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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8.3-4.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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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미국'에 관한 숨 막히는 통찰

박문칠 | 회원
영화에 관한 글을 부탁받고서 어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고민에 휩싸이게 되었다. 재미는 있지만 뭔가 다르고 특별한 구석이 있는 영화, 하지만 다르다고 해서 너무 생소하거나 거부감이 들지는 않을 만한 영화. 다이어리를 찾아 작년 한해 봤던 영화들을 뒤져봤다. 작년에 개봉한 세 명의 데이비드(David) 영화들이 눈에 들어왔다.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의 <인랜드 엠파이어>(Inland Empire,2006), 데이비드 핀처(David Fincher)의 <조디악>(Zodiac,2007), 그리고 데이비드 크로넨버그(David Cronenberg)의 <폭력의 역사>(A History Of Violence,2005). 모두 훌륭한 감독들이고, 훌륭한 영화들인데, 이 중에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폭력의 역사>를 선택하기로 했다. 이 영화를 고른 이유는 무엇보다도 영화가 러닝타임 내내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 흥미진진한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지루해질만한 틈이 없는, 정말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영화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이런 재미에 더해 이 영화가 우리 회원들이 친숙하게 여길만한 '폭력'과 '미국사회'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진보연대 회원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 '미국비판'의 내용들-총칼과 달러 뭉치를 앞세워 전 세계적 헤게모니를 관철시켜나가고 있고, 냉전과 9.11 이후 세계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으며, 자국민의 테러에 대한 공포를 이용하여 '선제공격'까지 정당화시키고 있다는 점, 하지만 테러의 근본원인은 결국 미국 자신에게 있고, 후세인도 오사마 빈라덴도 과거에는 다 미국이 키웠다는 사실, 그리고 이라크전이 수렁에 빠지면서 통치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을 영화가 명시적으로 담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전쟁과 복잡한 국제정세를 다룬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영화는 미국 변두리에 사는 한 평범한 가장 톰의 이야기를 통해 '폭력', 더 구체적으로는 '미국의 폭력'에 대한 은유를 보여주고 있다. 책이나 거리에서 많이 접해봤을 내용을 이제 조금은 다른 시선과 재미를 통해 느껴보도록 하자.

그럼 지금부터 영화의 이야기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스포일러 있음!)

영화는 평온한 미국의 중서부 마을에 살고 있는 주인공 톰 스톨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그는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자, 커피 맛이 일품인 자그마한 식당의 주인이다. 그의 일상은 과장되었다 싶을 정도로 평온하고 아름답게 묘사된다. 여기서 영화가 톰의 정상적인 삶을 묘사하기 위해 어떤 아이콘들을 동원하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면 재미있다. 전형적인 미국의 중서부 마을 풍경, 야구를 하는 젊은이, 자동차 극장에 대한 언급, 치어리더 복장 그리고 과거 미국의 서부영화를 연상시키는 향수어린 영화음악. 영화는 이런 조각들을 모아 미국인들이 꿈꾸는 이상화된 삶의 모습을 그려낸다.

이렇게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던 어느 날 흉악한 강도 두 명이 톰의 식당으로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기 시작한다. 톰은 이들에 맞서 싸우다가 총으로 둘을 쏴 죽이고, 갑자기 마을의 영웅으로 떠오르게 된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을 보여준다. 이라크 전에서 미국이 수없이 만들어냈던 이미지들. 그러니까, 매스컴의 영웅 만들기. 정당방위와 마을수호라는 명목으로 이뤄진 대항폭력에 대한 칭송과 미화가 이어진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사람 두 명을 과감하게 죽인 살인행위를 떠받드는 언론과 마을사람들의 태도는 이제 모종의 불편함을 자아낸다. 이건 뭔가 맞지 않다. 용감한 은행 여직원이 강도를 맨손으로 때려잡고 시민으로서의 도리를 다했다고 겸양을 떠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다음 날 톰의 식당에 찾아온 험상궂은 마피아 포가티는 '톰'이 사실은 필라델피아 출신 마피아 '조이'라고 우기며 괴롭히기 시작한다. 포가티는 자기 눈알을 쇠 철사로 빼간 조이에 대한 복수를 하러 이 시골마을까지 찾아온 것이다. 여기서부터 영화의 서스펜스와 미스터리가 시작된다. 영화는 이제 '톰은 과연 누구인가?'라는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면서, 동시에 포가티 일당과 톰 가족 간의 쫓고 쫓기는 서스펜스를 보여준다.
이때 톰의 가족이 느끼는 포가티 일당에 대한 공포는 미국인들의 테러에 대한 공포를 떠올리게 한다. 가장 일상적인 공간들-집, 쇼핑몰, 가게-까지 포가티 일당은 침입해 들어온다. 이로 인해 이 가족은 옷장 속에 쳐 박혀 있던 엽총도 꺼내들게 되고, 사소한 일에도 화들짝 놀라며 '악당'에 대한 공포를 드러낸다. 짐작이 가겠지만, 이 '악당'이라는 말을 '테러리스트' 혹은 '이슬람교도'로 바꿔 읽어도 무방할 것이고, 이런 강박증적인 공포와 불안은 9.11 이후 미국사회가 겪었던 일들에 대한 유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공포가 이어지다가, 톰은 마침내 집 앞까지 들이닥친 악당들을 천신만고 끝에 모두 죽이고 만다. 영화에서는 보통 악당이 죽고 나면 갈등이 해소되기 마련이다. 부시도 후세인만 제거하면 이라크가 해방될 것이라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언제나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이라크 상황이 오늘날까지 그리 쉽고 간명하게 해결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 역시 악당소탕 이후에 벌어지는 사태가 더 복잡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톰은 포가티 일당을 일망타진시키는 데 성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이 폭로되고 만다. 아내는 '톰'이 잔악한 '조이'로 변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되었고, 아들은 '톰'이 스스로가 '조이'임을 인정하는 말을 듣고만 것이다. 이제부터 영화는 다른 가족들이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이 폭력의 바이러스가 어떻게 전염되고 유전되는지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

먼저 아들. 그는 착하고 똑똑하지만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항상 당하고만 살던 그에게 강도들을 멋지게 물리친 아버지는 이제 존경의 대상이다. 그리고 그는 이제 아버지의 영웅적 행위에 힘입어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과 맞서게 되고, 자신도 모르던 힘을 발휘하여 이들을 무자비하게 구타하기에 이른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폭력이 대물림되는 순간이다. (마치 아버지 부시가 아들 부시에게 이라크 전을 대물림해준 것처럼) 아들의 폭력사용은 또 한 번 나타나는데, 톰이 포가티 일당과 집 앞마당에서 싸울 때 죽음 직전의 상황에서 아들이 포가티의 머리를 엽총으로 난사해버리고 만다. 이렇게 폭력이 대물림 된 덕에 아버지는 목숨을 부지하게 되지만, 둘의 관계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겪고, 아들은 아버지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 한다.
아내 역시 심각한 혼란을 겪는다. 자신이 살인귀와 결혼했다는 사실에 역겨워하면서도 가족 밖의 사람(보안관)한테는 남편을 두둔하기도 하는가 하면, 둘만 남았을 때는 다시 그를 밀쳐내기도 한다. 이런 혼란의 와중에 흥미로운 것은 그녀가 톰/조이와의 거친 섹스를 즐기게 된다는 점이다. 아들이 자신의 폭력적인 면을 발견하게 된 것처럼, 아내 역시도 야성적이고 폭력적인 면에 점점 매혹되는 자신의 숨겨진 어두운 면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톰의 숨겨진 정체는 식구들을 불편하게 하고, 모두에게 내재되어 있는 어두운 면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이런 불편함과 긴장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정점을 이룬다. 톰/조이가 과거를 청산하고 집에 돌아오는데, 저녁 식사를 하려는 가족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용서를 구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잊어달라고 말할 수도 없다. 아내 역시도 이 가정을 유지해야 하는지 함께 살 수 있는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톰/조이가 식탁에 앉기까지 긴 침묵이 흐르고, 인물들 서로 말 한마디 주고받진 않지만, 숨이 멎을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다 영화는 끝나고 만다.

평범한 가장이었던 '톰'. 그러나 동시에 살인마의 면모를 숨겨두고 있었던 '조이'이기도 한 이 남자를 가족은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영화는 이 마지막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고 있고, 더 나아가 미국사회에 묻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악행이 이제 부메랑이 되어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잘못된 중동정책 때문에 수많은 테러리스트들이 미국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이를 잠재우기 위해 동원된 더 큰 폭력과 전쟁도 우리를 구원하기는커녕 모두에게 이 폭력의 바이러스를 전염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 이 폭력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추신!
이 영화와 관련된 재미있는 후일담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이 영화를 촬영할 당시에는 마침 2004년 미국 대선이 진행 중이어서 가족적이고 단란한 이 영화의 촬영현장에서는 스탭과 배우들 모두 참여하는 미대선 모의투표 이벤트를 재미삼아 진행했다고 한다.
투표 결과는? 민주당 존 캐리가 75표 득표로 압승! 조지 부시는 불과 6표 밖에 받지 못했다고 한다. 참, 투표현장을 UN 참관인 자격으로 지켰던 강아지도 2표를 받았다는 후문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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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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