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8.5-6.82호

지역에서 시작하는 교사운동 새싹틔우기

최고봉 | 회원
교사운동의 지역운동에 대한 고민

모두가 ‘운동의 위기’를 말하는 시대다. 교사운동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다만 다른 주체, 영역보다 탄압이 덜 했고 싸움이 가능하다는 것이 다르다고 할까. 하지만 교사들도 지금의 위기를 예감하고 있다. 몇 해 전 전교조 조직진단에서는 고령화, 활동가 축소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다. 5~10년 후 전교조는 일교조처럼 될지 모른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왔다.
교사운동이 처한 위기는 교육문제에 대한 치열한 공방에서도 잘 드러난다. 김영삼 정권에서 시작하여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통해 본격적으로 도입된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은 교육을 ‘정글의 법칙’이 통용되는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당연히 전교조는 강력한 저항을 했다. 그런데 올바른 입장에도 불구하고, 전교조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보수언론과 보수단체의 매도야 그렇다 치더라도, 시민사회단체와 진보적인 단체 회원들도 교사운동을 비난하는 것은 심각한 일이었다. 이와 같은 비난을 단지 ‘교육과 선전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치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지난 십 수 년 간 패배와 전교조가 고립된 운동을 해왔던 결과로 보는 것이 옳다.
요즘 지역운동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1990년대 말에도 ‘다시 지역에 주목하자’고 했던 사람들이 있다. 그 당시는 1970~80년대에 지역사회에 형성된 민중운동이 속속 와해되거나 약화되는 국면이었다. 따라서 지역에 주목하자는 취지가 오늘날과 같이 지역사회, 지역민의 생활에 밀착된 운동을 하자는 것보다는 붕괴되는 지역운동을 살리는데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지역운동에 주목하자’는 주장은 운동을 방향을 바꾸자는 것이다. 본인도 지역운동에 주목하자는 주장에 적극 찬성하면서, 교사운동의 새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교사운동의 위기 원인은 여러 가지 측면이 있다. 대체로는 다른 사회운동이 위기 원인과 비슷하다. 다만 교육과 전교조 운동이 갖는 특수한 측면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글에서 이 모든 이야기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의 취지는 지역수준에서 교사운동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고민을 나누는 것이니 말이다.
좀 거칠게 말하면, 오늘날 살아남은 운동단체들 대부분이 정책과 전략, 이론 등 거시담론에 주목하고 있다. 사회진보연대와 같은 사회단체, 주요 노동단체들도 예외는 아니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자연스레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지금, 정책과 담론을 통해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8만 조합원이 모두 정책비판을 주로 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전교조와 전교조 내부의 활동가조직들이 모두 교육당국의 정책을 비판하는데 힘을 쏟을 필요는 없다. 이와 같은 운동은 전교조 본부와 지부 수준에서 주로 해야 할 활동이다.(물론 정책 비판을 지회나 분회, 개인이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주로’ 해야 할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교사운동의 상당 부분은 정책비판과 항의집회로 이뤄져 있다. 모두가 본부, 지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사조직, 그 중에서 전교조는 지역사회에서 매우 유력한 조직이다. 대부분의 지역에 전교조와 공무원노조, 농민회는 있다. 대공장이 없는 지역에서 이들 조직은 굉장히 큰 조직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신생노조인 공무원노조는 비교적 취약하다. 농민회는 비교적 활동력이 있지만, 그 영향력은 ‘농민’에 한정된다. 전교조는 구성원이 교사이기 때문에 지식인으로 존중받지만 활동자체가 교사와 교육 사안에 한정되고, 교사를 넘는 활동 자체가 부족하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전교조 지회는 다른 노조나 사회단체와 접촉하지 않는다. 따라서 전교조 지회는 지역에 존재하지만 지역과 단절된 조직이다. 고립된 전교조는 혼자 대처하기 힘든 사안이 생겨도 지지와 엄호를 받지 못한다. 가끔은 심각한 감정대립도 발생한다.
결성 당시의 전교조가 공안탄압에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내부의 견결함 외에도 외부의 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각 지역에는 진보적인 단체들이 여럿 있었다. 그리고 초창기 전교조는 지역단체의 지원을 받는 입장이었다. 세월이 지나는 동안 교원노조는 합법화되었고, 재정기반은 다른 단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튼튼하다.(물론 조합원 감소와 조합비 인하로 인해 전교조도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고 있다.) 이에 비해 다른 단체들은 여러 가지 조건으로 약화되거나 해산했다. 이제는 지역에 과연 지역차원의 운동이 있을까 의심이 드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상황이 되기까지 교사운동은 과연 무엇을 했을까?

전교조의 조건

전교조는 그 어떤 노조보다 ‘정규직’ 노조의 성격이 강하다.(노조가 아니라 ‘정규직’에 방점이 찍혀 있다.) 교사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일반적인 노동자에 비해 상당히 높다. 조합원은 신자유주의 정책이 추진되면서 불안해 하지만, 현재로는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투쟁에 나설 만큼 절실하지 않다. 더군다나 조합원의 관심이 본인의 노동이 아니라 교육에 맞춰져 있어 전교조는 노조로서의 성격도 약하다. (노조로서의 성격이 약하다는 것은 단점일 수도 있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강점일 수도 있다. 사회단체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교사운동이 학교가 아니라 지역 단위로 이뤄진다는 것은 방향 전환에 유리한 점이다. 학교 대부분은 규모가 작고, 교사들은 교실에 갇혀 있다. 따라서 학교 단위로 활동하는 것은 쉽지 않다. 중고등학교라면 조금 수월하겠지만, 초등학교나 유치원에서 근무하는 조합원은 제약이 많다. 그래서 전교조에서 가장 중요한 조직은 주로 시군으로 편제되는 지회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같은 지역에 초등과 중등이 분리되어 지회가 구성되기도 한다.
전교조 시군 지역 지회는 100~200명 정도의 조합원이 가입되어 있다. 지회에는 집행위와 운영위가 있고, 소모임이 있는 경우도 있다. 그 동안 전교조 지회는 교사운동에서는 주역이었지만, 지역사회에서는 붕 뜬 것 같았다. 지역사업 자체가 별로 없으니 지역에서 존재감이 없다가 5월 5일 어린이날 행사를 하면서 주목을 받는다. 전교조를 비난하는 사람들조차 이날만은 아이들을 데리고 어린이날 행사에 참가한다. 전교조 지회가 총력을 기울이고, 대체로 지역 단체들과도 같이 준비하다보니 평가가 좋다. 그러나 어린이날 행사는 일회적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좀 더 앞선 고민을 가진 지회에서는 계절제 대안학교, 어린이 캠프 등을 준비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지역시민사회단체와의 교류, 지역운동을 하기보다는 ‘교육’에 무게가 실린다.
‘교사운동이 폐쇄성을 딛고 지역에 밀착한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부분의 교사 활동가들은 동의한다. 다만 ‘지역운동’이 무엇인가, 또 교사들이 지역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충분한 논의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의견이 분분하다. 아무래도 지금까지의 관성이 있어 방향 전환이 더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교조 봉화지회의 실험

지역에 밀착된 운동이라는 측면에서 경북지부 봉화지회의 활동 사례는 의미가 있다. 봉화지회라고 다른 지회보다 객관적인 여건이 좋은 것은 아니다. 봉화지회 역시 조합원의 10~20%만이 지회 사업에 참여를 한다. 봉화가 생활근거지인 조합원도 생각보다 많지 않다. 봉화지회 조합원 중 상당수는 주거환경, 교육환경이 나은 영주에 거주한다. 더군다나 최근 신규 발령 교사가 적다보니 신규 조합원도 거의 없다. 자연스레 조합원의 연령대가 높아졌다.
그래도 전교조 봉화지회는 굉장히 모범적인 지회이다. 연가투쟁으로 인해 부당전보가 추진될 당시 봉화에서 징계 대상자로 언급된 이들만 해도 여럿이었다. 다양한 입장을 가진 조합원이 섞여 있지만, 봉화지회의 입장은 전교조 경북지부 내에서도 원칙적이기로 유명하다.
현재 전교조 봉화지회 안에는 두 개의 소모임이 있다. 하나는 ‘대안교육모임’이라는 이름의 책읽기 모임이고, 다른 하나는 풍물모임이다. 책읽기 모임은 지회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조합원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졌다. 풍물모임은 젊은 교사들이 주로 활동 중이다. 이중 책읽기 모임이 지역운동과 관련된 실험을 하고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봉화지회 책읽기 모임은 현재 7~8명의 회원이 참가하고 있다. 원래는 대안교육 연수를 받은 조합원들이 고민을 나누기 위해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안교육에 한정되지 않고 철학과 신자유주의 비판, 공동체교육 등 다양한 주제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현재 책읽기 모임에는 전교조 봉화지회 조합원, 타 지회 조합원, 봉화지역자활센터 관장, 그리고 봉화청소년수련원 지도사로 근무하는 분이 참가한다. 책읽기 모임은 전교조 봉화지회 산하의 소모임이지만 비조합원도 참가할 수 있는 ‘열린 조직’이다.
형식에서 뿐만 아니라, 사업에서도 주목할 부분이 있다. 전교조 봉화지회가 ‘예비교사 운동모임 페다고지’와 함께 매년 여름에 개최하는 계절제 대안캠프인 <더불어 숲>은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참가했던 어린이와 청소년은 내게 ‘올해 <더불어 숲>은 언제, 어디서 열리냐’고 묻는다. 이 행사에 자녀를 참가시켰던 부모들은 전교조 봉화지회에 대해 높은 신뢰를 보낸다.
또한 책읽기 모임 회원들은 지난 겨울 열린 ‘다문화 가족 자녀 겨울캠프’에 참가했다. 봉화지역자활센터가 주최하고 전교조 봉화지회가 후원한 행사였지만, 실질적은 프로그램 운영은 책읽기 모임 회원들이 했다. 현재는 책읽기 모임 이름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에서 ‘교사가 아닌 사람들’과 함께 청소년 모임을 만드는 노력을 하고 있다. 애초에는 저소득층을 위한 무료 공부방을 만들어볼 생각이었지만, 현재 모임의 역량을 넘는 것이라 중도에 좌초되었다. 대신 공부방보다 역량이 덜 필요한 ‘열린 교실’ 형태로 청소년 모임 결성을 준비 중이다.
현재 새로 추진되는 사업은 대부분 전교조 봉화지회의 접촉면을 넓히는 사업이다. 지역사회에 교사조직이 뿌리내리기 위한 것이다. 서울에서 ‘민중의 집’이 추진되고 있다는데, 현재 책읽기 모임이 추진 중인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름이야 ‘민중의 집’이든, 뭐든 무슨 상관이 있으랴. 봉화지역에 적합한, 봉화지회의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형태가 보다 중요할 것이니 말이다.

지역에서 시작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글 앞부분에서 막대를 너무 구부렸나 살짝 걱정이 된다. ‘정책 비판’ 위주의 운동을 깎아내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모두가 논평자가 되고, 본부지부인 상황에서 누구는 손발이 되어 움직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항변해 본다. 그래서 ‘모두가 전국적인 운동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는 다소 무리한 막대구부리기도 해본다.
다행히 지역운동이 다시 화두가 되었다. 다들 너무 높은 곳에서 싸우다가 인간계에서 싸우는 것이 낯설 것이다. 교사운동도 마찬가지다. 교사운동에 있어 지역사회는 가깝고도 먼 곳이었다. 하지만 지역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한다면, 국면전환은 어렵다. 좌파를 벤치마킹하는 우익을 보라. ‘뉴라이트’ 조직이 경북 3대 오지인 봉화에까지 간판을 내거는 것을 보며 뭔가 반성을 해야 한다. 선거에서 발로 뛰는 ‘조직력’을 목격한 나로서는 두려움과 함께 부러움이 생긴다. 그들이야말로 우리보다 먼저 지역에서 운동을 했다. 지금, 그들에게 지역사회는 낯선 공간이 아니라, 아주 익숙한 공간이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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