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가족 자녀 겨울캠프'에서 오래된 미래를 보다
몇 해 전부터 심심치 않게 이주노동자, 이주국제결혼에 대한 뉴스가 들려온다. 내 고향 봉화는 인구 4만도 되지 않고, 산지가 90%를 차지하는 산골이다. 그런데 이곳에서조차 이주여성을 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주로 공단이 있는 도시나 농촌지역에 이주자가 많다고 한다. 결혼이주가 활성화 된 것은 10년이 조금 넘었다. 초기에는 통일교를 통한 국제결혼으로 일본에서 이주한 여성이 많았다. 그리고 점차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 타이 등 다양한 지역에서 국제결혼을 통해 이주한 여성이 늘어났다. 그래서 지금은 국제결혼 가정이 전체 결혼가정의 1/10을 넘는다.
학교에 있으면 확실히 한국이 '다민족 사회'라는 사실이 실감이 간다. 대체로 국제결혼 가정은 내국인끼리 결혼한 경우보다 자녀를 많이 둔다. 봉화의 경우 내국인끼리 결혼한 가정이 대략 2명 가량의 자녀를 둔다면, 국제결혼 가정에서는 3~4명의 자녀를 둔다. 그래서 전체 학생에서 다문화 가정 학생의 비중은 전체 결혼 가정에서 국제결혼 가정이 차지하는 비중보다 훨씬 높다.
경북 봉화에서는 지난 1월 23~25일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다문화 가족 자녀 겨울캠프'가 열렸다. 봉화지역자활센터가 추진하는 이주결혼여성 지원프로그램의 일부로 그녀들의 자녀들을 위한 사업이었다. 봉화지역자활센터 김휘연 관장은 전교조 봉화지회의 책읽기 소모임을 함께 하며 친해졌다. 김휘연 관장의 제안으로 전교조 봉화지회가 프로그램을 함께 기획했고, 나는 대학생 자원교사를 연결시켜주었다.
이르면 12월, 늦어도 1월 중으로 진행하기로 했던 겨울캠프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1월말 경으로 미뤄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당장 자원교사를 구하는 것이 문제였다. 경북 봉화에서 여름교육활동 '더불어 숲'을 진행하는 <예비교사 운동모임 페다고지>(페다고지)에 협조를 요청했지만, <페다고지>에서도 같은 기간에 행사를 진행하는 관계로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 그래도 다행히 개인적인 관계를 통해 필요한 6명의 교사 중 3명의 자원교사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래도 운이 좋았던 것은 3명의 교사는 페다고지 회원이거나, 이전에 '더불어 숲'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대학생이라는 것이었다. 봉화지역자활센터에서도 관장, 실장, 상근하는 팀장이 상주하면서 사업을 지원했다. 전교조 봉화지회 조합원과 봉화지역자활센터, 대학생 자원교사까지 함께 하니 그럴듯한 팀이 꾸려졌다.
이번 다문화가족 자녀 겨울캠프의 컨셉은 '의미있지만 재미있는 활동'이었다. 그 동안 상당수의 이주국제결혼 가정(혹은 '다문화 가정') 어린이는 언어발달이 느려서, 피부색이 달라서, 말이 서툴러서, 정신장애가 있어서 차별받고 '왕따'를 당하기 일쑤였다. 또한 여러 통계에도 드러나듯 이들 어린이는 빈곤으로 인해 이중 삼중의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겨울캠프는 '따뜻한 정'을 나누고, 서로 대화를 나누며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자리로 만들고자 했다. 너무 의미를 강조하여 재미없는 프로그램을 만들지는 않기로 했다.
2박 3일의 일정 중 첫째 날과 마지막 날은 전교조 봉화지회에서 기획한 프로그램으로 진행했고, 둘째 날은 놀이공원을 가기로 했다. 그런데 행사 당일 새벽에 큰 눈이 내린 관계로 23명의 신청 어린이 중 5명이 참석치 못했다. 폭설로 행사장소를 계획했던 명호면으로 할지, 아니면 봉화읍내로 변경할지 판단하느라 한 시간 늦게 출발을 했다. 계획했던 오전 프로그램은 다 취소를 하고 명호 인근 식당에서 먼저 점심식사를 했다. 그리고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눈싸움을 벌였다. 예정에 없던,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지만 눈싸움은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더 재미있었다.
어린이들은 공동체 놀이와 추적게임, 그리고 만두 빚기와 어묵 만들기, 연날리기 등으로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저녁식사도 맛있게 하고, 밤에는 불을 놓아 장작불에 고구마를 구워먹기도 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아이들이 행복했던 것은 친구,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젊은 자원교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차원', '몽키', '믹키영국' 등의 별명으로 불린 세 명의 자원교사는 헌신적으로 어린이와 함께 했다. 지난 여름, '더불어 숲'에서 아이들과 했던 경험 때문인지 세 사람은 꽤 능숙하면서도 인내심을 갖고 아이들과 함께 했다.
둘째 날 프로그램은 놀이공원에서의 즐거운 한때 보내기였다. 그런데 놀라웠던 것은 이 아이들이 놀이공원을 가본 경험이 별로 없었다는 사실이다. 놀이공원이야 상업성이 짙은 곳이니 그리 권장할 바는 못 되지만, 아예 가본 적이 없는 어린이부터 한 두 번 가본 어린이가 대부분이라 일정에 포함시켰다. 아이들은 '아버지(한국 태생)들이 바쁘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절대 놀이공원을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놀이공원을 신기해하는 것은 어린 아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돌아서기 아쉬워하는 것을 보니 가슴 한 켠이 아려왔다. 그래도 아이를 캠프에 참가시킨 집안은 비교적 깨인 곳이리라. 아직 여러 곳에는 집안에 유폐된 많은 이주여성들이 있을 것이다. 심지어 결혼 7~8년이 지나도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분도 있다는 소식에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가 치밀기도 한다.
얼마 전, 과학성적은 추락했지만 읽기와 수학은 세계 최상위 수준을 보였다는 피사(PISA) 2006 결과가 발표되었다. 유럽과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는 피사 읽기영역에서 의외로 낮은 성적을 보였다. 나는 그 결과가 이주민이 많은 사회 특성에서 비롯된 것아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이주민이 적었고, 소수의 이주민은 학교 교육 기회로부터 배제되어 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읽기영역 성적이 높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워보기도 했다. 2007년 현재 봉화군 초·중·고등학교 재학생은 약 3,000명이고, 다문화 가정 자녀는 약 200여 명이다. 그리고 나이가 어릴수록 다문화 가정 자녀의 비율은 급속도로 높아진다. 지금은 주로 초등학교에 재학 중이지만, 3~4년 후면 중·고등학교에서도 피부로 느낄 수 있으리라.
놀이공원으로 오고 가는 버스 안에서 아이들과 나눈 이야기는 한동안 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아주 차분하게 자신을 왕따시킨 아이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의 모습은 한국 사회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나는 그 순간 이 아이들이 상처받고 결국 '섬'처럼 고립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빈곤이 되물림되어 2류 시민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변해야 할 것이라는 마음도 들었다.
나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겨울캠프를 끝까지 함께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마지막 일정은 자원교사와 봉화지역자활센터 상근자, 다른 전교조 봉화지회 조합원 여러분이 진행해 주셨다. 아이들은 어머니께 드릴 도자기 선물도 만들고, 명랑 운동회 시간도 가졌다. 듣자하니 서로에게 편지를 쓰고, 정성스레 마련한 선물도 주고 받았단다.
아이들이 즐겁게 2박 3일을 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했던 사람들은 기뻤다. 아직 이런 프로그램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좀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리고 나는 새삼 깨달았다. '어우러져 사는 모습이야말로 오래된 미래가 아닐까'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