볼 때 상당히 무리가 있다. 그렇다고 총연맹 차원의 집중이 가능하지도 않다. 총연맹은 올 해 역시 비정규직 기금 모금, 신고센터 운영 등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실에서 투쟁의 돌파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랜드·뉴코아 투쟁은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작년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이 된 이 투쟁이 패배한다면, 비정규직 운동은 또 다시 몇 년은 후퇴하고 말 것이다. 싸우면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공감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랜드·뉴코아 투쟁의 경우 자본 역시 벼랑 끝에 몰려 중국법인을 통한 수혈만 기대하고 있는 만큼 조금만 더 집중 투쟁을 벌이면 승리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총연맹 금속노조 차원의 해법만 기대할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을 넘나드는 조직화에 나서야 한다.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 민주노총 지역본부 혹은 지구협의회, 사회단체 간의 연대를 통해 비정규직보호법 철폐투쟁과 노동조합조직에 대한 지역적 흐름을 만들어내야 한다. 작년 민주노동당 서울 서부 지역위원회들이 힘을 합쳐 반년이 넘는 기간 동안 꾸준히 선전 선동하여 홈에버 월드컵점에 노동조합을 만들어내고, 이후 투쟁에서도 모범적 지역연대운동을 만들어 내었던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향후 주체가 될 사업장들이 중소사업장이라는 특성 또한 지역적 운동을 요구한다. 역동적인 활동과 그 결과물은 지역과 노조가 호홉할 때에서야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공공부문 공동투쟁
이명박 정부는 공공부문 민영화, 교육 구조조정, 행정부 통폐합과 구조조정을 정권 초기의 개혁 상징으로 만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미 지난 10년 간의 정책 개혁과 구조조정으로 인해 정부 부문을 제외하고는 가시적 성과를 보일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공기업 민영화는 발전 부문 매각, 전력, 가스 등 회사 분할과 경쟁 도입, 철도 도로 사업 분할 및 운영권 매각 등으로 인수위와 기획예산처에서 이야기되고 있다. 교육 구조조정은 좀 더 명확한데, '사교육절반5대프로젝트'라는 이름하에 자립형사립고 300개, 영어교육, 대입자율화, 교원평가제, 초중고학생평가제 등이 논의되고 있다. 행정부 통폐합은 중앙부처 통폐합과 농촌진흥청, 국립수산과학원 등의 국가연구기관에 대한 출연연구기관 전환이 쟁점이다.
반면 이에 맞서 싸워야 할 민주노총의 상황은 녹록치 않아 보인다. 공공운수연맹의 경우 공공노조와 운수노조, 미전환노조를 통합하는 산별건설이 지체되고 있는 가운데, 민영화 대상 기업의 노조인, 철도, 발전노조 등이 지난 투쟁 패배로 위축되어 있다. 필수공익사업장의 파업을 무력화하도록 개정된 노동관계법도 큰 장애물이다. 전교조의 경우 현재 2006년 연가투쟁 참여자에 대한 강제전보 조치, 노조탄압으로 인해 매우 어려운 조건에 처해있다. 또한 뉴라이트 계열의 노동조합이 건설되어 우익 교육운동 단체들과 함께 전교조에 대한 여론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 공무원노동조합의 경우 역시 민공노와의 재통합 문제, 연이은 투쟁과 패배로 인한 조직 내 피로감 등으로 투쟁조직화가 쉽지 않은 조건이다.
핵심 관건은 투쟁 주체들이 공기업 민영화, 정부기관 민영화, 교육시장화 등에 대해 공동 투쟁 전선을 구축할 수 있는가 여부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명박 정부의 초반 구조조정 작업에 대해 사회적 전선을 구축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현재 각 노조, 연맹의 상황에선 각개 격파로 가게 될 경우 제대로 파업 한 번 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매번 공공부문의 공동투쟁을 외쳐왔지만 현실화된 적은 거의 없다는 점 또한 잊지 말아야 할 사항이다. 공공연맹 내 사업장 공동투쟁을 넘어서는 공공· 공무원· 전교조 공동 투쟁은 더군다나 없었다. 게다가 각 노조들이 높은 연대의식을 가진 조합원들로만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따라서 우선 공공운수연맹, 공무원노조, 전교조 등의 변혁적 노동자운동을 지향하는 활동가들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범사회적 운동을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 부문의 투쟁 모두 사회공공성을 주장하지만 현재 정작 투쟁하는 내용은 모두 자기 이해부문에만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운동 활동가들은 물사유화, 가스철도 등의 사유화, 농업자본만을 위한 연구, 공교육 붕괴와 시장화 등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하며, 이해 당사자를 넘어선 범시민적 운동 조직을 위한 방도를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당연히 이를 위해서 대안적 사회서비스와 이에 대한 국가, 사회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심화시켜야 한다. 민영화 저지, 교육시장화 저지 등을 내걸고 관성적인 투쟁을 해보았자 부패비리, 효율성, 집단이기주의 등의 이데올로기를 동원한 언론과 정부의 악선동에 무너질 뿐이다.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이루어질 내년까지 지속적인 교류와 범사회적 운동의 조직이 필요하다.
노동조합과 지역연대운동
노동자 운동 활동가들은 노동조합 내부의 우경화 경향을 방어하는 한편 노동조합 내외를 가로지르는 역동적인 운동의 구심을 형성해 나가야 한다. 여기서 2007년 이랜드·뉴코아 투쟁이 지역연대 속에서 역동적으로 투쟁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노동조합의 상황이 단시간 내에 변화되기 어렵다면 지역을 중심으로 한 역동적인 운동의 흐름을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다시 노동조합 내부를 변화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2008년 예상되는 주요한 투쟁 과제들, 공공부문 사유화 저지 투쟁, 교육시장화 저지 투쟁, 비정규직 투쟁을 위한 지역 연대운동 네트워크, 변혁적 노동자 운동 활동가들의 지역 네트워크를 노동조합, 정파를 초월하여 꾸려야 한다.(서울의 소통/연대/변혁 노동운동포럼은 이러한 좋은 예 중 하나일 것이다). 전략적 논의들이 정체되어 있는 만큼 구체적 투쟁 계기 속에서 여러 혁신의 방향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혁신 논의가 관념적인 혁명적 수사가 아니기 위해서도 대중 투쟁 속에서 검증되고 인정받는 것이 필요하다.
이 과정은 지난 10년 간의 연대운동에 대한 비판적 평가 과정과 동반되어야 한다. 통칭 범개혁진영이라 불리는 NGO들과 소수 명망가들에 의한 연대운동에 대한 실천적 단절이 필요하다. 이러한 운동 경향과 명확하게 단절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이번 대선에서 민중운동 진영이 개혁세력과 동반 몰락하게 되었음을 분명히 직시해야 한다. 한국진보연대, NGO 등 상층 중심의 범대위가 운동 진영의 주도권을 잡기 전에 변혁적 노동자 운동 활동가들이 먼저 인권활동가, 환경활동가, 정치단체 활동가들과 공공부문 사유화, 교육시장화, 대운하, 비정규직에 대한 논의틀을 꾸리고 지역적 네트워크를 만들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