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5-6.82호
유럽의 노동자운동 :사회협약 이데올로기의 유산
[역자 해제] 5월 1일 노동절을 앞두고 민주노총이 발표한 5대 요구사항에는 ‘양질의 일자리 확보’가 포함되었다. 2000년 이후 국제노동기구(ILO)와 국제노총(ITUC)은 세계적인 수준에서 노동기준을 향상시킨다는 목적으로 ‘양질의 일자리’(Decent Work)를 구호로 캠페인과 국제회의, 로비를 진행했다. 하지만 국제적민족적 차원에서 평화롭게 노동협약을 채결하자는 운동은 노동협약이 가능했던 조건이 파괴된 신자유주의 시대에 흘러간 옛 노래를 반복하는 것이다. 특히 더 큰 우려점은 양질의 일자리 캠페인이 국제기구의 틀 내에서 초민족자본과의 대화를 통해 사회협약이 달성될 수 있다는 환상을 유포한다는 점이다. 국제노총은 올해 10월 8일을 ‘양질의 일자리의 날’로 정하고 세계적인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ILO나 국제노동조합에 대해 실용주의적 태도를 취해온 한국 노동자운동이 ‘양질의 일자리’를 활용할 만한 담론이라는 식으로 차용할 수 있을까? 노동자운동의 전략이 메마른 시기이지만 목이 마르다고 아무거나 마실 수는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1980년대 사회협약 이데올로기의 한 가운데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했고, 비판적인 입장에서 그 허구성을 폭로하는 노르웨이 노동운동가의 글을 싣는다. 출처는 먼슬리 리뷰(Monthly Review) 2004년 1월호에 실린 “European labour: The Ideological Legacy of the Social Pact”다. 또 관련된 글로『사회운동』 2005년 11월호에 실린 “유럽사회포럼에서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을 참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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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노동조합 운동은 수세적이다. 또한 심대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위기에 빠졌다. 현재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직접적인 경제적, 사회적 이해를 옹호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노동조합들은 모든 부문과 산업에서 기반을 잃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자본주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 있었던 노동조합 운동은 오늘날 공공연히 혼란을 겪고 있으며, 분명한 비전 없이 자신의 새로운 사회적, 정치적 지향에 대해 머뭇거리고 있다. 역설적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시대에 강력한 힘이 되었던 것과 똑같은 이론, 분석, 정책이 이제는 무거운 짐이 되었다. “사회협약” 이데올로기의 유산은 현재 노동조합 운동의 방황을 낳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공격
이러한 전개의 배경에는 현재 우리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변화가 있다. 이것이 글의 주제는 아니기 때문에 몇 가지 중요한 점만 언급하고자 한다. 지난 20여년 이상 우리는 신자유주의 세력의 거대한 공격에 직면했다. 자본가의 이해는 공세적이 됐으며, 우리는 노동과 자본 사이 권력균형의 거대한 이동을 보았다. 물론 초민족기업은 이러한 변화에 앞장섰다. 전후 노동조합과 사용자 사이의 평화로운 공존 정책인 노동과 자본의 “사회협약”은 파괴되었다. 자본은 사회협약으로부터 철수했으며 노동조직에 대해 점점 더 적대적인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초민족기업과 그들의 정치적 하수인들은 자신이 새롭게 성취한 권력을 심화하고 제도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는 변화의 중요한 부분이다. 이러한 노력은 주로 세계무역기구(WTO) 같은 국제기구들과 조약들, 유럽연합(EU) 같은 지역적 권력구조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 기구들은 지방정부나 중앙정부보다 덜 민주적이기 때문에 기업권력을 제도화하기 위해서 가장 유용하고 효율적인 도구임이 입증되었다.
이어지는 분석은 EU가 오늘날 유럽에서 신자유주의 사회경제 모델을 제도화하는 통로가 되었다는 관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새로운 권력균형의 기초 위에 건설된 EU와 다른 지역적초민족적 제도들은 노동자들이 현재의 권력균형을 자신들 쪽으로 이동시킬 때까지 개선할 수도, 민주화할 수도, 패퇴시킬 수도 없다. 이 권력균형을 다시 이동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조합 운동이 민중과 노동자계급의 권력을 조직하는 것을 자신의 장기적인 주요 과제로 삼아야할 것이다.
새로운 환경, 오래된 정책
불행히도 노동자계급의 권력을 조직하는 것은 오늘날 유럽 노동조합 운동의 계획이 아니다. 노동자운동 측의 역설은 노동조합이 활동하는 경제적정치적 여건은 완전히 변화했는데도 노동조합 대부분이 여전히 사회협약 정책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소위 세계화가 의도적인 전략과 새로운 권력계급관계의 결과가 아니라, 기술적이고 조직적인 변화의 필연적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 입장은 분명히 마가렛 대처의 악명 높은 말 “대안은 없다”와 비슷하다. 그들은 민족적 수준의 사회협약 정책을 지역적이고, 세계적인 차원으로 확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들의 전략은 사용자조직, 국가, 초민족 기구들과의 “사회적 대화”이고, 국제무역협정과 무역기구에 노동기준(무엇보다 강제 노동의 금지, 결사의 자유와 단체협상의 권리보장, 고용차별 금지 등의 ILO 협정)을 공식적으로 도입하기 위한 캠페인이다. 또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행동규범과 초민족기업과의 기본협약 추진이다. 이 후자와 같은 자발적이고, 비구속적이고, 비강제적인 행동규범은 초민족기업 자신들에 의해 발전되었다. 지금까지 행동규범은 기업 행위에 대한 실질적 효과가 없었고, 초민족기업들이 자신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이미지에 대응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활용되었다.
“사회적 대화” 전략은 권력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무관하게 추진되며, 사회변화를 위해 계급과 민중 권력을 조직할 필요성에 대한 인식 없이 추구된다. 현재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럽 노동자운동의 역사를 더 긴밀히 살펴봐야 한다. 특히 우리가 진정으로 노동자운동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위기를 이해하기 원한다면, 사회협약 정책의 역사와 영향은 결코 긍정적으로 과대평가할 수 없다.
노동과 자본의 역사적 타협
20세기 동안에 서유럽 노동조합 운동은 점차 자본주의에 온건하게 적응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이 적응은 1930년대 동안 유럽의 일부, 주로 북유럽 노동조합 운동이 사용자조직과 협정에 이르자 처음으로 제도화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비슷한 과정이 나머지 서유럽 대부분에서 발생했다.
노동과 자본 사이에 형성된 사회협약은 복지국가의 발전과 임금과 노동조건의 점진적인 개선의 기초가 되었다. 노동과 자본이 대립했던 기간이 끝나고 사회는 사회적 평화, 2자 협상이나 3자 협상(노동, 사용자, 국가), 정책합의의 국면으로 들어갔다. 사회협약 정책은 복지, 임금, 노동조건의 측면에서 중요한 성과를 이끌었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의 거대한 지원을 얻었다. 그 결과 노동자운동의 더 급진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인 부분은 점차 주변으로 밀려났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는 노동자운동의 탈정치화와 탈급진화, 노동조합 운동의 관료화를 야기했다. 사민주의 정당들의 역사적 역할은 계급타협 정책을 관리하는 것이 되었다. 노동조합에 만연한 현재의 곤란이 유럽 사민주의 정당이 직면한 문제의 반영이라는 것은 놀랍지 않다.
노동과 자본 사이의 사회적 동반자 관계가 노동조합과 노동자운동의 현실적 힘의 결과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사용자조직은 자신이 노동조합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동조합을 노동자의 대표로 인정하고 협상해야만 했다. 즉 노동과 자본의 온건한 적응은 강력한 노동자운동에 달려있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가 20년 이상 안정적이고 높은 경제성장을 경험했다는 것이 또 다른 주요 요인이다. 이것은 노동, 자본, 공적 복지 사이의 배당금 분배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사회협약의 결정적인 요소는 자본과 시장에 대한 민족적 규제다. 자본통제는 모든 나라에서 일상적이었다. 노동과 자본의 타협은 민족적 국경 내에서 평화롭고 질서정연한 경로를 만들었다. 그 주요 결과는 노동조합 운동이 매우 일국 지향적이 된 것이다. 비록 국제주의적 정치 수사가 일부 남아있더라도 노동조합 운동의 국제주의는 (ILO와 같은) 국제기구를 통한 외교의 일종으로 타락했다. 심지어 조합원의 이해나 필요와 거의 또는 아예 관계가 없는 다양한 노동조합 관광으로 타락했다.
사회주의적 수사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 운동에게 사회협약은 생산의 자본주의적 조직,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노동과정에 대한 사용자의 권리를 수용하는 것을 의미했다. 복지와 노동조건을 얻기 위한 교환 속에서 노동조합 연맹들은 산업평화와 임금협상 억제를 약속했다. 단순히 말하면, 복지국가와 점차 나아진 생활조건은 노동자운동이 사회주의 전략을 포기한 대가로 얻은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사회협약이 노동자계급을 완전히 탈정치화하고 탈급진화하는 데 이바지한, 매우 특수한 역사적 맥락 속의 단기적인 성과라고 결론내릴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소련과 동유럽에 경쟁적인 체제가 존재한 것이 중요한 특징이다.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지적한 것처럼 이것이 서방의 자본가들이 타협을 수용하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타협에 바탕을 두고 대부분의 주요 복지 개혁과 제도는 2차 세계대전 후 30년 동안 발전되었다. 즉, 1930년대 경제적사회적 위기와 전쟁을 배경으로 발전한 급진적 노동운동은 그의 대립 상대방인 자본가의 의도적인 전략에 응한 것이다. 자본가들은 자발적으로 사회협약을 수용했고, 노동자운동의 사회경제적 요구들에 양보 조치를 취했다. 이는 자본가들이 시간을 벌고 노동자운동의 사회주의 정서를 꺾기 위해서였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봤을 때 우리는 이러한 기업의 전략이 꽤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운동 내부의 완전한 분업은 계급 타협의 두드러진 부작용이다. 노동조합 운동은 협상을 통해서 노동시장 환경을 규제했다. 반면 실업자를 위한 사회보장은 의회의 사민주의 정당에게 맡겨졌다. 분업은 사민주의 정당이 이전의 개량주의적 정치로부터 후퇴한 것처럼, 노동조합이 더욱 협소한 경제주의로 후퇴하게 한 배경이었고, 오늘날 노동조합의 약화를 낳았다.
사회협약의 이데올로기
사회협약의 시대 동안에 이러한 기업전략은 노동자운동이 판단력을 잃게 했다. 생활조건과 노동조건의 지속적인 개선이라는 20년 간의 실제 경험으로 공유된 견해는, 계급투쟁과 사회적 대립을 감내하지 않고 사회 진보와 보통 사람들에게 상대적으로 공정한 부의 분배를 이루는 길을 찾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가 높은 수준의 문명에 도달했다는 생각이다. 점진적인 개혁을 통해서 노동자운동은 경제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증대했다. 위기 없는 자본주의는 현실이 되었다. 1930년대 같은 경제위기, 대량실업, 사회적 좌절, 민중의 고통은 더 이상 없을 것 같았다. 모든 사회적 변화는 전진적인 것이었다. 거의 대다수의 노동운동에게 이것은 사회주의로 가는 개량주의적 길이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현실의 사회적 성취는 유럽 노동조합 관료에게 뿌리 깊게 남은 사회적 동반자 이데올로기의 물질적인 기반을 형성했다.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1980년대 초반 내가 노르웨이 노동조합연맹의 교육센터에서 기초적 노동조합 연수에 참가했을 때 처음으로 이러한 사회적 동반자 이데올로기가 공공연히 표현되는 것을 들었다. 거기서 나는 20세기의 첫 1/3은 총파업, 직장폐쇄, 노동자조직의 파업에 대한 경찰과 군사력의 사용 등 노동과 자본의 강력한 갈등이 특징이었다고 배웠다. 이 파괴적인 기간의 끝(1930년대)에 노동자계급은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오직 적대적인 정책을 포기하고, 노동조합 운동이 완전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시작하자 노동조건의 개선, 임금인상, 복지개혁과 같은 진정한 진보가 성취되었다. 즉 사용자와의 대립은 파괴적일 뿐이고, 평화로운 사회적 대화가 나아갈 방향이다. 이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1980년대 초반에 노동조합 교육센터에서 가르치던 내용이다.
이 분석은 그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리다. 그러나 사회협약이 붕괴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오류의 귀결은 노동조합 운동에게 지금 더 위험하다. 그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계급 타협의 기간 동안 복지와 노동조건의 큰 성취가 앞선 시기 투쟁의 결실이었다는 점을 간과한다. 진보는 바로 20세기의 첫 번째 기간 동안 러시아혁명을 포함하여 대립과 강력한 계급투쟁으로 노동과 자본 사이의 권력 균형을 이동시켰기 때문에 가능했다. 즉 앞선 시기의 적대적 투쟁들이 훗날 평화적 협상을 통해 실현된 성과를 가능하게 했다.
사회협약의 붕괴
그러나 계급 타협은 그것의 존속이 자본주의 경제의 안정적인 고성장에 의존하기 때문에 취약한 구조였다. 계급타협은 1970년대 초반 발생한 서구 자본주의의 경제위기 심화로 점차 파괴되었다. 위기는 무엇보다 자본가가 비용 축소를 위해 노동조합의 권리, 임금, 공적 지출을 공격하게 했다. 자본가들은 바로 복지국가의 기초를 파괴했다.
탈급진화되고 탈정치화된 노동조합과 노동자운동은 이러한 변화에 매우 당황했다. 사용자들은 협상장에서 갑자기 훨씬 더 적대적으로 나왔다. 이전에 주로 임금과 노동조건의 향상에 관한 것이었던 협상은 이제 이미 존재하는 성과와 규제에 대한 공격을 포함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계급 타협과 사회적 평화의 환경에 젖어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공격을 준비하지 못했다. 사회협약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신자유주의의 공격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노동조합 관료는 여전히 수동적이었고, 노동조합 운동은 방어적일 수밖에 없었다.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이해를 보호할 힘이 없음이 증명되자 여러 국가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완전히 떠났다.
따라서 1980년대는 몇몇 서유럽 주요국가들의 조직률(노동인구의 조직화) 통계가 보여주듯이 노동조합운동의 완전한 실패로 대표된다(표1을 보라).
<표 1> 전체 노동자 중 조직된 노동자의 비율(%)
1985 1995
프랑스 15 9
이탈리아 48 44(1994)
영국 59(1979) 31
스페인 27(1980) 19(1994)
독일(서독) 35 29(1993)
* 자료 : A Wahl, et. al, “‘Patide a lære fransk’: Strategi for motsand,” in F. Gustavsen and
M. Thorkildsen eds., Markedets vidunderlige verden (Oslo: John Griegs Forlag, 1998).
영국의 광산노동자와 같은 소수의 노동조합은 신자유주의의 공격에 맞섰지만 패배했다. 영국의 경우 패배의 중요한 원인은 대처정권이나 광산회사의 광포한 공격보다는 오히려 전투적인 노동자 쟁의행위를 사회협약의 정책합의를 더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한 영국노총(TUC)의 관료다. 수년이 흐른 뒤에 TUC는 광부 파업을 지지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다고 시인했지만 피해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놀랍게도 TUC는 사회협약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다.
1990년을 전후로 동유럽의 명령 경제가 붕괴하자 서구자본주의에 대한 유일한 다른 선택지가 사라졌다. 자본주의는 모든 곳에서 승리했고 사용자에게 노동자운동과의 타협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자본가 세력은 이제 최소화된 규제 속에서 자신의 협소한 경제적정치적 이해를 추구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서유럽 전체에서 계급 타협(또는 합의 모델)이 붕괴됐거나 붕괴되고 있는 이유다. 타협을 위한 역사적경제적 전제조건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그 합의의 가장 중요한 결과인 복지국가에 대한 압력도 증가하고 있다.
오늘날 노동조합 지도부의 지배적인 분파는 권력관계에 대한 이러한 분석을 이해하지 못한다. 약 20년 전 신자유주의 공격이 시작되고 사용자들이 사회적 동반자 정책을 점차 파괴할 때 대부분의 노동조합 관료의 대응은 정책합의의 지속뿐이었다. 일부 노동조합은 적대적인 사용자에게 사회협약으로 돌아오라고 거의 구걸했다. 합의 정책을 강력한 일국 지향적 노동조합 운동이 지지했다. 노동조합의 협소한 일국 지향과 사회적 동반자 이데올로기는 공세적인 자본의 이해에 맞서는 방향으로 스스로 변화하는 것을 막고, 국제적으로 경쟁하는 “민족”자본과 동맹을 맺고 결과적으로 종속되는 쪽으로 노동조합 운동을 이끌었다. 독일에서 “산업입지 경쟁”은 독일 기업과 노동조합의 동맹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이 다른 나라와 경쟁하는 독일 국가를 지원하는 것도 의미한다.
노동조합 운동의 대다수는 계급분석과 권력균형 평가에 바탕을 둔 전략으로 변화하기보다는, 비즈니스 노동조합주의와 법적 형식주의에 더 빠져들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일자리를 위한 통합”(unity for work)을 목표로 한 독일 노동조합의 투쟁은 사용자와의 민족적 동맹 정책의 좋은 사례다. 이것은 사회협약의 형식적 혁신을 위해 제안되었다. 이것은 독일 노동조합연맹이 제안했는데 일자리 보장을 대가로 열악한 노동조건을 수용할 것을 제안했다. 사용자는 이를 거부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국제노동조합 운동의 지도자들이 지난 10년 이상 추구했던 활동, 즉 WTO에 최소한의 노동기준을 도입하기 위한 협소한 투쟁은 노동과 자본 사이의 권력균형에 대한 분석이 없는 법적 형식주의의 완전한 사례다.
일국적국제적 수준의 노동조합 관료들은 여전히 그들 스스로를 노동과 자본 사이의 조정자로 생각한다. 오늘날은 자본가 세력이 공세적이며 기업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국제 민중의 정의와 연대 운동(justice and solidarity movement)이 발전하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때에 국제노동조합 운동은 스스로를 운동과 기업 사이의 조정 세력으로 정의하려 한다. 이것은 스위스의 다보스에서 열리는 정치경제 엘리트들의 세계경제포럼(WEF)에 대항하는, 2003년 1월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WSF)에서 명백해졌다. 당시 국제노동조합 운동은 “세계화의 민주화: 2003년 세계사회포럼과 세계경제포럼에 대한 노동조합의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우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제노동조합 운동은 포르투 알레그레와 다보스에 같은 의사를 전달한다. 전 세계적 수준에서 발전을 달성하고,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전망 없이 불안정과 빈곤 속에서 사는 수백만 명의 노동자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비전, 정치적 의지, 공식적 법률적 자격이 결합되어야 한다. 그것은 자원의 지원과 서면협약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또 우리의 공공선, 권리, 민주주의를 증진하는 관리 체계를 필요로 한다. 그것은 효율적인 민주적 과정과 대화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세계경제포럼에 세계적 사회정의가 필요하다고 압력을 넣을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세계사회포럼에 모든 노동자의 이해 속에서 민주화된 세계화를 추구하는 건설적인 방법을 찾는 것에 기여할 것이다.
즉 대부분의 국제노동조합 조직들은 스스로가 기업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새로운 운동에 속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새로운 운동이 정치적으로 너무 급진적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국제자유노련(ICFTU)이나 국제산별노련(Global Unions)은 그들이 세계사회포럼에 갔을 때 다른 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 회의와 포럼의 부수적인 회의에만 참석했다. 동시에 그들은 세계경제포럼에 똑같이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했다. “우리는 대부분을 항상 대화를 통해서 성취했습니다”는 말이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권력관계와 괴리된 정책들
권력관계 분석과 전략을 위한 준비가 전혀 없다는 것은 노동조합에 의해 국제적으로 진행된 교육에서 다시 명백해졌다. 일군의 서유럽 노동조합과 연맹은 연대 사업으로 동유럽과 개발도상국의 자매 노동조합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 교육에서 서유럽 노동조합은 자신의 큰 성과라고 생각한 사회협약을 유포했다. 그들은 세계의 다른 노동조합에게 사회적 동반자 모델을 추구하는 것이 이롭다는 확신을 주려고 노력했다. 현재의 권력관계에서 이러한 교육은 사용자의 공세적이고 적대적인 공격을 받고 있는 동유럽과 개발도상국의 노동조합에게 해롭다.
이러한 모든 변화가 공공 부문이나 운수산업 노동조합보다 제조업 노동조합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조업이 국제경쟁에 더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쇠퇴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우경화는 다른 산업 노동조합보다 제조업에서 더 만연하다.
사회적 동반자 관계의 경제적사회적 기반이 사라지는 상황에서 이 정책은 오늘날 대부분의 유럽 노동조합 관료들, 특히 유럽노조연맹(ETUC)에 의해서 계속 추진되면서 재앙을 낳고 있다. 따라서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노동시장에서 사회적 동반자 사이의 상담, 협상, 로비 등 이른바 사회적 대화 활동이 증가하는 것을 목격했다. 사회적 대화나 “EU 수준의 협상”은 일부에 의해 잘못 설명되고 있으며, 그것은 노동조합의 쟁의에 대한 권리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 그 성과가 왜 그리 빈약한지는 쉽게 이해될 수 있다.
국제적으로 국제자유노련이 사회적 동반자 정책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임이 UN 세계협약에 대한 성명에서 명백하게 드러났다. 그것은 무엇보다 유엔과의 공동성명이라고 선전되었는데 마치 유엔과 국제상공회의소(ICC)가 발표한 선언 같은 핵심 용어를 사용했다.
전 세계 시장에 전 세계적 규칙이 필요하다는 것이 동의되었다. 그 규칙의 목적은 세계화된 시장에 의해서 변화하고 있는 세계경제를 위한 다자간 규칙의 효과적 틀을 건설함으로써, 세계화의 이익이 점점 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 세계협약에 동의하는 회의는 기업과 노동의 사회적 파트너십 건설을 도와 이러한 프로세스에 기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기업 수준에서 유럽직장평의회(EWC)는 관료적인 대응을 해왔다. 평의회의 노동자 대표들은 비록 그들이 정보를 수집하고 노동조합의 협약을 만드는 데는 능숙할지 몰라도 초민족 기업의 노동자들에게 실제 영향을 줄 수 없다. 비록 시장의 힘이 확대되면서 영향력을 잃고 있지만 북유럽 국가나 독일에서 전후에 발전된 유사한 제도들이 이 평의회보다 영향력 있다.
유럽에서 무력한 사회적 대화 정책은 노동조합 운동을 수렁으로 내몰고 있다. 사용자의 공격에 맞서고 투쟁하기 위해 조합원의 동원에 바탕을 둔 노동조합의 정책은, 이런 지향의 경향이 (1995년 프랑스와 2002년 이탈리아에서) 민족적인 수준에서는 보였지만, 유럽 차원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조합 운동의 지배적인 분파들이 복지와 노동조건의 점진적 감축을 수용해온 것은 그 침울한 결과다. 협상을 통해서 노동조합은 점차 확대된 노동의 “유연성”을 수용했다. 우리는 다른 유럽 국가에서 질병수당과 연금의 감액, 실업수당의 축소, 공립학교보육원보건의료서비스에 대한 요금 인상, 비영리 주택계획의 폐지 같은 복지 지출의 축소를 보았다. 노동시간 규제의 약화, 초과노동 수당의 감소, 여러 산업에서 교대 노동의 재도입, 고용보장(안정성)의 악화, 임시 단기계약직 확대, 계약파견 노동자의 증가, 탈중앙화된 교섭 등을 포함하는 노동법과 노동 조약의 개악으로 노동조건이 나빠졌다. 이 변화의 중요한 결과는 노동조합이 조합원을 보호하지 못했기 때문에 노동자의 탈동원과 노동조합 조합원의 감소로 나타났다. 우익 인민주의 정당들의 성장은 노동조합 정책의 실패가 초래한 가장 나쁜 결과다.
전략적 고려 요소들
그렇다면 전 세계적 기업의 공격에 맞서기 위해서 노동조합 운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국제적인 회의에 만연한 급진적인 수사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하다. 2002년 11월에 이탈리아 플로랑스에서 열린 첫 번째 유럽사회포럼의 경험은 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거기서 최소한 두 가지 유형의 노동조합의 입장을 들을 수 있었다. 하나는 매우 전투적이고 비전형적인 소규모 집단의 입장이었다. 다른 입장은 유럽 노동조합의 주류로 대표되는 입장이었다. 예를 들어 독일 노동조합의 대표로 온 독일금속노조(IG Metall)는 주당 30시간 노동을 위해 투쟁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는 같은 노동조합이 바로 1년 전에 폭스바겐과의 협상에서 회사가 저비용의 동유럽 국가가 아니라 독일에 새로운 공장을 건설하도록 설득하기 위해서, 기존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후퇴시키는 데 동의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이러한 노동조합 대표들 중에 오늘날 유럽 노동조합 운동의 진정한 문제에 대해서 연설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적합한 노동조합 전략의 발전을 위한 기초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먼저 노동조합과 정면으로 대결할 수밖에 없는 초민족기업과 다른 자본의 이해에 대립적인 정책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일국적, 지역적, 국제적 노동조합 운동 내부에 이러한 입장에 동의하지 못하거나 모순적인 입장이 존재한다. 따라서 자기 조직을 다시 활성화하기 원하는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운동의 가장 건강한 부분에 바탕을 둔 새로운 동맹(연대)을 만들어야 한다. 비록 많은 예외가 있겠지만, 이러한 노동 조직은 주로 공공 부문, 운수, 일부 사적 서비스 부문, 그리고 노동조합 운동 각지의 몇몇 지역 지부에서 찾을 수 있다.
초민족기업에 맞서기 위해서 민족과 기업 경계를 가로지르는 동종 산업 노동자 사이의 협력 증진과 네트워크 건설이 필요하다. 국제적인 계급 연대의 발전을 위해서는 “다른 기업”보다 “우리” 기업을 선호하는 비즈니스 노동조합주의를 깨야 한다. 이 경향은 유럽보다 미국 노동조합 운동에 더 강한 전통이다. 하지만 탈급진화되고 탈정치화된 노동조합이 다른 나라의 기업과 경쟁하면서 일국 차원의 일자리 보호를 위해 “자신의” 사용자와 결탁했기 때문에 비즈니스 노조주의는 지난 20여 년 동안 유럽에서도 강화되었다. 이 협소하고 그릇된 전략은 반드시 생산과 분배의 민주적 통제를 전면에 내건 계급적 투쟁의 연대로 대체되어야 한다.
노동조합의 새로운 국제주의적 연대에 중요한 또 다른 투쟁은 공공 서비스의 지속적인 사유화에 저항하는 투쟁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유화와 싸우고 복지국가로 이룩한 성취를 방어하는 것이다. 공적 부분에 대한 사유화는 우리 사회에서 노동과 자본 사이의 권력 균형의 이동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진보적인 노동조합 전략의 또 다른 중요 부분은 사회적 동반자 이데올로기와 노동과 자본의 평화로운 타협 이데올로기와 같은 노동조합 관료의 지배적인 사고에 도전하는 것이다. 우리 운동 속에 있는 이 문제에 대한 어렵지만 우호적인 내부 토론을 해야 한다. 이 토론은 사회적 동반자 정책이 음모나 배신의 결과가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발전의 결과라는 이해에 바탕을 두어야만 한다. 우리에게는 노동과 자본의 역사적 타협이 어떻게 실현되었고, 왜 파괴되었는지를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분석이 필요하다. 현재의 변화에 대한 민중의 불만을 진지하게 생각해야한다. 민중의 불안과 불만족을 정치화하고, 노동조합으로 끌어들이고, 노동과 삶의 조건에 대한 정치적인 계급투쟁으로 나아가야한다. 이것이 민중이 우익 인민주의 정당에 동원되는 것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는 복지와 노동조건에 주목하고, 시장 경쟁에 노출된 경제 영역의 증가, 노동일과 노동과정에 대한 노동자 영향력의 축소 등으로 나타나는 노동의 야만화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이 또한 민중의 자신감과 관련된 것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자의 존엄성은 부르주아의 사고와 가치, 신자유주의 정책이 지배력을 행사하는 직장, 미디어, 공적 토론, 사회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체계적으로 공격받고 있다. 이것은 생산적 노동, 계급 관계, 계급 정체성이라는 관념들을 다시 주장함으로써만 변화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노동계급 외부에서 강요될 수는 없다. 그것은 사회적 투쟁을 통해서, 그 투쟁의 일부로서 발전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민주주의, 세계적 정의와 연대를 위해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새로운 세계적 운동과 연대해야 한다. 이 세계적 ‘운동들의 운동’은 비록 계급 관계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지만 현재의 노동조합이나 노동운동보다 정치적으로 급진적이며 체제 비판적이다. 노동조합 운동이 계급타협의 환상을 깨기 위해서 이러한 민중운동의 급진주의와 전투성이 필요하다. 만약에 연대가 건설적이고, 올바르게 발전된다면 두 운동은 서로를 강화하고 더 높은 수준의 투쟁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협약은 노동자운동의 이미 정해진 목표점이 결코 아니었다. 그것은 특정한 역사적 발전의 결과였으며, 노동과 자본 사이의 권력 균형의 거대한 이동의 결과로 가능한 것이었다. 러시아 혁명, 서구의 강력한 노동자운동과 노동조합, 제3세계의 강력한 해방운동, 2차 세계대전 후 자본주의 경제의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경제성장이 바로 비교적 안정적인 계급타협을 가능하게 했던 매우 특수한 전제조건이었다. 현재의 훨씬 더 불리한 권력 조건 속에서 새로운 계급타협, 새로운 사회협약을 지향하는 것은 망상이다.
따라서 우리의 지향은 사회협약과 복지국가를 넘어서야만 한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부활시킨 물질적 전제조건을 완전히 제거하는 사회변혁만이 노동자의 이해를 보호할 수 있다. 사회주의보다 못한 것으로 그것을 성취할 수는 없다.
* 아스뵈른 발은 노르웨이 지자체보건부문 노동조합(Fagforbundet)의 간부이고 국제운수노동자연맹(ITF) 도로운수노동조합 부문의 부위원장이다. 그는 복지국가를위하여(For The Welfare State)의 전국 책임자이다. 이 단체는 노동조합을 기반으로 구성된 전국적 연대체이며, 사유화와 탈규제에 대항하고 복지국가의 사회적 성취를 방어하기 위해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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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노동조합 운동은 수세적이다. 또한 심대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위기에 빠졌다. 현재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직접적인 경제적, 사회적 이해를 옹호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노동조합들은 모든 부문과 산업에서 기반을 잃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자본주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 있었던 노동조합 운동은 오늘날 공공연히 혼란을 겪고 있으며, 분명한 비전 없이 자신의 새로운 사회적, 정치적 지향에 대해 머뭇거리고 있다. 역설적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시대에 강력한 힘이 되었던 것과 똑같은 이론, 분석, 정책이 이제는 무거운 짐이 되었다. “사회협약” 이데올로기의 유산은 현재 노동조합 운동의 방황을 낳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공격
이러한 전개의 배경에는 현재 우리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변화가 있다. 이것이 글의 주제는 아니기 때문에 몇 가지 중요한 점만 언급하고자 한다. 지난 20여년 이상 우리는 신자유주의 세력의 거대한 공격에 직면했다. 자본가의 이해는 공세적이 됐으며, 우리는 노동과 자본 사이 권력균형의 거대한 이동을 보았다. 물론 초민족기업은 이러한 변화에 앞장섰다. 전후 노동조합과 사용자 사이의 평화로운 공존 정책인 노동과 자본의 “사회협약”은 파괴되었다. 자본은 사회협약으로부터 철수했으며 노동조직에 대해 점점 더 적대적인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초민족기업과 그들의 정치적 하수인들은 자신이 새롭게 성취한 권력을 심화하고 제도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는 변화의 중요한 부분이다. 이러한 노력은 주로 세계무역기구(WTO) 같은 국제기구들과 조약들, 유럽연합(EU) 같은 지역적 권력구조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 기구들은 지방정부나 중앙정부보다 덜 민주적이기 때문에 기업권력을 제도화하기 위해서 가장 유용하고 효율적인 도구임이 입증되었다.
이어지는 분석은 EU가 오늘날 유럽에서 신자유주의 사회경제 모델을 제도화하는 통로가 되었다는 관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새로운 권력균형의 기초 위에 건설된 EU와 다른 지역적초민족적 제도들은 노동자들이 현재의 권력균형을 자신들 쪽으로 이동시킬 때까지 개선할 수도, 민주화할 수도, 패퇴시킬 수도 없다. 이 권력균형을 다시 이동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조합 운동이 민중과 노동자계급의 권력을 조직하는 것을 자신의 장기적인 주요 과제로 삼아야할 것이다.
새로운 환경, 오래된 정책
불행히도 노동자계급의 권력을 조직하는 것은 오늘날 유럽 노동조합 운동의 계획이 아니다. 노동자운동 측의 역설은 노동조합이 활동하는 경제적정치적 여건은 완전히 변화했는데도 노동조합 대부분이 여전히 사회협약 정책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소위 세계화가 의도적인 전략과 새로운 권력계급관계의 결과가 아니라, 기술적이고 조직적인 변화의 필연적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 입장은 분명히 마가렛 대처의 악명 높은 말 “대안은 없다”와 비슷하다. 그들은 민족적 수준의 사회협약 정책을 지역적이고, 세계적인 차원으로 확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들의 전략은 사용자조직, 국가, 초민족 기구들과의 “사회적 대화”이고, 국제무역협정과 무역기구에 노동기준(무엇보다 강제 노동의 금지, 결사의 자유와 단체협상의 권리보장, 고용차별 금지 등의 ILO 협정)을 공식적으로 도입하기 위한 캠페인이다. 또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행동규범과 초민족기업과의 기본협약 추진이다. 이 후자와 같은 자발적이고, 비구속적이고, 비강제적인 행동규범은 초민족기업 자신들에 의해 발전되었다. 지금까지 행동규범은 기업 행위에 대한 실질적 효과가 없었고, 초민족기업들이 자신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이미지에 대응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활용되었다.
“사회적 대화” 전략은 권력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무관하게 추진되며, 사회변화를 위해 계급과 민중 권력을 조직할 필요성에 대한 인식 없이 추구된다. 현재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럽 노동자운동의 역사를 더 긴밀히 살펴봐야 한다. 특히 우리가 진정으로 노동자운동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위기를 이해하기 원한다면, 사회협약 정책의 역사와 영향은 결코 긍정적으로 과대평가할 수 없다.
노동과 자본의 역사적 타협
20세기 동안에 서유럽 노동조합 운동은 점차 자본주의에 온건하게 적응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이 적응은 1930년대 동안 유럽의 일부, 주로 북유럽 노동조합 운동이 사용자조직과 협정에 이르자 처음으로 제도화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비슷한 과정이 나머지 서유럽 대부분에서 발생했다.
노동과 자본 사이에 형성된 사회협약은 복지국가의 발전과 임금과 노동조건의 점진적인 개선의 기초가 되었다. 노동과 자본이 대립했던 기간이 끝나고 사회는 사회적 평화, 2자 협상이나 3자 협상(노동, 사용자, 국가), 정책합의의 국면으로 들어갔다. 사회협약 정책은 복지, 임금, 노동조건의 측면에서 중요한 성과를 이끌었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의 거대한 지원을 얻었다. 그 결과 노동자운동의 더 급진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인 부분은 점차 주변으로 밀려났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는 노동자운동의 탈정치화와 탈급진화, 노동조합 운동의 관료화를 야기했다. 사민주의 정당들의 역사적 역할은 계급타협 정책을 관리하는 것이 되었다. 노동조합에 만연한 현재의 곤란이 유럽 사민주의 정당이 직면한 문제의 반영이라는 것은 놀랍지 않다.
노동과 자본 사이의 사회적 동반자 관계가 노동조합과 노동자운동의 현실적 힘의 결과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사용자조직은 자신이 노동조합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동조합을 노동자의 대표로 인정하고 협상해야만 했다. 즉 노동과 자본의 온건한 적응은 강력한 노동자운동에 달려있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가 20년 이상 안정적이고 높은 경제성장을 경험했다는 것이 또 다른 주요 요인이다. 이것은 노동, 자본, 공적 복지 사이의 배당금 분배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사회협약의 결정적인 요소는 자본과 시장에 대한 민족적 규제다. 자본통제는 모든 나라에서 일상적이었다. 노동과 자본의 타협은 민족적 국경 내에서 평화롭고 질서정연한 경로를 만들었다. 그 주요 결과는 노동조합 운동이 매우 일국 지향적이 된 것이다. 비록 국제주의적 정치 수사가 일부 남아있더라도 노동조합 운동의 국제주의는 (ILO와 같은) 국제기구를 통한 외교의 일종으로 타락했다. 심지어 조합원의 이해나 필요와 거의 또는 아예 관계가 없는 다양한 노동조합 관광으로 타락했다.
사회주의적 수사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 운동에게 사회협약은 생산의 자본주의적 조직,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노동과정에 대한 사용자의 권리를 수용하는 것을 의미했다. 복지와 노동조건을 얻기 위한 교환 속에서 노동조합 연맹들은 산업평화와 임금협상 억제를 약속했다. 단순히 말하면, 복지국가와 점차 나아진 생활조건은 노동자운동이 사회주의 전략을 포기한 대가로 얻은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사회협약이 노동자계급을 완전히 탈정치화하고 탈급진화하는 데 이바지한, 매우 특수한 역사적 맥락 속의 단기적인 성과라고 결론내릴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소련과 동유럽에 경쟁적인 체제가 존재한 것이 중요한 특징이다.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지적한 것처럼 이것이 서방의 자본가들이 타협을 수용하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타협에 바탕을 두고 대부분의 주요 복지 개혁과 제도는 2차 세계대전 후 30년 동안 발전되었다. 즉, 1930년대 경제적사회적 위기와 전쟁을 배경으로 발전한 급진적 노동운동은 그의 대립 상대방인 자본가의 의도적인 전략에 응한 것이다. 자본가들은 자발적으로 사회협약을 수용했고, 노동자운동의 사회경제적 요구들에 양보 조치를 취했다. 이는 자본가들이 시간을 벌고 노동자운동의 사회주의 정서를 꺾기 위해서였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봤을 때 우리는 이러한 기업의 전략이 꽤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운동 내부의 완전한 분업은 계급 타협의 두드러진 부작용이다. 노동조합 운동은 협상을 통해서 노동시장 환경을 규제했다. 반면 실업자를 위한 사회보장은 의회의 사민주의 정당에게 맡겨졌다. 분업은 사민주의 정당이 이전의 개량주의적 정치로부터 후퇴한 것처럼, 노동조합이 더욱 협소한 경제주의로 후퇴하게 한 배경이었고, 오늘날 노동조합의 약화를 낳았다.
사회협약의 이데올로기
사회협약의 시대 동안에 이러한 기업전략은 노동자운동이 판단력을 잃게 했다. 생활조건과 노동조건의 지속적인 개선이라는 20년 간의 실제 경험으로 공유된 견해는, 계급투쟁과 사회적 대립을 감내하지 않고 사회 진보와 보통 사람들에게 상대적으로 공정한 부의 분배를 이루는 길을 찾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가 높은 수준의 문명에 도달했다는 생각이다. 점진적인 개혁을 통해서 노동자운동은 경제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증대했다. 위기 없는 자본주의는 현실이 되었다. 1930년대 같은 경제위기, 대량실업, 사회적 좌절, 민중의 고통은 더 이상 없을 것 같았다. 모든 사회적 변화는 전진적인 것이었다. 거의 대다수의 노동운동에게 이것은 사회주의로 가는 개량주의적 길이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현실의 사회적 성취는 유럽 노동조합 관료에게 뿌리 깊게 남은 사회적 동반자 이데올로기의 물질적인 기반을 형성했다.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1980년대 초반 내가 노르웨이 노동조합연맹의 교육센터에서 기초적 노동조합 연수에 참가했을 때 처음으로 이러한 사회적 동반자 이데올로기가 공공연히 표현되는 것을 들었다. 거기서 나는 20세기의 첫 1/3은 총파업, 직장폐쇄, 노동자조직의 파업에 대한 경찰과 군사력의 사용 등 노동과 자본의 강력한 갈등이 특징이었다고 배웠다. 이 파괴적인 기간의 끝(1930년대)에 노동자계급은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오직 적대적인 정책을 포기하고, 노동조합 운동이 완전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시작하자 노동조건의 개선, 임금인상, 복지개혁과 같은 진정한 진보가 성취되었다. 즉 사용자와의 대립은 파괴적일 뿐이고, 평화로운 사회적 대화가 나아갈 방향이다. 이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1980년대 초반에 노동조합 교육센터에서 가르치던 내용이다.
이 분석은 그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리다. 그러나 사회협약이 붕괴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오류의 귀결은 노동조합 운동에게 지금 더 위험하다. 그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계급 타협의 기간 동안 복지와 노동조건의 큰 성취가 앞선 시기 투쟁의 결실이었다는 점을 간과한다. 진보는 바로 20세기의 첫 번째 기간 동안 러시아혁명을 포함하여 대립과 강력한 계급투쟁으로 노동과 자본 사이의 권력 균형을 이동시켰기 때문에 가능했다. 즉 앞선 시기의 적대적 투쟁들이 훗날 평화적 협상을 통해 실현된 성과를 가능하게 했다.
사회협약의 붕괴
그러나 계급 타협은 그것의 존속이 자본주의 경제의 안정적인 고성장에 의존하기 때문에 취약한 구조였다. 계급타협은 1970년대 초반 발생한 서구 자본주의의 경제위기 심화로 점차 파괴되었다. 위기는 무엇보다 자본가가 비용 축소를 위해 노동조합의 권리, 임금, 공적 지출을 공격하게 했다. 자본가들은 바로 복지국가의 기초를 파괴했다.
탈급진화되고 탈정치화된 노동조합과 노동자운동은 이러한 변화에 매우 당황했다. 사용자들은 협상장에서 갑자기 훨씬 더 적대적으로 나왔다. 이전에 주로 임금과 노동조건의 향상에 관한 것이었던 협상은 이제 이미 존재하는 성과와 규제에 대한 공격을 포함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계급 타협과 사회적 평화의 환경에 젖어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공격을 준비하지 못했다. 사회협약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신자유주의의 공격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노동조합 관료는 여전히 수동적이었고, 노동조합 운동은 방어적일 수밖에 없었다.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이해를 보호할 힘이 없음이 증명되자 여러 국가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완전히 떠났다.
따라서 1980년대는 몇몇 서유럽 주요국가들의 조직률(노동인구의 조직화) 통계가 보여주듯이 노동조합운동의 완전한 실패로 대표된다(표1을 보라).
<표 1> 전체 노동자 중 조직된 노동자의 비율(%)
1985 1995
프랑스 15 9
이탈리아 48 44(1994)
영국 59(1979) 31
스페인 27(1980) 19(1994)
독일(서독) 35 29(1993)
* 자료 : A Wahl, et. al, “‘Patide a lære fransk’: Strategi for motsand,” in F. Gustavsen and
M. Thorkildsen eds., Markedets vidunderlige verden (Oslo: John Griegs Forlag, 1998).
영국의 광산노동자와 같은 소수의 노동조합은 신자유주의의 공격에 맞섰지만 패배했다. 영국의 경우 패배의 중요한 원인은 대처정권이나 광산회사의 광포한 공격보다는 오히려 전투적인 노동자 쟁의행위를 사회협약의 정책합의를 더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한 영국노총(TUC)의 관료다. 수년이 흐른 뒤에 TUC는 광부 파업을 지지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다고 시인했지만 피해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놀랍게도 TUC는 사회협약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다.
1990년을 전후로 동유럽의 명령 경제가 붕괴하자 서구자본주의에 대한 유일한 다른 선택지가 사라졌다. 자본주의는 모든 곳에서 승리했고 사용자에게 노동자운동과의 타협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자본가 세력은 이제 최소화된 규제 속에서 자신의 협소한 경제적정치적 이해를 추구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서유럽 전체에서 계급 타협(또는 합의 모델)이 붕괴됐거나 붕괴되고 있는 이유다. 타협을 위한 역사적경제적 전제조건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그 합의의 가장 중요한 결과인 복지국가에 대한 압력도 증가하고 있다.
오늘날 노동조합 지도부의 지배적인 분파는 권력관계에 대한 이러한 분석을 이해하지 못한다. 약 20년 전 신자유주의 공격이 시작되고 사용자들이 사회적 동반자 정책을 점차 파괴할 때 대부분의 노동조합 관료의 대응은 정책합의의 지속뿐이었다. 일부 노동조합은 적대적인 사용자에게 사회협약으로 돌아오라고 거의 구걸했다. 합의 정책을 강력한 일국 지향적 노동조합 운동이 지지했다. 노동조합의 협소한 일국 지향과 사회적 동반자 이데올로기는 공세적인 자본의 이해에 맞서는 방향으로 스스로 변화하는 것을 막고, 국제적으로 경쟁하는 “민족”자본과 동맹을 맺고 결과적으로 종속되는 쪽으로 노동조합 운동을 이끌었다. 독일에서 “산업입지 경쟁”은 독일 기업과 노동조합의 동맹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이 다른 나라와 경쟁하는 독일 국가를 지원하는 것도 의미한다.
노동조합 운동의 대다수는 계급분석과 권력균형 평가에 바탕을 둔 전략으로 변화하기보다는, 비즈니스 노동조합주의와 법적 형식주의에 더 빠져들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일자리를 위한 통합”(unity for work)을 목표로 한 독일 노동조합의 투쟁은 사용자와의 민족적 동맹 정책의 좋은 사례다. 이것은 사회협약의 형식적 혁신을 위해 제안되었다. 이것은 독일 노동조합연맹이 제안했는데 일자리 보장을 대가로 열악한 노동조건을 수용할 것을 제안했다. 사용자는 이를 거부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국제노동조합 운동의 지도자들이 지난 10년 이상 추구했던 활동, 즉 WTO에 최소한의 노동기준을 도입하기 위한 협소한 투쟁은 노동과 자본 사이의 권력균형에 대한 분석이 없는 법적 형식주의의 완전한 사례다.
일국적국제적 수준의 노동조합 관료들은 여전히 그들 스스로를 노동과 자본 사이의 조정자로 생각한다. 오늘날은 자본가 세력이 공세적이며 기업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국제 민중의 정의와 연대 운동(justice and solidarity movement)이 발전하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때에 국제노동조합 운동은 스스로를 운동과 기업 사이의 조정 세력으로 정의하려 한다. 이것은 스위스의 다보스에서 열리는 정치경제 엘리트들의 세계경제포럼(WEF)에 대항하는, 2003년 1월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WSF)에서 명백해졌다. 당시 국제노동조합 운동은 “세계화의 민주화: 2003년 세계사회포럼과 세계경제포럼에 대한 노동조합의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우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제노동조합 운동은 포르투 알레그레와 다보스에 같은 의사를 전달한다. 전 세계적 수준에서 발전을 달성하고,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전망 없이 불안정과 빈곤 속에서 사는 수백만 명의 노동자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비전, 정치적 의지, 공식적 법률적 자격이 결합되어야 한다. 그것은 자원의 지원과 서면협약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또 우리의 공공선, 권리, 민주주의를 증진하는 관리 체계를 필요로 한다. 그것은 효율적인 민주적 과정과 대화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세계경제포럼에 세계적 사회정의가 필요하다고 압력을 넣을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세계사회포럼에 모든 노동자의 이해 속에서 민주화된 세계화를 추구하는 건설적인 방법을 찾는 것에 기여할 것이다.
즉 대부분의 국제노동조합 조직들은 스스로가 기업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새로운 운동에 속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새로운 운동이 정치적으로 너무 급진적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국제자유노련(ICFTU)이나 국제산별노련(Global Unions)은 그들이 세계사회포럼에 갔을 때 다른 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 회의와 포럼의 부수적인 회의에만 참석했다. 동시에 그들은 세계경제포럼에 똑같이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했다. “우리는 대부분을 항상 대화를 통해서 성취했습니다”는 말이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권력관계와 괴리된 정책들
권력관계 분석과 전략을 위한 준비가 전혀 없다는 것은 노동조합에 의해 국제적으로 진행된 교육에서 다시 명백해졌다. 일군의 서유럽 노동조합과 연맹은 연대 사업으로 동유럽과 개발도상국의 자매 노동조합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 교육에서 서유럽 노동조합은 자신의 큰 성과라고 생각한 사회협약을 유포했다. 그들은 세계의 다른 노동조합에게 사회적 동반자 모델을 추구하는 것이 이롭다는 확신을 주려고 노력했다. 현재의 권력관계에서 이러한 교육은 사용자의 공세적이고 적대적인 공격을 받고 있는 동유럽과 개발도상국의 노동조합에게 해롭다.
이러한 모든 변화가 공공 부문이나 운수산업 노동조합보다 제조업 노동조합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조업이 국제경쟁에 더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쇠퇴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우경화는 다른 산업 노동조합보다 제조업에서 더 만연하다.
사회적 동반자 관계의 경제적사회적 기반이 사라지는 상황에서 이 정책은 오늘날 대부분의 유럽 노동조합 관료들, 특히 유럽노조연맹(ETUC)에 의해서 계속 추진되면서 재앙을 낳고 있다. 따라서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노동시장에서 사회적 동반자 사이의 상담, 협상, 로비 등 이른바 사회적 대화 활동이 증가하는 것을 목격했다. 사회적 대화나 “EU 수준의 협상”은 일부에 의해 잘못 설명되고 있으며, 그것은 노동조합의 쟁의에 대한 권리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 그 성과가 왜 그리 빈약한지는 쉽게 이해될 수 있다.
국제적으로 국제자유노련이 사회적 동반자 정책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임이 UN 세계협약에 대한 성명에서 명백하게 드러났다. 그것은 무엇보다 유엔과의 공동성명이라고 선전되었는데 마치 유엔과 국제상공회의소(ICC)가 발표한 선언 같은 핵심 용어를 사용했다.
전 세계 시장에 전 세계적 규칙이 필요하다는 것이 동의되었다. 그 규칙의 목적은 세계화된 시장에 의해서 변화하고 있는 세계경제를 위한 다자간 규칙의 효과적 틀을 건설함으로써, 세계화의 이익이 점점 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 세계협약에 동의하는 회의는 기업과 노동의 사회적 파트너십 건설을 도와 이러한 프로세스에 기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기업 수준에서 유럽직장평의회(EWC)는 관료적인 대응을 해왔다. 평의회의 노동자 대표들은 비록 그들이 정보를 수집하고 노동조합의 협약을 만드는 데는 능숙할지 몰라도 초민족 기업의 노동자들에게 실제 영향을 줄 수 없다. 비록 시장의 힘이 확대되면서 영향력을 잃고 있지만 북유럽 국가나 독일에서 전후에 발전된 유사한 제도들이 이 평의회보다 영향력 있다.
유럽에서 무력한 사회적 대화 정책은 노동조합 운동을 수렁으로 내몰고 있다. 사용자의 공격에 맞서고 투쟁하기 위해 조합원의 동원에 바탕을 둔 노동조합의 정책은, 이런 지향의 경향이 (1995년 프랑스와 2002년 이탈리아에서) 민족적인 수준에서는 보였지만, 유럽 차원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조합 운동의 지배적인 분파들이 복지와 노동조건의 점진적 감축을 수용해온 것은 그 침울한 결과다. 협상을 통해서 노동조합은 점차 확대된 노동의 “유연성”을 수용했다. 우리는 다른 유럽 국가에서 질병수당과 연금의 감액, 실업수당의 축소, 공립학교보육원보건의료서비스에 대한 요금 인상, 비영리 주택계획의 폐지 같은 복지 지출의 축소를 보았다. 노동시간 규제의 약화, 초과노동 수당의 감소, 여러 산업에서 교대 노동의 재도입, 고용보장(안정성)의 악화, 임시 단기계약직 확대, 계약파견 노동자의 증가, 탈중앙화된 교섭 등을 포함하는 노동법과 노동 조약의 개악으로 노동조건이 나빠졌다. 이 변화의 중요한 결과는 노동조합이 조합원을 보호하지 못했기 때문에 노동자의 탈동원과 노동조합 조합원의 감소로 나타났다. 우익 인민주의 정당들의 성장은 노동조합 정책의 실패가 초래한 가장 나쁜 결과다.
전략적 고려 요소들
그렇다면 전 세계적 기업의 공격에 맞서기 위해서 노동조합 운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국제적인 회의에 만연한 급진적인 수사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하다. 2002년 11월에 이탈리아 플로랑스에서 열린 첫 번째 유럽사회포럼의 경험은 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거기서 최소한 두 가지 유형의 노동조합의 입장을 들을 수 있었다. 하나는 매우 전투적이고 비전형적인 소규모 집단의 입장이었다. 다른 입장은 유럽 노동조합의 주류로 대표되는 입장이었다. 예를 들어 독일 노동조합의 대표로 온 독일금속노조(IG Metall)는 주당 30시간 노동을 위해 투쟁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는 같은 노동조합이 바로 1년 전에 폭스바겐과의 협상에서 회사가 저비용의 동유럽 국가가 아니라 독일에 새로운 공장을 건설하도록 설득하기 위해서, 기존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후퇴시키는 데 동의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이러한 노동조합 대표들 중에 오늘날 유럽 노동조합 운동의 진정한 문제에 대해서 연설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적합한 노동조합 전략의 발전을 위한 기초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먼저 노동조합과 정면으로 대결할 수밖에 없는 초민족기업과 다른 자본의 이해에 대립적인 정책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일국적, 지역적, 국제적 노동조합 운동 내부에 이러한 입장에 동의하지 못하거나 모순적인 입장이 존재한다. 따라서 자기 조직을 다시 활성화하기 원하는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운동의 가장 건강한 부분에 바탕을 둔 새로운 동맹(연대)을 만들어야 한다. 비록 많은 예외가 있겠지만, 이러한 노동 조직은 주로 공공 부문, 운수, 일부 사적 서비스 부문, 그리고 노동조합 운동 각지의 몇몇 지역 지부에서 찾을 수 있다.
초민족기업에 맞서기 위해서 민족과 기업 경계를 가로지르는 동종 산업 노동자 사이의 협력 증진과 네트워크 건설이 필요하다. 국제적인 계급 연대의 발전을 위해서는 “다른 기업”보다 “우리” 기업을 선호하는 비즈니스 노동조합주의를 깨야 한다. 이 경향은 유럽보다 미국 노동조합 운동에 더 강한 전통이다. 하지만 탈급진화되고 탈정치화된 노동조합이 다른 나라의 기업과 경쟁하면서 일국 차원의 일자리 보호를 위해 “자신의” 사용자와 결탁했기 때문에 비즈니스 노조주의는 지난 20여 년 동안 유럽에서도 강화되었다. 이 협소하고 그릇된 전략은 반드시 생산과 분배의 민주적 통제를 전면에 내건 계급적 투쟁의 연대로 대체되어야 한다.
노동조합의 새로운 국제주의적 연대에 중요한 또 다른 투쟁은 공공 서비스의 지속적인 사유화에 저항하는 투쟁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유화와 싸우고 복지국가로 이룩한 성취를 방어하는 것이다. 공적 부분에 대한 사유화는 우리 사회에서 노동과 자본 사이의 권력 균형의 이동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진보적인 노동조합 전략의 또 다른 중요 부분은 사회적 동반자 이데올로기와 노동과 자본의 평화로운 타협 이데올로기와 같은 노동조합 관료의 지배적인 사고에 도전하는 것이다. 우리 운동 속에 있는 이 문제에 대한 어렵지만 우호적인 내부 토론을 해야 한다. 이 토론은 사회적 동반자 정책이 음모나 배신의 결과가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발전의 결과라는 이해에 바탕을 두어야만 한다. 우리에게는 노동과 자본의 역사적 타협이 어떻게 실현되었고, 왜 파괴되었는지를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분석이 필요하다. 현재의 변화에 대한 민중의 불만을 진지하게 생각해야한다. 민중의 불안과 불만족을 정치화하고, 노동조합으로 끌어들이고, 노동과 삶의 조건에 대한 정치적인 계급투쟁으로 나아가야한다. 이것이 민중이 우익 인민주의 정당에 동원되는 것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는 복지와 노동조건에 주목하고, 시장 경쟁에 노출된 경제 영역의 증가, 노동일과 노동과정에 대한 노동자 영향력의 축소 등으로 나타나는 노동의 야만화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이 또한 민중의 자신감과 관련된 것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자의 존엄성은 부르주아의 사고와 가치, 신자유주의 정책이 지배력을 행사하는 직장, 미디어, 공적 토론, 사회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체계적으로 공격받고 있다. 이것은 생산적 노동, 계급 관계, 계급 정체성이라는 관념들을 다시 주장함으로써만 변화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노동계급 외부에서 강요될 수는 없다. 그것은 사회적 투쟁을 통해서, 그 투쟁의 일부로서 발전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민주주의, 세계적 정의와 연대를 위해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새로운 세계적 운동과 연대해야 한다. 이 세계적 ‘운동들의 운동’은 비록 계급 관계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지만 현재의 노동조합이나 노동운동보다 정치적으로 급진적이며 체제 비판적이다. 노동조합 운동이 계급타협의 환상을 깨기 위해서 이러한 민중운동의 급진주의와 전투성이 필요하다. 만약에 연대가 건설적이고, 올바르게 발전된다면 두 운동은 서로를 강화하고 더 높은 수준의 투쟁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협약은 노동자운동의 이미 정해진 목표점이 결코 아니었다. 그것은 특정한 역사적 발전의 결과였으며, 노동과 자본 사이의 권력 균형의 거대한 이동의 결과로 가능한 것이었다. 러시아 혁명, 서구의 강력한 노동자운동과 노동조합, 제3세계의 강력한 해방운동, 2차 세계대전 후 자본주의 경제의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경제성장이 바로 비교적 안정적인 계급타협을 가능하게 했던 매우 특수한 전제조건이었다. 현재의 훨씬 더 불리한 권력 조건 속에서 새로운 계급타협, 새로운 사회협약을 지향하는 것은 망상이다.
따라서 우리의 지향은 사회협약과 복지국가를 넘어서야만 한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부활시킨 물질적 전제조건을 완전히 제거하는 사회변혁만이 노동자의 이해를 보호할 수 있다. 사회주의보다 못한 것으로 그것을 성취할 수는 없다.
* 아스뵈른 발은 노르웨이 지자체보건부문 노동조합(Fagforbundet)의 간부이고 국제운수노동자연맹(ITF) 도로운수노동조합 부문의 부위원장이다. 그는 복지국가를위하여(For The Welfare State)의 전국 책임자이다. 이 단체는 노동조합을 기반으로 구성된 전국적 연대체이며, 사유화와 탈규제에 대항하고 복지국가의 사회적 성취를 방어하기 위해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