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3-4.81호
엎드린 예술
폐허가 되어버린 실재를 관람하는 것과 달리
폐허로 변해가는 과정이 고스란히 실시간으로 재현될 경우, 그것은 우리 모두를
공범자 혹은 목격자로 둔갑시키는 듯 하다.
숭례문 화재를 둘러싸고 벌어진 야단법썩의 이면에는,
전소의 과정을 전국민이 안방에서 지켜보았다는 공범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물론 국보1호라는 주입식 교육의 탁월한 효과도 있겠지만)
이것은 아프간의 전사가 배포하는 참수 동영상 비디오나 911테러 장면 동영상이 가져다 준 외상에 비할수 없겠지만
적어도 그 효과와 결과면에서는 비슷한 양상을 보여준다.
과정이 삭제된 실재를 대할 때와 과정이 포함된 실재에 대한 반응은 다르며
이것이 시간을 확보한 동영상 미디어의 위대한 역사를 설명해준다.
불길에 휩싸인 숭례문이 결국 5시간만에 전소되는 과정을 지켜본 사람들은
분노와 허무함, 쓸쓸함 등의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을 느꼈다.
문화재 관리의 허술함을 논하려는 것도 숭례문의 문화적 가치를 논하려고는 것도 아니다.
어떤 실재에 좀더 가깝게 다가가고자 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지지해줄 지지자를 얻고자 한다면
그들을 공범자로 만들거나, 목격자를 확보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말해보고 싶다.
이 궁핍하고 빈곤한 시대의 치열한 싸움에서 이기는 것은
실재를 함께 공유했다고 믿도록 만드는 시간(기억)을 확보하는 쪽에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미디어 시대에 대중의 마음을 얻는 전략이라면, 적어도 지금까지의 승자는 저들일 것이다.
전국토 곳곳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파괴의 과정은, 다만 5분짜리 축약 동영상으로 편집되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과정을 드러내는 순간, 사람들의 토악질과 분노가 또 다른 국면을 부를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진실에 대한 논쟁은 장을 바꾸어 가며 나아갈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진보한 예술의 장이 되길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